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성철 ㅡ 리성철이 누구이지? 시인인가 소설가인가?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잘 알고 있는듯 싶다. 일찍 흑룡강성 상지시 야부리조선족중학교에서 조선어문교원으로 사업한적이 있는 리성철시인님은 현재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드라마제작부에서 고급편집으로 사업,1987년 전국 중국어단시(中国语短诗) 3등상, KBS한국방송 체험수기 특별상, 압록강문학상을 획득, 거의 20여년을 문학과 쭈욱 담을 쌓고 살아오다가 요즘 들어 다시금 금쪽같은 시작품들을 신문, 잡지에 부지런히 발표하고 있는줄로 알고 있다. 그의 시는 뼈와 살과도 같이 아픈 경험들을 고운 심성, 정성으로 살살 녹여 사실주의를 기초로 어쩌면 맑은 우물에서 갓 길어 올린듯한 싱싱한 령혼들을 글줄기마다 직유와 은유로 심어놓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인과 함께 울고 웃게도 하며 또한 자기성찰을 기본주축으로 사색과 반성을 거듭 반복해 나가면서 이제 더는 낯설지도 슬프지도 않는 현실을 나름대로 참답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럭셔리한 모습을 두툼한 화첩이 아닌 현실근처에서 찾아볼수 있도록 설정하여 공명감이 더욱 큰듯싶다.
일찍 호프만 슈탈은 <<시인들은 창조적 개인>>들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시인과의 만남에서 어김없이 전제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항상 먼저 만나게 된다. 시인의 그러한 전제적 상상력은 실재 세계에 대한 모든 변형과 파괴력의 원천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성 있는 시인만이 살아남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인들의 사유적인 변형과 파괴력은 대단하여 전제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생겨난 그 모든 산물들은 현실과 인간규범화의 인식에도 매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시는 인간 령혼의 자연스런 목소리이며 또한 그 목소리는 속삭이고 노래한다.때문에 <<삶을 멈추고 듣는것이 곧 시이다>>. 시는 ㅡ이것이다ㅡ와 ㅡ그렇게 보인다ㅡ 그 사이의 애매모호한 구분만을 확실하게 없애면 모든 소재들을 창작정신에 결부시킬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수도 있다.
<<호랑이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에서 /동물원이나 TV에서/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표현은 어쩌면 은페적이고 소극적인 그런 조심스런 접근이나 방식이 아니라 감성적, 노골적, 직접적인 태도로 직유와 은유를 참조하여가면서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한 많은 일생을 한편의 진실한 휴먼드라마ㅡ즉 눈물로 찍어가면서 조심스레 찰칵찰칵 시각과 감각 , 촉각과 후각의 렌즈를 발 빠르게 여러 장면으로 옮겨가고 있는듯 싶다. 특히 /산중의 왕이라는 맹호가/ 갇힌 운명에 체념하고 길들여지며/ 빼앗긴 자유생명의 왕국을/ 꿈속에서나 그리며/가끔 구경꾼들앞에 꿇어앉아 / 무기력히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가/ 쉼없이 불안히 좁은 우리안을 맴도는/호랑이를 보노라면/30여년전 철창속에 갇혔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로 호랑이같던 아버지의 호매로운 형상을 누구 봐도 측은하리만치 안타깝고 실감나게 잘 보여주기도 하며. 이런 호랑이같은 아버지였기에 이제는 아득한 기억속의 새파란 추억들을 스멀스멀 어깨 흔들주어 다시 일깨워주어 /우물같이 깊은 우수/ 60도 고량주를 사발떼기로 마시군 하여/ 술 원수라는 별호를 가졌던 아버지/등등 아버지의 형상을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조금 낯설어가는듯한 표현들로 콘셉트가 아닌 리얼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아무런 려과없이 스크린과도 같이 그 시대적 삶의 불우한 단면을 아무런 설명조차 필요없이 한폭의 생동한 그림으로 잘 보여주기도 하며 또한 그처럼 억울한 루명을 쓰고서도/당신을 물어먹고 때린/ 사람조차 미워할줄 모르는 밸도 없는 바보/ 이기도 하지만 /십여년간 농촌에서 /의료봉사로 호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제일 마지막련에서 다시금 /우리안에 갇힌 / 호랑이를 볼때면/ 아버지가 생각난다/로 결속지어 시대적 사명감과 함께 사색의 긴 여운이 오래도록 읽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맴돌아칠수 있게끔 특별히 설정해놓은것 같다. 이 시는 사실주의를 기초우에 수많은 독백과 력설을 반복으로 구사하여 참으로 오랜간만에 읽어보는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저의 좌우명은 <박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입니다. 문학창작에서 저의 자세와 혹은 태도라고 하면 <늦깍이로 다시 태여나 시시한 시 한 다발 쓸수 있는 정력이면 차라리 불꽃같은 시 한 수를 밤 하늘에 찬란히 피워 올리자 입니다 > >> 이렇듯 남다른 각오가 있었기에 리성철시인의 두번째 근작시 <<뼈속의 못>> 또한 하나의 걸작이 아닐수가 없다. /어머님을 고통이 없는/머나 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던 날/어머님 골회속에 웬 불에 탄 못 하나/ 독침같이 슬픈 내 눈과/ 아픈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른다/그 못은ㅡ /죄없이 끌려가 22년간 옥살이 하신/아버지가 못이 되고/<<죄인가족>>이라는 락인과 함께 받은/인간차별이 못이 되고/네살 난 어린 자식 유치원에서조차/받아 주지 않아 빈 집에 가둬놓고/고된 일 나가시며 홀로 키워낸/어린 새끼들의 그 울음이 못이 되고/[혁명건설]의 대들보에 머리 치여/피못에 쓰러진 열 세살 난 맏아들의/죽음이 대못이 되여/ 있엇길래 천하의 명의도 제거할수조차 없으며 더구나 자식들로서는 도저히 빼 드릴수가 없었기에 /오늘은 내 가슴에 박혀/ 나를 다시 울리기도 한다/고 어머니에 대한 추모를 마무리한다 .자신의 삶이 갈망하는것이 무엇인지 잊지를 마라. 상처와 아픔으로 날기를 거부하는 한 마리의 새도 되지를 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였음을 리성철시인은 어머니의 형상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단순히 한수의 시만이 아닌 령혼으로 금전 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이 사회에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한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리성철시인은 팔자가 보건대 노력파시인이시다. 한편의 시를 근 2년간 20여차례나 수개할수 있는 그의 집념에 필자로서는 감복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 . 얼마전 <<수작으로 읽는 조선족 백년 시작품집>>를 읽고 조금 실망했던적이 있다. 차라리 이런 시들을 발굴하여 단 한편만이라도 더 실었더라면 효과가 무척 좋지 않았을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한때 연길시내에서 <<흑룡강성 려관>>, <<흑룡강성판사처>>로 소문이 자자했던 리성철시인은 심성이 맑고 자타가 공인하는 호인임이 틀림없다. 그의 말대로 하면 <<부실해서인지 아니면 인복이 없어서였던지>> 어려운 친구 대신 빚보증을 선뜻이 서주어- 그 선심 베풀어준 대가로 오늘까지 끊임없는 미열로 안해와 자식에게마저 차츰 미안하여 눈치를 볼때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인이 그린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가? 필자로서는 그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럼 여기서 우리 함께 리성철시인의 <<자화상>>을 조심스레 살펴보면서 가도록 하자
나는 여직
철이 채 못 들어
몸에 철분이 부족하고
뼈마저 심약하여
비바람 세찬 이 세상에
홀로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한다
누구의 요구나 거침없이 받아주고
거절을 못해 호인으로 살다보니
나는 그만 자신을 잃고 말았다
중심을 잃고 말았다
오로지 나 자신을 지켜주는 욕심과
리기심이라는 철분이 너무 부족하여
의리남아인양 항상 호기 먼저 부리며
가난한 친구에게는 혼자 도맡아 술을 사주고
찾아오는 고향친구 먹여주고 재워주고
유흥업소 아가씨도 사주고
빚에 쫓긴 친구들의 피난처가 되여
통도 크게 돈도 세집도 모두 대여 주고
빚 보증까지 서슴치 않고 서 주며
피 같은 내 돈과 시간,
정력마저 깡그리 다 퍼주었다
그렇게 통이 크게 남에게 나를 다 퍼부어 주고나서
나는 드디여 빈 자루로 무너지고 말아
사랑하는 내 아내와
금쪽같은 내 아들에게는
부끄럽고 죄스런 남편으로
힘 없고 무능한 미안한 아빠로 전략되였다
또한 사랑하는 내 가족과 형제자매들에게는
죄 없는 <<죄인>>으로 락인 찍혔다
단단한 알맹이로 속이 꽉 찬듯이
부족하게 태여난 나는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평생 제대로 철이 한번 들것 같지 못하다
해학과 풍자로 어느덧 낯설어진 자신을 한번 또 한번 생활이라는 맑은 거울에 반추해가면서 럭셔리하게 사회현상에 거침없이 메스를 들이대여 리성을 일깨우려고 한것 같다. 이외에도 리성철시인은 장시만 아니라 단시도 함축성 있게 너무너도 잘 쓰시는것 같다. 우리는 그가 전국 중국어단시(中国语短诗) 3등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는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가시>>와 <<화재>>중 <<가시>>는 이사키와 다쿠보크의 <<한줌의 모래>>와 맞먹을 정도로 정교하며 또한 인간의 정신적 사고 구조와 그 본질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해명하고 있다는데서 점수를 조금 후하게 쳐주고도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눈에는
가시가 돋는다
내가 키운 가시에
나는 항상
내가 찔려 내가 더욱 아프다
<<가시>>의 전문이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주는 색깔이 된다! 삶은 령혼 려행의 일부이기도 하며 끊임없는 수련의 한 대목이기도 하다..>>아메리칸 퀼트중의 한 말이다. 시를 흔히 감상적인 문학쟝르로 많이 치부하지만 시는 감상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삶에 대해 인간의 가슴에 던지는 큼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제일 마지막 시 <<화재>>의 경우 란무하는 우리 이 시대의 아슬아슬한 <<사랑>>현상을 /사랑방 아궁이에서만 피던/황홀한 불꽃이/몸을 간질이는 봄바람에 /불똥이 튀고/세월의 강풍에 날려 붙어/걷잡을수가 없이 /집안공기를 태우고/인화물질에도 옮겨 붙어 /온몸을 불 사르는 쾌락의/ 광열에 넋이 나가/ 긴급요청/에 /소방차/로도 진화가 안될만큼 /동에방네/숱한 집들이 불에 타 무너져 /집을 잃은 미성년자들이 인생의 사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로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재치 있는 시인이라고 밖에 달리 더 많은 말들은 하고싶지를 않다.
맹자는 <<존호인자는 막량어목자>>(存乎人者,莫良於眸子)라고 말한적이 있다. 뜻인즉 사람이 가진것중에서 눈동자보다 더 좋은것은 없다는 것이다. 심성이 시내물처럼 맑고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인 리성철시인님께도 세월의 거친 파도는 피해 가질 않는다. <<늦깎이로 이 나이에 다시 시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 큰 락을 보려고 자주 밤샘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리성철시인님의 회의(回意)짙게 하는 말씀에서 필자는 <<령혼의 조용한 울부짖음>>을 의경(意境)과 함께 정성으로 가공하여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파란 보석으로 세상에 내여놓는 간거한 작업이라는 곧바로 시 쓰기가 아닐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조심스레 가져본다. 이상으로 살펴본 리성철시인의 근작시 5수에서는 절절한 사고방식, 어쩌면 막장 드라마속에서나 볼수 있음직한 심플한 인성을 센서티브하게 깨우쳐가려 하는 강한 집념과 그리고 사회참여의식을 강하게 읽을수가 있어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리성철시인님이 늦깎이로 시공부를 다시 시작한만큼 새로운 한해 더욱 좋은 결실이 있으시길 두손 모아 기대해보면서 따뜻한 인사말이라도 한마디 전하려고 한다. 리성철시인님, 보내주신 책들을 잘 읽고 있고요. 2015년, 쨍하고 해 뜰날 멀지 않았으니- 힘 내세요!
2014년12월 12일 심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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