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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제는 농업경제학에 소속되지만 전반 경제사회에서 너무나도 큰 과제였다.토지문제로 한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개석이 대륙에서 실패한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집정자의 대부분이 지주 자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농지개혁을 늘 미루며 실행하지 않았기에 토지를 분배받은 청년농민들로 구성된 해방군에 쫓겨 대만으로 갔다.
지주가 독차지했던 '토지 사유제'를 뒤엎는 것은 가난했던 인민대중의 혁명 목표이자 원동력이었다.하지만 1948년부터 장개석의 사랑을 받았던 진성(陈诚)이 대만성주석이 되면서부터 대만이 농지개혁을 추진해 지주의 땅을 사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주들은 도시로 진출해 기업인이 되었다. 폭력이 아닌 정책으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농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준 대만의 농지개혁은 지금 대륙의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륙에서 농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려 한 영도자로서 손중산, 모택동과 등소평이었지만 손중산은 내란으로 인해 이룩하지 못했고 모택동은 합작화운동으로 좌절시켰으며 등소평은 '집체소유제'란 과제를 남겨 놓았다.
토지는 현재 나라헌법엔 국가소유지만 현행농촌정책으로는 집체소유제이므로 농민들이 실제 경영권과 사용권을 가지고 있다. 후에 농민들이 계속 도시에 진출하면서 소유권 경영권과 사용권이 분리되어 왔다. 문제는 농민들이 토지를 점차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의 국토자원부문 지방정부 대기업과 여러가지 자본이 농지를 사들이기 때문이었다.
다급해진 농촌도시화와 농촌노동력 이전도 농지유실을 가속화시켰고 주택지와 농지를 잃은 농민들은 도시나 지역간의 유동인구가 되었고 사회의 파문도 자주 일어났다.
이런 현상을 두고 10년전만 해도 토지사유화를 극력 반대해왔던 경제전문가나 농업 전문가들도 할말을 잃게 되었다.
'집체소유제'로 인해 '삼농문제'의 핵심인 토지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급한 농촌도시화는 자원고갈 환경파괴, 도시공룡화, 인구폭발 등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이로 인해 '농지소유 다원화' 가 다시 부상하게 되었고 토지사유화 개혁도 그리 멀지 않은 화제로서 개혁개방으로 꼭 넘겨야 할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학자들의 발언은 다양하다. 관건은 현재의 토지소유자 확정이다. 1945년이후의 토지개혁을 기준으로 하자고 하면 증조 할아버지 세대일 수도 있어 너무 아득한 시기여서 실행하기 어렵다.
그러면 1978년이후의 '개인도급제'가 시작 할 때의 경영사용권 소유자를 기준으로 하자고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1990년대 임대시간을 재연장했을 때의 경영사용권 소유자도 20년이란 세월이 지나 노무송출과 도시 진출로 해서 사실상 본인은 경영, 사용하지도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핵심은 농촌호적이고 개방개혁이래 1978년과 1990년대에 토지경영 사용권을 가진 농호일 것이니 이 고리를 민족향촌 간부들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고 각급 민족사무위원회에선 이 문제를 단순한 농지문제로만 간주해도 안 될 것이다.
조선족 농민들은 연령을 불문하고 노무수출이나 도시진출로 해서 거의다 농촌에 거주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농사일도 거의 포기한 상태이며 그 당시 바쁜 사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한 상황이고 시간도 너무 오래 지난 것이다.
잠시 해외나 도시로 진출했다지만 우리 조선족 농민들은 당중앙의 농촌정책의 혜택과 민족향촌간부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어 농사를 짓지 않아도 토지 임대료를 받고 있다. 조선족 농민들의 주택지 농지와 마을을 잘 지켜주고 농민들의 모든 권익을 드팀없이 잘 수호해주는 민족향촌정부와 간부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토지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민족 간부들과 지성인들은 늘 고민해야 하고 해외나 도시에서 기술과 자본축적을 한 조선족 농민들도 토지 사정을 잘 파악하고 고향의 새농촌건설에 기여해 나가리라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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