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생의 길을 어떻게 선택해야 바람직한가? 그 사람의 天賦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목청이 좋으면 성악을 하고 그림을 잘 그리면 미술을 하며 팔다리가 잽싸면 육상경기선수를 하는 등이 그것이다. 자기 인생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리상적인 인생이 아닌가!
謝軍은 비상히 총명한 애였다. 청화대학에 입학할 가능성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부모가 우연히 사 준 장기(象棋)에 푹 빠졌으며 소학을 졸업하는 해에 '나는 장기만 보면 흥분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으며 마음이 무척 편안해진다. 평생 장기에 몸 바치고 싶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의 天賦는 장기였다. 청화대학 교수직에 있는 모친은 처음에는 회의적이다가 나중에는 딸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후에 謝軍은 세계 굴지의 女 장기 棋手로 되었다.
체질적으로 天賦가 없는 자는 취미에 따르는 것이 二次적인 선택이겠다. 우표수집, 당구치기, 하다 못해 휘파람불기도 괜찮다. 이런 것으로 一方名人이 되여 사회에 공헌하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 역시 의의 있는 인생이다. 지금 CCTV '小崔說事' 프로에 이런 인재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필자의 형님 鄭俊甲은 음악적 천부는 없지만 음악을 각별히 좋아했다. 고중 졸업 때 중앙민족대학 어문계에 입시 면제로 保送받았지만 가지 않고 연변예술학교에 다녔다. 북경의 중점대학을 포기하고 변방의 中專에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짧은 인생에 우수한 곡을 많이 창작했으며 민족음악 사업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천부도 취미도 없는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론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기의 천부와 취미가 무엇인지를 찾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苦讀書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세 번째 선택이겠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질별로 선택의 여지가 있다. 총명한 자는 學術의 길, 인내성이 강한 자는 技術의 길, 정서적인 자는 藝術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이 '三術'은 필자가 어릴 때 본 조선 작가동맹위원장 李基榮의 저서 <인간수업>에서 퍼온 개념이다.
필자가 崔鍵의 집에 놀러 다니기 시작하던 1978년, 그는 17살나는 고중생이였다. 그런데 악기만 삐삐 불며 학교 공부는 뒷전이였다. 그러던 그가 중국 록음악의 開山鼻祖로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필자의 인상에 그는 아주 정서적인 사람이였으며 록음악이 그의 기질에 딱 맞았던 것이다.
문혁 때 下鄕을 피하려 많은 사람들이 學齡前부터 예술에 뛰여들었다. 그때 연변예술학교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을 모집하는데 3천명 이상이 입시에 참가할 정도였다. 예술적 기질이 전혀 없는 자도 입학하였으나 성공하기는 만무하다. 무용을 했댔자 체조와 다를 바 없고, 바이올린을 했댔자 손가락 屈伸운동에 불과했다.
필자의 위와 같은 3가지 선택의 순위와 三術의 개념에 면박을 가하는 독자가 있음 즉 하다. 謝軍이 청화대학, 鄭俊甲이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했다면 더 출세했을지 모른다. 崔鍵이 중국 록음악의 창시자가 된 데는 우연한 운수가 따른 것이 아닌가 라며.
해마다 북경대학이나 청화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해당 성 인구의 100만 대 1이다.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을 졸업한 자로서 사회의 인정을 받는 학자가 된 사람은 이 두 학교 졸업생의 1천 대 1이 될까말까 하다. 苦讀書의 길을 걸어 인정받을만한 학자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로 어렵다.
필자는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청화대학의 교편도 쥐고 있으며 25년간 새벽 2시 반전에 별로 자본 적이 없이 분투하였지만 成名成家 하지도 못했고 돈도 못 벌었다. '내가 남보다 나은 재주가 뭐지' 라고 자문해 보면 '朝→中 번역'과 '四角號碼 字典으로 글자를 빨리 찼기' 이 두 가지뿐이다.
一言以蔽之하여 학술의 길은 다른 길보다 퍽 어렵고 성공의 확률이 퍽 낮다. 謝軍이 청화대학, 鄭俊甲이 중앙민족대학에 다녔다면 십상팔구는 상기의 인생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학술의 길에서 崔鍵과 같은 운수가 생기기는 퍽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한 대학에서 교편을 쥐며 논문도 써냈고, 책도 몇 권 써냈다 하여 수만 명, 수십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는 '풍각쟁이', '體育棒子' 등보다 낫다고 보는 견해 자체가 陳腐한 관념이다. 또한 옛날에는 대학에 붙은 자체가 출세의 징표였지만 지금은 출세의 시작도 되기 어렵다.
필자가 자라던 시기 인생 분투의 목표는 우선 초중→고중→대학→연구생→학자였다. 많이는 이 길을 걸을 수 없어야 마지못해 다른 길을 걸었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인생 최상의 가치실현을 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랴! 만약 謝軍과 崔鍵의 부모가 당초에 자식들의 선택을 제지시켰더라면 세계적인 棋手, 중국 록음악의 창시자가 夭折되였을 것이 아닌가!
이번 춘절을 필자는 고향 무순에 가 쇠면서 명년이면 무더기로 환갑을 치러야 할 동창들과 그들 자식의 인생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결과 필자 상기의 견해에 일리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독자들의 후대 배양에 도움이 되였으면 하여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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