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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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 역사는 진실을 댓글:  조회:3261  추천:104  2008-08-03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3역사는 진실을허명철현재 중국관변언론이나 많은 역사책들에서는 중국 항일전쟁을 흔히 8년 항쟁이라고 한다. 1937년에 있은 로구교사변을 계기로 시작된 중국의 전면적인 항일전쟁은 1945년 8월 15일까지 말그대로 8년이란 세월을 경과한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은 결코 1937년 "7.7사변"이 일어나서부터가 아니다. 그 이전에 연변땅에는 일제와 맞서 싸운 "3.13반일운동" 및 청산리전투,봉오동전투가 있었고 1931년 "9.18사변"후에도 홍기하전투와 같은 동북항일련군의 가열처절한 항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항일전쟁을 공식적으로 8년 항일전쟁이라고 할 때 이들이 진행한 항일무장투쟁은 공정한 역사적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일제가 이미 1910년대에 소위 중국땅이라는 간도지역에 들어왔었고 1931년 "9.18사변"후에는 동북에 위만주국까지 세웠다. 이에 맞서 싸운 동북인민들의 항쟁이 그래 중국의 항일전쟁이 아니란 말인가? [현재는 국부적인 항일전쟁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자발적으로 일떠나 손에 무장을 들고 백산흑수를 넘나들면서 6년동안(1931-1937) 제일 낙후한 장비로 제일 강대한 일제 관동군과 피흘리면서 싸워온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며 진정한 항일투사들임이 손색없다. 이들의 정신과 업적은 서책 아닌 어머님품처럼 드넓은 동북땅에 기재될 것이다.
43    42.짜장면 단상 (허명철) 댓글:  조회:2974  추천:111  2008-07-1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2짜장면 단상허명철어느 한 학자가 이야기 하기를, 20세기 민족주의의 성행은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두 사조의 실패라고...거창하게 민족주의를 논하기에 앞서 민족과 그 정체성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자고 한다. (조선족에 있어 아직은 주의까지 논하기는 무리라는 판단에서, 물론 틀린 판단일수도 있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류]의 한개 분자로 소속되고 있는 만큼 그 [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태어날때 남녀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어느 한개 집단의 성원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집단이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가족 더 나아가서 민족이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이란 이 민족은 어떠한 공동체인가? 그 정체성을 본다면 우선 중국내 기타민족과 구분되어 조선족으로 상징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중국공민이란 정체성을 지니게 되며, 범민족 차원에서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소유하게 된다. 즉 조선족은 다원화한 정체성 소유자로 되는 것이다(삼위일체?). 다원화된 오늘의 시대에 조선족은 오히려 다원화된 정체성때문에 고민이 생기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중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생기는 갈등과 벽이 바로 이러한 다원화된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이 아닌 자아 입장에서 오는 정체성의 강요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인은 한민족 정체성을, 중국인은 중국국민성을 요하고 있는데 조선족은 자기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문제의 관건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어찌보면 과거 우리는 민족을 논의하면서 객관적인 요소에만 집착해 왔었고 주관적인 심리적 경향성과 귀속의식을 홀시해 왔다고 할수 있다. 개체성원들에게 어떠한 정체성 교육을 진행하고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어야 하는가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조선족의 현실은 짜장면의 입지와 같다고 할수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요리로, 중국에서는 한국요리로 불리우고 있는 짜장면, 누구나 자기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원조가 중국이라는 이유로, 중국은 이미 한국맛으로 변형되었다는 이유로...자기의 귀속처를 잃어버린 짜장면, 그 신세가 가엾다. 조선족도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의식적인 교육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짜장면의 신세를 면치못할 것이다.
42    41.짜장면과 조선족 (허명철) 댓글:  조회:2769  추천:38  2008-07-09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1짜장면과 조선족 허명철간만에 먹어보는 짜장면이지만 오늘 따라 웬지 속이 개운하지 못하다. 짜장면을 먹다보니 또 썩궁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짜장면은 중국료리로 취급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한국료리로 취급한다. 원 산지는 중국이 맞지만 이미 한국식으로 개량되었기에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맛있는 짜장면은 누구나 즐겨드시지만 또 누구도 자기네 음식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짜장면 그 신세 어찌 보면 나하고 이리도 같을까.여태까지 나는 조선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떳떳히 살아왔다. 그래서 대학입학했을때 열린 신입생환영회에서도 부른 노래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 지난 월드컵때에도 "대한민국 짝짝궁..."하면서 시대광장에서 열심히 응원하군 했다. 근데 어느날, 엄숙한동지가 찾아와서 "너의 조국은 중국이구 너는 중화민족이야"고  엄숙히 타일러주었다. 그 소리에 나는 한참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부모도 할아버지도 분명히 한반도에서 살아왔고 조상의 뼈도 한반도에 묻혀있는데... 조국 역시 말 그대로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나라가 아닌가. 그리구 나는 조선족이고 중국공민이지 중화족은 아닌데.. 웬체 사상이 낙후한 사람으로 소문이 있는지라 엄숙한동지는 천천히 학습하면서 세계관을 개조하라고 한다. 후일 명심해서 학습했지만 학습할수록 인식은 점점 비뚤어지게 된다. 마침 새로 당선된 온가보총리가 미국방문 길에 미국에 이주한 한족들에게 "조국은 영원히 당신들의 뒤심이 될 것이라"는 격정으로 가득찬 연설을 했다. 그럼 미국에 이민가서 미국적을 갖고 있는 한족의 조국은 중국이구 중국에 이민와서 중국적을 가진 우리네 조국은 왜 한반도가 아닌 중국으로 되어야 하는가. ㅎㅎㅎ, 그래두 국가급 지도자들이 인식수준이 높구나. 결국은 엄숙한동지의 사상이 틀렸구나 하는 생각으로 나의 학습과 세계관 개조를 끝내고 말았다.
41    40.현대판 "나성교이야기" 댓글:  조회:6260  추천:91  2008-07-0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0현대판 "나성교이야기"허명철물에 빠진 조선어린이를 구하다가 영용히 희생된 지원군전사 라성교이야기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데 수영상식이 있는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을 물건 메듯이 어깨로 떠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판 라성교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대로 돌아가던 라성교는 강가에서 신나게 스케트 타는 어린이들을 보고 자기도 타고 싶은 충동을 못이겨 얼름강판위로 달려갔다. 그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살얼음이 꺼져내려가는 바람에 어린이와 라성교아자씨는 함께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강가에서 자란 조선어린이는 재빨리 헤염쳐 얼름위로 나오려고 했으나 헤염칠 줄 모르는 라성교아자씨가 어린이 발목을 잡고 놓칠 않는 바람에 실패하고 다시 물속에 빠져들어갔다.... 이렇게 거듭하던 와중에 라성교 아저씨는 의식을 잃어가게 되었고 어린이는 끝내 얼름위로 기여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어린이 발목을 놓치 않았던 라성교아저씨도 어린이가 얼름위로 올라가게 되면서 자연이 머리가 수면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 장면이 나중에 라성교가 어린이를 떠밀어 구하는 장면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라성교아저씨는 왜서 끝내 장렬히 희생되었는가. 그 어린이 발을 보면 답안이 나온다. 엉? 왜 어린이 신발이 한짝 잃어졌지. 누가 가져갔나?????????????? 오늘은 이 영웅을, 내일은 저 모범을... 맨날 누구를 따라배우는 인생추구에 지칠때가 있겠죠. 특이 그 어떤 정치적 수요에 의해 허위로 포장된 영웅사적에 눈물을 흘리다가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배신감을 느낄 때................이미 설계된 완숙한 인생프로그램을 실행하기보다는 가끔 바이러스침해도 당하고 또 스스로 이를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해가는 그런 인생을 즐겨보는 것도 일종 락이 아니겠어요    
40    39. 내가 존중하고 싶은 사람 댓글:  조회:2732  추천:78  2008-07-0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9내가 존중하고 싶은 사람 허명철昨飮金剛水(금강산 물 마신 것이 어제 같은데) 今食春川魚(오늘은 춘천 물고기를 맛보는구나) 錦繡三千里(삼천리 금수강산이여) 何日慶統一(언제면 통일을 경축할가) 이 시구는 풍교장이 10년전에 지은 즉흥시인데 이번 여름 심양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풍교장은 이 시구를 다시 읊어 남북학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내가 풍교장을 알게 된 것은 2002년 심양에서 가졌던 모임에서 였다. 첫 인상에서 나는 풍교장은 자기 사상이 있고 학식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에 있은 몇 번의 만남을 통해 풍교장이 걸어온 지난날의 역사 특히는 우리 민족을 위해 하신 일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진정으로 풍교장을 스승처럼 존중하게 되었다. -- 1957년 2월 ≪大公報≫에 톱기사로 스탈린의 계획경제이론을 부정하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당시 풍교장의 나이는 24세였다. -- 1988년 당시 워싱톤에서 당시 방문학자로 있던 조선족핵전문가 천문갑(현요녕발해학원 원장)교수가 한국에 가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고려로 감히 제기를 못하고 있을 때 풍교장은 서면보증서를 써주었다.“出訪韓國 責任我負”(한국을 방문하라 책임은 내가 진다) 천문갑교수는 그 자리로 워싱톤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방문을 신청했고 한국행을 실현하였다. 중한수교 이전 특히 제3국을 통해 한 조선족학자가 한국방문을 신청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 보증서는 지금도 천문갑교수가 보관하고 있다) -- 풍교장은 중국 대륙 1000여개 대학중 제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1989년)한 대학총장이었고 또한 제일 처음으로 한국유학생을 대학에 입학시킨 분이다.(1986년 독일에서 온 한국유학생을 홍콩으로 신분을 바꾸어서 입학시켰다.) -- 한국에서 불법체류로 있다가 심양공항에 내리면 벌금을 안기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풍교장은 요녕성정부 참사의 신분으로 직접 요녕성정부에 벌금을 취소할 것을 강력하게 제기하여 심양공항에서 벌금을 안기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 요녕조선문신문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에도 때 풍교장이 직접 나서서 성정부와 교섭하여 해마다 30만원씩 지원받을 수 있게 하여 우리말 신문이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는 큰 도움을 주었다. ...... 광복60주년을 맞으며 내가 구체책임을 맡은 회의에 풍교장을 대회집행주석으로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풍교장은 나에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다면서 아무런 부담을 갖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의 말씀을 주었으며 힘들면 심양에 와서 하라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풍교장의 관심과 배려에 난 단지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39    48.인생사색 댓글:  조회:3267  추천:100  2008-07-02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48인생사색허명철먹기 위해 사는것일가 아님 살기 위해 먹는 것일가? 참 잼있는 고민이다. 먹는 것과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1차적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왜서 먹고 왜서 사는가 하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가 먹는 목적은 무엇이고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인생의 목적을 논하는 매우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문제인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질문이다. 먹는 목적도 좋고 사는 목적도 좋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죽기 위해서인 것이다.  인간은 죽기 위해 먹고 또 죽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생애의 목적지는 이미 주어졌는바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다만 어느 때 죽고, 어떻게 죽느냐? 죽음으로 향한 길에서 어떠한 발자취를 남기느냐 ? 이것이 진정 우리의 관심 사항으로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내가 남긴 발자취에서 바로 나의 인생 추구와 가치가 체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면 그 사람의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은 이 영웅을, 내일은 저 모범을 ..이렇게 남을 뒤쫓는 삶을 살다 보면 비록 남긴 발자취는 많은것 같지만 어느 하나도 자기 것이 없다. 무슨 무슨 식 인물로 평가를 받는 인생은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결국은 자아의 존재와 개성이 결여된 누구식일뿐이다. 죽음이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남긴 발자취, 즉 자기가 걸어온 인생여정을 돌아보게 된다.  화려한 인생은 아닐지라도 단 하나라도 진정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만 있다면  아무런 유감도 미련도 없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예속에서 벗어난 인간이 아직도 자연의 본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을 가엽게 생각할 때 동물들은 사회의 예속에서 허둥대는 인간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   -- <로완퉁 사전 > 제 32페지에서
38    38. 내가 가야 할 길 댓글:  조회:3935  추천:78  2008-07-0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8미래지향적인 삶과 독서허명철이틀간 심양에서 열린 "조선민족전통음악"관련 회의를 마치고 오늘 한국학자들을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 나니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을 달랠길 없었다.(저는 연변 포됴우협회 회장의 명의로 참석했음.ㅎㅎㅎㅎ) 이번 행사를 위해 음력설 이튿날에  평양에 다녀와야 했고 4월초 심양에서 열린 예비회의에서도 남북 대표들 사이를 오가며 많은 입씨름도 했다. 모임 사흘 앞두고 한국에서 걸려오는 "회의가 제시간에 열릴 수 있냐"는 문의전화를 받을 때도 솔직히 파악이 없었다. 하지만 회의가 제시간에 열리고 전반 회의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모습들을 보여 줄 때, 특히 6.15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족의 전통문화--음악 예술들을 지켜가야 한다는 일치한 주장을 펼칠 때 필경 우리는 한민족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학술회의도 중요했지만 평양관에서 있었던 환영만찬에서의 그 모습들은 더욱 인상이 깊었다. 원체 음악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모임인지라 식당 직원들의 공식적인 공연이 시작되자 만찬은 완전히 즐거운 오락마당으로 탈바꿈 했다. 서로 앞다투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여기에 감명되어 식사하러 온 낯모를 손님들도 함께 참여했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술을 권하기도 했다. 남북학자들과 조선족 학자을 포함하여 식당 종업원, 그리고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이  서로 어깨 잡고 통일열차 달리기를 할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좁은 식탁 사이를 40여명이 만든 열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 진정 민족의 통일의 그날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연속 3기 전국인대 대표로 계셨고 료녕대학 교장을 지냈던 풍교장님은 눈물이 글썽해서 마이크를 잡고 일어서서 오늘 이 광경에서 조선민족의 희망을 보았다고 하면서 조선민족은 위대한 민족이며 21세기 인류역사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37    37. 조선족 호칭에 대하여 댓글:  조회:4037  추천:113  2008-06-24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7조선족 호칭에 대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온 이주민과 그 후손들을 근간으로 형성된 민족공동체이다. 그러나 이주시기부터 조선족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예하면 1931년에 반포한 "중화소베트공화국 헌법대강" 제14조에는 고려인으로, 1936년 남만지역 "하리회의" 결의문에서는 재만한인으로, 1949년 제1차 정협 및 국경 1주년행사에 주덕해 등은 조선민족 대표로 참석했다. 1952년도 연변에 자치구가 건립될 때 명칭도 "연변조선민족자치구"였다. 그럼 언제 조선족으로 호칭되었는까? 사실 1949년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당시 중국 경내에는 약 400여개 상이한 족성을 가진 공동체가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민족식별사업이 시작되면서 1953년도에 37개 소수민족이 확정되었고 (우리도 이시기에 하나의 소수민족으로 확정받은거죠) 65년도까지 17개 민족 1979년도 기노족이 독립민족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오늘날 55개 소수민족이 탄생하게 되었다.(현재까지 약 80만 정도 민족획분을 받지 못했음) 이렇게 볼 때 1953년도부터 중국경내에서 중국국적을 소유한 우리민족은 조선족이란 공식 명칭을 같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1952년도에 성립된 "연변조선민족자치구" 가 55년도에 자치주로 변경하면서 그 공식명칭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36    36. 문화재유실을 보고 댓글:  조회:2744  추천:79  2008-06-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6문화재유실을 보고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어제 오늘 모임에 참석하고 나서 분노와 허탈과 짜증으로 괴롭기만 하다. 금년 "중화민족"이란 제목으로 대형기록편을 만들게 되는데 제1집으로 조선족을 선정하였다. 어제 중앙TV 유명한 陆감독과 총설계사 刘사장과 자리를 함께 하여 이 프로를 어떻게 만들가 하는 좌담회를 소집했다.(류사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유학하고 북경대학에서 10년간 교편을 잡다가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에 문화참사로 지냈었고 현재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산하 영상출판사 사장직을 맡고 있음, 육감독은 고궁 등 대형기록편 감독을 맡았던 분) 좌담회에서 분노와 허탈을 느끼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 주변에서 인간문화재가 하나 둘 유실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유명했던 조선족 민간이야기 3대 대왕인 황귀연, 차병걸, 김덕순, 민간예술인 김경운, 김학천이  이미 세상뜨셨다는 소식을 듣고 더우기 생전에 이 보귀한 문화재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여 민족문화의 귀중한 자산들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노인네들, 이주, 반일, 항일, 해방전쟁과 같이 우리 민족역사의 산 증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하직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들에 대해 너무 방심한 것이 아닐까? 이들이 바로 정치화한 민족역사로부터 진실한 역사를 회복하는 산 증인인데...... 오늘 저녁에는 "문학과 예술"잡지사의 송년모임이 있었는데 자금난으로 어렵게 운영하던 중 금년에는 성보 정영채사장님이 2만원을 후원해 주신다고 한다. 한국인이 민족에 대한 애정으로 자금난을 해결해주고자 하는데 우리 조선족기업인들은 무엇하고 있는지? 어렵다고 아우성만 치지 말고 우리도 호주머니를 털어 자기 문화진지를 지켜갈 수 있는 자세를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우리 사회에 베푸는 문화가 필요할 것 같다.
35    34. 방문취업비자 발급에 즈음하여 댓글:  조회:2645  추천:85  2008-06-1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4방문취업비자 발급에 즈음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한국정부에서 오늘 7월부터 중국과 옛 소련지역 동포를 상대로 “방문취업비자(H-2)”를 신설, 발급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외교적 마찰”이란 “우려”를 가셔내고 진정으로 동포들의 고국임을 보여주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해외동포에 대한 정책차원의 개진뿐만 아닌 여직껏 말밥에 오르고 있던 송출비리, 노동시장 혼란, 불법체류, 범죄 발생 등 문제들을 해결하는 면에서도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조선족사회의 입장에서 놓고 보아도 이번 조치는 역시 매우 고무적이다. “방문취업비자”가 신설됨에 따라 해외노무송출시장이 더욱 활기를 가져올 수 있으며 조선족의 한국에서의 취업 및 연수인원 수도 급증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해외노무로 인해 발생되는 이혼률 상승, 자녀교육, 귀국 재정착과 재창업의 혼돈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오히려 감소될 수 있다. 따라서 곧 실시하게 될 이번 조치는 조선족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현실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방문취업비자”의 신설과 발급은 그 동안 쌓여온 한국과 조선족사회간의 불신의 벽을 깨뜨리고 새로운 “밀월”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로 될 수 있으며 이는 쌍방에 모두 유익한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주요 수혜대상으로 되고 있는 조선족사회에서 지방정부 관련부처에 위탁하든 민간단체에 위탁하든 적극적인 자세로 상응한 대비책을 내세워 고국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그러하지 않을 경우 자칫 또 다른 형식의 사기피해가 조성될 수 있다.   현재의 경우를 놓고 보면 우리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노무일군들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했었으며 이들의 가정과 자식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부족했다. 이들이 조선족사회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도에 비하면 받은 관심은 너무나도 적었다. 인간사랑의 결여가 과거 우리들의 노무송출사업에서의 커다란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과거에는 노무송출 및 취업에 있어서 제도적 장치가 문제시 되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방문취업비자”의 발급을 계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은 수혜자의 입장에서 한 가지 희망사항이라면 부디 “신(信)”과 “의(義)”를 지켜 좋은 제도를 악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34    33. 인생담론 댓글:  조회:2693  추천:61  2008-06-14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3인생담론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인생의 가치는 무엇이며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인생이라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아왔고 또 실천해왔었지만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항상 머리속에 잠재해 있다. 예를 든다면 인생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남들은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단순 생리학적으로 인생을 논한다면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인생이 시작된다고 혹자는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모태속에서 요동치던 10달의 성장기는 나의 인생이 아니란 말인가. 또한 생리학적 시각에서만 인생을 논한것이 옳은지? 가치의식 차원에서 혹은 이성적인 차원에서 인생을 논할 수는 없는지? 그리고 내가 철이들기 시작하면서 터득한바가 바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서 사람들은 죽음을 회피하고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태여나서 죽음에 이르는 전반 로정이 아니겠는가. 단 이 로정에서 개개인이 남긴 발자국이 다를뿐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발자국은 한해도 못 넘기고 종적을 감추지만 어떤 사람이 남긴 발자국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인간으로 태어났었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지 알 길 없으니 죽는 그날까지 스스로 나는 인간답게 살았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정녕 한이 없겠다.
33    32. 멋있는 인생에 대하여 댓글:  조회:2985  추천:95  2008-06-12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1멋있는 인생에 대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노래는 항상 포됴우하지만 "제 잘난 멋에 사는 게 인생인데" 이 구절만은 정말 좋아한다. 인생은 제 잘난 "멋"에 산다. 참 의미 깊은 말이다. 제 본신도 그렇겠지만 누구나 모두 인생을  "멋"있게 살고자 할진대 그 "멋"은 과연 무엇일까 ? "제 잘난 '멋'에 사는" 인생을 흔히 이상과 추구가 결여한 소극적인 인생관이고 자기의 삶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고 본다. "제멋"에 사는 인생이야말로 세속적인 유행을 추종하지 않고 그 어떤 전형에 예속되지 않는,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개척하는 자아의식과 자주정신이 투철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제멋'에 사는 인생은 목표없이 좌왕우왕하는 인생이 아니고 "멋" 그것도 스스로 판단한 잘난 "멋"을 추구하는 이상있는 인생이며 또한 창조만이 아닌 스스로 그 "멋"을 즐기는 인생. 즉 자신이  창조하고 있는 그 결정체에 대한 향수를 동반하는 즐거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멋"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넘 나도 오묘한 단어여서 음미할 수는 있어도 말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멋"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러한 "멋"에 의해 살아가는 인생. 이 역시 일종의 "멋"이 아니겠는가. 우리 님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멋"이 있겠지요. 이 글은 비록 읽을 "멋" 없다해도 점잖은 "멋"만 부리지 말고 한번 "멋"있게 이야기하세요. "멋"있게 새빨간 인사 올립니다.    创造人生 享受人生
32    31. 문화적 전승에 대하여 댓글:  조회:2823  추천:107  2008-06-1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1문화적 전승에 대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한국 교보문고에 가보면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참 옳은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바로 문화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문화를 창조했고 또한 조상들이 창조한 문화적인 풍토에서 후세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숙명적으로 특정된 사회문화환경에서 자라게 되고 조상들이 창조한 생활방식과 지혜, 나아가 처세술까지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조상들의 생활지혜를 자각적으로 현실생활에 응용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무거운 십자가로 될 수 있다. 간단하게 조상들의 생활지혜의 소산인 성구 혹은 속언들을 예를 들어보자. " 아는 길도 물어가라" --- 아는 길이면 그냥 곧추 가면 될거지 왜 물어보아야 하나? "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라" --- 그 튼튼한 돌다리도 왜 두드리며 가야 하나요? 돌다리마저도 믿음이 가지 않아 두드려 보아야 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 --- 혼자 들 수 있는 종이장을 왜서 굳이 같이 들어야 할까? 가벼운 종이장도 맞들고 다닐려면 오히려 찌여질 확률이 높지 않는가? "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 오르지 못한다고 쳐다볼 자유도 없는가. 쳐다보다 나면 사다리를 생각할 수도 있는데.조상들의 생활지혜는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될 수 있지만 거기에 만족을 느껴서는 안된다. 즉 계승만이 아닌 창조와 발전이 없다면 오늘의 승자로 될 수 없지 않는가.
31    30. 럭비공같은 인생살이 댓글:  조회:3006  추천:88  2008-06-09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30럭비공같은 인생살이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스포츠경기중 내가 제일 즐겨보는 것이 럭비이다. 럭비에 흥취를 갖게 된 것은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를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의 특징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럭비공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인생을 살면서도 생각처럼 좌우할 수 없는 것 역시 인생이다. 바로 이러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더욱 매력적이고 자극적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인생길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은 달리된다. 로신은 이런 말 한적 있다. "세상에 원래 길이란 없었다. 사람이 다니니 길이 생긴 것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 이것이 인생의 길이고 人道가 아니겠는가. 人道라면 人道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에서 생겨나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살이에서 우리가 걷고자 하는 人道도 자연의 순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강조하는 법을 보라 法이란 삼수(水)변에 갈 거(去)로 이루어진다. 즉 물의 흐름에 따라 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인것 같다.
30    29. 연인절을 맞으며 댓글:  조회:2754  추천:85  2008-06-06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9연인절을 맞으며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신성한 권리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원초적인 본능에서 발로된 것이든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든 인간이라면 사랑을 할 수 있는 자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유가 있기에 오늘날까지도 婚外恋이 사회적인 이슈로 되고 있으며 情人节가 년령을 불문하고 하나의 명절로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여간의 사랑과 혼인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남남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때 우리는 사랑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나면 사랑만이 아닌 책임과 의무가 더 강요된다. 특히 이러한 책임과 의무가 경제적인 형태로 평가되어야 할 때 그것은 무거운 십자가로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십자가를 벗어던지고자 애초의 그러한 사랑을 되찾고자 사람들은 또다른 사랑의 동반자를 찾는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情人이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교제의 범위가 확대되고 자신욕구와 추구가 다양화됨에 따라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요구도 변하기 마련이다. 지난 80년대초반 중국사회에서 이혼률이 하나의 고봉기를 맞았던 것도 농촌에 내려갔던 지식인들이 도시로 돌아오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랑의 자유와 도덕의 예속,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이 시작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혼인방식이 一夫一妻制라고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한 것이 아니다.때문에 우리는 그 보완책으로 사랑에 대한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도덕적인 예속에 벗어나게 할 수 있는 离婚制 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하고 다른 사랑의 반려를 선택한다면 사회적인 도덕적인 질책을 면할 수 있다. (인간 허위성의 적라라한 표현?) 책임과 의무가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추구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情人制가 현재의 一夫一妻制 를 대처할 날도 머지 않을 것이다.
29    28. 달리 보는 우공이야기 댓글:  조회:2790  추천:100  2008-06-0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8달리 보는 우공이야기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우공이 산을 옮겼다(愚公移山)"는 이야기는 중국인의 끈질긴 근면성을 잘 보여주는 우화로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고심해 보면 이 우화를 통해 우리는 보다 많은 중국문화를 접할 수 있다. 그러한즉 명색이 로완퉁이라 또 한번 비뚤게 풀이하고자 한다. 먼저  "愚公移山"의 우화를 통해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다. 이 우화에서의 대결은 아둔한 영감--愚公과 지식인 영감--智叟 사이 펼쳐지는데 지수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愚에는 공公을, 지智에는 수叟를 달고 있다.) 다음 사람이 많으면 그 무엇이나 해낼 수 있다는 人定胜天론을 보아낼 수 있다. 우공은 자기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대대손손 파헤친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미신한다. 여기에서 또 중국문화에서 남성우월주의관념을 엿볼 수도 있겠다.(하필이면 아들이요 손자요 하지, 딸이요 손녀요 하지 않고) 그 다음, 자연생태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수준이다.  우공이 산을 파 옮길려고 결심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산이 자기 집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뿐이다. 자기의 편리를 위해, 혹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연생태환경을 파괴한다면 그 후과는 상상도 못한다. 50년대 우리는 전민이 강철을 제련한다고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했고 파괴했던가, 80년대초 향진기업을 발전시킨다고 또 얼마나 많은 생태오염을 야기시켰던가...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의 결여이다. 끈질긴 정신도 좋지만 만약에 과학적인 방법론이 안받침되어 있다면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공도 순간적이나마 궁리를 달리하여 만약 산 너머로 이사 갈 생각을 했다면 굳이 산을 파 옮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가.영웅이나 선진인물을 모델로 하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글 올렸습니다. 
28    24. 학생들 교육에 대하여 댓글:  조회:2575  추천:77  2008-06-0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4학생들 교육에 대하여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새학기가 시작되니 학생문제, 교육문제가 다시 화두로 되고 있다. 특히 미성년범죄현상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미성년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놓고 볼 때 우리는 한시도 미성년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지 않았고 학교, 가정, 사회가 총동원하여 미성년에 대한 사상도덕건설을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미성년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서고 있다. 이는 우리들이 여직껏 진행해 왔던 미성년교육이 내용이나 혹은 방식에 있어서, 또는 교육대상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누구도 교육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미성년문제가 말밥에 오르게 되면 습관적으로 그 원인을 객관(외부)에 돌리고 있으며 주관적 원인에 대한 반성은 오직 미성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교육을 바싹 틀어쥐지 않았다는 것이 고작이다. 자기의 동년시절을 추억해 보면 알 수 있듯이 학교 혹은 사회에서 진행한 인격적인 수양과 기본적인 인성교육은 모두 천편일률적인 영웅 따라 배우기와 혁명전통교육을 통해서였다. 이것마저도 오늘은 이 영웅을, 내일은 저 모범을, 1년내내 영웅과 모범을 따라 배우다 나니 결국 자아를 잃게 되었고 개성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나는 도대체 누구냐"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의 교육대상은 말 그대로 미성년이다. 이들은 자기의 동심이 있으며 동심에 맞는 생활과 배움을 바라고 있다. 왜서 많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지겨워하고 PC방을 찾고 있는가를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학업에 영향받는다고 PC방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안전이 보장받지 못한다고 산이나 강가에 가지 못하게 하고,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교회출입을 엄금하고....이와 같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차단시키고 학교란 울타리에 가두어 넣고 동심과 천진함을 앗아가는 유토피아적인 도덕설교와 사상교육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결국 교육의 신성함과 흡인력을 잃어가게 된다. 일례로 매번 방학 때 학교에서 규정된 수칙을 보면 교회에 다니지 못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있다. 헌법에는 분명히 신앙자유로 쓰여 있지만 단지 미성년들은 나이가 어리고 세계관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원인으로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엄금한다. 그렇다면 세계관이 성숙되지 못한 어린 학생들에게 매일 넥타이를 매고 공산주의후계자로 될 것은 선서시키는 것 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인젠 우리도 현실을 직시하고 미성년들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멍에를 벗겨 버리고 동심을 즐길 수 있게 해보자. 교육자의 입장에서 미성년들을 인간으로 키워가는 것이 기본이지 그 어떤 정당이나 혹은 이념의 투사를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선정해서는 안된다.
27    23. 과거와 나의 삶 댓글:  조회:2570  추천:73  2008-05-31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3과거와 나의 삶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오래전 중앙음력설야회에서 공연했던 소품 "어제, 오늘, 내일"을 다시 보면서, 그리고 아직도 여운을 남기고 있는 3.8절행사를 돌이켜 보면서 뭔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바가 있어서 적어본다. 가정과 사회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한 개인의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피치못하는 것이 어제, 오늘, 내일이다. 바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인생행정을 엮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구경 어제가 중요할가, 아니면 오늘 혹은 내일이 중요할가? (ㅎㅎㅎ, 오늘은 과거만 이야기해볼께요) 어제, 즉 지나온 과거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과거는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일례로 우리는 왜서 3.8절을 쇠야 하고 또 해마다 기념행사도 해야 하는가. 오늘의 업적을 기리고자 뽑은 10대녀걸도 무슨 "3.8붉은기수"라고 명명하는데 이들과 3.8절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단순한 여성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3.8절을 기념하듯이 단순한 기념적이 자세로 과거를 대한다면 나의 눈앞에는 수많은 영웅 혹은 위인들이 떠오른다. 이런 위인과 영웅들의 존재는 나에게 분발할 수 있는 동력으로 될 수 있겠지만 이들에 비해 자신은 너무나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위측감도 동반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본보기로 나의 인생을 설계하면 결과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를 설계하는" 비극적인 인생이 될 소지도 충분하다. 그리고 과거가 나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라고 한다면 상이한 인생길을 선택했고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타자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로 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존재든 현실적인 존재든 나의 존재와는 다른 것이다. 타인의 성공담이 나를 무작정 성공에로 이끌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지난 과거를 오늘에 응용하여 오늘을 다시 과거로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고 할진대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위해 살 수는 없지 않는가. 특히 과거지향적이기보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삶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성공하려면 어떠한 자세로 과거를 대할것인가를 다시 한번 사색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26    22. 진정한 사랑이란 댓글:  조회:2961  추천:89  2008-05-30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2진정한 사랑이란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인간 개개인 혹은 사회에 있어서 제일 고상하고 성스러운 것이 사랑이 아닐까요.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정을 베풀어가는 그러한 사랑심이 있기에 인간은 순수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심은 인간뿐이 아닌 동물을 비롯한 자연계의 모든 존재에 베풀어지며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본연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혼인을 목적으로 한 이성간의 사랑은 인간자체생산이란 남다른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보편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베풀어가는 것이지만 혼인을 목적으로 하는 남녀간의 사랑은 소유라는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 때문에 결혼 후 서로 상대를 자기의 소유물로 간주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바 이와 같은 의식은 "내 남편" 혹은 "내 안해"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내 남편" "내 안해"라는 낱말에서 상대가 "내 것", 즉 나에게 속한다는 소유의식과 소유자로서의 권위의식을 강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소유의식은 특히 성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상징성적인 기호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조라고 할 수 있다. "정조를 바친다"는 것은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것이야"하는 메시지와 같고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 아닌 당신에게 속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정조라는 기호의 배후에는 강한 소유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의식 때문에 인생길에서 남편(안해)아닌 또 다른 사모할 수 있는 이성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행복감 못지않게 죄의식을 느끼게 되며 고통 속에 모대기게 된다.    정조를 단순 육체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자기의 첫 순정을 사랑하는 애인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첫 순정을 받아들이는 남자(여자)는 그 당시 어떠한 심리현상이 일어날까요. 만약 결혼 전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모했었다면 사실상 마음의 정조를 이미 타인에게 준 것인데 육체보다 마음을 더 강조하는 우리는 오히려 마음의 정조의 상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않게 생각한다. 그것은 마음의 정조를 우리가 감지할 수 없고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의 정조는 치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혼인상대에게 대해 "과거를 묻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마음의 정조에 대한 것뿐이지 육체적인 정조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한 정조관념을 의식하고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정조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처녀막회복이라는 기술까지 발명되어 정조를 지켜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처녀막수술을 통해 자기의 결백함을 보여 줄려는 사람이나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결백함을 보여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혼인문화풍토나 정조관념은 얼마나 허위적이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가.    그리고 한가지 실례를 든다면 가령 한 여자가 인공수정의 방식으로 자식 둘을 낳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두 자식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결국 배다른 형제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형제는 아니다. 왜서일까?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놓고 본다면 얼굴도 모르는 두 남성과의 간접적인 성관계를 통해 자식을 낳았을 따름이다. 이렇게 태어난 자식은 비록 어머니의 피줄은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부양자식관계일 뿐이다. 이럴 경우 어머니는 남편을 상대로 정조를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발 물러나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발생했다면 불륜이라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모두 용납되지 않고 있지만 인공수정은 일종의 특수한 "불륜"이기에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사랑을 자체의 본연을 상실하게 하고 협애한 소유로 타락시켜버리고 있는 이른바 정조관념 때문에 우리는 결혼을 "사랑의 무덤"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저주하고 있다. 인간사랑이란 경지에서 놓고 볼 때, 사랑은 본질적으로 베푸는 것이라고 할 때, 결혼은 사랑의 종착이 아니며 무덤은 더욱 아니다. 인간사랑은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설사 남녀간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의 경지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최고경지는 구경 무엇일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별할 줄 아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사랑심의 소유자만이 진정 사랑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희생이 엄청하고 비극적인 사랑인 것 같지만 사랑의 본연적인 차원에서 보면 제일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감이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기(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이성지기(红颜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생의 동반자와 사랑의 동반자가 합일체될 수 있는 이러한 이성의 지기(红颜知己)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스럽고 복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본연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이성간에 키워갈려면 인생도 함께 하고 사랑도 함께 할 수 있는 红颜知己를 만날을 때 이루지지 않겠는가.
25    21. 진정 필요한 것은 최선이다 댓글:  조회:2505  추천:82  2008-05-28
로완퉁 썩궁리 시리즈21진정 필요한 것은 최선이다     허명철 연변대학 교수현대의학의 혜택으로 광명을 찾게 된 맹인부부의 첫 인사말이 매우 흥미롭다. 남편: 처음 뵙겠습니다. 안해: 네, 그 동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부간에 난생 처음으로 상면하게 된 이들에게 있어서 인젠 부부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이 생소한 이 세상에서 갓난 애기가 걸음마를 타듯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꿈에도 그리던 광명을 찾게 된 이들은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살벌한 생존경쟁이란 각축장에서 겨룸하고 나면 본의아니게 맹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불행뿐만 아니고 눈을 떳다 해서 행복한 것만 아님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실명이란 경험도 없이 항시 눈을 뜨고 살아온 우리들도 실생활에 존재하는 일부 현상에 대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거나 외면을 선택하지 않는가. 때문에 눈을 뜨거나 감는다는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주어진 여건이나 생존의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삶의 자세와 운명에 도전하는 용기가 어찌 보면 더 필요하고 우선시해야 할 사항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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