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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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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네모칸 하늘
2014년 08월 31일 21시 04분  조회:768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네모칸 하늘

장학규




창밖이 시커멓게 흐려오고있다. 아마도 늦은 봄비가 내릴 모양이다.

건국댁은 미처 지팡이를 찾아 집을사이도 없이 벽을 더듬더듬 짚으며 창문가로 비틀비틀 다가갔다. 어제부터 다리가 더 말을 듣지 않는다. 쇼파에서 창문까지 고작 3메터도 안되는 거리를 건국댁은 5분이상 시간을 허비했다. 이럴때마다 건국댁은 자기가 마치 스파이더맨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딱히 알수 없지만 건국댁은 벽을 짚고 걸어다니는데 이미 습관되여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꽃봉오리 터지는 봄철은 시샘을 자아내는 계절이라고 말들을 하고있다. 그렇지만 씨 뿌려야 할 땅덩어리가 그대로 걍 말라서 갈러터지는 시점에 하다못해 눈물오리같은 비방울이 흩날리는것도 많이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솔직히 건국댁은 그런 자연의 위대함에는 멸치 똥만큼도 관심이 없다.

(나랑 무슨 상관이라구.)

건국댁에게는 이제는 감흥이나 낭만같은것이 거의 남이있지 않는거 같다. 만성 위축성 위염때문에 한때에 한 스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건국댁은 맛나는 음식에도 거의 유혹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동경같은것이 있다면 아마 맑고 따스한 날씨가 아닐까싶다.

아파트밑

으로 차량들이 옹기종기 질서없이 세워져있다. 아직은 한낮인데도 단지내의 골목마다에 할일 없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고있었다. 저 앞으로 건국댁이 못내 아쉬워하는 연못이 내다보였다. 희미한 날씨때문인지 물빛마저 암회색으로 어둡게 변해있는게 유감이였다. 마침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는지 호수물이 가늘게 일자로 줄서서 씽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근사했다.

도심에서 꽤나 외진 이 동네가 그나마 인기를 끌게 된것은 모두 저 연못 덕분이였다. 건국댁은 지금도 엎어지면 코 닿을 지척에 어마어마한 바다를 두고있는 해변도시에서 자그마한 연못이 왜 이처럼 큰 흡인력을 가지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간은 끝없이 물을 갈구하는, 물이 아무리 많아도 전혀 실증을 느끼지 못하는 수중래(水中来)동물이 틀림없는 모양이였다.

연못 주변에는 싸구려 옷을 걸친 사람들이 엉거주춤 쪼그리고있거나 아니면 아예 찌라시광고지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있다. 어떤 노인네들은 작심한듯 굵은 끈으로 궤여 만든 접이식 의자까지 갖다놓고 팔자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남들이 버리고 간 낡은 신문장을 뒤적이고있었다. 이미 뒤북이 되여진 신문이였지만 개의치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고있었다. 좀 있으면 그 신문이 연못가에 그대로 내버려지고 연후 누군가 또다시 그걸 집어서 훑어볼것이다. 좀 젊어보이는 사람들은 풍경보다 손바닥에 쉽지 않게 들어온 스마트폰에 더 신경을 도사리고 열심히 뭔가 들여다보고있었다. 모름지기 누군가 음악을 틀어놓은 모양으로 한쪽에 손바닥만하게 펼쳐진 공지에서는 어설픈 아낙네들이 서로 매치되지 않게 춤을 추고있었다.

건국댁은 저도모르게 연못가의 벤치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솔직히 건국댁이 연못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있는데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름대로의 리유가 있었다.

네모난 창문에 갓 다가섰을때 첫눈을 먼저 벤치쪽으로 주었던거 같았다. 그러나 그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며 급히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벤치에 사람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가물가물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벤치에 시선을 주었을때는 그곳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거기엔 사람이 없었을것이다. 건국댁은 속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였다. 벌써 나흘째나 이렇게 끔쩍끔쩍 놀라고있었다. 건국댁이 눈길을 바로 벤치에 고착시키지 못하는 리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맘때면 그 벤치에는 마땅히 한 사람이 앉아있어야 했다. 그 벤치는 그 사람의 전용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벤치는 참말로 쉽지 않게 그 사람이 없을때는 여부없이 항상 비여있었다. 모두들 그 벤치는 그 사람이 집에서 들고내려온것으로 착각하고있는것처럼 보였다.

은빛처럼 세여버린 하얀 머리칼에 둥글넙죽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그 장본인이였다. 걸음이 꿈뜨기는 해도 풍채가 름름한 예순 중반대의 사나이였다.

그 늙은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을때 건국댁은 정말 멋지고 의젓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세련된 남자도 있었다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백발이였지만 머리 한톨 허트러지지 않았고 얼굴은 면도를 깨끗이 하여 수염 한대 보이지 않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정갈한 옷차림새도 이 동네서는 쉽게 볼수 있는것이 아니였고 미소 하나 동작 하나도 잘 다듬어져있었다.

건국댁도 그만하면 세상물을 꽤나 먹은 셈이였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서남북으로 세미나요 포럼이요를 다니며 나름 괜찮다는 남자들을 많이 보아왔었다. 자식 낳이를 못해본 녀자의 가슴이 메말라서인지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남자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아, 딱 한번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 그녀의 마음을 잠간이나마 사로잡은적이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이발마저 누르끼한 사람이였는데 어찌나 말을 직방배기로 하는지 그의 강연을 듣는 청중들은 모두 뒤에서 사람이 너무 건방지고 싸가지 없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건국댁은 오히려 묘한 스릴을 느꼈다. 그 교수가 손 한번 잡아주면서 어디에 오라 그렇게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안길것 같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러나 단 그 한순간에 불과했다. 단기 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국댁은 하마트면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번한 자신의 충동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어이 상실했던거야. 틀림없이 더위 먹은거지.)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도 없을 일이였다. 아무리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위였다고 해도 건국댁에게는 그런 리지와 판단력 그리고 의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였다. 간밤 먹은 마음이 아침이면 스르르 무너져내린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면서도 금방 그 남자가 떠오른다. 뇌에 피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게 분명했다.

그런 그 남자를 저 벤치에서 처음 만났던것이다. 딱 일년이 되여오는듯 싶다.

그날도 날씨는 여의치 못했다. 하늘은 잔뜩 찌프려져 있었고 바다바람이 아파트단지내 경관 나무가지를 세차게 흔들고있었다.

창가에 붙어서서 밖을 내다보던 건국댁은 사람이 드문 이런 날에 한번 세상을 둘러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몸에 병을 수두룩이 달고 고향에서 외홀로 살던 건국댁을 양녀가 억지다짐으로 낯선 이곳으로 끌고 왔다. 갓 태여난 피덩어리를 안아 키워온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가. 아무튼 건국댁은 여직껏 함께 해왔던 모든 사람들과 갑자기 소음장치가 된듯 한꺼번에 단절되고 시한부 삶을 아파트에 갇혀 살게 되였다. 네모난 창문이 유일하게 바깥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3층 계단을 내려가는건 건국댁에게는 엄청난 장애였다. 한 계단 내리고 숨을 두번 쉬면서 바깥까지 나서는데 반시간 이상 허비했다. 건국댁은 죽는게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는것도 똑같이 무섭다는 도리를 처음 터득했다. 처음에는 고혈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이어서 위축성 위염이 도졌고 그다음 대퇴골두 괴사로 증후군을 이루었다. 좀만 음식이 들어가도 포만감이 느껴오고 구토, 설사 지어는 토혈까지 했다. 더욱 골치거리인것은 걸음을 걸을때마다 다리에 저림이 오거나 통증이 동반되는것이다.

건국댁은 연못에 채 못미쳐서 벤치가 있는 곳에서 간신히 멈춰섰다. 어느새 하늘은 씻은듯 개여지고 바람도 지친듯 잠잠했다. 건국댁은 이마에 돋은 땀을 훔치고 계속 연못까지 걸어갈가고 궁리했다가 어쩐지 자신이 없어져 그대로 벤치에 물러앉았다.

그때 누군가 건국댁앞으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열심히 골몰하던 건국댁은 눈앞에 클로즈업된 반들반들 윤기나게 닦아진 적갈색 구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눈을 올렸다. 훤칠한 키에 카키색 스프링코트를 단정하게 입은 늙은 신사였다. 단추를 목밑에까지 가쯘하게 채우고 두손을 주머니에 질러넣고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예순 미만되여 보였다.

“여기 내 자리요.”

남자는 깔끔한 생김새처럼 말마디도 짧고 분명했다.

(개 풀 뜯어먹다가 기침하는 소리하고있네.)

건국댁은 속이 울컥 주먹을 내들었으나 웬일인지 발작을 할수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친구들은 건국댁을 칼입이라고 평가하고있다. 특히 버르장머리 밥 말아먹은 인간들에게는 종래로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건국댁이 우엉부엉하는 사이에 남자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한옆에 앉아도 되겠소? 서있기 힘들구만.”

건국댁은 마치 누가 들었다놓는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무덤덤하게 옆으로 움직여 앉았고 남자는 사정없이 바로 들어앉았다. 입에서는 들숨은 없고 날숨만 있는지 푸푸 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처음 보는구만. 어디서 오셨소?”

“…”

“아, 나는 해방이라고 부르오. 해방나는 해에 태여났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지었다오.”

건국댁은 남자가 자기와 동갑이라는데 다시 한번 놀랐다.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해진 남편도 그녀와 동갑이였다. 그래서 남편의 이름은 건국이다. 해방되면서 건국되였으니 홀어머니가 쉽게 그렇게 부르면서 이름으로 되였다고 언젠가 남편이 말했었다. 그렇게 천생연분에 보리개떡이라던 남편이 황천길에 오른지도 어느덧 저그만치 30년 세월이 다가온다.

“그렇게 되여보이지 않아요. 저보다 한창 어린줄로 알았네요.”

“그럼?”

“저도 49년도 태생이예요.”

“아이구 이럴법이라구야. 이럴법이라구야.”

남자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면서 연신 감탄을 내쏟았다. 둘은 핸드폰번호를 서로 주고받고 한동안 동네방네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방씨는 해군 출신이라고 했다. 장교직으로 퇴직했지만 군에서 모든 생활을 책임진다고 했다. 아들딸들이 집을 넘보고 같이 살자고 매일 지청구를 들이대지만 모두 물리치고 지금도 혼자서 생활하고있다고 했다. 부대에서 생활을 돌보는 도우미를 보내주어 별 어려움없이 잘 살고있다고 했다.

이틑날 딸과 사위가 출근하여 얼마 안되여 해방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건 건국댁이 그어놓은 마지노선이였다. 아무리 무던한 사위라고 해도 당장 무덤으로 들어갈 할망구가 남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꼴 한번 제대로 미쳤구나 그러지 아니하란 법은 없을것이다. 빈대도 낯짝 있고 벼룩도 코등 있다고 건국댁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손가락질을 가장 싫어했다.

그날 건국댁은 해방씨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누라는 3년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고있다고 했다. 대략 20년전부터 당뇨병을 앓고있는데 거의 매일이다싶이 인슐린주사액을 맞고있다고 했다. 오래 앓으면 저절로 의사가 된다고 해방씨는 당뇨병에 대하여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인슐린주사도 자기 절로 맞고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물고기에게 수영 가르치는 격이지만 평생 총을 가지고 논 사람으로서는 쉽지 않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있었다. 늙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해종일 얘기해도 지칠줄 몰랐다. 헤여질 림박에 해방씨가 서운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당신 덕분에 무척 기분이 좋았소.”

“여기도 홀가뿐 1인분 추가해요.” “그래?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

날이 저물고 달이 바뀌면서 건국댁에게는 변화가 감지되였다. 계단을 내리고 오르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밥도 두 숟가락은 거뜬히 먹을수 있었다. 오래동안 구토증상이 없어졌으며 얼굴에 피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딸보다 더 극진하게 건국댁을 보살피는 사위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이면 방에 들어와 문안한다. 물론 힘이 센 사위가 대소변을 돌봐줘야 하는 원인도 있었지만 이마를 짚어보고 직접 밥술을 떠서 넣어주는 정성까지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사위도 남자인지라 그앞에서 허연 엉덩이를 까내놓을수 없어 화장실밖으로 내쫓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번 일을 마치고 일어서다가 불시에 몸을 가누지 못해 꼬꾸라지면서 머리를 세게 벽에 부딪친다음부터 사위는 아무리 마다해도 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목욕까지 시켜드렸습니다. 내 어렸을때 먹던 젖이 쪼그라들어서 보이지도 않더라구요.”

사위가 그렇게 능글치는바람에 건국댁은 더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하긴 겨릅대같은 양딸이 몸이 부어 고기덩이가 되여진 건국댁을 이겨낼 방법이 없는것도 사실이였다.

이날도 사위가 문을 노크하고 조용히 들어섰다.

“어머니, 요강통 비워야죠?”

코미디언이 제격인 사위는 언제나 무드를 조성할줄 안다. 그 덕분에 건국댁은 사위 미안한줄 모르고 업혀오고 업혀간다.

“나 금방 보고 왔네?”

“엉? 혼자서요?”

“그래. 오늘은 괜찮구려.”

“오늘이 아니고 벌써 여러날째입니다. 혹시 호전되였는지 모르니까 한번 병원에 가봅시다."

건국댁이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사위는 막무가내로 자가용에 실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전면 검사를 하는데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그러나 결과는 맹랑했다.

“혈압은 고정된듯 합니다만 다른 증상은 호전이 별로 없네요.”

어딘가 건방져보이는 40대 의사는 의아해하는 사위의 눈치를 의식했던지 말을 이었다.

“더 악화되지 않은걸 보니 근래에 음식조절을 잘했거나 마음을 잘 다스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리유를 치매랑 해당 사항이 없는 건국댁은 좀 알거 같았다. 그러나 사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표정이였다.

“혹시 어머니 어디에 남자 숨겨둔게 아닙니까? 히히”

사위는 항상 그 식이 장식으로 유머로 넘겨가려고 했지만 건국댁은 순간 속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나 조금씩 매일 운동하고있네. 그게 효과본건지 모르지.”

거짓말도 습관이 되면 새끼에 새끼를 거듭 친다고 건국댁답지 않게 이젠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얼굴이 새빨개지는걸 보니 연애하고있는게 틀립없습니다.”

사위는 그냥 놓아주려고 하지 않고 한수 더 떴다.

이해 겨울은 유난히 따스했다. 왕년에는 그나마 손바닥만한 두께의 얼음은 얼었었는데 이번 겨울은 새벽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한낮에 싹 녹아버려 연못에서 늦가을에 새끼친 물오리도 사람들의 념려와는 달리 용케 겨울을 났다.

“물오리는 늦은 가을에도 새끼를 까네. 사람보다는 퍽 자유로워 보이군.”

물오리 새끼가 끼끼거리면서 에미의 꽁무리를 따라다니는것을 보고 행방씨가 하던 말이 문뜩 떠올랐다. 어쩌면 체념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한탄에 가까웠다. 그때 뒤뚱대면서 헤염을 치던 새끼 물오리들이 이젠 제법 여유롭게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고있었다.

만물이 새움이 트기 시작하던 어느날 해방씨로부터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긴히 할 말 있다면서 속히 내려오라는것이였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벤치는 아직 그대로 비여있었다. 그러나 건국댁은 부랴부랴 옷맵시를 정리한후 문을 나섰다.

벤치에 앉아 10여분 기다려도 해방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방씨는 언제나 먼저 도착하여 건국댁을 맞아주군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니였다. 그래도 건국댁은 별생각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약속을 동냥아치 쪽박 깨듯하는 사람이 아니란것을 믿고있었기때문이였다.

화창한 봄날에 강렬한 해빛이 벤치를 따스하게 감싸고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무들이 타닥거리며 기지개을 켜는 소리가 방불히 들려왔다. 캠핑 나온건 아니였지만 건국댁은 명랑한 봄날을 한껏 즐기고싶었다. 어느덧 건국댁은 소녀가 되여진 느낌이였다. 쪼크리고 앉아 하얗게 세여가는 민들레를 흔상하다가 늘쩡늘쩡 연못가로 다가가 새싹이 한뺌이나 올리솟은 갈대잎을 어루쓸기도 했다.

(웬일이지? 약속을 먼저 해놓고 누굴 바람 맞히고 이러지?)

건국댁이 오늘 맛 다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서운하게 일어설 무렵 어디서 나타났는지 해방씨가 갑자기 눈앞에 떡 뻗치고 서있었다. 네이비색 양복에 진붉은 넥타이, 그리고 까아만 구두 차림이였다. 오랜 해군생활에 화려한 색상에 적응되였나보다.

“나 저쪽에 숨어서 한창 지켜보았소? 오늘따라 정말 이쁘더라니까.”

 “아이, 미워죽겠네요. 남은 속을 조이면서 기다리고있었구만은…” “속 조였다는 사람이 자연을 흔상하느라고 사람이 옆에까지 온것도 몰랐소?”

건국댁은 자기도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도적맞힌 느낌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이지요?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으시고요.”

“멋지지 글치?”

해방씨는 어린애마냥 입이 한껏 벌어졌다. 개념 먹고 살아온 사람이라 여직껏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본다. 건국댁은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건국댁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진짜 멋져요.” “우리 아침 메뉴 똑같은걸 먹었나보우. 이렇게 견해가 같을법이라구야. 나도 내가 참 의젓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허허.”

해방씨가 투박한 손을 내밀어 무작정 건국댁의 가늘고 조그마한 손목을 덥썩 잡았다.

“우리 사귀지 않겠소? 아니, 우리 결혼하기오. 나한테 집도 있고 돈도 살만큼은 있으니까 마지막 인생길 함께 손잡고 갑시다.”

건국댁은 불시에 가슴이 후둑후둑 떨려와 몸을 가눌수 없었다. 이 나이에도 아직 풍당풍당 뛰는 심장이 남아있다는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얼굴이 금방 달아오르고 숨이 꺽 막히게 벅차올랐다. 어쩌면 벌써부터 기다렸던 말이였는지 모른다. 긴긴 밤을 해방씨를 떠올리며 실면했던 적도 있는 건국댁이였다. 그러나 건국댁은 마음과는 달리 머리를 설래설래 저었다.

“안돼요. 애들이 주책머리 없다고 욕하겠어요.”

“남의 말을 제멋대로 비벼먹구 그러지 말고 도대체 내가 좋나 안좋나 말해보우.”

해방씨는 얼굴이 지지벌개져서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처음 만났을때처럼 들숨은 들리지 않고 날숨만 푸푸 내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부모는 자식의 첫시작을 보고 자식은 부모의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말이 있어요. 애들한테 못난 모습 보여줄수는 없어요.”

“혹시 다른 임자가 이미 있는거지?”

“아니라니까요.”

“틀림없이 점찍어놓은 임자가 있어.”

해방씨는 씩씩거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건국댁은 가슴이 무척 아팠지만 소리쳐 부르지 않았다. 녀자와 소는 고삐 잡는게 임자라고 호기뽑던 해방씨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아닌게 아니라 이틑날 해방씨가 맞춤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눠보자고 간청해왔다. 그러나 건국댁은 례절있게 거절했다. 각자가 시간을 두고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해방씨는 전화를 걸어왔다. 건국댁은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창문가에 다가가보니 해방씨는 벤치에 앉지도 않고 선채로 이쪽을 건너다보면서 부지런히 핸드폰을 누르고있었다. 건국댁은 틀림없이 자기한테 전화를 거는거라고 짐작했다. 해방씨는 련속 닷새동안이나 그렇게 벤치 주위를 맴돌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오늘까지 벌써 나흘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있었다.

사실 엿새되는 날부터 건국댁은 조용히 핸드폰을 켜두었다. 이제 해방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그 넓은 품속에 안겨 꺼우꺼우 한바탕 울고부터 볼 판이였다. 그러나 해방씨는 종적을 감추는것과 동시에 다시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이틑날 건국댁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찾아 짚고 휘청휘청 계단을 내려갔다. 언제부터인지 다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계단 내려가고 두번 숨을 몰아쉬면서 아파트를 벗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반시간이 넘었다. 조용히 벤치에 다가가 말없이 한시간 나마 앉아있었다. 주변에서 온통 해방씨의 숨결이 느껴졌다. 건국댁은 자기가 난센스 한번 잘 부렸다고 못내 후회되였다. 마음 깊은 심저에서 빨리 해방씨를 찾아가 붙들어야 한다고 재촉하고있었다.

건국댁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액정화면에 “해방씨”라고 익숙하고 친근한 글자가 떠올랐다. 인차 핸드폰에서는 공식적인 도우미의 안내말이 되돌아왔다.

“당신이 호출한 번호는 이미 정지되였습니다.”

예감이 별로 신통하지 않았다. 건국댁은 투닥투닥 세차게 튀는 가슴을 부여잡고 황황히 해방씨가 산다는 아파트로 향했다. 한번도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해방씨의 입을 통해서 여러번 들어 익숙한 동이였다. 웬일인지 다리도 비칠거리지 않았다. 건국댁과 오며가며 얼굴을 익힌 단지내의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건국댁은 거의 한달음에 해방씨의 아파트에 이르렀다. 1층이여서 다행이였지만 지금 심정 같았으면 10층도 기여오를수 있을것만 같았다.

불길했던 예감이 적중했다. 집 문고리에 붉은 천조각이 걸려있었다. 그것은 이 고장 사람들이 망자를 기리는 물건이였다. 대외에 상사가 났음을 알리는 동시에 사악한 기운을 막고 음기가 집안에 침습 못하게 하는 일종의 부적같은 물건이였다.

해방씨가 죽은것이다. 틀림없이 해방씨가 죽은것이다. 닷새째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핸드폰도 셧다운된건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해방씨는 건국댁때문에 죽었다. 아니, 건국댁 자기가 죽인것이다.

“혹시 다른 임자가 이미 있는거지?”

“틀림없이 점찍어놓은 임자가 있어.”

해방씨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남달리 건국댁의 마음을 에이듯 도려냈다.

(아니예요. 정말 아니예요. 저를 두고 왜 홀로 가셨어요? 빨리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건국댁은 꺽꺽 마른 울음을 터뜨리며 가슴을 마구 잡아뜯었다. 온몸의 피가 심장으로 몰려들면서 끝없이 팽창시키고있었다. 당장 심장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건국댁은 맑은 날씨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비오는 날이였으면 아마 자기가 열번도 넘게 벼락을 맞았을것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차라리 그게 더 시원하고 속편할것이였다.

(해방씨 같이 가요. 나도 데리고 가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건국댁은 그 자리에 폴싹 꺼꾸러졌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건국댁은 전혀 모른다. 속이 깊은 사위가 집번호를 붙인 열쇠를 목에 걸어주었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 그걸 보고 건국댁을 집까지 데려다준게 분명했다. 차라리 그대로 그곳에서 죽게 내버려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고 건국댁은 생각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 제발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하는데…”

“글쎄말이오. 그런데 그 동네에는 왜 가셨다우?”

희미한 청각속으로 근심에 쌓인 양딸네 부부간이 대화하는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낮다랗게 들려왔다.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뭐 하나 보탬이 되여주지도 못하고 부담만 가득 짊어주었다.

건국댁은 안간힘을 써 눈을 간신히 떴다. 초점을 잃은 눈이 창문을 더듬고있었다. 네모난 창문으로 시뿌연 하늘이 보였다. 어느새 하늘이 얼굴을 변한것이다.

2014년 4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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