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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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시] 퉁 소(허창렬) 댓글:  조회:906  추천:0  2017-08-21
시 퉁 소   허창렬   마디 마디가 빨간 눈물이였다   토마토가 방울방울 쏟아놓은   새빨간 피방울이였다 누군가의   심장을 훔친 가장 진실한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령혼이 없는 허수아비들이 너울너울 춰대는 날마다 고단한 탈춤이였다   언제 들어도 무릎 관절이 아픈 아버지의   땅이 꺼지는 깊은 탄식이였다. 연변일보 2017-8-3
239    미친꽃 2 댓글:  조회:1451  추천:1  2016-09-30
미친꽃 2 외 4 수 허창렬 어디서 무얼 하다 달려 온 늦 바람이기에 코신에 봉두란발에 무르팍마저 홀랑 ㅡ 까져 버렸느냐? 속절 없는 인생 비애로 흔들어 보는 숨 막힌 률동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또르륵 또르륵 굴려 보는 아득한 미소 삶이 덧 없어 너는 이름없는 언덕아래 봉선화 들국화로 활짝 피는구나 평생을 꽃으로만 산다는건 미친 짓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저물어가는 세월 한끝에 웃음으로 활짝 피여나 마가을 너는 하루종일 행복에 울고 있구나 한번쯤 미치지 않고 어찌 삶을 살았다 하리 미쳐서 사는 네 모습에 갈채 보내리 히마와리 히마와리 너는 북국의 젖 가슴을 안고 해변가에 그림처럼 우뚝 서 있다 사찌꼬와 미쯔꼬의 쨍그랑 덧이처럼 까맣게 불타 오르는 손발, 바다물에 풀썩 헹구어 모래톱에 훨훨 널어놓고 싶은 일본의 얼굴, "시나카라 아오쪼라 미나미 가제" 목 메여 불러본다 춤추는 앵두 입술 꺽두러니 일어서는 속눈섭 히마와리 너는 뒷태가 남달리 예쁜 여자 껍질보다 속살이 탱글탱글 부풀어 올라 구수한 여자ㅡ 주:히마와리(일어 : 해바라기) 속세에 살며 저 산이 머리 깎고 중이 되려 하네 어데선가 들려오는 무거운 목탁소리 산아, 산아, 가진게 너무 많아 괴로운 산아 산아, 산아, 버릴게 너무 많아 외로운 산아 산문에 기대여 노을 한웅큼 쥐여들면 땅거미 닭울음소리 찾아 어슬렁 어슬렁 마을로 내려오네 속유가(俗游歌) 세상 사람 나를 보고 바보라고 부르네 그래서 나 역시 바보가 되여 가려 하네 세상 사람 나를 보고 원숭이 같다 하네 그래서 나 역시 원숭이 되여 가려 하네 세상 사람 나를 보고 저 노픈 산을 닮았다 하네 그래서 나 역시 민둥산이 되여 가려 하네 산이 좋아 물이 좋아 이 세상을 다시 찾아왔건만 정든이들 옷자락 펄럭일뿐 나를 아예 몰라버리네 멸치야 반찬감이면 족하거늘 명리도 영예도 싫은 이 몸ㅡ 뜬 구름이면 또 어떠하리 인간의 조건 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사람처럼 사람답게 살아야 내 너를 사람이라 부르리라 너를 보면 보리밭의 까마귀가 더욱 귀엽다 너를 보면 옥수수밭의 깜부기가 더욱 구수하다 너를 보면 옆꾸리 터진 김밥 생각에 웃음이 샐샐 새여나온다 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사람처럼 사람답게 살아야 내 너를 사람아라 부르리라 인간답게 산다는건 참 어려운 일이다...
238    촌스러운 너와 바보스러운 나 댓글:  조회:1780  추천:1  2016-09-19
촌스러운 너와 바보스러운 나 허창렬    어떤 언어학자가 나에게 "바보"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북적대는 이 지구촌에 살며  대부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만큼  밉상스럽고 아니꼬운 사람도 너무 많지만 마음 비우고 차분히 지켜보노라면 저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우리들이 취객이 되여, 유람객이 되여 매일 새롭게 바라볼수 있는 풍경은 이 세상에 그야말로 참말로 많다. 산에 올라 산아래를 굽어보면 파릇파릇한 수양버들 잎을 만져 보고도 싶고 들에 가면 또 어데론가 정처없이 흘러가는 강물소리에 공연히 마음이 솔깃해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새소리 찾아 헤매는게 또한 인간의 지극히 호의적인 호기심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언어학자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그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라고 표현을 한다.얼마나 뼈가 있고 무게가 있는 말인가? 만사 다 제쳐놓고서라도 그의 높은 사상경지에 우선 머리 숙여 탄복하지 않을수가 없다. 둥글둥글한 세상 돌부리처럼 불쑥 솟아올라 나름대로 거침없이 살아가면서 나는 누군가의 그림이 되고 혹은 부담이나 되고 있지 않은지 이제는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나이가 아닐가 생각해봐야 할때가 아닐가?   《로자(老子)》제15장에 《허회약곡(虛懷若谷)》란 고사성구가 있다. 깊은 골짜기처럼 크고 넓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매우 겸허한 마음이나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또한《서경(書經)》의 《대우모편(大禹謨篇)》에는 《만초손겸수익(滿招損謙受益)》이라는 너무 멋진 말도 있다. 풀이해보면 사물은 한껏 차면 자만심이 생기므로 손실을 초래하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뜻으로, 교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의미라 해랴 되겠다. 참으로 멋진 말들임이 틀림 없다. 어디서나 꼿꼿이 고개를 치켜든 개돌피가 아니라 한껏 무르익어 조심스레 고개를 숙인 이삭처럼 살아야 한다는 선조들의 교훈이라고 보여진다.   일찍 "개 버릇" 이라는 수필집을 묶어 90년대 초엽 중국 조선족 문인치고 제일 먼저 한국 동아출판사에서 책까지 냈었던 나의 문학선배 한창선시인의 "바보"에 대한 관점은 또한 남들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남다르다. 어느 날, 심양 서탑의 어느 좁은 골목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나,  한창선 선배, 그리고 모 대학의 교수 셋이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모두 술이 좀 거나해졌을 무렵 한선배가 손가락으로 그 교수님의 코끝을 딱 가르키면서 한다는 말이 " 너 밥 할줄 아니?"였다.하도 뜬금없이 묻는 바람에 조금 당황해난 교수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럼 빨래 할줄은 아니?돈 꿀줄은 알고? 마누라 눈치 볼줄은 알고?" 련속되는 질문에 너무 어이가 없었던지 그 교수가 재차 "모른다"고 대답하자 너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선배가 하는 말이 (애가 얼마나 바보스러우면 미련하게 박사공부까지 했겠냐?)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돌발상황, 지금 생각해봐도 웃음에 눈물 콧물이 절로 난다. 허나 뭔가 가슴을 쿡하고 쑤시는게 있어 마냥 석연한 그림만은 아닌것 같다. 조금 더 깊게 제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일침이 되여 생각할수록 숙연해지는 그런 느낌때문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성격, 성품, 성징, 성정을 갖고 있다. 조금 속된 말로는 성깔, 밸, 밸머리가 더럽다 로 표현이 된다. 사전을 살펴보면 성격(性格) 근본적으로 타고난 마음 짜임새이며 성품(性品)은 근본적으로 갖춰진 마음 매무새이고 성질(性質) 은 근본적으로 깔려진 마음의 모양새이며, 성정(性情)  근본적으로 배어진 마음 쓰임새이다.《회남자·주술훈(淮南子·主術訓)》에 "성인지우선야, 무소이불거, 기우과야,무미이불개"(聖人之于善也, 無小而不擧; 其于過也,無微而不改)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인즉 성인은 선한 일에 대하여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행하지 아니함이 없고. 과오에 대하여 아무리 작은 일지라도 고치지 아니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또《회남자·설림훈(淮南子·說林訓)》에 "태산지고, 배이불교, 추호지말, 시지가찰(泰山之高, 背而弗見, 秋毫之末, 視之可察)"이라는 구절이 있다. 뜻인즉 태산의 높이도 등지면 보이지 않고, 깃털끝도 살피면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바보가 되여 행복해보기는 처음이다. 솔직히 내가 잘 알고 있는 학자들은 하나같이 전문 분야에서 모두 세심한 분들이다. 그리고 옷차림은 멋스러운것이 아니라 생각밖으로 수수하다못해 촌스럽다.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필자와 각별한 사이인 지기다운 지기, 형다운 형들은 대개 모두 그러한것 같다. 자칫 겉만 보면 순박한 농민으로 오해하기도 좋을상ㅡ 그런 그들과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고 거리를 활보할때면 나는 어김없이 바보가 되여버린다. 그 학자의 말처럼 "그저 바라만 봐도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 그리고 농경문화의 핏줄속에 다정다감한 시골인심이 무척 그리운 나역시 그들의 촌스러움에 차츰 익숙해져 간다. 2016.9.10
237    검려기궁【黔驴技穷】 댓글:  조회:1780  추천:1  2016-09-19
검려기궁【黔驴技穷】 허인    검려기궁【黔驴技穷】이라는 고사성어가 하나 있다.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가 다했다는 뜻으로 쥐꼬리만한 재간마저 바닥이 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옛날) 나귀가 없던 귀주성(貴州省)에 누군가가 외지에서 당나귀를 데려와 산에 매 놓았는데 호랑이가 그 소리나 몸체가 굉장한것을 보고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은 뒷발질 하는 한가지 재주밖에 없음을 간파하고 손 쉽게 잡아 먹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것인데 "당. 류종원'류하동집.검지려'"에 (唐・柳宗元《柳河东集・黔之驴》)] 실려 있다. 비슷한 말로 또 검려지기【黔驴之技】가 하나 더 있는데 즉 쥐꼬리만한 재주나 보잘것없는 꾀, 혹은 하찮은 재주를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아 공연히 허탈할때가 많다. 모 신문사에서 몇년간 기자, 편집으로 사업하다가 소심하고 위대한 분의 눈밖에 나 쫓겨난 후 , 8년간 한국 합자기업에서 통역, 부총경리로 사업,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때려 치우고 글밖에 모르는 내가 글쎄 큰돈 벌어보겠다고 어벌차게 한족친구와 함께 석탄장사에 50여만원을 투자, 그 손실을 공정쪽에서 다시 만회 해보려고 청도, 북경, 내몽고 전국 각지를 눈 먼 소경이 바람따라 가듯이 동분서주ㅡ 결과는 더욱 참혹했다. 족 떼우고 불 떼 운다더니 허울 좋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만 번지르르ㅡ 그것마저 요즘은 어처구니없이 바보로 더 잘 통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난 정말 바보가 아닐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헌데 빚 진놈은 발 편 잠 못 자도 떼운 놈은 오히려 발 편잠을 잘수 있다는 말처럼 다 잊고 훌훌 털어버리니 속이 편안함은 또  무엇때문일가?     검루는 (黔婁)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은사(隱士)이다. 제나라의 유명한 도가학자이기도 하다 . 저서로 "검루자"가 있지만 이미 실전, 일찍  로국공이 재상으로 청했지만 단번에 거절, 제위왕(齐威王)이 다시금 국사로 봉했지만 역시 거절,  후에 제나라의 남산, 즉 현재의 제남 천불산에 은거하여 평생 산을 한번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그에게서 제일 배우고 싶은것이 불의의 세상에 서슴없이 등 돌리고 제 갈길을 꿋꿋이 걸어갈수 있었던 그런 용기이다. 검루야 워낙 유명한 학자니깐 그 절개 대쪽 같았겠지만 잡풀같은 인생을 사는 나는 이제는 누군가의 구두발에 짓밟히지만 않아도 맑은 하늘이 푸르청청 보일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은 동곽선생과 뱀 이야기 하면 인츰 알겠지만 "중산랑"【中山狼】이라고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것 같다.명나라  마중석(馬中錫)의 《동전집・중산랑전(東田集·中山狼傳)》에 있는 말인데 전국 시대에 조간자(趙簡子)가 중산(中山)에서 늑대 한 마리를 쏘았는데 늑대가 도망가는 도중에 동곽(東郭)이 구해 주자 오히려 동곽(東郭)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배은망덕한 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십여성상을 제딴에는 충직하게 살아왔노라 자부도 해왔지만 나는 남에게 도대체 어떤 존재일가ㅡ여직껏 참답게 생각해본적이 적은것 같다. 누구나 살며 생각하며 지나온 로정들을 돌이켜 보노라면 진정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았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지 가슴에 두손을 얹고 량심적으로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236    오늘의 단평 댓글:  조회:1807  추천:1  2016-09-19
诗---桥..          金星龙(苏州) 桥 搭在 两岸之间 睡成了 石头...... 桥影子 抓住 桥的大腿 不想 跟着 流水 走...... 因为 爱 还 没有 过 桥......。 2016年..️月..️..️日 다리 김성룡 다리는 량안에 다리를 걸치고 점잖게 돌로 잠들어 있다 그림자는 다리의 허리띠 붙 잡고 물살에 떠내려 가지 ㅡ 않으려고 하루종일 몸부림 친다 왜냐 사랑이 아직 다리를 채 건너지 않은 까닭... 오늘의 단평 허인    "회남자. 설산천" 《淮南子·说山训) 에 이런 구절이 하나 있다 . (미지소재, 비오욕, 세불능천, 악지소재, 비고륭, 세불능귀)"美之所在,虽污辱,世不能贱;恶之所在,虽高隆,世不能贵"。뜻풀이 해보면 " 아름다운 사물은 아무리 어지러운것에 매몰 되여도 결코 그 가치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추악한것은 아무리 올리 춰 보아야 결코 존귀한 신분으로 바뀔수 없다"인것 같다. 김성룡시인은 기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엽,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동시 창작으로 무척 유명했던 분이다. 흑룡강성 조선어방송국에서 사업하다가 90년대 중엽, 한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획득한후 현재 강소성 소주시에서 의류제조업에 종사, 그런 그가 중문시에 도전하여 현재 시집을 준비중이며 중국당대 문화시대보 등등 국내에서 제일 착지가 굵직하고 영향력이 큰 신문,잡지에 륙속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는줄로 알고 있다.   초기의 그의 중문시 작품들을 살펴보면 짜임새가 너무 좋고 더우기 간결하여 미학의 척도로 극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듯 하여 읽기에 무척 편했고 거기에다 철리적인 관습까지 곁들여 놓아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것일가)하는 의욕심을 충분히 발동하여 끝까지 읽게 하는 그런 마력이 있은것 같다. 반면 너무 깊게 살을 저며 내여 뼈가 다 드러나는듯한 그런 단점도 있는것 같다. 물론 매일 모멘트에 올리는 대부분 작품들이 초고이고보니 그런 오해도 결국 모면키 어려웠던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그런 그가 요즘 큰 작심이라도 한듯이 륙속 내여놓는 수개작은 현란하다 못해 조금 독자들을 당황하게도 만드는것 같다.그만큼 무게감이 늘어났고 황금 비중도 늘어났고 순도가 더 높아 졌다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다리"(桥)의 경우 짧은 단시임에도 불구하고 압운의 철학적인 사물현상을 정중하면서도 이외로 너무나도 단순한 마음의 교묘한 그런 움직임 , 즉 사랑으로 련결시켜 놓아 (너무 아름다워 슬프듯이) 크나큰 공명감을 일으킨것 같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제1련에서 잠 들어버린 돌, 그리고 2련에서 다리의 허리띠 부여잡고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형상, 다음 제 3련에서는 한술 더 깊게 푸욱 떠서 사랑이 오질 않는 한 다리는 결코 다리로 기다려야 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시인이라는 사명감으로 분석하여 한폭의 그림을 독자들의 머리속에 진한 묵향으로 심어놓아 더욱 공명감이 컸던것이 아닐가로 생각된다.    주역 권이(圈二) "겸괘"(谦卦)에 (겸존이광)"谦尊而光"이라는 구절이 하나 있다. 뜻 풀이 해보면 "존귀한 이는 겸손의 덕을 갖춰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우리 말 속담에도 (순금은 불을 겁내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질 않던가? 부족점이라면 시어 배렬에서 길게 늘여놓아 동시적인 그런 경향이 여직 남아 있는것 같다. 매번 통화때마다 술 냄새를 심양에까지 스스럼없이 풍기는 김성룡시인님, 올해 년말에는 꼭 좋은 시집을 선물로 보내주시길 두손 모아 부탁 드립니다. 심양에서 2016년 8월30일 오늘의 단평       김연의 수필은 깔끔해서 읽기가 무척 편하다. 깔끔하다는것은 그만큼 군더더기가 없고 손댈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황향숙의 수필 "당신은 어떤 승냥이에게 먹이를 주는가?"가 철리적인 관성과 본능에 점철된 봉건 례의범절이라는 화자를 비판과 비교를 예리한 메스로  도입하여 결코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작지도 아니 한 큰 감명을 불러 일으켰다면 김연의 "담요를 덮으며"에서는 순수한 감성의 바다속에서 자연을 만나고 숲을 만나고 구름을 만나고 삶을 만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을 만나게 되는듯 하여 줄곧 상큼한 기분속에서 비애같은것은 느낄수가 없고 상큼 발랄한 이미지가 완성이 되여 더욱 행복한 독자가 되여가는 그런 느낌이 드는것 같다. 회남자 설림훈 (淮南子,说林训)이런 구절이 하나 있다.(주복내견선유, 마번내견량어)"舟覆乃见善游,马奔乃见良御", 대개 그 뜻을 풀이해보면 "배가 뒤집혀질때에야 비로소 누가 진짜 수영을 할줄 아는 사람인가 알수를 있고 말이 달릴때에야 비로소 누가 진정한 기수인가를 알수가 있다" 뜻이다. 진정 재주가 있는 사람은 평시에 보아낼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허나 풍운변화, 위급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진면모가 드러나게 된다는 그런 뜻이기도 하다. 필자는 황향숙씨나 김연씨를 그런 부류의 진정 재능을 갖춘 문인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담요를 덮으면서 "에서 "보송보송한 체취","미소가 알른거린다"만져보고 부벼보고" 등등표현은 녀성 특유의 세밀한 관찰과 예리한 감성을 최대한으로 잘 표현한 구절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담요를 덮으며 / 김 연   얼마만인가?  한쪽켠에 곱다라니 개여 두었던 요 아이를 꺼내 보송보송한 그의 속살에서 따뜻한 체취를 느껴본다. 늘 부끄러운듯 두눈을 수줍게 살풋이 내리까는 요 아이, 얼굴에서는 언제나 반가운 미소가 알른거린다. 만져도 보고 부벼도 보고 껴 안아도 보고 아주 잠간 깔고 앉아도 보고ㅡ언제봐도 늘쌍 심성이 부드럽고 고마운 아이다. 또한 마음 구석 한 구석으로는 벌써 요 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계절이 왔나싶어 뭔가 를 잃어버린듯한 느낌에 리유없이 서운해기도 하다.    아직 숲속 나무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숨박곡질 해대는 뭇새들의 노래소리를 채 듣지 못하였는데 , 다이어트하여 예쁜 치마 입고 한껏 멋도 더 부려보고 싶은데, 바닷가 백사장 모래위에 참새같은 내 발자국 톡톡 찍으며 손에는 신발 들고 시원한 파도소리에 묻혀도 보고 싶은데, 지지고 볶고 가사들을 다 챙겨가지고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마음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계곡속의 맑은 물을 찾아 실컷 힐링도 더 하고 싶은데, 어느새 여름은 가버렸다.   가을이 접어든 길목에 서서 아쉽게 여름과 안녕을 부른다. 여름따라 가려고 애써 몸부림치는 파란 나뭇잎에 이 글들을 하나하나 적어 딸려보낸다. 여름아, 네가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어. 내년에 우리 또 만나는거지~ 그리고 가을아,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올해에도 이렇게 찾아줘서 고마워.텅 빈 하늘이 벌써 자박자박 걸어와 솜 사탕같은 바람이며 얼음 사탕같은 구름을 우리들 곁에 부리워 놓는다. 이제 너와 함께 할 시간들에 벌써 마음이 들끓어 오른다. 짧지도 길지도 않게 우리 함께 잘 지내보자 가을아~ 담요, 니가 난 참 좋다... 2016. 8. 28 들 꽃/ 류설화 이름모를 비탈진 바위사이 그리고 논두렁 흙두렁사이 아련한 네 몸짓에 젖어 순간 멈춘 나는 에돌다 다시 널보러 간다 잎아리를 씻어주는 아침이슬로 잎사이를 메워주는 밤달빛으로 네한몸은 끝내 피여나는구나 그러나  어느 지는날 어느 바람이 불면 너는 피기 위해 더 깊이 눕는다 그러면 바람이 너를 일으키리 2016.09.11 오늘의 단평 원고지에 또박또박 제 이름 써가는 녀자 허인    독일이 낳은 저명한 시인 괴테는 (창작은 패러디이다)고 말한적이 있다. 이 말을 두고 몇몇 로 시인들이 맞는 말이네 틀린 말이네 한때 시야비야 한적이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필요 없는 일이였던것 같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은 언제, 어느때도 존재하기때문이다. 만약 초학자일 경우 패러다임이 되고 기성 시인일때 자신만의 개성으로 모방한다면 자기 패러디적이라고 말할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팔자의 경우 작자의 개성쪽을 더 추구하다보니 패러디적인 사고방식을 그닥 제창하지 않는 그런쪽이다. 류설화의 들꽃이 자기 패러디식 작품이다. 회의 참석차 윤동주의 시고 아래 새까맣게 도배해가면서 자기 패러디적인 들꽃을 완성한 류설화씨는 초고 그대로 필자에게, 세상에 떳떳이 내여놓을수 있는 몇 안되는 솔직하고 용기있는 그런 사람인것 같다.  또한 시인의 재주를 타고 난듯이 재능이 있는 그런 젊은 시인으로 보인다. 작자의 거듭되는 수개요청에 여직 확답을 주지 않았던 원인이 곧바로 작자의 자기 패러디적인 정서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던것이였음을 여기서 이제는 밝혀야 할것 같다.그럼 류설화가 그리려고 하는 "들꽃"의 형상은 어떤것이였을가 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이름모를 비탈진 바위사이/그리고 논두렁 흙두렁사이/아련한 네 몸짓에 젖어/순간 멈춘 나는/에서 이름모름이라는 파생어가 들꽃이 아닌 듬직한 바위 앞에 붙어 있어 아련한 네 몸짓에 젖은 나의 사유는 바람과도 같은 형체로써 나의  강경한 태도를 대신하였으며 그러한 명확하게 구분된 사유, 혹은 사상이 있었기에 2련에서 자연스럽게/에돌다 다시/널보러 간다/가 완성된것 같다. 다음 "잎아리"라는 신생용어를 새롭게 창출해낸  녀류시인의 참으로 용기는 칭찬 받을만 신선한것이였다고 말하고싶다. 잎아리냐 이파리냐 고민한 흔적이 력력하지만 필자는 신생용어 창출 역시 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아침이슬과 달빛을 꽃이 피여야 할 비옥한 몇줌의 자양분으로 사용한  작자의 슬기역시 칭찬받아 마땅할것 같다.  /너는 피기 위해 /더 깊이 눕는다/가 이 시의 포인트이며 축의 역활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절묘하고 제대로 간결함의 극치인가?/그러면/바람이 너를 일으키리/로 역시 철리적인 사색을 가다듬어 깔끔하게 마무리하여 시적 여운이 더욱 길어지는듯 하다. 이 시의 장점이 바람과 마음의 상호 력칭관계, 그러하기 때문에 바람이 가는곳을 마음이 따라가 마음으로 느끼고 사색하고 고만하게 하는듯 하다. 깔끔하고 읽기 편한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부족한 점이라면 리좀(시어와 시어를 이음)이 너무 직설적인 "그리고", "그러나", "그러면"으로 되여 있어 읽기가 편한 반면  품위가 일반화 되여 자기 패러디적임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듯 하다. 그리고 짜깁기의 흔적도 보이는것 같다. 한마디로 경험 부족인것 같다. 패러디와 자기 패러디 사이는  단순한 계발이나 모방 차이가 아니고 작자의 독특한 개성을 얼마나 많이 살리냐의 차이점인것 같다. 류설화시인은 아직 무척 젊고 앳돼 보이는데 독창적인 개성작품이 줄줄이 나오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2016.9.14   보슬비(외1수) 김기덕   하늘에도 세탁소가 있나보다 물에 젖은 흰 중고를 세탁하네 간판없이 물 새는 수도꼭지처럼 주르륵 주르륵 비가 내리는 하늘 해가 나면 해살이 걷어갈 이슬방울 다시 지상으로 돌려주는 손들 오늘도 바쁜 하루를 산과 들에 두네 금방 깨어난 어린 생명들을 거느리고 보슬비가 고향을 찾아가나보다 고향이 그리워 나무가지마다 새 편지를 조용히 읽으며 내려오는 들판은 깊은 감격에 푹 젖었다.      산다는 의미    가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길이가 보인다 그 깊이는 보이지 않고 넓이는 어디로 묻혀 있는지 산다는 이미지가 파랗다 산새들이 마을로 내려와 우는 이유를 비우고싶은 숲은 잘 알겠지만 숲으로 지게를 지고 들어가는 한 사나이 멀어 질수록 작아지고 있다 지금 산다는 정의를 읽어보면 다른 세상을 향하여 간다는 이해가 된다 보리밭에 벼짚 사람 속은 비어도 보리고개 넘어가는 진실이 옷을 벗고 있다. 오늘의 단평 허인     솔직히 김기덕시인님의 이번 "보슬비"와 "산다는건"을 읽고서 필자는 깜짝 필자는 놀랐다. 말 그대로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명언이기때문 이였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잡담 모두 제쳐두고 시속으로 직행해보자/하늘에도 세탁소가 있나보다/물에 젖은 흰 중고를 세탁하네/에서 가상적인 서술, 즉 하늘과 세탁소는 시어와 시어사이 리좀(잇기)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만큼 생소한 낱말이 어우러져 돋자들의 눈앞에 펼쳐놓은 그 시각효과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상상력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하늘과 세탁소가 너무나도 강력한 포인트로 독자들의 머리속에 떠오르다 보니 아래 시구에서 /물에 젖은 중고를 세탁하네/는 또한 자연스럽지 않을수가 없다. 이 시는 전부 이렇게 추석에 선물 한쪼각씩 건네주듯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간판없이 물 새는 수도꼭지처럼/에서 수도물꼭지와 /주르륵 주르륵 비가 내리는 하늘/에서 하늘의 미묘한 입맞춤은 마치 신혼부부의 애정행각처럼 상상만으로도 달큼하다. /해가 나면 해살이 걷어갈 이슬방울/에서 이슬방울과/다시 지상으로 돌려주는 손들/금방 깨어난 어린 생명들을 거느리고/보슬비가 고향을 찾아가나보다/에서는 로시인의 로련함과 기발함이 그대로 려과없이 투시되는듯 하다. 결구에서/고향이 그리워 나무가지마다/새 편지를 조용히 읽으며 내려오는/들판은 깊은 감격에 푹 젖었다./에서 젖었다의 황금비중이 어느만큼의 무게인가를 독자들은 상상만으라도 그저 행복할것 같다.   김기덕시인을 흔히 향토파, 전통파 시인으로 평가하는 평론인들이 더러 있는데 필자가 보건대 김기덕시인님은 단순한 향토파, 전통파 시인이 아닌 현대파시인인것 같다. 사유의 혁신에서 그는 언제나 소리없이 앞장서서 이미지 혁신에 꾸준히 심혈을 기울리고 있는듯 싶다. 그러한 끈질긴 노력은 그의 근래 근작시들에서 분명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는것 같다.  솔직히 공간적 시어 배렬이나 시간적 내러티브(narrative)를 중시한다는건 결코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마치 즉흥이 구술형이라면 담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고 자연에 인격을 부여하여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적인 대화를 나눈다는건 얼마나 간거한 작업인지를 진정 시를 쓰고 아끼는 사람만이 그 엄청난 깊이를 알수 있을것 같다. 김기덕시인의 그러한 길이와 너비, 그리고 깊이를 우리는 "산다는건"에서 더욱 똑똑히 찾아볼수 있을것 같다.     /가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길이가 보인다/에서 먼저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확고한 자세가 보이고 생명의 변 두리가 아닌 그 중심에 서서 철학적인 혜안으로 살펴본 "길이"가 먼저 등장한다. 길이가 있으면 넓이도 있기 마련이고 깊이도 있기 마련이다. /그 깊이는 보이지 않고 넓이는 어디로/묻혀 있는지 산다는 이미지가 파랗다/에서 파랗다는 여기서 얼마나 싱싱한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는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듯한 약간 허구프고 진실한 독백으로 이 세상에 던지는 야유로도 보인다. /지금 산다는 정의를 읽어보면 다른 세상을 향하여 간다는 이해가 된다/보리밭에 벼짚 사람 속은 비어도/보리고개 넘어가는 진실이 옷을 벗고 있다./.  이 두수의 시가 세상에 던져주는 멧세지는 무척 힌트적이여서 읽는 사람마다 몇번씩 머리속에 되새겨봐야 할것 같다    부족한점이라면 시어선택이 몇군데 모호하고 그 효과에 의문점을 주고 있는듯 하다. 이를테면 (흰 중고를 세탁한다)에서 중고, 도대체 뭘 말하려는지 조금 희미해 보인다. 다음 "산다는건"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길이와 넓이, 깊이에서 폭력적 조합에서의 맞춰 깁기식이 보이는듯 하고 련결이 다소 생소한 그런 느낌을 주고 있는것 같다."실례로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길이가 보인다'에서 독자들은 '길이 보인다'를 먼저 떠올리게 되여 간혹 오타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듯 하다. 그 다음 시구에서 넓이와 깊이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오해가 풀린다) 아무쪼록 김시인님의 "보슬비"와 "산다는건" 두수의 시는 이 달의 아주 멋지고 좋은 시임을 인정한다. 필자가 알건대 김기덕시인님은 파킨스 병으로 타자가 어려울만큼 병마와 싸우는 중인것으로 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김기덕시인님 건강하시고 좋은 시 더 많이 쓰세요. 2016.9.15 차 (茶)           박춘월 빈 시간에 담백하고 단정한 널 부어 넣을 때가 있다 자정같은 네 속에서 엉켜있던 매듭들 풀려나가는 소리 곱다 한가로움과 평안함의 향기 익어터지는 빈 틈들 한잔의 넌 출렁이는 오아시스여라 화판에 널려있는 잡동사니 뽑아내고 여백의 령토 넓혀가는 네 귓속말 카텐 저쪽은 눈가루 잔잔히 내리는 오붓한 마을이다 풀꽃 가만히 웃고 있는 먼먼 언덕이다 오늘의 단평 그릇에 담아 올린 그윽한 차향기 허인   슈클로프스키는 (예술은 삶의 생동감을 복원하기 위해서 있다. 예술은 우리가 사물을 느끼게 하고 " 돌"은 돌로 느끼게 한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의 생동감을 인식되는대로가 아니고 감지되는대로 느끼게 하는데 있다. 예술의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는데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박춘월시인은 말 그대로 90년대 중엽 현대시의 광풍취우속에서 성장해온 그런 시인이다. 그만큼 그는 오늘까지도 조선족문단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는 그런 뜻이기도 하다.일찍  "록" , "찻잔"등 주옥같은 시들을 문단에 내놓아 시적인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그로 인해 시야비야 시끄러운 일들도 무척 많았던줄로 알고 있다. 필자의 몇번씩이나 되는 원고 독촉에도 어김없이 사양만 거듭하더니 자신의 모멘트에 슬쩍 올려놓은 "차"라는 시를 읽고 필자는 지금 흥분으로 이 글을 쓴다.예술은 예술일때만이 그 독보적인 존재 가치가 있다는 말이 있다. 만사 제쳐두고 우리 함께 시속으로 직행해 보도록 하자. /빈 시간들에/담백하고 단정한 널/부어 넣을 때가 있다/에서 가장 선명하게 눈에 띄이는것은 곧바로 시공을, 공간을 그릇으로 삼은 녀류시인의 로련함 침착성이다. 빈 시간은 공간을 이다. 시인에게 그 공간은 어떠한 모습일가? 상상과 기억의 쪼각들을 퍼즐처럼 주어 맞추노라면 결국 우리들의 감각에 와닿는건 마음의 공간이며 심미적인 효과는 한잔의 차가 배속으로 직행했을때의 그 여유로움이다. 들쑥날쑥한것 같지만 시인이 느낀 차 한잔의 모습은 과연 어떤것이일가?/자정같은 네 속에서/엉켜있던 매듭들/풀려나가는 소리 곱다/에서 자정의 함의는 오감을 죄다 동원하여야 감각으로 느낄수 있는 매듭 풀리는 소리가 곱다ㅡ로 마무리 된다. 여기서 곱다의 비중은 인간세상의 정화작용, 어쩌면 다이어트, 혹은 오래 묵은 체증이라도 말끔히 해소해가듯이 잘 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한가로움과 평안함의 향기 /익어터지는 /빈 틈들/좋은것은 함께 즐기려는 시인의 배려심이 보인다. 한가로움도, 평안함의 향기도 빈틈으로 새여나가 공유할수 있는 그 높이는 놀라웁도록 오아시스와도 같은 파급효과ㅡ즉 /한잔의 넌/ 출렁이는 오아시스여라/에서 잘 나타난다. 결구에서 화판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 여백의 령토 , 귓속말, 카텐 저쪽, 눈가루 ,오붓한 마을, 풀꽃, 먼먼 언덕은 숙련된 언어련금술로 동화같은 화폭에서  애잔한 동경이나 미래, 혹은 회귀본능의 자연섭리를 자연스레 펼쳐 보이는듯 하다.   실재의 언어만으로 씌여진 시는 실재를 아무런 려과없이 보여주려는것이 아니다. 언어로 만들어진 "하나의 비 실재의 세계를 보여주려는것이다".상상력은 단지 실재만을 나타내 주는 거울 같은것으로써 현실로부터 단절하고 력설의 효과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곧바로 상상력의 마력으로 보여진다. 암튼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모자르트의 탈중심속에서의 있음의 미학을 읽는듯 하여 상쾌한 기분이다. 박춘월시인님,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시를 함께 공유합시다 2016.9.17 행복에  대한  생각/유해금       해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모멘트에서  흔히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해자의  시    을  읽을  수  있다.  사실  나도  이  시를  무지  좋아하는데  읽을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건  시에  나타난  해자의  그  소박한  소원들이  오늘을  직시하지  못하고,  모두    ‘내일부터’라는  특정된  시간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해자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느낌에  얼마만큼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일부터’가  아닌  이미  진행중인  매일,  내  가족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돈  벌러  뛰어  다닌다.  그리고  ‘량식과  채소를  관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집  한  채는  바다를  향해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봄날같이  사랑으로  넘치고, 나는  또    매일  모멘트로  자신의  일상속에서  느끼는    잔잔한  행복과    감동을  모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눈다.        나는  언녕부터  모든  강과  모든  산이  다    따뜻한  이름과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세상을  느슨히  바라볼  수  있고  또  푸근히  대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해자가  바라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  그대를  축복하네  /  그대에게  찬란한  앞날이  있기를  바라네  /  그대가  풍진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네’  이런  말들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선이  아닌만큼  살다보면  흔히  생계에  바쁘거나  어떤  목적를  달성하기  위하여  허겁지겁  달려가느라  많은  것을  소홀하게  된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큰일만  이루어  진다면  다른  소소한  것들을  희생하는  것  쯤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가슴이  식어  가고,    주변이  차가워  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된다.              우리  애들도  이제는  훌쩍  커  버려서  내가  늘  입에  달고  있는    라는  말이  남듣기에  어색할  정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애기를  데리고  노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우리  애들  저만  했을  때  난  어떻게  했던가?’하고  생각해  볼  때도  있는데  별로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 하루는  퇴근길에  슈퍼에  들렀다가  은이银耳버섯을  보고    은이연자탕银耳莲子汤을  안  한지도  참  오래다는  생각이  들어  재료를  사가지고  돌아와  끓이기  시작했다.  애들이  저녁자습  끝내고  돌아올  때는  이미  연자탕이  다  되어  온집안에  연자탕향이  그윽할  때였다.      애들은  고중을  다니면서부터  주말말고는  아침밥만  집에서  먹고  점심  저녁은  학교에서  먹는다.  그래서  저녁자습  끝나고  집에  오면  영양보충을  해줄까  싶어서  맛있는  음식을  몇번  준비해  보았었는데  매번  밤에  음식  먹으면  살찐다고  거절당하고  말았다.  아무리  꼬셔도  인생의  제일  아름다운  시절을  뚱보로  살  수  없다며  의지가  견결해서  매번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그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애들은  은이연자탕  냄새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와,  은이연자탕이다!  참  오래간만이다…’     한  공기씩  담아주니  탈없이  받아  먹으며  재잘거렸다.     ‘엄마,  그  때는  왜  이거  자주  끓여줬어?’     ‘사스때문이었나?...’     성격이  덜덜한  아들은  게눈감추듯  후룩후룩  금방  먹어  버리는데,  얌전하고  꽤나  분위기  따지는  딸은  사기숟가락으로  여유작작  홀짝홀짝  마신다.  그  모습은  참  만족스럽고  아름다워서  바라보는  내  마음이  사뭇  즐거웠다. 사실  은이연자탕은  영양은  풍부해도  애들의  입맛에    별로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  매번  이것을  먹일  때마다  예쁜  공기와  사기로  된  탕숟가락같은  것으로  분위기를  잘  짜  주어야만  애들이  거기에  홀려서  먹어  주곤  했다.  그러나  그랬던  것이  이제는  애들의  기억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는가  보다.  마치  내가  옛날의  뽀얗게  김  서린  시골의  주방과  우리엄마가  쪄  주던  하얀  인절미를  그리워하듯이… 천하의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우리  애들이  언제나  꾸김없이  씩씩하게  잘  자라기를  원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나도  애들의  공부성적에  관심이  더  커졌고,  바쁘다는  이유로  은이연자탕같은  소소한  일들을  소홀해  버렸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소소한  일들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잔잔한  감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일을  계획했다거나  리상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핑게로  이런  것들을  다  희생해야  한다는  이유는  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등산을  할  때  만약  산을  오르는  목적이  단순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고,  등산  도중에도  풍경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내쳐  달려만  간다면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높은  산봉우리가  나타나서  한없이  맹랑하거나,  드넓은  땅과  하늘사이에  서서  자신의  묘소함을  한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반면에  열심히  느끼고  즐기며  오르다나면  어느  높이에서든지  우리는  자신이  흘린  매  한방울    땀의  가치를  잘    알수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만큼  만족할  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큰  일을  이루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진주같이  잔잔한  감동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그것들을  모아  꿰매어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의  애수                           류해금 바람이  센  것  같아도  정작  이렇게  바닷가에  나와  보니까  별로  큰  바람이  아니었다.  해변가  벤취에  앉아서  불어오는  바다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저  파도를  보느라니  마음이  무명의  애수에  젖어  오르고  또  웬지  할머니와  엄마  생각이  난다.  30여년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날에  강변에  채소를  씻으러  나가셨다가  이렇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로  머리가  아프시다고  누우신  것이  그  이튿날로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께서는  그때  흘러가는  강물을  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애수에  젖어  계셨을  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그때  분치고  드물게  한자까지  아는  학식이  있는  할머니께서  어떻게  중국에  나오시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어려서  할머니한테  옛말을  해  달라고  많이  조르기는  했어도  이런  일을  여쭈어  본  기억은  없다.  그저  아버지한테서  할머니는  젊었을  때  자유를  위하여  중국에  오게  된  신여성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할머니께서  옛말을  해주시다가  당신이  살던  고향에  대해  이야기  하신  것이  아직도  머리  속에  그림처럼  남아있다.  겨울이면  눈이  꿈결처럼  쌓이는  강원도의  어느  동네,  양지쪽  산비탈의  눈이  녹다가  얼어서  애들이  썰매에  앉아서  엉덩이만  삐뚝하면  멀리까지  미끄러져  갈  수  있어서  미끄럼치기를  하기가  그렇게  좋았다는  그런  고장…   매번  고향  이야기를  하시고  나면  할머니는  망연해지신다.  그리고  한숨을  쉬면서  쓸쓸하게  하시는  말씀이 ‘그  난리  판에  다들  무사했는지?…’이  한마디였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려서  할머니의  애수를  다  알  수  없었다.  광복전에  중국에서  살았으면  하고    찾아  온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을  호랑이같은  시어머니가  무서워서  있으라  말도  못하고  돌려보내고  광복후에는  또  3.8선때문에  가족들의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되버린  그  세월에  할머니의  애수는  그  강물과  같이  세월속에    흐르고  또  흘렀으리라.  엄마,  풍으로  반신불수에  말문까지  막히신  우리  엄마,  그래도  정신만은  흐리지  않고  지탱하고  있는  엄마의  눈빛은  더없이  슬프고  아프다.  나의  생일날에  ‘엄마,  낳아주시고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라고  하면 ‘아니야,    너들이  씩씩하게  잘  커  주고  말썽없이  잘  살아서  내가  고맙다’ 하시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전화를  하면  말  할  수  없다고  전화기를  밀면서  받기를  거부하신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병상에  드러눕는  바람에  그렇게  잘한  공부도  중학교까지밖에  못하고  또  그것이  일생의  한이  되어  억척같이  우리  형제들을  고중,  대학까지  뒤바라지  해주셨다.  그러시고도  지나간  옛날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돈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옛날  애들은  정말  고생하면서  컸어…’ 하고  되러  우리한테  미안해  하셨다. 세월은  그처럼  아름답던  우리  엄마의  얼굴을  주름투성이로  만들어  더는  거울  보기  싫다는  할머니로  되게  하더니  이제는  정력과  기력마저  다  빼앗아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허물만  남겨  두었다.   고향을  두고도  돌아갈  수  없었던  할머니,  생계를  위해  억척같이  살아  오신  엄마,  그들의  애수가  나의  사색에  조수처럼  밀려온다.  나는  정녕  고향이  있는  것일가?  내가  고향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곳에서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뼈  묻기를  거부하시고  화장하여  골회를  강물에  띄우시라  하셨다.  할머니는  어쩌면  강물따라  바다로  이미  당신의  고향을  찾아가셨을지도  모른다.  그  곳에  청춘도  피땀도  다  바치신  우리  엄마  아버지는  정든  땅  버리고  지금  동생  따라  낯선  해변도시로  가셨다.  그래서  내가  고향으로  그리워  해  온  그  곳은  이젠  가야  할  이유조차  사라지고  나의  동년의  추억은  부평초가  되고  말았다.  1년에  고작  한  두  번,  배번  길어야  1주일씩  내가  친정에  갔다올  때마다  말  못하시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고  나는  또  ‘건강하셔야  되요,  다음  설에  또  올게요…’하고  엄마가  한해동안  눈빠지게  기다리실  말  한마디  달랑  남기고  떠나온다.  그러나  매번  크고작은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이  다가올  때면  나는  또  며칠전부터  초조해진다.  종래로  우리에게  오라가라  말씀  없으셔도  외로운  부모님께  내가  어떻게  인사를  드리던지간에  그건  다  빈말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쓴  ‘출세는  고향을  버리는  것이였다’라는  말이  생각나서  더없이  쓸쓸하다.    여직껏  버둥거려  온  것이  고작  고향을  버리는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것이고  부모님  외롭게  만드는  것이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구나  허무할  때도  많다. 나에게는  언제나  친정에  갈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중에  제일  당당한  이유들로는  ‘출근해야  되서’,  ‘애들  공부  바빠서’,  ‘시집에  가야  해서’  …  등등이다.  몸은  언제나  이런저런  사슬에  얽매이고  령혼은  량심의  채찍에  얻어  맞으며  살아가야  하는  여자의  운명,    우리할머니  때나  지금  내  때나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가끔  50이면  지천명이라는  공자의  말에  나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사명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한다.  자식으로,  부모로,  형제로,  안해로,  사회인으로…나는  정녕  내  운명을  제대로  알기나  하며,  제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봄이면 새싹처럼 행복이 돋아나는 녀자 오늘의 단평 허인    한편의 좋은 수필은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공유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고 생각한다. 류해금시인의 수필 "행복에 대한 생각"과 "녀자의 애수"가 곧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류해금시인은 시보다 수필을 더 잘 쓰는것 같다. 시 창작에서 철학적인 사유와 다도의 짙은 향내음이 그의 시에서 주요 골격을 이루긴 하였지만 가끔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뚜렷하게  보인다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헌데 몇번 보내온 수필들을 읽어보노라면 어느사이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공유와 함께 즐기게 된다." 행복에  대한  생각"의 경우 /해마다    꽃피는  봄이  오면  모멘트에서  흔히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해자의  시    (面朝大海,春暖花开)을  읽을  수  있다.  /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하여 애써 끌고 가려는것이 아니라 어느새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나도  이  시를  무지  좋아하는데  읽을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건  시에  나타난  해자의  그  소박한  소원들이  오늘을  직시하지  못하고,  모두    ‘내일부터’라는  특정된  시간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에서 시인 해자와의 공통점 내일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무게있는 화자를 견인해냈다는게 곧바로 이 수필의 성공여부로 된것 같다. 허나 여러가지 차이점도 보이기도 한다.  /  그래서  비록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해자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느낌에  얼마만큼  위안이  되기도  한다. /에서 제  삶을 꿋꿋한 의지 하나로 서슴없이 펼쳐 보이는 작자의  적극적인 갊의 태도는  얼마나 자랑차고 긍지감이 넘치는가? 허나 이 세상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진것이 분명하다. 하요 비교라는 진부한 상식과 함께 발전도 있는것이 아닐가?    /우리  애들도  이제는  훌쩍  커  버려서  내가  늘  입에  달고  있는    라는  말이  남듣기에  어색할  정도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애기를  데리고  노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서  ‘우리  애들  저만  했을  때  난  어떻게  했던가?’하고  생각해  볼  때도  있는데  별로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에서 시작하여 들여다 본 작자의 일상생활은 모험이 아닌 자기반성의 조용한 목소리이며 행복이 된다./하루는  퇴근길에  슈퍼에  들렀다가  은이银耳버섯을  보고    은이연자탕银耳莲子汤을  안  한지도  참  오래다는  생각이  들어  재료를  사가지고  돌아와  끓이기  시작했다.  애들이  저녁자습  끝내고  돌아올  때는  이미  연자탕이  다  되어  온집안에  연자탕향이  그윽할  때였다.      애들은  고중을  다니면서부터  주말말고는  아침밥만  집에서  먹고  점심  저녁은  학교에서  먹는다.  그래서  저녁자습  끝나고  집에  오면  영양보충을  해줄까  싶어서  맛있는  음식을  몇번  준비해  보았었는데  매번  밤에  음식  먹으면  살찐다고  거절당하고  말았다.  아무리  꼬셔도  인생의  제일  아름다운  시절을  뚱보로  살  수  없다며  의지가  견결해서  매번  요지부동이었다. /에서 마지막 결구까지 읽어 보노라면 남자들 눈엔 어쩌면 사소한것 같은 행복 꾸러미가 된다. 그래서 이 수필은 룡머리에 구렁이 꼬리가 아닌 호랑이 꼬리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함께 즐기노라면 희노애락과 함께 달착지근함이 이 수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    솔직히 필자는 /여자의 애수/를   류해금씨의 수작(秀作)으로 치고싶다. 말 그대로 스토리 묶음이며 감동의 물결이 찰랑이는가 하면 말 그대로 바이러스같은 정서적인 감정에 읽는 내내 가슴이 울렁 거리는것 같다. 작중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형상은 나 자신의 삶의 행적을 되돌아 보게 됨에 충분한 리유가 되며 또한 깊은 감동이 되기도 하는것 같다. 인생은 누구의 그림자 아래에서 사는것이 아니라 상호의 거울이 된다. 여자의 애수는 그래서 공명감이 컸던것 같다. 실례로/양지쪽  산비탈의  눈이  녹다가  얼어서  애들이  썰매에  앉아서  엉덩이만  삐뚝하면  멀리까지  미끄러져  갈  수  있어서  미끄럼치기를  하기가  그렇게  좋았다는  그런  고장…/이라는 할머니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라던가 /‘엄마,  낳아주시고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라고  하면 '아니야,    너들이  씩씩하게  잘  커  주고  말썽없이  잘  살아서  내가  고맙다’/라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읽는 내내 감동이 아닐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스로리와 스토리 엮음이 좋았고  이 가을에 부모님 생각해보면서 읽으면 아주 좋은 수필이라고 생각한다.산동 청도문단은 수필 잘 쓰는 분들이 많은것 같다.아마도 장학규씨의 영향을 적잖게 받은것이 아닐가 조심스레 생각한다. 2016년.9.16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네 (외2수)                박은화 산은 저기 있었는데 옛날부터 거기 있었는데 언젠부턴가 불러지기 시작한 이름 산 저쪽의 사람들은 남산이라 우기고 산 이쪽의 사람들은 북산이라 우기네 저 강은 그 강인데 옛날부터 흐르던 그 강인데 저 산을 에돌아 잘만 흐르는데 남산을 흐르면 남강이라 부르고 북산기슭 스쳐가면 북강이 되네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사상 저승과 이승의 만남이 여기서 이뤄지는가 은하교 건너온 늙은 량주를 반기는 "홍동백서","좌포우혜","조률이시" 돼지고기,물고기,제철과일들 제사상앞에 모인이들 차례로 술을 붓고 절한다 "부디 살펴주소서" 한마디씩 건네고 저마다 제사 음식 맛있게 먹는다 이들을 바라보는 액자속의 늙은 량주 두눈에 이슬이 반짝이는가 해빛이 눈에 비쳐와 눈물이 돈다 지나가던 바람이 머물다 하늘로 간다 지금은 한창 음복중인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지개 무지개 하늘에 걸려 일깨워주더라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도 혼자서는 이룰수 없다는걸 무지개 하늘에 걸려 일깨워주더라 세상에서 가장 고운 그림은 서로 어울려 그려진다는걸 무지개 하늘에 걸려 일깨워주더라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가고 오는 다리가 필요하다는걸 무지개 하늘에 걸려 일깨워주더라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오늘의 단평 의식의 흐름속에서 둘러보는 인간세태 허인   의식의 흐름은 마치 강물의 흐름과도 같은것이여서 막을수 조차 없다 . 의식류(意思流)라는 말은 90년대 중엽, 한족문단에서부터 흥행하여 차츰 조선족문단에까지 그 령역을 넓혀 왔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몽롱미를 무척 선호하였던것 같다. 헌데 탤렌트 박은화씨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네" 외 2수는 재밌고 구수하게 이야기식으로 차곡차곡 엮어져 읽기에 무척 편하고 구조주의 립장에 서서 살펴보면 기승전합이 분명하여 울림이 더욱 큰듯 하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부서지는 불확정속 삶의 단편들이야 말로 가장 실사적이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의 말을 빌어 자연스레 자연으로 접근하여 친근함을 이끌어낸 박은화씨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네)에는 어떤 아집의 영악스러움과 관습이 슴배여 있고 지혜와 슬기도 있는지를 다함께 곰곰히 살펴보도록 하자!                 /산은 저기 있었는데 /옛날부터 거기 있었는데/언젠부턴가 불러지기 시작한 이름/산 저쪽의 사람들은 남산이라 우기고/산 이쪽의 사람들은 북산이라 우기네/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인간 위주로의 인식차이에서 오는 아집과 그러한 고집덩어리이다. 산을 민둥산, 혹은 푸른 산, 칼산이라 부른다고 하여 산이 대답하는것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리를 위하여 굳이 남산, 북산으로 이름지어 부르며 옥신각신한다. 이 시의 흐름은  전부 이러하다. 강도 남강, 북강 ㅡ 지나가는 말처럼 서술된 이 한수의 시에 자꾸 눈길이 끌리고 공명감이 커져가는 원인은 무엇때문일가? 필자가 살펴보건대 그건 아무래도 나, 즉 자아가 아닌 제3자의 립장에 서서 실재의 인간세태를 살펴보면서 보고 느낀 그대로 이야기식으로 서술하였기때문이 아닐가 싶다.    (제사상)과 (무지개)의 경우도 같은 실례이다. /저승과 이승의 만남이 /여기서 이뤄지는가/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하였갈래 늙은 량주가 등장할수가 있었고 "홍동백서","좌포우혜", "조률이시"돼지고기,물고기,제철과일들도 등장이 자영스러울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마치 제사차례를 눈에 보아는듯이 묘사한것이 이 시의 특징인것으로 보인다.(무지개)의 경우 눈에 보이는것만 같고 사물의 모든 현상을 판단하지 말라는ㅡ 즉 자연의 륜곽에서 인간적인 사유를 건져 올려놓고서 교훈으로 삼으려는 리정표로 보인다.   십오륙년간 문학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 필자에게 있어서 박은화, 김연, 강려, 등등은 생소한 이름이 아닐수가 없다. 그런 이들의 성숙한 작품을 읽을때면 감회가 새롭고 확 트인 사유에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다. 부족한 점이라면 시인 자체의 창작이 굴곡이 너무 심한것 같다. 좋은 시가 나올때면 이것 정말 박은화가 쓴 시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ㅡ 어떤 시들은 사유의 폭이 너무 좁아 또한 안타까울 정도로ㅡ 암튼 박은화씨 좋은 시 잘 봤고요. 한번 또 한번 좋은 시 많이 쓰세요. 2016.9.19 나의 집은 김철호 나의 집은 서울 도심에 있다 갈래갈래 수만갈래 골목길 중에 대단한구 사소한로 천만호다 지은지 60~70년된 청기와집 안에는 서발 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고 인간 또한 달랑 하나 소외되고 약자인 병들고 늙고 못생긴 나 뿐이다 한들 어떠랴? 내 덕에 내가 먹고 사는 나는 내 노래에 내가 흥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남의 나라에서 쫓겨온 새 한마리처럼 첫 둥지를 틀었을 때는 그까짓 쪽박만한 꿈 하나 때문에 눈만 뜨면 서러웠지만 전기 자격증  따고부터는 나의 집은 비로소 사람 사는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 옛말하기에는 멀었지만 배짱하나만은 두둑하라고 나는 날마다 젊어지는 기분이다 어슬렁 다가온 봄, 나의 집은 내 웃고 사는 모습에 내가 고마워 과연 거꾸로 흐르는 세월에 메달렸나보다... 오늘의 단평 지천명의 고개에서 휘두르는 항변의 용기 허인    김철호시인님의 근작시 "나의 집"은 약소군체를 위한 대변이며 불가항력적인 조롱같은 운명에 대한 무언의 항변으로 보인다. 또한 리산의 아픔과 디아스포라의 영악한 삶을 영위해나갈수 있는 질감이 살아 꿈틀거리는 고독과 향수를 살갗이 아닌 피부로ㅡ 육성이 아닌 감성으로 온몸에 식은 땀이 바질바질 흐르듯이 실감나게 공명으로 인도하는것 같다.모두 잘 알겠지만 김철호시인님은 중국조선족문단의 저명한 동시인이자 현재 국내치고 몇이 안되는 포스트리스트로 생각한다. 수련은 과정이지 결과는 결코 아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수련의 과정이 있었길래 "나의 집"은 리얼을 베이스로 서울ㅡ 즉 고국을 크나 큰 구리종으로,  인간 또한 달랑 나뿐을 ㅡ큰 방망이로 둥둥 두드려 그 공명감이 읽는이들의 가슴을 더욱 트게 울리는듯 하다.제2인생을 허구가 아닌 진실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재한 조선족동포들의 꿈뿐인 참혹한 현지생활을 이처럼 잘 반영한 시를 솔직히 이 시 외에 필자는 아직 본적이 없다. 그럼 잡담 그난두고 다 함께 김철호시인님의 (나의 집)으로 나들이를 다녀와 보자!   /서울 도심에 있다/갈래갈래 수만갈래 골목길 중에/대단한구 사소한로 천만호다/지은지 60~70년된 청기와집 안에는/서발 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고/인간 또한 달랑 하나/여기서 갈래갈래 수만갈래 골목길은ㅡ 인생길이며ㅡ 또한 리얼리즘이 아닌 형상의 비유가 된다. 한마디로 가로 가도 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직접 가본 서울은 상상외로 험악하다. 밝고 아름다운 반면 어두운 곳에서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가?/소외되고 약자인/병들고 늙고 못생긴 나 뿐이다/한들 어떠랴?/내 덕에 내가 먹고 사는 나는/내 노래에 내가 흥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로 생의 의지와 의욕을 재 충전해가는듯한 그런 느낌과 홀로 술상에 마주앉아 맞은편 술잔에다 술을 부어놓고 대작하는듯한 자아위안이 가슴이 뭉클하게 하며 그 다음 /남의 나라에서 쫓겨온 새 한마리처럼/첫 둥지를 틀었을 때는/그까짓 쪽박만한 꿈 하나 때문에 /눈만 뜨면 서러웠지만/에서는 디아스포라들의 자꾸만 가물가물해져 가는 정체성에 불쑥 밝은 전등불을 들이대여 반디불같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듯이/전기 자격증  따고부터는/나의 집은/비로소 사람 사는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로 빈 둥지에 날아든 뻐꾹새의 울음소리에 읽는 사람들을 감동하게도 하는것 같다. 이야기 서술식으로 화자를 이끌어낸 이 시에는 작자의 멘트나 모멘트는 없다. 있다면 객관적인 력설뿐이다. /아직 옛말하기에는 멀었지만/배짱 하나만은 두둑하라고/나는 날마다 젊어지는 기분이다/어슬렁 다가온 봄,/나의 집은/ /내 웃고 사는 모습에 내가 고마워/과연 거꾸로 흐르는 세월에 메달렸나보다.../로 까끔하게 마무리 맺은 제일 마지막 결구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첫 비행에 성공한 새끼제비들의 신난 모습이 아니라 착지에 성공한 개구리들의 더 멀리 뛰기 위한 점프로 보인다. 한수의 시가 독자의 뇌에 전파하는 영향력은 참으로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이 시의 장점은 작자의 정서적이 개괄이 아닌 객관적인 서술 자체이며 부족한 점이라면 서울이라는 무대에 올라 선 나의 형상, 말 그대로 디아스포라들의 진정한 신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아쉬운것 같다. 조선족 동포이라는 특수한 명함을 독자들의 손에 한장씩 쥐여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가 하는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수도 있다. 암튼 오랜만에 김철호시인님의 시 한수에 단평을 붙여 끝마치면서 김철호시인님께 좋은 시 있으시면  함께 공유할것을 부탁 드리고 싶다. 2016.9.17 확인 결과 "나의 집"의 작자는 연변 김철호시인님과는 동명이인임을 알게 되였습니다. 시가 좋아 그냥 이대로 올립니다. 김철호시인님의 량해를 이미 얻었고 다른 분들 역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운 코스모스소녀          맹영수 건강엔 누구도 장담없다더니 그처럼 무병하던 장모가 병원침상에 호구를 붙히게 되였다. 사위도 반자식이라 나는 여러가지 과일과 위문금을 갖고 병실을 노크했다. 비록 편치 않은 몸이긴 했지만 아직은 정신만은 맑은 장모는 눈길이 마주치자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끼치고 더우기는 누구에겐가 간호를 맡긴다는것이 퍽 불안하고 미안스러웠던것이다. 장모는 오금을 변변히 쓰지 못하면서도 기어히 화장실출입만 자신 스스로 하려했다. 이제는 인생의 막고개에 접어들었어도 우리앞에서 장모는 여전히 자신이 녀자란것만은 고집하고있었다.   나는 자주 병문안을 하는것으로써 나의 “부족함”을 메꾸기에 노력했다. 어느날 음식을 사들고 병실에 들어서던 나는 장모의 마준쪽에 왠 소녀가 누워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열서너살되여 보이는 소녀는 눈망울이 퍼그나 컸는데 그 동그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수집음이 골똑 넘쳐있었다. 여느 동년배 아이들같으면 침상에 누워서도 귀에 레시바를 걸고 음악을 감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엄마와 투정이라도 부리려만 소녀는 그냥 조용한 시선으로 벽이나 창밖을 응시하군해서 금방 까난 병아리를 보듯 측은지심이 드는걸 스스로도 주체할수 없었다. 알고보니 소녀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엄마와 함께 살고있었다. 그만큼 일찍  철이 든 소녀는 조용한 환경에 퍽 더 익숙해졌다.   . 나는 병실을 찾을 때마다 소녀에게 과실같은것을 쥐여주고 잡지같은것을 같다주어 소녀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소녀는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살짝 이를 보이면서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웃는 모습이 조용하긴 해도 초롱꽃같아 참으로 보기좋았다. 그때면 나는 네 웃는 모습이 참으로 이뻐서 이다음 연예인이 되였으면 좋겠다고 하면 소녀는 잠간이라도 기분에 들뜨군 했다… 그사이 우리는 부쩍 가까워져서 소녀는 모름지기 무척히도 나를 기다리군했다. 그러나 그냥 그쯤이였다.   어느날 소녀와 나사이에 무언의 담벽이 쌓여졌다. 소녀가 실수를 아니, 내가 무의식중 실수를 했던것이다. 그날 점심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는 소녀의 엄마가 그애에게 속적삼을 바꿔 입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순간이였으나 나는 그애의 하얀 가슴살을 피끗 보게 되였다. 소녀의 얼굴은 무르익은 앵두처럼 막 터질듯 했다. 더불어 눈가엔 금시 이슬같은것이 막 떨어질듯싶었다. 소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갈듯 감히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누워버렸다. 싸늘한 랭기가 병실안을 꽉 채우고있었다. 소녀는 무언의 침묵으로 나에게 항의를 하고있었다. 소녀는 사춘기를 앓고있었고 부끄러움을 타고있었다…결국 싱거운 놈이 되여버린 나는 그날 소녀를 별로 지껄이지 못하고 병실을 나오고말았다.   얼마후 장모가 퇴원하게 되였다. 이제는 소녀와도 마지막 만남이였다. 나는 잡지 두개를 소녀의 침상에 놓고 그 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천천히 물러났다. 링겔을 맞고 있던 그 애는 가볍게 머리를 돌리고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정작 눈길이 마주치자 그 애는 그날처럼 또 나를 정시하지 못하였다. 마치도 자기가 되려 내께 죄라도 진듯 그 모양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소녀는 아직도 그날의 부끄럼에서 철저히 헤여나오지 못하고있었다. 그 순간 문뜩 나의 머리엔 언제 들어도 소박한 코스모스 그 이름이 떠올랐다.    코스모스소녀! 나는 소녀에게 그런 이름을 붙혀주고싶다. 코스모스는 여름과 가을사이에 피는 체격이 훤칠한 꽃으로서 그 색갈도 진분홍,연분홍, 흰색…등으로 아롱다롱하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여느 꽃과 달리 늘 소박하고 수집음을 곧잘 타면서 사람들을 반긴다. 어쩜 소녀야말로 그런 꽃이 아니겠는가?   기실 나는 소녀의 이름은 알아도 학교나 주소마저도 모른다. 허나  몇달이  지나도록 소녀의 그 수집은 모습은 여전히 눈가에 삼삼해서 가슴이 아련하다. 솔직히 모든것이 개방되여 벗을수록 환성이 터지는  요즘 세상에서 소녀처럼 부끄러움과 수집음을 아는 애들이 얼마나 있을가?…   어쩌면 소녀와의 만남은 나에게  감사하고 행운스런 일이다. 그만큼 나를 포함하여 지금 이 세상에서 부끄럼앞에서 진정 당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가?   오-그리운 코스모스소녀여! 오늘의 단평 잔잔한 감동의 하모니 허인   맹영수 수필가의  (그리운 코스모스여)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다. 좌충우돌 거창하고 씩씩한 남자들의 그러한 파워나 파괴력보다 오히려 녀성들보다 더욱 녀성스러운 세심한 관찰이 마치 조리졸졸 흘러가는 천만갈래 시냇물이 모이고 모여 큰 호수를 이루는듯 하다. 아름다운 풍경은 결국 하모니가 되여 무척 흥미로운 감동의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건강엔 누구도 장담 없다더니 그처럼 무병하던 장모가 병원침상에 호구를 붙히게 되였다. 사위도 반자식이라 나는 여러가지 과일과 위문금을 갖고 병실을 노크했다. 비록 편치 않은 몸이긴 했지만 아직은 정신만은 맑은 장모는 눈길이 마주치자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에서 살펴볼수 있는것은 생로병사를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담담한 태도이다. 왜내 하면 작중에서 이미 설명했다싶이 /자식들에게 부담을 끼치고 더우기는 누구에겐가 간호를 맡긴다는것이 퍽 불안하고 미안스러웠던것이다. 장모는 오금을 변변히 쓰지 못하면서도 기어히 화장실출입만 자신 스스로 하려했다./에서 찾아 볼수가 있다 싶이 스스로 추한것을 알고 아무리 자식일지라 하더라도 남녀의 선을 굳이 넘어서려 하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도덕개념이 환자의 머리속에 각인되여 있었기때문이 아닐가 싶다.   그러한 의지와 의력은 결국 병마마저 이겨내게 한다. 만약 여기서 수필이 끝났더라면 이 수필 역시 신변잡기에 불과했을것이다.  허나 작중의 중요한 스토리는 필살기처럼 사춘기 병을 앓고 있는 소녀와의 부지런한 접촉, 그리고 조그마한 오해에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러한 오해는 자연스러운것이며 또한 악의가 아닌 호상의 배려로, 그리고 묵언의 지지로도 받아 들여지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 세상은 더욱 살맛이 나지 않을가도 싶다.     /어느날 음식을 사들고 병실에 들어서던 나는 장모의 마준쪽에 왠 소녀가 누워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열서너살되여 보이는 소녀는 눈망울이 퍼그나 컸는데 그 동그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수집음이 골똑 넘쳐있었다. /에서 시작하여 /소녀와 나사이에 무언의 담벽이 쌓여졌다. 소녀가 실수를 아니, 내가 무의식중 실수를 했던것이다. 그날 점심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는 소녀의 엄마가 그애에게 속적삼을 바꿔 입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순간이였으나 나는 그애의 하얀 가슴살을 피끗 보게 되였다. 소녀의 얼굴은 무르익은 앵두처럼 막 터질듯 했다. 더불어 눈가엔 금시 이슬같은것이 막 떨어 질듯싶었다./에서 찾아볼수 있는것은 누구나 무의식중에 한번쯤 아름다운 실수를 할수 있다는 계시이기도 하며  /얼마후 장모가 퇴원하게 되였다. 이제는 소녀와도 마지막 만남이였다. 나는 잡지 두개를 소녀의 침상에 놓고 그 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천천히 물러났다. 링겔을 맞고 있던 그 애는 가볍게 머리를 돌리고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에서 찾아볼수 있는것은 천진란만한 동심의 움직임이며 이제는 더는 나의것이 아닌 아늑하고 아득한 추억, 그러했기에 작자의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것이 늘 그리운 교정의 코스모스가 아니였을가 생각된다.   사람이 이세상을 살면서 굳이 성이며 이름을 죄다 기억해야 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허나 한오리 또 한오리 스토리들을 글속에 꼬박꼬박 박아넣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준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수필의 경우 아무리 아름다운  경물묘사라 할지라도 스토리가 없고 세심한 심리묘사가 없다면 결국 미사구려로밖에 볼수 없을것으로 보여잔다. 맹영수의 (그리운 코스모스)는 사건의 발단, 발전, 결말이 선명하고 로인과 사춘기를 앓는 소녀의 미묘한 심리묘사를 독특하게 그려내여 공면감이 더욱 큰듯하다. 맹영수님 좋은 수필 잘 봤습니다. 방송국 성철이 형과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쭈욱 좋은 글들을 더 많이 쓰십세요 2016.9.19
235    오늘의 단평 댓글:  조회:2179  추천:4  2016-09-14
오늘의 단평 "변형의 자유"   허인   변형의 자유ㅡ라고 적어놓고 보니 마음에 쏙 드는 글귀가 된것 같다. 변창렬시인을 다정하게 형이라 부를수 있는 속칭 "변형"도 되고 또한 변화의 조짐이나 그러한 형상을 통 털어 일컬을수 있는 변이상학적이 이미지도 되니깐 말이다ㅡ 변창렬시인의 자유의 무변에는 언제나 시인이 속사로 스케치하는 한폭의 민속화ㅡ 즉 우리들이 이 세상을 오손도손ㅡ 대대손손ㅡ 살아가는 모습이 생동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것이 특징이 된다.   "별의 가게"는 시제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자연과 우주를 폭 넓게 우리들의 인생관,  자연관, 우주관을 통 털어 말 그대로 삶의 터전으로 삼고서 별을 장터에 내여놓고 값도 정하여 놓고 팔고 사려 하는 시인의 지극히 완결한 장인정신이 매우 돋보이게 하는 한수의 좋은 시임이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시속의 화자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가게의 난전에 올려놓고 무더운 여름밤에 수박 팔듯이 팔고 계시는 아버지의 익숙하면서도 노련한 장사꾼 형상이다. 왜서 시인의 이러한 구상이 저처럼 스스럼없고 거침없이 가능하였던것일가? 필자가 살펴 보건대 그것은 곧 달관의 경지에 올라선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그러한 특권으로 보여진다.불교에 하늘이 아무리 크고 넓은듯 하나 결국 마음보다 작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상상의 폭도 넓은것이 이 시의 제일 큰 특징이 된다. 다 함께 조심스레 본문을 배우는 마음으로 읽어보도록 하자! /북극성이 간판을 걸었다/아버지는 별을 팔고 계신다/에서는 긴장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더우기 느긋하나 군더더기 한마디 없이 직설적인듯이 은유의 극치로 시작한 시인의 첫 스케치에서 독자들이 자연스레 머리속에 떠올릴수 있는것은 번잡한듯이 번화한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이다. 다만 이렇게 다정다감한 모습이 실생활 우리들의 근처에서 벌어지는것이 아니라 만지면 말랑말랑한 인정이 금방 손에 묻어날듯이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작자는 우리네 인생을 달관의 경지로 우주관에 더욱 큰 무대를 설정하였기에 신비롭고 익숙하고 또한 자연스레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 모은것이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이였던것 같다.그리고 2련에서 /익는족족 팔려 나간다/와 3련에서 /한뼘 밫은 천냥/두팔 빛은 만냥/ 이라는 구체적인 별들의 가격에서 빛을 내려주시는 어버지의 형상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그 모습이 더욱 거룩하심을 우연이 아닌 자각적으로 발견할수가 있다. 절에 부처가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에 부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작자의 천인합일의 인문주의적 사상, 즉 휴머니즘 정신은 더욱 돋보이기도 하다.   ( 포스턴 미국시)를 저술한적이 있는 마자로( Mazzarro)교수는 언어문제에 있어서 모더니즘은 서정시 형식속에서 언어를 다시 만들거나 정화시키는 반면 언어의 타락성과 우연성도 수용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초기의 농경시, 경물시와는 달리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언어련금술을 다루어가는 변시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그야말로 눈부시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오직 나만이 쓸수 있고 오직 내가 써야  완성이 가능한 오늘의 좋은 시 한수 "별의 가게" 오늘도 한국 어디 건설현장에서 사람좋게 웃고 계실 변시인님, 변형ㅡ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2016.9.11 우산 / 김 연 * 누구의것일까 고독과 외로움이 파르르 떨린다 * 저 비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초점 잃은 눈동자들이 파르르 떨려야 할가 * 모른다 모르겠다 오늘은 진짜 모를것 같다 * 고독이 내몸에서 한뼘씩 자란다 * 내 안의 흐느낌소리를 저 어둠속의 귀뚜람소리가 덮어주기엔 더 외로울것 * 우산을 들고 있은들 젖지 않을소냐 마음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 2016.9.10  오늘의 단평 허인   김연의 시는 깔끔하고 항상 마무리가 좋다. 이번에 보내온 "우산"의 경우 자칫하면 군락을 이룬 고독속에서 갈길을 잃고 우왕좌왕 허덕이지나 않을가 읽는 순간 조금 근심스러웠는데 이외로 마지막 련 ㅡ 마무리에서 우산이라는 큰 그릇에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세상을 담고 서서히 시흥이 부풀어 오르는 자신도 담아 공명감이  큰것 같다.    고백시에 속하는 이 시는 작자의 의문도 긍정도,  부정도 해학적으로 풀이해가면서 심층 저변에 깔려 있음직한 심리묘사를 단순히 토로한것이 아니라 색감을 조절해가듯이 어두운것 같지만 발랄하게, 부정적인것 같지만 아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돋보이는것 같다. 한수의 시가 갖는 의미는 이외로 너무나도 크다. 그래서 시인은 시에 미쳐 사는 인생의 고달픈 길을 서슴없이 선택하고 거침없이 혼자라도 걸어가는것이 아닐가?   시어의 선택은 흔히 접사와 부사, 그리고 형용사가 명사의 뒤에 따라붙는 경우가 허다한것 같다. 이 시에서도 곰곰히 살펴보면 /고독과 외로움/뒤에 /파르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다. /눈동자/뒤에 또 /파르르, 그리고 제 3련에서/모른다/모르겠다/오늘은 진짜 모를것 같다/는 참 미묘한 태도표시로써 전번 이 시를 은닉하듯이 처음으로 명확한 태도를 표시하여 오히려 당당한 느낌을 주는듯한 힌트로 보인다. 이러한 교대가 있었길래 고독이 한뼘씩 자라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등장하고 제일 마지막 련에서 /우산을 들고 있은들/젖지 않을소냐/마음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라는 리듬감이 있고 탄탄한 철리적인 구조물에 새롭게 페인트칠을 올려 더욱 생신하게 느껴지는 시어들을 견인해내여 전반 시의 흐름이 조금 어두운듯이 보이지만 곰곰히 수판알 튕겨가며 계산하듯이 따지고 보면 이외로 작자가 세상을 대하는  발랄한 모습이 보이는듯 싶다.     예술가는 경험을 판단하는 재판관도, 삶을 가르치는 훈장도 아니며, 삶과 예술에 담겨 있는 경이로운 불확실성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길잡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환상을 버릴수 있다는 환상도 다른 그 어떤 환상과 마찬가지로 환상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시인이 한수의 시를 세상에 내여놓는 순간 판단은 독자의 몫이 된다. 김연씨의 "우산"은 담담한 가을에 담담하게 읽기 쉬운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 최문수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 말없이 옆에서 지켜주는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눈빛이 좋아서 입니다. 담담한 웃음으로 가득찬 눈빛이 좋아서 입니다.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선량함이 좋아서 입니다. 저보다 남을 더 생각해주는 선량함이 좋아서 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에 무더운 날 서늘한 그늘이 되여주고 싶고 비오는 날 쥐여진 우산이 되여주고 싶고 눈오는 날 따끈한 화로가 되여주고 싶습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 되였습니다. 그대와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의 웃음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였고 자신의 책임을 알게 되였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설레임과 끌림으로 뿌린 종자를 편안함과 선량함으로 싹을 틔우고 믿음과 신임으로 정히 키워서 양보와 인내로 결실을 맺게하는 과정입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나와 나를 사랑하는 그대가 걸어야 할 길은 이제 시작입니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고 한발작 한발작씩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   시를 보내며: 저는 현재 북경의 모 미국IT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있는 최문수 입니다. 2004년 어느날, 홀몸으로 트렁크 하나 끌고 북경역에 내려서 시작된 저의 북경표류(北漂)가 지금 북경에 뿌리를 박고 사랑스런 안해, 귀여운 아들, 존경스러운 부모님, 든든한 동생까지 모두 함께하는 북경생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결혼 10주년을 맞으면서 저와 함께 북경에서 분투해온 사랑하는 안해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단평 최민수는 시인인가? 허인    최민수가 누구이지? 시인인가? 기업인인가? 아니면 샐러리맨? 솔직히 필자도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익숙한 지인의 모멘트에 들어갔다가 이외로 그의 옹달샘처럼 시원 달콤하고 정갈한 사랑시 한수 읽고서 지금 이 글을 쓴다.     60년대 기성의 모더니즘 시학을 해체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또 하나의 대안을 찾았던 시 동인들, 그들이 곧바로 "뉴욕파 시인"들이다. 그러나 올슨의 투사시, 긴수버그의 비트시, 블라이의 심상시는 명쾌한 시적 프로그램ㅡ즉 자신들만의 완정한 시학을 채 갖추지를 못하였다. 공통성의 결여라는 어려움이 있었기때문이였다. 허나 그들이 끈끈히 한시대 어울릴수 있었던 까닭을 필자는 비록 맡은바 분야는 다르지만 호상 상대를 존중하고 호상 배우려는 진지한 태도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말 그대로 최민수는 문단에서 아직 무척 생소한 그런 이름이다. 그런 그의 시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진지한 사랑이야기를 한줄로 엮어 차츰 무르익어 가는 꽃향기에 누구나 콧구멍을 벌름거릴 정도로  시샘이 날만한 시를 써내고 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의 조용함이 좋아서 입니다./에서의 조용함, 다음 2련에서의 눈빛과 웃음, 3련에서의 선량함에 대한 정확한 태도표시를 4련에서/무더운 날 서늘한 그늘이 되여주고 싶고 /비오는 날 쥐여진 우산이 되여주고 싶고/ 눈오는 날 따끈한 화로가 되여주고 싶습니다./로 명확하게 전달한다. 누구나 알고 있다싶이 사랑은 받는것만이 아니고 또한 돌려 줘야 하는것이기에/그대를 사랑하기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 되였습니다./그대와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행복의 웃음이 저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로 받은 것보다 몇배로 돌려주려 하는 작자의 진지한 삶의 태도가 감동의 하모니를 불러 일으키는듯 하다. 순수한 한편의 전통적 고백시에 속하는 이 시는 기승전결에 힘 입어 시의 구조가 뚜렷하고 주제가 더욱 뚜렷한것이 특징이 된다. 부족한 점이라면 전통에 너무 얽매여 새로운 기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이 좀 아쉬운것 같다.   스티븐스의 (삶을 발견하려는 시도)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에 이런 구절이 한 대목 있다. /초록색 장미꽃들이 연기처럼 아련히 식탁에서 떠올랐다. /노란색의 광채를 띠고 부풀어 올랐다. /검은 꽃이 피는 속에서 흰 꽃이 피는 속에서ㅡ/같은 내용일지라도 표현하고저 하는 작자의 심미효과는 무척 다를수 있다는 그런 말이 된다. 암튼 최문수님의 사랑시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강한 사랑의 충동에 빠져 보고싶은 이 느낌은 무엇이지? 최민수는 시인이 맞다. 이처럼 훌륭한 시를 써낼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인이 틀림없으리라 믿는다. 최민수의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이 가을에 읽기 아주 딱 좋은 한수의 좋은 사랑시라고 생각한다. 수필 비를 부탁해/청도 전향미 비가 오려나보다. 쿰쿰한 흙냄새를 앞세우고 땅의 기운이 올라온다. 풀들은 살랑살랑, 나무들은 으쓱으쓱 목을 뺀다. 말라비틀어졌던 공기는 촉촉하게 살아나고, 촐싹대던 먼지는 몸을 잔뜩 움츠린다. 비가 오려나? 쌀뜨물을 확 뿌려놓은듯한 하늘에는 먹구름이 푹 퍼져있다. 비 오기 전 고요함과 어둑어둑함, 낮인지 밤인지 아리송해지는 공간에서, 내 신경세포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날씨가 꾸리꾸리하면 굳어지는 얼굴들 사이로 유독 내 얼굴만 흐물흐물 빛나는거 같아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그러나 내 좋은걸 어찌하리. 툭! 첫 빗방울이 볼을 친다.   비가 오나?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을 본다.   툭툭! 올려 쳐다보는 면상을 제법 친다. 이마를 갈기고 코밑에 콧물처럼 매달린다. 두 뺨에, 관자놀이에, 입가에도 똘랑똘랑 떨어진다. 수분팩이 따로 없고 물안마가 따로 없다. 하늘이 베풀어주는 은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툭툭툭! 빗방울이 흙바닥에 부딪치면 놀란 먼지가 해뜩 까뒤집히며 폴싹 날아오른다. 사람들 발뒤축에서 설치던 먼지도 간만에 흙을 깔고 앉아 목을 추기며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이제 나는 젖을랑 말랑 하는 땅을 밟으며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준 할머니의 풍경을 꺼내든다.     꽃비가 방울방울 내리꽂히며 늘쩡늘쩡 수작을 부릴 즈음이면 할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노래처럼  빗속에 울려 퍼진다. “향미야~ 비 온다. 비 온다! ” “빨리 거둬야겠다.”  타닥 타닥~ 아버지가 땔감으로 베어 말려놓은 풀들사이로 빗방울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다 말라가는데 비꼬치질하네.” 온 동네가 비설거지하느라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는 풍경에는 꼭 할머니가 계셨다. 싸리나무로 만든 발을 둘둘 감고, 널어논 빨래를 걷어들이고, 마른 땔감들을 긴 갈쿠리로 쓱쓱 긁어모은다. 그럴 때면 한참을 내려다보던 먹구름이 맞춤하게 시간을 잡아 쏴~하고 빗줄기를 쏟아붓는다. 기관총 쏘아대듯 따따따따 장독 뚜껑을 두드려대면 할머니는 급기야 아이구야 어이구야 소리질르시며 집안으로 뛰어들어오셨다. 그리고는 그린 듯이 방에 앉아계셨다. 비안개 가득한 앞 논밭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계시는 할머니는 18세 소녀보다 더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나는 그 어디에서도 우리 할머니보다 더 예쁜 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고 감히 지껄이고 싶다. 갸름하고 아담한 얼굴에는 미국 사람처럼 오뚝 솟은 코가 한자리를 크게 차지했고, 머리는 항상 곱게 틀어올려 옆 사람 눈을 찌를 듯 기다란 비녀를 꼽았다. 여덟 살때 민며느리로 시집와서 두만강 건너 만주 땅에 정착한 할머니는 비 오는 날이면 무슨 상념에 잠기시는 걸까? “할매 비 오는게 좋아?” “어. 그래.” 할머니 입속에서 맴도는 소리 분명히 들었다.  개학하여 장춘학교로 떠나는 날 새벽, 짐을 챙기는 나를 바라보면서 할머니는 갑자기 통곡하셨다. “향미야. 너 학교 안 다니면 안 돼? 선생한테 한번 말해보렴.” 그날 길림을 거쳐 장춘으로 가는 길에는 무슨 비인지 모를 비가 오락가락 내렸고, 나는 비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꽤 오래동안 거의 페인이 되어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꽤 오래동안 비 오기전 적막을 무서워했고, 비꼬치질 시작할 때의 그 빗소리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이제 이 불굴의 아줌마는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좋아진다. 인생의 절반을 훌쩍 지나오면서 비가 주는 미학을 느껴가기 시작한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비를 사랑한 할머니처럼 한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소녀 같은 감수성에 젖어 비가 오는 창밖을 넔 잃고 바라보던 할머니, 그러한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쏟아져내리는 비를 넔 잃고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이슬비, 보슬비, 소낙비, 비 소식은 항상 눈에 착착 들어온다. 간혹 오보가 되는 날에는 슬그머니 화가 난다. 비 오는 흉내를 내다가 어정쩡하게 해가 나면 또 화가 난다. 비가 오기나 하려나? 정말 오시려나? 오-이런 날 이런 때에는 그리움에 싹을 틔울 비다운 비나 쏟아져라- 빈다. "비를 부탁해"  오늘의 단평    허인    비 온뒤의 그 청신함을 잘 알고 있는 수필가 전향미씨는 맑은 날이 아닌 비 오는 날마저 녀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즐기려 한다. 지어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거나 회피하려는것이 아니라 깁스가 없고 기스도 아직 나지 않은 아주 순수한 소녀의 마음으로  오히려 간절히 바라기도 하며 즐기려 하는것 같다. 왜서 이처럼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도 같은 컨트롤에  독자들응 끌리듯이 동감이 가는걸가? 가만히 살펴보면 함께 공유할수 있다는 그 상상 하나만으로도 다 함께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후련해지고 싶은 간절한 소망때문이 아닐가 싶다. 마치 흙탕물이 튀여 올라 어지러워 지면 구겨진 옷, 혹은 인생일지라도 깨끗이 빨아 얼키고 설킨 빨래줄에 훌훌 널어 말리우고 싶은 세탁물처럼 다듬이질이 너무 필요한 우리들의 삶의 태도에 공명감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가고 생각도 해본다. 우리네 인생은  알고보면 더하기도 덜기도 아니다. 오직 오늘뿐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진것이 점전 많아지고 추억도 점차 많아지는것은 시실이지만 인간은 태여난 그 순간부터 덜기 인생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생도리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전향미씨의 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독자들은 함께 공유할수도 있고  또한 파편적인 아픈 기억으로 함께 실감할수가 있었던것 같다.그럼 여기서부터 우리 다 함께 전향미씨의 수필 "비를 부탁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쿰쿰(여기서 쿨쿨하다는 표현을 썼으면 더욱 좋을것 같은 느낀)한 흙냄새를 앞세우고 땅의 기운이 올라온다. /풀들은 살랑살랑, 나무들은 으쓱으쓱 목을 뺀다. /말라비틀어졌던 공기는 촉촉하게 살아나고, /촐싹대던 먼지는 몸을 잔뜩 움츠린다. /비가 오려나?/ 이러한 표현들은 너무 좋아 보인다./툭! 첫 빗방울이 볼을 친다.  / 비가 오나?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을 본다.  / 툭툭! 올려 쳐다보는 면상을 제법 친다. /이마를 갈기고 코밑에 콧물처럼 매달린다./ 두 뺨에, 관자놀이에, 입가에도 똘랑똘랑 떨어진다./ 수분팩이 따로 없고 물안마가 따로 없다./ 하늘이 베풀어주는 은총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이러한 구체적인 서술묘사에서는 순리를 거슬리려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기려는 작자의 성숙된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듯 하다./이제 나는 젖을랑 말랑 하는 땅을 밟으며 /가슴 한편에 고이 간직해준 할머니의 풍경을 꺼내든다. /짜깁기식이 아닌 작자의 이런 아주 자연스런 표현은 독자들을 할머니와 나, 그리고 아버지의 세계로 단번에 끌어들여 추억의 한 자락에 돛자리를 정히 펴놓은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향미야~ 비 온다. 비 온다! ”/“빨리 거둬야겠다.”  /에서부터 시작된 동년의 파아란 기억이 비를 기다리게 되는 작자의 가장 기본적인 스토리로 되고 있는듯 하다.    한마디로 전향미의 수필  "비를 부탁해"는 물질문명의 충격으로 인정이 차츰 말라가는 요즘 시대 추억과 더불어 읽어볼만한 좋은 수필이라고 생각된다. 부족한 점이라면 거의 절반 정도 경물묘사에 치우치다 보니 할머니의 갑작스런 사망을 너무 간결하게 묘사하게 충격이 독자들에게 진한 아픔으로 잘 전달되지 않은듯 하다. 백문불여 일견이라고 한번쯤 읽어보고 함께 토의하여도 괜찮을 상 싶다. 전향미님, 더욱 좋은 글을 더 많이 쓰세요. 2016. 9.12 오늘의 단평 동시인 강려 허인    동시인 강려씨는 몸이 좀 불편한줄로 안다. 그러한 그의 시적인 구상과 순발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간혹 누가 즉석에서 즉흥시 한수라도 읊을라 치면 그 자리에서 계발을 받고 깔끔한 동시를 척척 만들어내는 그런 재주가 있는것 같다. 실지로 며칠전 필자의 "악어의 눈물"이라는 시를 보고 단숨에 적어보낸 그의 "악어의 소리"라는 동시를 여기서 잠간 올려놓고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악어소리 / 강려 무엇에 놀랐니 왜 놀랐니 악ㅡ 악ㅡ    잡음 하나 없는 맑은 라디오 소리가 귓가에 챙챙하게 들려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산들바람이 딲아놓은 가을 하늘처럼 깨끗해 보인다. 깔끔하면서도 여운이 큰것이 이 동시의 가장 큰 특징인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동시를 필자는 아직 써본적이 없다. 허나 시적인 운률이나 률동, 그리고 리듬감이나 울림이 남겨주는 여운은 성인시와 별반 다름이 없는것으로 보여진다. 제일 중요한것이 동심을 사로잡고 누구나 입에 쉽게 올릴수 있고 암기할수 있는 그런것이 동시가 아닐가 싶다. 이 방면에서 필자는 누가 뭐라해도 김철호, 림금산, 그리고 현재 소주에서 복장공장을 운영하고 있눈 김성룡씨를 첫손에 꼽고싶다. 그럼 여기서 다 함께 강려씨의 근작시들을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나비 (외 2수 )  / 강려     들꽃이 개여놓은 하얀 이불에 하늘 층계 도 르 르   바람이 노란 필통 살짝 열면 햇살같은 연필이 도 르 르     실국화     요기에선 노란 수세미 ( 清洁球) 꼬불꼬불     조기에선 노란 라면이 꾸불꾸불     이슬     빨강 노랑 하양 눈귀에 눈꼽재 방울 방울 매달렸네     봄바람이 꽃 잎 으 로 솔솔 닦아주네     한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선경과도 같은 절경이라 말을 해야 할것 같다. 말 그대로 작자의  창의력에 감탄이 나올뿐이다. 아직도 동심이 파릇파릇 싹 트고 있는 시인의 순진하고 해맑은 세상에서 불쑥 눈망울이 올롱한 사슴 한마리 만난듯이 동시를 읽으면서 함께 가슴 벅천 그런 느낌이 스며든다.들꽃, 하늘 층계, 그리고 실국화에서 꼬불꼬불과 꾸불꾸불은 완벽하리만치 나비와 실국화의 형상을 읽는이들의 눈앞에 재현하여 한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마주섰을때의 진한 감동과 공명감을 독자들에게 한꺼번에 선물하는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부족한 점이라면 김철호시인님의 "줄말"이나 "경비원 아저씨"처럼 인성화가 완성된 신선한 충격이 아직은 약해 보이는듯하다. 암튼 많지 않은 동시인중 강려씨의 동시는 항상 자신만의 특색이 있는것만은 분명하다. 첫술에 배 부를수는 없다. 강려씨 더 좋은 동시 더 많이 창작하여 중국 조선족문단을 짊어지고 나갈 동시인이 되세요. 2016. 9.12 수필 담담해지고 싶다  (광동) 김금단   요즘 들어 웬지 담담한것들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담담히 하늘을 맴돌고있는 하얀 구름, 담담한 향기를 뿜는 계화꽃 향기, 담담한 미소…담담한것들을 보노라면 나도 웬지 담담해지고싶다.   엘리베이터안에서 전자감응 부위에 손을 내밀어 엘리베이터를 안전하게 탈수 있도록 하는 그 담담한 동작 하나에 타인을 배려하는 이웃의 너그러운 마음이 엿보인다.   부엌에서 행주치마를 두른 엄마의 담담한 모습에는 한 가정의 음식과 건강을 챙기는 엄마의 정성이 엿보인다.   남편의 손이 내 손을 잡아줄 때 나의 오른손이 왼손을 잡는것처럼 담담하게 느껴지는것은 남편과 내가 둘 아닌 일심일체가 되였다는 뜻이다.   어렸을적 새옷을 사입은 기억이 나에겐 별로 없다. 언니에게는 늘 새옷이 차례졌지만 둘째인 나는 항상 언니에게서 옷을 물려 입었고 내가 물려 입은 옷은 대물림 보배마냥 동생들에게로 물려졌다. 나의 동년은 언제나 날고 색이 바랜 옷들이 나를 동반하였다. 그 세월이 비록 빨강, 노랑, 파랑, 분홍, 연두빛이 아닌 색바랜 담담한 나날들의 지속이였지만 집안에는 봄 아지랑이마냥 웃음이 가물가물 피여올랐다.   현시대는 동년과 달리 물질이 란무하는 풍요로운 시대다. 견물생심이라고 이쁜 옷을 보면 사입고 싶은것은 누구나가 가질수 있는 마음이 아닐가. 욕심, 사치, 허영, 진실, 용기, 어리석은 거짓말, 아첨 등 단어를 떠올리는 안데르쎈의 동화 "황제의 새옷",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의 모습을 꼬집어서 보여주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 새옷을 입기 좋아하는 인간의 천성을 그대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딸애가 유치원을 다닐 때인 다섯살적 일로 기억된다. 어느 한번 명절을 앞두고 일찍 유치원에 딸애를 데리러 갔을 때 마침 정장에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마침 아들을 데리러 왔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아저씨는 너무나 품위 있어보이고 멋졌다. 딸애가 그 아저씨를 보더니 나를 잡아당기면서 내 귀에 대고 귀속말로“엄마, 나 저 아저씨랑 결혼할래.”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딸애의 눈에도 그 아저씨가 너무나 멋져보였던 모양이다. 옷이 날개란 말을 그대로 보여준 한단락 이야기다.   아빠트 1-3층에 백화점이 입주해있다보니 소금 한봉지를 사러 내려갈 때도 있고 무우 한뿌리를 사러 내려갈 때도 있다. 편리하다보니 자주 드나들게 된다. 백화점안에 발을 디디면 명품 가방이며 명품 신발, 명품 옷들이 눈길만 주어도 나를 향해 손짓하며 유혹한다. 특히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같은 구두며, 마네킹에 이쁘게 입혀진 연한 색상 계렬의 원피스며 블라우스며 자연스레 조화된 멋진 디자인의 이쁜 옷들은 더욱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인가? 아니면 적당한 크기가 없어서인가? 그 어느쪽이든 백화점의 그 진한 명품 유혹에 빠져들기 전에 내가 담담해지고 마음을 비울수 있는것은 우리 집 옷장과 신발장에 명품 옷과 명품 신발들이 가득 차면 그만큼 남편의 어깨가 무거워진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진한 유혹에 담담해지는것이 내 가정을 지키는 비결임을 난 잘 알고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나는 명품 아닌 “못난 옷”을 입고 나의 가정을 지키련다.   한달전에 남편은 한국에서 나와 딸이 입을 옷을 20여견지 부쳐왔다. 한동안은 입을만한 옷들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주 더 필요한 옷이 없는가 하고 문의한다. 나에겐 필요한 몇컬레의 옷만 있으면 된다. 날마다 새옷을 바꿔입는다 해도 그건 잠깐의 기쁨이지 행복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거절한다.   남편이 급여를 남들보다 많게 받든 적게 받든 나는 종래로 남들과 비교한적이 없다. 욕심을 버리고 담담해져야만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 마음이 편해져야만 가정도 편해지기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부는 부엌아궁이의 석탄불처럼 처음에는 뜨거운 사랑으로 활활 불타오르다가 나중에 오른손이 왼손을 잡는 담담한 느낌으로 인생의 기나긴 려정을 함께 걸어가는 삶의 동반자다. 담담한 느낌으로 서로 이마의 늘어나는 주름살도 보면서, 한올 두올 늘어나는 흰머리도 보면서 인생을 수놓아가는것이 행복이 아닐가.   얼마전 신문에서 비오는 날 교통사고로 길가에 쓰러진 할머니에게 우산을 받쳐 비를 막아주면서 구급차를 기다린 9살 어린이의 이야기를 실은 기사를 본적이 있다. 갈수록 살벌하고 인정이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9살 어린이는 여린 손으로 담담하게 우산을 들어 온 세상에 훈훈한 사랑을 과시하였다.   빈손으로 태여났다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면서 인간은 남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바줄에 목매여 의기소침해지고 기쁨을 상실하며 세상살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타인과의 무의미한 비교, 완전완미하게 살아보겠다는 덫이 행복을 야금야금 좀 먹고있음을 망각하고있는것 같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것은 신기하다고 하고 싫어하는것은 썩었다고 한다. 그러나 썩은것이 다시 변하여 신기한것이 되고 신기한것이 변하여 썩은것이 된다.”는 장자의 말처럼 세상에는 어쩌면 영원한 진리나 진실은 없는것 같다. 내가 오늘 굳게 믿는 신념이 래일에는 허영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늘의 모든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욕심을 버리고 담담하게 살아야만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갈수 있는것이 아닐가.   비록 사치스런 소비가 없고 큰일을 해내지 못했고 뭔가 남들보다 부족해도 마시는 물처럼 담담한것이 생활이고 또 행복인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할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단평     김금단의 수필은 말 그대로 담담하다. 담담하다 못해 조금 지루할 정도로ㅡ 헌데 읽다보면 애써 담담해지려는 작자의 노력이 더욱 가상하게 느껴지며 수풀을 이룬 물방울들의 즐거운 환성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단지 둘째라는 피면치 못할 리유에서 오는 피해의식은 평생을 가는가 보다. 어려서 부터 언니의 퇴물림 옷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이 세상의 알록달록 고운 색깔에 둔감한척 너무 민감한 자신의 본능을 일깨워 가며 현시대의 금전만능, 물질주의 현상에 슬며시 비판의 자대를 대여도 보고 담담해져야 하는 리유를 독특한 개인의식으로 설파하려는 김금단씨ㅡ 그래서 독자들도 담담한 기분으로 차 한잔에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드는듯 하다.    수필의 매력은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자유분방한 필치, 울림이 있고 재차 울림이 더 있고 예상치 못한 파멸 효과, 즉 일반적인 인식에 관한 파괴력이 있어야 공명감이 큰것으로 짐작된다. 이 방면에서 청도 장학규형의 (인성을 석방하라), (머리 잃은 곤혹)을 필자는 비교적 높은 좀수를 주고 싶다. 제목이 시사하는바와 같이 울림이 크기때문이다. 마치 읽기도전에 제목만 보고서도 공명감이 산생하는 그렁 마력적인 파급효과가 있기때문이 아니였을가 필자 너름대로 생각해본다. 솔직히 김금단 님의 담담하고싶다는 그런 공명감이 좀 많이 약해 보인다.    허나 깔끔한 문필이 성숙한 작자의 운치를 한결 돋보이게 하는듯 하다. 어디 한구석도 빈틈이 없이 자신의 넓은 세상을 비교로, 대조로 밝은 해빛으로 꽉 채워 보려하는 진보적인 인생모습, 그리고 잘 짜여진 인생극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듯한 한결 완숙한 녀인의 세계에서 작자의 일상 생활이 두눈에 또렷이 보이는것이 특장이라 해야 할것 같다. 공자는 일찍 논어에서 배움은 끝이 없다고 말을 한적이 있다. 김금단씨 덕분에 수필 잘 읽었구요, 좋은 글 더 많이 쓰세요
234    오늘에 살자 댓글:  조회:870  추천:1  2016-09-14
오늘에 살자 허창렬 내가 한묶음의 꽃을 당신의 넓은 가슴에 안겨 주었을때 그 꽃 향기를 제일 먼저 맡을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였다 내가 저주의 흙덩이를 님의 먼 발치에 꺼리낌 없이 쥐여 뿌렸을때 제일 먼저 어지러워 지는것 역시 나 자신의 두 손이였다!   오늘도 하루종일 누군가를 흠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높이 우러러 쳐다볼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이 가슴이 울먹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허나ㅡ 불의에 맞서 그렇게 다 이겨놓고서도 결국 인정앞에 다시금 두 무릎 털썩 꿇어야 한다는건 또한 얼마나 비감한 일이였던가? 누가 지는것이야 말로 진정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 말을 했던가? 알고서도 모르는 척 살아야 했던 지난 30년, 모르면서도 아는 척 살아야 했던 지난 30년은 죽고 싶도록이 불행하게 행복한 운명의 장난이였다 오늘에 살자! 이제 단 하루 더 살지라도ㅡ 나다운 나가 되여 너다운 너와 함께 마침내 우리가 되여 손에 그 손을 잡자! 이리 흔들리고 저리 또 넘어지고 여기서 부딪치고 저기서 생긴 상처 두손을 홀홀 불어가며 아파하면서라도 무한의 영속성속에 어둠은 걷히고 새날은 까아맣게 밝아 오려니ㅡ 래일은 오늘도 우리들이 마음껏 지껄일수 있는 희망 사항일뿐ㅡ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으니 분함도 ㅡ억울함도ㅡ 저주도ㅡ 분노도ㅡ 죄다 잊고 우리 지금이라도 오늘에 살자! 비 내리면 찬비속에 눈이 내리면 또 눈보라속에 단 한번도 고장이 없는 저 세월을 지느러미 하나로 평행 유지해가면서라도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오늘에 살자!ㅡ 억만년이 지난후 우리들 삶의 흔적이야 보이던지 말던지 죽으러 온 세상 죽기전까지 래일을 희망으로 그렇게 살자! 난 불행하게도 너와 함께라면 오늘도 하루종일 너무 행복하다... 라일락 꽃 향기 꽃살이 하르르 쏟아져 내리는 이 가을 벤취에 앉아 손목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 한잔씩 풀어 커피잔에 나란히 담아들고 무심한 저 세월을 이제는 홀짝홀짝 마셔버리고 싶다 둘이 만나 결국 하나가 되여 가듯이 즐거운 천국의 부름에 울먹울먹 목이 꺼억 메이도록 행복한 날은 꽃밭을 살금살금 걸어 어디론가 또다시 떠나가는 너의 모습에서 젊은 꽃향기라도 킁킁 맡아 보고싶다 숲이 수풀속에 점잖게 들어앉아 여름의 꽃잎 점잖게 세여보는 이 가을은 수줍을 잘 타는 산들바람이라도 이제는 만나 보고 싶다 내 생의 빈 둥지일지 몰라도 항상 나보다 그 정성이 너무 알뜰한 너를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다
233    하늘이 높은 까닭 댓글:  조회:1027  추천:0  2016-08-21
하늘이 높은 까닭 새 소리 따라 숲속 깊숙히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머리 풀어 헤친  휘파람소리 깡충깡충 마중한다 아직도 살아 팔딱이는 맑은 계곡물에  슬쩍 발을 잠그면 심장마저 꽁꽁 얼어 붙었던 천년바위가  어흐흥 ㅡ 어흐흥 ㅡ 건가래 떼며 잠이서 깨여 난다 심안을 활짝 열고 자연과 긴 대화를 시작하면 스킨십을 피해 가난뱅이 젊음이 바지가랑이 사이를 슬쩍 빠져 나와  아카시아나무 그늘아래에서 또 반나절 기도를 시작한다. 하늘이 높은 까닭은 우리들의 눈이 이마 그 아래 있기때문ㅡ 내려다 보면 구름은 소 발자국 고인 물에서도  조용히 뜬다... 하늘에 깔려 1 어저께 였던가 하루종일 쨍하니 해가 뜨고  콧소리ㅡ 쟁쟁하더니 그저께 였던가 하루종일  바람이 불고 폭우가 휘 몰아치더니 오늘은  삭신이 노긋하도록 찌물쿠고 벌레들도 잠시  종적을 감춘 무더운 날씨ㅡ 나는 어딘가에  기대고싶어 하늘아래 담장아래 한포기 풀로  꿋꿋이  일어 선다! 내가 아파 네가 웃고 네가 아파 내가 웃을수 있는 이 세상 야박한 인심이라면 나는 이제 휘우듬한  저기 저 산기슭 길섶에  두 무릎을 털썩 꿇고 들어 앉아 멍이 든 세월의 피리 목메여 불어보리! 아무도 없는 이 들판 또 어딘가에 곱게  피여 있을 이름 모를 꽃 한송이에  못 다한 사랑도 전해주리! 충성에 눈이 먼 푸른 종소리 래일은 또 누구의  가슴 설레이게 하려는지? 백년도 채 못 사는  우리네 인생, 맨손, 맨발로 그대로 하늘에 깔려서라도 잠시 몸부림 쳐보자! 발버둥 쳐보자! 나는 장승이 아닌 목석을 닮아 가리! 하늘에 깔려 2 하늘에 깔려  풀이 된다! 나무가 된다! 구름이 된다! 바람이 된다! 물처럼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납죽 엎드려 흐억ㅡ흐억 ㅡ 흐느껴 울다가도 통뼈 가진 뭇산처럼 제야에 벌떡벌떡 일어선다 일년 삼백륙십오일 즐거운 날은  정말 즐거운 날이다! 일년 삼백륙십오일 슬픈 날은  정말 슬픈 날이다! 갈곳이 없는 날이면 나는 두눈을 꾹 감고 맨살로 땅바닥에 해빛으로  슬쩍 내려 앉는다... 바람 3 달ㅡ달ㅡ 볶아대다가 들ㅡ들ㅡ 볶아대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또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 버리겠지! 사품치며 흐르는 내 고향 강 기슭에  한그루ㅡㅡ  버드나무로 우뚝 섰다가 가슴을 쾅쾅 치며  또 한번 엉엉 소리 내여  울어도 버리겠지! 아직 아무런 준비조차 채 안됐는데ㅡ 낯익은 사람들을 이끌고 저기 터벅터벅  걸어 오는 세월속엔 삼베옷 곱게 차려입으신 울 엄마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232    完达山上 댓글:  조회:1045  추천:0  2016-08-21
完达山上 走到半山腰 云,逐渐停住了脚步。 风,坐在树梢上 念着菩萨心咒 海鸥,你在哪里? 快把我的一切烦恼带走吧! 这里有血缘之河, 这里依然有含情脉脉。 完达山,你 为什么叫完达山? 松花江,你 为什么叫松花江? 我走到半山腰 轻轻坐在了青岩之上, 左听右听,都是 熟悉的鸟儿声。 我,每次独自行走在大兴安岭 总感觉莫名奇妙的不安 和一些兴奋。那是 因为,我是土生土长的 黑龙江人!!
231    무지개 싣고 황금마차 달린다 댓글:  조회:1040  추천:2  2016-08-21
무지개 싣고 황금마차 달린다 작가 인상기 허인   박일형의 어렸을적 이름이 박태완이다.  박일형을 알기 썩 이전에 필자는 기실 일찍 (술 두병)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흑룡강신문 진갈래부간에 발표한적이 있는 박일형의 친아우 박태빈씨와 먼저 인연이 닿았던것 같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80-90년대 가목사시 주재기자ㅡ후에는 흑룡강신문사 고급편집, 부총편집, 현재 흑룡강신문사 론설위원으로  사업하고 있는 벽소설계의 태두, 고급 엘리트를 지금까지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필자로서는 박일형을 작가로서나 선배,  형으로서나 모두 인정한다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필자가 보건대 작가로서의 박일형은 언제나 리성적이고 인간으로서의 박일형은 인정이 깊고 무척 다정다감한 그런 분이시다. 솔직히 필자는 작가로서의 박일형과 인간으로서의 박일형을 모두 좋아 한다.유태인 인생 지혜편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 서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람을 욕하거나 책망하지 말라. 거짓말쟁이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벌은 그가 진실을 말 했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 자기를 칭찬하게 해도 좋으나 자기입으로 자기를 칭찬하지 말라!) 모두어 해석해보면 공자의 중용(中庸)사상에 가까움을 우리는 알수가 있다. 오래동안 소식이 끊겨 련락조차 없던 차에 친구의 모멘트에서부터 대화가 시작이 되여 어저께 박일형이 두툼한 벽소설집 ( 얼굴없는 녀자)를 우편으로 보내왔고 필자는 지금 흥분으로 이 글을 쓴다. 개념의 철학 ㅡ 캉길럼의 종자적 역할    머리글에서 평론가 김몽선생은 (벽소설계의 "왕관" 아직도 박일의것")이라고 썼다. 왜서 박일형의 작가적 위치가 어제 오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한결 두터워질수가 그 원인을 필자는 개념적인 철학, 그리고 캉길럼의 종자적 역할에서 찾아 보려 한다. (공개재판)에서 남궁호, 리말숙 부부의 리혼판결은 진 법정이 아닌 살구꽃 마을 촌사무소에서 진행이 된다. 남궁호의 동생인 남궁진장과 법관, 촌장 그리고 지서, 마을 사람들 ㅡ 개념이상으로 상식의 그릇을 시원히 깨여버린 이런 황당한 장소 설정에 독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하고 당황하기도 하지만 법관이 묻는 리혼 사유에서부터 그러한 의혹은 곧바로 말끔하게 가셔진다. 남궁호의 리혼 사유는 기껏해야 잔 소리를 바가지로 긁어대고 돈을 함부로 못 쓰게 한다는것, 이에 맞서는 리말숙의 리혼 사유는 그야말로 기하학적인 수학문제보다 그 답이 더욱 명쾌하다. 그럼 여기서 그녀의  리혼사유를 다 함께 살펴 보도록 하자!  (여러분, 저 길 건너 동쪽으로 보이는 첫집이 우리 집이래요. 저 뜨락의 남새밭을 좀 보세요! 저게 어디 남새밭인가요? 쑥대밭이지...돈은 한푼도 벌지 않고 구멍난 항아리처럼 쓰기만 하지. 게을러 빠져서 농촌에 살면서 여름철에 풋고추, 풋마늘마저 사 먹는 이런 량반하고 어떻게 같이 삽니까?)  두팔을 내 젓는 말숙이는 도리머리를 달달떤다.  (남편이 어떻게 돈을 망탕 쓰는지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시죠?) ( 우리 집 논이 3 헥타르나 되여요. 그 논을 한족사람에게 양도하였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해마다 3만원이 되여요. 이 량반이 그것만 쓴다면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제가 한국에서 딸애 학비와 시어머니 양로비용을 대주는밖에 해마다 남편한테 2만원씩 보내주었어요. 어린 아이 젖을 달라 보채듯이 전화만 하면 돈타령이니 할수 없어서 보냈죠. 그 돈을 술 마시고 마작 노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돌아오니 갈매기 음식점에서 빚 문서를 들고 찾아왔더군요. 이 량반이 최근 2년사이 음식점에 빚진 돈이 얼만지 아세요? 8000원하고 꼬리가 달려요...) 말숙이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장 꺼낸다. (제가 한국에서 부쳐 보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가고 따졌더니 이 량반이 이런 종이 한장 내놓은거래요. 변소청소 매달 2번, 매차 30원 혹은 50원...제가 왜 어떤 때에는 30원이고 어떤 때에는 50원이냐고 물었더니 겨울에는 30원이고 여름에는 50원...글쎄 겨울철 변소청소는 곡괭이 몇번 휘두르면 될일인데... 그 다음 울바자...)     이때다 안해와 얼마쯤 사이두고 앉았던 남편이 몸을 날려 안해가 들고 있던 종이를 후닥닥 나꿔챈다. 마치영화에서 지하공작자가 비밀 암호를 적은 메모지를 입에 넣고 삼켜버리듯이 볼이 미여지게 우물 우물 씹는것이였다... (얼굴없는 녀인)속의 절대 부분 소설이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쳐 상식의 한계를 훌쩍 뛰여넘는다. 바슐라르가 왕성한 활력으로 가득한 농부같은 사람이라면 캉길럼은 강한 내적 긴장감을 지닌 수도승같이 유머적이고 엄숙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해서 필자는 박일형의 많은 작품을 캉길럼의 종자적 역할로 분석하고 싶다 인식론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그 답변   야콥슨이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것이 레비 스트로스와의 만남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다 벽소설에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읽어보기까지는 아마도 박일형때문이 아닐가 싶다. 카바예스가 소망했던 개념의 철학에서 미셜 세르는 (신화는 지식으로 가득하고 지식은 꿈과 환상으로 가득하다)고 말한적이 있다. "사랑 가정 이야기 ",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 이야기", "유머 풍자 이야기 "속에 실린 46편의 짧은 벽소설, 그중에서 필자는 살아가는 이야기편의 " 눈 먼 개"와 유머 풍자편의 "장가 잘 가는 달수"를 압권으로 친다." 눈 먼 개"의 경우 어떤 못된 인간의 극악무도한 못된 짓으로 두 눈이 멀어버린 개와 독거로인이여서는 아니 될 떡할머니와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책임감마저 회피하고 아주 리기적인 그의 아들 며느리와 손녀의 이야기, 그리고 반전의 주인공인 마을사람들의 아름다운 소행에서 독자들은 다소 무거운 가슴을 쓸어 내리게도 되며 인간으로서는 최소한 해서는 아니될 그의 아들과 며느리, 손녀의 야비한 소행에서 우리는 현대적인 그 답변에 대한 사고를 깊숙히 하게 되며 반성도 하게 되는듯 싶다. " 장가 잘 간 달수"의 경우ㅡ 우리들의 관념적인 인식론을 사정없이 뒤엎어버리는 달수의 그 어이 없는 모습에 다소  불안하고 의아하다가도 불쑥 부려움도 이끌어 내여 화제로 삼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또한 당황한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작자가 고중 다닐때 달수는 장가 가고 작자가 장가 갈때 ( 자식, 조금만 더 기다리지? 내가 너의 장인이 돼 줄수 있을텐데 ㅡ ) 하는 달수, 그리고 자신의 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배도 불룩하게 만들줄 아는것이 남자라며 련속 리혼하고 련속 장가 드는 달수ㅡ  이 모든것은 오직 인식론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그 답변에서만이 해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외에도 " 프레임의 법칙"," 저팔계 자손들의 납함", " 누나와의 전쟁" , "뛰라령감", "얼굴없는 녀인, "천재", "모녀의 세계, 등등은 사회학적인 범주와 도덕, 량심적 범주가 뒤 섞인 여러 복합적인 우리들의 삶의 문제들을 풍자, 비판, 아이러니로ㅡ 굳어져 버려  딱딱해지는것이 아니라 오직 소설가 박일만의 방법론으로 알뜰하고도 살겹게 인성으로 풀이하였길래 반전에 반전이 가능했던것이 아니였을가 필자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북송시기 저명한 도가학자(道教学者) 진희이(陈希夷),그가 바로 전설중의 진전로조 “陈抟老祖”이다. 그가 남겨놓은 저작이 곧 '심상편'" 心相编", 거기에 이런 구절이 하나 있다. '지기선이수지, 금상첨화; 지기악이 불위, 화전위복'"知其善而守之,锦上添花;知其恶而弗为,祸转为福" 뜻을 풀이해보면 ' 선을 알고 선을 지킨다면 금상첨화와도 같고 악을 깨닫고 행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화가 되려 복이 된다' 는 말이다. 다산작가 박일형의 제3 벽소설집" 얼굴없는 녀인"이 곧바로 이렇듯 인성을 석방하여 지성으로 망각되여가는 우리들의 삶과 리성을 깨우치려 한것 같다. 마무리 하면서   광음이 류수라더니 팔팔했던 박일형은 이미 정년 퇴직하였고 필자도 래일 모레면 오십줄에 들어서게 된다. 십여년전, 필자가 모 신문사를 그만두고 박일형에게 전화하여 심양에 지사를 둘 의향이 없냐고 건의하였더니 기꺼이 한번 와 보라며 반기던 박일형의 사람 좋은 모습이 또 불쑥 생각난다. 그 당시 부총편이였던 한광천, 박일형의 아낌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록 성사 안되였지만 흑룡강 할빈이 생각나면 제일 먼저 필자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분이 곧바로 이 두분이시다. 사람 좋고 박식한 다산작가 박일형님, 진심으로 새책 출간을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요즘은 륙십도 청춘이 되는 시절, 건강하시고 더 좋은 작품들을 또 기대해 보겠습니다. 2016년7월27일  심양에서
230    打嗝 (外3首) 댓글:  조회:1651  추천:0  2016-07-21
打嗝 (外3首) 我的屁股总是,习惯性地 坐在别人的椅子上, 可以说主客反过来。 那时候,打嗝,有人赞叹或批评。 年轻气盛的时候,爱捧场的人们 总说我打嗝的就象女人的 乳房那样饱满而让人 好奇地联想到底吃了什么? 落魄,再也不能确立自信的时候, 身边老婆总是带着 一种讽刺和若干恶意对我说 就像癞蛤蟆放屁那样 恶心,又让人感到不舒服。 从此,我忘了打嗝, 从来没有在别人面前打过嗝。 那天,我又坐在 你的沙发上抚摸着 你的预言,却忘记了 曾经的诺言,打了一次嗝, 吐出来的是 轻微的人生重量和 一场酸甜苦辣。 让你不知所措,让我也无地自容。 至今,我还是想不明白 人,为什么打嗝? 打嗝到底是错还是对? 如今,我的屁股 选择了坐在马路边上 欣赏着人车来来往往 熟悉而陌生的风景。 陌生的季节 太阳,穿着西服 带着领带, 敞开大门进入了我的庄园。 向日葵手舞足蹈 满怀热情的致欢迎词, 玫瑰花带着小刺, 在花盆里露着肩膀 赋美的灿烂微笑。 这个季节,我总是感觉到 莫名其妙的陌生。 就像阳光总在我身边, 却无法呼吸到你的 气息那样有一种烦恼袭击 我,一天又一天。 晚上,我小心翼翼关上大门, 通过窗户数着星星, 明亮的星星在我的心田里 萌芽着某种ㅡㅡ 孤独和更遥远的祝福。 奔跑 爱 始终 不饱满 丰满时 它 会 暴涨。 就像 山沟里的洪水 来的也 突然, 消失的却 无影无踪。 我 每天 都在 思考 同一个 问题, 风 一无所有 它 为什么春来 能 吹绿 野草? 天 很 空虚 为什么 给人 某种 安慰?所谓的 希望 为何 总在 明天? 如此 苦短的 人生 假如 你 伤了 痛了 请 不要 埋怨岁月, 我来 告诉 你 有人 默默倾听 你的 诉说 此时 陪伴着 你 你 就是 这 世界上 最 幸福的 人。 南海 武夷山 你为什么 不叫 五姨山? 雁汤山 你为什么 不叫 燕腾山? 我站在南海 普陀山上 高唱主席的 教诲! "你们是八九点 的太阳 朝气蓬勃。 世界是 你们的也是 我们的!" 菲律宾 小日本, 你要记住ㅡㅡ "好好学习 天天向上! 人不犯我, 我不犯人! 人若犯我, 我必犯人!" 黄海 你为什么 不叫渤海,叫 黄海? 笔架山 你为什么 不叫 笔画山 叫笔架山? 我站在 长白山上 高唱 主席的教诲! "一切 反动派都是 纸老虎。 中国人民从此 站起来了 人民万岁 万万岁......"
229    일본인 시각에서 바라 본 중국인과 한국인 댓글:  조회:2371  추천:2  2016-07-19
일본인 시각에서 바라 본 중국인과 한국인    중국 고사성어에 이런 구절이 하나 있다.  "以铜为镜,可以正衣冠;以古为镜,可以知兴衰;以人为镜,可以明得失。" 뜻을 풀이해 보면 동을 거울로 삼으면 옷차림을 옳바로 할수가 있고 과거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수가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가늠할수 있다)로 해석할수가 있다. 그럼 일본인 시각에서 본 중국인과 한국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구경 무엇을 깨우칠수가 있는가?   일본 2ch론단(日本2ch论坛)에서는 경상적으로 중국인과 한국인의 구별점을 열의하고 있는데 아래 몇가지 그들의 관점중ㅡ 어느 대목에서 우리는 어이없어 웃을수가 있고  또한 어느 대목에서 얼굴이 붉어질것 같은가? 일본인의 시각에 비춰진 중국인과 한국인의 닮은듯이 서로 다른 모습을 그럼 우리 함께 여기서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1,중국인은 경제범죄가 비교적 많고 한국인은 성범죄가 비교적 많다. 2, 중국인은 필요 없을 때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한국인은 필요 없을 때도 범죄를 저지른다. 3, 중국인은 3k의 사업일지라도 서슴없이 하고 한국인은 아예 하려고 하지 않는다 (3k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것을 가르킴) 4,중국인은 검소하고 소박하고 불편한 생활일지라도 별로 개의치 않고 한국인은 전 재산을 토막 내서라도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하려 한다. 5, 중국인들은 유럽보다 더욱 남녀평등사회에 접근했고 한국은 극단적인 남존녀비사회이다. 6, 중국인은 좌절을 받을수록 용감해지고 한국인은 그와 정 반대이다. 7,중국인은 교활하고 한국인은 단순하고 바보스럽다 8, 중국인은 앞에서 직접 누구를 욕하거나 욕을 먹어도 성을 내지 않고 한국인은 자신이 남을 훈계하는데는 매우 관대하지만 남이 자신의 앞에서 뭐라하면 몹시 성을 낸다. 9, 일단 증거를 찾아 내밀면 중국인은 무조건 승인한다. 허나 한국인은 증거를 내밀어도 죽어도 승인하지 않는다. 10,중국인은 자신과 타인의 무지에 대해 관용적이다. 한국인은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만 언제나 관용적이다. 11,중국의 백성들은 거의 성형을 하지 않는다. 간혹 스타들이 성형에 참여할뿐, 허나 한국은 전 국민이 성형을 열애, 심지어 대통령마저 례외가 아니여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도 한다. 12,중국인은 모방으로 생산한 물품(山寨品)에 대하여 아무런 꺼리낌없이 승인한다. 한국인은 짜가 상품을 무조건 한국산이라고 우기고 판매시 짜가 임을 계속 속인다. 13,중국인은 이외로 쉽게 현실을 접수한다. 한국인은 자신의 불만스러운 현실을 절대로 접수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감추고 포장하기도ㅡ 하여 해외의 중국인은 노벨상도 받을수 있지만 한국인은 심지어 해외 이주민까지 포함하여 단 한 사람도 노벨상을 받은적이 없다. 14,중국인은 일본에서도 떳떳이 자기 이름을 사용한다. 일본사람 인척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저절로 한국 이름을 감추고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아예 일본사람인척 한다. 그러다도 십여년이 지나면 핍박에 의하여 일본이름을 사용하였다고 거잣말 하며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 15, 중국인은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고 바보 취급하지만 뜻밖으로 저주하지는 않는다. 한국인은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고 바보취급을 하고 또한 온 세상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다. 16,중국인은 기실 매우 친일적이다. 정치상에서만 반일적일뿐, ㅡ반일감정은 처세지술에 불과하지 않다. 허나 한국인들은 정치상에서뿐만이 아니라 아주 철저한 반일주의 완고파이다. 17, 재일 중국인은 대부분이 친일적이고 일본국적에 가입할것을 희망한다. 재일 한국인은 절대 부분이 반일적이며 일본국적에 누구나 가입하려 하질 않는다. 18,중국에서 상급이 녀자이여서 사직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상급이 녀성으로 바뀌우면 사직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상으로 일본인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인과 한국인에서 우리 모두 살펴 볼수 있는것은 일본인은 중국인을 조롱도 하고 때로는 바보취급도 하지만 무시할수 없는 그 엄청난 존재감에 다소 구걸적인 낮은 자세임을 알수가 있고 한국인에 대해서는 저주하고 더우기 무시하고픈 라이벌 상대임을 알수가 있다. 몰락해가는 일본이 언제까지 군국주의 명목으로 타인앞에 자존심을 내세울지는 세인이 조금 더 주시해봐야 할 긴 과정인것 같다. 료녕신문에서
228    나는 이런곳에 산다 (외 3 수) 댓글:  조회:1396  추천:1  2016-07-17
나는 이런곳에 산다 (외3수) 창문을 열면 법글이 뚝ㅡ뚝ㅡ 마당안을 뛰여 다니고 천년의 고요속에 잠자리떼 념불이 되어 잔디밭에 다소곳이 내려 앉는 곳 ㅡ 아침마다 잘 익은 노을이 세월의 이마위에 천연스레 가부좌 틀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두손이 파랗게 물 들것만 같은 저기 저 들녘에 듬직한 바위들이 한결 명상이 깊은 곳ㅡ 나는 이런 곳에 산다 숨결이 하도 맑아 개울물이 오손도손 다리밑을 조리졸졸 흐르고 수련{睡莲}의 문턱을 넘어서면 활량이는 심장에 새봄이 마침내 여름에게 인사 전하는 곳 서투르면 또 어떠하랴? 우리네 정서 우리네 그 가락에 둥기당기ㅡ 가야금소리 저만치서 달려오고 가나다라마바사 잘 다스른 훈민정음이 마침내 툭ㅡ하고 줄이 끊어져 진주 알맹이로 새로운 씨앗이 되는 곳 나는 이런 곳에 산다 참새 몇마리 땅에 떨어진 아리랑 한쪼각씩 입에 물고 포르릉 포르릉 나뭇가지에 살풋이 내려 앉는 곳ㅡ 천연의 사랑(天然的 爱) 하늘이 외면하면 나도 결국 외면해야 겠지요 그리고 꼭 내가 아픈것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절반쯤은 에누리없이 돌려줘야 하겠지요 천년이 아니고서야 어찌 바위라고 하겠나이까? 바람이 불어오면 하얀 꽃가루 온몸에 뒤집어 쓰고   알룩달룩 꽃향기로 얼굴마다 죽죽 법글을 새겨가며 풀이며 나무며 산곡을 에돌아 바다로 흘러가는 저 많은 강물들과 주절주절 하루종일 륙자진언(六字真言), 십륜금강(十轮金刚) 지장경(地藏经)을 외우는 나의 참된 사랑, 저 검푸른 하늘이 아니고서는 우리 이제 어데로 더는 돌아가야 할 곳이 없겠지요 허나 하늘이 기어이 나를 외면한다면 나 역시 조용히 저 하늘을 이제 외면하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계명과 거룩한 부처님의 오계명으로 내 이마에 반짝반짝 내려앉는 찬란한 해빛ㅡ 풀이면 풀 나무면 또 나무 어데론가 다시 정처없이 흘러가는 저기 저 뭉게 뭉게 꽃구름이 되여 내 오직 그대 한 사람만 사랑하다 이제 여한이 없이 죽으렵니다 죽어서라도 너무 아픈 그 사랑에 깊은 잠속에서 깨여나면 난 그래도 여생을 한없이 사랑하다 왔노라 누군가와  묵묵히 눈빛 하나로 이야기 나누렵니다 그리고 미워할수 있는 용기만큼 이제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렵니다 강물 따라 왜 자꾸 눈물이 나는걸가요? 세월의 언덕배기마다 흐드러게 피여난 저기 저 할미꽃은 서러운 풍경ㅡ 바람 한모금 입에 물고 인정에 목이 메여 가슴 들먹이는 저녁노을은 숫처녀의 화려한 순정 개울물에 두 손 깨끗이 씻고 얼굴을 깨끗이 싶을 만큼 얼룩 진 나의 가슴을 이제 누가 또 씻어주려나? 단 한번의 고장도 없이 한번 가면 두번 다시 되 돌아올줄 모르는 그 세월이 그리워  마주섰다 돌아서면 꾸역꾸역 강물속에서 떠오르는 아버지의 옛말 한마디... 쥐 방울 꽃 넌 ㅡ 앙증 맞고 볼품이 없는 저기 저 쥐방울꽃이 되어라! 난 결코 초라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새봄을 알리는 초스레꽃이 되리! 비가 내리는 날이거나 해 뜨는 아침이면 우리들의 생명의 함의는 오히려 더욱 찬연하다ㅡㅡ 비람이 불면 언제나 두 손을 옆꾸리에 살짝 얹고 잔디풀과 여기 저기서 철없이 살아온 지난 이야기 허물없이 두런거리다가 비 오는 날이면 비실비실 물러서거나 제 자리에 물 앉는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산마루에 톺아 올라 짤랑짤랑 귀엽고 작은 방울 즐겁게 흔들다가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발목마다  꽁꽁 세월을 묶어두리
227    이제 시인들은 한 백년쯤 굶어 죽어도 좋다(외4수) 댓글:  조회:1111  추천:0  2016-07-14
이제 시인들은 한 백년쯤 굶어 죽어도 좋다! (외4수) 지옥에 가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스크린같은 단떼의 지옥ㅡㅡ 보들레르의 타고르의 그 앞에 꺽두러니 서서 이제 시인들은 한 백년쯤ㅡㅡ 굶어 죽어도 좋다 저어기ㅡ머얼리ㅡ 오랑캐 꽃들의 우아한 눈빛, 깃털같이 가벼운 홍채(虹彩) 홍모보다 부드러운 우리들의 랭혹한 사유ㅡ 너무 오만해지는 뉘앙스 더 더욱 순진하고 어리무던한 자연(自然) 그리하여 오늘도  봉쇄된 육아실에서 우리들은 죽으러 온 세상 부지런히 죽는 련습을 계속하고 있다 보라 저기 저 활발한ㅡ 발자크의 교훈을 보라 저기저 말라르메의 간교한 숲의 움직임을 언녕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시편 빈약한 설움의 제 2 음절ㅡ 오늘도 우리는 여기서 자신심을 잃어서도 안되겠지만 바슐라르 호프만 클라게스의 령혼(魂魄)으로 우리는 이제 무엇을 더욱 길게 말할수가 있는가? 형이 상학적인 그 간결한 부드러움이나 현상학적인 우리들의 그 지향성은 어느 행동주의 유연성 앞에 항상 물거품으로 산산히 부서지고 있거늘 이제 우리 이 시대의 어리석은 시인들은 커피나 엽초, 저급적안 랑만 대신 한 백년 보리밥속의 돌멩이 삼키다가 마침내 굶어죽어도 좋다... 척 아는척 하지 마라 잘난척 하지마라 보고도 못 본척 하지 마라 그래도 고상한척 그래도 우아한척 그래도 너무 사랑하는 척 그래도 의연히 ㅡ 미워 하는 척 매일 이밥에 거짓말을 말아 꿀꺽 삼키고 배 부른 척 아무렇치도 않은 척 아픈 척ㅡ 무척 두려운 척ㅡ 척하면 제 잘났다고 뽐내고 으시대다가 돌아서면 언제나 모르는 척 다 알고 나면 알고도 또 모르는 척 척하며 사는 세상 너무 두렵다 너무 싫다... 벌레 벌레들의 움직임 벌레들의 꿈틀 거림ㅡ 벌레들의 반항 벌레들의 활발한 사유ㅡ 저기 저ㅡ 벌레들의 울음소리 내 신경을 한 오리 두 오리씩 물어 뜯을때 난 벌레들의 울부짖음소리 자장가 삼아 종소리 푸르른 오월의 숲에 조용히 누워 하늘이 주는 힌트를 다시 읽는다 피와 눈물로 벌레처럼 살아 온 세상 나무도 꽃이 아닐바엔 풀뿌리 인생이면 또 어떠하랴? 서럽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떠나가야 할 죽으러 온 세상ㅡ 내 기꺼이 벌레들과 춤을 추고 벌레들과 노래 부르며 목이 메여 별을 부르고 달을 부르고 바람을 부르고 구름 따라 터벅터벅 홀로 걷다가 하늘이 부르는 날 알아서 조용히 떠나 가리라... 명상 1 매일 부처를 만난다 매일 악마를 만난다 나는 죽어 부처가 아니면 악마가 되리! 부처도 악마도 아니라면 나는 성황당 돌담위에 한송이 코스모스꽃이 되여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내가 미워하는 모든이들과 손 저어 반갑게 인사라도 나누리 살아가는 하루 또 하루가 지옥이라면 나는 이제 죽어서라도 천당에 가 못 다한 우리들의 슬픈 인연 시로 소설로 전설로 이 세상에 남기리라 물과 풀 젖어 있는 불꽃은 눈굽이ㅡ 축축하다 불의 물 방울ㅡ 풀의 봉긋한 젖 가슴ㅡ 리그베다와 아그니의 몽상속에서 새벽이 숨을 쉬며 깨여난다... 피는 가슴으로 흐르고 힘은ㅡ 가슴으로부터 다시 빠져 나가고 경험이 메마른 콤플렉스 사실주의 광기는 호프만의 레몬즙에서 풀과 나무와 바람과 구름과 질식 직전인 자연을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226    물 1 (외 5 수) 댓글:  조회:829  추천:1  2016-07-13
물 1 지옥의 계절에 한마리 사슴이 되여 풀밭과 숲사이를 스럭스럭 걸어 다닌다 제발 좀 눈물이 멎게 해달라고 들불에게 두손 모아 간절하게 간청 해본다 뾰족뾰족 싹이 트는 두개의 주제, 우리들의 욕망은 너무 인공적이였다! 오늘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너에게 보여줄수가 없을때 나는 이제부터라도 오로지 하나의 진실에만 몰두해야지! 폴 크로델의 동방의 의식에는 통ㅡ통 ㅡ물이 오른 한 녀인의 말랑말랑한 유방이 모성애로 가난을 키우고 있었다! 아무도 진실을 믿지 않는다! 나도 결코 나를 믿지 않는다... 물 2 이 나이에 우리ㅡㅡ 다시 사랑해야 한다는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구겨지고 찢겨지고 거창한 과거따위는 이제라도 말끔히 잊어야지! 비굴하거나 초라하지도 않게 맨 처음 만난 그때처럼 두근닥근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누군가를 다시 사랑해야 한다는건 얼마나 자랑스럽고 아름찬 일인가? 그러나 이름조차 없는 그 강가에 그리움이 아직도 봄풀처럼 살아 숨쉬는 그 펑퍼짐한 언덕ㅡ 투명한 눈망울이 아닌 이불을 멀리 던져라! 싱싱한 망령들의 환영(幻影)이 잘못된 판단으로 할미새가 되여 살색이 어둡고 우울한 그 강가에서 제 이름과 제 손발을 찾아 어지러이 헤맬때 우리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무거운 잔디속에 다시 발을 불쑥 잠그면 그리움은 언제나 청초한 련꽃잎처럼 동ㅡ동ㅡ 떠오른다... 물 3   더 낮은 곳이 어디 없나 두 눈을 부릅뜨고 언제나 이곳 저곳 두루두루 열심히 살펴본다   사상은 항상 맑고 투명하고 허리는 유연하게 산기슭 불쑥 감싸안고   호매로운 세월 비장한 삶의 노래속에서 하고픈 말들을 꿀꺽 가슴에 조용히 집어 삼킨다   어느 집 바자굽에서 문전 박대에 온갖 오물을 다 뒤집어 써도 결코 싫다고 하질 않는다 날 짐승들이나 집 짐승들이 철퍼덕거리며 강을 건너면   세월의 로고, 어지러운 흙 먼지 두손으로  말끔히 깨끗이 딲아준다   뼈는 없다 자존심은 버린지조차 오래다 오직 한 마음 한뜻으로 더 낮은 곳으로 와ㅡ와ㅡ 사품치며 흘러가   머루알같이 새까아만 두눈 깝빡 깜빡이며 말이 많은 세상을 조용히  지켜본다   물 4   강해지기 위해서는 부드러움이 더욱 필요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발끝에 고개 숙이는 그런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팔힘보다 뚝힘이 더욱 필요하고 미련없이 져주기 위해서는 잔뼈마저 눈물로 녹여버릴수 있는 그런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세상에 호올로 남겨져도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도 없이 추호의 거짓도 없이 낮은 곳이라면 서슴없이 맨발로 달려 간다   이 세상의 야비하고 야박한 인심때문에 온갖 더럽고 어지러운 오명 온몸에 다 뒤집어 써도 결코 비겁하거나 비굴하게 피하질 않는다   한사발의 물에 우리들의 희노애락이 있다 길러 준 은정을 알고 세월의 깊은 상처 온몸으로 말끔히 씻어주며 륜회의 열두대문 활짝 열어젖히고 물은 하얀 손수건 살랑살랑 내흔들며 하늘로 돌아간다 미련없이 다시금 조용히 돌아간다 물 5 술병이 시름 겨운 하늘을 들녘에 불쑥 쏟아 놓으면 잔등이 구부정한 바람이 세월을 채찍질하여 아리랑 고개를 또 슬쩍 넘어간다. 눈썹이 까아만 포플러 나무ㅡㅡ 살색이 하아얀 아카시아 꽃향기ㅡㅡ 수줍어 동구밖에서 마냥 두 손을 만지작이는 봉선화, 들국화ㅡ 그리고 새벽 이슬에 바지가랑이 흠뻑 젖어 파르르 파르르 눈섭이 떨리는  아직 젊은 별 하나... 물 5   다시 돌아가 제 자리에 눕는다 동그랗게 눕는다 하아얗게 눕는다 파아랗게 눕는다 말랑말랑한 가슴 쭉 펴고 울렁울렁 파도아래 옹송그리고 다시 눕는다 말똥말똥 맑은 하늘을 우러러 결코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 이 세상 무자경(无字经)을 두런두런 읽다가 바람과 함께 구름과 함께 부처님 삼장십삼부(三藏十三部)를 령혼으로 중얼중얼 다시 외운다 사상은 파랗다!  살색은 하얗다! 얼굴은 가끔 빨갛다! 배꼽은 없다 머리카락도 없다 골격이나 굵은 뼈는 더욱 없다 살짝 건드리면 몰랑몰랑한 젖가슴 촤르르 촤르르 오르가즘 쏟아내고 봄이나 여름이면 청아한 꾀꼬리 노래소리에 푸른 산을 슬쩍 바구니에 담아들고 황소 따라 첨벙첨벙 들녁을 지나간다 익숙하다 싶으면 왠지 낯 설고 생소하고 생소하다 싶으면 언제나 홀딱 벗고 알몸으로 내곁에 살풋이 드러눕는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멀미 나고, 현기증이 일렁이면 먼 시골마을로 시집 간 누나 찾아 맨발로 달려간다 맨몸으로 꿈틀꿈틀 기여간다 돌아서면 기어이 헐레벌떡 따라 와서는 뭐라고 쉐라 쉘쉘ㅡ 자꾸 주문을 외운다 물은 결코 인간들처럼 간교하거나 선량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225    엄마 생각이 절로 나네요 댓글:  조회:865  추천:0  2016-07-12
엄마 생각이 절로 나네요 외1수 봄비가 푸실푸실 내리던 날 빨래 강가에 서면 토닥토닥 누데기 헌옷들을 정성스레 다듬이 질 하시던 울 엄마 생각이 절로 나네요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언덕아래 말뚝처럼 우뚝 서면 부르튼 내 손발 먼지 오른 내 얼굴 삼베적삼 옷고름으로 정성스레 딲아주시던 울 엄마 생각이 절로 나네요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너무 배가 고프던 날 거미같은 자식들에게 새알만큼한 감자 하나씩 나눠 주시고 부뚜막에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앉으셔서 시래기 우린 물로 모진 허기 달래시던 울 엄마생각이 절로 나네요 전생에 무슨 죄 그렇게도 많이 지셨길래 원쑤같은 이 자식들ㅡ 팔남매 남 부렵잖게 키우시느라고 한일평생 변변한 옷 한벌 옳바른 식사 한번 제대로 못하시고 정안수 한 그릇 장독 위에 정히 떠다놓고 자식들의 먼 앞날 손발이 다 다슬도록 싹싹 빌고 또 비시다가 하늘로 가신 울 엄니ㅡ 가슴이 텅 비고 허전한 날일수록 천사같으신 울 엄마생각이 절로 나네요 해마다 이맘때쯤 어머니 명절 (母亲节)이 돌아오면은 한평생 부엌데기로 고스란히 살다 가신 울 엄마가 꿈인듯이 생시인듯이 저기 저 눈물속을 터벅터벅 걸어 오시네요... 뭐가 되여 래생엔 또 누구네 집 막내 아들이 되여 가문의 작은 영광이나마 빛낼 련지? 서럽고 외롭고 아프고 쓸쓸했던 그런 날은 어서 가라 맹물에 맹물을 탄것처럼 슴슴하고 시무룩하고 손톱이며 발톱을 깎던 그런 날들도 어서 가라 햇빛이 쟁글쟁글 방안에 쏟아지고 머리털이 텁수룩한 날이면 나도 이제는 뭐라도 되어야지 사랑이 꿈틀거리고 행복이 꿈틀거리고 분노가 사품치고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던 날 밤 하늘의 별이라도 잠간 쳐다 보아야지 물처럼 출렁이고 숲처럼 술렁이고 불처럼 이글 이글거리던 정열의 그런 날들이 곧 다시 돌아오려니 마냥 갑갑하고 허전했던 그런 날들은 어서 가라 사랑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날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찰랑거리는 시내물에 두 손을 깨끗이 씻고 나 또다시 어데론가 ㅡ 떠나가야지...
224    내 이름에 성스러운 사명을 걸고 댓글:  조회:1124  추천:2  2016-07-06
내 이름에 성스러운 사명을 걸고 외 2 수 태여날ㅡ 때부터 나에게는 이름이 둘ㅡ 하나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ㅡ 하나는 "조선민족!" 개구장이 그 시절 이웃마을 한족 애들한테 "꼬리빵즈" 라는 천대를 받고 낯에 홈타기를 패워가며 피 튕기게 싸웠다 어른이 된후 간혹 가차칸에서 "니쓰 초우쎈주마?"하는 한족 로인들의 물음에 수긍의 뜻으로 나는 고개를 끄떡였고 성스러운 민족의 사명감으로 항상 자신의 언행을 다듬고 또 다듬어 왔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방대한 우리네 력사 반만년의 유감과 반만년의 원한 반먼년의 설움이 오늘도 생생하게 우리들의 얼굴에 새겨져 있는 태여날ㅡ 때부터 나에게는 이름이 둘 하나는 ㅡ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하나는 ㅡ 누구나 쉽게 알수 있는 "조선민족!" "조선민족!" 내 느끼듯이 내 느끼듯이 너도 뼈저린 참회 느끼면서 추억에 설레이는 저 바다 언제 잠이 드는가 묻지를 말자 어느해 가울이였던가? 생소한 꿈이 불쑥 떠올라ㅡ 지평선 저 끝에서 풀이슬 두드릴때ㅡ 조금씩 꿈꾸기로 온다던 그 사람들이 저 어둠속 불빛을 생명으로 느꼈 듯이ㅡ 다시 오는 이 아픔을 우리 함께 슬픈 자의 비망록에 새겨넣고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마냥 밝기를!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냥 그윽하기를! 이처럼 빨리 오는 아픔이 있을줄을 미리ㅡ 알수가 있었다면 내 느끼듯이 너도 뼈저린 참회를 느끼면서 량심의 청진기를 민족의 심장에 대고서 그 힘찬 고동소리 함께 들어보자! 언제면 그 곳에서 희망의 새싹이 너무 쉽게 터 오를때까지ㅡ 오늘도 내 느끼듯이 너도 뼈저린 참회 느끼면서 인정에 목이 메여 설레이는 저기 저ㅡ 바다가 언제 잠이 드는가? 묻지를 말자! 어머니 혹한에 난방시설마저 꽁ㅡ꽁ㅡ 얼어 붙고 끼니마저 라면으로 설때울 때면 어김없이 두툼한 엽서묶음 꺼내듭니다 그러고는 고향에서 온 편지들을 따로 골라 놓습니다 고향에서 온 편지 들을 펼쳐들면 내 눈에는 고향의 산이 보입니다 고향의 강이 보입니다 앙상한 백양 나무가지에 하얗게 성에꽃이 활짝 핀 내 고향 동구밖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참으로 서러웠던 그 나날 ㅡ 온갖 시련 다 겪으며 배움 찾아 떠나는 이 아들을 바래주려고 꼬부장한 그 허리에 찹쌀가루 고이 지시고 내 손목 부여잡고 한사코 따라 나서시던 그 동구밖 올해도 그 앙상한 백양나무 가지에는 성에꽃이 하얗게 피였겠지요? 그 속에서 어머님은 또다시 이 아들을 기다려 바장이시고 ㅡ 아들 딸 팔남매 키우시느라 남먼저 귀밑머리에 하얗게 흰 서리 내리신 고달픈 인생 아아 고향에서 날아온 편지를 읽을적 마다 속으로 조용히 불러 보는 거룩한 그 이름 어머니ㅡ 부를수록 오척의 사나이 목이 메여 왈칵 눈물을 쏟습니다 어머님의 향기 찾아 마음이 정이 든 고향으로 달려 갑니다... (북행렬차) 중에서
223    태초의 욕망 댓글:  조회:988  추천:1  2016-07-06
태초의 욕망 (심양 허창렬)   외 2수   삶의 무거운 십자가 고스란히 등에 짊어 지고 아담 이브마저 없는 황량한 골짜기를 나 혼자 피리불며  성큼성큼 내려갑니다 가다가 가다가 도토리 몇개 더 줏고 가다가 가다가 까마귀떼 하얀 울음소리에 예민한 감성 와뜰ㅡ 와뜰ㅡ 놀래우기도 하며   한 여름 수없이 부처님과 예수님의 집 처마밑을 드나들었을 어떤 제비의 날쌘 몸매에서 인간의 냄새를 잠깐 맡아보기도 합니다 벌겋게 피가 돋은 바위들의 아스라한 전설에는 우리들의 유치한 몽상보다  항상 알수 없는 파멸의 푸우른 소금자국이 더욱 짙고ㅡㅡ   차츰 목이 말라 겨불내음이 풀풀 나는 우리 이 시대의 피리소리에서는 각혈을 시작한 피아노 건반들이 아침노을을 거미줄 삼아 희망을 꽁꽁 묶어가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당신은 언제나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삶의 방식, 멀리 ㅡ 산너머로 이사 가던 구름 한송이 가을의 문턱을 밟고 서서 여름의 누드를 넋 잃고  또 한참 지켜보고있습니다 태초의 욕망에는 남자와 녀자의 손이며 팔 눈굽, 바지 가랑이마저 흠뻑 젖어 있었고 세월은 무엇을 자꾸 말하려는지 하루종일 강물처럼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태초의 여름     태초의 여름 자유의 궁전에서 나와 당신은 홀딱 발가벗은 진실앞에 한참씩 웃고 떠들며 까부러 치다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루한 시간을 석쇠에 굽고 있었습니다     어리무던한 태양은 그냥 존재의 의미로 빛이 났고 무수한 별들은 우리들 삶의 이야기에 취해 두 눈을 깜빡거렸고 달은 뼈마디 굵직한 좌우명을 십자가처럼 목에 척 걸고 예수님의 십계명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찬란한 우리들의 욕망인가? 얼마나 눈 부신 우리들의 사명인가? 얼마나 현란한 우리들의 과거인가 ? 얼마나 비참한 우리들의 현실인가? 얼마나 유치한 신들의 통곡인가?     숲을 이룬 문명, 더욱 란폭해지는 인심ㅡ 령혼을 팔고 사는 그리우보다 이제는 인정이 더욱 필요한 시기, 질투와 배신보다 관용과 포옹이 더욱 지혜로운 시기 산사의 종소리 목탁소리에 고요히 깨여나고 있다                         태초의 가을       네가 평생 알수조차 없는 비밀 하나를 이제는 알려주마! 네가 평생 깨우칠수조차 없는 부처님의 큰 뜻을 이제는 아낌없이 알려주마! 위대한 시인의 심장은 가난하였어도 쿵쿵 뛰였고 저 어리석은 광대들은 량심의 황무지에 궁전을 짓고  부를 축적하였다     태초의 가을도 오늘처럼 오곡이 한창 무르익었고 우유와 빵대신 설교로 주린 배를 달랬던 무함모드나 요셉의 진실한 (거짓말)은 오히려 거짓에 거짓 하나 없이 새빨간 거짓말 같은 진실이였구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오늘도 우리를 이처럼 힘들게 하고 있는가? 알려고 했던 자들은 아무도 알려고 하질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차려놓은 술좌석에서는 하느님이 항상 말석이다...
222    脑残的天气 댓글:  조회:1185  추천:1  2016-07-04
脑残的天气 (外4首) 许昌烈 脑残的时候ㅡㅡ 请不要 埋怨别人, 更不要 责怪 天气  ! 天,下着 雨 肯定ㅡ 有 它的 理由。 天 刮着 风 肯定 ㅡ 有 它的 选择。 天 没有 烦恼 人 可以 郁闷。 孤独的 时侯ㅡㅡ 请不要埋怨别人。 愤怒的时候 你可以唱一首情歌, 一路向天 再借 五百年。 路 沿着这条路,一直 走下去 我不知道,是天堂 还是地狱。 但我知道每晚星星 都在陪伴着我 风,牵引着我的手, 云,装饰着 自己的ㅡ格言ㅡ 感谢, 这一路上有 你的微笑, 站在阳光下,你依然 那么耀眼而诱惑。 我不知到沿着这条路 一直走下去 是天堂还是地狱? 但我选择了 一颗最真诚的心 陪你默默 走完人生这条路。 无语 看着你的勒索 我无语。 看着你的咳唆 我无语。 每当你走出怪圈 默默 向着太阳致敬的 时候 我还是无语。 看着你 口出狂言 我无语。 拉着云的手 你就像风那样 奔跑在 旷野的时候 我还是 无语。 人,活在这世上 不需要 更多解释。 虽然心很痛ㅡㅡ 站在阳光下 数着 你未干的微笑 我还是 无语。 孤独 我不知道 山为什么那么高 还能给我 一种期待? 我不知道 地为什么那么荒凉 还能给我 某种喜悦? 我更不知道 天为什么那么空虚 还能给我 一种安慰? 这一切都是命运 这一切都是天意 这一切都是预料之中 我站在 屋檐下-- 仍然感觉 很孤独。 是 谁在 戏弄着 我的 天堂? 我 一直 对 自己的 命运 抗争。 但 我 知道 我 ㅡㅡ 依然是 人生中 最大的 失败者。 我 去过 长江,黄河 沉淀在 古老 传说中的 历史 没有 给我 一点 振奋。 我 去过 泰山,甚至 喜马拉雅 大自然的 雄伟 一次次 让我 感到 自己的 渺小。 从 明天起 我也 要 做 一个 听话的 孩子, 安顿于 生活。让 太阳 再次 照耀着 我 最 灿烂的 微笑。 我 真的 很累。 累的 已经 支不起 腰, 佛 为什么 还要 让我 念佛 念咒? 前生 五百次的 回眸 今生 才 得到 擦肩而过! 也许,我 真的 不是 人类 就像 地狱里 刚 走出来的 一尊 泥 菩萨。 是谁 在 戏弄着 我的 人生? 我 走在 大街上 心 还在 天堂里 梦游......
221    우리의 력사는 학자들의 량심이고 거울이여야 댓글:  조회:1305  추천:5  2016-07-04
우리의  력사는 학자들의  량심이고 거울이여야               ㅡ리광인교수님의 “무정장군”을 읽고                          허  인      요즘은 평전시대인것  같다. 눈만 뜨면 여기 저기에서 수 많은 평전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를 떠나서 일부 이름 있는 작가들의 손끝을 거쳐 탄생된 이러한 평전들은 위인들의 일대기를 마치 한눈에 들여다 볼수 있을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여 무척 인기를 끌고 있는듯 싶다. 헌데 필자가 알건대 평전은 한  인물,  한  인물의  일생 발자취를  기록하며  평론을  깃들이는 것이기에  력사에 길이  남을수 있는 진실한 력사자료 모음이여야지 결코 독자의 구미에 알맞게 편찬된 허구와  상상이  가미된 순수한 문학창작이여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동방언어학원 한국어 교수로  근무한적이 있는  리광인씨를 필자는 기실 잘 모른다. 워이씬에서 가끔 서로 안부나 전할 정도, 그리고 몇번의 전화통화가 전부다.  그런데 며칠전 리광인교수가 정성스레 우편으로 보내온 두툼한  “무정장군”평전을 읽고 필자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처럼 방대한 자료수집과 조그마한 허구 한점마저 절대 용허하지 않으려 하는 그의 지극히 학자적인 저술 태도에 탄복했고 더 나아가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필자가 보건대  “무정장군”은 딱딱하고  메마른 자료집인것이  아니라  생동하면서도  구수하게 진술되여  독자들이 심취있게 읽어볼수  있도록  씌여졌으며 그 매  구절구절에  이르기까지  오직 진실 하나에 의거한 충실한  평전이기에  우리 겨레 력사의 발자취에 길이 남을수 있는 력사문헌으로 되기에도 결코 아무런 손색이 없을것으로 보인다.    소개에 따르면 진공목,  박근만, 박근수, 최석천, 반경유,  리계동,  리용, 마천목,  신춘, 장세걸, 최정무, 최음파 등등 겨레의  쟁쟁한  남녁땅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이 허다함을  우리는 이 책에서 발견할수가  있다.  그 중 중공 상해조선인 지부를  거쳐  동북으로  파견된  황포군관학교 출신들만  하여도 20여명, 강서  중앙 혁명근거지로  파견된 다음  2만5천리장정에 참가한 조선족장병이 무려 10여명, 특히 장세걸은 홍22군 참모장으로 활동하다 1933년 젊은 나이로 희생되여  많은 아쉬움을  남기였고 홍군의 첫 작곡가이자  바이올린수인  최음파는 1935년 봄 중앙혁명근거지 포위돌파전에서 불행히  희생( 또다른 일설에는 상해에서 일본령사관  놈들에게    체포되여  조선 신의주 감옥에 넘겨져 이른바  재판 받은후 일체 소식이 두절되였다고 함)  이러한 기록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며 또한 우리 겨레 력사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들이 아닐가고 생각된다. 이외에도 홍1군단  참모장  양림,  중공하북성위  서기  겸  천진시위  서기  리철부,  중공기동지위서기  주문빈 등 수많은 영령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 깊이 있게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무려 28장이나 되는 무정장군의 젊은 시절 생전 사진과 저자가 현지답사때 남긴 사진들(실제  현지답사사진은  많고도  많다고 함.)은 저자가 매번 소중한 현장에서 귀중하게 남긴 기념사진임이 분명하며 그 곳곳에는 저자의 피타는 노력과 오랜 기간의 심혈이 깃들어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수가 있다. 특히 무정장군은 중국 조선족, 더 나아가서는  전체  우리 겨레들에 있어서 극히 전설적이며 영웅적인 인물이 아닐수가 없다. 더구나 그 만큼 무게가 있고 아직도 신비의 베일에 쌓여 있는 장군의 일대기를 소설이나 픽션이 아닌 소중한 력사적인 자료들을 수집하여 문학형식으로 진술한다는것은 저자로서는 아마도 무척 심리적인 부담도 컸을것이고 사업량이 또한 자못 방대하였음을 우리는 피부로 절실하게 느낄수가 있다.       이 책의 첫시작 “밝혀지는 장군의 신상”에서 리광인씨는 무정장군의 고향이 함경북도 경성군이라는 일설과 새롭게 제기되는 청진시 근동리설을 아주 명쾌하게 해설한다. 또한 상해 로동자폭동 총지휘, 별명이   “사꾸라몽둥이”인 조선인혁명가, 중국공산당 수령들인 모택동-주덕, 더우기  팽덕회와의 절친한 관계, 조선ㅡ보정ㅡ상해ㅡ중앙혁명근거지ㅡ홍군장정ㅡ태항산ㅡ연안ㅡ동북ㅡ다시금 조선으로의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가노라면 우리는 이 평전에서 수많은 력사인물들을 더 만나게 된다. 실례로 양림장군이 희생된후 팽덕회의 연설을 우리 여기서 잠간 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ㅡ양림이 희생된후 팽덕회는 당위원회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많고 많은 외국 혁명가들이 중국혁명을 위하여 희생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계속 중국에서 희생되게 한다면 누가 남아 그들 조국의 혁명사업을 위하여 싸우겠습니까? 이미 목숨을 잃은 동지들은 어쩔수가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외국동지들의 생명을 아껴야 합니다”  팽덕회의  호소로  군위에서는  나에게  휴식명령을  내리였으며  나를  학습연구에  종사하게  하였다. ㅡ그때 나는 위장병악화로 시달리고 있었다. 팽덕회의 발언은 나로 하여금 싸움터를 떠나게 하였고 나의 목숨을 보호해 주었다. 그때로부터 우리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와 동지로 되였다.”     무정장군의 회고록에  나오는  생생한  회고문,  이처럼 많은 실제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조심스레 살펴볼수 있는것은 이러한 귀중한 자료들을 얻기 위하여 리광인씨는 결코 안일하게 컴퓨터 검색만이 아니라 두발로 중국 혁명의 성지인 서금,  연안을 비롯하여 2만5천리  장정길,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녔음을 대뜸 알수가 있다.     또한 무정이 팽덕회가 이끄는 홍군 제3군단 포병지휘관으로 있을 때의 중앙 혁명근거지  홍군시절,  주덕은 모택동, 주은래, 팽덕회와 토론끝에 무정을 군위직속 홍군포병퇀 퇀장으로 제발시켰으며 중앙홍군의 장정이 시작될무렵 무정을 다시금 군사위원회 제1야전종대 제3제대 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하였다, 더구나 설산과 초지를 지날  때 무정이 팽덕회사령원을 받들어 장국도와의 투쟁에서 불멸의 기여를 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주덕(1935년  6월,  사천  무공에서의  홍1방면군과  홍4방면군  회합후  주덕은  홍4방면군에서  활동)은 이 조선혁명가에 대하여 탄복해 마지 않았었다,  홍군주력이 팔로군으로 개편된 전후과정 (홍군총부  작전과장과  팔로군총부  작전과장에 대하여...) 이러한 자료들은 이 평전에 하도 많아 필자는 여기서 일일히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길림성 화룡시태생. 1982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선후로 연변일보사, 연변력사연구소 절강월수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로 근무ㅡ이런  경력의  소유자인  리광인씨는 지난  10여년  기간에만도  “겨레  항일지사들” (전4권), “조선족력사문학연구문집”(전  2권), “광복전 겨레 작가론”, “시인 윤동주 인생려정 연구”,   평전  “홍군장령 양림”, 평전  “백포 서일장군”  등  20여부의  력작으로 펴내였으며 이제  홍군음악가  “최음파평전”이  곧  출판되고  현재 “송몽규평전”  집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매번 통화  때마다 마치 지기를 만난듯이 친절하게만 느껴지는 형 다운 형ㅡ새삼 막역지교로  느껴지는 리광인교수ㅡ앞으로도  머나먼 삶의  려정에서 건강에  더 류의해가면서  소설이나 픽션이 아닌 우리  겨레들의  귀중한 력사사료들을 후대들에게 더욱 많이 남겨줄수 있는 력작들을 펴내시길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2016년 6월30일 심양에서    .qmbox style, .qmbox script, .qmbox head, .qmbox link, .qmbox meta {display: none !important;} #mailContentContainer .txt {height:auto;}          
누가 감히 검푸른 저 하늘을 두손으로   만져보았다고 하였는가?(1) 외2수 심양 허창렬 산위에 산이 있고 강위에 강이 있고 물위에 물이 있다 하늘위에 하늘이 있고 구름위에 구름이 있고 사람위에 또 ㅡㅡ 사람이 있다 누가 감히 저 검푸른  하늘을 만져보았다고 하였는가? 죽으러 온 세상 인생이  부질없다 탄식하지 마라 그대 뼈 없는 여린 풀이 되여 하늘아래 산아래 개울물처럼 살풋이  드러누워 본적이 있는가? 먹이 찾아 포르릉ㅡ 포르릉 ㅡ 하루종일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임자 없는 콩 한알에도 목숨 걸어본적이 있는가? 길은 길대로 어디론가 떠나가고 바람은 내 손목 부여잡고 자꾸 수림속으로 이끄는데 하늘이 뚝뚝 녹아 한자깊이  내 가슴속에 소리없이 흘러내리네 누가 감히 저 검푸른 하늘을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하였는가? 쫓기고 부대끼고 흔들리면서도 가느다란 지느러미 하나로  평행을 유지해가는 우리네 삶 바람앞에 기어이 벌떡벌떡  일어서야 하네 구름앞에 기어이 벌떡벌떡  일어서야 하네 찬비속에서 기어이 벌떡벌떡  일어서야 하네 하늘과 땅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외롭질 않네 누가 감히 검푸른 저 하늘을 두손으로   만져보았다고 하였는가?( 2 ) 하늘을 만지면 뼈마디가 말랑말랑하고 바람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ㅡㅡ  쫘악 돋친다 산을 만지면 남자들의  자존심이 벌떡벌떡 일어서고 구름을 매만지면 리유없이 슬픈 여자들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누가 감히 검푸른 저 하늘을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하였는가? 산다는건 아무래도  사랑합니다.(我爱你!) 미안합니다.(对不起!) 용서하세요.(请原谅!) 고작 이 세마디면 족하리 이제와서 스쳐지나가버린 인연들을 슬퍼하면 무엇하리 이제와서 떠나가는 사람 앞을 막고 가지 말라 그렇게  애원하면 또 무엇하리? 한번 가면 되돌아 갈수 없는 어젯날 무너져 내리는 서까래에 어깨 무거운 이 하루 또 하루 희망과 절망이 없이는 결코 아무나 쉽게 부를수 없는   래일의 노래ㅡㅡ 나의 인생은 전설일수는 없지만 소설이고 시는 되여야 하리 눈을 뜨면 다시금 하얗게 밝아오는 새 아침 산다는건 행복이고 감동인것을ㅡ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사람답게 살았었다는 증거 사람답게 살았었다는 증거를 어디 한번만 대보세요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워도 되리! 사람이기를 거부한다면 또한  무례해도 좋으리! 사람이라면 행복해도 되리! 사람이기를 거부한다면  마침내 방종해도 좋으리! 사람이라면 고민이 있기 마련ㅡ 사람이기를 거부한다면  은혜마저 말끔히 잊어도 좋으리! 사람아 ㅡ 사람아 ㅡ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무얼 그리도 많이 바라나? 가난해도 누군가 곁에 있어주면  그게 바로 행복! 아플때 누군가 보살펴 주면  그게 바로 행복!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 부추켜주면   그게 바로 행복인것을ㅡ 인생은 구름ㅡ 어데론가  정처없이 흘러 흘러 가는것ㅡ 한잔의 차, 마시고 내려놓고 마시고 다시금 내려놓고 그게 바로 인생인것을ㅡㅡ 사람답게 살았다는 근거를 어디 한가지만 더 대보세요 바람에 하느작이는  작고 어여쁜 저 꽃처럼..
219    오직 당나귀만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댓글:  조회:1341  추천:3  2016-06-21
오직 당나귀만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십여년전, 필자가 모 신문사에서 편집 기자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친후 그 당시 사회면 담당편집이였던 운룡선생이 나의 손에 원고 한편을 쥐여주며 한번 읽어보라면서 혼자 키득키득 계속 웃는것이였다. 점잖은 분이 실 없는 장난을 할리 만무하고 뭔가 수상쩍은 나는 조심스레 원고를 받아 들고 읽기 시작하였다. 그때 길림성 안도현 모 통신원이 써보낸 원고 제목이 바로 (오직 당나귀만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였다. 그 사연인즉 이러하다.   개혁개방 이후, 대부분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외국으로 떠나가다 보니 한산한 시골마을의 수많은 홀애비, 늙은 총각이 짝을 짓지 못하고 장가 들기 어려웠던것은 결코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였다. 길림성 모 조선족촌에서 발생한 일이다. 조금 외딴 곳에 떨어져 사는 ***씨는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비술나무 아래에 매여놓은 당나귀가 하루 하루 여위여가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원인을 알수 없어 부쩍 속을 태우던 그가 어느 날 저녁무렵 여물을 주러 나갔다가 한마을의 한 로총각이 제 집 당나귀와 흘레하는 모습을 벌견하게 되였다. 면바로 목덜미 잡힌 로총각은 손이야 발이야 빌었고 당시 당나귀가 부쩍 여윈것이 로총각때문이라고 판단한 ***씨는 법에 송사를 걸었고 법원에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나라 법률상 명확한 조목이 아직 없어 결과는 흐지부지하게 되여 내용이 ( 오직 당나귀만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처구니 없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고 뭔가 찝찝해 나는 그런 기분이다.  헌데 그런 기분을 나는 이 며칠사이 몇번 더 실감하게 되였다. 지난 6월 12일, 진황도 올림픽경기장에서 있은 하북 화하행복팀과 연변 부덕팀간의 축구 경기 중 명백한 오프사이드가 심판의 오판으로 연변부덕팀이 한꼴을 먹게 되였고 결국 중국축구협회가 연변축구 구락부와 수많은 연변팬들에게 사과,  이제는 좀 괜찮아 지려나 하니 지난 6월18일, 잔류를 목표으로 매번 경기마다 몸부림치는 연변부덕팀과 대부분 선수들이 우리 나라 국가대표 임원,  중국프로 축구계의 진정한 왕자로 군림한 광주 헝다팀과의 경기에서 투혼을 발휘한 연변팀이 줄곧 1:0으로 앞 선 가운데 경기종료 88여분만에 연변부덕팀의 오영춘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져 있는 가운데 헝다팀 우한초선수가 꼴을 넣어 동점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다시 재 발생하였다.     사후 몇백명 연변축구팬들이 축구장밖에서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ㅡ물론 그중에는 비신사적인 언어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제 편이 쓰러져 있는데 연변팀이  공을 장외로 쳐내질 않았기에 심판의 잘못이 아니라는 둥, 무방비 상태에서 차 넣은 꼴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둥, 시간을 끌기 위하여 오영춘선수가 일부로 넘어져 시간을 벌려다가 어이없이 당했다는 둥, 벼라별 억측들이 란무하고 있는듯 하다. 필자가 보건대 장내에 운동원이 쓰러져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경기를 중단시키고 운동원의 건강상태를 먼저 살피는것이야 말로 진정 합격적인 심판의 모습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사기 회음후렬전(史记淮阴侯列传)에 이런 구절이 하나 있다。(智者千虑 必有一失, 愚者千虑 必有一得)뜻인즉ㅡ 는것이다. 일찍 성현들은 안간의 성품을 상ㅡ중ㅡ하ㅡ 세 부류로 나눠놓았다. 례로 그 해석을 꼼꼼히 살펴보면 하등인(下等人)은 남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질투심이 생겨 배 아파 하고 중등인은 자신이 어려울때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모지름을 쓰고 상등인은 남에게 즐거운 일이 생기면 마치 제 일인것처럼 기뻐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 모든것을 따지고 보면 각근한 인간성이야 말로 모든것을 지배할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될수 있는 것으로 해석 할수가 있다. 오직 당나귀만이 아무런 말이 없다.더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우리들의 신변에서 일어나지 말기를 바란다.
218    자연속에 그려보는 우리들의 민속도 댓글:  조회:1389  추천:5  2016-06-09
저 작은것들의 수런 거림에서 강효삼 사람의 고향에 사람이 그리워 오늘도 내 막연한 기대랄가 낮익은 언덕길 내려가는데 맑은 이슬 입에 문 풀잎들이 나를 반기여 고운 손을 흔든다 오늘따라 마을 길섶 민들레꽃 얼굴이 더 곱고 화 ㅡ안하고 이제 막 연두빛 이파리들 뽐내는 호박잎의 거동이 례사롭지 않다 그 어떤 암시인가 그러나 마을은 아직 고요지경 꿈속같은데 그래도 조금 위안을 받을수있는것 지붕마저 덮을듯 키 높이 자란 곡식들 그저 묵혀 둔 터밭은 한 뙈기도 없다 손바닥만한 땅도 아까와 터전밭 울바자를 감고 오른 오이며 당콩 넉줄들 벼짚더미 딛고 오른 박넝굴은 어디가 목표여서 그냥 손을 내젓느냐 헌데 이런 반가운 정경쯤 아직은 어디가도 심심찮게 볼수있어 그닥 신비롭지 않는데 오늘 문득 나를 사로잡는 유혹이 있다 갑자기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의 수런거림 무슨 소릴가 귀기울이니 아, 푸른 곡식포기 사이 요리조리 누비는 노란 병아리들의 모이 찾는 소리로구나 이따금 눈에 번뜩이는 노란 색갈이 나에겐 마치 금덩이가 뒹구는것 같았다. 닭우는 소리 들어본지 오래인 마을인데 아직 그 어느 열심하는 이가 남아서 “하찮은” 병아리까지 품들여 깨우는 만만한 여유를 보이고 있는가 생각하면 흘러간 어제 우리들의 마을이 이러했었지 여름이면 곡식들 무장무장 자라 마을을 덮고 발가벗고 뛰노는 아이들과 함께 성가실만큼 뜰에 널려 촐랑이는 병아리떼 어디서나 흔히 보는 농가의 민속도여 이제 그런날이 다시 올 징조인듯 저 작은 것들의 수럼거림 아름다운 시작이 될듯싶구나 송곳같은 부리로 시방 열심이 쫓는것은 흙만아닌 구석구석 웅크렸던 적막 부지런히 톱질하며 희망의 메이라인듯 내 마음 위안하나니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 저 수런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왁자하니 벅석이던 그 옛날 고향마을 풍요가 다시금 회복될수도 있을 터 저 작은 것들의 수런거림 아직 내 고향에 가난해도 열심했던 어제의 알뜰솜씨가 남아있다는거다 겨레와 더불어 흙을 만지며 잘살아보려는 꿈 그기대와 소망이 아직 빛바래지 않았다는거다 아,고향상실이 늘 가슴 아파 비애의 시를 쓰던 나에게 저 작은것들의 수런거림은 청량한 시내물소리인듯 마른 가슴 촉촉히 적셔줄 밝고 명랑한 시를 빚게 한다 이제 저것들 무럭무럭 자라 엄지닭되면 그 속엔 볏빨간 수탉도 있어 ㅡ” 꼬끼요ㅡ” 제법 아침마다 “꼬끼요 ㅡ”목놓아 려명을 부르면 시골은 어두움과 외로움의 옷을 벗고 해돋는 고향 색동의 아침을 활짝 창문열린 뜨락에 맞아들이려니 오늘따라 내 걸음이 무척 가볍다. 자연속에 그려보는 우리들의 민속도 (저 작은것들의 수런거림)에는 무엇이 있나 뚜껑을 열어보면ㅡ 문학비평 허인     시에 있어서 (대상)이란 무엇일가? 수 많은 작자들은 아직까지도 상대(相对)적인 개념을 깊이 생각 해보지도 않고 흔히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허다한것 같다. 물론 뉴톤의 상대론(相对论)이나 아인슈탄의 물리학적인 변증법(辩证法)역시 모두 상대적으로 대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까지도 이데올리기식의 경험주의로 시를 쓰거나 파격적인 모험으로 험난한 몽롱시 시대를 거쳐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험단계에서 와서는 잠시 어리둥절하여 갈길을 잃고 많은 이들이 갈팡질팡 우왕좌왕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효삼시인님의 시적 대상은 도대체 무엇일가? 뚜껑을 열어보면 마침내 우리들의 고단했던 삶이 보이고 미래가 보이고 아련한 추억속의 동경(憧憬)이 마치 푸른 보리밭속의 새싹처럼 똑똑히 보이는것 같다. 그럼 여기서 우리 다 함께 강효삼시인님의 근작시 (저 작은것들의 수런거림에서)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제 1련 / 사람의 고향에 사람이 그리워 /오늘도 내 막연한 기대랄가 /...중략... /이제 막 연두빛 이파리들 뽐내는 /호박잎의 거동이 례사롭지 않다/그 어떤 암시인가?/에서는 리유가 아닌 리유, 또한 리유가 될만큼한 내가 살아가는 리유ㅡ즉 /사람의 고향에서 사람이 그리워/오늘도 내 막연한 기대랄가/로 설정적, 압도적, 어쩌면 투시적으로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으로 한 이 서경묘사는 그야말로 가히 압권이라 해야 할것 같다. 특히 /호박잎의 거동이 례사롭지 않다/ 그 어떤 암시인가?/에서 뽑아 든 파워플한 내레이션, 아무런 꾸밈도 없이 끊임없이 변화에로 몰아가려 하는 시인의 그 시적인 태도가 매우 돋보이기도 하며 그러한 시적인 배렬은ㅡ작자와 독자 사이를 교섭과 타협이 아닌 소통을 먼저 고려하였기때문에 더욱 효과적이였으며 결과는 제2련에서 시작부터 순탄하고 더욱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마을은 아직 고요지경 꿈속같은데 / 그래도 조금 위안을 받을수있는것 /지붕마저 덮을듯 키 높이 자란 곡식들/그저 묵혀 둔 터밭은 한 뙈기도 없다/손바닥만한 땅도 아까와/터전밭 울바자를 감고 오른 /오이며 당콩 넉줄들 /벼짚더미 딛고 오른 박넝굴은 / 어디가 목표여서 그냥 손을 내젓느냐/에서 /그저 묵혀 둔 터밭은 한뙈기도 없다/손바닥만한 땅도 아까와 / 터전밭 울바자를 감고 오른 / 오이며 당콩 넉줄.../은 필자로서는 오랜간만에 읽어보는 혼자 읽어 보기가 너무나도 아깝도록ㅡ 텅 비여 있는듯이 항상 꽉 차 있는 우리들의 농촌현상을 한 눈에 잘 보이도록 화공이 정성들여 한번 또 한번 속사로 그려놓은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절묘한 묘사였다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흔히 대상의 붕괴는 트릭(trickㅡ책략. 계략.혹은 속임수라는 뜻)과도 같은것으로써 필자로서는 절대로 제창할바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일찍 공자도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락하(人而不仁 如礼何 人而不仁 如乐何)라고 말한적이 있다. 뜻인즉 ㅡ 사람이 자애롭지 못하면 례절이 있어 무엇하며 사람이 인자하지 않으면 웃음이 가득한들 무엇하랴ㅡ이며 또한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余力 即以学问*)이라고 말씀한적이 있다. 그 뜻인즉 인간적인 모든 행실을 중시하고 남음이 있을때 더욱 학문에 전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든것은 보시다싶이 말 그대로 인(仁)을 지팡이로 삼고 있다. 시인의 경우ㅡ어떤 년대, 어느 시기이든간에 대상(对象)을 상대(相对)로 비교의 메스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질제고와 상대적인 압축을 통하여 시적인 화자ㅡ 즉 오직 시인들만의 그 독특한 시어들을 나름대로 완성해 나갈수 있는 동기가 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시적인 화자는 흔히 시적인 대상를 상대로 비(悲)와 애(哀), 흥(兴)과 락(乐)을 즉 희노애락을 견인해 내기도 하며 또한 전률같은 공명감을 시줄기마다 차곡차곡 곡식처런 심어놓고서 수확의 계절에는 마침내 자타 모두 공인하는 감수로 오직 한가지에만 올인할수 있는 그 무언가를(주제ㅡ 중심사상) 모두 함께 고민하게끔 하고 있는듯 싶다.     이처럼 시어 배렬에서나 익숙한것들을 낯설게 하기, 낯선것을 익숙하개 만들기ㅡ이 면에서 강효삼선배님은 항상 사실주의를 기초로 끊임없이 초현실주의적인 시적 실험을 거듭하고 계시는듯 하며 남보다 발 빠른 그 움직임이 돋보이기도 하다. 제 3련에서/ 헌데 이런 반가운 정경쯤/아직은 어디가도 심심찮게 볼수있어/그닥 신비롭지 않는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마무리에서 발견할수 있는것은 어쩌면 하찮치만 귀찮치 않은 유혹 ㅡ 즉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두 얼굴의 농촌풍경 ㅡ 즉 /푸른 곡식포기 사이 요리조리 누비는/노란 병아리들의 모이 찾는 소리/를 찾아 나서는 시인의 모습이며 그 노란 병아리들의 앙증맞게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시인은 다시금 황금 덩어리를 련상하여ㅡ 잃어버린것과 잃어가고 있는것에 대한 애착으로 가슴이 뭉클하게끔 다시금 /닭 우는 소리 들어본지 오래인데/ 아직 그 어느 열심하는 이가 남아서 /"하찮은” 병아리까지 품들여 깨우는 / 만만한 여유를 보이고 있는가? /로 케뮤네이션을 잘 표현하고 있는것 같다.     그 다음 제4련에서부터 5련, 마지막련까지는 하늘과 바람, 구름과 산, 아련한 추억속에 떠올리는 우리 삶의 민속도(民俗图)로써ㅡ 바램이고ㅡ 동경이며ㅡ 아픔이며ㅡ갈증과 갈망 그 자체인것 같다. /여름이면 곡식들 무장무장 자라 마을을 덮고/흙만 아닌 구석구석 웅크렸던 적막/ 은 잃어버린것에 대한 날로 조급해져가는 본능적인 삶의 의식인것 같다. 이렇듯 강효삼선배님의 시속에는 언제나 겨레가 있고 삶이 있고 나가 있고 나 외에 또한 너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강효삼선배님은 항상 시적 대상을 가장 익숙한 곳에서 찾고 계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대상에 대한 지(知)는 보통 대상에 대한 인식의 결과에서 생긴것으로 보고 있지만 필자가 보건대 꼭 그렇치도 않다. 지(知)는 결코 대상에 대하여 그 어떤 작용도 하지 않으며 다만 그 대상과 너무 상사한것뿐, 이러한 견해를 유대상상설(有对象象说)이라고 하질 않던가?냇물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강물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호수가 모이면 바다가 되듯이 결국 작은것의 수런거림에서 살펴본 모습은 우리들의 가장 익숙한 민속도이다. 아련한 추억과 함께 읽어본 (저 작은것들의 수런거림에서)는 오랜간만에 읽어 본 좋은 시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올 한해 도 강효삼선배님이 더욱 많은 시작품들을 써내시길 진심으로 축원한다 2016년6월8일 심양에서
217    我们 一直 从 陌生到 熟悉 (外2首) 댓글:  조회:2380  추천:1  2016-05-23
我们 一直 从 陌生到 熟悉 沿着 这条 路 一直 走下去 那里 有 一颗 松树 还有 大海, 还有 会 说话, 会 唱歌的 石头。 小岛 在 不远处, 露出 白牙, 挥动着 双臂 游泳。 晚风 在 视野里 暧昧地 飘来飘去 却 一片寂静。 那里 其实 没有 一个 熟人。 但 我 感觉 这 世界 依然 很 熟悉 就像 面对 你的 微笑 那样 自然,豁达,开朗。 从陌生 到 熟悉, 从熟悉 到 疏远 我们 已经 遗忘了 多少 激情? 朋友,晴天 我 愿意 陪你 一起 去 天涯海角, 疲惫的 时候 回头 再 望一望 那条 幽静的 小路 , 默默 翻开 日记本 谱写着 一曲 (这 一生 你我 同行。) 憧憬 你 站在 夕阳下 微笑的 时侯 最 漂亮。 你 站在 屋檐下 听雨的 时候 最 忧伤。 如果 有 一种 爱 能 弥补 我们 心灵的 创伤, 我 愿意 陪你 站在 屋檐下 听一听 细物润声。 如果 有 来生 我们 还能 见一次面 我 愿意 化作 一只 蝴蝶 默默 陪伴着 你。 请 不要 跟我说 花的 世界 你 懂得。 请不要 跟我说 花的 世界 你 来过。 雨 总是 下着 我们的 心中 滋润着 我们的 心田。 生活 就象 花一样 一年 又一年 延续着 一代, 又一代 我们的 憧憬...... 天老 心不老 活到 现在 才 明白 爱也 可以 租赁。 活到 现在 才 知道 承诺是 最大的 谎言。 多少 日夜 让 我们 忆苦 思甜ㅡ 多少 日夜 让 我们 废寝忘食? 爱就 ㅡ 爱个 轰轰烈烈 恨就ㅡ 恨个 触目惊心 何必 ㅡ 那么 婆婆妈妈? 天老 我们的 心 依然 不老! 爱就ㅡ 爱个 你死我活, 恨就 恨个 天皇地牢! 春风 牵着 河水早 已 消失在 远方。
216    명상 88 (외4수) 댓글:  조회:1120  추천:0  2016-05-16
명상 88 (외4수) 어느 날 내가 죽은 후 나를 미워하던 모든 이들은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출것이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비 내리듯이 줄줄 눈물을 흘리리 그 다음 날 나의 시체가 싸늘히 서천(西方)을 우러러 몇자 깊이 흙속에 깊숙히 묻혔을때 나를 미워하던 모든 자들은 내 무덤을 손가락질 하며 잘코사니로 온갖 콧노래를 흥얼거릴것이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침묵으로 차츰 할말조차 잃어가리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나의 시체는 마침내 썪고 문드러져 한무더기 구데기들속에서 악취가 풍길 때 나를 미워했던 모든 이들은 의연히 내 생각에 가끔 분노를 금치 못할것이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깊은 밤 쪼각달이라도 쳐다보며 소리없이 한숨 지으리ㅡ 일촌광음(一寸光阴) 광음류슈(光阴流水) 그렇게 다시금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나의 무덤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백골마저 흔적이 묘연할때 나를 미워했던 모든 이들은 나의 이름마저 잊어 버릴것이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마저 나를 따라 하나 둘씩 무덤속에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으리 삼천번화(三千繁华) 공망일생(空忙一生)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 우리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아글타글 살아 왔던가? 나의 모든 노력은 이 세상의 한 그루의 나무, 한포기 풀조차 가져 갈수가 없고 나의 모든 아집(执着)마저 명예와 영예, 사랑과 애모, 허영심마저 가져 갈수조차 없는 세상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불쑥 깨닫고 나면 인생이라는것 고작 일장춘몽인것을 인생사는 고작 손가락 한번 튕길 사이ㅡ 길어봤자 백년도 채 못 사는 우리네 삶은 결국 먼지같은 환영(幻影) 어느 날 만약 내가 죽은 후 모든 사람이 즐거워 박수 치고 노래 부른다면 나는 다시 돌아와 한번 더 살아야 하리 그러나 그것마저 륜회(轮回)이고 운명의 수레바퀴임을 스스로 깨닫고 나면 비로소 나는 소풍같은 인생 즐겁게 잘 살다 가노라고 말을 하리 평생 흘린 눈물은 몇 동이? 평생 흘린 땀은 몇 동이? 만약 내가 죽어 부처가 아니라면 악마가 되리 악마마저 아니라면 성황당 돌담길에 곱게 핀 저 코스모스가 되여 일찍 나를 미워하던 모든 이들과 일찍 나를 사랑하던 모든이들에게 다시 만나 반갑노라 손 저어 인사 하리.. 연변 사람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그럭저럭 살았을꺼라 억측도 마라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비가 내리면 찬비속에 오또기처럼 우뚝ㅡ 부질없는 세월 장백산처럼 내두산처럼 아기자기 남편과 아내로 그렇게 평생을 살아 왔다 두번 다시 되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수조차 없는 세월을 후회해선 무엇하리 부지런히 걸어 앞만 보고 걸어 내 인생에 거치른 인사로 돌멩이를 던지지는 마ㅡ 요리 조리 잘도 빠지는 미꾸라지라 욕하지 마라 어슬렁ㅡ 어슬렁ㅡ 저 깊은 산속을 내려오는 승냥이 같다 꾸짖지도 마라 서러우면 서러운대로 꽃이 피면 하아얀 그 배꽃속에 짜그배가 아닌 사과배로 평생을 그렇게 남을 위해 살아 왔다 되 돌아가고 싶어도 두번 다시 돌아갈수조차 없는 우리네 인생 어이 없어 울고 분들 무슨 소용 있으리 후회없이 걸어 앞만 보고 걸어 내 인생에 늦은 인사로 돌멩이를 던지지는 마ㅡ 섬 머리털이 텁수룩한 바다에 가면 수많은 올챙이들이 뭍으로 ㅡ뭍으로ㅡ  기여 오른다 머리통이 제법 굵은 놈과 잔챙이들이 오구구 모여 들어 손으로 얼굴이며 수염을 쓰윽 딲고서는 난파선에라도 기여 오를듯이 첨벙거린다 생각이 너무 깊은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서면 익숙하리만치 생소한 저기 저 륙지마저 결국 크나 큰 섬인것을 시나브로 밀려 왔다가 썰물로 하얗게 사라지는 저기 인간들 사이 나 역시 볼품없이 쬐꼬만 하나의 작은 섬 ㅡ 섬에 사는 섬이면서도 섬인줄을 미처 몰랐구나... 고향친구 한 이백메터 쯤 너를 앞 두고 한 세상 파란만장 풀뿌리 인생 거칠게 살아오며 엉망으로 망가진 너의 모습에 나는 불쑥 눈물을 쏟는다 제 철에 흐드러지게 피여나 통통 물이 올랐던 손이며 팔이며 그 잘록한 허리며 웃을 때마다 살짝 ㅡ 볼우물이 곱게 패이던 그 삼삼하고 함함했던 옛모습은 아예 없구나 보기에도 민망하게  축 처진 가슴과 김빠진 축구공처럼 훌쭉한 엉덩이ㅡ 난 너를 알아 보았는데 넌 나를 그예 몰라 보는구나ㅡ 한 십여메터쯤 너를 앞에 두고 내 기어이 네 이름 다시 불러본다 숙이야 쌍태 머리 소녀와 손에 손을 잡고 학교 가던 고향의 그 오솔길엔 지금쯤은 함박꽃이 활짝 피였게지? 청산은 아니 늙었는데 너만 폴싹 늙었구나 가슴에 흘러드는 짜릿한 그 전률 오늘도 메마른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고향의 뻐꾹새 한마리 구슬피 운다 다시 만나면 어데서ㅡ 어떻게ㅡ 살든 너무 반가운 고향 친구여ㅡㅡ 코스모스 아ㅡ디ㅡ다ㅡ스ㅡ 신발에 나이키 츄레닝에 두볼이 불그스레한 그리움 한입 물고 달려 갈듯이 달려 올듯이 한 자리에 점잖게 서 있구나 반나절씩 자글자글 들끓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마저 늦은 밤 자장가 삼아 풀뿌리 사이 사이 거름으로 뿌려두고 비 내리면 다소곳이ㅡ 해가 뜨면 손나팔 나풀거리며 여기 저기서 방실방실ㅡ 나를 반겨 손 저어주는 고향의 코스모스여 상처 제발 만지지를 마라 피 고름 흐른다 제발 건드리지를 마라 입안에 골똑 고였던 분노가 쾅쾅 터진다 내가 살아온 동안의 그 모든 진실과 내가 살아온 동안의 그 모든 거짓과 내가 살아온 동안의 그 모든 사랑과 내가 살아온 동안의 그 모든 저주를 그 누군가와 마주서서 이야기 할수 있을때 우리들의 상처는 아물리 너는 한국인 나는 이붓아들이 아닌 중국 조선족 제발 좀 물고 빨고 어루 만지지를 마라 구멍이 난 량심에서 짜증이 불쑥 튀여 나온다
215    명작이 계란장수보다 많은 시대 댓글:  조회:1371  추천:1  2016-05-16
나는 여직껏 명작을 본적이 없다 흑룡강신문 진달래부간 한국특집에 부치는 편지 문학비평 허인    작년 이맘때부터 시작하여 (시의 향기에 빠지다)로 국내 조선족 20여명 중견시인들의 시작품들을 매기 단평과 함께 꾸준히 실어오다가 며칠전 채복숙편집님이 대담하게 한국 5명 당대 시인님들의 시작품과 작자략력을 야무지게 소개한적이 있다. 덕분에 한수 배우는 자세로 착실히 읽을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여 필자로서는 너무 다행스러웠다고 말을 해야 할것 같다. 중국 조선족 중견시인님들과 한국 기성시인님들의 시 작품 비교,  어불성설,- 어쩌면 너무 재미나고 어마어마한 화제가 될지도 모를 이 비교 , 언젠가면 누구라도 꼭 파 헤쳐야 할 이 과제 , 그만큼 건드리기조차 너무 민감하고 실력 차이도 많이 나는 만큼 우리의 문학 지성인들이나 평론가들은 툭 까놓고 말하면 욕을 먹기가 싫어 언감생심 감히 평론조차 시도해본적이 없는 줄로 알고 있다. 손자병법에 ( 지피지기는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战百胜)이라는 구절이 있다. 분명 한 피줄이면서도 너무 오래도록 떨어져 지내다 보니 저희들은 저희들 식으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식으로 제각기 험난한 문학의 가시밭길을 걸어 온것만은 사실이다. 백문불여일견이(百闻不如一见)라고 그럼 여기서 우리 다 함께 우선 먼저 흑룡강신문 진달래부간에 실린 한국인특집부터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사랑은 오밀조밀한 다정함이 아니라    꽃장식과 톡톡 튀는 빛갈이 아니라    저 무변의 강물, 선으로 온다    산등성    그 아픈 허리를    오래도록    만지는    달  이지엽 시인의 ( 달 항아리) 전문 /직선의 힘으로/남자는 일어서고/곡선의 힘으로/녀자는 휘여진다/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집이 된다/직선은 길을 바꾸고/지도를 바꾸지만/곡선은 그 길우에/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 사랑의 이미지ㅡ(직선과 곡선의 힘) 전문  이 두수의 시를 살펴보면 형이 상학적인 그 은근함과 섬세한 부드러움이 생기를 발산하고 있으며 크나 큰 힘의 원천이 되고 있는것을 발견할수가 있다. 물론 거창하지도 또한 거론적이지도 않다. 확실한것은 실용주의적인 그 오밀조밀한 구조, 더우기 측면적으로 살펴볼때 단재적인 그 립각 효과때문에 더욱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것 같다.( 사랑의 이미지)에서 /직선의 힘으로/남자는 일어서고/곡선의 힘으로/녀자는 휘여진다/는 이제 하루를 더 살지라도 하늘아래 자존심 하나로 꿋꿋이 우뚝 서야 하는 남자들의 강인하고 근엄한 형상과 산에 막히면 넌짓이 에돌아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드러운 녀자의 지혜로운 그 형상을 한눈에 들여다 보이듯이 생동한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놓은것 같다. 시란 이렇게 미사구려식이 아니라 간결함의 극치일수록 더욱 좋다. 서지월시인님은 조선족 문인이라면 누구나 그닥 낯선 분은 아닌줄로 알고 있다. 중한 수교전이던가 그 이후이던가 중국을 첫 방문하고 사실주의 시와 초현실주의 시들을 흑룡강신문에 발표하신적이 있는 줄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좌우간 산에 가면 산 노래, 들에 가면 들노래, 바람을 만나면 바람을 읊고, 구름을 만지면 구름으로 집을 짓고 또 어데론가 정처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세상을 읊고, 삶을 읊고, 령혼을 읊는것이 시인들의 공통한 운명인가 본다.이번에 한국시인특집에 실린 서지월시인의 근작시 3수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것과 감각적인것과 직감적인것에 별도로 추억을 가미시켜 희미한것이 아니라 직접 살갗이 만져지고 호흡이 서로 느껴지도록 오직 나만의것, 오직 내것으로 독특하게 매수의 시작품을 완성시킨것 같다 美人이 많다는    할빈에 와서    내 프리지아 꽃향기 같은    이국정서 느끼네    中央大街에는    青石으로 바닥을 깔아    구두발자국 소리뿐만아니라    날씬한 종아리 탄력의 소리까지    들리는것 같아    할빈에는 아마    송화강이 그 美人들을 날마다 비추며 심심하지 않을테니    오늘은松花江에 나가    100미터 간격으로    美人이 걸어가는것 볼수 있다는    그녀들 종아리 따라 나설가 흩날리는 머리결 따라 나설가    *처음 할빈에 왔을 때, 고 한춘시인께서 송화강변에 가면 100미터 간격으로美人이 걸어가는것 볼수 있다고 풍자적으로 말한적 있음. (미인의 고장) 전문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추억과 회억은 쌍둥이 근친, 분명 동의어(同义词)이면서도 시나브로 가슴에 와 맺히는 그 함의는 시와 때가 다르게 무척 감미롭기도 하다. 사실주의를 기초로 나들이 길위에 튼튼히 정석으로 깔고 또한 그 위에 초현실주의 현란한 옷을 입혀놓고 한점의 산들바람처럼 5월의 이 속살이 간지러운 봄속을 무심히 행객이 지나가듯이 불쑥 운치를 알고 읊는 풍류는 과히 일품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상 싶다. (흑룡강련가) 역시 첫련에서/천년을 님 그리며 살아온/복사꽃 한 그루/로 아늑하게 서정적인 운률로 담담하게 시작하여 / 누가 버리고 간 무수한 돌멩이들의 웅성거림/여의주/ 달/ 등등으로 살아 천년의 그 길고도 험난한 풍상을 말이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시인의 아량으로 표현하려고 한것 같다. 모두다   알다싶이 6.25전쟁이후 한국은 미국의 영향과 참여, 호상 상호교류로 문학, 경제 및 다 방면에서 모더니즘시대를 가장 일찍 맞이하였고 그러한 격변시대의 모진 진통끝에 또한 유럽(구라파)의 심미주의자들의 심상주의 사상ㅡ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씨앗을 억척스레 자신들의 터밭에 뿌려놓고서 무궁화와 함께 울금향도 지극 정성으로 조심스레 오래동안 가꿔왔음을 누구나 쉽게 알수가 있다. 그것이 모미니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혹은 리얼리즘이든간에 이제는 자신들의 한개 쟝르로 말끔히 소화해내였으며 저 어두운 밤 하늘에서 뭇별이 반짝이듯이 제 각기 자신의 넓은 령역에서 푸른 빛을 발산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 반면 우리들은 어떠한가? 전례없는 십년 동란으로 마음에도 없는 정치적인, 구호적인ㅡ 시들을 겁없이 써내대가 개혁개방이후에야 비로소 현대적인 시 실험, 즉 몽롱시 고개를 가까스로 넘어 천신만고끝에서야 오늘에 이른 실정이기도 하다. 혹자는 간혹 환경의 차이와 그 렬악성을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곰곰히 살펴보면 환경이 렬악성은 그 당시 한국이나 중국이나 거의 똑 같은 상황, 비굴한 변명보다는 이제는 착실한 자기성찰과 뼈 저린 자기 반성이 더욱 시급하지 아닐가?     /그는 신간서적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낡은 쏘나타를 끌고 120킬로를 달려왔다/나는 기절할번했다 하기야 오늘뿐인가/사람들속에서도 나만 보고 걷는 아버지 곁에/나는 아이만 지켜보며 걷는다/떨어진 아이의 장갑을 주워주는/이 겸손한 남자의 사랑/그가 건네준 책은 다시 나의 램프다/당신이 사랑하던 책들은 내 책장에 꽂혀있다/당신의 언어는 나의 말속에 흐르고있다/혼곤한 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맡에 기대여/성탄의 기적처럼 새 작품을 생각한다/별이 빛나고 있다/   허혜정시인님의 (아버지의 선물) 심상시(心像诗)의 각도에서 살펴볼때 이 시는 엄격히 따지면 전형적인 고백시다. 시속의 화자인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마치 소설을 읽고 집필하듯이 주관적인 개인 정서가 아니라 항상 객관적인 립장에 서서 담담하게 나, 아버지, 그리고 내 아이와 삼자관계속에서 지펴 올린 생명의 촛불, 세상과 마주서서 두런두런 소근소근 이야기하듯이 력설이 아닌 진실한 생활속의 한개 단면을 절단하여 색채를 올리고 작은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커져버린 잔잔한 감동을 산사의 새벽 종소리처럼 떵떵 크게 울려 독자들의 심금을 바로잡고 있는듯 싶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옷 없는 짐승들처럼 골목 깊은 곳에 단둘이 살 때/우리는 가난했지만 슬픔을 몰랐다가을이 오면 양철 지붕우로 감나무 주홍 락엽이 쌓이고/겨울이 와서 비가 내리면 나 당신 위해 파뿌리를 삶았다/그때 당신은 내 세상에 하나뿐인 이슬 진주/하지만 행복은 석양처럼 짧았다/내가 흐느적거리는 도시 불빛에 익숙해지자/당신은 페에 독한 병이 들어 내 가슴속에 누웠다/지금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시간이 물살처럼 흐르는 사이/당신을 잃어버린 내게 남은건/상한 간과 후회뿐/그때 우린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나/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백열등 하나가 우리 캄캄한 밤을 지켜주던 나날/    방민호시인님의 (행복)역시 신변잡기가 아닌 일상생활속에서 힌트를 잡고 소재가공을 익숙한것을 낯설게 하고 낯선것들을 차츰 익숙하게 만들어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해야 할것 같다. 그만큼 낯설은 익숙함과 그 친근함이 (행복)이라는 이 시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양지예시인님의 (항아리)를 더 살펴보자    내 너를 들여다본다    고여있는 물속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    흔들리는 미간과 턱    바람속을 해메이던    겹쳐진 얼굴 하나 어둠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오랜 세월 고여있던 생각    그深渊의 끝    멀리서 빛이 달려오는 소리 들리고    푸른 날개 풀어놓은 잡히지 않는 꿈들 서서히 떠올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우리들이 흔히 자주 쓰고 있는 관념적인 시들은 거의 하나도 없다.어쩌면 사냥감을 마주섰을 때 주저없이 정확하게 예리한 비수를 들이대듯이 간결함이 극치를 이룬다. 군더더기들을 쏙 빼고 알맹이들만 밤상위에 차려놓은 진수성찬이라고나 할가? /내 너를 들여다 본다/어디선가 본듯한 모습/모두 다 알다싶이 무슨 일이나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순조롭기 마련이다./흔들이는 미간과 턱/어둠속에 웅크리고 앉은 얼굴/멀리서 달려오는 꿈/속에서 더 더욱 확고하게 완성이 된 인성화는 눈물이 어린 강인한 한 녀자의 형상을 견인해 내였으며 어쩌면 어쩌면 그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일수도 있다는 예감을 주기도 하며 그만큼 시제 (항아리)를 통하여 거울에 비춰 본 어렴풋하고도 싱싱한 그 모습은 살갗을 만지면 만질수록 새록새록 추억이 파랗게 봄풀처럼 돋아나듯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더욱 친근하고 익숙하게 하는것 같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흑룡강신문 진달래부간에 실린 20여명 조선족 중견시인들의 시작품은 심숙씨가 매기마다 촌평을 달아 놓았기에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으련다. 허나 대조해보면 확연히 그 차이점이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 명작이 계란장수보다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허나 무엇인가를 써야 겠기에 급급히 써낸것들과 알심들여 소재를 잡고 기획적인 시도끝에 령혼으로 혼불을 지펴올려 피와 살, 땀과 뼈를 깎는 각근한 노력으로 소중하게 이루어낸것과 어느 날 길가에서 문득 흥분으로 주어든 지폐와도 같은 차이점이라고나 할가? 솔직히 필자는 여직껏 그처럼 흔해 빠졌다는 조선족 시인들의 명작들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거의 모두가 틀에 박힌듯이 관념적인 형이 상학과 그 섣부른 미사구려로써의 글 장난, 더우기 독자들을 혹사시키는 명사 라렬,미처 채 읽기도전에 이마살부터 찌프려지게 하는 강조에 재 강조에 시린 한숨끝에 마시던 오차물마저 내려놓게 되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특히 이번 여기 한국시인특집에 실린 시인님들의 략력을 잠간 살펴보니 모두가 하나같이 대학교수님, 시인님, 평론가들, 많이 배워야겠고 열심히 더욱 노력해야 할것 같다.   언젠가 연변의 시우 리성철시인님이 우편으로 보내온 (당대 조선족 명시 작품집)을 읽고 허구프게 웃었던 기억이 또 난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북데기속에서 낟알을 줏듯이 읽어야 하는 그 번거로움, 아예 몰라버려도 그만인 시들이 대부분, 언제부터 우리 주변에 그렇게도 저명한 시인들이 많아졌는지 ?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에조차 아리숭할 정도ㅡ 장엄한 력사 앞에 언젠가면 너도 나도 스스로 부끄러워 저절로 깊숙히 고개 숙일 그런 날들이 그리 멀지도 않으리라 믿는다. 필자가 보건대 중국 조선족 시인들의 작품 중 명작은 아직 없다. 그래 김소월의 (진달래), (초혼),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 김춘수의 (꽃), 김수영의 (풀)과 같은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정말 있단 말인가? 백년이 흘러도 피와 땀의 향기로 살갗이 아닌 령혼에 와닿는 작품이 정말 우리들에게 있단 말인가?    매번 강효삼선배과 전화통화 할때마다 (난 죽기전에 꼭 한수의 시, 제발 딱 한 구절만이라도 제대로 된 시를 쓰고싶다...)는 그의 말씀이 항상 너무나도 인상적이였던것 같다. 선배로서의 충언같은 그 허심함에 또한 고개가 숙여지질 않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여기에 실린 한국인특집중의 시가 명작이라는것은 절대 아니다. 허나 좋은 작품들인것은 틀림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지자 오야 知知者悟也) 남을 제대로 알아야 승산도 큰 법, 멀지 않는 앞날, 여생에 제대로 된 조선족 중견시인님의 명작을 읽을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다시 한번 기도해본다. 2016년5월9일 심양에서
214    사랑이 내게 와서 문 두드릴때 (외1수) 댓글:  조회:1382  추천:1  2016-03-14
사랑이 내게 와서 문 두드릴때 (외1수) 사랑을 비 오듯이 하라 사랑을 눈 내리듯이 하라 사랑을 노래 부르듯이 하라 사랑을 꿈꾸듯이 하라 아픔이 없는 인생이 어데 있으랴 미움이 없는 인생이 어데 있으랴 사랑을 항상 마지막인것처럼 하라 하도 아파고 아파 어루만지면 상처마다 피고름이 뚝뚝 흘러내리고 덕지덕지 피눈물이 말라붙더라도 그것마저 당연하게 사랑하라 두번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록 않도록 그렇게 사랑하라 처음부터 우리 모두 그러했듯이 이끌면 이끌려 가는대로 두손을 맞잡으면 무작정 마음이 향하는 그대로 너 없인 더는 이 세상을 나 홀로 살아가야 할 아무런 리유마저 없었을만큼 그렇게 사랑하라 미움도 사랑하라 그리움도 사랑하라 기다림도 결국 사랑인것을ㅡ 사랑이 내게로 와서 살짝 문 두드릴때 나는 방문을 살짝 열고 달콤한 커피 한잔으로 산과 이야기 나누다가 바람과 이야기 나누다가 하늘과 이야기 나누다가 바다와 이야기 나누다가 구름과 이야기 나누다가 괜스레 얼굴이 가무잡잡한 풀들과 손발이 간지러워 멋적게 뒤통수 긁적이는 어리숙한 살구나무와 눈동자같이 맑은 가을 호수와 이야기 나누다가 사랑도 한철이라고 때 지나면 심드렁한게 사랑이더라고 누군가와 하루종일 두런두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싶다 구름 하루종일 멍하니 먼 가을하늘 쳐다보면 뭇산이 껑충껑충 달려와 내 발밑에 납죽 엎드린다 밟고 더 높이 올라 서라고ㅡ 가시내들의 간질간질한 웃음소리 봉두란발 그채로 동구밖에 서 있는 포플러나무 겨드랑이 어루만지면 바람이 든 세월이 까르륵 까르륵 호주머니에서 웃음 한보따리씩 꺼내놓는다. 통통 살쪄 오르는 향수 잔뜩 눈이 멀어 서러운 그리움이 개울 거너 모래밭길을 건너 가시밭길을 헤매다가 찔레꽃이 무궁화꽃과 서로가 서로를 너무 닮았다고 악수를 불쑥 청한다 다마치기며ㅡ땅 떼먹기- 하나로 세상을 골고루 평정했던 그 시절이 눈부시게 너무 그리워 태양의 눈굽이 어느사이 이슬에 또 축축하다 춥고 어두운 날이면 고향집 제비둥지에서 꾸벅꾸벅 새우잠을 자다가도 날이 밝으면 하얀 양떼들이 하늘밭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는다 아침마다 강물에 깨끗이 손을 씻고 아침밥 짓는 아낙네들의 순수한 모습 지켜보는 구름은 언제봐도 백의동포 이웃집 누나답게 정갈하고 풍만하다
213    ……路……(外6首) 댓글:  조회:2293  추천:2  2016-02-15
--路-- (外6首) 你,头也不回 在漫长的岁月长廊里 孤独,执着一直走下去 其实,你这一辈子 能不能走出 内心的痛苦和 烦恼,也说不好。 但你,半路回头 睁开你雪亮的双眼 勇敢面对困境, 参照着未来, 豁然开朗 又激动,又欢喜, 又感叹的时候 你已经接近了本性。 其实,人都一样! 每一次,你从你自己 最苦涩的记忆里 删除一些彷徨和犹豫 把小小的幸福移植在 你的心脏,生活, 微妙的旋律一直 陪伴着你最年轻的歌谣。 有些人,一辈子 一条路, 走得非常沉闷 有些人, 却一路欢歌笑语。 其实,天还是那么蓝 地,还是那么绿油油 路,依然还在你的脚下。 几代人 我说你兄弟,有时候 我该怎样评价你才好呢? 你总是那么好奇地问我 "你是韩国人吗?" 我说,"我不是!" 你迫不及待地再次追问我 "那你是朝鲜人吗?" 我无奈的再次告诉你,"我不是!" "那你是鲜族人吗?" 我真的有些很委屈地回答你:"不是! "那你是什么民族?" "我是中国朝鲜族。" "鲜族和朝鲜族不是一样的吗?" 我说你兄弟,我有时候 该怎么评价你才好呢? (你怎骂人也不带一个脏字的?) 每次误解过后我总是 想起风雨中默默走过来的几代人。 注:鲜族是日本侵占朝鲜, 侵华时 为了贬低,侮辱其他民族 把朝鲜族改称鲜族,比如中国 改称支那或者色目人,支那人。 点燃一根烟 这又是一个,繁琐而又 反反复复的动作。 这又是一个,阳光在喉咙里 独自徘徊的时刻 理性总在池塘边蹲着 思考着宇宙真理。 熏黑了的血液里 流淌着一颗又一颗 流星般的梦幻。 其实,我很简单 你点燃了思想,我就 萤火虫那样, 在黑暗的旅程中陪伴着 你的孤独闪闪发光! 审判 我站在白桦林穿着 一件白云的衣裳 戴着一副大地的眼镜 手里拿着一张镀金的沉默 徘徊在天堂和地狱的门口。 这里有古老的象形文字 这里有石头般坚硬的信念。 这里有一张又一张 早已填写好的 人生考卷和 几滴苦涩的眼泪。 我知道我的血液里依然流淌着包容。 宽容,再次告诉我们 我们可以携手理性和尊严在 生命旅程思维范围中 一步又一步艰难前进。 风,时刻告诉我们该停住呼吸 淡然目送昨日的太阳, 海鸥,也时刻再次提醒我们 飞过苍茫大地, 飞过波涛汹涌的太平洋 才算是风雨兼程。 你,每天都在谋杀着我的思想, 我,每天都拉黑你的格言。 我站在白雪皑皑的雪山脚下 依然苦苦等待心爱的人 可天堂和地狱门口 仍然找不到你的踪影。 这就是,神最冷酷的审判 这就是至今我依然在 红尘一次又一次等你的理由…… 回家 1 一群  又一群 暂新的楼群 孤独 站立在 空荡荡的 城市 边缘 一闪一闪的 路灯 点缀着 绵延的道路, 忽明忽暗 正暗示着 这是一个 非常 不寻常的 夜晚 晚上十点钟 小区的 一个角落 简易的工棚里 走出来一位 焦额烂泥 衣衫破旧的 拾荒者 他背着 一栋 又一栋 大楼的 影子 艰难 回家。 急促的 呼吸声 久久回荡在 幽灵般的城市 上空。 也许这世界 早已忘记 他们的存在? 一直伸向 不知名的 巷子尽头那边 有一个 腼腆温柔的少女 正在等待着 早已过期的 祝福和美梦! 贺兰山上 我说你牦牛啊 你怎么 不在草原, 跑到这里啃岁月? 难道你把 草原的风 草原的云 草原的鹰 草原的风景, 早已都忘记了吗? 我说你骆驼 你怎么 不在戈壁滩 跑到这里逍遥自在? 难道你把 沙漠的风 沙漠的云 沙漠的狼 沙漠的沙蔗 早已都忘了吗? 这里有 会走动的石头 这里有 会燃烧的石头 这里有 会说话的石头 连一根草 都不长得 贺兰山上 我在观看 古老的岩画 脑海里却出现 很多疑问? 我为什么来到 这里受感动? 历史 就像 鸦片 总是让我 一片 茫然! 杭州云栖竹径 这路 我也走过 这竹叶 我也摸过 这空气 我也呼吸过 每天, 西湖碧蓝的天空 依然在 我脑海中徘徊 若你是 长途跋涉而来的 游客, 请把你的苦恼 放下来, 带走一片 本应该属于 你自己的风景 若你是常客, 请把你的幸福留下来 分享给一批 又一批 后来的人们! 我不敢说 我是高僧大德 更不敢轻易说 轮回之苦 但我知道, 我 前生肯定来过这里!  杭州,云栖竹径 清凉幽静, 叮咚溪泉 小亭, 还有古老的真迹寺 山上喝一杯 西湖龙井 晚上,从九溪 下山,低头俯瞰西湖全景 仿佛天堂在人间!
212    그랑께 (외2수) 댓글:  조회:2021  추천:1  2016-02-06
그랑께 (외2수) 그랑께 먼 말인가 하문 말이여 새해 첫날인디 머락꼬 지랄같이 혼자 자꾸 씨벌여 대지를 말랑께 우메ㅡ 기똥차게 눈이 푸욱 내려버린 저기 저 퍼런 잔디밭에 점잖게 내려앉은 참새떼 한무리 저들끼리 쎄라 쎄쎄 뭐락꼬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씨불ㅡ씨불ㅡ 씨벌여 대고 있당께! 풀들의 공화국에서 내가 이제 뭇지게 총리를 해부리게 당께ㅡ 북간도라 땅끝 백년부락에 살그머시 내려가문 토끼덜의 뜀질은 아니다라도 억새풀에 쑥대라도 다문다문 썪어 꽃다발로  기예 안겨주소잉ㅡ 눈깔에서 왈칵 눈물이 날가 말가 해부리면 공연히 돌아서서 늑장 부리는 귀가길 ㅡㅡ 그랑께 싸게 싸게 꽹과리며 새장구를 미운 자슥 잔등 짱짱 두드려 가덧이 울끼리 한마당 놀아 부리장께ㅡ 어메, 무슨 마르 그라케 본때없이 해 부린당께? 그랑께 뭔가 하문 설날인디 바들바들 앓지두 떨지두 말구 싸게 싸게 제꺽 제꺽 행복 하시랑께잉ㅡ 페타이어 헤여져야 할때쯤이 되면 헤여지자 오스랍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감각은 페타이어의 한숨뿐이다 검은 머리 검은 탄식 ㅡㅡ 지장왕보살님이 십팔층 지옥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다 영광의 사리탑엔 부처님의 우둘투둘한 법글이 념불로 줄레줄레 줄 서있다 어데로 정확히 오갈데 없이 제 멋에 목이 메여 타령이 되여버린 아리랑 썪은 살이 손발을 허우적이며 땡볕속에서 일어서려고 몸부림친다 여보세요ㅡㅡ 뽄뽄 다리아 잘 익은 고독은 쓴맛인가요? 단맛인가요? 덜 익은 감 하나 툭 하고 페타이어속에 떨어진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부처님 념불을 열심히 중얼중얼 따라 외운다 설 분명 말라 비틀어진 뭔가 있다. 분명 아주 아주  비참하게 말라 비틀어진 그 뭔가가 억새밭에 한참 웅크리고 앉은 한마리 새끼노루처럼 그 말랑말랑한 두눈을 어슴프레 뜨고 있다 왜긍에서 杏树에로 가는 펄길위엔 오랑캐꽃이 아닌 샛노란 씀바귀꽃들이 아슴아슴 피여 있을거다 목 마른 장님이 정지방을 지나 부엌으로 물 찾아가듯이 살색이 짙은 그 虚空속에서는 아그날 그 뭔가를 또 발견이라도 하려는듯이 허름한 옷장안을 두리번거리며 태양이 하루종일 광장에서 탱고며 왈쯔를 췄을게다 탱고며 왈쯔도 이제는 왕따라네욧 싱싱한 거품을 물고 눈굽이 곰탱이처럼 퉁퉁 부어오른 화물차들이 손에 손잡고 남북으로 분주하게 달려간다 매각된 시선을 따라 거세된 축복은 어느 집 석탄무지며 두엄무지에서 아물아물 눈물로 피여오르고 쓸개며 간을 다 떼여놓고 마우재령을 지나 먼곳으로 돈벌이 떠났던 아지랑이 털썩털썩 마을로 되돌아 오고 있다  
211    계림에 가보셨습니까? 댓글:  조회:2267  추천:2  2016-01-30
계림에 가보셨습니까? (外2首) 보리밭을 아십니까? 꿩들이 푸덕이면 가난의 하얀 속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던 그 메밀 꽃밭을 바람과 함께 가로 질러 쪼각달마저 낯 뜨거운 정사에 면사포로 슬며시 얼굴을 가리고 한마리 개구리 되여 쉼없이 벌판을 폴짝폴짝 뛰여가던 목릉하ㅡㅡ 한살배기 어린 아이 잠투정을 쇠꼬챙이에 살짝 꿰여들고 콧노래 흥얼거리는 거인의 콧등만큼 우뚝 솟은 鸡冠山 그 아래 진달래꽃 울긋불긋 까아맣게 기지개 켜면 해 뜨는 동쪽에서 마침내 수탉이 홱홱 볏을 내 휘두르며 멋지게 첫홰를 치는 계동에 가보셨습니까? 나즈막한 흙 둔덕마저 독산이라 불리우는 계림에서 다시금 살이 통통 쪄 오를듯한 찰진 진흙길을 따라 밀산쪽으로 또 십여리 길 학모며 영광촌 그 먼저 내가 태를 끊고 태여난 중흥이라 단결촌 계동을 아십니까? 계림에 가보셨습니까? 살아가는 동안 발걸음 먼저 항상 마음이 달려 가는 곳, 죽어서라도 넋 하나 달랑 가방에 챙겨 넣고 빈손으라도 기어이 찾아가고픈 내 고향 계동에 가보셨습니까? 내 고향 계림을 아십니까?... 아버지 1  하늘이셨고 땅이셨고ㅡㅡ 바람같은 존재이셨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우물이셨고 깊은 호수이셨고ㅡㅡ 바다같은 존재이셨음을 이제라도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비록 예수 그리스도나 부처님처럼 거룩하고 위대하진 않으셨더라도 단단한 그 어깨에 쪽지게 짊어지시고 압록강, 두만강물 첨벙첨벙 건너 도라지 아리랑을 흥얼이시며 모래밭, 가시밭길을 맨발로 투벅투벅 걸어오셨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단 하루 더 살지라도 이제는 결코 당신을 닮지 않고서는 내 살아온 하루하루가 쑥스럽고 부끄러워 당신의 무덤앞에 두 무릎 털썩 꿇고 흐느끼며 마침내 깨우치게 해주소서 밝은 거울이셨다가 파아란 한오리 연기로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ㅡ 눈물이 없이는 결코 한구절, 한글자 제대로 읽을수조차 없는 장편소설이셨고 서사시였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ㅡㅡ 깨닫게 해주소서... 아버지 2 대들보에 목 매달아 언녕 죽어버려야 할 그 모진 가난 전설로 흰 보자기에 고이 싸드시고 두만강, 압록강 건너 씨베리아 찬 바람에 하얀 뼈 가대기로 시퍼렇게 갈아 혈연의 강줄기마다 새록새록 가훈 아로새기며 삭막한 이 땅에 첫ㅡ 보습을 푸욱 깊게 그렇게 박으신 울 아버지, 고국으로 타향으로 대도회지로 ㅡ 모래알처럼 뿔뿔히 흩어져 떠나가는 자식들 손 저어 바래여 주시며 어데 가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더라도 고향은 잊지 말라 그렇게 신신당부하시던 울 아버지ㅡ 아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바람따라 구름따라 어디론가 정처없이 터벅터벅 또 떠나가야 할 서러운 내 인생, 고향의 뒷산에 이제는 무덤으로 고이 누워 계실 울 아버지 한일평생 모진 가난에 등이 고스란히 휜 우리 아버지 죽어서도 앞산을 우러러 어나제나 언제 오나ㅡ 이 못난 자식들을 그렇게 애 타게 기다리고 계실 목릉하기슭의 한 그루 비술나무로 찬비속에 홀로 서 계실 우리 아버지ㅡ
210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댓글:  조회:3501  추천:1  2016-01-30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되고싶구나 어느 양로원 바람벽에 붙여놓은 한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 진대혜 작 허창렬(번역) 아들아, 어제도 나 홀로 시장에 나가 장사꾼들이 팔다 버린 남새 껍데기들을 골라 빈 상자에 주어 담다가 부주의로 한 아가씨의 예쁜 옷을 어지럽히게 되였는데 그 아가씨가 모질게 “빌어먹을 노친네,줍긴 뭘 자꾸 주어대? 개보다도 못한 주제에...” 하고 욕을 해대더구나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기뻤단다 왜냐하면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개가 되고싶기 때문이란다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되고 싶구나 네가 좋은 일자리 찾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마침내 예쁜 색시까지 얻어 자가용에 채색텔레비죤, 랭장고까지 골고루 갖춰놓고 남 부렵잖게 잘 살고 있을때 우리는 아직도 비 내리면 크고 작은 대야로 빗물을 받아내며 지붕이 무너져 내릴가봐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단다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되고 싶구나 몇날 몇일 너의 전화 한통만 기다리다 지친 날이면 넌 불쑥 전화로 "요즘 전화 비용이 엄청 올랐다"고 한참씩 타발을 늘여놓군 하였지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넌 주저없이 너희 집 개가 먹을 량식부터 장만하더구나 요즘 너의 아버지는 천식에 잔소리까지 무척 심해졌고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건망증이 더욱 심해져 가는것 같구나 누렇게 색 바랜 사진속에서 어렸을적 너의 귀여운 모습을 자주 들여다 보며 아들아, 난 언제면 너의 집 그 개 밥 그릇속의 진수성찬이라도 마음껏 배불리 얻어 먹을수 있을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새벽녘에야 어슴프레 잠이 들곤 한단다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한 마리 개가 되고 싶구나 추운 날이면ㅡㅡ 넌 어김없이 애완견에게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영양품에 고운 옷까지 사 입히더구나 너의 아버지도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날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듯 싶다 며칠전, 배추절임을 할때 소금을 넣고 또다시 사탕가루를 뿌려대더구나. 그리고 이제 더는 기울가치조차 없는 헌옷을 기워주지 않는다고 가끔 노발대발하시지.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되고싶구나 저녁마다, 넌 너의 집 개를 이끌고 매일 공원이며 거리에 산책을 나가더구나 개는 앞에서 살랑살랑 꼬리 흔들고 너는 뒤에서 설레설레 머리 흔들고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이더구나. 아들아, 언제면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강변 유보도라도 함께 산책할수 있겠니? 너의 아버지는 팔 다리마저 매우 불편하시여 이제는 자체로 움직이기조차 어렵고 나의 오랜 풍습병은 시간이 하도 오래되여 아마도 지금 네 나이와 비슷할것 같구나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되고싶구나 어느 날 갑자기 너의 집 개가 미쳐 날뛰자 너와 며느리아기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듯이 부랴부랴 애완견병원으로 달려가 진찰을 의뢰하고 백금(白金)、견보(肾宝)、 포도탕(葡萄糖)을 있는대로 한 뭉터기 사들이더구나 어느날, 너의 아버지 천식병이 도져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을때 나 혼자 어쩔수가 없어 쩔쩔 매고만 있을때 다행히 맘씨 착한 이웃집 도움으로 간신히 침대에 다시 눕힐수가 있었다 절강성의 몇몇 녀자애들이 라이터로 강아지를 불 붙여 죽이고, 고양이를 짓밟아 창자까지 흘러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는 너무 격분하여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들, 아예 그 온 집안을 몰살시켜야 한다 "고 한참을 떠들어댔다고 하더구나。 "개도 생명이다. 어떨때에는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  아들아, 네 말이 조금도 틀리질 않구나 내 생각에도 개 한마리 기르는쪽이 아글타글 무정한 아들을 기르기보다 훨씬 나아보이는구나 아들아 , 기억해두거라 천하의 미욱한 개도 제 새끼만을 제일 이뻐한다는것을 못난 어미에게도 이제는 한가지 소망이 있단다. 래생엔 꼭 너의 집의 한 마리 개로 태여날수 있게끔 다자다비 부처님께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어볼게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한마리 개가 너무나도 부려웁구나 ~살아 생전 개보다 못한 취급을 하다가도 죽어서야 조상으로 버젓이 섬기지 말고 설 명절이 아니더라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들께 자주 전화 한통이라도 제때에 드립시다~
209    고향 (외1수) 댓글:  조회:2143  추천:5  2016-01-22
고향 (외1수)   올 때는 몰랐더라 그 흔한 이유마저 나는 정녕 몰랐더라   갈때는 알고나 가리 매화꽃이 피고 지는 그 괴로운 까닭이라도   한평생 남부렵잖게 잘 먹고 잘 살았노라 떠들지도 마라   잘 나고 못났어도 갈때가 되면 어김없이 누구나 떠나가야 하는 이 세상 그 또한 복인줄 이제와서 너무 서러워 나 어떡하리   푸르청청 청산은 제 아니 늙는줄로만 알았더니   허옇게 드러난 상처-- 빗물로   씻어 내리며 나와 함께 소리없이 늙어가네   연변의 산 연변의 강 연변의 구름 연변의 진달래   아ㅡ아ㅡ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머리   꿈결에도 그리운 내 고향산천아 고향은 이유도 없이 이젠 나를 몰라버리네   갈가 말가 갈가 말가 그렇게ㅡ 부옇게 밝아 오는 새날들... 고독     젊은 물이 늙은 불의 가슴 두드리다 악수를 청한다 과부의 보라빛 하늘에 걸어놓은 저주의 그물 한오리 청승맞은 악마의 푸른 심장을 퍼렇게 녹이 쓴 휘파람소리로 꽁꽁 묶어  새벽에 건져 올린다   순결의 반흔, 출혈의 통증 ㅡ 뼈에 사무치는 검푸른 파도소리 짚신을 신고 쪼각달이 상사의 강물을 첨벙첨벙 건너서 산으로 다시 올라간다   맥이 탁 풀린 계절, 거위털같이 푸실푸실 쏟아져 내리는고독을 아버지, 어머니의 골회처럼 이 땅우에 쥐여뿌린다 반쯤은 너무 늙고 반쯤은 아직 너무 젊은 말라르메, 발레리의 아우성을 칼바람이 사탕껍질에 곱게 싸서 길섶에 불쑥 내다 버린다 은유와 환유의 배꼽에서 금방 떼여낸 역모의 그 검푸른 물을 이제 우리 함께 마셔버리자   한 토막 또 한 토막 눈물로 깁스된 우리들의 사상은 해변의 어느 섬가에서 비릿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적막을 우유로 마시고 역마같이 커온 녀자의 고달픈 삶이여 해파리의 그 밝은 유혹속에 잘 제련된 소라 껍데기같은 언어의 로고스여- 달빛아래 메마른 풀대처럼 남자는 하루종일 초라한 진실앞에 작대기처럼 꿋꿋이 서있다 젊은 물이 먼저 가슴을 두드린다 늙은 불이 마침내 사랑앞에 비칠거린다 
208    송구하고 영신하며 부끄럼없는 삶을 사는 시인 댓글:  조회:1831  추천:2  2016-01-22
송구하고 영신하며   외 2수   (할빈) 한영남   질항아리같이 잘 다듬어진 앙증맞은 슬픔을 선사해주고 너는 세월의 어디쯤에서 행복을 엿처럼 빨고 있니   소식 없어 주소를 몰라버리듯이 내 기억의 빨래줄에서 색바랜 친구야   오늘만큼은 너를 떠올려 어깨 나란히 오이라도 아삭이고 싶구나   우리를 위한 단 한줄의 위안이여 다급해진 요즘을 아닌보살하고 살아가는 우리   행여 길을 가다가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스치지는 말자   우리의 진실을 질투하는자를 우리의 터전에서 추방하여 우리 서로 다가서서 서로의 눈동자속에서 진심을 심어보자   아아 저무는 통증이여 아아 다가오는 황홀함이여   상처도 비명을 지른다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지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상처들을 가지고 있지   상처들은 그것이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몸밖 또는 몸속에서 일제히 입을 다물고   아픔만 전달해주지   진저리치도록 아픈 감각이   신경줄 타고 흘러   마침내 전달받은 대뇌가 분노하게 되지   만일 우리의 상처들이   어느 날 그 상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면   상처의 비명소리는 얼마나 클가   찢고 발기고 찟찧이고 비틀며   생겨난 상처들이 그 괜찮게깊은 상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름다면   내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만큼 클거야   지금 그대를 보낸 내 심장이 찢어지며   내는 소리만큼   기쎄 길더라   기쎄 길더라 내사 아니   걍 남들 하는 소리 들었지 지난 바람 사납던 날 밤 새벽까지   그 집에서 울리던 소리가   방아찧는 소리엿다구   내사 아니   걍 남들 그러니 그런갑다 하는거지   아니라구   아닐수도 있지무   하긴 애들 있는데 단칸방에서   방아 어떻게 찧니   큰일날 소리지   해괴망측한 소리두 많지   내사 아니 걍 남들 그러니 그런갑다 했지   나두 믿지 않지   내가 그걸 왜 믿니   진짜라구   정말 그랬다구   애들 친척집 보내고 그랬다구   기쎄 내 말이 기쎄 다들 길더라   내 길줄 알앗다   와늘 띤따라 쿤바빠 와장창이구나   옆집 철수 못잤겠다   철수 부실한게   각시두 한국 가구 보토린게   그 소리 듣구 가만잇엇다더니   그랬겠지   나같았음 없다   그저 왕바단이다   티비소리였다구   그게 야동 보는 소리였다구   기쎄 내사 모르지   다들 길더라   그땜에 공안에서두 왔댔다구   기쎄 길더라   기쎄 길더라니까 송구하고 영신하며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시인 문학비평 허인       다산작가 한영남시인의 근작시 (송구하고 영신하며), (상처도 비명을 지른다면),, (기쎄 길더라)는 인성을 심플하게 통제 가능하게끔 자기패러디적인 감오를 심상(心相)으로 업그레이드시켰으며 또한 마인드 컨트롤로 전반 시적인 흐름과 그 의식이 맑은 하늘아래 하얀 돌다리아래를 조리졸졸 흘러가는 정갈한 시내물과도 같이 오직 우리 민족만의 그 독특한 가락과 정서들을 억수로 기 막히고 순수하게 한폭의 그림으로 완성해놓고서 질박한 삶의 근원을 예리하게 송두리째 파헤쳐놓고 관용(宽容)으로 조심스레 고스란히 가슴에 껴안은듯 하여 흥분으로 설레이는 우리들의 삶의 바다가 한눈에 훤히 너무나도 잘 보이는듯 싶다. 어쩌면 꿈속에서라도 찾고픈 몽경(梦境)같은 삶의 원천 인 그 바다는 또한 자연순산이라는 우리들의 회심의 미소와 함께 가끔 회색구름도 보이고 또한 흰 갈매기도 불쑥 보이며 조심스레 옷깃을 여미는 바람과 우중충한 산그림자와 자연이 그대로 선명하게 보이는듯 하여 더욱 심오한 각광을 받는듯 하다.        어쩌면 적막강산에서 홀로 똑딱거리던 발걸음소리를 문득 멈추고 발뒤축까지 죽여가며 침묵으로 나눌수 있는 대화, 력설보다는 독백을 위주로 줄곧 일관되게 삶이라는 넓고도 좁은 그 울타리에서 예감과 직감적으로 모드것을 느끼게 할수있는 세월의 그윽한 그 향기는 봉선화나 라이락처럼 담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활의 고민과 고초에서 오는 그 비릿함에 조미료를 살짝 섞어놓아 인지상정(人之常情)인 희노애락을 쓰고 달고 맵고 신맛이 그대로 혀끝에 감돌아지도록 사골처럼 고스란히 잘 우려낸듯 하다.        /질항아리같이 /잘 다듬어진/앙증맞은 슬픔을/선사해주고/너는 세월의/어디쯤에서/행복을 엿처럼/빨고 있니/에서 질항아리, 앙증맞은 슬픔, 세월의 어디서쯤에서ㅡ행복을 엿가락처럼ㅡ이 표현은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의 한 단락이 한꺼번에 달콤함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 소식 없어 주소를/몰라버리듯이/내 기억의 빨래줄에서/색바랜 친구야/를 파도가 송사리를 뭍에 떠밀어 올리듯이 친근하고 익숙하게 견인해내여 전반 시적 흐름을 두 눈을 아예 감고서도 절대적인 감각만으로도 피부에까지 절실히 느낄수 있도록이 설정이 된듯 하며 /오이라도/아삭이고 싶구나/단 한줄의 위안/다급해진 요즘을/아닌보살하고/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질투, 터전, 추방, 눈동자 진심이라는 익숙하고도 친근한 낱말들을 /저무는 통증/다가오는 황홀함/으로 송구영신을 깁스하여 또 한해의 번거로움과 싱그러운 감촉을 단 한마디 시원섭섭으로 재치있게 속사를 마무리한듯 하다         한영남시인의 근작시에서도 언어 마술 효과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듯 싶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지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상처가 비명소리를 낸다면)에서 독자들이 눈으로 귀로 피부로 보고 듣고 느낄수 있는것은 아마도 감각적인 경험에 의한 소리의 균형이며 그 조합인듯 싶다. 그렇기때문에/크든 작든 깊든 옅든/많든 적든/이라는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러울만치 예감, 직감, 촉감, 감각에 의한 그 심령의 고요한 목소리는 어쩌면 잠시 삶의 모종 현장에서 산뜻하게 징소리, 꽹과리, 새납소리로 성큼 바람에 란무하는것이 아니라 허심하고 절주있게 리듬이 류창해져가는 익숙한 삶의 장단에 나란히 줄을 맞춰가면서 흥겨운 한 마당의 농악무를 질서정연하게 연출시키는듯 하며 어쩌면 깊고 큰 상처와 비명소리일지도 모를 그 모든것을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하얀 종이로 알락달락 포장하여 누구에게나 귀중한 선물로 될수 있게끔 품위를 한 단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린듯 싶다.     이렇듯 각본이 잘 짜여지고 사유가 잘 다듬어진 아픔이고 상처다보니 /몸밖 또는 몸속에서/일제히 입을 다물고/아픔만 전달해주지/ 또한 혼자 슬그머니 /진저리치도록 아픈/ 감각이/신경줄 타고 흘러/마침내 전달받은/대뇌가 분노하게 /되며 그렇게 아픔보다 치유를 목적으로 한 상처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는/찢고 발기고 짓찧이고/비틀며/내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만큼 클거야/와 비교를 적극적으로 시작해가면서 결국 제일 마지막 련에서는/지금 그대를 보낸 내/심장이 찢어지며/내는 소리만큼/이라는 독백과 력설의 색채뿐만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적극적인 진지한 삶의 태도로 인고와 인내의 번거로운 련습끝에 마침내 상처의 구멍들을 한뜸 두뜸 바늘로 기워 치유의 효과에 발렌스를 맞춰가면서 투철한 인생감오에 경험이라는 성숙되고 한결 더 승화된 령혼의 울부짖음을 편승시켜 세상에서 제일 고요하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는 오직 침묵으로 일깨워주는 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만남임을 차원높은 각오로 독자들을 일깨워주려 한것 같다       (기쎄 길더라)의 경우 함경도, 경상도, 평안도식의 사투리와 지방방언들이 순차적으로 라렬되여 있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거친듯하면서도 세련미가 돋보여 혼자말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랩을 듣듯이 록음기의 재생버튼을 여러차례 눌러 놓은듯 하여 점차 귓가에 쟁쟁해지는듯한 그런 특징이 있는것 같다. (기쎄 ),(내사), (걍), (와늘)은 아직도 시골에서는 어렵잖게 들을수 있는 지방방언들이여서 읽을수록 중독성이 강하여 반갑기도 하며 (띤따라 쿤바빠 와장창이구나)는 오늘날의 현대음조에 각성이 타령을 접목시킨듯하여 류행효과를 띌것도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외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내뱉었을직한 부실한게와 우습광스레 직역된 (왕바단)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서로 눈맞춤을 하여 그 희곡적인 효과가 한층 더 가미되는듯 싶다.        이상에서 살펴본 한영남시인의 근작시 3수에서는 고정된 삶의 틀에 랭보의 옷을 입히고 말라르메의 장갑을 끼워 언어 마술의 매력을 나름대로 구사하고 재현해보려고 하는 각근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미숙한 점이라면 독백과 력설이 주류이다보니 강조의 뜻으로 반복된 구절이 있어 잘된 점과 함께 조금 미흡한 점도 존재하는듯 하다. 현대사상으로 씌여진 시들을 모두 현대시라고 불러도 무탈할것 같다. 한영남시인의 변화는 그 조짐이 날로 한박자 빠르게 진행이 되는듯 하여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송구영신하며 기쎄 래년에는 상처가 내는 비명소리보다 더욱 우렁찬 웃음소리가 신문, 잡지에 따뜻한 묵향으로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2014년12월27일 심양에서
207    닭 살 꽃(외1수) 댓글:  조회:2028  추천:1  2016-01-21
 닭 살 꽃 (외 1 수 )   하늘이 왜 저리 텅 비여 눈동자같이 맑고 깊고 그윽한지를 그대는 아십니까?   바람이 왜 저다지도 산 넘어 바다 건너 어디론가 하염없이 줄레줄레 떠나가는지를 그대는 아십니까?   인생이 왜 이다지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도록 허전하고 허무한지를 그대는 아십니까?   사랑을 닭살같이 하라 사랑하고 사랑하다 어느날 문득 그대가 내 눈에 다시금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질지라도   고마워서 차라리 내가 죽고싶도록 미워서 차라리 너를 죽이고싶도록이 그렇게 사랑을 하라 백년을 사랑하다 천년이 훌쩍 지나가버리면  만년을 부처님앞에 두 무릎 꿇고 앉아 억년을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지라도 사랑을 귀신같이 하라  사랑은 닭살같이 하라 와와 소리 내지르며 벌판을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산을 마주서면 잠깐 목이 꽈악 메이더라도 론 하루 죽은듯이 그렇게 사랑하라   사랑할때면 그대는 밤하늘의 저 밝은 새별보다 더욱 눈이 부시고   사랑마저 먼 옛날이 되여버리는 그 어느 날 나는 우울한 먼지속에 보얗게 흩날리는 아득한 미소가 되리   사랑을 할려거든 닭살같이 하라 사랑을 할려거든 귀신같이 하라 차라리 그 모든것이 너무 미워서 차라리 그 모든것이 너무 고마워서 죽고싶도록 죽이고 싶도록이 그렇게 하라   단 한순간ㅡㅡ 단 한번만이라도 잊은적조차 없었던듯이 그렇게 하라   너 없이는 결코 나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조차 없을듯이 아프고 외롭게 하라   슬픔이 없고서는 도저히 그 고독을 참을수조차 없을만큼 그렇게 비장하게 하라 실수였다고 말하지 마라 호기심이였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를 마라   종기였다면 약을 바르라 피고름이 아물면 비로소 상처는 아름다운 닭살꽃으로 활짝 핀다 겨울의 하오   내 삶이 하도 고달파 웃음마저 새까아만 모래밭에 한무리 물새떼 살짝 내려앉아 축축히 젖은 날개ㅡㅡ 다시 말리운다   흰 종아리 살짝 걷고 멀리로 도망 가는 바다 때 지난 잔 근심이 갯벌을 알뜰히 뒤져 늦은 점심을 장만한다   한 바구니 또 한 바구니의 삼장십삼부를 손에 나눠들고 얼굴마저 없는 스님들을 따라 줄ㅡ줄ㅡ 법글을 내리 외우는 구름   팔뚝을 불쑥 걷고 어리석은 바람이 꽁꽁 얼어붙은 하늘에서 아직 싱싱하게 살아서 팔딱거리는 빨간 심장을 불쑥 꺼내든다   까맣게 그려놓은 풀밭 노랗게 색칠해 놓은 나무숲 이상하게 활활 불타오르는 황홀한 저녁노을을 겨울이 여윈 겨드랑이에서 펄펄 날린다
206    孤雁 (外3首) 댓글:  조회:1669  추천:2  2016-01-21
孤雁 (外3首) 我最喜欢这几句话! 心情再差,也不要 写在脸上,因为没有人喜欢看你脸色! 日子再穷,也不要 挂在嘴边,因为没有人无故给你一份钱。 工作再累,也不要 抱怨,因为没有人无条件替你干。 生命再短,也不要 随意作践,因为没有人 为你的健康买单! 生活再苦,也不要 失去信念,因为美好的未来将在明天。 感情再深,也不要 纠缠,因为没有间隙会生厌。 前行再难,也不要退缩, 相信自己,自己的路一定要自己走完。 今天你痛苦,笑的也许委屈, 但笑的一定要灿烂!   镜子   你把ㅡㅡ 黑夜,当成了 一面镜子 放在自己的 裤兜里,清晨, 拿出来时 梦已碎!你再用那碎片 照着自己ㅡㅡ 最阳光的地方 你依然很孤独… … 选择   曾经的曾经ㅡ 因为,爱 我受过很多重伤。 那段记忆,至今还在 我心田里埋下了 一颗隐形炸弹。 愤怒的时候 还在咝咝冒烟! 理性,总在 提醒我们- 走过的, 看过的, 赌过的, 笑过的, 爱过的, 恨过的, 拼过的, 输过的, 赢过的, 不要回头。 碎了的, 就扔了吧! 走了的, 就让他走吧! 刺痛, 就当命运赐给我的 魔鬼训练, 我选择你是错误。 你选择我 也许,永远就是 最真实的答案。 房地产   肾虚了吧 装ㅡ 什么英雄豪杰?   尿有泡沫了吧 想 什么痴情少女?   汗排不出体外了吧 血糖 也应该高了吧?   是否,贫血,还- 没有食欲 浑身没劲??   ㅡ诊断已出ㅡ 1,体重超标 2,严重老年痴呆!
205    시선(诗仙) 이태백(李太白)을 아십니까? 댓글:  조회:2230  추천:1  2016-01-12
시선(诗仙) 이태백(李太白)을 아십니까?       시선(诗仙) 이태백(李太白)을 아십니까? 당나라 제2검객이였고 시인이였던 그의 (창가에 어린 달빛은/땅에 내린 흰서리 같고/머리들어 보름달 쳐다보노라면/고향생각에 저절로 고개 숙여지누나/) 는 누구라도 한번쯤 읊어보았으리라 짐작됩니다.  두보(杜浦)나 백거이(白居易)보다 우리 민족은 왜서 이태백을 이처럼 더욱 좋아 할가요? 단순히 우리들만의 짝사랑이였을가요? 그럼 여기에서 이태백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바이두(百度)에서 이태백을 쳐보면 바로 이렇게 나옵니다 李白 (唐朝著名的浪漫主义诗人) 李太白一般指李白(唐朝著名的浪漫主义诗人) 李白(701年2月8日—762年12月)[1]  ,字太白,号青莲居士,又号“谪仙人”,汉族,绵州昌隆县(今四川省江油市)人,是唐代伟大的浪漫主义诗人,被后人誉为“诗仙”。与杜甫并称为“李杜”,为了与另两位诗人李商隐与杜牧即“小李杜”区别,杜甫与李白又合称“大李杜”。其人爽朗大方,爱饮酒作诗,喜交友。 李白深受黄老列庄思想影响,有《李太白集》传世,诗作中多以醉时写的,代表作有《望庐山瀑布》、《行路难》、《蜀道难》、《将进酒》、《梁甫吟》、《早发白帝城》等多首。 리백 (당나라 저명한 랑만주의 시인) (70년2월8일-762년 12월) 자 태백 호 청련거사 한족 면주 창륭현(현재 사천성 강유시)대표작으로는 , ,, ,등 다수       과연 정말 그러할가요? 다시금 바이두에서  (이태백은 왜 한평생 과거급제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를 쳐보면 첫째, 그의 고향을 신강, 혹은 끼르끼즈스탄, 혹은 중국 경내 사천성 강유시일꺼라는 추측들이 난무하고 둘째, 요즘 말대로 하면 그는 검은 호구(黑户口)임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럼 여기서 그의 또다른 시 한수 잠간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愿生高丽国/一见金刚山/) 여기에서 이태백은 그 당시 한반도 집권세력이였던 신라에 대해서는 입 한번 뻥끗도 하지 않고 멸망된지 백여년이나 잘 되는 고구려를 줄임말로 고려국이라고 시에서 읊습니다. 이태백이 술에 취해 신라와 고구려마저 제대로 분간하질 못해서일가요?       력사문헌들을 뒤적여보면 구당서( 읽어본지 하도 오래되여 구당서인지 후당서인지 조금 헛갈리네요)에서 당휘종시기 발해국 해군 총사령관인 장문휴(张文休)장군이 당나라 조정에 서찰 하나 보내옵니다. 황제와 문무백관들이 아무리 들여다 보아야 도무지 무슨 문자인지 알수조차 없어 쩔쩔 매고있을때 령의정이 한발 썩 나서면서 (태주차사 이태백은 발해국 사람입니다. 하루빨리 그를 입궐시켜야 합니다) 하고 황제에게 간청합니다.몇달후 이태백이 장안에 도착하여서야 그 서찰은 발해국이 당나라에 보낸 전쟁 도전서였음이 밝혀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네 일부 소설가와 사학자들마저 이태백을 신강, 혹은 끼르끼즈스탄 어딘가에서 태여난것으로 오독하고 있는데 그건 분명 잘못된 분석일뿐입니다.  이태백은 고구려 유목민 후예 발해국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가 무슨 원유에서 모국인 발해를 떠나 당나라에 망명하였으며 한평생 신분마저 숨기고 타국에서 고향을 그렇게 그리워 하며 취객, 방랑객으로 살아왔었는지는 이제라도 사학자들이나 력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그의 진정한 신분을 제대로 파 헤쳐야 된다고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204    远与近 (外1首) 댓글:  조회:1862  추천:2  2016-01-12
远与近 (外1首)   若,我单枪匹马 杀进,那片黄昏之时 愿天上彩虹,都变成 乌云,下一场 倾盆大雨,让世人明白 勇士已经离开了这人间。 若,你苦恼的时候 我宁愿,借给你一百天 让你还给我一个昨日的太阳, 愿这秋天,像春天一般花开满地 大爱无疆,真情再铺满世界。 每次,我走进你的心脏,仿佛 都能看到,岁月那双 明亮而闪烁的大眼睛, 大海捧着琵琶,演奏着思想 苍茫大地,故事依然那么多, 那么壮丽多彩。 你,远在天涯,我总站在 你的背后向你挥手, 那距离永远不到一百多米。   天空   你,真的很敏感ㅡㅡ 那细小的星子,已滑落在 花丛,窥视着你舒适的大床, 抚摸着你的丰乳肥臀 正在戏弄着我们的思想。 别以为,我们最强大, 别以为,我们能赶走黑夜ㅡㅡ 黯淡的,沁凉的,微弱的 喘息声中,岁月早已 省略了我们的存在。 也许,这世界真的是方的, 星星都渴望,自己 能有一个完整的一个家庭。 那就,还给它们 一个与我们共存的空间吧! 今夜,麦地里没有一颗星星 只有,村口有两朵雏菊 闪耀着自己的两颗金牙, 笑迎着到处流浪的风.
203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리유가 필요하질 않다 댓글:  조회:1904  추천:3  2015-12-31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리유가 필요하질 않다          한족 속담에 (개는 배불리 먹이면 안되고 사람은 너무 잘 대해줘도 안된다. 왜냐하면 모두 원숭이가 변한것이기때문이다..." 狗不能喂太饱,人不能对太好,因为都是猴变的……")는 말이 있다. 얼핏 보면 모순이 되고 누구나 조금은 거부감이 들듯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노라면 그 철리적인 함의에 저도몰래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귀천이 따로 없다. 잘 나고 못 생기고, 한평생 잘 먹고 잘 살아도, 못 먹고 못 살아도 저마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운명이라는 이름앞에 사랑과 근심의 멍에를 숙명적으로 자연스레 받아드리고 있을뿐이다. 논어(论语)에서 공자는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习相远也")라고 말한적이 있다. 뜻인즉 이 세상에 갓 태여난 모든 사람은 그 본성이 선량하고 심성이 맑기가 모두 비슷하지만 살아가노라면 각 자가 처한 환경이나 그 위치에 따라 부동한 영향과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여 사람마다 각자 생활습성에 많은 차이점을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도 (참을수록 머리꼭데기에 올라 앉아 똥까지 싸려 든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하여 성인 공자도 (도청도설, 덕지기야"道听涂说,德之弃也")라는 한마디를 논어에 더 덧붙이질 않았던가? 뜻인즉 (길에서 들은 말을 도처에 퍼뜨리는것은 자신의 덕행에 침을 뱉고 량심을 버리는것과 같다)는 말이다 여기서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쯤 짚고 넘어가야 할것 같다. 십년전 필자가 한국부동산회사에서 부총경리로 있었을때 식사후면 전신 맛사지를 무척 즐기는 한국손님들을 배동하여 맛사지방을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든적이 있다. 마침 그 맛사지 방 사장역시 흑룡강 치이여서 더욱 무랍없었다.    헌데 그 익숙함이 문제였다고나 할가? 허물없이 다니다보니 (ㅡ지금 손님이 너무 많아 조금 기다려야 할것 같아요. 오빠들은 손님이 아니잖아요ㅡ)로부터 시작하여 팁에 더욱 관심을 두었으며 팁이 없는 날이면 안마가 아닌 입으로 재잘재잘 시간을 에떼우기가 일상이였다.   2년간 부지런히 그 집 매상을 올려주다가 한국손님들의 제의로 그 집으로는 아예 발길을 딱 끊게 되였다. 그런데 몇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큰길에서 면바로 마주친 그 집 아가씨가 두눈이 휘둥그레 갖고 (오빠, 죽지 않았었어요? 소문에 오빠 죽은지 오래다고 하던데ㅡ 이게 웬일이세요?)하면서 몹시 놀라워 하는것이였다.    세상인심은 이렇게 산 사람을 한꺼번에 입으로 죽이기도 한다. 살아 있는 내가 누군가의 부담으로 된것일가? 왜서 아직 살아 있는 나의 존재를 그들은 죽음으로까지 련상이 하였을가? 부처님은 륜회의 근원을 곧 인연때문이라고도 하였다. 헌데 인연이 없는 삶은 죽음 그자체와도 같은 삶이 분명하며 인정이 없는 인생은 무덤같은 삶임이 분명하다. 그 무덤속위에서 우리는 매일 촛불을 켜들고 춤을 추고 있고, 또한 봄이 오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며 꽃으로 오래 남고싶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결코 아무런 리유조차 필요 없다.그렇게 리유조차 없는 삶을  나름대로 살아가면서 바람으로 구름으로 사노라면 마침내다 누군가의 그림이 되고 풍경이 되는것이 우리네 길고도 짧은 인생이 아닐가?    나는 매일 하루 또 하루 좋은이, 나쁜이, 싱거운 이, 지랄같이 성격이 너무 괴퍅한 이들괴 더불어 살아가는 내가 너무 대견스럽다.
202    흥개호기슭에서 댓글:  조회:2226  추천:2  2015-12-31
흥개호기슭에서 (외 2 수) 여기에 모이려고 너희들은 몇십리 몇백리 몇천리 길을 단숨에 달려왔구나 조금만 쉬였다 가자, 갈대는 눈물로 하염없이 손 흔들어주고 흰 갈매기 동해의 섬 아씨들 동백꽃 이야기 아코뎅 낡은 숨소리로 끊임없이 전해주는데 하늘 우러러 누워서 크는구나 흥개호야ㅡ 반갑구나 내 고향 동구밖 수양버들, 목릉하 발목에서 찰랑이는 고향의 부름소리 죽어선들 잊히리오 헤설픈 햇살에 햇병아리 미역 감고 게으른 황소들의 영각소리에 동년의 그 추억 살풋이 깨여나는 곳 흥개호는 내 동년의 새까만 두 눈, 흥개호기슭에 서면 나는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고향 사람이 되고 어디에 살든 흥개호 푸른 파도소리 내 가슴속의 바다가 된다…  운명이라는 이름앞에 운명이라는 이름앞에 우리는 아직 초라하게 맨손, 맨발로 서있다. 파르르 파르르 누나의 속 눈섭처럼 가슴이 떨리는 저기 저 낡은 창호지사이로 인연이라는 패쪽 하나씩 나눠 들고, 봉두란발 그채로 내곁에 더가서는 너무 아름다운 꽃이여ㅡ 앞산의 진달래 뒷산의 할미꽃 마디마디 입술 깨물고 돌틈에 곱게 피여난 오실래 가실래 구슬래꽃, 저 꽃 한송이만 꺾어주세요 논개의 절개는 아니더라도, 풍류남아 서경덕과 황진이, 박연폭포, 그 이야기에 저무는 해빛 ㅡ 고스란히 바구니에 담아보게 인생이라는 네모밥상 두리 두리 도리 밥상에 삼천리 무궁화꽃처럼 서럽게 모여앉아 너 한잔 나 한잔씩 따라주던 리별주, 래생엔 헤여져 살지 말고 한 집안에 모여 살아요 애꿎은 행주로 딲아보는 우리네 과거ㅡ 아아, 인생은 강물따라 흘러가는 저기 저 락엽같은것, 촛불 하나 밝혀들고 오늘밤은 기어이 예수님 오시려나? 서울야경 우씨ㅡ덥다ㅡ드럽게ㅡ 나는 처음부터 이름모를 한 녀자를 사랑했다.그녀의 D호 브래지어에는 황금빛 명브랜드마크가 거미처럼 악착스레 매달려 있었고 재미가 쏠쏠한 가랭이 사이에서는 바람개비가 고단한 하루를 하품하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3호차칸 흔들리는 사람들속에 중국산 오또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도 그렇게 남자로 서있다. 조금만 더 아래로ㅡ 조금만이라도 더 위로ㅡ 나의 눈은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 아니 여자의 라체를 세상은 예술품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우씨ㅡ아저씨ㅡ 조선족이죠? ㅡ아니ㅡ ㅡ우씨ㅡ짝퉁 가게 짬뽕같이 생겨갖고ㅡ 누군가 뒤통수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다. 나는 언짢게 전봇대에 다닥다닥 붙은 색정광고를 보듯이 그녀를 다시 본다 마치 서울의 야경을 보듯이
201    问题 2 댓글:  조회:1551  추천:2  2015-12-31
问题 2  问吧,你可以 想不开,想不清楚, 想不明白的, 一切疑难杂症可以 问全国人民! 问1:为什么我国野人如此多? 黑发染成五颜六色 小媳妇露胳膊,露大腿 大姑娘只穿裤衩在逛街? 答: 流行 问2, 雷锋活着还能扶起路边老人 给别人让座吗? 答: 会的!他是毛泽东时代 最忠诚的战士 他才活到二十二岁做了榜样, 一生唯一宗旨就是 为人民服务! 问3, 以前人民币是蓝色的 四个伟人,为什么 现在就一个人,脸又那么通红? 答: 以前一个人工作 能养活四个人,现在 一个人工作,连自己都养不活! 问3,为什么发表一首诗, 一篇小说,连粥都喝不起,网上 发表诗歌,小说的人那么多? 答; 我国上下五千年历史悠长, 都是文化人。 还有想不开的吗? 还有想不明白的吗? 还有想不通的吗? 你可以问,可以问全国人民! 群总眼睛是雪亮的, 人民的眼睛是慧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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