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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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구의 사랑
2011년 12월 30일 18시 49분  조회:3670  추천:0  작성자: 리창현
단편소설
철구의 사랑

용담골에서는 철구라하면 그래도 모두가 알아주는 그런 멋쟁이 총각이였었다. 대학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게 되자 아버지는 응근히 속으로 기뻐하였다. 대학공부의 뒤바라지도 문제였겠지만 성질이 괴벽한 아버지는 아들놈이 대학생으로 되는것을 별로 반가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늘 가슴 한구석이 흐려있군 하였다. 성질이 성글성글 하다보니 철구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속상해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욤담골로 이사를 온지도 몇년이 되였지만 여직 호구도 붙이지 못했고 그저 남들의 땅을 도급맡아서 살림을 해나가는 처지였다. 게다가 쌀값도 별로 좋지 않다보니 해마다 농사를 해도 별로 수입이 없었다. 그리고 철구 아버지는 성격이 괴벽한만큼 농사도 이상하게 잘 짓지 못하여 늘 마누라의 욕을 달고 살군 하였다. 다른 집들에서는 한짐에서 그래도 벼를 열마대 쯤은 쉽게 올리는데 철구아버지는 고작해야 일곱마대면 최고였다. 그래서 더우기 탈곡철이면 마을사람들의 이런 저런 소리를 많이 듣군 하였다. 그래도 담배만 풀풀 태울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누구처럼 게을러서 그런것도 아니였다. 철구아버지는 마을에서 그 누구보다 부지런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매일 논밭에 붙어있다싶이 하건만 이상하게 고놈의 벼농사는 생각처럼 되지않았다. 그러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철구의 마음은 말이아니였다. 가끔은 자신이 직접 벼농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서지만 어쩐지 감히 실천을 하지 못하군 하였다. 이럭저럭 철구네는 용담골에 이산온지도 어언 5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살림은 별로 피지도 못하고 그냥 이사오던 그때와 마찬가지 였다. 그래도 산좋고 물좋은 이곳에와서 잘 살아보려는 희망을 크게 품고 왔었는데 하늘은 별로 구원의 손길을 시원스레 보내주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소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철구네 집을 찾아왔다. 철구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면서 술상을 차렸다. 원래 술을 반가와하는 교장선생이라 시원스레 한잔술을 받아들고 단모금에 굽을 냈다. 철구아버지는 속으로 응근히 기뻐하는 기색이였다. 교장선생은 한쪽 구석에 앉아서 책을 보는 철구를 건너보며 넌지시 물었다.
<<야, 철구야 너 무슨 다른 타산이 있는거니? 아니면 그냥 집에서 농사일을 할 생각이냐?>>
그 말에 철구아버지는 인차 눈치를 알아채고 아들놈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놈은 선비나 하면 되는 놈이요. 자를 믿고 농사를 짓다간 굶어죽는다이.>>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던 철구엄마가 슬쩍 한다미를 넘겼다.
<<그래요. 이 철구애비가 원래 농사를 얼마나 잘 짓습니까? 걔가 애비만 닮았으면 영낙없이 농사를 잘 지을거래요. 안그래요?>>
이 말에 철구아버지는 원래 큰 눈을 무섭게 부릅뜨며
<<야. 됐다. 재수없이 어른들이 하는 말에 녀자라는게 께끼면서.>>고 말했다.
교장선생은 말없이 앉아있는 철구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오늘 찾아온 의향은 다름이 아니라 학교에 교원이 부족해서 그럽니다. 아무리 올리 훑고 내리 훑어도 철구가 최고같기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혹시 철구가 할 생각이 있으면 가정에서 잘 토론하고 래일 저에게 답복을 주십시오.>> 고 말하고는 반쯤남은 술을 마시고는 일이 바쁘다면서 돌아갔다.
철구는 가타부타 말없이 책만 보고 있었다.
<<야 이놈아 책을 좀 그만 봐라. 거기서 밥이 나오냐?>>성질이 급한 철구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러자 곁에서 철구의 눈치만 지켜보던 엄마가
<<야 참 애가 좀 생각을 해보게 해야지. 우리가 한다해서 할 일임까?>>고 말하였다.
철구는 그냥 아무 말없이 보던 책을 덮어놓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다.
철구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구경 해야 할지 아니면 밖으로 일자리를 찾아서 나가야 할지 도저히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철구는 어려서부터 꿈이 교원이기도 하였다. 매양 깜빡 잊고 숙제를 못해서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때면 저도 몰래 속으로 이담에 커거 꼭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지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집에서 농사일에만 매달릴것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는것도 혹시 기회가 아닐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철구를 보면서 아버지가 또 침을 놓기 시작하였다. 철구는 일이 있어서 나가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혼자 계시고 있었다. 철구는 자신이 찾아온 의향을 말하고 래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로임이사 얼마안되지만 어려서부터 키워온 꿈을 이제 곧 실현한다는 생각과 아직 호구도 없는 자신을 교원으로 써준다는 그 고마움에 마음은 퍼그나 많이 설레이였다. 부모들도 철구의 선택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것이였다. 이렇게 철구의 교원사업이 막을 열게 된것이다. 얼마안되는 로임보다 애들을 가르치는 그 노릇이 이상하게 철구의 마음을 사로잡는것이였다. 애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노는 그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원래 뭘 하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인지라 얼마안되여 동료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았고 인기도 퍼그나 높았다. 농촌에서는 그래도 적지 않은 처녀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내는 정도이기도 하였으니 철구로서는 행복하기만 하였다. 애들을 잘 가르치다보니 학교에서 위신도 상당하였다. 바로 이럴쯤에 촌에서 교원부족으로 중학교를 금방 졸업한 두 녀학생을 교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 소문은 철구의 마음을 퍼그나 설레이게 만들었다. 혹시 연분이라도 있으면 여기서 색기까지 얻을수있으니 어쩌면 세상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척척 돌아가는듯한 심정이였다. 어디 대학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은 력사를 가진 철구가 아니였다. 매일 옷을 곱게 차려입고 학교로 출근하는 그 모습은 많은 청년들이 질투할 정도였다. 괜찮게 생긴 인물에 먹물도 먹었자 처녀들도 적지않게 응근히 욕심을 만들고 있었고 딸 가진 어떤 부모들은 내놓고 철구더러 사위라며 불러주기도 하였다. 그럴때면 헬벌쭉해서 슬쩍 넘기군하였다. 그러면서 철구는 응근히 이제 곧 출근하게 될 두 젊은 녀선생을 속으로 그려보군 하였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늘 흥분상태에 처해있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키가 훤칠한 녀선생과 키가 작달막한 녀선생이 출근을 하였다. 철구는 그래도 선배인지라 듬직한체 점잖을 빼면서 눈인사를 하고는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언녕 둥둥 뜬채 정처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 얼핏 본 영상을 떠올리면서 어느 선생하구 연분이 있을가고 생각을 풀어놓고 있었다. 학교의 수효에 좆아 키가 훤칠한 녀선생은 2학년의 담임을 맡고 키가 작달막한 녀선생은 철구네 학급의 수학과를 맡게 되였다. 이렇게 철구와 녀선생이 연분의 끊을 잡게 된것이다. 서로 마음도 맞고 생각도 척척 맞아돌아갔다. 비록 키는 작아도 속이 꽁꽁 여문 녀선생이라 어느 정도 철구의 마음을 흔들어놓군 하였다. 언제부턴가 잠자리에 들면 그 녀선생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잠도 설치고 마음도 설치기 시작하였다. 이상하게 그 녀선생의 웃는 얼굴이 그냥 철구의 머리속을 맴돌면서 떠날념을 안하였다. 철구는 아마도 자신이 그 녀선생을 사랑하기 시작한것이 분명하다고 긍정하면서 이제 련애편지를 쓰는것이 급선무였다. 저녁이면 철구는 달밝은 창가에 기대여 멋진 사랑을 고백하는 구절들을 만드느라 복잡하였다. 이 구절도 마음에 안들고 저 구절도 마음에 안들어 퍼그나 속을 태우군 하였다. 그래도 고중시절에 배워둔 유명한 시인들의 명구 몇구절이 아직도 머리속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사랑의 꽃편지는 무게가 상당하였다. 철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불속에서 그 누군가의 얼굴이라도 그려보려는듯이.
이렇게 철구의 매일 출근은 그처럼 신바람나는 존재였다. 전보다 옷도 더 깔끔하게 차려입고 얼굴에는 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 누구의 말처럼 사랑을 고백할 시절에는 항상 너그럽고 인자한 존재로 다가서야 성공의 가능성도 높고 녀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하듯이 철구는 그 무슨 일에도 항상 웃음을 머금은채 나서군 하였다. 이렇게 활기로 차넘치는 철구를 보면서 동료선생님들은 저으기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저렇게 정력이 왕성하고 사람됨됨이가 완미할가 하면서 질투의 끈을 풀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철구는 모르쇠를 놓고 올가미에 걸려들 녀자선생의 눈길만 살피군 하였다. 하지만 잘달막한 그 녀선생은 별로 철구에게 관심이 없는듯하였고 별로 마음에 안드는 키가 큰 녀선생이 이상하게 자꾸 철구에게 말을 건네오기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하였다. 철구는 썩 내키지는 않아도 그래도 대범한 자신의 형상을 수립하기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고 보다 더 열정적으로 대해주군 하였다. 그러면서 이쪽 녀선생의 눈치를 가만히 살펴봐도 티끌만한 관심도 없는듯하여 가끔은 마음이 서글프기도 하였다. 그래도 참느라면 성공의 바줄을 쥘것이라는 굳은 믿음 하나만으로도 모든 어려움도 슬픔도 얼마든지 녹여낼수 있을것같았다.
그럭저럭 철구는 철구대로 분망히 보내면서 한학기 사업을 결속짓게 되였다. 평소에 열심히 가르친 보람으로 철구네 반급의 학습성적은 전교 일위를 차지하게 되였고 공영교원도 가지기 어려운 지구우수교원의 영예까지 지니게 되였다. 둥둥 뜨는 자신을 달래면서 철구는 점잖은척 하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뭔가 아프게 다가서는 자신을 속일수없었다. 그 작달막한 녀선생의 손목을 잡지 못한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였다. 어찌보면 자신에 관심이 있는것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것같아서 퍼그나 서글프기만하였다. 정말 알고도 모르는것이 녀자의 마음이라는 진실을 체험하는것같은 순간이기도하였다. 당장이라도 그 녀선생의 손목을 잡아쥐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불같았으나 어쩔수없이 물앉는철구였다. 가끔은 술을 얼근하게 하고나면 생각이 더 간절하여 저도몰래 그 녀선생네 뒤골목을 걷는 순간을 만들기도하였다. 심령의 감응이라도 있다면 혹시 하는 그런 기대감에서였다. 서성거리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스스로 주먹을 움켜쥐면서 무슨 결심을 하고는 성큼성큼 집을 향하군 하였다.
그러던 여름방학의 어느날 점심이였다. 별로 썩 반갑지도 않은 키가 큰 녀선생이 철구네집을 찾아왔다. 철구엄마는 작은 두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반가와하였다. 철구는 원래 가면을 모르는 놈인지라 그저 인사를 하고는 크게 대화가 없었다. 그러는 철구를 지켜보던 그 녀선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른게 아니구요. 한학기동안 선생님의 신세도 많이 졌는데 오늘 마침 집에서 초두부를 하였는데 어머니께서 꼭 선생을 모셔오라고 하기에 이렇게 찾아왔어요.>>
철구는 초두부라는 말에 두귀가 번쩍 띄이는것같았다. 초두부라면 오금을 못쓰는 철구이다보니 거절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겉으로는 어찌는척하였다.
<<아니. 선생님은 초두부를 좋아안해요?>>하면서 어색하게 물었다. 그러자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가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
<<야, 너 초두부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그런거니? 네가 안가면 내가 갈가?>>
<<아 아니 그게 아니구 …>>
철구는 못이기는척하면서 일어서려는데 그 녀선생이
<<선생님, 애순선생도 왔어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서 갈가요?>>
애순이라는 말에 철구는 혼이 번쩍 드는것같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바꿔입고 나왔다. 둘은 가지런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구수한 초두부향기가 고를 찔렀다.
애순이 선생은 얌전하게 앉은채 곱게 눈인사를 보내고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밥상에 앉았다는것만도 철구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존재였다. 녀선생의 엄마는 입이 함박만해서 꼭 마치 사위를 데려온듯한 그런 기분이 여서 어딘가 좀 불편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곁에는 하늘같이 사랑하는 녀자가 있으니 마음은 꽤나 들뜨는듯 하였다.
시원한 맥주잔이 오가면서 술상은 생각보다 제법 멋지게 돌아갔다. 모두가 젊은 몸이다보니 잔을 들면 술술 넘기군 하였다. 애순이도 처음에는 거절하는듯 싶더니 철구의 멋진 구절들에 속이는지 아니면 속이는척하는지 유난히도 고운 눈을 곱게 흘기면서 한잔 한잔 넘기군하엿다. 이렇게 술상은 저녁으로 몰아가게 되였다. 구들에는 20여개의 빈 맥주병이 병신취급이라도 받는듯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술이 어느정도 머리를 흥분시키자 평소에 감히 하지도 못하던 말들도 스스럼없이 막 쏟아져 나왔다. 애순이는 좀 어지럽다면서 먼저 웃방으로 들어가 눕는것같았다. 철구는 그 녀선생하구 교수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고중시절의 일들을 풀어놓으면서 술상을 점점 높이 끌고 갔다. 녀선생은 듣는지 마는지 머리를 흔들면서 반응을 보이였다. 그때 어딘가 좀 귀찮은지 웃방에서 텔레비를 보던 애순이가
<<야, 고놈들 꽤나 떠드네. 어른이 텔레비를 보는데.>>하면서 우스개를 보내왔다. 그 말에 또 한바탕의 폭소가 터졌다. 하지만 철구는 속으로 응근히 기뻤다. 꼭 마치도 질투라도 하는것같은 기분이여서 퍽 즐거웠다. 그 당시 사람들이 모두가 시청하는 텔레비죤 인기드라마 <,<갈망>>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 녀선생도 어딘가 좀 힘든지 웃방으로 들어가더니 애순이 옆에 눕는것이였다. 철구는 팔다남은 수박처럼 구들복판에 혼자 앉아서 멍하니 웃방만 쳐다보고 있었다.
(엣다! 모르겠다. 술취한척하구 나도 함께 텔레비나 보자)고 생각하며 웃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애순이의 곁에 엉큼하게 누웠다. 애순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텔레비에만 눈길을 팔고 있었다. 슬그머니 넘겨보니 녀선생은 이미 수면을 요청하고 있었다. 얼마후 철구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설레이는 가슴을 억누르며 슬그머니 애순이의 손을 잡았다. 혹시 그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가봐 두려워했는데 꼭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함께 손을 잡아쥐는것이였다. 철구는 떨리는 마음을 달래면서 조용히 손을 감싸쥐였다. 둘은 아무말없이 텔레비에 눈길을 돌린채 침묵을 지켰다. 얼마후 애순이가 늦었다면서 집으로 가야겠다면서 일어서는것이였다. 철구는 데려다주겠다면서 함께 일어섰다. 녀선생은 한창 밤중이였다. 두사람은 아무말도 없이 걸었다. 철구는 용기를 내여 다시 애순이의 손을 잡았다. 애순이도 함께 잡아주었다. 유난히 밝은 달은 애순이의 고운 얼굴을 그대로 비춰주었다. 철구는 학교마당에가서 좀 앉았다가 가도 괜찮은가 하면서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헛되이 흘러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하튼 오늘 저녁에 애순이의 철같은 답복을 받고 말 작정이였다. 둘은 운동장의 등받이 의자에 가지런히 앉았다. 철구는 가슴이 자꾸만 설레여서 뭐라고 말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한참을 망설이던 철구가 그 무슨 비장한 결심을 내린듯이 입을 열었다 그토록 점잖게 말이다.
<<애순이, 나 당신을 사랑하오. 사랑한지 오래지만 감히 말은 못하고 이렇게 기다리는게 얼마나 애탔는지 모르오.>>
오래동안 가슴을 누르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는듯이 가벼워지는 철구였다. 그러는 철구를 보면서 애순이는 손을 꼬옥 잡아주는것이였다. 꼭 마치 자신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는 속마음을 전달해주는것만 같았다. 그러는 애순이를 지켜보는 철구는 너무너무 행복했었다.
<<실상 저도 선생님을 사모한지가 오랩니다. 처음 선생님을 보았을 때 마음이 얼마나 긴장하던지. 그러면서 어쩐지 선생님에게 반할것만 같아서 조금은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더 힘들었어요.>> 고 말하면서 애순이는 철구의 몸에 안겼다. 철구는 애순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박동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의 미묘함을 감수하고 있었다. 철구는 애순이의 고운 얼굴을 말없이 들여다 보면서 조용히 입술을 감쌌다. 조건반사인지 어느새 철구의 손이 애순이의 손대면 당금이라도 터질것만같은 여린 젖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귀가에서는 애순이의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미묘한 음악처럼 철구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문득 철구의 아래다리가 이상하게 당겨옴을 느끼였다. 당금이라도 비집고 나올것같은 그 놈이 체면을 봐주지 않고 용을 치고 있었다. 철구의 다른 한 손이 애순이의 으슥진곳을 침범하려는 순간 어느새 애순이의 손이 그곳을 무섭게 지키고 있었다. 애순이는 철구의 손을 살짝 밀쳐놓으면서 속삭이였다.
<<동무, 진도가 넘 빠른데요. 호호호>
철구는 멎적게 웃고는 다시 애순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둘은 아무말도 없이 오래동안 자리를 지켰다. 밤이 깊어서야 두사람은 아쉬움을 파묻은채 돌아섰다.
그날 밤 철구는 사랑하는 녀자를 그리면서 잠마저 설치였었다. 어머니가 아침에 깨워서야 눈을 뜨군 하였다. 그래도 철구는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였다.
철구는 사람들의 눈이 두렵고 애순이네 부모가 걱정되여 낮에는 감히 만나자는 약속을 못하고 밤이 되기만을 눈이 까매서 기다리군 하였다. 그러는 철구에게 낮은 지지리도 지겨운 존재였다. 그래도 애순이와의 굳은 약속이 있으니 어느 정도 안타까움도 조용히 녹아버리군 하였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철구는 세수를 한다, 면도를 한다 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그런 아들놈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응근히 아들놈이 약삭바르게 련애를 한다고 생각하니 큰 걱정거리를 던 셈이였다. 아버지는 별로 관심이 안보이는데 엄마가 뭐 껌이랑 사탕이랑 호주머니에 챙겨주군 하였다. 그러면서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가 알아보고 엄마가 해주겠다면서 야단이였다. 웬가 며느리 비위가 나기는 난 모양이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는 담배만 풀풀 태울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들놈이 좋아하는 모습은 참으로 좋은데 가난한 살림이 큰 걱정이 였다. 지난번에 애순이 아버지랑 함께 술을 마이다가 롱담삼아 집의 딸을 며느리로 삶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애순이 아버지는 딸을 절대 당신네 같은 가난한 집의 며느리로 주지 않는다면서 큰소리를 뻥뻥 치는것이였다. 그뒤로부터 철구 아버지는 말은 없지만 속은 언녕 재가되고 있었다. 여하튼 제들끼리 마음만 맞으면 그 누구도 못말린다는 평범한 인생철학에 목을 걸고 아들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작정이였다.
철구는 지난번에 애순이와 헤여지면서 한 약속이 있었다. 한 몇시쯤에 휘파람을 불면 그 무슨 핑게를 대서라도 나오라고 하였다. 철구가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다가 힘차게 휘파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언제 애순이가 나오겠는가 애타게 기다리군 하였다. 얼마 안지나 애순이가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였다. 둘은 손을 잡고 학교운동장으로 향하였다.
<<애순이, 오늘 낮은 얼마나 긴지. 난 애순이가 보고싶어서 죽을번했소. 애순이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소?>>
<<하나도 안 보고 싶었는데요. 난 동무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하면서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애순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래 정말 조금도 안보고 싶었단말이요?>>
<<예! 하나도 안보고 싶던데요. 호호호>
애순이는 어안이 벙벙해있는 철구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 소행에 애순이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철구의 품에 조용히 안기면서
<<바보당신, 나도 동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온 하루 밤이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그제야 철구는 애순이의 깜찍한 애교를 알고 꼬옥 그러안았다. 둘은 아무말없이 오래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동무, 우리가 그냥 이렇게 도적놈처럼 련애를 할순 없잖아요. 언제가는 부모님들도 알것이고요. 우리 부모님들은 저를 절대로 가난한 집에 시집을 안준다고 했어요. 동무도 그냥 이렇게 민영교원으로 살아갈 예산입니까?>>
아무말없이 묵묵히 앉아있는 철구를 보느라니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둘만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도 있는거지요. 안그래요? 꼭 힘내세요.>>
철구는 애순이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 무슨 맹세를 크게 하는것같았다.
그 당시 민영교원은 촌에서 로임을 주고 있었다. 겨우 한달에 300원정도나 되는데 그것도 달마다 주는것도 아니고 년말에 가서 준다는것이였다. 로임을 받으려면 아마도 회계네 집을 한 열번정도는 가야 겨우 로임을 받아쥐군 하였다. 그런 꼴이 언제부턴가 철구에게는 큰 아픔으로 다가서군 하였다. 당장이라도 팽개치고 어디로 나가고싶은 생각이 불붙듯했다. 그래도 애순이를 보느라면 모든것이 사라지군 하였다. 세상에는 바람 안새는 벽이 없다더니 마을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철구와 애순이가 좋아한지가 얼마나 된다는둥, 지난번에 애순이가 임신해서 철구와 함께 현성병원으로 갔다는둥 하면서 제멋대로 시시한 소문이 돌았다. 지난번에 애순이와 철구가 현성으로 간것은 공개교수를 보러 간것이고 그 당시 애순이가 이상하게 달거리가 제때에 오지 않았다고 말하기에 철구는 걱정되여 인민병원으로가서 검사를 했던것이다. 실상은 임신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작하면 그럴수도 있다는 의사의말에 해쓱해졌던 애순이의 얼굴에 피기가 돌기시작하였다. 철구는 애순이를 데리고 문밖으로 나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의무실로 들어갔다. 머뭇거리는 철구를 보던 의사가 무슨 일이 있는가고 물어왔다. 하지만 철구는 말은 못하고 그저 어물거리기만 하였다. 그런 철구를 지켜보던 부과 의사가 기미를 알아챘는지 녀자친구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제야 철구는 애순이를 불렀다. 애순이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철구만 쳐다보았다.
<<아마도 남자친구가 걱정되여 그러는 모양입니다. 이러다가 실수를 하여 임신할 가능성도 있으니 좋기는 전에 피임조치를 하는것이 그래도 상책입니다. 의향이 있으면 해드릴게요.>>
그제야 애순이는 영문을 알아차리고 철구를 얄밉게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무서워거 감히 못하겠다고 떼질을 쓰는것이였다. 의사와 철구가 얼마동안 사상공작을 하여서 겨우 애순이의 동의를 얻게 되였다. 이렇게 애순이는 처음으로 피임이라는 매개물을 몸에 걸게 되였다. 두려운 근심을 덜었다고 생각하니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어느덧 소문이 애순이네 부모의 귀에도 전해졌다. 여하튼 아들놈을 가진 사람들은 거개가 팔을 저어가면서 애순이엄마에게 소문을 눈덩이 굴리듯이 만들어냈다. 사람이란 본래 남이 잘 되는것을 이상하게 배아파하는 존재이니깐.
이러다보니 애순이네 부모는 아예 애순이를 선생노릇마저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래 자식 혼사에 대하여 말썽이 많은 애순이 엄마는 애순이를 완전히 집에 가두다 싶이 하였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도 뒤따라가서 살피군 하였다. 실상 애순이네 부모들도 철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집의 가난한 살림을 보고 견결히 반대해 나서는것이였다. 철구는 매일을 고통이라는 도가니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하튼 만나야 그 무슨 대책이라도 대겠는데 근본 만나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였다. 문득 밥법이 철구의 뇌리를 스쳤다. 철구가 가르치고 있는 반급에 애순이 사촌녀동생이 있었다. 이제 그 애를 저들의 련락원으로 내세울 계획이였다. 철구는 며칠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적어내려갔다. 묵직하게 씌여진 련애편지를 애순이 동생의 가방에 넣어주면서 절대로 그 누구와도 말해선 안된다고 단단히 주사를 놓았다. 그리고 왜서 왔는가고 물어보면 공부에서 모를문제가 있어서 언니한테 물어보러 왔다고 핑게까지 물샐틈없이 만들어주었다. 이제 어느정도 숨이 나올것같았다. 이렇게 그들은 비밀리에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게 되였다. 실수없이 편지를 전달하고 전달해주는 애순이 녀동생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사탕도 사주고 연필도 사주군 하였다. 원래 선생의 말이면 최고의 지시인지라 아무런 실수도 없이 비밀을 지키면서 착실하게 련락원 임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애순이 녀동생을 살피군 하였다. 애순이의 사랑을 담은 그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저녁이면 철구는 방에 누워 정성들여 또박또박 적은 애순이의 절절한 사랑이 그대로 넘쳐나는 편지를 읽으면서 몇번이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는 아들을 지켜보는 철구엄마의 속은 말이 아니였다. 그저 가난이라는 그 탈 때문에 사랑하는 녀자도 맘대로 만나지 못하고 매일을 고통스레 살아가는 아들에게 큰 죄라도 진듯한 심정이였다.
어느 한번 애순이가 편지를 쓰다가 엄마한테 발각되였다. 그냥 일기라고 우기기는 하였지만 거기에 속히울 어마가 아니였다. 그 후로부터 애순이는 화장실로 가서 편지를 간단히 쓰군 하였다. 편지를 쓰기는 몇장을 잘 써놓았는데 녀동생이 좀처럼 와주질 않아서 속이 바질바질 타기만 하였다. 후에 알고 보니 애순이 엄마가 그 련락원을 발견하고 다시는 오지 못하도록 으름장을 놓았던것이다. 이러다보니 그들의 련락은 또 끊기게 되였다. 여러모로 생각해보았지만 별 이상한 방도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철구가 가장회의를 한다는 통지를 내보내고 애순이 녀동생더러 부모님께서 꼭 회의에 참석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이제 곧 학기말이 닥쳐오니 가정에서 애들의 공부에 대하여 좀더 많은 관심을 해달라는것이 회의의 전부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철구는 애순이 녀동생 엄마더러 할말이 있으니 남아달라고 하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정이다보니 저으기 철구에 대하여 미안해하는 기색이였다. 반급의 학부형 조장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헤아려주는 그런 아량이 넓은 분이였다. 철구는 요즘 애가 공부에 좀 뒤떨어지니 집에서 좀 많이 지도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선생님도 다 아시다싶이 전 공부를 얼마 하지 못했잖아요. 그리고 요즘은 문제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워주질 못하겠어요.>>
애순이 고모는 부끄러움없이 말하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잘 되여간다고 생각하니 철구는 흐뭇해났다.
<<아니 애순이 언니 있잖아요. 언니한테 가서 배우면 되잖아요.>>
<<선생님 말도 말아요. 우리 애가 지난번에 무슨 편지 어쩌고 하면서 큰 엄마한테 혼났어요. 그러고는 다시는 공부하러 오지 말라구 했대요.>>
<<그래도 애가 가면 설마 배우지 말라는 말은 안하겠지요. 안그래요?>>
저으기 난감해하는 표정이였다. 그러는 가장을 지켜보면서 철구는
<<여하튼 이제 곧 졸업시험을 치르겠는데 부지런히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시험에서 합격이 되지 않으면 중학교를 가지두 못하고 재학을 해야 하니깐요.>>
<<그럼 이제는 우리 애한테 무슨 편지같은걸 주지 마세요. 혹시 애가 또 상처라도 입을가봐 걱정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주려면 저한테 주십시오. 이젠 제가 련락원 사업을 맡을게요. 호호호>
그러는 가장을 지켜보는 철구의 눈가에는 언녕 물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 고마운 마음은 뭐라고 표달이 되지 않았다. 소리없이 흐느끼는 철구를 지켜보면서
<<아무렴 저를 의심하겠어요. 그리고 내가 제일 고와하는 조카이니깐. 이제 결혼이라도 하면 저한테 한몫 잘 해줘야해요. 알겠죠? 어서 주세요.>>
철구는 써놓은지 며칠이 잘 되는 편지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넘겨주었다. 이제 놀라운 시작을 하고보니 철구는 기쁜지 슬픈지 가늠이 잘 서지 않았다. 이렇게 애순이 고모가 직접 나서서 련락원 임무를 착실하게 시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순이 엄마도 고모에 대한 그 무슨 방어심은 조금도 보이질 않았다. 어찌보면 넘 똑똑한 사람이 가끔은 가장 바보스러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매번 편지를 쓸때마다 철구는 애순이더러 절대로 자기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는것과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들이 할수없이 동의를 할것이니 믿어라는 말을 특별히 나타내군 하였다. 편지에서 애순이도 절대로 떠나지 않을테니 시름을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부모들이 정 반대를 하면 함께 도망을 하자는 생각까지 곁들여 적군 하였다. 그런 애순이의 편지는 철구의 마음을 오리오리 찢어내는것만 같았다. 철구의 베개깃에 안타까운 눈물이 얼마나 스몄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싸늘한 가을이 발을 들여놓는 어느날 오후였다. 애순이의 사촌녀동생이 철구하고 하는말이 언니가 해림에 놀러갔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무슨 한국남자어쩌구 하면서 알아못들을 말을 하고는 놀러나가는것이였다. 분명이 엄마가 가르쳐준 말인데 그 애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것같았고 그 속에 무슨 비밀이라도 들어있는것같았다. 특히 한국남자라는 말에 철구의 신경은 이상하게 뛰여댔다. 아무래도 애순이 고모를 찾아 내막을 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철구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집을 찾아갔다. 마침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헐떡이며 들어서는 철구를 보면서 어색하면서도 미안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도대체 애순이가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학생애가 하는 말이 무슨 한국남자구 하면서 말하던데요.>>
<<그러잖아도 내가 애한테 여러번 말해주면서 선생님하구 잘 전달해라구 했는데 걔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나봐요. 이왕에 이럴바엔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실상 애순이네도 가정이 가난합니다. 선생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우로 공부하는 오빠도 있구 이제 대학을 가면 돈도 엄청 많이 들어야하니깐요. 후->
말속에 무슨 말이 숨겨있는데 철구로서는 급한 마음의 흔들림으로 조금도 리해가 가지 않았다.
<<애순이 엄가가 애순이를 한국에 시집보낸대요. 그러면 가정도 살리고 자신도 잘 살수 있다구 하면서요. 그래서 해림에 한국남자가 와서 만나러 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철구는 하늘 땅이 맞붙는듯하였다. 그렇게 믿어오던 애순이가 한국남자를 만나러 갔다니. 철구는 숨막히는 가슴을 달래면서 일어섰다. 설음이 온 몸을 감싸면서 아픔을 몰아왔다. 비칠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애순이 고모의 눈가에서도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철구는 학교에서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마이다 남은 술병이 쥐여져 있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들을 붙잡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방으로 들어간지 얼마안되여 철구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가마목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채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울음소리가 잠잠해졌기에 방문을 열고보니 철구는 애순이가 보내온 편지들을 사정없이 찢겨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엄마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전등을 껐다.
그 이튿날부터 철구는 학교로 나가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다는 쪽지글을 써서 교장선생한테 보냈다. 교장선생도 이미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보니 집에 푹 쉬라고 하였다. 낮이면 철구는 집뒤의 산에 올라서 담배를 태우면서 뻐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살펴군하였다. 애순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것이였다. 매일 매일 아무리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애순이의 그림자는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애순이 고모가 하는 말이 애순이가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고 곧 한국으로 간다는것이였다. 맥이 풀리는 몸을 억지로 달래면서 한번만 애순이와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다. 측은한 눈길로 철구를 바라보던 애순이 고모가 시원스레 대답을 하였다, 이제 애순이가 돌아오면 꼭 만나게 해주겠다는 답복을 남기고 갔다. 눈물나게 고마운 애순이 고모였다. 그토록 믿음을 주던 애순이가 부모들의 공격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전혀 리해가 되지 않았다. 꼭 마치 꿈만 같았다. 여하튼 애순이의 입으로 직접 말하기 전에는 포기할 철구가 아니였다. 진작 애순이 자신이 원해서라면 얼마든지 보내줄수 있는 철구였다. 애순이를 넘 사랑하기에 놓아줄수도 있어야 한다는 도리쯤은 고중생인 철구가 잘 알고 있었다. 철구는 매일 술과 한몸이 되여있었다. 하루하루가 이토록 지겹기가 처음이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산에 올라가 애순이가 보내온 편지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들어오군 하였다. 그러는 철구는 지켜보는 부모들의 속은 말이 아니였다. 앞마을에서 사는 이모는 닭곰을 만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러다가 철구가 진작 들어누워 일어나지 못하면 큰일이기도 하였다. 이제 애순이를 만나야 모든 일이 해결을 가져오게 될것이다. 날로 수척해지는 철구의 모습은 정말 말이아니였다.밥은 드는둥 마는둥 하고 그저 술병을 놓지 않았다. 곁에서 아무리 권고하고 안위해줘도 별 효과가 없었다.
드디여 애순이 고모로부터 소식이 왔다. 오늘 저녁에 애순이 고모네 집에서 만나자를 기쁜 소식이였다. 며칠동안 깎지 않았던 수염도 깎고 몸도 말끔히 다듬고 애순이 만나서 갔다. 애순이 고모는 언녕 자리를 피해주고 애순이가 마마목에 누워있었다. 철구를 보는 순간 애순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철구의 품으로 안겼다. 애처럼 흐느끼는 애순이를 보느라니 철구의 마음은 찢어지는듯하였다. 이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얼마후 둘은 구들로 올라가 앉았다. 철구의 다리를 베고 누운 애순이가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얘, 이 바보야, 울지 말아. 네가 울면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픈지 알어. 너를 못보면 당장이라도 죽을것같았어. 너 알기나 아니. 이 바보야! 날 버리고 어디가서 이제야 돌아온거니. 너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라구 그러니. 엉 엉 >
며칠동안 쌓였던 설음이 이 한순간에 터지는듯싶었다. 애순이도 쌓였던 아픔을 쏟아내고 있었다.
<<바보 당신, 나도 당신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압니까? 엄마가 억지로 한국남자를 만나러 가자고 해서 별수없이 간거야. 뭐 내가 가고 싶어 간줄 아니? 나도 당신을 떠나선 살지 못할것같습니다. 난 당신만을 사랑할거야.>>
철구는 눈물 코물 범벅이되였다. 시원스레 울고 나니 눌리웠던 마음도 많이 거뿐해지는것같았다.
<<동무, 난 한국으로 시집을 가기 싫습니다. 무섭습니다. 살아도 동무하고 같이 살구 죽어도 동무하구 같이 죽을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떨어질수 없습니다. >>
애순이는 몹시 흐느끼고 있었다. 철구는 애순이의 눈물을 닦아주고있었다.
<<애순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가? 난 절대로 당신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을거야!>>
애순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철구의 손을 잡았다.
<<동무, 우리 둘 같이 도망을 갈가? 이젠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도 이젠 집에서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래일 모레 우리 도망을 갑시다.>>
애순이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행동앞에서 철구는 다시금 애순이의 사랑을 절감하게되였다.
<<옳소, 이럴바엔 우리 함께 떠나기오. 래일 준비를 해가지고 모레 새벽에 떠나기로 약속을 하기오. 내가 차를 불러서 기다릴게.>>
이렇게 애순이와 철구는 사랑을 위해 또 하나의 새로운 리정표를 만들어야만 했다. 철구는 애순이를 꼭 안은채 놓지 않았다.
<<애순이, 내가 돈을 준비할테니 당신은 걱정말구. 무사히 탈출만 하면 되오. 우리 직접 천진으로 들어가기오. 그곳에 내 중학교 동창들이 있으니깐.>>
<<알았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위해 난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동무하고 같이 있으면 최고의 행복입니다. 사랑합니다, 바도 동무.>>
이때 자리를 피해 나갔던 애순이 고모가 돌아왔다. 벌겋게 부어오른 눈을 지켜보던 고모가 웃음을 터뜨렸다. 둘은 부끄러워 머리만 숙이고 있었다. 시간도 퍼그나 지나간지라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왜서 이렇게 그저 가자구.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말도 안한것같은데. 저기 맥주 몇병이 있는데 우리 함께 마실가? >>
철구는 무엇보다 혹시 애순이 엄마가 찾아 올가봐 걱정이 되였다. 이러다가 발각되는 날에 새로운 계획도 수포가 될가봐 근심이였다.
<<이제 언제 다시 보겠는지 모르겠는데 술이라도 한잔 하구. . 나에게 인사말도 좀 멋지게 해야잖아요?>>
별수없이 눌리워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한잔 두잔 술은 넘어가지만 철구의 마음은 그냥 두려움에 눌리워있었다.
술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인사를 드리려는데
<<저 애순아, 고모의 성의니깐 받아줘. 밖으로 나가면 돈이 수시로 필요하거든. 많지 않지만 어서 받아라. >>
철구와 애순이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멍해졌었다.
<<그리구 철구선생도 저보구 한마디 해야죠? 다른건 싫고 애순이가 부르는 대로 따라 불러주세요. 됩니까?>.
철구와 애순이는 손을 잡고 함께 고마움이 섞인 목소리로
<<고모, 사랑합니다.>>고 눈물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철구는 애순이를 집근처까지 데려다주고 약속을 굳게 잡은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부모님들께 저들의 의향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불장을 열고 이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차곡차곡 손수건에 싼 돈이였다.
<<이돈이 얼마 안되지만 나가서 배는 곯지 말아야지않니. 어서 받아라. 널 위해 준비해둔 돈이니깐. >>
아버지도 많이 섭섭한 모습이였다.
이튿날 오전에는 이럭저럭 준비하고 오후에는 학교로가서 교장선생하구 이야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때 쯤에 교장선생이 찾아오셨다. 술 두병과 두부한모를 들고 오셨다. 그날 저녁 철구와 교장선생은 밤이깊도록 술을 마셨다. 교장선생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것을 철구는 처음 보았다. 돌아가면서 돈 300원을 철구의 손에 쥐여 주면서 한마디 부탁을 남기셨다.
<<꼭 멋지게 해내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였다.
날이 희붐이 밝아서 철구는 일어났다. 어느새 아침밥을 다 지어놓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철구는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면서 엄마를 꼬옥 끌어안았다.
대충 밥을 들고 간단한 행장을 지니고 밖으로 나가니 차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철구와 애순이는 하이야에 몸을 싣고 떠났다. 마을의 제일 앞에 이르렀을 때 애순이 고모가 손전등을 켜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후 하이야는 수많은 근심과 걱정 그리고 모든 고통을 털어버린채 래일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그날따라 여느때와 달리 늦게 일어난 애순이 엄마가 이불을 개이려다가 베개옆에 놓인 편지를 발견하였다. 별스러운 생각이 들어 애순이 방문을 여는 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없고 방은 알뜰하게 정리되여 있었다.
애순이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편지지우에 눈물이 쉴새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련계전화:13115330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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