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hongzhe 블로그홈 | 로그인
리홍철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39 ]

19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연재수기5) 댓글:  조회:664  추천:0  2015-09-11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연재5) 리홍철 때론 아팠던 상흔들이 어느날엔가는 아름다운 문신으로  지워지지 않는 꿈같이 황홀한 추억을 만들수가 있다.  신문사에 있을때 어깨 넘어로 편집을 조금 배웠고, 신문편집에 필요한 프로그램도 그나마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잡지편집프로그램은 완전 생소한것이였다. 코렐이라는 프로그램이였는데 어쩜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지만 또다시 편집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잠시나마 그 두려움을 잊게 해 주었다.   광고디자이너 한테서 이것저것 물으며, 어깨넘어로 엿보며, 그리고 다 퇴근한시간에도 홀로 남아 밤 11시까지 때론 새벽 1시까지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홀로 이것저것 연구를 했다.  이때 배워 두었던 코렐프로그램이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이 밥먹고 살수 있는 가장  값비싼 도구였던것이다.   그렇게 잡지사에서 낮에는 업무뛰고 퇴근후에는 편집을 하면서 나의 일과는 하루가 24시간이 모자라게 빠듯했다. 그러나 일이 재미가 있다는 생각도 처음 가져보는 이때가 어쩌면 내가 청도와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였을가 생각이 들었다. 매 한페이지, 매달 편집완료시의 그 뿌듯함은 어쩜 나만이 느꼈던 희열이 아닐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업종이 불황을 겪고있는 경제공황시기라 잡지사 역시 결국엔 문을 닫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첫애가 금방 태여난 이듬해였으니 2005년도였다.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대한 중임같은것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지지 누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때에는 어른들뿐이니 하루하루 있는대로 연명해나가면 되는 거였지만 금방 태여난지 백날밖에 안되는 아이는 분유도 먹여야 하고 이것저것 돈들어 갈곳이 한두곳이 아니였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잡지사에서 배워 두었던 편집디자인 재간이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고 배운것이 그것밖에 안된 나는 결국엔 다시 디자인업에 발을 들여 놓았다.   집에는 막내처남이 게임정도라만 놀라고 준 로씨야에서 생산한, 품명도 알수 없는  노트북 하나뿐이다.    인쇄디자인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프린트기, 복사기마저 없다. 그것따나 노트북마저 과열로하여 10분에 한번씩 자동으로 꺼진다...   좁쌀 보총으로 중무장한 왜놈과 싸우던 일제시기의 항일전사와 같은 비장한 각오마저 들었다. -그래 이걸 가지고라도 시작해보자...컴퓨터나 주변기기는 이제 돈을 벌어서 사면 되는거지..   착찹한 기분을 자아위안으로 잠재우며 나는 이튿날부터 업무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청도시내에서 배포되고 있는 모든 한글잡지를 모아 놓고 금방 오픈한 식당이나 가게, 공장들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전화, 메일, 팩스 번호들을 일일이 적놓고 오후부터는 전화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인쇄소인데요..혹시 인쇄건이 필요하신가구 전화 드렸습니다... -네..근데 어느 인쇄소죠?   아차! 아이는 태여났는데 아직 이름이 없다...   내 스스로의 웅대한 포부와 세상의 그 어떠한 고난도 정복할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 했다. 정(征)우(宇)! 그래서 탄생된 회사이름이 우주를 정복한다는 포부를 꿈꾸며 정우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오전내내 전화 통화에도 방문예약은 가물에 콩나듯이 듬성듬성이다... 그나마 반나절 공치는 날도 많았으며 방문예약이 되었다 해도 성사의 여부는 알길 없다...   뻐근한 손목과 인젠 새틋할 정도로 입안에서 굴려지는 하는 멘트마저 힘에 부쳤다.   하지만 해야 했다. 느끼한 멘트와 부러질듯한 손목에 힘을 주며 나는 다시금 전화기를 쥐어 들고, 다시금 신발끈을 묶었다.   오늘은 청양이다-   오늘은 류팅이다-   오늘은 황도다-   오늘은 교주다-   상품의 질, 가격, 납품기일, 및 약속과 신용이 사업에서 발전을 가져옴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긴 다는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웠다.   공장기계는 내가 가동하는 것이 아니였으며 하루 24시간 공장에 붙어 있을 여건도 안된다..   잘못된 인쇄품을 다시 생산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소요 되며 그러면 따라서 납기일역시 늦어 진다... 그같은 차실을 공장에 밀어 붙일수는 없는 노릇... 내 신용도에 오점이 생겼다...   파동이 심한 가격때문에 가격대를 맞춘다는것도 고역이다... 주유값이 상승하면 함께 오르는것이 인쇄시장이다...그렇다고 오뉴월 오이 자라듯이 치솟는 인쇄가격따라 계속 함께 오를수는 없다...   나는 납품가능한 날자를 적어도 하루 늦추어 정했다...   가격은 처음에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인쇄가격이 4번 상승할때까지 한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인쇄시 적어도 기계가동직후 인쇄품이 나오는걸 직접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인쇄 효과에 대한 검증이다...   바이어 관리란 별거 아니다...   단 한번 오다를 준 업주라도 그 근처를 지날땐 꼭 한번이라도 들린다...   사업은 점점 호황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고정바이도 점점 늘어 갔다.   매년 청도 50여교회 및 10여개 업소,업체 고정 달력제작, 중국지역을 대상으로 한 대리점 전문 디자인인쇄, 부동산, 공장, 사우나... 등 업소들의 정우에 대한 호감도를 점점 높여가기 시작했다...   또한 잡지광고 업무를 뛰면서 쌓은 인맥도 한몫을 했다.    단 100장의 명함이나, 단 몇 백장의 전단지나 작은것 부터 큰것까지 일일이 챙겨주시는 스폰서님들 정우가 성장하고 나자신한테 용기와 힘을 부여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청보치과의원, 장수촌 황토방, 반석교회, 은하수무역, 국순당 막걸리, 리커의료보건품... 등 ....   때로는 막연한 어둠속 심연의 나락에서의 고역을 망각하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때문에 할 나 자신의 꿈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것같은 벅찬 희열과 무한한 감격이 너울쳐 옴을 느낄수가 있었다...   성공은 꿈꾸는 자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이다.   꿈꾸는 자의 행보는 오직 성공만을 향해 있으니깐...   이제 나한테 더이상의 시련이나 고통은 없을것이다...   40일간의 민들레 반찬이, 4일간의 본의아닌 금식, 그리고 한달 7컬레의 신발이 앞으로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길수 있는 큰 면역력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한테 더 이상의 김은 심연은 없을것이다.    심연의 골짜기 맨 끝까지 나는 가 보았기 때문이다.   훈장보다 빛나는 역경의 상흔(伤痕)들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문신으로 새겨질것이다...   -따르릉...따르릉...   나는 또 다시 신들메를 동여맸다.   어스레 비쳐드는 쥐굴속의 한갈래 빛줄기를 따라 저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태양이 보여온다..
18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연재수기4) 댓글:  조회:768  추천:0  2015-09-09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리홍철   굴러가는 바퀴를 멈추는 힘은 오직 나태와, 자아만족이다. 그것을 이길수 있는 힘이 있다면 행복은 영원한 질주를 계속할 것이다.   목을 매 죽으려 해도 바줄이 든든해야 죽을수가 있는것이다. 한 회사에 목을 매고 죽을때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허기진 배와 죽을수까지도 없는 회사라는 생각에, 내가 회사를 버려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내 가슴을 허비고 판다.   그렇게 원하고 원했던 편집이라는 직업,  문학을 너무 좋아했기에 문학편집이라는 내 생애 최고의 직업을 단 배고프다는 이유하나로 버려야 한다는 너무 초라한 이유때문에 나는 더욱 슬펐던게 아닌가 싶다.   ... ... ....   문학선배로 부터 전화가 왔다.   광고잡지사에 출근하는데 오라고 한다. 적어도 배는 굶지 않을것이라 했다.   배만 굶지 않은다면 무엇이든지 하리라!   선배의 제의로 오픈 2개월된 광고잡지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잡지사도 아직은 알수 없는 상황, 정녕 나의 배를 굶기지 않을 회사인지, 정녕 나의 배를 불려 줄수 있는 회사인지....그것까지는 아직 알고 있는것이 하나도 없다.   -굶어도 혼자 굶자... 나때문에 내 사랑하는 사람까지 굶을수야 없지...   신문사를 사직하면서 받은 1800원에서 아내한테 1000원을 주었다.   -일단 이 돈으로 고향집에 가 있어... 내가 제대로 발을 붙인 다음 부를테니... 내가 부를 때까지는 절대 청도땅에 발을 들여 놓을 생각을 말어...   아내도 나한테 부담이 된다고 생각했던지 눈물을 글썽이며 돈을 받아든다...   -언제쯤 부를건데?... ... ...    -글쎄...알수는 없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빠른 시일내로 부를게...꼭 기다려줘...   그렇게 아내는 고향으로 떠나갔다...   이제 가장 믿고 의지하던 아내마저 떠나고 그 떠난 아내를 찾기 위해 나는 정말, 정말로 피터지는 노력을 할것을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잡지사에 입사하기 전날 저녁, 친구하나 없는 나는 썰렁한 방에 홀로 앉아 언젠가 피우단 만 꽁초 하나를 건져들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 정녕, 정녕 나한테도 빛은 보일가?...   ... 굶지 않을 삶을 위한 목표가 언제면 이루어 질가...   ... 사랑하는 아내는 언제면 데려 올수 있을가... 구경 그런날이 있기나 할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초봄 살얼음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같은 강렬한 무언가가 움트고 있었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배는 고파 가죽이 등뒤에 붙어도 고향에 돌아간 아내만은 등뒤에 세우지 않을것이라고...가장 빠른 시간내에 꼭! 꼭! 아내를 다시 내 신변에 데려 올거라고...   잡지사 첫 출근이다.   업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은 후 나는 사무실 문을 나섰다. 광고를 끌어 오기 위해서는 뛰어야 했다.      그 당시 사무실에 광고업무원이 총 6명쯤 되었지만 핸드폰이 없는 직원은 나 한사람 뿐이였다. 그러니 사전 전화연락이라는것은 나한테 없었다. 길을 가다가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것 같은 회사나 가계가 보이면 불문곡직하고 뛰어 들어가 사장님부터 찾았다. 사무실에서 9시에 나와서 점심 11시까지 나는 총 7개의 회사, 가계,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Xx잡지사에서 왔는데요. 혹시 광고하실 의향이 없으신지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나보다 한발 빠른 사람이 그렇게도 많을거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정말 많았다. 들어가는 곳마다 모두 타 광고잡지에 계재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다가는 한달가도 광고 하나 잡을것 같지 못했다.   목이 마르다... 배도 고프고...   어느덧 점심시간은 지나 오후 1시가 되어 온다...   얼음과자 하나 사먹고 싶었지만 1원짜리 얼음과자 하나 살 돈이면 그돈으로 두부를 사면 저녁한끼를 때울수 있다는 생각에 호주머니를 슴새던 손은 스르르 미끌어져 나왔다.   그렇게 점심도 굶고 오후 두시쯤, 지친다리를 끌며 어느 뻐스역 간이걸상에 엉뎅이를 붙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 뛴다. 정거장 바로 옆에 한글로 된 변호사사무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지금까지 계속 한글간판만 찾아 다녔지만 이상하게 그 간판이 그렇게도 마음을 끌었다.   무작정 들어갔다.   그리고 인젠 입에 익은 소리가 그대로 튕겨 나왔다.   -Xx잡지사에서 왔는데요 혹시 광고하실 의향 없으세요?   -아.. 그렇지 않아도 광고할려고 했는데 바로 오셨네요...   순간 나는 코끝이 찡 저려 옴을 느겼다. 결국 전면광고가 아닌 반면광고였지만 그것은 사하라사막 한복판에서 갈증에 죽음을 부르던 나한테 너무나 달콤한 생명수와 같은 것이였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된다. 계속 이정도로만 나가자. 하루 반면 광고만이라도 잡아오면 된다...   이튿날부터 나는 더욱 열심히 뛰었다.  광고 업무를 뛰는 근 두달간 나는 택시 한번 타본 기억이 없었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촌 지역내에서는 뻐스도 타본 기억이 없었다. 그저 두발로 뛰기만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첫달 출근 18일만에 월급날이 되었다.   사장이 말했다.   -허허 출근 18일만에 광고 5섯개를 끌어 왔네.. 잘했어요..   평군 3일에 광고 하나씩 끌어 온 꼴이다. 총 광고 금액은 4500원 . 월급봉투를 펼쳐 보았다. 기본봉급 800원+광고수당 25%=1925원 8개월을 돈냄새도 맡아 못보던(마지막 결재제외)나한테 너무나 큰 돈이였다.   이대로라면 한두달 이내에 아내를 다시 데려 올것이다. 그러고 보니 18일간 내가 뛰어다닌 거리수가 얼마나 먼지는 알수 없지만 노천시장에서 산 25원짜리 신발 3컬레가 바닥이 구멍나 바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새로운 여정은 시작되었으며 배를 곯지 않겠다는 목표와 하루빨리 아내를 데려 오겠다는 목표가 서서히 가까워 오기 시작했다.   광고잡지사에 출근해서 첫달 광고 총액 4500원, 월급1925원, 두번째 달 광고 총액 9200원 월급 3100원...   나의 광고액은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으며 아내가 떠나간 3달만에 나는 끝내 아내를 다시 내 신변에 데려 왔다.   그사이 원래 잡지 편집을 하던 선배가 사유로 편집을 그만두고 내가 편집까지 담당하게 되었으며 낮에는 광고업무를 뛰고 오후 다섯시부터 밤 11시까지는 편집에 임했다. 그러다 나니 편집비용 2천원까지 한달 급여가 근 5천원 이상이 되었다.   이제 내 삶은 오직 찬란한 무지개빛갈만이 영롱한것일가...더 이상 악몽과 같은 심연은 없는 것일가... 나의 노력이 멈추지 않은한 이 황홀함은 여전할것이라 생각되었다 .
17    가을 댓글:  조회:626  추천:0  2015-09-08
가을  리홍철  죽어가는 연습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 살아서 날을 세웠던 잎새의 기염과  남아 있는 가는 숨결-황혼의 훈장까지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역사를 불태워야만 하는 그런 시간이 있다  한 마리 참새처럼 누군가를 속여 한 장의 지지 않은 잎으로  마지막 가쁜 숨을 톱는 추옆도  결국엔 이 계절의 깃발이 되는게 아니다  살아서 소리소리 지르던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영웅이 되어가는 그런 계절이 온다 송화강 
16    검은점 댓글:  조회:595  추천:0  2015-09-08
검은점  리홍철 누군가 귀퉁이에 까만점 하나가 박힌 흰 수건을 들고 여러 사람들에게 무엇이 보이는가구 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까만점`이라고 대답했다. 그사람은 다시한번 더 찬찬히 보라고 하였지만 누구나 그 이상의 다른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다면 진짜 다른것은  없을가?   결국 그사람은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인간은 항상 우점보다 결점에 더 민감하다. 10년 좋게 지내다가도 한번 실수에 원쑤로 변하는 우리 인간은 너무 모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흰수건의 검은 점에만 신경이 쓰이여서 흰수건 전체가 검은 색으로 보이는것 처럼 말이다. 그 검은점도 퇴색하면 희게 변하려만 인간은 그 퇴색할 시간마저 용납하기 두려워 한다.   그러나 기실 까만점 하나 박힌 사람을 웃는 그 자신이 되려 무수한 까만점을 박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간혹 뭇사람들한테 칭찬 받을 좋은일 하나 하게 되면 그것은 마치 천연무택의 훈장으로 변한다. 또한 더 돋보인다. 이때엔 마치 검은 수건 한 모퉁이에 박힌 흰점처럼 말이다.   그같은 검은 점을 용납할줄 알고 씻어 줄줄 아는 사람만이 흰색의 소중함을 더욱 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닐가 싶다.   하나의 흰점은 우연으로 생기는 단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의 점으로 하여 소외되는 인간은 그 소외로 하여 점점 더 많은 검은 점을 만들어 가게 된다. 악성종양처럼 점점 더 많이 번식하게 된다.   어느날 밤  잠이 오지 않는 조용한 밤에 당신은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시라.   당신하테 얼마만큼의 검은 점이 있는지... 그 숫자를 헤아리며 새벽까지 잠을 안자는 당신은 래일 아침이면 말갛게 표백된 흰 수건으로 될 것이다. 2006년 흑룡강 신문  
15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연재수기3) 댓글:  조회:690  추천:0  2015-09-08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3  리홍철  내리막이 늘찰수록 더욱 높은 산마루는 어쩌면 나에게 꿈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애써 톱은 지금까지의 올리막길을 중단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워서 감히 포기를 못하겠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같았다. 한 기 신문편집은 몇시간 아니면 끝나고, 그것도 신문사가 경제난으로 더는 출간할 수가 없는 상태에까지이르게 되었고, 나역시 근 8개월간 월급을 타지못한 신세였으며 신문사가 오래 지탱하기 힘들것이라는것을  깨달았지만 쉽사리 신문사를 떠날수가 없었다.    그무렵 나는 지금의 아내를 사귀게 되었다.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 내 호주머니에는 특별히 데이트를 위하여 빌린 돈 50원이 전부의 재산이였다. 더 많이 빌릴수 있는 곳도 없었거니와 또 더 많이 빌릴수 있는 체면이 나한테는 전무했던것이다.   약속장소인 이촌광장에서 만나고 다음으로 꼬치집을 향했다.. 호주머니의 50원짜리 한장이 그렇게도 나에게 큰 두려움으로 안겨올줄은 생각도 못했다...   별맛꼬치집-참으로 꼬치는 별맛이였지만 나는 무우를 씹는지 감자를 씹는지 분별할수가 없었다.   -돈이 모자라면 어떻게 할가...   -꼬치집 사장과도 안면이 없는 사이인데.. 외상은 할수없고...다행히도 아내가 눈치를 챈 모양인지 아니면 입맛이 당기지 않았는지 꼬치 세개에 닭날개 하나만 먹는것이였다..금방 저녁을 먹고 왔다고 한다..   결국 우리의 첫 외식은 20원으로 끝났고, 그때 그 일을 훗날 결혼후 아내와 말했더니 내 얼굴 기색을 보고 조금은 눈치 챘지만 호주머니에 50원만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100원은 있을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사귄지 3달만에 동거하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나는 가정이란 한 지체의 머리로서 가정의 모든 근심걱정 부담거리들을 내가 지고 이고 가야만 했다... 근데, 월급은 계속하여 밀리고, 아내의 1200원 봉급에 매다려 사느라니 내 체면이 말이 아니였다. 담배는 꼬박꼬박 피워야 했고, 취재나 업무보러도 차비를 아내한테서 얻어 써야만 했으니..그러나 그것마저도 당시에는 복속에서 부르짖는 행복한 아우성이였다..   얼마후 아내가 병으로 사직하게 되었다..   기가 약한탓에 자꾸만 어림증을 느끼고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서 녹초가 되기가 일쑤였다..   유일한 밥줄기였던 아내의 봉급이 끊기자 말그대로 우리는 마주앉으면 손가락 빨기밖에 더 할수가 없었다..   때시걱을 기다리는 일이 아내한테는 죽음을 기다리는것 처럼 두려웠다고 아내는 가끔가다 그때일을 회상하며 얼굴을 찌프린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계속하여 밀리고, 아내는 조금 비축해두었던 잔금까지 모조리 먹어 불어먹고 나니 얼마후 우리는 정말 손가락을 빨 지경이였다..   주방에 기름병은 기름대신 먼지가 부옇게 앉았고, 가스통은 비어버린지도 아늑하고, 간장병마저 텅텅 빈소리뿐이다..호주머사정은 더구나 말이 아니었다.. 돈냄새를 맡아본지도 언제인지 기억에 아득하다.   다행히도 쌀은 있는 편이라 전기를 이용하여 밥은 지어 먹을수 있었지만, 반찬이 문제였다. 일전한푼도 없는 처지라 고기는 꿈의 넉두리로, 녹색빛갈을 띤 채소마저도 먹어본지 아득하였으니깐. 며칠은 맨밥에 간장병만 빨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길을 지나다니며 땅에 떨어진 배추잎사귀마저 주워서 먹고 싶은 생각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하여 보니 집안 객실 전체가 민들레로 수북하였다. 아내가 아픈 몸을 끌고 노산빈관인가 어덴가 하는 근처에 가서 민들레를 캐왔던것이다.   기름은 없고, 간장도 없고, 고추가루도 없고.... 그래서 밥가마에 물을 끓여서 민들레를 데친 후 소금을 뿌려서 먹는 방법을 선택하였으며 이렇게 우리는 민들레가 꽃이피고 떨어질때까지 근 40일간 하루 세끼 소금을 뿌린 민들레만 먹었다...   참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를 버리지 않고 떠나가지 않은 아내한테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고, 감사하다..   근데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더니 나는 그때가 가장 내리막인줄 알았는데 더 내리막이 있을줄이야.. 내리막이다 못해 내리막 밑에 생긴 큼직한 구덩이가 있었던것을 ...   그렇게 배를 곯으며 기다리기도 싫은 양력설이 돌아왔다..   남들은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고 잼있게 놀가를 궁리할때 우리는 오늘 저녁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내일이면 양력설이다..그러나 신문사에서는 월급은 둘째로 설소비 한푼 안준다...   다행히도 내가 당겨온 광고가 하나 있었는데  사장은 그 광고를 결재받아서 나보고 쓰라고 한다. 나는 업체에 전화를 했다..이러저런 사연이 있는데 광고비용을 결재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광고비용 1000원을 손에 쥐게 되었으며, 또 천진하게 꾸지 말았어야 할 양력설의 영롱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 우선 우리 둘이 만난 첫 명절인것 만큼 재미있게 쇠야지.. -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댓근 사고, 아내가 좋아하는 닭날개도 좀 사고.. 술도 좀사고 ... 오랫만에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데 그 꿈마저 길지 못했다...   똑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웬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 거렸다...   슬며시 돈을 넣은 주머니 쪽을 손으로 눌렀다..   그러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들어 사는 셋집 주인이다...   석달동안 집세를 밀렸더니 년말이라고 결산해 달란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수가 없었다..   한달집세 330원, 석달치를 물고 나니 호주머니는 금시 홀쪽해 지고 단돈 10원 한장이 애처롭게 바스락 거린다...   당금 눈물이 쏟아 질것만 같았다..  허전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여 문을 떼고 들어서니 아내는 오랫만에 보는 밝은 웃음을 짓고 그리고 즐거워 한다..   그도 오늘 내가 광고비 천원을 받아 오는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을 집세로 물었음은 아직도 감감이였다...   그때 아내의 망연자실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슴을 아프게 찢고 있다... 아내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더니 나한테서 돈 10원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후 그는 돼지고기 반근에, 1.60원을 주고 란링알취 라는 소주 한병, 그리고 훙찐 담배 한갑 사들고 들어왔다..   -인젠 돈 없어... 설인데 ... 고기에다 술은 마셔야지...그러더니 아내는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 쓴다...   가늘게 아주 가늘게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내 심금을 아프게 허비고 있다...   이튿날 양력설날 아침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고기를 씹어야 했으며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셔야 했다....참고 참으려고 했지만 주체하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은 막을수가 없었다...   내리막 끝의 이 아득한 심연의 골짜기는 구경 어데까지일가... 깊이를 알수 없는 그 끝없는 나락에 나는 정처없이...정처없이 빠져들고 있다....
14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연재수기2) 댓글:  조회:598  추천:1  2015-09-07
청도에서 첫날     청도 도착은 아마도 밤 10시가 훨씬 넘은 것 같았다.    20여시간의 기나긴 장정을 거쳐 도착한 청도는 그렇듯 황홀했지만 무시로 떠오르는 심양역에서의 봉변이 내 등골을 차겁게 훑는다…어데 갈곳이 마땅 찮은데, 여관은 또 두려움의 단어로 각인 되었는데…   다행히도 제남역에서 오른 대학생 하나가 큰 도움을 주었다. 그를 따라 선로 뻐스에 오르고 거의 30분만에 도착한 곳이 대맥도라는 바다가 근처였다.  그의 소개로 한 아담진 여관에 행장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여관문을 나서니 너무나 정답게 느껴지는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우리 글로된 이였다.   연변에서는 흔해빠진 한글간판이지만 이렇게 타향에서 우리글로 된 간판을 보니 너무나 감개무량했다.   급히 식당문을 떼고 들어서니 늦은 밤이지만 너무나 반갑게 맞는 식당 아줌마이다.   곱돌장국에, 김치볶음에, 청도맥주 한병, 소주반근을 게눈감추듯 하고 나니 그제야 전신이 맥지근해나며 진한 피곤기를 느꼈다. 여관을 돌아와서 피곤에 구겨진 몸뚱아리를 되는대로 침대에 던지고 순식간에 깊은 꿈의 나락에 빠져 들어갔다…   몇시인지 분간이 안가는 한밤중에 뇨의를 느껴 문을 당겼더니 아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 밀어 보았다.. 당겨보았다 ...역시 열리지 않는다…분명히 밖에서 잠궜다…   순간 또 재수없는 그 심양역에서의 봉변이 떠올랐다…   … 이 여관도??….큰일이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快点开门… -  吓死我啦 … 干什么?   여관집 주인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어쩜 내 고함소리보다 더 높았는지도 모른다.. 자박자박 쓰레빠를 끝는 소리가 들리더니 드르륵 하고 내 방 문이열렸다…   참… 방문은 밀고 당기는 문이 아닌 옆으로 미는 다다미 형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날의 그 창피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고 있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려 훗날 다시금 그 식당과 여관을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첫 출근      이튿날 아침 택시를 태고 신문사 사장이 알려준대로 이촌에 도착, 중국은행 문앞에서 기다리니 한참후 직원 한명이 나와서 나를 사장의 집으로 안내했다.   사장집에서 한참 신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금 숙소를 잡으러 사장과 함께 밖을 나섰다. 분명 회사경제난으로 회사에서 숙식해결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라고 하는 민박과 직업소개를 겸해하는 곳이였다.   한달 주숙비 450원을 주고 나니 호주머니에는 230원이 남았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먹고자는 근심을 덜었다는데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튿날 신문사 사무실에 정식으로 출근하니 제일 처음 맡겨진 임무가 청도 지리도 익힐겸 신문 배달원과 같이 신문을 배달하란다...   참... 편집으로 왔지 신문 배달온건 아닌데.. 하는 불편힌 심기때문에 저으기 어짢았지만 그래도우선  청도지리를 익히는것도 나쁠건 같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전에는 이촌 지역을 배달하고 오후에는 어덴가 엄청 먼곳을 가는것 같았다...   아무리 자전거를 오래타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힘든것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힘들었다...   알고보니 자전거를 타고 배달한 지역은 류팅을 거쳐 청양이라는 먼곳이였다... 아마도 연길부터 용정가기보다도 더 먼것 같았다.. 그날 온하루 자전거 페달을 밟앗더니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잠에 골아 떨어졌다.   출근 두날째 되는 날 사장이 나보고 뭘 하고 싶은가 물었다. 분명 문예편집으로 오기로했는데 또 뭘 해보고 싶은가 물어본다... 답답하기라구야...그래서 했더니 알았다고 문예편집을 하란다...   처음인데 어떻게 뭘부터 하라는 말도 없다.     배워주는 사람도 없다...   사무실을 둘러보아야 컴퓨터 한대가 있었지만 이때까지만도 컴퓨터를 만져도 보지 못했으니 촌놈이 새장속에 앵무새를 구경하는 꼴밖에 더 될게 없었다.   그저 멍하니 컴퓨터로 신문배판을 하는 여직원의 능수능란한 손끝을 보면서 나두 언제면 저렇게 컴퓨터를 잘할가 하고 부러운 눈길만 보낼뿐이였다.   이렇게 신문사 신고식은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으로 미적지근하게 끝이 났고...이튿날, 삼일날, 사일날도 매한가지였다..다르다면 며칠후부터 나는 타자연습에 들어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도 하는 일이 없고, 눈치는 보이고, 컴앞에라도 앉아 있으면 일하는 모양새가 나서 눈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머리에 털나서 이때에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져보았으며 현재 평면디자인까지 하게 될 기초를 이때에 다졌던게 아닌가 싶다. 청도 청도타운 광고잡지에 발표 -내일 계속-
(연재수기)  쥐굴에도 볕들기를 기다려                                    리홍철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현재의 경과가  순간의 빛으로 남을, 즐길수 있는  가장 소중한 과정이다.   쨍하고 해뜰날을 기다려, 아니 기디린게 아니고 마주달려 어느덧 고행이란 말도 아깝지 않은 고고행의 10년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지금 그나마 내 자신을 돌아볼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연길에서의 7년의 미련을 아깝지 않게 던져버리고 나서 처음으로 고향땅을 떠날 때는 아마도 2000년 9월즘이라 기억된다.   된장 세숫가락에 감자 한알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며 버티던 연길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절명에 가까운 사지의 변두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러다 행운의 신으로 생각되었던 신문한장이 내 운명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청도 모 신문사에서 편집모집을 한다는 명함장 크기의 신문광고가 눈에 확 들어오며 순간에 심장은 크게 북을 쳤다.    17살에 처녀작을 발표하면서 그간 나름대로 부지런히 글들을 발표하였던 나는 꿈이 편집이였기 때문이다.   이력서고 뭐고 당장에 초빙광고를 낸 신문사에 전화를 했더니 너무나 쉽게 OK를 받았다.   연변  밖을 떠나는 시골뜨기의 마음은 희망으로 부풀었고, 모든것이 나를 위해 축복해주는것만 같았다. 배웅해주는 동생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방울도 나를 울리지 못했고, 뒤로 밀려가는 연길역도 그저 속시원한 눈길로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며, 청도라는 산동땅에 내가 아는 사람 한사람 없는 생면의 타향이라는 생각도 두려움보다 반갑기만 한 도시로 가슴 뜨겁게 안겨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닌, 겉만 이쁘게 포장되고 속은 썩은 동아줄임을 나는 몰랐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저 언덕 너머에 또 하나의 무서운 심연이 쩍 벌어진 악마의 아가리처럼 내 앞에 숨어있는 줄을 내가 알리 만무했다…   심양 역에서      변변찮은 중국어 실력에  태여나 처음으로 나서 자란 고향을 떠난 시골뜨기가 심양역에 내리니 참으로 동서남북을 분별못하는 촌닭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어물어 매표처를 찾고, 청도행 티켓을 끊으니 오후네시 기차시간까지는 근 7시간도 더 되게 남아있었다. 어데 갈곳은 없고 두리번 살피는데 보기에도 무던한 웬 아줌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 住旅店吗?“   여관에 들겠는가고 묻는다. 금방까지만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던 차에 그 아줌마의 한마디에 나는 피곤기를 느꼈다. 온밤 설레임 때문에 기차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던  터라 그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여관비는 10원이란다.    너무나 싸고 좋았다.  거리도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한다지, 트렁크도 그 아주머니가 빼았다 싶히 나꿔 채서는 자기가 들고 앞장선다.   근데 5분거리라는 여관은 너무나 멀었다. 걸어서 15~20분만에 도착해보니 웬 폭격맞은 집 같은 문앞에 멈춰섰다.   “倒啦“    근데 여관이라는 곳이 간판도 없는, 그리고 당금 쓸어질것 같은 오두막같은 곳일줄이야... 도심 한복판에 이같은 초라한 집이 있다는것 조차 믿어지지 않을 많큼 초라한 단층집이다.   그러나 왔던김에 별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더니 더욱 기가 막혔다 .   작은 침대 하나가 전부인 방이 몸 하나 돌리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았고, 벽 네면에 개굿멍 같은 작은 출입문 하나가 전부였다. 구름한점 없이 맑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등불을 밝혀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 보다도 더욱 나를 기절 초풍할 일이 벌어졌으니...   " 要不要小姐?"   여관이 아닌 기생굴일줄이야....   순간 눈앞이 캄캄해났다.   두메산골에서도 매체를 통해 이같이 백주대낮에 여자를 미끼로 사기치는 날강도들이 간혹 있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왔지만 내가 직접 부딛칠줄이야...   "不...不要..."   그러나 그들의 집요한 닥달은 끝이 없다.   경찰들도 와서 피로를 풀고 간다는둥, 정부에서 어느 영도도 와서 재미를 본다는둥...그러니 안심하라고, 한시간에 50원이니 비싼것도 아니지 않는가한다...   비싼지 싼지는 내가 겪어 못 봐서 모르고, 누가 와서 재미를 보고 갔던지 왔던지 그 같은것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내 머리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오로지 이 귀신굴 같은 소굴을 벗어나고만 싶을 뿐 이였다.   알고 있는 중국어를 최대한 다 활용하면서 여관에 묵을 수 없는 이유를 만들기에 분주했다.   그러나 내 말에는 듣는둥 마는둥 그렇게 무던한 아줌마가 줄기차게 계속 무던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 뭐라고 소리지르니 순식간에 우리 농촌 사내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처럼 군대말 같은 아가씨인지 아줌만지 분별이 어려운 여자 5섯명들어 왔다.   회포를 풀라는 것인지 아니면 날 때려죽이라고 불러왔는지 암튼 나의 공포는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몇 마디밖에 할수 없던 중국말까지 다 까먹고 니디워디도 나올수가 없었다.   한두매 맞는 것보다도 몇푼 안되는 로비까지 몽땅 빼앗기면 가도 오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것이 두려웠다.   다섯명의 여자를 그 비좁은 방에 일열로 세워놓고 내 의사와는 관계업이 마음대로 선택하란다....   기가 떡 막혔다.   이럴줄 알았더면 돈을 조금 더 팔더라도 역전옆 국영여관에나 갔을것을.... 그들과의 씨댕이는 30여분간 지속되고, 그러다 밖에서 웬 사내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사내 셋이 머리를 기웃 들이민다...     5섯명의 여자들만도 기절직전인데  저승사자같은 사내들의 출현은 내 혓바닥을 완전 마비시켰다.   시골구석에서 간혹 싸움은 그저 주먹닥질이면 전부인데 비해 도시깡패들은 사시미 같은 흉기를 휘두른다고 하던데…   시골에서 위용을 부리던 주먹의 신용은 언녕 구중천으로 날려가 버린지 옛날이다....   그들의 고함소리를 상세히는  알아 들을수 없었지만 대체로 진짜 돈 없는 거지새끼 아니냐 하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부랴부랴 호주머니에서 몇백원 안되는 돈을 꺼내 보이며 이것이 전부인데 이것마저 너들이 가져 가면 난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고 하니 그들은 청도 어데 가는가고 물었다.   묻지 않아서 대답 못하던 차라 나는 제꺽 모 신문사 기자인데 청도 지사로 파견돼 간다고 거짓말 비슷한 거짓말을 둘러 대였다.   너그러워 보이던 아줌마의 기색이 써늘이 식어 가며 맹랑한 기색을 보이더니 어서 가보라는듯 머리를 끄떡 해보이고 나는 부랴부랴 문을 나서는데 그 군대말 같은 여자들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꽁무니를 빼는 내 뒤에 대고 연신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악마의 소굴을 벗어나니 눈앞이 어질어질 해나며 전신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찬란하던 햇살도 멀미를 먹은 아낙네처럼 노랗게 맥골 없이 보인다… 내일 계속
12    5월 댓글:  조회:597  추천:0  2015-09-04
5월 리홍철   방울방울 흘리인 계절의 핏자국이 누구를 속일것처럼 이곳부터 먼곳까지 줄을 지어 피었다...   건드리면 터질것 같은 ?화사한 웃음의 망울도? 군데군데 핏기없이 야위였던 음달의 구석까지 노오랗게 빠알갛게 그리고 파아랗게 속임없이 피어피었다...   겨우내 시렸던 하얀 동상(冬傷)까지 아름드리 어여쁨으로 품어 아팠던 기억과 외로웠던 추억까지 묻어버리는 5월은 그 봉분마저 너무 기특하게 아름답다...  
11    엄마의 전화 댓글:  조회:512  추천:1  2015-09-04
엄마의 전화 리홍철   엄마한테서 전화 왔다. -어데 아픈덴 없어?.... -네. 어머니는 어데 아픈데 없어요? -아니 난 괜찮다... 68세의 고령으로 타국이 아닌 타국에서 식당 설거지를 하시는 어머니의 지친 목소리가 제 구실 못하는 아들의 가슴을 아프게 저며 오고 있다. -어머니 어데 아픕니까? 이전과 달리 맥이 풀린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저으기 걱정 스러웠다.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수술후 항암치료도 받지 않은채 순 악으로 이겨온 어머니의 생명이다. - 살고 싶었지.. 정말... 아직까지도 너네 잘 사는걸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걸 생각하니 고통에 죽고 싶어도 도무지 죽어지질 않더구나... 아마도 그래서 어머니는 대장암 4기진단, 죽음의 문턱에 걸터 앉아 한참을 고민하고 돌아섰는가 싶다... 그렇게 우리가 잘사는걸 보고 싶다고 하고서는 손바닥에 털날 지경으로 편한한건 역시 죽기보다도 더 힘들다고 결국 수술 1년후 우리집에 계시다가 다시 한국행을 작정 하셨다. 그렇게 가지말라고 말리는 아들며느리의 소리에 –노는것 만큼 힘든게 없구나.. 움직일만할때 움직여야지 언제까지 너넨데 얹혀 살겠는냐...하시면서 끝내 년로한 몸으로 고행의 길에 들어서셨다. 그렇게 가신 어머니가 3일에 한번씩 전화 올 때마다 그렇듯 밝고 명랑하셔는데 오늘은 정말 아니었다. 너무나 무거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내 가슴을 철렁이게 만든다. -      어머니 어데 많이 아픈거 아닙니까? …. … 한참의 침묵이 흐른후- - 홍철아... 엄마가 많이 힘들구나...미란이(나의 아내)는 절대 한국 나오지 말라구 해라...  분명 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는게구나... -몸이 힘든건 괜찮은데 마음이 힘든건 정말 너무 참기 어렵구나... 설거지 두명이 하는데 사장도 아닌 사장 여동생이 올라오더니 한사람 빼서 2층에 내려가라구 하기에 내가 여기도 설거지 한명이서 힘든데요 했더니 별소리 다하더구나 나보다 20살은 더 젊은여자가 말이야 ..없는 말도 지어내고...ㅎㅎㅎ 내 늙으막에 이상한 소리 다 듣고... -어머니 뭐라고 말해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다..그저 바람새는듯한 소리의 허구픈 웃음만 웃을뿐... -홍철아 엄마 너네 집에가 살가?  -어머니, 아무걱정 말고 오쇼.. 안그래도 애 엄마도 외지에 가고 나하구 진영이 밖에 없는데... -아니다. 그저 하는 소리다.. 아무리 힘들어도 순간만 조금 참으면 다 지나가는 일 되더구나... 순간을 참지 못하고 같은양 했다가 짤리우기나 하면 내 이 나이에 어데가서 또 일자릴 찾겠냐... 지금 일하고 있는 여기도 나이 많다고 꺼릴가봐 3살을 줄이고 들어 왔는데 ...암튼 내가 몸이 조금이라도 성할때 내 뼈를 놀려 너넨데 보탬이 돼야지...근데 오늘 내가 너한테 전화한건 니 동생과 절대 말하지 말어. 알았어? 엄마의 열번 부탁은 도리가 있는것이였다. 성격이 불과 같고 벽도 문이라고 생각하면 뚫고 나가는 동생의 괴퍅한 성미로는 알면 큰 일 치를것이 당연 한것 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말 할곳이 없네.. 아무 하구나 말해서 속이라도 풀고 싶것만 그러게 아무나하구 말할 상대가 없어서 이렇게 너한테라도 전화한거다...그런데 이렇게 전화하고 보니 또  너한테  괜스레 근심을 준거 같아 미안하구...그러나 걱정 말어.....엄마 지금은 괜찮아. ㅎㅎㅎ 엄마 원래 속좁은 노친네가 아니니깐 그깐일에 상처받을건 없어....ㅎㅎㅎ 엄마의 허구픈 웃음이 아프게 마음을 찢는다.. 엄마는 아프거나 슬프거나 고통스럽거나 단 한번도 내나 동생한테 털어 놓은적 없으시다. 아파도 혼자 아프고 싶고, 고통스러워도 혼자 싹이고 싶고 슬퍼도 혼자 울고 싶었던 것이다...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울때마다 어머니는 일감을 찾아 마음을 달래군 하셨다. 급작스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후 엄마는 근 세달간 친척접으로 떠돌아 다니셨다. 아버지가 없는 썰렁한 집은 들어가기가 싫다고, 그러다가 결심한것이 한국행이였고, 근 5년간 한국에서 고생하시다가  암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저승문턱까지 갔다온 어머니...재입국으로 또 마음의 고생을 하시는 어머니, 그 아픔을 고국이라는 땅에서는 누구와 나눌수도 없었나 보다.. 그래서 좀체로 터놓지 않던 고통까지 터 놓으려 이 아들한테까지 전화를 걸었으랴.. 그러고도 또 다시 아들이 마음 아파할가봐 걱정하시는 어머니.... 오늘 엄마는 어떤 괄시를 받았을가... 그것이 궁금하지 않다..엄마는 절대 말하지 않을것이다... 그저 엄마가 이길수 없는 고통을 이기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 고통을 나한테 얼마라도 분담만 해줘도 좋을것 같다...그 고통마저 분담할수 없는 나의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다... -어머니 청도에는 아들이 있습니다. 갈곳 없는 어머니가 아니고 마음푹 놓고 편히 쉴수 있는 어머니의 집이 청도에 있습니다... 어머니 그런 스트레스 받는 곳이라면 미련 없이 뿌려치고 아들의 곁으로 오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또 말하신다.. 내 몸이 성할때 너넨데 도움이라도 줘야지... 내일 모레면 칠순의 엄마가 아들의 마음을 허비며 눈물을 내고 있다....
10    잃어 버린 고향 댓글:  조회:586  추천:1  2015-09-04
잃어 버린 고향 리홍철       홍철아~ 밥먹어라 이눔아~ 어서와 밥 처먹어라 ….   ….   …. 개암나무 울바자 너머로 돼지죽 바가지를 휘젓는 엄마가 보여 오면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산이의 아버지도 고함소리 높다   짙어가는 어둠을 도배하는 하얀 굴뚝 연기가 까만 어둠을 퇴색시키면 밥먹으라는 소리가 왁작지껄 잠자리를 쫓는 아이들의 발길을 멈춘다   거무스름한 눅거리 사기사발에 짙은 토장국 냄새를 풍기며 반질나게 윤택한 퇴마루 돌방석에  엉뎅이를 깔고 뒷집에 용이를 부른다 용아~ 밥먹고 우리 숨을 내기 놀자 응…알았다~   밥먹으라는 소리와 용이를 부르는 소리와 하얀 굴뚝 연기와 그리고 노란 이영 초가집과 그렇게 모든것이 사라진 이곳은 분명 잔여의 추억 조각만 굳은 살로 땅땅한 내 일어버린 추억에 아프게 칼집을 내고 있다   숨어 있던 빨간 살결에  총총히 피가 돋으며 쑥대로 무성한 고향동네에 아픈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저기 둥지를 찾지 못한 들새 한마리가 슬픈 날개 짓으로 힘없이 서성인다... 
9    내것은 네것 댓글:  조회:583  추천:0  2015-09-04
내것은 네것 비어버린 지갑을 들고- -이홍철   하나만 가졌으면 딱 하나만 …   둘도 가지지 말자 딱 하나만 …   받는것이 넘쳐나면 줄것이 모자란다….   적을때 주어야 받는 사람 마음이 뜨거워 지지…   내안에 있는 내것을 내것이라 말아라   내것이란 원래 없었던 것을 내것이 아닌 내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도적이 되지 말자…   내것으로 만들때는 이유를 만들어라   내것이 내것이여야 내것을 내어 주지   내것을 주고는 내것을 주었다 말하지 말자   자랑끝에 쉬쓸면 명치끝에 구데기가 생긴다….    
8    나는 흰털이요 (외1수) 댓글:  조회:662  추천:0  2015-09-04
나는 흰털이요   나는 흰털이요 껌정 털속에 수줍게 숨어사는 흰털였소  아무때든 뽑힐수 있는 위험한 흰털이였소  꺼먼털만 모여사는 꺼먼동네에  나홀로 위태롭게 휘청이는 흰 털이였소    천만 다행으로 뽑히지 않고 용케도 고비만은 잘 넘기는 흰털이였소  물로 씻고, 살로 빗어도 악착같이 살아 남았소  살아 있어야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언젠가는 꺼먼털이 될거라는 기대로 꿈을 꾸는 흰털이였소    때론 꺼먼 물감바르고 꺼먼것이 아니면서 꺼멓게 살아도 보았소  그렇게도 꺼매지고 싶었소  남들처럼 꺼매지고 싶었소  숨죽여 사는 동안 무수간 꺼먼것들이 죽어 나갔소    소외된 외로운 존재로 엉성하게 살아가던 하루하루가  나와같은 흰털의 출현으로 위험은 절반으로 줄었소  나홀로 흰털이 아닌 듬성듬성 흰털이 보이기 시작했소  흑송숲에 외로운 봇나무같던 내가 스스로를 보았소    무수한 흰털의 형제들이 깃발을 나붓기오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해방을 맞는 날  여위여 가는 껌정털들의 아우성이 노래 같이 들리오   나는 지금도 흰털이요  껌정털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흰털이요  맘만 먹으면 뽑혀질 위험을 안은 흰털이였소  그러나 여지껏 살아 남은 흰털이요 반평생만 사는 껌정 털이 아닌 평생을 살아가는 흰털이였던게요...   타향 청해 일기     청해의 따가운 햇살이 순진한 시간들을 속이며 18시 석양을 정오처럼 속인다   민둥산의 그늘은 따가운 흑바위들이 만들어내고 초모한장 걸치지 않은 거리의 유목민들이 택시를 부른다   할딱이는 심장이 현기를 느껴도 불속에서 건져내는 馍馍의 향연은 여전히 나를 외면한다   벌레이면서 풀인것 처럼 풀이면서 벌레인것들이 60℃ 빼갈에 노오랗게 번지면 오직 그것만이 나를 웃게 한다   청해의 따가운  햇살이 푸른섬의 추억을 새록하게 만들면 칭피의 꿈이 나를 키득~ 하게 만든다...     ※馍馍 장족들이 주식으로 먹는 떡.   8.30분에서 9시가 되어야 해가지기 시작하는 곳이 청해입니다.      
7    리홍철이 만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들- 댓글:  조회:1838  추천:0  2015-09-03
2박3일동안 목민들과 함께 그들의 하루 일상을 겪어 봤읍니다. 너무나 욕심이 없는듯이 보였습니다. 방목하고 쑤유만들고..일상은 너무나 단조로웠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나 만족해 보였습니다.
6    무리목장에서 댓글:  조회:894  추천:0  2015-09-03
해발 5300미터 무리대초원- 소설 의 탄생지이자 < 창디봉>의 탄생지이기도 한곳- 2박3일간 목민들과의 생활은 영원히 추억에 남을것입니다. 
5    리홍철을 알고.. 댓글:  조회:984  추천:0  2015-09-03
리홍철 1972년 화룡현 룡문촌 출생 1989년 연변일보 시 발표 시, 동시, 소설, 수필, 실화 등 창작 연변작가협회 이사 연변작가협회 청도 창작위원회 주임 2010~2013 청도 작가협회 회장 역임 한국해외문화 교류회 청도지회 이사 청도 조선족작가협회 자문
4    줘마 댓글:  조회:739  추천:4  2015-09-01
리홍철     안돼… 이대로 잠들면 안돼… 죽을순 없어…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위를 분별할수 없는 어둠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고 간간이 번쩍이는 번개빛 사이로 녹색의 빛갈들이 아직도  초원임을 알려주고있다. 얼마동안 걸어왔고, 얼마동안 기여왔는지 가물가물하다. 그저 아직도 자신이 무리 초원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불현듯 몽이 생각났다. 비록 앞다리 하나가 승냥이 덫에 치여 잘려나간  사자견이지만 어쩐지 그놈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다. 오한에 걸린듯 온몸은 오싹오싹 떨려난다. 말라붙은것 같은 창자는 인젠 꼬르륵 소리도 멈춰버렸다… 마른 야크고기를 뜯고 싶다. 슬쩍 익힌 양고기를 뜯고 싶다. 고소한 짬바를 먹고 싶다. 그리고 한잠 자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줘마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무리대초원- 서녕시내에서 2백킬로를 달려 깡차에 이르고 또다시 산행길로 150킬로를 달리노라면 말그대로 하늘과 맡붙은 것과 같은 해발 5300미터 높이의 무리 대초원에 이른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녹색의 잔디들, 구름같이 흐르는 양떼와 지천에서 뛰어다니는 두더지들… 줘마는 12살때 소학교를 중퇴한 후 처음으로 목장에 왔고 그후 매년 5월이면 엄마와 아버지를 따라 여기 무리목장에 온다. 이곳은 그들의 사유목장이다. 사방 몇십킬로가 모두 그들의 목장인 것이다. 여기서 풀이 마르는 9월말까지 지내고 다시 하산을 하게 된다. 이같은 일정들이 매년 반복되고 하루 한번은 소나기가 내리는 이 광활한 대초원에 인젠 슬슬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줘마네는 부자다.  천여마리의 양과 백여마리의 야크, 그리고 7필의 말을 소유한 부자다. 매년 하산땐 큰 숫 양과 큰 숫 야크를 모두 처분하면 적어도 몇십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리고 이듬해 목장으로 와서는 또다시 양과 말의 개체수가 늘어난다.. 아버지가 말했다. 젠장, 풀만 풍족해도 이것들을 팔지 않어.그러면 명년에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말이 초원이지 5300미터로 해발이 높다나니 풀의 자람새 역시 더디다 . 크게 자라 봤자 기껏 5~6cm미터에 불과하다. 그래서 겨울에는 몽골로부터 수입한 풀을 멱여야 한다. 그 수입풀의 가격이 너무 비싼지라 이 지역 목민들은 거의 대다수가 하산시에는 큰 양과 큰 야크들을 모두 처분한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사람들이 드문드문 이곳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말탈줄 모르는 사람들이 소리만 요란한 차를 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서는 과일이며 휴지며 밀가루며 등 생필품을 내여놓는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들에게 양고기와 우유차, 짬바를 대접한다.. 알고보니 그들은 외지에서 온 약재 거간군들이였다. 이곳에 동충하초가 많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동충하초를 채집하러 온 모양이다. 그들은 아버지한테서 장막 하나를 빌렸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목장에서 약재를  채집하는 비용이라면서 5천원을 내여놓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버지는 장막옆에 작은 장막 하나 또 세우고 있다. 그리고 장막 위에는 이쁜 빨간 댕기를 걸어놓는다. 너도 인젠 시집 가야지. 여자 나이 열여덟살이면 시집가서 애를 낳기 딱 좋은 나이야. 그렇게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일손을 다잡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줘마는 알지 못할 두려움이 스밀스밀 밀려오는 감을 느꼈다. 두려웠다. 발정난 숫놈 야크의 흘레를 바라볼때면 웬지 모르게 두려워졌다. 어쩌면 저 장막에 그놈의 야크가 뛰어들가 두려웠다.. 너 오늘부터 여기서 자. 아버지는 손을 툭툭 털며 만족스레 장막을 둘러보고는 줘마를 보고 말했다. 심장이 쿵쾅 뛴다. 여지껏 남자라고는 아버지밖에 모르고 지내왔다. 티비도 본지가 오래다. 언젠가 중고로 구입한 애플 핸드폰은 여기 목장에서는 시간을 알리는 작용밖에 할수가 없다. 신호가 뜨지 않으니깐. 어슬어슬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고 먹이를 찾는 승냥이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 온다.  짬바에 마른 야크고기 한점을 뜯다 말고 줘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더 꾸물거렸다가는 또 아버지의 말채찍이 소리를 낼 거 같았다. 우두커니 장막 한복판에 서있다 말고 양가죽 담요위에 쪼크리고 앉았다. 어스레한 촛불이 부옇게 장막 구석구석을 조금씩 비춰준다. 양가죽 담요 하나와 붉은 이불 한채가 전부다. 그리고 뒤쪽으로 길쭉하게 늘어선 줘마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미동도 않는다. 큰 장막은 그런대로 정부에서 제공한 태양에네르기 덕분에 등불이 밝지만 줘마의 작은 방은 붉은 초 한대가 전부다. 언제 자리에 누웠는지 줘마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7살때 처음으로 가본 서녕시내가 어슴푸레 머리속에 떠오른다. 아롱다롱한 이쁜 옷들, 처음으로 보는 높은 건물들, 구경한적도 먹어본적도 없는 수많은 사탕과 과일들…그리고 이곳 남자애들은 모두가 그리도 잘 생겼었다. 하지만 누구도 줘마와 놀려고 안한다. 목장에는 물이 귀한탓에 1년이 다 가도록 목욕을 하지 못한다. 세수도 물 한바가지로 세식구가 대충 얼굴만 문지르면 끝이다. 이런 줘마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어떤 잘 생긴 남자애가 말했다. 울고 싶었지만 소리낼수가 없었다. 감히 그 잘 생긴 남자애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문뜩 섬뜩한 느낌에 줘마는 눈을 떳다. 하지만 어느새 꺼진 초불때문에 얼굴을 가려 볼수 없는 어떤 육중한 무게에 숨이 꺽 막혔다. 앗! 숫 야크… 두려워하던 숫 야크가 들어온 것이다. 숫 야크는 줘마의 육중한 양털조끼를 스스럼없이 벗겨낸다. 그런데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분명 사람의 손길이다. 그리고 여기 목민들의 꺼칠한 손길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금방 발육을 시작한 줘마의 가슴을 거칠게 문지른다. 웬지 모르게 거부감이 없다. 반항할수 없는 무기력함이 줘마를 꼼짝 못하게 하였고 잇따라 이상하게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걸 잊은듯 어느덧 줘마는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남성의 무서운 돌진에 줘마는 흑흑 느끼다 흘레를 원하는 암승냥이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줘마의 신음에 사내는 더욱 거칠어진다. 대초원에 불어치는 폭우보다 더 거센 비바람이 작은 장막에서 불어치고 있었다.  탈진한듯 쓰러진 줘마의 몸은 어느덧  땀벌창이 되었다. 아…끝내 시집을 가는가… 풀린 눈길로 멀거니 천장을 쳐다보며 줘마는 새삼스레 자기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하던 그 잘 생긴 서녕의 남자아이를 떠올랐다. 숫 야크한테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여지껏 한번도 맡아 보지 못한 향기로운 냄새다. 꽃냄새 같기도 하고 우유 냄새 같기도 한 냄새다. 금방이라도 누군지 알것 같았다. 행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라면 목축민 생활을 접고 시내에 가서 살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가 내주는 팔베개에 살며시 머리를 얹으며 줘마는 행복한 환상에 사로잡히며 깊은 꿈의 나락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줘마 빨리 일어나. 어느새 밝아온 아침햇살이 줘마의 장막틈사이를 비집고 들어 온다. 눈을 뜨며 줘마는 옆자리를 살폈다. 자기에게 꿈을 주었던 그 야크를 찾았다. 그러나 옆자리는 어느새 텅 비여있었다. 썰렁하게 비여버린 자리는 줘마의 꿈을 산산쪼각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려진 휴지조각들이 엊저녁 일들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줘마는 허겁지겁 일어나 장막밖으로 나왔다. 응당 보여야 할 저쪽 멀리 장막이 보이지 않는다.. 아빠,  그 약초재집군들은 어디 갔어요? 오늘 새벽 일찍 갔어. 두다리가 휘청거리며 현기증을 느꼈다. 깨여지는 꿈들이 쪼박난 유리쪼각같이 아프게 줘마의 마음을 찢었다… 꿈을 버려. 넌 평생을 목민으로 살아야 할 명이야. 어제 밤 일을 알고있는듯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저 앙지는 일곱번만에 시집을 갔잖어. 순간 줘마는 가슴이 꺽 막혀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앙지가 결혼하던 날 두돐이 넘은 아들애는 옆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 애는 한번도 친아빠를 본적이 없으며 앙지 역시 친아빠의 이름 한글자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였다. 아빠를 모르는것이 전통으로 전해내려온것도 이 부족민들의 문화의 일부분으로 고착됐기 때문이였다. 그럼 난 아직도 몇번을 더 겪어야 한단 말인가? 줘마는 자기의 처녀를 앗아간 그 약초거간군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었다. 이름 한글자라도 기억하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한적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마저 어떻던지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저 꿈인지 생시인지 어슴푸레 들리던 말소리가 그저 가물가물 기억에 남을뿐이다. 젠장 똥 밟았네. 새벽에 비몽사몽간에 사내가 이렇게 내뱉었던 거 같다. 줘마는 그게 꿈인줄로만 알았다. 그러고보니 사내는 나가면서 줘마에게 저주를 퍼붓고 달아난 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줘마의 얼굴에는 여덟살때 말등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자국이 왼쪽 눈위로부터 눈섭을 가로 질러 사선으로 길게 나있었다. 그 탓에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훨씬 작게 보인다. 그 사내는 아마도 어둠때문에, 그리고 끓어오르는 욕정때문에 그날밤에는 제대로 살펴 보지 못했던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고 줘마의 얼굴을 보고는 많이 실망했던 것 같다. 사실 줘마는 밉게 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저 눈에 난 상처가 흠이지 어느모로 보나 비바람에 그슬린 초원의 여느 처녀들과 많이 달랐다. 수십갈래로 땋은 가는 머리태는 늘 윤기 흐르고 정결했으며 천성적으로 하얀 피부는 거친 비바람도 변색시키지 못했다. 성한 한쪽눈만 본다면 맑은 청해호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맞춤하게 도톰한 입술은 종래로 굳게 닫혀지는 법이 없다. 조금 벌려진 입술 사이로 백옥같은 이빨이 늘 빛난다. 하지만 이 모든 아름다움은 눈위에 난 상처때문에 말끔히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아물어 붙은 상처 주위는 검게 변색했고 쪼그라 붙은 눈은 외눈박이 암 승냥이를 방불케 한다. 줘마는 그 사나이의 말이 제발 꿈이기만 바라고 바랐다. 그리고 더욱더 그 사내를 기억에 또렷이 새기고 싶었다. 기억에서 지워질가 두려웠다. 줘마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장막앞의 양똥을 정리하며 야크의 젖통을 쥐어 짜며 짬바를 만드는 일로 일정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었지만 한시도 그 사내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워본적 없었다.  약초 장사군이니 명년 이맘때면 또다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지루한 대초원의 일상을 그나마 이겨나갈수 있게 한것이였다. 악마의 배속같은 시커먼 어둠이 금방까지만 해도 새파랗던 무리의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변덕 많은 초원의 날씨에 인젠 습관이 된 줘마는 조급한 기색 하나 없이 장막앞에 산더미처럼 무져진 양똥을 풍천으로 덮었다. 그리고 꾸역꾸역 밀려오는 양떼들을 살핀다. 문득 저멀리서부터 말 한팔이 달려오더니 줘마네 장막 앞에 멈춰 섰다. 양 50마리의 털은 사용했음직한 묵직한 옷에 철렁이는 은단검을 찬 웬 낯선 사내가 줘마네 장막으로 들어섰다. 데모데모 쵸데모 아버지와 수인사를 건네고는 어머니가 건네는 쑤유차를 사양도 없이 받아든다. 양 한마리 잃어버렸단다. 그래서 혹시 줘마네 양무리에 끼여있는지 확인차 왔다고 했다. 초원에서 간혹 다른집 양들이 섞일때가 있다. 사내가 아버지와 이말 저말 담소를 나누는 중에도 이상하게 줘마는 그 남자의 섬뜩한 눈길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상하게 또 숫 야크가 서서히 떠올랐다. 한줄기 소나기를 피해 장막에 머물던 사내는 비가 그치자 장막을 나섰다. 그리고는 날렵하게 말 잔등에 올라타더니 야릇한 웃음을 머금고 줘마의 작은 장막을 흘낏 바라본다. 오후 비가 한줄금 내리고 멈추는가 싶더니 밤  10시가 되자 또다시 소나기가 쏟아 붓는다. 천둥이 치고 하늘을 가르는듯한 번개불빛에 캄캄칠야 초원도 순식간에 대낯처럼 밝아진다… 우비 한장 거치지 않은, 양털 모포를 뒤집어쓴 거쿨진 사내가 큰 장막을 흘깃 바라보더니 자기집 안방처럼 무람없이 작은 장막의 커텐을 들어 제친다. 악! 줘마는 숨이 꺽 막혔다. 약초채집군한테 당할때도 이 정도는 아니였다. 처녀성을 잃으면서 찢어지는듯한 고통도 소리없이 삼켰었다. 그저 도시진출의 꿈이 약초채집군한테 달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너무 아팠다.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양똥더미와 씨름하고 야크의 능글진 젖통과 씨름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냄새를 느꼈다. 문득 줘마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던 서녕시내 잘 생긴 꼬마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기억에도 생생한 약초채집군의 그 향기로운 냄새가 저도모르게 그리워졌다.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알바 없는 힘이 줘마의 몸에서 솟아오르면서 힘껏 그 사내를 밀쳤다. 비켜! 한창 끓어번지는 열기를 식힐 반출구를 찾던 그 사내는 줘마의 느닷없는 반격에 순간 어정쩡한 모습으로 쭈크려 앉는다. 왜? 뭐 하는 짓이야?? 나가요! 난 당신이 싫어요! 찢어지는듯한 줘마의 고함소리에 사내는 잠시동안 엉거주춤 하는가 싶더니 다시한번 발동을 건다. 거세게 달려드는 사내를 이기지 못하고 줘마는 탈진한듯 바람따라 흔들리는 풍선인형처럼 그저 그 사내가 하는대로 몸을 맡길수밖에 없었다. 반항할 기운조차 없었으며 그 사내의 몸에서 풍기는 이상한 악취에 정신마저 혼미해 졌다. 어둠속에서 줘마의 눈이 이상한 빛으로 번뜩이였다.  줘마네 목축민 부족은 이전부터 전해내려온 이상한 풍속을 갖고 있다. 타민족과 결혼은 금령으로 전해졌으며 혼인적령기란 정해진 나이도 기준이 없다. 아마도 그저 생육할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에 따라 혼인적령기가 결정되는것 같다. 또한 혼인 적령기가 되는 쳐녀들은 줘마처럼 큰 장막 곁에 작은 장막 하나를 곁들여 세운다. 그것은 이 집에 결혼할 처녀가 있으니 남정네를 구한다는 뜻이다. 길가던 나그네가 하루밤 그 작은 장막에서 여자를 점하고 아침 일어나서 만약 마음에 들면 결혼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먼지 털듯 그 자리를 뜨면 그만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르는 애들이 적지 않았으며 애 낳고 결혼하는 처녀들이 많다. 그것이 이들한테는 수치가 아니였다. 때론 자식의 전도를 위해 줘마 아버지처럼 본 민족이 아닌 다른 부유한 민족이라도 모르쇠를 대며 눈감아주는 부모들도 때론 있었지만 극히 드물다. 앙지나 쥬메는 일곱명, 다섯명의 사내를 거쳤다 하지만 줘마는 인제야 두명의 사내가 거쳐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여유로운것 같았다. 음메~ 음메~ 아버지가 벌써 양 방목을 떠나는가 보다. 양들은 밤새 장막곁을 떠나지 않는다. 동풍이 불면 장막 서켠으로 무리지어 옮겨 가고 서풍이 불면 장막 동쪽으로 무리지어 옮겨온다.  다리 부러진 사자견은 양들이 자리를 옮기던 말든 관계없이 그저 장막 문어구에 대충 지어준 작은 풍천 굴에서 그때까지 코를 곤다. 줘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밤새 배설한 장막주위의 양똥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야크젖을 짜고 쑤유를 만들어야 한다.  번복되는 일상이 양의 울음소리와 같이 시작되는건 인젠 너무나 평범한 일로 되었다. 반쯤 벗겨진 양털조끼를 여미던 줘마는 그제서야 그때까지 곁에 누워 코를 고는 간밤의 그 숫 야크를 발견하였다. 의례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내가 아직도 누워 있었다. 순간 줘마의 가슴은 긴장감으로 세차게 뛰었다. 고산지대의 거친 바람과 따가운 해볕에 그을릴대로 그을린 사내의 얼굴은 서부대초원의 승냥이를 연상시켰다. 인기척에 사내는 거슴츠레 눈을 뜨더니 줘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줘마는 포기하듯 혼자 장막밖을 나선다. 등뒤에서  잠꼬대하는듯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 왔다. 젠장.. 네?? 줘마는 장막을 나서다말고 되돌아서 물었다. 알수 없는 사내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너 얼굴에 흉터는 뭐야? 어제밤엔 보지 못했었는데… 젠장 외눈박이였네. 사내는 질끈 눈을 감더니 모로 돌아누워버린다. 새 신발 신고 좋아 날뛰다가 똥밟은 모습이다. 가끔 그녀의 아버지마저 그녀의 상처를 들먹일때가 있다. 젠장, 너 그 상처때문에 시집이나 제대로  가겠는지 모르겠네. 그저 결혼하자면 아무하구나 해. 결혼례단으로 양 10여마리만 받으면 돼. 사내의 찌르는듯한 말과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말이 함께 버무러져 줘마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줘마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성한 줘마의 눈에서 또 한번 이상한 빛이 번뜩이였다. 언제부터인가 줘마는 말수가 부쩍 적어졌다. 물어보는 말이나 겨우겨우 대답하는 정도다. 양똥을 정리하다 말고 먼 하늘을 응시하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장막밖에 쪼크리고 앉아 있기가 일수였다. 그러는 그에게 누구 하나 관심을 보여주는 이가 없었다. 어쩌면 줘마가 이 장막에 거주하는 것조차 까먹은듯 보였다. 또한 그런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줘마 역시 관심밖이였다. 그저 시키는 일이나 꾸역꾸역 하면 될려만 때론 그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할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 줘마였으니 그저 아버지의 욕설 주기성이 더 짧아진 것뿐이다. 젠장 저 검은 대가리가 또 우리를 뛰어 넘었군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줘마는 머리를 돌렸다 . 머리가 검은 양 한마리가 우리문을 열기도 전에 우리를 뛰어넘어 저 멀리로 뛰어 가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그 양을 뒤쫓지 않는다.  의례 다시 돌아 오리라는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네깐 놈이 뛰면 어데까지 뛸건데. 밤이 어두워 지면 지가 무서워서라도 돌아 오겠지. 검은 머리 양은 우리를 뛰어넘어 탈출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매번 저렇게 우리에서 탈출하고는 얼마 안되어 다시 돌아오군 한다.  다른 양들은 우리를 뛰어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것 같다. 그저 우리 문만 열리면 천군만마 같이 함께 무리지어 뛰쳐나갈 뿐이였다. 배가 아프다. 탈난 음식을 먹었는지 이 아침만 해도 벌써 세번째다. 줘마는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아침에 갔던 그 장소에 또 갔다. 초원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다. 으슥진 둔덕밑이면 곧 화장실이다. 친환경적인 자연 화장실이 좋았다. 언젠가 서녕에 갔을 때 들린 백화점 화장실은 정말로 뒤를 보기가 난처할 정도로 너무 깨끗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깨끗한 곳에서 뒤를 볼수 있을가가 의심이 갔다. 웅크려 앉은 자세로 줘마는 미동도 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엔 머리 검은 양이 한가로이 홀로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를 뛰여넘은 쾌락의 대가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줘마는 벌떡 일어섰다. 불현듯 자기가 검은 양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부…불이야…불이야.. 이른 아침 밖으로 나갔던 엄마의 기겁한 소리에 한가로이 쑤유차를 마시던 아버지가 급히 장막을 뛰쳐나왔다. 불길은 줘마의 작은 장막에서 일어났고 장막은 순식간에 재더미가 되어버렸다. 줘….줘마는…줘마야… 엄마의 기겁한 소리에 그제서야 아버지는 엷은 잿무지로 변한 장막을 발끝으로 후비적거려본다. 엄마, 아빠 잘 있어. 나 이 초원이 싫어. 시내로 갈 거야. 저기 멀리서 말등에 앉아 날아갈듯이 질주하는 줘마의 모습이 아스란히 멀어지고 있었다. 줘마는 쉬지 않고 달렸다. 아마도 거의 두시간은 달린 것 같다. 말도 지치고 줘마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태여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빨리, 오래동안 말등에 앉아 본 것 같다.  뱃속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난다. 급히 나오다보니 뭐하나 챙긴 것 없다. 마른 야크고기와 쑤유덩어리랑 챙겼어야 했는데 떠날 생각만 하다보니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후회 막급이였다. 먹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말등에서 내린 줘마는 저려나는 다리를 비비며 힘겹게 걷고 있다. 말 발자국 웅뎅이에 고인 빗물 둬모금을 추기고 축축한 풀밭에 엉뎅이를 내렸다. 아직도 얼마나 더 가야 초원을 벗어날지 막연하다. 말타고 꼬박 두시간을 달렸으니 적어도 40킬로는 달렸을 거 같다. 대략 짐작으로도 아직 거의80킬로 이상은 가야 한단 말이 된다. 그럼 말 타고 또 거의 네시간을 뛰어야 한다. 근데 말이 걱정이다. 지금 두시간을 뛰고 온몸은 흠뻑 땀으로 젖었는데 이제 또 네시간을 더 뛸 수 있을가? 흠뻑 젖은 말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침부터 풀 한포기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말 보기가 저으기 미안해 났다. 줘마는 결심했다. 초원이 아무리 넓어도 이곳은 줘마가 평생을 살아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걸 느꼈다. 언젠가 또 하루밤 자고 결혼할 남자가 생겨도 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자기처럼 평생을 친아버지마저 모르고 살아갈 자식을 낳을가 두려웠다. 십여마리의 양떼를 끌고 신랑이라 찾아올 냄새나는 대서부의 거친 승냥이도 싫었다. 그리고 작은 초막도 두려웠다. 어둠이 깃들기가 두려웠고 낯선 남자들이 두려웠다. 어쩌면 모두가 발정난 숫 야크로 그저 하루밤 쾌락만 즐기려는 나쁜 남자들 같이 생각되었다. 머리 검은 양이 부러웠다. 아무리 우리에 가두어도 아무때건 뛰쳐나가는 그 용기가 부러웠고 순간이라도 자유로이 초원을 달리는 검은 머리 양이 그렇게도 부러울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울타리도 없는 광활한 초원에서 그저 무형의 올가미에 걸려 반항조차도 못하는 자신이 미워났다. 채바퀴 돌듯 같은 일정으로 하루해를 지우는 지겨운 목민 생활이 신물나게 싫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남자가 거쳐갈지 모를 정거장 같은 작은 장막이 두려웠다. 온밤을 뒤척이다 이른 새벽 줘마는 아버지의 장막밖에서 지난번 약초채집군들이 두고간 휘발유 통을 찾아들었다. 이 초원에서 나의 모든 흔적을 지울거야. 그리고 울타리도 없는 이 초원을 벗어 날거야. 시내로 가서 미용으로 상처도 지울거야. 그리고 그 약초 채집군을 찾을거야. 줘마의 그닥 이쁘지 않은 모든 추억은 훨훨 타오르는 세찬 불길에 전부다 없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말은 잘 눕지 않는다. 잠 잘 때도 서서 잔다. 그저 병들거나 죽을 임박이면 눕는다. 그런 말의 성질을 잘 아는 줘마는 지금 말이 풀도 뜯지  않고 그저 서만 있는 것에도 말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먼 하늘로부터 서서히 밀려오던 시커먼 먹장구름이 악마의 군단같이 순식간에 초원을 덮어버렸다. 후둑후둑 굵은 빛방울들이 점점 세차게 떨어지고 있다. 불현듯 말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줘마를 팽개치고 오던길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의리란 꼬물만치도 없는 놈. 줘마는 말을 탓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음을 짓고 멀어져가는 말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초원은 네가 살아야 할 곳이지. 내가 가는 곳을 네가 따라갈수 없지. 초원밖에는 내가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지만 초원에는 너를 기다리는 너의 종족들이 있으니깐. 검은 대가리도 인젠 제 굴로 도로 찾아갔겠지… 어느덧 말의 모습은 주먹만큼 작아졌다. 단 한번이라도 뒤를 돌아볼줄 알았던 말은 내처 그대로 뛰어간다. 말은 아마도 저렇게 곧추 뛰어 목장 장막까지 가겠지. 거기엔 야크고기랑, 양고기랑 따뜻한 쑤유차랑 있겠지. 그리고 양우리와 타버린 나의 작은 장막도 있겠지. 줘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흠칫 몸을 떨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쓰러질 때까지 걸어도 비 피할 곳을 찾기가 힘듬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우두커니 계속 서 있을수만 없는 노릇이였다.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는 도무지 멈출줄 모른다. 줘마는 자기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모른다. 아니, 가다가 자기절로 드러누운 게 틀림없었다.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뜨다 말고 도로 스스르 감았다. 따뜻했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뜻한 온기였다. 엄마의 품에 안겼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의 손가락에 감긴 짬바를 빨던 기억도 더욱 푸르르게 다가온다. 코끗을 자극하는 서녕시내 꼬마의 향기와 따뜻했던 약초 채집군의 부드러운 애무에 줘마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온통 새하얗다. 혼령같은 하얀 생령들이 갔다왔다 한다. 내가 죽은건가? 죽으면 안되는데. 난 그 약초 채집군을 찾아야 해. 서녕시내에 한번 더 가고 싶단 말이야… 줘마, 정신이 들어? 귀에 익은 목소리다. 엄마의 조급한 목소리가 분명했다. 젠장, 치료비는 얼마 나왔대? 빨리 치료 끝내고 목장에 돌아가야지. 아버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줘마야, 살아줘서 고마워. 실은 약초채집군이 널 살렸어. 그날 약초 채집군도 초원을 빠져나가다가 폭우와 조우했고 그래서 멈춰서서 폭우가 끊기를 기다려서 빠져나가던 중 초원에 쓰러져있는 줘마를 발견하고 깡차진 병원까지 실어왔던 것이다. 약초채집군은?  줘마는 아직도 흐린 동공으로 급급히 주위를 살폈다. 그 사람은 널 병원에 데려오고는 서녕으로 돌아갔어. 엄마가 줘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중얼거렸다. 젠장, 빨리 가서 검은 대가리 찾아야 하는데. 엊저녁 폭우때 검은 대가리가 우리로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어데가 뒤졌는지. 줘마는 다시 스스르르 눈을 감았다.  우리를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는 검은 머리 양을 생각했고 목장으로 되돌아간 의리 없는 말을 생각했고 서녕시내로 돌아간 약초 채집군을 생각하며 이제 자신이 돌아갈 그 광활하지만 양우리 같이 좁은 목장을 생각했다. 벗을수 없는 올가미를, 뛰여 넘지못할 그 울타리를 줘마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곳에는 또 서부 승냥이 같은 그날밤 숫 야크가 기다린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송화강 8기
3    버리는 연습을 하라 댓글:  조회:551  추천:0  2015-09-01
버리는 연습을 하라 이홍철     얼마전 한국 바이어 통역으로 하남성에 갔었다. 원하던 바 대로 계약도 원만히 맺고 하남성 명승지인 소림사요, 포공사도 돌아다니면서 마음의 한가함을 달래는 좋은 시간을 가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분들이 항상 마음속의 근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계약날자대로 제때에 계약금을 입금할 수 있을것인지… 아니면 그저 형식상의 계약서인지… 여행동안도 내내 편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하는 그분들이 너무나 안스러워 보여서 내가 한마디 하였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결과를 안아오지만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은 부정적인 결과밖에 엊지 못한다. 어느한 목사가 주일날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기회가 잘 주어졌기에 지금 부자가 된것이오- 그것도 틀린 말이아니다. 그러나 가설적으로 이세상에 부자도 없이, 가난한자도 없이 동등하게 사람당 같은 액수의 돈을 주고 같은 기회를 주었다 할 때 10년후의 그들의 생활을 본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지금 가난한 사람은 10년후에도 가난할것이요, 지금은 부자는 10년후에도 여전히 부자일것이다.. 가난한 자는 계속 원래의 가난해질수 밖에 없는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것이오, 부자는 부자가 될수 밖에 없는 그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또다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가 싶다. 사유가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활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사유를 바꾸자면 기존에 있던 머리속의 모든 것을 깨끗이 비우고 새로운 사물과 새로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근심걱정도 마찬가지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면 내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만이 긍정적이 생각을 담을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것이 아닌가…아니면 부정적인 생각을 꽉찬 내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담을 공간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나의 바이어 보고 모든 부정적생각을 버리라고 한 것은 긍정적인 것을 받아드릴 준비를 하라는 일종의 충고인것이다. 아무리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기 힘들더라도 당신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버리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 생각된다.. 주워담는 욕심을 부리기 먼저 버리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 확실한 성공을 위한 기초에 기초가 아닐가 싶다. 송화강 발표 (시간은 기억 안남)
2    월형(形)시타래 댓글:  조회:711  추천:0  2015-09-01
월형(月形)  시타래  리홍철   1월   구불었던 허리를 하나로 곧게 펴고 어제도 보았던 그 해를 오늘은 새 해라고 반갑게 보고자 한다   매일처럼 보던 해가 아니다 365일만에 처음 보는 해다 그래서 새 해를 품고 나도 새것처럼 거듭나고 싶다   필경은 다시 낡아질 나지만 필경은 다시 구불어들 1월이지만 오늘만은 곧게 펴고 처음처럼 다시 일어 서 본다     2월   어느덧 멀어져 가는 새해를 목빠지게 배웅하며 엉거주춤 나는 벌써 앉아 버렸다   관절이 삐걱이는 2월의 구불은 정갱이가 지난 겨울의 동상땜에 아직도 얼얼하다   한번은 펴보고 싶다 다시 1자처럼 곧게 서보고 싶다   문대며 기댈자리도 막연한 2월이 입만 하 벌리고 맥없이 넘어 질것 같다     3월   나그네 귀 석자란다   손바닥만하게 펼쳐들고 골방골방 귓동냥에 어저께 추억을 또 한번 찔겅이고 싶다   단물이 빠질때 즈음이면 쓴물도 역겨우려만 보기에도 안스러운 굶주린 배 부여잡고   아직도 귀는 바람에 펄럭인다   4월   거짓 말이다 벌써 치켜든 깃발이 외발로 기우뚱하다   이긴것 처럼 날을 세워 치켜든 깃발이 위태롭게 휘청이면   발끝에서 맴도는 연록의 아우성이 무섭다고 몸을 떤다   5월   누우렇게 녹쓴 관절을 구부렸다 펴며 멀리도 뛸것처럼 5월은 신이 났다   여물지 못한 노랑 꽃들이 간교한 속삼임으로 5월의 발끝을 간지럽히면   헛배만 부풀은 5월이 어느덧 강저편에서 연분홍 꽃들이랑 함께 손을 젓고 있다   장백산 4기 발표 6월~12월 다음기 
1    창디봉 댓글:  조회:623  추천:2  2015-09-01
창디봉 리홍철 들쑥날쑥한 바위들 사이를 에돌며 지게군들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간간히 들려 온다 . 따가운 4천여미터의 창디 산허리에는 더위를 모른는 초병처럼 군데군데 독수리들이 음산하게 대기하고 있다. 둬치차이단은 지게를 지고 헐떡이는 아들의 말을 거절하고는 약간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독수리 무리를 바라 보았다. 창디사원 뒷산에 위치한 창디봉은 먼 옛날 화산폭팔이 일어 났는지 기슭에는 들쑹날쑹한 바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4800미터 창디봉 정상에는 하늘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마냥 검스레한 돌산봉우리가 아스란히 높게 치솟아 있었으며 또한 그것과 비교안되게 바위들 사이사이에 수 놓인 이쁜 파란 연녹색 풀들은 어느 화백이 실수로 물감통을 번져 놓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들은 그런 파란 곳은 피하고 바위굽이나  바위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얼핏 보면 바위인지 톡수리인지 분별이 가지 않았다. 웅크려 앉은 독수리들은 통털어 10여마리는 됨즉했다. 털벗이를 하다 만 야크처럼 모가지만 깃털 하나 없이 뻔뻔하나 워낙 매서웠던 눈이 굶주림에 조금은 처진듯 해도 그래도 독기 하나만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정확히 오후 6시30분, 청장고원의 태양은 아직도 중천에 걸려 떨어질 념을 안하고 뜨거운 열을 정신없이 내리 쏟고 있었다. 등뒤에서는 아카의 념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 곡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사내들 속에 섞여 뒤를 따르는 둬제 짠타번은 지금 가는 아버지의 이 길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뜩 아버지가 지게에서 벌떡 뛰어 내리며 –어서 집에 가자- 하고 소리칠것만 같은 확각이 자꾸 들었다. 아버지는 그렇듯 생을 갈망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듯 초원에 집착했다. 초원이 전부였고, 양과 야크 무리가 그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목민들도 별반 다름이 없었을것이였지만 유난히도 초원과 양과 야크에 집착했다.   아버지 둬제마마티는  며칠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느낌을 많이 받더니 언제부터인가 구토를 하면서 피까지 섞인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몇일 지나면 낫겠지 했지만 병세는 점점 더 심해가기 시작했다. 짜시 줘마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걱정을 내 비쳤다. 그도 그럴것이 아카를 부르면 적어도 양 한두마리는 내줘야 할것이고 양 한두마리면 둬제 마마티 한테는 살점을 여며 주는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저으기 눈치가 보였다. 언제인가 양 한마리가 잃어 진적이 있었다. 둬제 마마티는 창대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헤치며 양 찾으러 나섰고 이튿날에야 승냥이들이 먹고 버린 양의 머리를 들고 돌아 왔다. 돌아 와서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자꾸만 가족들한테 확인한다. 왼쪽 뿔 하나가 꺽인걸 보면 잃어버린 양이 분명하거만 둬제마마티는 그것을 부정하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던것이다. 만약 누가 그때 우리 양이 아니라면 둬제 마마티는 두말없이 다시 양 찾으러 나섰을것이다 이렇듯 양에 대한 집착이 강한 둬제 마마티에게 아카의 념불 이삼일에 양 둬마리 내준다는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짜시 줘마는 다시한번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둬제 마마티는 목구멍으로부터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쑤유차 한모금 길게 들이 마신다. 그것은 무언의 답복이였다. 애플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짠타번은 벌떡 일어 섰다. 해발 4천메터 위치한 목장때문에 핸드폰이 있어도 별수 없이 말을 달려야 했다. 목장부터 쥬메이아카가 사는 동네로 가자면 쉬지 않고 달려도 한시간 반은 달려야 한다.  쥬메이아카는 정부에서 제공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고, 동네 5~6호 되는 집들은 모두 아카들이 거주하고있다. 아카네 동네인것이다. 주변에서 쥬메이아카의 념불이 효과가 좋다는 소문은 많이 들어 왔고, 또한 짠타번도 쥬메이아카를 몇번 본적이 있다. 50대 가량의 중년이지만 많이 겉늙어 보인다. 진홍색 승복은 늘 정갈했고, 길 갈때나 앉아있을때나 그의 손에서는 념주가 계속 들려 있고 입으론 념불이 끊이지 않는다. 겉은 중이지만 고기도 먹고 돈만 밝히는 중들이 간혹 있지만 쥬메이아카는 진정한 불교도의 본보기인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념불이 효과가 좋은건가…   짠타번은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쥬메이 아카의 집에 도착했다. 쥬메이 아카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익숙한 솜씨로 말등에 올라타더니 길을 재촉했다.  목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저녁 8시반을 넘겨 해가 당금 지려는 순간이였다. 쥬메이 아카는 들어서기 바쁘게 념불을 외울 준비를 다그쳤다. 목탁을 꺼내고, 녹음기를 꺼내더니 손발을 깨끗이 씻고 녹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승려가에 맞춰 념불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의 념불은 정확히 알아 들을수가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몸에 붙은 병마여 부처님의 이름으로 명하니 어서 물러가라 는 뜻인것 같았다. 념불은 장장 2시간가량 이어졌고 둬제마마티는 미동도 않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같이 념불을 중얼 거린다. 그가 살아야 양들도 야크도 살수 있고, 가족도 살아 갈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아까운 양을 내줄 정도로 “대범함도”보였던것 같다. 쥬메이 아카는 이튿날도 념불을 외웠고, 삼일째도 염불을 외웠다. 야크똥 냄새와 양똥 냄새만 진동하던 장막안에 향불냄새가 진동하고 그 냄새에 어느정도 익숙해 졌을 무렵 아카의 념불도 끝이 났다. 그저 부처님의 뜻을 기다릴 수 밖에 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쥬메이 아카는 인자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여 답례하더니 다시 말등에 올랐다.   목장에서는 누가 병이 나면 의사를 찾는것이 아니라 주로 이렇게 아카를 부른다. 아카는 부처와 통할수 있고, 부처의 뜻을 전달하며 그래서 병도 낫게 한다고 생각했다. 병이 낫으면 부처님의 도움이고 병이 낫지 않는것도 부처의 뜻이라 한다.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목민들이다. 념불이 끝나고 부처의 뜻이 그의 병을 낫게 한다는것에 소망을 걸어야 했다. 다른 아카들에 비해 쥬메이아카는 시주도 적게 받는다. 원해서 주는것이 아니고 주는대로 받는다. 양 한두마리나 돈백원, 때론 가난한 집에 가서 념불을 외울때는 받지 않을때도 있다. 소문에 의하면 황왠에 어떤 목민들은 아카의 념불 한번에 일년 먹을 것만 남기고 나머지 전부를 시주로 바치는 일도 비일비재란다. 그러니 그에 비해 쥬메이 아카는 정말로 진정한 아카인것이 아닌가 ?    이튿날 짠타번은 말등에 양 두마리를 싣고 쥬메이 아카네 집으로 갔다. 짠타번은 병이 낫지 않은것이 자기 탓이라도 되는듯 미안한 기색을 지으며 머리를 수그렸다.   아카의 말이니 믿어야 했다. 아카의 념불때문에 진단도 잘 나오고 병도 완쾌 된다고 했으니 그렇게 될거라 철석같이 믿어야 했다. 야크 열마리 끌어도 끌리지 않을것 같던 둬제 마마티는 끝내 목장을 친구 둬치차이단한테 맡기고 내려왔다. 병원으로 가겠다는  마마티의 결심은 대단한것이였다. 초원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목장을 남한테 맡기기는 처음인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 받는것도 모두 야크와 양과 가족을 위해서였다. 만약 그가 잘못된다면 이 모든것도 없어질것이라 생각했던것이였다. 처음으로 큰 병원에 와봤다. 별로 아팠던 기억도 없고 간혹 병이 난다 해도 스스로 치료가 되었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아카를 부른다. 하얀 가운을 걸치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사가 등골이 섬뜩하게 무서웠다. 마마티의 명이 하얀 가운과 의사의 청진기에 달린것 같이 생각되었다. 의사의 세심한 진찰이 시작되었다. 승냥이도 두려와 하지 않는 마마티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다. 의사의 얼굴은 금세 굳어 지더니 그보고 침대에 누워 윗옷을 걷어 올리라 했다. 그러자 마마티의 기색이 금세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목장은 물이 귀한탓에 6월부터 가을까지 목장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목민들은 쉽게 모욕할수가 없다.마마티 역시 례외가 아니였다. 때가 덕지덕지한 배를 의사한테 보인다는것이 너무나 수치스럽다 생각했다. 마마티는 더듬더듬 옷을 올렸다. 의사는 그의 배를 지긋이 누르며 증상을 묻는다. 의사 선생은 짜시줘마한테 말했다. 오후 마마티는 위 내시경을 했다. 빈속에 뭔가 이상한 맛의 액체를 마시고 목구멍으로 호스를 위속까지 집어 넣을때 마마티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괜히 병원에 왔다 싶었다. 아카를 불러 차라리 념불이나 이삼일 더 외웠던걸 하고 후회했다. 마마티는 의사를 그닥 믿지 않는다. 아니 마마티만이 아니라 목민 대다수가 의사보다 아카-즉 중들의 념불을 더 믿는다. 의사는 칼이나 쓴 약 같은 인위적인 대체물에 의거 하지만 중들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부처님의 대변이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곧 법이며 그들이야 말로 자기들이 믿고 의지 할수 있는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번 병원 걸음도 쥬메이 아카가 가보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오지도 않았을것이 였다. 이튿날 의사는 짜시줘마를 복도로 불러 내왔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의사는 입을 열었다. 짜시줘마의 얼굴은 긴장으로 급작스레 굳어졌다. 짜시줘마는 입술이 바짝 말라드는감을 느꼈다. 이 세상에 하늘처럼 믿는 남편이 잘못된다면 자기도 살수 없을것 같았다. 짜시줘마는 무거운 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남편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몸에 칼을 댄다는 자체를 그들은 부정했다. 양무리를 위해 싸우다 승냥이에게 물려 난 상처는 영광이 될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몸에 내는 상처를 마마티는 견결히 부정할것이다.  남편앞에서 말 한마디 하기도 두려워 하던 짜시줘마는 난생 처음 목청을 높였다. 그 어떤 힘으로도 마마티의 고집을 꺽을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을 수도 없었지만 요즘들어 갑작스에 병세 악화로 구토와 토혈이 심하고 복통을 호소하는 형편에서 퇴원할 수 조차 없는 노릇이였다. 근 십여일간 매일 반복으로 맞는 닝게르처럼 의사의 끊이지 않는 설복은 어제부터 끊겼다. 대신 어느날 조용히 짜시줘마를 찾더니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과연 마마티의 복통은 더 심해졌다. 통증으로 인한 쇼크인지 쇼크빈도도 짧아졌다.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마마티의 땀을 닦아주는데 의사가 들어 섰다.   잠든 마마티의 맥박을 대충 짚어보는듯 하더니 조용히 한마디 했다. 짜시줘마는 피곤으로 충혈된 눈길로 멍하니 의사를 쳐다본다. 어느새 눈을 뜬 마마티가 힘겹게 겨우 입을 연다. 마마티의 힘겨운 소리에 짜시줘마는 정신을 벌떡 차렸다. 줘마는 퇴원 수속 하려 일어섰다. 뒤따라 나온 의사가 줘마를 잡는다. 줘마는 이윽히 의사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한마디 했다. 줘마의 눈에서는 여태 보지 못했던 살벌한 기운이 흘렀다. 목민들은 보통 병원에서 죽으면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나 집에서 죽거나 목장에서 죽으면 천장을 지낸다. 또한 그들이 가장 원하는것이 천장이다. 천장은 그들이 신성시 하는 독수리에 의해 천국으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줘마 역시 남편의 마지막 길은 그들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천장으로  천국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줘마의 생각이자 마마티의 생각이였다. 의사는 멍한 표정으로 돌아선 줘마의 등을 바라 본다. 병원에 올때까지만 해도 말등에 앉아 오던 마마티는 축 늘어진대로 마차에 누워 초원에 들어섰다. 오는 내내 잠 들어 있던 마마티는 마차가 초원에 들어서자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을 쭉 훑어 보는 마마티의 얼굴에는 평온한 웃음이 흐른다.   목장에 돌아온 삼일만에 마마티는 죽었다. 마마티는 죽기전 단 한마디만 했다.   드디여 창디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중턱보다 더 많은 독수리 무리가 군데 군데 무리져 있었다. 금방까지만해도 대가리를 움츠려 뜨렸던 독수리들은 이들의 출현에 날개짓을 하며 반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날개짓 소리가 인간들의 박수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두개골들은 아마도 이 독수리 무리들이 천국으로 보내고난 행표인것 같다. 잔혹하게 말하면 인간의 장례식 날은 반대로 독수리들한테는  잔치날로 되는것이였다. (휴~~~ 제발 저 독수리들이 마마티만은 천국으로 보내야겠는데…) 둬치차이단은 걱정이 태산같다. 사람이 죽으면 독수리들이 어느 시체나 먹는것이 아니다. 간혹100구 시체중 한구 좌우는 독수리들이 근본 다치지도 않을때가 있다. 독수리가 먹지 않으면 천국으로 갈수가 없다. 그러면 천국으로는 보내야 하고 별수 없이 가장 신망있는 늙은 아카가 시신을 분해해야 한다. 머리를 자르고, 손팔 다리 매 관절마다 자르고, 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토막토막으로 잘라서 놓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금방까지만도 다치지 않던 시체를 독수리들은 순식간에  먹어버린다.  멍하니 서있던 둬치차이단은 쥬메이 아카의 부름소리에 정신을 벌떡 차렸다. 그는 부랴부랴 쥬메이 아카의 분부대로 바위가 적은 평지를 골라  긴말뚝 하나를 박기 시작했다. 워낙  바위산이라 박기가 쉽지 않았다. 텅텅 울려대는 망치소리는 더 많은 독수리를 불러 모았다. 둬치차이단은 조심스레 시체를 내리우고 목에 손가락 굵기의 붉은색 나이론 끈을 묶고는 다른 한끝을 역시 금방 박은 말뚝에 꽁꽁 동여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여 매야만이 독수리들이 시체를 사처로 끌고 다닐수 없기 때문이였다.  쥬메이 아카의 념불이 시작되었다. 역시 힘든 속세를 떠나 천국으로 가는 마마티를 위한 축복의 념불이였다. 따가운 햇볕속의 반시간 동안 념불에도 누구하나 미동 없다. 곡소리도 없다. 그 많은 독수리떼들도 털 한대 없는 목을 깊숙히 몸속에 파묻고 조용히 념불소리를 듣고 있었다. 념불이 끝나야만 그들의 잔치가 시작되는것이다. 생각보다 단조로운 장례절차는 끝났다. 하산하면서 둬치 차이단은  짠타번한테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인가는 자기도 이렇게 독수리에 의지해 천국으로 갈거라 생각 하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튿날 새벽 서너시경에 짠타번과 쥬메이 아카 그리고 둬치 차이단은 다시 창디봉에 올랐다. 마마티의 천국행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창디봉에는 다행히도 마마티의 해골만 남아 있었다. 붉은 나일론 끊에서 분리된 뻥 뚤린 해골은 마마티가 천국으로 가면서 남긴 마지막 흔적이였다. 뼈토막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버린 현장은 잔혹하기보다 인간이 속세를 벗어나 천국으로 떠난 례식장 같은 숭엄한 기분이 들었다.  쥬메이 아카는 다시 한번 념불을 외우고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을 하면서도 념불은 끊기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성의껏 념불을 외웠으니 부처님은 꼭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다…. 묵묵히 뒤를 따르는 둬치 차이단은 슬며시 자기의 배를 눌러 본다. 그 모습은 어쩌면 천국을 노크하며 느끼는 행운스러운 자의  기도처럼 보였다… 짠타번은 신호없는 애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는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것이였다. 휴- 도시로 갈 꿈은 이젠 접어야 하나 보다. 여기 드넓은 무리 대초원에서 영원히 목민의 후손으로 살아야겠지... 창디봉의 기슭에서는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어스레 보여온다. 속세로 돌아온 영물들….. 짠타번은 내일 아침 또다시 방목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   2015.도라지 4기 발표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