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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路’냐, 아니면 ‘鐘路’냐?
정인갑
몇 년 전 한국의 모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서울 시청에서 모 서예가에게 ‘鍾路’라는 두 글자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 서예가는 ‘鐘路’라야 써주지 틀린 표기 ‘鍾路’라고는 써주지 않겠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면 ‘種路’인가, 아니면 ‘鐘路’인가? 지금 중국의 간체자는 ‘鐘’과 ‘鍾’을 모두 ‘钟’으로 통일시켰다. 그렇지만 옛날 문헌을 들춰보면 ‘鍾’과 ‘鐘’은 뜻이 완연히 다른 두 글자이다.
‘鐘’은 두드리면 소리나는 일종의 금속 악기를 뜻한다. <說文解字(설문해자)>에 ‘鐘, 樂鐘也’라고 돼 있다. <訓蒙字會 (훈몽자회)>에도 ‘쇠붑죵’이라 기재돼 있다. 그러나 ‘鍾’은 술을 담는 금속항아리다. <說文解字>에 ‘鍾, 酒器也’ 라고 적혀있다. <訓蒙字會>에도 ‘量名(그릇 이름)’으로 해석하였다.
鐘閣(종각)에 큰 鐘이 번연히 매달려 있고 그 종각에 붙은 길이므로 ‘종로’라고 이름지었으니까 물론 ‘鐘路’가 맞을 터이다. 이러고 보면 그 고명한 서예가에게 시청 관리가 실수한 것이 당연하겠다.
그러나 이 시비는 몇 마디 말로 간단히 해명될 일이 아니다. 중국 문헌에는 또한 ‘鐘’과 ‘鍾’을 서로 엇갈려 썼으며 심지어 이 두 글자는 서로 통용할 수 있다고 까지 했다. 한국인들이 ‘鐘’자를 써야 할 곳에 ‘鍾’자를 쓴 것을 무조건 무리로 밀어 부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들 두 글자의 음이 완전히 같기 때문에 임시 서로 빌러 쓴 것이지 이 두 자가 같은 것은 아니다. <설문해자>의 해석에 이 점이 명확히 밝혀져 있다: ‘경전에 “鐘”을 많이는 “鍾”으로 쓰지만 ‘술항아리’라는 뜻의 글을 빌러 쓴 것이다(經傳多作鍾, 假借酒器字)’.
다시 말해 ‘鐘’으로 쓰면 ‘쇠북’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만 ‘鍾’으로 쓰면 ‘쇠북’인지, 아니면 ‘술항아리’인지 아리송하다. 결국은 서예가의 견해가 에누리가 없이 맞는 것으로 된다.
孫成祐(손성우) 편저 <한국지명사전>(경인문화사, 1974년)에 ‘鍾路’로 돼 있으며 기타 책에도 거의 다 ‘鍾路’로 돼 있다. 사전에만은 ‘鐘路’라 표기하고 ‘”鍾路”라고도 씀’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아예 ‘鐘路’로 표기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보여진다.
‘종’자는 한국인의 이름자에도 많이 쓰이는데 한국인의 명함에 대부분 ‘鍾’자로 쓰고 있다. 자식이 술꾼으로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터이고, 말하자면 ‘술항아리’자로 이름을 짓지는 않았으리라 보여지므로 역시 ‘鐘’자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들이 명함에 꼭 ‘鐘’자로 쓰기 바란다.
이름과 관계되는 자로 ‘鎬(호)’자를 본문에서 부언하고 싶다. ‘鎬’는 우리 민족의 이름자로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이를테면 ‘영鎬’ ‘병鎬’ 문鎬’…등. 그런데 중국 조선족들은 이 글자를 조선어로 ‘호’로 발음함에도 불구하고 한어로는 모두‘găο (가우)’로 발음한다. 완전히 틀린 발음이다.
‘鎬’자는 ‘hào (하우)’와 ‘găo(가우)’ 두 가지 발음이 있는데 전자는 ‘도읍(西周의 수도 鎬京)’, 또는 ‘빛나다’란 뜻이고 후자는 ‘곡굉이’라는 뜻이다. ‘곡꾕이’라는 뜻의 ‘găo (가우)’음은 생긴지 100년도 안 되며 우리말 한자어에 이 음이 없다. 또한 자식이 곡굉이로 땅을 파먹으며 살라고 이름지었을 리 만무하다.
중국 조선족들이 이름에 쓰인 ‘鎬’자를 꼭 ‘hào (하우)’로 발음하기 바란다. 한족들도 조선족의 이름을 ‘găο(가우)’로 틀리게 발음하므로 왜 틀리게 발음하나 핀잔을 주니 조선족들이 ‘găο (가우)’로 발음하며, 또한 이름은 주인을 따르라는 원칙이 있으므로 당연 ‘găο(가우)’로 발음해 준다고 하지 않겠는가!
음이 같은 글자 ‘鐘’과 ‘鍾’에서 ‘鍾’을 잘못 선택해 쓴다던가 (한국인), 같은 글자이지만 음이 다른 ‘hào (하우)’와 ‘găo (가우)’에서 ‘găo(가우)’를 잘못 선택해 쓴 것(중국 조선족)은 모두 한어에 약한 우리민족의 망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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