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운명/2
(요즘 한반도에서 미국 싸드미사이일 방어 시쓰팀 배치를 두고 한반도는 물론이고 주변국들의 반대 항의로 난리 떨기에 7년전에 본인 야후코리아 불로그에 올린글들을 그대로 다시 조글로 본인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2009년 9월 13일 오후 3:47공개조회수 5743 0
득과 실:
2009년도는 동북아지역에서는 우주 기술 경기라도 하듯이 북한이 지난 4월5일 은하2호를 실은 로켓 광명성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그 뒤로이어 한국이 8월25일5시4분경에 과학기술 위성2호를 탑재한 “나로호”발사와 10여일후인 9월11일 금요일 새벽 2:01분경에 일본은 HTV 우주선을H2B로켓으로 발사에 성공하였다.그것도 엄청난 탑재량에 준확한 궤도 진입에 성공 하였다.
경기 결과는 일본이 금메달, 북한이 은메달, 한국이 동메달을 따게 되였다. 이유라면 북한과 일본은 모두 성공적이였지만 한국의 발사는 정부측의 발표에 따르면 “절반 성공” 이였기 때문이다.그리고 기술면에서도 일본과 북한은 자체 기술로 개발 하였지만 한국은 1단계의 발사체는 러씨아의 기술 협조를 받아야했다.(사실 러씨아에서 제공한 그 속에는 간접적인 중국 사천에서 제공한 기술도 포함되있다.)
특히 우주 기술은 아주 정밀하고 완벽하다보니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준확하게 원하는 궤도에 진입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수 있기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 기술을 앞선 기술이 바로 우주산업이다.그러니 우주기술에서 준확성과 정밀도에서는 ”Yes”와”No”만 존재한다. “Half Yes”나 “Half No”는 있을수가 없다.
박정희시대의 한국은1978년9월26일 안흥 종합 시험 기지에서 사격 거리5KM인 단거리 로켓을 여러 목표물을 향해 20-30발의 단거리 로켓 발사와 하이라이트인 중장거리 지대지 유도탄의 시험 성공으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이르는 유도탄 생산 기술을 가지게되여 세계적으로 7번째로 유도탄을 자체 개발 보유한 나라가 되였다.오늘날의 한국은 세계적으로 7번째는 고사하고 20번째에도 속할지? 걱정스럽다.말하자면 UN상임 이사국인 5개국과 인도,파키스탄,이란,이스라엘,북한,일본 그리고 유럽의 몇개나라와 남미의 몇개나라를 합치면 20번째 서열에도 어렵지 않나???... 당시의 성과는 참으로 자랑할만한 자부심이 아닐수가 없다.사실 그후로 계속적인 기술 개발을 해왔더라면 지금의 한국은 우주,국방기술이 지금 처럼 “절반성공”으로 망신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현재의 일본이나 인도를 초월하여 중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을수도 있지만 가석하게도 맹목적인 미국 숭배로인해 박정희 사망후는 흐지부지 그 사업이 중지되여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자체로 우주에 준확히 올려뛰울 로켓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하나 제대로 생산할수 없어 피땀으로 벌어드린 딸러를 무더기로 퍼주면서 미국의 재고 무기를 그것도 손이 발이되도록 사정하면서 구입한다는 것이 자존심도 서지않을 뿐만아니라 이웃인 북한이나 일본,중국을 상대하기가 부끄럽지 않을수가 없다.사실 일본의 우주산업은 97년이후로 본격적으로 급성장 해왔다.그렇다면 박정희시대의 그 열정과 정신으로 꾸준히 30년을 발전 해왔다면 지금의 한국은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지 독자들은 잘 알고도 여남이 있을 것이다.
박정희는 당시 세계 은행의 반대도 무시하고 강다짐으로 자체힘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하였고 또한1979년말까지 최신 첨단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무기들도 자체 기술로 생산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였다.당시 세계은행의 반대에 응했다면 오늘날의 세계 3대권에 속하는 포항제철은 있을수도 없고,한국건설에 수요되는 모든 강철은 미국이나 일본에 의존하여 수입에 매달리게 되였을 것이다.그리고 당시 국내의 반대도 무시하고 깡 고집으로 국가의 운명을 위해 벌린 중화 학공업들이 오늘날의 한국 경제에 커다란 공헌이 있음은 세인들이 모두 잘 알고있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자존과 대한민국의 먼 장래를 가만하여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자국 경제와 국방기술을 제고하려는 결심을 갖게됨은 미국이1970년 2월에 닉슨 “독트린”,즉 “미국이 다시는 아시아 대륙에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발표하였다.그후로 7월에는 주한 미 7사단의 철수방침을 통보하고 8월에는 에그뉴 미 부통령이 감군 문제의 구체적인 협의대표로 나섰던 것이 박정희대통령을 크게 자극하였던 것이다.
민주당 대통령 출마자 당시의 조지아주 주지사인 지미 카터는 ”한국재쟁 당시 나는 잠수함의 승무원으로 태평양에 있었다.한국전쟁이 끝난지 2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한국에는 4만여명 이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주한 미군의 대부분을 단시일 내에 신중한 방법으로 철수 시킬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지난 과거 역사를 되상겨볼때 미국은 한국의 빈약한 국방산업기술과 미제 무기에 의존도가 크다는 약점을 틀어쥐고 한국의 코를 끼여 정치적으로 한국을 공제하려는 목적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국방산업에서 미국은 여직 한국에대한 기술이전은 한사코 반대해왔다.특히 냉전시기 그것도 빈번한 이북의 남침으로 안보가 걱정되지만 그래도 한국은 반드시 미군이 공제하에서 작전을 해야할 뿐만아니라 제한된 미제 무기만 사용하게끔 강요해 왔다.
70년대 중반 미국은 경제불황에 허덕이고 있었다.군수업체도 일감이 없어 심한 곤경에 처해 있는데도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을 생한하는 맥도널 더글러스사 (MD)사도 곤경을 치르고 있었다. 이때 한국에서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MD사를 찾아가 교섭을 하였다.”기술판매는 가능하다.그러나 반드시 미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오라” 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방부와 타진해보았으나 결과는 “NO!”라는 쌀쌀한 냉대외는 다른 표현이 없었다.
당시 미국의 제한된 감금식 정치에 노(怒)한 박정희는 유도탄 분야를 중점적으로 시찰하기위해 유럽의 스위스,스웨덴,노르웨이,이슬라엘,프랑스등 나라에 과학분야와 담당요원들을 파견하여 특히 프랑스에서는 유도탄을 직접 생산하는 SNIAS사와 SNPE사를 방문하면서 기술 제공과 차관 제공을 해오면서 또한 미국의MD사와 적은 돈을 들여 1975년 10명의 ADD(한국 국방과학연구소)요원이 공동 연구에 참가하는 등 조건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자체 유도탄 개발 기술을 힘들게 해왔다.
미국방부에는 군수물자 및 군수물자 제조용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MCB(Munition Control Board)라는 기구가 있다.이 기구의 승인을 받지 않고는 유도탄 개발에 필요한 연구 시설이나 장비를 들여올 수 없기때문에 부득이 ADD(국방과학연구소)는 미측과 협의할수밖에 없다.끈질긴 타협 끝에 결국에가서는 사거리 180KM,탄두 중량 1천 파운드까지의 미사일은 양해한다는 성과를 이루게되였는데 180KM라는 이 거리는 휴전선에서 겨우 평양까지의 직선 거리이다.
1997년1월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유도탄의 제한 조건을 사거리 180킬로미터에서 300킬로미터,탄두중량을 1천파운드에서 500킬로 변경하는 제3차 교섭을 했으나 미국측이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1978년까지만해도 북한을 앞질러 세계에서 7번째의 유도탄 개발국이였지만,요즘의 북한은 1000KM가 넘는 노동1호에서 5000KM이상의 대포동 1호,2호가 출현하고 인접국인 일본마저 탑재양이 어마어마한 로켓발사 성공 과정이 눈에 보이고 귀에들리니 갑갑한 심정이 아닐수가 없다.
사실 냉전시기나 지금이나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군사적인 도움을 않주고, 손을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은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어 미국이 원하는 정치 노선을 따르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지 절때로 북한이 남침하여 남한 전체가 북한수중에 들어가기를 가장 바라지않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것을 잘 알아 두어야 한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는 러씨아나 중국을 제어하는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군사 요지이다.때문에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 해달라고 사정해도 미군은 그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더 오래 머물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미군이 떠나면 우리는 완전히 끝장인 것처럼 여직 겁을 먹어온 한국 국민들은 옳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이면에서는 일본의 오기나와 미군기지를 꽘으로 이전할 것을 일본정부에서 강력히 요구해오지만 미국은 쉽사리 승낙 하지않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을 똑바로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니 미국이 한국에서 생각처럼 이북에서 남침을 보고도 못본척할수가 없고, 또한 러씨아나 중국 그리고 일본도 그냥 북한의 남침을 강건너 불을 쳐다보듯이 팔소매를 걷어부치고 모른척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이유라면 이들 국가들은 한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기존의 상태가 자국이익에 유익하기깨문 이다.아무튼 여러모로 분석해봐도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20년까지는 한국내의 미군존재는 미국한테 상당히 중요하기때문에 미군은 쉽게 철수를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의 국력이 점차 쇄약해지고 자국 안보에 힘이 벅찰 상황에 처해있다면 한국이 아니라 이슬라엘도 캐나다도 더 이상 도움을 줄수 없게된다. 그때라면 적어도 수십년 또는 반세기후의 일일것이다.
한국의 국방은 장기간 미군의 통제하에서 의존하다보니 모든 책임을 미군에 떠맞기는 식이여서 너무나도 어수선하다보니 북한의 남침이 쉽게 이룰수있고, 국가 비밀마저도 매체와 정부에서 개입하여 홀깍 뒤집어 남들한테 보이는 나라로 보여준다.개인이나 가정도 모두 남들이 알아서는 않될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하물며 수천만명의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갈 나라로서 국가 비밀을 쉽게 노출해가면서 투명함과 민주를 세상인들한테 보여주기위해 나라의 밑천까지 홀랑 뒤져가면서 난리피우는 정부와 매체가 문제가 좀 있다고 보아진다.그렇다고 세계적으로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민주화가 잘된 나라라는 평판은 결코 따르지는 않고 국익에 손해만 끼칠뿐이다.
말하자면 남들 나라에서는 국제적인 비난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민족의 자존심과 나라의 안보를 위해 몰래 숨겨가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판국에(비난과 구박을 받으면서 핵개발해온 나라들로는 인도,파키스탄,이슬라엘,북한,이란등등이라 하겠다.) 한국은 수년전에 자국의 과학기술로 불과 몇g(그람)도 않되는 핵실험까지 매체와 정부에서까지 개입하여 홀랑 발가 번져 보일지경으로 나라의 극비밀까지 공개하니 남들 나라에서 볼바는 웃읍지 않을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나라로 손꼽히는 프랑스도 수십년간 해외의 전 식민지 국들에서 세인을 속여 가면서 숱한 핵시험한 사례들도 근간에 밝혀지자 더 이상 부인할수가 없게되자 프랑스 당국에서는 근간에 공식적으로 승인하면서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말고 피해국에 배상을 해줘야한다는 설이 나오고있는데,그렇다면 프랑스가 도덕과 윤리가 떨어져서 수십년가 자국 비밀을 지켜왔을까?그것도 민감한 핵을 말이지.
그리고 지금도 시비되는 60년대 미-일간의 비밀협의중 미국 군함이 핵무기를 부착하고 일본의 항구에 정착하거나 핵무기를 부착한 전투기가 일본 영해를 지날수있는 비밀협의에대해 여직 미국이나 일본 양국은 부인하지만 민주당인 하도야마가 정권을 잡으면서 또 이 화제가 이슈로 타오르고 있다.이런 비밀 행위들은 한국의 행위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상반대 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나 미국은 민주나 도덕이 떨어지고 아주 불투명한 나라로 결코 취급해오지는 않았다.그렇다해서 한국도 국제사회를 배반하고 남들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라는 권고라기보다는 앞으로의 한국은 과연 어떤 길을 택해야하며(?) 5천만명의 한국 국민의 생명 안전과 나라안보를 어떻게 책임질지에대해서는 나라를 다스릴 국회와 지도자인 대통령들이 알아서 국익에 유익한 일들을 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인권과 자유를 노래처럼 부르던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시 엄연한 미국 국민인 일본계 시민들을 적국 계통이라하여 불법으로 강제 수용소에 가두었다.이는 독일 나치정권이 유대인을 가둬둔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아진다.지금도 미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곳에 따라 흑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 차별을 크게 하고있다.좀 더 설명하자면 당시의 제주도에서 초토화 정책을 푼것도 미국이였지만 미군은 한국국민을 속여가면서 "빨갱이"들이한 짓이라고 비난해오다가 냉전이 결속되면서 서서히 모든 비밀들이 그 진상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인권이 과연 무엇이고 민주가 과연 무었인지?....중요한건 국익 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미국이 원하는 길을 택하다보니 60-70년대 많은 목숨과 피를 흘려가며 길가에 나서 인권이나 민주면에서는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으나 대외정책이나 국방등 정치면에서는 아직도 미국이 쳐놓은 거미줄에 꽁꽁 묶인 상태로 완전 자주권이 없는 나라로 변해왔다.그러다보니 본인이 원하지않는 또는 싫으면서도 억지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수 없었고 모든면에서 완전 독립된 독자적인 움직임을 찾아볼수가 없이 항상 미국이란 나라의 눈치를 봐가면서 조심스레 움직여야만 가능하게 되있다.
민주는 얻었지만 국력을 상징하는 국방산업과 독자적인 안보와 대내적인 정치와 대외적인 외교는 나날이 쇄약해가는 않타까움에서 자신의 진모습을 되찾기 위해 미국의 탈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일본을 우리도 유심히 지켜만 보지말고 먼 앞날을 대비하여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뭔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뒤에 계속)
Hooligan(오호)
2009년9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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