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에 가보셨습니까?
(外2首)
보리밭을 아십니까?
꿩들이 푸덕이면
가난의 하얀 속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던
그 메밀 꽃밭을 바람과
함께 가로 질러
쪼각달마저 낯 뜨거운
정사에 면사포로 슬며시
얼굴을 가리고
한마리 개구리 되여 쉼없이
벌판을 폴짝폴짝
뛰여가던 목릉하ㅡㅡ
한살배기 어린 아이
잠투정을 쇠꼬챙이에
살짝 꿰여들고 콧노래
흥얼거리는 거인의 콧등만큼
우뚝 솟은 鸡冠山
그 아래 진달래꽃 울긋불긋
까아맣게 기지개 켜면
해 뜨는 동쪽에서
마침내 수탉이 홱홱
볏을 내 휘두르며
멋지게 첫홰를 치는
계동에 가보셨습니까?
나즈막한 흙 둔덕마저
독산이라 불리우는
계림에서 다시금
살이 통통 쪄 오를듯한
찰진 진흙길을 따라
밀산쪽으로 또 십여리 길
학모며 영광촌 그 먼저
내가 태를 끊고
태여난 중흥이라 단결촌
계동을 아십니까?
계림에 가보셨습니까?
살아가는 동안
발걸음 먼저 항상
마음이 달려 가는 곳,
죽어서라도 넋 하나
달랑 가방에 챙겨 넣고
빈손으라도 기어이
찾아가고픈 내 고향
계동에 가보셨습니까?
내 고향 계림을 아십니까?...
아버지 1
하늘이셨고 땅이셨고ㅡㅡ
바람같은 존재이셨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우물이셨고 깊은 호수이셨고ㅡㅡ
바다같은 존재이셨음을
이제라도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비록 예수 그리스도나
부처님처럼 거룩하고
위대하진 않으셨더라도
단단한 그 어깨에
쪽지게 짊어지시고 압록강,
두만강물 첨벙첨벙 건너
도라지 아리랑을
흥얼이시며 모래밭,
가시밭길을 맨발로 투벅투벅
걸어오셨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게 해주소서
단 하루 더 살지라도
이제는 결코 당신을
닮지 않고서는 내 살아온
하루하루가 쑥스럽고
부끄러워 당신의
무덤앞에 두 무릎 털썩 꿇고
흐느끼며 마침내
깨우치게 해주소서
밝은 거울이셨다가
파아란 한오리 연기로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ㅡ
눈물이 없이는 결코
한구절, 한글자 제대로
읽을수조차 없는
장편소설이셨고
서사시였음을
이제는 우리 모두 ㅡㅡ
깨닫게 해주소서...
아버지 2
대들보에 목 매달아
언녕 죽어버려야 할
그 모진 가난
전설로 흰 보자기에
고이 싸드시고
두만강, 압록강 건너
씨베리아 찬 바람에
하얀 뼈 가대기로
시퍼렇게 갈아
혈연의 강줄기마다
새록새록 가훈 아로새기며
삭막한 이 땅에
첫ㅡ 보습을 푸욱 깊게
그렇게 박으신 울 아버지,
고국으로 타향으로
대도회지로 ㅡ
모래알처럼 뿔뿔히 흩어져
떠나가는 자식들
손 저어 바래여 주시며
어데 가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더라도
고향은 잊지 말라
그렇게 신신당부하시던
울 아버지ㅡ
아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바람따라 구름따라
어디론가 정처없이
터벅터벅 또 떠나가야 할
서러운 내 인생,
고향의 뒷산에
이제는 무덤으로
고이 누워 계실 울 아버지
한일평생 모진
가난에 등이 고스란히 휜
우리 아버지
죽어서도 앞산을
우러러 어나제나
언제 오나ㅡ 이 못난
자식들을 그렇게 애 타게
기다리고 계실
목릉하기슭의 한 그루
비술나무로
찬비속에 홀로
서 계실 우리 아버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