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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수교수는 학생들과 “생활품질”이라는 낱말을 두고 쟁론을 벌린적이 있다고 한다.그는 학생들의 물욕에만 빠져버린듯한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대성호질하면서 너들이 추구하는 소위 생활품질은 “죽은 정승보다도 살아있는 강아지”라는 말의 컹컹-왕왕한 현대판본으로서 리상적인 형이상학적 이미지가 없으며 지어는 어학적인 이미지마저도 상실하였을수도 있다고 복잡하게 지적하였다고 한다.
이 며칠동안 리장수교수는 갑자기 자기가 생활품질쟁론에서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잔혹(리장수교수의 말)”하였음을 자아성찰하게 되였다.그는 생활품질이란 형이상학적 이미지도 좋고 형이하학적 이미지도 좋은것이라는것과 “생활이자 생활의 목적이다.그러므로 생활은 만들어서 누리는것이다”는 도리를 약간 터득하게 되였다.
리장수교수는 “생활이자 생활의 목적이다.그러므로 생활은 만들어서 누리는것이다”라는 이상야릇한 도리를 살아보려고 하였다.때문에 그가 밤에 “도인파수수군재”를 나와서 리정과 함께 텔레비죤을 컹컹-왕왕 쳐다보는 차수가 많아지게 되였다.남편은 뉴스프로그램 또는 스포츠프로그램을 즐겼지만 리정은 여전히 황제들이 줄지어 나오는 텔레비죤 드라마를 즐기였다.텔레비죤 리모콘은 당연하게 리정에게 독점사용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리장수교수는 리정의 손에서 텔레비죤 리모콘을 컹컹-왕왕 탈취하는 꾀를 부려보았다.
“이봐,저 황제들 이야기가 그렇게도 컹컹-왕왕 재미있어?”
“재미있구말구요,세상이 황제 한사람 어명에 따라서 컹컹-왕왕 움직이는데.또 배우들은 컹컹-왕왕 명배우들이 아닌가요?”
“저런것들은 모두가 컹컹-왕왕한 거짓말이야!”
“예?”
“저런 텔레비죤드라마를 제작하는 감독이든 영화배우이든 모두가 력사의 진실을 내버리는 엉터리를 치는거야.사실 황제들의 생활이란 우리 현대인들의 상상과는 컹컹-왕왕한 거리가 있었거든.물론 력대의 황제들이 마누라가 많고 자식이 많은것은 보편적인 사실이 였지.하지만 황제들이 저런 정도로는 호의호식하지는 못했어! 황제들이 사업고찰을 나갈 때에는 말을 타지 않으면 마차를 앉아야 하였으니 그놈들 엉뎅이와 허리는 얼마나 아팠겠어? 따위들이 자동차나 비행기를 컹컹-왕왕 타본적이 있었겠나? 생각도 못해보았지! 력사문헌기록에 의하면 옛날에 옷을 누덕누덕 기워입은 황제도 있었거든.잘 생각해보라구.우리는 황제들보다도 컹컹-왕왕 먹고 컹컹-왕왕 입고 컹컹-왕왕 놀아대는거야!”
리장수교수가 황제들의 생활품질을 컹컹-왕왕 비하하고 현대인들의 생활품질을 컹컹 -왕왕 찬미하자 리정은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리장수교수는 그 틈을 타서 리정의 손에서 텔레비죤 리모콘을 슬쩍 빼어내였다.그리고는 텔레비죤 챤넬을 뉴스프로그램에서 스포츠프로그램에까지까지 컹컹-왕왕 바꾸어가면서 입가에 웃을을 떠올렸다.리장수교수가 간교한 웃을을 감추지 못하자 리정은 자기가 남편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것을 깨닫았다.그는 남편을 탁 때려주었다.리정이 또다시 텔레비죤 리모콘에 대한 독점사용권을 컹컹-왕왕 행사하였으므로 텔레비죤 화면은 또다시 황제들이 거들먹거리는 장면으로 바뀌여졌다.
리장수교수는 리정과 함께 “생활이자 생활의 목적이다.그러므로 생활은 만들어서 누리는것이다”를 만들려면 황제들을 눈요기는 해주어야 하였다.하지만 그는 텔레비죤드라마가 중단되고 텔레비죤 화면에 인공류산과 불임증치료를 컹컹-왕왕 해준다는 병원광고 그리고 정력제광고가 떠오르는것은 싫었다.때문에 리장수교수는 텔레비죤드라마가 중단되면 언제나 마주앉은 탁자우에 놓여진《격정의 동강》을 뒤적거렸다.《격정의 동강》앞뒤표지에도 인공류산과 불임증치료을 컹컹-왕왕 해준다는 병원광고 그리고 정력제광고들이 질벅함은 사실이다.리장수교수는“격정의 동강”을 팽개치면서 버럭 소리지를 때도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놈의 세상이야?”
리장수교수는 저질적인 상업광고들에 치를 떠는듯한 신경과민증을 내보여왔다.나는 리장수교수가 저질적인 상업광고들에 불필요한 이상반응까지를 내보이는 현상은 그가 동강대학의 토끼장같은 독신숙사를 떠나 8층교직원아파트를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리장수교수는 8층교직원아파트에 이사오자 그가 한번을 기여오르는데 2분 56초,아니다.리정이 결혼선물로 사준 수입제 메카손목시계를 리용하여 다시 실험하고 실증한데 의하면 2분 56초가 아니라 2분 58 초 소요되는 1층부터 8층까지의 복도벽과 사촌동생이 “전투영웅 동존서가 또치카를 망가뜨리던 폭파약꾸러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깨뜨린다는것은 어림없어”라던 도적방지전문용철문에 수많은 종이장들이 얼룩덜룩 나붙음을 발견하였다.얼룩덜룩 종이장들은 인쇄광고장들이였는데 리장수교수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면 “그대를 대신하여 그대의 마누라에게 남편일을 해드리렵니다”를 내놓고는 세상 벼라별 광고들이 죄다 포함되여 있었다.
리장수교수는 저질적인 인쇄광고장들 때문에 란잡해지는 교직원아파트 복도벽이 아까웠다.그리고 도적방지전문용철문도 아까웠다.1층부터 8층까지의 교직원아파트 복도벽은 그의 개인소유물이 아니였으므로 그런대로 내버려두기로 하였다.그러나 자기의 보금자리를 튼튼하게 지켜주는 도적방지전문용철문은 미용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어느날 리장수교수는 쪽걸상 하나에 물 한대야에 가루비누 한봉투에 또 일부러 사온 솔까지 챙겨들고 한시간을 씩씩거리였다.그러고나니 도적방지전문용철문에 나붙은 인쇄광고장들이 깨끗하게 소멸되였다.그런데 이튿날 퇴근하니깐 어제밤 깨끗하게 빨아준 도적방지전문용철문에는 새로운 인쇄광고장들이 빼곡하게 나붙었는데 빨아주기전보다도 오색찬연하였다! 리장수교수는 인쇄광고를 내붙이는 사람들에게 광고판 하나를 공짜로 미용시켜주는 일을 멋들어지게 해주었던것이였다!
제길할! 리장수교수는 목구멍까지 기여오른 욕지거리를 꿀꺽 삼켜버렸다.그는 마음속으로는 동강대학 3번 사무청사의 1층 창문아래 바깥벽에 큼직하게 씌여진 “여기에서 똥오줌을 누는 사람은 개나 돼지보다도 못하다!”는 문자들을 도용해다가 도적방지전문용철 문에 “이 도적방지전문용철문에 인쇄광고장을 내붙이는 자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하다!”를 써놓고 싶었다.
리장수교수는 도적방지전문용철문을 빨아주는 실천미학을 그만두기로 하였다.이튿날 그는 학생들에게 “력사미학이라는 학과가 없는것은 리해되지만 공중장소미학이 결여된것은 리해를 진행하기가 힘듬은 사실이다.너들이 공부의 여가를 타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절대로 인쇄광고장을 마구 내붙이는 아르바이트는 하지도 말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였다.그러면서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상업광고들이 하늘땅을 뒤덮는 사회현상을 50여년전 반도전쟁으로부터 나타나게 되였다는 “무차별줄작탄던지기”로 형용하였고 “저질적인 상업광고들이 범람됨은 현시대 공상업사회의 고집병이다.이러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도인왕국이 도인제국으로 진입하던 시기에 도견들에게 입혀주었던 철제갑옷을 챙기는 재간을 갖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저질적인 상업광고들의 무차별줄탄던지기의 눈먼 파편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리장수교수는 텔레비죤 화면에 떠오르는 무차별줄탄던지기의 눈먼 파편들을 피해버리려다가《격정의 동강》이 해대는 무차별줄탄던지기 눈먼 파편들에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면 때로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이봐,<격정의 동강>이 날이 갈수록 말이 아니구먼! 내용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그리고 앞표지에도 뒤표지에도 무슨 죽을놈의 저질적인 상업광고들뿐이여? 우리 동강시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인공류산과 불임증치료만을 밥먹듯 하나? 정력제를 물처럼 마시나? 그런것들을 적게 내라구! 동강시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까지도 생뚱생뚱하게 만들어놓으면 컹컹-왕왕한 산아제한사업도 지장받을 일이야!”
리장수교수의 허튼소리 전화를 듣고나면 나는 그가 괘씸스럽기만 하였다.나는 “리교수님도 알다싶이 <격정의 동강>이 내용이 여차여차하고 상업광고가 여차여차한것은 나하고 무슨 쥐뿔같은 상관이 있는가? 그것들이 리교수님 기분을 흐트려놓았다고 생각되면 앞으로는 나보고 <격정의 동강>을 공짜로 내달라는 말은 하지도 말라!”고 툭 쏘아주고 싶었다.그러나 나는 찍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였다.그저 으흐흐 으흐흐 웃어주면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는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 차본다는 식으로 허참! 허허참!을 고함칠 수밖에 없었다.
“나무는 그루터기를 옮기면 죽어버리고 사람은 자리를 자리를 옮기면 살아난다.”는 말이 있다.나는 언제부터《격정의 동강》을 떠나고만 싶었다.그리고 동강대학이 동강시 여러개 중등전문학교를 컹컹-왕왕 병합하고 대학규모를 컹컹-왕왕 늘여가는 추세를 보면 동강대학에 관광학원이 성립된다는 일은 조만간의 일이라고 판단하여 왔으므로 동강대학에 많은 교사들이 요구될 관광학원이 성립되는 날이면 진저리나는《격정의 동강》을 떠나 관광학원으로 자리를 옮겨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부친을 통하여 동강대학 교장에게 앞으로 관광학원에 자리를 옮겨주면 나도 석사학위연구생이나 노력할것이니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해두고 있었다.그리고 몇달전부터 리장수교수가 둘도 없는 관광학원 원장감이라는 소문을 얻어들었으므로 만일 그와의 관계를 잘 처리한다면 그를 교장 다음으로 가는 두번째 기둥으로 써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교장을 큰 기둥으로 관광학원 원장일 리장수교수를 작은 기둥으로 하는 “쌍겹보험술책”이면 내가 관광학원 교사편제로 넘어가는 일이 문제없을것 같았다.그러니 리장수교수와 공연하게 엇설수는 없는 일이였다!
이야기가 되였던 바에는 나와《격정의 동강》도 잠간 이야기하려고 한다.나는 동강대학을 졸업하면서 마땅한 직장을 찾지못하여 무척 괴로웠다.공무원은 출퇴근시간을 지키기가 시끄럽다니 공무원이 될 생각이 없었고 회사원으로 취직하면 내가 배운것으로는 기껏해야 비서노릇을 할터이니 회사도 싫었다.그런데 동강대학에서 4년간을 흐리멍텅하게 지내고나니 화원식 정원이 마음에 들었는지 동강대학을 떠나고싶지가 않았다.석사학위연구생과 박사학위연구생은 자신이라곤 없는데 내가 본과대졸자로서 동강대학에 교사편제로 남는다 는것은 남자가 애기를 낳는것이 가능해도 그것만은 불가능한 일이다.어떻게 하면 좋을가?
나는 부친에게 동강대학 화원식 정원내를 계속 살고싶은데 방법을 대달라고 말하였다.부친은 동강대학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본다고 대답해주었다.동강대학 교장은 부친과는 절친한 대학동창이다.그는 부친과의 우정을 위하여서는 내가 동강대학에 두발을 내려놓을 장소는 마련해주겠다고 응낙하였다.그러나 나의 최종학력이 본과대졸이므로 교사편제에는 넣어줄수는 없고 나더러 동강대학《동강학지》에 편집으로 있다가 학력공부를 힘차게 밀어나가고 기회를 보아서 동강대학의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였다.
나는 동강대학을 졸업하고《동강학지》를 출근하였다.《동강학지》는 학술론문만 다루는 학술간행물인데 나의 수준으로서는《동강학지》의 편집을 해낼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편집부 걸상만을 지켜왔다.그런데 출근한지 아주 몇년만에《동강학지》보다는 좋을듯한 곳이 나지게 된것이다.
《동강학지》아래에는《동강정보론단》이라는 간행물 하나가 달려있는데 급수가 낮고 발행부수가 적어서《동강학지》에 얹혀사는 신세였다.《동강학지》는《동강정보론단》을 페간해버리고 싶었지만 근년에 간행물등록번호를 신청하는 일이 힘든 사실에 근거하여 《동강정보론단》을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에 보관”시키고 있었다.그 목적은 기회가 생기면《동강정보론단》의 간행물등록번호를 써먹으려는것이였다.내가 《동강학지》에서 학력이 높고 재간있는 편집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몸둘바를 모른지가 아주 몇년이 되자 《동강학지》에서는 나더러《동강정보론단》에 내과수술식개혁을 진행하여 만든《격정의 동강》편집을 하라고 하였다.
학술론문을 다룰수가 없어 나와 함께《동강학지》에서 밀려나온 몇명의 말에 의하면 《동강학지》와 간행물들을 빌어서 돈벌이하는 어느 광고회사가 협상을 맺었다고 하였다.《동강학지》는《동강정보론단》의 간행물등록번호와 발행번호를 그리고 우리 몇명을 광고회사에 빌려주었고 광고회사는《동강학지》에 얼마간의 보상금을 내여주며 또 비상수단으로《동강정보론단》을《격정의 동강》으로 개명하는데 앞으로는《격정의 동강》을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간행물로 꾸리여 가되 상업광고가 많아지여 경제수익이 높아 지면 경제수익의 절반을《동강학지》에 나누어준다고 하였다.
팔려간다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나에게는《격정의 동강》이《동강학지》보다는 좋을것 같았다.《동강학지》에서 밀려나왔지만 나의 인사소속관계는 여전히《동강학지》 편제내이고 동강대학 편제내이다.그러므로 나라에서 내주는 재정봉급은 한푼도 줄어들지 않는다.《격정의 동강》을 괜찮게만 편집하면 광고회사가 장려금도 내준다!
나는《격정의 동강》을 편집하면서 리장수교수에게 매기마다《격정의 동강》을 가져다 주었다.《격정의 동강》을 좌우지하는 광고회사는“먹물이 다소 들어있는 부류”를《격정의 동강》 제1목적시장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시장조사연구에 근거하면 40대이상 인테리들 이야말로 정력제 제1소비시장이므로 우리들더러《격정의 동강》을 동강대학의 어느 부서에든지 무료로 배달해주라고 규정하고 있었다.리장수교수는 그러한 내실을 전혀 몰랐으므로 매달마다 도인무화연구센터 사무실 책상우에《격정의 동강》던져놓는 나에게 언제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잘도 해주었었다.
내가 소설같지도 않는 이 소설을 적어보는 일도 사실은《격정의 동강》과 관련된다.《동강학지》의 버림을 받은 우리 편집진은 동강대학에서는 경제수입이 적은 렬세인간들 이라고 말할수가 있다.우리는 리장수교수처럼 봉급외에도 수업보조금같은것을 받아먹을수가 없었으므로 동강대학 화원식 정원내에서는 우리들이야말로 제일 청렴한 인간들일것이라고 자칭하여 왔다.가난하니깐 우리는 때로는 불쌍한 주필에게 가난투정을 부리였다.그에게 광고회사와 협상하여 매달 인민페 2백원씩 나누어주는 장려금을 인민페 1-2천원 정도로 분투해보자고 부채질하였다.주필은《격정의 동강》편집진의 요구이자 자기의 요구였으므로 광고회사와 여러번 상론해보았다고 한다.그런데 광고회사는 인민페 1-2천원이 아 니라 장려금 인민페 2백원마저도 계속 내주기가 힘들다고 답복하였다고 한다!
어느날,우리 편집진은 주필과 술 한잔을 나누면서 밉상스러운 광고회사에 대한 대책을 의논해보았다.나는《격정의 동강》에 나가는 글들이 누구나 알다싶이 수준이 발바닥이지만 그런 글들을 갈겨대는 소위 작가들이 타먹는 원고료라는것이 실존하지 않는가? 우리도 그 원고료를 조금 나누어서 먹으면 안되는가고 건의하였다.
주필과 편집진 몇명은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나의 건의에 두손을 들어주었다.주필은 기행문같은것은 자기가 쓰겠으니 우리 몇명더러 기행문을 내놓고는 마음대로 선택하라는것이였다.기행문은 광고회사가 사전에 려행비용도 조금씩 보태주었음으로 주필도 아닌 나에게는 그런 좋은 일이 차려질수가 없었다.나는 가난해도 욕심쟁인지라 생각해보나나서 글자수가 많아 원고료가 될듯한 장편소설을 한편 내놓겠다고 하였다.
주필은 내가 장편소설을 만들어서《격정의 동강》에 련재하겠다니 크게 믿어주는 태도는 아니였다.그러나 내가 날마다 그의 사무실을 청소해주는 일을 감격해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장편소설을 재미있게만 써내면《격정의 동강》에 련재해주겠다고 대답하였다.
주필과 편집진 몇명은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을 모르는 나에게 장편소설을 되도록이는《격정의 동강》의 얼마 안되는 독자들 마음을 똑똑바르게 끌어댕길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내라고 귀뜸하였다.나는 꼭 그렇게 해낼거라고 다짐하였다.그러나 나는 칼과 검을 사납게 휘두르는 영웅들이 까마귀처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미녀들이 개미떼처럼 도처에 득실거리는 무협소설이라든가 하늘땅을 뒤흔들어서 독자들더러 눈물을 휘날리게 만드는 사랑이야기같은것을 꾸며낼 재간은 없었다.그래서 나는 주변에서 장편소설의 인물과 사건을 찾아내야 하겠다는 그럴둣한 생각을 하였다.그리고 재미있는 인물과 사건을 물색하던 과정에 리장수교수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일상을 소설로 써보기로 마음먹었던것이다.
나는 “결혼리혼전문호”를 통하여 동강대학에 리장수교수라는 사람이 실존함을 알았다.그리고 리장수교수와 접촉하는 과정에 그가 성격이 량면적이고 모순적이고 복잡한 소위 성격풍만형의 소설모델 인물일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리였었다.그러나 나는 리장수교수의 일상들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감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그런데《소설창작기교》에 소설의 인물부각은 “울퉁불퉁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대목이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자 왜서인지 리장수교수가 “울퉁불퉁”하게 느껴졌고 그와 그의 일상들을 소설로 만들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소설을 재미있게만 만들라던 주필과 편집진의 충고들마저도 구중천 멀리로 훨훨 날려보내고 소설을 여기까지 적어내려온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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