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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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 언론 '조선족 동포 때리기' 이제 그만 댓글:  조회:6336  추천:104  2008-06-24
한국 언론 '조선족 동포 때리기' 이제 그만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한국 내 조선족 체류자가 30만을 훌쩍 넘어 도박, 살인, 마약 등 중대범죄 사례가 증가되고 있으니 재한조선족사회가 시끌벅적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일부 한국 언론들이 사실을 부풀려서 마치 조선족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거대한 악의 조직이라도 된 것처럼 요란하게 떠들고 있어서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사례 1]     1년 전에 한 조선족이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칼로 한국인을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고, 같은 시기에 조선족끼리 가리봉시장에서 싸우다 수십 명이 검거된 일이 있자 일부한국 언론들이 조선족들이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들이 이렇게 개별적인 사실을 보편화시키면 조선족동포들은 위험한 인간 취급을 당하게 된다. 당시 00방송국 기자도 필자를 찾아왔었다. 나더러 조선족들이 일상적으로 칼을 갖고 다니는 행위를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가 알기로는 칼을 갖고 다니는 조선족 동포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가리봉일대 상인들이 ‘연변 흑사파’들이 도끼와 칼을 차고 설치고 다니면서 돈을 뜯어내고 있어 언제 당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방검복을 입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리봉시장 일대에서 여러 해 살다보니 노래방과 음식점 주인들을 두루 알고 있어 그들에게 물었더니 처음 듣는 소리라면서 마치 내가 아라비안나이트를 꾸며대는 듯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물론 유사한 사건들이 한두 건 있었을 수는 있겠으나 마치 가리봉일대 상인들이 모두 ‘연변흑사파’ 때문에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여 살아가는 듯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때부터 네이버에는 ‘연변흑사파’라는 블로그가 생겨났고, 일부 한국 언론들은 재한조선족사회 범죄사실이 발생하면 곧 ‘연변흑사회’와 연관시켜 보도하곤 했다. [사례 2] 얼마 전에 일부 한국 여러 일급 일간지들에서 일제히 “中 최대 범죄조직 ‘흑사회’, 강남까지 세력확장”이란 제목으로 ‘중국인’의 범죄사실을 폭로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발표했다. 이 기사는, <kbs뉴스 앵커 맨트>, <리포트>, <녹취>, <인터뷰> 등으로 나뉘어졌는데 제목이 굉장히 거창한데 비해 내용은 빈약해 주로 조선족 범죄 사실을 다루었다. 이를테면, "kbs뉴스 앵커 맨트: 흑사회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암흑세계를 다룬 영화제목 같이 들리는데, 말 그대로 중국에 근거를 둔 범죄조직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집단폭력은 물론 도박, 마약, 보이스핑 등 신종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 밀집지역을 근거로 하는 이들 범죄조직은 서울 강남 유흥가 등으로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암흑가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는 이들의 범죄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사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들이 식당, 다방 등을 위장하여 도박을 한다는 것, 둘째 기계마작을 논다는 것, 셋째 마약장사를 하던 탈북자 부부와 한 조선족이 기계마작을 하는 도박장에서 검거되었다는 것, 넷째 30명이 넘는 중국인이 밀입국하다 붙잡혔다는 것, 다섯째 조선족들이 전화금융사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 여섯째 연변흑사파로 불리는 이들이 30여 명 검거되었다는 것, 일곱째 국정원 수사관의 말에 의하면 최근에는 중국 흑사회 조직이 직접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해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고 불법체류자와 일부 조선족들이 국제특송- 배나 항공기 편으로 몸에 지니고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등등이다. 위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우선, 한국 언론들이 ‘흑사회’에 대한 개념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흑사회(黑社會)’는 중국에서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이른바 깡패사회를 일컫는 총칭이다. 예를 들어 대륙의 유명했던 청방과 홍방, 홍콩의 삼합회, 유럽의 마피아 등은 하나의 조직이며 그들을 총칭하여 ‘흑사회’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중국 최대 범죄조직 흑사회’라는 표현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음 기사 제목과 내용이 거리가 십만팔천리나 된다. 제목은 거창하게 중국 최대 범죄조직 ‘흑사회’를 밝혔으나 내용을 보면 이와 관련된 근거가 전혀 없이 조선족들의 범죄사실을 열거만 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 식당과 다방 등을 위장하여 도박장을 벌이거나 기계마작실을 운영하는 조선족들은 대다수가 깡패도 아니고 건달도 아니며 더욱이 ‘흑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인데 ‘흑사회’와 연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약판매와 전화금융사기에 가담한 사람들은 깡패조직과 연계시킬 수 있겠으나 중국 최대 범죄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때문에 한국 언론은 국내 조선족에 대해 보다 진정성이 있는 기사를 발표해야 한다. 필자는 재한조선족사회에 각종 범죄사건이 불어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부 국내 언론들이 이를 부풀려서 중국 최대 범죄조직과 연관시키는 잘못된 보도 태도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지적할 것은 재한조선족 50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언론들은 조선족 동포와 내국인의 문화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4    아버지가 없는 어버이날(김정룡) 댓글:  조회:5280  추천:104  2008-05-11
아버지가 없는 어버이날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우리는 나라를 국가라고 부르는데 국가란 ‘國’과 ‘家’가 합쳐진 개념으로서 나라를 형성하는 기본세포가 가정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흔히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가정부터 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가정을 매우 중시해왔다.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왕’이 현명하게 바른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권위가 있어야 한다. 가정도 마찬가지로 바르게 서려면 가장인 아버지가 아버지다운 권위가 있어야 한다. 우리 동양 삼국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유교를 통해 수립시켰고 아버지는 가정에서 예수처럼 받들리었다. 필자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가정에서 절대적인 존재였고, 아버지의 말씀이면 모택동 어록처럼 받들었고, 어머님은 귀한 음식이 생기면 아버지에게만 대접시키고 기타 가족들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아마 우리민족의 절대다수 가정에서는 다 그러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던 시대에는 이혼율이 극히 낮았고, 자식 교양도 올바르게 되고 있었다. 필자는 아버지 권위를 ‘經’에 비유하고 싶고 ‘經’이란 실사 변에 뿌리 경자가 합쳐진 것으로서 ‘권위’, ‘원칙’, ‘원리’, ‘규칙’, ‘법칙’, ‘기본’, ‘기준’, ‘기둥’ 등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유교적인 ‘經’으로 아버지 권위가 섰고 따라서 올바르던 가정문화가 서양의 물질문명과 민주화바람이 스나미처럼 동양을 휩쓸어 동양에서는 전통적인 ‘經’이 사라짐에 따라 아버지가 권위는커녕 아버지 존재마저 찾아보기 힘든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현재 대다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중심이 아니고 아이가 중심이 되었고 아버지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훨씬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아버지는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승진해야 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막중한 의무에 시달리면서 집에 와서 편히 축구구경 하려고 해도 TV 채널을 드라마를 보려는 아내에게 혹은 만화를 보려는 아이에게 빼앗기고 허탈하게 한숨만 짓고 있고, 맛 나는 음식이 생기면 애들 몫이고, 간혹 영화구경이나 야외에 놀러가도 마누라와 애들의 의도에 따라야 하고 뭐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별로 없는 불쌍한 신세에 처해 있다. 여기서 재미나는 얘기를 해보자. 한국에서는 5월 5일을 어린이날,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했다. 그런데 어린이날은 정부에서 정한 공휴일인데 반해 어버이날은 휴일이 아니다. ‘금고’를 쥐고 있는 여성들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소비하는 자금도 현저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아리랑 갈비탕’ 음식점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비슷하게 문전성시이지만 매출을 비하면 어버이날이 어린이날보다 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린이날에는 한우 등심, 한우 갈비 등 비싼 것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 반해 어버이날에는 싼 돼지갈비나 갈비탕만 팔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두 날의 매출을 비교하면서 어버이날은 여성들이 형식적으로 대충 넘기려는 경향이 짙어 어버이날에 아버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만약 아버지가 완전히 사라져간다면 가정은 ‘經’이 없어지고 사회는 말세에 접어들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5월의 가정의 달을 맞아 방송, 신문매체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필자는 요즘 매일 KBS아침마당을 보는데 주제가 거의 다 아버지에 관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대다수가 ‘사라진 혹은 사라져가고 있는 아버지를 찾으려는 강의와 토론’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있는 시대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는 사회적으로 깊이 있게 숙고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3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자 댓글:  조회:5546  추천:111  2008-03-09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자 김정룡 재한 조선족 칼럼니스트 인간은 어릴 적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과 어릴 적부터 배워온 상식을 쉽게 깨지 못하는 관성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조선족은 중국이란 문화 환경에서 성장하고 배워온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을 진리라고 믿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정인갑 선생님이 쓰신 나의 ‘사관’에 대한 반론의 글은 역시 중국학자들이 칼·맑스의 역사5단계설을 천하의 유일진리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중국봉건에 관한 학설들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필자의 ‘견해’와 ‘주장’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것이므로 독자들이 어떤 입장이든 반론과 비평을 제기하는 토론문화는 십분 찬성한다. 허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절대다수 조선족학자나 문인들이 칼·맑스의 이론과 상식은 천하의 유일진리이고 이에 대한 異見은 ‘반동’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최균선 선생님은 “과학적이고 역사학적이며...역사발전의 5단계설은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 이론인데 그걸 뒤집을 천재는 아직 세상에 나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했는데, 이는 현시대에 있어서 너무나도 상식 밖의 견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칼·맑스는 인류사회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및 착취와 피착취의 대립구도로 보고 역사를 ‘계급’이란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했으며 아울러 직선발전사관에 의해 역사5단계설을 내놓았다. 따라서 칼·맑스는 헤겔의 소외론을 이어받아 기왕에 소수 착취계급이 다수 피착취계급을 소외시킨 불합리한 사회를 다수 피착취계급이 소수 착취계급을 소외해야한다는 주장을 했고, 이렇게 하려면 오로지 플로레타리아가 혁명적인 폭력수단으로 브루죠아를 뒤엎고 정권을 탈취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칼·맑스의 이 일련의 이론과 주장을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이 받아들였고, 중국의 경우 칼·맑스의 변증유물론을 수입해서 무릇 역사적으로 유물론자는 좋고 유심론자는 타도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중국전통문화의 원조인 황로지학, 공자의 유학을 뒤엎었다. 따라서 칼·맑스의 역사5단계설에 근거하여 무릇 낡은 것이면 모두 정치적인 목적으로 ‘봉건’이란 렛델을 붙여놓고 뒤엎는 이른바 破四舊 운동을 일으켜 황하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현대중국의 비극은 본래 모든 사물을 조화와 화해의 일원론의 전통을 버리고 서양의 모든 사물을 대립으로 보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으로 시작해서 칼·맑스로 이어진 이원론적인 철학을 받아들여 불필요한 과격한 문화운동을 일으킨데 있다. 여기에 ‘봉건’이란 개념을 확대하여 널리 적용시킨 것이 크게 한 몫을 했다고 나는 본다. 우리의 논의의 초점은 칼·맑스의 역사5단계설이든 기타 이론과 주장들이 일부공산권 국가들에서 진리로 받아들일 뿐이지 결코 최선생을 비롯한 많은 조선족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미의 선진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역사를 고대, 중세, 근세, 현대로 획분하고 봉건이란 일부 지역역사의 한단계일뿐 중국에서처럼 광의적인 의미로 보고 두들겨 맞추지 않는다. 임어당은 그의 <<중국인>>에서 “중국역사에 만약 계급이 있었다면 아문계급과 피아문계급만 존재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뜻인즉 칼·맑스의 계급이론을 반대했던 것이다. 한국TV매체에서 강펀치를 날리고 있는 도올·김용옥 선생은 인류문화5천년역사를 왕정과 민주 두 개념으로 획분한다. 즉 왕의 일인 독재통치시대를 통털어 왕정이라 명명하고 현시대를 민주라 명명한다. 역사를 보는 사관은 천차만별이고 다종다양하다. 그러므로 칼·맑스의 역사5단계설이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 이론이란 주장은 현시대에서 어처구니없는 어불성설이다. 만약 일부조선족학자들이 중국의 기존의 봉건에 관련된 이론들을 들고 나와 나의 견해를 반박한다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그러한 이론들은 중국학자들이 역시 정치적인 배경에서 두들겨 맞춰 놓은 이론이란 나의 관점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 할 것은 기독교신도는 기독교를, 불교도는 불교를, 이슬람교도는 이슬람교를 모두 자신이 믿는 종교를 세상에서 유일진리라고 고집한다. 그래야만이 신앙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허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그 어떠한 종교든지 세계적인 공인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신앙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어떠한 종교보다 못지않다. 칼·맑스의 이론도 세상의 수많은 이론 중의 하나의 이론일 뿐이지 결코 세계적으로 공인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제발 칼·맑스의 역사5단계설이 세계적인 공인을 받는 이론이란 주장을 버릴 것을 충고한다.  
2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행(幸)인가, 불행인가? (김정룡) 댓글:  조회:6196  추천:88  2008-02-21
재한조선족문제연구자료집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행(幸)인가, 불행인가?  김정룡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93년 미국의 샤무엘·헌팅턴 교수는 <<문명의 충돌>>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는 양대 진영의 대결이 사라짐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나는 누구냐?’ 고 묻게 된다.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사상을 버리고 본래의 종교나 민족문화에로 회귀하려 할 것이다.”  헌팅턴 교수의 이와 같은 지적은 조선족사회의 변화에도 많은 사색을 던져주고 있다.  조선족은 1980년대 말까지 국적이 있는 중국과 고국인 한반도의 존재에 대해 아무 고민이 없이 오로지 중화인민공화국공민이 되기에 충실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1992년 8월 24일 중한수교를 계기로 조선족이 고국인 한국과의 왕래, 중국에 간 한국인과의 접촉이 빈번해짐에 따라 조선족은 ‘나는 누구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정체성논란이라 말한다.  1990년대 중반, 흑룡강신문에서 조선족정체성문제에 대해 지상토론을 펼쳤는데, 대체로 ‘조선족은 고국인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지만 한국인은 우리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더라. 우리조선족의 삶의 터전은 역시 중국이다.’라는 인식으로 가닥이 잡혔었다.  그 후 현재까지도 조선족사회정체성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으로 흘러왔으며 요즘 들어 어떤 조선족지성인들은 “차라리 중국인이거나 한국인으로 태어날 것이지 나는 뭔가? 이방인이다. ······정부의 소수민족우대정책은 표면적이다.”라고 말해 타인에게 조선족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고 심지어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폄하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불행이라는 얘기다.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정말 불행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족은 러시아 까레스끼(고려인)처럼 허허벌판에 추방되어 온갖 고생을 겪은 일도 없고, 재일교포처럼 수십 년을 살아도 국적을 갖지 못하고 참정권도 없는 것이 아니다.  조선족은 만주 땅에서 한반도의 2배 넘는 토지를 개간하여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항일전쟁시기에 공산당이 약속했던 대로 해방 후 토지를 되찾았고(피땀으로 가꾼 땅을 버리기 아쉬워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은 수가 100여 만이다.) 자치정부도 세우게 되었으며 참정권도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조선족을 많이 돌봐주었다.  필자가 1980년대 장춘에서 대학공부 할 때 소수민족비 2위안(1년이 지나 4위안이었음)을 받았다. 당시 한 달 소비가 5위안 내지 10위안이었으니 2~4위안이란 돈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족애들과 다른 민족애들은 매달 입쌀권(大米票)이 2근이었으나 조선족만은 8근이었다. 그 때 한족애들이 우리조선족들에게 잘 보여 입쌀권을 얻어먹으면서 “왜 니네 조선족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지 부럽다.”고 했으며 우리조선족들은 이로 인해 자호감을 느끼며 살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양심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은 좋다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중국정부에서 조선족들에게 밭을 적게 주었나, 일을 못하게 했나, 정치를 하지 말라고 했나, 도대체 무슨 차별을 받고 살아왔단 말인가?  조선족이 중국정부로부터 우대정책을 받고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선족은 개혁개방을 맞아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하여 내지와 연해도시에 진출하여 김치와 짠지 장사를 했고, 북조선과 보따리 장사를 하여 돈을 벌었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자 조선족이 다리역할을 했고 취직도 많이 해서 돈을 벌었다. 또한 한국 문이 열리게 되자 코리안드림으로 엄청난 돈이 조선족사회에 흘러들었다. 가짜친척초청으로 한국에 온 수가 굉장히 많은데 어찌되었든 조선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또한 연변의 한족들은 조선족이 한국에 많이 갈 수 있는 것에 대해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현재 재한조선족이 22만이고 한족이 11만이나 되지만 한족은 재입국과 방문취업제 등 우대혜택이 없다.  또 조선족은 조선어와 한어 및 외국어 하나 더하면 3개국 언어를 구사하기에 우세한 점이 많다. 이도 조선족이 중국에서 살아온 특수요인으로 자연스레 얻은 이점이다.  여하튼 조선족은 중국에서 사는 것이 불행인 것이 아니라 행이다.  필자는 조선족이 중화인민공화국공민으로 조용하게 살아왔고 고요하던 조선족사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은 한국과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그 근거로서 중한수교가 되기도 전에 한국인들이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만세!”를 불렀고, 조선족을 만나 “여기가 본래 한국 땅이었다.”고 선교하고, 고고학자와 기자들이 ‘옛것’을 탐사하고 고찰하는데 조선족을 앞세우고, 조선족이 걸어온 길과 실질을 모르면서 한국과 중국이 축구할 경우 조선족이 중국을 응원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고, 언론들은 자기네 목적을 이루려고 조선족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차별을 받고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하는 등등의 일련의 한국인의 행위는 일부 어리숙한 조선족을 동요하게 만들었고 아울러 ‘북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 한국과 한국인은 의도적으로 조선족의 입장을 난감하게 만들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로서 구성원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만을 알고 있을 뿐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또 다른 하나의 소박한 진리는 모른다. 고로 한국인은 조선족을 민족문화에로 회귀하기를 바라고 밀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조선족을 이해 못해 ‘양모’와 ‘생모’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들고 도를 넘어 조선족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객관적으로 어떠하든 간에 판단은 우리조선족 자신에게 달렸다.  조선족은 한국이란 고국에 와서 돈을 엄청 많이 벌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거지(散居地)에서 살아온 조선족들이 우리말 우리문화를 모르던 것을 한국에 와서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조선족을 여러모로 폭넓게 끌어안을 그릇이 못 된다. 우리조선족의 삶의 터전은 고국인 한국이 아니라 역시 나고 자란 고향 중국이다.  고국에 와서 돈을 벌고 민족문화를 익히고 고향에 가서 사는 것도 역시 행이 아니겠는가?    
1    연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댓글:  조회:6185  추천:121  2007-11-01
연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현재 중국의 대다수 도시가 그러하듯이 연길도 자고 깨나면 변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야흐로 변하고 있다. 우선 연길공항은 40만의 인구를 가진 소도시에 걸맞지 않게 진출인구가 대단해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관광버스도 전에 보지 못했던 대형호화외제차들이 줄을 지어 달리고 있고, 5성급대우호텔이 4성급으로 강급 되니 국제호텔이 5성급의 자격으로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40만 소도시에 5성급호텔이 들어서고 또 기타 관광호텔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은 아마 세상에서 연길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는 전에 비해 아주 시원스럽게 넓어졌고 길 양옆의 올망졸망 나름대로 복잡하게 들어섰던 문시방(門市房)들은 사라져 도시환경이 한결 깔끔해졌다. 건널목의 지시등은 초수까지 밝혀주어 서울보다 더 선진적인 감이 든다.   부르하통강과 연집강은 아주 아름답게 꾸며놓아 밤이면 훌륭한 관광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정부청사부터 일반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컴퓨터화가 되어 세계조류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고 있다.   물건은 당지 값싼 것부터 질이 좋고 브랜드가 좋은 고차원을 따지면 한국에 있는 것이면 연길에 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래방의 실내장식과 음향시설은 서울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웬만한 음식점들의 실내장식도 한국보다 훨씬 호화롭다.  젊은 여인네들이 아침저녁이면 호화외제차를 끌고 애를 학교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수가 수년 전에 비해 굉장히 많아졌다.   도시건축물과 시민들의 소비를 보면 연길은 부자도시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연길이 많이 또 크게 변화했다.   하지만 필자는 엄청난 변화 뒤에 숨겨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아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을 하드웨어(硬件)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프트웨어(軟件)라 부르는데, 연길을 놓고 보면 하드웨어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나 소프트웨어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즉 연길은 도시건축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것은 크게 변하고 있으나 시민의식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들이 전에 비해 경제적인 경쟁의식과 남녀관계의 개방화 등등이 변화된 것들도 있지만 선진적인 시민의식 같은 소프트웨어는 전혀 개변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연길에서 4일 동안 머물면서 일을 본 것은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부서였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로 실망이었다.    연길에서 지식인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00기관에 가서 노크하고 들어갔더니 ‘주인’은 몸을 의자에 뒤로 기댄 채 손님을 맞고 말하는 태도도 마치 죄인을 대하는 것처럼 혹은 자기한테 뭘 빌려 간 것처럼 굉장히 쌀쌀하다.   어떤 기관의 공무원은 사무실에 전화로 00를 찾는다고 말하면 “아무개를 찾는 전화를 왜 여기에 거는가?” 고 버럭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한국의 어떤 은행에서는 웃는 얼굴로 손님을 서서 맞은 다음 업무를 처리해주는데 비해 연길의 은행 사무원들은 인사는커녕 마치 자기한테 신세를 지러 간 것처럼 손님을 쌀쌀하게 대한다. 기타 공공기관도 손님을 외면하고 자기네끼리 한담을 하는 등 거의 다 서비스태도가 예전과 같이 쌀쌀하다.    하루는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하게 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사연은 이러했다. 친구 밑에 층에 사는 집의 전원이 끊겼다. 그 집에서는 전기세를 다 지불했는데 사무원이 그 옆집이 전기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을 바꿔 잘못 전원을 끊어놓았다. 억울하게 당한 주인이 전기공사사무원에게 따지고 드니 그 사무원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죄송하다고 사과할 대신 “전기를 보고 못 보는 것은 나의 손에 달린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면 전기를 주지 않겠다.”고 윽박찌른다.   공공기관의 사무원들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한다는 의식이 없이 마치 전기, 수돗물 등 시민들의 필수적인 것들을 관리하는 사무원들은 자기의 개인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권세를 부리고 있다.    일을 보자면 먼저 전화연락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일부연길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잡친다. 연길의 전화문화는 제고되지 않고 확실히 낙후되어 있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가 발달해야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이 제고되어야 한다. 시민의식의 제고는 당연히 공공기관의 사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연길은 도시건축이 발달했고 도시환경이 많이 변화되었으나 시민의식이 변하지 않았다.   물론 시민의식 제고의 문제는 연길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년 전 필자가 심양출판사에 일보러 갔을 때 편집장이 하는 말이 “중국에 차가 엄청 많이 늘어났지만 차문화가 형편없이 낙후되듯이 중국의 하드웨어는 엄청난 변화가 있으나 소프트웨어는 변화된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고 했다.     필자가 이번 중국에 갈 때 장춘으로 갔는데, 인천공항에서 장춘행비행기는 먼 곳에 세워놓고 버스를 타고 탑승한다. 버스 안에 공중아가씨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서로 희희닥닥 거린다. 만약 외국의 공중아가씨라면 자리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고, 손님들 앞에서 떠들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공중아가씨라면 고차원의 서비스교육을 받았을 터인데 그러하니 일반 백성들이야 더 말해 뭘 하랴!    한국에 돌아올 때 장춘공항에서 한 조선족유학생이 짐이 초과되어 나 보고도와 달라고 해서 선뜻 대답했는데 탑승수속을 맡은 아가씨가 나보고 그 학생의 이름을 묻는다. 나는 난생 초면의 사람의 이름을 알 리가 없어 떠듬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을 도와주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공항의 규칙이 그러하기에 의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만약 당신이 이 분을 계속 도와주려하면 오늘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오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인 여권에 한국법무부가 내준 비자로 수속에 문제가 없는데 타인의 짐 때문에 내가 한국에 올 수 없다는 것은 말이나 되는가는 것이다. 마치 공항이 자기네 집 것이고 나의 운명이 자기 손에 달려있는 양, 중국사무원들의 의식수준이 참으로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연길도 그러하지만 해마다 10%의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는 중국이 겉보기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는 듯 하지만 국민의식은 제고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에서 여러 해 동안 묵어 있던 사람들이 고향에 가면 여러모로 불편을 느낀다. 먼지가 많은 것은 그려러니 하고 각오하지만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당지 사람들은 한국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꼴깝 떤다고 얄궂게 본다. 이 때문에 알게 모르게 갈등이 일어난다. 고향에 간 사람들이 한사코 하루빨리 한국에 오려고 발버둥치는 데는 이러한 원인이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생활이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향의 하드웨어가 변화하는 것도 좋지만 소프트웨어가 개선, 변화되어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흩어진 조선족들이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2989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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