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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07년. 종로지역 포도청 자리에 2층 건물 하나가 들어섭니다. '단결하여 뜻을 이루자'라는 뜻의 '단성사'였지요. 기생 공연장에서 활동사진 전용관으로 변신한 단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 됩니다. 1919년 10월 27일.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도 이 극장에서 상영이 됐습니다.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관객들이 몰려들던 시절도 있었고 한국 영화사상 첫 100만 관객을 모은 장소이기도 한 100년, 한국 영화사의 시작이자,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단성사'는 7년 전에 문을 닫았다가 오늘(23일) '영화 역사관'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접속' (1997) : 한 번 만나고 싶어요. 극장 앞에서 기다릴게요.]
지금은 곳곳에 영화관이 있지만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조차 극장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사랑과 낭만을 꿈꾸었던 장소, 단성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19년,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하던 날.
처음으로 활동사진, 즉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무언가에 취한 듯 박수 갈채를 쏟아냈습니다.
엄혹한 식민 통치와 뒤이은 전쟁의 상처 속에, 단성사는 영화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한국 영화 역사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이곳을 거쳤습니다.
1970년대, 영화 '겨울여자'는 역대 최고인 58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풍요로웠던 1990년대,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도 이곳에서 넘쳐나는 관객을 맞이했습니다.
[임권택/'장군의 아들'·'서편제' 감독 : 매일같이 극장 옆 2층에 있는 다방에 가서 꽉 모여 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2000년대 들어 여러 영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복합상영관이 인기를 끌면서 전통 극장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상설극장, 단성사도 결국 2012년 문을 닫았습니다.
최근 한 기업에 인수돼 2년 넘게 정비 기간을 거친 단성사는 극장으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영화 역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포스터와 시나리오, 촬영 장비 등 5000여 점의 자료를 전시해 단성사를 비롯한 한국 영화 100년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화면제공 : 국가기록원·한국영상자료원·서울역사박물관)
(영상디자인 : 유정배 / 영상그래픽 : 김정은)
///강나현 기자 / [영상취재: 이완근 / 영상편집: 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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