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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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개호기슭에서
2015년 12월 31일 15시 09분  조회:2207  추천:2  작성자: 허창렬
흥개호기슭에서

(외 2 )

여기에
모이려고 너희들은
몇십리
몇백리
몇천리 길을
단숨에 달려왔구나

조금만 쉬였다 가자,
갈대는 눈물로
하염없이 손 흔들어주고
흰 갈매기
동해의 섬 아씨들
동백꽃 이야기
아코뎅 낡은 숨소리로
끊임없이 전해주는데

하늘 우러러
누워서 크는구나 흥개호야ㅡ
반갑구나
내 고향 동구밖
수양버들,
목릉하 발목에서

찰랑이는 고향의
부름소리

죽어선들 잊히리오
헤설픈 햇살에
햇병아리 미역 감고

게으른 황소들의
영각소리에 동년의 그 추억
살풋이 깨여나는 곳

흥개호는 내 동년의
새까만 두 눈,
흥개호기슭에 서면
나는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고향 사람이 되고
어디에 살든
흥개호 푸른 파도소리
내 가슴속의 바다가 된다…
 


운명이라는 이름앞에

운명이라는 이름앞에
우리는 아직
초라하게 맨손, 맨발로 서있다.
파르르 파르르
누나의 속 눈섭처럼
가슴이 떨리는 저기 저 낡은 창호지사이로
인연이라는 패쪽 하나씩 나눠 들고,
봉두란발 그채로
내곁에 더가서는 너무 아름다운 꽃이여ㅡ
앞산의 진달래
뒷산의 할미꽃 마디마디
입술 깨물고 돌틈에 곱게 피여난
오실래 가실래 구슬래꽃,
저 꽃 한송이만 꺾어주세요
논개의 절개는 아니더라도,
풍류남아 서경덕과 황진이,
박연폭포, 그 이야기에 저무는 해빛 ㅡ
고스란히 바구니에 담아보게
인생이라는 네모밥상
두리 두리 도리 밥상에
삼천리 무궁화꽃처럼 서럽게 모여앉아
너 한잔 나 한잔씩
따라주던 리별주,
래생엔 헤여져 살지 말고
한 집안에 모여 살아요
애꿎은 행주로 딲아보는 우리네 과거ㅡ
아아, 인생은 강물따라 흘러가는
저기 저 락엽같은것,
촛불 하나 밝혀들고
오늘밤은 기어이 예수님
오시려나?


서울야경

우씨ㅡ덥다ㅡ드럽게ㅡ
나는 처음부터
이름모를 한 녀자를
사랑했다.그녀의
D호 브래지어에는
황금빛 명브랜드마크가
거미처럼
악착스레 매달려 있었고
재미가 쏠쏠한
가랭이 사이에서는
바람개비가
고단한 하루를
하품하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3호차칸
흔들리는
사람들속에 중국산 오또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도
그렇게 남자로 서있다.
조금만 더 아래로ㅡ
조금만이라도 더 위로ㅡ
나의 눈은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 아니
여자의 라체를 세상은
예술품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우씨ㅡ아저씨ㅡ
조선족이죠?
ㅡ아니ㅡ
ㅡ우씨ㅡ짝퉁 가게
짬뽕같이 생겨갖고ㅡ
누군가 뒤통수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다.
나는 언짢게
전봇대에 다닥다닥 붙은
색정광고를 보듯이
그녀를 다시 본다
마치 서울의 야경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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