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적 상상의 동행자 '긴 손톱'/ 마광수
나는 손톱이 긴 여인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관능적 상상력을 키워 준 것은 언제나 ‘긴 손톱’의 이미지였다.
평생 동안 동행(同行)해온 내 문학적 상상의 파트너는 다름 아닌 '길디긴 손톱'의 주는 관능적 엑스타시였던 것이다.
손톱은 원시시대의 인류에게는 다른 동물의 경우처럼 일종의 가학적 무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비수처럼 날카로운 여인의 긴 손톱은 사디즘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가학적인 손톱'이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미학적(美學的) 손톱'으로 되었다.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는 게 아까워, 누구를 할퀴는 등의 가 불편해진다. 그래서 싸움이 없어지고 평화가 실현된다. 이것을 나는 '탐미적(耽美的) 평화주의'라고 부른다. 이제는 모조손톱이 나와 얼마든지 손톱을 길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네일 아트'를 하면 금상첨화이다. 여인의 길디긴 손톱에 내 몸 전체를 긁히우고 싶다. 나는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에게만은 마조히스트다.
가학적인 용도로 쓰이던 손톱이 이젠 화사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변했다는 점, 그로테스크한 관능미의 심벌로 변했다는 점에서 나는 인류의 미래를 밝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희망적인 예감을 얻는다.
인간의 가학성이 미의식과 합치되어 아름다운 판타지로 승화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류의 평화, 전쟁이 없는 세계가 건설될 수 있다. 주관과 객관, 감정과 사상, 관념과 사물의 대립을 지양하고 그것을 생동력 있게 통일시킬 수 있는 근원적 에너지가 바로 ‘관능적판타지’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 이 합치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당당한 쾌락추구에 기초하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누구나 잘 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시즘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노동’, 이를테면 화장이나 손톱기르기 등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노동에서 나르시시즘의 관능적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탐미주의에 바탕을 둔 쾌락주의, 또는 육체지상주의(肉體至上主義)가 요즘의 내 신조라면 신조라고 할 수 있다. 고통만이 악(惡)이요, 쾌락만이 선(善)인 것이다.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頹廢美)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思考)를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적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제발 이제부터는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상상을 단죄(斷罪)하는, 문화적 후진국의 작태를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