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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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권위적 해석 /곰 아 지
2007년 09월 17일 14시 34분  조회:4909  추천:58  작성자: 박문희

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권위적 해석


-박문희 씨에게 답함


곰 아 지


조선민족의 뿌리에 대한 해석은 잡다하다. 그러나 학술계의 보편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그 가장 권위적인 해석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편찬으로 된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제24권)중의 “한민족” 조목중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중요한 부분만 초록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피부색깔, 골통의 모양, 머리칼의 색깔과 조직 등 형질적 특징에 따라 몽고종 ․ 코카서스종 ․ 니그로종 등 세 인종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서 본래 제4빙하기, 고고학적으로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시베리아의 추운 지방에서 기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몽고종의 형질적인 특징으로서 얼굴에 광대뼈가 나온 것이나 눈꺼풀이 겹쳐진 것이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우리 한민족도 이러한 형질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시베리아의 몽고종은 옛시베리아족 또는 옛아시아족 ․ 옛몽고족과 새시베리아족 또는 새몽고족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는 옛시베리아족이나 새시베리아족 모두 몽고종의 형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뒤에 부족적 이동에 따른 형질적 ․ 문화적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두 그룹 사이에는 언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늘날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옛아시아족은 축치족 ․ 코리약족 ․ 길리약족 ․ 캄차달족 ․ 유카기르족 등이다. 그리고 이들의 한 갈래가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이동하여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사할린과 북해도로 이동하여 아이누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편,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새시베리아족에는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 ․ 사모예드족 ․ 위구르족 ․ 핀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의 언어에는 문법구조 ․ 음운법칙 ․ 공통조어 등에서 서로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알타이어족이라 한다. 반면, 사모예드족 ․ 위구르족 ․ 핀족은 다른 하나의 어족을 이루어 이를 우랄어족이라 한다. 한국어는 이가운데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알타이어족은 본래 예니세이강 상류지방고ㅘ 알타이산 기슭에서 발생하였다. 이 지역은 삼림 및 ㅊ원지대로서 주민들은 일찍부터 목축을 주로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는 생산경제 단계로 들어갔으며, 또한 알타이 산지에서는 구리와 주석이 많아 청동기문화의 발달에 유리하였으므로 안드로노보문화 ․ 카라수크문화 ․ 타가르문화 등 독특한 시베리아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동유럽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문화의 전파에 따라 유럽 인종과 원주민인 몽고족사이에 혼혈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북방 아시아 몽고종계통의 민족에게서 가끔 유럽종의 형질적 요소가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제4빙하기에 시베리아 지방에서 형질적 특성이 완성된 몽고종은 제4빙하기 후기에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으면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옛시베리아족이 시베리아의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후기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서 후기구석기문화와 신석기문화가 전파되였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였지만, 아직 그 인종의 형질적 특성을 확인할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석기문화는 몽고 ․ 만주 ․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사할린 ․ 북해도를 거쳐 아메리카대륙에까지 전파되였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모두 같은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석기시대 토기의 경우, 半卵型의 토기 표면에 직선이나 점으로 구성된 기하문 장식을 한 것이 시베리아 ․ 만주 ․ 한반도 지역과 북아메리카 및 일본열도의 북부에 분포되여 있어 그것이 모두 시베리아로부터 전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베리아의 신석기문화는 이들 여러 지역에서 각기 변화하여 발달하였으므로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 지역의 신석기문화는 아직 수렵과 어로의 채집경제 단계에 있어서 농경문화가 시작되지 못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만주나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역시 인골이 발견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주민의 인종적 특성을 알기는 어렵다.

알타이산지와 바아칼호수의 남쪽지대에 살고 있던 알타이족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은 옛시베리아족의 이동에 뒤이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원주지의 초원지대에 이어져 있는 초원지대로 이동하였으며, 유목 ․ 기마 민족이였으므로 이동이 용이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초원이 펼쳐진 한계까지, 즉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까지, 남동쪽으로는 흑룡강 유역에서 만주 북부까지 이동하였다. 그 결과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쪽에, 몽고어족은 지금의 외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와 만주 북부에, 퉁구스어족은 흑룡강 유역에 각각 분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알타이족과 함께 시베리아에 살던 한민족도 이동의 물결을 따라 몽고를 거쳐 중국 장성지대의 동북부와 만주 서남부에 이르러 정착하였던 것이다. 단, 오늘날 알타이족이라 하면 터키족 ․ 몽고족 ․ 퉁구스족을 가리키고 한민족은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는 한민족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알타이족에서 갈라져 만주 서남부에 정착하였고, 여기서 하나의 민족단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알타이족에 의해서 중국 북부에 전파된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는 오르도스 ․ 내몽고지방과 만주 서남지방, 즉 요령지방에서 각각 꽃 피였는데, 전자는 내몽고족이 발달시킨 것이고 후자는 한민족의 조상들이 발달시킨 것이다. 이 두 청동기문화는 모두 시베리아 청동기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요령의 청동기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비파형의 단검이나 기하문경 등 고고학적 유물에 의하여 확인되며, 이로부터 한민족의 조상들이 遼寧 지방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알타이족이 다른 민족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문헌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장성지대 깊숙이 침입한 樓煩이나 林胡, 그리고 만주북부의 東胡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들이 곧 알타이족 중의 몽고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장성지대 서북쪽의 흉노는 터키족 또는 몽고족을 가리킨다. 터키족이나 몽고족에 비하여 중국 동북부의 민족으로서 肅愼 ․ 朝鮮 ․ 韓 ․ 濊 ․ 貊 ․ 東夷 등이 주나라 초기부터 중국문헌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가운데 肅愼과 朝鮮은 중국 고대음으로는 같은 것이고, “韓”은 “khan>han”에 대한 표기로서 “크다”, “높은 이 ”등의 뜻을 가진 알타이어다. “貊”의 “ ”는 중국인들이 다른 민족을 금수로 보아 붙인 것이고, “百”이 음을 나타내는데, “百”의 중국 상고음은 “pak”으로서 이는 우리의 고대어 “밝” 또는 “박”에 해당하며, 광명이나 태양을 뜻한다. 한민족에 의하여 발달한 遼寧 청동기문화는 대체로 대흥안령의 산줄기를 경계로 중원문화와 접하였다. 그런데 遼寧 지방은 북으로는 삼림 ․ 초원을 이루고, 남으로는 난하 ․ 대릉하 ․ 요하의 하류지역에 농경에 적합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遼寧 지방의 조선족은 본래 시베리아에서는 목축을 주로 하고 농경을 부업으로 하였지만, 遼寧 지방에 정착한 뒤로는 그 환경에 적응하여 농경을 주로 하면서 목축을 부업으로 하는 종경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한반ㄷ에 이르러서는 그 자연적 환경에 따라 목축은 거의 잊어버리고 오로지 농경을 하는 민족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앞선 청동기문화와 농경문화를 가진 조선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켰음은 고고학적 유물뿐 아니라 신화 ․ 언어 등의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이와 같이 한민족은 몽고종에 속하며, 그 가운데서도 새시베리아족의 알타이족에 속한다. 그러나 한민족은 알타이족의 이동과정에서 일찍부터 갈라져 나와 滿洲의 서남부(지금 중국 동북의 서남부), 遼寧지방에 정착하여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으며, 그 가운데 한 갈래가 한반도에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인 옛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켜 오늘의 한민족이 형성되였던 것이다. 이들에 의해서 여러 읍락국가가 형성되고 나아가서 읍락국가의 연맹체가 성립되였으며, 고조선이 바로 그 연맹의 맹주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치적 ․ 사회적 공동체를 이룩함으로써 하나의 민족단위로 성립되였다. 또한, 이러한 민족공동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러 집단의 언어가 통일되여 한국어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하나의 민족단위로 성립된 것은 지방에서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킨 때부터이다.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전하는 r조선의 건국연대와 대체로 부합되는 서기전 2000년대로 볼 수 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제24권 「한민족」, 204-205쪽) 

                               *     *     *

조선민족의 발상지는 중국 동북과 조선반도. 특히 중국 동북지구 서남부(遼西. 遼東 지역)라는 것이 한국과 조선 학술계의 일반적인 견해로서 거의 정설로 굳어졌다.

여기서 조선민족의 기원과 연계시켜서 볼 때, 특히 주목되는 것은 료동, 로서 및 연산 남북의 신석기문화로서 1970년대로부터  날로 중시를 일으키고 있다.

일찍 1935년 지금 내몽고 자치구의 적봉시 紅山에서 발굴된 신석기문화는 당시에 “적봉 제1기 문화”라고 명명되였다가 1954년에는 홍산문화라고 명명되었는데, 기원전 3500년의 문화라고 추정했다. 1970년대로부터 시라무른하, 로합하, 대릉하 류역의 적잖은 고장들에서 선후로 홍산문화의 건축유적과 묘지들을 발견하였고, 상당한 수량의 옥기(玉器)들을 발국하게 되었다. 특히는 1983년-1985년 료녕 건평, 릉원 사이의 우하량에서 홍산문화에 속하는 赤石冢과 女神廟를 발견하였는데, 중국의 사학계에서는 이를 商族의 기원과 연계시켜 고찰하게 되었다.(비효통의  『中華民族多元一體格局』, 중국민족대학출판사, 1999년, 56-57쪽을 참고하라)사실 商族과 조선민족은 상당한 혈연관계를 가졌다고 추정되며 후일 상족의 귀족인 기자가 무리를 이끌고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것은 어쩌면 무근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량하의 女神廟에서 당시 홍산문화를 창조한 원시인들이 암콤을 녀신으로 숭배하면서 사당에 모셨다는 것은 더욱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우리는 료녕성 서부 牛河梁의 女神廟에 모셔졌던 熊女神에서 檀君神話의 현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북 경내의 시베리아 경내의 많은 소수민족과 만족, 어른춘, 허저족, 일본의 아니누족 등의 곰토템 숭배는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곰토테숭배가 만퉁구스제민족의 보편적인 토템숭배물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민족의 발상지는 중국의 서북지역이아니라 중국의 동북지역과 조선반도였음을 다시한번 여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 후의 遼東과 조선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기들인 비파형 단검 등은 모두 동일한 류형의 것으로 판정됨으로써 고조선의 활동지역이 료동과 조선반도 지역이었음이 더욱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서주시기로부터 중국의 문헌에는 지금의  료서 ․ 로동 지역에 있는 고조선과의 교류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가록되어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과  문헌적인 기록으로부터 “단군의 중국 감숙 돈황 기원설”이나 “중국 신강 천산 산맥 기원설”은 아무런 력사 ․ 문헌적인 근거가 없는 일부 호사자들의 낭설임을 해 주고 있다.


三危라는 지명이 신강천산산맥과 련관되어 있다고 단군성조의 발상지을 중국서북지역의 신강 천산산맥에 비정할 수 없다. 중국문화나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후에 기록된 『삼국유사』중의 기록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아무렇게나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단군은 제석 환인의 아들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서 암콤과 살아서 조선 민족의 조상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불교 승려 일연이 기록자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승려 일연의 기록을 따른다면 조선민족은 마땅히 히말아야산맥 너머에 있는 네팔사람이여야 한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네팔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백산이리는 것은  특정한 산을 가리키는 것 일수도 있고 밝은 것을 숭상하는 조선민족의 조상이 밝은 산이라는 뜻으로 상징적으로 사용한 이름일 수도 있다. 백두산의 옛 이름 不咸山도, 녀진족기원 신화에서 나오는 부쿠리산(布庫里山)도 모두 밝은 산이라는 뜻이다. 단군이 내렸다는 태백산과 그 뜻은 통하는 것이다. 


신화는 일부 역사적인 요소가  개재해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원시인들의 상상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화를 몇 천 뒤의 후세사람들이 기록해놓은 텍스트에 있는 지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여 해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2007년 9월 16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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