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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사거리
2014년 08월 31일 21시 36분  조회:1117  추천:0  작성자: 비전

 

단편소설


사거리

장학규


 

A1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소리는 복잡하고 몸놀림들도 두루 있는 거 같은데도 장면은 여전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도 영화의 어느 한장면이 갑자기 스톱되여 있는 현상과 흡사했다. 
천이는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거리에서 맞닥뜨린 사고현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방정 맞는다던 어느 친구의 부적같은 말이 갑자기 떠올라 둘러선 사람들 틈을 허우허우 비집고 들여다보았다.
화물차와 택시의 추돌사고였는데 택시 앞부분이 거의 콩가루가 되여진 상태였다.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들려갔는지 차안에 없었고 이상하게도 피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죽고싶어 환장을 한거지. 뒤꽁무니를 들이박았잖아. 중국사람들은 1초를 양보하는 정신이 결핍하단 말이야!
돼지처럼 피둥피둥 살이 찐 장년 사나이가 팔소매를 걷어올린채 때를 만났다는듯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저기 미국이랑 보라구요. 얼마나 신사적인 사람들입니까? 길 뺏기 하는게 아니라 서로 먼저 가시오 하고 양보하면서 산단 말입니다. 그들의 시민 정신을 따라배워야 합니다.
시벌넘아, 주제 꼴갑 그만 떨어. 미국 시민이 언제 너처럼 사거리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침방울 튕기더니? 그리고 남 불행에 웬 쾌재야. 인간성 상실이야 당신은…뭐 묻은 무스게가 무어 붙은 무엇을 나무란다더니 세상 부끄러운줄이나 알아라.
천이는 욕설이 나가는 걸 겨우 참고 돌아섰다. 웬일인지 피자국을 보지 못한것이 석연치 못했다. 들으면 병이라고 사고란건 피와 함께 보는게 액운을 털어내는거라고 어디서 귀동냥한거 같았다. 당사자한테는 억수로 미안한 일이지만 천이도 많이 숙명론적으로 변해진 자신이 놀랍고 미워졌다.
오늘 택시 타지 않은게 다행이었구나.
어쩜 하늘이 자기를 도와준거 같아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때 누군가 천이의 팔소매를 툭 잡아당겼다. 천이는 괜히 후다닥 놀라며 돌아보았다. 늙은 남자 하나가 시꺼먼 사발을 내밀고 있었다. 나무이미타불, 이 난시판에도 동냥군이 끼여들다니? 하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인간이 개미처럼 모여든 이런 자리가 구걸에 더 리롭겠지 싶어 부시럭 호주머니를 들추어 10전짜리 동전을 찾아내 던져주었다. 
늙은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대신 킁킁 코푸는듯한 소리를 냈다. 천이는 개의치 않고 어느 길로 회사로 갈까를 잠간 고민했다. 정양로를 따라 직진했다가 왼쪽으로 꺾어든후 다음 사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들면 바로 회사이다. 그리고 지금 바로 태양성을 껴안고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선다음 풍모꼬치집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한참 나가면 역시 회사가 위치한 자리다. 정양로는 청양의 중심거리라 많이 붐비는 편이였다. 복잡한걸 싫어하는 천이는 겹겹히 둘러친 사람벽을 에돌아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섰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어떻게 되였어요?
그때 어떤 녀인이 누군가에게 묻는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단 1초이긴 했지만 천이도 그게 궁금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동시에 목소리가 참 감미롭다는 생각에 걸으면서 뒤로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건 단 1초에 불과했다. 천이가 소리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더불어 자기 몸이 강한 충격에 하늘로 씽 날아오르는 장면을 스스로 볼수 있었다.
무엇에 치였는지 그 자신도 알수 없었다. 아무튼 의식이 희미해져왔다.
아, 난 죽으면 안돼. 죽어도 죽을수 없어! 죽어도 죽지 말아야해!! 죽어도 살아나야 해!!!
1초라는 시간에 정말 많은걸 생각할수 있는게 사람이였다.

A2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잠간 망설였다. 재수에 옴이 붙었나보다. 아침부터 피를 본다는 불길한 예감에 천이는 무작정 겹겹히 둘러친 사람벽을 에돌아 왼쪽으로 중성로에 들어섰다. 이대로 쭉 정양로를 따라가다간 또 무슨 날벼락치는 일을 만날지 알수 없어서였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실랑이 반 신경질 반 해가면서 간신히 헤쳐나가는데 느닷없이 디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액면에 “왕벌”이라고 뜬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차리고있는 친구의 대명사다. 전화 한번 받아주면 왕왕왕 반시간은 고아대는 친구이다. 그만큼 뜨거운 친구이기도 하다.
여보세요.
여보라면 여보지므.
언제나 그 식이 장식이다. 이 자식한테는 영원히 기분 나쁜 날이 없는가 본다.
천이는 응응 건성으로 대답하며 걷다가 회사까지 통화하면서 들어갈거 같아 아예 길옆 골든벨노래방 대문에 등을 기대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 주둥이를 그저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버리고말가부다.
도적넘 개 꾸짖듯 속으로 투덜대다가 천이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였다. 왕벌한테서 가끔 사람같은 소리가 나올 때 있었는데 지금이 그 시각이였던것이다.
어제 표사장이랑 새벽까지 먹었다. 왜 니두 알잖아. 거 눈깔 하나 빼대대한 넘 있잖아.
천이도 물론 아는 한국인이였다. 왕벌이한테 끌려서 둬번 같이 술을 마신적이 있었다. 외모는 별로 볼게 없어도 점잖고 아는것도 많은 인상을 주었다. 한국인 많이는 그런 타입이지만도.
어제 너를 자꾸 외우더라. 한번 손잡고 일해보고 싶다구. 오늘 시간 괜찮겠니? 전번에 말했던가? 거 무시게야. 신발냄새랑 제거하고 곰팽이 방지하고 또 세균을 없애는 향기발랄인가 하는 특허제품있잖아. 중국 총판을 땄다고 하더라. 한번 해보자던데 내사 내일만 해도 정신 없으니까 니 한번 안해볼래?
오늘은 회사 꼭 나가야 해.
씨발 출근해봤자 굶어죽어도 굶어죽지 않을만큼이잖아. 그래도 자기업을 가져야 해.
천이는 대답없이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다. 초첨 잃은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하긴 인생은 신발 벗어봐야 알고 고스톱 담요 덮어봐야 안다고 했다. 뜬구름 잡기 좋아하는 왕벌이가 하는 생각이 거의 무협지수준이긴 하지만 괴짜는 괴짜가 틀림 없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끝없이 나오고 비지니스건도 끝없이 생긴다. 타입이 완전히 다른 표사장이랑 어떻게 어울리는지 생각만 해도 해괴하다.
이넘아, 힘써서 바람새는 소리라도 내야 하잖아. 씨, 방귀라도 질러라.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고 로비다. 한국 김영삼동지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온다고 그랬던가. 무조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접어들면 안될 일이 있을라구.
몇시? 어디서?
열한시에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 세기공원옆에 있는 호텔 알지?
알았어.
천이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고 손저어 택시를 불렀다. 도어를 잡는 순간 핸드폰이 또 디리링 울린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차피 김장철이 다가왔으니 좀 비싸게 놀아볼가! 깍두기가 때맞춰 너펄대는 형국일지도 모르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A3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무감각하게 그대로 태양성을 에돌아 중성로에 들어섰다. 걸으면서 보니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살얼음 걷듯 조심스레 좌우를 살펴보며 나가는데 불시에 등허리에 뭔가 들이박혔다.
아차, 그 경황에도 사고가 나는거냐는 아찔한 생각과 더불어 몸이 금방 오싹 얼어붙는 느낌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고났으면 내가 이런 생각할 겨를이나 있을까 하는 자조가 몰려들어 저도모르게 허글픈 웃음이 나왔다.
돌아보니 멜대에 광주리따위를 걸친 늙수그레한 장사군이 오가는 사람들에 부대겨 팽이처럼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 광주리 덩어리에 맞은것이다. 광주리가 상할가봐 시커먼 손으로 다잡으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섭섭한지 가끔 목을 거위처럼 빼고 구경군들 틈새를 들여다보군 했다. 때자국이 질벅한 옷에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괜히 헤픈 인간들은 정말 말릴 방법이 없어.
천이가 왕창 욕설이 나오는것을 억지로 참고 돌아서는데 불현듯 저쪽에서 거쿨진 사나이가 달려들어 장사군 두상의 멱살을 거머쥐며 걸쭉한 욕을 해댔다.
초니마!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해 다시 돌아보던 천이는 면바로 그 사나이와 눈길을 맞추었다. 
엉?!
두사람은 동시에 단창을 뽑았다. 고향친구 명이였다. 청도에서는 가끔 이런 장면이 연출되군 했다. 시도때도 없이 몇년 지어는 몇십년씩 종적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고장이 청도였다. 아무튼 별로 반가운 친구는 아니였다. 고향에 있을 때부터 시답지 않게 지내던 명이였다. 떡잎부터 알린다고 싹수가 노랗게 각인된 명이는 천이에게 며느리 미우면 문지방 넘어서는 발뒤축이 하얀색인것도 보기 싫은것과 같은 존재였었다. 이 난시판에 헤식게 바람잡는 꼬라지에서도 큰 개변은 없어보였다. 아무렴 청도에 온다고 뱁새가 황새가 될가 싶었다. 그래도 어차피 조우한 마당에서 난 모른다고 돌아설수도 없었다.
너 언제 청도 왔어?
눈인사를 하는 천이와 달리 명이는 꽤나 반가운 표정으로 장사군을 잡았던 손으로 천이의 어깨를 냉큼 거머잡았다. 자식이 심통 맞고 성질머리 더럽기는 매일반이야. 천이는 가벼운 통증때문에 입을 씰룩거렸다.
거의 10년이 돼와.
그랬어? 근데 왜 난 몰랐지?
글쎄…
암튼 어디 가서 한잔 하자.
아침에 어디 가서 술 해? 나 출근이야. 나중 련락하고 만나자.
임마, 넌 계속 그렇게 랭혈이구나. 고향 친구 어쩌다 만났는데 섭섭해서 쓰겠니. 가자. 저기 태양성 뒤에 금자식당이라고 초두부 잘하는 집이 새로 나졌더라.
명이는 중고품 뉴스를 빅뉴스인양 지껄이며 한시급히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은 천이를 한사코 길옆으로 끌었다. 허무하게 질질 딸려가면서 천이는 자기가 참 개같다는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다음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막 도는데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집 안마당인듯 허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줴치며 큰 거리에 활개치며 내려서던 명이가 막 급정거하는 자가용에 치인것이다. 당장 땅에는 피가 흥건히 고였고 명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천이는 소란스러운 명이나 입닥친 명이나 숨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이가 제정신이 들어 급히 차번호를 적는 사이에 사고를 저지른 자가용 주인 아가씨가 무슨 힘으로인지 어느새 집체같은 명이를 차에 싣고 있었다. 천이도 텅빈 머리로 올라탔고 자가용은 쏜쌀같이 청양인민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명이는 생명 위험은 없었다. 명이를 수술실에 처넣고 죄지어 풀이 죽은 낯선 자가용 아가씨와 어색하게 마주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디리링 울린다.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병원을 오게 된 사연을 포토샵까지 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핸드폰을 닫으려다가 보니 부재중 전화가 한통 있었다. 왕벌이었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차리고있는 친구이다. 전화 한번 받아주면 왕왕왕 반시간은 고아대는 친구이다. 그만큼 뜨거운 친구이기도 하다.
체, 무슨 일이 있을라구. 또 술 처먹자는 소리겠지!
천이는 핸드폰을 닫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B1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교통사고따위엔 관심이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거리를 가로질러 직진했다. 택시를 타고 마냥 다니던 코스여서 몸에 익숙하고 굳어있었던 것이다. 천이는 또다른 코스가 있다는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채 발길이 가는대로 본능적으로 따라 걸었다. 
천이는 정양로를 지나다니기를 특별히 즐긴다. 시원하고 넑직하게 쭉 뻗어나간 정양로는 청양의 중심거리이다. 청양구정부는 물론 유명업소 대부분 이 거리에 몰려있었다. 천이도 언젠가는 이 거리에 근사한 자기의 업소 하나를 오픈하는게 소원이였다. 사는건 머슴급인데 포부는 세종대왕급이라고나 할가.
청양의 변화는 피부로 느낄수가 있었다. 어쩌면 천이는 청양변화의 산증인이라고 할수 있다. 17년전 청양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때 소위 현성이란 곳에 제일 높은 건물이 3층짜리 백화상점이였다. 현재는 태양성이라는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지표적인 함의 이상으로 매력적인것은 아니다. 지금은 몇십층짜리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섰고 아파트 가격도 콩나물처럼 올리솟아 완커 매물은 평당 만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기적이야. 암, 그렇구 말구.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기적이야.
바람 한점 없는 포근하고 화창한 봄날씨여서 한결 거뿐하고 둥둥 뜬 기분이였다. 길옆의 복숭아나무도 요염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럴때면 담배 한대 거뜬하게 태우고싶어진다. 천이는 부시럭부시럭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쌍희담배는 없었다.
어허, 아침에 피웠었는데 어디 갔지?
천이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두리번두리번 가게들을 살폈다. 저 앞에 자그마한 슈퍼 하나가 보였다. 리췬인지 리커라이인지 브랜드를 살펴볼 사이 없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담배가 피고싶다하면 할배가 와도 말리지 못하는 고질이였다.
문을 밀고 들어간 천이는 마침 계산을 맞추고 돌아서는 30대 여자와 정면으로 마주섰다.
천이씨, 오래간만이네요.
여자가 애교가 다분한 목소리로 반겼다. 한때 애인으로 사귀였던 희라는 여자였다.
아,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관계를 정리한지 1년 좀 넘었고 가끔은 만나서 서로의 마음속 말을 나누기도 하는 사이였다. 남처럼 갈라지고 잡아먹지 못해 으르릉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고 스킨쉽을 절제할뿐 못할 말이 없을 정도로 친구보다 많이 가까운 그런 무난한 사이였다.
이것도 인연인가봐요. 어디 가서 얘기나 좀 해요.
희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슈퍼를 나섰다. 천이는 무기력하게 따라서면서 이 여자를 처음 어디서 어떻게 만났던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대뇌는 거의 공백상태여서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처음에도 희는 이런 말을 했던거 같다.
이것도 인연인가봐요. 어디 가서 얘기나 해요.
이 시간대는 마땅히 앉아 얘기할 장소도 없다는것을 천이는 잘 알고 있었다. 무작정 택시를 잡고 쟈쟈왠으로 달렸다. 그 옆에 더타이란 이름의 호텔이 있었다. 그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핸드폰이 디리링 울렸다. 왕벌이였다. 이 자식은 적당히 무시해도 괜찮은 물덤벙 술덤벙 친구였다.
요새 어떻게 지냈죠?
그저 그렇게 살았죠뭐.
희는 마침 울고싶었는데 때맞추어 뺨을 때렸다는듯 눈가에 실눈물을 떠올렸다. 희는 남편을 무던히도 사랑하고있었다. 애인인 천이앞에서도 남편과 진한 스킨쉽을 주저하지 않아 민망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희는 천에게 많이 기댔었다. 절대 쉽게 주거나 함부로 몸을 다루는 녀인은 아니였다. 어쩌면 마음이 많이 비여있는 녀인이였다.
일이 잘 풀리지 않네요. 뭔가 해보려고 해도 자신이 없고. 이렇게 산다는게 정말 힘들어요. 막 자신을 던지고싶은 충동마저 일어요.
천이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희의 몸에 자기의 사랑이 아직까지 묻어있다는것을 천은 깊이 느끼고있었다. 그렇찮으면 이처럼 살이 도려내지는 아픔이 있을리 만무했다.
희가 사랑이 모자란 사람은 결코 아니란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밖에 더 줄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천이는 맥풀린 소리밖에 낼수 없었다.
그러지 말아요. 다쳐요.
저도 알아요. 인생은 속절없이 늙어가는데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희가 쉽게 주지 않았다면 천도 가볍게 거둔것은 결코 아니였다. 희가 이별을 선언했을때 천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막 죽이고싶다는 독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래도 희를 아끼고 지키고싶은 마음이 더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어 오늘까지 버텨냈었다. 과거는 잊어버릴수 있으나 결코 지워지지는 않는다.
오늘 어디던 저를 데려가줘요. 상처는 상처를 입힌 사람한테서 치유받는다고 하잖아요. 하루라도 안정을 찾고싶어요.
천이는 엉켜진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였다. 불현듯 희의 크고 희디흰 젖무덤과 더불어 남달리 특이한 유두가 머리속에 우렷이 떠올랐다. 가끔 머리는 스스로를 속일수 있어도 몸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온 몸 구석구석에서 사랑의 기운이 퍼져올랐다. 이 녀자는 내가 꼭 지켜줘야 하고 있는 능력껏 도와줘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들었다.
룸을 열기 위해 카운터로 내려가면서 천이의 눈가에도 어느덧 물기가 슴배여올랐다.
내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잘 보듬어주자! 이 녀자를 절대 다시 울려서는 안돼!!

B2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중성로 절반 넘어 구경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좁아터진 길에서 왕래 차량과 행인들로 혼전을 치르고 있었다.
천이는 중성로를 포기하고 그대로 정양로를 따라 걸었다. 이 동네에 이사온지 여러해 되였지만 저렇게 사람들이 억수로 몰려든 대형 사고는 처음이였다.
아무튼 사람 하나쯤은 죽은 모양이야.
정양로는 출근하는 사람에, 장사군에, 실없이 구경거리를 찾아달리는 인간에, 일거리를 찾아헤매는 일당치에, 어두운 거래에 혈안이 된 브로커에 막 범벅이 되어있었다.
천이는 늘쩡늘쩡 무심하게 걷다가 마주오는 웬 젊은 청년과 오다가다 어깨를 부딪쳤다.
아, 미안.
그런데도 청년은 사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째려지게 천이를 흘겨보았다. 그러건말건 천이는 계속 앞으로 나가려다가 불시에 후다닥 옆으로 튕겨나갔다. 웬넘이 길가에 오물을 한무덤 토해놓고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코를 싸쥐고 왝왝 마른 구토질을 하며 피해가고있었다. 금방 청년도 그렇게 피하다가  자기를 부딪쳤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천이는 욱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망할 자식같으니라구. 자기가 잘못해놓고 어디다 눈깔 부라려.
천이는 한바탕 해낼양으로 급히 몸을 돌렸다. 청년대신 웬 할머니가 천이를 골받이로 맞아주었다.
아이쿠!
할머니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이어 당장 죽는듯 숨넘어가는 소리로 애고애고 앓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천이도 머리가 얼얼해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인츰 본능적으로 오늘 잘못 걸려들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거리에서 흔하게 보고 또 비웃었던 일이 자기한테서도 재현되고 있었던것이다.
할머니,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러건말건 허스름한 옷차림의 할머니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점점 높아갔다.
이때 방정 맞게 핸드폰이 디리링 울렸다. 자그마한 악세사리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왕벌이가 걸어온 전화였다. 천이는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를 차는 격으로 핸드폰을 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임마, 때 맞춰 전화해!
전화를 닫은 천이를 급히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켰다.
우리 빨리 병원에 가요.
나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손주애가 혼자 집에 있단 말이야.
그럼 어쩌지요?
나절로 시간내서 병원갈테니 돈이나 줘.
별로 상한데는 없는거 같은데 백원 줄게요.
내가 거지인줄 알아. 늙은 뼈가 어떻게 상했는지 모르잖아. 사진 찍고 치료하고 돈이 얼마 드는데…
그럼 얼마 드려야 합니까?
천원은 들겠지.
나 그렇게 없어요. 오백원 드릴게요.
안돼.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할머니는 성수난듯 손사래를 쳐대기 시작했다. 천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할머니와 더 이상 담판을 지속할 의욕을 잃었다. 겨우 할머니를 달래고 함께 자동인출기를 찾아나섰다. 꼬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할머니의 입은 쉴새 없었다. 죽을것 같이 머리가 어지럽다느니, 집에 홀로 있는 애가 잘못되면 책임져야 한다느니, 신분증과 연락전화를 내놓으라니 끝없이 재잘댔다.
이상하게도 그 긴 정양로에 자동인출기가 보이지 않았다. 한시가 급하다던 할머니는 돈 냄새때문인지 잘도 따라다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겨우 자동인출기를 찾아냈지만 고장중이였다.
너 이기나 내 이기나 한번 해보자.
그렇게 다시 거리를 돌다가 할머니보다 천이의 인내력이 거의 밑바닥이 날 즈음에 자동인출기 하나가 또 나졌다. 천이는 이제 안되면 내 배 째라 하고 맛설 다짐을 하고 카드를 집어넣었다. 괘씸하게도 돈이 드르륵 잘도 빠져나왔다. 죽는게 무섭지만 사는것도 똑같이 무섭구나 그때 뇌리를 치는 생각이 이러했다.
할머니는 주름살을 펴며 떠나고 천이만 망연자실한채 거리를 마주하고 섰다.
세상이  참 살 멋이 없구나!  인생은 이렇게 허무하고 지겨운데 인간이 스스로 심각한체 자신을 기편하면서 내숭을 떨며 사는게 아닌가!!

B3
아파트단지를 어슬렁 나서며  천이는 두손으로 아래우 주머니를 더듬었다. 손에 잡혀나온것은10여 년간 꾸준히 피워온 쌍희표 담배이다. 입에 담배를 붙여물고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질러넣고 어깨를 옹송그리며 헐떡헐떡 반달음치는게 천이만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4월의 청도 아침날씨는 유달리 변덕이 많다. 어제까지도 찬 바다바람이 몰아치던것이 오늘은 금세 얼굴을 바꾸고 사람을 지글지글 볶기 시작했다.
천이는 영문 모를 사람들의 영문 모를 바쁜 행보속에 무작정 합류하면서 일단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작심한다.
회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이다. 대체로 비슷한 사이즈의 두갈래 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묘하게 두갈래 모두 사거리 두개씩 지나야 했다.
버스 선로도 여러개 있었으나 전에는 괜히 폼을 잡느라고 매일이다싶이 택시를 잡아타고 출퇴근했었다. 주머니친구가 매일 적자투성이라고 아우성이였지만 회사동료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오는게 그대로 풍선이 되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에라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사람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무덤으로 향하는 노정도 즐겁고 대견했었다. 누구처럼 미쳐서 살다가 정신 들어 죽는게다.
그렇게 나사 하나 풀린것처럼 쭉 지내오다가 문뜩 자기가 안방 호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뭐야? 가까운 친구들이 차례차례 집 사고 자가용 갖추고 또 어떤 넘은 느닷없이 사변을 당해 병신이 되기도 하고 아예 꼴기 없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어제도 숱한 돈을 팔고 아가씨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가 먼 고향에 있는 친구의 비보를 들었다. 술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죽어버렸단다.
남자 인생 황금기라는 마흔 고개가 어쩌면 시련의 고개인지도 모른다. 망할 넘의 언덕이 어디 정해져서 따로 있나? 그러면서도 속은 텅 비여버린다. 느닷없이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세부적인 형상이 되여 우렷이 나타난다.
저 앞 태양성이 바라보이는 첫 사거리에 행인과 차량들이 막 범벅이 되여서 멈춰져 있었다. 교통사고가 난게 분명했다.
천이는 무감각하게 그대로 스쳐지나 정양로를 따라 회사로 향했다.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호기심도 없었고 특별히 기분이 잡치지도 않았다. 아마 반시간 넘어 입에 거미줄이 쳐진것 같다. 별로 말할 상대도 나지지 않았고 말하고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느적느적 걸으며 천이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핸드폰을 보고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던 모양이다. 그 핸드폰은 어제 금방 새로 뺀것이였다. 천여원 현금을 주고 샀지만 매달 통화료로 90원을 1년동안 환불하는 그런 판촉 핸드폰이였다. 1년이면 본전을 다 뽑는 싸구려인가 하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게임도 놀고 TV도 나오고 인터넷도 대강 할수 있는 스마트폰에 가까운 기능을 갖추고있었다.
8시가 가까와오고 있는 시점이였고 이제 저 앞의 강성로에서 왼쪽으로 돌면 바로 회사가 보인다.
길가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쫓겨사는 모양인듯 바쁜 걸음들이였다. 유독 자기만 별로 한가하고 느슨하게 인생을 영위하는것 같아 쪼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성로에 접어들기 바쁘게 노천 과일매대가 나졌다. 느닷없이 배에서 개구리새끼 치듯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그제야 오늘도 아침을 거르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방문취업비자로 한국에 나간후 반년남짓한 사이에 아침 먹은 날을 손으로 꼽을수 있을 지경이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요기를 해야 할것 같았다. 엊저녁에도 외로움을 달랠려고 노래방으로 기어들어 혼자서 양주 한병을 다 털어넣고 밥알 한톨도 먹지 않았던것이다.
이게 무슨 지랄이람. 세월은 류수요 인생은 초로라 했는데 초로같은 인생을 왜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억울하기도 했다.
천이는 바나나를 사서 허겁지겁 먹으며 걷다가 저만치 회사가 보이는 거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회사 동료들에게 자기의 걸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천이는 어슬렁 길옆 가게의 계단에 걸터앉아 바나나 하나를 새로 발랐다. 저렴하게 생겼으면 단순하게 살자였다. 왕벌한테서 전화가 두번째로 걸려왔으나 천이는 개의치 않고 철거공사가 한창인 마주켠 아파트단지를 넋잃고 바라보았다. 사실 머리에 들어오는건 아무것도 없었고 몇몇 일군들이 쇠망치를 휘두르며 콩크리트 벽을 부수는 장면만 클로즈업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말그대로 포크레인 놔두고 삽질하는 형국이였다.
저래서도 살아야겠지. 아니, 살려야겠지. 인간은 넘쳐나고 밥 먹을 호구도 무진장하고 어차피 쇠망치 휘둘러야겠지.
천이는 자신도 별로 그들보다 낫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니들 덕분에 험한 세상 조금 웃으며 산다는 위로감을 앞세우며 오늘 처음으로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뭐든지 넘쳐나면 좋을게 없어. 엄청 부자인 정주영의 아들도 자살하고 한때 멋지던 배우 최진실도 인생이 역겨워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더라. 인생이 별건가? 대수대수 살다가 시원시원하게 가면 그뿐이다. 공수래 공수거가 영원한 진리야. 이 세상은 온통 잉여인간일뿐 누구라 없이 쓰레기 냄새가 진동할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느슨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철부지 어린애 몇이 장난질을 하며 지나쳤고 이어 팔소매가 짧은 웃옷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엉덩이가 거의 드러나는 초니미 스커트를 입은 30대 초반의 여인 둘이 팔짱을 하고 가지런히 지나갔다. 하긴 엉덩이가 거의 처지지 않은 매끈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게 다행이였다. 불현듯 천이는 가까이 지내는 채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음식이 문제야. 한족들은 나이를 먹어도 엉덩이가 처지지 않는데 조선족들은 서른만 넘기면 메주덩이처럼 내려앉는단 말이야.
어쩌면 그런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천이는 조선족 녀인을 선호하는 편이였다. 피를 함께 한다는 동질성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더우기 성깔이 사나운 한족은 정말 질색이였다.
마지막 바나나까지 깨끗이 발라먹고 천이는 부시시 일어났다. 저쪽으로 회사 동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또 지루하고 평범하고 무의미한 하루가 시작되는것이다.
천이는 어느새 옆으로 어슬렁 기어들어 고뿌를 들이미는 거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회사쪽으로 늘쩡늘쩡 걸어갔다.
내일이면 태양이 또 뜨겠지! 그리고 세월은 하루가 줄어들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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