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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서도 "문화마을"이 있었으면...
2018년 02월 03일 21시 22분  조회:5461  추천:0  작성자: 죽림

메밀꽃 없는 봉평

 2018.02.02. 
 
 
 

평창 겨울 연가 ③

평창의 겨울은 매서웠다. 수시로 눈이 내렸고, 송곳 같은 바람이 불었다.

눈과 바람 아래 마주한 풍경은 그래서 더 깊고 섬연했다.

 

효석문화마을 산책길

효석문화마을 산책길에 마주한 그림 같은 풍경.

 

한겨울에 봉평을 찾은 기억은 없다. 생각해보면 봄에도, 여름에도 마찬가지다. 봉평 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언제나 초가을. 좀 더 정확히는 매년 산허리에 피기 시작한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될 즈음부터다. 이 숨 막힐 듯 매혹적인 문장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실제 많은 여행자가 9월만 되면 봉평으로 향한다.

 

 

물레방앗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생원이 성씨 처녀와 만난 물레방앗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정말로 평창군 봉평면 일대 관광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이다. “한번 가보시겠어요? 겨울철 풍광은 전혀 달라요. 인파도 적고 고즈넉하고, 뭣보다 워낙 눈이 많이 쌓이는 동네거든요.” 담당자의 말에 마음이 혹했다. 메밀꽃 대신 눈으로 뒤덮인 봉평이라니. 반쯤 배팅하는 기분으로 가파른 산길을 달렸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자 가산 이효석의 고향인 효석문화마을은 평창군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허생원이 드나들던 장터와 주막, 그가 성씨 처녀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 등 작품 속 주요 장소와 더불어 이효석문학관, 이효석 생가터가 자리한 봉평의 명소다.

 

“이효석문학관은 가산 선생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연대기별로 살펴볼 수 있는 장소예요. 깔끔하게 정비된 내부에 유품과 초간본, 작품이 발표된 잡지며 신문 등이 전시되어 있죠.” 이효석문학관은 일대 메밀밭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숨어 있었다. 눈이 얼어붙은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 언덕 꼭대기에 섰다. 온통 새하얀 눈밭과 얕은 지붕이 도열한 작은 마을, 바싹 메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수묵화처럼 아련하게 포개진 산등성이들. 1시간 동안 달리는 차 안에서 오만 생각을 했건만, 모든 번민이 단숨에 씻겨 내려갔다. 메밀꽃 없는 메밀밭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예상치 못한 풍광 앞에서 낯선 여행자는 할 말을 잃었다.

 

평창 재래시장

평창의 재래시장에서는 메밀부침과 메밀전병을 꼭 맛봐야 한다.

 

당일치기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평창읍이었다. 군청 가까이의 평창바위공원에 닿을 무렵, 이미 해가 반쯤 떨어지고 있었다. 점점 푸른빛을 발하는 오후 햇살 아래, 다양한 크기며 형태의 수석이 묘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래부터 제자리였다는 듯 저마다 근엄하고 떳떳한 자태였다. “약 1만 7785제곱미터의 부지에 123개 수석이 놓인 전국 최대 규모의 바위공원이에요. 다들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인데, 가장 큰 바위의 무게가 140톤에 이르죠. 여름에는 인근의 넓은 공터를 오토캠핑장으로도 이용하고 있어요.”

 

조형물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며 평창읍 버스터미널 인근에 설치한 조형물.

 

해가 완전히 진 뒤 바위공원을 벗어나 평창에서의 마지막 산책을 즐겼다. 세찬 바람을 뚫고 강변을 따라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방금 설치를 마친 듯 미끈한 올림픽 기념 조형물들도 만났다. 검푸른 하늘과 새까만 능선을 배경으로 막 스키점프대를 벗어나는 선수의 조각. 그 맹렬한 비상이 마치 평창의 오랜 염원처럼 느껴졌다. 평창의 차갑고도 뜨거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2018년 2월호>

 

/에디터 류현경

///포토그래퍼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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