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방치질소리와 물놀이로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운 강변. / 李长森 摄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
연꽃 ·윤석중
윤석중 선생은 우리 나라의 유명한 동요 시인이다. 이분은 30년 동안 동요와 동시만 쓰고 사신 분이다.
이 "연꽃"을 자세히 읽어 보면, 여러 가지 재미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 노래를 풀이해 보면,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라는 구절은, "연꽃은 해만 뜨면 꽃송이가 살며시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라는 것은, "연꽃은 물로써 씻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세수를 말끔히 한 것처럼 맑고 깨끗하게 곱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쉽게 풀어 보면, "연꽃은 해만 뜨면 꽃송이가 펴나고, 물로써 씻은 듯이 아름답다"는 것에 지나지 않다.
이런 것은 누구나 다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대수롭잖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왜 이 작품이 좋은 동시가 될까? 여러분은 스스로 의심스럽게 여기리라.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런 의심을 갖는다며는,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해 보리라.
첫째 질문,
여러분은 연꽃이 해만 뜨며는 부시시 깨는, 그 "부시시 깬다"는 말을 아느냐?
둘째 질문,
"세수를 안 해도 곱다"는 말과 "물로써 씻은 듯이 아름답다는 말이 어떻게 다른가?
셋째 질문,
첫째 줄에는 "연꽃은 해만 뜨면…" 이라 하고, 셋째 줄에는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하고 연꽃을 두 번 거듭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따로 간추려 보면,
(1) "부시시 깬다" 는 뜻이 뭐냐?
(2) "세수를 안 해도 곱다" 는 뜻이 뭐냐?
(3) "왜 첫 줄에는 "연꽃은" 해 놓고, 셋째줄에는 "연꽃은 연꽃은" 하고 거듭 썼을까?
여러분이 이 세 가지 질문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생각해 보라.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이 시가 왜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리라.
우리 나라에서 시인으로 유명하고, 더구나, 맑고 따뜻한 동시도 많이 쓰시는 장만영 선생의 작품 중에 "물방울"이라는 것이 있다.
소나기 지나가고
먼 하늘 동트듯 환해지자,
지붕 추녀를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마당에 조그마한 여울을 만든다.
그러면 그 여울 위에는
수없이 많은 물방울이 생겨 흐르는 물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하듯 떠내려 간다.
물방울은 우리의
귀여운 어린이.
물방울·장만영
소나기가 지나가고, 마당에 흐르는 물을 따라 경주하듯 떠내려가는 물방울들을 "우리의 어린이"라 했다. 초등학교 일학년생들이 교정에 모여 술래잡기도 하고, 뜀질도 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느끼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물방울에서 느낀 것이다.
장 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가! 그 장 선생님이 쓰신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위 틈으로 흐르는 샘물 같은, 조금도 흐리지 않는 마음만이 시를 낳는다. 《현대시 감상》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이다. 이 말 중에 두 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시를 쓴다" 혹은 "시가 된다" 하지 않고, 왜 "시를 낳는다" 했을까? "쓴다"는 것과 "낳는다"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
만일 우리가 일기를 쓰려면, 그 날 겪은 일, 혹은 당한 일, 느낀 것을 찬찬히 사실대로 기록하면 된다. 그러나, 시는 일기를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기를 쓰듯, 어떤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쓴다는 것은 깊이 느낀 것이 없더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면 된다. 그러나, 시는 사실을 기록하기보다 더 깊은 마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깊은 느낌을 감동하라 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시를 "마음의 음악"이라고 했다.
또한 불란서의 어느 시인은 시야말로 "감탄사에서 피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오오 하늘은 푸르다."
"아아 아버지가 오시네!"
우리가 무엇에 깊은 느낌을 나타내는 "오오!"나 "아아"가 감탄사다.
모자야, 모자야,
오 모자는
저기 저 못에 걸려 잘 있다.
공아, 공아,
오 공은
누나 반짇고리 속에 잘 있다.
딱지야, 딱지야,
오 딱지는
내 호주머니 속에 잘 있다.
나 잔 동안
다 잘 있다. 다 잘 있다.
잠깰 때·윤석중
얼마나 여러분 마음을 용하고 묘하게 노래한 시이냐! 어린이의 하룻밤은 어른들의 하룻밤처럼 너절한 꿈으로 가득한 밤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잠선녀만큼 얘기도 잘하고, 얘기를 많이 아는 분은 둘도 없습니다.
밤이 되면, 아기들이 얌전히 밥상 앞에 앉았거나, 또한 걸상에 앉았으면 잠선녀가 옵니다. 사쁜사쁜 층층계를 밟고 올라옵니다. 버선발로 올라오기 때문에 부시럭 소리도 없습니다.
그리고, 살푼 문을 열고… 아기들 눈에 밀크를 한 방울 똑 떨어뜨립니다. 참으로 한 방울 넣는데도 아기들은 껌벅껍벅 졸음이 와서 눈을 못 뜹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잠선녀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잠선녀는 아기들 등 뒤에 나타나, 머리 뒤통수에 후하고 가볍게 입김을 붑니다. 그러면, 아기들은 머리가 아리숭해지며, 졸음이 옵니다.
잠선녀는 아기들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다만, 아기들이 떠들면 얘기를 들려 줄 수 없어서 조용히 누웠도록 재워 놓는 것입니다.
아기들이 잠이 들면 그 머리맡에 잠선녀는 앉습니다.
잠선녀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빛깔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빨갛기도 하고, 초록빛이 되고, 혹은 퍼렇게 보입니다. 잠선녀는 양손에 두 개의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꽃우산은 마음씨가 착한 아기 머리맡에 펴 둡니다.
그러면, 그 아기는 밤새도록 재미나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개는 그림 하나 안 그려졌는 새까만 우산입니다. 그것은 마음씨가 곱지 못한 아기들 머리맡에 펴 둡니다. 그러면, 그 아기는 꿈 한 가지 못 꾸고 새근새근 자기만 합니다.
올 르기애·안데르센
안데르센의 동화에서처럼 찬란한 꿈이 펴진 하룻밤이다. 이렇게 여러분이 꿈의 나라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동안 모자도 공도 하물며 딱지조차 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 시에는 그런 여러분의 한량없는 꿈이 어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오오"의 느낌씨를 그냥 짜 넣었다.
이 "오오"나 "아아"의 감동을 역시 장만영 선생은 좀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 나비 봐!"
장다리 꽃 노오랗게 핀 들밭으로 날아드는 한 마리의 나비를 보고도 어린이는 찬탄의 말을 던진다. 극히 짧은 이 한 마디의 말은 짧은 대로 하나의 시다. 왜냐 하면, 그는 벌써 자연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이미 체득한 커다란 감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찬탄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것, 신기로운 것, 새로운 것, 그리고 최선의 것을 합하여 외치는 마음의 진실한 소리다.
《시작법》에서
여러분은 위의 글을 읽고, 시야말로 느낌, 깊은 감동에서 울어나는 것이라 함을 깨달았으리라. 그러나, 시를 빚게 하는 마음의 깊은 느낌(감동)이 이내 시가 되지 않는다.
그 느낌을 암탉이 알을 품듯, 마음에 두고 두고 간직하면, 그 감동이 시를 낳게 한다.
그러므로, 시는 짓는 것이나 쓰는 것이기보다 낳는다.
이것은 시를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말이다. 시야말로 감동이 낳게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묘한 말이다.
그럼, 여러분의 동무가 지은 두 편의 시를 어느 것이 좋은 작품인가 살펴 보기로 하자.
장독 뒤에 숨었길래
불러 봤지요.
닭의 볏을 닮아서
깜짝 속았지.
맨드라미꽃·유인자
땅 속엔 땅 속엔
누가 있나 봐.
손가락으로
쏘옥 올려미나 봐.
쏘옥 모란꽃 새싹이 나온다.
쏘옥 할미꽃 새싹이 나온다.
땅 속엔 땅 속엔
누가 있나 봐.
커다란 솥을 걸고
물을 끓이나 봐.
모락모락 아지랑이
김이 나온다.
땅 속엔 누가 있나 봐·국정교과서에서
첫째치는 "새벗" 잡지에 실린 광주 수창초등학교 3학년생이 지은 것, 다음 것은 6.25 전에 "소학생"이라는 잡지에 실린 현상모집에 일등으로 뽑힌 것.
"맨드라미꽃"을 뽑은 선생이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맨드라미꽃"은 꼭 껴안고 깨물어 주고 싶게 귀여운 작품입니다. 선자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 보았습니다.
"장독 뒤에 숨었길래…"
첫 줄에 벌써 마음이 기뻐집니다.
과연 선생 말대로 "맨드라미꽃"이 닭의 볏 같아서 꼬꼬하고 불러보는 그 마음씨가 귀엽고, 비로소 깜박 속은 것을 깨닫는 그 사실이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적은 느낌 한 가닥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그것으로서 그치고 만다.
자세히 보니, 닭의 볏이 아니고 맨드라미꽃이었군!
하고 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땅 속에 누가 있나 봐"는 그런 허술한 감동이 아니다.
새싹이 쏘옥쏘옥 나오고,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는 봄날 들판에 "누구가 땅 속에 있나 보다" 여기는 그 누구를 하느님이라 생각해도 좋고, 여러분을 어머니가 낳으셨듯, 겨우내 새싹을 품안에 부등켜 안고 있다가 봄날이 되어 날이 따뜻할 무렵에 땅 위에 쏘옥 내미는 "새싹의 어머니"라 생각해도 좋다. 그분에 대한 감탄과 감사의 뜻이 깊이 스몄다.
더구나,
쏘옥 모란꽃 새싹이 나온다.
쏘옥 할미꽃 새싹이 나온다.
라는 구절의 "쏘옥"이라는 말에 얼마나 깊은 느낌이 스몄는 것이냐. 그래서, "맨드라미꽃"에서 보다 감동이 크고 넓다.
이것은 중요한 일이다. 참으로 감동이 크면 클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좋은 시가 된다.
어느 외국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야말로 사랑이다."
라고, 큰 감동은 사랑에서 울어나는 것이며, 감동 속에 사랑이 깃들여 있다.
시는 마치 우리들이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시를 느낄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아름답고 맑은 것으로 포근히 싸안아 주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시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시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깊은 생각 속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린 우리를 안으시고 맑고 청명한 아침 절에 뜰을 서성거리며 혹은 어두운 밤에 머리맡에서 불러주시던 자장가와 같은 것이다. 그 자장가야말로 우리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듣게 된,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시다.
시작법·무로오
위에서 동시야말로 어린이의 맑고 아름다운 마음에 가장 깊은 느낌― 감동이 낳는 것이며, 또한 감동이 크면 클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좋은 시가 되고 사랑이 크면 클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감동이 깊고 크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그럼, 첫 대목에서 "연꽃"을 두고 물은, 세 가지 질문을 살펴 보자.
첫째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라는 첫 줄에서
"부시시 깨지요"가 무슨 뜻이냐?
물론, "해만 뜨면 연꽃송이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을 왜 "부시시 깬다"고 표현했을까?
만일, 여러분에게 동생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밤새 칭얼거리거나. 보채는 일이 없이 색색 잘 자고, 아침에 해가 뜨자, 눈만 쓱쓱 부비며 슬며시 일어나는 그 귀여웁고 착한 모습을 보게 되리라. 그 때, 그 "슬며시 깨서 일어나는 것"을, "부시시 깨지요"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라는 구절은, 그 귀엽고 착한 동생에게서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연꽃송이에서 느낀 것이다.
이 한 구절 속에 얼마나 "연꽃"을 지은 분의 넘치는 사랑이 깃들여 있는가. 그분에게는 "연꽃송이가 피는 것이 아니라, 귀엽고 착한 어린이가 해만 뜨면 슬며시 일어나듯 했다. "연꽃"이 좋은 시라는 까닭이 첫째 여기에 있다.
둘째,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라는 "세수를 안 해도 곱다"는 뜻이 뭐냐?
물론, "연꽃" 송이가 깨끗하게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것을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라고 표현한 것에 어린이다운 느낌이 절실하다. 세수를 해야 비로소 얼굴이 참 예쁘다 하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칭찬을 받는 어린이만이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라는 말의 그 놀랍게 고운 것을 짐작하게 되리라.
동시는 어린이 여러분의 시다.
그러므로, 이 "연꽃"에는 어린이의 생각과 느낌이 솔직히 나타나 있다. (아동들의 생활 감정이 여실하다)
시야말로, 자기가 느낀 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동시는 여러분의 시다. 여러분 마음에 느낀 것은, 어른들과 다르다. 다르면 다를수록 좋은 동시가 된다.
물아,
고마운 물아,
불을 꺼 주는
고마운 물아,
불아,
고마운 불아,
물을 데 주는
고마운 불아.
물과 불·윤석중
불을 꺼 주니 물은 고맙고, 물을 데 주니 불은 고맙다…. 이것을 어른들은 아주 싱거운 이야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이 싱겁다고 여기는 것에 이처럼 깊은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어린이다운 높은 감동의 세계가 있는 것이며, 이 동시가 동시로서의 값어치가 있다.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울 때
맨드라미 빨강비로
앞마당을 쓸어라.
걸음마·윤석중
이 작품에 대해서, 나는 어느 글에 "안마당에 무지개가 어리도록 신비스럽게 아름다운 시"라고 말했다. 어린 아기들이 정성껏 맨드라미 빨강비로 쓴 마당의 정결함이란 비할 데 없다. 그 정결한 마당에 첫걸음을 배우는 아기의 아장거리는 모습과 첨으로 검은 흙에 발자국을 남기는 첫발자국의 깊은 뜻과 인상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도 "맨드라미 빨강비"라는 어린이만이 느낄 수 있는 한 마디 말에 있다.
여러분은 자기의 느낌을 올바르게 헤아려, 자기 생활에서 느껴지는 것을 잡아야 한다.
셋째,
"연꽃은
해만 뜨면…"과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하고 어떻게 다르냐의 문제, 이것은 좀 여러분이 깨닫기 어려울 것이다. 연꽃은 보면 볼수록 더 아름다워 뵈고, 더욱 사랑스러운 마음이 높아지는 그 느낌과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해만 뜨면 부시시 깨는구나 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써 "연꽃"을 보면 볼수록, 아아 참으로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맑고 깨끗하게 예쁘구나! 여겨지는 연꽃에 대한 감탄이 차차로 세차고 높아지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엄마,
엄마 엄마,
어느 것이 더 어머니를 간절히 부르는 소리냐? "연꽃은"과 "연꽃은 연꽃은"도 마찬가지 이치다.
그러나, 시야말로, 우리의 느낌을 느낌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연꽃"에서도 연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놀라움과 사랑스러운 마음이 차차로 세차게 높아지는 것을 첫 줄에는 '연꽃은"하고, 다음에 "연꽃은"을 되풀이해서 나타내었다.
세 가지 질문의 대답이 끝났다. 동시야말로, 어린이 여러분만이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맑고 아름다운 감동을 감동으로서, 느낌을 느낌으로서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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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처럼―권달웅(1944∼ )
가랑잎 더미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훤한 하늘에는
감이 익었다
사랑하는 사람아
긴 날을 잎피워온
어리석은 마음이 있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아
해지는 하늘에
비웃음인듯 네 마음을
걸어놓고 가거라
눈웃음인듯 내 마음을
걸어놓고 가거라
찬서리 만나
빨갛게 익은 감처럼
이 시는 일종의 그림이다. 그림에서 아랫부분은 땅이다. 땅은 넓고 서리가 내려서 하얗다. 그림의 윗부분은 하늘인데 가을 하늘이라서 높고도 파랗다. 그리고 그림의 중간에,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한 그루 감나무가 서 있다. 감나무에는 잎이 없고 오직 빨간 감만 매달려 있다. 잎이 없는 탓에, 하늘이 파랗고 땅이 하얀 탓에, 이 빨간 감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풍경에서 감나무는 사람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나무가 사람이라면, 감나무에 달린 감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가을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름의 부산했던 마음, 어리석고 미련했던 마음을 다 버려야 하는 계절인 것이다. 오직 하나의 감만 남는 것처럼 중요한 것을 되찾는 계절이어야 하는 것이다. 빨갛게 익어가는 과일처럼 눈길도 깊어지고 마음도 깊어져 세상의 진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시인은 단순한 풍경을 보여 주었지만 그 안에 가을의 진짜 의미가 꽉꽉 들어차 있다.
곧 서리가 내릴 것이다. 따뜻한 외투와 든든한 울타리가 부족한 상실의 시대에 벌써 추위가 다가온다니 걱정이 앞선다. 가뜩이나 마음도 춥고 스산한 시대라서 추위가 달갑지 않다.
그런데 이런 찌푸린 표정으로 가을과 겨울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세상과 마음에 서리가 내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레 분노하고 움츠러들 수만은 없는 일이다. 원래 우리의 가을은 이렇게 서럽고, 반갑지 않고, 걱정스러운 가을이 아니었다. 시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가을은 가치 있었다. 품위 있는 국화가 향기를 전하고, 추수의 결실에 대해 감사하며, 깊어가는 세월에 고개 숙이던 시기였다. 이렇게 스산하고 쓸쓸한 것은 우리 가을의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