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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랑만주의 시인 - 퍼시 비시 셸리
2016년 12월 14일 17시 57분  조회:6160  추천:0  작성자: 죽림

 

퍼시 비시 셸리
Portrait of Percy Bysshe Shelley by Curran, 1819.jpg
Autograph Percy Bysshe Shelley.jpg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일)는 영국의 시인이다. 바이런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출생 1792년 8월 4일
잉글랜드 잉글랜드
사망 1822년 7월 8일 (29세)
이탈리아 이탈리아
직업 작가, 시인
활동기간 1810년 ~ 1822년
장르
사조 낭만주의
대표작 《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 1819년》,《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년
배우자 메리 셸리

 

 

생애[편집]

남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무신론을 부르짖다 퇴학 당하였다. 1818년 이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지냈다. 그의 는 흔히 관념적으로 달콤하다는 평을 받으나, 그의 순수한 서정시는 어떤 형으로든지 이상주의 적 혁명에 대한 정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시인 바이런과의 교우[편집]

1811년 여름 해리엇 웨스트브룩이라는 16세의 소녀와 결혼하였다. 무정부주의자이며 자유사상가인 W.고드윈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정치적 이상을 노래한《매브 여왕 (Queen Mab)》(1813년)을 발표할 무렵, 고드윈의 딸 메리와 친해졌고, 애정 생활의 파탄을 비관한 해리엇은 1816년 투신 자살했다. 그 해 메리와 정식 결혼한 그는 스위스를 여행, 시인 바이런과 알게 되어 교우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의 작품들[편집]

이 무렵의 작품은 ‘고독한 영혼’이란 부제가 붙은 서사시《고독한 영혼(Alastor)》(1816년), 정치시《이슬람의 반란 (The Revolt of Islam)》(1818년), 플라톤의《향연》의 번역 등이다. 영국정부를 비판한《무질서한 가면극》(1819년)과 워즈워스를 풍자한《피터 벨 3세》(1819년)에 이어서, 16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근친상간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시극 대작《첸치 일가》(1819년)와 대표작《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년)를 발표하였다. 이 대표작이 발표되던 해에 셸리 부처는 이탈리아의 피사에 정착하였고,《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1820년)《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년》 등 탁월한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821년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피사이키디온》, 그리스 독립전쟁에 촉발된 《헬라스 (Hellas)》, 시인 키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아도나이스 (Adonais)》, 시인의 예언자적 사명을 선언한 시론으로 유명한 《시의 옹호》(1821년) 등이 쓰여졌다.

최후[편집]

1818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머문 그는 1822년 7월 8일, 이탈리아의 나폴리 만(灣)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하였다. 향년 30세

사후[편집]

1824년 그의 사후 메리 셸리에 의해 출간된 유작시집 유작시선 《퍼시 비시 셸리, 유고시선집》(Percy Bysshe Shelley, Posthumous Poems, ed. Mary Shelley)에도 〈탄식〉(A Lament)과 같은 많은 좋은 시들이 실려있다.

작품[편집]

[편집]


  • 《불가사의한 산전》 (The Mysterious Bandit) (chapbook) (1815년)
  • 《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 (Hymn to Intellectual Beauty) (1816년)
  • 《몽블랑》 (Mont Blanc) (1816년)
  • 《이슬람의 반역》 (The Revolt of Islam) (1817년)
  • 《오지맨디아스》 ( Ozymandias) (1818년)
  •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818년)
  •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1819년)
  • 《혼돈의 가면극》(The Masque of Anarchy) (1819년)
  • 《속박에서 벗어난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 (1820년)
  • 《종달새에게》 (To a Skylark) (1820년)
  • 《아도니스》 (Adonaïs) (1821년)
  • 《수줍은 잔디》 (The Sensitive Plant) (1821년)
  • 《노래》 (Song) (1821년) - 엘가 교향곡 2번에 영감을 줌
  • 《구름》 (The Cloud)(1822년)

산문[편집]


  • 《무신론의 필요성》 (Necessity of Atheism) (1811년)
  • 《개혁의 철학적 견해》 (A Philosophical View of Reform) (1819년)
  • 《시의 옹호》 (A Defence of Poetry) (1821년)

소설[편집]

희곡[편집]


  • 비극 《첸치》 (The Cenci)(1819년)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는 영국의 시인이다바이런키츠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남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무신론을 부르짖다 퇴학 당하였다. 1818년 이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지냈다그의 시는 흔히 관념적으로 달콤하다는 평을 받으나그의 순수한 서정시는 어떤 형으로든지 이상주의 적 혁명에 대한 정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시인 바이런과의 교우

 

1811년 여름 해리엇 웨스트브룩이라는 16세의 소녀와 결혼하였다무정부주의자이며 자유사상가인 W.고드윈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정치적 이상을 노래한매브 여왕 (Queen Mab)(1813)을 발표할 무렵고드윈의 딸 메리와 친해졌고애정 생활의 파탄을 비관한 해리엇은 1816년 투신 자살했다그 해 메리와 정식 결혼한 그는 스위스를 여행시인 바이런과 알게 되어 교우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의 작품들

 

이 무렵의 작품은 고독한 영혼이란 부제가 붙은 서사시고독한 영혼(Alastor)(1816), 정치시이슬람의 반란 (The Revolt of Islam)(1818), 플라톤의향연의 번역 등이다영국정부를 비판한무질서한 가면극(1819)과 워즈워스를 풍자한피터 벨 3(1819)에 이어서, 16세기 로마에서 일어난 근친상간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시극 대작첸치 일가(1819)와 대표작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Unbound)(1820)를 발표하였다이 대표작이 발표되던 해에 셸리 부처는 이탈리아의 피사에 정착하였고,서풍의 노래 (Ode to the West Wind)(1820)종달새에 부쳐 (To A Skylark) 1820》 등 탁월한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1821년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피사이키디온그리스 독립전쟁에 촉발된 헬라스 (Hellas),시인 키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아도나이스 (Adonais)시인의 예언자적 사명을 선언한 시론으로 유명한 시의 옹호(1821등이 쓰여졌다.

 

최후

 

1818년 이후 이탈리아에서 머문 그는 1822년 7월 8이탈리아의 나폴리 만()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하였다향년 30

 

1.급진적 개혁주의자

 

셀리(1792-1822)의 여러 측면들 중에서도 독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혁명시인으로서의 셀리이 다그는 한 국가의 구성원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갈라 놓은 정치사회종교 제도의 부도덕성과 부당성에 누구 보다도 분개했던 시인이다옥스포드 대학 시절 그는 그 같은 정치적 사회적 모순의 시정을 위해 지배계급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퇴학까지 당하며나중에는 조국을 등지고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로 건너가 살다가 피사 근처 의 어느 해안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익사하는 불운을 맞는다셀리의 이상주의는 현실의 완강한 벽에 부딪히자 내면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며세계를 해석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념세계를 구축함에 있어 그는 기존의 신화체계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재창조하는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한다그런 맥락에서 볼 때 <서풍의 송가>(Ode to the West Wind)는 내면화된 이상주의가 새로운 신화의 틀 내에서 탁월하게 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피털루 대학살'과 <1819년 영국>

 

1819년경 영국에서는 수많은 서민들이 실업과 기아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그러던 중 공업도시 맨체스터에서는 노동자들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몰려가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게 된다이때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무참하게 살육을 자행함으로써 4년 전 유럽대륙에서 얻은 명성을 하루아 침에 퇴색시켜 버린다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역전의 용사들이'피털루 대학살'(Peterloo Massacre)의 주구로 전락한 것이다이 사태를 지켜본 셀리는 프랑 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의 정신구조와 국내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그들의 정신구조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이념체계동일한 사회체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기득권세력을 통렬하게 탄핵한다.

 

3. 그대의 관계

 

현실개혁의 의지와 이상사회의 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사회변혁을 향한 셀리의 꿈은기득권세력의 강력한 벽을 실감하며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1818)에는 내면화의 길을 걷게 된다인간성의 전반적 갱생 없이는 사회개혁의 꿈도 무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변혁의 꿈과 인간성의 전반적 갱생이라는 셀리의 두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재현된 시가 바로 그 유명한 <서풍의 송시>(Ode to the West Wind)이다이 시와 관련하여 셀리는 플로렌스 근처 아르노(Arno) 계곡에서 구상하고 또 대부분 쓰였다면서 서풍의 특성을 이렇게 기술한 바 있다. "그날은 온화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세찬 바람이 가을의 폭우를 쏟아붓게 될 수증기를 모아 들이고 있었다황혼무렵예상했던 대로우박과 폭우가 뒤범벅이된 엄청난 폭풍이 키잘핀 지방 특유의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는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키잘핀 지방에 일년 내내 부는 서풍들 중에서도 셀리가 관찰하고 경험한 서풍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 우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다이 시에서 셀리는 이 봄바람을 "청람빛 그대 누이"(Thine azure sist er)로 여성화 하는 경우도 있지만그가 친화를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폭우와 천둥번개를 동반한 격렬한 서풍이다그래서 그는 서풍을 "사나운 신령"(Spirit fierce)으로 의인화하면서 서풍에게 파괴적인 남성 신격을 부여한다.

 

해럴드 블룸 (Harold Bloom)에게도 이 시는 셀리 시학의 본질이 가장 잘 재현된 시이다블룸은 종교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의 핵심개념인 '그대' (IThou)/'그것'(IIt)를 준거점으로 삼아 셀리의 '신화창조'(mythoporia:mythmaking)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부버에 의하면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사물을 대할 때 그 사물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들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경험하는 경우와, "나와의 [의미 있는]관계속에서 그 사물의 참모습을 곧이곧대로 인식경험하는 경우이다전자의 경우 나와 사물과의 관계는 '그것'의 관계임에 반하여 후자의 경우에는 '그대'의 관계가 성립된다.

 

사물을 '그것'이 아닌 '그대'로 경험할 때에는 이념체계나 사전지식 또는 편견 같은 것이 개입되지 않은 "직접적인"(immediate) 관계라 할 수 있다원시인들의 언어를 보면 '그것'의 관계가 아닌 '그대'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들이 대부분이다원시인들의 사물과의 관계는 관찰자와 피관찰자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아닌 "관계로서의 관계", 즉 다른 사물들과는 무관하게 "[둘만의테두리가 정해지고 [둘만의테두리를 정하는관계 (bound and binding)이다.

 

4.서풍의 신격화

 

<서풍의 송시>에서 생명 없는 세계를 상정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셀리 시의 본질과 핵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이 시의 발화자 ''는 '그대'로 "관계 지어지는원시적 세계의 ''를 지향하기 때문이다그런 세계 속에 존재하는 ''/시인은 ''/서풍을 "경험하고의인화하고풍유화하고상징화하려들기보다는 오히려 서풍과의 일치를 염원하며 일치를 모색한다첫 행에서부터 서풍 을"가을의 숨결"이라 부르는 시인은 서풍을 모종의 "살아 숨쉬는 생명체"(animatedthing)로 인식하면서 '그것'이 아닌 '그대'의 관계를 설정한다.

 

1

사나운 '서풍'이여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그대 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이

마법사에게 쫓겨 도망치는 도깨비마냥 혼비백산 내달리네,

 

누렇고거멓고유령처럼 창백하고열병으로 홍조 띤,

역병에 신음하는 무리들오 그대여그대는

겨울처럼 차갑고도 어두운 침실로 날개 달린 씨앗들

 

마차 내몰아거기에 그들은제각기 무덤 속 시체마냥,

몸 웅크리고 차갑게 누워있나니그러다 마침내

청람빛 그대 누이 ''이 꿈꾸는 대지 위로 피리를 불어,

 

산과 호수강과 들판에 피리소리 울려퍼질 때면,

(아름다운 꽃잎들을 양떼마냥 창공으로 몰고다니며)

현란한 빛 향긋한 내음으로 들판과 동산을 가득 채우리.

 

사나운 혼령이여돌아다니지 않는 곳 없는 그대,

파괴자이자 보존자여귀 기울이소서오 귀 기울이소서!

 

2

산발한 구름들은 가파른 하늘의 격랑 한가운데서

그대의 파도를 타고대지의 썩어가는 잎사귀들마냥

하늘과 바다의 뒤엉킨 나뭇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지네,

 

비와 바람의 사자인 이 구름들은.

그대가 동행하는 날렵한 파도의 푸른 표면 위에는,

미친 미나드의 머리에 곧추선 눈부신 머리칼마냥,

 

희미한 수평선에서 하늘의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다가오는 폭풍의 머리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네.

그대 죽어가는 해의 만가여,

 

어둠을 감싼 이 밤은 그대의 노랫소리에 맞춰,

빽빽이 모여든 증기의 힘으로 천개를 이루고,

그대 위해 거대한 분묘 둥근 봉분이 되리니,

 

그러면 그 견고한 대기로부터 검은 비와

불길한 우박이 폭발하리라귀 기울이소서!

 

3

여름날 단꿈 꾸는 푸른 '지중해'를 잠에서 깨운 그대.

지중해를 휘감아도는 수정 잔물결 자장가 삼아

바이만 경석섬 옆에 누워

 

꿈결 속에서 보나니청람빛 이끼와 꽃들로 뒤덮인

고색 창연한 궁전과 탑들이

강렬한 햋빛 어른대는 파도 속에 떨고 있음을.

 

그 달콤한 느낌그 광경 떠올리며 감각은 자진하네!

그때 '대서양'의 대오정연한 군대는

그대 가는 길 방해하지 않으려고 양옆으로 갈라져

 

깊은 틈새 내고저 멀리 바다 깊은 곳에서는

메마른 잎사귀 걸쳐 입은 바다꽃나무와

끈끈한 수액 흘러대는 해초들이 그대 목소리

 

눈치 채고는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혼비백산 도망치네들어보소서!

 

4

나 그대가 몰아가는 죽은 나뭇잎이라면,

그대와 함께 빠르게 날아가는 구름이라면,

그대 힘 아래서 헐떡이며 그대 힘 함께 나눌 파도라면,

 

그리하여 그대 말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오 통제할 길 없는 존재여!

혹은 하늘을 나는 그대 따라잡는 일이

 

좀처럼 환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소년시절처럼

그대 하늘 떠돌 때 그대의 단짝친구 될 수 있다면,

나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기도드리며

 

갈구하진 않았으리날 끌어올리소서,

파도처럼나뭇잎처럼구름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넘어져 피 흘리나이다!

 

시간의 무거운 짐이 그대를 쏙 뺀 날 사슬에 묶고

허리 휘어지게 하나이다,

길들일 길 없이 민첩하고 자부심 넘치던 나를.

 

5

숲이 그대의 수금이듯이,

날 그대의 수금으로 만들어다오.

내 잎이 나뭇잎마냥 떨어진들 어떠리!

요동치는 그대의 강력한 조화로 인하여

 

숲과 나 둘 모두가 애잔하면서도 달콤한,

가을과도 같은 깊은 색조를 띠게 되리.

사나운 신령이여나의 혼령이 되라!

나로 변하시라그대 무모한 자여!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기 위해죽은 잎사귀들마냥,

나의 죽은 생각들을 우주로 몰아가시라!

그리하여 이 시의 주문을 통하여,

 

꺼지지 않은 화덕의 재와 불씨를 휘젓듯,

사람들에게 나의 언어를 퍼뜨리시라!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대지에나의 입을 빌려,

 

예언의 나팔이 되시라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서풍이 시인의 영혼과 하나가 될 때 서풍의 사나운 에 너지와 생명력은 곧 시인의 에너지와 생명력으로 화하고 그래서 시인의 얼어붙은 사상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 이다그러므로 시인과 서풍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호보완적 존재이다.시인이 서풍을 필요로 하듯이 서풍 또한 시인을 필요로 한다하느님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예언자가 있을 수 없듯이 하느님에게도 자기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시인 과 서풍의 관계는 서풍이라는 광활한 실체 속으로 시인이 수렴되는 관계가 아니라 두 실체가 만나 서로를 보완하며 서로를 지탱하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5.정신계의 입법자

 

인간을 비롯한 감각을 갖춘 모든 사물의 내부에 존재 하는 원리란 "신화로서의 시시로서의 신화를 구성하는능력"(mythopoeia)을 뜻하는 것으로 콜리지의 '이차 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이나 키츠의 '부정력(Negative Capability)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신화로서의 시를 창조하는 능력은 인간이 사물을 대할 때 '그것'의 관계과 아닌 '그대'의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즉 "공감적 일치"(emphatic identification)를 일구어 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서풍의 송시>에서도 '서풍은 단지 원인제공자일 뿐타오르는 불의 강도와 색깔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내면의 원리로 존재하는 시인 고유의 혼불 (the fire of spirit)이 결정한다셀리에게 시란 신비한 교감의 순간을 언어화한 것이다그런데 교감의 순간을 재현하는 데 언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깊은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 시는 고작해야 상징적인 몸짓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서풍의 송시>에서 시인이 언어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면서 서풍의 본질로 숨가쁘게 돌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언어의 한계를 깨달은 시인이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깊은 진실"(deep truth)로 다가가고픈 열망 때문이다셀리를 괴롭힌 "악령"은 무엇인가키츠에게는 고통이나 죽음 같은 인간적 한계가 극복되어야 할 악령이었고 그래서 그의 시가 심미적철학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면셀리에게는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과 두려움 같은,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 성질들이 곧 그를 괴롭히는 악령들이었고 그래서 그의 시는 윤리적 성격을 띠게 된다최초의 장편시<맵 여왕>(QneenMab:1813)을 쓸 당시 셀리는 급진주의자답게 인간의 타락은 전적 으로 사회제도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잘못된 제도만 개혁한다면 인간은 태생적 선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그러나 그런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정되어인간과 사회는 동시적으로 탄생하며 사회란 마음의 거울과도 같다는 입장으로 바뀐다.

 

사회개혁에 인간성의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진선미의 사랑이 부단히 일깨워져야 할 것이다시와 예술은 마음이 간직한 진선미의 불씨신성의 불씨를 되살리고 그것을 힘찬 불길로 타오르게 한다그래서 셀리는 시인을 가리켜 신성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성을 구원하는 "세상의 공인받지 못한 입법자", 즉 물질계 너머의 정신계를 군림하며 통치하는 예언자이자 사제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 미나드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주신 바쿠스를 따라다니는 광란의 여성

 

○ 신화

고대인의 사유와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영국 낭만시 연구(김철수 지음)에서 발췌

 

=====================


 
    무상 /퍼시 비시 셸리 Mutability /Percy Bysshe Shelley 우리는 한밤의 달을 가리는 구름 같은 존재 구름은 어둠에 환한 줄그으며, 얼마나 쉬임없이 달리고, 반짝이며, 떨리는가! --- 그러나 곧 밤이 다가오고, 그러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또한 잊혀진 수금 같은 존재. 불협화음의 현들은 변화하는 바람결마다 갖가지로 반응하고 어떤 두 번째 선율도 그 연약한 악기에 앞선 선율과 같은 기분을 일으키지 못 한다. 우리는 휴식한다. ---하나의 꿈이 잠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어난다. ---하나의 방향 없는 생각이 하루를 망친다. 마음에 드는 비애를 껴안거나, 걱정을 내던져 버린다. 다 마찬가지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것이 떠나는 경로는 그래도 자유로우니까. 사람의 어제는 결코 내일 같을 수 없고 무상 아닌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
 




종달새에게(To a Skylark) 

-퍼시 비시 셸리 

…(초략)… 

 
우리는 앞을 보고 또 뒤를 보며,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갈망한다: 

우리의 가장 진지한 웃음에는 

약간의 고통이 배어있고 

우리의 가장 달콤한 노래는 가장 슬픈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비록 우리가 증오와 오만과 

두려움을 비웃을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물건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대의 즐거움에 어찌 근접할지 나는 알지 못하네.

기쁜 소리를 내는 

어떤 악기보다도 뛰어나고, 

책에서 얻는 

어떤 보배보다도 좋네, 

…(중략)… 

그대의 머리가 아는 

기쁨의 절반이라도 내게 가르쳐다오; 

그러면 내 입에서 흘러나올 

조화로운 신기(神氣)에 

세계가 귀를 기울이리, 지금 내가 그대에게 귀 기울이듯이.

We look before and after, 

And pine for what is not: 

Our sincerest laughter 

With some pain is fraught; 

Our sweetest songs are those that tell of saddest thought.

Yet if we could scorn 

Hate and pride and fear, 

If we were things born 

Not to shed a tear, 

I know not how thy joy we ever should come near.

Better than all measures 

Of delightful sound, 

Better than all treasures 

That in books are found, 

Thy skill to poet were, thou scorner of the ground!

Teach me half the gladness 

That thy brain must know; 

Such harmonious madness 

From my lips would flow, 

The world should listen then, as I am listening now.

* 

▲ 최영미 시인

우리는 앞을 보고 뒤를 보고 또 옆을 보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노력을 그만두면 안 되리. 

‘종달새에게’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가 이탈리아에 머물던 1820년에 완성한 105행의 서정시다. 그의 두 번째 부인 메리와 시골길을 산책하다 영감을 얻어 쓴 시라는데, 그 특별했던 날을 메리는 이렇게 기술했다. 

“아름다운 여름 저녁이었다. 오솔길을 거닐다 즐겁게 지저귀는 종달새의 합창을 들었다.” 

종달새의 노래와 시인의 시를 대비시키며,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보다 뛰어난 새의 즉흥적인 음악을 찬양하는 것, 자연 예찬은 낭만주의의 한 특징이다.

낭만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시대의 양식으로서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쓸었던 180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유행한,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하던 예술을 일컫는다. 강렬한 정서와 체험에의 욕구,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개성과 창의력 예찬, 자연숭배가 로맨티스트의 삶의 철학이었다.

셸리는 자신보다 네 살 위인 바이런처럼 당대의 관습을 거스르는 충동적이며 비타협적인 삶을 살았다. 셸리는 1792년 영국의 서섹스에서 2남 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상당한 영지를 소유한 귀족이며 하원의원이었다. 이튼칼리지를 거쳐 셸리는 1810년 옥스퍼드대에 등록했다. 옥스퍼드에서 급진사상에 경도된 그는 1811년에 ‘무신론의 필요성’이란 팸플릿을 익명으로 인쇄해 옥스퍼드대의 교수와 성직자들에게 돌렸다. 유럽문명의 오랜 뿌리인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공격한 열아홉살의 청년은 며칠 뒤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틀어졌다.

옥스퍼드에서 쫓겨난 셸리는 16살의 소녀 해리엇과 눈이 맞아 스코틀랜드에서 살림을 차렸다. 해리엇과 결혼한 그는 저명한 사회주의 철학자 윌리엄 골드윈과 친교를 맺은 뒤 사회개혁의 의지를 담은 시를 쓴다. 골드윈의 딸 메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셸리는 1814년 몰래 메리를 데리고 유럽으로 달아난다.

대륙을 여행하다 돈이 떨어진 이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해 11월에 해리엇은 아들을 낳았고, 이듬해 메리 골드윈이 출산한 미숙아는 2주일 지나 사망했다. 1815년 다시 영국을 떠난 셸리와 메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인 바이런을 만나 가까이 지낸다. 호수에 배를 띄워 놓고 시를 논하다 바이런이 각자 귀신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훗날 메리가 발표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날의 유령담이 모체가 됐다. 

해리엇이 자살을 시도해 그녀의 시체가 런던의 호수에서 발견되고 3주일 뒤에 셸리는 메리와 결혼해 1818년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1822년 7월 삼십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셸리는 폭풍 속에 배를 띄우고 항해하다 익사체로 발견됐다. 배의 이름은 바이런의 작품에서 따온 ‘돈 주앙’이었다.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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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1818년 발간될 당시에는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31년에 할리우드에서 처음 흑백영화로 만들어지며 영화 속에서 거대한 몸집과 커다란 사각형의 얼굴에 덕지덕지 꿰맨 듯한 피부, 나사가 박혀 있는 목 등의 흉측한 몰골로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괴물의 열연 덕분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 만화, 뮤지컬 등으로 계속 변형되고 재생산되면서 괴물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소설을 읽어 보면 프랑켄슈타인의 정체는 괴물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했던, 그 결과로 괴물을 탄생시키고 후회와 두려움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과학자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에는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당시 19세밖에 되지 않았던 메리 셸리(1797~1851)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의 두 번째 부인이기도 한데, 메리와 처음 만났을 때 퍼시 셸리는 유부남이었음에도 17세의 메리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는 둘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들은 1816년 여름에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과 바이런의 주치의 존 폴리도리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 근처에서 여름을 나게 된다. 며칠 동안 폭풍우가 계속되자 집 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이들은 독일의 공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을 돌려 읽으면서 여름휴가 동안 자신들도 한 편씩 공포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시인이었던 바이런과 퍼시 셸리가 소설을 쓰는 것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손을 뗀 반면에 폴리도리는 흡혈귀 이야기인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인간을 창조하고자 신의 영역을 넘보았던 과학자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킨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프랑켄슈타인’의 작품 속 화자는 모두 세 명이다. 첫 번째는 북극을 향해 항해 중이던 월턴 선장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만든 괴물의 뒤를 쫓아 북극까지 오게 된 프랑켄슈타인, 세 번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괴물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가 모여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는데 월턴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안에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괴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중으로 된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하다 빙산에 갇혀버린 월턴 선장은 자신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랑켄슈타인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몇 달간 계속된 지리멸렬한 항해에 선원들 모두 지치고 피곤해할 즈음 운명처럼 만난 프랑켄슈타인을 월턴은 ‘경이로우리만큼 존경과 연민을 한꺼번에 자아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그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육성에 가깝게 기록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어찌 보면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여 인류에게 이득을 주겠다는 욕망을 품고 있던 월턴 선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생명의 비밀을 찾아내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욕망을 품은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고 자란 프랑켄슈타인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화학과 물리학, 생물학 등을 두루 배우며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시체를 찾아다니며 조각조각을 모아 어느 비 오는 날 새벽,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생명체는 한마디로 괴물이었다. ‘사지는 비율을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지만 다 끝나고 나서 보니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이 심장을 가득 채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흉물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그는 그 길로 도망을 치고 만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흘러 가족 여행을 떠난 길에서 괴물과 마주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주친 괴물은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들려주며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여생을 보낼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요구에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여자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만다. 프랑켄슈타인의 작업을 지켜보던 괴물은 분노한 나머지 복수를 결심하고 이후 괴물의 복수와 그러한 괴물을 찾아 종지부를 찍겠다는 프랑켄슈타인의 추격으로 소설은 막바지까지 치닫는다. 

20세기에 들어 이 작품이 더욱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경이롭다고 할 만큼 과학이 발전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작품 속에서 괴물은 인간의 여러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비밀을 벗겨 내겠다는 욕망 하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사실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그럴 듯한 목표가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 앞에서 공포와 충격에 빠진 나머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 조작과 세포 복제에 의한 생명의 변형과 창조가 가능해진 오늘날, 과연 이것이 인류에게 축복인지, 재앙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과학적 성과물에 대한 과학자의 성찰과 책임감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의 크기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혼자 글을 깨치고 사유를 넓혀 가면서 자신이 아무리 선한 의지를 지녔더라도 흉측한 몰골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세계로 편입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한다. 그래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말한다.  

“감히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이는 비록 200여 년 전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한 작가에 의해 쓰인 작품 속 한 구절이지만 현대에 와서 더 유효한, 아무도 윤리적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과학 발전이나 기술 발전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 할 만하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출처: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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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인 메리 셸리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부부의 딸이다. 메리는 생후 11일에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아버지 고드윈은 딸에게 교육면에서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따라서 메리의 사상이나 삶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메리의 남편인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 역시 고드윈의 정치적 추종자였다. 
 


 

▲ 작가 메리 셸리

1970년대까지 메리는 주로 남편 퍼시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 참여했다는 점과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정도로만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학계는 메리가 남긴 자료를 조금 더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가치를 인정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그가 남긴 소설 ‘발퍼가’(1823), ‘퍼킨 워벡의 행운’(1830), ‘최후의 인간’(1826), ‘로도어’(1835), ‘포크너’(1837) 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기행문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1844)과 다이어니셔스 라드너의 전기문인 ‘잡동사니 백과사전’(1829~46) 등 그의 덜 알려진 작품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메리의 사상이 당시에는 매우 급진주의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메리는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가정에서 보여주던 협력과 조화를 사회로 확장시킴으로써 시민 사회를 발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선은 부친 고드윈과 남편 퍼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낭만주의 시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볼 여지도 있다. 

 
1816년 결혼 뒤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1822년 남편과 사별하게 된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여생을 아들 양육과 집필 활동에 집중하며 보냈다. 메리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지루한 투병생활로 보냈는데, 그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유는 뇌종양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형우 기자
[출처: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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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축으로 사회의 변화를 그려내는 것이 일군의 경제학이었다면, 여기에 ‘공간’이라는 차원을 더하여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가 있다. 지금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폴 크루그먼이다. <슬레이트>(slate.com)에 개설되었던 그의 블로그는 ‘우울한 과학(The dismal science)’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은 경제학의 별명처럼 쓰이는데, 통찰력 뛰어난 독설가로 유명한 경제학자의 블로그에 제격이다.

경제학에 그런 절묘한 이름을 붙인 이는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이다. 그 연유는 같은 나라 경제학자(본래는 성공회 성직자)인 토머스 맬서스의 저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인구가 식량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증가하므로 인류의 미래는 무척 암울하다는 주장은 맬서스의 <인구론>(1798)의 핵심이다. 당대 학자들 또한 이윤율이 낮아져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던 터이다. 

(왼쪽)토머스 맬서스, 메리 셸리

(왼쪽)토머스 맬서스, 메리 셸리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사람 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죽어야만(죽여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 대상은 ‘지원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과격함을 떠나 맬서스의 논의는 실은 고전파경제학에서 다루는 분배에 대한 기초가 되고, 그러한 면에서 경제학적 함의를 가진다.
 

<인구론>은 사실 ‘고드윈, 콩도르세, 그 외 작가들의 짐작(specul ations)에 대한 논평과 더불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콩도르세는 프랑스혁명의 좌파 사상가였고, 고드윈은 이를 쫓아 사유재산 철폐를 주장했던 작가이다. ‘짐작’이라고 칭한 대로, 책은 이들 진보좌파의 논리를 공격하려는 속셈이 담겨 있다. 몰락하던 지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의 입장에 섰던 것이다. 실제로도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에 대한 질의>라는 책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드윈은 그의 지지자인 맬서스의 아버지 데이비드 맬서스와 각별한 사이였고, 왕래가 잦았다. 고드윈의 부인은 여성주의 작가이자 프랑스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 부부 모두 급진적인 사람들이다(여전한 봉건계급 시대에!). 부부의 딸은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메리 셸리다. 메리 셸리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의 지은이로도, 과학·인간실패 등을 암시한 이 책을 열여덟에 지은 점으로도 유명하다. 남편은 키츠, 바이런과 함께 꼽히는 시인 퍼시 비시 셸리로, 진보철학을 가졌다. 

그는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라고 노래했고, 메리 셸리에게는 “그러나 달디단 이 모든 것도 소용없으리/ 그대가 내게 입을 맞추어주지 않으면”이라고 읊었다. 그녀는 “내 사랑 별빛으로 내게 다가와/ 내 눈꺼풀에 그대 입맞춰주오”라고 답했다. 사실 퍼시 비시 셸리는 유부남이었고, 그와 사랑에 빠져 도망갈 때 그녀는 고작 열여섯이었다. 남편은 그녀가 스물다섯에 폭풍을 만난 배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십 줄까지 혼자 양육을 전담한 그녀의 고단함을 상상해보면, 앞선 시가 프시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리라.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 셸리와 맬서스가 직접 만났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두 집안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인구론>을 여섯 번이나 고쳐서 내는 동안 맬서스에게 전해져 왔던 메리 셸리의 생은 그로 하여금 삶을 더 염세적으로 생각하게끔 하진 않았을까?
 
메리 셸리 역시 맬서스를 몰랐을 리 없었고, 집안의 교유와 더불어 격한 논쟁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였던 1821년 피사에서 <인구론>을 완독했다. 종말론적인 그녀의 작품 <최후의 인간>에서 그의 견해에 일면 동의했고, 아버지와 논쟁에서 맬서스의 입장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론 교수가 발표한 ‘최후의 인간’ 논문에서 그녀는 맬서스와 다른 해법을 가졌다고 평가된다. 인구변화를 ‘제어’하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맡기기를, 고통에 밀어넣기보다는 공감하기를, 그리고 전체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협력을 강조했다고. 최근 발견된 다양한 작품들에서 그녀는 협력을 통해 제대로 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었다고 읽힌다.

<김연 (시인·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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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시간이 인간의 기억 위에 써내려간 순환의 시이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우주 속의 모든 물질은 무한 밀도와 온도의 특이점singularity 상태로 한 장소에서 있었을 것이다.

빅뱅은 폭발이 아니라 특이점의 팽창이었다.

빅뱅은 팽창의 동인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이전의 무한 밀도와 무한소의 부피가 지금의 우주로 재편되었으며시간과 공간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빅뱅 이전에는 중력이나 열역학 같은 물리학 법칙들이 성립하지 않다가 일단 빅뱅이 시작되자 모든 물리학 법칙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소멸과 관련이 있다.

이 과정이 시간과 더불어 가속화되다 우주는 어느 날 소멸하고 시간도 끝나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시간의 세 화살’ 이론을 제안했다.

덕분에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또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 시간을 정신이 구축한 것으로 보는 과정에서 물리학 법칙심리학우주론을 결합한 개념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화살의 방향은 무질서와 엔트로피 속에서 속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결정된다.

두 번째 화살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나 감각현재의 인식과거의 기억 따위의 시간의 심리학적 화살이다.

세 번째 화살은 시간의 우주론적 화살로우주가 확장되는 방향에 따라서 결정된다.

 

세 화살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킬 때에만 질문을 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호킹은 양자이론이 가상 시간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소개한다면서 공상과학소설 같지만그럼에도 그것은 순수과학의 개념이라고 말한다.

시간을 선으로 그려본다면 과거는 왼쪽미래는 오른쪽이 되지만가상 시간은 수직 방향이다.

 

서양이 선형 시간 개념에 매달렸다면 마야인은 시간을 원으로 생각했다.

천체들이 궤도를 돌아 원점에 돌아오는 데 걸리는 기간예컨대 달의 순환주기인 한 달지구와 별들이 특정한 배열상태로 돌아오는 26,000년의 기간이 그 기준이 된다.

자연의 패턴을 보면 이러한 개념이 맞는 듯 보인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셸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란 시간이 인간의 기억 위에 써내려간 순환의 시이다.

 

호킹은 시간에는 시작이 있고 끝도 있다고 장담한다.

호킹은 우주의 시작을 133-139억 년 전으로 산출한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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