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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대학은 야릇한 동네이다.화원식 정원으로,무료공원으로 불리우지만 야릇한 동네가 아닐수가 없다.소위“컹컹-왕왕붐”만 보아도 그렇다.사람마다 아무것도 아닌 신조어 컹컹-왕왕을 거세차게 써먹으면서“컹컹-왕왕붐”을 만들어내였다.그런데 근일에는 갑자기 그 누구도 컹컹-왕왕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동강대학“컹컹-왕왕붐”이 아무런 연고없이 죽어버리는것은 구경 무슨 원인때문일가? 나는 소설속에 컹컹-왕왕을 즐비하게 집어넣었으므로 동강대학“컹컹-왕왕붐”이 갑작스레 사라져버리는것이 마음에 컹컹-왕왕 걸렸다.때문에 동강대학“컹컹-왕왕붐”이 갑작스레 사라지는 자초지종에 대하여 분석과 연구라도 진행해보고 싶었다.그러나 분석연구 능력을 배워내지 못한 주제여서 허튼 생각들만을 컹컹-왕왕 굴려보았다.
동강대학에 컹컹-왕왕을 우렁차게 부르짖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것은 어딘가는 서운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동강대학 “컹컹-왕왕붐”이 나의 소설창작에 령감을 컹컹-왕왕 가져다주었을수는 있다! 적어도 소설의 글자수를 늘이는데 있어서는 제멋대로의 역할을 컹컹-왕왕 놀아주었을수는 있다!
나는 사람들이 부르짖는 컹컹-왕왕을 얻어듣지 못하게 되자 개들이 짖어대는 진짜 컹컹-왕왕이라도 실컷 들어보고 싶었다.그래서 어느날 저녁에는 작은 호수가 부근을 두리번거리였다.“개엑스포”에서 개들이 짖어주는 진짜 컹컹-왕왕을 마음껏 감상하고 집으로 돌 아왔다.
동강대학 화원식 정원내에 사람들이 부르짖는 컹컹-왕왕이 사라지고 작은 호수가 부근 “개엑스포”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진짜 컹컹-왕왕이 구태의연한 가운데서 동강대학 관광학원이 정식으로 성립되였다.그러나《격정의 동강》편집부로부터 관광학원에 자리를 옮겨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가입하려던 나의 희망은 물거품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주필은 동강대학 령도자들의 지시인데 나더러《격정의 동강》에 동강대학 관광학원이 성립된 기사 한편을 굉장하게 써내라고 말하였다.관광학원이 여름개학부터 대규모적인 대학생생모집을 시작할것인데 소위 여론조성을 한다는것이였다.그는 또 “광고효능”이라는것을 리용하기 위하여 인공류산과 불임증치료를 잘해준다는 병원광고 그리고 정력제광고가 살판치던《격정의 동강》앞뒤표지에 동강대학 관광학원을 소개하는 교육공익광고를 무차별줄작탄던지기로 낼것이라고 말하였다.
동강대학 령도자들의 지시라고? 여론조성이라는것을 흉내낸다고? 무차별줄작탄던지기를 따라배운다고? 흥! 그러나 그런것들이 나하고는 무슨 상관인가?
나는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들지못한 분풀이를 해낼데가 없었다.그래서 소설창작으로 머리가 아프다는 리유를 추켜들면서 주필에게 동강대학 관광학원과 련관된 일만은 편집진 다른 사람에게 도맡길것을 바란다고 하였다.뿐만아니라 주필 사무실과 편집부 청소도 그만두었다!
동강대학 교장은 “도인왕국시기 권력구조특성을 평함”을 빌어 그의 학술표절과 리장수교수의 학술회뢰를 검거한 익명편지사건과 익명삐라사건이 발생된 뒤에는 사소한 일마저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그는 부친에게 최종학력이 본과대졸생인 교직원을 관광학원 교사 편제내에 편입시키지 않는것은 동강대학상무위원회가 토론결정한 원칙으로서 최종학력이 본과졸업생인 당신의 자식을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밀어넣으면 동강대학 화원식 정원내에 익명편지와 익명삐라들이 또 비둘기처럼 훨훨 날아다닐것이다.당신은 자식더러 학력공부에나 열중하게끔 귀뜸주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교장과 관광학원 원장으로 발탁된다던 리장수교수는 내가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가입하려는 일에서의 두개의 기둥이였고 “쌍겹보험”이였다.그런데 큰 기둥은 썩어버려 기대일수가 없고 작은 기둥은 와르르 무너졌으니 “쌍겹보험”커녕 “외겁보험”마저 잃어버린 나는 울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나는 동강대학이 중점대학도 아닌 지방대학 주제에 본과대졸생을 교사편제에 편입하지 않는다! 동강대학은 본과대졸생 기시책을 한다!는 불만소리들로 하루하루를 보내였다.그러면서 나는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편입된 교직원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그들을 여러가지 파벌로 나누어보는 장난까지를 시도해보았다.
관광학원 편제내 교사들은 관광학원 원장으로 발탁된 경제학 교수의 꽁무니를 쫓아온 작자들이 대부분이였다.나는 그들을 다수파라고 이름지었다.관광학원 교사편제에는 동강대학에 병합된 동강시 여러 중등전문학교의 교직원들도 꽤나 밀려들어 있었다.나는 그들을 소수파라고 이름지었다.또 1-2명은 어디에서 굴러온것도 알지못할 작자였는데 나는 1-2명에게 “쌀에 뉘”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리 부러진 노루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한다.나는《격정의 동강》편집부에 앉아있는 시간이 적어졌고 리장수교수의 도인력사문화연구센터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나의 다수파요 소수파요 “쌀에 뉘”파를 듣고나면 리장수교수는 나하고 소설가선생은 무슨 파인가고 물었다.나는 리장수교수에게 경제수입이 괜찮을듯한 교사편제에 들려고 아득바득하 는 사람은 무슨 파로 부르면 좋을가고 반문하였다.그리고는 리장수교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안락추구파로 자칭해보았다.그러자 리장수교수는 자기야말로 무파벌파라고 하였 다.
무파벌파? 나는 리장수교수에게 들고갔던《격정의 동강》의 앞뒤표지를 그에게 펄럭펄럭 뒤번져보였다.그러면서 리교수님은《격정의 동강》에 기여오른 동강대학 관광학원 령도자들의 사진을 보셨는가? 도리대로라면 리교수님의 사진이 첫장으로 기여올라야 할 일이다! 계획대로라면 나도 관광학원 수업준비를 해둔다고 언녕언녕부터 두터운《관광학개론》을 펄럭펄럭 뒤져보아야 할 일이다! 안락추구파도 무파벌파도 우리에게는 화려하게 벅찬 이름이다! 리교수님도 나도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파벌나누기 장난도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나는 나같은 인간들이 교사편제를 좋아하는 진정한 원인을 캐보고 싶었다.
내가 읽어본 책들에는 과거에 대학교 교사들도 무슨 “고린내나는 아홉째”로 크게도 욕보았다는 내용들이 적혀있었다.그런데 근년에는 어째서 적잖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린내나는 아홉째”로 되려고 컹컹-왕왕 노력하는걸가? 배속의 아이도 돈소리를 들으면 손을 곱게만 내민다고 말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교사편제내에 끼여들려는것은 다만 괜찮을듯한 경제수입을 위해서일가? 이런 사회현상을 혹시는 “알고도 모를 무형의 진보”로 볼수가 있지 않을가?
리장수교수는 나의 물음에 직접식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무엇이든 력사배경과 력사흐름으로부터 분석연구를 진행하기를 즐기는 습관을 뽐내고 싶었던지 나에게 동강대학 “과거진행식”이였다는 사건 하나를 이야기해주었다.
반우파때와 문화대혁명때 동강대학은 “인인상잔”보다도 몇배로 고급상잔인 “인인상잔” 이 많았다.그 시기에 동강대학 교사들은 자살자만 32명이 된다. 32명 자살자들의 자살방법은 “오색찬연” 하기도 하였다.32명 자살자중에서 영국류학을 돌아온 로교무장의 자살과 자살방법이야말로 만일 《인류자살방법대전》이라는 책만 있다면 그런 책에 수록될만한것이였다!
로교무장은 밤낮으로 투쟁맞으며 로동개조를 하였다.어느날 로교무장은 농학을 배우는 공농병 대학생들 감시하에 동강대학내 채마전에서 풀을 뽑고있었다.그런데 그는 동강대학 부속중학교 코흘리개 홍위병들이 자기를 “꾸어서 비판투쟁”하려 온것을 알게 되였다.로교무장은 차용되여서 투쟁맞는다는 일이 괴로웠던지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는 무엇을 하리!” 를 애처롭게 부르짖고 채마전 인분웅뎅이에 풍-더-덩 뛰여들었다.죽었다…
나는 화원식 정원이고 무료공원인 동강대학내에 과거에 채마전과 인분웅뎅이까지 실존하였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그러자 리장수교수는 채마전은 동강대학 농학과의 실험전이였고 인분웅뎅이는 실험전에 사용되는 인분거름웅뎅이였는데 문학대혁명이 끝나고 채마전을 없애버리고 인분구뎅이를 개조한것이 현재 “개엑스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장소인 작은 호수가 생겨난것이라고 해석해주었다.
내가 “꾸어서 비판투쟁”을 리해못하자 리장수교수는 동강대학부속중학교에는 외국특무, 우파분자 등 수두룩한 모자를 쓴 로교무장과 같은 큼직큼직한 비판대상자가 없었으므로 동강대학 부속중학교 코흘리개 홍위병들은 “비판투쟁대회의 규격과 품질”을 높이려고 로교무장을 “꾸어서 비판투쟁”하려고 하였던것이라고 해석해주었다.
리장수교수는 동강대학 로교무장이 채마전 인분웅뎅이에 풍-더-덩 뛰여들어 자살한것을 사례로 무슨 “죽음의 방식과 죽음의 존엄” 그리고 “자살자의 인격과 존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길게 떠벌리려고 하였다.그런데 나는 그런것들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다.그래서 슬쩍 화제를 돌려보았다.나는 반우파때는 리교수님이 “만세”와 “타도”로 말배우기를 시작하기커녕 태여나지도 못하였던 때가 아닌가? 그리고 문화대혁명때는 리교수님이 녀자애들과 종이쪽지나누기도 못하고 비판문장이나 베끼여쓰던 때인데 어떻게 동강대학의 반우파때와 문화대혁명때의 일들을 자기 손금보듯이 알고 있는건가고 질문하였다.그러자 리장수교수는 나더러《동강대학년보》를 찾아서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동강학지》자료실에서《동강대학년보》를 찾아보았다.그러다가 아주 생각밖에 《개혁개방초기동강대학우수론문집》을 발견하였는데 그 론문집에 수록된 리장수교수가 쓰고《동강일보》편집이 제목의 어순까지를 바꾸어놓았다는 “우리의 생활과 서양철학”을 읽어보게 되였다.
이튿날 나는 또 도인력사문화연구센터 사무실로 건너갔다.리장수교수에서 그의 “휘황찬란한 력사흔적”을 발견하였음을 알려주었다.리장수교수는 갑자기 목에 뻘건 피줄을 띄우고 침방울을 흩날리기 시작하였다.내가 그의 “휘황찬란한 력사흔적”까지를 읽어보았다니 여간만 흥분된것이 아니였다.
나는 나의 력사경험에 근거하여 리장수교수를 찾아가면 언제나 인민페 1원짜리 증류광천수 한병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그래서 다행이 리장수교수의 “침방울력사흔적”이 흥건한 차물을 얻어먹을 념려는 없었다.
리장수교수는 “우리의 생활과 성양철학”은 필경은 꽁꽁 밀봉된 력사시기의 쪼박론문 이였으므로 수준이 발바닥이다.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동강대학 석사학위연구생에 입학하는 일에서는 아주 관건적인 역할을 놀았다고 하였다.
리장수교수의 말에 의하면 그가 동강대학 석사학위연구생입시에서 합격점수를 따내였 던것은 아주 사실이였다.그러나 동강대학 석사학위연구생부에서는 그의 리력서당안에 “3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있는것을 크게 꺼렸다.리장수교수의 석사학위연구생 지도교수는 그 소식을 듣고 동강대학 석사학위연구생부를 찾아갔다.그는《개혁개방초기동강대학우수론문집》을 내놓으면서 본과대학 재학시절에 철학론문까지를 써내는 리장수가 인재가 아닐수 없다고 하였다.지도교수가 만난을 물리치고 추천해주었던 덕분에 리장수교수는 석사학 위연구생 입학통지서를 받아쥐였다…
리장수교수의 석사학위연구생입학 이야기를 듣고나자 나는 갑자기 내가 리장수교수의 석사학위연구생을 하면 어딘가는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강대학 교장은 내가 석사학위연구생만 해내면 관광학원 교사편제에 넣어준다고 확실하게 말하였다.만일 리장수교수가 나에게 도인력사문화연구 석사학위연구생 전문과목 시험내용에 관해서 “치마폭을 슬쩍 들어주기”를 해준다면 외국어는 괜찮게 하는 내가 동강대학 도인력사문화연구 석사학위연구생입학시험에 컹컹-왕왕 통과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내가 석사학위연구생만을 컹컹-왕왕 끝내며는 동강대학 관광학원 교사편제내에 늦게라도 컹컹-왕왕 끼여들수 있다는 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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