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은 조선족시단에 있어서 다재다난(多灾多难), 다희다흥(多喜多兴) 조금은 시비가 엇갈리는 그런 한해인것 같다. 다재다난하다고 하는것은 오래동안 북방시단을 리드해왔던 한춘선생이 안타깝게 타계하신것이고 다희다흥하다고 말할수 있는것은 우리 문단에도 드디여 하이퍼시가 상륙하여 적잖은 센세이숀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때문이다. 일전 필자는 조선문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2013년 도라지잡지 제5기에 실린 최룡관, 박장길, 김철호, 김견, 심예란, 방순애, 허옥진, 정두민, 최려나, 황희숙, 려순희, 신금화, 방산옥, 김동한 14인 선배시인님과 동우시인들의 하이퍼시 32수를 읽고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한께 마침내 국내의 독자들도 이제는 굳이 한국 시단이 아닌 우리 조선족문단에서도 하이퍼시를 마음껏 감상할수 있게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설레이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아직 필자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통시 감상은 항상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했고 현대시 감상은 특히 사유가 랭철해야 하였으며 하이퍼시 감상은 의식의 흐름, 즉 공유의 무의식을 대동하는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그럼 아래에 우리 조선족시단의 개혁파 거장이고 현대시보급에 오늘도 아낌없이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최룡관선배님의 <기발>부터 조심스레 살펴보자. 나에게 있어서 대선배이고보니 평론마저 조심스럽지 않을수가 없음을 사전에 미리 말씀 드리면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ㅡ달고 가며 달려 가고 끌고 가며 끌려 가며ㅡ
기발
조의의 기발이 구름을 휘감아치고
태산도 천군의 발바닥을 핥으러 달려오네
청마는 소리없는 아우성이라 하고
마야꼬브스끼는 회의 꾸러기라고 하고
룡관이는 나붓기는 절망이라고 한다
제비들은 봄자와 가을이라는 글자를 쓰며
북으로 남으로 날아오르고
송어들은 죽음의 굽이를 돌고돌아
물방아도 그림자를 남길수 없는
삼도천의 자갈밭을 찾는다
(조의;고구려애국랑도명칭)
<<기발>>전문이다
하이퍼시의 특징은 다선, 다시점, 다초점이 기본 주축으로 된다 . 따라서 단순한 의식의 흐름만이 아닌 무의식이 배동 되여있기에 이 한수의 시를 읽고나면 마치 한폭의 거대한 그림이 우리들 눈앞에 불쑥 펼쳐지는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또한 거창한 자아발로마저도 자연스럽게 자연에 다시 결부시켜가면서 그러한 의식의 흐름과 무의식속의 뜨거운 자아를 때로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도 하며 인간 본능주의적인 호매로움과 그러한 경계(境界)ㅡ 즉 리상적인 갈구는 어디까지나 어깨가 단단하고 든든한 바위가 되여 오늘도 지향에는 아무런 구속(拘束)이 없음을 말이 아닌 생동한 그림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고 있다. 특히 3련으로 된 구성된 이 시의 제일 마지막 련 / 제비들은 봄자와 가을이라는 글자를 쓰며/ 북으로 남으로 날아오르고/ 송어들은 죽음의 굽이를 돌고돌아/ 물방아도 그림자를 남길수 없는/삼도천의 자갈밭을 찾는다/로 이미지를 총집합시킨 이 시의 텍스트는 줄곧 고구려 애국랑도 조의의 기발로부터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그림으로만이 완성이 가능한 태산, 천군, 발바닥, 아우성, 회의, 꾸러기, 절망 ,제비, 봄, 가을 , 북 남, 송어, 죽음, 물방아, 그림자, 삼도천, 자갈밭 등 다양하고 저항적인 그러한 양상들을 심도있게 한층 또 한층 거침없이 독자들에게 펼쳐보이면서 심의(深意)의 <기발>을 독자들의 살갗만이 아닌 깊은 뼈속에까지 새기게끔 조심스레 인도한다. 그리고 삼도천이란 아마도 불교용어인듯한데 그렇다면 이는 또한 달인의 도를 넘어서는 엄청난 결과ㅡ무상한것이 인생이라는 깨우침과 함께 <<인생사 새옹지마>>를 누구나 다시한번 뒤돌아보게끔 하는 그런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것 같다. 로시인의 솜씨는 참으로 칼날같이 매서웁다는 생각이 든다.이렇듯 시인은 시로써 모든것을 말을 한다. 시외의 그 어떠한것조차 론한다는것은 아무런 가치조차 없음을 설명한다. 그럼 여기서 시각효과가 남달리 뛰여난 <연길강속사>와 <가시북채들>을 잠깐 더 살펴보자.
가시북채들
바이올린이 연주를 하고 있다
폴란드 타트라산골짜기가 마신다
사품치며 쏟아져내리는 안개의 강물을
강물에 새벽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검은 곰이 물속을 헤염치고 있다
벌새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가는 주둥이로 꽃에 키스를 퍼붓고
앞뜨락의 오이밭에서
파란 부채들 바람을 일으키고
가시북채들 바람북을 두드린다
<가시북채들>전문 ㅡ
이 시를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 아닌 다른 그 어떤것으로 해석한다는것은 아마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통하는것이 없으리라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모두 열행으로 나뉘여진 이 시는 한행ㅡ 혹은 두행이 서로 어울려가면서 무의식속의 자신만의 독특한 생동한 그림을 정적이 아닌 동적인 속사로 펼치고 있기때문이다. 우아한 바이올린소리ㅡ안개의 강 ㅡ 검은 곰 ㅡ 벌새 ㅡ파란 부채와 가시북채 바람북를 떠올리면서 다시한번 이 시를 음미해보노라면 확연히 무의식중의 엄청난 이미지즘이 되고 있음을 누구나 알수가 있다. 그럼 우리 함께 여기서 꼼꼼히 다시 한번 자세히 이 시를 살펴보자
/바이올린이 연주를 한다/ 누구나 쉽게 떠올릴수 있는 바이올린의 우아한 연주소리ㅡ그 곡은 모자르트의것이든 베토벤의것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독자들이 선택하기 나름이니깐 ㅡ /폴란드 타트라 산골짜기가 마신다ㅡ사품치며 쏟아져 내리는 안개의 강물을/ 그림이 바뀌면서 ㅡ이국적인 색채를 연출, 동시에 바이올린소리는 타트라 산골짜기가 들이마시는 안개의 강물로 잠시 변형이 된다 ㅡ/강물에 새벽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ㅡ검은 곰이 물속을 헤염치고 있다/무의식의 첫번째 발로, 또다시 그림이 바뀌면서 바이올린 소리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검은 곰의 헤염치는 소리로 재차 변형이 된다ㅡ/벌새가 날개를 펄럭거리며ㅡ가는 주둥이로 꽃에 키스를 퍼붓고ㅡ 무의식의 련속발로ㅡ 처음 우아했고 웅장했던 소리가 이제는 조금 둔탁한 생명의 소리로 바뀌였다가 다시금 벌새의 가는 키스소리로 변형이 되여가고ㅡ/앞뜨락 오이밭에서ㅡ 파란 부채들 바람을 일으키고/결국 그림이 다시 바뀌면서 바이올린소리는 오이밭의 파란 부채가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와도 같다고 다시 설정한다 . 다음 존속적인 결구가 된 /가시부채들 바람북을 두드린다/는 눈으로만 아닌 감각과 가시(可视)적인 효과 ㅡ즉 가시북채에 맞으면 아프기 마련이지만 여기서 <바람북>이라는 아플래야 아플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되면서 바이올린소리는 그 효과음을 타고 마침내 모든 변형을 끝마치고서 북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멀리 려행을 떠난다. 이 시를 처음 봤을때 필자는 엄청난 시각효과에 눈이 즐거웠고 둘째 꿈틀거리는 의식속에 자신이 용해되여가는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림은 그림으로 읽어야만 소통이 된다.
이 시의 장점은 첫째 시각효과가 남달리 뛰여나고 둘째 무엇일가 자꾸만 곱씹게하는 의식의 흐름이 참으로 독특하고 돋보이며 셋째 독자들의 시적 음미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시켜준다는것이다. 단점이라면 혹시 아직 독자들에게는 너무 난해하지않을가 하는 근심도 든다 . 그외 <연길강속사>중에서 제일 마지막 련 /뫼들은 바다를 향하여 뛰여가고/강들은 하늘우에 누워 헐떡인다/ 등은 읽을수록 감탄이 가는 너무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시가 예술이라면 인간은 창조자인 동시에 해설자이며 또한 감수자들이다. 동방종교학자 마이거스 뮤러(麦克斯. 缪勒1823ㅡ1900)는 <<비교종교학>>에서 <<하나에만 너무 집착치 마라 . 하나만 안다는것은 어짜면 아무것도 모르는것과 같다(只知其一, 一无所知)>>고 설파하였다. 난해하다고 시가 좋으니 나쁘니 시야비야하는것은 진정한 문인으로써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 여기서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들로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신금화씨의 <비>와 방순애씨의 <보름달>을 더 살펴보자
비
바람은 빛발치는 가야금선을 튕긴다
한폭한폭 하늘을 재는 거미이다가
돌돌돌 지구를 감싸는 강물이다가
나는 구름위를 덤벙덤벙 걷는다
쌩쌩 땅은 하늘우를 달리고
흐물흐물 가로등은 윙크하는데
225호 신을 신고 교통질서를 유지하던
모기가 냉큼 수용소로 집어넣는다
광란하는 바퀴벌레
광란하는 진드기떼
밤은 구슬마냥 툭 끊기여
또르르 또르르 굴러 다닌다
잠속을 달리는 1호 환자
잠속을 달리는 2호 환자
잠속을 달리는 3호 환자
…
뉴스타트병원 정형외과 504호 병실은
꿈나라
반복구사법으로 씌여진 이 한수의 시가 담는 함의는 참으로 거대하다. 바람, 가야금, 하늘 ,거미, 지구 ,강물, 구름, 땅, 가로등, 윙크, 225호 신, 교통질서, 모기, 수용소, 바퀴벌레, 진드기떼, 밤, 구슬,1호환자, 2호환자, 3호환자, 뉴스타트병원, 정형외과, 504호 병실, 꿈나라ㅡ 무려 25개의 명사끝에 동사가 매달려 거대한 한폭의 그림을 형성한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생종 페르스의 <비>나 오남구의 <부드러운 접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개의 명사뒤에 몇개의 동사를 붙여서 한구절 한구절씩 한폭의 생동한 그림을 펼쳐놓은것이 특징인데 이 시는 거대한 몸집에 비해 조금 살이 메말랐다는 아쉬움이 든다. 살이 메말랐다고 하는것은 그만큼 군더더기를 깨끗이 취소하였다는 얘기로도 통하는데 시가 매끈하고 군더더기가 없다고 하여 다 좋은 시는 아니라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이 시의 중점은 /광란하는 바퀴벌레/광란하는 진드기떼/들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밤은 구슬마냥 툭 끊기여/ 또르르 또르르 굴러 다난다/에서ㅡ /밤은 구슬이 툭 끊기여/또르르 또르르 시내 구석구석까지 굴러다닌다/로 표현하였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가 싶다. 왜냐하면 시제가 <비>이고 보니 여기서 <마냥>이라는 표현은 적절치가 않고 /시내 구석구석까지 굴러다닌다/로 표현했더라면 그만큼 시적 령역이 많이 넓어지기때문이다. <꿈나라>를 <아직 꿈나라로> 아무튼 이 한수의 시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해본다. 다음 방순애시인의 <보름달>을 보자
보름달
달의 껍데기를 뚫고
한마리 새가 나온다
또 한마리 새가 나온다
또 한마리의 새가 나오려고 한다
바다와 달이 살놀이 하여
머리도 팔도 없는
흰 조약돌을 낳는다
심장 하나만 가지고
바다를 품은 가슴이여
하늘 호수가 눈을 깜빡인다
세찬 바람이 손을 뻗치면
눈물이 찔금찔금
<보름달>전문이다
방순애시인은 아무리 봐도 참으로 재치있는 시인인것 같다. 군더더기 하나없이 첫 시작부터 시에 끌려가는것이 아니라 시를 확 끌고 갈줄을 알고 있는것 같다/ 달의 껍데기를 뚫고/ 한마리 새가 나온다/또 한마리 새가 나온다/ 또 한마리 새가 나오려고 한다/ 시제가 <보름달>인데 <또 한마리 새가 나오려고 한다>고 하였으니 암시와 예언성이 짙은 이 시구는 독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무엇일가 아래 시구를 읽지 않을래야 안 읽을수 없게 만든다. 2련에서 바다와 달의 산생물이 흰 조약돌이라 뚜렷이 초점을 모아놓고 심장 하나로 바다를 품을수 있는 가슴을 또 노래한다. 그런데 달은 어디에 있는가? 3련에서 /하늘 호수가 눈을 깜빡인다/세찬 바람이 손을 뻗치면/ 눈물이 찔금찔금/ㅡ 날때에야 비로소 달이 다시 보인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좋은 시인것이 틀림없다. 조금 부족한 점이라면 시적인 공명 ,즉 울림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것이 약한것 같다. 참고로 받아드렸으면 좋겠다.
탈변의 몸부림 그 끝은 어디일가?
박장길시인, 심예란시인, 김철호시인, 허옥진시인의 작품은 신문잡지에서 필자가 많이 본 기억이 있다. 참으로 다재다능한 시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기에 실린 박장길시인의 5수의 하이퍼시중에서 필자보고 뽑아보라면 단연히 <신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 버린다/나를 위하여 끝마친 노예여/나를 따라/나의 오십년을 보고있는 눈이 되였다/나의 오십년을 듣고 있는 귀가 되였다/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받들어 세월을 차며 온 하루하루에/해와 달이 알을 낳아/새들이 부화되여 푸릉푸릉 나래쳐 올랐다/ 이하 생략…간결한 표현에 깊은 음미의 멋이 있어 읽을수록 감수가 새롭다. 이외의 4수 <너라는 역에 도착한다> <손금> <아침산책> <여름강>은 탈변의 굵직한 몸부림이 돋보이긴 하지만 어쩐지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가 보이질 않고 너무 자아심취에 빠져 평범하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갈마든다.
김철호시인의 <바다>는 혼자만의 독특한 이야기식으로 시적화자를 이끌어가면서 고속도로에서의 핸들, 칭키스칸의 룡차, 북경대합실, 감숙 막고, 류방의 대부대, 맑스가 태운 담배연기, 출렁이는 잠꼬대 등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이미지들로 구수한 이야기들을 전개하고 가끔 능청스레 뫼르쇠도 대고 있지만 무엇인가 강조하려 하고 또한 강요하려는데서 되려 독자와의 친근성이 떨어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얼마전 연변일보 해란강 문예부간에 실린 김철호시인의 <바다>와 <홰불>이라는 너무나도 좋은 시를 읽고 많이 감탄했던적이 있는데 이번의 <바다>는 해란강문예부간에 실린 <바다>와 <홰불>보다는 약한듯한 느낌이 들어 많이 아쉽다 .
심예란시인의 <섬의 다선구조>에서 /이성의 접근이 불가능한 토리노수의/신전이 된 매돌은 바위를 읽기도전에/몸속에서 계절을 기꺼이 꺼낸다/ 등은 표현이 독특하고 깊은 맛이 있는 좋은 시어들이라고 생각된다. 허옥진시인의 <줄넘기>에서도 /가마속의 만두가 다 익어갈무렵/우리도 함께 익어 둥둥 떠올랐다> 역시 마찬가지 실례라고 생각된다. 이외 김견, 정두민, 최려나, 황희숙, 려순희, 방산옥, 김동한시인의 시는 첫째 시자체가 너무 길고 지루한감이 들어 꼭마치 몇시간째 고속도로를 주행하노라면 지치고 힘이 드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고 둘째 필경은 새로운 령역에 새롭게 도전하는 자세이고보니 조심스러운 면이 많이 엿보여 어딘가 서툰감이 느껴지며 셋째 하이퍼시의 특징이 낯설게하기와(옴니버스기법처리) 폭력적인 조합이 많이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의 많은 시적조합에서는 명사들이 그대로 라렬되고 있어 읽을 재미가 떨어지고 있는상 싶다. 아깝더라도 뻐를 깎고 살을 저미는 심정으로 앞으로 더욱 좋은 시 한수, 또 한수 만들어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간절히 가져본다 마무리하면서
언젠가 한 시인의 시집에서 <시는 무기교가 기교>라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무엇을 믿고 이런 얘기를 주저없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는 변해야 한다. 시가 변하지 않으면 독자가 없다. 가령 아무리 좋은 시라도 십여년째 똑같은 방식으로 시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시를 쓰는 그 자신도 언젠가면 싱겁고 지칠것이 뻔한 노릇이며 독자들 역시 맨날 왕금년에 이밥 먹던 지질구레한 소리에 차츰 싫증을 느끼게 되며 또 언젠가면 멀리 떠나버릴것이 불 보듯이 너무 뻔한 일이다. 시가 변하려면 배움이 필수다. 만약 어느 초학자가 전통시를 배운다고 생각해보자. 전통시의 특징인 주제의식ㅡ자신의 의식세계와 자신의 그러한 현실적인 새로운 감수, 그리고 자신의 이색적인 감정표출을 한 분출구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치 저수지물이 한곬으로 쏟아지듯이 전반 시적인 계기, 즉 서두ㅡ 발전ㅡ전개ㅡ결말마저 모른다면 초학자가 정말 한편의 시를 제대로 완성할수 있을가? 또 이미지즘이 주축을 이루는 현대시, 포스터모더니즘이 매 한수의 시와 한 구절, 지어는 한 행, 또 한 단락마다 생동한 한폭의 동(动)적인 그림으로 완성이 되여가는 하이퍼시에서ㅡ 기교를 버린다면 과연 시가 옳바로 완성이 될가? 마치 수학에서 답을 알면 공식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느새 천재가 되여 버젓이 현대시며 하이퍼시를 써낼수 있다는것인지?
최룡관선배님은 10여년전 정확히 15년전ㅡ 필자가 료년조선문보에서 편집, 기자로 사업하고 있었을때 그 당시 생전이셨던 박화선배님과 함께 잠깐 심양에서 만나뵌적이 있다. 1999년도에 필자의 첫시집을 출판한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십여년을 아예 문학과는 쭈욱 담을 쌓고 살아온 필자에겐 이 13인 시인들마저 아직 서로 한번 얼굴마저 마주 쳐다본적이 없는 진짜 생판 초면들이다. 개혁은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이 앞장서기 마련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이들의 과감한 행보가 너무 돋보인다고 생각된다. 이런 시인들이라면 언젠가면 한번쯤 꼭 만나보고싶다는 그런 생각도 가져본다. 끝으로 시작이 절반이라고 언제나 후배양성에 최선을 다하는 최룡관선배님과 이들 13인 동우시인들이 앞으로 더욱 좋은 시들을 더 많이 창작하여 새로운 한해 더욱 큰 성과를 이루어가시길 진정 충심으로 심양에서 두손 모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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