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춰모지 후르강을 건느다
리홍철
무리대초원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실개천-후르강 대초원에 걸맞지 않게 종아리를 조금 넘는 깊이에 열둬살 사내애도 쉬이 건너 뛸 수 있을만큼 좁은강, 그 강변 파란잔디를 방석마냥 깔고 뼈속까지 찡한 개울물에 춰모지는 하얀 발을 담갔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손만뻗치면 잡을듯이 가까이에 떠있는 하얀 구름덩어리와 뻥 뚤린것 같은 파란 하늘, 그러나 춰모지의 마음은 그대로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자꾸만 귓전에서 들려 오는 앙쓔의 울음소리가 아프게 가슴을 허빈다. 흐르는 젓샘때문에 흥건히 젖은 앞가슴은 오늘따라 유난히 통증이 심해짐을 느꼈다.
스르르 감기는 춰모지의 눈가로 눈물이 흐른다. 아니 춰모지는 그것을 눈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피라고 생각했다. 새끼를 잃은 들짐승의 상처에서 흐르는 고통의 피물이라고 생각했다.
-앙쓔!
갑작스레 뭔가 생각난듯 벌떡 일어나 앉은 춰모지는 급급히 호주머니를 들추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고 부랴부랴 버튼을 눌른다. 그러나 인츰 단념한듯 스르르 핸드폰을 떨어 뜨련다. 5천여미터의 높은 해발때문에 신호가 없었던 것이다.
춰모지는 조심스레 어깨를 쓸었다. 뜨금한 고통이 전신에 절률을 타고 흐르며 아버지의 높이든 말총채짹이 눈에 얼른거렸다.
-너 후르강을 한발짝이만이라도 건너봐!내 어디 가만놔두나…
세상에 태여나서 엄마란 말 한마디 불러 못보고 19살 어린 엄마의 품을 떠난 8개월어린 아들이 너무 눈에 밟혔다. 못본지가 이제 겨우 한달 푼한데 춰모지는 몇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듯이 생각되었다.
남편이 서녕시내로 돌아간다 했을때 춰모지는 따라갔어야 했다.
만약 따라갔더면 남편과의 이혼이나 아들과의 생리별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 호통 한마디와 남편의 만류로 결국 목장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춰모지! 시내에 가면 안돼. 이제 금방 양들이 새끼 낳을 철인데 너 가면 나혼자 어떻게 30여마리나 되는 양새끼들을 보살필 수 있어?
-그래 아버지 말이 맞아. 내가 한달에 한번씩 휴가때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그리고 양새끼들이 좀 크면 그때 너 데릴러 올게. 일단 내가 먼저 가서 너 취직자리도 찾아볼테니…
그렇게 떠난 남편은 석달 지나도 소식 한장 없더니 어느날엔가 문득 찾아와서 아무런 이유없이 앙쓔를 안고 떠나버렸다.
-앙쓔는 내 핏줄이니 내가 데려갈게. 그리고 너 다른 남자 찾아봐…
아버지가 장막을 비운 사이 남편은 찾아왔고, 무엇때문에 떠난다는 이유도 없이 그저 무심히 떠나버렸다.
갑작스레 닥친 일이라 춰모지는 이유조차 묻지 못한채 멍하니 떠나는 남편만 멀거니쳐다보았다.
소똥이나 양똥으로 덥히는 천막답지 않게 화로는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양고기 삶는 냄새가 천막에 차 넘칠 무렵 벌컥 천막이 젖혀 지면서 커쿨진 사내의 모습이 서늘한 한기와 함께 천막안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라띵어싸이의 뒤를 따라 목장에서 흔히 보아오던 검붉은 얼굴의 사내가 말총채찍을 들고 들어섰다. 어데서 얼핏 본 느낌의 사내였지만 어데서 보았던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고 또한 그렇게 깊이 생각할 의미가 없다고 춰모지는 생각했다.
-어, 이웃 목장집 조카야. 양 한마리 잃어 버려서 혹시 우리 양무리에 섞였나 보러왔던거구…
춰모지가 건네는 쑤유차를 받아들며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그를 바라보며 춰모지는 이상하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에 신경을 세웠다.
목민들의 몸에서 의례 풍기는 야크젖 냄새나, 소똥 양똥 냄새가 아닌 꽃냄새가 나는듯도 하고 휘발유냄새가 나는듯도 했다. 암튼 나와는 다른 냄새라는데서 어짢은 기분이 조금씩 들었다.
-서녕시내에서 자동차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단다. 오랫만에 이웃목장 친척집에 놀러 왔다는구나.
묻지도 않은 설명을 말수 적은 아버지로서는 꽤 길게 늘여놓았다.
-한달 월급도 삼천원씩 받는다네…ㅎㅎㅎ
아버지는 자기가 받는 월급도 아닌데 꽤 기분좋게 말했다.
몇십년을 사용했는지 알수 없는 손가락 길이만큼 이나 길고 좁은 칼날이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한 장막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양기름이 번지르한 총각의 입에서 또 다른 세상의 천방야담같은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거 머쟈제라는 곳에 가게되면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이 무리대초원의 두더지를 몽땅 합쳐놓아도 그보단 적을겁니다. 그리고 층집들은 얼마나 높은지 머리를 쳐들고 보느라면 막 어지름증이 날 지경이구요… 아마 30층은 될듯합니다…
30층? 그럼 깡차진 정부청사보다 여섯배도 넘게 높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여기 초원의 두더지보다 더 많다고? 그게 말이나 돼?
여지껏 목장과 깡차현성밖으로 벗어나본적 없는 춰모지로서는 도저히 믿어 지지 않는 말들이였다.
깡차는 한개 현성에 인구가 1만명좌우밖에 안된다는데…그럼 그쪽 사람들은 집안에앉아있는 사람들 없이 전부 밖으로 나와 다닌단 말인가?
-KTV라고 들어봤어요?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는 곳인데 전문 장족들을 대상으로한 곳도 있습니다. 가격은 얼마나 비싼지 네댓명 가서 맥주 조금 마시고 과일안주 조금 먹으면 8백에서 천원이 금방 나온다니깐요…
양고기를 뜯기에 분주하던 아버지의 칼은 어느때부터인가 멈춰버리고 그 총각의 번지르한 입술에 초첨이 멈춰져버렸다..
-뭐가 그리 비싸? 밥 한끼에 양두마리 값이군…ㅉㅉㅉ 그렇게 비싼데 먹는 사람 있어?
-있다마다요…그곳 복무원들도 모두 장족인데 원래는 여기 목장 처녀들처럼 얼굴이벌겋고 검실검실했는데 하참! 도시물을 몇달 먹더니만 얼굴이 완전 야크젖색갈로 변햇다구요…
그러면서 총각은 흘깃 춰모지를 건너다 본다.
총각의 도시야담은 자정넘어까지 끊기지 않았다.
춰모지는 피곤기를 느끼여 조심스레 장막을 나섰다.
그러나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어스름한 촛불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춰모지 등뒤로 유령같은 검은그림자가 미동없이 함께 한다.
작은 장막- 이젠 이 장막에 입주해 산지도 벌써 3개월째 된다.
6월초 목장에 올라 오자 바람으로 아버지가 지은 춰모지만의 또 다른 공간이며 어쩌면 춰모지의 인생의 전환점으로 될수도 있는 그런 신비한 저택이다.
-에익~ 올해에나 뭐하나 걸려 들지…ㅉㅉㅉ… 언제까지 …에익-퉤!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아버지의 구시렁 소리에 어쩐지 춰모지는 죄지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해까지 아버지는 삼년째 춰모지의 장막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춰모지가 목장으로 올라올 때 한동네의 쥬메이, 산지 등 또래 친구들은 서녕시내로 구직하러 간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목장밖을 벗어나지 않던 초원의 처녀총각들이 초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싸이가 야반도주를 감행했고, 그 뒤를 따라 펑모줘마, 화칭추어 모두가 서녕시내로 일자리 찾아 떠나갔다.
그러나 금의환향한듯 가락지에 목걸이에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타난 그들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이 많았다…
-제길, 저건 뭔 꼴이야?
빨갛게 물든 손톱이랑, 치렁치렁하던 머리를 뭉텅 잘라버린 단발머리랑 이 모든게목민들의 눈에는 너무 어설프게 보였던 것이다. 술만 같이 마시고 돈 받는다는 것이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어렴풋하게나마 들은 몸팔아 돈 버는 곳이 시내에는 부지기수로 많다고 들어왔던 그들임에야…
아마도 가락지요, 목걸이며 이 모든 것이 몸팔아 산 것들이라 그들은 생각햇던 것이다.
-너 시내 가서 잘된 놈 몇이나 봤어? 기껏 야크젖통이나 주무르고 양털이나 깍던 너가 시내가서 무슨일한다고 그래? 까딱 잘못하다간 사람도 버리고 이 애비 얼굴에 똥칠까지 한단 말이야… 다신 시내간다 어쩐다 말 하지 말어…
시내로 가려던 춰모지의 꿈은 이렇게 말살되고 대신 작은 천막에 언젠가 나타날 양 많고 야크 많은 부자 총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근데 오늘 서녕시내에서 자동차 수리를 한다는 그 총각이 또 한번 잠자던 그의 도시진출 꿈에 서서히 불을 붙이게 될줄이야…
꿈결에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 휘발유 냄새와 꽃냄새가 또 한번 그녀의 마음을 활랑이게 만들었다.
-시내 가서 일할 생각 없어? 나 머쟈제에 한국분식집 사장님 잘 아는데 지금 복무원 구하고 있었어…
어느새 들어왔는지 꿈결같이 들려오는 소리 먼저 익숙하지 않는 냄새가 금방 풋잠이 든 춰모지의 코긑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춰모지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미리 준비가 있었던듯이 담담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휘부연 촛불속에서 용케도 그 소리임자의 눈길을 주시할 수가 있었다…
촛불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고 점점 자신을 향해 세차게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만에 찾아온 친구 화칭추어한테서 춰모지는 남편에 대해서 약간 듣게 되었다.
화칭추어 역시 목장을 벗어나 도시로 진출한 장족 처녀중 하나였다.
그가 일하는 가게가 바로 장족이 사장인 KTV였다.
화칭추어 말로는 그저 서빙이나 하지 절대 몸파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춰모지는 화칭추어를 믿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가장 믿을만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거짓말 한번 해보지 않은 참으로 순진한 친구였다.
그런 화칭추어한테서 춰모지는 남편한테 새로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으며 앙쓔는 지금 서녕시내에 그 여자가 키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분명 결훈후 딴 살림을 차린 것이 분명했다.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분명히 날 데리러 온다고 했지 애만 데리러 온다고 하지 않았으며 내 직장도 구해준다고 했었다. 근데 결혼 몇달만에 새 살림이라니…
물론 결혼 등기도 없으니 말로 리혼이면 리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낳은 자식을 남의 손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시내로 가고 싶다…
앙쓔를 데려오고 싶다…
그런 춰모지를 화칭추어가 극구 말리고 나섰다.
-너 시내에 취직간다면 내가 말리지 않아. 하지만 앙쓔를 찾겠다고 시내에 가면 난말릴 거야. 너 다시 시집가야 하잖아? 물론 애가 있다고 누가 널 꺼리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애가 없는 것이 있는것 보다 다시 남자 찾긴 더 좋잖아…
-너 직장 구하겠다면 내가 알아볼게. 우리 가게 맞은편에 한국분식집에서 복무원 찾는다고 했어…
맞다. 지난번에도 남편은 말했었지. 한국분식집에서 복무원 찾는다고.
정말 가고 싶었다. 시내로 가면 앙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시내에 가서 출근하면 야크젖같은 피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편도 다시 돌아 올 지도모른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을 굴리는 춰모지는 화칭추어한테 단단히 부탁해 두었다. 이제시내에 가면 꼭 그 분식집사장과 말해서 복무원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화칭추어가 돌아간 다음부터 춰모지는 매일밤 황홀한 꿈만 꾸었다.
꿈속에서마저 남편과 앙쓔와 함께 그 맛있다는 우육면을 먹는 꿈도 꾸었으며 야크젖색으로 변한 자신의 하얀 얼굴도 보아왔다.
시도때도 없이 멍하니 얼이 빠진듯이 앉아 있는 춰모지의 변화된 심경때문에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점점 그 차수가 잦아졌으며 젖 짜는 순번을 어긴 야크들의 음메소리때문에 아버지의 욕설은 매일 뒷통수에 달고 살았다.
-화칭추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또 시내로 가자고 했어? 똑똑히 들어둬 다시한번 시내에 가겠다는 소릴 입밖에 내봐 가만두나봐!
그러면서 아버지는 허공에 쨩! 하고 말채찍을 날렸다.
-세상에 수컷이 그놈 한놈뿐이냐? 내가 열번이라도 장막을 더 만들어줄테니 시집못갈 걱정은 하지도 마!
결혼하고 애가 있다는 것이 다시 시집가는데는 허물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춰모지의 아버지 라띵어싸이도 친아버지인지 정확히 알수 없는 노릇임에야…
그러나 라띵어싸이는 춰모지한테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엄청 부렸다. 그만큼 아버지의 노릇도 착실히 하려고 한다. 어떻게 착실히 하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저 엄청 관심한다는 것은 춰모지 역시 인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춰모지가 도시에 가서 나쁘게 변할가 걱정스러웠던 것이고, 역시 자기의얼굴에 똥칠할가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목장에서 양새끼나 야크새끼나 많이 불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춰모지를 아버지는 바랐던 것이다.
조상대대로 전해내려온 본업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동네 젊으니들을 그는 언제나눈꼴 사나워했었다. 근데 자신의 딸 역시 그들을 따라 도시로 가겠다고 나서다니…
사실 자동차정비업을 하는 사내한테는 아버지 역시 많이 끌렸던 것은 사실이다.
한달에 3천원 봉급받는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던것이다. 한달에 3천원이면 매달 양새끼 15섯마리 정도 불어난다는 말이 되겠으니 말이다. 그런 남자에게 춰모지를 맡겨도 무난하다는 한순간의 짧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이 후에는 엄청난 후회로 돌아왔지만…
다시는 향수냄새나고 휘발유 냄새나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쑤유차 한잔 대접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화칭추어는 이번에 돌아갈 때 한동네에 사는 다른 여자애 둘도 함께 데려갔다고한다.
춰모지는 멍하니 후르강 저편을 바라보았다.
어린 양 한마리가 쉬염쉬염 풀을 뜯으며 이편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다 서슴없이 껑충 강을 건너 뛰어왔다 다시 건너 뛰어간다. 어미인듯한 암양 한마리의 음메 소리에 장난치듯 새끼양은 갈지자로 뛰여간다. 그리고 저쪽 둔덕에서는 흘레를 원하는 숫야크 한마리가 암야크등에 사정없이 올라타고 있다…
문득 엊저녁 아버가 하던 말이 떠 올랐다.
-제길 차라리 저 둔덕너머 외눈박이 더지한테 시집이나 보냈을걸. 그러면 양대가리수 2백개 불기나 하지…올해까지 장막 찾는 놈 없으면 차라리 그놈한테라도 시집 보내버려야지…
외눈박이 더지-흉폭하기로 승냥이와 맨손으로 싸워 이긴 사내다. 거칠기가 말이 아니다. 말 먼저 주먹부터 휘드르고 걸핏하면 옆구리에서 날이 시퍼런 은단검을 꺼내 휘두르곤 한다. 평생을 잇발 한번 닦지 않은듯 누런 잇발은 늘 제대로 닫히지 않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있고 거먼때가 꽉 찬 긴 손톱역시 몇달은 깍지 않은듯 했다. 잃어 버린 한쪽 눈도 일년에 한번씩 치루어 지는 소수민족 운동회때 다른 지방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 잃어 버린것이다. 소문이 믿을게 못되지만 외눈박이 더지도 원래는 아내가 있었는데 외눈박이한테 맞아서 죽었다는 풍설도 한때는 떠 돌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남자에게 그저 양과 야크가 많다는 이유때문에 주려 하는것 같았다…
느닷없이 정비공 남편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꽃냄새와 휘발유냄새가 어디에서 풍겨오기라도 하듯 길게 한번 들숨을 쉬었다..
또다시 오는 미지근한 통증을 느끼며 마르지 않은 샘마냥 쉬임 없이 흐르는 젖을 닦기 시작했다.
문득 앙쓔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는듯 했으며 앙쓔에게 넘쳐나는 젖을 물리고 자기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우육면을 먹고 싶었다. 남편이랑 같이…
-여~ 춰모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춰모지는 사색을 멈추고 장막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거기에서는 아버지가 한창 간밤 폭우에 이그러진 춰모지의 작은 장막을 손질 하고 있었고 외눈박이 더지가 그 옆에서 징그러운 누런 이를 들어내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 오는 미풍속에 더지한테서 풍기던 구역질 나는 냄새가 섞여 있는듯 했다.
춰모지는 큰 결심이라도 내리듯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후르강 저편을 바라 보았다…
에필로그
몇달후 서녕시 머쟈제의 한 우육면집, 익숙한 모습의 여자와 그리고 낯선 남자와 낯선 아이가 우육면을 먹고 있다.
여자는 분명 춰모지인데 남자는 자동차 정비공이 아니였으며 춰모지 품에 안겨 젖을 빠는 아이는 앙쓔가 아니였다.
이때 문득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한국가요 곡이 춰모지의 핸드백 속에서 울려 나온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드는 춰모지의 아롱다롱한 손톱이 유난이 어색하게 보여진다.
-네, 아빠…
전화기 저쪽에서 투박한 라띵어싸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칭추어가 돈 가져 왔더구나. 너가 보낸 그 돈으로 양새끼 서른마리 더 사놨어...그리고 너 언제 시간내서 남편이랑 애들 데리고 한번 놀러 내려와. 어린 양으로 한놈잡아줄게…
-네…
춰모지는 무표정하게 전화기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그리고는 몇 젓가락 집지 않은 우육면을 그대로 두고 자리를 털며 일어선다…
(송화강 9기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