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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 한글 글꼴의 "아버지"들...
2017년 10월 15일 00시 34분  조회:4777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글 글꼴의 "아버지"들

 

 

 

 

[한글]의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글]의 모양, ‘글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한글] 글꼴을 설계한 사람은 최정호와 최정순입니다.

 

원도가 글자가 되기까지

 

글꼴 제작의 필요성이 대두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이 끝난 1950년대 들어서서 입니다. 당시엔 글꼴을 만들려면 원도 설계가 필수였습니다. ‘원도(Typeface Original Drawing)’는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린 글자꼴의 씨그림으로,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이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활자를 ‘원도 활자’라고 한답니다.

 

  원도 활자가 도입되고 나서부터 활자 제작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실제 크기의 씨글자를 활자 조각가가 도장을 파듯이 새겨서 만들었다면, 이제는 원도 설계자가 자, 컴퍼스, 붓, 잉크 등과 같은 레터링 도구를 이용해서 한 글자씩 원도를 설계하면, 이 설계된 원도를 바탕으로 자모 조각기가 활자를 깎았습니다. 이때부터 활자의 완성도는 활자를 조각하는 사람이 아닌 원도 설계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한글] 글꼴의 아버지, 글꼴 디자이너 1세대인 최정호와 최정순이었던 것입니다.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최정호

 

최정호는 오늘날 본문 글꼴의 대표격인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원도 설계자입니다. 최정호의 [한글] 원도는 1957년 ‘동아출판사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동아출판사의 <새백과사전>의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 풀이는 바탕체로 인쇄하여 두 글꼴이 함께 조판되었을 때의 의미 구분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또한 <세계문학전집>은 가로 짜기와 세로 짜기가 혼용되어 같은 서체라도 조판에 따라 글씨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삼화인쇄(주), 보진재 등 다른 인쇄소의 원도 개발 의뢰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11×97, 종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도입된 사진식자기가 자모 조각기를 이용한 활판 인쇄를 대체했었던 것입니다. 사진식자는 사진기와 타자기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변형이 자유로워 활판 인쇄보다 능률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샤켄과 모리사와 등 일본 회사들은 한국에 사진식자기를 팔기 위해 최정호에게 [한글] 원도를 의뢰하여 [한글] 사식의 자판을 제작했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다양한 모양의 최정호 원도를 탑재한 사진식자기가 국내에 널리 보급되어 활판 인쇄를 대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판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의 마지막 원도는 1988년 당시 안상수 교수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최정호체 원도입니다. 최정호가 설계한 많은 글꼴 중에서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최정호체’라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줄기의 시작과 맺음, 꺾임 등의 세부 묘사가 섬세하고 또렷하면서도 가로 짜기를 고려한 구조적 변화로서 첫 닿자가 크고 기존 글꼴보다 너비가 미세하게 좁은 점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잡지 <마당>의 제호. 받침 없는 글자 '마'와 받침 글자 '당' 사이에

무리한 조형을 시도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그 어울림을 잘 표현했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교과서와 신문 활자를 개발한 최정순

 

최정순은 교과서 활자와 신문 활자의 근간을 이룬 원도 설계자입니다. 일본에서 활자 제작 기술을 연수한 최정순은 국정교과서를 위한 활자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작된 활자는 ‘ㄴ, ㄹ’ 등의 이음 줄기가 급격히 올라가 있고, 받침의 맺음이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세로 쓰기 활자의 균형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 <국어>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이후에 최정순은 신문용 본문 활자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 맞춰 3년에 걸쳐 신문용 활자를 제작하여 전량 납품했습니다. 한정된 지면에 세로 짜기로 많은 양을 담기 위해 납작한 글자 형태로 인쇄하였으며, 크게 보이도록 속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계기로 최정순은 한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사의 활자 개량을 도맡았습니다.

 

  

표제어는 돋움체로(좌),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된 을유문화사 <큰사전>(우)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은 일흔이 넘어서도 글꼴 다듬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교과서용 문화체육부 글꼴 개발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1991년 완성한 문화체육부 바탕체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기존 교과서체에 비해 가독성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2년에는 2,500개의 원도를 그려 총 11,172개의 문화체육부 돋움체를 개발했습니다. 돌기가 없는 돋움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줄기의 시작과 끝의 굵기를 조절하여 부드러운 곡선을 가미해서 아름다우면서도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최  정  호(좌)와 최  정  순(우)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와 최정순은 6.25 동란 이후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한글] 글꼴을 설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편히 사용하는 글꼴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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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레터링의 아버지, 김진평

‘레터링(lettering)’은 시각적 효과를 고려하여 문자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로서 손으로 직접 글자를 쓰거나 잘라 붙이는 등 여러 수단을 통해 글자꼴을 디자인하는 것을 뜻한다. 의도적으로 글자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일상의 글씨 쓰기와는 다르며 ‘글자 그리기’, ‘글자 표현’, ‘문자 도안’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발전한 도구와 장치를 이용하여 디지털상에서 디자인하고 이를 쉽게 출력할 수도 있지만,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글을 인쇄하는 기계조차 일본에서 모두 수입하였다. 또한 새로운 한글 글꼴을 디자인하려면 디자이너가 직접 운형자(곡선을 그리는 데 쓰는 구름 모양의 자)를 이용해 손수 그려야 했다. 모눈종이와 운형자, 이 두 가지만으로 척박한 한글 디자인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한 사람, 한글 활자 연구가 김진평(1949~1998)을 만나보자.


 

김진평의 한글 레터링

 

김진평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합동통신사 광고 기획실에 근무하며 한국판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의 아트디렉터를 맡았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세계적인 잡지로, 각종 읽을거리를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잡지로 제작하였는데 1979년에는 한국판이 창간됐다. 아트디렉터 김진평은 직접 디자인한 헤드라인 제목을 선보이며 한글 레터링의 시작을 알렸다.

 

김진평이 직접 디자인한 ‘리더스 다이제스트’ 제호

 

(오른쪽)버킹검 신문 광고, (왼쪽)영에이지 TV 광고 갈무리

 

그는 잡지 제목뿐 아니라 회사명 로고타이프와 캠페인 문구 등도 작업했다. 글자의 라인을 강조하며 글자 안팎에 그림자 효과를 주거나 글자의 일부 자소 형태를 그래픽 요소로 바꿔 표현하기도 했다. 붓글씨를 본뜬 글자, 영어 필기체를 닮은 글자, 아라비아 문자를 떠올리게 하는 글자, 머리카락 끝이 돌돌 말린 것 같은 글자 등 다양한 글자꼴을 표현했다. 이 많은 작업들이 모두 모눈종이 위에서 운형자의 섬세한 놀림과 정밀한 각도 계산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그가 다양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문자 도안을 탄생시킨 것은 한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서체를 분석하고자 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 활자를 위한 연구

 

1980~1990년대에는 특별한 목적 없이 새로운 활자를 개발하는 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한글 활자 디자인을 하려면 많은 자본과 긴 시간이 필요했고, 디자인은 대부분 대량 생산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수요와 자본이 뒷받침될 때에야 비로소 한글 활자가 만들어지는 상황이었다. 한글 활자는 1980년대까지 활자 도안가나 활자 조각가가 맡아서 작업하고,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광고용 상표나 제목 몇 글자를 그리는 작업을 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김진평은 ‘한글 로고타입의 기초적 조형 요소에 관한 연구’, ‘한글 타입페이스의 글자 폭에 관한 연구’, ‘글자체 변형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으로 한글 디자인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83년 출판한 그의 저서 ‘한글의 글자 표현’은 한글 활자의 조형 이론을 세우고 그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 당시에는 활자의 원그림을 그렸던 최정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 활자의 조형을 설명한 것 외에는 한글 활자에 대하여 이렇다 할 조형 이론이 없었다. 김진평은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활자 제작법과 글자꼴의 변화를 연계하여 한글 글자꼴의 역사와 변화를 정리했다. 그는 글자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는데, 한글의 모든 글자꼴을 서로 비슷한 것끼리 묶어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변하는 글자 균형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명조체와 고딕체, 그래픽체, 굴림체 등 당시 보편적으로 쓰이던 활자 구조에 대해서도 최초로 설명했다. 김진평의 저서 ‘한글의 글자 표현’은 이후 초기 디지털 한글 폰트 디자인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한글 활자와 레터링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한글 활자 조형 이론의 기초를 다룬 입문서로 자리매김했다. 한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글 로고타이프를 디자인하고,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체계화하는 데에 큰 업적을 세운 김진평은 한글의 심미성을 간파하고 이를 수준 높게 활용한 활자 디자인의 선구자였다.

 


 

※ 참고 자료
김진평, <한글의 글자표현>, 미진사, 1983.
유정미, <잡지는 매거진이다>, 효형출판, 2002.
유정숙·김지현, <한글공감>, 안그라픽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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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글의 모양, ‘글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리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한글 글꼴을 설계한 사람은 최정호와 최정순이다.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이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지금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최정호, 최정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 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원도가 글자가 되기까지

글꼴 제작의 필요성이 대두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이 끝난 1950년대 들어서다. 당시엔 글꼴을 만들려면 원도 설계가 필수였다. ‘원도(Typeface Original Drawing)’는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린 글자꼴의 씨그림으로,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활자를 원도 활자라고 한다.

 

원도 활자가 도입되고 나서부터 활자 제작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실제 크기의 씨글자를 활자 조각가가 도장을 파듯 새겨서 만들었다면, 이제는 원도 설계자가 자, 컴퍼스, 붓, 잉크 등과 같은 레터링 도구를 이용해 한 글자씩 원도를 설계하면 이 설계된 원도를 바탕으로 자모 조각기가 활자를 깎았다. 이때부터 활자의 완성도는 활자를 조각하는 사람이 아닌 원도 설계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졌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한글 글꼴의 아버지, 글꼴 디자이너 1세대인 최정호와 최정순이다. 

 

전시장 내부 모습

전시장 내부 모습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최정호

최정호는 오늘날 본문 글꼴의 대표격인 바탕체와 돋움체를 완성한 원도 설계자이다. 최정호의 한글 원도는 1957년 ‘동아출판사체’부터 시작한다. 동아출판사의 <새백과사전>은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하여 두 글꼴이 함께 조판되었을 때의 의미 구분을 명확하게 해준다. 또한 <세계문학전집>은 가로짜기와 세로짜기가 혼용되어 같은 서체라도 조판에 따라 글씨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삼화인쇄, 보진재 등 다른 인쇄소의 원도 개발 의뢰가 이어졌다.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11×97, 종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모리사와사 원도 중명조/활자체, 111×97, 종이, 1972/1979, 모리사와사 소장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1970년대에는 일본에서 도입된 사진식자기가 자모 조각기를 이용한 활판인쇄를 대체했다. 사진식자는 사진기와 타자기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변형이 자유로워 활판인쇄보다 능률적이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했다. 샤켄과 모리사와 등 일본 회사들은 한국에 사진식자기를 팔기 위해 최정호에게 한글 원도를 의뢰하여 한글 식자판을 제작했다. 이때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다양한 모양의 최정호 원도를 탑재한 사진식자기가 국내에 널리 보급되어 활판인쇄를 대체하게 된다.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판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판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의 마지막 원도는 1988년 당시 안상수 교수의 의뢰를 받아 설계한 최정호체 원도이다. 최정호가 설계한 많은 글꼴 중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최정호체’라 이름 붙였다. 줄기의 시작과 맺음, 꺾임 등의 세부 묘사가 섬세하고 또렷하며, 가로짜기를 고려한 구조적 변화로서 첫닿자가 크고 기존 글꼴보다 너비가 미세하게 좁은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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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마당>의 제호. 받침 없는 글자 '마'와 받침 글자 '당' 사이에 무리한 조형을 시도하지 않는 정공법으로 그 어울림을 잘 표현했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교과서와 신문 활자를 개발한 최정순

최정순은 교과서 활자와 신문 활자의 근간을 이룬 원도 설계자이다. 일본에서 활자 제작 기술을 연수한 최정순은 국정교과서를 위한 활자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때 제작된 활자는 ‘ㄴ, ㄹ’ 등의 이음줄기가 급격히 올라가 있고, 받침의 맺음이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있어 세로쓰기 활자의 균형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 <국어>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이후 최정순은 신문용 본문 활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 맞춰 3년에 걸쳐 신문용 활자를 제작하여 전량 납품했다. 한정된 지면에 세로짜기로 많은 양을 담기 위해 납작한 글자 형태로 인쇄하였으며, 크게 보이도록 속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를 계기로 최정순은 한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사의 활자 개량을 도맡았다.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표제어는 돋움체로, 뜻풀이는 바탕체로 인쇄된 을유문화사 <큰사전>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은 일흔이 넘어서도 글꼴 다듬기를 쉬지 않았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교과서용 문화체육부 글꼴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1991년 완성한 문화체육부 바탕체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기존 교과서체에 비해 가독성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에는 2,500개의 원도를 그려 총 11,172개의 문화체육부 돋움체를 개발했다. 돌기가 없는 돋움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줄기 시작과 끝의 굵기를 조절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미해, 아름다우면서도 가독성이 높다. 

 

 

최정호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순 (사진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와 최정순은 6.25 동란 이후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한글 글꼴을 설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편히 사용하는 글꼴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에디터_ 추은희

자료제공_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최정호·최정순 탄생 100주년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글꼴인 바탕체와 돋움체를 개발하고 명조체와 고딕체의 완성도를 높인 인물은 누구일까.

'한글 글꼴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원도(原圖·한글 활자의 씨그림) 설계자 최정호(1916∼1988)와 최정순(1917∼2016)이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남남인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현재 글꼴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원도를 만들었다.

최정순 유물.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날을 앞두고 두 장인을 기리고 그들의 작업을 회고하는 특별전 '최정호·최정순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 두 글씨장인 이야기'를 10월 5일 박물관 별관 나눔마당에서 개막한다고 30일 밝혔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최정호와 최정순의 유품을 비롯해 안상수 안그라픽스 대표, 일본 폰트업체 모리사와가 소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 등 자료 195점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최정호의 사진활자 원도와 청사진, 마스터필름 등도 공개된다.

 

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되며, 1부 '원도활자'에서는 두 장인이 활발하게 활동한 1950∼1990년대 활자 인쇄기술의 변화 양상과 원도를 다룬다.

원도는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한다.
원도를 바탕으로 1950∼1960년대에는 납활자를 생산했고, 1970년대부터는 사진활자를 만들었다.

전시장에서는 납활자 제작 시 사용되는 원자판과 자모, 사진식자기에 쓰이는 유리식자판 등을 볼 수 있다.

최정호가 설계한 원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2부의 주제는 '두 글씨장인 이야기'다.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했지만, 활동 영역은 달랐다. 최정호는 서적 출판용 활자의 글꼴을 주로 개발했고, 최정순은 교과서와 신문 활자의 원도를 많이 그렸다.

최정호의 글꼴이 사용된 1959년 동아출판사 '새백과사전'과 최정순의 글꼴로 제작된 같은 해의 '국어' 교과서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많은 사람이 본 백과사전과 교과서, 신문에는 대부분 최정호 선생과 최정순 선생의 글꼴이 담겨 있다"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두 장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 국어 교과서.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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