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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사민필지(士民必知).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ulbert, H.B.)가 지은 세계지리서.
호머 헐버트는 1886년(고종 23) 조선의 초청으로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로 취임해 세계의 지리지식과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의 교과서 격인 『사민필지』를 저술했다.
1889년 한글본으로 초판이 나왔고, 1895년 학부(學部)에서 백남규(白南奎)·이명상(李明翔) 등이 왕명으로 한문본 『사민필지』를 간행했다.
한편, 1906년에는 아처(Archer)의 도움으로 『Geographical Gazetteer of the World』라는 이름의 Hulbert’s Education Series No. Ⅱ 수정판이 출간되었다. 초판한글본은 17행×28자 161면이며, 10장의 지도가 수록되었다. 한문본은 10행×20자 71장(張)으로 되어 있으며, 지도는 실려 있지 않다.
한글본 목차는 제1장 지구, 제2장 유럽주, 제3장 아시아주, 제4장 아메리카주, 제5장 아프리카주로 되어 있고, 총론에서는 태양계와 그 현상, 지구의 모습, 기후·인력·일월식, 그 밖의 지구상의 현상, 대륙과 해양, 인종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주의 총론은 각 주의 위치·지형·면적·기후·인구·인종을 적고, 이어 각 주별로 주요 국가의 위치·방향·기후·산물·국체·인구·씨족·수도·산업·군사·학업·종교·나라나무 등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기술상의 특징은 한국을 기준으로 한 점인데, 예를 들면 “일본: 일기는 대한보다 좀 덥고 습기가 많으며…….” 와 같은 내용이 그것이고, 각국의 수출입액은 한국의 화폐단위인 ‘원’으로 표시했다. 비록, 외국인의 손에 의해서 저술된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교과서로, 아직 세계정세에 대해 백지상태이던 한국에 세계지리 지식을 꾸밈없이 심어주어 세계에 눈을 돌리게하고, 근대화의 문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한글 전용인 이 책은 1890년대 국어 연구의 자료가 된다. 표기법에서 한글만으로 쓰면서도, ‘글ㅅ자, 언문ㅅ법’ 등 사이시옷이 사용되고, 된소리 표기에 전통적인 된시옷과 함께 ‘ㄲ, ㅆ’ 등이 ‘니, 똑똑이’ 등과 같이 사용된 점이 주목된다.
외국, 특히 유럽의 국명이 영어식 발음에 따라 ‘유로바·노웨국·쉬덴국·덴막국·네데란스국’ 등으로 적히고, 바른쪽에 가로줄을 친 점도 특이하다. 참고로 한문본에서는 위 지명이 ‘구라파(歐羅巴)·나위(那威)·서전(瑞典)·정말(丁抹)·하란(荷蘭)’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덤으로 더 더...
891년에 간행되었다. 지구와 천문·기상 등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과 지구총론·인종총론 및 유럽 총론 등의 개론을 붙였다. 본문에서는 유럽·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 등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지역에 대한 다양한 인문지리적 내용을 서술했으며, 국가의 위치와 면적·지형·기후·자원·인구·인종·주요산업·정치체제·법률·교육체제·부세체제·교통수단·종교 등 다양한 내용을 간명하게 기술했다.
본문 가운데 러시아에 대한 기술이 가장 앞에 실려 있는데 그중에는 "러시아가 오로지 영토를 개척하는 것을 도모하여 수백 년 간 유럽과 아시아를 잠식해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러시아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 그 팽창주의를 서술한 것은 당시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세력 각축에 시달리던 조선의 입장에서 음미해볼 대목이다.
1895년에는 의정부 주사였던 백남규(白南奎)와 이명상(李明翔)이 번역하고, 의정부 편사국의 주사였던 김택영(金澤榮)의 서문을 받아 한문본으로도 출간되었다. 김택영은 이 책의 저술 동기를 '문명이 날로 쇠잔해가고 허위를 숭상하는 아시아를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번역본에서는 서양의 여러 나라를 서술하면서 〈영환지략〉과 〈만국사략〉의 일부 내용을 취하여 서술했다.
이 책은 당시 외국의 정세에 어두웠던 지식인들이 세계 각국의 동향을 개략적이나마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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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는 육영공원의 교사였던 호머 헐버트가 집필한 최초의 한글 교과서로 조선이 나아가야 할 국제간의 교류를 위해 조선인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졌다. 1891년초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며, 초판으로 2천부를 찍기로 예정했다고 한다.
161쪽으로 되어 있는 사민필지는 태양계와 지구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대륙과 각 나라를 소개하였다. 각 나라에 대한 설명은 지리, 자연 상태, 정부 형태, 풍습, 종교, 산업, 교육, 군사력 등을 포함하였다. 1895년에는 한자로 번역된 한역판도 나왔으며,1906년과 1909년에는 2판과 3판이 각각 출판되었는데, 2판에는 영국과 미국의 현재 이름이 비로소 사용되었다. 이전에는 엥길리국, 합중국이라고 이름했었다.
사민필지는 육영공원 등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상류층에게 인기있는 책이 되었다.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한국인들이 이민 결심을 하게 되는 주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1909년 일본은 사민필지가 국민의 사상 교육 과정에 너무 자극적이라며 출판과 판매를 금지하였다.
○ 교육용 세계 지리지: 『사민필지』
『사민필지』는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B. Hulbert, 1863~1949)가 지은 세계지리서이다. 헐버트는 1886년(고종 23)에 우리 나라의 초청으로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로 취임하여, 1889년 세계의 지리지식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한글본으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다. 서문에는 그가 『사민필지』를 편찬한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서문에서 『사민필지』의 저술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지금의 세계정세가 예전과 달라 국가간의 교류가 한 집안과 같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각국이 이전과 같은 본국 글자와 사적만으로는 국제교류에서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국어와 역사 외에 세계지리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세계에 대한 지리지식과 더불어 종교, 경제, 군사 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세계를 보는 시각을 길러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한 것이다.
『사민필지』의 초간본에는 간행연기가 없는데, 책의 내용을 토대로 볼 때 대략 1889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 간행이 이루어졌다. 1895년에는 학부에서 백남규(白南奎)와 이명상(李明翔)이 공동으로 번역하고 의정부편사국(議政府編史局) 주사(主事) 김택영(金澤榮)이 찬하고 서문을 쓴 한문본 『사민필지(士民必知)』가 간행되었다. 한글본 『사민필지』는 1906년 감리교 출판사(Methodist Publishing House)에서 출판되었는데, 영문 제목은 “GEOGRAPHICAL GAZETTEER OF THE WORLD”로 되어 있다. 제3판은 1909년 재판본 그대로 헐버트에 의해 간행되었다.
헐버트가 언어학, 역사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단독으로 『사민필지』를 저술한 것은 아니고 주변의 한국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헐버트의 회고록에서 『사민필지』는 미국 휘태커(Whittaker) 연감, 혹은 정치가(Statesman) 연감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어느 세계지리 교과서를 모범으로 삼아 세계 각국의 통계를 첨가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의 순서
초판본의 수록 내용은 서문에 이어 지구과학적 내용을 수록한 「따덩이」, 이어서 각 대륙별로 국가를 소개하고 있다. 수록 대륙의 순서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순으로 되어 있다. 유럽이 아시아보다 먼저 기술된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근대 서구문명의 발상지인 유럽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민필지』에는 지리지를 보완하는 8장의 지도가 실려 있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천체도, 지구동서반구도, 유로바디도, 아시아디도, 북아메리까디도, 남아메리까디도, 아프리가디도, 오스드렐랴태평양디도 등의 순서로 되어 있다. 세계지도와 대륙별 지도
세계지도의 경우 경선과 위선이 등간격의 곡선으로 그려진 정거방위도법을 사용하였다. 대륙별 지도에는 지도의 제목이 표기되어 있고, 동서남북의 방위표시, 삼천리에 해당하는 축척 등이 그려져 있다. 지도의 내용은 대륙에 속해 있는 주요 국가와 수도, 주요 도시가 표시된 정도로 비교적 소략하다. 산맥은 산봉우리를 서로 연결하여 그린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연안 해역은 가로선을 조밀하게 그려 표현하였다.
『사민필지』의 「아시아디도」
『사민필지』의 내용을 보면, 총론에서는 태양계와 그 현상, 지구와 그 현상, 인력, 일․월식, 가상 현상, 지진, 조석, 유성, 화산 등 지구과학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어 각 대륙별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대륙의 총론을 앞에 수록하고 뒤에 각국의 지지를 기술했다. 대륙별 총론에서는 폭원(위치와 크기), 디경(사방 경계), 디방(면적), 디형(지형), 일긔(기후), 사람의 수효(인구), 시족(인종)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별로 서술된 항목에는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폭원, 디경, 디방, 지형, 일긔, 소산(산물), 국톄(국체), 사람의 수효, 시족, 도셩(수도) 및 도회, 백성의 사업(생업), 사람의 품수(계급), 외국통상(무역), 장사사무(상업), 국재(재정), 군사(육군), 군함, 학업(학교), 종교, 나라 소무(국가의 역할), 도로 및 철도, 엇은따(식민지), 특이사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기술의 특징으로는 당시 조선을 기준으로 각국을 비교하여 서술한 점을 들 수 있다. 프랑스의 기후를 설명하면서, “일긔는고르나대한보다좀더우며”라고 하고, 일본의 기후를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일긔를의론컨대죠션보다좀더웁고습긔가만흐며”라고 하여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서술하고 있다. 각국의 기술은 각 항목별로 서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전통적인 백과사전식 기술에서 탈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항목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기도 한데, 맨 마지막 항목인 ‘이나라헤이샹함’에서 독특한 풍습이나 민족성, 기이한 동물, 자연적 특색 등을 자신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민필지』의 내용 가운데 이전의 지리서와 다른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스페인에 대한 내용이다. 스페인은 유로바의 ‘이스바니아국’이란 명칭으로 소개되었는데, 다른 이름으로 ‘려송국이라’고 하고 있다. 려송국은 지금의 필리핀 루손 섬을 가리키는 곳으로 중국의 문헌에는 ‘여송(呂宋)’으로 표기되어 있다. 『명사』에서도 “중국의 남해 가운데 있어서 장주(漳州)와 매우 가깝다”라고 하여 위치상으로 지금의 루손 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랑기(佛郞機)가 이곳을 점령해서 그 이름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실제는 불랑기라고 했다. 알레니의 『직방외기』에서도 “중국 광저우의 동남쪽에 여송이 있다”라고 기술했다. 지금의 필리핀의 루손 섬에 해당하는 지역을 여송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루손 섬을 여송으로 부르던 것이 스페인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영환지략』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즉, 스페인이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본국인 서반아(西班牙, 스페인)을 대여송(大呂宋)이라 하고 루손 섬을 소여송(小呂宋)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보통 객이 주인의 이름을 계승하는데[客襲主名] 도리어 주인이 객의 이름을 차용한[主借客名] 연유는 모르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 식민지의 나라 이름으로 부르던 것을 점차 본국의 이름으로 불렀던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원의 『해국도지』에서는 항목을 아예 ‘대여송국’으로 제시하고 별칭으로 사편국(斯扁國), 서반아(西班亞), 시반아(是班亞), 이서파니아(以西把尼亞) 등을 나열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사민필지』에는 당시 국명 표기에서도 호칭의 변화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지리지로서 『사민필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개화 정신과 애국 계몽적 성격이 강조되어 있다. 둘째로 일부 내용의 기술에서 기독교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셋째로 유럽적인 시각, 특히 영미 중심의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다. 당시 식민지 확보 경쟁을 하던 열강들의 시각이 책 속에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후에 발간되는 지리교과서의 체계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표 . 『사민필지』에 수록된 대륙별 소속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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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최초 한글 지리교과서) 서문 (옛 글자를 현대 글로 번역)
천하 형세가 옛날과 지금이 크게 같지 아니하여 전에는 각국이 각각 본지방을 지키고 본국 풍속만 따르더니 지금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천하만국이 언약을 서로 믿고 사람과 물건과 풍속이 서로 통하기를 마치 한집안과 같으니 이는 지금 천하 형세의 고치지 못할 일이라.
이 고치지 못할 일이 있는 즉 각국이 전과 같이 본국 글자와 사적만 공부함으로는 천하각국 풍습을 어찌알며 알지 못하면 서로 교접하는 사이에 마땅치 못하고 인정을 통함에 거리낌이 있을 것이오. 거리낌이 있으면 정의가 서로 두텁지 못할지니 그런 즉 불가불 이전에 공부하던 학업 외에 각국 이름, 지방, 폭원, 산천, 산야, 국경, 국세, 재화, 군사, 풍속, 학업과 도학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고로 대저 각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칠, 팔세가 되면 천하 각국 지도와 풍속을 가르친 후에 다른 공부를 시작하니 천하의 산천, 수륙과 각국 풍속,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조선도 불가불 이와 갖게한 연후에야 외국 교접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또 생각건대 중국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언문이 중국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수이 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 이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언문법에 익숙치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서 천하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강 기록한다.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을 먼저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 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보시기를 그윽히 바라옵나이다.
조선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글로만 쓴 교과서 헐버트가 쓴 ‘민필지’의 의미와 가치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1. 들머리
나는 호머 헐버트 박사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일도 없고 또 사회에서 들은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부터 7년 전 쯤 오리 전택부 선생님을 모시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 분이 주신 책과 말씀을 통해서 헐버트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헐버트 추모식에 와서 헙브트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을 만나 민필지 사본과 헤이그 밀사 사건에 관련된 일본 기밀문서 자료집 등 관련 문서를 소개 받고 좀 더 자세하게 헐버트를 알게 되었다. 특히 민필지 서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 분을 너무 몰랐고 또 무관심했으며 은혜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게 많고,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헐버트를 알리고 빛내고 그 정신과 업적을 이어가는 일도 그 가운데 아주 중대한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헐버트에 대해서 모를 것 같아서 이 분을 온 국민에게 알리고 이 분이 한 일을 이어받고 빛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 회장이 헐버트 박사를 알리고 빛내는 일을 함께 하자는 말에 고마움과 함께 찬동했고 이 일에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이 학술토론회를 열게 되었다. 이 학술대회를 열 수 있게 도와준 문화체육관광부 여러분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호머 헐버트는 미국인으로서 1886년(조선 고종 2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운 서양식 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외국어 선생으로 온 사람이다. 그 때 나이 26살의 젊은이였다. 외국어 교사로 와서 1891년까지 교사로 일하는 동안 한국을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이 잘 될 길을 알려주고 또 스스로 열려고 애썼다. 스스로 한글로 교과서도 만들고 한국 역사책도 쓰고, 외국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려고 애썼다.
김동진 회장은 헐버트가 한글을 배우고 알게 되면서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인보다도 한글과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영어 로마자보다도 더 잘난 글자를 만든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한국인을 무시할 외국인이 없을 것이다. 외국에 유학을 갔던 이들이 중국인과 일본인만 대단하게 생각하다가 한글이 세계 으뜸 글자란 것을 알려주면 우리를 무시하지 않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만큼 한글은 우리의 자긍심이고 자존심이고 보물이고 힘이다.
헐버트는 1905년 고종의 밀사로 미국 대통령에게 가서 을사늑약이 일본이 강제로 맺은 거짓 조약으로서 고종이 서명하지 않은 조약임을 밝히려고 했으나 실패했으며, 1907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하고 헤이그에 우리 밀사와 함께 가서 한국의 국권회복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로만 더 알려졌다. 한국인보다도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을 널리 빛낸 한글학자와 한글운동가인데 이 사실을 모르거나 이 일을 대단하게 보지 않고 있다. 나는 헐버트가 한글을 빛낸 일은 독립운동을 한 것보다도 오히려 더 대단한 업적이라고 본다. 그 때 독립운동은 여러 사람이 많이 했지만 한글을 빛내고 세계에 알린 일은 그가 가장 먼저 했기 때문이다
.그는 참된 교육자였고, 이기주의자가 아니고 온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였고,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지를 바로 안 천재였으며 한국인보다 한글과 한국을 더 사랑하고 세계에 빛낸 사람이다. 교육으로 우리 국민을 똑똑하게 해서 힘센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외국 침략을 막으려고 했으나 안 되니 독립운동까지 했다.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로 우리 조선인을 눈 뜨게 하고 똑똑하게 만들려고 했다. 사민필지에 그 정신과 인물됨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참으로 고맙고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언젠가 한국이 독립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건 한글을 가진 우수한 민족임을 알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 나는 그가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 데 이바지한 일은 간단하게 소개하고 그가 쓴 182쪽의 사민필지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말하려고 한다.
2. 헐버트가 한글을 빛내는 데 이바지 한 일
가. 스스로 한글을 배우고 한글을 사랑했다.
헐버트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려면 스스로 먼저 한글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글을 배우려고 제 돈으로 한글 선생을 모셔서 공부했는데 선생을 세 번이나 바꾸었다고 한다. 두 번째 선생은 아버지를 부친이라고 가르쳤다. 그 말은 집에서 대화할 때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을 알고 세 번째 선생을 모셨는데 그는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데 누구인지 알려지진 않았다. 여기서 그가 어려운 한자말보다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실천한 머리 좋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헐버트는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에게 외국어뿐만 아니라 서방세계, 우주 들을 가르치면서 교재용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1889년 3년 만에 한글을 깨우치고 세계 지리, 천체, 각국의 정부형태와 인구, 교육과 군사력, 풍습, 산업 들을 한글로 써 교과서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책 이름도 선비와 백성이 모두 알아야 할 책이라는 뜻으로 민필지(士民必知)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학생들 교재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도 읽으라고 1891년에 초판을 냈는데 2000부를 찍었고 1906년에 2판, 1909년에 3판을 내고 1905년에 한문으로도 냈다고 한다. 이 일은 한글 발전 역사뿐 아니라 우리 민족 역사에 길이 빛날 매우 큰일이고 세계 문화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아름다운 일이다.
나. 세계 최초로 한글이 세계 으뜸 글자임을 외국에 알리다.
그는 가장 먼저 영문으로 한글의 우수함을 써서 외국인들에게 알린 사람이다. 1892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 나온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에 ‘한글(The Korean Alphabet)’ 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세종임금의 훌륭함을 말하고 “세종이 어려운 한자를 배우기 힘들어 하는 백성을 생각해서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든 것은 인류 역사에 대단히 큰 업적이다.”라고 창제 정신을 위대하게 평가했다.
그는 이어서 한글소식 3월호에도 한국어 기원과 계통을 설명하면서 한글이 훌륭함을 했다. 1898년 한국소식 2월호엔 이두라는 제목으로 한문, 이두, 한글의 문자 구조를 비교 설명하면서 한글이 얼마나 좋은 글자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1906년까지 한글소식에 여러 차례 이어서 한글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또 1903년 한국논문이란 논문집에 훈민정음(Hun-min Chong-eum)이란 논문을 실었다. 그리고 한글과 한국 문화에 관한 글을 영문으로 여러 번 기고해서 한글과 한국을 외국에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특히 1903년 한국논문에 기고한 영문 논문을 미국이 스미스소니언협회에 보내 연례보고서의 학술 논문 난에 넣게 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대통령과 의회와 세계 학자들에게 보내는 보고서라고 하니 외국 논문지에 가장 먼저 한글을 알린 논문이 될 것이다.
다. 주시경과 헐버트와 독립신문
주시경은 세종이 만든 한글을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갈고 닦은 학자요 선구자요 선각자다. 그는 “나라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나니.”라면서 한글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한글사랑 모임까지 만든 한글운동가로서 오늘날 우리가 우러러 받드는 분이다. 그런데 주시경이 헐버트의 제자요 함께 한글을 빛내는 일을 했다.
헐버트가 1889년에 한글로 민필지란 교과서를 만들었고, 1902년에 한글이란 논문도 썼는데 그 헐버트가 교사로 있는 배재학당에 1894년에 들어갔으니 그의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주시경은 서재필을 도와 독립신문 창간과 일을 도왔으며, 헐버트가 관리하는 삼문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니 헐버트와 인연이 깊다.
그리고 헐버트는 최초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과 발행에도 많이 이바지하고 힘을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독립신문을 처음 만든 서재필과 주시경이 헐버트를 잘 알고 있으며 독립신문을 헐버트가 관리하는 삼문출판사(한글,한문,영문)에서 인쇄했기 때문이다. 서재필이 미국에서 와 바로 독립신문을 창간할 수 있었던 것도 헐버트와 삼문출판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라. 고종황제가 설립한 국문연구소를 만들게 하다.
1907년 주시경이 고종께 “연산군 이래 정부가 우리글을 돌보지 않은 것은 잘못이니 세종 때의 정음청과 같은 연구기관을 두어 국어와 국문을 부흥시키자.”고 주장하고 건의해서 고종이 윤허했다. 그런데 헐버트도 민필지를 만든 뒤 줄곧 한글 사용을 주장하면서 한글 보급청을 만들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헐버트의 제자인 오성근의 일기에 1902년 3월 헐버트, 김가진, 지석영, 주시경 들이 국문학교 설립을 추진했으나 재정형편이 어려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쓰고 있고, 또 1906년에 자신과 주시경이 한글 보급 기관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주시경, 오성근이 한 일은 그의 스승인 헐버트의 영향과 가르침에서 나온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헐버트는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대한제국에서 한글을 쓰고 발전시키는 데 헐버트가 큰 몫을 했음이 틀림없다.
마. 헐버트는 대단한 한글학자요 한글운동가다.
헐버트는 한글을 배운 지 4일 만에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1주일이 안 되어 조선인들이 이 좋은 제 글자보다 중국 한자를 더 좋아하고 섬기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록에 썼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자보다도 더 훌륭한 소리글자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늘날 대학원까지 다니고 박사가 된 한국 학자도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 글자이며, 살려 쓸 때 힘센 나라가 된다는 걸 모르는 이가 많은 데 외국인이 120년 전에 그걸 알고 한글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앞에서 밝히 한글에 관한 논문 말고도 한글과 한국말에 관한 더 많은 논문을 썼다. 그리고 한글의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한글운동에 앞장을 섰다. 그는 “세계 어느 문자도 소리를 적는데 한글보다 더 낫은 글자는 없다. 한글은 현재 쓰는 세계 문자가운데 가장 훌륭한 문자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외국인이지만 그 어느 한국인보다 똑똑한 한글학자였고, 한글운동가였다.
바. 한글 띄어쓰기를 가르친 사람이다.
독립신문이 한글을 쓸 때 처음으로 띄어 쓰고 점을 찍었는데 이 또한 헐버트 때문으로 안다. 독립신문이 1896년 4월에 창간했는데 헐버트가 공동편집인으로 있는 한국소식에 1896년 1월호에 띄어쓰기에 관한 글을 실었었다고 한다. 민필지는 띄어쓰기는 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쓰는 한문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기에 한국인을 배려하다보니 미쳐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로 보인다. 그러나 서양 영어는 띄어쓰기를 하고 글 끝에 점을 찍는 것을 헐버트는 잘 알고 있고, 서양 책을 본 한국인들도 알고 있어서 독립신문에 그걸 적용했을 거로 보인다. 한글과 똑 같은 소리글자인 영문을 배우고 익힌 헐버트는 한글을 빛내는 데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이 이바지한 사람이다.
조선육영공원 교사 헐버트
3. 사민필지의 의미와 가치
민필지는 서문으로 시작해서 우주, 지구, 5대륙별로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나라마다 지리, 산업, 정세, 교육과 군사력, 종교와 각 나라의 특징들을 썼다. 서문에 우리가 귀담아 듣고 반성해야 할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민필지 서문은 세종임금이 쓴 훈민정음 어제를 떠오르게 한다.
아시아에서 조선과 일본, 중국에 대해서 좀 자세하고 적고 유럽 여러 나라가 발전한 모습을 강조했다. 유럽과 아메리카는 재물이 많고 종교와 학업에 귀천이 없고 정치는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소경과 귀먹어리와 앉은뱅이도 모두 공부하도록 하고 잘 돌보며 노비나 인신매매를 금지하고 평등하게 산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일본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서 많이 발전했고, 조선은 제 글자보도 중국 글자를 중요시하고 종교 자유가 없다고 가르친다. 조선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호랑이가 있고 대마도도 조선 땅이라고 적고 있는 게 눈에 뜨인다. 그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자.
가. 세계에서 가장 처음 한글로만 쓴 교과서다. 이것은 대단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우리 조선인은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지나도록 그 글자의 주인이면서 한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인이 한글로만 교과서를 처음으로 썼다는 것은 한글 발전 역사에 대단히 큰일이고 잘한 일이다. 그 이전에 조선인들이 한글로만 편지를 쓰거나 개인이 글을 쓴 일이 있다. 이 일은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 기독교 성경이나 교리 보급하는 글을 한글로만 쓴 일과 함께 아주 중대하게 봐야 한다. 더욱이 아직도 교과서는 한글로만 써서는 안된다는 얼빠진 이들이 판치는 데 110년 전에 한글로만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 헐버트는 한글이 얼마나 빼어난 글자인지 보여준 사람이고, 사민필지는 그걸 증명한 책이다. 헐버트는 한국인을 제대로 잘 가르치려면 한국말을 배워야 하고 한글을 잘 배우고 잘 하려면 한글을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글을 배운지 3일 만에 한글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만에 한글로만 교과서를 만들었다. 참으로 놀랍도록 대단한 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쓴 정인지는 슬기로운 이는 하루에 이 글자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걸 외국인인 헐버트가 보여주었고 민필지가 증명했다.
다. 교육 내용에서 있어서 세계정세와 지리를 알아야 함을 가르쳐준 책이다. 헐버트가 이 책을 처음 써가지고 외무대신에게 보여주니 누구나 알고 배워야 할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도 ‘세계 지리’라고 하지 않고, 선비나 일반 백성이나 모두 누구든지 꼭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민필지 (士民必知)로 한 거 같다. 그는 민필지 머릿글에서 “각국은 남녀 막론하고 칠판세가 되면 다른 나라의 풍속과 정세와 지리를 먼저 가르치니 조선도 그리하고 다른 나라와 외교도 하고 해야 한다.”고 썼다.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 강대국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정치인과 관리가 세계정세와 지리를 아는 것이 근본인데 그건 외면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했겠는가.
라. 한자나 한자말만 읽고 알면 공부 끝이요 학자인줄 아는 관리와 지도층을 일깨우려는 책이다. 그는 조선의 관리와 선비가 중국문화와 말글이 모두요 그것만 읽고 알면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꾸짖었다. 한국의 관리와 지배층에게 한글이 얼마나 훌륭함을 가르쳐주려고 스스로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쉬운 글로 일부러 책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학생들 교과서로 만들었지만 일반인들도 보라고 인쇄 출판까지 했다. 그는 이 책 머릿글에서 “중국 글자로는 모든 이가 빨리 알 수가 없고, 널리 모두 알려면 조선 글로 써야 쉬운데 슬프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마. 한글로만 쓴 게 아니라 쉬운 우리말로 책을 써도 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책 글 내용을 보면 입말이고 쉬운 말이다. 그런데 책 이름은 한자말이다. 왜 그랬을까 한문만 섬기는 이들을 생각해서 그들의 눈길을 끌려고 한 거로 보인다. “我是學生”은 중국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 한문이 이런 중국말투다. 영어로 “I am a student.”처럼 중국 글을 풀이하면“나는 이다 학생”이 된다. 우리말로는 “나는 학생이다.”가 된다. 그런데 이런 중국글로 공부를 하면 제대로 되겠는가! 이런 잘못을 헐버트가 쉬운 우리 말투로 교과서를 만들어서 알려주었다.
바. 조선인이 쉬운 제 말글로 가르치면 힘센 나라가 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는 민필지 머릿글에서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견주어 크게 요긴하것마는 조선인들이 귀한 줄 모르고 오히려 업수이 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리오. 이러므로 외국인인 자기가 한국말과 한글을 잘 알지 못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특별히 언문으로 교과서를 만든다. 이를 익히면 외국과 교섭하는 데 긴요하게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성들이 한문을 몰라 글을 배우고 쓰기 힘들어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글자를 만드니 잘 쓰라고 하신 세종임금 말씀과 똑 같다.
사. 조선인이이 가까이 하고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했다. 거리 표시도 ‘4km’ 라고 영문으로 쓰지 않고 ‘십리’ 라고 한국인이 익숙한 단위로 썼다. 오 대륙은 다섯 땅덩이, 사막은 모래밧, ‘수입’은 “사들이는 것”, ‘수출’은 “내다 파는것”이라고 썼다. 지도도 그려 넣고 각 나라의 수도는 파란색으로 표하고 국경선은 빨간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쪽 수 표시도 “1, 2, 3”으로 쓰지 않고 “일, 이, 삼”이란 한글로 썼다.
아. 한글 표기 연구에 도움이 될 책이다. 된소리가 나는 말, ‘또’는 ‘ㅅ도’라고 하고, ‘떨어진’은 ‘ㅅ더러진’으로 썼다. 첫소리에 ‘ㅅㄷ’처럼 겹자음을 썼다. ‘땅’은 ‘ㅅ다’라고 했다. 그래서 ‘땅덩이’는 ‘ㅅ다덩이’로 되었다. 된소리가 나는 말에서 사이시옷을 많이 썼다. ‘수법’은 ‘수ㅅ법’으로 ‘숫자’는 ‘수ㅅ자’로, ‘사탕’은 ‘사ㅅ당’으로 ‘문법’은 ‘문ㅅ법’으로 썼다. 그런데 첫소리에 ㄲ 이 없다. ‘가까우면’은 ‘갓가오면’으로 오늘날 쓰지 않는 말, 쓰지 않는 아래아(ㆍ)를 쓰는 말도 연구 자료가 될 가치가 있다. “, , ,, ” 같은 쌍 받침은 보이지 않는다. ‘많고’는 ‘만코’로, ‘없고’는 ‘업고’로, ‘있으면’은 ‘잇스면’으로, ‘밖’에는 ‘밧게’로 썼다. ㅊ ㄷ ㅍ ㅌ ㅎ받침도 없다. ‘빛’은 ‘빗’으로, ‘받아’는 ‘바다’로 ‘같고’는 ‘ㅅ고’로 ‘받고’는 ‘밧고’로 적고 있다.
자. 토박이말을 많이 살려 쓴 책이다. ‘해협’을 ‘물ㅅ목’이라고 했다. “지브랄타해협 - 지브랄타 물목. 카리브해 - 카리브못.” ‘호수‘를 ’못‘이라고 하고, ’십(十)은 ‘열’이라고 하고 ‘지구’는 ‘다덩이’이라고 하고, 지구가 모든 물건을 끌어당긴다는 말을 “드리는”이라고 했다. “지구가 해를 공전하다”는 “지구가 해를 에워돌다.”로 썼다. ‘미국’은 ‘합중국’, 영국은 ‘엥길리국’, 러시아는 ‘아라사국’이라고 했다. ‘대마도’도 조선 땅이라고 하고 한 게 남다르게 보인다. 그 때 대마도와 간도는 우리땅이라는 게 일반 인식이었던 거로 보인다. 외국인이 제멋대로 쓴 것이 아니고 보고 들은 대로 바르게 쓴 것이기 때문이다. 헐버트는 이 책에서 일본을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서 많이 발전한 나라로 좋게 쓰고 있어 더욱 믿음이 간다.
차.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제 글자가 얼마나 훌륭하고 소중한지 모르는 조선인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 쓰라고 가르쳐주었다. 서문은 세종임금이 쓰신 세종어제와 닮았다. 한글이 얼마나 좋은 글자인지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나 영어 교육을 보았다. 그래서 남의 글 교육보다 세계 물정과 유럽이나 미국 들 선진국 사회 모습을 알려주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 알려주고 있다.
차. 오늘날 지리책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했다. 구름, 월식, 비, 바람, 번개, 천둥, 지진, 이슬, 우박 들 자연 현상을 설명한 내용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지리책보다도 더 쉽다. “구름은 물과 땅에서 항상 습기가 나는데, 이 김이 지극히 가벼워 사람이 숨 쉬는 기운보다 더 가벼워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공중으로 올라갈수록 차가우니 땅에서 나온 김이 올라가 차가운 데를 당하면 김이 엉겨서 형체가 뵈는 지라, 이게 구름이다. 또 더운 때는 땅에서 김이 많이 더 많이 나고 많이 나면 김에 습기도 많으니 그런고로 여름의 김은 습기가 많으며 또 구름도 많다. 비는 엉긴 김이 구름인즉 떠다니다가 매우 차가운 데를 만나면 물이 되나니 큰 산속은 더 차가운지라 그런고로 구름이 큰산을 지나면 물이 되고, 물은 기운보다 무거우니 무거운 것은 나리는지라 이때 나리는 게 비니라.” 라고 설명했다. 참으로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이렇게 자세하고 쉽게 배운 일이 없다.
타. 조선인들을 남다르게 사랑하고 생각한 책이다. 될 수 있으면 조선인들이 쉽게 읽고 깨우치게 하려고 도량형 단위도 조선식으로 바꾸었다. 지도까지 그려 넣었고, 그 나라의 수도와 큰 도시도 표시했는데 수도는 파란색으로 모두 표했다. 거리를 나타내는 ‘km’를 ‘리’로 바꾸고, 높이도 ‘척’으로 곡식의 무게를 나타내는 ‘kg’을 ‘석’으로 표시했다. 각 나라의 수도를 나타내는 표시는 파란 색으로 표시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일반 국민을 생각지 않고 외국어를 마구 섞어 쓰는 일이 많은데 이 분에게 독자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워야 겠다.
파. 유럽과 미국을 아시아나 다른 대륙보다 좋게 쓴 것은 우리를 깨우치려는 뜻이다. 사민필지에서 유럽 각 나라를 “ 군사가 바르며 재물이 많고, 산업을 귀하게 여기며 학업에 정밀하고 한가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정치에서 백성들의 뜻을 따르고 모든 이에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노약자나 불쌍한 사람을 거두어 주고 병원이 많아 치4를 잘하고 상하귀천이 없고 첩을 두지 않고, 노복을 거느리지 않는다.” 라는 등 칭찬을 많이 하는 데 우리가 개선하고 알아야 할 일을 강조한 거로 보인다.
하. 대마도가 우리 땅임을 밝혔다. 1886년 미국인 헐버트가 우리나라 최초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와서 3년만인 1889년에 만든 민필지란 책 76 쪽 조선국 편을 보면 “동해에 울릉도와 대마도가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외국인이 헐버트까지도 대마도가 우리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육영공원은 관리와 양반 자녀가 다니던 고종이 만든 관립학교 였으며 이완용도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이 책으로 공부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헐버트는 배재학당 교사도 했는데 거기서 이승만과 주시경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책 지도에도 남해까지 동해라고 되어있는 데 헐버트는 그렇게 안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
그는 한글이 영어를 적는 로마자처럼 음성언어이게 한글은 단어가 조합되는 대로 읽으면 되고 영어처럼 발음기호가 필요 없어 매우 우수한 문자임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관리와 양반들이 한글을 우습게 여기고 한문만 좋아하는 것을 개탄하고 언젠가 한국인들이 한자보다 한글을 좋아하고 쓰게 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리고 한자는 유럽에서 라틴어와 같은 처지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리고 한국은 한글로 빨리 발전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한글을 좋아하게 되고, 한국과 한국인까지 좋아하게 되었단다.
한글의 주인인 우리보다도 먼저 한글만으로 처음 교과서를 만든 것과 한글이 우수한 글자임을 세계에 알린 것은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길이 빛날 큰 사건이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빛을 보지 못했을까? 정치인과 학자도 한글의 우수함과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고, 그러니 우리 한글을 우습게 보는 국민이 많아 한글이 제 대접을 못받고 있다.
특히 일본 지배를 받으면서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일제 지식인들이 학자와 언론인으로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은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모임까지 만들어 한글이 잘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들은 한글만 쓰는 시험지나 논문은 낙제점을 주더니 이제 영어 숭배자로 돌아서서 한글로 학술 논문은 0점 처리를 한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이런 무리들이 판치니 슬프고 한심한 한국인들이다. 이 일은 겨레의 큰 슬픔이고 부끄러움이다. 이제라도 헐버트가 한 일들을 온 국민에게 알려주고 정부가 나서서 그 뜻을 이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 민필지가 조선인에게 자주의식을 심어주고, 똑똑하게 만들어 자신들 식민지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봐 1909년에 이미 이 책을 판매 금지했다고 한다. 사민필지는 우리나라 근대 교육사에 우리 말글로 교과서를 만들어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제라도 중국 한자로부터 해방되자. 또 다시 외국 말글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말자. 그 길은 헐버트 정신과 한 일을 이어서 더욱 빛낼 때 될 있이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헐버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는 은인이었고 스승이었고 천재였다. 참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친구였다. 한글이 태어나고 560년이 지난 지금도 한글로만 교과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떠드는 얼빠진 학자와 정치인과 공무원이 판치는 세상이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그동안 이 귀중한 책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은 한자 숭배자들이 판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하면 한글만으로 말글살이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말 다듬기, 쉬운 말 찾아서 쓰기, 새 말 만들기 들도 열심히 하자. 정부는 이제라도 한글을 빛낸 공로를 인정해 훈장이라도 추서하고 마땅한 곳에 동상이라도 세워서 이분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한글로 만든 독립신문과 함께 교과서를 최초로 한글로만 만든, 이런 중대한 일을 외국인이 먼저 했다는 일은 대단한 일이고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이제라도 더욱 힘써야 한다. 육영공원 학생 중에는 이완용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완용을 고종을 폐위하는 데 앞장 선 일본의 앞잡이 ”라고 비난하며, 미국 독립 전쟁 때 독립군을 배반하고 영국 제국 편을 든 미국인 아놀드 장군과 같은 자라고 했다. 이완용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는데 헐버트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헐버트는 중국 한자는 배우고 쓰기 힘든 복잡한 글자라면서 중국 정부에 3만자를 38자 알파베트를 만들어 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헐버트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은 "한글은 우리 민족을 세계 으뜸 국가로 만들 원동력이라고 평했다. 영어나 한자조기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 한글을 빛내는 일에 힘쓰자. 교육자들은 헐버트 교육정신을 눈여겨 보라. 헐버트는 중국에도 문자개혁을 충고 했다." 고 밝혔다.
참고 자료
사민필지 영인본 - 2006 헐버트기념사업회 냄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2010 김동진 지음 : 참 좋은 친구 독립신문 사본 기독교청년회운동사 1978. 정음사 전택부 우리 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 2008 이대로 지음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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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는 한글로 된 세계지리교과서이다. 이 책은 호머 베잘렐 힐버트(1863~1949)가 편찬 간행한 것으로 당시 조선인의 세계지리인식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순전히 한글로 저술된 까닭에 더 많은 조선인들이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한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였다.
『사민필지』는 네 번에 걸쳐서 간행되었는데, 본 신청본은 최초로 힐버트가 간행한 초간본으로서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육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당시 근대식 정장 제본이 아닌 노끈으로 묶은 4침의 책이며 삽입이 어려운 지도를 조선에서 목판으로 제작하여 인쇄하였다는 점에서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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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士民必知) 한문본
헐버트 저, 백남규 이명상 한문 번역,
의정부 학부(學部) 간행, 71장,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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