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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평론

새로운 문예 컨텐츠의 가능성
2015년 03월 29일 10시 27분  조회:1146  추천:0  작성자: 장학규
평론

새로운 문예 컨텐츠의 가능성

박일선생의 벽소설 특집을 곁들여



이 자리에서 구태여 벽소설이란 무엇이냐고 도도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대개의 평론이 자타가 다 알거나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것들을 대서특필하는 경우여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니까 평자의 의무는 무엇무엇해도 해독이 우선이라 해야겠다.

어떤 의미에서 평론은 먼저 감상문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읽고 나름대로 느끼고 체득한것을 숨김없이 적어야 하는것이 평론의 본연의 모습이 아닐가싶다. 그래서 작품은 읽는이에 따라 리해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다고 하게 된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작품속으로 들어가보자.

좀 딴지같은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왜 “요즘 사람들”을 톱으로 올려놓았을가를 한참 생각해보았다. 선뜻 리해할수 없는 대목이였다. 작품의 내용은 글쟁이 작가가 친구인 화가의 초청으로 그 집에 갔다가 화가의 아들에게 세배돈을 남보다 적게 내여 구설에 올랐다는 간단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글은 어느모로 보아도 뛰여난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컨텐츠가 새로운것은 절대 아니였다. 배금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은 여기저기 부지기수이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굴곡적인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여러번 곱씹어 읽어보니 비로서 이 글이 타깃이 되고 메카가 되여진 리유를 좀은 알것 같았다. 편집자의 깊은 고심이 자리잡은 흔적이 보인다.

이 글의 작가는 주인공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몰래 소파밑에 록음기를 두고 가게 했다. 그러니까 모름지기 그 록음기가 반짝이는 포커스가 된게 분명하다. 미니픽션의 매력은 흔히 이처럼 어느 한점에 귀결된다. 특히 박일선생의 벽소설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수법이기도 하다. 결말이 딱 한순간으로 반전이 되여 원유의 리해를 뒤집어버리는 기교이다.

“요즘 사람들”도 그런 경우다. 모든 렌즈를 “세배돈”에 집중시켜 얼핏 요즘 세상에 성행되는 금전만능주의에 대한 질타로만 추측하게 만든다. 가령 그것만이 목적이였다면 주인공이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고 남은 사람들이 이렇쿵저렇쿵 입방아를 찧는것으로 작품을 마무려도 큰 무리는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자는 굳이 소파밑에 “록음기”를 메가톤 무기로 숨겨두었다. 왜서일가? 록음기는 기록의 도구이고 재생의 기계이다. 금전으로 모든 가치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모티브에 이어 함부로 사람 평가를 하는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첨가한것이 아닐가. 작가가 노린것은 이 사회의 비뚠 가치관과 더불어 못난 병폐를 파내는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한편 록음기를 준비하고 갔다는건 미리 마음속으로 어떤 테스트를 기획하고 있었다는 증명으로 된다. 그러니까 남보다 늦게 가고 또 남과 달리 세배돈을 50원밖에 주지 않는 등 모든 순서가 미리 짜놓은 액션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지식분자의 도고함과 고결함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노란 머리수건”은 상대적으로 쉬운 해석이 나온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작품은 디테일하게 모든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기 때문이다.
한돐반도 안된 딸애를 잃고 3천여리나 떨어진 타향으로 천방지축 그 딸을 찾으러 달려왔던 어느 젊은 어머니가 공원에서 자기 딸과 비슷한 여자애를 만나 잠간 슬픔과 고통을 잃고 “천륜지락”을 즐기다가 자칫 랍치범으로 오해받을번 했다는 이야기이다. 할머니를 혼절하게 할번 했던 장면이나 나중 할머니가 손녀더러 불쌍한 이모 목을 안아주라고 타이르는 대목은 그대로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생동하고 핍진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의외였던 점은 저렇게 가슴 아픈 사연을 어떻게 웃으면서 이야기할수 있었을가 하는것이였다. 박일선생의 남다른 예술기교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슴이 더 멍해나고 얼얼해진다. 이 작품의 인기는 웃음에 눈물을 심은데에 있다고 말할수 있다.

“장가 잘 가는 달수”는 느긋하게 올방자를 틀고 앉아 호랑이 담배 피울때 얘기를 듣는 무드이다.

달수는 또래 친구들이 장가갈 무렵에 벌써 딸이 학교에 다닐 정도로 일찍 련애하고 또 장가간 장본인이다. 쥐약을 먹을 지경으로 사랑했던 조강지처 어금이를 내쫓고 그뒤에도 장가를 세번이나 간다.
“장가 잘 가는 달수”는 제목부터 유머스럽다. 작품속의 대화도 “소프트파워”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넌 애고 난 어른이야!” – 장가 먼저 간다고 으시대는 모습이 선하다.
“임마, 장가 늦게 갈바하곤 한 십년 더 참지 그래. 그러면 내가 너의 장인이 될수도 있잖아…” - 능글거리는 몰골이 바이 밉지는 않다.
“…무도장에 찾아와선 무조건 내 멱살을 잡는거지.” – 어금이가 무도장 다니는건 바람난 자기를 잡기 위한것이라고 고자질하는 장면도 대개 익살스럽다.
“…아직도 그 녀자와 사냐?” – 도합 네번 장가간 남자다운 호언이라 해야겠다.

이 글은 호악에 대한 평이 한마디도 없다. 잘했니 못했니도 아니고 좋다 나쁘다도 없다. 어쩌면 가장 박일선생과 닮은 작품이라고 할수 있겠다.

박일선생이 자리한 곳에는 항상 즐거운 웃음이 동반한다. 타고난 자투리 이야기군인 박일선생은 기억력 역시 바상하여 동네방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흘러나온다. 일명 육담이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머 그 자체이다.

그러나 평자가 되여서 가장 호감이 가는 글은 그래도 “너편 내편”이다. 남다른 사상성이 내포되여서가 아니다. 뛰여난 예술성을 과사해서도 아니다. 어쩌면 현시대 우리에게 하나의 계시를 주는 글이 아닐가 싶어 특별히 주목하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을 유머작품으로도 분류하여 볼수도 있겠지만 필경 유머와 벽소설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유머작품은 슈제트와 별개로 그저 웃음을 자아내는데 목적을 두지만 벽소설은 유머처럼 아주 짧다는 유사성을 가지는 한편 상대적으로 완정한 이야기가 있고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기승전결이 필요하다는것을 작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듯하다.

“너편 내편”은 글자수가 고작 500자도 아니된다. 그래서 하나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요즘 세상은 디지털세상이다. IT가 발달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웹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웨이보, 웨이신 등이 플랫폼이 되면서 모바일 작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일선생의 벽소설은 유머스럽고 짧다는 특점이 있다. 벽소설 자체가 편폭이 짧은 문장형식인것은 물론이지만 박일선생은 그 기초하에서 되도록 더 짧게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손바닥소설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아왔다. 독자들은 재미나고 재치있는 그의 소설을 통해 울고 웃으며 미적향수를 받게 된다. 슬픈 이야기도 될수록이면 해학적이고 명랑한 필체로 쓰려고 애쓰고 있으며 대부분 작품들은 결말이 교묘해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특점들은 오늘날의 “이동 독서 환경”과 묘하게 매치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일선생에 대한 집중조명은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수 없다.

박일선생은 평자가 초학자였을때 벌써 벽소설가로 문단에 알려져있었다. 지금까지 벽소설을 170여 편 발표하였으며 벽소설집 제3권을 준비중에 있다. 그의 작품은 량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누구도 비견할수 없이 앞장서있다. 그래서 저명한 평론가 김룡운선생은 10여년전에 벌써 박일선생을 “중국조선족의 벽소설대왕”이라고 평가한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박일선생은 직접 창작실천에 몰두하는것은 물론 “미니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평론문장도 발표함으로써 우리평단에 전문성을 띤 벽소설에 대한 정의가 없는 공백을 메우기도 했었다.

박일선생에 대한 조명은 어쩌면 우리문단의 미래 출로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종이 작품보다 웹소설이 환영받고 대형문장보다 미니소설이 인기인 현재 독자들이 고루하고 편향적이고 수준 저하라고 타매하기보다 새로운 령역도 개척하고 확보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만큼 새로운 문예 컨텐츠의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선보일때가 온거라고 믿는다. 몸에 밴 농경사회의 낡은 진물을 털고 진정 산업사회의 성원답게 글로벌에 융합해가는게 우리가 갈 길이다.

물론 이 말은 평단이 그런 구실을 못했다는 원망은 아니고 그나마 흑룡강신문이 그런 과실을 남먼저 알아차리고 지금이라도 보완해주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밝히는데에 불과하다. 좀 섭섭하다면 지면상 제한으로 4편의 작품밖에 오르지 못한것이다. 언젠가 한번 크게 다루어볼만한 여지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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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장학규
날자:2015-04-01 18:11:53
감사합니다. 더 잘 쓰라는 편달로 새겨 듣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작성자 : 아프리카
날자:2015-03-30 01:18:43
평론문장을 잘보았습니다. 확실히 박일의 벽소설은 박일로서의 개성이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과 다른 개성으로서 독자들의 취미를 끌고있지요. 평론을 잘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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