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하고 영신하며
외 2수
(할빈) 한영남
질항아리같이 잘
다듬어진
앙증맞은 슬픔을
선사해주고
너는 세월의
어디쯤에서
행복을 엿처럼
빨고 있니
소식 없어 주소를
몰라버리듯이
내 기억의 빨래줄에서
색바랜 친구야
오늘만큼은 너를
떠올려
어깨 나란히
오이라도
아삭이고 싶구나
우리를 위한 단 한줄의
위안이여
다급해진 요즘을
아닌보살하고
살아가는 우리
행여
길을 가다가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스치지는 말자
우리의 진실을
질투하는자를
우리의 터전에서 추방하여
우리 서로 다가서서
서로의 눈동자속에서
진심을 심어보자
아아 저무는
통증이여
아아 다가오는
황홀함이여
상처도 비명을 지른다면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지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상처들을 가지고 있지
상처들은 그것이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몸밖 또는 몸속에서
일제히 입을 다물고
아픔만 전달해주지
진저리치도록 아픈
감각이
신경줄 타고 흘러
마침내 전달받은
대뇌가 분노하게 되지
만일
우리의 상처들이
어느 날 그 상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면
상처의 비명소리는
얼마나 클가
찢고 발기고 찟찧이고
비틀며
생겨난 상처들이
그 괜찮게깊은
상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름다면
내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만큼 클거야
지금 그대를 보낸 내
심장이 찢어지며
내는 소리만큼
기쎄 길더라
기쎄 길더라
내사 아니
걍 남들 하는 소리
들었지
지난 바람 사납던 날 밤
새벽까지
그 집에서 울리던
소리가
방아찧는 소리엿다구
내사 아니
걍 남들 그러니
그런갑다 하는거지
아니라구
아닐수도 있지무
하긴 애들 있는데
단칸방에서
방아 어떻게 찧니
큰일날 소리지
해괴망측한 소리두
많지
내사 아니
걍 남들 그러니
그런갑다 했지
나두 믿지 않지
내가 그걸 왜 믿니
진짜라구
정말 그랬다구
애들 친척집 보내고
그랬다구
기쎄 내 말이 기쎄 다들
길더라
내 길줄 알앗다
와늘 띤따라 쿤바빠
와장창이구나
옆집 철수 못잤겠다
철수 부실한게
각시두 한국 가구
보토린게
그 소리 듣구
가만잇엇다더니
그랬겠지
나같았음 없다
그저 왕바단이다
티비소리였다구
그게 야동 보는
소리였다구
기쎄 내사 모르지
다들 길더라
그땜에 공안에서두
왔댔다구
기쎄 길더라
기쎄 길더라니까
송구하고 영신하며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시인
문학비평 허인
다산작가 한영남시인의 근작시 (송구하고 영신하며), (상처도 비명을 지른다면),, (기쎄 길더라)는 인성을 심플하게 통제 가능하게끔 자기패러디적인 감오를 심상(心相)으로 업그레이드시켰으며 또한 마인드 컨트롤로 전반 시적인 흐름과 그 의식이 맑은 하늘아래 하얀 돌다리아래를 조리졸졸 흘러가는 정갈한 시내물과도 같이 오직 우리 민족만의 그 독특한 가락과 정서들을 억수로 기 막히고 순수하게 한폭의 그림으로 완성해놓고서 질박한 삶의 근원을 예리하게 송두리째 파헤쳐놓고 관용(宽容)으로 조심스레 고스란히 가슴에 껴안은듯 하여 흥분으로 설레이는 우리들의 삶의 바다가 한눈에 훤히 너무나도 잘 보이는듯 싶다. 어쩌면 꿈속에서라도 찾고픈 몽경(梦境)같은 삶의 원천 인 그 바다는 또한 자연순산이라는 우리들의 회심의 미소와 함께 가끔 회색구름도 보이고 또한 흰 갈매기도 불쑥 보이며 조심스레 옷깃을 여미는 바람과 우중충한 산그림자와 자연이 그대로 선명하게 보이는듯 하여 더욱 심오한 각광을 받는듯 하다.
어쩌면 적막강산에서 홀로 똑딱거리던 발걸음소리를 문득 멈추고 발뒤축까지 죽여가며 침묵으로 나눌수 있는 대화, 력설보다는 독백을 위주로 줄곧 일관되게 삶이라는 넓고도 좁은 그 울타리에서 예감과 직감적으로 모드것을 느끼게 할수있는 세월의 그윽한 그 향기는 봉선화나 라이락처럼 담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활의 고민과 고초에서 오는 그 비릿함에 조미료를 살짝 섞어놓아 인지상정(人之常情)인 희노애락을 쓰고 달고 맵고 신맛이 그대로 혀끝에 감돌아지도록 사골처럼 고스란히 잘 우려낸듯 하다.
/질항아리같이 /잘 다듬어진/앙증맞은 슬픔을/선사해주고/너는 세월의/어디쯤에서/행복을 엿처럼/빨고 있니/에서 질항아리, 앙증맞은 슬픔, 세월의 어디서쯤에서ㅡ행복을 엿가락처럼ㅡ이 표현은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삶의 한 단락이 한꺼번에 달콤함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 소식 없어 주소를/몰라버리듯이/내 기억의 빨래줄에서/색바랜 친구야/를 파도가 송사리를 뭍에 떠밀어 올리듯이 친근하고 익숙하게 견인해내여 전반 시적 흐름을 두 눈을 아예 감고서도 절대적인 감각만으로도 피부에까지 절실히 느낄수 있도록이 설정이 된듯 하며 /오이라도/아삭이고 싶구나/단 한줄의 위안/다급해진 요즘을/아닌보살하고/살아가는 우리/ 그리고 질투, 터전, 추방, 눈동자 진심이라는 익숙하고도 친근한 낱말들을 /저무는 통증/다가오는 황홀함/으로 송구영신을 깁스하여 또 한해의 번거로움과 싱그러운 감촉을 단 한마디 시원섭섭으로 재치있게 속사를 마무리한듯 하다
<<현대시는 랭보와 말라르메 이후 점점 더 언어 마술이 되여 왔다. 우수한 시인들에게 있어서 형식의 자유란 무정부상태가 아니라 숙고를 거듭한 의미 기호의 다양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영남시인의 근작시에서도 언어 마술 효과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듯 싶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지
크든 작든 깊든 옅든
많든 적든
(상처가 비명소리를 낸다면)에서 독자들이 눈으로 귀로 피부로 보고 듣고 느낄수 있는것은 아마도 감각적인 경험에 의한 소리의 균형이며 그 조합인듯 싶다. 그렇기때문에/크든 작든 깊든 옅든/많든 적든/이라는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러울만치 예감, 직감, 촉감, 감각에 의한 그 심령의 고요한 목소리는 어쩌면 잠시 삶의 모종 현장에서 산뜻하게 징소리, 꽹과리, 새납소리로 성큼 바람에 란무하는것이 아니라 허심하고 절주있게 리듬이 류창해져가는 익숙한 삶의 장단에 나란히 줄을 맞춰가면서 흥겨운 한 마당의 농악무를 질서정연하게 연출시키는듯 하며 어쩌면 깊고 큰 상처와 비명소리일지도 모를 그 모든것을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하얀 종이로 알락달락 포장하여 누구에게나 귀중한 선물로 될수 있게끔 품위를 한 단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린듯 싶다.
이렇듯 각본이 잘 짜여지고 사유가 잘 다듬어진 아픔이고 상처다보니 /몸밖 또는 몸속에서/일제히 입을 다물고/아픔만 전달해주지/ 또한 혼자 슬그머니 /진저리치도록 아픈/ 감각이/신경줄 타고 흘러/마침내 전달받은/대뇌가 분노하게 /되며 그렇게 아픔보다 치유를 목적으로 한 상처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는/찢고 발기고 짓찧이고/비틀며/내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만큼 클거야/와 비교를 적극적으로 시작해가면서 결국 제일 마지막 련에서는/지금 그대를 보낸 내/심장이 찢어지며/내는 소리만큼/이라는 독백과 력설의 색채뿐만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적극적인 진지한 삶의 태도로 인고와 인내의 번거로운 련습끝에 마침내 상처의 구멍들을 한뜸 두뜸 바늘로 기워 치유의 효과에 발렌스를 맞춰가면서 투철한 인생감오에 경험이라는 성숙되고 한결 더 승화된 령혼의 울부짖음을 편승시켜 세상에서 제일 고요하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는 오직 침묵으로 일깨워주는 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만남임을 차원높은 각오로 독자들을 일깨워주려 한것 같다
(기쎄 길더라)의 경우 함경도, 경상도, 평안도식의 사투리와 지방방언들이 순차적으로 라렬되여 있어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고 거친듯하면서도 세련미가 돋보여 혼자말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랩을 듣듯이 록음기의 재생버튼을 여러차례 눌러 놓은듯 하여 점차 귓가에 쟁쟁해지는듯한 그런 특징이 있는것 같다. (기쎄 ),(내사), (걍), (와늘)은 아직도 시골에서는 어렵잖게 들을수 있는 지방방언들이여서 읽을수록 중독성이 강하여 반갑기도 하며 (띤따라 쿤바빠 와장창이구나)는 오늘날의 현대음조에 각성이 타령을 접목시킨듯하여 류행효과를 띌것도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외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내뱉었을직한 부실한게와 우습광스레 직역된 (왕바단)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서로 눈맞춤을 하여 그 희곡적인 효과가 한층 더 가미되는듯 싶다.
이상에서 살펴본 한영남시인의 근작시 3수에서는 고정된 삶의 틀에 랭보의 옷을 입히고 말라르메의 장갑을 끼워 언어 마술의 매력을 나름대로 구사하고 재현해보려고 하는 각근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미숙한 점이라면 독백과 력설이 주류이다보니 강조의 뜻으로 반복된 구절이 있어 잘된 점과 함께 조금 미흡한 점도 존재하는듯 하다. 현대사상으로 씌여진 시들을 모두 현대시라고 불러도 무탈할것 같다. 한영남시인의 변화는 그 조짐이 날로 한박자 빠르게 진행이 되는듯 하여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송구영신하며 기쎄 래년에는 상처가 내는 비명소리보다 더욱 우렁찬 웃음소리가 신문, 잡지에 따뜻한 묵향으로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2014년12월27일 심양에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