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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学奎文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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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소설

개미
2017년 01월 13일 22시 29분  조회:821  추천:0  작성자: 장학규
단편소설
 
개  미
 
장학규 
 
 
 
9월달이 맞냐 의심할 정도로 이제 아침 일곱시인데 대지는 벌써 열기로 후끈후끈 달아있었다. 아직 몸을 몇번 휘젓지도 않았는데 몸이 끈적거려나면서 목덜미에 땀이 번져나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대개 이렇다. 이맘때가 가을 호랑이라고 불리우는 무더위가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다. 서둘러 가을을 불러들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의 초가을은 오히려 여름을 압도할 지경으로 살인적이다. 
 
경이는 여직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6학년이 되도록 매일매일 두드려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있었다. 오늘도 엄마한테 질리게 난시 맞고도 면역이 되였는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밥상에 마주앉아 느적느적 밥을 먹었다. 통학뻐스가 올 시간이 되였는데도 막무가내로 늑장을 부리는 경이를 보다못해 창학이는 딸애의 책가방을 한손으로 들고 무작정 집밖으로 나왔다. 매일이다싶이 반복되는 액션이였다. 
(자식이 딱 개미같아. 밟혀죽을 걱정도 안하고. 아니 개미가 아니고 완전히 배짱이야.)
창학이는 저혼자 실실거리다가 탁 하고 침을 내뱉었다. 마침 길가던 개미 한마리가 난데없이 날아온 걸직한 액체에 파묻혀 허우적거렸다. 
(어, 미안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다가가던 창학이는 한무리의 개미가 줄쳐서 어디론가 가는것을 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병사들처럼 일렬로 길게 행렬을 지어 걸음을 재우치는것이 장관이였다. 어떤 넘은 재주를 부리는지 갈지자 걸음을 하면서 다른 넘들의 앞길을 막고있었고 간혹 오던 길을 부랴부랴 되돌아가는 넘도 보였다. 아마 급히 나오다보니 집에 뭔가 두고 온 모양이라고 창학이는 생각했다.
 
창학이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동물에 남달리 련민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특히 몸체가 작은 곤충류는 그저 불쌍한 생각만 들었다. 
이른 아침에 개미들은 무얼하려 가는지 알수 없었다. 일개미들이 먹이 찾으러 나가는지 모를 일이였다. 아직 날씨가 좋을때 미리 겨울 량식을 준비해야겠지. 
찬찬히 여겨보니 놀랍게도 개미들의 집이 아파트단지내의 대리석바닥길 밑에 있는상싶었다. 대리석이 서로 이어진 틈서리에 작은 흙무지가 여러개 보였다. 그것도 한곳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개미의 집이 보였다. 
 
“아빠 뭘해?”
창학이가 혀를 차면서 개미의 생존능력에 찬탄을 아끼지 않고있는데 어느새 왔는지 경이가 물었다. 
“아니야.”
“아니긴 뭐 아니야. 혀까지 낄낄 찼잖아?”
“개미가 너보다 더 부지런해서 그랬다. 왜?”
“그럼 개미 아빠 해”
“그럴가?”
경이는 이젠 제법 입씨름을 할줄 안다. 전에는 고분고분하던 애가 요즘 들어서는 자주 대들군 한다. 저절로는 반항기라서 그렇단다. 세상 모르는게 없는 요즘 애들이다. 그래도 창학이는 딸애와 매일 토크쇼를 하는게 꽤나 재미있다.
 
부랴부랴 애를 다그치면서 대문을 빠져나갔지만 통학뻐스는 그때까지 오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늦다고 실컷 애를 들볶아도 열에 아홉번은 뻐스보다 먼저 도착하여 10여분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아마 경이가 심드렁해진것도 그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번에 딱 한번 통학뻐스보다 늦어지면 바로 전화가 날아온다. 
“경이 아빠,  왜 아직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냥 안면몰수하고 버럭 한소리할가 하다가도 괜스레 애가 학교에서 미운 털이 박혀서 구박을 받을가봐 참군 했다. 바람 줄창 맞다가도 통학뻐스가 다가오면 허리를 굽석이는 퍼포먼스를 일삼아야 하는 자신에 비해 상대는 항상 당당했다는 억울함은 언제나 창학이를 불편하게 했었다. 그래도 뻐스보다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게 맞다고 항상 경이앞에서는 대범하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다가 전번 학기에 한번은 하학시간을 한시간이나 넘겼는데도 뻐스가 오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전화를 할가말가 수십번을 견주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자기도 한번쯤은 “왜 아직도 오지 않아요?”하고 말하고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즈음이였다.
“아, 경이 아버님, 미안합니다. 이제 곧 떠날게요.”
통학뻐스 지도사 선생님은 이쪽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나름대로 련주포처럼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창학이는 한동안 어리벙벙한 상태에 빠졌다. 전화 씹은거 맞지? 그래 전화를 씹은거잖아. 스스로 자문자답하다가 불시에 울화가 울컷 치밀어올랐다. 
사람 말 잘라먹어? 선생이란게? 생선 토막도 아니구 제멋대로 남의 말을 잘라먹어? 목구멍에 걸려 큰일 나려구 어디서 감히? 
그러나 인차 화산같이 부풀어올랐던 분노가 허무하게 내려앉았다. 쳐든 핸드폰을 째지게 노려보면서 창학이는 이가 빠져서 말이 헛나가는것은 용서가 되여도 말이 저절로 빠져서 이가 헛나가면 큰일이라고 자신을 힘겹게 위안하고 있었다. 
 
통학뻐스는 다시 반시간을 훌쩍 넘어서 왔지만 지도사 선생님은 왜서 한시간 반이나 늦어졌는지는 해석치 않고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다시 훌쩍 떠나가버렸다. 
(이런 제길!)
창학이는 지도사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경이한테 쏟아붓듯 저도모르게 꽥 소리질렀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어떤 사람이 학교 정문에다 흙을 잔뜩 가져다가 쌓아놓았어. 뻐스가 나올수 없어서 다른 뻐스를 불러서 그걸 타고 오느라고 늦었어.”
경이는 묘하게도 아버지가 화를 내는 대목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 날에 정면으로 충돌하면 자기만 손해라는걸 잘 아는 경이는 또렷또렷하게 설명했다. 
“흙은 왜? 웬놈이 흙은 왜 정문에 쌓아놓았는가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창학이는 그 길로 학부모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전 내린 폭우로 인해 학교 담장이 무너지면서 이웃공장의 창고 벽을 짓뭉개놓았다고 한다. 학교서 사람을 파견하여 보수해주겠다는것을 공장주가 거절하고 수만금을 내라고 협박했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저렇게 양아치 수작을 부린다는것이였다. 
 
경이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이다. 공립민족학교가 없어서 애를 한족으로 만들고싶지 않는 사람들은 목돈을 팔면서 그곳으로 보내고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웃사이더의 처지가 늘 그러하듯이 뜻하지 않는 불상사들이 자주 발생하군 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너무 엄중했다. 지랄도 가지가지라지만 나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협박하는건 범죄행위나 다름없었다. 
 
창학이는 그날로 시장 공개메일에 민원편지를 발송했다. 자신이 기자신분임을 먼저 밝히고 다시 국가지원이 전혀 없는 민족사립학교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이어 저런 불법행위를 엄단할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단순한 분쟁을 넘어 이미 법에 저촉했다고 강조했다. 며칠후 답복 메일이 날아왔다. 학교 담장이 무너져서 공장벽을 파손시켰다는 점을 강조하고 쌍방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고 알려왔다. 흙무지를 학교 정문에 쌓아놓은 행위가 학생들을 볼모로 잡은 위법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석도 없었고 그 흙무지를 어떻게 한다는 처리의견도 없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창학이는 그런 답복이 돌아올줄 미리 알고있었다. 그래서 입만 쩝쩝 다셨을뿐 다시 질의를 하지 않았다. 정신님이 마실 다녀가신것도 아니고 알아서 말을 줄여야지 아니면 명이 먼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경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안해는 출근이 늦어졌다고 야단법석을 놓고있었다.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하나 내고 몇년간 오바마보다 더 바쁘게 돌아치는 안해이다. 
창학이는 주방으로 직행했다. 생각대로 그릇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안해가 과장된 제스처로 설레발을 칠때면 대개 설겆이를 하지 않고 바로 나가기 위해서라는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있는 창학이는 심드렁하게 밥사발을 들고 식탁에 마주앉았다. 
오늘은 주말이여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나흘을 출근하고 사흘은 자기절로 지배하는 화이트맨이다. 거꾸로 일주일동안 매일 열시간이상 인터넷을 헤매야 하는 “오타쿠”식 인간이기도 했다. 안해도 그걸 알고있어서인지 금요일만 되면 꼭 회사에 일찍 나가야 할 일이 생긴다. 창학이는 시무룩히 웃었다. 
 
밥을 다 먹고 설겆이를 끝내고 치솔질하고 담배 한가치 피워 물고 쏘파에 다가가 티비를 켜기 바쁘게 폭발적인 뉴스가 흘러나왔다. 방금 조선 풍계리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약 5.0의 인공지진파가 감지됐다는것이였다. 후다닥 서재로 달려들어가 컴퓨터부터 켰다. 
 
창학이는 뉴스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다. 영상화면이 아무리 직관성을 가진다해도 인터넷 속도와 규모를 당하지 못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인터넷밭은 벌써 발칵 뒤집혀져있었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글을 볼수 있는게 창학이의 최대 우세이다. 그래서 한시간도 채 못되여 지진의 상세한 위치와 강도, 진원의 깊이 그리고 세계 각국의 즉시적인 반응 같은것을 인차 료해할수 있었다. 
 
(오늘 주식이 또 폭락이겠구나!)
07년의 폭락사태와 지난해의 널뛰기장을 모두 겪어본 창학이는 속이 철렁했다. 10년이 다 되도록 본전도 못 찾아오고있는 창학이다. 그때문에 안해한테 심심하면 몰려댄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창학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이제는 도가 틀때도 되였는데 아직도 조건반사적으로 술덤벙 물덤벙인 자신이 꽤나 멍청해보인다. 
중국은 세계의 보편적인 논리와 질서로 판단하면 잘못이다! 바로 그거였다. 미국 연방 기준금리가 또 동결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때 증시가 올리 솟구칠줄로 믿었던 대부분 개미들은 곤두박질치는 주가로 인해 가슴을 졸여야 했다. 반대로 중국 증시가 신흥시장 지수 편입이 불발되였을때는 되려 선방했고 영국의 브렉시트 공포에도 상해종합지수는 상승폭을 키웠다. 
 
도대체 이넘의 시장이 뭐가 어떻게 된 갈래판인지 창학이는 도무지 알수 없었다. 페어플레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마당에서 뛰여봤자 벼룩이지 싶다. 머리 썩이지 말자. 타률에 짓밟혀 사는 중생에게 사고력 요구는 사치가 분명했다. 자기 인생 자체가 사건사고에 세상에 이런 일이인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운명이란 소리도 하지 말자, 진짜 운명할수도 있는것이다.
 
창학이는 모니터에 박았던 눈길을 베란다로 돌렸다. 이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공간이 바로 베란다이다. 웬간한 방 반쪽은 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처음 입주했을때는 별로 폼을 잡는라고 인테리어를 멋지게 하고 의자와 차탁을 갖다놓고 식후 휴식공간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초라한 인생은 아무래도 말릴수 없었던지 하나둘 쓰지 않는 물건이 그곳에 쌓여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만 창고로 전락해버렸다. 
 
그래도 풍류기는 그나마 남아있어서 해빛이 잘 드는 쪽에 흙을 반쯤 담은 스티로폼박스를 비치해놓았다. 그것은 경이의 시험전이였다.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거기에 일년내내 채소를 심는다. 요즘은 배추씨를 뿌려서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고있었다.  
 
불현듯 스티로폼박스벽에 시커먼 물체가 기여다니는것이 보였다. 눈이 별로 안좋은 창학이는 부시시 일어나 휘청휘청 베란다로 다가갔다. 개미였다. 설마 하고 둘러보니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오가고있었다. 다시 살펴보니 어느새 스티로폼박스 흙속에 개미구멍이 생겨있었고 베란다바닥은 물론 서재 마루바닥에서도 몇마리 넘실넘실 춤추며 보란듯이 기여다니고있었다. 
 
(아, 어느새 이것들이…)
개미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개미는 한번 침입하면 거침이 없다. 그것도 굴을 만들 정도면 심각하다. 
 
창학이는 급히 살충제를 찾아들고 일단 기여다니는 개미부터 저격했다. 한번 살충제를 맞은 개미는 몇발작 움직이지 못하고 바로 몸을 쪼그리고 죽거나 아니면 훌렁 번져져서 죽어버렸다. 내친 김에 흙속의 굴을 뚜져서 그곳에도 한줄기 시원하게 살충제를 분사했다. 개미들이 떼를 지어 죽어나가는 환영이 방불히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아차, 잘못 죽였나? 하나하나 잡아서 집밖으로 내버리면 될걸 가지고…)
창학이도 주식시장에서는 개미이다. 개인투자인으로서도 그렇고 약육강식으로 죽어나가는것도 개미와 그대로 닮아있다. 
올해 주식시장에서 완커(万科)가 많은 화제를 몰아왔다. 바오넝(宝能)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 6개월 넘게 주식 거래를 중단했던 완커가 거래를 재개하자마자 련속 며칠 하한가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왕스(王石)는 분명 개미는 아니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장이 시작될때 마춤하게 깨여난다는것이 그만 막장쯤에야 소스라치듯 뛰여일어났다. 장세가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전날보다 조금 상승한 포인트에서 장을 마감하고있었다. 
 
조금 있으면 경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창학이는 부랴부랴 옷을 차려입고 문을 나섰다. 애를 맞이하기전에 저녁장을 보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6학년이면 이제 저절로 갔다왔다할수 있는 나이이다. 그런데 아파트 앞 거리가 무법천지 차량들로 너무 붐벼 위험하다. 요즘에는 녀학생 실종사건도 자주 터져 도무지 마음 놓고 혼자 내놓을수 없다. 
 
경이는 래년이면 중학교로 올라간다. 그게 창학이에게는 큰 골치거리이다. 어차피 현지 중학교로 진학해야 하는데 받아줄 학교가 마땅치 않다.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 소속 중학교는 시골중학교이다. 단층으로 된 교실에 6~70명씩 가두어놓고 공부랍시고 시키는 락후하고 원시적인 학교이다. 시설이나 설비나 거의 80년대 수준이였다.
 
경이는 공부도 잘했다. 반급에서 항상 앞자리를 다투는 애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좀 좋은 학교에 보낼것을 충고하고있다. 
 
그런데 창학이는 이곳에 호적이 없다. 인맥을 찾더라도 일단 호적이 있으면 좋은 학교에 붙기가 그만큼 우세를 가진다. 거기다 학교 소속 구역에 집까지 있으면 거의 입학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창학이는 안해와 상의하고 현재 사는 140평 되는 집을 팔고 실험중학교 부근의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곳으로 가면 겨우 80평되는 집밖에 사지 못한다. 그래도 애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 
 
창학이는 1년전부터 호적을 올리는 방법을 여러모로 수소문했었다. 시정부 규정에 따라 100평이상짜리 새 분양 주택을 구매하면 호적을 얻을수 있으나 창학이가 현재 사는 집은 중고주택이다. 대학생도 왕년의 졸업생은 호적 혜택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루적 점수로 호적을 얻을수 있는 방법이 생겨났다. 그 점수제대로 자기절로 두루두루 맞추어보니 요구 커트라인인 백점을 훨씬 웃도는 150점이 되였다. 무슨 수능시험도 대입시험도 아니고 그저 시민이 되는건데 커트라인이라니 한참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창학이는 진지하게 모든 서류를 챙겨들고 인력자원과사회보장국이라는 부서를 찾아갔다. 
 
창학이를 맞아준 사람은 메주를 아무렇게나 주물러놓은듯한 20대 초반의 햇내기 처녀였다. 입가를 실룩거리면서 창학이가 내민 서류를 꺼내 훑어보는가싶더니 뭔가 하나를 던져왔다. 
 
“이건 아니예요.”
보니 문학상증서였다. 성급이상 수상증서는 20점을 준다고 해서 하루종일 서재를 뒤져서 겨우 찾아낸것이였다. 
“왜 안되죠? 거기에 성위선전부와 성민족사무위원회의 공인이 찍혀있잖아요?”
“성위나 성정부의 공인이여야 해요.”
“성위 선전부는 성급이 아닌가요?”
“그건 청급이지 성급이 아니예요. 통지를 알아보지 못했나요?”
수평이 모자라다는 소리로 들렸다. 요런 발칙한것 봐라. 사타구니 습기도 안마른 계집년이 참한건 배우지 않고 나쁜 행실만 먼저 흉내내잖아. 자료나 받아서 정리하고 보관하는 자질구레한 심부름이나 하는 주제에 어디다 대고 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넌 수평이 높아서 좋겠네. 비행기에다 물병 달고 온거냐? 창학이는 괜스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주머니에서 기자증을 꺼내 던져주었다. 
“이건 몇점 되겠습니까?”
메주처녀는 한눈으로 흘끔 보더니 그대로 다시 던져왔다. 
“이것도 안돼요.”
“자격증도 30점이라고 했잖습니까?”
“기술자격등급증서를 말합니다.”
그러더니 뭔가 다시 던져왔다. 
“이것도 쓸데 없어요.”
작가증이였다. 
“다른 자격증은 없어요? 용접공 자격증이라던가 아니면 하다못해 전기수리공 자격증이라던가 하는걸 말이예요.”
그러니까 붓쟁이보다 땜쟁이가 더 좋다는 말이잖은가. 창학이가 입을 하 벌리고 억이 막혀있는데 메주처녀는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컴퓨터를 뚝딱거리더니 모든 서류들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던져왔다. 
“2점이 모자라요. 안되겠네요.”
어디서 또 2점이 떨어져나갔는지는 알바 없지만 아무튼 창학이는 안달아나서 금방 울화가 치밀어오르던것을 모두 잊고 톤을 낮추어 비굴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가요?”
“혹시 봉사활동같은데 다닌적 있어요?”
“취재로 자주 다니기는 합니다만 별도 증명은 없습니다.”
“그럼 헌혈은 해봤습니까. 헌혈 1차에 1점이거든요.”
“아, 그래요?”
 
창학이는 두말없이 서류들을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퇴근한 안해에게 2점이 모자란다는 얘기를 하기 바쁘게 안해의 입에서 고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독주 한잔 마시고 횡설수설하듯이 한동안 중국식 “카스트”제도를 성토하더니 맥이 진했는지 쇼파에 주저앉았다. 사업을 하면서 승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라는것을 잘 아는 안해는 결국 가슴으로가 아니라 뇌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였다. 슬그머니 창학이쪽으로 몸을 옮겨와 의논조로 물었다. 
 
“피 한번 뽑으면 1점이라고 했나요?”
“그렇게 말하더군.”
“그럼 우리 둘 한사람 한번씩 뽑아요. 2점 모자란다고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내 한사람이 헌혈해야 할걸.”
“한사람 이름으로 해달라지요뭐. 피 공짜로 주겠다는데 그런 요구 안 들어주겠어요?”
 
이틀이 지나서 시내로 일보러 나갔던 안해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기에 헌혈차가 있네요. 그런데 다른 사람 이름으로 피를 뽑을수 없다네요. 아무래도 당신이 와야겠어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가니 안해는 헌혈차의 그늘밑에 맥없이 쪼크리고 앉아 나무꼬챙이로 바닥에 뭔가 신경질적으로 긋고있었다. 기진맥진하듯 어깨가 축 처진 왕짜증난 모습이였다. 창학이는 코마루가 찡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장 명색을 여러해동안 하면서 안해가 저렇게 기가 죽어서 있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었다. 
 
(자식이 뭔지 쯔쯔)
창학이는 안해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곧바로 헌혈차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안해도 뒤따라 들어왔다. 
이젠 몸매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사십대의 중년 녀인 둘이 무슨 이야기인가 속삭이다가 창학이가 들어서니 하던 말을 멈추고 별로 반갑지 않다는듯 심드렁한 어투로 물어왔다. 
 
“헌혈하시겠어요?”
창학이는 말하기도 귀찮다는듯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두사람이 번갈아가며 아침에 기름기 있는 음식 먹었냐 술은 먹었냐 요즘 감기 걸리지 않았냐 약은 먹었냐 몸에 무슨 질병은 없냐고 물어왔다. 창학이는 무작정 머리만 가로저었다. 
 
“선생님의 키와 몸무게로 보아서 400ml은 뽑아도 괜찮겠네요. 400ml 뽑을가요?”
“아니오. 200ml 만 하세요.”
“너무 적은데요.”
“그럼 300ml 하세요.”
“아예 400ml 뽑으면 안돼요? 많은 분들이 그 정도로 헌혈하는데요.”
“헌혈도 강박으로 하는겁니까?”
“아, 아니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해가 알수 없다는듯 물어왔다. 
“400이나 300이나 별 차이 없겠는데 왜 그렇게 화내고 그랬어요?”
“사장님, 장사 그렇게 하세요? 며칠후 또 한번 헌혈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뽑고 나중 죽어라구요?”
“아…”
안해는 그제야 무슨 영문인지 알았다는듯 고개를 까닥까닥해댔다. 
그러나 며칠후 창학이는 단숨에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전번날 헌혈한 증서를 가지고 다른 헌혈차를 찾아가니 그곳 사업일군이 외성인을 보듯이 창학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것이였다. 
“공익사업에 동참하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규정상 안되겠습니다.”
“왜요?”
 
창학이는 사색이 되여 외마디 소리를 뽑았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유일한 희망이 동강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엄습해왔다. 
 
“전날에 의사가 400ml를 헌혈하라고 충고하는걸 무서워 300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 며칠 지내보니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고해서 200쯤 더 헌혈해도 괜찮겠다싶어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건 알겠습니다만 헌혈량에 따르는것이 아니라 헌혈차수로 판단합니다. 두 헌혈사이 시간은 반년이 되여야 합니다. 손님의 신체건강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글쎄 제가 괜찮다는데도 안됩니까?”
“국가규정이 그래요. 감사합니다.”
 
창학이는 풀이 죽어 돌아왔다. 점수제 신청은 이번달로 마감한다. 반년후에야 다시 헌혈할수 있다면 결국 점수제에서도 1점에 목매달게 된것이다. 창학이는 비참한 마음에 아무나 붙잡고 푹 취하고싶었다. 
 
그후 며칠동안 창학이는 안해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다. 깔아준 멍석우에서도 못했다는 자책감은 쉽사리 가셔지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 항상 무협지수준이라는 느낌도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였다. 차라리 사막에다 배를 띄우고 말지 그렇게 자책하고 있는 와중에 하루는 안해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걸어왔다. 
 
“여보세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우리 순리에 따라요. “
하느님 맙소서. 아침 메뉴 같은걸로 먹었더니 견해도 같아졌네. 부부란 이심전심으로 정말로 통하는데가 있다고 속으로 한탄했다. 
 
늘어지게 시장을 보고 돌아왔지만 그때가지도 통학뻐스는 오지 않았다. 늦은 오후 시간에도 해볕은 마냥 따갑다. 창학이는 가로수 그늘밑으로 찾아들어갔다. 10년도 더 되였을법한 플라타나스 나무이다. 여러해전에 다 큰 나무를 기중기로 심던 장면이 떠올라 창학이는 허글픈 웃음을 떠올렸다. 식수는 애목을 골라 심는걸로 알았던 창학이는 기중기로 그것도 10메터가 넘어보이는 나무를 옮겨다 심는 장면을 보고 그저 입을 딱 벌렸었다. 저런 나무들을 어디서 파오는지 알바 없었고 저렇게 심어서 살아날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나무들은 용케도 살아났다. 물론 어떤 나무는 일년내내 링거를 달았었다. 좀 학문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건 영양제라고 했다. 
전에 링거를 맞던 자리가 아직도 남아있냐를 살피던 창학이는 장관의 장면에 또한번 전률했다. 개미 대군이였다. 한줄로는 줄쳐 올라가고있었고 다른 한줄로는 쉬임없이 내려오고있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살펴보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려서 가는 길도 어디인지 끝없이 줄이어 행군하고있었다. 
 
창학이가 싱겁게 아래우를 살피고있는데 웃통을 벗어던진 웬 청년이 이상한지 다가와 따라서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웬 영문인지 알았다는듯 갑자기 땅바닥의 개미행렬을 구두발로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머리나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개미들이 여기저기 나딩굴었다. 그래도 개미들은 용감하게 계속 줄이 이어나갔다. 청년은 그것도 모자랐는지 나무에 다가가더니 우로 기여오르는 개미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질러 죽이는것이였다. 그렇지만 개미들은 여전히 포기를 모르고 뒤를 이어 오르고 또 올랐다. 
 
창학이는 차마 눈뜨고 그 란폭한 거동을 지켜볼수 없어 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저만치에서 통학뻐스가 달려오고있는것이 보였다. 
 
                                                    2016년 9월 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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