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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완퉁 썩궁리 시리즈14
교원 예찬에 대해서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
현재 사회적으로 흔히 교원을 "신근한 원예사" 혹은 "인류 영혼의 공정사"라고 부른다. 저 역시 비록 교원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내심으로 이러한 호칭에 거부감이 생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원예사는 자기의 심미기준에 따라 화초와 나무를 가꾸면서 서로가 조화되는 조경을 이룩하는데 "눈에 거슬리거나" "모난 가지"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원예사는 화초나 나무를 키우지만 교원은 인간을 키운다. 인간의 첫째가는 권리가 개성을 존중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원--이른바 원예사들은 집단의 영예을 내세우면서 학생들의 개성, 즉 모난 가지들을 아무런 고려없이 잘라버린다. 때문에 학교에서 배양한 학생들을 보면 행위나 사유나 성격이나 거의 천평일률적이다. 한발 물러나서 원예사는 그래도 자기의 심미적인 주장이 있고 이러한 주장에 따라 조경을 이룩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원들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그것도 진정한 상급이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오야지 노릇을 할 뿐이다. 진정 인간을 키워가는 원예사로 될려면 "모난 가지"를 "모난"쪽으로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하여야 할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인류 영혼의 공정사라고 할 때 영혼을 설계하는 소위 공정사라는 사람들이 영혼이 있는지를 먼저 묻고 싶다.(자기의 영혼을 외부적인 힘에 빼앗긴 채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과 과연 영혼 혹은 인생을 담론할 수 있는지)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참된 이해와 건전한 추구가 없는 사람이 영혼을 설계하고 인간을 키워간다면 진정 인간으로 키워갈 수 있겠는지 참 의문스럽다.
교원이라면 우선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인격적인 매력과 감화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교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하며 사회를 관심하고 참여한다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한다.(교원 = 연박한 학식 + 고상한 인격 + 사회적 책임)
교원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반대로 현재 교원들이 사회로 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원인중 하나가 바로 사회에 대한 참여가 부족하고 인격적인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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