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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 "축구의 神"
2020년 11월 26일 22시 31분  조회:2574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사상식사전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전 축구감독으로, 1982년부터 1994년까지 4차례 월드컵에 출전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198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브라질의 펠레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외국어 표기

 

 

Diego Armando Maradona

 

 

출생-사망

 

 

1960.10.30 ~ 2020.11.25

 

디에고 마라도나(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 빈민가에서 3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풀네임은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이다. 어려서부터 축구공과 생활한 그는 1976년 15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7년 최연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며 '축구신동'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특히 1979년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에서 6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를 6전 전승 우승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1981년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해 시즌 첫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그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82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를 거쳐,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SSC 나폴리로 이적했다. 1987년 SSC 나폴리 사상 최초의 세리에A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9년 UEFA컵우승과 1990년 세리에A 우승을 거머쥐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1992년에는 스페인의 세비야 FC로 이적했으며 이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1993년부터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활약했고, 1995년부터는 다시 보카 주니어스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1982년부터 1994년까지 4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아르헨티나의 1986년 월드컵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핸들링, 이른바 '신의 손'으로 골을 기록해 논란이 되었다.(당시 마라도나는 해당 골에 대해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밝힌 바 있다.하지만 4분 후 잉글랜드팀 수비수 6명을 제치고 월드컵 사상 최고로 꼽히는 골을 성공시키며, 멕시코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그라운드 밖에서의 사생활은 온갖 기행과 추문, 마약 복용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 그는 스페인에 진출한 이후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쏘아대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도중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코카인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15개월 출전정지를 받았으며, 1997년 보카 주니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마라도나는 몰락한 영웅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서 나오는 순발력과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했고 이에 ▷1960년대 브라질의 펠레 1970년대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에 이어 1980년대를 마라도나의 시대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그의 조국인 아르헨티나는 2001년 보카 주니어스의 홈 경기장인 라 봄보네라에서 마라도나의 은퇴 기념 경기를 열어주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은퇴 이후 우루과이와 쿠바를 오가며 약물중독 치료를 받았는데, 2000년과 2004년에는 약물 과다복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심장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인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2개월), 라싱 클럽(4개월)의 감독을 지냈으며 2008년부터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선발이나 전술 운영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리오넬 메시·곤살로 이과인·카를로스 테베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경기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 인해 2010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1년에는 UAE(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와슬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저조한 성적으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2012년 7월 경질되었다.

한편, 마라도나는 2020년 11월 25일 심장마비로 인해 6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마라도나는 11월 초 만성 경막하혈종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술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수정일

  •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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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 본문 이미지 1

 

이미지 갤러리

출처: 축구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디에고 마라도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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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별세에
메시 "디에고는 영원할 것"...
호날두 "영원한 천재와 작별"
2020년11월26일 
마라도나 별세에 각계각층 애도 물결
펠레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공 찰 것"
前 소속팀 나폴리 "팀과 도시에 엄청난 충격"
/리오넬 메시 인스타그램 캡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별세소식에 전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잠겼다.

아르헨띠나 축구영웅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진 후 같은 아르헨띠나 출신인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는 인스타그램에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 두장을 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메시는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아르헨띠나 국민과 축구계에 매우 슬픈 날”이라며 “그는 우리를 떠나지만 떠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디에고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틀 마라도나’로 불렸던 메시는 2008∼2010년 아르헨띠나대표팀에서 고인과 감독과 선수로 지내며 2010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이달 초 메시는 마라도나가 뇌수술을 받은 후에도 고인에게 쾌유를 기원한 바 있다.

마라도나와 더불어 전세계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로 꼽혀온 브라질의 펠레도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친구를 잃게 돼 슬프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지난달 80세 생일을 맞은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찰 것”이라고 말했다. 뽀루뚜갈 출신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의 트위터에도 고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호날두는 “오늘 나는 친구와 작별했고 세계는 영원한 천재와 작별했다”며 “그는 너무 일찍 떠났지만 무한한 유산과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다. 당신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브라질 축구선수 네이마르(파리생제르맹)도 “당신은 우리 기억 속에 항상 있을 것”이라며 “축구가 당신에게 감사한다”고 썼다.


아르헨띠나 축구 대표팀 트위터

영국 전 축구선수 게리 리네커는 “우리 세대 최고의 선수이자 력대 가장 위대한 선수”라며 “축복과 어려움이 함께했던 삶 이후에 신의 손안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프랑스 축구영웅 출신의 미셸 플라티니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프랑스 언론에 “우리 과거의 일부가 저물었다. 위대했던 시절이 그립다”고 추모했다. 과거 고인이 몸담았던 팀들도 애도를 표했다. 아르헨띠나 대표팀은 트위터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축구계 모든 이의 가슴에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1984∼1991년 활약하며 클럽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딸리아 세리에A의 나폴리는 고인의 별세소식이 도시와 팀 모두에 “엄청난 충격”이라며 “우리 마음에 영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라도나는 클럽에서 8년간 활약하며 리그 우승과 유럽축구연맹 우승을 이끈 나폴리의 레전드다. 1982∼1984년 마라도나의 소속팀 스페인 바르셀로나도 “전세계 축구계의 아이콘”인 고인의 별세를 슬퍼했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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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전설'
아르헨띠나
마라도나
60세로 별세…
사인은 심장마비
2020년11월26일 
이달초 뇌수술 받아…1986년 월드컵서 아르헨띠나 우승 이끌어
'신의 손' 론난도…천재적 재능, 마약 등 구설도 끊이지 않아



2017년의 마라도나




아르헨띠나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클라린, 라나시온 등 아르헨띠나 언론들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뇌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뇌수술을 한 후 11일 퇴원해 회복중이였다. 당시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라나시온은 이날 9대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마라도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60세 생일이던 지난 10월 30일, 자신이 이끌던 팀 힘나시아의 경기를 앞두고 생일 축하를 받았는데 그것이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등번호 10번의 마라도나는 아르헨띠나 축구 전설이자 영웅이다.

브라질의 펠레와 더불어 아르헨띠나를 넘어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1960년 아르헨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태어나 1976년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아르헨띠나 보카 주니어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이딸리아 나폴리 등을 거쳤다.

작지만 단단한 몸에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했다.

일찌감치 아르헨띠나 국가대표유니폼을 입고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다.

1990년 선수 시절 마라도나



특히 1986년 메히꼬월드컵에서 아르헨띠나의 우승을 이끌며 일약 국민영웅이 됐다. 당시 마라도나는 월드컵 MVP로도 선정됐다.

은퇴후에는 아르헨띠나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아르헨띠나와 중동, 메히꼬 등에서 프로팀을 이끌다 지난해부터 아르헨띠나의 힘나시아 라플라타 감독을 맡았다.

뛰여난 실력에 대한 찬사 만큼이나 론난도 많은 선수였다.

은퇴 이후까지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론난은 '신의 손' 론난이다.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띠나와 잉글랜드의 4강전에서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 그대로 골로 인정된 후 마라도나는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말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당시 의도적으로 손을 뻗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마라도나에겐 약물스캔들도 이어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도중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중도 귀국해야 했고 마약 중독 치료도 몇차례 받았다. 마약과 알콜 복용, 비만 등으로 과거에도 심장문제를 겪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기행이나 문제적인 발언들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사생활을 둘러싸고도 말들이 나왔지만 이 같은 론난 속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한 축구실력에 대해서는 론난이 없었다.

축구전설의 별세소식에 아르헨띠나와 전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빠졌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띠나 대통령은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차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고 고인이 몸 담았던 팀 나폴리도 작별을 전했다.

이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

뇌수술후 지난 11일 주치의와 함께 한 마라도나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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