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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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외14수)
2015년 01월 18일 18시 54분  조회:2719  추천:7  작성자: 허창렬
꽃 (외14수)

1

 
꽃은 죽지 않는다
꽃은 죽을줄을 모른다
천지간에 고고연한 꽃은
아름다운 꽃은
루루천년
해해년년
어김없이
순간에 피고 순간에
지지만
 
꽃은
죽지 않는다
꽃은 영원히
우리들 곁에서
사라질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것을 즐겨
꽃에 비기더라
이 세상의 가장
우아한것도
꽃에 비유하더라
 
허나
사람이 어찌 알랴
꽃은
슬픔을 모르고
인간의 마음에
슬픔이
가득한것을
 
슬프게도
꽃은 인간을 위하여
피고 지는것이 아니다
꽃은 오직
존재의 리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을 끊임없이
오고 갈뿐
 
그래서
꽃은 죽지를 않는다
그래서
꽃은 영원히
죽을줄조차
모르는것뿐이다…
 
꽃 2
 
세상을
슬퍼하는
꽃도 없더라
 
세상을
애달파하는
꽃도 없더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장철 온누리에
곱게 피는 꽃
 
개나리 봉선화
들국화
하얀 성에꽃 ㅡ
 
세상에
너와 나처럼 고향이 그리워
우는 꽃도 없더라
 
세상에
너와 나처럼 인정이 그리워
웃는 꽃도 없더라
 
꽃은 굳이 몸짓으로 말하려느냐?
그것도 잠시
바람이 흔들어주기때문 ㅡ
 
꽃은 해마다
속세에 피고 지지만
속세를 모른다
 
올해도
할아버지무덤에는 개나리만
활짝 피였을뿐
 
천지간에
고고연한 꽃은
아름다운 꽃은
 
루루천년 해해년년
순간에 피고
순간에 질뿐이다…
 
 
 
3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꽃만큼
살으랏다
 
속새 풀
제 아무리 손톱 발톱 다 세워
옆꾸리 콕콕 꼬집어도
 
까마귀 풀
두서없이 여윈 어깨에 슬며시
두 손 올려놓아도
 
바람이 부르면 배시시 사립문 활짝 열고
달려오다 어푸러진 무르팍마저 아직 너무 아픈듯이
옷깃을 부여잡고 길섶에서 곱게 웃는 맨드라미
 
괴나리보짐 짊어지고
한양으로 떠나가는 나그네 발자국소리 따라
꾸벅꾸벅 큰 절 올리는 동구밖 라이라크
 
술향기 익어가는 최진사댁 담장아래
맨발로 쪼크리고 앉아 자나깨나 주인님 긴 부름 애 타게
기다리다 밤을 지새운 개나리
 
춘향이 옥살이 할때 리도령 소식 기다려
뻔질나게 동구밖으로 달려가는 향단이의
달달 끌던 그 나막신소리에
 
렬녀의 충절에 감복하며
놀란 가슴 움켜잡고 저 혼자 분노로 얼굴
빨갛게 붉히던 뜰앞의 봉선화
 
삼천리 이 강산 무궁화는 아니더라도
심심산골 도라지꽃 머슴애고투리 천하디 천한
노루궁둥이 동백꽃처럼 살으랏다
 
날로 각박한 인심
문전박대에도 껄껄 웃으며
돌아섰던 김삿갓처럼 꽃처럼 살으랏다
 
수억만번 붉게 지는 저녁노을속에서도
불타오르는 진달래처럼
인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꽃처럼 살으랏다
 
 
4
 
꿀벌이였구나
싶을때면
너는 나비가 된다
 
나비였구나
싶을때면
너는 꿀벌이 된다
 
까만 울음으로
머주서면
너는 하얀 웃음이 된다
 
하얀 웃음으로
마주서면
너는 빨간 울음이 된다
 
이것이였구나
싶을때면
너는 저것이 된다
 
꽃은 매일 무너지는
아픔을
잎으로 받아든다
 
 
5
 
맑은 날이면 꽃은
누나처럼 환히 웃는다
 
요염한 몸짓, 황홀한 고백
바람이 두볼을 간지럽히면
 
꽃은 향기로 나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
 
나비도 색깔인가봐
꿀벌도 녀자를 더 좋아하나봐
 
나이 어린 꽃일수록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따라
 
세상을 유감없이
크게 웃어보려 하고
 
상큼한 그 이미지 하나만으로
꽃은 내곁에 슬프도록 너무 예쁘다
 
꽃곁에 서면
나는 거름이 된다
 
정성이 촐랑촐랑 혈관에 흘러들면
꽃은 그제야 수줍은듯이 하루 일기를 다시 쓴다
 
6
 
우울하다
골목길이나 돌담길에서
마주치면 더욱 우울하다
 
창문너머 긴 테이블
커피잔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그런 녀자
지켜보면 더욱 우울하다
 
한철 흐드러지게  피였기에
이제는
막바지에 다달은 절정
 
세월의 간사한 웃음에
꽃은 
과거를 눈물로 덮는다
 
새는 달빛아래
홀로 앉아
꽃처럼 울음 울고
 
꽃은 죽는 날까지
뼈마디 하나없이
말랑말랑한 웃음 세상에 남겨준다
 
7
 
언제부턴가 누나는
가슴을
젖싸개로 살짝 가리웠다
 
그것이 궁금해 나는
매일
엄마의 젖을 매만지며
 
꽃본듯이 활짝 웃었다
나도 크면 장가 들래 ㅡ
응, 그래야지 우리 철이도 어서 커서ㅡ
 
헌데 꽃은 언제 벌써 저리
시들었는가?
별 밝은 밤 꽃밭에 서면
 
나는 누나가 너무 그리워
뻐꾹ㅡ뻐꾹ㅡ
하루종일 운다
 
8
 
이발 사이로
그렇게 내 뱉고싶었던 말을
꽃은 한 겨울
부글부글 끓어 오른 가슴에
고이 간직하였다가
상처며 피고름마저
사랑으로
활짝 피웠다
 
온몸속에
나비의 춤이 흐르고
오도독 이 깨무는
벌레들의 취침소리에
꿀벌은 침을 놓다 말고
세상을 거울로
넋 잃고 들여다 본다
 
화사하게 피여난 그날때부터
홀로 지어야 하는 운명을 알고 있어서일가?
꽃은 녀자들처럼
아침부터 분주하게
분 바르고 향수 뿌려가며
화장조차 하지 않는다
 
고독한 날일수록
내가 너를 이토록 그리워하는 까닭은
잘 썪어 문드러진 그 향기
방울로 짤랑짤랑 내 흔들어
내 사랑을 아픔으로
일깨워주기때문
 
발버둥치다가도
가을 하늘 다시 만져
퍼렇게 무릎이
멍 들어가도
꽃은 결국 한철임을 알기에
누나처럼 웃으며 왔다가
누나처럼 웃으며 간다
 
9
 
푸욱 ㅡ
한결 더 잘 썪은 꽃향기에
순결의 치마를 입혀놓고
청초한 웅녀의 첫사랑에
얼룩덜룩 붓으로
분칠해댄다
 
두 줄기
눈ㅡ물ㅡ은ㅡ
두줄기 굵직한 레루
나비와 꿀벌이 기차놀이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달음박질 친다
 
한 옥타브
더 높여 애간장이 설설
끓는 삼천궁녀의 피리소리와
멀리 섬으로 떠나가는
쓸쓸한 배고동소리
 
꽃은 하루종일
나비와 꿀벌을 기다리다가도
바가지에 아름다움을 받아들고
세상으로 눈 동냥을
다시 떠난다
 
10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한 트럭을
꽃밭에 심는다
 
콜록콜록
잔기침 토해내며
색연필로 그려놓은 세상 ㅡ
 
누구세요?
이 넓은 벌판을 폴짝폴짝
뛰여 다니는 이
 
파랗게 두눈 치켜뜨고
시샘으로 배시시
창문을 여는 잔디
 
궁색한 변명들이
담장아래 줄 지어 서서
먼 하늘 쳐다본다
 
배꼽을 만지면 까르르 웃는다
토닥토닥 잔등을 두드리면 해죽 웃는다
살랑살랑 겨드랑이 건드리면 캐드득 웃는다
 
앵두같은 입술 감빨면
금방 순한 양이 되여
풀밭에 살풋이 드러눕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래도
제 풀에 흥겨워
어깨까지 들썩 들썩인다
 
속살 깊숙히 사명이 파고들면
파르르 령혼을 흔들어
조잔한 열매 받쳐들고 세월의 문턱 기웃거린다
 
11
 
두볼에
살짝 연지곤지 바르고
양산도 없이
땡볕아래 서서
오고 가는
길손들을 반겨
깔깔 웃는다
 
기다란 목에
톡톡 향수 뿌려가며
돌담길이나 어느 아파트입구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스카트며 원피스자락 날리며
저 먼저 꾸벅꾸벅
인사 전한다
 
다가서면
살며시 어깨에 손을 얹고
ㅡ쉿,잔디풀이 지금 잠 들었어요
조심하세요ㅡ
귀속말로 조용히
귀띔해준다
 
종소리에
길 가던 나그네와 더불어
잠간 합장도 하고
더위에 빨갛게 달아오는 얼굴
나비의 부채질로 잠시
식혀보기도 한다
 
누가 꾸짖어도
슬픈 기색 하나없이
꽃은 사탕을 건네주면 되려
시원한 물 한컵만 주세요
찰ㅡ찰ㅡ
애교 부린다
 
12
 
너를 앞두고
나는 차마
울고싶지를 않다
 
너 홀로 두고
나는 차마
무심히 돌아서고싶지를 않다
 
열 손가락 중
깨물어 아프지 않은것이
어데 있으랴
 
흐릿한 하늘아래 서면
꽃은 나보다
더욱 우울하다
 
조금이라도 더 찬히 들여보고파
500도 넘는 안경
거치장스레 코등에 걸고 다가서면
 
꽃은 향기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이 우리를 버리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구경 나온 과객일뿐이라고
 
꽃은 우울하게도 너무 아름답다
단 하루만일지라도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 환한 표정 짓는다


13

나는 울고
너는 웃고 그렇게
톡 토옥 ㅡ
터져라ㅡ
무혈의 상처
자연의 아름다운
선률이여
 
너는 부처님
신전에 울려 퍼지는
녀인의 줄기찬
오르가즘,
천국의 계단에 하아야니
피여난 잘 썪어 문드러진
이름 모를 질투의
그윽한 향기여
 
해마다
눈이 부신 5월이 오면
너는 한겹 두겹
옷을 더 껴입고
나는 한겹 두겹
옷을 벗고
 
톡-톡-
터져라
툭-툭- 터져라
세월의 돌판위에
긍휼이 뭉치여
먼지같은 알르레기
손으로 톡톡 건드리는
통한의 새빨간
여드름이여
 
뼈는 삭고
피는 마르고
마음은
마냥 쓰리고
아리고…
 
14

어쩐지
허접해보이는 플래시모브
포샵한 여름의
하늘같은
알레르기


끈질긴
개나리 향기 그러안고
통곡하는
페이퍼페이스
이제 단 한번만이라도
함께 죽고픈
저주의 텀길


오호
저기 힘없이
걸어오는 잇힝 ㅡ
길섶위에
떨어져버린
비호감의
웰니스족(wellness)


차츰
엇갈리는
피속의
젊은 십장생
마침내 오열로 터져오르는
별들의 서툰 향연 ㅡ

15 
 

하늘이시
여-


마침내
神이
나에게로 내려주신  
천사의 달콤한
숨결이여


새벽마다 뭇별들이
马粪纸우에
뚝뚝 흘리는 빨간
피방울이여

두번 다시 펴지지 않을
내 삶의 노오란 입술위에
점잖게 포개여놓은
세월의 알뜰한 沉默이여


이렇게
평생을 유감없이
사랑하기만 하다가
아찔한 흉터며
상처마저도

아름다울
산등성이
호올로
넘어가는
긴 노래소리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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