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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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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격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ㅡ이창배 교수  다음에 인용하는 김소월의 걸작으로 애송되는 [초혼]의 경우도 감격적 어조가 두드러진 시이다. [초혼]이란 말 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난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죽은 애인을 못 잊어 비탄에 잠겨 절규한다.  죽은 이가 과연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절규를 통해 슬퍼서 몸부림치는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처절하게 호소해온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않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이해가 가지만 원숙한 시인은 그 감정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않고 내적인 감정을 외적인 장면이나 사물로 객관화한다.  이 점에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지만 [진달래꽃]은 훨씬 잘 쓴 시라 하겠다.  [진달래꽃]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애인과의 이별 장면이 제시된 것은 틀림없다.  이 장면을 통하여 전통적인 한국 여인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 정확히 구상화된 점에서 이 시의 작품성이 높이 평가된다.  이 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초혼]에 제시된 것과 같은 애인의 죽음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感傷에 흐르지 않고 구상화되자면 시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가를 유사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한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무치게 그리운 여인이여, 당신은 어떻게 내게 말을 하는가요.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니라고,  나에게 전부였던 그 당신이 변했던 시절, 그때가 아닌  우리 사이가 아름다웠던 처음 그때와 같다고 말하는군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로 당신인가요. 그렇다면 봅시다.  내가 집 근처에 다가들면 늘 기다리고  서 있던 당신의 모습, 그래요, 그때 내가 보았던  그 상쾌한 하늘색 가운까지도 똑같은 당신의 모습을.  아니면, 이 목소리는 축축한 초원을 가로질러 무심히  이쪽으로 불어오는 미풍에 불과한가요.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파리한 불가해한 것으로 변하여  이 근처 어디서고 다시는 안 들리는군요.  그래서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낙엽은 여기저기 떨어집니다.  바람은 북쪽에서 가시덤불 사이로 가냘프게 스며들고,  여인의 부르는 목소리.  이 시를 보면 하디에게는 죽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이가 좋았던 시절에 그녀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다정한 아내였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 아내가 죽으니 이제 생시의 원망과 그리움이 한 데 뒤섞여 못 견디게 보고 싶어 한다. 환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이 이 짤막한 한 편의 "극"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  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감정을 인물과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감정의 절제를 기하여 낭만적 한탄과 초월에서 벗어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극적 수법이다. 엘리엇은 잘 씌여진 시는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서정시라도 극적이지 않은 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테니슨의 시보다 예이츠와 하디의 시가 잘 쓴 시이고, [초혼]보다 [진달래꽃]이 잘 쓴 시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서정주의 [부활]이란 시도 김소월의 시, 하디의 시와 같은 주제를 다른 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만이냐.  그날 꽃상여 山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江들은 또 몇 천 리, 한 번 가선 소식없던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되는 애들 -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수야! 수야! 수야! 너 이젠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군나.  이 시에 등장하는 "수야"라는 아이가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가릴 필요가 없고, 아마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나이에 죽은 여자아이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이 아이가 죽은 뒤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어서 그 모습이 늘 눈에 밟혀 종로 바닥을 걸으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그 애가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명랑하고 맑은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수야에 대한 사무치게 그리운 심정이 부활의 사상으로 바뀌면서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도, 애절한 감정의 표출도 없이 장면과 이미지만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         아버지 자랑 ― 임길택(1952∼1997)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우리들은 아버지 자랑이 무엇일까 하고 오늘에야 생각해보면서 그러나 탄 캐는 일이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고 누가 먼저 나서나 몰래 친구들 눈치만 살폈다 그때 영호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술 잡수신 다음 날 일 안 가려 떼쓰시다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교실 안은 갑자기 웃음소리로 넘쳐 흘렀다     장소는 탄광촌.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위치한 초등학교의 교실이다. 어느 날, 새 선생님이 오셔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말했다. 여기서 잠깐, 부디 이 선생님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자. 그는 아이들의 배경과 재력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은 착하디착한 시인 선생님,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광부의 아이들이다.   난생처음 아버지 자랑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우리 아버지는 뭐가 잘났을까. 요새 초등학생들 같으면 남한테 질세라, 사실에 허풍을 보태서 목청껏 떠들 텐데 이 아이들은 주저주저했다. 내 아버지의 잘남이 네 아버지의 잘남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 아버지 자랑이 곧 내 자랑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는 아이들이다.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이 아이들은 너무나도 순수하다.       영호가 내놓은 대답이 특히 엉뚱하고 귀엽다. 숙취에 시달리며 바가지 긁히는 일이 아버지가 잘하시는 일이란다. 이 아이는 얼마나 진지한지, “떼쓰시”는 아버님 자랑에 꼬박꼬박 높임법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는 오해하기 쉽다. 직책 높고 돈 많은 아버지가 있다는 말일까. 대단한 아버지와 귀한 자식의 집안 자랑을 들어야 한다는 말일까. 그런데 읽어 가다 보면 굳었던 마음이 풀리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아버지’와 ‘자랑’. 이 두 단어의 조합에 왜 우리는 지레 움츠러들었던 것일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버지 자랑도 있는데 말이다. 
감격조의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ㅡ이창배 교수  다음에 인용하는 김소월의 걸작으로 애송되는 [초혼]의 경우도 감격적 어조가 두드러진 시이다. [초혼]이란 말 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난 후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례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시인은 죽은 애인을 못 잊어 비탄에 잠겨 절규한다.  죽은 이가 과연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절규를 통해 슬퍼서 몸부림치는 시인의 비애의 감정이 처절하게 호소해온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않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이해가 가지만 원숙한 시인은 그 감정에 매달려 몸부림치지 않고 내적인 감정을 외적인 장면이나 사물로 객관화한다.  이 점에서 같은 시인의 작품이지만 [진달래꽃]은 훨씬 잘 쓴 시라 하겠다.  [진달래꽃]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애인과의 이별 장면이 제시된 것은 틀림없다.  이 장면을 통하여 전통적인 한국 여인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 정확히 구상화된 점에서 이 시의 작품성이 높이 평가된다.  이 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초혼]에 제시된 것과 같은 애인의 죽음에 대한 비애의 감정이 感傷에 흐르지 않고 구상화되자면 시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가를 유사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한 편의 시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무치게 그리운 여인이여, 당신은 어떻게 내게 말을 하는가요.  지금의 당신은 이전의 당신이 아니라고,  나에게 전부였던 그 당신이 변했던 시절, 그때가 아닌  우리 사이가 아름다웠던 처음 그때와 같다고 말하는군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로 당신인가요. 그렇다면 봅시다.  내가 집 근처에 다가들면 늘 기다리고  서 있던 당신의 모습, 그래요, 그때 내가 보았던  그 상쾌한 하늘색 가운까지도 똑같은 당신의 모습을.  아니면, 이 목소리는 축축한 초원을 가로질러 무심히  이쪽으로 불어오는 미풍에 불과한가요.  당신의 목소리는 이제 파리한 불가해한 것으로 변하여  이 근처 어디서고 다시는 안 들리는군요.  그래서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낙엽은 여기저기 떨어집니다.  바람은 북쪽에서 가시덤불 사이로 가냘프게 스며들고,  여인의 부르는 목소리.  이 시를 보면 하디에게는 죽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이가 좋았던 시절에 그녀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멀리 집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다정한 아내였음을 또한 알 수 있다.  그 아내가 죽으니 이제 생시의 원망과 그리움이 한 데 뒤섞여 못 견디게 보고 싶어 한다. 환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끌려 비틀거리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시인의 외로운 심정이 이 짤막한 한 편의 "극"을 통해서 잘 전달된다.  이 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감정을 인물과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감정의 절제를 기하여 낭만적 한탄과 초월에서 벗어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극적 수법이다. 엘리엇은 잘 씌여진 시는 아무리 짧은 한 편의 서정시라도 극적이지 않은 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의 초보자들이 개척해야 할 부분이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테니슨의 시보다 예이츠와 하디의 시가 잘 쓴 시이고, [초혼]보다 [진달래꽃]이 잘 쓴 시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음에 인용하는 서정주의 [부활]이란 시도 김소월의 시, 하디의 시와 같은 주제를 다른 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너를 찾아왔다. 수야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니.  수야, 이것이 몇 만 시간만이냐.  그날 꽃상여 山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江들은 또 몇 천 리, 한 번 가선 소식없던 그  어려운 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되는 애들 -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수야! 수야! 수야! 너 이젠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군나.  이 시에 등장하는 "수야"라는 아이가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가릴 필요가 없고, 아마 "열아홉 살 쯤 스무 살 쯤" 나이에 죽은 여자아이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이 아이가 죽은 뒤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어서 그 모습이 늘 눈에 밟혀 종로 바닥을 걸으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그 애가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명랑하고 맑은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수야에 대한 사무치게 그리운 심정이 부활의 사상으로 바뀌면서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도, 애절한 감정의 표출도 없이 장면과 이미지만으로 잘 전달되고 있다.   ===================================================================================       첫눈 ―박성우(1971∼ ) 첫눈은 강물에게로 가서 강물이 되었다 첫눈은 팽나무에게로 가서 팽나무가 되었다 강물도 팽나무도 되지 않은 첫눈을 맨손으로 받고 맨손으로 모아, 꽁꽁 뭉친 첫눈을 냉장고에 넣었다 긴긴 밤 시를 쓰다가도 긴긴 밤 외롭단 말을 하려다가도 냉장고 얼음 칸을 당기면 첫눈 내리던 희푸른 밤이 찾아왔다 자울자울 졸던 강 건너 먼 불빛은 첫눈 내리는 강물을 찰바당찰바당 건너오고 눈발은 팔랑팔랑 팽나무 가지를 흔들어 깨운다     ‘첫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온다. 처음인 데다 다시는 없을 일이니 아련하고 소중하다. 첫사랑만 그럴까. 첫 만남, 첫아기, 첫 직장. 이렇게 처음과 함께하는 많은 단어들은 떨리는 설렘을 전해준다.       첫눈이 내렸다. 많은 ‘첫’ 번째 일들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존재하는데, 첫눈이라는 말은 매년 쓸 수 있다. 첫사랑은 매년 돌아오지 않지만, 대신 첫눈은 매년 다시 내린다. 물론 올해의 첫눈은 작년의 첫눈과 다르다. 그래도 첫눈이라는 말을 매년 되풀이할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마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깨끗하고, 선하며, 반갑고, 신비하다. 덕분에 우리는 매년 첫눈 오는 날에 깨끗하고, 선하고, 반갑고 신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박성우 시인의 ‘첫눈’은 이 느낌을 고요하게 간직하고 있다. 특히나 첫 구절이 가슴에 꽂힌다. 첫눈이, 요정이나 사람처럼 강물에게 가서 조용히 두드린다. 그리고 가만히 녹아들었다. 첫눈이, 말없는 팽나무를 찾아가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가만히 팽나무에 스며들었다. 눈송이가 사라지는 순간이 이렇게나 섬세하다.   시인은 눈 뭉치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강물과 팽나무와 눈이 내리던 밤을 기억한다는 말이다. 이 모두가 시인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 그의 마음 안에서 눈이 내렸고 강물이 흘렀고 팽나무가 자랐다. 그러니 눈을 넣어 둔 곳은 냉장고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일 것이다.   올해 우리의 첫눈은 끝났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 언제든 첫눈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직도 ‘찰바당찰바당’거리는 강물에 있고, ‘팔랑팔랑’대는 팽나무 가지 사이에 있다. 조금 억지를 부려보자. 첫눈이 닿은 모든 것이 깨끗하고 선하며 반갑고 신비하다. 
48    [시문학소사전] -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기법 댓글:  조회:5967  추천:0  2016-12-18
과 의 차이점과 정의 종종 비문학 지문이나 작품으로 등장해 학생들을 애먹이는 기법의 예술이 있죠. 바로, '자동기술법' 내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불리는 방법입니다. 논리적인 사고에 의한 혹은 시간 순으로 배열된 서사를 꾸려나가는 대신 생각나는 그대로 중구난방의 단어와 문장이 이리저리 배치되어 있지요. 인간의 생각은 정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배열이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기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 기법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자동기술법'은 작가가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이고 '의식의 흐름 기법'은 작중 인물 혹은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입니다. '주체'에서 차이가 나죠. 자동기술법은 직접 '작가'의 내면을 그려보인다면 '의식의 흐름'은 작중 인물을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자동기술법은 주로 '시'에서 많이 쓰인다면 의식의 흐름 기법은 소설 등에서 "내적 독백" "무의식적 기억" 등의 용어로 쓰이곤 합니다. 이러한 기법은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문학과 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동기술법으로 유명한 작품은, 이상의 를 들 수있겠구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유명한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 의식의 흐름 기법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감각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사고, 기억, 연상 등과 뒤섞인 인물의 의식의 흐름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인물의 무한한 사고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연속적인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의 절친한 친구 박태원(월북작가)의 소설 에서 ‘구보’의 의식은 도시를 배회하는 동안 비논리적이고 충동적이며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사건이나 어떤 사물을 보면 그것에 의해 어떤 연상이 떠오르고, 그렇게 촉발된 연상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이상의 의 시 하나를 읽어보겠습니다. ^^      建築無限六面角體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Ⅻ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어-의내부의도어-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積荷)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이끼치는일이다) 라지에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바이 바깥은우중.발광어류의군집이동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냅시다! ==================================== 1. 의식의 흐름   1) 잠재 의식, 심층 심리의 이미지, 내면 세계의 미학, 내면 세계의 질서를 창조   2) 객관적 공간과 객관적 시간의 무시간적 질서를 뒤엎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성(공시성), 즉 초현실주의적 새로운 질서를 창조. 다시 말하면 시간, 공간의 제약성을 초월하고 잠재의식의 세계를 형상화함.     [예] 유리시즈, 젊은 예술가의 초상(제임스 조이스), 등대에(버지니아 울프)          날개(이상) 2. 자동 기술법   1) 기성적 문장관에 대한 부정 정신에서 비롯됨   2) 기성적 문장의 질서, 즉 문장, 어절, 단어 등의 구별을 위한 규범적 문법 등을 부정하고 표현은 오로지 작가의 판단에 비롯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문장관을 실천에 옮김   [예] 유리시즈        이상의 모든 시 자동기술법 무의식의 창조적 힘을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1924년 이래로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시인들이 사용한 기법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회화기법. 자동묘법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사용한 기법으로 20세기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의식의 흐름기법 개인의 의식에 떠올라 그의 이성적 사고의 흐름에 병행하여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시각적·청각적·물리적·연상적·잠재의식적인 수많은 인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의식의 흐름이란 소설에서 사용되는 기법 중에 하나인데 작가가 여러가지를 미리 생각하고 반복해서 수정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어내려가는 것 대표작 이상의 날개 *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시의 표현법이며 '의식의 흐름'이란 심리 소설의 표현법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 소설에서 사용되는 서술기법의 하나. 개인의 의식에 떠올라 그의 이성적 사고의 흐름에 병행하여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시각적·청각적·물리적·연상적·잠재의식적인 수많은 인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1890)에서 처음 썼다. 20세기에 심리소설이 발전하면서 일부 소설가들은 이성적인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 전체를 포착하고자 했다. 풍부하고 빠르며 미묘한 사고의 활동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단속적이고 일관성없는 생각들과 비문법적인 구문, 언표(言表) 이전 단계에 속하는 사고, 심상, 언어의 자유연상 등을 도입했다. 의식의 흐름 소설은 일반적으로 내적 독백의 서술적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 예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Ulysses〉(1922)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인 레오폴드 블룸, 몰리 블룸, 스티븐 데들러스의 내적 상태를 복잡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그밖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일찍이 의식의 흐름을 사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 전의 빈의 분위기를 재현한 작품인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구스틀 대위 Leutnant Gustl〉(1901)와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1929)가 있다. 〈음향과 분노〉는 콤슨가(家)의 세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해 일어나는 단편적이고 인상적인 반응들을 기록하고 있다 (→ 내적 독백).   이상(以上)은 백과사전에 나온 설명입니다. 이렇게 보니 무슨 소린지 어려워보이는데.. 사실은 간단합니다..^^ 의식의 흐름이란 소설에서 사용되는 기법 중에 하나인데 작가가 여러가지를 미리 생각하고 반복해서 수정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어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따라서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어내려가 때문에 작가 또는 서술자의 내면 심리 상태나 생각을 좀 정신없이..^^;;..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손이 가는대로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죽 적어내려가는 것이므로 문장과 내용이 일관성 없고 횡설수설 했던 말 또하고..그런 느낌도 나죠 기본적으로 문법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의 문장을 실험하기도 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의 글을 (형태적인 측면에서...띄어쓰기 무시. 행 무시. 매우 짧은 형태의 문장. 문법 무시 등) 쓰죠. 대표적인 작가로 이상을 들 수 있어요.. 이상(李箱)의 날개 읽어보셨나요.. 거기에 보면 대부분이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으로 소설이 구성되죠.. 사건이나 갈등보다 주인공의 생각에 중점을 둡니다. 오상원의 유예라는 작품도 그런 쪽인데..한번 읽어보세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이 나올때에는 항상 자동기술법이라는 말이 붙어 나옵니다. 자동기술법...말 그대로 자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이다..라는 뜻이에요... 손 가는대로 펜이 움직이는 대로 써내려갔다 라는 뜻이죠...^^ ============================== 초현실주의 ( 超現實主義 surrealism / surrealisme ) 꿈과 무의식 세계. 환상 세계.   - 대표 작가 - 샤갈, 미로, 에른스트, 마그리트,  달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에 쉬르나튀랄리슴[超自然主義]이라는 명칭을 생각했으나, 철학용어로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여 초현실주로 고쳤다고 한다.  미술사에서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도,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르동, 데 키리코(De Chiroco,1888~1978)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이들은 무의식이 프로이트의 이성의 통제를 뛰어넘어 잠재된 충동과 상상의 세계를 해방시킨다는 학설을 원용하여 자동기술법에 의한 다양한 기법을 개발했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은 자동기술적인 글을 썼고,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 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화와 조각의 복잡한 기법들은 순수한 자동기술법에 의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작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발견 된 오브제'와 꿈이 강조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과거에 꿈을 그린 그림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즉, 꿈의 공간의 단순한 재생산 (예컨대 탕기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듯)과, 논리적으로 서로 상관이 없는 대 상들을 암시적으로 병치해 꿈의 특정한 감성적 특질을 전달하는 것과의 차이 점이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은 비기능적이거나 전혀 기능성이 없으면서도 정 교하게 구성된 물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상을 그들의 규범적인 대에 서 끌어내려 진열함으로써 다다이스트인 뒤샹과 피카비아의 방법을 이어받고 있다.  비논리적인 병치의 방법은, 환상의 구조에 객관적 실재의 환영을 보여하 려했던 19세기 후반의 아카데믹한 그림이나, 라파엘 전파의 매우 섬세한 양식 과 유사한 사진기술과의 결합 속에서 달리와 마그리트에 의해 특히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혼란스러운 인상은 사실주의적 처리와 비현실적 주제 사이 의 대조에 의해 강화되었다. 달리, 만 레이, 한스 벨머 그리고 다른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막연한 잠재의식 연상을 유발시켜 다양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법을 개발하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하여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寫實)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마송, 미로, 에른스트의 작풍(作風)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기성의 전통·질서에 대한 파괴운동이었던 만큼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理念化)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한 개의 화면을 완벽한 평면으로 보는 관점이며, 일찍이 세잔이 추구한 원근법이라든지 전경·후경의 배치와는 별도의 구성, 별도의 공간개념을 필요로 하였다.  초현실주의 공간은 많은 경우, 상상적 공간이며 비현실의 공간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간접적으로 입체주의의 계열을 잇는 공간파악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그러한 조화·통일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의 자아는 밝음과 어두움의 두 부분으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보아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인 V.위고는 그의 데생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여류작가 G.상드가 풍경화 속에다 이끼나 꽃 같은 것을 붙인 것도 일종의 콜라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무형체를 지향하였다.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 회화·사진·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도밍게스의 데칼코마니, 에른스트의 프로타주, M.레이의 레요니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R.마그리뜨에 이르면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법에 있어서의 데페이즈망과 정신에 있어 그것이 초현실주의의 최대의 표현기능인 것이다.   1. 초현실주의 선언(I) : 1924  1924년 10월 앙드레 브르통은 정식으로 < 초현실주의자 혁명> 지를 통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브르통은 " 초현실주의여, 친애하는 상상력이여, 우리는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우리를 열광시키는 단 하나의 말,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하고 말하면서 상상력과 과거의 인습과 의식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과 함쎄 초현실주의 미술은 막스 에른스트를 비롯하여 마송(Andre Masson,1896~1987)과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가 참여하면서 활발히 전개된다. 마송은 르네상스시대 화가인 웃첼로와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시작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비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자동기술을 작품제작에 도입한다.    1924년 전후에 스페인 화가인 미로는 '배고픔 때문에 생겨난 환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로의 그림은 클레(Paul Klee,1878~1910)의 간결한 기호적 풍경에 환상을 접목시킨 또다른 현실의 모습이다. 한편 1924년에는 에른스트의 초기 대표작인 < 꾀꼬리에 위협받는 두아이> 가 제작된다.     2. 초현실주의 선언(II) :1925~1929  1925년은 부르통의 주선으로 파리 피에르 화랑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공동전시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기도 한 해이다. 비록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으나 키리코를 비롯해 에른스트, 마송, 미로와 다다이스트 만레이, 장 아르크 그리고 피카소까지 참여한 대규모 초현실주의 전시로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다.    한편 1925년 8월 10일 프랑스 프르닉 바닷가에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하여 초현실주의 미술에 새로운 표현으로 주목받게 된다.  문지르기라는 프로타주(Frottage)기법은 '객관적 우연'의 이미지를 탄생시키며, 초현실적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 무의식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프로타주 기볍은 이성이나 취향, 생각 등의 의식적인 행위를 배제하는 것이다. 또한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을 화가의 의식과 활동을 최대로 제한하면서 자동적인 정신반응을 표현하려는 미술에 있어서 '자동기술법'이라고 말한다.    1928년 에르스트가 프로타주 작품을 연작으로 제작할 때 , 미로와 마그리트(Rene Magritte,1893~1967)의 등장이 주목된다. 미로는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단순한 정밀 묘사직인 그림에서 벗어나 문자나 알아보기 힘든 기호들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린다.  마그리트는 벽지 제조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926년 브뤼셀에서 메장스나 르콩트, 폴 누제 등의 문학가들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하고 1927년 이후 파리에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준 이미지의 우연한 만남이나 환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한편 1929년 12월 15일 브르통은 '제2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다. 이것은 초현실주의를 단순한 예술사조로 발전시키기보다 정치, 사회의 연결된 혁명으로 전개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은 작품제작이나 미의 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각되지 못한 것과 예술의 미개척 분야를 밝히고 정치적, 사회적 혁명사상을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첨차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러한 선언과 별개로 자신들의 독자적 성격을 갖고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초현실주의 운동과 거리를 두게 된다.   3. 후기 : 1930~1938 1930년 '편집광적 비평(paranoia critic)'이라는 방법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스페인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1904~1989)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정치나 사회적 성격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주제들로 , 극사실적 묘사에 의한 정신병자의 편집광적 심리가 나타나는 초현실주의 회화를 탄생시킨다. 초현실주의 오브제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을 제자한 작가는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4~1966)이다.    그는 1931년 < 흔적의 시간> 과 1932년 < 새벽 4시의 궁전> 이라는 조각적 입체 작품을 만들어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가로 주목받게 된다.  1936년 5월 22일 파리 샤를르 라통 갤러리에서 열린 < 오브제의 초현실주의전> 은 여러가지 초현실주의 오브제 미술의 유형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일상적 오므제를 비롯하여 상상의 오브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갖추며,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은 이제 유렵에 국한시키지 않고 미대륙과 오세아니아에서 발견된 오브제들로 영역을 확장하고 한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의 활발한 오브제 작업과 함께 평면작업에서는 1937년 카나리아 제도의 떼네리프 출신 오밍게즈(Oscar Dominguet, 1906~1958)가 '데칼코마니(decalcomanie)'라는 기법을 만든다.  2차 세계대전 바로 직전이 1938년 1월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열린 '초현실주의 구제전'의 개회는 대규모의 마지막 초현실주의 전시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미술의 종언을 예고한 듯 이 전시는 기존의 미술과 전혀 다른 무질서와 몽상적 환상의 축제로 이루어진다. '초현실주의 국제전'은 전재잉 임박했을 무렵인 1938년 유럽의 분위기와 너무 흡사한 기괴함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전시였다.  초현실주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이성이나 객관성에 의한 현실을 부정하면서 삶을 바탕으로 한 비이성적인 것과 주관적인 자세를 요구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꿈이나 환상보다 상상력에 의해 초현실세계를 그린 것이다. 1966년 앙드레 브르통의 죽음으로 초현실주의는 막을 내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파로서의 초현실주의는 일단 이론적인 면에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미학적인 면에서의 영향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   데페이즈망(전치)이란 : 사물을 원래의 익숙한 장소에서 이탈시켜 전혀 뜻밖의 장소로 옮기거나, 혹은 전혀 뜻밖의 어울리지 않는 대상과 충격적인 구도로 결합시켜 비논리적인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법.            
47    [시문학소사전] - 자동기술법이란? 댓글:  조회:4810  추천:0  2016-12-18
요약 무의식의 창조적 힘을 예술로 표현하기 위해 1924년 이래로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시인들이 사용한 기법.   1920년대 초현실주의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로베르 데스노스, 루이 아라공, 필리프 수포 등은 최면상태에서 시를 쓰려고 애썼으며 검열이나 공식적인 발표를 시도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연쇄적인 정신적 연상을 기록했다. 브르통 (André Breton) 프랑스의 시인, 수필가, 평론가 데스노스 (Robert Desnos) 프랑스의 시인 이 시인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렇게 표출된 상징이나 이미지가 비록 의식에 반해서는 낯설거나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인간의 무의식적인 심리 상태의 기록이므로 본래 예술적 의미를 가진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초현실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자동기술'에 의한 저술방법 중에서 지속적인 가치를 갖는 것은 거의 없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자동기술법은 훨씬 창조적인 수단이었다. 특히 앙드레 마송, 아실 고르키 및 막스 에른스트는 시각적 자유연상 상태에서 의식적인 억압없이 제멋대로 그려진 환상적이며 에로틱한 이미지를 실험한 바 있다(→ 에른스트, 마송). 그 이미지들은 애초에 마음에 떠오른 상태 그대로이기도 했고 화가가 의식적으로 다듬은 것이기도 했다. 자동기술적 소묘와 관련된 것으로 그림의 창작과정에 우연을 도입하기 위해 에른스트가 고안한 기법들이 있다. 그중에는 캔버스나 종이를 나무나 다른 물체 위에 놓고 흑연으로 문질러 나뭇결을 표현하는 '프로타주', 뾰족한 도구로 캔버스 표면의 물감을 긁어냄으로써 촉감을 주는 '그라타주', 2폭의 캔버스 사이에 점성이 있는 물감을 놓고 압착시킨 후 다시 떼어낼 때 생겨나는 물감의 번짐이나 기포 등을 이용하는 '데칼코마니' 등이 있다. 이러한 기법에 의해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들은 불완전하고 암시적인 상으로 끝나거나 그에 대한 화가의 직관적 반응에 따라 마무리되기도 한다. 프로타주(frottage) 동전 프로타주 1946~51년 폴 에밀 보르두아, 알베르 뒤무셸, 장 폴 무소, 장 폴 리오펠을 포함한 일군의 캐나다 출신 화가들이 '자동기술파'라는 명칭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자동기술법을 실행에 옮겼다. 1950년경부터는 일명 액션페인터(→ 액션 페인팅)라고 불리는 일군의 미국 화가들이 자동기술법을 수용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하여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마송·고키·에른스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마음의 상태를 추상적인 화폭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잭슨 폴록, 윌렘 데 쿠닝, 프란츠 클라인, 잭 투어코프 및 브래들리 워커 톰린은 캔버스에 그림물감을 임의로 떨어뜨리거나 자유롭고 제멋대로 붓놀림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했다. 이러한 방법은 작위성을 제거하고 화가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근본적으로 창조적인 본능을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자동기술법은 액션페인팅의 쇠퇴와 함께 점차 사라졌지만 그후 현대회화에서 기법상 주요목록을 차지했다(→ 액션 페인팅). ============ 사람들은 초현실주의의 초기를 라고 부른다. 여기서 은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를 말한다. 아니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수면의 상태는 단순히 가 아니다. 그것은 잠이 든 것도 아니고 잠에서 깨어나 있는 것도 아닌 몽롱한 어떤 중간상태이다. 물론 이러한 상태는 맨정신에 도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때 그들은 환각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또 최면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왜 초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했을까?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의 세계가 아닌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다.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 미학이나 윤리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한 원시적 상태. 선입견이 없고 고정관념이 없는 상태. 그들은 바로 그러한 상태에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러한 글쓰기를 통하여 의식 저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원시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들은 바로 이렇게 글을 쓰는 방법을 이라고 불렀다.   자동기술법은 반(半)수면상태 또는 반(半)환각상태에서,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다. 일체의 주변 현실로부터 벗어나서, 가능한한 외부로 열려있는 감각의 문을 모두 닫고, 이성과 의식마저 잠재운 채 오로지 오직 무의식이 내뱉는 목소리에만 귀를 가울였다. 그들이 경청한 것은 오로지 무의식의 사유일 뿐이다.    고대에 델포이 신전의 무녀들은 신탁을 받기 위하여 반환각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환각상태에서 자신도 모르는 말을 중얼거렸다.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은 마치 무녀가 신탁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마치 영매술적 글쓰기 같다. 그렇게 받아적은 글은 마치 정신병자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독백과 같다. 구문도 엉망이고 단어와 단어의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우연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난시(亂視) 현상의 세계같다. 그들은 이렇게 적은 글이 을 그대로 표출한다고 생각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러한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의식으로 접하는 현실이 낡은 관념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현실은 오랜 세월 동안 조작되고 왜곡된 낡은 관념체계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그들은 바로 이성의 통제하에 낡은 관념으로 무장한 인위적인 세계를 파괴하고자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자 한다.            [출처] 자동기술법 (Ecriture automatique)|작성자 행운메이커     =============================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작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빈 여백에 도대체 뭣부터 채워나가야 좋을까, 의자에 앉으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고민만 하다보면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있고 결국 좋은 글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노력한 데 비해 좋은 글이 나오지 않으면 점점 글쓰기가 싫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고민만 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글을 너무 잘 쓰려 애쓰면 좋은 글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뭐든지 일단 한번 적어보는 것이 좋은 자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일단 적으라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적으라는 거지? 정말 그냥 적어??하고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도 적잖아 있을 거라 사료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 글에선 여기에 대한 좋은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Automatism) 초현실주의자들이 개발한 글쓰기 기법으로서 나의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아무 꾸밈 없이 그대로 받아적는 행위를 말합니다. 정의만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 ​제 자동기술법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다 읽을 필요는 없으며, 이런 방식으로 행하는 거구나 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정말 오랜만의 자동기술법이다. 몇 년 전에 하고 그만두었나? 기간은 모르겠다. 지금 쓰고 있기만 하면 완벽한데 뭐 굳이 이유를 덧붙여 글을 만들어야 하겠는가. 나는 자동기술법이 좋다. 무의식의 생각을 현재의식이 받아적는다는 것이 획기적이다.   우리는 무의식의 논리적 사고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무의식의 사고 과정은 현재의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재의식은 이런 잠재의식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잠재의식을 이해 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로?? 영원히?   답은 모른다. 자동기술법은 그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데로 쓰는 게 전부다. 여기에 대해 구태여 답을 보태고 무언가를 쓰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내 무의식의 생각을 쭉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나올까? 그것도 모른다. 다만 이 방법이 작문 시간을 단축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에세이, 역시 글을 쓰는 건 어렵다. 이렇게 문법이나 글 자체를 신경쓰지 않고 글을 적어 내려가니 마음이 편하다. 항상 이렇게 생각 없이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자동기술법의 가장 좋은 장점은 프리 라이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데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빈 여백에 글을 쓰려하면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무조건 적어내려가야 한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자동기술법은 참으로 선한 기법이다. 정말로 선하다.   글을 써 내려간지 벌써 3분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자동기술법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그저 글을 쓰는 게 재미있어진다. 이 기법을 개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왜 이것을 널리 퍼트리지 않았을까? 그 사람들이 퍼트리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 기법이 그저 낙서라고 치부되는 현실에 뭍혀버린 걸까.   글쎄.. 나는 이 분야에 대해 심도있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자동기술법을 하면 잠재의식과 현실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 루시드 드림 카페에 떠돌았던 게 기억난다.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진실일까? 뭐 답을 몰라도 상관 없다. 내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위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글을 쓰다보니 역시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오래 쓰지 않게 된다. 자동기술법에 있어 퇴고란 것은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글이 쓰레기 낙서처럼 보인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주제 하나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대로 적어가는 것이 자동기술법입니다. 위 예시를 보면 아시겠지만 문맥이 엉망인 부분이 많습니다.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글은 문맥에 구애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기법은 내 생각을 형식에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는 프리 라이팅 그 자체입니다.   생각을 그대로 적는 것이기에, 순수한 자동기술법을 행할 땐 절대로 수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 일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줄넘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너무 잼나다 캬캬캬!! 우오아아아아 갑자기 삼겹살 먹고 싶어졌다. 으엥 주제에서 이탈했네 괜찮아 이거슨 자동기술법이니꽈! 다시 이어가면 되지! 어쨌든 그것은 너무 재미 있어서 내 인생을........   (평소 할 일 없을 때 노트에 끄적이던 낙서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네, 자동기술법은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확실한 주제를 하나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엉뚱한 병맛 글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적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맥에 어긋나든 상황에 어긋나든 상관 없습니다. 실제로 이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만 보는 것이니까요.   이런 자동기술법의 목적은 글을 잘 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글을 써내려 가느냐에 있습니다. (물론 작문 실력이 좋아지는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주 목적이 있단 것이지요.)   ​저는 지금 자동기술법을 응용하여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본래 제 글쓰기 속도(형식에 맞췄을 때)로 이 정도 길이면 4시간 정도가 걸렸을 텐데 현재 여기까지 글을 쓰는 데 4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시포함)   이처럼 자동기술법은 에세이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하루에 30분씩만 써내려가더라도 글을 쓰는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특히 제한 시간 안에 목표량을 정하고 자동기술법을 행한다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긴 글을 쓰는 데 익숙해지면 글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집니다. 글이 생각하는 대로 술술 써지게 됩니다.   글이 생각하는 대로 써지면 자신감이 붙게 되고 글을 쓰는 빈도가 늘어나, 실제로 글이 잘 써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실천한 뒤, 작문 실력이 크게 향상된 케이스들이 정말 많습니다.   자동기술법을 사용하는 데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같은 길이의 글을 작성하는 데도 점점 더 빠르고 명료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 자동기술법은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임. 방법은 주제 한 가지를 정해 놓고 적어도 하루 10분 이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면 됨.(퇴고X) ​자동기술법을 자주 연습하다보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작문 실력도 크게 향상됨.   [출처] 글을 빠르게 쓰고 싶다면? 자동기술법을 이용하라!|작성자 키르케   /키르케
46    시의 기원은 노래... 댓글:  조회:3817  추천:0  2016-12-18
200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 중 시인들이 뽑은 노래 7수;ㅡㅡㅡ 시의 기원은 노래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평소 시를 교과서적인 것으로 느끼고, 어렵다고만 생각해 왔다면,  노래 또한 시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한 가족이라고 생각 해 보고, 시 또한 노래와 같은 감각으로 감상해 보라고 권유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면, 평소 우리가 듣던 노랫말들에 대하여 시적인 감각으로 들어보아도 좋겠지요.   7위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입니다. 이민하 시인은 언어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미적 논리를 챙기고, 무심하고 담백한 노랫말이 짧은 봄날의 햇살 같은 청아한 목소리에 실려서 더 애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랫말을 공허하지 않은데,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슬픔보다는 아름다움이 담긴 노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다시 닿을 때까지 슬픔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긴 여운을 무심히 끌고 간다고 했습니다.   6위는 홍대 인디밴드로 유명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입니다. 이라는 시집을 쓴 김현 시인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다 알지 못하게 만드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5위는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입니다. 성기완 시인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에 대해 얌전한 십대라고 해서 반항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며, 달달한 모던락속에 숨겨진 반항적 에너지를, 서정성을 잃지 않은 채 잘 들려준다고 했습니다. 조숙한 아이의 못됨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고도 말했습니다. 4위는 루시드폴의 ‘물이 되는 꿈’ 입니다. 이우성 시인은 루시드폴에 대해 힘을 빼고 쓴 가사가 좋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물이 되는 꿈과 나의 하류를 지나 온 것 같은 경우가 잘 맞아 떨어진다고 했는데요, 많은 말을 하지 않아, 단순하고, 반복되며, 이미지가 굉장히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확장하고 다채로운 색들을 상상하게 된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3위는 김광진의 편지입니다.   이우성 시인은 ‘편지’가 이별의 감정을, 눈물을 흘리며 담담하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별은 하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그러한 사랑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2위는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입니다. 신해옥 시인은 이 노래에 대해 ‘선처럼 가만히 누워, 선처럼 가만히 누워, 그저 선처럼 아슬아슬하게 가늘어지고 싶은 기분, 그런 방에는 에테르가 가득하고. 볼 수 없는 것 닿을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보일 듯, 닿을 듯, 만져질 듯, 반투명하게 떠다니겟지’ 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혼자 누워서, 함께 누워 듣는 것만 같은 판타지가 필요할 때엔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했는데요.   대망의 1위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입니다. 이민하 시인은 이 노래에 대하여 사소한 노랫말에서 오는 감동은 그것이 몸의 언어일 때 가능하며, 언어의 짜임새가 느슨하지 않은 것도 정교한 감성이 노래에 맺혀져 있어서 라고 했습니다. ‘몸에서 맺혀진 눈물처럼 종이 위에 맺혀진 글자들이 새벽의 어둠을 통과하는 중이다. 라며 깊고 서늘한 무채색의 읊조림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절묘하게 빚어냈다고 했습니다.   카카오뮤직과 문학과 지성사가 함께한, 시인들이 뽑은 노랫말이 아름다운 7곡! 잘 감상하셨나요? ================================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닿지 않는 천장에 손을 뻗어보았지 별을 진짜 별을 손으로 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너의 앞에 한 쪽만 무릎꿇고 저 멀고 먼 하늘의 끝 빛나는 작은 별 너에게 줄게 다녀올게 말할수 있을 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볼 수 없는 것을 보려 눈을 감아보았지 어딘가 정말로  영원이라는 정류장이 있으면 좋을텐데 그럼 뭔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과  시들지 않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우리 영원까지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45    시 = "최초의 궁리" + "가장 오래한 궁리" 댓글:  조회:3584  추천:0  2016-12-18
  함께 하는 눈, 멀리 보는 눈 -문태준의 시들을 중심으로  1.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전문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가 따스하게 읽히는 것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들의 삶을 긍정하고 포용하고 있기에 점점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 안쪽에 두 눈이 달려 있는 의 눈은 작지만 멀리까지 내다본다는 휴머니즘의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의 한 특성은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고 현재에 보다 관심을 둔다. 자본주의는 과거에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도 각종 사건에 대해서도 전염병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미래에 일어날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인구문제에 대해서도 종교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대신 오늘, 어떻게, 최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 만약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회사의 사장이 미래를 내다본다고 단기간 내에 이익을 남기지 않는 경영을 했다면 그 사장은 주주들로부터 당연히 해고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장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투자보다도 현재의 이익에 지식과 정보와 전략을 투자하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근시안과는 대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에서의 시간은 현재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어 멀기만 한 것이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시인은 의 오솔길과 뻐꾸기 소리를, 가는 국수를 삼던 저녁을,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까지 생각하고 있다. 현재는 그 과거의 토대 위에 성립되어 있어, 는 상황이나 라는 인식이 그러하다. 이러한 시인의 눈길은 미래의 상황까지, 즉 의 상황까지 내다본다. 그리하여 라는 상황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숙연함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이 시인의 원시안에는 자본주의의 속도가 들어 있지 않다. 앞으로 앞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달려가는 자동차와 같은 자본주의의 속도는 없고 가난하지만 삶의 무게를 지니고 한발씩 걸어간 한 인간의 발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재미」에는 인간의 유대감이 들어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대신하는 공동체 의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는 라는 시인의 행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내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의 상황에서는 한층 더 결속력과 친밀감이 느껴져 강한 휴머니즘을 갖는다.  자본주의의 근시안은 이기적인 행동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탐욕을 드러내어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고 대출이자율을 높인다. 보다 많이 소유하고 보다 많이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제1원칙이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부의 분배에 대한 불균형은 문제 삼지 않고 적자생존의 원칙만 내세우고 적용한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그와 같은 자본주의의 상황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원시안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2.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가 뛰어난 점은 시 형식의 면에도 있는데, 우선 좋은 비유의 사용을 들 수 있다. 는 모습을 같다는 비유가 그 단적인 모습인데, 에 이르러서는 좋은 비유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문태준 시인이 구사하는 좋은 비유는 2003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서 시인 및 평론가들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선정한 「맨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맨발」 전문  어물전에 있는 가 바깥으로 몸을 내보인 모습을 로 비유하고 있는 작품인데, 그 세계인식은 깊고도 넓다. 시인은 부처와 그의 제자 迦葉과의 깨달음을 담은 槨示雙趺를 인유한 을 비롯하여 , , , , 등의 비유를 통해 힘든 삶이지만 품고 나아가야 하는 우주 만물의 운명을 잘 그리고 있다.  비유는 상관없다고 여기거나 구별된다고 여기는 대상들로부터 유사성을 발견해내는 인식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편리나 편견에 의해 이 세계의 대상들은 배제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해서 동일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비유는 조화의 추구이고 대립적인 대상들을 포용함이다. 따라서 비유에는 자본주의의 속도가 들어 있지 않고 대신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들어 있는 것이다.  3.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가 형식적인 면에서 뛰어난 또 다른 점은 작품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고 있는 詩行의 사용에 있다. 시인의 리듬인 시행이 독자의 리듬인 律行보다 길기 때문에 시는 장중하고 사색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동체 인식과 멀리 내다보는 눈길은 느리지만 길기만 하다. 만약 「가재미」의 시행이 지금보다 짧았다면 인간의 삶과 죽음과 그리고 그 힘든 노정에 대한 사유의 깊이는 훨씬 감소되었을 것이다.  파운드(E.Pound)가 정의했듯이 현대시는 논리시(logopoeia)의 성격을 갖는다. 논리시는 음악성을 통하여 직접 호소력을 지니는 음악시(melopoeia)와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회화시(phanopoeia)보다 언어의 이지적인 면을 중시한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다양하고 급변하는 이 자본주의 시대를 음악이나 시각의 차원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자세로 시의 대상들을 담아내야 하는데 작품의 주제를 살리는 시행의 사용도 그 일환이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좋은 비유와 아울러 적절한 시행의 구사로 인해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을 무게 있게 담고 있다. 그리하여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한 이 자본주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4.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문태준, 「산수유나무의 농사」 전문  문태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맨발』에 수록되어 있는 시편들은 시적 자아가 이 세계와 동화(同化)되어 있다는 면에서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시적 자아가 이 세계의 대상들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에 이어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그와 같은 인식의 표상이 "그늘"이며 "그림자"라는 점이 주목된다. 세속적인 삶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나 정신주의 시와는 다르게 이 세계를 내적 체험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늘"이며 "그림자"는 "촌로"와 같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모, 이발사며, 그들의 "주름"과 "쓸쓸함"(슬픔, 서글픔, 서러움), 그리고 "저녁(밤)"과 동일체를 이루고 있다. 선택의 거리가 발견되지 않을 만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늘과 그림자는 촌로며 주름살이며 쓸쓸함이며 저녁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유기관계의 존재로서 서로는 서로를 낳고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작품들은 이 세계의 대상들을 포용해서 단순한 총합 이상의 의미를 낳는다.  위의 작품에서 시인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인 "산수유나무가" 틔운 "노란 꽃"이 아니라 "산수유나무"의 "그늘"에 있다. 그렇지만 일방적으로 그 "그늘"의 이미지와 색감과 정감의 세계로 기울지 않고 있다. 시인은 밝음과 어둠, 하늘과 땅, 높음과 낮음, 육체와 마음, 좁음과 넓음 같은 이분법으로 산수유나무의 본령을 구분 지어 파악하지 않고 결합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라거나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의인화한 것이 그 모습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산수유나무를 "그늘"과 "노란 꽃(좁쌀)"이 동일화되어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와 같은 모습은 다음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암내 난 들고양이는 우는 아가 소리를 업고 집채의 그늘을 짚으며 돌아나간다(「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  이제서는 수령이 꽤나 되어서 깊은 그늘을 데리고 사는 감나무 터가 말하자면/아버지가 찾던 우물 자리였는데(「우물이 있던 자리」)  깊게 파인 눈두덩 같은/살구나무 그늘이며 깊은 못가를 지나갑니다/당신을 위해 상여를 멈추었다 갑니다/죽음은 달그림자가 못에 잠기는 것/젖을 듯 말 듯 산그림자 속으로 당신은 잠기어갑니다(「당신이 죽어나가는 길을 내가 떠메고」)  갈참나무의 그림자들이 비탈로 쏟아지고 있다(「그림자와 나무」)  산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었습니다(「따오기」)  빛보다 그림자로 더 오래 살아온 것들이 내 눈 속에 붐벼(「반딧불이에게」)  저 멀리서 밀려오는 산그림자를 마중 나가본 지도.(「봄날 지나쳐간 산집」)  입동 지나고 차가운 물고기들은 생강처럼 매운 그림자를 끌고(「나무다리 위에서」)  못자리 무논에 산그림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물처럼/한 사람이 그리운 날 있으니(「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당신의 눈에서 눈으로 산그림자처럼 옮겨가는 슬픔들(「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밑줄은 필자가 친 것임)  들고양이가 우는 아가의 소리를 업고 집의 그늘을 짚으며 돌아나간다, 살구나무의 그늘이 눈두덩 같다, 산그림자가 서서히 따오기의 발목을 흥건하게 적시는 저녁이다, 갈참나무의 그림자가 비탈에 쏟아지고 있다, 물고기들이 생강처럼 매운 그림자를 끌고 간다 등은 시인이 이 세계의 대상들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맨발』에는 촌로와 그들의 주름살이며 슬픔이며 그리움이며 그리고 어두워지는 저녁이 깊은 우물처럼 짙지만 결코 암울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희망적이거나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대상들과 함께하기에 따스하고 넉넉한 것이다.  5.  『맨발』에 수록되어 있는 시편들은 시적 대상들의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서정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세계의 대상들을 서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순간의 결정체(結晶體)로 품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비가 오려 할 때」 전문  위의 작품에서 서사적인 모습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서사를 이루기 위한 플롯도 등장인물도 드러나지 않고 "비가 오려 할 때"의 상황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순간의 정경, 순간의 인물, 순간의 행동, 순간의 정서가 도드라지는 것이다. 시인은 그 순간으로 영원함을 추구하고 있다. 시간의 가치를 연속적인 차원에 두지 않고 또한 영원이란 현재로부터 먼 거리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찰나의 지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가 오려 할 때"의 순간들은 무게를 지닌다.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의 상황은 분량보다 무거운 것이다. 이는 이 세계 전체를 간파할 수 없으므로 한 순간을 최대한 품겠다는 시인의 솔직하면서도 적극적인 세계인식의 모습이다.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한 호흡이라 부르"(「한 호흡」)는 것이다.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역전 이발」 전문  "역전 이발"이라는 한 공간에 시인의 많은 체험들이 축적되어 있다. 현재라는 시인의 의식 속에 수많은 과거의 체험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상황이 줄거리로써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밀도 있는 이미지로써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지만 시인의 "역전 이발"에 대한 추억은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다. 그리움의 촉수를 그곳에 뻗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인연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그곳의 역전 이발소와 곱사등이 이발사를 현재 의식에 담고 있어,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나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한 순간이 따스한 추억으로 빛난다. 손님과 곱사등이 이발사, 마른 모래와 한 송이 꽃, 흐린 물빛과 공중의 향기 등이 합일되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살내를 풍기는 것이다.  "나는 대청에 소 눈망울만한 알전구를 켜 어둠의 귀를 터준다"(「저녁에 대해 여럿이 말하다」),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맨발」), "매미의 뱃가죽보다 많이 주름진 그 소리들을 사랑하였다"(「가죽나무를 사랑하였다」), "작은 다리 아래서 뱀의 차가운 허물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동천(東天」), "내 숨결이 꺼져가는 화톳불같이 아플 때/머위잎처럼 품어주던,/몸에서는 가뭄 끝 개울 물비린내 나던 고모"(「화령 고모」)와 같은 비유와 의인화되어 있는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성숙한 인간 정신으로 이 세계의 그늘이며 그림자를 가족처럼 고우처럼 그리고 동지처럼 품고 있는 것이다.  * 맹문재 (시인/평론가/안양대학교 교수)   ============================================================================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1950∼ )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 어둠 속에 있어 보아야 한다. 둘, 추위를 알아야 한다. 셋, 우러러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 시인은 아주 추운 어둠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온기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가난했고, 죽을 것만 같았다. 두려웠고, 절망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별’이 있었다.       이 발견은 시인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별과 눈이 마주친 순간,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 어떤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롱하고 찬란한 눈빛이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시인은 어둠과 추위를 극복하게 된다.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시인은 외로움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정호승은 따뜻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추운 날,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핫팩과도 같다. 핫팩은 작지만 우리 손을 녹여 줄 수 있다. 손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놓인다. 추운 시간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오늘은 이 따뜻한 시를 꺼내, 당신의 찬 손에 쥐여 주고 싶다. 지금은 별이 없는 시대, 별이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대. 별을 진짜 보았다는, 시인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손을 녹여 보자. 주머니 속의 온기가 하늘의 별이 되는 기적을 상상해 보자. 
44    [시문학소사전] - 중국 현대시 류파에 관하여 댓글:  조회:2625  추천:0  2016-12-16
중국에서 현대시라고 하면 주로 1919년의 5.4운동 전후부터 시작해서 개혁개방시기까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유파는 주로;ㅡ   상식파: 현대시를 시험삼아 햇던 사람들의 무리, 호적, 유반농, 유평백 등을 대표로   문학연구회 파:  빙심, 로신, 주작인, 주자청 등을 대표로,   창조사: 곽말약과 성방오를 대표로,   호반파: 왕정지, 응수인, 풍설봉을 대표로,   신월파: 서지마, 문일다를 대표로,   상징파: 이금발, 풍내초를 대표로,   현대파: 대망서, 변지림, 하기방, 서지, 풍지 등을 대표로,   7월파: 애청, 우한, 전간, 호풍을 대표로,   중국신시파: 목단, 정민을 대표로,   사회주의 현실주의: 공목, 하경지, 곽소천 등을 대표로,   현대파: 기현, 양환을 대표로,   남성사: 여광중, 하청 등을 대표로,   창세기: 낙부, 양목을 대표로,   몽롱파: 북도, 서정, 고성, 망극 등을 대표로(개혁개방초기부터, 즉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신현실주의: 엽연빈, 이소우를 대표로,   신변새시파: 창요, 양목을 대표로,   신성사작: 해자, 낙일화 등을 대표로(1970년대 중/ 후반부터)등 이 외에도 원명원, 그들, 망한주의, 비비주의, 지식분자사작, 신 향토주의 등 많습니다.  
43    문학을 일상생활속에서 이어가는 삶은 아름답다... 댓글:  조회:2310  추천:0  2016-12-15
      후베이(湖北) 우당산(武當山) 우둬펑(五朶峰) 자연보호구 내 취안전관(全眞觀)촌에서... 우리는 왜 문학을 갈망하는가 / 이향아 (시인, 호남대교수)  * 글쓰기와 말하기  문학과 생활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인간의 생활, 그 체험을 표현한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을 나누어 가지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말로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하지만 글로 전하기도 하는데 삶의 체험을 글로 만들어 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말로는 할 수 있어도 글로 쓰지는 못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은 아마도 글을 쓰는 일에 겁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겁을 먹게 되는 것은 글쓰기와 말하기가 전혀 다른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와 말하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글은 쉬워진다.  * 시는 배워서 무엇하나  공자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하루는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시는 공부해서 무엇합니까? 그러자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小者 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 草木之名  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위의 공자의 말을 통하여 문학을 왜 공부하는가 그 의의를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게 된다.  詩可以興은 시가 가히 흥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흥을 일으킨다는 말은 '흥분', 즉 감정의 충일상태를 지향한다는 말이다. 너무 흥분하는 모습도 세련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흥분을 잘 하는 사람치고 순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무감동한 사람의 모습을 비인간적이라고 하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을 목석같다고 한다. 감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무감동한 것은 비정적인 것이다.  詩可以觀이란 시가 가히 보게 한다는 말이다. 즉 시를 공부함으로써 사물을 인식하게 한다는 의미다. '본다'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시각적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말이다. 모른다는 말을 '어둡다', 혹은 '캄캄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알게 되었다는 말을 '눈을 떴다'느니 '훤하다'느니라고 말하며, 글을 모르는 사람을 '文盲者'라고 하여 소경맹자를 쓰는 것을 보아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본다는 말과 안다는 말을 동일시하고 있다.  可以群은 무리를 지을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무리를 짓는다함은 여럿이 어울리고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말이며 여럿이 어울리고 더불어 살 수 있으려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양보하면서 타인과 조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홀로 완전하고 홀로 똑똑하고 홀로 뛰어났다고 자부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단련된 인격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可以怨. 원망할 수 있다함은 감정의 정직한 표현이 가능함을 말한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일은 어렵다. 칭찬하기는 오히려 쉽지만 솔직하게 원망하기는 망설여진다. 그러나 시를 알면 투명한 감정표현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그것은 시인 정서의 자유분방함, 정서 표현을 중시하는 시인의 특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邇之事父 遠之事君. 가까이는 부모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혈육이다. 혈육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멀리 인금을 섬긴다는 말은 반드시 왕정시대의 임금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가원수도 되고 위대한 사람에 대한 경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원수를 존경할 수 있는 국민들은 행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多識於鳥獸 草木之名.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안다는 뜻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관심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의미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내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를 알면 사랑이 충만해져서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된다. 새로 반편성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고 있을 때의 그 황홀했던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학기도 넘게 지난 다음에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문득 '야, 네 이름이 뭐지?'라고 물었다면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절망적인 일로 남을 것이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시를 공부하는 일은 사물의 이치를 알게 하고 충일한 정감으로 인간과 사물을 사랑하여 서로 어울리며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문학이 무엇인지 몰라도 살 수는 있다. 오히려 문학을 알고 살면 다정다감함으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깊이 생각하고 오래 음미하고 유심하게 사물을 대함으로써 같이 지내는 사람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을 알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문학은 필요하다.  * 창작하는 문학, 감상하는 문학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일에는 겁을 먹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감상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시적 표현을 하면서 산다. '우리는 모두 삼류시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겨우 삼류 시인밖에 되지 못한다는 비관의 말이 아니라 삼류일망정 이미 시인의 계열에 올랐다는 말이다. 우리는 보통의 일상생활에서도 시적인 비유와 상징을 즐겨 쓰고 있다. 돌아다보면 우리들 할머니나 어머니가 시적인 표현을 했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색으로 표현하는 사물.......... 새빨간 거짓말. 까맣게 몰랐다. 보랏빛 꿈. 싹수가 노랗다. 푸른 희망. 회색분자. 검은 거래. 분홍빛 편지. 핑크 무드. 속이 놀놀하다.  신체로 표현하는 감정........... 그녀와의 이별이 가슴 아프다. 그 사람이 잘 되니 배가 아프다. 이제는 손을 씻었다. 미국과 손을 잡았다. 발이 되어 일하다. 너 목이 몇 개냐. 너무 콧대가 높다. 눈이 높아 탈이다. 간덩이가 부었다. 쓸개도 없냐. 귀가 여려 잘 속는다.  동물로 표현하는 감정.......... 쥐새끼 같이 잘 빠져나간다. 까마귀 정신. 개코도 아닌 소리. 호랑이 없는 산에 토끼가 선생. 여우같다. 곰처럼 미련하다. 돼지같이 잘 먹는다. 참새처럼 재잘댄다. 잉꼬부부.  문학을 한다고 하면 창작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직접 창작하는 것도 문학이지만, 남의 작품을 감상할 줄 아는 것도 문학적 능력이다. 전문적으로 남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를 논평하는 사람을 비평가라고 한다. 여러분들이 연속극을 보고서 그 연속극 재미있더라 혹은 재미없더라 느낌을 표현한다면 그 자체가 비평이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도 우리는 솔직한 느낌을 표현함으료써 비평적 논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삼류시인일뿐만 아니라 일류 비평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게 된다. 비평하는 독자가 우수하면 창작하는 사람이 정신을 차려서 수준 높은 작품을 발표하려고 노력하게 되지만 독자가 그렇지 못하면 작가가 태만해질 수 있다. 특히 현대는 좋은 작가보다 오히려 좋은 독자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누구나 무대로 나가서 연극의 배우로 주인공의 역할을 담당하려고 할 뿐 아무도 관객이 되려고 한다면 결국 연극은 망하게 된다. 독자가 없는 소설가나 독자가 없는 시인은 존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평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작가가 되고 싶어 열렬히 요구한다면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1) 언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 감각을 키워라.  '새빨갛다'와 '시뻘겋다'의 차이를 알아야 되고 '야들야들하다'와 '유들유들하다'의 차이를 아는 것이 언어감각이다. 언어감각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예민하다.  '네가 와 주어야겠어'와 '너라도 와주어야겠어'는 다르다. 떠나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각각 달리 말할 수 있다.  많이 생각날 거야.... 늘 생각나겠지.... 못견디게 생각나겠지.... 미치도록 생각나겠지. 죽도록 생각나겠지(그립겠지, 보고 싶겠지)  위의 말은 뒤로 갈수록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아무 대상에게나 '미치도록 생각나겠지'라고 말할 수는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것을 잘 구별하는 것이 언어감각이다.  (2) 가슴에 불씨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불씨라는 것은 사물과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이다. 불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순간 의미 있는 사물을 만났을 때 가슴에 뜨거운 전율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가슴의 불씨에 불이 번지는 순간인 것이다. 가슴에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수시로 감동할 수 있다.  잎이 다진 감나무 가지에 단 한 개 남아 있는 빨간 홍시. 은행잎이 떨어져 쌓인 포도. 저녁나절 남편이 끄는 수레 위에 올라 미소 짖는 배추장수의 아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껌을 팔고 있는 초라한 노인.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가슴 속 남아 있는 불씨에 불을 당길 수 있는 요소다.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그의 가슴은 풍요롭다고 할 수 있다. 불씨가 꺼지면 눈물도 마르고 감동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목석에 가까워진다.  (3) 언어와 문장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우리가 항용 사용하는 말은 문장상의 말과 다르지 않다. 한 때 문장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바로 고전주의적 사고 방식이 그러했다. 특히 시는 고상하게 다듬어진 아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잘가노라 닫지 말며 못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긏지 말며 촌음을 아껴스라  가다가 중지곧 하면 아니감만 못하니라  위의 시조에서 '말라', '아껴스라', '중지곧', '아니감만 못하니라' 등은 문장언어다. 일상적 회화에서는 잘 쓰지 않고 문장에서만 쓴다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낭만주의로 오면서 일상용어가 그대로 시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시네야 가시네야  그믐달밤에  귀촉도 우는 영위에 올라  우리 그대로 돌이나 되자  서러워도 서러워도 그믐달밤에  - 김관식 -  위에서는 가시네라고 하는 비어가 그대로 나온다. 고상한 말만 시의 언어가 된다고 했던 옛날의 생각에 크게 위배되는 표현이다.  (4) 과감하게 첫문장을 끌어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첫문장을 끌어내고 나면 다음 문장 그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독서와 문장연습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장연습은 일기쓰기나 편지쓰기로 할 수가 있다.  * 시(문학)를 가까이 하는 생활  시는 언어를 압축하고 리듬을 맞춘 글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최상의 아름다운 것을 우리는 시라고 한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라는 말은 피아노곡으로 최상의 아름다움을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림도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하면 칭찬이다. 무엇이든지 아름다우면 '그것은 詩야'라고 말한다. 시를 지향하는 마음은 진선미의 상태를 지향하는 상태다.  시의 세계는 군더더기를 다듬어내고 가라앉히고 증류하여 정화한 세계이기 때문에 순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시처럼 아름답지 않다. 문학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이상세계의 표현이다. 있는 세계가 아니라, 있어야 할 세계의 표현인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문학을 가까이 함으로써 그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문학이 우리로 하여금 제한된 현실의 번잡하고 혼란한 와중에서 떠나게 하며, 무한한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文을 중히 여겨서 정치인을 선발했으며, 시문을 짓게 하여 우수한 사람으로 결정하였던 것은 시문의 세계가 선비의 고결한 인격 형성에 큰 영향으로 작용하였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생활 속에 문학을 끌어들이고 문학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이어가는 삶은 아름답다.  _문학강연 초록_   =======================================================================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 노천명(1912∼1957)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닷돈짜리 왜떡을 사먹을 제도 살구꽃이 환한 마을에서 우리는 정답게 지냈다 성황당 고개를 넘으면서도 우리 서로 의지하면 든든했다 하필 옛날이 그리울 것이냐만 늬 안에도 내 속에도 시방은 귀신이 뿔을 돋쳤기에 병든 너는 내 그림자 미운 네 꼴은 또 하나의 나     어쩌자는 얘기냐, 너는 어쩌자는 얘기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남자들만 사회생활을 하던 시대에 노천명은 태어났다. 여자이면서 시인이던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노천명은, 드문 경우니까 기억된다고 말하기에는 좀 아까운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방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자랐고 서울의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시골의 분위기와 서울의 세련됨이 공존하고 있다. 또한 노천명 시인은 스스로를 굉장히 못난 사람이면서 고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결핍과 자기애가 공존한다. 이렇게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시집에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가 많다. 여기 실린 시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시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때 두 사람은 정다운 동무였다. 간식을 사면 나눠 먹었고, 무서운 시간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지금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었다.  이 둘의 싸움은 필요하고 정당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가 미워서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미움은 사람보다 힘이 세서 두 사람의 마음은 병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정다웠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다정한 동무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이제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고 말이다.  지금 읽는 이 시는 한 명의 동무를 넘어서 분쟁과 내전과 싸움과 미움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 수억만 년 전부터 빛나는 별들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으냐고, 별 같은 눈동자와 마음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 않으냐고 말이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수 있고, 또한 해도 되는 세상이길 노천명 시인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42    시가 세상을 외면...??? 세상이 시를 외면...??? 댓글:  조회:2860  추천:0  2016-12-15
            미래파시, 파괴시에 대한 옹호   요즘 시(詩)가 어려워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시인 평론가들조차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다. 한 두 사람 한 두 편의 돌출적인 현상이 아니라, 최근 등단했거나 한 두 권의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뚜렷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시학 11월호, 현대시 11월호에 나오는 , 을 보면 김근, 김언, 황병승의 작품이 올라가 있다. 이들은 모두 , , , , 라 불리는 작품을 쓰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시인들이다.   박현수 평론가는 '포스트 아방가르드의 문법- 잔혹시'라고 명명하고 있다. 주어 자리에 적절한 명사가 없으며, 서술어 자리에 주어와 어울리지 않는 동사가 들어가 있다. 비문 투성이다. 정재학, 김민정, 여정, 김언, 김근, 김참, 황병승, 김이듬, 이민하, 진수미 시인이 선두 주자들이다. 이들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찢김, 뜯김, 잘림, 시체, 분열, 파편, 상처, 무료, 일탈, 거부, 공격, 회의 등 가학과 자학으로 가득 차 있다. 잔혹함을 주된 정서로 삼는다.   세상이 외면하니 시가 세상을 외면하려는 것이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문화적 감성이 변했으니 시도 변하는 것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새로운 문학적 성감을 찾고 달래기 위한 다양한 체위의 변주라는 것이다.   김행숙(35) 시인의 비교적 짧은 시 ‘달무리’를 보자. “그의 진동이 그에게 후광을 만든다. 그가 문둥이같이 뭉개질 때/ 배는 출렁이고 있었다. 내가 깔고 누운 파랑은 나를 통과한 그의 뒤편일까? (중략) 그의 뭉개진 코가 킁킁대며 누구니? 누구니? 묻고, 다시 물을 때// 아으, 부풀어 오르는 한 그루 버드나무.” 그의 시는 이성적 사고체계로 스며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과 느낌, 환상ㆍ분열적 내면 풍경에 철저히 기대고 있는 듯하다. 전통 서정시의 독법에 따라 어떤 의미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무모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2003년 등단한 황병승(35)은 무의식의 시인으로 통한다. 그만큼 모호하고 난해하다는 의미다.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여장남자 시코쿠’) 이 이미지의 분열적 분방함과 해체적 언술을 두고 그는 “새로운 문화현상과 비주류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굳어져버린 주류의 언어와 문법으로 풀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시의 길이 꼬이고 뒤틀리고 갈라지고 끊김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들 시의 메커니즘은 다양하다. 빛이나 공기 입자의 산란처럼 어지럽게 좌충우돌하는 사유의 혼종성, 세계와 자아의 대립과 반영을 넘어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한 현란한 이미지, 성적ㆍ관능적 환상과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상징 등…. 이성과 관념 이전의 원초적 시어들이 은닉하고 있는 ‘무엇’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행숙 시인은 문학적 감성의 변화를 말한다. “어떤 시는 시인ㆍ평론가보다 시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이 오히려 뜨겁게 반응합니다. 폭 넓게 소통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좁은 대신 깊이 소통하는 층이 분명히 있어요.” 그는 그것을 생물학적 세대차이라기 보다는 차별화한 문화체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세대차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듬은 여름호에서 "나는 말쑥하고 균형 잡힌 시를 혐오한다. 안정감 있고 깨달은 자는 침묵하면 좋겠다. … 나는 내가 쓴 시에 관해서 말하기가 뭐하다. 낯설고 잘 모르겠고, 몰라서 쓴다.… ‘노력’해야 한다면 그때는 안녕."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김언 시인은 10월호에서 "시단에서 유일하게 죄악인 것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꼴을 못 보아주는 태도이다. 시적으로 봐도 그렇고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태도다.… 자신 안에 스스로 잡종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권혁웅 시인은 비평집 에서 "아름다움은 움직이는 거다. …최근 시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논거로 삼은 자리는 절대로,항구적인 진리의 자리가 아니다. 차라리 최근 시들이 진리로 간주되어온 그 자리를 비판의 대상으로 겨누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 60년대의 김수영, 80년대의 이성복이 당대 시단에 충격을 준 것처럼, 이들 시가 낯설고 불편한 것은 새로운 미학과 세계관을 한 발 앞서 반영한 것이기 때문........ 먼 훗날, 이들의 작품이 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다르게 말해서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고 그들을 적극 옹호한다.   2003년 김행숙씨의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의 해설에 이장욱(시인ㆍ소설가ㆍ평론가)씨는 “우??도달해가는 현대시의 어떤 징후”라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 바 있다. 이제 그 징후는 좋든 싫든 하나의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최근 젊은 시인들의 경향이 우리 현대시의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지배적 경향을 형성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황현산(고려대 불문) 교수는 “한국 현대시단의 양대 흐름을 형성했던 농경사회적 정서와 도시적 정서의 굳은 틈을 비집고 서울의 하위정서 혹은 지방도시적 정서들이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는 듯하다”며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2~3년 내에 우리 시단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문제와 관련, 그는 “승리한 자의 말은 상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소통되지만, 억압 받는 자는 말 한 마디 하기도 힘들고 하더라도 타박 당하기 일쑤”라며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반드시 소통해야 할 말“이라고 말했다. ■미래파시, 파괴시에 대한 비판 이들 시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문학의 본령이 문자언어를 통한 소통이다. 암호에 가까운 자의적 기호와 자폐적 무의식의 흔적들이 어떻게 문학인지 모르겠다. ⇒환상이 없는 문학은 없다. 두보의 시에도, 카프카의 글에도 환상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는 삶의 리얼리티를 상실한 채 머리(환상) 속에서 떠오른 느낌들을 시적 긴장 없이 풀어놓은 것 같다. ⇒하나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면 참신하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를 형성하는 문법이나 문장을 엮는 방법 등이 흡사하다. 일종의 유행 같다는 생각이다. ■ 커밍아웃 / 황병승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 그러다가 어느 날 / 진수미 유방은 부풀어오른다 터질 듯이 고요한 프로펠러 갈증을 느낀 비행선이 그림자를 몰고 나타난다. 보라색 태양일랑 내가 오려냈다오. 승냥이들이 거품 무는 파도가 쫓아오고 내장 없는 배의 항로를 걱정하는 어머니, 이 배에 앓는 항구가 누워 있어요. 사랑스런 임차인들아, 나는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 있다오. 당신의 장기를 물어뜯는 거리의 개들 적선은 더 큰 바람을 부를 거예요. 소유를 짤랑이는 열쇠와 함께 집달리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냉장고는 머리가 깨져 시큼한 국물을 지리는데 벌레들이 바람의 커튼을 흔들며 날아올라요. 뒤엉킨 서랍의 껍질 벗고 교미하는 실뱀 한 꾸러미, 그들은 신부의 의상을 하고 있어요. ===============================================================     아들에게 ― 문정희(1947∼ )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 이젠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대한민국에는 아주 많은 아들들이 살고 있다. 갓 태어난 아가부터 할아버지까지, 대략 5000만 인구의 반절이 남성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문정희 시인의 이 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진짜로 이해할 사람은 아들들보다는 어머니들이다. 아들의 경우에는 시의 모든 내용이 마음속에 사무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원래 아들이란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할 뿐, 전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어머니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단박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아’라는 첫 구절을 읽는 순간 내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벌써부터 마음이 동요될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이름은 참 간절했다. 그를 위해 기원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절절했다. 어려서는 근거 없이 든든했고, 까닭 없이 사랑스러웠으며, 절대적으로 귀했다. 아들은 커가면서 주로 뒷모습만 보여주었지만 그것마저 사랑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과 시선을 받으며 아들의 어깨는 넓어져 갔다.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그와 나 사이에는 위대한 신이 사는 것 같았다. 이 말에 많은 어머니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아들은 믿고 의지하고 지키는 종교 같았다. 그러니까 아들은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미 거룩한 사람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누구든 귀한 자식이니 세상에 귀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 시를 읽으면 왜 학대나 괴롭힘이라는 말, 가혹 행위나 폭력이라는 행동을 미워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종교 같은 사람이고, 종교 같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까 누구든 함부로 하지 말 일이다.
41    문학은 싸구려 련애질의 방패가 옳다?... 아니다!... 댓글:  조회:3970  추천:0  2016-12-15
  문학은 싸구려 연애질의 방패가 아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 . .] 먼 봉건시대에 "기생 첩을 옆에 끼고” 치마폭에 시를 흘리던 문인들의 생활이 ‘풍류’의 이름으로 미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주색잡기’ 생활이 ‘치열함’의 외피로 포장되던 시절도 있었다. 예술가들의 ‘일탈적’ 삶이 범부들은 감히 흉내도 못 낼 예술가의 특권처럼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이런 풍습이 봉건시대부터 21세기의 현재까지 외피와 강도(强度)만 변한 채 알게 모르게 계속돼 왔다는 사실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서 그간 벌어져 온 온갖 추잡한 성 스캔들들을 다 기억한다. 심지어 ‘영웅호색(英雄好色)’의 분위기마저 있어 성적 일탈은 문인들 사이에 ‘신화’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이제 드디어 이런 시대가 끝장나고 있는 것이다. 먼 과거에서 지금까지 관행처럼 벌어져 왔던 일들이 이제 와 ‘사건’으로 불거 진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을 주권과 인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타자화된 ‘사물’로 대하는 태도의 야만성에 ‘공분(公憤)’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야 우리 사회가 이러한 비판에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도달했고 이것이 소위 ‘시민사회’로서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딘가.   문단 내 성폭력이 더욱 문제인 것은 그것이 소위 ‘문하생’들에게 가해진 ‘갑질’ 폭력이었다는 데 있다. 문하생이라는 명명 자체가 이미 봉건적 위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 단어는 ‘문하(門下)에서 배우는 제자’라는 뜻도 있지만 ‘권세가 있는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문인들이 휘두른 폭력은 그것이 이른바 ‘권력(권세)’의 형태로 가동됐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문단 내 성폭력에 연루된 문인들의 공통점은 문단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하찮은(!)’ 지위를 자랑하며 그것을 빌미로 상대를 유혹·회유·협박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위계와 권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분노하고 앞장서 싸워야 할 문인들이 (보잘것없는) 권세를 역설적이게도 문학(인)에 대해 가장 큰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이들에게 문학은 자신들의 폭력적이고도 봉건적인 사생활을 감추는 ‘알리바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10대 여성들에게까지 자행된 성폭력 앞에 시는 하루아침에 허접스러운 ‘난봉꾼 면허증’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문학(예술)은 모든 형태의 상식과 ‘공리(axiom)’에 대한 도전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름의 혁명성을 갖는다. 누군가 문학을 영원한 ‘아나키즘’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좁은 의미의 정치적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문제의 손쉬운 해결을 거부하는 ‘끝없는 질문태’으로서의 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것은 ‘봉건적 퇴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 도저(到底)한 본성 때문에 문학은 때로 상식을 뒤엎고 공리의 세계와 충돌한다.   세계문학사는 어찌 보면 이런 도전의 역사이다. 그러나 문학인들의 ‘삶’이 저 봉건시대의 오만한 ‘제왕(帝王)’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더 이상 없다. 문인들이 자초해 “제정신이 아니어서 분별력이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시인들)”(플라톤)이 된다면 그들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시인들이 쫓겨났듯이 진리의 나라에서 추방될 것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 송구스럽다. 이것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 담론이 흐트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문학은 싸구려 연애질과 외도의 방패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행위들은 선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소크라테스)    - 기사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문학은 싸구려 연애질의 방패가 아니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출처] [#문단_내_성폭력] 오민석 평론가 "문학은 싸구려 연애질의 방패가 아니다." |작성자 아티초크 출판              녹 - 김명수(1945~)     녹은 칼에 잘 슨다 녹은 새파랗게 갈아놓은 칼날에 잘 슨다 녹은 도끼에도 잘 슨다 녹은 지하실 바닥에 감추어 둔 지난달에 버려 둔 도끼날에 잘 슨다 녹은 저 혼자 힘이 겨우면 습기의 힘을 빌어서도 슨다 공기의 힘을 빌어서도 슨다 칼의 힘을 믿는 순간 도끼의 힘을 믿는 순간 녹은 제 몸과 더불어 칼날을 삭여낸다 남몰래 남몰래 쇠붙이를 삭여낸다                  * 얼마나 다행인가. 폭력을 잠재우는 대립항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안 되면 다른 것의 힘을 빌려서라도 살의를 무력화시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으로도 안 되면 “제 몸과 더불어” 폭력을 삭여내는 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남몰래” 폭력을 이기는 힘이 있다는 것은. ======================================   피아노     이화영       당신은 여든여덟 개의 심장을 가진 나부裸夫다 당신의 떨림이 허공을 흔들 때 파피루스에 흘린 기억들이 번개처럼 사방에 꽂히고, 흑백의 간극이 주는 목마름은 페달의 공명을 타고 숲으로 날아간다   당신 혈관 속으로 흐르는 무수한 音들이 내 심장에 희로애락을 무량하게 무늬 새긴다 당신 생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 손끝이 아릴 때, 당신은 무슨 꽃을 먹고 사나 궁금했다   당신의 내부로 이르는 계단은 처음부터 미로였다 달세뇨, 다시 당신을 더듬어 가는 왼쪽 페달을 밟으면 그믐달이 치맛자락을 끌어 잡고 눈 내린 강변에 미끄러진다   당신의 내장을 긁어내면 돌돌 말린 오선지의 늪이 있어 아직 아가미 한번 벙긋하지 못한 물고기와, 잎을 뚫고 나오지 못한 가시연꽃의 통증이 태초의 소리를 깨우고 있다   .....................................................................................................................................................................................      이 시를 읽을 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op. 57) 3악장을 들어도 좋을 것이다. 여든여덟 개의 건반들이, 심장들이 옷을 벗고 한꺼번에 튀어나올 것이다. 당신의 기억의 밭에 번개처럼 음표가 꽂힐 때, 당신은 소리의 나무가 만든 공명을 타고 숲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얼얼하게 뒤흔든 ‘나부裸夫’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무슨 꽃을 먹고 사느냐”고.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덤으로 보기@@ 다소 처졌지만 짙은 눈썹, 작지만 습기가 고여 반짝이는 눈동자, 앙다문 입술….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얼굴이 아니다.    책의 표지를 한 꺼풀 벗겨내니 드러나는 더 처진 눈썹과 작아진 눈,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입…. 이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다. 책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송해의 고단한 과거와 행복한 현재가 중첩되는 평전 '나는 딴따라다'가 출간됐다.(사진제공=본프리 스튜디오)    책 제목도 저자도 없다.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끌기 위한 화려한 마케팅 문구도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대한민국 남녀노소가 알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의 송해이지 않은가.  “이름 대신 ‘딴따라’로 불린 지 오래됐어요. 아주 오래 전 술자리에서 듣는 ‘딴따라’라는 호칭은 절망의 순간이었죠. 하지만 딴따라는 불어 팡파레에서 따왔다는데…팡파레는 스타 나올 때 울리잖아요. 그런 자부심으로 ‘나는 딴따라다’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2015년 4월 27일 89세 생일을 맞은 ‘전국노래자랑’의 노익장 송해가 평전 ‘나는 딴따라다’를 발간했다.    송해(사진=조세용 작가)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송해 삶의 기쁘고 슬픈 순간을 담은 이 책은 대필작가도 전기작가도 아닌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인 단국대학교 오민석 교수가 집필했다. 형식은 한 인물의 업적과 삶을 기리고 평가하는 평전이다.    그간 무수한 자서전 출간 의뢰에도 손사래를 치던 송해가 책을 낼 결심을 한 데는 오민석 교수의 참여가 컸다.    20년 전 인사동 뒷골목에서 마주치고 낙원상가의 한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채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 그리고 깊이도 지속되고 있다.  오 교수는 4계절 동안 송해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르며 평전을 완성했다. 송해의 삶을 담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될 책은 오 교수의 영미 희곡 혹은 영화의 대본처럼 엮은 구성으로 더욱 흥미로워졌다    이에 ‘송해인척’ 다른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부분은 없다. 50개의 신(#)에는 송해의 지난했던 과거와 행복한 현재가 켜켜이 쌓였고 그에 대한 솔직하고도 깊은 이해와 평이 담겼다.   평전의 주인공인 송해가 “인사말부터 나를 완전히 읽었다”고 평가한 ‘나는 딴따라다’의 저자 오민석 교수는 과거에만 집중하게 되는 연대기식 평전이나 전기의 구성을 과감하게 탈피했다.  우주의 화이트홀과 블랙홀 사이를 연결하는 웜홀처럼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오가기 위한 송해 삶만의 순간들을 알차게도 찾아내 배치했다.    주당으로 소문난 송해와 그런 그로 인해 ‘저승길로 갈 뻔한’ 후배들의 에피소드에서 1927년 4월 27일 송해의 탄생일로, 첫사랑 청옥의 이야기에서 해방을 맞은 청소년기로 자연스럽게도 넘나든다.    고된 유랑 길의 시작을 알린 1·4 후퇴에서 손자와 통화하는 가장 행복한 현재의 송해로 타임워프하기도 한다.    1957년 7월 27일 통신병으로 군복무 중이던 송해는 정전(휴전) 소식을 알렸고 그 선에 막혀 고향을 갈 수 없는 처지에 처했다. 이를 그는 ‘인생의 올가미’라고 표현했다.    마치 한편의 전기영화 혹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가까운 과거에서 좀 더 먼 과거로 오가는 이야기는 ‘살아있는 전설’ 송해를 닮았다.  탄생과 현재까지를 중심축으로 하지만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키며 과거에만 머무르는 인물이 아닌, 여전히 현역인 송해를 평하고 그의 업적을 기린다. 오민석 교수는 “평전은 대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형식이다. 송해 선생은 대중문화 역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 그를 해석하고 연구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더불어 “성공가도만 달려온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다. 송해 선생은 가족과의 생이별을 했다. 어떤 성공도 그걸 보답할 수 없다. 뼈아픈 상처와 궁핍, 이는 그의 개인적인 상처이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다. 독자들이 성공한 현재만 보지 말고 그 저변에 깔린 투혼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사를 쓰면서 대중문화사를 썼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어린 참가자와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자신의 일인양 함께 울고 웃었던 연구자 오민석 교수로 인해 문화자산 송해의 영광 뒤 한숨과 고통, 또 그 안의 호쾌한 모습이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걸 보면 힘든 줄을 몰라요. 얼마 전에 해남엘 갔는데 비가 엄청 왔어요. 그런데도 우비를 입고 객석에서 좋다고 난리인데 저라고 안 할 수 있나요. 그분들이 제 재산인데.” 그는 고(故)정주영 회장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고 평한 ‘사람부자’ 송해다. 가격 1만3800원. 허미선 기자  =============   [출처]  녹 (단국대 오민석 교수) 소개|작성자 다천자  
40    소네트와 세익스피어 댓글:  조회:3154  추천:0  2016-12-14
윌리엄 셰익스피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윌리엄 셰익스피어     출생 1564년 4월 26일 잉글랜드 워릭셔 주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사망 1616년 4월 23일 (51세) 잉글랜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직업 극작가, 시인, 배우 국적 영국 사조 영국 르네상스 연극 배우자 앤 해서웨이(1582-1616) 자녀 수재나 홀 햄넷 셰익스피어 주디스 퀴니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1616년 4월 23일)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작품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셰익스피어 자신도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힌다.[2] 그는 자주 영국의 "국민 시인"과 "에이번의 시인"으로 불렸다.[3] 유년기[편집]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있는 존 셰익스피어의 집,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 중부의 영국의 전형적인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출생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존 부부의 첫 번째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4]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中農)을 겸하였으며, 읍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운이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업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나온 시기는 확실치가 않고 다만 1580년대 후반일 것으로 여겨진다.[5]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4] 셰익스피어는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4]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를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리 뛰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인 벤 존슨은 “라틴어에도 그만이고 그리스어는 더욱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비꼬아내기도 하였다.[4]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4] 그는 다른이들과 다르게 뛰어난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그 자체로부터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끌어모은 자로서 그 세대의 최고의 희곡가라고 불리고 있다.[4] 셰익스피어는 18세의 나이에 26세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우스터의 성공회관구(자치적이고 독립적인 지역 성공회 교회를 일컫는 말)의 교회 법정에서는 1582년 11월 27일에 혼인 허가를 내주었다. 해서웨이의 두 이웃은 결혼을 막을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음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다음 날 보냈다.[6]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세례일과 결혼일을 제외하고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4] 셰익스피어와 앤 사이에서 1583년 5월 23일에 수잔나(Susanna)라는 딸이 탄생한다.[4]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황으로 보아 그리 늙은 신부가 아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연상의 아내를 그리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4] 연상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든 개인적인 성공의 야심에서였든, 아니면 고향에 머무를 수 없을 만한 사고를 저질렀든, 셰익스피어는 1585년에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다.[4] 1585년 이후 7∼8년간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4] 다만 1590년경에야 런던에 도착해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4] 런던과 극작 활동[편집] 런던에 이주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고 있던 수도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4]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이 통치하던 이 시기의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대단히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4] 런던은 인구의 급격한 팽창으로 도시는 지저분해지고 많은 문제점이 야기된 도시였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경제 활동,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빈번한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4]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기록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적어도 1592년에는 런던에서 알려진 극작가 중 하나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가 대학도 마치지 못한 학력으로 인해 품격이 떨어지는 연극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7] 1594년부터 셰익스피어는 당시 런던 연극계를 양분하는 극단의 하나였던 궁내부장관 극단[8]의 전속 극작가가 되었다.[5] 1599년 궁내부장관 극단은 템스 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신축하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후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극단은 국왕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전후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과시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두 편의 장시(長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의 활동기는 1590년 ∼ 1613년까지의 대략 24년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 희·비극을 포함한 모두 38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4] 셰익스피어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인기는 더해 갔다.[4]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4]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한다.[4]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생전의 엘리자베스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경우에도 셰익스피어 한명만은 못 넘긴다." 이었다. 말년과 죽음[편집] 셰익스피어에 대한 첫 번째 전기를 출간한 작가 로우(Rowe)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몇 년전에 고향인 스트랫퍼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10] 그러나 당시에 모든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일은 보기 드문 경우이었고,[11] 말년에도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계속 방문하였다.[10] 1612년 그는 마운트조이의 딸 메리의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받았다.[12] 1613년 3월 그는 과거에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소 수도원 이었던 문루(gatehouse)를 사들였고,[13] 1614년 11월에는 내과 의사이자 그의 사위인 존 홀과 함께 몇 주간 런던에 머물러있었다.[14]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장례 기념물 1606년에서 1607년을 지나면서 셰익스피어는 몇 편 안되는 희곡을 썼으나 1613년 이후에는 그의 창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15] 그가 마지막으로 쓴 세 편의 희곡은 아마도 극작가인 존 플레쳐와 함께 창작한 것으로 보이며,[16] 존 플래쳐는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왕의 부하들을 위한 실내극을 창작한 인물이었다.[17] 셰익스피어는 1616년 4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18] 유족으로는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 수잔나는 내과의사인 존 홀과 1607년에 결혼하였으며,[19] 쥬디스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두 달 전에 포도주 제조 업자인 토마스 퀸네이와 결혼하였다.[20] 자신의 뜻에 따라 셰익스피어는 갖고 있던 많은 부동산을 큰딸인 수잔나에게 물려주었다.[21] 유언장에 따르면 그녀는 그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녀의 몸에서 낳은 첫 아들"에게 상속해야 했다.[22] 둘째 사위인 퀸네이는 세 자녀가 있었으나, 모두 결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23] 수잔나의 남편이자 첫째 사위인 홀에게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지닌 자녀가 한 명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두 차례 결혼하였지만 1670년에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셰익스피어의 직계는 대가 끊기게 되었다.[24] 셰익스피어는 유언에서 당시 법에 따라 아마도 자신의 재산 중 3분의 1을 물려받을 상속권이 있었을 아내 앤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한 마디를 남겼는데,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나의 두 번째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언급한 침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하였다.[25] 일부 학자는 언급된 그 침대가 실제 물건이 아니라 앤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 말이라고 보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진짜 그러한 침대가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의미있는 유산이었으리라고 믿는다.[26]   셰익스피어의 무덤 셰익스피어는 죽은 뒤에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묻히게 된다.[4] 그의 흉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4]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4] -출처/위키백과   추천추천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운명과 세인의 눈에 천시되어 나는 혼자 버림받은 신세를 슬퍼하고 소용없는 울음으로 귀머거리 하늘을 괴롭히고 내 몸을 돌아보고 나의 형편을 저주하도다 희망 많기는 이 사람 용모가 수려하기는 저 사람 친구가 많기는 그 사람 같기를 이 사람의 재주를 저 사람의 권세를 부러워하며 내가 가진 것에는 만족을 못 느낄때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는 나를 거의 경멸하다가도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첫새벽 적막한 대지로부터 날아올라 천국의 문전에서 노래 부르는 종달새 그대의 사랑을 생각하면 곧 부귀에 넘쳐 내 운명 제왕과도 바꾸려 아니 하노라 윌리엄 세익스피어 (william shakesoeare 1564_ 1616) 세익스피어는 1564년 잉글랜드 중부의 스트래트포드 어폰 에어본에서 출생 영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며 극작가로 평가받는 대문호이다 그가 태어난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영국의 전형적인 소읍이고 아버지 존 세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 공업과 중농을 겸하고 있었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 세 아이를 둔 후 런던에서 극작가 로 활동하며 이를을 떨쳤다 다방면에서 열정적인 문학활동을 펼치다가 1616년 52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사망했다 36편의 비극 희극 사극외 시집과 소네트 집을 남겼다 해설과 감상 소네트라 하면 우리 시인들에게는 생소하다 즉 소네트라는 뜻을 국어사전에서는14행의 시 특히 특수한 운율을 나타내는 작품이라 정의 하고 있다 위대한 시인인 세익스피어는 이 14행의 운율에 맞는 소네트 시집을 출간 했으니 아마 세계에서 흔히 이룰수 없는 업적일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시조의 형태라 할수있다 우리의 시조가 3 4 4 3등 운율과 시어를 격식에 맞게 표현한 것이기에 이 소네트 시는 우리나라의 시조 형태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위의 작품에서 누구나 자기의 생존이 회한속에서 살기에 헛된 한숨 이룰수 없는 꿈에 대한 허망함으로 하루 하루를 영위 한다고 생각케 한다 남이 잘되고 복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시기도 하고 저주도 하며 매도도 하며 살아감을 가슴 아파 한다 이런 비합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생존을 보면서 슬퍼 하기도 하고 괴로워 함을 엿보게 한다 이는 양심이란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성선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것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창공을 훨훨날고 있슴을 연상게 한다 야심도 욕심도 없는 한마리의 새가 되어 멋 지게 창공을 날아가는 새의 기분을 상상해 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무 부러움도 없고 시기도 저주도 없는 무심의 마음 백팔번뇌를 다 잊어버린 무아의 경지는 이 세상 살아감에 무엇하나 부러운것이 있으랴 특히 10행에서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에서 그대는 누구일까 이 그대의 뜻은 많은 음미를 잉태 시킨다 이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또 읽고 음미에 음미를 거듭하며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을 몇번인가 연상했다 또한 법정스님은 얼마나 행복하고 값어치 있는 생존을 영위하고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나의 필을 무디게 했다 끝 =================================== 이를테면 정형시죠   우리나라의 시조는 글자수로 그 형식을 맞추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영시는 율보격이나 두운 각운 등을 통해서 운을 맞춥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시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s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일단 이 시는 총 14연으로 이루어진 소넷(sonnet)입니다. 소곡(小曲) 또는 14행시(行詩)라고 번역한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민요에서 파생된 것이며, 단테나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되었고, 르네상스시대에는 널리 유럽 전역에 유포되었다.  한 편은 4행·4행의 옥타브와 3행·3행의 세스테트로 된 14행시이며, abba/abba/cde/cde(페트라르카 형식) 등 몇 개의 정해진 법칙에 의한 각운(脚韻)을 따라 구성된다. 내용적으로는 서곡(序曲) → 그 전개 → 새로운 시상(詩想)의 도입 → 종합결말이라는 기승전결(起承轉結) 방식이다. 대부분이 연애시로 수십 편의 연작(聯作)으로 된 것이 많다.  페트라르카의 《칸초니에레》는 소네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롱사르 등 플레이아드파(派)의 시인들과, 독일에서는 슐레겔과 괴테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영국에서는 와이엇과 사레백작(伯爵)에 의하여 영국 형식의 소네트가 생겼으며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 키츠, 로제티, 브라우닝 부인 등에 의한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영국 형식의 소네트는 4·4·4·2행(abab/cdcd/efef/gg)으로 되며, 이것을 셰익스피어 형식이라고 한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발레리, 릴케 등도 그들의 중요한 작품을 소네트 형식으로 썼다.   압운 [押韻, rhyme] 행의 첫음에서 반복되는 것이 두운, 끝음에서 반복되는 것이 각운인데, 이것이 좁은 뜻의 압운이다. 이것은 옛날의 영시에서도 기조를 이루는 수사법으로서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day, may와 temperate, date는 모두 행 끝에서 같은 음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시의 정형화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행 끝을 살펴보면 abab/cdcd/efef/gg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9    [시문학소사전] - 소네트란? 댓글:  조회:4084  추천:0  2016-12-14
요약 페트라르카로 대표되는 이탈리아풍 소네트는 영국(셰익스피어)풍 소네트와 더불어 2대 소네트 형식으로 꼽힌다. 소네트 형식이 큰 인기를 누리던 엘리자베스 시대에 쓰여진 가장 훌륭한 작품은 한 청년과 '흑부인'에게 바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일 것이다. 소네트가 '연인들에 대한 경쾌한 상상'에서 인간·시간·죽음·영원에 대한 고찰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들을 모두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그 짧은 형식 덕분이다. 19세기 후기에 연애 소네트 연작은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포르투갈인의 소네트〉(1850)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인생의 집〉(1876)을 통해 부활되었다. 소네트 형식으로 된 가장 뛰어난 20세기의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 대한 소네트〉(1922)이다.   대표적인 시인들이 5세기에 걸쳐 즐겨 썼다는 점에서 서양문학의 여러 시형 중에서 높이 살만하다. 소네트는 프로방스 음유시인들의 연애시에 영향을 받은 시칠리아 궁정시인파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칠리아에서 토스카나 지방으로 전파되어 이곳에서 14세기에 페트라르카의 시를 통해서 가장 세련되게 표현되었다. 317편의 소네트로 된 그의 연작시 〈시집 Canzoniere〉은 그의 이상화된 연인 라우라에게 보내는 시로 이 시의 창작을 계기로 '이탈리아(페트라르카)풍 소네트'가 정착되고 완성되었다. 이탈리아풍 소네트는 소네트 형식중 가장 널리 사용될 뿐 아니라 영국(셰익스피어)풍 소네트와 더불어 2대 소네트 형식으로 꼽힌다(셰익스피어). 이탈리아풍 소네트의 특색은 주제를 2가지 분위기로 다루는 점이다. 첫번째 8행연구(八行聯句 octave)는 문제를 진술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또는 정서적인 긴장을 표현한다. 뒤에 나오는 6행연구(六行聯句 sestet)는 문제를 풀거나 질문에 답을 제시하거나 긴장을 해소시킨다. 8행연구는 'abbaabba'의 압운이며, 6행연구의 압운은 여러 가지로 'cdecde·cdccdc·cdedce' 등이 될 수 있다. 유럽 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페트라르카풍 소네트로서 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에 정착되었고 폴란드에도 소개되어 다른 슬라브 문학으로 퍼져나갔다. 대부분의 경우 이 소네트 형식은 그 나라 말의 주된 운율에 맞추어 바뀌었는데 프랑스의 알렉산더격(12음절 약강격 시행) 시와 영어의 약강 5보격이 그 예이다. 이탈리아풍 소네트가 다른 이탈리아 시형과 함께 영국에 소개된 것은 16세기에 토머스 와이어트 경과 서리의 백작 헨리 하워드를 통해서였다. 이 새로운 시형들이 엘리자베스 시대의 서정시를 꽃피웠으므로 엘리자베스 시대는 영국에서 소네트가 가장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이탈리아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압운이 빈약한 영어에 이탈리아 시 형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독특한 영국풍 소네트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영국풍 소네트는 각기 개별적인 압운체계를 지닌 3개의 4행연과 압운 2행연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국풍 소네트의 압운 도식은 'abab cdcd efef gg'이다. 압운의 수가 보다 많으므로 이 형식이 이탈리아풍 소네트보다 덜 엄격하다고 하지만 마지막 2행연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꼭 쉽지만은 않다. 2행연구를 통해 앞부분의 4행연들에서 보여준 효과를 그리스 경구(警句)에서만큼이나 호소력있게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조차 이 작업에 실패하는 때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전형적인 소네트는 페트라르카 형식으로 된 연작 연애시였다. 이 연작시의 각 소네트는 일부는 상투적인 내용과 일부는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독립된 시들이지만, 연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무엇인가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듯한 흥미로움을 더해주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작 소네트 가운데 유명한 것은 필립 시드니 경의 시 〈아스트로펠과 스텔라 Astrophel and Stella〉(1591), 새뮤얼 대니얼의 〈델리아 Delia〉(1592), 마이클 드레이턴의 〈생각의 거울 Idea's Mirrour〉(1594), 에드먼드 스펜서의 〈아모레티 Amoretti〉(1591) 등이다. 〈아모레티〉는 스펜서풍 소네트라고 알려진 일반적인 변형 소네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시형은 영국풍의 4행연구와 2행연구 양식을 따르면서도 연속운(連續韻)을 쓰는 점에서 이탈리아풍 소네트를 닮은 형식으로 'abab bcbc cdcd ee'의 압운을 갖는다. 연작 소네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은 아마도 한 청년과 '흑부인'(dark lady)에게 바쳐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일 것이다. 이 연작 소네트에서는 사랑이야기보다도 그 배경을 이루는 시간·예술, 성장·몰락, 명성·재산 등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 그후 계속적인 발전 가운데 소네트는 애정이라는 주제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존 던이 종교적 소네트를 썼을 때(1610경), 밀턴이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들이나 또는 〈내 빛이 어떻게 소모되는가를 생각할 때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에서처럼 자신의 실명(失明)이라는 개인적인 주제에 대해 소네트를 썼을 때, 그 범위는 시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담을 만큼 넓어졌다. 소네트가 '연인들에 대한 경쾌한 상상'에서 인간·시간·죽음·영원에 대한 고찰에 이르기까지의 주제들을 모두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그 짧은 형식 덕분이다. 심지어 자유와 자발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시대에도 시인들은 여전히 이탈리아풍 소네트와 영국풍 소네트 형식에서 자극을 받았다. 워즈워스의 〈아름답고 고요하며 상쾌한 저녁 It Is a Beauteous Evening;Calm and Free〉·〈세상이 우리에게는 너무 중요해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와 키츠의 〈내가 존재하기를 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When I Have Fears That I May Cease To Be〉·〈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한결같았으면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등의 소네트들은 영시 중에서 매우 우수하고 잘 알려진 것들이다. 19세기 후기에 연애 소네트 연작은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포르투갈인의 소네트 Sonnets from the Portuguese〉(1850)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인생의 집 The House of Life〉(1876)을 통해 부활되었다. 소네트 형식으로 된 가장 뛰어난 20세기의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 대한 소네트 Sonnette an Orpheus〉(1922)이다. =======================================   소네트(Sonnet)는 유럽의 정형시의 한 가지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으로, Occitan(남부 프랑스어 방언)의 단어 sonet 와 이탈리아어 sonetto 에서 유래했다. 13세기경까지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네트와 관련된 형식적 규율들은 시대에 따라 진화했다. 소네트는 엄격히 각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잉글랜드로 전해져, 영국 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의 한 가지가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 작가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로,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소네트의 운율을 매기는 법은, 8개의 줄을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과, 네 줄씩 세번이 나온 후 두 줄이 추가되는 방식이 있다. 소네트의 형식은 크게 이탈리안 소네트(Italian Sonnet), 스펜서리안 소네트(Spenserian Sonnet), 셰익스피어 소네트(Shakespearian Sonnet)의 세 가지가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방식으로, 10음절로 이루어진 14개의 줄이 약강의 5음보 율격으로 쓰이는 방식이며, 각운의 매기는 방식은 ABAB CDCD EFEF GG 형태이다. (예: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소네트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페트라르카, 셰익스피어, 존 밀턴, 워즈워스 등이 있다.
38    [시문학소사전] - 랑만주의란?... 댓글:  조회:3760  추천:0  2016-12-14
  낭만주의 (예술)  [浪漫主義, Romanticism] 출처: 브리태니커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서구 문명에서 문학작품·그림·음악·건축·비평·역사편찬의 특징을 이룬 정신적 자세나 지적 동향.           개요   고전주의 일반과 18세기말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이루었던 질서·냉정·조화·균형·이상화·합리성 등에 대한 거부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 계몽주의와 18세기의 합리주의 및 물질적 유물론 일반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낭만주의는 개성·주관·비합리성·상상력·개인·자연스러움·감성·환상·초월성 등을 강조했다.           문학   진정한 의미의 낭만주의가 싹트기 전인 18세기 중엽부터 몇 가지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을 전 낭만주의(Pre-Romanticism)라고 부른다.     영국 문학에서 낭만주의는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서정민요집 Lyrical Ballads〉을 출판한 1790년대에 시작되었다. 워즈워스가 〈서정민요집〉 제2판(1800)에 붙인 서문에서 시를 "강렬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충일"(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로 정의한 것이 영국 낭만주의 시운동의 선언이 되었다. 영국 낭만주의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3번째로 중요한 시인은 윌리엄 블레이크이다. 한편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첫번째 단계는 내용과 문어체 모두에 걸쳐 일어난 혁신과 신비적인 것, 잠재의식,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탐닉이 그 특징이다.     1805년경부터 1830년대까지 지속된 낭만주의의 2번째 단계에는 고유의 민담, 민요풍의 발라드와 시, 민속춤과 음악, 심지어 그때까지 무시되어온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수집하고 모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적 민족주의가 되살아나고 민족의 기원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 특징이다 (→ 민속예술). 역사에 대한 평가가 되살아나자 역사소설의 창시자인 월터 스콧 경은 이를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글로 옮겨, 역사소설을 개척했다. 이즈음에 영국의 낭만주의 시는 존 키츠와 바이런 경 및 퍼시 비시 셸리의 작품을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 (→ 영국문학)     1820년대에 이르자 낭만주의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 문학에 널리 퍼졌다. 이 후기(2번째) 단계에서 낭만주의 운동의 접근방식은 보편성을 잃고, 나라마다 역사적 유물과 문화유산을 연구하거나 비범한 인물들의 정열과 투쟁을 조사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 이전에 활동한 대부분의 주요작가들을 들 수 있다.     한국문학에 있어서 낭만주의가 대두된 것은 1920년대초에 쓰여진 시에서이다. 개인의 자유와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거세게 반발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과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절망적 색채를 짙게 드러냈다. 흔히 1920년대 낭만주의를 병적·감상적 낭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인지 〈백조〉를 중심으로 나타났는데, 홍사용·박종화·나도향·이상화 등이 이에 속했다. 박영희의 〈환영(幻影)의 황금탑〉(백조, 1922.1)·〈월광(月光)으로 짠 병실〉(백조, 1923.9), 박종화의 〈사(死)의 예찬〉(백조, 1923.9),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백조, 1923.9) 등은 현실의 모든 번민과 집착의 저편에 서서 죽음에의 초대를 노래했다.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백조, 1923.9)에서는 세상을 공포와 비애만이 가득찬 곳으로 보기도 했다. 따라서 1920년대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행위는 낭만적 정열이라기보다는 낭만적 허무로 끝나며, 그것은 감상에 탐닉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고 일정한 감정의 절망적 몸짓을 관습화하는 이러한 감상의 바탕에는 건강한 도덕성이 있을 수 없으므로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은 김소월 등 몇몇을 외에는 그 가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1920년대 초기에 감상 및 퇴폐적 성격을 띠었던 낭만주의 문학은 사실주의 또는 프로 문학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각예술   1760, 1770년대에 제임스 배리와 헨리 퓨젤리, 존 해밀턴 모티머 및 존 플랙스맨 등 영국과 로마에 있던 많은 영국 화가들은 종래의 구상예술이 다루었던 고대의 역사와 신화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종래의 엄격한 제작방법과는 합치되지 않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 회화). 이 화가들은 기괴하거나 비장하거나 지나칠 만큼 영웅적인 주제를 선호했고, 긴장된 선을 이용한 드로잉과 음영의 대담한 대조로 대상의 윤곽을 뚜렷이 나타냈다. 영국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나름대로 힘차고 독특한 환상적 형상을 창출해냈다.     그뒤의 세대에서는 J.M.W. 터너와 존 컨스터블의 작품을 통해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라는 중요한 양식이 등장했다. 이 화가들은 경외심을 자아내고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역동적인 자연계를 묘사하기 위해 빛·공기·색채의 순간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프랑스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화가는 앙투안 그로 남작과 테오도르 제리코였다. 그로 남작은 당시의 나폴레옹 전쟁을 주제로 전투의 극적 장면들을 그렸고,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 Raft of Medusa〉과 정신병자들의 초상화에서 개인의 영웅적 행위와 고통을 묘사함으로써 1820년경의 낭만주의 운동을 사실상 선도했다. 가장 위대한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였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붓놀림,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의 구사, 역동적인 구도, 북아프리카 아랍인의 생활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이고 대담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무시무시할 만큼 조용하고 황량한 풍경화를 그림으로써 신비롭고 종교적인 외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건축에서의 낭만주의는 주로 옛날 건축양식의 모방과 '폴리'라고 칭하는 기괴한 건축물을 통해 표현되었다.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가진 영국과 독일의 건축가들은 중세 고딕 건축물에 매력을 느꼈고, 이렇게 되살아난 고딕 양식에 대한 관심은 결국 고딕 복고양식을 낳았다.               음악   낭만주의 음악은 독창성, 개성, 개인적인 감정의 표현, 실험정신이 가미된 자유로운 형식이 두드러진다 (→ 서양음악사).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프란츠 슈베르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교량이었으며 그들의 기법은 기본적으로 고전주의 양식이었지만, 강렬한 개인적 감정과 표제적 요소는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리트[歌曲], 야상곡(夜想曲), 간주곡, 카프리치오[奇想曲], 전주곡 및 마주르카 같은 새로운 음악형식이 등장함에 따라 음악의 극적인 표현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낭만주의적 정신은 시와 전설 및 민간 설화에서 영감을 얻었고, 문학과 음악을 표제음악이나 서곡,부수음악 같은 형식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낭만주의 음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낭만주의 초기의 주요 작곡가는 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레데리크 쇼팽, 펠릭스 멘델스존, 프란츠 리스트였다. 이들은 오케스트라의 표현력을 최대한으로 확대하고, 반음계를 온전히 이용하기 위해 화성의 수를 늘렸으며, 악기와 사람의 소리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 악기편성법). 낭만주의 음악의 중기 단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는 안토닌 드브르자크, 에드바르트 그리그, 표트르 일리히 차이코프스키이다. 음악을 통해 민족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하려는 낭만주의의 노력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드보르자크,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러시아,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에 드러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작품으로 시작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가에타노 도니체티와 빈첸초 벨리니, 조아키노 로시니 같은 작곡가들이 발전시켰다.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를 수준 높게 끌어올린 사람은 주세페 베르디였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단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활동한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에드워드 엘가, 얀 시벨리우스 등이 있다.           사실주의 (예술)  [寫實主義, realism, 리얼리즘] 출처: 브리태니커     자연이나 현실생활을 정확하고 자세하며 꾸밈 없이 묘사하는 예술적 경향.           개요   사실주의는 상상력에 따른 이상화(理想化)를 거부하고 밖으로 드러난 겉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 넓은 의미의 사실주의는 여러 문화의 다양한 예술적 경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미술에서는, 검투사와 노파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사실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카라바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 호세 데 리베라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및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같은 스페인의 화가들, 프랑스의 르냉 형제 등을 비롯한 17세기 화가들의 작품은 그 접근 방식이 사실주의적이다.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다니엘 디포, 헨리 필딩 및 토바이어스 스몰릿 등의 작품도 사실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주의가 하나의 미학적 계획으로서 의도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였다. 1850~80년에 나온 프랑스 소설과 그림에서는 사실주의가 주류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826년 〈메르퀴르 프랑세 뒤 디즈뇌비엠 시에클 Mercure français du XIX e siècle〉지(誌)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기에서는 과거의 예술적 업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현실생활이 제공하는 모델을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바탕을 두는 예술가 원칙을 나타내기 위해 이 낱말을 사용했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주창자들은 아카데미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갖고 있는 인위성을 거부하고 예술작품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려면 동시대 의식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그들은 중하류층의 서민들과 평범한 사람들, 보잘것없는 사람들, 꾸밈 없는 사람들의 삶과 모습,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문제와 관습 및 도덕관을 묘사하려고 애썼다. 실제로 그들은 그때까지 무시당했던 동시대의 삶과 사회의 모든 측면, 즉 심적인 태도, 물리적 배경, 물질적 조건 등을 재현하는 작업에 진지하게 몰두했다. 사실주의는 19세기초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지적인 발전에 자극을 받았다. 즉 주로 평범한 사람을 예술 작품의 주제로 삼는 독일의 반낭만주의 운동, 사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기록하는 전문적 언론의 등장,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사진술의 발달 등이었다. 이런 모든 발전은 동시대의 삶과 사회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자극했다.           회화   사실주의 미학을 의식적으로 선언하고 실천한 최초의 화가는 귀스타브 쿠르베였다. 그의 대작 〈화가의 작업실 The Studio〉(1854~55,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1855년 만국박람회에서 거절당하자, 그는 특별히 지은 가설 천막에 '사실주의, G.쿠르베'라는 이름을 달고 이 작품과 함께 여러 작품을 모아 전시했다. 쿠르베는 그의 그림을 통해 이상화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고, 평범하고 동시대적인 것에 예술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일상생활상을 솔직하게 묘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적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앞서 1850~51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던 〈오르낭의 매장 Burial at Ornans〉(1849, 루브르 박물관)과 〈돌 깨는 사람들 Stone Breakers〉(1849, 이탈리아 밀라노, 개인 소장)은 검소한 농부와 노동자들을 꾸밈 없이 사실대로 묘사하여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쿠르베가 농부들을 미화시키지 않고 대담하고 거칠게 제시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미술계에 격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주제와 표현 양식은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닦아놓은 터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바르비종파는 1830년대 테오도르 루소,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장 프랑수아 밀레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이 그 지방의 특징적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프랑스 바르비종에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화풍과 서로 약간씩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었지만 자연의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측면보다 소박하고 평범한 측면을 강조하여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 그들은 문자 그대로 그림처럼 감상적이고 통속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형태를 충실하게 묘사했다. 밀레는 〈키질하는 사람들 The Winnower〉(1848) 같은 작품에서 농부들을 위엄있고 장대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들을 묘사할 때만 사용했던 모습을 보잘것없는 서민에게도 적용한 최초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주의 전통과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로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있다. 그는 프랑스 사회와 정치를 풍자화한 전형적인 도시 화가였다. 그는 파리의 빈민가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노동계층의 남녀, 비열한 변호사, 사악한 정치가 들을 그림의 주제로 선택했다. 그 역시 쿠르베처럼 열렬한 민주주의자로 풍자 화가의 명분을 정치적 목적에 직접 활용했다. 도미에는 프랑스 사회의 부도덕성과 추악함을 힘찬 윤곽선, 대담하게 강조한 사실주의적 세부 묘사, 거의 조각 같은 형태 처리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비판했다. 미술에 있어서 사실주의는 프랑스 이외에 19세기 미국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윈슬로 호머의 바다를 주제로 한 힘차고 표현력이 풍부한 그림들, 토머스 에이킨스의 초상화와 뱃놀이 광경 등은 당시의 삶을 솔직하고 냉정하며 정확하게 관찰한 그림들이다.     사실주의란 20세기 미술의 뚜렷한 흐름의 하나로서 일상생활에 대해 좀더 정직하고 예리하며 대상을 이상화시키지 않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욕망과, 이 미술을 사회·정치 비판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 8인회'(The Eight)라 불리는 미국 화가들은 도시생활의 어두운 면을 신문 기자처럼 신랄하게 묘사한 풍경화를 그렸고, 한편 독일의 미술운동인 '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화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의 냉소적인 사고방식과 환멸을 사실주의 양식으로 표현했다. 또한사회사실주의라 부르는 대공황기의 미술 운동도 그당시 미국 사회의 불공평과 해악을 가혹하고 노골적인 사실주의로 묘사했다. 1930년대초부터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후원을 받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삶을 충실하게 객관적으로 묘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주의와 거의 관계가 없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직함'이란 국가의 이데올로기 및 선전의 필요성과 일치해야 했고, 용감하고 강인한 노동자와 기술자들의 초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개 대상을 자연주의적으로 이상화하는 자연주의적 기법을 이용했다. 이런 그림에 묘사된 노동자와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영웅적인 적극성을 보여주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부족하다.     인상주의 (예술)  [印象主義, Impressionism] 출처: 브리태니커   (프)impressionnisme.   19세기말과 20세기초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된 예술운동.           개요   회화에서 시작되어 음악에까지 확산되었다.           회화   인상주의 회화는 대략 1867~86년 일련의 공통된 접근방식과 기법을 구사한 일군의 화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망라한다.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빛과 색채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가시적 세계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한 점이었다. 주요화가는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베르트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프레데리크 바지유 등으로서 이들은 함께 작업하고 서로 영향을 미쳤으며 공식적 인정을 받으려고 줄곧 애쓴 마네를 제외하고 그들은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찍부터 문학적·일화적인 의미를 담은 역사적·신화적 주제를 그릴 것을 강조하는 전통적 아카데미 회화의 가르침에 불만을 느꼈다. 또한 아카데미 회화의 특징인 판에 박힌 공상적 또는 이상적 표현기법도 거부했다. 1860년대말에 이르러 마네의 미술은 장차 인상주의의 지도지침이 될 새로운 미학을 반영했다. 즉 전통적인 주제는 중요성이 떨어지고 예술가가 구사하는 색채와 색조, 질감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마네의 회화에서 주제는 평평한 색면(色面)을 솜씨있게 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또 원근법적 깊이를 최소화시켜 관람자가 그림에서 창출되는 환영적인 3차원 공간에 빠져들지 않고 그림표면의 형태와 관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모네는 외젠 부댕, J. R.용킨트 같은 혁신적인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뛰어난 색감과 물감에 의한 다양한 질감으로 하늘과 바다의 변화무쌍한 순간적 효과를 묘사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또 야외에서 스케치한 것을 작업실에 가져와 유화로 완성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버리고 부댕이 그랬던 것처럼 애초부터 야외에 나가 실제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1860년대말 모네·피사로·르누아르 등은 들과 강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여 특정한 시간에 자연의 빛 속에 나타나는 대상의 색채와 형태를 냉정하게 기록하고자 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풍경화의 색조인 흐릿한 녹색·갈색·회색 등을 버리고 보다 가볍고 밝으며 찬란한 색조로 그렸다. 먼저 그들은 물에 비치는 햇빛의 작용과 잔물결 위로 반사되는 색채를 그리면서 자신들의 눈에 비치는 햇빛과 그림자, 그리고 직사광선과 반사광의 복잡하고 생생한 효과를 재생시키고자 했다. 망막에 기록되는 직접적인 시각적 인상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은 그림자에 회색과 검정색을 사용하는 것이 부정확하다고 판단하고 대신에 보색을 이용했다. 더욱이 그들은 순수한 조화색이나 보색의 불연속적인 점묘와 가벼운 붓질로 물체를 조형하여 햇빛과 그 반사에 의해서 생기는 색조의 변화와 반짝임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그들의 그림에서 형상은 분명한 윤곽을 잃고 재창조된 야외의 현실상황 속에 명멸하고 요동하면서 비물질화되어갔다. 또한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 구성을 버리고 대신 그림틀 안에 좀더 우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물을 배치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같은 새로운 기법을 인상주의자들은 풍경·나무·집뿐 아니라 도회지 거리풍경과 철도역 장면에까지 확대 적용했다.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대부분 작품을 줄곧 거부해온 프랑스 아카데미의 공식 살롱전과 별개로 독자적인 최초의 전시회를 열었다. 문필가였던 루이 르루아는 같은 해 풍자잡지인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에 기고한 글에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 Impression:Sunrise〉(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의 제목을 따서 야유 섞인 의미로 그들을 '인상파'(인상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당사자인 화가들은 그 명칭이 시각적 '인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잘 나타내준다고 보고 스스로 그 명칭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이후로 1886년까지 7번에 걸쳐 전시회를 가졌다. 이 시기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각자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으며, 모두 공통적으로 관습을 벗어나 자유로운 기법과 개성적인 주제표현 및 자연의 성실한 재현을 원리로 삼았다.     1880년대 중엽에 이르러 인상주의 그룹은 개개 화가들이 각기 독자적인 미학적 관심사와 원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짧은 존속기간 동안 미술사의 혁명을 이루었는데 폴 세잔, 에드가 드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같은 후세대 예술가들에게 기법상의 출발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이후 서양 미술 전체를 기법과 주제에 있어서 전통적인 틀에서 해방시켰다 (→ 후기인상주의) .                           한국의 인상주의   인상주의의 도입은 고희동 이후 본격적인 서양화의 도입을 시작으로 일본의 인상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1900년대 이후 일본은 도쿄[東京] 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아카데미즘이 형성되었는데 주로 프랑스의 아카데미즘과 인상파적 요소가 혼합된 양식을 추구했다.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등이 주축이 된 이들은 자파(紫派) 또는 회색파(灰色派)로 불리며 외광파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회화의 주제와 내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 아카데미즘의 인상파적 요소는 도쿄 미술학교 출신의 고희동·김진호·김찬영·나혜석 등에 의해 한국에 도입된 이후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해 회화의 한 양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1930년대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 이러한 인상주의적인 요소가 뒤섞인 관학적인 화풍에서 좀더 본격적인 인상주의적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인성은 〈초하의 빛〉(1933)·〈어느 가을날〉(1934) 등으로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면서 이후 선전의 주류를 이루었던 관학파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인상주의적 양식을 구축했으며 오지호와 주경은 인상주의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지호는 〈순수회화론〉에서 색채를 중심으로 한 회화론을 펼쳐 인상주의의 정착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고 〈사과나무〉(1937)·〈남향집〉(1939) 등에서처럼 본격적인 인상주의라 할 만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밖에 인상주의 화풍이 두드러지는 작가로는 서진달·김용조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인상파가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회화 유파로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 대부분은 재현적 회화를 표현하는 기법적 요소로 나타났던 하나의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상주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신인상주의 (미술)  [新印象主義, Neo-Impressionism] 출처: 브리태니커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 운동.             이들은 인상주의의 경험론적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체계적인 계산과 과학이론을 이용하여 미리 정해진 시각효과를 얻고자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효과를 좇아 자연을 임의로 묘사한 것에 반해 신인상주의자들은 과학적인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통해 엄격한 형식의 그림들을 그렸다. 신인상주의를 이끈 사람은 이 양식을 창시한 이론가이자 가장 중요한 화가였던 조르주 쇠라와 그의 충실한 동료였던 시냐크였다. 그밖에 신인상주의 화가들로는 앙리 에드몽 크로스와 알베르 뒤부아 필레, 막시밀리앙 뤼스, 테오 반 레이셀베르흐가 있고, 인상파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도 잠시 이 운동에 가담했었다. 이들은 1884년에 '독립미술가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분할주의와 점묘파라는 용어는 대조적인 색채의 물감을 화폭에 점점이 찍는 쇠라의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색점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1가지 색채로 어우러지도록 과학적으로 선택되었다. 온통 이런 색점들로만 뒤덮인 화폭은 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형태를 뚜렷이 나타내며, 묘사된 모든 대상들은 흔들리는 강렬한 빛을 흠뻑 받고 있다. 이 점들의 일정한 크기는 그림의 전체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상을 흐릿하고 몽롱하게 묘사한 반면, 신인상파 화가들은 견고하고 분명하게 묘사했고, 주의깊게 짜인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형태를 되도록 단순화 시켰다. 신인상주의의 그림에 나타난 빛의 성질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밝고 찬란했지만, 전체의 효과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채 움직이지 않는 기념비와 같았다. 인상주의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빛을 묘사했지만, 신인상주의는 그 덧없는 빛을 붙잡아 결정체로 만들었다.     폴 시냐크는 후기 작품에서 그의 시적 감수성과 좀더 어울리는 분할법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쇠라는 색채와 형태의 표현적 특성을 과학적 공식으로 바꾸는 등 그림과 기법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연구하는 이론적인 시도를 계속했다. 1890년대에 이르자 신인상주의의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그러나 신인상주의는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및 앙리 마티스를 비롯한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예술가들이 각각 그 독자적인 화풍과 기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7    영국 랑만주의 시인 - 퍼시 비시 셸리 댓글:  조회:6212  추천:0  2016-12-14
  퍼시 비시 셸리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일)는 영국의 시인이다. 바이런,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출생 1792년 8월 4일  잉글랜드 사망 1822년 7월 8일 (29세)  이탈리아 직업 작가, 시인 활동기간 1810년 ~ 1822년 장르 시 사조 낭만주의 대표작 《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 1819년》,《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년》 배우자 메리 셸리 영향을 준 분야·인물[보이기]   목차   [숨기기]  1생애 2결혼, 시인 바이런과의 교우 3그 후의 작품들 4최후 5사후 6작품 6.1시 6.2산문 6.3소설 6.4희곡 7같이 보기 8각주 9바깥 링크   생애[편집] 남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무신론을 부르짖다 퇴학 당하였다. 1818년 이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지냈다. 그의 시는 흔히 관념적으로 달콤하다는 평을 받으나, 그의 순수한 서정시는 어떤 형으로든지 이상주의 적 혁명에 대한 정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시인 바이런과의 교우[편집] 1811년 여름 해리엇 웨스트브룩이라는 16세의 소녀와 결혼하였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자유사상가인 W.고드윈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정치적 이상을 노래한《매브 여왕 (Queen Mab)》(1813년)을 발표할 무렵, 고드윈의 딸 메리와 친해졌고, 애정 생활의 파탄을 비관한 해리엇은 1816년 투신 자살했다. 그 해 메리와 정식 결혼한 그는 스위스를 여행, 시인 바이런과 알게 되어 교우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의 작품들[편집] 이 무렵의 작품은 ‘고독한 영혼’이란 부제가 붙은 서사시《고독한 영혼(Alastor)》(1816년), 정치시《이슬람의 반란 (The Revolt of Islam)》(1818년), 플라톤의《향연》의 번역 등이다. 영국정부를 비판한《무질서한 가면극》(1819년)과 워즈워스를 풍자한《피터 벨 3세》(1819년)에 이어서, 16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근친상간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시극 대작《첸치 일가》(1819년)와 대표작《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년)를 발표하였다. 이 대표작이 발표되던 해에 셸리 부처는 이탈리아의 피사에 정착하였고,《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1820년)《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년》 등 탁월한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821년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피사이키디온》, 그리스 독립전쟁에 촉발된 《헬라스 (Hellas)》, 시인 키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아도나이스 (Adonais)》, 시인의 예언자적 사명을 선언한 시론으로 유명한 《시의 옹호》(1821년) 등이 쓰여졌다. 최후[편집] 1818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머문 그는 1822년 7월 8일, 이탈리아의 나폴리 만(灣)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하였다. 향년 30세 사후[편집] 1824년 그의 사후 메리 셸리에 의해 출간된 유작시집 유작시선 《퍼시 비시 셸리, 유고시선집》(Percy Bysshe Shelley, Posthumous Poems, ed. Mary Shelley)에도 〈탄식〉(A Lament)과 같은 많은 좋은 시들이 실려있다. 작품[편집] 시[편집] 《불가사의한 산전》 (The Mysterious Bandit) (chapbook) (1815년) 《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Hymn to Intellectual Beauty) (1816년) 《몽블랑》 (Mont Blanc) (1816년) 《이슬람의 반역》 (The Revolt of Islam) (1817년) 《오지맨디아스》 ( Ozymandias) (1818년)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818년)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1819년) 《혼돈의 가면극》(The Masque of Anarchy) (1819년) 《속박에서 벗어난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 (1820년) 《종달새에게》 (To a Skylark) (1820년) 《아도니스》 (Adonaïs) (1821년) 《수줍은 잔디》 (The Sensitive Plant) (1821년) 《노래》 (Song) (1821년) - 엘가 교향곡 2번에 영감을 줌 《구름》 (The Cloud)(1822년) 산문[편집] 《무신론의 필요성》 (Necessity of Atheism) (1811년) 《개혁의 철학적 견해》 (A Philosophical View of Reform) (1819년) 《시의 옹호》 (A Defence of Poetry) (1821년) 소설[편집] 《자스트로찌》 (Zastrozzi) (1810년) - 고딕 소설 《성 어빈》 ( St Irvyne) (1810년) - 고딕 소설 희곡[편집] 비극 《첸치》 (The Cenci)(1819년)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일)는 영국의 시인이다. 바이런, 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남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무신론을 부르짖다 퇴학 당하였다. 1818년 이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지냈다. 그의 시는 흔히 관념적으로 달콤하다는 평을 받으나, 그의 순수한 서정시는 어떤 형으로든지 이상주의 적 혁명에 대한 정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시인 바이런과의 교우   1811년 여름 해리엇 웨스트브룩이라는 16세의 소녀와 결혼하였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자유사상가인 W.고드윈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정치적 이상을 노래한《매브 여왕 (Queen Mab)》(1813년)을 발표할 무렵, 고드윈의 딸 메리와 친해졌고, 애정 생활의 파탄을 비관한 해리엇은 1816년 투신 자살했다. 그 해 메리와 정식 결혼한 그는 스위스를 여행, 시인 바이런과 알게 되어 교우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의 작품들   이 무렵의 작품은 ‘고독한 영혼’이란 부제가 붙은 서사시《고독한 영혼(Alastor)》(1816년), 정치시《이슬람의 반란 (The Revolt of Islam)》(1818년), 플라톤의《향연》의 번역 등이다. 영국정부를 비판한《무질서한 가면극》(1819년)과 워즈워스를 풍자한《피터 벨 3세》(1819년)에 이어서, 16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근친상간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시극 대작《첸치 일가》(1819년)와 대표작《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년)를 발표하였다. 이 대표작이 발표되던 해에 셸리 부처는 이탈리아의 피사에 정착하였고,《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1820년)《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년》 등 탁월한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821년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피사이키디온》, 그리스 독립전쟁에 촉발된 《헬라스 (Hellas)》,시인 키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아도나이스 (Adonais)》, 시인의 예언자적 사명을 선언한 시론으로 유명한 《시의 옹호》(1821년) 등이 쓰여졌다.   최후   1818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머문 그는 1822년 7월 8일, 이탈리아의 나폴리 만(灣)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하였다. 향년 30세   1.급진적 개혁주의자   셀리(1792-1822)의 여러 측면들 중에서도 독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혁명시인으로서의 셀리이 다. 그는 한 국가의 구성원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라 놓은 정치ㆍ사회ㆍ종교 제도의 부도덕성과 부당성에 누구 보다도 분개했던 시인이다. 옥스포드 대학 시절 그는 그 같은 정치적 ㆍ사회적 모순의 시정을 위해 지배계급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퇴학까지 당하며, 나중에는 조국을 등지고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로 건너가 살다가 피사 근처 의 어느 해안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익사하는 불운을 맞는다. 셀리의 이상주의는 현실의 완강한 벽에 부딪히자 내면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세계를 해석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념세계를 구축함에 있어 그는 기존의 신화체계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ㆍ재창조하는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Ode to the West Wind)는 내면화된 이상주의가 새로운 신화의 틀 내에서 탁월하게 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피털루 대학살'과    1819년경 영국에서는 수많은 서민들이 실업과 기아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그러던 중 공업도시 맨체스터에서는 노동자들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몰려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게 된다. 이때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무참하게 살육을 자행함으로써 4년 전 유럽대륙에서 얻은 명성을 하루아 침에 퇴색시켜 버린다. 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역전의 용사들이'피털루 대학살'(Peterloo Massacre)의 주구로 전락한 것이다. 이 사태를 지켜본 셀리는 프랑 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의 정신구조와 국내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그들의 정신구조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이념체계, 동일한 사회체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기득권세력을 통렬하게 탄핵한다.   3. 나ㅡ그대의 관계   현실개혁의 의지와 이상사회의 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사회변혁을 향한 셀리의 꿈은기득권세력의 강력한 벽을 실감하며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1818)에는 내면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성의 전반적 갱생 없이는 사회개혁의 꿈도 무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변혁의 꿈과 인간성의 전반적 갱생이라는 셀리의 두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재현된 시가 바로 그 유명한 (Ode to the West Wind)이다. 이 시와 관련하여 셀리는 플로렌스 근처 아르노(Arno) 계곡에서 구상하고 또 대부분 쓰였다면서 서풍의 특성을 이렇게 기술한 바 있다. "그날은 온화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세찬 바람이 가을의 폭우를 쏟아붓게 될 수증기를 모아 들이고 있었다. 황혼무렵, 예상했던 대로, 우박과 폭우가 뒤범벅이된 엄청난 폭풍이 키잘핀 지방 특유의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는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키잘핀 지방에 일년 내내 부는 서풍들 중에서도 셀리가 관찰하고 경험한 서풍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 우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다. 이 시에서 셀리는 이 봄바람을 "청람빛 그대 누이"(Thine azure sist er)로 여성화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가 친화를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폭우와 천둥번개를 동반한 격렬한 서풍이다. 그래서 그는 서풍을 "사나운 신령"(Spirit fierce)으로 의인화하면서 서풍에게 파괴적인 남성 신격을 부여한다.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에게도 이 시는 셀리 시학의 본질이 가장 잘 재현된 시이다. 블룸은 종교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의 핵심개념인 '나ㅡ그대' (IㅡThou)/'나ㅡ그것'(IㅡIt)를 준거점으로 삼아 셀리의 '신화창조'(mythoporia:mythmaking)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물을 대할 때 그 사물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들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ㆍ경험하는 경우와, "나와의 [의미 있는]관계" 속에서 그 사물의 참모습을 곧이곧대로 인식ㆍ경험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나와 사물과의 관계는 '나ㅡ그것'의 관계임에 반하여 후자의 경우에는 '나ㅡ그대'의 관계가 성립된다.   사물을 '그것'이 아닌 '그대'로 경험할 때에는 이념체계나 사전지식 또는 편견 같은 것이 개입되지 않은 "직접적인"(immediate) 관계라 할 수 있다. 원시인들의 언어를 보면 '나ㅡ그것'의 관계가 아닌 '나ㅡ그대'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원시인들의 사물과의 관계는 관찰자와 피관찰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아닌 "관계로서의 관계", 즉 다른 사물들과는 무관하게 "[둘만의] 테두리가 정해지고 [둘만의] 테두리를 정하는" 관계 (bound and binding)이다.   4.서풍의 신격화   에서 생명 없는 세계를 상정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셀리 시의 본질과 핵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이 시의 발화자 '나'는 '나ㅡ그대'로 "관계 지어지는" 원시적 세계의 '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나'/시인은 '너'/서풍을 "경험하고, 의인화하고, 풍유화하고, 상징화하려" 들기보다는 오히려 서풍과의 일치를 염원하며 일치를 모색한다. 첫 행에서부터 서풍 을"가을의 숨결"이라 부르는 시인은 서풍을 모종의 "살아 숨쉬는 생명체"(animatedthing)로 인식하면서 '나ㅡ그것'이 아닌 '나ㅡ그대'의 관계를 설정한다.   1 오, 사나운 '서풍'이여, 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그대 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이 마법사에게 쫓겨 도망치는 도깨비마냥 혼비백산 내달리네,   누렇고, 거멓고, 유령처럼 창백하고, 열병으로 홍조 띤, 역병에 신음하는 무리들! 오 그대여, 그대는 겨울처럼 차갑고도 어두운 침실로 날개 달린 씨앗들   마차 내몰아, 거기에 그들은, 제각기 무덤 속 시체마냥, 몸 웅크리고 차갑게 누워있나니, 그러다 마침내 청람빛 그대 누이 '봄'이 꿈꾸는 대지 위로 피리를 불어,   산과 호수, 강과 들판에 피리소리 울려퍼질 때면, (아름다운 꽃잎들을 양떼마냥 창공으로 몰고다니며) 현란한 빛 향긋한 내음으로 들판과 동산을 가득 채우리.   사나운 혼령이여. 돌아다니지 않는 곳 없는 그대, 파괴자이자 보존자여. 귀 기울이소서, 오 귀 기울이소서!   2 산발한 구름들은 가파른 하늘의 격랑 한가운데서 그대의 파도를 타고, 대지의 썩어가는 잎사귀들마냥 하늘과 바다의 뒤엉킨 나뭇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지네,   비와 바람의 사자인 이 구름들은. 그대가 동행하는 날렵한 파도의 푸른 표면 위에는, 미친 미나드의 머리에 곧추선 눈부신 머리칼마냥,   희미한 수평선에서 하늘의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다가오는 폭풍의 머리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네. 그대 죽어가는 해의 만가여,   어둠을 감싼 이 밤은 그대의 노랫소리에 맞춰, 빽빽이 모여든 증기의 힘으로 천개를 이루고, 그대 위해 거대한 분묘 둥근 봉분이 되리니,   그러면 그 견고한 대기로부터 검은 비와 불길한 우박이 폭발하리라. 오, 귀 기울이소서!   3 여름날 단꿈 꾸는 푸른 '지중해'를 잠에서 깨운 그대. 지중해를 휘감아도는 수정 잔물결 자장가 삼아 바이만 경석섬 옆에 누워   꿈결 속에서 보나니, 청람빛 이끼와 꽃들로 뒤덮인 고색 창연한 궁전과 탑들이 강렬한 햋빛 어른대는 파도 속에 떨고 있음을.   그 달콤한 느낌, 그 광경 떠올리며 감각은 자진하네! 그때 '대서양'의 대오정연한 군대는 그대 가는 길 방해하지 않으려고 양옆으로 갈라져   깊은 틈새 내고, 저 멀리 바다 깊은 곳에서는 메마른 잎사귀 걸쳐 입은 바다꽃나무와 끈끈한 수액 흘러대는 해초들이 그대 목소리   눈치 채고는,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혼비백산 도망치네. 오, 들어보소서!   4 나 그대가 몰아가는 죽은 나뭇잎이라면, 그대와 함께 빠르게 날아가는 구름이라면, 그대 힘 아래서 헐떡이며 그대 힘 함께 나눌 파도라면,   그리하여 그대 말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오 통제할 길 없는 존재여! 혹은 하늘을 나는 그대 따라잡는 일이   좀처럼 환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소년시절처럼 그대 하늘 떠돌 때 그대의 단짝친구 될 수 있다면, 나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기도드리며   갈구하진 않았으리. 오! 날 끌어올리소서, 파도처럼, 나뭇잎처럼, 구름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넘어져 피 흘리나이다!   시간의 무거운 짐이 그대를 쏙 뺀 날 사슬에 묶고 허리 휘어지게 하나이다, 길들일 길 없이 민첩하고 자부심 넘치던 나를.   5 숲이 그대의 수금이듯이, 날 그대의 수금으로 만들어다오. 내 잎이 나뭇잎마냥 떨어진들 어떠리! 요동치는 그대의 강력한 조화로 인하여   숲과 나 둘 모두가 애잔하면서도 달콤한, 가을과도 같은 깊은 색조를 띠게 되리. 사나운 신령이여, 나의 혼령이 되라! 나로 변하시라, 그대 무모한 자여!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기 위해, 죽은 잎사귀들마냥, 나의 죽은 생각들을 우주로 몰아가시라! 그리하여 이 시의 주문을 통하여,   꺼지지 않은 화덕의 재와 불씨를 휘젓듯, 사람들에게 나의 언어를 퍼뜨리시라!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대지에, 나의 입을 빌려,   예언의 나팔이 되시라!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서풍이 시인의 영혼과 하나가 될 때 서풍의 사나운 에 너지와 생명력은 곧 시인의 에너지와 생명력으로 화하고 그래서 시인의 얼어붙은 사상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 이다. 그러므로 시인과 서풍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보완적 존재이다.시인이 서풍을 필요로 하듯이 서풍 또한 시인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예언자가 있을 수 없듯이 하느님에게도 자기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 과 서풍의 관계는 서풍이라는 광활한 실체 속으로 시인이 수렴되는 관계가 아니라 두 실체가 만나 서로를 보완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5.정신계의 입법자   인간을 비롯한 감각을 갖춘 모든 사물의 내부에 존재 하는 원리란 "신화로서의 시, 시로서의 신화를 구성하는능력"(mythopoeia)을 뜻하는 것으로 콜리지의 '이차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이나 키츠의 '부정력(Negative Capability)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신화로서의 시를 창조하는 능력은 인간이 사물을 대할 때 '나ㅡ그것'의 관계과 아닌 '나ㅡ그대'의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 즉 "공감적 일치"(emphatic identification)를 일구어 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에서도 '서풍' 은 단지 원인제공자일 뿐, 타오르는 불의 강도와 색깔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내면의 원리로 존재하는 시인 고유의 혼불 (the fire of spirit)이 결정한다. 셀리에게 시란 신비한 교감의 순간을 언어화한 것이다. 그런데 교감의 순간을 재현하는 데 언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깊은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시는 고작해야 상징적인 몸짓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에서 시인이 언어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면서 서풍의 본질로 숨가쁘게 돌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언어의 한계를 깨달은 시인이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깊은 진실"(deep truth)로 다가가고픈 열망 때문이다. 셀리를 괴롭힌 "악령"은 무엇인가? 키츠에게는 고통이나 죽음 같은 인간적 한계가 극복되어야 할 악령이었고 그래서 그의 시가 심미적ㆍ철학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면, 셀리에게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과 두려움 같은,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 성질들이 곧 그를 괴롭히는 악령들이었고 그래서 그의 시는 윤리적 성격을 띠게 된다. 최초의 장편시(QneenMab:1813)을 쓸 당시 셀리는 급진주의자답게 인간의 타락은 전적 으로 사회제도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잘못된 제도만 개혁한다면 인간은 태생적 선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정되어, 인간과 사회는 동시적으로 탄생하며 사회란 마음의 거울과도 같다는 입장으로 바뀐다.   사회개혁에 인간성의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진선미의 사랑이 부단히 일깨워져야 할 것이다. 시와 예술은 마음이 간직한 진선미의 불씨, 신성의 불씨를 되살리고 그것을 힘찬 불길로 타오르게 한다. 그래서 셀리는 시인을 가리켜 신성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성을 구원하는 "세상의 공인받지 못한 입법자", 즉 물질계 너머의 정신계를 군림하며 통치하는 예언자이자 사제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 미나드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주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광란의 여성   ○ 신화 고대인의 사유와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영국 낭만시 연구》(김철수 지음)에서 발췌   ===================== 무상 /퍼시 비시 셸리 Mutability /Percy Bysshe Shelley 우리는 한밤의 달을 가리는 구름 같은 존재 구름은 어둠에 환한 줄그으며, 얼마나 쉬임없이 달리고, 반짝이며, 떨리는가! --- 그러나 곧 밤이 다가오고, 그러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또한 잊혀진 수금 같은 존재. 불협화음의 현들은 변화하는 바람결마다 갖가지로 반응하고 어떤 두 번째 선율도 그 연약한 악기에 앞선 선율과 같은 기분을 일으키지 못 한다. 우리는 휴식한다. ---하나의 꿈이 잠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어난다. ---하나의 방향 없는 생각이 하루를 망친다. 마음에 드는 비애를 껴안거나, 걱정을 내던져 버린다. 다 마찬가지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것이 떠나는 경로는 그래도 자유로우니까. 사람의 어제는 결코 내일 같을 수 없고 무상 아닌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 종달새에게(To a Skylark)  -퍼시 비시 셸리  …(초략)…    우리는 앞을 보고 또 뒤를 보며,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갈망한다:  우리의 가장 진지한 웃음에는  약간의 고통이 배어있고  우리의 가장 달콤한 노래는 가장 슬픈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비록 우리가 증오와 오만과  두려움을 비웃을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물건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대의 즐거움에 어찌 근접할지 나는 알지 못하네. 기쁜 소리를 내는  어떤 악기보다도 뛰어나고,  책에서 얻는  어떤 보배보다도 좋네,  …(중략)…  그대의 머리가 아는  기쁨의 절반이라도 내게 가르쳐다오;  그러면 내 입에서 흘러나올  조화로운 신기(神氣)에  세계가 귀를 기울이리, 지금 내가 그대에게 귀 기울이듯이. We look before and after,  And pine for what is not:  Our sincerest laughter  With some pain is fraught;  Our sweetest songs are those that tell of saddest thought. Yet if we could scorn  Hate and pride and fear,  If we were things born  Not to shed a tear,  I know not how thy joy we ever should come near. Better than all measures  Of delightful sound,  Better than all treasures  That in books are found,  Thy skill to poet were, thou scorner of the ground! Teach me half the gladness  That thy brain must know;  Such harmonious madness  From my lips would flow,  The world should listen then, as I am listening now. *  ▲ 최영미 시인 우리는 앞을 보고 뒤를 보고 또 옆을 보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노력을 그만두면 안 되리.  ‘종달새에게’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가 이탈리아에 머물던 1820년에 완성한 105행의 서정시다. 그의 두 번째 부인 메리와 시골길을 산책하다 영감을 얻어 쓴 시라는데, 그 특별했던 날을 메리는 이렇게 기술했다.  “아름다운 여름 저녁이었다. 오솔길을 거닐다 즐겁게 지저귀는 종달새의 합창을 들었다.”  종달새의 노래와 시인의 시를 대비시키며,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보다 뛰어난 새의 즉흥적인 음악을 찬양하는 것, 자연 예찬은 낭만주의의 한 특징이다. 낭만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시대의 양식으로서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쓸었던 180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유행한,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하던 예술을 일컫는다. 강렬한 정서와 체험에의 욕구,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개성과 창의력 예찬, 자연숭배가 로맨티스트의 삶의 철학이었다. 셸리는 자신보다 네 살 위인 바이런처럼 당대의 관습을 거스르는 충동적이며 비타협적인 삶을 살았다. 셸리는 1792년 영국의 서섹스에서 2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상당한 영지를 소유한 귀족이며 하원의원이었다. 이튼칼리지를 거쳐 셸리는 1810년 옥스퍼드대에 등록했다. 옥스퍼드에서 급진사상에 경도된 그는 1811년에 ‘무신론의 필요성’이란 팸플릿을 익명으로 인쇄해 옥스퍼드대의 교수와 성직자들에게 돌렸다. 유럽문명의 오랜 뿌리인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공격한 열아홉살의 청년은 며칠 뒤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틀어졌다. 옥스퍼드에서 쫓겨난 셸리는 16살의 소녀 해리엇과 눈이 맞아 스코틀랜드에서 살림을 차렸다. 해리엇과 결혼한 그는 저명한 사회주의 철학자 윌리엄 골드윈과 친교를 맺은 뒤 사회개혁의 의지를 담은 시를 쓴다. 골드윈의 딸 메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셸리는 1814년 몰래 메리를 데리고 유럽으로 달아난다. 대륙을 여행하다 돈이 떨어진 이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해 11월에 해리엇은 아들을 낳았고, 이듬해 메리 골드윈이 출산한 미숙아는 2주일 지나 사망했다. 1815년 다시 영국을 떠난 셸리와 메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인 바이런을 만나 가까이 지낸다. 호수에 배를 띄워 놓고 시를 논하다 바이런이 각자 귀신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훗날 메리가 발표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날의 유령담이 모체가 됐다.  해리엇이 자살을 시도해 그녀의 시체가 런던의 호수에서 발견되고 3주일 뒤에 셸리는 메리와 결혼해 1818년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1822년 7월 삼십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셸리는 폭풍 속에 배를 띄우고 항해하다 익사체로 발견됐다. 배의 이름은 바이런의 작품에서 따온 ‘돈 주앙’이었다. /최영미 시인 ===============================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1818년 발간될 당시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31년에 할리우드에서 처음 흑백영화로 만들어지며 영화 속에서 거대한 몸집과 커다란 사각형의 얼굴에 덕지덕지 꿰맨 듯한 피부, 나사가 박혀 있는 목 등의 흉측한 몰골로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괴물의 열연 덕분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 만화, 뮤지컬 등으로 계속 변형되고 재생산되면서 괴물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소설을 읽어 보면 프랑켄슈타인의 정체는 괴물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했던, 그 결과로 괴물을 탄생시키고 후회와 두려움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과학자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에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당시 19세밖에 되지 않았던 메리 셸리(1797~1851)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의 두 번째 부인이기도 한데, 메리와 처음 만났을 때 퍼시 셸리는 유부남이었음에도 17세의 메리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는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들은 1816년 여름에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과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 근처에서 여름을 나게 된다. 며칠 동안 폭풍우가 계속되자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이들은 독일의 공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을 돌려 읽으면서 여름휴가 동안 자신들도 한 편씩 공포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시인이었던 바이런과 퍼시 셸리가 소설을 쓰는 것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손을 뗀 반면에 폴리도리는 흡혈귀 이야기인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인간을 창조하고자 신의 영역을 넘보았던 과학자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킨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프랑켄슈타인’의 작품 속 화자는 모두 세 명이다. 첫 번째는 북극을 향해 항해 중이던 월턴 선장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만든 괴물의 뒤를 쫓아 북극까지 오게 된 프랑켄슈타인, 세 번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괴물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가 모여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는데 월턴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안에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괴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중으로 된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하다 빙산에 갇혀버린 월턴 선장은 자신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랑켄슈타인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몇 달간 계속된 지리멸렬한 항해에 선원들 모두 지치고 피곤해할 즈음 운명처럼 만난 프랑켄슈타인을 월턴은 ‘경이로우리만큼 존경과 연민을 한꺼번에 자아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육성에 가깝게 기록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어찌 보면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여 인류에게 이득을 주겠다는 욕망을 품고 있던 월턴 선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생명의 비밀을 찾아내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욕망을 품은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고 자란 프랑켄슈타인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화학과 물리학, 생물학 등을 두루 배우며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시체를 찾아다니며 조각조각을 모아 어느 비 오는 날 새벽,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생명체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사지는 비율을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지만 다 끝나고 나서 보니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흉물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그 길로 도망을 치고 만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흘러 가족 여행을 떠난 길에서 괴물과 마주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주친 괴물은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들려주며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여생을 보낼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요구에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여자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의 작업을 지켜보던 괴물은 분노한 나머지 복수를 결심하고 이후 괴물의 복수와 그러한 괴물을 찾아 종지부를 찍겠다는 프랑켄슈타인의 추격으로 소설은 막바지까지 치닫는다.  20세기에 들어 이 작품이 더욱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경이롭다고 할 만큼 과학이 발전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작품 속에서 괴물은 인간의 여러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비밀을 벗겨 내겠다는 욕망 하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사실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그럴 듯한 목표가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 앞에서 공포와 충격에 빠진 나머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 조작과 세포 복제에 의한 생명의 변형과 창조가 가능해진 오늘날, 과연 이것이 인류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과학적 성과물에 대한 과학자의 성찰과 책임감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의 크기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혼자 글을 깨치고 사유를 넓혀 가면서 자신이 아무리 선한 의지를 지녔더라도 흉측한 몰골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세계로 편입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 그래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말한다.   “감히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이는 비록 200여 년 전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에 의해 쓰인 작품 속 한 구절이지만 현대에 와서 더 유효한, 아무도 윤리적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과학 발전이나 기술 발전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 할 만하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출처: 서울신문] ================== 영국의 작가인 메리 셸리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부부의 딸이다. 메리는 생후 11일에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고드윈은 딸에게 교육면에서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따라서 메리의 사상이나 삶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메리의 남편인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 역시 고드윈의 정치적 추종자였다.      ▲ 작가 메리 셸리 1970년대까지 메리는 주로 남편 퍼시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 참여했다는 점과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정도로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학계는 메리가 남긴 자료를 조금 더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치를 인정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그가 남긴 소설 ‘발퍼가’(1823), ‘퍼킨 워벡의 행운’(1830), ‘최후의 인간’(1826), ‘로도어’(1835), ‘포크너’(1837) 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기행문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1844)과 다이어니셔스 라드너의 전기문인 ‘잡동사니 백과사전’(1829~46) 등 그의 덜 알려진 작품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메리의 사상이 당시에는 매우 급진주의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메리는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가정에서 보여주던 협력과 조화를 사회로 확장시킴으로써 시민 사회를 발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선은 부친 고드윈과 남편 퍼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낭만주의 시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볼 여지도 있다.    1816년 결혼 뒤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1822년 남편과 사별하게 된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여생을 아들 양육과 집필 활동에 집중하며 보냈다. 메리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지루한 투병생활로 보냈는데, 그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유는 뇌종양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형우 기자 [출처: 서울신문] ==================== 시간을 축으로 사회의 변화를 그려내는 것이 일군의 경제학이었다면, 여기에 ‘공간’이라는 차원을 더하여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가 있다. 지금은 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폴 크루그먼이다. (slate.com)에 개설되었던 그의 블로그는 ‘우울한 과학(The dismal science)’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은 경제학의 별명처럼 쓰이는데, 통찰력 뛰어난 독설가로 유명한 경제학자의 블로그에 제격이다. 경제학에 그런 절묘한 이름을 붙인 이는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이다. 그 연유는 같은 나라 경제학자(본래는 성공회 성직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저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인구가 식량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증가하므로 인류의 미래는 무척 암울하다는 주장은 맬서스의 (1798)의 핵심이다. 당대 학자들 또한 이윤율이 낮아져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던 터이다.  (왼쪽)토머스 맬서스, 메리 셸리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사람 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죽어야만(죽여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 대상은 ‘지원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과격함을 떠나 맬서스의 논의는 실은 고전파경제학에서 다루는 분배에 대한 기초가 되고, 그러한 면에서 경제학적 함의를 가진다.   은 사실 ‘고드윈, 콩도르세, 그 외 작가들의 짐작(specul ations)에 대한 논평과 더불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콩도르세는 프랑스혁명의 좌파 사상가였고, 고드윈은 이를 쫓아 사유재산 철폐를 주장했던 작가이다. ‘짐작’이라고 칭한 대로, 책은 이들 진보좌파의 논리를 공격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다. 몰락하던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의 입장에 섰던 것이다. 실제로도 고드윈의 라는 책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드윈은 그의 지지자인 맬서스의 아버지 데이비드 맬서스와 각별한 사이였고, 왕래가 잦았다. 고드윈의 부인은 여성주의 작가이자 프랑스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 부부 모두 급진적인 사람들이다(여전한 봉건계급 시대에!). 부부의 딸은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메리 셸리다. 메리 셸리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인 의 지은이로도, 과학·인간실패 등을 암시한 이 책을 열여덟에 지은 점으로도 유명하다. 남편은 키츠, 바이런과 함께 꼽히는 시인 퍼시 비시 셸리로, 진보철학을 가졌다.  그는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라고 노래했고, 메리 셸리에게는 “그러나 달디단 이 모든 것도 소용없으리/ 그대가 내게 입을 맞추어주지 않으면”이라고 읊었다. 그녀는 “내 사랑 별빛으로 내게 다가와/ 내 눈꺼풀에 그대 입맞춰주오”라고 답했다. 사실 퍼시 비시 셸리는 유부남이었고, 그와 사랑에 빠져 도망갈 때 그녀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남편은 그녀가 스물다섯에 폭풍을 만난 배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십 줄까지 혼자 양육을 전담한 그녀의 고단함을 상상해보면, 앞선 시가 프시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리라.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 셸리와 맬서스가 직접 만났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두 집안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을 여섯 번이나 고쳐서 내는 동안 맬서스에게 전해져 왔던 메리 셸리의 생은 그로 하여금 삶을 더 염세적으로 생각하게끔 하진 않았을까?   메리 셸리 역시 맬서스를 몰랐을 리 없었고, 집안의 교유와 더불어 격한 논쟁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였던 1821년 피사에서 을 완독했다. 종말론적인 그녀의 작품 에서 그의 견해에 일면 동의했고, 아버지와 논쟁에서 맬서스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론 교수가 발표한 ‘최후의 인간’ 논문에서 그녀는 맬서스와 다른 해법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인구변화를 ‘제어’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맡기기를, 고통에 밀어넣기보다는 공감하기를, 그리고 전체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협력을 강조했다고. 최근 발견된 다양한 작품들에서 그녀는 협력을 통해 제대로 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었다고 읽힌다. ===================== 역사란 시간이 인간의 기억 위에 써내려간 순환의 시詩이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 속의 모든 물질은 무한 밀도와 온도의 특이점singularity 상태로 한 장소에서 있었을 것이다. 빅뱅은 폭발이 아니라 특이점의 팽창이었다. 빅뱅은 팽창의 동인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이전의 무한 밀도와 무한소의 부피가 지금의 우주로 재편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빅뱅 이전에는 중력이나 열역학 같은 물리학 법칙들이 성립하지 않다가 일단 빅뱅이 시작되자 모든 물리학 법칙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소멸과 관련이 있다. 이 과정이 시간과 더불어 가속화되다 우주는 어느 날 소멸하고 시간도 끝나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에서 ‘시간의 세 화살’ 이론을 제안했다. 덕분에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 시간을 정신이 구축한 것으로 보는 과정에서 물리학 법칙, 심리학, 우주론을 결합한 개념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화살의 방향은 무질서와 엔트로피 속에서 속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결정된다. 두 번째 화살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나 감각, 현재의 인식, 과거의 기억 따위의 시간의 심리학적 화살이다. 세 번째 화살은 시간의 우주론적 화살로, 우주가 확장되는 방향에 따라서 결정된다.   세 화살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킬 때에만 질문을 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호킹은 양자이론이 “가상 시간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소개한다”면서 공상과학소설 같지만“그럼에도 그것은 순수과학의 개념”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선으로 그려본다면 과거는 왼쪽, 미래는 오른쪽이 되지만, 가상 시간은 수직 방향이다.   서양이 선형 시간 개념에 매달렸다면 마야인은 시간을 원으로 생각했다. 천체들이 궤도를 돌아 원점에 돌아오는 데 걸리는 기간, 예컨대 달의 순환주기인 한 달, 지구와 별들이 특정한 배열상태로 돌아오는 26,000년의 기간이 그 기준이 된다. 자연의 패턴을 보면 이러한 개념이 맞는 듯 보인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셸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시간이 인간의 기억 위에 써내려간 순환의 시詩이다.   호킹은 시간에는 시작이 있고 끝도 있다고 장담한다. 호킹은 우주의 시작을 133-139억 년 전으로 산출한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36    신문기자 총편 출신 박문희선생 詩배우고 발표까지 하다... 댓글:  조회:2380  추천:0  2016-12-14
  인간세상(2) /박문희   인터넷이 지구를 거미줄로 칭칭 동여맨다. 만리를 비행한 대형유도탄의 착지오차는 반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잔디밭 풀밑을 살금살금 기어가는 불개미간첩의 수염을 사정거리 팔만리의 유도탄으로 노랗게 구워버린다.   고로 전쟁발발의 위험은 사라지는 중이나 전쟁은 오늘밤 12시 정각에 터질수도 있다. 평화는 영원히 태양의 발톱에다 둥지를 틀고있다. 그래도 석양이 꼴깍 질 무렵이면 간드러진 악마의 시커먼 웃음이 간담을 찢을 때가 가끔 있다.   동두성에 따르면 방금 전 원자탄 수소탄 증폭핵분열탄은 물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질자탄까지 제3차 세계대전 차비에 동원됐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그것을 용케 제지한 이가 있었으니 기이하게도 유엔사무실에 잠복해있던 파리였다고. 해당문서에 똥을 한무더기 싸놓는 바람에 인터넷문서의 집행에 기묘한 오차가 생겼다는 것.   토성지방 조간신문의 톱자리에는 사흘이 멀다하게 “민주 자유”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실려나간다. 노란 좀벌레 만여마리가 새까만 백성 “민”자 하나를 갉아먹는데 이미 반년이란 시간을 허비했고 나머지 글자 몇개를 씹어먹는데도 십년이상 걸릴것이라 한다.       맛있는 시  /박문희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집 에서 란 시를 뽑아 여러번 읽어보았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것이 신기했다. 아래 독후의 감상을 적어본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 전문               짧은 시에 시간과 공간, 시각과 청각, 색깔과 소리,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동반한 여러 가지 이미지와 감각이 빈틈없이 짜여 녹음으로 새소리 숨소리로 흐른 흐름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제1련: 초여름 아침의 빛. 잠과 깨어남의 경계.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어찌 보면 일상에 평범하게 쓰일수도 있는 언어인듯 싶지만 그러나 시 전체의 연계속에서 보나 첫련의 시맛으로 보나 잠과 깨어남의 경계에 대한 사색의 실머리를 던져주는 범상치 않은 시어로서 그속에는 철학적인 의미도 다분히 깔려있다.    제2련: 중심이미지의 하나에 속하는 “녹음(綠陰)”이 등장한다. “기억”은 관념어지만 여기서는 녹음을 무성하게 만들며 눈뜨고 따라오는 이미지로 체화되어있다. 말하자면 기억은 “나”의 머릿속에 묻혀있는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밖에서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지켜보는 행위의 주체로 되어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제3련: “녹음”에 이어 “카멜레온”이란 또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한다. 여기서 녹음은 배경으로 되며 눈뜨고 따라오던 기억은 배경속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변신을 한 카멜레온으로 탈바꿈한다.    이상의 제2련과 3련은 시각적 감각을 표현하고있다. 그중 2련에서 무성한 녹음으로 피어나 “눈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역시 시각적 이미지로 장치가 돼있다. 시각적 이미지에는 물론 녹음과 카멜레온을 통한 색깔의 감각도 포함된다.    제4련: 두가지 소리가 등장한다. 새소리와 기억의 숨소리. 의인화된 기억에 숨소리를 부여하고 그것을 귀로 듣게 한다. 새 우짖는 소리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요란하게 울리지만 숨 쉬는 소리를 들을수 있을만큼 기억이 내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이 련은 청각적 감각을 그려내고 있다.     요컨대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숨기면서까지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고집스레 따라다니며 “나”를 지켜본다. 이렇게 되어 자연스레 튀어나온 시제목이 인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시 전체의 시간과 공간, 시각과 청각, 정적(靜的)인 것과 동적(動的)인 것, 색깔과 소리가 어울어진 풍만한 입체적 광경을 통해 기억(추억이나 그리움 등을 포함해서)이란 사람의 일생에 관통되는 생명현상을 관념이나 추상어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속에서 항상 접하는 사물과 직접 살아가는 삶 자체의 세부로 보여준다. 잠, 깨어남, 바깥출입, 녹음, 눈뜨고 따라오는 무성한 기억, 보임과 보이지 않음, 녹음속에 녹아드는 무성한 기억, 카멜레온, 귀먹게 할 지경의 새소리,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그 속에서도 들리는 기억의 숨소리. 아주 짧은 시속에 이 모든 생생한 이미지와 감각이 녹아든 풍성한 심상(心象)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무지 놀랍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집 의 영문본을 한국어로 옮긴 이경수선생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한 시적 공간에 있어서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으며 “그런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群小)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면서 이런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트란스트뢰메르가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경수선생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시 를 통해서도 우리는 트란스트뢰메르가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확실하게, 그리고 충분히 보아낼수 있지 않는가. --연변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문고 (4) 2016.10
35    글쓰기는 고역의 고역을 치루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된다... 댓글:  조회:2466  추천:0  2016-12-13
논리적인 글쓰기를 위해 다음 여섯 가지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1. 글을 쓰는 능력은 사고하는 능력이다. 창의적,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면 참신한 아이디어나 설득력을 가진 글을 쓸 수 없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습관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생각이란 밖에서 주어진 문제를 당연히 받아 들이고 답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든 그것을 의심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그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태도다. 또 자신의 주장을 제시할 때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고 다른 사람이 나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그 문제에 답을 하려는 태도다. 2. 글쓰기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읽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글은 무의미하다. 독자가 글을 읽을 때 글의 흐름과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습관이 읽기 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다. 3. 논리적인 글을 쓰려면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글의 구조란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연관 관계다. 자신의 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을 요약하는 연습이 논리적인 글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4.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글을 꼼꼼히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읽는 게 중요하다. 또 읽으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이 있다면 사전이나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문의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5.글을 쓰고 난 뒤에 그 글을 반복해 읽으면서 고치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은 글은 반복된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장과 근거가 참신성과 설득력을 가지는지, 문장과 문장 또는 단락과 단락 간의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문장이 문장으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긴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지,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는지, 구어 표현이나 주관적인 감상 또는 다짐의 표현을 사용하는지, 무관한 접속사를 자주 사용하는지,  한 문장에서 한 가지 생각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지, 반복되거나 중복된 내용이 있는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6. 관심과 정성을 가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신이나 타인의 생각과 글에 쏟는 관심,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수정하는데 쏟는 정성으로부터 참신하고 논리적인 생각과 글이 나올 수 있다. -김준성, 서울대 글쓰기교실 선임연구원 ==================================================================     9월도 저녁이면 ― 강연호(1963∼ )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 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며칠 전 같은 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가을’임을 깨달았다. 바람, 서늘한 바람 때문이었다. 예고도 없이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차가워졌다. 그 순간 모든 우리는 서로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러한 것처럼,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 가을이 찾아왔음을 느꼈던 것이다.      느닷없이 시작된 가을에 이 시만큼 어울리는 시도 없다. 가을은 강연호 시인의 작품들을 읽기 좋은 계절이고 그중에서 이 시는 9월의 첫 주에 가장 읽기 좋은 작품이다.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시인이 아니어서 그의 시는 차근차근 따라가면 차곡차곡 읽힌다.  자, 이 시인도 가을의 바람부터 언급한다. 그 바람이 가을을 몰고 왔다. 찬 기운은 저녁이면 더욱 차가워져서 소슬한 가을의 느낌을 더할 것이다. 노을도 마찬가지다. 불이 난 것처럼 깊고 진해진 노을을 보면서 우리는 계절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계절이 완연히 바뀌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해도 저물고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삶의 오묘한 깊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담고 있는 삶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런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생각을 하자니 알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이 찾아온다. 산그늘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네의 생각도 깊어질 것이다.  삶은 매일이 전쟁 같지만 지나고 보면 매미 껍질처럼 가볍고 안쓰럽다. 시인의 마음도 그러했는가 보다. 지난여름을 정리하며 9월은 글썽거리고 있다. 그렇게 마음도 생각도 깊어지라고 찾아온, 열심히 깊어지고 있는 가을이다.
34    시는 "깨달음"의 "사고묶음"이여야... 댓글:  조회:2527  추천:0  2016-12-13
 3. '깨달음'을 주는 시   인간사와 사물의 특징을 세심히 관찰하여 제대로 묘사하면 모종의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1996년 조선일보 당선작 [부의(賻儀)]를 갖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봉투를 꺼내어   부의(賻儀)라고 그리듯 겨우 쓰고는   입김으로 후― 불어 봉투의 주둥이를 열었다   봉투에선 느닷없이 한 움큼의 꽃씨가 쏟아져   책상 위에 흩어졌다 채송화 씨앗   씨앗들은 저마다 심호흡을 해대더니   금세 당당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되었다   책상은 이른 아침 뜨락처럼   분홍 노랑 보랏빛으로 싱싱해졌다   씨앗들은 자신보다 백 배나 큰 꽃들을   여름내 계속 피워낸다 그리고 그 많은 꽃들은 다시   반짝이는 껍질의 씨앗 속으로 숨어들고   또다시 꽃피우고 씨앗으로 돌아오고   나는 씨앗 속의 꽃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알도 빠짐없이 주워 봉투에 넣었다   할머님 마실 다니시라고 다듬어 드린 뒷길로   문상을 갔다   영정 앞엔 늘 갖고 계시던 호두 알이 반짝이며   입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봉투를 가만히 올려놓았다.                                      ―최영규, [부의(賻儀)] 전문   어려운 시어도 없고 난해한 표현도 없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이웃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러 간 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시에는 생명 옹호의 정신과 불교적 깨달음, 측은지심 같은 고차원적인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말합니다. 생로병사는 인간이 이상 어찌할 수 없지만 윤회전생(輪廻轉生)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고요. 전생의 업보니 인연이니 억겁이니 하는 불가의 용어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늘 갖고 계시던 호두 알이 입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다는 것은, 꽃이 씨를 남겨 자신의 목숨을 이어간다는 것과 의미의 맥이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최영규 시인처럼 생명의 의미를 종교적 차원에서 다뤄볼 수도 있겠지만 사물의 의미는 어떤 차원에서 다뤄볼 수 있을까요?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강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최영철, [연장論] 마지막 연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난다   반듯한 네 귀들이 날카롭게 모진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고무망치의 등 두들김에도   끝내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   화목이란 말은 그저 교과서에나 살아 있는 법   모와 모가 만나고 선과 선이 바르게만 살아 있어   어디 한구석 넘나들 수 있는 인정은 없었다   이가 딱 맞다                                      ―주강홍, [타일 벽] 앞 2연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만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저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                                      ―송승환, [나사] 전문   [연장論]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고 [타일 벽]은 2003년 계간 {문학과 경계} 신인상 공모 당선작이며 [나사]는 2003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 공모 당선작입니다. 3편 다 '충격'과 '감동'의 차원에서는 운위하기 어렵고, 결국 '깨달음'을 지향하는 시라고 여겨집니다. [연장論]은 건설현장의 공구를 소재로 삼은 시인데 궁극적으로는 이웃과의 연대와 화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많이 배웠건 많이 가졌건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무인도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결국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고립되고 만다는 주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이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연장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주제도 유추해볼 수 있지요.    [타일 벽]을 쓴 사람은 건설회사 사장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쓴 시는 다 현장성이 두드러집니다. 타일을 의인화한 이 시는 공사현장에서 펼치는 인생론입니다. 욕실 타일 벽 공사를 하면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고무망치의 두들김에도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타일의 저항과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의 의미입니다. 공사현장에서 타일 벽은 이가 딱 맞아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때로는 언밸런스이고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오리무중이지요. 하지만 타일 벽이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규칙과 규율을, 감독과 관리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는 제4연에 가서 역전을 시도합니다.    낙수의 파형(波形)만 공간 가득하다   물살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속은 쏴아쏴아   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낸다   욕실을 지배하는 건   모서리들끼리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이 아니었다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에 반항하려고 욕실의 물살이 "쏴아쏴아/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냅니다. 세상 너무 모나게 살 필요가 없는 법, 때로는 두루뭉실하게, 때로는 비스듬하게 살아가자고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송승환의 시는 나사의 의미를 확장하여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들어 미세하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내포(內包)보다는 외연(外延)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이미지 연상작용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송 시인은 그 기법을 멋지게 사용하여 독자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나사는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화두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사의 사전적인 의미 고찰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는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앎은 지식의 영역이고 깨달음은 지혜의 영역입니다. 시는 우리에게 충격과 감동과 함께 깨달음을 줄 수 있습니다. 철학서 한 권, 역사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내용을 압축하여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세상에서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이란 '크게 느낀다'는 뜻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찰의 안테나를 계속 세우고 있으면 시로 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좋은 시는 늘 우리 주변의 사물을 잘 살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씌어지는 것입니다. 일기나 수기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면 되지만 시는 축소지향의 장르입니다. 구질구질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서 쓰면 그것이 바로 촌철살인이고 정문일침입니다. 시는 '충격'과 '감동' 혹은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강연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제 강연을 경청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의자 ―이정록(1964∼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 시를 쓴 사람을 좀 소개하고 싶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는 학교 선생님이고, 한 여인의 남편이고, 시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면 한참 부족하다. 그의 소개에는, 나름대로 유명한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 이 시인은 한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들보다 더 시적이며 아들보다 더 위트 있으며 아들보다 더 심오한 세계관을 가지신, 한 어머니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삶과 말씀은 아들에게 창작의 보물창고가 되어 주었다. 하시는 말씀마다 어찌나 주옥같은지, 시가 되지 못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어느 날, 어머니는 병원으로 가시면서 아들에게 말한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고 말이다. 자주 앉아야겠고 힘드니까 자동적으로 의자를 찾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자를 찾아보니까, 내가 앉을 그 의자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의자에 앉아 있는 이치가 보였다. 꽃도 열매도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고, 사람의 인생이란 좋은 의자를 만들고 좋은 의자가 되는 일이었다.      지난주 벌초 행렬로 인한 고속도로 정체가 있었다고 한다.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나에게 좋은 의자가 되어준 이를 만나러 갈, 또는 좋은 의자가 되기 위해서 가야 할 때. 어머니의 의자 이론을 생각하는 추석이고 싶다.
33    이 책은 책이 아니다와 이 책은 보물창고다와의 시적미학 댓글:  조회:2408  추천:0  2016-12-12
  나를 매혹시킨『어쩐지?』의 美學                                    발표자 : 윤 수 아                                          (2014년 5월 23일 독서토론)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이승하, 문학사상)을 접해 읽으면서 시인으로 시를 공부한다는 내 자신이 2006년 초판을 발행한 이 책을 너무 늦게 읽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몇몇 세계적인 시인들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을 펼치자마자 우리나라 시인들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선 그동안 문학사에서 고찰되었던 25분 시성들의 삶과 시에 대하여 이승하교수가 기술한 해설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詩作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최초의 시인이며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귀양 가서 썼다는 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한평생 불운하게 살면서도 하층민인 민중의 삶과 당시대의 곤궁한 시대상을 대변한 두보의 영혼이 실린 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일차적으로 큰 수확이었다. 아울러 선시풍의 시를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도 썼다고 알려진 윌리엄 블레이크와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하는 샤를 보들레르의 시세계를 접하게 된 것도 큰 기쁨이었다. 또한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은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 시적 탐험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는 파블로 네루다 등 그야말로 접해보고 싶은 시인들을 엄선하여 소개한 정보를 접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알기만 했던 시인들을 인연이 되게 하여 다시 몰입하게 해준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의 저자 이승하교수와 이 책을 독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우리 書로書로 독서회에 감사드리고 싶다.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은 무릇 시를 쓰고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서가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 책에 소개한 동서양의 시인 25명은 우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시인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한 시인들 외에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인들도 많다. 하지만 저자가 서두에서 여기에 소개한 시인과 시들은 “내 시가 난파할 때마다 희미한 등댓불로 떠올라 밤을 새며 시집을 읽으면서 다시 기운을 차려 시를 썼다”고 고백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을 연이어 읽어나가며 저자의 말에 충분히 긍정할 수 있었다.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그 내용을 세세하게 쓰기가 쉽지 않다. 25명의 시인들을 소개만 해도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축약만 해도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인들을 감히 내가 언급한다는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두 분의 시인을 나름 선정해서 언급하고 내가 느낀  소회를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영국)-“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예언자의 목소리”는 시인이 생존했던 당시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시대를 앞서간 시인이다. 최근 선(禪)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지면서 서양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동양적 시각으로 선시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시대에 앞선 시인임이 분명하다.   블레이크의 시 에 나오는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이 대목이 특히 그러하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본다는 구절은 마치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작은 겨자씨 안에 수미산이 들어 있다”는 구절의 내용과 흡사한 구절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분명 불교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교의 심오한 성찰과 원융한 세계를 노래했다는 것은 그의 사유의 진폭이 크고 인간의 실존에 대해 근본적으로 탐구하며 시대를 앞서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신실한 교인이면서도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법제화된 종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블레이크는 악을 하나님의 분노로 여기며 그런 악을 타파하기 위한 건강한 에너지의 분출로 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블레이크의 시집 제목  ‘천국과 지옥의 결혼’ 역시 그러한 선과 악을 대비한 시로 보인다. 저자의 표현대로 윌리엄 블레이크는 시대에 앞서 세계의 이치를 설파한 예언자적 시인이다. 블레이크의 시를 기회가 닿으면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하며 그의 시세계에 접근해 보고 싶다.     샤를 보들레르(프랑스)-“고통의 극한에서 추구한 추의 미”는 평생 한 여인을 구애하듯 따라다녔다. 그 여자는 흑백 혼혈 여성인 잔느 뒤발이다. 어쩌면 그 여자 때문에 그가 평생 시혼을 불태우며 역설을 지향하는 시를 많이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모두 한 시절이다. 아름다운 육체도 시간이 지나면 썩을 수 있다는 상상, 그러니까 시체와 같은 추악한 대상도 추하게 보지 말라는 시각, 그런 관점에서 보들레르의 명저『악의 꽃』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시는 보들레르의『악의 꽃』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1857년, 시집『악의 꽃』이전에는 시적 대상에 대해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시가 주를 이루었다. 보들레르는 그 시대에 시인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그로테스크한 시어를 시 속에 녹여내었다. 더러움과 추함이 역설적으로 아름답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추의 미’가 성립되는 것이다. 당시 그때까지 시의 대상을 단번에 전환시킨 새로운 시의 출발이었다.   『악의 꽃』이후에 비로소 현대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이론이다. 그런 위대한 보들레르도 잔느 뒤발이라는 밤거리 여자에게 평생 애정의 노예가 되었다. 보들레르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용해 뒤발은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였고 보들레르는 자신의 낭비벽과 함께 상당한 유산을 그 여자에게 갖다 바쳤다. 그때 나이 23살, 금치산자가 된 그는 죽는 날까지 가난에 허덕이며 살게 된다. 보들레르는 사바티라는 여인과 순정적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다시 뒤발에게 운명적으로 빠져들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잔느 뒤발이라는 악의 화신 같은 여자에게 한없이 함몰되어가는 보들레르, 하지만 그 여자는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시를 쓰게 만드는 동기를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시의 원천이었다. 잔느 뒤발이 죽고 나자 시의 영감이 끊겨 전혀 시를 쓰지 못했다고 하니 아마도 뒤발이라는 여자는 위대한 보들레르를 위해 잠시 존재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아마도 잔느 뒤발이 ‘악의 꽃’, 바로 그 화신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생전에 보들레르의 시집『악의 꽃』은 혹평을 받았다. 책 출간 9개월이 지나서야 최초의 서평을 받았고 평론가의 지지도 받지 못했으며 악평은 어마어마했다. 동시대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보들레르는 악과 추를 찬양한 퇴폐적인 시인으로 내몰렸고 그의 시집『악의 꽃』은 외설과 신성모독죄 선고를 받았고 출판사 사장은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보들레르는 당시의 타락하고 부패하고 거짓된 세상을 올바르게 그려냈던 진정한 시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추악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악의 꽃』을 통해 보들레르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삶의 과정에서 잔느 뒤발을 만난 인연으로 끊없는 시심을 불러 일으켰으니 그녀는 어쩌면 그의 위대한 시집『악의 꽃』을 위해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악의 꽃』은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참으로 위대한 시인의 시집이다.     그 외 사랑과 저항, 순수를 노래하며 ‘자유’를 상징하는 폴 엘뤼아르와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 수없는 여성편력과 시적 모험을 진행하며 잠시도 시적 영감을 잃지 않았다는 칠레의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파블로 네루다 등, 저자가 소개한 서구의 많은 시인에 대해 접해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저자의 밝힌 말 그대로 외국 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며 시심을 가다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은 내 부족한 외국 시인들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보충해줄 튼튼한 지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책이 놓인 내 책장이지만 세계를 말하기에 앞서서 나 자신을 매혹시킨 필독서로 오래 책장에 자리할 것이라고 예견해 본다. (끝)        출처 :자연문학회   중앙대 교수 이승하 시인의 세계의 명시 이야기,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문학사상사)을 펴냈습니다. 외국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 독자나 시인 지망생들에게 세계의 시인 25인을 엄선하여 그 생애와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시의 이해를 도움은 물론 번역시를 읽는 데 나침반이 되어줄 책으로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 지망생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 누구라도 교양서로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였으며, 자연스럽게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명시의 여운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잊고 살았던 시심을 되찾게 해줄 것으로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문학사상사       이승하 시인이 들려주는 세계의 명시 이야기를 담은 . 외국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 독자나 시인 지망생들에게 세계적 시인 25인의 생애와 시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강단에서 문예창작을 지도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시인의 삶과 사랑 이야기 속에서 명시가 탄생한 배경을 들려주고, 시의 가치와 의미들을 감칠맛 나게 해설하고 있다.  또한 시인다운 감수성으로 시의 정수라 할 만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짚어주어, 시를 보는 안목을 넓히고 시심을 가다듬도록 하였다. 수천 년 전 중국의 시인 굴원에서부터 유명한 하이네, 예이츠, 랭보, 포를 비롯하여 현대시의 모험가로 일컬어지는 독일의 시인 카를 리하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사랑받는 세계의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책을 내면서- 함께 읽고 싶은 세계의 명시  자살한 시인에서 출발하는 중국 시문학__중국 최초의 시인 굴원  혼신의 피를 갈아 시를 쓰다__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  인간됨의 뜻을 탐구한 천태산의 은자__중국 당나라의 시인 한산자  한 맺힌 피는 천년을 두고 푸른 옥이 되리라__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하  사랑의 신비와 침묵의 승리__페르시아의 시인 잘랄 앗딘 알 루미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예언자의 목소리__영국의 시인 블레이크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불러야 할 노래__독일의 시인 횔덜린  순수서정의 세계에서 현실참여의 세계로__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날개 달린 천사도 부러워한 사랑__미국의 시인 애드거 앨런 포  고통의 극한에서 추구한 추의 미__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  지옥에서 열아홉 살까지만 시를 쓴 천재__프랑스의 시인 랭보  사랑의 실패를 문학적 성공으로 승화시키다__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 없는 작품 세계__오스트리아의 시인 게오르그 트라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위대함을 예찬하다__영국의 시인 D.H. 로렌스  프롤레타리아 혁명기의 시운동을 주도한 풍운아__러시아의 시인 마야코프스키  혁명의 시간과 도시의 공간에 적응하지 못한 시인__러시아의 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  사랑과 저항, 혹은 순수와 참여의 이중주__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  스페인의 자랑, 그라나다의 영광__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전 세계의 대중이 사랑했던 시인__프랑스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  끝없는 여행, 여성 편력, 그리고 시적 모험__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아메리카 흑인의 삶과 영혼을 노래하다__미국의 시인 랭스턴 휴즈  아프리카 흑인의 자존과 번영에 몸 바친 시인__세네갈의 시인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사형수의 인권을 외친 전과 10범 시인__프랑스의 시인 장 주네  전쟁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__독일의 시인 보르헤르트  시답지 않은 시를 쓴 현대의 모험가__독일의 시인 카를 리아의 시 
32    <농부> 시모음 댓글:  조회:2593  추천:0  2016-12-12
  + 푸른 스커트의 지퍼  농부는  대지의 성감대가 어디 있는지를  잘 안다.  욕망에 들뜬 열을 가누지 못해  가쁜 숨을 몰아쉬기조차 힘든 어느 봄날,  농부는 과감하게 대지를 쓰러뜨리고  쟁기로  그녀의 푸른 스커트의 지퍼를 연다.  아, 눈부시게 드러나는  분홍빛 속살,  삽과 괭이의 그 음탕한 애무, 그리고  벌린 땅속으로 흘리는 몇 알의 씨앗.  대지는 잠시 전율한다.  맨몸으로 누워 있는 그녀 곁에서  일어나 땀을 닦는 농부의 그 황홀한 노동,  그는 이미  대지가 언제 출산의 기쁨을 가질까를 안다.  그의 튼실한 남근이 또  언제 일어설지를 안다.  (오세영·시인, 1942-) + 농부       시인과 농부는  원래 한 핏줄에서 났을지도 모른다.  나의 펜은 나의 쟁기,  쟁기가 부드러운 흙을 일궈 밭을 갈듯  나는 원고지를 갈아 씨를 뿌린다.  간다는 것은  뒤집어엎는다는 것,  혁명이  굳은 이념을 개고 새것을 창조해 내듯  뒤집힌 흙에서만 씨앗은 새싹을  움틔운다.  그러나 나의 땅은 박질이다.  한 줄의 시에서도  돋아나는 새싹은 없다.  더 깊이 정신의 이랑을 파헤칠  내게  농부의 고운 노동을 다오.  이 잔인한 봄을 나는  놓치기 싫다 (오세영·시인, 1942-) + 농부와 시인  아버님은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집을 지으시고  그 집에 살며  곡식을 가꾸셨다  나는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김용택·시인, 1948-) + 시인과 농부    밥과 입 사이가 가장 아득한 거리 밥과 입 사이에 우주가 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문명도 밥과 입 사이를 좁히지 못했다 우주의 원(圓) 몸의 원이 밥과 입 사이에서 끊겨 있다 항문과 땅 또한 이어져 있지 않다 밥과 똥 똥과 밥 사이가 두절되어 있다 (이문재·시인, 1959-) + 농부  논밭에 심어 놓은  곡식들도  정성 들여 가꾼  살붙이이고,  소도 염소도 돼지도  모두가  자식처럼 사랑스런  한 식구인지라,  보살필 식구 많은  농부 아저씨는  잠시도 편히 앉아  쉴 새가 없다.  논밭으로 갔다가  산으로 갔다가  만날 바빠서  총총걸음.  비가 오는 날에도  우장 쓰고 나가서  피도 뽑고  물꼬도 다스려야 하고,  일하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기다리는 집짐승들을 위해  꼴도 한 짐 베어  지고 가야 한다.  조상의 피땀어린  귀한 땅  고이 지키며  기름지게 가꾸느라,  사시사철  흙 묻은 손발에  땀 마를 날 없는  농부 아저씨는….  (김녹촌·아동문학가, 1927-) + 농부의 길  흙이 좋아   흙밭에 누웠다 밟히고 또 밟히다 보니 심장 사이로 새 길이 났다 큰 발바닥 지나가니 작은 발자국 따라오고 연수 지난 포터가 넘은 몸뚱아리 츄레라 깔아뭉개고 가 버렸다 처음은 작은 진동에도  민감한 반응 보였다마는 맞을수록 맷집 생기고 밟힐수록 내성과 요령도 생겨 이젠 목타는 고통도  악으로 견디며 깡으로 이겨내는 굳은 살 박혔다 내 몸이  흙이 좋아 누워버린 흙밭 위  흙길이 뚫렸다. (백영호·시인, 1955-) + 한숨 시골동네에서  논밭으로 가는 길은 움푹움푹  패인 곳이 참 많다  뼈마디  으스러지게 농사지어봤자  땀 값도 안 나온다고  농부들이 하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다녀서  길이 움푹움푹 패였다 (신천희·승려 시인)  + 이루어지려니    황량한 들녘에 씨앗 뿌린 농부의 꿈 긴 여름 땡볕에 가꾸어 노을에 태운 마지막 가을날 소망한 그 열매 다 함께 거두었으면...... (정정길·시인) + 한 농부의 추억 그는 살아서 세상에 알려진 적도 없다  대의원도 군수도, 한 골을 쩌렁쩌렁 울리는 지주도 아니었고  후세에 경종을 울릴만한 계율도 학설도 남기지 못하였다  그는 다만 오십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았고  유월의 햇살과 고추밭과 물감자꽃을 사랑했고  토담과 수양버들 그늘과 아주까리 잎새를 미끄러지는  작은 바람을 좋아했다  유동꽃 이우는 저녁에는 서쪽 산기슭에 우는  비둘기 울음을 좋아했고  타는 들녘끝 가뭄 속에서는 소나기를 날로 맞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쇠똥과 아침 이슬과 돌자갈을 은화처럼 매만졌고  쟁기와 가래와 쇠스랑을 자식처럼 사랑했다  더러는 제삿날 제상에 어리는 불빛을 좋아했고  농주 한 잔에도 생애의 시름을 잊곤 했다  수많은 영웅과 재사와 명언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이 농부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쓰던 낫과 그가 키우던 키 큰 밤나무와  밤꽃이 필 때 그가 완강한 삶의 일손을 놓고  소슬한 뒤란으로 돌아간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기철·시인, 1943-)
31    시작은 시작으로서의 "남다른 시작의 길"을 모색해야... 댓글:  조회:2534  추천:0  2016-12-12
제3부 시 창작법 및 창작기법 엿보기   1. 시 작법 발상-제목 정하기-메모-산문-연 나누기-살 빼기-뒤집기와 단어 바꾸기-행 나누기- 제목 정하기-탈고   1) 발상 발상은 어떤 현상이나 어떤 이론 또는 어떤 물상을 보고 착상을 할 수 있다. 단 그 발상이 꼭 소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발상의 내용에 따라 소재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주제가 될 수도 있고 제목이 될 수도 있다.   이웃집 할머니가 파전을 부쳐가지고 왔다. 그 할머니는 유달리 정이 많다. 먹을 것만 생기면 나눠먹자고 나한테 갖다 준다. 혼자 사는 내가 뭘 먹고 사는지 걱정이 되었나보다. 할머니는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안경을 앤경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의 정’에 대한 착상을 하게 되었다.   2) 제목 정하기 시 창작에 있어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고 중요하다. 제목은 발상을 하고 바로 정하기도 하고 탈고를 앞두고 그때 정하기도 한다. 나는 할머니의 정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제목을 일단 ‘할머니의 정’으로 정했다.   3) 메모 어떤 착상으로 발상을 하게 되면 그 발상에 대한 주제나 소재와 연관된 내용을 계속 메모해 나가야 한다. 그 메모 내용이 직접적으로 쓰고자 하는 시와 상관이 없어도 무방하다. 말이 되던 안 되든 어떤 내용이 건 간에 무조건 메모를 해나가야 한다. 메모가 많을수록 좋은 시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메모 할머니는 정이 참 많다. 할머니는 뭐든 나눠먹기를 좋아한다. 할머니는 남 주기를 좋아해서 가진 것도 없을 거야. 할머니는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할머니는 혼자 산다. 남 주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혹시 할아버지도 남줘 버린 건 아닐까? 할머니는 내가 뭘 갖다드리면 꼭 보답으로 뭘 갖다 준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세 발로 걷는다. 할머니는 욕심이 없다. 할머니 양말에 구멍이 났다. 할머니는 이가 두 개밖에 없다. 할머니가 없으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지? 인생은 60살부터라는데 80살이 다 된 할머니는 덤으로 사는 거다. 할머니는 뭐든지 못 줘서 안달이다. 할머니처럼 주는 걸 좋아하다간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겠다.   4) 산문 쓰기 할머니는 정이 참 많다. 먹을 것이든 뭐든 못 줘서 안달이다. 내가 뭘 갖다드리면 꼭 뭘 담아 오시지 빈 접시로 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할머니처럼 살다가는 남아 나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이가 두 개밖에 없는 할머니는 학교를 핵교라 부르고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는 할머니는 다리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남한테 덤주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배운다.   5) 연나누기 ① 첫 번째 단계 할머니는 정이 참 많다. 먹을 것이든 뭐든 못 줘서 안달이다. 내가 뭘 갖다드리면 꼭 뭘 담아 오시지 빈 접시로 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할머니처럼 살다가는 남아 나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이가 두 개밖에 없는 할머니는 학교를 핵교라 부르고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는 할머니는 다리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남한테 덤주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배운다.   ② 두 번째 단계 할머니는 정이 참 많다. 먹을 것이든 뭐든 못 줘서 안달이다   내가 뭘 갖다드리면 꼭 뭘 담아오시지 빈 접시로 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할머니처럼 살다가는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이가 두 개밖에 없는 할머니는 학교를 핵교라 부르고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는 할머니는 다리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남한테 덤주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배운다   6) 살 빼기 ① 첫 번째 단계 할머니는 정이 참 많다. 먹을 것이든 뭐든 못 줘서 안달이다.   내가 뭘 갖다드리면 꼭 뭘 담아 오시지 빈 접시로 돌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할머니처럼 살다가는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을 거다   이가 두 개밖에 없는 할머니는 학교를 핵교라 부르고 안경을 앤경이라 부른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는 할머니는 다리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남한테 덤 주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나는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배운다   ② 두 번째 단계 할머니는 정이 얼마나 많은지 말을 할 때도 덤을 준다   학교를 부를 때는 핵교라 부르며 덤 하나 더 주고 안경을 부를 때도 앤경이라 부르며 덤을 하나 더준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다니는 할머니는 다리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고 좋아한다. 그래서 남한테 덤 주기를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③ 세 번째 단계 할머니는 인정이 얼마나 많은지 말만 들어봐도 금방 안다   학교를 부를 때는 핵교라 부르며 덤 하나 더 주고   안경을 앤경부를 때도 앤경이라 부르며 덤을 하나 더 준다   할머니는 먹을 것이든 뭐든 남한테 줄 때는 꼭 덤을 얹어준다   7) 뒤집기와 단어 바꾸기 ① 첫 번째 단계 할머니의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는 말만 들어봐도 금방 안다   학교가 뭐야 정 없게 작대기 하나 더 그어서 핵교라고 해야지   안경이 뭐야 인심 사납게 작대기 하나 더 보태서 앤경이라 해야지   말이든 먹을 것이든 뭐든 남한테 줄 때는 꼭 덤을 하나 더 얹어 준다   ② 두 번째 단계 할머니의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는 말만 들어봐도 금방 안다   안경이 뭐냐 인심 사납게 가래떡 하나 더 얹어 앤경이라 해야 좋아하지   학교가 뭐야 정 없게 작대기 하나 더 보태서 핵교라고 해야지   말이든 먹을 것이든 남 줄 때는 꼭 덤으로 하나 더 얹어 준다   8) 행 나누기   할머니의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는 말만 들어봐도 금방 안다   안경이 뭐냐 인심 사납게 가래떡 하나 더 얹어 앤경이라 해야 좋아하지   학교가 뭐야 정 없게 작대기 하나 더 보태서 핵교라고 해야지   말이든 먹을 것이든 남 줄 때는 꼭 덤으로 하나 더 얹어 준다   9) 제목 정하기 이 시는 할머니의 정을 주제로 나타냈기 때문에 제목을 그냥 ‘할머니의 정’으로 정했다.   10) 탈고 체크리스트에 준해서 탈고를 한다.     발상했다고 다 시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버리지 말고 한쪽에 제쳐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전혀 새로운 구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래에서 게재한 여러편의 을 소야 신천희시인님의 에서 출처했음을 밝힘, 감사 드림!!!~
30    시는 "나만의 스타일"로 쓰라... 댓글:  조회:2474  추천:0  2016-12-12
9) 나만의 스타일로 쓴다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시를 배우는 사람들의 시를 보면 그 스승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방으로 시작하였더라도 끝내는 자기 자신만의 것을 내놓아야한다.   작가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시를 보고도 이건 누구 시다! 할 수 있도록 그런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야 시인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 머리 위에 똥을 싼다고 말 못하는 새한테 욕하지 마세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사람 머리 위에 똥을 누며 산다는 걸 새들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신천희 동시 -『공중변소』전문   여자가 꽃 중에 꽃이라는 할머니가 방귀를 뽕 뀌었다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시든 꽃에는 향기가 없다는 말 누가 했는지 순전히 거짓말이다   신천희 동시 -『시든 꽃에도 향기가 있다』전문   화장실에 갔는데 똥이 나올까말까 망설이는 거야   나온다고 했으면 후딱 나오지 미적대기는   내 성질에 그 꼴을 어떻게 보고 있어   나오든 말든 네 맘대로 해 하고 나와 버렸지   보나마나 지금쯤 똥이 후회하고 있을 거야   신천희 동시 -『네 맘대로 해』전문   이렇게 나는 똥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빚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빚은 동시를 똥시라고 한다. 사람들도 나를 똥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내 똥시는 이름을 명시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천희의 시란 것을 안다. 이것도 내가 정해놓고 빚는 나만의 스타일이다.     10) 이론에 매이지 않는다   시에서는 직유든 은유든 비유가 많다. 그렇지만 나는 직유가 무언지 환유가 무언지 알면서도 잘 모른다. 시를 빚으면서 이론에 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국문학박사나 국어교사들 중에 시를 잘 빚는 사람이 드물다. 이론을 너무 잘 알아서 그 이론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치환을 해야 돼! 여기서는 직유를 해야지! 이렇게 이론을 내세워 의도적인 비유를 하는 까닭이이다.   그래서 시는 국문학박사가 빚는 것도 아니요, 국어교사가 빚는 것도 아니요, 시인이 빚는 것이라 한다. 시인이 시를 빚으면 굳이 이론을 따지지 않아도 자동으로 은유가 되고 치환이 되어 있다.   그리고 시 공간성 같은 이론을 따지며 짜인 틀에 갖다 넣으려고 하면 시는 건조해져 무말랭이처럼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11)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는다   시는 나를 위해 빚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독자를 위해 빚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주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이야기 또는 내가 경험한 것을 소재로 빚는다 하드라도 객관성을 회복해야 한다. 객관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자가당착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박성우 동시 -『삼학년』전문   이 시는 객관성을 회복하지 못해 자가당착에 빠진 시다. 미숫가루가 실컷 먹고 싶다고 미숫가루를 우물에 쏟아 붓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사카린이랑 슈가까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 시를 읽고 맞아! 그랬지! 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제목이 ‘삼학년’ 인 걸 보면 작가가 삼학년 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적이 있나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작가가 자가당착에 빠져 빚은 시로 작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시다. 사건 자체가 객관성을 회복하기엔 너무 엄청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 동네는 이장님이 마을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릴 때 쓰는 방송장치가 있으나마나다   어떤 소식이든 칠구네 할머니가 알면 이장님이 방송도 하기 전에 동네사람들이 다 안다   신천희 동시 -『동네방송』전문   위의 시 ‘삼학년’ 과 같이 어떤 사건을 주제로 한 시다. 작가가 겪은 사건을 시로 빚었지만 독자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을 회복했다. 그랬을 때 시가 성립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시인의 연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두 발을 가지런히 했다고 치자. 그 시인이 연인과 함께 나누었었던 추억을 더듬어 시로 빚는다. 그 시인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도록 슬픈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아무리 읽어봐도 세상에 이 보다 더 슬픈 시는 없다.   그런데 어떤가? 연인이 멀쩡하게 살아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아무 감흥도 못 느낀다. 자기의 감정에 치우쳐, 자기만이 가진 이야기를, 자기에게 늘어놓았는데 타인이 어떻게 그 감정에 이입되겠는가. 이런 것이 바로 자가당착이다.     12) 기승전결로 시를 전개해 나간다   13) 시제와 시점을 정확하게 한다   14) 탈고를 위한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시인은 말이 필요없다. 단지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29    시작은 모든 것이 늘 "치밀하고 + 치렬하게" 해야... 댓글:  조회:2446  추천:0  2016-12-12
9. 치밀하고 치열하게 쓴다   1) 시적 참을 지킨다 동시를 쓸 때는 시어나 내용이 시적 참에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시에서는 시인이 주관적으로 시어를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 독자가 포함된 동시에서는 시어나 내용이 가능하면 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한다. 시를 읽은 어린이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똥을 누면 엄마한테 했던 거짓말이 없어질까? 똥을 누면 엄마 몰래 가지고 간 500원이 다시 엄마의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갈까? 똥을 누면 학원 안 가고 오락실에서 놀았던 일들이 없어질까? 똥 을 누 면 . . . 똥을 누면 내가 잘못했던 일들이 모두 없어졌음 좋겠다 더러운 똥이랑 같이... 내가 했던 나쁜 일들도 없어졌음 좋겠다 김한림 동시 -『똥을 누면』전문 이 시를 보면 마지막 두 연은 화자의 바람이기 때문에 시적 참에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1, 2 3,연은 비약이 너무 심하여 시적 참에 어긋난다. 똥은 뱃속에 있다. 그러나 1, 2, 3연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몸 바깥의 일들이다. ‘똥을 눈다고 엄마 몰래 가지고 간 500원이 다시 엄마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갈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적 참에 어긋난다. 시적 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쓰다보면 이런 오류가 생긴다.   2) 치밀하게 쓴다 어머니는 그륵이라고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시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은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은 한 그릇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정일근 시 -『어머니의 그륵』전문 이 시는 치밀함이 부족하여 오류를 범한 시다. 1연 1행에서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라고 존칭을 사용했다. 그런데 3연 2행에서는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라고 존칭을 생략했다. ‘그륵이라 배웠다.’ 가 아니라 ‘그륵이라 배우셨다.’ 라고 해야 맞고, 3행 역시 ‘어머니가 담은’ 이 아니라 ‘어머니가 담으신’ 이라고 해야 맞다. 어떻게 보면 1연 1행의 ‘읽으신다.’ 가 오류처럼 보인다. 하지만 4연 3행에 보면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라는 존칭이 또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존칭이 생략된 부분의 오류가 맞다. 시에서의 오류들은 작가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치밀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긴다. 예전에 내 시집을 읽은 어떤 독자가 내 시에서의 오류를 지적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십여 년이 지나 확실치는 않지만 앵두의 수확 시기에 관한 오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편지를 받고 나서 내 얼굴이 활활 달아오른 것은 당연하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분이 지적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앵두의 수확시기를 잘 못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를 빚을 때 치밀함에 대해 이렇게 예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독자에게 고맙다는 화답으로 긴 편지를 보낸 것은 물론이다. 그 다음부터 나는 시를 쓰면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을 길렀다. 시에서의 오류는 치밀하지 않은데서 온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일이다.   3) 존칭을 쓰지 않는다 시에서 존칭어 사용은 옳지 않다.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등은 하나의 대상물이다. 다만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주관적인 글)이라면 당연히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그 대상이 누구라도 존칭을 쓰면 안 된다. 시는 객관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정일근 시『어머니의 그륵』도 쓰지 말아야 할 존칭어 때문에 오류가 생겼다. 어머니는 그륵이라고 쓰고 (읽는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은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은 한 그릇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들었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정일근 시 -『어머니의 그륵』전문 존칭어를 빼고 나니 한결 깔끔하고 무리가 없다. 존칭 때문에 오류를 범하고 긴장미가 떨어진 시를 한 편 더 보자. 장작을 패시던 손으로 무밭에 두엄을 내시던 손으로 아버지는 외양간 기둥에 등불을 거시고 무릎을 꿇어 송아지를 받으셨다. 뿌우연 등불 아래 땀을 훔치며 나오시는 아버지의 험한 손이 예쁘고 귀여운 송아지를 받으셨다. 권영상 시 -『아버지의 손』전문 이 시에서는 우선 3연에 문장의 오류가 있다. ‘무릎을 꿇어 송아지를 받으셨다.’ 는 ‘무릎을 꿇고 송아지를 받으셨다.’ 라고 해야 맞다. 이 시에서 존칭으로 인한 결정적인 오류는 4연과 5연에 걸친 ‘아버지의 험한 손이/ 예쁘고 귀여운 송아지를 받으셨다.’ 는 곳이다. 이 문장을 보면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험한 손에다 존칭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존칭 문장의 오류는 ‘아버지가 험한 손으로 예쁘고 귀여운 송아지를 받으셨다.’ 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존칭을 빼고 ‘아버지의 험한 손이 예쁘고 귀여운 송아지를 받았다.’ 라고 해야 한다. 시는 아무리 날카로운 비수로 후벼도 살점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치밀하게 써야 하는 것이다. 장작을 패시던 손으로 무밭에 두엄을 내시던 손으로 아버지는 외양간 기둥에 등불을 걸고 무릎을 꿇고 송아지를 받았다. 뿌우연 등불 아래 땀을 훔치며 나오는 아버지의 험한 손이 예쁘고 귀여운 송아지를 받았다. 권영상 시 -『아버지의 손』전문 이렇게 존칭어를 빼면 시가 무리 없이 읽힌다. 대상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고 해서 존칭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 글을 써서 그 대상에게 바치는 글이 아니라면 객관성을 회복하고 존칭을 생략해야 한다.   4) 문장부호를 쓰지 않는다 시에서 문장부호의 사용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동안 작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나는 문장부호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 쓰지 않는다. 문장부호의 남발이 시의 긴축미를 떨어뜨리고 너저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 나들이 간 나비박물관에서 표본을 찬찬히 보시던 엄마. “어쩜......여기도 너 있네!” 넌 이름이 그게 뭐니? 창피하게. 엄마가 호호 아빠가 푸하하! 오지연 동시 -『떠들썩 팔랑나비』전문 시에서 되도록 문장부호를 삼가고 어쩔 수 없이 써야한다면 철저하게 써야 한다. 위의 시를 보면, 2연에서 ‘어쩜......여기도 너 있네!’에서 말줄임표를 마침표 온점으로 찍는 오류를 범했다. 2연에는 대화 글에 큰따옴표를 쓰고 3연에는 아예 쓰지 않았다. 그리고 ‘창피하게.’는 온점대신 느낌표를 찍어야 마땅하다. 4연에서도 ‘아빠가 푸하하!’는 느낌표를 찍고 ‘엄마가 호호’에서는 찍지 않았다. 이 시를 보면 문자부호로 인하여 시가 너저분하게 보인다. 시를 빚으면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외형적 형태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특히 문장부호는 웬만하면 쓰지 말고 꼭 써야한다면 완벽하게 써야함을 잊지말아야 한다.   5) 의인화는 끝까지 한다. 시의 소재를 찾는 방법 중에 사물에게 말 걸기를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사물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의인화 작법은 특히 동시에서 많다. 의인화를 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의인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릉숲에 들어서면 푸른 갑옷을 두르고 팔도강산에서 모여든 어기찬 아저씨들을 만난다. 임꺽정의 필뚝 같은 나무 김정호의 다리 같은 나무 활대 잡은 충무공처럼 훤칠한 나무 임진왜란의 의병들이 튀어나오고 동학의 장정들이 걸어 나오고 솔잎수염이 따끔따끔 침을 찌르던 청산리 싸움의 독립군을 만난다. 비바람을 맞으면 더 푸른 나무 눈보라 휘몰아치면 더 곧게 서서 피리 부는 나무. 광릉숲에 들어서면 웃자란 내 몸도 한 그루 옹이 박힌 나무가 된다. 서재환 동시 -『광릉숲에서』전문 이 시를 보면 의인화를 했지만 부분적 의인화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1연은 나무를 사람으로 의인화해서 보았다. 2연은 나무 그 자체로 보았다. 3연은 또 나무를 사람으로 보았다. 4연은 또 나무 그 자체로 보았다. 그래서 이 시는 소재가 나무와 사람 둘이다. 의인화란 일단 나무를 사람으로 보았으면 끝까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무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하는 식으로 둔갑을 부리면 그것은 의인화가 아니다. 어젯밤에 누가 과수원 철조망 한쪽을 무너뜨렸어 틀림없이 그 녀석 짓일 거야 먹보바람 말이야 살찌니까 조금만 먹으라고 말리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드디어 뚱보가 된 거야 어젯밤 다른 바람이랑 같이 뛰어노는 소리를 들었거든 날씬한 바람이 철망을 쏙 빠져나가니까 따라 나가려다 걸려 넘어진 걸 거야 신천희 동시 -『뚱보바람』전문 이 시처럼 바람을 사람으로 의인화 했으면 끝까지 바람이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28    시작할 때 "화학조미료"같은 관념어 절대 "반입금지 명령"!... 댓글:  조회:2668  추천:0  2016-12-12
8. 관념어를 버린다   위의 시를 인용한 김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시에서 관념어는 될 수 있는 대로 넣지 말아야 한다. 시에 관념어가 들어가면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넣은 것처럼 느끼해진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전문   이 시에는 이별, 서러움, 고독, 외로움, 서러움, 슬픔, 고통, 그리움 등 우리가 알아야 할 관념어 전시장 같다.   시에서 좋은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시에서는 부분의 좋은 표현을 희생시켜 전체를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분의 좋은 표현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면 시 전체가 실패하는 아픔을 맛본다. 아무리 좋은 표현이라도 시 전체를 위해서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관념어는 풀어서 써야 한다. 이를테면 ‘고독하다’ ‘외롭다’ 라는 표현 보다는 고독한 것을, 외로운 것을 비유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시에서 감칠맛이 난다.   관념어를 어떻게 풀어 쓸까? 사랑에 대한 시 한 편을 보자.   누가 몰래 내 마음을 훔쳐갔다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 토끼같이 귀여운 내 짝꿍이 훔쳐간 게 틀림없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신천희 동시 -『도둑』전문   이 시를 보면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한 마디도 안 들어갔다. 그렇지만 읽어보면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있다.   이번에는 이별의 아픔을 풀어 써보자.   서울에서 부산이 아무리 멀다지만   나하고 다툰 뒤 등을 돌려버린 짝꿍 얼굴보다야 더 멀까   돌아 선 짝꿍 얼굴을 마주보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걸   신천희 동시 -『흥!』전문   이 시에서도 헤어져서 아프다 이런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 헤어진 것이 얼마나 아픈지 드러난다. 관념어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풀어 쓰는 것이다.      
27    시작할 때 스토리는 잇어지고 한가지 이야기만 하라... 댓글:  조회:2681  추천:0  2016-12-12
7. 시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스토리가 이어져야 한다   강의를 가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뭐가 생기느냐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생긴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애가 생긴다고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랑이 생기고 애가 생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뭐가 생길까? 하는 것이 내 질문의 요지다. 굳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이라고 한 것이 함정인 것이다.   과연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뭐가 생길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관계’가 생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기는 이 관계가 세상살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듯이 시에서도 이 관계란 것이 목숨처럼 중요하다.   시에서는 문장과 문장이 만나면 분명히 관계를 가져야한다. 행과 행이 만나도 분명한 관계를 맺어야한다. 연과 연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야한다. 그러니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서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전문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시 또한 물처럼 위에서 밑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야한다. 아래서 위로 흐르는 것은 구토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익숙하지 못한 흐름이다.   위에서 밑으로 흐르되 끊어짐이 없이 이어져 흘러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관계를 가지면 그 흐름은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 시를 읽어보면 흐름이 경쾌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다. 연과 연이 관계를 갖지 못하고 토막토막 나 있는 것이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와 그 다음 연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또 ‘마른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와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른 연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는 한 연 한 연의 표현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시의 흐름에서는 실패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연과 연이 전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읽다보면 연과 연 사이에서 콱콱 막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과 연이 토막 나 버리면 시가 물처럼 흘러내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날마다 배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우리, 민규 왔구나!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이 어느 새 알아보고 말을 하지요   날마다 고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아빠, 힘드시죠!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을 다가가서 살짝 안아보지요   이성자 동시 -『우리 아빠』전문   이 시도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실패한 시에 속한다. 1연에서 ‘날마다 배추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라고 해놓고 3연에서는 ‘날마다 고추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라고 했다. 그럼 아빠가 둘이라는 이야긴가? 고추밭, 배추밭, 두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날마다 배추 밭에서 일하는 우리 아빠 살금살금 다가가면 둥그렇게 굽은 등이 아빠보다 먼저 반겨주어요   -우리, 민규 왔구나!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이 어느 새 알아보고 말을 하지요   -아빠, 힘드시죠! 눈도 입도 없는 아빠 등을 다가가서 살짝 안아보지요   이렇게 한 가지 이야기만 하면 문제 될게 없다.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려다 보면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주제가 흐려지는 그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몸을 한 번만 굴려도 벽에 닿는 좁은 쪽방에서 할아버지가 내뿜는 시린 콧김을 철없는 바람이 장난치듯 싹싹 채가며 놀고 있습니다 시원찮은 닭이 어쩌다가 알을 낳듯 생기는 라면으로 겨우 겨우 명줄을 이어가는 할아버지 운 좋게 미리 얻어먹는 제삿밥처럼 귀한 밥 한 그릇 생겨 쉬어터진 김치뚜껑도 열지 않은 채 밥 한 숟가락 먼저 입에 퍼 넣은 할아버지 밥아 너 참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는 뱃속과 안 씹히고 그냥은 못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밥이 목구멍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아버지는 애꿎은 가슴을 치며 눈물만 울컥울컥 흘리고 있습니다   신천희 동시 -『쪽방할배』전문   문장이 긴 산문시라고 해도 문장과 문장, 행과 행, 연과 연이 관계를 형성하면 이 시처럼 물 흐르듯이 읽혀지게 마련이다.      
26    "엉뚱한 생각" + "살짝 맛 간 시인" +... = 좋은 시 빚기 댓글:  조회:2710  추천:0  2016-12-12
6. 남들과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한다   햇살 좋은 가을 날 길을 가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 잠자리 주변에 개미들이 새카맣게 몰려있었다. 평소에 개미들의 먹이는 보통 육군이 많다. 저렇게 하늘을 나는 공군은 개미들에게 별식 중의 별식이리라!   그렇게 개미들이 별식을 먹고 있구나 하고 스쳐 지나치려고 하는데 시인이라 소재를 찾는 더듬이가 그냥 두지 않았다. ‘옳아! 개미들이 비행기를 타려고 그러는 구나!’ 하는 전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을을 싣고 날아가던 잠자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쩌다 떨어졌을까 어디로 가던 길이었을까   지나가던 개미들이 웅성웅성 모여듭니다   혹시 기운을 차리면 다시 날 수 있을지도 몰라   아직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개미들이   서로 먼저 올라타려고 와글와글 다투고 있습니다   신천희 동시 -『잠자리비행기』전문   이 시 역시 ‘개미들이 잠자리를 뜯어먹고 있구나!’ 하는 보편적인 생각에 그쳤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무릇 시인리라면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엉뚱한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시인을 또라이(정신이상) 또는 살짝 맛이 갔다고 생각하지 않던가.    
25    상상 + 더 깊은 상상...+... = 좋은 시 빚기 댓글:  조회:2422  추천:0  2016-12-12
5. 한 생각 더 깊이 한다   좋은 시를 빚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생각 더 깊이 들어가서 관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어느 날 고물장사를 하는 분한테 전화가 왔다. 나를 주려고 축음기를 하나 구해놓았단다. 축음기라! 요즘은 보기도 힘든 귀한 것이 아니던가! 축음기를 자랑할 겸 주변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가슴을 부풀리며 달려갔는데 축음기가 아니라 초가집처럼 낡은 턴테이블이었다. 그 분이 축음기와 턴테이블을 구분하지 못할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달려 올 거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고 말로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뻥을 친 것이다.   씩씩대며 집에 돌아왔는데 마루에 개미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었다. 개미를 따라가 보니 어제 어떤 아이가 와서 먹다 흘린 눈곱만한 과자조각에 몰려들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착상하여 아래 시를 빚었다.   구슬만한 빵 부스러기가 떨어져있다는 소리를 듣고 몰려온 개미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어 눈곱만한데 구슬만하다고 어떤 개미가 또 뻥을 쳤나봐   신천희 동시 -『소문』전문   개미들이 몰려가는 모습을 보고 그냥 ‘과자조각을 먹으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말았다면 위의 시는 탄생하지 못했다. 그 작은 과자조각 하나에 무엇 때문에 저렇게 많은 개미들이 몰려들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개미는 먹을 것을 발견하면 자기 소속부족에게 가서 알린다. 그 소식을 듣고 개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냥 개미들의 습성이 그런데 뭘 하면서 보편적인 생각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인이기에 남보다 한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내 행동이 어떠했는가! 한 사람의 뻥에 속아 주변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가지 않았던가! 그렇다! 저 개미들도 먹이를 발견한 개미가 엄청나게 큰 먹이가 있다고 뻥을 친 것에 속아 몰려드는 것일 게다. 한 생각 더 들어가니까 이런 착상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 등을 볼 때 시인이라면 남들보다 한 생각 더 깊이 들어가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24    시는 류행가 가사가 옳다?... 아니다!... 댓글:  조회:2368  추천:0  2016-12-12
4. 소재가 주제로 가지 않는다   시는 소재를 제재로 삼아 주제를 빗대어(전체은유) 말하며 빚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재와 주제는 휴전선처럼 확실하게 선이 그어져 구분되어야한다. 다시 말해서 주제는 송편의 속처럼 감춰져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눈이 내리고 하얗게 산이 덮히고   아기 다람쥐 먹을 것이 없어서 도토리가 없어 배가 고파서   쪼루루 쪼루루 산봉우리 내려와 바위너설 내려와 바위 언덕 내려와   저만큼 멀리 아파트 마을 보이네   찻길 건너 몰래 아파트로 들어서니 우리 먹을 도토리다 여기 와 널려있네   도토리 하나 입에 물고 엄마 것 아빠 것 또 하나씩 물고   아슬아슬 찻길 건너 바위 언덕 기어 기어올라 바위너설 지나서 산봉우리 올랐네   엄마 다람쥐 아빠 다람쥐 너 어데 갔다 이제 오니 눈물이 글썽   아기 다람쥐 입에 물린 도토리는 못보고   신경림 동시 -『아기 다람쥐의 모험』전문 (창비어린이 2008년 겨울호)   이 시는 시인이 빚은 동시다. 시인이 시와 동시는 다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을 어린이의 언어로 늘어놓은 시를 동시라고 빚은 것일 게다. 분명히 말하지만 동시도 시로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   이 시는 시에서 이미 다 말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찾아낼 게 없다. 다시 말해서 소재가 주제로 가버린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어쩌다 본 이야기를 그냥 글로 써놓았구나! 하는 생각 외에는 찾을 게 없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는 길   엄마 손이 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둘이 똑같이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엄마 혼자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신천희 동시 -『엄마 그늘』전문   둘이 똑같이 걸었는데 왜 나는 괜찮고 엄마만 땀에 흠뻑 젖었을까? 엄마가 앞장서 가며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를 살짝 고쳐보자!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습니다   둘이 똑같이 걸었는데 나는 괜찮고   내가 더울까봐 그늘을 만들어 준   엄마만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이렇게 썼다면 소재가 주제로 가버린 것이다. 어떤 이는 주제가 ‘엄마의 자식 사랑’이라고 우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의 시에서는 엄마 혼자 땀에 젖은 이유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이유를 다 말해버렸다. 소재가 주제로 가버렸으니 주제가 없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시가 아니다. 한 편 더 예를 들어보자!   꾀죄죄한 강아지 한 마리가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자기는 버림을 당했지만   차마 주인을 버릴 수 없어   살던 집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신천희 동시 -『사람을 찾습니다』전문   이 시는 강아지를 소재로 개보다 못한 사람을 주제로 빚어낸 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졌다고 집에서 안고 키우던 애완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애완견은 자기가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주인과 정을 못 잊어 살던 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애완견을 버린 사람이 애완견만도 못한 것이다. 이 시를 조금만 바꿔보자!   꾀죄죄한 강아지 한 마리가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자기가 버림당한 것도 모르고   살던 집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빚으면 그냥 버림받은 강아지 이야기일 뿐이다. 소재도 강아지이고 주제는 버림받은 강아지다. 그런데 이미 시에서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다 해버렸다. 이를테면 소재가 주제로 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빚은 것은 시가 아니다. 시라는 것은 분명히 소재를 제재로 해서 주제를 빚어내는 것이다.   단 풍경을 노래하거나 어떤 정물을 그려낼 때는 다르다.   깊은 산골 오두막에서 하룻밤   꿀같이 달콤한 잠을 자고난 새벽   무심코 창문을 열다가   눈과 눈이 마주쳐   아!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했습니다   신천희 동시 -『도둑 눈』전문   풍경을 노래한 시는 그 시를 읽었을 때 그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라야 한다. 그 시의 주제가 바로 그 풍경이기 때문이다. 정물을 그린 시도 그 시를 읽었을 때 그 정물이 선연하게 보여져야한다.   ‘소재가 주제로 가면 안 된다!’ 이 단순한 한 마디를 모르고 지난날 나는 허깨비 같은 시를 써대며 시인행세만 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소재가 주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내 기억 속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날로 남아 있다. ‘소재가 주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쁨은 내게 남북통일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끙끙대며 시라고 써왔던 글 중에 단 한 편도 시가 없다는 허망함은 나를 지옥, 그것도 화탕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그날 당장 십여 년 동안 써 모았던 수백 편의 시를 몽땅 다 불 싸질러버렸다. 한 마디로 시 다비식을 치르고 그날부터 내 시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학교 다니면서 국어시간에 수도 없이 들었던 시에서 소재와 주제의 관계를 정작 내가 시를 빚으면서는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멍청한 화상인가!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 당시의 나처럼 이 사실을 잊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분명히 기억하라! 시는 소재를 찾아내서 그 소재를 제재로 주제를 빚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소재가 주제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   시에서 이야기를 다 해 버리면 시가 아니라 유행가 가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23    시를 "감춤"과 "드러냄"의 사이에서 맛갈스레 빚어야... 댓글:  조회:2212  추천:0  2016-12-12
3. 시를 감춤과 드러냄의 사이에서 빚는다   시는 꽁꽁 감추고 있는 북한과 훤히 드러나 있는 남한의 사이인 비무장지대에서 빚어야한다. 북한처럼 너무 꽁꽁 감춰버리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또 남한처럼 너무 훤히 드러내버리면 긴장미가 떨어지고 흥미가 없다. 그래서 북한의 꽁꽁 감춰진 모습을 빚되 남한의 드러냄을 살짝 섞어서 적당하게 빚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시를 빚다보면 주제가 감춰지기 마련이다. 아니 감춰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너무 꽁꽁 감춰버리면 독자가 그 주제를 찾아먹지 못하고 난해한 시라고 외면해버릴 소지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를 감춰서 빚되 ‘드러냄의 장치’란 것이 필요한 것이다.     가을 들판 여기저기서 갈대들이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고 있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갈대들   새파란 갈대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머리가 하얗게 센 갈대들이   힘겹게 들판을 지키고 있다   신천희 동시 -『갈대를 보며』전문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들이다. 어느 날 들판을 지나가다가 논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가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었다. 그 논 옆 개울가에 하얀 갈대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 갈대를 보고 착상을 해 이 시를 빚었다.   이 시는 갈대이야기다. 그러나 ‘허리’ ‘새파란 갈대’ ‘머리가 하얗게 센’ 이라는 드러냄의 장치가 있어서 사람이야기로 인지된다. ‘허리’라는 단어가 사람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내비추고 ‘새파란 갈대’ 또한 새파랗게 젊다는 뜻으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렇게 완성된 이 시의 제재는 갈대이고 주제는 농촌의 현실이다.   자! 여기에서 북한처럼 꽁꽁 한 번 감춰보자!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고 있다’를 ‘부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로 바꾸고, ‘새파란 갈대’를 ‘푸른 갈대’로 바꾸고, ‘머리가’를 ‘꽃대가’로 바꾸어 드러냄의 장치를 없애보자. 시가 어떻게 변해 버릴까?   가을 들판 여기저기서 갈대들이   부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갈대들   푸른 갈대는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꽃대가 하얗게 센 갈대들이   힘겹게 들판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너무 감춰져버려 그냥 갈대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드러냄의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시를 감추고 드러내는 방법 중에 다의성이란 것이 있다. 주제를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게 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게 하는 방법이다.   좋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외로울 때 찾아가서 안길 수 있는   그런 좋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신천희 동시 -『등대』전문   이 시는 첫 연과 마지막 연을 ‘좋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로 해서 수미쌍관법으로 빚은 시다.   이 시에서 말하는 좋은 친구를 ‘좋은 여자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버리면 이 시는 실패한 시가 되고 만다. 시에서 다 이야기 해버렸기 때문에 주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볼까봐 ‘등대’라는 제목을 드러냄의 장치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친구는 등대처럼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이 시에서 감춰놓은 친구는 다양하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바로 그 친구라는 존재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부처’가 바로 그 친구다. 그렇듯이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느낌에 따라 다를 수 있게 감춰서 빚어놓은 것을 ‘다의성’이라고 한다.   얼마 전 모 대학교 문창과 교수와 다의성에 대해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시의 다의성을 시의 모호성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교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호성과 다의성은 분명히 다르다. ‘모호’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를 보면 흐릿하다, 분명치 않다, 라는 뜻으로 풀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아닌 불분명한 것을 모호성이라고 한다. 시에서 주제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을 다의성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에서의 모호성은 시가 제대로 빚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나 논할 수 있는 단어다. 모호란 시에서 주제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있을 때 사용되는 단어인 것이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모호성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호성과 다의성은 다르다는 것이다.   다의성은 이렇게 보면 이것이고 저렇게 보면 저것이 되는 것으로 시인이 의도적으로 시도한 경우에만 존재한다.          
22    시인은 늘 예민한 촉수로 훌륭한 시를 빚기 위해 정진해야... 댓글:  조회:2377  추천:0  2016-12-12
1.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빚는다   글은 그리는 것이고 그림은 쓰는 것이다. 어떤 글을 읽으면 그 장면이 눈에 선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은 그린다고 한다. 또 어떤 그림을 보면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래서 그림은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듯이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송편을 빚듯 빚는 것이다. 송편을 빚기 위해서는 밀가루반죽부터 준비해야한다. 그 밀가루반죽을 주무르면서 어떤 속을 넣을까 궁리한다. 밤을 넣으면 밤 맛이 나는 송편이 되고, 깨를 넣으면 깨 맛이 나는 송편이 된다. 여기에서 밀가루반죽은 소재요, 속은 주제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도 어떤 소재를 오랜 시간 주무르고 주물러서 주제를 넣어 빚어내는 것이다.       2. 촉수를 예민하게 세운다   시인은 하등동물이다. 그래서 하등동물처럼 글감을 찾아내는 촉수가 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그 촉수를 늘 글감이라는 먹이를 찾기 위해 더듬거려야 한다. 촉수로 찾아낼 수 있는 먹잇감은 그리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촉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먹잇감을 놓치면 또 언제 먹잇감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일을 하거나, 똥을 누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촉수는 어김없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곤두서 있어야한다.   말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해서   가끔 오해 살 일도 생기지만   그래도 나는 당당히 말하는 입이 좋다   아무 관계도 없는 척 가만히 있다가   뒤에서 말 만드는 똥구멍은 싫다   신천희 동시 -『방귀는 싫어』전문   손님이 왔는데 하도 방귀를 뀌기에 착상한 시다. 시인은 생리현상이라는 방귀조차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신발은 싸가지가 좀 없다   주인이 있을 땐 공손한 척 하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한 짝은 이쪽 한 짝은 저쪽으로   주인 닮아 금방 빠딱선을 탄다   신천희 동시 -『싸가지』전문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착상한 시다. 신발을 벗어놓은 걸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은 알 수 있다. 시인이기에 흐트러진 신발을 보고 촉수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감을 찾기 위해 촉수 움직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글감이 나타나기만 하면 두꺼비가 파리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싹 낚아챌 준비가 항상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
21    시쓰기는 "참 나를 찾고자"하는 고행이다... 댓글:  조회:2312  추천:0  2016-12-12
7. 좋은 시를 쓰기위한 시인의 정신자세   시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닦으며 참 나를 찾고자 하는 수행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발상한 시상을 일상에서도 화두처럼 머릿속에 이고 다녀야한다. 언제 어디서건 화두가 성성할 때 선의 경지에 들어 깨달음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상이 잘 떠오를 때가 있다. 화장실에서 똥을 눌 때와 버스 또는 기차를 타고 갈 때,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 잠이 막 들락 말락 하는 가수면 상태, 그리고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 속이 많이 힘들 때 등이다.   똥을 눈다는 것은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비워내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본의 아니게 잡념을 없게 해서 순간적으로 삼매에 들게 한다. 화두 하나를 머릿속에 이고 삼매에 들었으니 기발한 발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버스 또는 기차를 타고 가면 일정한 흔들림이 있다.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기면 망상이 사라지고 무념의 상태가 된다. 일정한 흔들림이 뇌를 자극하여 머릿속에 잠재한 화두에 대해 기발한 발상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상태는 비몽사몽간이다. 그 때의 뇌파는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준다. 평소 알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스키마(배경지식)를 맘껏 활용하게 해주는 것이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은 속이 부대껴 잡념이 거의 없는 무상무념의 상태가 된다. 몸이 정상 가동되지 않으니 그만큼 움직임이 줄어든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적인 상태에서는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엉뚱한 발상이 튀어나오기 쉽다.   이와 같은 발상지가 있기에 좋은 시인이 되려면 완전무장이 필수인 것이다. 좋은 시를 쓰겠다고 덤비는 시인이라면 우선 정신부터 남달라야한다. 시가 밥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소설가처럼 전업 작가가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전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창작에 임하는 그 정신만큼은 전업 작가가 되어야한다.   일 년에 시를 딱 한 편 썼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한다. 시를 쓰지도 않는 사람이 무슨 시인인가? 하지만 시 한 편을 가지고 일 년 내내 씨름했다면 그 경우가 다르다. 그런 시인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20    시인도 "완전무장"을 해야 좋은 시를 쓸수 있다... 댓글:  조회:2412  추천:0  2016-12-12
6.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준비태세   테러진압을 하는 특공대만 완전무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완전무장이 필요하다. 군인이 늘 군번줄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시인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메모지와 펜이다.   시인이라면 어느 때, 어떤 곳에서든지 메모지와 펜이 곁에 있어야 한다. 자기의 기억력을 믿고 자만하는 사람은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 두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고 있는데 돌발적으로 좋은 시상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가서 시로 써야지 하며 억지로 기억해두려고 애를 쓸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그중 십중팔구는 그 시상을 잊어버린다. 기억력을 믿다가 좋은 시 한 편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잠자리(침대) 머리맡에는 메모지와 펜 외에 손전등도 하나 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혼자 자는 사람이야 아무 때나 불을 켜도 상관없다. 하지만 옆 자리에 자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 자가운전자일 경우 차 안에 소형녹음기를 필수적으로 준비해두어야 한다. 남의 험담을 녹취해서 공갈 협박하라는 게 아니다. 운전을 하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메모가 불가능하다. 그럴 때 녹음기를 꺼내 중얼중얼해두었다가 집에 와서 풀어 쓰면 된다.   시인으로서 위에서 말한 완전무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마추어 시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자기의 기억력을 믿는 사람은 시인으로 성공하기 힘들다. 그런 사람이 좋은 시를 쓴다고 하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19    "썩을 놈! 어떻게 요런 시를 다 썼을깜?!..." 댓글:  조회:2616  추천:0  2016-12-11
5. 시인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서 보여주는 것이 시인이다. 그래서 시인은 다른 사람들 보다 눈이 두 개가 더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뒤를 볼 수 있게 뒤통수에 눈이 하나 더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다른 사람들이 못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내서 보여줄 수가 있다.   비를 막다가 막다가 망가져버린 우산이 길가에 버려져있다   소낙비 오던 날 나를 감싸 안고 온몸으로 비를 막아주던   할머니 가슴뼈처럼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우산이 길가에 버려져있다   신천희 동시 -『우산이야기』전문   이 시처럼 뼈대만 남은 우산에서 앙상한 할머니의 가슴뼈를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또 다른 하나의 눈이다.   우산에 대한 시를 한 편 더 예를 들어보자.   우산은 내가 누굴 좋아하고 미워하는지 다 알고 있다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쓰면 내 어깨가 젖도록 기울고   미워하는 친구와 같이 쓰면 그 친구 어깨가 젖게 기운다   신천희 동시 -『우산은 알고 있다』전문   이 시처럼 우산이 기울어지는 방향에 따라 변하는 감정을 읽어내는 것 또한 시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눈인 마음의 눈이다.   그 이외에도 기울어져가는 집을 받쳐놓은 작대기를 보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를 연상해낸다든가, 깜빡깜빡 거리는 스타트 전구를 보고 가물가물 거리는 할머니의 기억력을 연상해 내는 것. 할머니의 방귀냄새를 맡고 시든 꽃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을 찾아내는 등,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두 개의 눈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 보여주는 것이 시인의 사명인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서 보여주되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카타르시스를 주며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슬픔을 전해서 눈물을 쏟게 만들거나, 기발한 발상으로 무릎을 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감동을 주거나 재미를 주거나 뭔가 한 가지는 충족을 시켜주는 카타르시스를 주어야한다.   그래서 동료시인들이나 독자들로부터 욕을 많이 얻어먹는 시인이 훌륭한 시인이다. “썩을 놈! 어떻게 요런 시를 다 썼을까?”   시를 읽은 사람들이 전율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환장하게 만들어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욕을 먹는 시인 말이다.        
4.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어떤 시를 좋은 시라고 할까?   가장 쉬운 말로 최대한 짧게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가장 깊은 철학(울림)을 담아내는 것   바로 이런 시가 좋은 시다.   ‘가장 쉬운 말로’   어떤 이치를 완벽하게 알면 다른 사람에게 아주 쉬운 말로 쉽게 전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치를 완벽하게 깨우치지 못하면 쉽게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접적인 지식으로 어중간하게 아는 상태에서 남에게 전달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식어들이 따라붙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도 이치를 완벽하게 알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만으로도 얼마든지 빚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말을 동원하거나 서양말을 빌어다 쓰는 것이다.   ‘최대한 짧게’   달 없는 밤은 온 별들의 장날이었습니다   조병화 시 -『편지』전문   외롭고 쓸쓸함을 달 없는 밤으로 은유했다. 여기에 더 이상 무엇을 갖다 붙인다면 사족이다. 조병화 시인은 이 짧은 한 마디로 자기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다 얘기해 버린 것이다.   송곳 하나 꽂을 땅뙈기가 없다고 가난타 절망마라   참으로 가난한자는 땅뙈기에 꽂아볼 송곳조차 없다   신천희 시 -『빈자의 노래』전문   가난을 이야기 하는데 뭐 그리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 짧은 글 속에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함이 다 드러나지 않는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이치를 전달함에 있어 확실하게 알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어중간하게 알면서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구구절절 사설이 달라붙는 것이다.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자기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은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겉보기와 다르게 햇살이 나보다 더 추위를 탑니다   나는 내 방에서 호호 불며 잘 지내는데   햇살은 내 방이 춥다고 아예 들어올 생각도 안 합니다   신천희 동시 -『지하셋방』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햇살을 제재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지하셋방이 얼마나 추운지 햇살도 안 들어온다고 했다.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연탄 한 장 사다주는 온정의 손길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깊은 철학(울림)을 담아내는 것’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는 세월이 약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걸까     그 약을 너무 많이 먹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   신천희 동시 -『돌팔이』전문   생로병사에 무슨 부언이 필요할까? 건전지가 다 닳으면 멈춰서는 로봇처럼, 사람도 때가 되면 죽는 것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17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시인이 쓰는것... 댓글:  조회:2457  추천:0  2016-12-11
3. 시는 누가 쓰는가?   현대는 자동판매기 시대다. 시인도 돈만 넣으면 나오는(?) 자동판매기 속의 상품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월간이든 계간이든 동인지든 잡지에 등단이라는 절차만 거치면 바로 시인이라는 호칭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그 사람의 작품적인 역량과 시 정신이 얼마나 검증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시인이 탄생할 때 그 심사를 한 분의 시적 깊이와 시 정신을 가늠해 볼 뿐이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보며 축하를 하기보다는 아쉬워할 때가 더 많다. 작품이 좋고 나쁨을 떠나 적어도 오랜 습작의 흔적 정도는 찾아볼 수 있어야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심사할 정도의 시인이라면 그 정도의 노력은 쉽게 구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작품성마저도 수긍하기 힘든 시인을 마구 뽑아내는 분들을 볼 때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시를 쓰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시를 쓰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시로 밥을 해결하는 시인도 드물지만 참 시인의 길이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아빠는 운전을 할 줄 모르나 봐요   제자리에서 만날 붕붕거리기만 해요   엄마한테 심하게 잔소리 들은 날도   나 같으면 어디로 도망쳐버리고 싶을 텐데   제자리에서 마냥 붕붕거리고만 있어요   시끄럽기도 하지만 대기오염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시동을 그만 끄라고 해야겠어요   신천희 동시 -『아빠는 방귀대장』전문   예를 들어 이 시를 쓰면서 마지막 연에서 ‘제발 시동을 그만 끄라고 해야겠어요.’를 ‘제발 그만 시동을 끄라고 해야겠어요.’로 바꾸었다가 다시 ‘제발 시동을 그만’으로 바꾸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제발 시동을 그만’로 바꿨다가, 자다가 생각해보면 또 아닌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 ‘제발 그만 시동을’로 바꾸기를 반복한 것이다. 만약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안면방해 죄로 이혼당하고도 남을지 모른다.   이렇듯이 조사 하나, 시어 하나 때문에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우기 일쑤인데 누구한테 시를 빚으라고 함부로 권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를 쓰지 않고 살수만 있다면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눈을 진정으로 좋아하면 얼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산속 깊은 골짜기를 찾아들어가 숫눈의 황홀한 환희를 맛볼 수 있다. 그렇듯이 시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참 시인이 되고자한다면 굶어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는 누가 쓰는가? 시는 국문학박사가 쓰는 것도 아니요, 국어교사가 쓰는 것도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다.        
16    참 시인 되자면... 댓글:  조회:2476  추천:0  2016-12-11
2. 어떤 시인이 될 것인가?   시를 쓰기 전에 어떤 시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결정해야 한다.시인에도 여러 부류가 있다. 시를 위한 참 시인, 명예를 위한 정치가 시인, 사업을 위한 장사꾼 시인, 너도 쓰니까 나도 쓴다는 식의 너도나도 시인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참 시인은 시를 좋아하지만 다른 시인들은 시보다는 시인이라는 명칭을 더 좋아한다. 참 시인은 자기가 쓴 시에 책임을 느끼고 시처럼 살지만 다른 시인들은 자신의 시와 무관하게 시인처럼 산다.   시인이라는 명칭이 좋아 그냥저냥 시인으로 산다면 고통스럽게 고뇌할 필요가 없다. 그저 부자 밥 먹듯이 수시로 나부랭이 시나 써 갈기며 시인행세나 하면 된다. 때로는 머리를 길러서 묶고, 필요하면 수염도 기르고, 그렇게 시인이라 드러내고 폼을 잡으며 살면 된다.   하지만 참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 정신부터 달라야 한다. 좋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대머리가 되는 것도 몰라야 한다. 무서리가 내려앉아 백발이 성성해져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 피부각질처럼 눈에 안 띄게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언어를 안고 뒹굴며 머리에 뇌성마비가 일어나도록 고뇌하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시와 동시를 다른 갈래로 나누고 싶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는 주 독자가 어른이고 동시는 주 독자가 어린이라고 갈래를 갈라놓는다. 나는 그들과 분명히 생각을 달리한다.   그동안 문인단체들의 초청으로 여러 군데 시 창작 강의를 다녔다. 그럴 때마다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본다. 동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 강의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시냇물이 졸졸졸, 나비가 팔랑팔랑.’ 이런 유희적인 것이 동시라고 단단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를 몰라도 시를 쓸 수 있지만 시를 모르면 동시를 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미 시를 알고 넘어간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동시도 시로 완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시는 주 독자가 어른이 맞다. 동시는 어린이가 주 독자가 아니라 어른이 주 독자인 시에 어린이 독자를 추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시는 어른이 읽었을 땐 메시지가 있고 어린이가 읽었을 땐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쓴 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로 완성시키지 못하고 어린이들이 쓰는 언어만 빌어다가 나열해 놓은 것은 동시가 아니다. 시가 아닌데 어떻게 동시가 될 수 있겠는가?  / 소야 신천희
15    시 "승무"를 삭히는데 3년이나 걸리다... 댓글:  조회:2192  추천:0  2016-12-11
1. 시란 무엇인가?   시가 뭔지 한 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빗대어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전체은유’를 뜻한다.   시란 어떤 소재를 찾아내서 그 소재를 제재로 이용하여 주제를 빚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그 주제란 전체은유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시를 공부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그 시의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연못 속에 빠진 동그란 달을   통째로 덥석 집어먹은 개구리   공짜 좋아하다가 큰일이 났네   너무 커서 삼키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도로 뱉지도 못하고   목구멍에 걸려 눈이 불룩 튀어나왔네   신천희 동시 -『달을 삼킨 개구리』전문   언뜻 보면 이 시는 단순히 개구리의 형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개구리의 형상을 통하여 ‘뇌물 받아먹고 고민하는 공직자’를 빗대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개구리의 형상은 제재이고 비리공직자를 비아냥거리는 것이 주제다. 뇌물을 받아먹고 들킬까봐 고민하는 비리공직자의 모습을 개구리의 형상으로 빗대어 말(전체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똥이다. 똥같이 정직한 것도 드물다. 배탈이 나서 마구 싸대는 똥은 묽어 똥 같지도 않다. 하지만 오래 묵혀두었다가 누면 정말 똥 같은 된똥이 나온다. 시도 이와 같아서 즉흥적으로 마구 써대면 좋은 시가 나오기 힘들다. 똥같이 오래 묵힐수록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이다.   시는 똥처럼 속에 뭔가가 가득 들어차서 쏟아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 쓰는 것이다. 슬픔이 가득차면 슬픔을 쏟아내고, 외로움이 들어차면 외로움을 쏟아내는 것이다.   어쩌다가 합평회에 나가면 천재시인들을 만난다. “어제 저녁에 두 편 썼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작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시를 컵라면 먹듯이 아무 때나 마구 빚을 수 있으니 천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   조지훈이 시 ‘승무’를 쓰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가슴이 닳도록 끓이고 끓인 끝에 그런 좋은 시가 탄생되지 않았을까?  
14    <술> 시모음 댓글:  조회:2314  추천:0  2016-12-11
  + 낮술 이러면 안 되는데 (김상배·시인, 1958-) + 술  도발적인 년,  사내들이 꼼짝없이 감전되고 말아  목젖을 애무할 때  아찔한 쾌감 짜릿짜릿 고조되거든  그 맛에 흐물흐물 녹아  낙주가는 쓸개를, 관주가는 췌장을,  폐주가는 간을 바쳐 사랑하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애첩인 거야  발칙한 년,  이름도 향기도 수만 가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사내들의 간을 다 빼먹지  간만 빼먹나  수틀리면 쓸개도 구멍내고  췌장까지 서슴없이 파먹으며 좋아하지  고얀 년,  제멋대로라니까  고약한 비법에 걸려든 사내들  도대체 물릴 줄 몰라  땅거미 울면 진저리나게 그리워  쓸개와 췌장과 간을 싸들고 맨발로 달려가지  그런데 문제는 글쎄  사내들만 사로잡는 게 아니야  십 수년 전  벼랑길에서 나도 말려들어  레즈비언 사이가 되었지 뭐야  췌장을 맛있게 갉아먹는  눈물을 아는 년, 얼마나 인간적인지 몰라  가면을 벗지 않는 오물통 세상엔  그년보다 솔직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거든  췌장을 다 먹어치운 뒤 날 내동댕이치면  끊어진 다리 누구와 건너지?  (유영금·시인, 1957-) + 반성·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시인, 1959-) + 아주 조금 나는 술을 즐기지만 아주 조금으로 만족한다. 한자리 앉아서 막걸리 한잔. 취해서 주정부리 모른다. 한잔만의 기분으로 두세 시간 간다. 아침 여섯 시, 해장을 하는데 이 통쾌감(痛快感)! 구름 타다. (천상병·시인, 1930-1993)  + 술잔 누군가를 위하여  가슴을 비우고 태어난  술잔.  외로운 이의 슬픔이건  즐거운 이의 축배이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마주앉아서  오순도순 주고받는 잔.  이승의 소금기 절인 가슴  목이 마른 갈증  가시 달린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실수록 붉게만 타오르는  너는 장미였다네.  그 누구와의 만남이든  비워서 베푸는 자리  비울수록 하늘하늘 나부끼는  꽃이었다네.  (진의하·시인, 전북 남원 출생) + 취한 사람 취한 사람은  사랑이 보이는 사람 술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취한 사람은  제 세상이 보이는 사람 입으로는 이 세상 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이 세상 다 움켜진 사람 깨어나지 말아야지.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서 사랑에 취한 사람은 사랑에서 깨어나지 말아야지. (이생진·시인, 1929-)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술을 찾아서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마시는 소주맛  땀 흘리고 마시던 시원한 맥주맛 좋아했는데  최근 근사한 분위기에 와인까지 좋아했다 하지만 새벽이면 머리가 아팠다 소주에 콜라 타서 마시는 여자와  소주에 맥주에 타서 마시는 남자는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났다가  평생을 약속하게 되었다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그 느낌이 좋아 술을 좋아하는 사람  사랑도 뜨겁게 할 줄 알까  서로 술잔 권하는 시간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 알게 되었다 술 중에서 가장 달콤한 술이  입술인 줄 알게 된 후부터이다 (안국훈·과학자 시인, 1956-)  + 술잔과 입술 사이  눈빛이 통하는 술잔끼리  건배를 한다 나를 꾹꾹 눌려 담은 잔을  건네면 마음 철철 넘치는 잔이  되돌아온다  단숨에 들이키는 마음 한 잔. 오가는 눈길이 가슴에 불씨를 지핀다 입술 붉은 술잔  짜릿한 입술이 내 입술에 와 닿는다 (우애자·시인) + 아버지와 막걸리  아버지는 주당이셨다.  술 한 말을 지고는 못 가도  단숨에 마시고는 간다는 분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주조장에선  언제나 한 양푼의 막걸리는 공짜이었다.  읍내 주조장에서 막걸리를 드시고  아버지는 단숨에 시오리 길을 달려  집이 바라보이는 저수지 앞에서  쓰러져 주무시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시고 어머니는  "저 화상! 내 속 태우려고  꼭 집이 보이는데 와서 쓰려져 자지!  내 속이 터진다! 터져!"  하시고 악다구니를 쓰셨다.  풍채 좋으신 아버지를 동네 형들이  리어카에 모시고 와서  사랑방에 옮겨 놓으면  어머니는 북어를 두드리며  원정을 하셔도 꼭 술국을 끓여주셨다.  부지런히 달려와 곧 그 시점에서  술이 올라와 취한다는 것을  술을 전혀 못하시는  어머니는 아시고 계셨을까?  막걸리를 보면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막걸리  (우보 임인규·시인) +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버지 벌판에서 돌아와  소주를 마십니다  소주잔 속에  수박 씨앗을 뿌리면서  어머니가 말립니다 왜 그래요 여보  그러면 떠내려간 것이 돌아오나요 기다려 봐요  한번만 더 참아요 네 여보  식물은 자라기 위해  물과 햇빛과 공기가 필요한데,  아버지 눈물도 흘리지 않으셨는데  웬 눈물을 모아 마시나요 소주를 자주 마시나요  이제 곧 수박이 열릴 거야  기다려봐  기다려보자  멀리서  빈 가슴만 남은 들판이  온통 젖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아버지의 소주잔 속에는  수박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소주가 넘쳐  우리들 가장 서러운 데를 적시는데  등뒤에 홀로 벌판을 지고  아버지는 소주를 마십니다  (안도현·시인, 1961-) + 술 노래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뿐.  술잔을 입에 대면서  내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짓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아일랜드 시인, 1865-1939) + 서울막걸리 홀로 마시는 막걸리도 내게는 과분한 행복이지만 벗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더욱 황홀한 기쁨이다 나를 내 동무 삼아 집에서 혼자 따라 마시는 서울막걸리는  왠지 쓸쓸한 우윳빛 하지만 벗과 눈빛 맞대고 서로의 잔에 수북히 부어주는  서울막걸리는  색깔부터 확 다르다 벗과 다정히 주고받는 투박한 술잔에 담긴 서울막걸리의 색깔은 남루한 분위기의  희뿌연 술집 조명 아래에서도 왜 그리도 눈부신지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뽀얀 살결 같다 (정연복·시인, 1957-)
13    [시문학소사전] - 실존주의란?... 댓글:  조회:4315  추천:0  2016-12-11
목차 역사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논점 ┗ 방법론적 논점 ┗ 내용상의 논점 ┗ 존재론 ┗ 인간 실존의 방식 사회적·역사적 기획 실존주의(existentialism) 실존주의 인물인 키에르 케고르,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사르트르 주로 20세기의 철학운동으로 대표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스페인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이탈리아의 니콜라 아바냐노 등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주요특징은 이미 19세기에 프리드리히 니체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나타났다. 에트문트 후설과 G. W. F. 헤겔은 실존주의자는 아니지만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사 인간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몽테뉴와 파스칼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셀이나 사르트르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의 정신적 내면으로 후퇴하는 자세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볼 수 있다. 실존이 이성으로 환원불가능하다는 테제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 F. W. J. 셸링의 헤겔 논박에서 볼 수 있다. 빌헬름 딜타이는 인간은 자연적 사물의 인식과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 특수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는 '이해'를 인간 과학의 고유한 방법으로 보았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성향의 낙관주의는 인간 운명이 무한한 힘(이성·절대자·마음 등)에 의해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불가항력의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러한 낙관주의는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통·타락·질병·죽음 등과 같이 19세기 낙관주의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런 부정적 현실을 강조한 사상가들은 실존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필연주의에 반대하여 실존을 가능성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불안은 '가능적인 것에 대한 감정'이다. 불안은 인간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이다. 한편 절망은 가능성에서 유일한 치유책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능성 없이 머물러 있다면 공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동과 생산의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관계가 갖는 소외된 성격을 강조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가 인간을 목적에서 수단으로 인격에서 비인격적 과정의 도구로 만든다. 니체는 '운명애'(amor fati)를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정식'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과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을 바라는 데 있으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 현대의 실존주의는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일관된 방식으로 결합했다. 모든 형태의 실존주의에 공통되는 점은 가능성에 기초하여 미래를 기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을 내포한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인간이 비본래성 내지 소외로 하락하고 인격에서 사물로 타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실존의 개별성과 반복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타인과의 공존을 소외로 여기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에서 "타자는 나의 가능성의 숨겨진 죽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실존주의에서 공존은 익명이 아니고 인격적 의사소통에 기초한 것으로 인간의 진정한 실존을 조건짓는다. 실존주의는 현대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에서는 프란츠 카프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등이 실존주의 경향을 보였다.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실존주의와 유사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또 실존주의는 야스퍼스와 루트비히 빈스방거를 통해 정신병리학에도 침투했다. 신학에서는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 루돌프 불트만 등이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실존주의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존은 항상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둘째, 실존은 주로 실존의 존재양식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실존은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셋째,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이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 넷째, 이 가능성들은 인간과 다른 사물 및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실존은 항상 세계내존재이다. 즉 실존은 선택을 제한·제약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현존재(Dasein)라 불린다(→ 형이상학). 이상의 주장들로 인해 실존주의는 첫째, 인간을 절대적이거나 무한한 실체의 현현으로 보는 견해와 대립하며 의식·정신·이성·이데아 등을 강조하는 관념론 대부분의 형태에 반대한다. 둘째, 인간을 주어진 완성된 실재로 보고 이 실재의 요소를 분석해야만 인간을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학설과도 대립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외적 사실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나 과학주의의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 셋째, 모든 형태의 필연주의와 대립한다. 넷째, 유아론이나 인식론적 관념론(인식대상은 정신적인 것이다)과 대립한다. 실존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서 항상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이와 같은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실존(existence)과 관련해 존재(being)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이 초월성이 실존의 기초 또는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신론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인간 실존은 절대적 자유로서 자신을 기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급진적 무신론의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 인간 실존의 유한성, 즉 기투와 선택의 가능성에 내재한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인문주의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신학). 실존주의는 이렇게 여러 방향을 취하면서 실존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인간 상황의 문제적 성격인데, 이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선택하고 기투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인간 상황의 현상 특히 부정적 현상으로서, 이를테면 사물·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려 있는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관심이나 선입견, 죽음·고통 등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인한 '난파', 상황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 등이다. 셋째, 실존에 내재하는 상호주관성으로서, 이것은 나와 너(타인 또는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고, 익명의 군중과 개별 자아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다. 넷째, 존재의 일반적 의미에 관한 학설인 존재론이다. 다섯째, 실존적 분석의 치료적 가치로서, 실존적 분석은 일상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미혹과 타락에서 인간 실존을 해방하고 실존이 그 본래성을 향하도록 한다. 논점 방법론적 논점 실존주의자들이 실존 해석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해석자와 해석되는 것, 존재 문제와 존재 자체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 2가지 항은 실존 속에서 일치한다. 왜냐하면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인간은 이 물음을 자신에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신의 존재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실존 해석의 독자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이용한다. 하이데거에서 현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현현이다. 현상학은 존재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으며 따라서 존재론이다. 다만 이때의 존재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 곧 인간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의 합리적 해명방법을 채택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은 존재에 대한 추구로서 인간의 합리적 자기이해 노력 또는 의사소통 노력이다. 그의 방법은 실존과 이성이 인간 존재의 두 기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성은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서 철학의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 즉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근본 기투'에 관한 분석이다. 마르셀에 따르면 철학의 방법은 존재의 신비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합리적 분석이나 증명을 통해서는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아바냐노와 메를로 퐁티 등의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실존을 구성하는 구조 즉 인간을 다른 존재와 연결해주는 관계를 과학을 비롯한 모든 이용가능한 기술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규정한다. 내용상의 논점 존재론과 인간 실존의 방식은 모두 실존주의의 관심사이다. 존재론 실존주의적 존재론의 근본 특징은 실존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서 가능성에 우위를 둔다는 것이다. 이때 가능성은 모순의 부재라는 순수 논리적 의미도 아니고 현실성이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잠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도 아니며 인간 실존의 구조인 존재적·객관적 가능성의 의미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특유한 양상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장은 이런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그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본성을 갖지 않으며 이 양식이란 곧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항상 그 자신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한다. 가능성으로서 인간 실존은 미래의 선취·예기·기투이다. 미래는 근본적인 시간의 차원이며 현재와 과거는 부차적이다. 또한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초월이기도 하다. 초월한다는 것은 그 자신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존재(사물과 타인)로 총체로서의 세계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실존주의자에 따르면 이 다른 실재의 존재는 인간 실존의 존재와는 다른 양상을 가진다. 즉 실존에 고유한 양상은 가능성인 데 반해 존재에 고유한 양상은 현실성 또는 사실성이다. 그결과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존재의 무(無), 사실의 모든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Was ist Metaphysik?〉(1929)에서 "인간 실존은 무의 한가운데 머무르지 않고서는 존재와 관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존주의자들에게 '무'란 사실의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서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가능적인 것은 그 자신(itself)이 '되기에는' 대자(For-itself)가 결여된 '어떤 것'으로 그것은 객체가 되기에는 주체가 결여된 것이며 결여로서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다. 실존을 무로 환원하는 것은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첫째, 사르트르, 카뮈, 무신론적 실존주의처럼 의미의 결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즉 실존과 모든 기투의 부조리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후기 하이데거, 야스퍼스, 신학적 실존주의처럼 실존을 구성하는 가능성을 넘어서 실존과 존재 사이의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존재는 실존 속에서 언어적·신앙적·신비적 종교 등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 실존의 방식 실존주의는 때로 인간의 운명을 인간 자신이 맡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 성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실존에 대해 존재의 우위를 강조하는 조류도 있다. 이 2가지 관점의 차이는 자유의 문제를 푸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가능성은 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서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 반대로 사르트르에서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운명 개념과 급진적 자유 개념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며 사르트르의 자유론적 관점에서 과거의 의미는 현재의 기투에 의존한다. 그러나 운명론적 관점에서도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다(자유의지). 이때의 선택이란 자신의 무를 이해하느냐 않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실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그 표지는 죽음)을 이해할 때 '진정한 실존'을 달성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제공된 유일한 선택은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존재론은 존재와 무 사이를 동요하면서 무를 존재에 관한 유일한 계시로 여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신이 되려고 분투하는"(사르트르) 자이다. 우주론적·신학적 실존주의에서는 존재가 인간을 무로부터 되찾기 위해 다소 신비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사회적·역사적 기획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질 수 있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왔다. 예를 들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이 사회 변혁을 위해 효과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자연·사회와 원초적이고 제거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치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에서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옹호했던 '기투' 개념을 수정하고 마르크스가 이해한 변증법 개념을 이용하여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하려 했다. 실존을 구성하는 기투는 전에 사르트르가 주장했듯이 자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 가능성의 제약을 받는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처럼 이 객관적 가능성을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동일시한다. 물론 기투는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의식을 가진 특수한 개인의 기투이다. 그러나 이 의식은 총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즉 점차 포괄적인 인간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의식이다. 변증법적 이성은 바로 이런 총체화 증대의 과정이다. 나아가 변증법적 이성은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되며 역사에 참여하는 개인의 내적 자유와 동일시된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태도에서 역사의 절대적인 변증법적 필연성(물론 이 필연성은 개인들에 의해 내면화하고 체험됨)을 옹호하는 태도로 옮겨갔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철학과 현대 문화 전반에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왔다. 이 도구의 성격과 사용 기술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도구란 '문제성'·'기회'·'조건'·'선택'·'자유'·'기투'와 같은 용어들을 말한다. 이런 도구는 인식론·윤리학·미학·교육·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실존의 해석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시대 현대 유형 개념용어 분야 문학/현대문학 요약 19세기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 및 문예상의 사조.   내용 본질 탐구의 철학, 즉 합리주의 철학을 반대하고, 개개의 단독자인 현실적 인간 즉 현실의 자각적 존재로서 실존(existence, existenz)의 구조를 인식·해명하려고 하는 철학사상, 그리고 이 사상과 깊이 관련되거나 바탕으로 한 문학사조.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반진보적 철학으로도 보나, 이념의 철학이나 사물의 철학이 아닌 인간의 철학(에마뉘엘 무니에), 또는 체계적·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역 철학(로베르 캠벨) 등으로도 본다. 야스퍼스(Jaspers, K.)가 1931년에 처음 ‘실존철학’(≪현대의 정신적 상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2차 대전 직후 사르트르(Sartre, J.P.)가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 계보는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근대에 와서는 키에르케골(Kierkeggard, S.A.)과 니체(Nietzsche, F.W.)를 선구자로 본다. 그리고 그후 후설(Husserl, E.)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하이데거(Heidegger, M.)와 야스퍼스에 이르러 실존철학으로서의 명확한 형태를 갖춘다. 이것이 제2차 대전 후 프랑스의 마르셀(Marcel, G.)과 사르트르에 의한 실존주의 사상운동으로 발전한다. 실존주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 한국어 역 : 사상계 통권 13호, 1954, 方坤 역, 新楊社, 1958)에서, 사르트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야스퍼스, 마르셀)와 무신론적 실존주의(하이데거, 사르트르)로 나눈다. 전자는 신 앞에 단독자인 종교적 실존, 후자는 신과 관계없는 양심적인 윤리적 실존(하이데거)과 신을 부정하는 자유로운 행동적 실존(사르트르)으로 양분되나, 이 모두의 공통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ecede Eessence.)는 것이다. 신이나 본질이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본래적 자기를 자기 스스로 계속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이 실존주의의 제1원리다. 즉, 허무와 자유 속에서의 자기 부정과 자기 초월의 반복을 통해서 자각적인 주체성이 창조된다. 주체적 결단에 의한 새로운 자기 존재의 선택과 비약은 자유를 근거로 한 자기 기투(企投)다. 여기서 실존은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규제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며, 고뇌·죄책(罪責)·죽음 등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직면한다. 실존주의는 실존을 현존재(마르셀은 “수육적(受肉的) 존재”라고 함.)로써 그 주체성·자유·초월·결단·상황·성실 등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려고 한다. 2차 대전 직후 실존주의 사상운동을 전개한 사르트르는 ≪르 탕 모데르느 Les Temps Modernes≫(1945)의 창간사에서, 현대인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만을 고집하여 현실적 조건 바깥으로 추상화하려고 하는 분석정신과, 개인을 계급·국가 등 전체에 종속시켜 그 전체관을 절대화하려고 하는 총합정신의 양극간에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의 불안은 그 양극의 어느 쪽에도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분열에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한 가능성을 지닌 중심이라고 본다. 인간의 실존을 이와 같이 강조하는 실존주의 사상운동이 전개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본주의제도이건 사회주의제도이건 간에 근대의 기계문명과 메카니즘적 조직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기계화·집단화되어, 20세기 후반에 와서 인간의 교환 가능성과 인간의 타유화(他有化), 즉 소외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난 점, 둘째는 1차·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진보라는 일체의 낙관론이 황폐화된 점이다. 실존주의 철학사상은 동시에 문학사상으로도 발전한 바,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앙드레 말로(Malraux, A.), 메를로-퐁티(Merleau-Ponty, M.), 보부아르(Beauvoir, S.), 카뮈(Camus, A.), 즈네(Genet, J.), 생텍쥐페리(Saint-Exupery, A.) 등을 대표적 작가로 볼 수 있고, 소급해서 오스트리아의 카프카(Kafka, F.)를 추가할 수 있다. ≪정복자≫(1928, 趙洪植 역, 세계문학전집 전기 26권, 正音社, 1965)·≪인간조건≫(1933, 趙洪植 역, 세계문학전집 전기 26권, 正音社, 1965)의 작가 말로는 신 없는 허망의 세계에서 행동과 모험으로, 나아가서는 예술적 창조로 자기 구원을 찾는다. ≪구토 嘔吐≫(1938, 梁秉植 역, 正音社, 1955, 方坤 역, 불란서문학전집 6권, 신태양사, 1959), ≪벽≫(1939, 鄭明煥 역, 세계문학전집 29권, 1959)의 작가인 사르트르는 선험적 의미의 폐기로 해방된 실존을 상황 속에 구속(engagement, 사회참여)함으로써 불안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인간혁명과 사회적 혁명의 총체적 실천을 기도한다. ≪이방인≫(1942, 方坤 역, 正音社, 1966), ≪페스트≫(1947, 방곤 역, 正音社, 1966)의 작가 카뮈(Camus, A.)는 세계의 부조리(absurde) 속에서 인생의 무의미에 직면하는 반항을 강조한다. 여기에 카프카의 ≪변신≫(1916, 鄭庚錫 역, 一志社, 1958)과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1931) 등을 포함한 실존주의 문학은 한국의 전후 실존주의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존주의 철학은 박치우(朴致祐)의 <불안의 철학자 하이데거 1∼8>(조선일보, 1935.11.3.∼11.12.)에서 소개되고 있다. 문학은 2차대전 후, 특히 1950년 전후부터 한국에 본격 도입된다. 사르트르의 <불란서인이 본 미국 작가>(新文學, 1946.11.), 전창식(田昌植) 역의 <벽>(新天地, 1948.10.), 양주동의 평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新思潮, 1949.5.), 김명원(金明遠) 역, 카뮈의 <흑사병>(黑死病, 新京鄕, 1950.7.) 등이 도입 초기에 발표된다. 6·25 한국전쟁으로 뜸하다가, 휴전 전후부터 커밋트 렌스 의 <알베르 까뮈론>(사상계 통권8, 1953),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상계 통권13, 1954), 양병식(梁秉植)의 <사르트르의 문학적 위치>(연합신문, 1953.1.13.∼15.), 정하은(鄭賀恩)의 <문학 이전>(현대문학, 1956.3.∼4.), 안병욱(安秉煜)의 <실존주의 계보>(사상계 통권 21, 1955) 등 1953년 이후 약 10년간 20여 편의 실존주의 관련 논문이 주로 ≪사상계≫지를 통해서 발표된다. 안병욱·김붕구(金鵬九)·조가경(曺街京) 등이 가장 주요 활동을 했고, 그 내용도 실존주의에 대한 개념은 물론, 실존철학과 동양사상(박종홍), 실존주의와 기독교(金夏泰), 실존철학과 사회과학(조가경), 실존주의와 정신분석학(李東植), 마르크스주의 교리와 실존적 휴머니즘(김붕구), 휴머니즘과 실존주의(이환, 문학예술, 1956.7) 등 인접 사상과의 관련된 문제점에까지 미쳐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개 및 논의는 실존주의 문학작품의 번역·발표와 동시 진행된다. 앞서의 언급 외에 카뮈의 ≪전락≫(朴光善 역, 日新社, 1958)·≪반항적 인간≫(申梂澈 역, 日新社, 1958)·≪시지프스의 신화≫(일신사, 1958)·사르트르의 희곡 ≪파리떼≫(김붕구 역, 新楊社, 1958), 카뮈의 ≪카뮈 단편집≫(方坤 외 역, 신양사, 1958)·≪오해≫(鄭秉熙 역, 신양사, 1960) 등이 있다. 이 무렵 ≪불란서문학전집≫(신태양사, 1959)과 ≪세계문학전집≫(정음사)·≪카뮈·사르트르집≫(김붕구 역, 乙酉文化社, 1965) 등은 실존주의 문학 도입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논저로는 로베르 드 류뻬의 ≪카뮈의 사상과 문학≫(김붕구 역, 신양사, 1958), R.M. 알베레스의 ≪사르트르의 문학과 사상≫(정명환 역, 신양사, 1958)과 ≪20세기의 지적 모험≫(방곤 역, 일신사, 1958),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방곤 역, 신양사, 1958), 김붕구의 ≪새 불문학산고≫(民潮社, 1964) 등이 있다. 1950년대의 실존주의 열기는 한국전쟁(6.25)과 관련이 깊다. 전쟁의 폐허와 죽음의 체험은 공동체와 기존의 가치관이 붕괴되어 고립된 개체의 실존 문제로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황폐화된 허무의 상황을 반영하고, 이에 대응되는 사상으로서 실존주의가 안성맞춤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운동이 인간과 세계가 폐허화된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난 것과 유사성을 지닌다. 김붕구· 정하은 등이 저쪽 이론에 무게를 둔 논의라면, 고석규(高錫圭)의 ≪여백의 존재성≫(지평, 1990)에 수록된 논문, 이어령(李御寧)의 ≪저항의 문학≫(耕知社, 1959), 유종호(柳宗鎬)의 ≪비순수의 선언≫(신구문화사, 1962) 등은 실존주의라는 당시의 문학적·지적 상황과 이쪽 현실(한국 전쟁, 폐허와 죽음)의 체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존주의 작품 해석을 중심으로, 김동리(金東里)의 <본격작품의 풍작기>(조선일보, 1959.1.9.)를 계기로 김우종(金宇鍾)·이어령의 반격을 받은 논전은 결국 ‘실존문학’ ‘극한상황’ ‘실존성’ 등의 표현 문제로 귀착된 실존주의 소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김우종, <중간소설을 비평함>, 조선일보, 1959.1.23., 이어령,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경향신문, 1959.2.9.∼10.). 전후문학은 수용된 실존주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죽음 및 폐허의 체험, 즉 영향과 자생의 실존주의 문학인 바, 시와 소설에서 구체화된다. 전봉건(全鳳健)의 기호화된 죽음의 응시는 자신의 참전 체험이고(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 1957), 김춘수(金春洙)의 허무 속의 존재 조명은 허무주의를 초극하려는 생의 가능성 추구다(시집 ≪꽃의 소묘≫, 1959,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1959). 신동집(申瞳集)의 훼손된 인간 회복의 휴머니즘(시집 ≪서정의 유형≫, 1954), 김남조(金南祚)의 생명 응시와 긍정(시집 ≪목숨≫, 1953), 홍윤숙(洪允淑)의 방황과 불안(시집 ≪麗史詩集≫, 1962) 등은 전후 실존주의 시의 성과다. 소설에서 곽학송(郭鶴松)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가치 중립적 존재의 부조리 또는 모순(<철로>, 1954)을, 오상원(吳尙源)은 전쟁을 통해 죽음이 일상화되는 조건의 분석(<유예>, 1955)을, 손창섭(孫昌涉)은 소외된 잉여인간 내지 불구자적(不具者的) 아웃사이더의 존재조건 탐구(<잉여인간>, 1958)를, 하근찬(河瑾燦)은 전쟁이 부자(父子) 2대에까지 미친 역사적 비극상과 휴머니티(<수난2대>, 1957)를 각각 보여준다. 전후의 실존주의 문학은 리얼리즘·모더니즘·휴머니즘 등과 얽혀 복잡성을 띠고 있다. 첫째, 실존주의의 인간관계 단위는 개체(개인)인 단독자이며, 리얼리즘의 그것은 개체를 초월하는 어떤 객관적인 법칙의 힘이나, 전후의 실존주의는 객관적 묘사(현실과 존재 사이의 억압 양상)와 현실참여로 리얼리즘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둘째, 실존주의의 허무주의와 모더니즘의 회의주의, 실존주의의 출발점인 실존과 모더니즘의 자아, 그리고 저항과 부정 등에서 전후의 실존주의는 모더니즘과도 밀착되어 있다(특히 시에서). 셋째, 전후의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을 수용하면서 전쟁 및 허무의 체험과 극복을 위한 휴머니즘과 앙가주망(engagement)의 방향을 취한다. 현실참여론은 역사의식, 비판과 고발, 민중의식 등과 어울려 1960년대의 리얼리즘론으로 발전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20세기의 지적모험』(알베레스, 방곤 역, 일신사, 1958)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 방곤 역, 신양사, 1958) 『사르트르의 사상과 문학』(R.M.알베레스, 정명환 역, 신양사, 1958) 『카뮈의 사상과 문학』(로베르 드 류뻬, 김붕구 역, 신양사, 1958) 『실존철학입문』(야스퍼스, 윤성범 역, 신양사, 1960) 『실존주의철학』(존 와일드, 안병욱 역, 탐구당, 1967) 『이십세기문학의 결산』(알베레스, 박이문 역, 신양사, 1960) 『실존철학』(조가경, 박영사, 1961) 『새 불문학산고』(김붕구, 민조사, 1962) 『실존철학』(프리츠 하이네만, 황문수 역, 문예출판사, 1976) 『우리 문학의 논쟁사』(홍신선 편, 어문각, 1985) 『한국전후문학연구』(구인환 외, 삼지원, 1995) 『실존주의사전』(송랑신삼랑(松浪信三郞) 외, 동경당, 1964) 『二十世紀の哲學』(中材雄二郞 監譯, 東京, 白水社, 1998) 『한국현대시와 모더니즘』(문혜원, 신구문화사, 1996) Existentialisme ou Marxisme(Lukács, Paris, Nagel, 1948) The Rebel(Albert Camus, Penguin Books, 1951) Man in the Modern Age(Karl Jaspers, Routledge & Kegan Paul LTD, London, 1933·1951)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Jean-Paul Sartre, Les Editions Nagel, 1970)
12    詩作 잘하기와 관찰 잘하기... 댓글:  조회:2768  추천:0  2016-12-10
 2. '감동'을 주는 시   신춘문예 당선작 중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 시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흔히 꼽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 자리에서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영산포]를 감상해볼까 합니다.    1   배가 들어/멸치젓 향내에/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울었다.//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늘 같이 흐르고/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청무우를 먹으며/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빈손의 설움 속에/어머니는 묻히시고/열여섯 나이로/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강심을 높이고/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았다.//포구가 막히고부터/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누님은 오지 않았다./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들은 비워지고/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얼굴이었지/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같았지.//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누님은/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말했지.//갈꽃이 쓰러진 얼굴로/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파도처럼 산불처럼/흐느끼며 울었지.   2   개산 큰집의 쥐똥바퀴새는/뒷산 깊숙이에 가서 운다./병호 형님의 닭들은/병들어 넘어지고/술 취한 형님은/강물을 보러 아망바위를 오른다/배가 들지 않는 강은/상류와 하류의 슬픔이 모여/은빛으로 한 사람 눈시울을 흐르고/노을 속에 雲谷里를 적신다./冷山에 누운 아버님은/물결 소리로 말씀하시고/돌절벽 끝에서 형님은/잠들지 않기 위해 잡풀처럼/바람에 흔들린다./어머님 南平아짐은 마른 밭에서/돌아오셨을까,/귀를 적시는 강물 소리에/늦은 치마품을 움켜잡으셨을까,/그늘이 내린 九津浦/형님은 아버님을 만나 오래 기쁘고/먼발치에서/어머님은 숨죽여 어둠에/엎드린다.                                      ―나해철, [영산포] 전문      이 시의 강점은 체험의 진실성입니다. 경기가 제법 좋았던 영산포가 근대화 과정에서 낙후되고 마는데, 한 가족이 그 여파로 절대빈곤에 노출되면서 몰락하고 맙니다. 특히 화자의 누님은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고(1번), 다른 식구들도 죄다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합니다(2번). 참담한 현실상황을 들려주면서도 이 시는 시종일관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족의 비극이 잔잔하게 기술됨으로써 비극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2번 시에는 많은 지명이 제시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의 구체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시의 내용은 어느 일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산업화 시대였던 60년대와 70년대를 통과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이나 어촌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이농의 대열에 섰습니다. 도시에 와서 산동네 주민이 되어 살길을 찾았지만 허기는 여전합니다. 농촌사회에서는 그나마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도시에 나와서는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이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관계가 되고 만 것이 더 큰 비극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노동판에 가서 일용직 노무자라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는 그 시절에 공장 노동자가 아니면 버스 차장, 그도 아니면 직업여성이라도 되어 살길을 찾아야 했었지요. 이 시는 가족사와 사회사가 함께 다뤄지고 있으며, '체험의 진실성'에 서정성과 비극성이 보태져 진한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 시를 쓴 나해철 시인은 전남의대를 나와 지금은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얼굴의 여성을 미모의 여성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지닌 의사 시인이기에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시인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간에, 그 사실로 인해 이 시가 지닌 체험의 진실성이 흔들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시인은 이웃 혹은 일가친척 중 누군가의 체험을 진솔하게 묘사해 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는 제 후배여서 시 창작의 내밀한 부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아내가 운다/반지하의 네 평 방을 방을 모두 치우고/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 눈금을 만질 때 풀썩/습기 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천장은 동생들 차지/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아랫목은 안 되잖아, 아, 아버지,//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중력을 벗어난 새 떼처럼 눈이 날린다/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덜컹거리는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다//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고개를 돌렸다, 아참/장판 밑에 장판 밑에/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강을 건너 마악 변두리로/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쉽게 살아지는 것임을//성냥불을 그으며 아내의/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원동우, [이사] 전문   요즈음에는 한국도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가재도구를 잔뜩 싣고 이사하는 광경은 궁벽한 시골이 아닌 다음에야 보기 어렵습니다. 셋방살이를 하던 가난한 일가가 주인집 아들의 이른 제대로 말미암아 황급히 방을 비워주게 됩니다. 눈발이 날리니 초겨울인가요, 서울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이사를 하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습기 찬 천장 벽지가 떨어지는 반지하의 네 평 방, 그나마 연탄가스가 새던 방을 비워주게 되었으니 일가의 마음이 참담할 수밖에요. 장판 밑에 두고 온 복권에 연연할 정도로 이들 가족의 경제적 상황은 절박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이런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진한 감동을 주는 한 장면에 있습니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불을 키자 바람이 방해를 합니다. 차창이 조금 열려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아내의 작은 손이 다가와 성냥불을 꺼트리려고 하는 바람을 막습니다.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을씨년스런 이사 풍경을 따뜻하게 밝히고, 독자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험해도 가족 상호간에 사랑과 정이 변치 않는다면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이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이 백미입니다.    그런데 이 시로 등단한 원동우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 입사하여 10년 정도 근무하였고, 퇴사한 뒤에는 벤처기업을 꾸려갔습니다. 벤처기업이 잘 안 되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지금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시 속의 상황 중에 본인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부분은 1%나 될까요? 이 작품은 시인의 완벽한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면서 무심코 본 광경이 바로 이삿짐을 싣고 달리는 소형 트럭 한 대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보며 지나쳤던 이삿짐 실은 트럭을 원동우는 유심히 보았던 것이고, 곰곰이 생각했던 것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시는 이렇게도 탄생할 수 있습니다. 실체험보다 간접체험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례를 [이사]라는 신춘문예 당선작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등단작이 아닙니다. 함민복 시인이 시골에 계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가 좀체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시는 앞의 시처럼 비장하거나([영산포]) 을씨년스럽지([이사]) 않고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 감각을 보여주어 아주 은근하게 감동을 줍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사용되어 재미를 배가시키지요.    여보시오―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함민복,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전문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끝끝내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니, 모자가 일종의 동문서답을 했지요. 시인은 아무튼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었던 것이고, 소처럼 무심한(미련한?) 나에게 귀 어두운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가슴 찡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이 시를 읽으면 '아, 어머니!' 하고 마음속으로 한번쯤 외쳐보게 됩니다. 충격도 주지 않고, 이런 작은 감동도 주지 않는 시는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93년, 계간 {창작과 비평}은 김진완이 쓴 아래의 시를 투고된 많은 작품 가운데 신인 추천작으로 뽑습니다. 대학생이었던 김 시인이 어쩜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구사하게 하는지, 읽고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화자의 외할머니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머니를 출산하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제가 연전에 시와시학사를 통해 낸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라는 시 해설서에서 한 적이 있으므로 그것을 그냥 적습니다.     시는 화자의 외할머니가 하필이면 한겨울에 칙칙 폭폭 칙칙 폭폭 달리는 기차 안에서 엄마를 낳게 된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승객이라고는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을 가진 농투성이들뿐이지만 이들은 낯선 아주머니의 차내 분만에 한마음으로 동참합니다. 아낙들은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고, 남정네들은 뜨신 물을 구해오고, '벙거지'는 미역 살 돈을 내놓고, 두꺼비상 여편네는 산파 노릇을 해 무사히 한 생명은 '으왕!' 울음을 터뜨리며 탄생합니다. 이런 여러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 하여 엄마 이름이 다혜자가 되었다는 것이나, 마지막 3연이 보여주는 모성적, 혹은 한국적 건강함은 가슴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한 꽤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1연과 3연 사이에 위치한 '으왁!'이란 의성어가 환기하는 생명 탄생의 고통(낳은 고통만이 고통이랴, 태어나는 고통도 고통이며 지켜보는 안타까움도 고통이리)과 경이로움, "기찬"과 "기―차― 안"이라는 비슷한 음을 이용한 유머 감각 등은 이 시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데 합심하여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상 4편 시에는 가족애라는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어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의 불결한 섹스조차 시인의 손에서 잘만 묘사된다면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시도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와 같이 등단작은 아닙니다.       공중변소 속에서 만났지. 그녀   구겨버린 휴지조각으로 쪼그려 앉아 떨고 있었어.   가는 눈발 들릴 듯 말 듯 흐느낌 흩날리는 겨울밤   무작정 고향 떠나온 소녀는 아니었네.    통금시간을 지나온 바람은 가슴속 경적소리로 파고들고   나 또한 고향에서 고향을 잃어버린 미아,   배고픔의 손에 휴지처럼 구겨져, 역 앞   그 작은 네모꼴 공간 속에 웅크려 있었지.   사방 벽으로 차단된 변소 속,    이 잿빛 풍경이 내 고향   내 밀폐된 가슴속에 그 눈발 흩날려와, 어지러워   그 흐느낌 찾아갔네.   그녀는 왜 마약중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어도   새벽털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분명했어. 난 눈 부릅떴지.   그리고 등불을 켜듯, 그녀의 몸에   내 몸을 심었네. 사방 막힌 벽에 기대서서, 추위 때문일까   살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었지만   솜털 한 오라기 철조망처럼 아팠지만    내 뻥 뚫린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머리 위   작은 창에는, 거미줄에 죽은 날벌레가 흔들리고 있었어. 그 밤.   내 몸에서 풍기던,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던 악취는   그 밀폐의 공간 속에 고인 악취는 얼마나 포근했던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네. 마약처럼   하얀 백색가루로 녹아서 내 핏줄 속으로 사라져간   그녀,   독한 시멘트 바람에 중독된 그녀.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   그녀의 품속밖에 없네.                                      ―김신용, [공중변소 속에서] 전문   이 시를 쓴 김신용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으니 무학입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생을 영위해온 시인의 젊은 날의 로맨스인지 모르겠습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의 공중변소가 많이 청결해졌는데 그 전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공중변소에서 화자는 한 여자를 만나 정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녀는 마약중독자였고 도둑이었습니다. 거지 행색을 하고 있었을 텐데 악취를 풍기기까지 했으니 보통사람 같았으면 가까이 가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날 무엇에 홀린 듯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이고, 화자는 두고두고 그날을 못 잊어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 돌아가야 할 고향, 그 악취 꽃핀 곳/그녀의 품속밖에 없다"고 애틋해하는 것입니다. 독자에 따라서 이 시를 읽고 역겨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반드시 플라토닉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밑바닥 인생들의 하룻밤 풋사랑도 당사자에게는 애틋한 추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음습한 그곳에 희미한 빛을 비춰보고자 했고, 두 사람이 나눈 사랑도 충분히 따뜻한 것이었다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감동의 결은 다르지만 저는 이 시를 감동적인 시라고 말합니다.   ===============================================================================     대추 한 알 ― 장석주(1955∼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좋은 시인이 지닌 몇 가지 덕목이 있다. 그중의 하나는 ‘관찰 잘하기’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세상 만물을 당연하지 않게 보라. 이것이 시를 쓰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흔한 것을 새롭게 보라니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읽어 보면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 작은 대추 한 알로 꽉 채워져 있는 이 시는 대추를 잘 관찰해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원래 대추는 비싸고 귀한 과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를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비싼 것이 대수일까. 그와 상관없이 분명 대추는 귀하고 장한 과일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그 증거들을 조목조목 찾아냈다. 대추는 지금 한창 익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익는 것이란 얼마나 장한 일이냐. 태풍, 천둥, 벼락, 번개를 대추는 비명 하나 없이 견디어 냈다. 고생을 견딘 대추는 붉게 익을 수 있었다.       대추의 모양이 점점 둥글어 가는 것 또한 몹시 장한 일이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대추는 저 혼자 열심히 크고 있다.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을 꿀꺽꿀꺽 먹고 대추는 둥실둥실 자라났던 것이다.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시인은 감탄과 경외감을 담아 대추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대단하구나, 너는 세상을 잘 살아냈구나.   이쯤 되면 이 시가 대추에서 시작하지만 대추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의 쓴 것과 단 것을 제 안에 품고 자라나는 모든 존재는 훌륭하다. 엄마가 일해도 무럭무럭 자라주는 아이는 벌써 훌륭하다. 취업하려고 애쓰면서 자책하는 젊은이는 이미 훌륭하다. 많은 것을 잃어가며 세상을 알아가는 어른들 역시 훌륭하다. 천둥 같은 시련에 붉어진 얼굴과, 땡볕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깨는 훌륭하다. 믿지 못하겠거든 대추를 바라볼 일이다.
11    詩人은 관찰력과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절대 안된다... 댓글:  조회:2307  추천:0  2016-12-09
좋은 시가 갖고 있는 덕목들   ―등단작을 중심으로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여러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저를 여름 문학캠프 강연자로 초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작년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강연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3년째 계간 {미주문학}의 시 부문 작품평을 써오고 있는 저이기에 초청장을 받고서는 그 지면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직접 해드려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는 것을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계간평을 죽 써오면서 제가 느낀 아쉬움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미주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부족하구나 하는 점입니다. 연세도 대개 높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고, 한국 현대시의 동향에 대해서도 어둡고, 남들보다 뛰어난 시를 써야겠다는 경쟁의식도 적고, 미국에서 살기에 신간 시집이나 문예지를 사서 보기도 쉽지 않고……. 뭐 이런 이유들로 고국에 있을 때 보았던 그 시풍으로 지금껏 쓰고 계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의 애송시며 명시는 아직도 1920∼30년대의 시입니다. 만해와 미당, 소월과 영랑, 백석과 상화, 윤동주와 이육사, 청록파 3인 등. 자, 그런데 우리 시단에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확실히 받은 김수영과 김춘수가 있었고 '후반기' 동인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스트들도 있었고, 80년대의 해체시가 있었습니다. 해체시는 실험시, 포스트모더니즘 시, 형태파괴시 등의 명칭으로 불리면서 80년대를 풍미하였고 90년대에도 적지 않은 작품이 씌어졌습니다. 천재시인 이상(李箱) 이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뭇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주한국문인협회의 일원으로 시를 쓰고 계시는 여러분은 과거의 시 창작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과거로 도피하거나 현재에 안주한다면 여러분의 시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미주문학}이 동인지의 성격에 머물지 않고 한국 시단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만 그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충격'을 주는 시   시가 지향하는 것에는 '감동', '충격', '깨달음' 같은 것이 있을진대 우선 '충격'에 무게중심을 둔 것을 몇 편 살펴보겠습니다. 고국의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는 여름에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하는데, 지난해에 당선작으로 뽑힌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 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 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박연준, [얼음을 주세요] 전문   저는 이 시가 수천 편이 투고된다는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될 만큼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시, 혹은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는 젊은이의 내면세계를 다룬 시로서, 신세대적인 감각과 문체, 발랄한 어법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생리혈을 손에 묻혀/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도발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는 하지만 성욕은 함부로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본능입니다. 그런데 성 담론을 하면서 박연준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떳떳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시인의 자기독백체의 어투에는 당당함과 아울러 반항기도 배어 있습니다. 기성세대를 향한, 기성시인을 향한 반항기 말입니다. 따뜻한 차 대신에 얼음을 달라고 하는 신세대의 어법 속에는 분명히 도발적인 것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은 이런 도발과 반항기를 높이 샀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문예지 당선작을 보겠습니다.   여름 학기   여성학 종강한 뒤, 화장실 바닥에   거울 놓고    양다리 활짝 열었다.   선분홍   꽃잎 한 점 보았다.   이럴 수가!   오, 모르게 꽃이었다니   아랫배 깊숙이   이렇게 숨겨져 있었구나   하얀 크리넥스   잎잎으로 피워낸 꽃잎처럼   철따라    점점(點點)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   목젖 헹구며, 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                             ―진수미, [바기날 플라워] 전문   1997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여성학 강좌를 지도한 교수가 이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나 봅니다. 여성의 자궁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거룩한 곳이기에 위대한 모성의 상징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강좌를 들은 여대생 진수미는 화장실 바닥에 거울을 놓고 양다리를 활짝 열어 자신의 성기를 비춰보고 감탄을 합니다. 아랫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자궁의 입구인 외음부를 보고 "철따라/점점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목젖 헹구며" 운운하는 내용으로 시를 써 당당히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의 부모님은 이 시를 읽고 조금은 놀랐을 것입니다. 이 시 역시 후세에 남을 명시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수미라는 사람은 남들 다 아는, 혹은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색다르게 자신의 신체 일부에 대해 담론을 펼쳤기에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의 관찰력이 무뎌서는 안 되며,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사물과 이 세계, 인간과 자연, 이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재구성해 내는 자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계간지 당선작을 봤으니 이번에는 월간 문예지 {현대시}의 2000년도 신인추천 작품상 수상작을 봅시다.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시간은 검은 칠로 보디 페인팅한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혼의 춤,   그보다는 조용한 몸짓,    창백한 미소와 예리한 눈빛,   추락하는 펀드매니저는 자기 운명을   손가락 끝에 건다. 자기 몸의 끄트머리에   그의 믿음의 섬이 있다. 배반의 해일.   닉 리슨이 니께이 선물로 베어링 사를 망가뜨릴 때   나는 (주)대우의 해외 DR을 팔아먹으려고   자정까지 야근했다.   검은 하늘에 뜬 달이 파리하게 아름다웠다.   블랙 후라이데이의 후장(後場),   주식시장이 설사했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블루칩.   미수에 걸려 있는 나의 심장에 지진의 자장(磁場)이 흐른다.   펀드매니저의 몸에서 몸으로 흐르는    검은 영혼의 전류, 아랫배가 짜르르 아프고   허한 가운데 어떤 알 수 없는 후련함도 지나갔다   깊게 아프게 패일수록 그곳에 진한 자장(磁場)도 고인다.   그 독한 취기로 내일도 금융시장의 페달을 돌릴    빠른 손놀림들. 세계의 비틀거리는 자전거는   어느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에 다다를까. 낡은   페달과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고.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매일 번갈아 피는 목련, 장미, 난초, 국화, 동백   주말에는 견디기 어려운 폭설이 내릴지 모른다   너희들은 독한 자장(磁場)의 술을 마셔두렴.                             ―이명훈, [블랙 후라이데이] 전문   한국 금융시장의 현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선물시세·주식시세·외환시세 따위에 울고 웃습니다. 유가는 또 어떻고 금리는 또 어떤가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는 바로 현대인입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일상성'과 '현대성'입니다. 시인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면 일단 10대와 20대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가 시를 읽지 않는 데는 기성세대 우리 시인들의 잘못도 조금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 그 동안 현실감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고 인정 미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이렇게 일상성과 현대성을, 현실의 잡사와 생활의 이모저모를 시에 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2000년도 월간 {현대시학}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을 봅니다.    무등산에 올라   바다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광주 사람은 아니다   슬픔이 목까지 부풀어 숨이 막힌 광주를   대신 울어주려고   산짐승의 작은 것까지도 다 파도 한 음절씩 들메주는 바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태양을 품속에 꼭 껴안아 재우고는   첫 새벽이면 흔적 없이 서석대 위에 올려놓는 바다      아직도 가파른 능선을 타고 역류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합창, 한 물결 아니었으면   이미 불모의 사막이 되어 있을 바다      장불재 억새 한 잎, 세인봉 노송 한 그루 고인 이슬이   한여름에 소신공양하여 일군 칠산바다 천일염 맛인지 모르는 이들은   옷깃 여미고 다시 무등산에 올라가 보라                            ―[무등산 2000] 전문   무등산을 역사의 수난지로 설정하여 애향의 의지를 담은 이 시는 소재며 주제가 무난합니다. 문제는 표현에 있어 새로운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고 있기에 저에게는 별다른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시가 가슴을 벅차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잔잔한 울림으로 와 닿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의 공감대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얼음을 주세요]와 [바기날 플라워]는 적어도 동년배의 독자에게는 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시인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지 않는다면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 보여주거나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시를 읽는 묘미, 즉 언어의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견자이며, 이 세계의 온갖 사물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명명자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기꾼이며 '역설'과 '반어'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소재와 주제가 낡디낡은 것, 혹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면 표현이라도 좀 새로워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소개해 드릴 시는 소재가 낚시여서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새로움을 추구한 시입니다.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가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분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윤성학, [감성돔을 찾아서] 전문   강 낚시이건 바다 낚시이건 낚싯줄은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지요.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의 강점은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꽉 짜인 플롯입니다. 짧은 문장이 연속되고 명령형이 적절히 구사됩니다. 첫 연은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는 짧은 문장인데 끝 연은 "온다"라는 단 두 음절의 문장입니다.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시를 갓 잡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게 할 수도 있고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지닌 싱싱한 힘을 십분 느끼게 해줍니다. [감성돔을 찾아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그 꽃 ― 고은(1933∼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이라는 시는 단 세 줄로 되어 있다. 어쩐지 말이 부족할 듯도 싶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여기에 무슨 말을 더 얹어야 좋을지 찾기 어렵다. 짧지만 여운이 깊다. 오히려 짧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도 많다. 외우기 쉬운 데다가 시의 여백이 많아 행과 행 사이사이에 내 인생, 네 인생의 장면들이 끼어들기 좋다.   이 시는 인생의 여름을 맞이한 젊은이들보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지내는 사람들에게 더 간절하게 읽힐 작품이다.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꽤 살아온 덕에 삶과 육체의 내리막길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이 시의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인생의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오르는 것만을 생각한다. 저기 머나먼 정상 위에는 아주 중요한 목표 몇 가지만이 빛나고 있으니 그것을 향해 직진하지 않을 수 없다. 올라가야 하는 마음이 절실할 때에는 급하기도 하고, 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먼 곳의 환한 빛을 따라갈 때는 발밑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정상의 별을 땄든, 따지 못했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내리막길은 찾아온다. 별을 향해 뻗을 튼튼한 팔과 다리는 굽어지고, 사회적인 나이와 육체의 나이는 제멋대로 늘어만 간다. 그럴 때는 꼭 사람의 삶이 부스러져서 점차 폐허가 되어가는 듯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원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시는 큰 위로가 되어 준다. 시인에 의하면 내려가는 것은 지는 것도, 잃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새로운 국면일 뿐이다. 게다가 내려갈 때에는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꽃을 발견한다는 말은 사람이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허리를 굽힐 줄도 알고, 작고 고운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가을과 겨울, 내리막길의 어느 때는 크게 황량한 것만은 아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귀한 무엇이 있어 내려갈 때 하나씩 찾는 삶은 쓸쓸하지 않다. 그렇게 찾아낸 꽃들은 인생의 보물 상자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읽어보기@---     ▲ 공강일 서울대 강사   학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시작할 때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각오로 써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정작 나는 그렇게 못 쓰지만, 학생들이 나 대신으로라도 이런 글을 써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 이야기는 우주의 어둠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주에는 숱한 별들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가 존재하며, 또 태양과 같은 행성이 은하 속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주엔 태양과 같이 빛을 뿜어내는 별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빛들에 의해 밤도 낮처럼 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밤하늘은 어두운 것일까?    이 문제는 1820년대에 활동했던 독일인 물리학자 올버스 혹은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올베르스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올베르스 역시 나름의 답을 내 놓았는데,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다른 행성이 내는 열과 빛을 먼지와 가스층이 흡수하고 있다면, 이러한 먼지와 가스층 역시 빛을 방출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1법칙이 말해주듯 에너지는 보존되기 마련이며 그렇게 흡수된 빛은 어떤 식으로든 방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흡수한다고 해도 거기에 방출된 빛에 의해 밤하늘은 밝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대로 된 답일 수 없다.  이 문제에 해법의 실마리를 던져 준 사람은 물리학자도 그렇다고 과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밤하늘의 신비에 매료되었던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였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레카`, 1848  포는 이런 답변을 내놓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저 오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도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방출된 빛이 왜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정도. 대부분의 어려운 문제가 그러하듯 이러한 문제는 인식의 지층에서 몇 발자국만 벗어나도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다.  180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가 무한히 넓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균일하게 퍼져 있는 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나 균일한 별이 있다면, 거기에는 태양과 같이 빛을 내는 별들 역시 균일하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을 등지고 있는 밤중에도 다른 항성이 내는 빛에 의해 밤하늘은 밝아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인식에 가로막혀 과학자들은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포는 사유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당대적 인식을 무참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 “새 신발을 샀다며 /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 나는 마침 면도를 막 끝낸 참이었다. / 두 사람은 교외로 /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걸어갔다.” 이것은 일본 시인 가야마 쇼헤이가 1938년 발표한 짧은 작품이다. 지금 산은 온통 가을이어서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 속에는 빛이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조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대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집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우주가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무한한 우주가 아닌 분명히 한계를 가지는 유한한 우주를 사유하게 되었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니 행성의 빛은 멀어지는 우주공간 속에서 영원히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끝끝내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포는 이러한 사실의 언저리에 비슷하게 가닿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유가 가능했던 것일까? 오로지 언어로. 포는 언어가 만드는 아름다움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통념이나 상식이라는 인식 너머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가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밀고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통 `미쳤다`고 말하는 그 상태 말이다. 글쓰기는 인식 내부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바깥을 지향한다.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윤리이며 존재론적 사명이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법, 도덕, 윤리, 나아가 사실이라고 불리는 것들까지도 넘어서는 일, 가로막힌 인식을 문장과 문단을 이용해 도약하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허리`이며, 글쓰기의 `자궁`이다. 이런 글쓰기가 아니라면 무엇 하러 글쓰기를 감행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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