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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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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산문에 산문률이 없다면 자칫 딱딱하고 재미없는 문투가 되다 댓글:  조회:3226  추천:0  2017-02-04
국어에서는 운문 산문이 중요하죠. ^^ 그러면 기본 개념을 살펴봅시다.   1.산문의 뜻:  운문(韻文)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                    즉 운문은 리듬감이 있는 (노래, 시, 창가)등이 있습니다. 좀 더 깊게 보면은 일기·서간 등의 일상적인 언어로 짜인 글을 이루어 산문 이라고 합니다.                    넓게 보자면, 모든 문서류, 일상 회화까지 포함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문학용어로서 '산문문학'을 가리킵니다. 근대의 소설·희곡·평론·수필 등의 분야로 운문에 비해 뒤늦은 중세 후기에야 확립되었는데요,                    오늘날에 와서는 운문이 주를 이루기 보다는 산문이 주를 이루며,                    이는 18세기 이후에 발전한 소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화기 부터[1900년대]) 운문이 주로 리듬을 반복한 것인데 반해,  산문은 서론·본론·결론 등의 구성방법에 따라 쓰여집니다.   그래서 운문을 '최적의 질서 속에 놓여 있는 최적의 단어의 모임'이라 하고,  산문을 '최적의 질서 속에 있는 단어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하죠. 즉 운문이 최소의 단어로써 최대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압축미를 생명으로 여긴다면, 산문은 일정한 의미의 표현과 지시의 힘에 의존한 명료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운문과 산문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산문에도 산문율이라는 리듬이 담겨져 있고, 운문에도 무운(無韻)이 있기 때문이죠. (산문율은 산문 속의 리듬감 즉 운문과 비슷한 리듬감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무운은 운문임에도 불구하고, 리듬감이 없는 것 입니다.) 만약 산문에 산문율이 없다면 자칫 딱딱하고 재미없는 문투가 되기 쉽습니다.  산문은 묘사문·서사문·설명문·논설문 등으로 나뉘며, 연설·설교·강의 등의 '말로 된 산문'을 산문의                   하나로 포함시키기도 한답니다. ^^   2. 산문을 쉽게 짓는 법: 일반적으로 산문을 쉽게 짓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소설가들도 힘들어하죠.                                   그래도 팁을 드리자면, 먼저 사물의 본질을 살펴보세요. 예를 들어 음식물 쓰레기는 다른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고 자신을 희생했다 라고요.                                   그리고 그것을 짧은 이야기로 쓰세요. 다음으로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을 독후감으로 써보세요. 자신의 생각을 펴보세요. 마지막으로 신문, 잡지 등을 읽고, 작가의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세요.   3. 산문을 영어로: prose, prose writings. 라고 흔히 표현을 합니다.....   이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Karistma  
169    시의 갈래 특성 재다시 복습하기 댓글:  조회:3362  추천:0  2017-02-04
특성에 따라서 분류.  사회나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으며, 국문학에서 여러 갈래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1) 형식에 따른 분류 자유시(自由詩) 산문정신의 발달로 나타나게 된 자유시는, 정형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적,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의 시로서 현대시의 대부분이 이 주류를 이룬다. 정형시(定型詩) 시의 형식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서 이루어진 시로서, 우리 나라의 향가 경기체가, 시조, 가사와 같이 운율이나 행과 연이 일정하게 배열된 것이다. 산문시(散文詩) 산문시는 행과 연의 구별이 없이 외형상 산문처럼 쓰여진 시로 시적(詩的)인 내용을 산문적(散文的) 형식으로 표현한 시로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운율이 존재하지 않는다.   (2) 내용에 따른 분류 서정시(抒情詩) 시인의 사상과 정서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표현한 시로서, 의미보다는 서정성을 중시하는 시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감정을 읊은 시로 주관성과 현재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한 시이다. 서사시(敍事詩) 한 사람의 화자가 등장하여 일정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시로 객관성과 설화성을 특성으로 한다. 따라서 서사시는 영웅의 이야기나 집단의 이야기 등의 객관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을 노래하는 것으로 서사적 요소인 배경, 인물, 사건을 통하여 갈등이나 긴장을 조성하고 그것을 극적으로 해결시키는 형식이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변동기에는 서사시가 발달하고 안정기에는 서정시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극시(劇詩) 연극적인 내용을 표현한 시로서 운문으로 표현된 희곡이라 할 수 있다. 극시는 극적인 내용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객관성을 지니지만, 시적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주관성을 지닌다. 서경시(敍景詩) 자연 현상의 아름다움이나 인간의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노래한 시이다. 서사시와 다른 점은, 서사시가 사건의 흐름 위에 전개하는 데 반하여, 서경시는 카메라로 어떤 장면을 촬영하여 보이듯이, 눈에 비치는 현상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노래한 것이다.   (3) 문예 사조에 따른 분류 낭만시 개성과 동경, 자유를 추구하는 낭만주의 사조를 바탕으로 한 시, 1920년대 초기 시들이 이에 속한다. 상징시 음악성과 상징성을 중시하는 시, 19C말 프랑스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에 의해 발생했으며, 우리 나라에의 유입은 1918년 김억이 태서문예신보를 통해서였다. 후에 폐허 동인들에 의해 쓰여졌고 주요한의 ‘불놀이’도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유미시 시의 자율성을 중시한 경향으로 시적인 미를 추구하여 쓴 시. 시문학파의 시를 포함한 순수시가 이에 속한다. 초현실주의 시 자유연상에 자동기술법으로 심층 심리를 표현한 시   (4) 목적성 여부에 따른 분류 목적시(目的詩)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로서, 시를 정치적 이념 전달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1920년대 프로문학의 시가 이경향을 추구했다. 순수시(純粹詩) 일체의 목적성을 배제하고 시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시로서, 유미주의 또는 예술 지상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1930년대의 시문학파의 시가 이 경향을 추구했다.   (5) 시적 경향에 따른 분류 주정시(主情詩)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시로서, 개인적인 정감과 주관적 정서가 중시된다. 주지시(主知詩) 엘리어트와 파운드에 의해 발전된 경향으로 낭만주의와 같이 격양된 어조가 아니라 제재(객관적 상관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지성으로 절제하려는 시사조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최재서가 이론을 소개하고 후반기 동인인 김수영과 박인환 등이 작품을 썼다. 김광균과 장만영은 이미지즘으로 썼다. 하얀마음뿌꾸
168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왼손잡이를 리해해주기... 댓글:  조회:2328  추천:0  2017-02-04
                     글쓰기 기초의 기초를 다져주는                           초등국어교과서 산문연구 /      논설문= 왼손잡이를 바르게 이해합시다/ □ 외워쓰기- ♧ 1. 아래 각 문장들을 지정한 시간 내에 외워서 쓰세요.. ♧ 2. 문단이 셋으로 나누어지도록 두 군데에 계단 표시를 하세요. ♧ 3. 각 문단의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여 봅시다.    * 각각 세 단어 이내로.                        왼손잡이를 바르게 이해합시다 많은 학자들은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쉽게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 60초 그리고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 60초 오히려 왼손잡이 어린이에게 왼손잡이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여 그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합니다.  --- 60초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꾼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보고는 거의 없습니다.  --- 50초 반면에, 오른손잡이로 살도록 강요받은 어린이는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말을 더듬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50초 또 어휘력이나 독해력 점수가 낮게 나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 50초 따라서,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는 것은 뇌의 구조나 발달을 무시하는 무모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40초 이제는 왼손잡이가 왼손을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 40초 그리하여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어우러져 사는, 아름답고 명랑한 열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40초 ♧ 4. 위의 글 전체를 한 문장으로 간추려 쓰세요. ♧ 5. 아래 각 단어들로 짧은글을 지어봅시다. 자부심(自負心) :  역설(力說) :  반면(反面) :  산만(散漫) :  무모(無謀) :  조성(造成) :  ☆ 명심 ☆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1분이나 50초도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 본디 글 ■                        왼손잡이를 바르게 이해합시다 많은 학자들은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쉽게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왼손잡이 어린이에게 왼손잡이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여 그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합니다.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꾼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보고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오른손잡이로 살도록 강요받은 어린이는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말을 더듬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어휘력이나 독해력 점수가 낮게 나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따라서,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는 것은 뇌의 구조나 발달을 무시하는 모모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는 왼손잡이가 왼손을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어우러져 사는, 아름답고 명랑한 열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67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시를 산문으로 고쳐쓰기 댓글:  조회:2514  추천:0  2017-02-04
초등생 글쓰기 / 시 감상 및 산문으로 고쳐쓰기  *** / 별해달 글쓰기 교실 ***/ 강사 : 전태수    오늘의 학습목표  : 산문과 시의 차이점을 알고 시를 감상할 수 있다. ♡ 제1차시 학습 내용 및 방법  1. 아래의 시들을 산문으로 고쳐 쓰면서 감상할 수 있습니까? 2. 선생님과 함께 의논하면서 산문으로 고쳐 씁시다. 【 보기 시 1 】                                 【 보기 시 2 】                                                                         가위 바의 보                                    내 가슴엔                                                  난, 난 울 엄마가                                친구야, 제일이라고                                     내 가슴엔 순이는 제 엄마가                               보고 싶은 얼굴이  제일이라고.                                     가득 채워져 있단다.                                                 난, 난 순이 엄마가                               난, 난 순이 엄마가                              친구야, 다음 간다고                                     내 가슴엔  순이는 울 엄마가                                다정한 눈동자가 다음 간다고                                     가득 담겨져 있단다.                                                  서로들 우기다가                                  가위, 바위, 보                                   친구야, 뉘 엄마가 제일 좋은가                           내 가슴엔 가위, 바위, 보.                                   정다운 목소리가 * 3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 126쪽에서             가득 고여 있단다.                                                 * 4학년 1학기 읽기 교과서 52쪽에서 ◆ 꼭 알아둘 일 시와 산문의 차이점 1. 시는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서 아주 간단한 말로 뜻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이루어집니다. 2. 줄인 말을 잘 씁니다. 3. 비유(빗대어 쓰는 말)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 직유법 : 직접 빗대어 쓰는 말(보기 : 쟁반 같이 둥근 달)    나. 은유법 : 모든 사물(사건이나 물체, 물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치고 은근슬쩍 빗대어 쓰는 말(보기 : 나무가 두 팔 벌려 기지개를 켠다) 4. 비약법 : 내용이 껑충 뛰어 건너갈 때가 많습니다. 5. 과장법 : 뻥튀기로 허풍을 떠는 말을 쓸 때가 있습니다.    * 초등학생은 이 정도만 알아두어도 넉넉함.    * 위의 두 편의 시 중에서 1번 시는 비유법이 전혀 쓰이지 않았고, 2번 시만 쓰였음. ♡ 제2차시 학습 내용 및 방법  1. 아래의 시를 산문으로 고쳐 쓰면서 감상할 수 있습니까? 2. 혼자 실력으로 산문(줄글)으로 고쳐 씁시다. 【 보기 시 3 】                                                                                  밭  노  래                                                      이 해 인                       1 밭은 해마다                                젖이 많은 엄마처럼                         아이들을 먹여 살립니다                     배추 무 상추 쑥갓 감자 호박 당근 오이                        수박 참외 토마토 옥수수                    아이들의 이름은 참 많기도 합니다                                                                 2                                          비 온 뒤 밭에 나가니                                땅 속을 몰래 빠져 나온 아기 홍당무가                              흙 묻은 얼굴로 웃고 있다가 나에게 들켜서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나 좀 씻겨 줘" 하길래 방으로 데리고 왔더니 내 책상 위에 앉아 날마다 밭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위의 시에서는 말이 끝났는데도 온점을 안 찍었음. 이처럼 시에서는 시인에 따라, 또는 그 시의 내용에 따라, 문장이 끝난 부분에 온점을 찍기도 하고 안 찍기도 함. ♡ 제3차시 학습 내용 및 방법  1. 4학년 2학기 읽기 교과서 공부 2. 이제까지 공부한 것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복습합니다. ♧ 과제  1. 집이나 학교, 또는 도서관의 동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동시 두 편을 베껴 씁니다. 2. 오늘 2차시에 공부한 것(동시를 산문으로 쓴 것)을 원고지 공책에 베껴 씁니다.     ♧ 준비 :  1. 독후감을 쓸 공용도서(지난번에 정해 준 역사이야기 책) 2. 4학년 읽기 교과서 ♧ 어머님들께 알림         자녀의 독서를 지도하실 때 참고하실 필요가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아니고, 자기 책이라면 읽은 부분 중에서 중요한 부분에 각종 표시를 적당히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 책의 앞표지 안쪽의 백지 부분(면지)에 그 책의 중요 부분이 있는 페이지를 기록해 두고 요점도 써 두면 나중에 독후감을 쓸 때 시간절약을 시켜 주는 좋은 자료 구실을 합니다.    다. 따라서 책을 보석처럼 아주 깨끗이 보관해 두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만화 그리기나 낙서 따위로 일부러 책을 더럽히는 것은 엄금해야지요. ♧ 명심 : 친구의 나쁜 점을 절대로 말하는 일이 없는 버릇을 길러 둔 어린이라야 장차 큰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166    "문학치료"로 삶의 질을 높일수 없다?... 있다!... 댓글:  조회:2484  추천:0  2017-02-04
 문학치료, 삶의 질을 높이다                                                                                                          김 종 길     문학치료, 우리의 현실   미국에서 의사로 인턴수련을 했던 마종기는 한 세미나(2004)에서 미국의료가 인문학을 도입한 지가 30년이 채 안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국내에는 최근 십 년간 전국의 의학 교육 시스템 내에 인문학 강의가 커리큘럼에 삽입되고 이 방면의 학문적 배경이나 참고 도서들이 다양화하고 있다. 보다 양질의 진료를 위하여 의학교육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심미적, 정서적, 공감이 호소력을 띤 문학적 구조에서 간접체험을 얻기 때문이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에서 순결한 눈먼 소녀 주인공은 매우 행복한 희망을 품고 산다. 그녀의 소망, 눈이 열리고는 세상을 마감한다. 귀만 열고 살던 시절에 세상은 희망과 열정으로 매우 뜨거웠다. 눈이 작동하자 열망에 찬 세상이 그녀에게 충격을 안긴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목사님이 아니라 그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기에 좌절을 한다. 냉정한 현실에 부딪혔을 때 생을 마감하는 전환에 독자는 충격을 받는다. 이제 소녀의 죽음은 우리의 현실로 바뀐다. 유명해진 연예인들이 왜 갑자기 자살하는가? 필자는 40년 세월을 이런 고민 속에 살아왔기에 심리적 부검이라는 시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시국의 흐름은 절대과제의 시점에 도달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아픈 이를 치유하는데 만능적 존재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예방조처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파우스트의 자살을 생각해 본다.   파우스트가 독배를 마시고 자살을 결행하려는데 음악이 들린다. ‘어린 시절에 귀에 익은 음조/다시 나를 삶 속으로 되돌려주는구나…….’   이 구절을 읽으면 자살의 예방이 간단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에게 어린 시절에 익숙한 음악 한 자락을 들려주면 되는 것이구나. 그런데 그것을 어찌 찾을까? 바로 이것, 열쇠를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음의 창고 구석진 곳, 어딘가에 해결책이 숨어 있는지를 본인 자신도 모른다. ‘모로 가도 서울에 가면’ 되는데 의사는 의사대로 문학인은 그대로 서로가 고유의 접근방식이 있다 보니 주장도 다르다. 정상에 이르는 등정의 길은 수없이 많다. 어쨌거나 정상에 이르도록 해야 하는 게 임상이다. 완벽한 치료의 날을 맥을 놓고 기다릴 수 없다.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지 치유에 도전해야 한다.     학술적 배경과 접근방식   현실적으로 정신분석가는 상담을 위하여 찾아오는 환자는 모두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도 동감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왜곡되거나 (무의식적인)거짓말을 하면서도 치료가 되어가는 것은 환자가 자신의 자존심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로 여과된 언어를 통하여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암호를 해독하여 해석해 주는 일이 치료자의 일이다. 그래서 문학치료는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신혼의 아내가 밤마다 늦게 취하여 귀가하는 남편의 귀가를 맞이하는 순간 혼절하면 그 증상의 암호는 ‘일찍 귀가하여 나를 챙겨주라’는 신호인데 남편은 병으로 인지한다. 응급실로 아내를 안고 달려간다. 의사가 암호해독을 해주지 않으면 점차로 환자는 병이 심해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바로 문학이라는 본질 또한 과장과 왜곡을 통하여 숨기기, 흥미 유발을 위한 이차 가공 등 기술적인 측면이 있기에 독자는 이것을 꿰뚫고 해독해야 한다. 이 점은 문학치료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독자와 통하지 않으면 읽히지 못하기에 그런 방안은 의도적 혹은 작가의 무의식적인 시도로 만들어진다. 손창섭의 단편, 「자화상」은 성장소설로 어린 시절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최초의 작품은 자전적이고 방어가 적기 때문에 특히 치료의 매개체로 유용할 수 있다. 모든 작품 중에서도 특히 초기 작품은 작가의 배경을 알아야만 심층적 이해가 가능한 이유이고, 때문에 환자로 하여금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이 독자의 삶에 통찰과 자가 치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를 읽거나 쓰기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성적 접근과 신화적, 마법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나 소설, 영화보다 정서를 표출하기에 훨씬 좋은 장르이다. 그래서 치료에 잘 이용된다. 시를 쓰는 것보다는 작품을 읽거나 감상하게 하고 대화를 통하여 감정을 순화하고 격려할 수도 있다. 시를 읽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분리불안이나 우울증 때문이 아니겠는가 묻고 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시는 비밀스런 영역이다. 리듬과 그림으로 펼치는 영혼의 영역이다. 그래서 시는 죽은 혼을 불러올 수 있고 고향과 어머니를 불러올 수도 있다. 병리학은 리듬에 장애가 오고, 이미지가 왜곡되는 것이며, 세계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이고 마음의 고향을 잃는 것이라면, 리듬을 회복하고, 언어가 맥락을 찾고, 이미지가 순수하게 그려지는 시는 분명 치유할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보자. 우울증 경우에는 류시화의 「새와 나무」를 읽게 한다.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 어떤 나뭇가지들 하나만 흔들린다 / 그것은 새가 /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 당신이 /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 …… /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불안/우울할 때는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를 읽게 한다. 사바세계의 ‘사바’란 견뎌내는 것이라고 알려주려면 “버드나무 실가지 빈 논길을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 동짓달 스무 날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라는 도종환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 좋겠다. 치료자가 읽어주거나 서로 읽어준다. 문장의 의미를, 상징성을 탐색한다. 칭찬 격려해 준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심리적으로 대리만족, 대리배설, 자기와의 화해, 세계와의 화해를 이루기 위한 힘을 얻을 수가 있다. 쓰기치료는 내담자가 자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의 내용을 바꾸어 가는 것(새로운 인식)이 곧 치료의 과정이다. 주체성의 확실성이 요구되는 정신증, 도착증, 연극성 장애(히스테리)에 유용하다.     문학치료, 힐링의 실제   독일 사람들은 18세기부터 우리의 마음을 광산에 비교하였다. 변학수가 「문학치료」서문에서 매우 적절한 비유로 설명한다.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다. 금광석과 혼합되면 아말감이 되고 이것에 열을 가하면 수은은 증발되고 금만 남는다. 문학치료는 문학이 인생에 대한 고난, 모순된 경험을 기술한다는 것에서 인간과 결정의 모양, 화학적 친화력, 원자의 크기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병적 소인과 문학은 서로 잘 어울린다. …… 살아가면서 수많은 변화를 체험하는 가운데 변화를 겪는다는 통찰을 하면 아픈 상처가 심미적 체험이 되는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문학치료의 원리이다.’   아말감은 수은과 주석의 혼합재인 부드러운 금속인데 다루기가 편리하여 오래전부터 치과에서 충치의 충전을 위하여 흔히 쓰인 재료이다. 독자들의 입 안에서 쉽게 한 두 개쯤 시커먼 충치의 땜질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흔한 금속이다. 나의 환자 중에 증상이 심한 정신증, 50세 여인이 글쓰기를 가르쳐달라고 졸라대고 있다. 수년 전에 그녀가 작문을 가져왔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준이었다.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가 불가한 정신증 상태인 그녀는 과연 글쓰기가 가능할까? 임상적인 판단으로 그녀의 글은 남에게 글이라고 할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쓰겠다고 계속한다면 나는 기꺼이 써오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와 소통하는 수단을 갖기 위해서다. 겉으로는 활발하게 적대적인 독설을 뱉어내지만 그녀는 아직도 피해의식의 성채 안에서 대화적 교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녀와 유사한 피해의식 속에서 사는 한 여인은 40대 중반으로 그녀는 글쓰기를 통하여 성공을 한 사례다. 그녀는 불과 이삼 년 전까지도 줄기차게 자살에 집착하였다. 정서적으로 냉담하였고 약이나 타가려는 피상적인 교류를 보였고 깊은 소통을 통제해 왔다. 그녀가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가 엉뚱했다. 돈이 모아지면 유럽투어를 하고 여행을 마치면 세느강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환상을 꿈꾸었다. 우연히 그녀가 시적 재능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 시를 써 보라고 권유하였다. 한 두 편의 자작시를 가져왔고 그녀는 몇 년간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였다. 시를 가져오면 내가 읽어준다. 그녀는 눈을 감고 듣게 한다. 작품의 동기와 무엇을 쓰고 싶어 했는지를 묻는다. 칭찬과 사랑에 배고픈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면역동을 이해할 수가 있다. 작품 수준이 점차 향상되자 등단작가인 시인에게 인도하여 개인적인 지도를 받게 하였지만 피해의식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의 시는 날로 세련되기 시작했다. 삶의 행적이 남다른 것이었기에 소재도 특이하였다. 작품 속에는 낮은 자존감, 노동을 하는 직업여성으로서의 열패감,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분노, 적개심이 농후하게 배어 있다. 성장기에 그녀를 짓밟은 오빠의 친구에 대한 양가적인 사랑과 분노를 품고 있다. 어쩌면 남이 자기를 우습게 볼 지도 모른다는 경계심, 그런 느낌이 내재된 적개심 덕분에 끈기와 오기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자력으로 등단하였다. 이제 작품집을 내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녀에게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나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행복’이라고 했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고 답했다. 이 짧은 답변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치료의 주체는?   흔히 생각하기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를 말하자면 의사는 붕대를 감고 스스로(혹은 자연)가 치유를 한다. 아픈 이를 내가 치료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누가 누구를 치료하는가? 물론 나는 아픈 이에게 약을 처방한다. 그것만으로 치료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온전한 답을 할 수 없다. 환자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그/그녀의 신체는 물론이지만 심리와 심령까지가 온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명백하다. 잠을 잘 자고 사회생활이 유지되도록 하면서 그녀의 정서가 안정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다. 그 외의 여타는 그녀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 만약 글쓰기가 그녀의 행복을 가져왔다면 그건 의사가 한 일이 아니다. 그녀가 그녀 자신을 치료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치유의 완결은 스스로에게 있다. 모든 종교는 물질적 소유의 개념을 벗어나서 정신적 가치관을 갖도록 가르친다. 정신의학과 의사는 인간은 동물적(본능적) 존재이면서 사회적 존재임을 뜻하는 다원적 치료를 제안한다. 인간은 신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지만 그 반대도 아니라는 개념이 가능하다. 신경증이나 정신증은 정상과 단절된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 정상-신경증-정신증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개념의 현상으로 보도록 요구한다. 병이 심할수록 정신증 환자는 유치한 사고를 하고 정서적으로 더욱 퇴행되어 있다. 환자는 실제로 매우 순수해서 순수함을 지키려다 병이 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술에 중독되거나 도박이나 성추행 등 병리적인 행위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고 사람이기에 또한 이해될 수가 있다. 그런 전제가 된 후에 문학도 치료의 힘을 가질 수가 있다. 사람은 언제든지 실수하는 동물이기에 사람에 대한 사랑, 그 존재에 대한 인정, 상대적인 존재, 치료자와 동등한 존재가 인정되어야만 문학치료의 철학이 가능해진다. 아픈 이는 스스로가 심리적 장벽을 허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치료자의 도움이 필요해지는데 그것이 바로 방어벽을 허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알콜중독자가 중독 상태에 있음을 인정하면 치료의 절반은 성공이다. 오래 전(1986) 필자가 미국의 알콜전문병원에서 연수하면서 관찰한 소견인데, 당시 한 달간 입원치료비가 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퇴원자의 약 절반만이 입원치료 후에 ‘중독자’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거 하나 얻는데 일금 천만 원이 들었다고? 그냥 인정하면 될 일이건만. 다시 말하면 ‘나 중독자 아니야.’ 라는 부정심리를 극복하는데 치르는 대가가 엄청나다. 미국의 한 정신과 병동에서 미술요법을 하고 있는 현장을 둘러본 일이 기억난다. 미술치료사가 무척 반기면서 ‘이 방에 의사선생님이 온 일은 처음이라.’며 좋아하던 모습이다. 전문가는 각자의 일에 바쁘니 의학과 문학이 퓨젼되는 일에 상호협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다 어려운 일은 문학치료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일인데, 심미적 이해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심리적 방어의 벽을 깨야 한다는 난제가 그것이다. 정신분석 치료가 수년씩 걸려도 어려워하는 난제가 바로 방어구조의 변화이다. 이 점에서 앞으로 문학치료는 희망을 주면서도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 광야에서 금을 캐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랴,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숙명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   문학과 치료   나 동 광     문학연구는 문학이 지닌 자기정체성을 담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문학이 어떤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 시대에 적합한 문학이 연구되지 않으면 문학은 위기에 직면하거나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과과정이 재편성될 만큼 학제 간 교류와 연계적 학문연구가 활성화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학 연구는 타학문과의 접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변동과 함께 문학 연구자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위기와 갈등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 중에서 심층심리학은 현대문학 연구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문학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병리학적, 정신-신체적, 정신-사회적 접근은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대두되기 시작한 인간 소외 현상과 현대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 구조를 해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의 대입만으로 인간의 내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은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치료적 접근이 간과되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심리치료나 예술치료와 연계된 문학치료Biblio/Poetry Therapy분야의 개척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변학수는 그의 책 서두에서 문학적 언어가 삶과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이나 타인을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가능한 정서를 나타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보고 있다. 어떤 특정한 상황이 전개되면 불청객처럼 다가오는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그런 기억의 편린들은 자아의 보호 하에 확실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또한 드라마 속에서는 행해지지 않았던 행위나 하고 싶었던 행위, 혹은 타인의 행위를 연기해 볼 수 있다. 시에서나 이야기, 드라마 속에서는 타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고, 다른 정서나 다른 이야기들을 추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다른 가능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절망적인 생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버전으로 정서와 이야기, 행위를 바꾸는 것이 곧 치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문학적 언어를 통하여 일생을 살고 그 문학적 언어가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학치료는 문학이 마음의 정화와 자아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창의력과 자발성, 삶의 의욕 고취에서 정신병동의 임상치료나 신경증 대처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게 영향을 미친다. 독자는 책을 읽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문학 속에서 우리가 위로와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문학은 치료적 기능을 지닌다. 문학치료는 수용적인 독서치료 영역, 정서적 글쓰기 영역, 역할과 행동을 표출하는 드라마 영역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서치료는 읽기를 통한 문학치료이다. 독서를 권장하고 독서 전후의 인식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독서치료이다. 문제 해결을 받고 싶은 참여자에게 과제로 부여된 독서를 통해 최초의 자기 인식이 전환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독서치료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으로 사서들이 해오던 제한된 영역이다. 시 치료Poetry Therapy는 독서치료와는 달리 쓰기를 통한 문학치료이다. 시는 인간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언어라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사용된다. 시적 글쓰기나 이야기 또는 드라마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은 먼저 기존의 시나 문학을 접하게 한 후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창의적인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이것을 웜업warmup이라고 하는데 배우가 연기나 대사 연습을 하고 성악가가 발성 연습을 하듯이 치료 참여자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준비단계를 말한다. 문학치료를 위해서 우리가 그림이나 음악도 웜업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주어진 문학은 좋은 웜업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정신분석과 분석치료에서 말하는 회상, 반복의 과정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문학은 문학치료의 텍스트로서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작품의 다양성은 다양한 문학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의 심리적 상처나 갈등 문제가 제각기 다른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문학 작품을 웜업이나 작업 텍스트로 활용하는 문학치료가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문학 작품에 즉각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작품 속에서 갈등이나 상처가 구조화될 수 있을 때 문학치료의 텍스트로서 기능할 수 있다. 치료에 적절하지 않은 텍스트를 선정할 경우, 그 작품은 무용지물이 되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시에 대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자에게, 시를 활용한 문학 치료는 역효과를 가져오며, 독서를 혐오하는 자에게 소설 읽기를 과제로 부여하는 독서 치료나 이야기 치료의 접근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넌센스 시가 정신분열증에는 좋으나 우울증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문학텍스트는 동류원칙 하에서 선정되거나 적용되어야 한다.         나동광|문학박사. 경성대 교수      
165    우리 고향 연변에서도 "시詩 항아리"가 류행되었으면?!... 댓글:  조회:3669  추천:0  2017-02-04
'詩항아리' 관리하는 정황수 시인 시청역 등 3곳 항아리 담당 "詩를 나누는 건 꽃씨 뿌리는 것…따뜻한 마음 피어났으면" 전직은 은행원 11년간 해외서 근무… 詩 쓰며 향수 달래기도 은퇴 후 시조 시인 등단 서울 지하철 시청역 3번 출구 지하도 한편에 '시(詩)항아리'가 있다. 어른 허리 높이만 한 항아리에 시 두루마리가 소복이 담겼다. 펼치면 손바닥만 하다. 사람들은 쓰레기통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시 한 편씩 품고 나온다. 시항아리가 마를 날이 없다. 시조 시인 정황수(69)씨가 꼬박꼬박 채워 넣어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와 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 지하도에 있는 시항아리 관리도 정씨 몫이다. 시항아리 청소도 한다. 2014년 7월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詩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 일환으로 3곳에 시항아리를 놓았을 때부터 정씨가 관리해 왔다. 이후 서울 지하철역 15곳에 시항아리가 추가로 생겼지만 정씨가 맡은 3곳을 빼고는 대부분 각 지하철역과 가까운 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원래는 제가 다니는 대한성공회에서 3곳의 시항아리를 맡기로 했는데 제가 자원했어요. 시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은 시를 많이 읽었으면 해서요. 성공회에선 1년 두루마리 제작 비용 120만원을 지원해요. 3개월에 두루마리 1만2000장을 만드는데, 시 선정부터 인쇄된 시를 둘둘 말아 고무줄 끼우는 일까지 제 몫이죠."   이미지 크게보기정황수 시조 시인은 서울 시청역 등 지하철역 3곳에 놓인 시항아리를 가꾼다. 정씨는 “출퇴근하는 서민들이 시 한 편씩 읽으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 박상훈 기자 정씨는 은행원이었다. 1969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상업은행에 입사해 2003년 퇴직했다. 어릴 적 꿈은 은행원도 시인도 아닌 농부였다. 태어난 곳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밑 작은 시골 마을. 안동 농림학교 원예과에 들어가서 꽃 기르고 농사짓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동네 형님이 돈 많이 벌려면 농사짓는 대신 대학 졸업해서 취직해야 한다고 해서" 서울로 유학 오게 됐다. 그는 상업은행에 입사해 대부분 국제금융부에서 일했다. 영국 런던, 미국 LA·시카고 등 11년 동안 해외에서 근무했다. 정씨는 "해외에서 주로 영어만 쓰다 보니 우리말에 더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서 틈틈이 시간 나면 시조 짓는 버릇이 생겼다"며 "시조 쓰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삭였다"고 했다. 정씨는 은행 퇴직 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 계간지 '문예운동' 겨울호에 '종심에 기대어'란 시조로 등단했다.   시항아리에 채우는 시는 90% 이상이 시조라고 한다. 정씨는 "시조는 정형시라 길이가 짧아 작은 용지에 인쇄하기 적합하다"며 "팍팍한 도시민의 삶을 위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 시항아리 일을 시작할 때는 속상한 일이 많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시항아리에 쓰레기 버리고 코 풀고 침 뱉고 낙서했기 때문"이다. "쓰레기통이 돼 버린 시항아리가 지긋지긋했는지 어느 날 역장이 말도 없이 치웠어요. 사정사정해서 다시 가져다 놓았죠. 한때는 매일 경기 김포 집에서 1시간 반 걸려 서울로 지하철 타고 와서 3곳을 돌아가며 지키고 틈나는 대로 청소했어요." 정씨는 지금도 항상 가방에 비닐봉지와 장갑, 물티슈를 가지고 다닌다. 그는 "시항아리를 깨끗하게 관리하다 보니 찾는 이가 점점 많아졌다"고 했다. 시항아리를 지키는 노숙자도 생겼다고 한다. 정씨는 "시항아리 관리하는 일은 사람들 마음에 꽃씨를 심는 일"이라며 "출퇴근하는 서민들이 시 한 편씩 읽으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 지하철역 가쁜 걸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여명을 지워갈 때 방점 무장 찍고 싶다/ 행간(行間)에 벙긋한 꽃잎. 북악을 물들일 날.' (꽃씨를 심다·정황수 作) /ⓒ 조선일보 /전현석 기자 김다훈 인턴기자 ==================== 지하철 역사에 마련된 자그마한 ‘詩항아리’가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들에게 시 한편의 여유를 전하고 있다. 시항아리 서비스다. 시민 누구나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두루마리 시를 토기 모양의 항아리에 담아 지하철 역내에 비치해 둔 것. 시항아리 서비스는 작년 서울시청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서비스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자, 올해부터 서울 지하철 광화문시청ㆍ을지로입구ㆍ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내에도 시항아리가 설치됐다.   ▲ 시항아리. //////////////////////////////////////////// 지하철 힐링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 풍경소리가 지하철 이용 시민에게 안정과 평안을 줄 ‘시(詩) 항아리’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풍경소리와 서울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4년 6월 3일 기념식을 열고 광화문역에 1호 ‘시 항아리’를 비치했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풍경소리 게시판에 실렸던 시를 ‘시 항아리’에 편지 형식으로 담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볼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풍경소리 등 주최 측은 향후, 서울도시철도공사 5.6.7.8호선에 시 항아리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보도= 이 석 호 기자 ========================================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덕수궁 방향 출구쪽에 큼지막한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다. 언제부터 놓여 있던 건지(주: 2014년), 휴지통 혹은 모래주머니 대용인가? 생각이 오가며 지나치려는 순간, 하얀 이름표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시 항아리’. 눈이 번쩍 뜨인다. 발길을 되돌려 속을 들여다 본다. 돌돌 말린 종이들이 색색 밴드로 묶여 가지런히 놓여있다. 제비뽑는 심정으로 그 중 하나를 골라 들고 펼쳐본다. ‘인연’이란 정황수 시인의 시다. “잘 나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난 그대의 사람이고 싶습니다.//운명적인 만남도 추억 쌓기도 없었지만/난 그대의 인연이고 싶습니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시다. 시항아리는 을지로입구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도 놓여있다. 그러고 보니 도처에 시가 있다. 광화문 문화아이콘 교보문고의 ‘광화문 글판’의 시는 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그 위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지난 20여년간 광화문을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시들, 이 가을엔 황인숙 시인의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가 걸렸다. “어느 날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하나, 둘 이파리를 떨군다.” 시는 말썽 많은 담뱃갑에도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생활의 촌평 같은 절묘한 시로 인기를 끌고 있는 SNS 시인, 하상욱의 위트 넘치는 시는 애연가들에겐 팍팍한 일상의 감성충전 역할을 톡톡히 할 만하다. “늘 고마운/당신인데//바보처럼/짜증내요”(’알람‘ 중), “평일:월화수목금/주말:토일”(’주말이 짧게 느껴지는 과학적 근거‘증)“알고/보면//다들/딱히”(‘불금’중)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를 소재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에는 시에 대한 명언이 흘러나온다.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지금은 시의 계절입니다. /이윤미 기자 =========================== 2013.12.09 22:10:25 한 시민이 9일 서울시청사 안에 있는 ‘시 항아리’에서 시가 적혀 있는 두루마리를 꺼내 읽어보고 있다. | 서울시 제공   서울시청사 로비에 언제부턴가 작은 항아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무릎 높이의 토기에 종이 두루마리가 반쯤 차 있었다. 두루마리를 폈다. ‘뒷모습이 어여쁜/사람이 참으로/아름다운 사람이다…’ 나태주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가 쓰여 있었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청사 내부 공간에 ‘시 항아리’를 설치했다고 9일 밝혔다. 시 항아리는 지난 2013년 10월 말 처음 설치됐다. 현재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신청사 서편 로비의 휴게공간, 서소문청사 동편 휴게공간, 서울도서관 등에 시범 운영하고 있다. 시 항아리는 ‘시의 도시 서울’ 만들기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각박한 도시생활 속에서 시 한 편을 통해 일상의 여유를 찾자는 취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생태도시로 유명한 브라질 쿠리치바를 방문했을 때, 도시 소외계층을 위해 시내 곳곳에 설치한 시립도서관 ‘지혜의 등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게 됐다.  서울과 관련되거나 읽기 쉬운 작품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우수문학도서’의 시집 작품과 서울시에서 사용권을 보유하고 있는 200여 작품을 활용하고 있다. 두루마리는 재생용지를 쓰고, 용기는 저렴한 토기를 사용했다.    서울시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500여개의 두루마리 시가 읽히고 있다. 서울시 문화예술과는 앞으로 청사와 서울도서관 등에 항아리를 늘릴 계획이다.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
164    2017년 <<신춘문예>>당선작 동시모음 댓글:  조회:2724  추천:0  2017-02-03
    [2017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집 속의 집                  김명희           -할머니   저기 천장에 거미집 있어요.   내가 걷을까요?       -놔둬라, 외딴 집에   거미집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할머니 집엔   개집, 닭집, 토끼집이 있잖아요.       -그려! 그려!   집 속에 집들이 아주 많은데,   모르고 살았구나.       -할머니 집은   절대 외딴 집이 아니라고요.   내가 큰소리로 말하자,       빙그레 웃는   할머니 얼굴에 걸려 있는   거미집 한 채.       [대전일보]   툭.툭.톡.톡.카.톡!!                          권 근                   집에 비가 내린다       툭. 툭.       톡. 톡.               푸른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장단 맞춰       툭. 툭.       톡. 톡.       아이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친다               투투투투       거세게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투. 툭.       카. 톡. 카. 톡.       카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ㅋ ㅋ ㅎ ㅎ       친구들 웃음소리 화면에 흐르지만       아이는       빈 집 푸른 지붕 위 내리는       톡. 톡. 톡.       빗소리만 듣는다               창을 열고 손 내밀어       떨어지는 빗물을 잡아본다       손을 타고 흐르는       따스한 비처럼       친구들 손을       아이는 잡고 싶다       툭. 툭. 카. 톡. 카. 톡.       빗소리에 묻히는 카.톡.소.리.          2017 조선일보[동시 당선작]       햇무리 아이들               신수진       뻥 뻥   하늘 머얼리 공이 달아나고   우르르르   아이들이 공을 쫓아 솟아오르면   한낮의 둥근 태양도 갈 길 잊고   공을 따라 뛰어간다       아이들 함성이   이리 콩 저리 콩   발끝에서 발끝으로 날아다닐 때   데굴데굴   온종일 흙강아지들은   축구공과 하나되어 바람을 만든다       밥 짓는 냄새가   둥실둥실   마을을 들어올리고   아이들의 빨개진 얼굴 너머   바쁜 해가 후다닥 뛰어갈 때   흰쌀밥 소복한 엄마 웃음       지구를 짊어진 듯 무거운 학원 가방   줄넘기도 과외받는 1등 아이   달빛 싣고 달리는 엄마 차에 이끌려   책에서 책으로만 굴러다녀도       까무잡잡한 햇무리 아이들은   시험지의 동그라미보다   더 큰 동그라미를   하늘 높이 햇무리에 그린다       [부산일보 당선작]   나무       문근영               땔감도 되고       팽이도 되고       빨랫방망이도 되고       대들보도 되고       배도 되고               썩은 후엔       거름이 되는 나무               그런 나무도       흑심을 품는구나               연필이 되기 위해서      [매일신문 신춘 당선 동시]      태양 셰프                 김동원       나는 우주에서 제일 어린 태양 셰프       황소별을 통째로 구워 메인 요리로 낼 거야       지구의 모든 어린 친구들 다 불러올려       달 위에서 콘서트를 열 거야       K팝 아이돌 형아들 초대해 힙합을 추게 하고       걸그룹 누나들 샛별과 댄스를 추게 할 거야       수천 대 인공위성은 녹여 피아노를 연주하게 하고       달빛 속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싸이 아저씨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출 거야       화성에겐 북극 오로라 빛을 섞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천 개쯤 만들어 오게 하고       물고기별과 고래별은 밤하늘 바닷속에 헤엄치게 할 거야       아! 그 새벽 만약 내가 오줌이 마려워       꿈만 깨지 않았다면,       나는 우주에서 제일 멋진 태양 셰프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서산마애불                    박경임       삼국시대부터   바위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부처님       아직도 나오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 뒤쪽은 못나왔는데   그래도 좋은지   웃고 있다                 출처 :글나라 
163    "시(詩)"를 보면 절(寺)에서 하는 말(言)이다... 댓글:  조회:3296  추천:0  2017-02-03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한자어로 `시(詩)`를 보면 절(寺)에서 하는 말(言)이다. 구도자인 스님의 언어로 이해 가능하다. 참선수양에 기초한 선종(禪宗)의 영향이 강한 한국 불교에서 본다면 불가(佛家)의 언어는 소략하리라. 수다스러운 스님을 생각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두 혹은 공안(公案)을 붙들고 맹렬하게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의 모습을 떠올리면 좋을 터. 진리의 요체는 간결함에 있고, `돈오돈수`를 깨달음의 방편(方便)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장황함은 문득 낯설다.   시의 본질은 간결함 속에 깊이와 다채로움의 함축에 있다. 예외적인 형식, 예컨대 산문시나 서사시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깊이 있는 성찰과 지성을 다채로운 언어 형식으로 간결하게 드러냄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시를 쓰는 고단함이 자리한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료교수 가운데 시인이 있으면, 나는 교수 대신 언제나 시인이란 호칭을 쓴다. 교수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시인들의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 주관성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주변적인 일상이나 사유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나 이육사, 한용운과 김남주, 박노해 시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시는 독자들과 멀어진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강제노역에 가깝다. 시가 어렵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은 본디 시를 읽지 않는다. 시집을 사지도 않고, 시인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현대 한국사회의 거칢은 여기서 발원한다.  언어는 인간사유의 창고이며, 소통의 기초적인 수단이자 실천의 기반이다. 언어로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정확하고 자유자재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뒤흔들게 되면 사회는 거칠고 황막해진다. 그래서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시를 읽고 느끼며 써보려고 하는 까닭은 거기 있다. 시를 읽고 음미하면서 정서와 인식을 함양하는 사람들의 사회는 따스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가능하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45자 내외의 시조(時調)나 일본 대중들이 즐겼다는 `하이쿠`는 오늘날까지도 적잖은 의미를 던진다. 단순한 형식과 단출한 내용을 담은 시조와 하이쿠에서 깊이 있는 성찰과 대면하는 일은 실로 유쾌한 일이다. 그런데 시조나 하이쿠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 수능시험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의 문제풀기 능력만 지참한 채 대학생이 되고, 그런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차고 넘쳐나는 대한민국.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봄바람 소리 이젠의 귓가에 말방울 소리.” 일본의 하이쿠 시인 히로세 이젠의 하이쿠다. 봄바람은 겨울바람이나 여름의 태풍처럼 거세지 않은 미풍(微風)이 주류다. 하여 그 바람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계절에 민감한 시인의 귀는 봄바람 소리에서 말방울 소리를 듣는다. 누구의 귀에도 들리는 `짤랑짤랑` 하는 명징한 소리로 들려오는 봄바람.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감촉의 시인 히로세 이젠의 절창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이 시의 본질과 풍류(風流)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던 걸음 멈추고 봄바람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물론 말방울 소리도 헤아려본 적이 없다. 자연과 무관하게 시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범벅된 도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감각한 세대. 문제는 그런 거칠고 둔탁한 서정의 변화와 발흥을 위해 기성세대가 해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먹고사는 게 급선문데, 시 나부랭이가 뭐 대수냐, 하는 인식에 갇혀있는 한국의 거친 기성세대.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사회적 인식은 고사하고 배고프고 등골 써늘한 직업인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노릇은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시인을 사랑하고 시를 읽어야 한다. 시에서 구원과 희망과 미래의 별빛을 독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여, 정유년의 밝히는 찬연한 횃불이 되기를! 정말 아름다운 세계시모음 (클릭해보기)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브라우닝) 평생의 사랑 (브라우닝) 인생 찬가 (롱펠로우) 꽃처럼 저 버린 사람 (바이런) 새빨간 장미 (버언즈) 연보라빛 클로버의 들을 (다우텐 다이) 이별 (포르) 피아노 (로렌스) 내나이 스믈 한 살 적에 (하우스만) 화살과 노래 (롱펠로우) 선물 (아폴리네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쉬나크) 당신은 내 인생 속으로 .... (예반)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 (에리히카스너) 이사(移居) (도잠(중국)) 송 별 (왕유(중국))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킴벌리커버거) 사랑의 노래(릴케) .Rainer Maria Rilke 릴케 가을(릴케) 바닷가 마지막집(릴케) 석상의 노래(릴케) 내눈을 감겨주십시요(릴케) 사랑속에서(릴케) 작별(릴케) 엄숙한 시간(릴케) 소년(릴케) 자장가(릴케) 삶의 호수(릴케) 사랑의 여인(릴케) 사랑에 빠진 여인(릴케) 방랑자(릴케) 마리아여(릴케) 거기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릴케) 고독(릴케) 저기 저 백합 꽃잎 속에(하이네) 아아 내가 (하이네) 그대는 꽃인양(하이네) 흐르는 내눈물은(하이네) 선언(하이네) 낙옆(구르몽) 눈(구르몽) 가을(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속에(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   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들길 지나서(헤르만 헷세) 편지(헤르만 헷세) 가을날(헤르만 헷세) 행복 안개속(헤르만 헷세) 무상 (헤르만 헷세) 봄(헤르만 헷세) 나그대를 사랑하기에 (헤르만 헷세) 생의 계단(헤르만 헷세) 흰구름(헤르만 헷세) 아우에게(헤르만 헷세) 이별 (괴테) 어느 소녀가 부른 (괴테) 강변에서 (괴테) 발견 (괴테) 첫 사랑 (괴테) 기억해주셔요(로제티) 나죽은뒤 (로제티) 생일(로제티) 메아리(로제티) 비오기 조금전(아이히) 산딸기숲(아이히) 저 산 너머 (붓세) 고요한 낙원 (붓세) 당신곁에 (타고르) 바닷가에 (타고르) 기도 (타고르) 당신이 나를 영원하게 하셨으니 (타고르) 무지개(워드워즈) 인적 멀리 그녀는 살았다(워드워즈) 수선화(워드워즈) 가지 않은길(프로스트) 눈오는 저녁 숲가에서(프로스트) 창가의 나무(프로스트)             가을 (아폴리네르) 가을 (흄) 가을날 (릴케)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감미롭고 조용한 사념 속에 (셰익스피어) 강설 (유종원) 거룩한 이여 (휠더들린) 검은 여인 (생고르) 경례 : 슈미트라난단 판트(타고르) 고향 (아이헨도르프) 고향 (휠더를린) 관저(시경)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랭보) 교감 - 상응 (보들레르) 굴뚝소제부 (브레이크) 귀거래사 (도연명) 귀안 (두보) 그리움 (실러) 기탄잘리 (타고르) 나그네여 보라 (오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 나무들 (킬머) 나이팅게일 (키츠) 낙엽 (구르몽) 낙엽송 (기타하라 하큐슈) 난 후 곤산에 이르러 (완채)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베를렌) 내게는 그 분이 (사포) 내 사랑 (로버트 번즈) 너는 울고 있었다 (바이런)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디킨스) 노래 (로제티) 노래의 날개 위에 (하이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던) 눈 (구르몽) 눈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니벨롱겐의 노래 달 (왕유)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브라우닝) 당신을 위해 (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동방의 등불 (타고르) 띠 (발레리)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얌) 로즈 에일머 (랜도) 로렐라이 (하이네) 마리아의 노래 (노발리스) 망여산 폭포 (이백) 먼옛날 (로버트 버즈) 모랫벌을 건너며 (테니슨) 무지개 (워즈워스) 미뇽 (괴테)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바다의 고요 (괴테) 바다의 산들 바람 (말라르메) 바닷가에서 (타고르) 바닷가에서 (고티에) 발견 (괴테) 밤의 꽃 (아이헨도르프) 밤의 찬가 (노발리스) 배 (지센) 백조 (말라르메) 벗을 보내며 (이백) 뻐꾸기에 부쳐 (워즈워스) 병거행 (두보) 병든 장미 (브레이크) 복숭아나무 봄 (도를레앙) 봄 (홉킨스) 부두 위 (흄) 붉디 붉은 장미 (번즈) 비잔티움의 향해 (예이츠 3년 후 (베를렌) 사랑의 비밀 (블레이크) 사랑의 철학 (셸리) 사자와 늑대와 여우 (라 퐁테느) 산비둘기 (콕토) 산중문답 (이백)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슈킨) 삼월 (워즈워스) 상응 - 교감 (보들레르) 새벽 (랭보) 새벽으로 만든 집 (모마데이) 서풍의 노래 (셸리) 석류들 (발레리) 석호리 (두보) 소네트76 (세익스피어) 송원이사안서 (왕유) 수선화 (워즈워스) 숲에 가리라 (하이네) 시 (네루다) 시법 (매클리시) 시에 불리한 시대 (브레히트) 신곡 (단테) 신비의 합창 (괴테) 실락원 (밀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사랑하며 (브리지즈) 아프리카 (디오프)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야간통행금지 (엘뤼아르) 에너벨리 (에드거A .포) 야청도의성 (양태사) 어느 인생의 사랑 (브라우닝) 어리지만 자연스러운 것(코울리지) 어린이의 기쁨 (블레이크) 어부 (굴원) 엘레느에게 보내는 소네트 (롱사르) 여인에게 보내는 목동의 노래(말로) 예언자 (푸슈킨) 예언자 (칼리 지브란) 오디세이 (호메로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월의 노래 (괴테) 오후의 때 (베르하렌) 올랭피오의 슬픔 (위고) 옷에게 바치는 송가 (네루다) 우리들이 헤어진 때 (바이런)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의 사랑못받어도 (셰익스피어) 울려라 힘찬 종이여 (테니슨) 원정 (타고르) 음악은 부드러운 음성이 꺼질 때 (셸리) 이니스프리호수의 섬 (에이츠) 이 밤에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네루다) 이별 (아흐마또바) 인간과 바다 (보들레르) 인정 (왕유) 일리아스 (호메로스) 잃어버린 술 (발레리) 자유 (엘뤼아르) 잠의 천사 (발레리) 적벽부 (소식) 종이배 (타고르) 지평선을 향하여 (아마두 샤물루) 지하철정거장에서 (파운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키츠) 출정가 (몽고민요) 켄터베리 이야기 (초서) 파도 속의 독백 (네루다) 풀벌레 평화 (홉킨스) 풍차 (베르하렌) 프로테우스 (괴테) 피아노 (로렌스) 하늘은 지붕 너머로 (베를렌) 하늘의 옷감 (예이츠) 헤어짐 (랜도) 헬렌에게 (바이런) 호수 (라마르틴) 호수 위에서 (괴테) 황무지 (엘리엇) 흐르는 내 눈물은 (하이네) 흰달 (베를렌) 흰 새들 (예이츠)  
162    쉽고 친근한 시어로 시심을 불러 일으키는 시를 써라... 댓글:  조회:2586  추천:0  2017-02-03
시창작 강의-15(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 소재)   김송배   * 안녕하십니까... 5.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시를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데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단편적이나마 답변의 실마리가 풀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5-1. 소재에 대하여 시의 소재란 작품에서 다루는 재료를 말합니다. 이 재료는 자연일 수도 있고 일상샐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뿐만 아니라, 시인의 감정 흐름과 변화 등의 내부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관계없이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주변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서 특히, 우리 인생이나 삶을 아름답게 한다든지, 아니면 어렵게 한다든지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절실한 것들이 언제나 시의 소재가 될 요소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C.D루이스가 ‘시인은 사물을 응시(凝視)함으로써 시적인 능력을 기른다’고 말하였듯이 우리에게 나타난 내외의 현상들을 관심있게 살펴보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시적인 능력’이 바로 ‘어떤 의미’를 두고 사물과 자신과의 사이에 새로운 질서나 관계가 성립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상상력(상상력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것입니다)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연쇄반응도 언제부터인가 사물을 응시한 기억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졸시 [담쟁이] 한 편을 읽어 보기로 합니다. 나는 지금 이쯤에서 망설여야 하리라 붉은 벽돌 틈새로 아직 여물지 못한 희망은  잠시 창문으로 흐르는 불빛으로 말려야 한다 구름처럼 떠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못내 아쉽게 되돌아 보는 행적이지만 용케도 기어오른 삶의 줄기가 현기증으로 나불댄다 뻗어나간 욕망만큼 무거운 사색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조심스러이 다시 기어올라야하는 창살에는 불이 꺼졌다 아아, 지금쯤에서 지혜를 예비하는 옷깃을 잠시 손질하고 태초의 씨앗으로 묻혔던 땅바닥을 돌아볼거나 그대 머리 위 내리는 한 줌 별빛만 줏으며 끝내 돌아보지 말아야 할 어지러운 벼랑 끝 아스라한 저 바람 소리. 비록 하찮은 ‘담쟁이’ 넝쿨이라도 응시함으로써 상상력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작은 돌멩이, 강물, 달빛, 산, 낙엽 등등 어떠한 대상으로도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살아가면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건들, 예를들면 6. 25전쟁이라든가, 4. 19 민주혁명, 3. 1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실연을 했다던가, 가족의 죽음이 있었다는 등등이 시적인 감동으로 연결될 때 이들은 모두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하듯이 시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내면적인 생활이 그만큼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다음 시간에는 주제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       독(毒)을 차고 ―김영랑(1903∼1950)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이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훑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얼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김영랑 시집’(범우)에 실린 시인 연보를 훑어보다가 ‘1926년 장녀 애로(愛露) 출생’에서 입 끝이 빙긋 올라갔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딸 이름을 정성껏 짓는다면, 요조하고 현숙한 여인을 기원하는 마음이나 인생의 심원한 뜻을 담던 시절에 ‘애로(사랑의 이슬)’라니! 세상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 그리고 사랑과 아름다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찬란한 감각이 엿보인다.      선생의 시는 ‘서구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전통적인 시형을 현대시 속에 끌어들여 전통적인 것과 현대 서구적인 것의 접목 작업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호남지방의 토착적인 언어를 탄력적으로 구사하여 언어예술로서 시의 참맛을 살려나간다’(평론가 김우종). 쉽고 친근한 시어로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오― 매 단풍 들것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 공감하고 애송하는 독자가 많을 테다.  ‘독을 차고’는 선생이 나긋나긋한 감성의 ‘초식남’이기만 한 게 아니라 강건한 뼈와 근육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짧은 인생 그냥저냥 살고지고, 하는 친구에게 설핏 경멸의 독기를 뿜으며 끝내 독을 차고 가련다는 이 기개! 의당한 독을 버리고서야 어찌 사람이겠는가. 이 슬픔의 독, 분노의 독을 차고 가리라! 이 시는 식민지 시대 말기의 반항의식을 나타낸다고 한다. 선생이 6·25전쟁을 무사히 넘기셨으면 이후 어떤 시를 쓰셨을까….
161    중국 혈통 미국 문학가 & 영국 문학사의 "세 자매 문학가" 댓글:  조회:2938  추천:0  2017-02-02
동양을 사랑햇던 Pearl Sydenstricker Buck (펄 벅) 1892년-1973년   중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서민들의 생활을 주로 그려 냈다.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펄 벅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로, 사회 인권운동가이자 아시아 지역 전문학자로도 활동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나라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동양인의 정신을 서구에 소개하는 한편, 아시아 각국을 방문하여 여성과 아이의 인권 보호를 위한 자선 사업을 펼쳤다. 중화민국이 출범하던 시기 혼란한 중국을 배경으로 빈농 왕룽 일가 3대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 《대지》 3부작으로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류 상호 간의 일체감을 일으켰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미국 여류 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펄 벅의 본명은 펄 시던스트라이커로, 1892년 6월 26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힐스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앤드류 시던스트라이커와 어머니 캐리는 남부 장로교 출신 선교사로,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휴가를 받아 미국에 돌아왔을 때 펄을 낳았다.   펄이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부부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펄은 18세 때부터 4년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것 외에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다.   펄은 어머니와 유모 왕씨의 손에서 자랐으며, 초등교육은 중국인 초등학교에서, 중고등교육은 미국인이 운영하는 미스 쥬웰스 학교에서 받았다.   이런 경험은 후일 그녀가 서구 사회에 동양의 모습을 진실하게 전달하면서 인종 간 이해를 도모하고, 비 서구권 지역 및 소수자들에 대한 자선 사업을 펴 나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녀의 유년 시절은 청조 말기에 해당하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때문에 그녀는 중국의 역사를 한 몸에 체험하며 자랐으며, 8세 때에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 베 이징에서 백인들이 살해당하고 있을 때 이웃들이 보호해 주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경험도 한다.   영어보다 중국어를 먼저 습득하고, 한학과 동양식 예절을 배우며 중국인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중국 아이가 아닌 이방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역시 자신이 미국인도 아님을 느끼고, 스스로를 영원한 국외자적 신세라고 여기게 된다.   대학교육을 미국에서 마쳐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18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랜돌프 매콘 여자 대학을 다녔으며, 졸업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25세 때 미국에서 온 농업경제학자 존 로싱 벅과 사랑에 빠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에 열중하고 가정은 어머니에게만 맡겼던 아버지에 대해 반발심이 있었는데, 남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딸 중 큰딸 캐럴이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을 앓았는데, 그녀가 캐럴을 고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는 동안, 남편은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를 겪으며, 내란과 일본군 침략 등으로 외국인이 살기에 위험한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1927년 국민군이 난징을 침략했을 때 백인이었던 그녀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이방인인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이런 고통과 혼란을 극복하고자 그녀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미국과 중국 어디에도 집이 없는,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문화적 이중 초점'은 그 녀 소설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그런 한편 펄 벅은 난징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미국의 〈포럼〉, 〈애틀랜틱 먼슬리〉, 〈네이션〉 지 등 여러 잡지에 중국 문화에 대한 논문들과 중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들을 발표했으며, 1926년 〈중국과 서양〉이라는 논문으로 롤러 메신저상을 받았다.   1930년, 펄 벅은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첫 소설 《동풍 서풍》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중국 빈농 왕룽의 삶을 다룬 대하소설 《대지》를 출간하면서 평론가들의 찬사는 물론,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다.   그해 《대지》는 21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3 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연이어 왕룽의 죽음 후 중국의 역사 변동에 따라 각기 지주, 상인,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는 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들들》,   왕룽의 손자 왕위안을 중심으로 혼란기 중국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는 중국 청년들의 모습을 조명한 《분열된 일가》를 펴내면서 대지 3부작을 완결지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혼돈의 시기를 사는 중국 민중의 삶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려 낸 이 대하드라마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펄 벅에게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안겼다.   1932년, 펄 벅은 코넬 대학의 초청으로 중국 문화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수호전》 영역, 《만인이 모두 형제》, 《대지의 어머니》, 《어머니의 초상》, 《싸우는 사도》 등 활발하게 집필 활동을 했다.   1935년에는 존 로싱 벅과 이혼한 후 《동풍 서풍》을 발행한 뉴욕 존 데이 출판사 사장 리처드 월시와 재혼했다.   1941년, 남편 리처드 월시와 함께 동서협회를 설립하고, 〈아시아〉 지를 발행하는 등 아시아와 미국의 비교 문화 연구 및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일본계 미국인들을 억류하자 이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미국 내 소수 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설가로 명성을 얻은 이후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주력해 활동한 분야는  장애 아동 복지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을 방문하여 정신장애나 신체장애, 인종 등으로 차별받는 아이들을 돕는 자선 사업을 하는 한편, 아시아인 장애 아동이 입양에서 차별을 받자 1950년 웰컴 하우스를 설립해 아시아인 및 혼혈인 고아들을 보살피고 미국 가정 내 아시아인 장애 아동 입양을 촉진하는 활동을 했다.   그녀 자신 역시 7명의 혼혈 및 아시아 아동을 입양했다. 그리고 자신의 큰딸 캐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자라지 않는 아이》를 출간하면서 미국 내에서 정신질환 문제를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 한편,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미국인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1964년에는 펄 벅 재단을 설립해 아시아 10개국에 아동 의료 및 교육 사업을 시행했다.   아동 인권뿐 아니라 미국 내 유색인종의 인권운동도 활발하게 했는데, 유색인종 권익 향상을 위한 전국 연합 NAACP의 일원으로 기고문을 작성하고 연설 활동을 했으며, 미국 내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에슬란다 로브슨과 대담한 《미국의 주장》을 펴냈다. 이런 활동으로 말미암아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던 1930년대 중반 이후 펄 벅은 FBI의 지속적 감시 대상이 되기도 했다.   펄 벅은 사회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왕성한 창작력을 자랑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펴냈는데, 소설과 수필, 평론, 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60종의 책을 출판했다. 후기 작품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서태후》, 《북경에서 온 편지》 등과 같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외에도 핵무기 사용을 비판한 《아침을 지배하라》, 구한말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김씨 일가의 삶을 다룬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등이 있다.   펄 벅은 미국 내에서 가장 낮게 평가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펄 벅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당시에도, 이를 두고 미국 비평가들은 그녀가 작품을 몇 편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미국 작가로 분류하기도 힘들다고 빈정거리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정도였다.   펄 벅은 미국인이 아시아를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당시, 서구 열강의 침략 속에 정치적, 역사적 격변기에 놓인 아시아 나라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작품을 통해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미국 내 유색인종과 장애인의 인권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중년 이후 《대지》를 넘어서는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면서 과대평가된 작가로 꼽히는 한편, 저돌적인 사회활동가로 인식되었다.   때문에 1950년대 이후부터 작가로서는 더욱 박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말년에는 두 번째 남편과 사별한 뒤 40살 연하의 춤 선생 테드 헤리스에게 빠져 애인의 재단 자본금 횡령을 묵인하는 등의 실수를 해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   1973년, 담낭염 수술 후 버몬트의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인 3월 6일 사망했으며, 199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학가로서 펄 벅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새롭게 평가를 받고 있다. //////////////////////////////// \\\\\\\\\\\\\\\ 문학사를 빛낸  Brontë Sisters(브론테  세 자매)    1840년대 문학가 집안에서 태어나 세 자매 모두 출중한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남겼다.   문학사에 한 집안 자매들이  모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예가 얼마나 될까? 아마 브론테 자매뿐이 아닐까 싶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는 각각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샬럿 브론테는 1816년 4월 21일에 태어났다. 6남매 중 셋째로, 위로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1818년 7월 30일에는 에밀리, 1820년 1월 17일에는 앤이 태어났다. 영국 요크셔의 손튼 출신으로,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공회 목사였다. 앤이 태어나던 해 가족은 아버지의 교구가 호어스로 바뀌어 그곳으로 이주했다.   샬럿이 5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녀들을 엄격하게 훈육했으며, 이모 엘리자베스 브란웰이 자매들을 돌봐주었다. 유년기를 보낸 이후   1824년, 샬럿과 에밀리는 랭커셔 지방 코완 브리지에 있는 클러지 여자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이미 언니인 마리아와 엘리자베스가 그곳에 있었고, 네 자매는 함께 생활했다. 사립 기숙학교였지만 시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고, 모두 그때의 기억을 극히 싫어했다.   특히 엄격한 교육 방침과 열악한 기숙사 환경을 끔찍이 싫어했던 샬럿은 이곳을 후에 《제인 에어》의 주인공 제인이 자란 로우드 기숙학교의 모델로 삼았다.   한편 이곳에서의 생활 때문에 자매는 평생 앓게 될 폐질환을 얻었다고도 한다.   실제로 1825년 5월에 큰언니 마리아가 11세의 나이로 폐병과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고, 남겨진 세 자매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6월에 둘째인 엘리자베스까지 사망한다.   그러나 폐질환은 가족 병력인 듯도 하다. 어머니 역시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으며, 마리아와 엘리자베스는 열 살이 되기 전에, 남동생도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샬럿, 에밀리, 앤 세 자매 역시 모두 폐질환으로 요절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자매들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고 틈틈이 글을 써서 잡지에 기고했다.   자매들은 소녀 시절부터 공상을 즐겼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세 자매들은 함께 작가의 꿈을 나누면서 글을 쓰고 서로에게 비평을 해 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1831년, 샬럿은 로헤드 사립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족을 떠난다. 이듬해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1835년에는 교사로서 로헤드로 떠났다.   이때 에밀리가 언니를 따라가서 로헤드에 입학했으나 3개월 만에 향수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말 앤이 로헤드 학교에 입학한다. 샬럿은 교사 생활 틈틈이 시를 썼으며, 시인 로버트 사우디 등에게 자신의 시를 보내기도 했으나 괜찮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리고 1840년부터는 에밀리와 호어스에 머물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42년, 샬럿은 에밀리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필요한 학력 자격을 갖추고자 브뤼셀의 에제 사립학교에 들어갔다. 에밀리는 이 시기에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었는데, 샬럿은 동생의 시를 본 후 그 재능을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시를 출판할 계획을 세웠다.   샬럿은 빅토리아 시대에 성차별을 받지 않고 공정한 평가를 받으려면 남성 작가로서 글을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샬럿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작품을 출간하고 좋은 비평을 얻기 위해 남성적인 필명을 사용하여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때문에 자매는 샬럿의 주장에 따라 초기에는 남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해 작품을 발표했는데, 각각 커러 벨, 앨리스 벨, 액튼 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846년 샬럿은 두 동생과 공동으로 시집 《커러, 앨리스, 액튼 벨 시집》을 출간했는데,  대부분은 에밀리가 쓴 시들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은 비평가들의 반응을 얻지 못했으며, 단 2부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샬럿의 소설 《제인 에어》는 그해 집필을 시작해 이듬해 10월에 출간되었는데, 역시 커러 벨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때 한 비평가는  '이 소설에는 남성적 박력이 넘친다'라고 극찬했는데, 이 작품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작가가 여성인 샬럿임이 밝혀지자 후일 익명으로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서평을 발표했다고 한다. 당시 여성 작가의 입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이다.   《제인 에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잃고, 냉혹한 숙모 아래서 그리고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힘들게 자란 제인 에어가 스스로의 삶과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이 있으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다. 또한 종래의 기준과 달리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일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라는 제인 에어의 말은, 빅토리아 시대 사회 분위기와 인습을 극복하고 스스로 삶을 일궈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대표한다.   이 작품은 새로운 여성상을 창출한 한편,  최초로 '정열'을 다룬 소설로 평가받았다. 출간 당시에도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오늘날에도 영국 로맨스 소설 및 사회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인 에어》가 발표되고 두 달 후 에밀리가 앨리스 벨이라는 필명으로 《폭풍의 언덕》을 발표했다. 에밀리는 서른의 나이에 요절하여 장편소설로는 이 한 작품만을 남겼다. 그러나 이 작품이 영문학 3대 비극, 세계 10대 소설의 반열에 오르면서 그녀의 이름은 영국 문학사에 길이 새겨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요크셔 지방의 고립된 황야에 자리한 농장 워더링 하이츠를 배경으로 인간의 애증을 낭만적이면서도 격렬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워더링 하이츠는 마치 세 자매가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을 연상케 하는데, 에밀리 역시 황량한 요크셔 농가에서 자매들과만 교류하고 상상으로 이야기를 지어 내며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폭풍의 언덕》은  발표 당시 거칠고 야만적이며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거칠고 극적인 감정들과 강렬함으로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완벽하게 융합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폭풍의 언덕》을 제외하고 에밀리가 남긴 글은 《커러, 앨리스, 액튼 벨 시집》에 실린 것이 전부인데, 이 작품들에는 신비주의적 성향과 자연에 대한 강렬한 묘사와 애정, 상징성이 풍부하다. 때문에 에밀리는 영국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에 비견되기도 한다.   《폭풍의 언덕》이 발표된 달에 막냇동생 앤은 액튼 벨이라는 필명으로 《아그네스 그레이》를 발표했으며, 이듬해 《와이드펠 홀의 소작인》을 펴냈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여성 가정교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중류층 여성의 삶을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오늘날에는 언니들의 작품에 비해 문학적으로 대단한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으나, 당시 사회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어 당대 여성 독자들의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샬럿은 소설을 계속 쓰면서 독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활발히 활동했다.   반면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의 실패로 평소 우울하고 은둔적인 성격이 더욱 심해졌고, 하 던 공부를 중단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칩거했다. 이후 에밀리는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1848년 12월 19일 30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동생인 앤 역시  폐결핵으로 이듬해인 1849년 5월 28일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언니인 샬럿이 가장 오래 살았으나 그녀 역시 마흔은 넘기지 못했다.   1854년 호어스에서 샬럿은 아버지 아래에서 목사보로 복무하던 아서 벨 니콜스와 결혼하여 그곳에 정착했으나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앓고 있던 폐질환 등이 악화되어 1855년 3월 31일 생을 마감했다.   《제인 에어》 이후에도 샬럿은 몇몇 작품을 썼으나 대표작인 《셜리》를 비롯해 사 후에 출간된 《교수》 등도 《제인 에어》에 비견할 만한 명성은 얻지 못했다.   브론테 세 자매의 극적인 삶은 수많은 전기와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자매들의 작품 역시 수차례 영화, 연극 등으로 재탄생되었다. 자매들이 살던 호어스의 목사관은 1968년 브론테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_ 청아출판사(이한이 글) 옮김  
160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댓글:  조회:2567  추천:0  2017-02-02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강인한  좀 심한 말을 하자면 요즘 우리 나라에 시인은 많지만 독자들이 읽어주는 시인의 작품은 드물다고 한다. 또 시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과연 오늘의 시는 소월이나 한하운의 시보다 어렵고, 그러므로 읽히지 않고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현대시의 이해 요령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현대시에 무심코 접근하고자 하는 젊은 독자들을 위하여 여기에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20 세기 최대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시의 요소를 네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해결되면 어느 정도 현대시에 접근하는 하나의 요령에 자연히 터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센스(sense)  흔히들 "그 친구, 센스가 제법이야." 하는 말을 곧잘 한다.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지적(知的)인 감각을 현대시의 한 요소로 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눈감은 것처럼 어두운 세상  …… 그래도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본다  꿈으로 우는 거리를 꿈꾼다  ― 정현종의 '꿈으로 우는 거리'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말. 그 말로 인해서 그 자신이 죽기도 하는 시대. 그것은 바로 자기도 모르게 허공을 날아가다 거미줄에 걸려 목숨을 잃은 작은 날벌레로 비유되고 있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서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두운 세상. 말(언어)과 거미줄의 유추라는 이 뛰어난 감각으로 후반의 약간 모호하고 처진 가락조차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시이다. 대체로 현대시는 범속한 상투적 표현을 멀리하고 참신한 감각을 즐겨 표현한다. 봄에 관한 글에서 아지랑이 운운, 한다든가 가을의 시에서 낙엽이 뒹구는 무상한 삶, 운운하는 따위는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상투적인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참신한 감각에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독자들의 이해력이 요청되는 까닭에 더러는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 사운드(sound)  시의 표현 재료는 언어다. 언어는 그러므로 단순한 사상 전달의 매개체가 아닌 음악성을 띤 언어라야 시어가 된다. 많은 현대시가 오로지 현대시라는 이유로 해서 음악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반성을 요한다고 본다. 언어의 음악성은 독자에게 예술적인 흥분과 쾌감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들이 이러한 음악성, 곧 운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형시나 동요의 가락과 같은 외형률보다 미묘한 내재율에 현대시의 묘미가 있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 김영랑의 '4행시'  다 아는 바와 같이 영랑의 시는 음악적인 점에서 가장 아름답다. 물론 위에서 보인 시는 7.5조라는 운율 자체가 이 시의 주된 리듬이기도 하지만 나는 영랑의 시에서 그보다는 섬세한 언어 감각을 취하고 싶다. 영랑의 시는 얼핏 보면 여성적이고 가냘파서 우수를 느끼게도 하지만 그 우수가 사실은 매우 밝고 화사한 편이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어들이 비음 ㄴ, ㅁ, ㅇ 이나 유음 ㄹ의 구사가 유려하기 때문이다. 비음이나 유음은 밝은 어감을 주는 것으로 ㄱ, ㄷ, ㅂ, ㅅ, ㅈ, ㅊ 등의 무성음 자음이 주는 어둡고 격한 어감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마음실,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 아즈랑이… 이러한 단어들은 입술에서 구르는 영롱한 방울 소리와 같은 음악성을 느끼기에 족한 것이다.  3. 이미지(image)  이미지란 심상(心象) 또는 영상(映像), 형상(形象)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말한다. 현대시는 곧 이미지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만큼 현대시에서 비중이 큰 요소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여 이 이미지를 함부로 남용하거나 혹사하면 시를 망칠 우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요리에 맛을 내는 양념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 현대시의 이미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이미지는 대체로 비유로써 형성되는데 이에는 직유와 은유가 대표적이다.  직유(simile)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앵두 같은 입술', '타는 듯한 눈빛'과 같은 비유를 말하며, 은유(metaphor)는 나타내고자 하는 본래의 뜻이 감춰진다는 데서 시가 함축적 의미를 띤다. 일반적으로 은유는 A는 B이다, B의 A, 또는 구체어+추상어 등으로써 나타난다.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파아란 슬픔이 내리는 거리', '눈물의 빵', '꽃은 한 떨기 거울' 등과 같이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이 결합되는 것인데 이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무턱대고 혼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하여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비밀 암호 같은 비유를 써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 서정주의 '화사(花蛇)'  미당 서정주의 초기를 대표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뱀이 되었을까.  이 시는 도입부터 충격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달변의 혓바닥 혹은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은 입술.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대단히 강렬한 원색적인 것이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환상적이며 음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시라 하겠다.  이미지 그 자체가 단순히 현대시라는 틀을 고수하기 위해서 쓰여진 시라면 그 시는 이미지 이상일 수 없다. 그런 시는 시가 아니라 이미지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현대시라고 해서 무조건 난해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4. 톤(tone)  어조(語調), 시인의 말하는 자세. 똑같은 세 끼 밥을 먹고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생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인들도 시인들 나름대로 인생을 보는 눈이 다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자세로 인생 또는 세계를 보는가, 어떠한 어조로 말하는가 하는 따위를 '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편의 시 속에서도 어조에 변화를 주어 표현하는 기교적인 시도를 때로 볼 수도 있다. 가령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엄숙한 어조로 말하다가 종반에 이르러 갑자기 톤을 바꾸어 익살스럽게 끝내는 베이소스(bathos) 혹은 안티 클라이맥스(anti climax)라는 방법이 그러한 것이다.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驛前)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 때 사방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김준태의 '콩알 하나'  이 시인의 작품 속에는 현대시에 으레 나타나는 이미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낡은 시인가? 그렇지 않다. 기교적인 이미지나참신한 감각이 구사되지 않은 데서 역설적으로 새로움을 찾을 수도 있다. 도시의 역전 광장 아스팔트에 떨어진 콩알 하나. 도회지의 아스팔트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거대한 폭력 앞에 떨어져 뒹구는 한 개의 콩알은 하나의 생명이며 진실한 인간이다. 그런데 이 콩알은 짓밟히며 잊혀지는 처참한 상황 속에 놓여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생명의 존재를 알아줄 사람을. 어쩌면 그는 우리가 떠나온 농촌의 쭈글쭈글한 주름 투성이의 시골 할머니인지도 모른다. 농촌과 도시, 혹은 현대의 비인간적 폭력과 인간적 각성의 대비를 이 시는 대단히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비정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밟히며 뒹구는 소중한 생명을 안고 가서 강 건너 밭이랑에 인간성의 씨앗을 심는다. 강 이쪽의 살벌한 곳을 떠난 강 건너 저쪽이란 의미도 퍽 상징적이다. 이 시는 참다운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이 지닌 생명에의 외경 내지 존엄성 인식이 세계를 바라보는 이 시의 톤이다. 한 편의 시가 꽃의 아름다움이나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우울한 비인간화의 시대에 있어서 꽃은 아름다움 이상의 하나의 생명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현대시의 네 가지 요소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을 고루 조화시킨 그러한 시를 우리는 훌륭한 시라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천년그리움이 흐르는 강
159    시의 첫줄은 신(神)이 주는것... 댓글:  조회:2571  추천:0  2017-02-02
  ㅇ 좋은 시를 쓰려면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서 써야 한다.  - 적어진 글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문맥의 흐름을 다듬는다.  - 우연한 기회에 스치는 영감을 메모해 두었다가  적당한 시어로 옷입히기를 한다.  -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다.  - 추상과 구상을 적당하게 배분한다.  - 직유보다는 은유에 치중해서 글을 쓴다.  - 일상화된 언어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든다.  - 독자의 몫을 배려한다.  - 이미지 중복을 피한다.  - 즉흥적으로 시 쓰기 연습을 한다.  ㅇ 수식어는 극약이다. 수식어를 비유법으로 정리함이 절대 필요하다.  ㅇ 감춤과 드러냄이 절묘하게 짜여져야 글이 산다.  사랑이라면 사랑의 내용은 드러내 적지만 사랑이란 말은  감추어야 한다.  ㅇ 글의 말미는 명사형이나 종결의미로 끝내라.  단정적, 확정적으로 끝내지 말라. 차라리 의문으로 끝내는 것이  더 효과를 가져온다.  ㅇ 호흡을 너무 길게 잡지 않도록 소리내어 읽어보고,  단락이 너무 길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때에는  2-3행 어딘가서 끊어 줘야한다. 가능하면 3행 정도에서  단락을 짓는 것이 호흡에 적당하다.  ㅇ 좋은 시행은 적시 적소에 종결의미와 명사형으로 막아줘야 한다.  ㅇ ㅂ으로 종결지으면 답답하고  ㄴ 으로 끝나면 차단하는 의미를  ㄹ 로 마무리되면 벗어나는 이미지를 준다.  ㅍ 으로 결론 나면 답답함이 앞선다.  ※ 참고로 이름은 차단없이 터져 나가도록 지어야 한다.  ㅇ 하늘 안의 붉은 얼굴 : 안의 ㄴ과 붉은의 ㄹㄱ에는  받침이 들어가 있어 읽기도 힘들고 리듬도 깨어진다.  ㅇ 글을 적을 때 비유를 앞세우지 말라. 글에서는  1차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1차적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2차적으로 비유법을  사용해 부연해야한다.  비유법이 첫머리에 나오면 재미가 없다.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ㅇ 주격  ...은 : 따로따로 느낌  ...이 : 곁에서 함께 하는, 연관성 있는 표현  !?,. : 표현에 해당  ※ 말은 아끼되 조사 사용은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ㅇ 시작, 전환, 상승, 결구로 시를 전개해 나간다.  ㅇ 단락의 종결의미를 모두 명사형으로 나열하면 변화의 맛이 없다.  ㅇ 글을 적을 때 사실묘사에 의존할 경우 혼자만의  감동, 작가만이 감동하는 글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즉 시적화자의 메시지가 없다.  ㅇ 한 단락 내에서 나열로 적어 나갈 때는 두 행이 이질적인  이미지를 주도록 적어나가야 이미지가 산다.  시쓰기 참고사항(2)  ㅇ 시 쓰기에서 정형에 너무 지우치면 깊이가 없고,  변화가 없어 단조로움을 준다.  ㅇ 어머니는 내용물을 토한 헝겊자루처럼 무너졌다 : 무너지는  의미로 적어야 하는데 너무 설명적이다.  가급적 처럼이라는 비유는 아껴야 한다.  ㅇ 벽이란 절망의 의미를 주기 때문에 제목으로서는  낱말사용이 합당하지 않다  ㅇ 시를 적을 때는 대상을 이미지로 감추었다 풀어주고  감추었다 풀어주고 그러면서 감추어 진 것을 다른 이미지로  나타내면 극적 이미지 효과를 줄수 있다.  이미지 개발, 동원이 약하면 좋은 시가 되지 못한다.  ㅇ 한자는 가급적 사용하지 마라, 막히는 듯한 의미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의 전개는 막힘이 없이 진행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ㅇ 구체적 시어가 많이 동원되면 단어의 맛이 어설퍼진다.  ㅇ 회색이란 단어는 가급적 시에서 피해야 한다.  의미만으로 볼 때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회색이라 한다.  ㅇ 시행, 호흡조절이 완벽할 때는 산문시로 자신 있게 적을 수 있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긴장감을 주어야 한다.  먼저 행 같이, 시를 적어 두고 산문시로 적어야 한다.  ㅇ 사물을 묘사할 때 너무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나타내 주면  독자에 대한 배려 결여로 글 맛이 없고 긴장감이 떨어진다.  ㅇ 가급적 작가자신, 즉 '나'는 글에서 감추어야 한다.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도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  ㅇ 낙엽과 사라지는 초라한 모습 : 낙엽은 마지막, 쓸쓸하고  초라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표현이다.  감추기를 해야한다. 낙엽의 이미지 묘사로  쓸쓸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ㅇ 시인은 정신병적인 아픔이 있어야 아픈 만큼 깊이 있는 글을  적을 수 있다.  ㅇ 글 적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글을 적게 된다. 이는 자기 독백에 불과하다.  자기속에 흩어져 있는 거품, 안개, 잡생각, 즉 쉽게 표현하면  경험, 추억 등을 쏟아내 멀리 버리고 참된 고민, 엉뚱한 상상,  낯선 사고를 글로 적을 때 진정한 글적기 시작이 될 수 있다.  내가 낯설면 독자도 낯설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ㅇ 시에 있어서는 주석도 시(詩)다. 각주는 본문에 얘기되고  있는 것에 대한 근거 밝히기로, 지방에 나오는 지명 등은  각주를 달 수 있다.  ㅇ 습작초기 :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적는다.  쓰는 순간에 나는 없고 그 상황에 맞게 충실히 적는다.  나라는 생각을 버려야 시간 산다.(김소월)  ㅇ 멀리보는 만큼이나 내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노력도  시 쓰기에 서는 필요하다.  즉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불안의 목소리도 글로 표현해 내야 한다.  ㅇ 시와 언어에 있어  - 언어에 경제성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언어의 질감이 생기면 중복을 이용해도 된다.  즉 나에게 어울리는 언어의 질감을 찾아야 한다.  - 꼭 수식어를 사용해야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상만으로도 리듬을 타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ㅇ 리듬  - 리듬은 반복이다.  - 시는 만들어지는 순간 죽는 것이다.  - 시는 뭉쳐졌다 사라진다.  - 시는 뼈가 없으면 무너지고 리듬이 없으면 맛이 없다.  ㅇ 모든 배설은 아래로 해야 자연스러운데 구토를 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무엇인가 낯설기 때문에 구토가 난다.(이승훈 교수)  - 반드시 건전한 사고가 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비합리적이면서도 합리성을 가질 때 시가 적혀진다.  ㅇ 시는 순수해야 한다는 관념을 버려야 발전할 수 있다.  자기 내면의 결벽증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ㅇ 읽기는 쓰기다. 좋은 글은 읽다 보면 멈춤이 생긴다.  ㅇ 시 쓰기는 부분을 회생시켜 전체를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점이 중요하다.  ㅇ 시는 상승시키고 독자들을 정신 없이 몰아 부쳐야 산다.  숨쉴 틈도 없이 긴장감을 주면서....  *** 시쓰기 참고사항 3편에 이어짐***  *출처 :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3)  ㅇ 익히 알고있는 사실, 진실 등 관념의 표현은 절대 금물,  다만 극적반전을 가할 때는 예외도 있다.  ㅇ 한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리듬을 깨게 하고  상상의 폭을 좁게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작가 50%, 독자 50%의 상상력이 합해 진정한 작품의 자리  메김을 할 수 있다.  ㅇ 시는 추상으로 적지말고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해서 적어나가야 한다.  ㅇ 고향을 어머니로 표현하는 것은 죽은 의미이다.  시로서 설명하지 말고 표현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ㅇ 시를 시(詩)처럼 적으면 시가 되지 않는다.  그 상황 그대로를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를 만나면  만남 그 상황을 묘사해야지 어머니, 모든 사람의 어머니를  추상적으로 나타내면 글이 살지 않는다 즉 어머니 전체를 보지말고  어느 한 부분만 나타내라.  ㅇ 닮게 표현하면 죽은 비유라 할 수 있다(이근배시인).  최근에는 다르게 나타내는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에서 처럼으로 묘사하지 말고  아름다움 자체를 비유로 나타내야 한다.  ㅇ 시 쓰기에 있어 상식을 뛰어넘는 시를 쉽게 쓰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사항을 더듬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풀어놓은 언어들이 조화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통일성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을 낳을  우려가 있다.  ㅇ 문학(文學)이란 사고(思考)의 천착(穿鑿)이다.  천착이란 구멍을 뚫는 다는 의미로 생각을 뚫어야 함을 의미한다.  ㅇ 무릇 모름지기 시인이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로  글을 적어서는 되지 않는다. 낯설게, 전혀 엉뚱하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지어야 한다.  ㅇ 처음 시 쓰기를 시작하면 대부분 설명적 나열을 많이 사용하는데  시는 과정이 아니고 순간의 느낌을 포착해서 새로운 시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ㅇ 제목에서 너무 분명한 얘기를 해 주면 본문 내용이  재미가 없어진다. 내용을 읽고 입맛을 다시며 제목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시쓰기 참고사항 4편에 이어집니다.  *출처 :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4)  ㅇ 짧은 글일수록 절정이 커야한다.  즉 선명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묘사해서 강한 인상을  주도록 해야 한다.  ㅇ 화자의 생각에 독자들이 동감하고 따라 올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세소리를 표현할 때는 독자가 만세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비유해서 나타내야 한다.  ㅇ 공인 즉 세상이 다 아는 사람에 대해서는 존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적는 것이 통례이다.  즉 선생이라 쓰지 않아도 결례가 되지 않으며 존칭을 사용하면  깔끔치 못한 인상을 준다.  ㅇ 친숙해 보이던 것이 낯설게 보일 때 시가 된다.(이승훈 교수)  ㅇ 창조에서는 광기가 사라지면 안된다.  광기 때문에 시는 쓰지만 지배당해서는 안된다.  ㅇ 시는 영혼, 정신을 노래해야 하는데 최근 한국에서는  몸에 대한 시를 많이 쓴다.  ㅇ 시는 아름답게 쓰려 하지 말라.(이승훈 교수)  ㅇ 문학은 병들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이 한다.  과정을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내면의 깊이 있는 바탕글을  찾아내기 어렵다.  ㅇ 시란 문법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ㅇ 웃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슬픔이 있을 수 있다.  ㅇ 촉각에서 후각으로 오려면 뭔가 깔아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ㅇ 추상은 가능한 구상, 구체화해서 이미지화 해야 한다.  *출처 :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5)  ㅇ 상상의 폭은 가감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ㅇ 시를 쓸 때 의미를 찾지 말라. 시란 존재하는 것이다.  ㅇ 시는 사물과 말걸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사물과 몸 바꾸기가 된다.  알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스스로에게 물어서 깨달아라.  ㅇ 선사는 깨우치면 그만이지만 시인은 깨우침을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  ㅇ 달은 여성, 잉태를  해는 남성을  바다는 여성, 모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관념화 된 기존 이미지를 타파, 뒤집는 것이 시 쓰기다.  예를 들면 "파도의 사내"  ㅇ 은유가 너무 많으면 어렵다. 은유대신 의인법, 직유로 풀어주고  정서, 느낌으로 올 수 있게 조여주고....  ㅇ 하늘과 강은 푸르다는 유사어로 해석된다.  ㅇ 제목을 정할 때는 가능하면 엉뚱하게 선택해 보자.  ㅇ 막연한 단어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즉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  예를 들면 표정이라 적기보다는 얼굴, 눈빛 등으로  구체화 시켜야 내용의 의미전달이 확실해 진다.  또한 생이나 삶 같은 단어 역시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어떤 삶 어떤 생인지.  ㅇ 시창작의 지름길은 따로 없다.  많이 적고 많이 읽고 많이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중견작가 신동엽 시인에게 한 고등학생이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지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열심히 읽고,  써보는 수밖에 없지"라고 말하시면서  "그 방법을 알게 되거던 내게도 가르쳐 다오"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임영조교수)  ㅇ 시는 감정으로 쓰지 말고 이성으로 써야 한다.  ㅇ 주석은 가능하면 간단하게 달아야 한다.  ㅇ 시를 적을 때는 일상적인 진술식 나열이 아닌 시어를 사용해서  긴장감을 주도록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  ㅇ 당당하게 나와 비교해서 나타내고 사실대로 느낌을 표현하고  상징으로 바꾸어서 써야 한다.  ㅇ 한자로 적어서 그 뜻을 보충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가급적  한자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생"은 생활,  탄생, 생명 등으로 다시 유추해서 생각해야 한다.  ㅇ 시는 갈길이 바쁘다. 그러므로 가급적 간단하게 축약해서  나타내야 하고 이미지를 사용 압축해서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으려면 전체를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코끼리 코만 잘 묘사해도 냉장고 속  코끼리를 나타낼 수 있다.  ㅇ 대화를 인용할 때는 누구와 누구의 대화인지 알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  ㅇ 시는 모두 창조물이어야 한다.  관념화된 비유는 죽은 비유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 시쓰기참고사항6편에 이어집니다.  *출처 :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6)  ㅇ 글을 읽다가 좋은 시어가 나오면 메모해 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고 비슷한 시어로 흉내내기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은 시어를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ㅇ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는  경험, 지식, 추억 등에 의존해서 적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 추억은 누구나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 글 적기를 할 때는 장황하게 나열 식 추억담을  적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유리잔에 담은 맥주 거품 같은  추억을 빨리 걷어내야 한다. 적어보고, 수정하고 또 적어보고...  열심히 적다보면 더 이상 적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고  그때부터 방황을 하게 된다. 더러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를 지나면 유리잔에 담긴 진짜 맥주처럼 주옥같은  맛난 글을 지을 수 있다.(선배 시인의 추억담)  ㅇ 시를 지을 때는 자기 굴레에서 벗어냐야 한다.  자기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실패하게 되는 데  가정주부는 가정을 소재로 한 글에서,  선생님은 학교의 굴레에서, 간호사는 병원에서...  벗어난 낯선 글 쓰기를 해야 발전이 있다.  물론 어느 수준에 오르게 되면 자연적 다시 자기 굴레로  들어가 전문적인 시 쓰기, 즉 남들이 흉내도 못내는  참 좋은 글을 적을 수 있게 된다.  ㅇ 시 속에 인물을 등장시키려면 구체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ㅇ 글의 말미(마지막행)는 설명이 아닌 치고 올라가는 기법을  사용해야 글이 살고 맛이 난다.  ㅇ 시의 첫줄은 전체를 이끌어 가는 생명이다.  따라서 첫줄을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가야한다.  단어 하나가 시 전체를 살릴 수도, 오염시켜 버릴 수도 있다.  ㅇ 시를 아름다운 말로만 나타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한 자, 한 단어, 한 줄에 의미를 부여하여 신중하게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ㅇ 제목을 지어놓고 스스로 점수를 매겨 볼 필요가 있다.  포장마차 하나라도 함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시의 세계도 넓게 보면 상업경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집이 발간되어 서점에 나가면 독자들은 제목으로  책을 선택하고, 선택된 책도 펼쳤을 때 마음에 드는  제목이 있어야 읽어보게 된다.  한달에 출간되는 시집들이 100여권이나 된다니...  ㅇ 제목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지명이나 고유명사가 아니라면  단순하게 명사형으로 적지말고 설명적으로 적어야 재미가 있고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주게 된다.  ㅇ 가상체험을 소재로 한 글보다는 직접 체험에 의한  글을 적어야 한다.  가상으로 적은 글은 직접 체험한 독자를 설득시킬 수 없으며  내용 또한 허구, 추상에 가깝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소문이나 들은 얘기를 유추나 추상해서 쓰지 마라.  자칫 잘못하면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ㅇ 햇볕은 열도(熱度)를, 햇빛은 광도(光度)를 나타낸다.  바꾸어 적게 되면 문맥의 흐름이 막히게 된다.  ㅇ 글 내용 전개에 있어 강조, 감추기 등을 위해 순리에 맞지 않은  흐름으로 적을 때는 반드시 이유, 상황이 이해 되도록 풀어서  적어줘야 한다.  이 경우는 어렵게 적는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  시쓰기 참고사항 7로 연결 됩니다.  *출처: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7)  ㅇ 새로운 시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막무가내로 짜집기 식으로 말  만들기를 하지 마라.  ㅇ 글은 우연히 적어진다.  하지만 결코 쉽게 적어지지는 않는다.  쉽지 않고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어려운 맛에 사람들은  글쓰기를 한다.  맛과 묘미가 어려움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적어지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계단이 없어지거나 거꾸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거나  뭔가 갑자기 낯선 경우가 일어난다.  그 때 그 낯선상태를 시어를 이용해 나타내야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면 교직에 계시는 분의 경우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사랑스럽고 예쁘고 가르침에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이 경우는 절대 시를 적을 수 없다.  그 기분 그대로를 글로 나타내는 것은 누구나 다 가능하다.  다만 시인이라면 낯설게 봐야한다.  즉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우연히 바라보니  내 자신이 학생들 틈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던지...  ㅇ 글을 지어 나갈 때 시대상황을 알 수 있게 구체화  시켜 주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인터넷이란 낱말을 사용한다면 최근임을 알 수 있다.  ㅇ 사물에도 계절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접동새, 즉 두견새는 봄을 나타내며  진달래와 어울리는 이미지화 되어 있다.  계절을 나타내려면 그 계절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것을  찾아서 나타내야 한다.  ㅇ 글을 쓸 때는 나만 천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알 고 있는 것은 독자도 알 수 있다.  또한 설명으로 묘사해 주지 말아야 한다.  ㅇ 자목련은 잎과 함께 피어나고 백목련은 꽃이 먼저 피어난다.  철쭉과 진달래도 같다.  하지만 무릇 시를 쓰기 위해서는 백목련에서 한복입은 여인을,  자목련에서는 드레스 입은 신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ㅇ 시를 지을 때는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지 마라.  이미지화에 주력하라.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이미지화가  더 높은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묘사에 치중해서 글을 쓰도록 하라.  이미지가 좋으면 독자가 따라온다.  ㅇ 경쾌한 선율.. 이와같은 표현은 죽은 이미지다.  즉 시인이 아닌 일반인도 이런 말을  일상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ㅇ 사물을 묘사 할 때는 입체적으로 풀어 나가라.  그래야 독자가 호기심을 갖고 따라 들어온다.  예를 들면 봄은 고양이를 사색하게 한다라고  표현하면 금새 독자들이 식상해 한다. 해서 차라리  고양이 눈속에서 봄이 온다 라던지 봄은 고양이 눈  속으로 들어 간다라던지 입체적으로 나타내는 편히 훨씬 더  글 맛이 좋다.  ㅇ 사물의 형태보다는 행동을 묘사해야 한다.  예를 들면(산수유 피고 매화가 향긋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산수유가 어떻게 피고 매화향기는 어떤 짓을  하다는 그 행동을 이미지화 해야 한다.  **********  시쓰기 참고사항 8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목비향님 홈  시쓰기 참고사항(8) - 목비향님 홈에서 옮김  ㅇ 좋은 시쓰기 비법  - 시의 첫 줄은 신이 준다.  - 바늘 가는데 실이 가게 적지 말라.  시는 바늘 가는데 뱀이 와야 한다.  즉 붙어 다니는 말을 버리고 장난을 쳐야 한다.  -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어라.  - 꼬리가 길면 밟힌다.  ㅇ 섣불리 아는 지식은 시에 인용하지 말라.  사전을 찾고, 직접가서 보고...  어려운 한문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특히 제목을 한문으로 사용하려면 정확해야 한다.  보충 설명이 없도록...  ㅇ 시 쓰기는 연설문처럼 적어서는 안된다  또한 사실을 사실대로 적지 않는 것도 좋은 글을 얻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을 산사람 같이 나타내면 글 맛이 훨씬 좋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전개가 동반되어야 한다.  ㅇ 축시는 절대 과거형으로 풀어 나가지 마라.  미래형을 택해야 새로운 글, 살아 있는 글이 된다.  ㅇ 같은 말을 자꾸 다르게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대상에 자꾸 다른 이미지를 대입시켜 나가면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타나게 된다.  **********  제가 글을 보고 의견을 제시 한 부분이나  다른 분들이 의견을 제시 한 부분을 메모해 둔 곳입니다.  용어 사용 등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ㅇ 미련한 손놀림 : 미련한 상태를 묘사한 설명으로 피해야 할 기법  ㅇ 꿈이 잠긴 마을 : 꿈이란 말이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어떤 꿈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다  ㅇ 못해서 : 자동사,  않 는 : 타동사  ㅇ 평화, 슬픔, 행복 : 구체화 시켜야 할 단어들이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시어를 나열하면 야무진 시맛이 나지 않는다.  글이란 감탄, 독자가 맞아! 하고 무릎을 치는 소리가 들리도록  적어야 하며 가슴으로 듣도록 써야한다.  ㅇ 한에 떨었다 : 한은 한자이므로 가능하면 한자를 사용하지 말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써내야 한다.  ㅇ 그리움, 서러움, 사랑.. : 이런 추상적인 말은 자제해야 시가  감칠맛 나고 살아난다.  ㅇ 불씨, 씨앗 : 어떤 불씨인지, 어떤 씨앗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ㅇ 제목 : 꿈이 잠긴 마을  → 제목에 뒷 내용이 미리 알 수 있게 정하는 것은 무게없는 글이  되므로 가급적 피해야 한다.  ㅇ 물안개 수놓다 : 어떻게 수놓았는지 구체화가 필요하다.  ㅇ 이명의 아픔, 칠흑의 밤, 봄의 소리, 새의 날개  명사 뒤에 의는 구태의연한 표현, 설명적 표현으로 버려야 한다.  ㅇ 오래된 흔적 : 흔적이 어떤 흔적인지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ㅇ 환장하게 미쳐 가는 : 환장과 미쳐는 중복, 같은 의미로 피해야 한다  - 빨간 피, 앉전뱅이 채송화, 따사로운 볕, 먼 태고적, 더 넓은  창공, 불평속 투정, 목이타는 갈증, 획획 요동을, 별빛이 반짝,  보글보글 끓는.....  ㅇ 행복이 시간을 자꾸만 먹는다 : 행복, 시간은 둘 다 추상이다.  ㅇ 강물에서, 강가에서 : 전자는 물 속이고 후자는 물 밖을 나타낸다.  ㅇ 한 낮의 풀벌레 : 풀벌레가 어떤 벌레인지, 어떻게 우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나타내야 한다.  ㅇ 굶주린 들개 떼처럼 : 상투적이고 너무 쉬운 표현이다.  처럼의 비유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ㅇ 어느새, 어느 듯 : 신문에서 사용하는 표현들, 시에서는  절대 금해야 할 표현들이다.  ㅇ 뭉클한 내리사랑 : 내리사랑이 무슨 사랑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ㅇ 재빨리 낙엽 속으로 숨는 다람쥐 : 재빨리는 동작을 나타낸 설명  ㅇ 까치는 두 발 딛고 서서 : 너무 당연한 사실, 까치는 두발이다.  ㅇ 몇 년의 기다림을 깨고 난 매미 : 시에서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매미가 몇 년만에 깨어나는가?  7년 혹은 8년으로 정확하게 적어야 한다.  ㅇ 거리의 악사는 노래를 부른다 : 실제 거리의 악사가 있는지,  현재 적합한 표현인지를 미리 감안, 계산하고 글을 풀어 나가야 한다  ㅇ 뼈를 분지르는 소리 : 분지르다는 내가 분지르는 것이고  부르지다는 부르짐을 당하는 의미다  ㅇ 기쁘게 : 시에는 자제하는 표현이다. 기쁜 자체,  즉 어떻게 얼마만큼 기쁜지를 이미지로 나타내야 한다.  ㅇ 내사랑의 시를 : 나의 어떤 사랑인지 구체적으로 적데,  사랑이란 말없이 풀어 나가야 한다.  ㅇ 소낙비....늦가을 : 소낙비와 늦가을은 계절적으로 맞지 않는다.  ㅇ 비가 와서 쓸쓸하다 :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낮인지, 저녁인지, 무교동인지, 덕수궁인지...  화자가 구체적인 사람이면 구체적인 시가 나오게된다.  ㅇ 먼 태고적, 더 넓은 창공 : 멀다와 태고적, 넓다와 창공은 같은  의미. 중복으로 봐야한다.  ㅇ 청맥 보리알에서 청맥은 푸른 보리라 볼 수 있다.  무녀로 신내림 받고 싶어에서 신내림 받으면 무녀가 되기  때문에 무녀가 되고 싶어나 신내림 받고 싶어로 해야한다.      출처 :천년그리움이 흐르는 강
시창작 강의-14(시를 쓰기 위한 준비 : 언어)   김송배    시창작 강의- 이번 주는 개인 사정에 의해서 좀 늦었네요. 항변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군요. 자, 오늘은 언어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4. 언어에 대하여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시는 아무리 좋은 발상과 동기와 주제가 명징하다 할지라도 표현할 수 잇는 언어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이는 시에서 언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기보다는 시의 모든 문제가 언어 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언어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도 시인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시는 일반적인 논리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무도 맛보지 못한 체험이나 일상적인 의식 그 밑에 깔려 있는감정 세계를 표현하자면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적인 언어 몇 마디로는 아무래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시인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총동원하여 깊이 이해하고 발휘시키면서 비로소 훌륭한 한 편의 시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의 내용이 알차고 여러 형태로 승화되었다 하더라도 언어의 기능이 모자란다면 시로서의 형상화는 부족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나라 시인들 중에서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은 정지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사실을 되풀이하여 강조한 시인은 김기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구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일상어가 시의 언어도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시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그 때 그 시대의 일상어가 시의 언어로 등장하는 경향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w. wordworth)는 일상어로 시쓰기를 주장했고 1930년대 김기림도 일상어로 시쓰기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어가 그대로 시의 언어로 될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책상을 만드는데 그 재료(소재)는 목재이지만 그 목재가 그대로 책상이 될 수 없다는 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재를 자르고 대패로 밀고 다듬어서 서로 짜 맞추어야 설계대로의 형태 구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일상어가 시의 언어로 되기까지는 깎고 다듬어야 비로소 시의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을 읽어 봅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렇습니다. 언어는 우리에게 존재를 보여주는 등불입니다. 존재의 영역은 존재가 언어를 통해서 나타나는 범위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성냥을 켯을 때 성냥불이 비춰주는 그 범위만 환하게 눈에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암흑(또는 無) 속에 나타난 존재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언어가 적재적소에 놓여져야 시의 언어로서 빛을 내뿜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의 언어는 또한 일상생활에서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논리적 기능보다는 정서적 기능을 중시하는데 꽃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추함과의 知的으로 판별하는 이외의 언어가 갖는 음향(음질, 음량, 템포. 강약, 고저, 억양 등), 즉 음악적인 미묘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신비하고도 오묘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의 언어는 시에다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 언어를 에워싸고 있는 일상생활의 구어(口語), 그것이 시에 사용되는 언어인데 그것들을 한 단어씩 떼어내면 아무 색채도 없는 평범한 단어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가 어떻게 하면 시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언어의 조합에 의한다. 둘째, 그 조합 자체가 시인의 사물에 대한 인식, 시정신 그 발상에 의해서 정해진다. 시인은 단순한 현실의 상황을 그대로 말하며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을 기본으로 하여 어떤 창조상의 세계를 작품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낮설게 하기'라고....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 이미지를 나타내는 언어, 그것들을 구사하고 서로 섞여져서 엉컬어지고 조합하면서 시인의 감동과 사유를 표현시키기 마련인데 이것들을 더욱 깊이 형용하거나 비유, 알레고리(풍유) 등의 방법으로 복잡한 내용을 단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잘 알다싶이 일상어는 여러 가지 개념과 통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는 형용은 아름답다는 말 그대로 한 번의 개념을 줄뿐이지만 시인은 이 때묻은 표현을 깨뜨리고 자기가 느낀 아름다움의 본질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의 언어는 다양해서 부드러운 언어의 연결로 복잡한 내용을 나타낼 수도 있으며 또는 난해하게 생각되는 언어의 조합이 아니고는 시인의 이미지를 나타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시의 언어는 시인이 마주한 진실에 대하여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엄격한 시정신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쓰기에 사용되는 특별한 단어나 語句를 詩語(poetic diction)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바다'를 가리켜서 '고래의 길'이라고 하는 식의 표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난 시어는 그것이 명쾌한 것인 동시에 천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발레리도 아주 아름다운 문장에서는 구절이 떠올라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심정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으며 물체도 정신화되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는 어떤 틀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말이 변화하듯이 시어도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사용하여 낡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말을 死語(obsolete word)라고도 합니다. 현대 시인들은 대부분이 일상어를 간추려서 사용하고 있어서 엄격하게 말하면 시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시학에서는 시어라는 개념보다는 비유를 시적인 표현의 본질로 생각하고 언어의 조탁(彫琢)에 보다 힘써야 할 것입니다. 시어는 없고 시의 언어만 있을 뿐입니다. 다음 중견 여성시인 구순희의 을 읽어보면 언어의 정제를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밤에는 무논의 개구리 지천으로 깔려 울고 달빛 아래 물안개 전설같이 피어올라 자정에도 오히려 대낮인 열 여섯 풋가슴 혼자 뜰을 거닐던 달도 개구리들의 합창에 잠길 때 몇 번을 닦아도 닳지 않을 이름 하나 몰래 키우네. 이렇게 절제되고 함축된 언어(일상적인 언어)로 간결하게 '봄밤'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또... ============================================================================     늦여름 오후에 -홍신선(1944~ ) 오랜만에 장마전선 물러나고 작달비들 멎고 늦여름 말매미 몇이 막 제재소 전기톱날로 둥근 오후 몇 토막을 켜 나간다 마침 몸피 큰 회화나무들 선들바람 편에나 실려 보낼 것인지     제 생각의 속잎들 피워서는 고만고만한 고리짝처럼 묶는 집 밖 남새밭에 나와 나는 보았다, 방동사니풀과 전에 보지 못한 유출된 토사 사이로 새롭게 터져 흐르는 건수(乾水) 투명한 도랑줄기를. 지난 한 세기의 담론들과 이데올로기 잔재들을 폭파하듯 쓸어 묻고는 천지팔황 망망하게 그러나 자유롭게 집중된 힘으로 넘쳐흐르는 마음 위 깊이 팬 생각 한 줄기 같은 물길이여 그렇게 반생애 살고도 앎의 높낮은 뭇 담장들 뜯어치우고는 범람해 흐르는 개굴창 하나를 새로 마련치 못했으니 다만 느리게 팔월을 흐르는 나여 꼴깍꼴깍 먹은 물 토악질한 닭의장풀꽃이 냄새 기막힌 비누칠로 옥빛 알몸 내놓고 목물 끼얹는 이 풍경의 먼 뒤꼍에는     두께 얇은 통판들로 초저녁 그늘 툭툭 쌓이는 소리.  툭하면 쏟아지던 작달비들 멎은 긴 장마 뒤, 말매미 몇이 울어댄다. 흡사 제재소 전기톱날 돌아가는 소리, 모처럼의 ‘둥근 오후’를 토막토막 켜는 듯하다. 화자는 ‘집 밖 남새밭에 나와’ 있다. ‘몸피 큰 회화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그 옛날 과거를 보러 가거나 합격하면 집에 심었다는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 혹은 선비나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회화나무가 있다는데, 퇴계 이황이 모델인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도산서원을 둘러싼 무성한 나무도 회화나무란다. 화자는 학자를 많이 낸 집안 후손인가 보다. 화자는 남새밭 농부가 아니다. ‘제 생각의 속잎들 피워서는/고만고만한 고리짝처럼 묶는’ 회화나무는 지식노동자인 화자의 반영이다. 잦은 비에 씻겨 사위가 깨끗한 늦여름 오후, 방동사니 우거진 밭에 ‘건수 투명한 도랑줄기’ 졸졸 흐르는 걸 보며 화자는 ‘지난 한 세기의 담론들과 이데올로기 잔재들을 폭파하듯 쓸어 묻은’ 세상이며 ‘반생애 살고도 앎의 높낮은 뭇 담장들 뜯어치우고는/범람해 흐르는 개굴창 하나를 새로 마련치 못한’ 자신을 돌아본다. 이번 세기 초에 쓰였을 시다. 정치이념에서 비껴 살던 사람들도 충격이 없을 수 없었던 냉전 종식 이후, 세기가 바뀌는 ‘밀레니엄’ 여파로 벅차기도 하고 뒤숭숭하기도 했던 그때. 시대의 풍경 ‘먼 뒤꼍’을 기웃거리는 한 지식인의 내면이 장마 뒤 남새밭 풍경과 함께 ‘자유롭게 집중된 힘으로’ 그려졌다.
157    "개과(科) 남편과 고양이과(科) 아내"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지 댓글:  조회:2987  추천:0  2017-02-02
시창작 강의-13(시를 쓰기 위한 준비 : 동기)   김송배    4-3. 동기(動機)에 대하여   시의 소재를 동원하여 한 편의 시로 완성시키는 시적인 계기를 모티이브(motive 또는 motif), 즉 시적인 동기라고 합니다. 시의 동기는 시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동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시적 동기는 이미 씌어진 시의 중심 사상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시의 모티이브는 자연 발생적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의식적인 시작행위(詩作行爲)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티이브는 가령 TV 뉴스에서 집단자살 사건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느낀다거나, 아름다운 석양에 감동하거나, 겨울 바다의 고적함 등등 이런 외적인 형상과 독서를 하는 도중이거나 어떤 명상을 통하여, 또는 어떤 대화를 통해서 문득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런 것들이 바로 나와 우리들의 문제로 고심하게 되고 곰곰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경우, 그 일들이 마치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양 그 깊이와 차원이 여러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소재를 시적인 관점에서 통찰하여 이것이 표현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을 때 이는 시의 모티이브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티이브는 대체로 소재와 주제를 결합시키는 중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시적 동기는 시를 쓰기 위한 계기가 된 처음의 생각이나 사상을 말합니다. 그 생각과 사상(또는 이념)이라는 것이 결부된 하나의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창작의 동기, 시심의 충동이 되는 것으로서 보통 말하고 있는 단순한 소재라든가, 제재(題材)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인은 모티이브를 잘 정리하고 풍부하게 하며 발전시켜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적 동기가 뛰어나는가, 아닌가는 시적 대상에 대응하는 시인의 감도(感度)와 인식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대부분 시창작상의 체험의 깊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시적 동기는 소재와 제재 등의 기초적인 것을 포함하면서 주제와 발상과도 깊이 관련되는 시 형성상의 중요한 출방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졸시 [세향(歲香)]에 대한 시적인 동기를 잠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빛바랜 세한도(歲寒圖) 속에는   아직도 몸부림과 눈물이   녹지 않고 누워 있다   얼룰덜룩 한 시대의 우수만큼이나   배고픔의 큰 한이 서려   이맘때쯤해서 더욱 아려오는   그 고향 냄새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앞산 노송(老松) 한 그루 이제 형체도 없이   마냥 세월만 지우고 섰는데   한 해 또 한 해   다가오는 그 무엇의 환희보다   향기 없는 속물로 남아   차가운 세한도 속에서   무섬증을 달래는   서설(瑞雪)이 얼어붙고 있다.   이 ‘세한도’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최고 걸작 문인화로 꼽혀서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된 그림입니다. 내가 겨울 어느날 우연히 이 그림(모조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많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은 눈덮힌 고향 산골의 풍경이 그림 위에 겹쳐지면서 무엇인가 가슴이 웅클하였던 것입니다.   가로 60, 세로 20 여 cm 되는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작은 집 한 채와 그 좌우로 잣나무와 소나무 두 그루씩을 배치한 담백한 그림입니다. 인위적인 가식을 모두 빼어버린 채 집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나무를 제외하고는 텅빈 여백뿐입니다.   이 세한도는 추사가 1844년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것으로서 간략한 구도는 오히려 역경 속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았던 고고한 선비의 정신이 물씬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썰렁한 화폭에서 산골마을 고향의 ‘앞산 노송 한 그루’로 병치되고 을씨년스럽게 지나가는 한 해 겨울의 우수가 이미지로 투영되었을까요?   때마침 창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마냥 보람도 없이 떠나보내는 세월의 아쉬움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속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생의 삭막함이 갑자기 내 온몸을 관류하게 되더군요. 문득 고향 마을과 유년시절의 가난함이 ‘앞산 노송’나무와 클로즈 업 되는 순간이 이 작품의 동기로 발전된 거지요.   이 작품은 결론적으로 ‘세한도’라는 그림 한 폭이 촉매제가 되어 얻어진 감동의 단순한 시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을 시적인 동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 강의 내용이 너무 길면 읽기에 부담이 간다는 어느 독자의 전화에 따라 앞으로 간단하게 한 대목씩 처리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언어’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개와 고양이  ―에쿠니 가오리(1964∼) 늦은 밤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토악질을 했지요 깔끔하게 샤워를 했는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더니 자고 있던 남편이 토한 냄새가 나 라고 하더군요 개처럼 냄새도 잘 맡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남편은 아무 대꾸가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밤나들이를 하는 아내로군 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잠이 들었어요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시집 ‘제비꽃 설탕절임’에서 옮겼다. 제목처럼 달콤하고 진한 보랏빛 감성을 자유분방한 성격의 화자가 발랄하게 펼치는 시집인데, 어떤 시는 유부녀가 이리 내밀한 사연을 드러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거침없다. 그런데 농밀한 시에서도 담백한 맛이 난다. 시인의 천진하고 내숭 없는 천성이 쉽고 결 고운 시어에 실려 있기 때문이리라. 화자의 시어른들이 이 시를 봤다면 ‘집안 꼴 하고는!’ 하고 혀를 찰 테다. 하지만 갯과(科) 남편과 고양잇과 아내인 이 부부는 잘 지내고 있다. 아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사람인 걸 남편은 잘 안다. 그렇게 생긴 걸 어쩌겠는가. 처녀 때라고 달랐을라고. 저런 모습에 반해서 결혼한 것 아닌가. 결혼을 했으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 결혼 전에 그런 약속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억지다.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다가 “이런 발정 난 암고양이 같으니라고!” 으르렁거리며 바가지를 긁어봤자 분란만 일으킬 뿐이리.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를 포기한 게 아니다. 받아들이는 거다. 이 남편이 어떤 사람이냐? ‘왠지 분위기가 톰이라서/톰 하고 남편을 불러보았지/톰은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톰이 뭐야/란 표정을 지었어/하지만 왠지 톰이란 느낌이 들어서/나는 또/톰이라 부르고는/남편에게 딱 달라붙었지/나의/톰.’(시 ‘톰’) 이런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엉뚱하고 나긋나긋한 아내를 톰이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성격과 취향과 가치관이 같다고 꼭 잘 만난 부부가 아닐 테다. 착하고 우직하고 듬직한 개와 감정에 솔직하고 예민하고 매이는 거 싫어하는 고양이도 좋은 한 쌍이다.
156    시보다 어눌한 령혼은 없다... 댓글:  조회:2859  추천:0  2017-02-01
시창작 강의-12(시를 쓰기 위한 준비 : 영감)   김송배    전주에 이어서 영감(靈感)을 말하기 전에 발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봅시다. 그러면 실제로 '나무'가 시인에 의하여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다음 시를 통해서 알아봐야겠군요.   나무같이 예쁜 시를   나는 다시 못 보리   대지의 단 젖줄에   주린 입을 꼭 댄 나무   종일토록 하느님을 보며   무성한 팔을 들어 비는 나무   여름이 되면 머리털 속에   지경새 보금자리를 이는 나무   가슴에는 눈 쌓이고   비와 정답게 사는 나무   시는 나같은 바보가 써도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드시나니.   미국의 어떤 시인이 쓴 [나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1연에서는 '시'. 2연에서는 '대지의 젖줄에 입을 대고 빨고 있는 아이'. 3연에서는 '팔을 들어 기도하는 사람' 등으로 비뀌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에 나타난 '나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나무'가 나무라는 현상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라, 그 변용에 따른 어떤 의미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는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이런 의미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 쓰기에서는 이러한 사물이나 관념에 대해서 상상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나   훈련하면 키울 수 있는 상상력입니다. 이것이 시적인 발상이며 곧 시상(詩想)입니다. 모든 사물을 외형적으로만 보지말고 ⑤에서 ⑧까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2. 영감(靈感)에 대하여   시를 쓸 때 시인들은 마치 하늘에서 어떤 게시(揭示)를 받은 것처럼 뜻밖의 감응(感應)을 받은 심리상태를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합니다. 시는 이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 영감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영감이 있어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감과 지성의 융화가 있어야하고 시정신과 일치되었을 때 시 쓰기로 연결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감에 대해서는 예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고백함으로써 여러 가지의 예를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가끔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영감의 일반적인 특성은 ① 아무런 예고 없이 불현듯 나타나며 ② 개인의 힘을 초월하여 작용하고 ③ 일상적인 체험과는 동떨어진 특수하고 신기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어떤 게시 같은 것을 느낀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감이 시를 창작하는 내면적인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영감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이미 시인의 뜨거운 예술정신이 그 모체로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인은 일종의 정신적 방랑객입니다. 언제나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바쁜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존재하고 있다는 그리움의 빛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향수 같은 것을 마음 가득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은 사물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 X-Ray처럼 투명하고, 시인의 귀는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먼 기이한 목소리를 엿듣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무선 전화기를 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그리움의 빛이 시인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것이 인스피레이션입니다. 이는 벌써 지성이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깊은 창조 정신을 발동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의 졸시 [백지를 위하여]에 대한 영감이라고 할까. 문득 솟아 나온 어떤 감응의 심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는 졸저 에 수록된 전문을 옮긴 것입니다.   긴 겨울밤   불 끄지 못하는   그대 뜨거운 마음 한 쪽은   하얗게 비워두리라   가장 쓸쓸한 것들만 한 장씩 찢어내는   그대 곁으로   사랑의 낡은 노래   한 소절만 띄워 보내리라   물망초 설움 같은   내 차가운 뜨락에는    마지막 기도 소리도 끝났는가   흔들리는 창 밖   이 밤을 밀어내는 빗소리   은밀한 기억을 태우고   젖을 대로 젖어버린 하얀 마음 한 쪽은   그냥 비워두리라   하얗게 비워두리라.   * 모두 잠든 새벽, 혼자 일어나 촛대에 불을 밝히고 향나무 연필을 깎고 그 껍질을 하얀 유리 재떨이에 소복히 쌓아서 진한 향내를 맡는다. 향내와 더불어 새벽 내음이 상큼하면 어제밤 찌든 일상들이 한 올씩 분출되는 쾌감을 맛본다.   항상 머리맡에서 대기중인 하얀 메모지는 무엇인가 나의 갈증을 받아담을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한 줄의 낙서라도 담아 주어야 할 막중한 소임같은 것이 배어 있음을 어쩌랴. 그러나 하얀 종이에로 쏠리는 나의 연상작용은 정갈함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그러기에 정신적으로만 승화된 어떤 사랑의 이미지가 담뿍 어려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참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밤마다 '뜨거운 마음 한 쪽'도 담을 수 없는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에 관한 의문은 낡아빠진 육체의 허망스런 욕구만 번뜩이는 가증스런 밤을 장식한다. 이런 허황된 욕망과 증오가 가득한 나의 심연에서 백지를 대하는 나약한 언어는 '그냥 비워두'는 일밖에 없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열정과 향나무 연필의 의지는 제몸을 스스로 소진하고 마모하면서 '은밀한 기억'은 젖은 내 마음에게 비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백지에 채워져야 할 순수 사랑을 위하여.* 다음 시간에 또..... ============================================================================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삼솔 뜨기  ―정영주(1952∼ ) 1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찔러 실로 음각을 뜨는 거야 흰 머리카락을 뽑아 바늘에 꿰어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이 새지 않게 물을 깁는 거야 바느질이 목숨이었던 어머니, 실 떨어지면 명주 올처럼 길고 흰 머리카락을 뽑으셨지 어룽이다 꺼져가는 그늘과 찢어진 가족의 무늬와 식탁을 바늘로 이어 가셨지 2 어머니가 가셨던 길처럼 한 올 한 올 바늘로 쪽빛 모시를 꿰맬 때마다 멀리 떠난, 더는 깁을 것이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평생 바늘과 옷감을 놓지 않으신 어머니 그것으로 가족을 기워 둥근 띠를 엮으셨던 어머니 아버지 없는 둥근 밥상에 오글오글 새끼들만 모여 밥상까지 통째로 먹는 허기진 아이들 명주에 들어간 바늘이 실을 끌고 다닐 때 천이 제 몸들을 꼬옥 껴안지 못하면 바늘은 성글게도 허공과 손가락만 꿰매 놓곤 했지 둥근 밥상 앞에서도 새끼들 입에 당신 몫까지 다 내어 주고 등 돌려 바느질만 하시던 어머니, 그 시린 등을 이제사 껴안고 난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장성한 아들도 없는데 가장인 남자어른이 바깥으로만 떠돌거나 재산 없이 세상을 뜨면, 일가족의 먹고살 길이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는 집안일이나 해야지 경제활동을 하는 건 흉이 되던 시절, 그래서 딸에게 돈벌이를 할 만한 교육을 애초에 시키지 않던 시절. 시골이라면 농사라도 지을 테지만, 도시에서 여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처지에 놓이면 속수무책이기 쉽다. 화자의 어머니는 다행히도 바느질 솜씨가 있으셨나 보다. 여자에게 허락된 얌전하고 깨끗한 일감, 바느질. 하지만 ‘밥상까지 통째로 먹는 허기진 아이들’을 먹이기엔 그 삯이 참으로 소소했을 테다. 그래서 어머니는 때로 끼니를 거르고 바느질만 하셨단다. 그렇게 ‘찢어진 가족의 무늬와 식탁을 바늘로 이어가신 어머니’를 화자는 바느질을 할 때마다 떠올리는데, 화자 역시 ‘어머니가 가셨던 길처럼/한 올 한 올 바늘로 쪽빛 모시 꿰매는’ 일을 하니 어머니는 늘 화자의 기억 속에 살아 계실 테다.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는 화자의 바느질 철학일 테다. 어머니에게서 화자에게 전해진 것이 바느질 솜씨뿐 아니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인 듯도 해 울컥해진다. 하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시린 등을 껴안고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시를 맺는다. 모녀의 삶이 한 쌍 쪽빛 나비로 우화(羽化)하는 듯, 아름다이 시린 바느질이다.  
155    백지에 채워져야 할 순수 사랑을 위하여... 댓글:  조회:2374  추천:0  2017-01-31
정유년 !!!!!! 새해 올 한해  모두모두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시창작 강의-12(시를 쓰기 위한 준비 : 영감)   김송배    전주에 이어서 영감(靈感)을 말하기 전에 발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봅시다. 그러면 실제로 '나무'가 시인에 의하여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다음 시를 통해서 알아봐야겠군요.   나무같이 예쁜 시를   나는 다시 못 보리   대지의 단 젖줄에   주린 입을 꼭 댄 나무   종일토록 하느님을 보며   무성한 팔을 들어 비는 나무   여름이 되면 머리털 속에   지경새 보금자리를 이는 나무   가슴에는 눈 쌓이고   비와 정답게 사는 나무   시는 나같은 바보가 써도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드시나니.   미국의 어떤 시인이 쓴 [나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1연에서는 '시'. 2연에서는 '대지의 젖줄에 입을 대고 빨고 있는 아이'. 3연에서는 '팔을 들어 기도하는 사람' 등으로 비뀌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에 나타난 '나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나무'가 나무라는 현상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라, 그 변용에 따른 어떤 의미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는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이런 의미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 쓰기에서는 이러한 사물이나 관념에 대해서 상상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나   훈련하면 키울 수 있는 상상력입니다. 이것이 시적인 발상이며 곧 시상(詩想)입니다. 모든 사물을 외형적으로만 보지말고 ⑤에서 ⑧까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2. 영감(靈感)에 대하여   시를 쓸 때 시인들은 마치 하늘에서 어떤 게시(揭示)를 받은 것처럼 뜻밖의 감응(感應)을 받은 심리상태를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합니다. 시는 이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 영감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영감이 있어야만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감과 지성의 융화가 있어야하고 시정신과 일치되었을 때 시 쓰기로 연결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감에 대해서는 예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고백함으로써 여러 가지의 예를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가끔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영감의 일반적인 특성은 ① 아무런 예고 없이 불현듯 나타나며 ② 개인의 힘을 초월하여 작용하고 ③ 일상적인 체험과는 동떨어진 특수하고 신기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어떤 게시 같은 것을 느낀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감이 시를 창작하는 내면적인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영감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이미 시인의 뜨거운 예술정신이 그 모체로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인은 일종의 정신적 방랑객입니다. 언제나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바쁜 사람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존재하고 있다는 그리움의 빛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향수 같은 것을 마음 가득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은 사물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 X-Ray처럼 투명하고, 시인의 귀는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먼 기이한 목소리를 엿듣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무선 전화기를 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때 그리움의 빛이 시인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 이것이 인스피레이션입니다. 이는 벌써 지성이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깊은 창조 정신을 발동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의 졸시 [백지를 위하여]에 대한 영감이라고 할까. 문득 솟아 나온 어떤 감응의 심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는 졸저 에 수록된 전문을 옮긴 것입니다.   긴 겨울밤   불 끄지 못하는   그대 뜨거운 마음 한 쪽은   하얗게 비워두리라   가장 쓸쓸한 것들만 한 장씩 찢어내는   그대 곁으로   사랑의 낡은 노래   한 소절만 띄워 보내리라   물망초 설움 같은   내 차가운 뜨락에는    마지막 기도 소리도 끝났는가   흔들리는 창 밖   이 밤을 밀어내는 빗소리   은밀한 기억을 태우고   젖을 대로 젖어버린 하얀 마음 한 쪽은   그냥 비워두리라   하얗게 비워두리라.   * 모두 잠든 새벽, 혼자 일어나 촛대에 불을 밝히고 향나무 연필을 깎고 그 껍질을 하얀 유리 재떨이에 소복히 쌓아서 진한 향내를 맡는다. 향내와 더불어 새벽 내음이 상큼하면 어제밤 찌든 일상들이 한 올씩 분출되는 쾌감을 맛본다.   항상 머리맡에서 대기중인 하얀 메모지는 무엇인가 나의 갈증을 받아담을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한 줄의 낙서라도 담아 주어야 할 막중한 소임같은 것이 배어 있음을 어쩌랴. 그러나 하얀 종이에로 쏠리는 나의 연상작용은 정갈함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그러기에 정신적으로만 승화된 어떤 사랑의 이미지가 담뿍 어려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참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밤마다 '뜨거운 마음 한 쪽'도 담을 수 없는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에 관한 의문은 낡아빠진 육체의 허망스런 욕구만 번뜩이는 가증스런 밤을 장식한다. 이런 허황된 욕망과 증오가 가득한 나의 심연에서 백지를 대하는 나약한 언어는 '그냥 비워두'는 일밖에 없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열정과 향나무 연필의 의지는 제몸을 스스로 소진하고 마모하면서 '은밀한 기억'은 젖은 내 마음에게 비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백지에 채워져야 할 순수 사랑을 위하여.* 다음 시간에 또..... ======================================================================   청바지를 입어야 할 것 ―이근화(1976∼) 나의 기분이 나를 밀어낸다 생각하는 기계처럼 다리를 허리를 쭉쭉 늘려본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화초가 말라 죽는다 뼈 있는 말처럼 손가락처럼 일정한 방향을 가리킨다 죽으면 죽은 기분이 날 것이다 아직 우리는 웃고 말하고 기분을 낸다 먹다가 자다가 불쑥 일어나는 감정이 어둠 속에서 별 의미 없이 전달되어서 우리는 바쁘게 우리를 밀어낸다 나의 기분은 등 뒤에서 잔다 나의 기분은 머리카락에 감긴다 소리 내어 읽으면 정말 알 것 같다 청바지를 입는 것은 기분이 좋다 얼마간 뻑뻑하고 더러워도 모르겠고 마구 파래지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구겨지지만 나는 그것이 내 기분과 같아서 청바지를 입어야 할 것                언젠가부터 내가 추위를 덜 탄다. 지구 온난화로 사뭇 온화해진 겨울 기온과 몸무게가 10kg 이상 늘어나 두둑해진 지방층 덕분이려니 생각했는데, 옷차림도 크게 작용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겨울에는 두툼히 속을 댄 기모바지를 입는다. 장구한 세월을 사시사철 청바지만 입었다. 평상시에는 물론이고 행사장, 사교모임, 비즈니스 자리에 갈 때도 말이다. 한 원로 비행기 기장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도 그랬다. 나로서는 그나마 멀쩡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차려입었는데, 인터뷰가 끝난 뒤 그분은 막내딸을 대하듯 걱정스레 이르셨다. “인터뷰하러 갈 때는 복장에 신경을 쓰는 게 예의예요.” 달아오르는 얼굴로 나는 그 자상한 신사가 가르쳐 주는 처세의 기본을 마음에 새겼다. 내가 무슨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이며 경영자)라고 나 편한 복장으로 사관도 만나고 신사도 만났는지. 30년도 더 전에 말이다.     화자는 사회에 발들인지 얼마 안 되나보다. ‘뼈 있는 말처럼 손가락처럼//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화자는 말라 죽을 것처럼 힘들다. 그 기분을 드러낼 수도 없다. 꾹꾹 참다가 자다가도 벌떡 몸을 일으키며 “아,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부르짖을 뿐이다. 우리는 기분을 전환하려, 혹은 자기 기분을 나타내려 그날 입을 옷을 고른다. 화자의 오늘 기분은 청바지다.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마구 파래지는 것 같’은 청바지! 당신들은 이걸 못 입죠? 청춘의 바지를 입을 때, ‘아직 우리는 웃고 말하고 기분을 낸’단다. 
154    력사에 길이 남을 "락서"를 위하여... 댓글:  조회:2668  추천:0  2017-01-30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낙서를 론하다...    이것은 의미 없는 아우성 vs 호모 두들리쿠스의 낭만은 살아남을까               "이것은 의미없는 아우성"ㅡ 길바닥에 새겨넣은 고대 그리스의 낙서부터 ‘의미의 해체’란 포스트모던의 전형적 주제 담고 있는 그래피티까지   진중권 문화평론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홍익대 인근 사거리에는 지하도가 있었다. 지하도 벽은 스프레이로 그린 다양한 낙서들로 장식돼 있었다. 요란한 이미지와 의미를 알 수 없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낙서들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홍익대 앞 하위문화(Subculture)의 자취를 느꼈으나, 최근 지하도가 철거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이제 그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예 구조물을 뜯어낸 게 아니라 그냥 흙으로 채워 입구만 막은 거라면, 수백 년 뒤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 그 낙서들이 다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로, 바이런도 낙서를 했다 낙서를 흔히 ‘그래피티’(Graffiti)라 부른다. 이 말은 이탈리아어 ‘그라피토’(Graffito)의 복수형으로, 그 근원은 ‘글씨를 쓴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그라페인’(γρ?φε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어 ‘그라피토’는 원래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벽화를 가리켰다. 그 때문에 가끔 낙서의 역사가 멀리 구석기 시대로까지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으나, 원시인의 동굴벽화나 고대인의 건물벽화를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낙서’로 볼 수는 없다. 둘은 기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낙서는 멀리 이집트 고왕국 시절(BC 28세기) 그리스의 에베소에서 발견된 것이다. 돌로 된 길바닥에 손과 발과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근처에 유곽이 있음을 알려주는 광고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에는 정치적 슬로건, 마술적 주문, 사랑의 맹세 등 다양한 종류의 낙서가 발견됐다. 인상적인 것은 기독교를 풍자하는 낙서다. 거기에는 십자가에 달린 당나귀 아래서 기도하는 사내의 모습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다. “알렉사메노스가 자신의 신을 경배한다.” 스칸디나비아의 로마네스트 성당의 벽에는 ‘타쉬롱’(훼손)이라 불리는, 긁어서 새긴 낙서들이 남아 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 가령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필리포 리피는 고대 네로 황제의 별장인 ‘황금의 집’(Domus Aurea) 폐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이집트의 기념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아테네 남쪽 케이프 수니온의 포세이돈 신전의 기둥에는 아직도 바이런 경이 새겨넣은 낙서가 남아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뻔뻔한 문화재 훼손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시절에 본 낙서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내가 이른바 ‘그래피티’라는 걸 처음 본 것은 독일에 유학을 가서였다. 솔직히 그것은 베를린이라는 역사적 도시에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동서 베를린을 나누던 장벽에 그려진 낙서들은 나름대로 예술적 가치와 정치적 의미라도 있지만, 아무 데나 그려놓은 별 내용도 없는 문자나 그림이 썩 예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의 하위문화를 엉뚱한 맥락으로 들여와 어설프게 흉내냈다는 느낌이랄까? 낙서하는 이들에게는 이게 ‘예술’일지 모르나, 국가의 시각에서는 시설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일 뿐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낙서를 지우는 데만 연간 5억유로(약 8천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 낙서가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중요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해주었다. 골치 아픈 것은 지하철 유리창에 긁어서 새긴 낙서들. 이른바 ‘스크래칭’이라는 그래피티 기법이라고 한다. 심지어 불산(HF)이라는 맹독성 용액으로 유리창에 낙서하는 위험한 기법(‘에칭’)도 있다. 이런 낙서는 지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날 그곳에서 자칭 그래피티 아티스트에 관한 방송을 보았다. 그의 방은 세상에 온갖 색상의 스프레이 깡통으로 뒤덮여 있고, 벽에는 그동안 자신이 제작한 작품들(?)의 사진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예술적 특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디에 낙서를 하느냐’다. 접근하기 힘든 곳에 할수록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나?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독일의 낙서자들 사이에서 경비가 삼엄한 고속전철(ICE)에 누가 먼저 낙서를 하느냐는 경쟁이 붙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과연 그들은 꿈을 이루었을까?   힙합의 예술적 대결, 그래피티 배틀   그래피티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특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의 도시에서 흔히 보는 힙합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뉴욕의 지하철 낙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디제잉(DJing), 엠시잉(MCing·랩), 비보잉(B-Boying)과 더불어 힙합 문화의 네 요소를 이루는 것이 바로 ‘라이팅’(Writing·그래피티)이다. 그래피티는 음악·무용·미술 등 여러 장르를 거느린 하위문화의 일부로서 곧 뉴욕을 벗어나 전세계 젊은이들 사이로 퍼져나가게 된다. 인터넷에서 종종 사용되는 ‘배틀’(Battle)이라는 말도 힙합 문화에서 유래했다. 힙합을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배틀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총이나 칼을 동원한 폭력적·물리적 대결을 예술적·문화적 대결로 승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배틀의 바탕에는 당연히 남들이 자신의 기량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인정 욕구가 깔려 있다. 힙합의 한 부문으로서 그래피티에도 당연히 배틀이 존재한다. 그래피티의 경우 필법의 참신함이나 표현의 미학성, 혹은 도발의 대담함 등을 놓고 서로 겨루게 된다. 물론 모든 그래피티가 건전한 것은 아니다. 범죄집단과 결합된 이른바 ‘갱 그래피티’도 있다. 1930년대부터 존재해온 갱 그래피티는 상당히 ‘동물의 왕국’스러워, 주로 갱단들 사이에 영역을 표시하는 데 이용된다. 괜히 그 영역 안으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목숨을 대가로 치르기 일쑤다. 영역을 표시하는 데 이용되기에, 갱 그래피티는 색채나 문양의 미학적 수준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갱 그래피티는 ‘스타일 라이팅’(Style Writing)이라 불리는 화려한 예술적 그래피티와 구별된다. 이 하위문화가 1960년대 이후 현대예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미술사가들은 1960년대에 ‘팝아트’가 등장하기 직전에 그래피티 문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령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을 통해, 우리는 그래피티가 현대예술에 끼친 영향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미 그래피티 자체가 하나의 예술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가령 얼마 전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쥐20’의 원형이 된 영국의 작가 뱅크시. 그는 세계에서 유명한 영국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피티는 팝아트를 매개로 ‘포스트모던’의 정신적 분위기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그래피티는 무명 대중의 손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굳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가 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가령 뱅크시는 그저 사인으로 쓰는 이름일 뿐,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세간에서는 그의 본명이 ‘로빈 거닝엄’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철저히 익명으로 남는 것은 이른바 ‘미적 주체성의 해체’, 즉 ‘작가의 죽음’으로 더 널리 알려진 포스트모던의 주제와 연결된다.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낙서   베를린에서 그래피티를 처음 보았을 때, 벽에 그려진 이상한 문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나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표현을 빌리면, 시니피에(Signifie·기의, 의미) 없는 순수한 시니피앙(Signifiant·기표, 기호)이라는 얘기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가? ‘영원히 의미(기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기호(기표)’. 이 관념은 정확히 데리다의 언어철학과 일치한다. 의미의 해체. 이 역시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의 주제다.       호모 두들리쿠스의 낭만은 살아남을까 무의식적 흐름의 기록, 낙서… 스마트 디바이스 넘쳐나는 21세기에도 마음 지도는 계속 그려질 것인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2005년 영국에선 웃지 못할 낙서 해프닝 하나가 있었다. 그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선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연례회의인 세계경제포럼(WEF)이 어김없이 열렸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 이슈를 다룬 회의가 끝난 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앉았던 자리에서 낙서가 가득한 종이 한 장이 발견됐다.   “그건 빌 게이츠의 낙서였네”   낙서를 긴급 입수한 영국 언론은 심리학자들과 서체 전문가들을 동원해 낙서에 드러난 총리의 속마음을 연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삼각형을 겹쳐 그린 것을 보면 총리가 집중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그라미의 끝이 완전히 맞물리지 못한 건, 블레어 총리가 평소 신앙심이 깊지 못하고 타고난 지도자감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네요.” 낙서 한 장 덕분에 영국인들은 블레어 총리의 심리상태를 총리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됐고, 블레어 총리는 졸지에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지도자’가 돼버렸다. 하지만 영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 블레어 총리 쪽은 태연하게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태도로) 이렇게 응수했다. “그건 블레어 총리의 낙서가 아니라, 그 옆에 앉았던 빌 게이츠의 낙서요!” 심리학자들은, 그리고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은, 낙서 안에 한 인간의 심리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고 믿게 됐다. 이른바 ‘자유연상’, 즉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특별한 목적이나 자기검열 없이 적어나간 낙서에는 내면의 의식 흐름이 잘 포착돼 있으며, 낙서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 불안과 욕망’을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주변 도처에 산재해 있는 낙서를 흔히 ‘스크리블’(Scribble)이라 부르며, 낙서하는 행위를 심리학자들은 ‘두들링’(Doodling)이라 부른다. 학술검색엔진에서 이 단어들로 연구논문을 찾아보면 700여 편의 논문과 참고문헌이 검색된다. 이 연구논문들은 대부분 낙서를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적 방식으로 해석해 질병을 진단하거나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다. 미국 시애틀대학 인간발달연구소의 로버트 번스 박사가 아마 대표적인 학자일 텐데, 그는 “낙서라는 의식적 패턴 안에 무의식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낙서학’(Doodleology)의 아버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이다. 그들의 ‘꽤 그럴듯하게 들리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론 덕분에 온갖 낙서 해석이 난무해왔다. 해소되지 못한 성적 욕망으로 충만한 사람은 뱀이나 촛불, 과녁에 제대로 맞은 다트 같은 걸 낙서로 그리며, 금전적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는 숫자 낙서를 즐기고, 집에 대한 욕망은 기하학적 도형 낙서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사람의 몸이나 얼굴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나치게 크거나 작게 그려진 신체 부위는 불안정한 욕망이 투영됐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불행하게도 근거는 없지만.   욕구불만이 낙서로 이어진다?   낙서와 관련해 20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인간은 왜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낙서를 끼적이는 걸까?‘일 것이다. 한시도 전화기나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호모 텔레포니쿠스’들은 왜 전화 통화를 할 때 낙서를 즐기게 됐을까? 이 낡은 질문에 최근 흥미로운 대답을 찾아낸 사람들은 신경과학자들이다.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뇌는 도형이나 패턴 같은 영역을 담당하는 부분과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평소 활동량이 높은데,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에는 온통 언어 영역만 활성화되다 보니 도형과 패턴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심심해져 기하학 문양이나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뇌활성화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상대방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목소리만 들으려니 시각정보에 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낙서를 한다는 주장이다. 보지 못하고 듣고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시각자극에 대한 욕구불만이 낙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전화할 때 손은 뭐하니?’가 20세기적 질문이었다면, 21세기적 질문은 더 묵직하다. ‘전 지구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낙서들은 과연 다음 세기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21세기 현대인도 낙서를 즐길 것이다. 설령 화상전화가 발달해 청각자극과 시각자극의 불균형이 해소된다고 해도, 화장실이나 버스 뒷자리에서, 혹은 공부를 하다가 딴생각이 나서, 깁스한 친구를 보자마자, 옛사랑이 그리워서, 낙서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므로. (고위 관료들의 회의는 전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그들의 낙서 종이만 이면지로 활용해도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낙서가 학습능력에 도움을 주고 집중력 향상에도 이롭다고 하니 결코 ‘호모 두들리쿠스’들이 멸종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점점 종이 사용량이 줄어들고, 연필이나 볼펜을 휴대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보이던 메모지가 점점 사라지고 서류 종이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오늘날, 20~30년만 지나면 ‘그 귀한’ 종이에 낙서하는 행위는 범죄행위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전자책이 위용을 떨치고 태블릿PC가 세상을 점령하는 시절이 와도 결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나는 끝까지 종이책을 보리라 생각하지만, 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 나무를 베어와 만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이 비윤리를 넘어 범죄가 되는 시절이 머지않았다.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낙서장을 예쁘게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21세기 중반이 됐을 무렵, 과연 우리의 낙서는 다음 세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남아 있을까? 아무도 펜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종이가 널브러져 있지 않으며, 관료회의마저도 낙서장을 제공하지 않는 시대가 됐을 때 우리 다음 세대는 과연 21세기 중반을 살았던 우리의 무의식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5천 년 전 선조의 동굴 낙서처럼 보존되기는커녕, 빠르게 부수고 새로 지어지는 세상, 실제 현실이 가상현실과 교묘히 얽히고 때론 대체돼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편하게 자기검열 없이 무의식적 흐름을 기록할 매체가 과연 세상에 남아 있게 될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낭만이 사라진 시대가 우울할 뿐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낙서를 가진 나라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운이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그려진 모든 낙서를 다음 세대가 기억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귀한 낙서 하나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치른 국가행사 포스터에 한 예술가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목적 없이 낙서를 했다가, 그 이미지가 자신과 꼭 빼닮았다고 여겨, 아끼는 시녀들을 통해 단죄한 ‘벌거벗은 임금님’ 덕분에,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낙서를 가지게 됐으니 말이다. 낙서만이 무의식의 투영이 아니라, 낙서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무의식이 투영돼 있음을 배웠다. ‘길거리 캐스팅된 바스키아의 등장’까지 했습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는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난 첫 흑인화가.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진부한 표현 그대로입니다.     별똥별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지요. 바스키아도 똑같습니다. 업계 대스타 워홀의 연인으로, 그의 원조와 후광에 힘입어 승승장구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시장에서 통하는 ‘상품성’과 작품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은 얼핏 보면 같아 보여도 실상은 서로 다릅니다. 현대미술에서 바스키아가 이룩한 전설은, ‘쇼 비즈니스’와 뒤섞여 한눈에 구별 짓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고 싶어 몸살이 난 화상들의 기획과 스폰서인 워홀의 애증과 바스키아 자신의 욕망이 한데 뭉쳐 거대한 신화가 탄생했습니다.     그림 제목이 ‘Dos Cabezas’(1982). 스페인어로, ‘쌍두, 머리 둘 달린 생물’이란 뜻입니다. 좋은 의미 같지는 않네요.     각자 무슨 생각을 가졌든 간에 서로가 필요했던 두 사람. 때로 사진 한 장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여전히 뜨거운 창작욕으로 빛나지만 어딘가 불안한 바스키아와 음험하고 탁한 ‘노털 워홀’의 눈빛이 대조적입니다.        ‘자니펌프(Johnny pump)에서 강아지와 나.’ 자니펌프는 물이 터진 소방호수를 말합니다. 여름철 가난한 아이들한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지요.       그는 자니펌프 아래서 세상시름을 잊고 뛰어노는 순진무구한 어린애와 같았습니다. ‘바스키아 신화’는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 ‘쇼 비즈니스 스타시스템’ 아래 명멸해가는 수많은 ‘신데렐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루아침에 왕창’ 뜨는 바람에 오히려 엄청 고독해진 흑인청년. 고립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마약에 찌들어 요절하는 것으로, 이 화려하고도 우울한 스토리는 막이 내립니다.   달리 말하면, “건방진 깜둥이가 반짝 인기에 기고만장하는 꼴”을 보다 못해 백인들이 그를 도시 한가운데다 내다버린 것이지요. 바스키아는 자신의 낙서그림을 두고 ‘문명의 해독제’니 뭐니 하며 호사가들이 설왕설래하자, 이런 말을 툭, 던집니다.   “이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그저 되는 대로 휘갈긴 낙서구만.”   워홀의 레이더에 잡힌 또 다른 낙서화가가 있습니다. 키스 헤링(Keith Haring, 1958-1990).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83년. 금세 뜨거운 사이가 됩니다. 워홀은 바스키아처럼 ‘젊은 피’가 필요했던 거지요.   두 사람 나이는 무려 30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말년에 워홀은 헤링을 통해 ‘아방가르드(전위) 청년문화’와 활기를 쭉쭉 빨아들입니다. 헤링 또한 유명화랑의 전속작가로 성장합니다.   ‘누이 좋고 매부...’는 아니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당시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은 ‘이스트 빌리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싹이 텄습니다.  우리나라 ‘홍대 앞’ 같은 곳이지요.   주 메뉴는 다문화주의, 힙합댄스, 뉴웨이브 음악.  오늘날 여러 대중예술이 모두 여기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습니다. 대표선수로 마돈나, 보이 조지가 얼른 생각납니다.     사진 오른쪽 그림은 ‘앤디 마우스와 뉴 콕’ 시리즈로 스폰서이자 연인인 워홀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는데, ‘뉴 콕’은 ‘새 코카콜라’ 말고 ‘새로 맛본 거시기’란 뜻도 됩니다. 음...은근히 음란하군요.   아닌 게 아니라, 사생활을 비밀스럽게 관리한 워홀과 달리 헤링은 스스로 동성연애자임을 공공연히 떠들었습니다. 젊은 선수다운 ‘패기’라고나 할까요. 그림을 봐도 그렇습니다. 생명력과 에너지가 철철 넘칩니다.     굵직굵직한 선, 강렬한 색채, 만화 같은 단순한 스타일은 그만의 독창적인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천진난만한 그림이지만 가끔 노골적인 성묘사가 불쑥 나오니, 예쁘다고 아이들과 볼 때는 주의하셔야 됩니다.  방심은 금물.^^     헤링이 낙서삼매에 빠진 모습이군요. 헤링한테 그림은 세상과 소통이었습니다. 무명시절, 경찰단속을 피해 몰래 낙서하다 숱하게 체포되어도 낙서 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는 비록 낙서지만, 그림이 대중한테 끼치는 영향력을 깊이 느꼈습니다. ‘거리낙서 퍼포먼스’를 그만둔 건 유명해지고 나서입니다. 배가 불러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가 유명해지자마자 거리 낙서그림들이 뜯겨나가 고가로 거래되는 걸 목격하고 부터지요. 자기 그림이 화랑이나 미술시장처럼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미술에 대한 권리가 있다. 미술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헤링이 남긴 말입니다. 32살에 갔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 그놈의 에이즈가 웬쑤입니다.   끝으로 워홀이 남긴 어록을 몇 개 소개합니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그저 심심풀이로 보면 됩니다. 말 많은 순서대로 나옵니다. 마지막 멘트는 워낙 ‘오묘 + 난해’하여 굳이 해설을 붙입니다.   “돈 버는 것도 예술, 일 하는 것도 예술, 사업도 예술이다. 비즈니스를 잘 하는 게 결국 최고의 예술이다.”   “무언가 소망하길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걸 얻게 된다. 이 명제가 절대적이란 걸 나는 안다. 믿어라.”   “앤디워홀을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의 표면만 봐라. 그 이면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항상 기계이길 바란다.”   “모든 게 아름답다.”   “음.....암.....” (굳이 붙이는 해설 : 말이 어눌해 자기 작품을 논리정연하게 설명 못함. 인터뷰질문을 받으면 말을 머뭇거려 처음엔 조롱거리. 그 뒤 아예 작품을 설명하지 않거나 침묵으로 일관. 이런 태도를 신비롭다며 언론과 대중은 오히려 더 열광. 이로써 “대중매체의 위력을 한껏 활용했으며, 미술이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받음. ...어처구니가 없음.)                                   
153    [시문학소사전] - "락서(낙서)"란?... 댓글:  조회:3444  추천:0  2017-01-30
낙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낙서(落書, 문화어: 락서)는 간단한 스크래치 표현에서부터 정교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포함될 수 있다. 특히 현대의 에어로졸 스프레이 등을 사용한 낙서를 그라피티(이탈리아어: graffitto - 복수형 graffitti)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라피티를 소유자 허락 없이 하는 것은 재산 손해로 처벌을 받거나 예술 문화의 파괴(반달리즘)으로 여겨졌다. 한편, 그라피티는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화랑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 운동장, 건물에 그려져 있어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목차   [숨기기]  1용어의 기원 2형태 3내용 4예술성 5용어 6용도 7유명작가 8관련 항목   용어의 기원[편집] 그라피티는 미술계에 있어 어떤 표면에 그림을 그려 새기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이것과 비슷한 용어는 스그라피토(Sgraffito)가 있는데 색상을 이용해서 한 색상으로 표면을 덮으면서 감춰져 있는 면을 드러내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원래 도공들이 자기를 만들 때 원래 색에 무늬를 새겨 넣는 방식과 흡사하다. 그라피티와 그라피토는 이탈리아어로 ‘긁힌’(scratched)이라는 뜻이다. 형태[편집] 그라피티의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흔한 것은 창작한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그라피티를 하면 작품에 자신의 이름 머릿글자를 남겨 꼬리표(tag)를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꼭 자기 이름이 아니라 개인만이 아닌 암호와 같다. 페인트나 스프레이로 표현한다. 다른 형태로는 다양한 색상의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재빨리 그림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속도에 그 의미를 두는 편이다. 더 복합적인 형태는 속칭 거친 표현법(wild style)으로 표현되는데 단어나 문자를 서로 연결하여 형이상학적 형태로 만든다거나 화살 형태의 문자를 그림 속에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된 경우는 그라피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보기가 힘들다. 의도적으로 벽 전체를 그라피티로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리지 않으려고 벽 전체에 롤러를 이용해서 그리기도 한다. 내용[편집] 모방화(Imitation painting) 유명한 캐릭터나 인물 등을 확대 복사하듯 그린 작품 사회적 언질(Social words) 사회적인 문제에 참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정치적인 발언을 뜻하며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의 소외계층의 불이익에 관한 불만을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표현한 작품 꼬리표 (Tagging) 작가를 나타내는 문자나 순수 의도를 포함하는 가차명 또는 실명을 작품화하는 것 예술성[편집] 초기의 Graffiti는 지금과는 양상과는 매우 달랐다. "예술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낙서가 미술의 한 표현주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2차대전후부터 Modern Graffiti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Graffiti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말해 Graffiti는 대중문화 속의 스타일로 얘기될 수 있을 뿐 '예술인가? 단순한 낙서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논점일 수 있으며 근자에서 도시미관과 맞물려 있어 대중 미술의 차원을 넘나들고 있다. 용어[편집] 버밍 :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 그리는 그림 스로업 : 휘갈기듯이 빠르게 쓴 면으로 된 그림 (빠른 시간 내에 그려 내다보니 직선보다는 곡선이 많이 쓰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리되고 발달되어 하나의 장르처럼 정리된 것이 흔히 '버블'이라 불리는 것) 뮤랄 : 법적 허가를 받은 그래피티 용도[편집] 그라피티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에 따르면 그라피티는 전위 예술인데 이렇게 인식된 것은 적어도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문화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of Comparative Vandalism )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벽면에 표현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대화의 장을 만드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사실 그라피티의 활동이 대화를 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분열을 아우르는 데 있다고 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베를린 장벽의 경우인데 소련의 압력에 대하여 독일인들의 그라피티가 전체 벽을 뒤덮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뱅크시(Banksy)가 그라피티에 관련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재야 예술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경찰로의 연행을 피하기 위해 작품에는 그의 신상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런던 시내 주변에서 볼 수 있으며 중동과 이스라엘에 있는 장벽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하나를 택해 보자면 한쪽 벽에는 환상적인 해변이 있고 반대 편에는 산의 모습을 그려놓기도 하였다. 2000년에 전시회를 열었으며 최근에는 예술품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고 한다. 유명작가[편집] 로빈 뱅크시(Robin Banksy 1974~) 영국 출신으로 스텐실 그라피티를 통해 권력을 조롱하고 일상 권력의 편견과 독단을 냉소적으로 비꼰다. 그의 그라피티에는 현실 속에 도사린 정치 권력, 엄숙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기와 저항이 묻어난다.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27세인 젊은 나이로 요절했으며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그래피티 작가로 80년대의 제임스 딘 또는 검은 피카소라고 불린다. 그의 그림은 마음의 정화, 실패한 종교, 엉터리 정치, 종교, 민족주의 등 사회에게 보내는 거침없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키스해링(Keith Haring 1959~1990) 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간결한 선과 강렬한 원색,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표현으로 낙서를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낙서를 통하여 뉴욕의 문화를 바꾸어놓은 예술가이다. 관련 항목[편집] 미술 그림 전위예술 행위예술   ======================="그래피티 아트"란?...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피티는 미학적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써 그래피티는 그래피티의 불법성과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비평에 앞서 예술로서 간주된다. 이글의 목적은 그래피티가 비평적 의견들을 극복하고 예술 형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대해 말하고자 함이다. Leonardo, Monet, Picasso 나 현존하는 서유럽문화의 예술가들을 살펴봐라. 그리고 이 유명한 예술가들이 당신의 현관문이나 이웃의 벽에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아라. 피카소나 모네의 그런 그림들은 그래피티인가 또는 예술인가 또는 파괴주의인가 또는 그래피티 아트인가? 그 답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들은 그래피티 형식 안에서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그림은 그들이 허락없이 개인의 사적재산을 침범한다면 파괴주의가 될 것이다. 오늘날 그래피티는 그래피티 아트로서 알려진 그래피티 장르이다. 그래피티 아트는 1960년대 후반에 형성되었고 이 이후 성장해왔다. 그러나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전시된다고 해서 이런 작업들이 쉽게 예술로서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래피티가 형식이나 기본적 미학적 요소들의 결여로 인하여 엄격하게 순수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대부분의 반발은 그것의 지역,도전적이고 예측불허하고 비관습적으로 보이는 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형식들이 그래피티가 예술로서 인정받게 하는지는 말하려고 한다. 그래피티는 graffiti art, subway art 또는 Spray art로 알려졌다. 파괴주의에 대한 논쟁과 그래피티가 예술이 되기 위한 자질에 반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은 그래피티가 미학적으로 예술로서 받아들여지게 하는 그래피티의 형식을 드러내는 설명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그래피티에 대한 역사적 흐름과 예술로서의 그래피티의 설득적 증거를 제공하겠다.  그래피티의 기원은 인간의 사회적 삶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피티는 노출된 곳, 고대, 이집트 유물, 심지어는 폼페이의 벽에 보존된 것에서도 나타난다. 그래피티는 graffiticar이라는 복수형태의 이탈리아어로 복수로 graffiticar는 그림, 표식, 패턴, 낙서, 그리거나 쓴거나 또는 벽이나 표면에 새기는 메세지를 의미한다. Graffiticar는 또한 동굴벽화에서부터 다른 벽들에 쓰여진것, 화장실 낙서, 벽에 새겨진 여러 메세지등을 의미한다. 오늘날 그래피티는 대개 파괴주의로 보여지는 사적,개인적 재산에 손산을 가하는 것도 말한다. 다양한 그래피티 형식이 있다. 가장 단순한 형식은 슬로건이나 이어쓴 글씨, 정치적 발언같은 개인적 표시이다. 대개 화장실이나 실내표면에서 발견되는 이같은 예들은 손으로 쓰여진 그래피티이다. 다른 기본적 형식은 색다르고 어떤 이의 이름이나 별명을 낙서하는 태그이다.  태그나 개인적 표시에는 미학적인 어필이 거의 없다. 그들이 쓰여지는 멋이나 스타일을 제안하는 반면에 이 형식들은 미학적 속성의 결여와 보는 이의 미학적 느낌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의 부재로 우수한 그래피티 아트로서 인정되는 데 실패한다. 사실상 태그와 개인적 표시는 예술적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피티는 기본적으로 롸이터들의 현실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갱영역의 표시들은 또한 그래피티의 정의이며 그것은 주로 주변에 일어나는 뉴스를 제공하는 태그와 메세지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강화와 미화를 위한 벽화들은 또한 대부분의 벽화들이 허용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래피티의 한 형식이다. 이 들은 모두 컬러풀하고 복잡하다. 그들은 상당한 완벽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벽화들은 그래피티 아트 스타일이나 전형적인 그림에 있어서 행해질 수 있다. 결론적인 그래피티의 형식은 그래피티 아트는 그래피티 또는 그래피티 스타일의 예술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창조적으로 스프레이페인트를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이 토론의 요지이다.  현대적 그래피티 아트는 뉴욕에서 발생하였고 처음에 뉴욕스타일의 그래피티로 알려졌다. 이 예술 형식은 십대들이 태그나 그들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마커를 사용하던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고 그들이 살던 지역이나 지하철 차량들에 계속 수많은 그래피티가 행해졌다. 이 경향은 Demitrius라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계 미국인 태그명 Taki183의 등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태깅은 곧 어떤 이의 이름을 도시 전역에 걸쳐 알리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뉴욕 이전에 필라델피아에서도 태깅이 행해졌고 Cornberad와 Top Cat라는 태그를 가진 이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유명했다. Top Cat의 스타일이 뉴욕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길쭉한 레터링을 가진 브로드웨이 스타일로 불렸다.  스프레이페인트 모험은 크기와 색에 있어서 발전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똑같이 했기 때문에 이름을 가능하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눈에 띠는 곳에 쓰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태거들은 색,형식,스타일에 있어서 전체적 예술적 부분으로서 태그를 만들어 내기 위한 새로운 도구들을 창조적으로 사용해 차별화되었다. Throw-up이라 불리는 방식의 단색의 태그와 필체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고 두가지 색의 태그는 아웃라인이나 버블레터로 쓰여졌다. 이 스타일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고 곧 더 복잡한 스타일로 발전하였다. 스타일은 더 어려워지고 3D효과를 만드는 곧은 글자를 사용하게 된다. 각 작품의 하나의 완성품으로서 다양한 색채 또한 가지게 되며 대개 벽화로 어느정도 크기를 가지게 되고 만화 캐릭터와 유사하거나 똑같은 것들이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려졌다. 이에서 비롯되어 모든 그래피티 형식에서 작가의 이름이 포함되었고 작가들이 알려지길 원하기 때문에 중심부에 위치하거나 장식적으로 쓰여지는 것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태그를 잘 보이는 위치에 쓰기 위한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태그를 많은 곳들에 쓰는 것에 반해서 현대 그래피티 아트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기본적인 힘이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롸이터들은 지하철 차량에 그래피티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Subway Art라는 명칭이 비롯되었다. 트레인 페인팅은 가능한 자주 차량에 그림을 그리고 지하철 한 라인의 킹이나 퀸으로서 최고의 아티스트로 인정받기 위한 이들이 당시 스타일 전쟁을 벌이는 장을 형성했기 때문에 그래피티 아트의 발달에 수단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 컬러풀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차량에 남긴다면 그것은 많은 이들에 보여지게 되었고 뉴욕시의 맨하탄, 브롱스, 브룩클린, 퀸즈, 리치몬드를 걸쳐 순회하는 뉴욕시 지하철이었기에 다른 롸이터드에 의해 중요시되는 것이었다. 킹이나 퀸이 되기 위해선 수많은 곳에 그 또는 그녀의 이름을 단순히 남기는 것은 부족했다. 반대로 스타일과 예술적 재능을 지속하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목표는 창조성, 색, 역동성, 아웃라인으로 인해 구별되고 예술적 느낌을 Burner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단지 수많은 장소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 노선을 따라 확립된 그 또는 그녀의 영역은 인정된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예술적 재능이다. 이 시기동안 형성된 스타일들은 round popcorn과 buble letters, wild style 다르고 거의 읽기 어렵고, 컴퓨터 또는 고딕체, 3D글자,색이 섞이는 Fading, 만화 캐릭터등이 사용된, 복잡하고 서로 맞물리는 글자등의 스타일이다. 복잡한 작품을 만들에 내는 능력은 태거와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구변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태거들은 낙서를 하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예술을 한다.  트레인의 높은 가시성과 잠재적인 관중들은 아티스트들이 이 형식의 예술에 참여하도록 더욱 북돋았다. 뉴욕시의 강한 anti-graffiti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은 더 다양해지고 곧 전세계적으로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피티 아트가 세계적으로 퍼지는데 가장 큰 촉진 역할을 해온 것은 랩뮤직과 관련된 힙합문화이다.  Subway art는 이제 지하철 차량이 더 이상 선택하는 캔바스가 아니기에 spraycan art와 같은 용어로 사용된다. 게다가 모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법,경찰,위험한 지하철 기지의 환경등에 의해 그 또는 그녀의 작품을 지하철 차량에 남길 수 없다. 모순적으로 스프레이 아트에 있어 최근의 혁신은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작품이 미국과 대륙을 거쳐 순회를 한다는 기대와 함께 철도시설, 화물열차에 그림을 그리는 freight art가 행해지는 것이다.  그래피티를 설명하는데 있어 두가지 주요한 질문이 있다. 첫째, 누가 그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가 이며 둘째, 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spraycan art를 계속 하느냐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는 일은 그래피티 아트가 가난하고 도시의 하층 미국 키즈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반수가 백인 중류층 출신이고 세계적을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래피티를 합니까?"라고 물었을때 뉴욕의 그래피티 관련부 경찰 Kevin Hickey는 이렇게 말한다. "뉴욕시에 사는 이들이죠". 그들은 아주 부자에서부터 아주 가난한 이들 포함한다. 12세에서 30세까지 중의 그래피티 키즈들안에서 일반적으로 그들을 분류할 수는 없고 남녀 아티스트들이모두 있다. 과거에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대개 혼자 작업을 했으나 작품들의 크기와 복잡함과 동시에 안전문제는 아티스트들이 3명에서 10명 정도의 크루로 활동하도록 했다. 크루 구성원들은 같이 작업을 하고 한 크루 이상이 같이 활동을 하기도 한다. 크루에들어가기 위해선 스타일있는 작품을 만들고 그 또는 그녀의 특별한 스타일의 개발에 대한 잠재성을 보여준다. 크루는 대개 크루 멤버중 가장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은 킹 또는 퀸을 중심으로 한다. 왜 그래피티 아트를 하는가 하는 이유와 가치는 그래피티를 하는 이들에 따라 다양하다. 주요인은 아티스트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인정과 fame이다. 그래피티는 또한 자기 표현의 형식이다. 그래피티로서의 예술은 다른 롸이터들과 일반대중들과 교류할 수 있는 창조적 방법이다. 아티스트의 정체성,표현,아이디어등을 교류한다. 판단은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능력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을 문화,언어,인종등의 다름에 관계없이 연결하기에 가치있다. 게다가 크루로 그래피티 활동을 하는 속에서 동일한 목표를 위해 함께 일을 하고 팀웍을 형성한다. 다른이들과의 집단속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아티스트들에게 가치있는 것이다. Graffito라는 책에서 Walsh는 어떤 그래피티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작품을 억압적인 정치적, 상업적 명령에 대한 의식적 범죄로 여긴다고 했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그들자신을 확립된 예술 시장과 큐레이터에 의해 결정되어 갤러리에 전시되는 갤러리 시스템에 반하는 혁명으로 바라본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또한 대중과 사적인 공간에 그려진 작품을 서구적 자본주의와 사적재산에 반하는 것으로 여긴다. 물론 대다수의 그래피티아티스트들은 그들이 그래피티를 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상을 받는 것을 즐긴다. 이 이유들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그래피티 아트가 아트이며 또한 그래피티가 그것의 불법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예술형식으로 타당한지에 대해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뉴욕시 지하철차량에 보여지고 현대에 spraycan art로 발전해온 그래피티는 예술이다. 그래피티 아트의 결과물들은 확립된 스타일과 기술과 Spraypaint라는 기준에 의해 또한 구체화된 예술형식이다.  예를 들면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스프레이페인트를 사용하는 방법과 노즐에 익숙해지는 방법과 동시에 다른 예술적 효과를 위해 스프레이 캔에 다른 종류의 노즐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하자. 그래피티 아트의 형식은 방법에 따라 태그를 만들고 와일드스타일을 해보고 그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전반적인 그래피티의 요소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그래피티 아트 세계의 확립된 관습적 과정을 통해 여러해 동안 발달해왔다. 그래피티아트는 뛰어난 낙서의 형식 안에서 태깅과 같은 자연발생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작품의 완결성은 많은 구상과,계획,노력등과 관계가 있다. 그래피티아티스트들은 처음에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나서 특징과 색을 결정한다. 다음에 캔바스나 그릴 곳을 선택하고 거기에 기초 스케치를 한다. 그 다음에 색을 채우고 장식을 하고 마지막 아웃라인을 그리면 완성된다. 그래피티는 또한 그 안에서 만들에 내는 이야기가 나타나는 선,색,구조등의 요소에 의해 분석된다. 왜 그래피티아트가 예술로서 보여지느냐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작가의 의도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작품이 보는 이들과의 느낌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예술로서 보여지는 것을 의도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예술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표한하고 예술작품들 통해 그들 각자의 느낌을 나누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그래피티 아트는 다른 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능과 더불어 빈 공간에 있는 벽이나 버려진 건물과 같은 불쾌하게 보이는 지역을 미화할 수 있다. 게다가 기본적 색깔의 요소에서부터 예술로서 특성화되기 위해 복잡한 예술적 의도까지 모든 미학적 속성과 기준들은 모두 스프레이 아트의 예로 보여지는 것들이다. 갤러리나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과 그래피티 아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왜,어떻게 그래피티가 쉽게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에 있어서 위치와 보여지는 방식이다. 사실 위치와 보여지는 방식은 스프레이캔 아트가 예술로서 진정 받아들여지는 데 대한 가장 중요한 장애이다. 그래피티 아트는 단순히 그것이 전형적인 위치와 방식으로 ,즉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전시되어 보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피티가 위치하는 벽이나 허가되지 않는 지하철 같은 곳은 그래피티가 환영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그래피티가 파괴주의(vandalism)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것이 예술로서 그래피티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피티 아트를 환영받지 못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은 표면으로부터 제거를 정의하는 파괴주의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래피티 아트의 파괴주의적 양상은 독특한 점으로 고려할 수 있으며 파괴주의로 인해 예술형식으로서는 비난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60피트길이와 21피트 높이를 가진 작품은 20~30여개의 스프레이 페인트가 사용되며 적어도 8시간정도가 소요된다. 또 다른 그래피티 아트의 도전은 사람들이 공적인 자금으로 그래피티를 제거하기 위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 오는 대중으로부터의 압력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건물,게시판,캠페인광고,전단등이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압력을 받는다는 논쟁에 반대한다. 스프레이캔 아트는 일반적으로 그래피티는 특히 태깅에 있어서 갱들과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에서 다른 비평들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정도의 그래피티들이 갱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 Graffito라는 책에서 Walsh에 따른 수이다. 그는 LA와 San Francisco 상황을 통해 이 수를 제시했으며 그가 갱이라고 정의해 언급하는 숫자는 불확실하다.) 모든 그래피티 아트의 예가 그래피티 형식에 좋은 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피티는 또한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나 확실히 이것은 그래피티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추상예술이나 피카소의 입체주의이상의 것으로 하게 할 수는 없다. Goldman의 미학이론은 그래피티아트의 위치와 보여지는 방식의 문제로 제시한다. Goldman은 예술이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미학적으로 채워주는 방식으로 다른 세계를 가져다 준다고 주장한다. 이 현실세계의 제거는 갤러리나 오페라 하우스의 어두운 장치들의 분위기에 의해 강화된다.우리가 예술과 만날 때는 대부분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우리가 일어날 거라 기대하는 위치에 우리는 있게 된다. 그러나 그래피티 아트는 이런 경우와는 다르다. 그래피티는 갑자기 기대치 않은 장소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래피티를 이해할때 우리는 동시에 다른 세계와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우리는 전시장과 같은 형식적인 장치 바깥의 도달하게 하는 예술에 익숙하지 않다. 보는 이들이 예술형식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스프레이캔 아트는 때로는 놀랄만한 방식으로 보는 이들에게 다가간다. 충격적이고 놀랍게도 뉴욕시 지역의 어둡고 침침한 역들을 움직이는 컬러풀한 트레인들이 보여져 왔다. 스프레이캔 아트는 제한이나 갤러리나 전시장 시스템의 규율에 의해 갇혀있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게 완벽하게 열려있는 예술형식이다. 아마 이것이 그래피티의 유일한 범죄일 것이다.  요컨대 제도적 이론은 예술은 예술세계의 구성원들에 의해 가능한 예술적으로 결정되어 받아들여지는 예술세계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래피티 아트는 갤러리나 전시장에 영구히 전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예술이 아니라고 여겨지는데 이런 비평은 예술세계가 예술로서의 그래피티를 인정하는 예들로 인해 축소된다. 1970년대에 뉴욕과 유럽의 갤러리들은 그래피티를 예술세계로 끌어들였다. 뉴욕의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Top to bottom, end to end로 Whole car작업을 한 Lee Quinones는 로마에 있는 Claudio Bruni's Galleria Madusa에 그의 작품전시를 요청받았다. 또한 덴마크의 아트 딜러인 yaki Kornblit는 1984년과 1985년에 로트르담에 있는 Boyanano von Beuningen에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했다. Jean Paul Basquiat는 Andy Warhol과 1985년에 공동작업을 했다. 1996년에 또한 Twist라는 태그로 알려진Barry McGee는 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 전시장에 그래피티 아트를 전시했다. 그래피티가 예술세계에 소개되었을때 두가지 경향이 발생했다. 첫째, 예술세계의 수집가,딜러,큐레이터,예술가들과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스타일에 있어 발전하도록 돕는 이들은 그들의 예술적 지식을 초심자들과 나눈다. 두번째, 그래피티 전시는 그래피티를 예술세계의 전반적 부문으로 확장시키게 한다. 게다가 LA와 시카고와 같은 도시는 예술형식은 육성하고 도시에 파괴주의 보여지는 그래피티 아트를 줄이는 합법적인 그래피티 아트를 하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재능을 인정받도록 한다. 또한 Phun Factory나 뉴욕의 United Graffiti Artists와 같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단체는 버려진 건물, 회사나 공원에 있는 지역단체 벽과 같은 합법적인 그래피티를 하기 위한 장소를 준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세계에서 예술로 인정받는 스프레이캔 아트형식에 있는 그래피티이다. 예술계에서 예술로 그래피티가 인정받는데는 두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예술계의사회적,정치적,경제적 영향으로 인해 예술로서 그래피티의 인정이 예술 형식으로 인식되고 이해되는 것을 증가하는 것을 돕는다. 두번째로 이 인정은 그래피티가 파괴주의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항상 없어져야 한다는 강압적인 일반론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사실상 스프레이캔 아트는 정신적으로 예술형식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불법적이거나 그래피티 아트로서 고려되는 벽에만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는 그래피티아트의 스타일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스프레이페인트로 캔바스 위에 그려진 작품과 그래피티 스타일을 가진 작품들은 스프레이캔 아트로 고려된다. 그래피티가 최상의 상황으로 개인적 또는 대중적인 장소에 보여져야 한다는 점은 어떤 불법성도 미화하지 못하나 그래피티가 올바로 이해되어 완벽하게 대중에게 접근하고자 하는데 대한 아이디어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그래피티 아트의 수용을 증가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기술의 채택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책,잡지,영화와 아티스트들은 그 자체가 어떻게 어디에서 그래피티가 조화되고 전형적인 방법하의 단계들과 어울리게 되는지를 이해하도록 한다. 예를 들면 와일드 스타일은 각 아티스트들의 알파벳에 대한 해석을 변화시켰으나 그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색,페이딩,전경과 후경의 사용을 기반으로 글자들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 도전들이 전형적인 방법에서 창조되고 제도적인 장치에 의해 보여지는 경우,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사람들이 이 제약들 바깥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작품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예술로서의 일정한 그래피티 형식을 특성화하는 것은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그래피티가 반항적인 파괴적 동기를 가지고 행해지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이런 것이 다른 예술형식과 같이 보는 이들에게 미학적 즐거움을 주는 혁명적이고 진정한 예술형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그래피티의 몇 형식들은 4가지 기준에 따라 예술이 되었다. 첫째,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한 예술가의 의도에 의한 그래피티 표식을 매일 분류한다. 두번째, 그래피티 아트는 스타일과 기술에 있어서 발달의 역사를 확고히 했다. 세번째, 그래피티 아트는 예술게에의해 인정받게 되었다. 4가지 기분은 그래피티가 예술이라고 표현되는 대중적인 반응이다. 모든 대중들이 그래피티가 좋은 것, 나 쁜것이라고 반응하거나 또는 아주 가치있다고 하는 것은 평가에 대한 다른 논의이자 그래피티가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다. 평가된 논의는 사실 어디에, 언제,어떻게 그래피티 아트가 보여져야 되느냐에 대한 것이다. 위 기준들은 그들이 다른 예술형식을 합법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왜 그래피티 아트가 예술인가를 서술하는 가장 중요한 답은 어디에 아티스트와 관중들이 그래피티 작품들이 예술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이해적 개념이다. 이는 무엇이 예술가들에 대한 창조된 예술을 만들고 무엇이 동일하게 관중들에 대한 창조된 예술을 만드느냐를 이해하느냐의 문제이다. 기준들에 따르면 이 두가지 관점은 동시에 예술로서의 그래피티 아트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예술 형식과 같이 그래피티 아트는 아티스트와 관중이 최대의 미학적 만족을 작품의 능력에서 받았을 때 명확히 예술이 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그래피티형식을 말하는 미학적 이론과 기준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스프레이캔 아트 형식에 있어서의 그래피티는 예술이다. 그래피티는 형식,색, 다른 기본형식과 동시에 이 요소들을 미학적으로 예술화하는 구조를 만드는 요소의 배합을 가지고 있다. 스프레이페인트를 가지고 하는 것은 그래피티가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예술이나 그래피티 아트로서 만족시키는 필수요소는 아니다. 이에 더해 스프레이캔 아트는 아티스트의 의도나 관중에 대한 가치에 따라 분석되며, 진정한 예술이라고 제시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피티 아트의 일반적 인정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물은 그것의 위치와 보여지는 방식이다. 그러나 예술계에 의한 그래피티 아트의 수용의 예는 보여주는 것이 어떤 것이 예술이라고 결정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전형적 방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래피티 아트는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요약하면 스프레이캔 아트의 형식에 있어서 그래피티는 갤러리나 전시장에서 발견되는 다른 예술작품과 같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152    문화속 생태를 알아보기 댓글:  조회:2543  추천:0  2017-01-30
                  코끼리 바위   ○…꽃은 꽃이 아니다 꽃은 정치고 종교며 살아 있는 전쟁입니다. 이승기가 나오는 드라마 에는 이(李)씨들도 잘 모르는 오얏꽃이 숨어 있었습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꽃인 오얏꽃이 지금은 오얏 이씨도 무엇인지 잘 모르는 죽은 꽃이 되었습니다. 꽃이 정치고 문화이며 종교이며 권력임을 오얏꽃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나팔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으면서 나팔꽃에 내려앉은 아침이슬을 사랑하는 그들의 자연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일본 벚꽃과 국화 이야기를 할 때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 백성의 영혼이 벚꽃이고 가미카제로 대표되는 일왕을 위해 목숨 바치는 마음이 바로 벚꽃입니다. 해방 이후 일본의 음모로 대한민국 곳곳에 벚꽃이 심기고 벚꽃 축제가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가 되어버렸는데 대한민국 권력과 재벌은 벚꽃과 그 선이 닿아 있습니다. 국화는 일왕의 꽃이고 일본 해군 욱일승천기도 국화 꽃잎입니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친일시이고 "천황 폐하 만만세"를 외친 서정시(?)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일본 국화 산업이 병원 장례식장 산업과 종교 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로 대한민국 장례식장을 점령한 것도 대단합니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는 종이연꽃 꽃상여를 타고 불교식 극락왕생을 하셨습니다. 일본의 장례 문화에서 흰 국화를 빌려왔습니다. 소복 문화와 매란국죽 동양 문화, 불교식 연꽃 장례를 거부하는 다른 종교의 불편함, 장례식장 산업과 국화 화훼 산업의 이해와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입니다. 서양 기독교 문명이 만든 최고의 종자 개량 꽃이 장미이듯 일본의 살아 있는 신 왕을 상징하는 국화는 일본이 만든 최고의 종자 개량 꽃입니다. 나라꽃 무궁화가 법으로 나라꽃이 되지 못하는 이유와 찬송가에서 시작된 애국가 이야기를 풀었을 때는 참 반응이 무서웠습니다. 서양 기독교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주류로 되면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꽃은 장미가 되었습니다. 장미는 메시아의 약속,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합니다. 하얀 장미는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붉은 장미는 예수의 순교를 상징합니다. 어버이날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본 마리아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 핀 꽃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 머리에 박힌 가시를 쪼아 빼던 작은 새 로빈이 좋아하던 호랑가시나무 열매입니다. 그냥 예쁘고 아름다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을 좋아하도록 길들여진 것입니다. ○…나무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1위는 소나무고 2위는 은행나무입니다. 학교에 은행나무가 많은 이유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을 행단이라 하는데 본래 살구나무에서 은행나무로 바뀝니다. 옛날에 은행나무를 서원과 향교에 심었고 지금도 학교에 은행나무가 많은 역사적 이유입니다. 지금 학교에 제일 많은 향나무는 본래 공자를 제사지내던 곳에 심던 나무인데 일제 강점 이후 일본 나무 가이즈카 향나무가 학교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남교육청도 가이즈카 향나무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점집 대문에 왜 대나무를 걸어두는지, 아버지 장례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 장례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 이유도 살펴보았습니다. 남해·거제·통영 사람에게는 소나무보다 귀하고 소중한 나무 동백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삶 속에서 동백 이야기를 보충해 쓰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보신탕집 등 식당 이름에 ○○나무집이 많은 이유도 찾았습니다. 집에 안 심는 나무와 그 이유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삶은 나무와 함께했습니다. ○…동물 옛 한국화에서 고양이는 칠순 고희를 축하하고 장수하시라는 뜻입니다. 할머니 장롱에 많은 박쥐는 복을 주는 장수와 신선의 동물입니다. 이미 사라진 표범과 범(호랑이) 이야기를 할 때는 경남이 표범의 마지막 멸종지역이라 참 아쉬웠습니다. 장수·합격·출세를 기원하는 동·식물 이야기에서는 삶 속 문화재 대부분이 그런 것의 상징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게와 오리에서는 숨겨진 갑(甲) 문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토종 늑대를 우리말로 이리라 하고 북쪽에선 승냥이라 불렀는데 일제 강점 이후 '이리'가 사라지고 일본식 한자말 '늑대(느꾸대)'가 표준어가 된 슬픈 사연도 풀었습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사랑하고 두꺼비가 그려진 술을 먹으며 모래성을 쌓아 두꺼비에게 새집을 달라는 두꺼비 사랑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토끼·말·용 같은 띠 동물도 해마다 새해가 되면 풀었는데 12년을 했으면 완성(?)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새 이야기 제비가 사랑받는 이유와 제비족의 어원을 풀면서 제비는 진짜 바람을 피울까도 알아보았습니다. 서양 독수리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경찰관과 소방관의 마크가 되고 독수리 문화가 그대로 수입되는 과정도 살폈습니다. 우리말로 고니가 맞는데도 일본말 백조가 더 많이 쓰이는 슬픈 이유도 찾았습니다. 까만 백조(흑조)도 찾아보았습니다. 이문세와 혜은이 노래의 파랑새와 녹두장군 전봉준의 파랑새는 같은지 다른지 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술래잡기 할 때랑 조용필이 왜 '못 찾겠다 꾀꼬리'를 부르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까치 설날이 섣달 그믐이고 연하장에 까치를 그리는 이유, 앞니 빠진 개우지와 지붕 위 까치에게 빠진 이를 던져주는 이유도 찾았습니다. ○…화투와 동식물 열두 달 마흔여덟 장 동양화 이야기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동양문화가 다시 화투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지난 2000년 문화와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도 있지만 한·중·일 삼국의 공통된 문화코드도 있었습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참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정대수        
151    영문시 "국화옆에서" 댓글:  조회:3225  추천:0  2017-01-30
  서정주 "국화옆에서" 영문시   국화(菊花) 옆에서 서정주(徐廷柱)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Beside a bloomed Chrysanthemum   - JeongJoo Suh (poet)   Perhaps to make a Chrysanthemum bloom, the owl must have cried since spring.   Perhaps to make a Chrysanthemum bloom, the thunder must have cried in the dark clouds.   Oh, Chrysanthemum, looking like my elder sister, who stands in front of her mirror after a long journey through the back alleys of her youth, her heart tightened by her longings and regrets.   Perhaps to make your yellow petals bloom the first frost must have fallen last night. I could not sleep. 총 획   추천 답변 Beside a bloomed Chrysanthemum   - JeongJoo Suh (poet)   Perhaps to make a Chrysanthemum bloom, the owl must have cried since spring.   Perhaps to make a Chrysanthemum bloom, the thunder must have cried in the dark clouds.   Oh, Chrysanthemum, looking like my elder sister, who stands in front of her mirror after a long journey through the back alleys of her youth, her heart tightened by her longings and regrets.   Perhaps to make your yellow petals bloom the first frost must have fallen last night. I could not sleep.
150    [시문학소사전] - "팝 아트"란?... 댓글:  조회:4356  추천:0  2017-01-29
요약 팝 아트라는 용어는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처음 사용하면서 유래했으며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이 선구자이다.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추상표현주의가 추상적·개인적인 작품을 추구했다면 팝 아트는 보다 객관적·보편성을 중요시했다. 팝 아트는 순수예술이 주장하는 우월성과 전위미술의 허식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전통을 파괴했고 현대생활에 강한 충격을 주는 대중문화의 모든 현상을 가리지 않고 특징적으로 묘사했다.  재스퍼 존스, 로버트 로젠버그 등이 큰 영향을 끼쳤으며, 유명한 작가들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클레이즈 올덴버그,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블레이크 등이 있다.  팝 아트는 20세기 중반 매스 미디어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적합한 대표적인 미술양식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팝 아트(Pop art) 팝 아트라는 명칭은 미술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의 서술적인 표현양식에 대하여 언급한 데서 유래했다. 영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리처드 해밀턴에 의하면 팝 아트는 "통속적이고, 일시적이고, 소비적이고, 값싸고, 대량생산적이며,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선동적이고,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미술 양식"이다. 특히 미국의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클레이즈 올덴버그, 톰 웨셀먼, 제임스 로젠퀴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블레이크 같은 팝 미술가들은 작품에서 현대생활에 강한 충격을 주는 대중문화의 모든 현상을 가리지 않고 특징적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긍정도 부정도 담지 않고 노골적·직접적으로, 또한 그림 자체를 있게 한 매스 미디어에서 사용된 정확한 상업적 기법을 수단으로 도상학적인 측면(텔레비전이나 만화책, 영화, 잡지 및 모든 형태의 광고에서 고안됨)을 뚜렷하게 객관적으로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에서 매우 개인적인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물결이 가라앉을 무렵 팝 아트는 보다 객관적·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미술 양식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과거의 순수예술이 주장하는 우월성과 당대의 전위미술에서 볼 수 있는 허식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전통을 파괴했다. 팝 아트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했으며 매스 미디어에 의해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했기 때문에 문화적인 대사건이 되었다. 통속적·선정적·반미학적인 대사건이 농담으로 평가되어왔지만, 생활에 직접 반응하는 미술, 즉 전문가와 훈련받지 않은 관람자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민주적·비차별적인 미술로서 평가되었다. 팝 아트는 당대의 파리풍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진지함과 좀더 넓게는 유럽에 전쟁을 몰고온 정치적·문화적 상황을 조롱한 1920년대의 허무주의 운동인 다다이즘의 후예로 볼 수 있다. 당대의 대량생산물을 찬양함으로써 미술과 생활의 간격을 좁히려고 한 미국 다다이즘의 대표자인 마르셀 뒤샹은 팝 아트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팝 아트에 영향을 준 다른 미술가로는 스튜어트 데이비스, 제라드 머피, 페르낭 레제 등이 있는데 이들은 기계공업시대의 정밀하고 대량생산적·상업적인 물건을 그렸다. 직접적인 선조로는 1950년대에 비록 회화적이고 표현적인 기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깃발과 맥주깡통 등을 그린 미국의 미술가 재스퍼 존스, 래리 리버스, 로버트 로젠버그 등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상업 인쇄물에서 사용하는 색점에 이르기까지 연속만화를 충실하게 복제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과 수프 깡통의 상표와 비누 상자, 나란히 배열된 청량음료병을 있는 그대로 정밀하게 그리거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찍어낸 앤디 워홀의 작품, 욕실의 붙박이 설비와 타자기 또는 거대한 햄버거 등을 부드러운 플라스틱재로 제작한 클레이즈 올덴버그의 작품, 얼굴 없는 인물의 섹스 심볼을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린 톰 웨셀먼의 〈미국의 거대한 누드 Great American Nudes〉, 그리고 폐품처리장에서 주워온 실제의 환경물(간이식당의 식탁과 버스 등)에 실물 크기의 석고 인물을 설치한 조지 시걸의 구조물 등이 있다. 대부분의 팝 미술가들은 작품에서 비개성적·도시적인 태도를 추구했다. 그러나 미묘한 표현으로 사회를 비판한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올덴버그의 늘어진 오브제와 워홀의 똑같은 평범한 이미지의 단순한 반복은 명백히 혼란스러운 효과를 일으킨다. 시걸 작품의 신비하고 고독한 분위기는 공공연하게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상징적·익명적·공격적인 반면 영국의 팝 아트는 주관적·직접적이며 그들로서는 비교적 거리감이 있는 팝 문화에 대해 다소 낭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국의 팝 미술가들은 주로 과학기술과 대중문화를 다루었는데 미국의 몇몇 팝 미술가들은 이러한 생각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워홀은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삼았으며 실제 작업에 있어서도 기계가 하듯 작품을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팝 아트는 일반대중에게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 서양의 산업국가에서 발생한 매스 미디어와 고도의 산업사회에 적합한 대표적인 미술양식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팝 미술가들이 스스로 내건 목표는 바로 생활과 구별할 수 없는 미술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 팝아트가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조류 중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다. 팝아트는 만화 · 광고 등으로 대중성을 얻은 이미지를 사용해 대중문화의 한 단면을 그려낸다. 해밀턴의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는 팝아트의 시작을 알렸다. 최신 가전제품과 생활도구로 가득한 현대 가정의 모습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보디빌더 남자가 쥔 사탕 포장지의 ‘POP’이란 글자에 착안하여 비평가가 ‘POP-ART’라는 말을 사용한 후 이러한 경향의 미술을 팝아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밀턴(Hamilton, 1922~2011)을 비롯하여 존스(Johns, 1930~ ), 올덴버그(Oldenburg, 1929~ ), 릭턴스타인(Lichtenstein, 1923~1997), 워홀(Warhol, 1928~1987) 등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오늘날 가정을 색다르고 멋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해밀턴, 1956년 근육질의 남자와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자신을 뽐내듯이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도색잡지에 등장할 듯한 남녀가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남성은 “당신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여성은 “당신도 저처럼 날씬해질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구석구석으로 눈을 돌리면 현대문명의 산물이 가득하다. 텔레비전, 소파 위에 펼쳐진 신문, 녹음기 등이 보인다. 계단에서는 가정부가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한 쪽에는 포드자동차 휘장이 걸려 있다. 벽면에는 전통 액자에 그림인지 사진인지 모를 인물이 있는데 그것보다 거의 네 배나 커 보이는 만화 표지가 걸려 있다. 창문 밖으로는 대형 극장 간판도 보인다. 팝아트는 ‘고상한’ 미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흔히 문화를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보통은 저급문화에 대중예술을 등치시킨다. 이러한 분류는 다수 대중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엘리트주의적 발상의 표현일 것이다. 해밀턴은 대중이 공유하는 감성과 이미지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단면을 무심히 드러내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팝아트 작품에는 자본주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상징을 보여주는 온갖 상품이 등장한다. 텔레비전 · 라디오 ·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통조림 ·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포드 시스템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보급된 자동차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어딜 가나 깜빡이는 신호등, 교통 표지판도 현대를 상징하는 소재 중 하나다. “찾고 있던 소재는 유행 · 변조 · 소비성 · 기지 · 색정 · 글래머 등이었다. 저렴하고, 대량 생산적이고, 젊고, 대규모 사업적인 것이어야만 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해밀턴은 자기 작업의 의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세 개의 국기〉 존스, 1958년 팝아트 화가들은 평소 대중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그대로 빌려 쓰기도 하는데, 존스의 〈세 개의 국기〉도 그중 하나다. 전 세계 사람이 다 알고 있을 법한 미국 국기를 그대로 차용했다. 전통적 재료인 왁스에 용해된 염료를 사용해 성조기를 삼단으로 쌓아올린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몇몇 성조기 연작도 내놓았는데, 국가를 대표하는 권위의 상징을 마치 하나의 진열된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미술작품과 사물의 경계, 예술적 이미지와 상품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전통적 예술관에 반기를 들었다. 숫자, 과녁, 지도 등도 그가 즐겨 다룬 대중적 이미지였다. 올덴버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치즈버거〉도 현대사회의 대표적 상품을 그대로 미술작품으로 전환시켰다. 치즈버거가 두 개 있다. 작품 제목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이라고 적혀 있듯이 햄버거에 들어갈 주요 재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일단 햄버거 빵이 입을 벌리고 있고 맨 밑에 야채가 있다. 바로 위로 치즈가 있고 토마토 조각도 보인다. 재료를 부드러운 햄버거 소스가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물 햄버거의 크기보다 훨씬 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하드보드, 석고 등의 재료를 사용해 일상용품을 묘사한 많은 조각을 발표했다. 주로 타자기 · 선풍기 · 햄버거 · 아이스크림 · 담배꽁초 등을 소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작가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대시킨 작품의 크기다. 과장을 통해 일상용품을 낯설게 만든다. 가공할 크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작품을 보면서 일종의 괴리감을 느낀다. 앤디 워홀은 특히 현대 소비사회 특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을 한다. 포스터 · 만화 · 통조림 · 전기제품 · 자동차 등 대량 소비 시대의 기성품을 주요 소재로 한다. 대량 복제가 가능한 실크스크린을 이용하여 다양한 색채로 반복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만화의 한 컷, 신문 보도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대중적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기계처럼 어떤 작업을 하든지 간에,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와 그리고 나의 겉모습을 그냥 보기만 하면 그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감추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릴린 먼로〉 워홀, 1967년 워홀의 〈마릴린 먼로〉는 미술과 복제 기술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실크스크린 기법은 대량 복제가 가능한 인쇄 방법을 이용하여 미술품의 대량 생산을 효과적으로 실현했다.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표현 대상에서도 철저히 소비사회의 논리와 문법에 충실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대중의 시선이 쏠렸고, 언론은 연일 그녀의 삶을 소개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워홀은 그녀를 작품에 끌어들인다. 실크스크린으로 얼굴을 연속적으로 병렬하거나 하나씩 독립적으로 제작했다. 유명인을 그리면 자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존 F 케네디 등 미디어가 주목하는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 인사의 얼굴을 활용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미술의 상업화’와 동시에 ‘상업의 미술화’를 추구했다. 물론 현대 문화 중에 상품 아닌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단지 미술에 바코드를 붙이는 데 머물지 않고, 철저히 상업적인 것을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여 성공한 화가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에게 솔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상업미술가로 시작했는데 이제 사업미술가로 마무리하고 싶다. 사업과 연관된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라고 할 정도로 미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릭턴스타인은 〈키스〉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만화나 만화영화의 정지 장면을 자주 사용한다. 비행기 폭격 장면이 나오고 원더우먼이 등장한다. 마치 텔레비전의 한 장면이 툭 튀어나온 듯 하고, 길거리를 거니는 청소년의 티셔츠에서 본 듯한 느낌도 준다. 그는 《뉴욕 타임스》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평론가의 호평과 함께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만화 속 인물이 아닌 직접 유명한 사회 인사를 다루기도 했는데, 작업을 통해 결국 만화 주인공으로 둔갑한다. 중국혁명의 선두에 서서 승리를 이끌어낸 마오쩌둥을 묘사한 작품도 내놓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마오쩌둥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미국 영화의 주인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에서도 험한 대장정 과정에서의 비장함이나 고뇌는 찾아볼 수 없다. ==================================================================== 미술과 자본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보자. 미술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소비 과정에서 판단된다. 오늘날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미술품은 극소수 부자들에 의해 향유된다. 물론 중간 정도의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도 이에 동참하지만, 그들의 몫이란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미술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 오늘날 이들은 예술가라는 가히 듣기 나쁘지 않은 명칭을 부여받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노동을 통한 미술 생산이 그 명칭에 상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술의 생산이 전적으로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도층의 미각에 호소하는 까닭이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문화적인 지도층쯤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미각이 대중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미각이 형성해 놓은 미술은 한 시대의 주류로서 구가된다. 예술에 대한 미각은 지식과 더불어 철저하게 계급화되어 있다. 가령 부유층이 고급 오페라를 즐기고 노동자층이 값싼 영화관을 찾는 것은 대중적 취향이 다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고급문화는 교육받은 것이며 이 기회는 결코 균등하지 않다. 약간 빗나간 비유이지만, 명품과 짝퉁으로 구별되는 소비의 차이가 또 다른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술품은 매우 품위 있는 명품들이다. 희소성이 있다는 점과—대체로 미술작품들은 유일하다—손으로 직접 만들어졌다는 점—기술에 의한 복제품이 아니라는 점도 내포한다—그리고 무엇보다 값이 비싸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면만이 구별의 기준은 아니다. 미술로 그려진 혹은 미술에 담겨진 내용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무제, 1972년, 개인 소장 고급한 미술은 그 내용도 교양을 지닌 소비층의 미각에 알맞은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철학적인 해석이나 사유가 필요한 현대의 추상회화들은 고학력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호소력이 없다. 그래서 모더니즘 미술은 원래 그것이 출발했을 때에 지녔던 유토피아적이고 전(全) 민중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술작품에 상응하는 환경, 즉 현대적으로 지어진 미술관에 걸리고, 그곳을 찾는 교양 있는 자산가들에 의해 전시되고 팔리며, 그들이 소유한 집의 넓은 벽에 걸린다. 사실 잘 살펴보면, 현대의 미니멀 아트(Minimal Art)나 개념미술(Concept Art)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식 건축물 내부에 걸려 있다. 그 크기나 형태마저도 그런 용도를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팝아트(Pop Art)라 불리는 현대적인 미술 사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팝아트가 그려 내고 있는 것은 교양과 자본을 소유한 상류층에게는 너무 속물적이며 일상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나 캠벨수프 캔 그리고 연예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들의 모습은 상류층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매우 대중적인 소재들이며, 나아가 대중적인 소비경제를 전제로 존재한다. 대중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현대미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사는 한참이나 위로 올라간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나 정물화는 대중적인 의식을 배경으로 태어난 것들이다. 그림 속 과일이나 사람들의 일상은 역사화나 초상화 등에 비교하여 '의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려 냈던 도시 풍경이나 사람들이 모인 술집, 세잔이 그린 정물화 같은 것도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의 미술과 다르게 팝아트 예술가들은 현대적인 특수한 상황에서 대중의 일상과 사회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피터 아르스텐(Pieter Aersten),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에 머문 그리스도, 나무에 유화, 1552년, 빈 미술사 박물관 에드가 드가, 압생트, 캔버스에 유화, 1876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그럼 팝아트는 무엇인가? 팝아트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1950년대 말이었다. 미술 용어 겸 개념으로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이는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라는 영국의 미술비평가였다. 그는 화가였던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콜라주 작품에 들어간 P.O.P라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위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 냈다. pop이라는 단어가 popular의 약자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해밀턴과 그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미술을 포괄해서 부르는 이 말은 미술이 담고 있는 형상적인 내용의 특징을 알려 준다. 즉 그림이 표현하는 대중적인 내용과 소재를 말한다. 이 그림은 그리기보다는 사진들을 오려 붙여 조합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콜라주(Collage)라고 한다. 콜라주는 20세기 초반에 입체파 화가들과 다다이즘 화가들이 사용한 매우 현대적인 미술 방식이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혼합해 내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그림은 조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조악함도 엄격한 의미에서 팝아트의 미술 의도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팝아트가 얼마나 도전적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해밀턴이 그림으로 가져온 이미지들은 대중적인 잡지, 이를테면 성인 잡지, 상품 광고가 잔뜩 들어간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더 나아가 이 이미지들은 영국의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수많은 구호물품과 군수용품에 섞여 건너온 대중매체들이었다. 이것들은 영국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했으며, 화가들에게는 낯설지만 새로운 이미지들이었다. 그때까지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러한 상업적인 사진 이미지들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해밀턴의 그림은 그런 이미지들을 조합한 가상의 실내를 보여 준다. 현대식 가구로 꾸며진 거실에 옷을 벗은 남녀가 있다. 남자는 육체미 선수를 연상시키는 자세로 커다란 사탕을 들고 있다. POP라는 알파벳이 사탕을 포장한 종이 위에 찍혀 있다.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 채 매우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 안에는 텔레비전과 녹음기 등 첨단 기술이 이루어 낸 가전제품들이 놓여 있다. 왼편으로 난 긴 계단 위에는 빨간 옷의 여자가 이상하리만큼 긴 흡입관을 가진 진공청소기로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그리고 창밖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간판이 번쩍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국 사회에 대한 동경과 비판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리처드 해밀턴,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년, 종이 위에 콜라주, 튀빙겐 미술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었고, 마셜 플랜으로 불리는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어 버린 미국의 대중문화도 유럽으로 흘러 들어왔다. 미국은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로 비쳤다. 미국의 현대적인 기술과 대중매체는 유럽인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화려하고 대중적인 상업 이미지들은 유럽인들이 미국을 현대적이고 거대하고 자유로운 미래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해밀턴의 그림은 바로 이러한 이상향을 조금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그림은 소비적이지만 편안하고 폼 나는 미국식 생활 방식(The American Way of Life)의 단면을 보여 주는데, 해밀턴은 이에 대해 사뭇 조롱하는 태도를 취했다. 해밀턴은 피터 블레이크(Peter Black), 에두아르드 파올로치(Eduard Paolozzi) 등과 더불어 1950년대에 영국에서 활동한, 당시로 보면 신세대에 속하는 예술가였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팝아트는 이후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팝아트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영국 화단의—당시 영국은 유럽 대륙의 주류에도, 미국의 신흥 화단에도 끼지 못하는 주변에 불과했다—낙후성을 벗어나고자 했던 국가적 예술 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제도와 전시를 통해 그 존재를 알린 예술가 집단이었다. 또한 왕립 미술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지방에서 나름의 작업을 해 온 신인들이기도 했다. 팝아트 예술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변화된 일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고, 특히 미국에서 유입된 새로운 생활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그렸다. 이들의 의도는 1956년에 런던의 화이트 채플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This is Tomorrow(이것이 미래다)'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이 전시는 총 열두 개의 테마로 나뉘어 열렸는데, 회화와 조각, 건축을 아우르는 다양한 미술 형식들이 동원되었다. 여기서 해밀턴은 존 맥해일(John McHale) 그리고 건축가였던 존 벌커(John Voelcker)와 함께 특별한 환경을 구성하였다. 이 공간에 해밀턴은 인기 있는 대중매체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약간은 혼잡한 전망대를 만들었다. 공간 외벽에는 젊은 여성을 안은 로봇이나 마릴린 먼로의 사진들을 전시하였다. 한마디로 첨단의 이미지로 요지경을 만들어 놓았는데, 해밀턴은 자신의 전시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미로 가득 찬 상징들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 능력의 발전이다. 시각적인 물질이 계속 증가되는 것을 우리가 수용하고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을 대략 정리해 보면, 자본과 기술의 발달로 나타난 그리고 미래에 야기될 현상을 보여 주고 있는데, 해밀턴의 작업처럼 싸구려 잡지에서 오려 낸 이미지들을 콜라주라는 형식으로 묶어서 소비 지향적 현대 생활을 보여 주거나 로봇과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미래 사회를 보여 주었다. 이 모든 형상은 무에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여러 가지 매체에 나타난 동시대의 이미지들을 엮어 놓은 것으로,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미술에 수용하고 활용할 눈과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해밀턴이 동료였던 피터와 앨리슨 스미스(Peter & Alison Smith) 부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팝아트의 성격을 조목조목 잘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예술은 "대중적(즉 익명의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처럼)이고, 유통기간이 길지 않으며(즉 순식간에 소비되어야 하고), 빨리 잊히는 것이어야 하고, 값싸고 다량으로 생산되며, 젊고(즉 젊은 소비층을 위한 것이고) 웃기며 섹시하고 조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미술이나 고급문화가 구축했던 모든 기존의 원리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싸고 도회적인 사물들을 그려 내는 배경에는 20세기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확대된 미국식 소비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팝아트는 그런 소비문화의 특징을 담아낸 예술이다. 팝아트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눈을 돌렸다. 추상미술이나 초현실주의 미술이 인간 내면의 심리와 심오한 철학적 원리를 탐구했던 것과는 달리, 팝아트 예술가들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비재에서 그들의 미학을 발견했다.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에서 넘쳐나는 광고나 상품의 포장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 낸, 어떻게 보면 키치(Kitsch)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그 이미지를 복제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사실 '키치'는 원작을 조악하게 모방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팝아트는 그런 유치한 모방을 한 번 더 모방함으로써 전통적인 모방이론에 반항한 것이었다. 영국의 팝아트는 시대와 환경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이었다. 그러나 조금 늦게 시작되었지만 더 영향력 있는 사조로 발전한 미국의 팝아트는 그 성격이 달랐다. 이제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예술가들을 만나 보자. =========================================================   제작시기 1963년 가격 $56,123,750(588억 8000만 원)1)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로이 리히텐슈타인, 〈꽃 모자를 쓴 여인〉,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7×101.6cm “피카소는 언제나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만화 그림을 그리면서 피카소에게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내 스타일로 그리는 작업도 사실은 나에게 남은 그의 영향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우리나라에서 그림 한 점을 둘러싸고 나라가 뒤집어지게 시끄럽던 적이 있다. 2007년 11월 터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사건이다. 삼성그룹의 전 법률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가 어느 날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의 미술품 구매 목록’이라며 미술품 약 서른 점의 목록을 공개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미술품 구매를 담당하던 서미 갤러리가 뉴욕 크리스티에서 2002년에 낙찰 받은 미술품 목록이었다. 그 목록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었다. 특별 검사까지 동원된 수사 결과 이 작품은 삼성그룹이 구매한 게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이 그림의 ‘억’ 소리 나오는 가격에 있었다. 〈행복한 눈물〉은 2002년 11월에 당시 환율로 86억 5000만 원인 715만 9500달러에 낙찰됐다. 〈행복한 눈물〉은 빨간 머리의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 짓고 있는 아담한 크기(96.5×96.5센티미터)의 그림이다. 이 그림 덕분에 1960년대 미국의 팝 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이 2007년 말 한국에서 갑자기 유명해졌고, 갤러리마다 갑자기 리히텐슈타인 작품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했다.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5612만 달러(588억 8000만 원)에 팔려 세계 미술 시장을 다시 들뜨게 한 이 그림도 바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다. 도대체 싸구려 만화처럼 그린 그의 작품이 왜 이렇게 비쌀까? 리히텐슈타인의 미술사적인 위치와 그가 등에 업고 있는 미국의 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리히텐슈타인은 워홀, 올덴버그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워홀이 코카콜라와 매릴린 먼로 같은 대중문화 이미지를 변형해서 썼듯이, 리히텐슈타인은 광고, 만화, 신문, 잡지 등으로 이미 대중의 눈에 익은 이미지를 변형해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었다. 이 그림처럼 대가들의 초상화나 정물화를 소재로 택해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많이 남겼다. 인쇄할 때 색과 농도를 결정하는 미세한 점을 망점(網點), 또는 벤데이 닷(Ben-Day Dots)이라고 하는데,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마치 인쇄 품질이 낮아 벤데이 닷이 커진 것처럼 그려져 있다. 현대인이 의존하는 인쇄 기술이 사실은 망점 여러 개가 찍힌 ‘눈속임’이라는 것, 그리고 자세히 보면 색깔도 촌스럽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인쇄물을 그대로 확대 복사한 것 같아서 작가의 손이 안 들어간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인쇄물에게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작가가 완전히 주물러서 새 생명으로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싸구려 인쇄물 같지만 사실은 작가가 하나하나 그려 넣은 것이다. 작가가 손을 안 댄 듯하면서도 세심하게 공을 들인 것이다. 이 그림은 한눈에 보기에도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잘 알려진 대가들의 명작을 놓고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곤 했다. 특히 1962년에서 1963년 사이에 피카소의 여인 초상화를 재해석한 그림을 네 점 그렸는데 이 그림이 그중 하나다. 피카소가 1940년에 그린 애인 도라 마르 초상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원화를 소장하고 있던 모튼 노이먼이라는 미국의 컬렉터가 리히텐슈타인에게 이 그림을 재해석해 리히텐슈타인 방식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도라 마르는 스페인 출신의 사진작가로 지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이었다. 피카소의 초상화에서 하도 강한 성격으로 그려져 때로는 괴팍해 보이기까지 한다 (파블로 피카소,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 항목 참조). 리히텐슈타인은 이런 대가의 심오한 초상화를 아주 심플 하고 기계적인 인쇄물 모양으로 만들었다. 당시 싸구려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사진이나 카툰처럼 노란 머리에 빨간 입술로 단순화함으로써, 도라 마르를 1960년대의 미학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급 예술’의 상징인 피카소를 감히 ‘저급 예술’인 싸구려 만화와 같은 선에 놓고 ‘무엇이 고급이고 무엇이 저급한가?’라고 묻는다. 팝 아트가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이 그림은 좋은 전시 기록이 가격을 올리는 데 한몫을 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1966),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패서디나 미술관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의 첫 회고전(1967), 런던 테이트 미술관의 리히텐슈타인 회고전(1968),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미국 팝 아트 기획전(1974),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리히텐슈타인 회고전(1993~1994) 등에 전시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폴록과 드 쿠닝 등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을 언급할 때 미국 컬렉터들의 구매력 이야기를 했는데, 팝 아트도 마찬가지다.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값이 오른 것은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컬렉터들이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컬렉터들의 구매력이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면서 미국 미술을 대변하는 팝 아트의 거장 워홀,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가치도 치솟은 것이다. ==============================   제작시기 1961년 가격 $43,202,500(453억 3000만 원)1)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로이 리히텐슈타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 캔버스에 마그나 물감 / 121.9×121.9cm “팝 아트는 세상을 향해 있다. 그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네 점 나오는데 모두 만화 스타일이다. 리히텐슈타인 작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인기 있는 스타일이다. 그가 만화 원본을 변형해 만든 작품에는 말풍선을 뺀 것도 있고 넣은 것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말풍선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풍선의 대사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가 바로 현대 미술 자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 중에는 ‘보는 관객’과 ‘보이는 작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가 많다. 시각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작가들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지만 이미 1960년대부터 작가들은 이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그림의 제목이자 말풍선 대사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를 보면, 꼭 그런 관심사가 말로 표현된 것 같다. 우리가 현대 미술 작품을 볼 때 그런 느낌이 아닐까? 분명히 미술 작품을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느낌. 그리고 우리는 이 남자를 보고 있는데, 이 남자는 방 안을 보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남자는 보이는 대상인 동시에 보는 주체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는 리히텐슈타인의 개인적 경험도 담겨 있다고 한다. 그의 대학 시절 은사는 ‘플래시 방(Flash Room)’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에게 그 방을 구멍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깜깜한 방 안 앞쪽 벽에 스크린을 설치하여 수많은 이미지를 아주 빠른 속도로 보여 주었다. 구멍을 통해 스크린을 보면 깜빡깜빡하며 불빛이 왔다 갔다 할 뿐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구멍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황당해하는 남자의 이미지는 만화에서 따온 것이지만, 동시에 리히텐슈타인이 학생 때 겪은 경험을 재생산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재미있고 간단해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리히텐슈타인은 현대 미술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술 작가의 역할이 바뀌었듯이 그림과 관객의 관계도 바뀌었다. 관객이 일방적으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미술 작품을 통해 관객 자신을 보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전시한 곳은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였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현대 미술의 주요 작가 대부분을 키운 딜러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 많은 이가 레오 카스텔리를 꼽을 것이다. 워홀의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을 제일 먼저 판 딜러도 레오 카스텔리다. 그가 발굴해 낸 작가들이 바로 재스퍼 존스, 워홀, 로젠퀴스트, 리히텐슈타인, 스텔라, 도널드 저드, 모리스, 댄 플레이빈 등이다. 이들은 모두 서양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대가들이니, 딜러로서 레오 카스텔리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산 사람은 레오 카스텔리만큼이나 유명한 컬렉터인 에밀리 트레메인, 버튼 트레메인 부부였다. 이 작품은 리히텐슈타인이 만화 스타일을 막 시작한 1961년에 그린 것이다. 트레메인 부부는 당시 너무나 앞서 가는 이상한 그림인 이 작품을 단돈 450달러(47만 2000원)에 구입했다. 트레메인 부부가 뛰어난 안목을 지닌 컬렉터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트레메인 부부는 이 작품을 평생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 에밀리 트레메인이 죽고 난 뒤인 1988년 처음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이 작품이 나와 210만 달러(22억 원)에 팔렸다. 그때 이 작품을 구매한 소장자가 13년 만인 2011년 같은 경매에 내놓았고, 그가 구입한 가격보다 무려 스무 배나 오른 가격인 4320만 달러(453억 3000만 원)에 낙찰됐다. 유명한 컬렉터를 거친 그림은 가치가 올라가게 마련인데, 트레메인 부부의 손을 거친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 그림에 프리미엄을 얹어 주었을 것이다. ========================이런 작품도...@@=== ===============================   팝아트는 영국의 비평가 알로웨이(Alloway, Lawrence)가 사용했다. 팝아트의 세 가지 사회 양상으로는 포스터나 만화의 대량 생산, 대중문화의 대량 전달, 사회의 대량 소비이다. 주제는 대중 매체의 저급한 상업 미술과 사회나 대중 사회를 다루고, 특징으로는 역동성, 유선형, 이동성을 들 수 있으며, 기법은 실크스크린이나 판화, 상업적이거나 기계적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 작가는 워홀(Warhol, Andy)과 로이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 Roy)이 있다.          
149    "바람속에서 불어오는 답에 귀 기울여 보기를..." 댓글:  조회:3058  추천:0  2017-01-28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                      ㅡ "너, 혼자만 행복할래?"   "바람 속에서 불어오는 답에 귀 기울여 보시기를ㆍㆍㆍ."   이서영 칼럼니스트       2017/01/28        새해가 밝았다. 늘 새날이지만 대한민국은 두 번의 새해를 시작한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새해와 달을 기준으로 하는 새해. 오늘은 태양 속 달의 첫날이다. 달의 첫날, 북카페에 앉아 따뜻한 겨울을 바라보는 중. 쌓인 눈은 더 켜켜이 쌓여도 결국 따스한 햇살이 눈을 녹이고 겨울 속 봄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인간은 홀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지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지구별에 도착한 지 이제 갓 6개월이 되어가는 한 생명과 어제 조우했다. 그의 해맑은 표정은 이 고달픈 세상을 기꺼이 껴안을 만큼 행복했다. 그러나 인간만이 태어나서 제대로 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오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즉 갓 태어난 인간은 타자의 도움없이는 한 시간도 생존하기 힘들다. 태어나서 양육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든 이웃이든 반드시 타자를 필요로 한다. 이렇듯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통하여 보살핌을 받고 배우며 한 사람의 사회적 인간은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지극히 행복한 지금의 나 또한 결코 나혼자만 그 행복을 구가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는 결코 나 혼자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 속에는 이루 헤아리기 힘든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과 노고와 배려와 희생이 켜켜이 쌓여 있으므로.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밥 딜런은 음유시인이다. 음유시인이란 시를 읊으며 각지로 돌아다니는 시인을 뜻하며 중세 유럽에 봉건 영주를 찾아다니며 스스로 지은 시를 낭송하던 사람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즉 '스스로 지은 시를 낭송하는 사람'인 밥 딜런. 그는 대중 가수이다. 그는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에 리듬을 입힌다. 그는 21세기의 음유시인이다. 그는 기타를 들고 노래한다. 자신의 노래를 스스로 짓는다. 가끔 하모니카를 불기도 한다. 그는 통키타를 연주하거나 전자기타를 연주한다. 그는 대중들이 사랑하는 노래를 불러온 가수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부류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녔고 각자의 입지에서 그의 노래가 그들의 가슴에 새겨놓은 무늬는 오래도록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새겨져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왔다. 그가 '대중 가요'를 부른다고 그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밥의 음악에 취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판단하는 근거는 다분히 논리적이지만 밥은 논리의 영역을 넘어선다. 시와 소설을 문학의 일반 범주라고 할 때 그것이 추구하는 지점이 논리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의 가사는 매우 시적이다. 목소리는 강렬하고 창법은 독특하다. 그의 음악은 포크 계열이기도 하고 팝 계열이기도 하다. 록이기도 하다. 무어라 딱히 일반적 범주에 그를 집어 넣기에 그는 무언가 더한 것을 지닌 듯도 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하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 1901년 노벨상이 시작된 이래로 대중 가수가 문학상을 탄 최초의 사례이다. "위대한 미국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냈으므로"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수상 이유를 밝혔다. "고대 그리이스의 서사 시인이며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로 이름을 알린 호메로스와 사포 또한 음유시인으로 시적인 텍스트를 악기와 함께 연주하고 공연해 왔으며 밥 딜런 또한 그 계승자다. 밥은 대단히 뛰어난 영어권 시인이다."  그의 가사는 영미문학사로 유명한 노튼 앤솔로지the Norton Anthology of Literature에도 실릴 만큼 문학성이 뛰어나다. 노튼 앤솔로지는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소설가로 이라는 소설을 쓴 어빈 웰시라는 작가는 밥의 노벨문학상 선정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music과 문학literature이 옥스퍼드 사전에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가를 찾아보라고 제시하면서, 횡설수설하는 히피의 노스텔지어를 노벨문학상으로 선정한 것은 매우 옳지 못한 판단이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옥스포드 사전에서 음악music은 '형식의 아름다움, 조화 그리고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합된 목소리나 악기의 소리'(vocal or instrumental sounds(or both) combined in such a way as to produce beauty of form, harmony and expressions of emotion)를 뜻하며 문학literature은 '글로 쓰여진 작품으로 특히 뛰어난 또는 오래도록 지속될 예술적 장점을 지닌 작품'(written works, especially those considered superior or lasting artistic merit)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밥의 작품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저 시가 아니라 시에 리듬을 실어놓은, 대단히 높은 예술적 깊이와 사유, 그리고 대중성까지 겸비한 것이 바로 밥의 음악들이 아닌가.   2005년 미국연방대법원은 판결문 중에 밥의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라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했다고 한다.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    밥의 시적인, 다양한 은유를 품은 가사들을 음미하며 몇 곡 함께 들어보자. 영어 원문이 아니라 번역해서 글 사이 사이에 올린다. 그의 노래가 품고 있는 시선은 독특하면서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시선이 나를 통하여 너를 바라보고 결국 우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가사는 사회성을 단단하게 구축하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너 혼자만 행복할래?"  먼저 '구르는 돌처럼 Like a Rolling Stone.'  언젠가 너는 멋지게 차려입고  자랑스럽게 동전 한 푼을 부랑자에게 던져주었지, 그렇지 않니? 사람들은 말하곤 했어,  "조심해요, 아가씨, 당신도 추락할 수 있으니."  넌 그들이 너에게 농담하는 거라 생각했지.  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비웃곤 했어.  이제 넌 크게 말하지 않는구나.  이제 넌 으스대지도 않는구나.  다음 식사를 찾아 헤매야 하는 것에 대하여.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때?  집이 없다는 것이.  완전히 무명인인 것 같은 느낌이.  구르는 돌 같은 삶이.  넌 완전히 멋진 학교를 다녔지, 미스 론리.  하지만 학교에선 단지 재미있는 일 뿐이었지.  어느 누구도 너에게 거리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어. 이제 넌 노숙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  넌 수수께끼 같은 부랑자와는 결코 협상이란 없다고 말했어.  하지만 이제 너는 깨닫지.  그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팔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네가 그의 공허한 눈을 바라보며  그에게 협상을 하겠느냐고 물을 때에도.  넌 마술사나 광대들의 찡그린 모습을 보기 위해 돌아본 적 없었지. 그들 모두가 무대에서 내려와 너를 위해 묘기를 보여주었을 때도. 넌 그게 잘한 일은 아니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지.  넌 다른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돼.  넌 외교관과 함께 크롬도금을 한 말을 타곤 했지.  그는 어깨 위에 샴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어.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그가 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에게서 가져가버린 후에 말야. 뾰족탑 위의 공주와 모든 멋진 사람들  그들은 마시면서 생각하지, 자신들이 성공했다고.  모든 종류의 귀한 선물들과 물건들을 교환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넌 너의 다이아몬드를 들어올려, 그것을 저당잡히는 게 더 좋을 걸. 넌 좋아하곤 했잖아,  누더기를 걸친 나폴레옹과 그가 사용한 언어를.  이제 그에게 가보렴, 그가 너를 부르잖아, 넌 거절할 수도 없어. 네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넌 잃을 것도 없을 테니.  넌 이제 눈에 띄지도 않아, 숨길 비밀조차 없어져버렸으니.  기분이 어때?  기분이 어때?  집이 없다는 것이.  완전히 무명인인 것 같은 느낌이.  구르는 돌 같은 삶이.*      이 음악은 밥이 1965년, 스물네 살의 나이에 만든 작품이다. 상류층 여자가 추락한 뒤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영국 공연에서 돌아와 지쳐 있던 어느 날, 짧은 단편의 스토리를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10페이지에서 20페이지의 분량으로 썼던 것을 정리해 6분 13초로 만든 곡으로 당시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노래 한 곡당 3분이 넘는 곡은 틀어주기를 주저하곤 했는데 매우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라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소더비에서 밥의 당시 자필 원고가 경매되었는데 200백만 달러가 넘었고 이는 존 레넌의 A Day in the Life가 120만 달러에 경매된 이후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당시 1960년대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팩토리를 중심으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몰려 들었는데 그중 에디 세즈윅이라는 여배우가 있었다고 한다. '누더기를 걸친 나폴레옹'은 앤디를 상정하는 것이고 영락한 여배우는 에디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고 한다. 패션화된 미국의 문화체제에 대한 반항적인 시선이 이 노래에는 담겨 있는 셈이다. 그는 팝에서 록으로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도 한다. 그는 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우리는 보고 느끼고 읽고 사유한 만큼의 존재이다. 내가 보고 느끼고 읽고 사유한 지경, 그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는 일상이라는 공간에서 산다. 일상이라는 공간은 특별한 사물도 범속한 존재로 변신시킨다. 늘 움직이고 있는 사물을 한 장소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시간은 늘 움직인다. 시간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같은 장소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인식이 개입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미 변화된 사물을 늘 붙박히고 고정된 존재로 파악하게 된다. 여기 깨뜨린 달걀이 있다.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로 접시에 담아 두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달걀은 조금씩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초파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달걀 주변을 날아다녔다. 결국 달걀은 상해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그러나 나는 상해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 달걀과 처음 깨뜨렸을 때 싱싱했던 달걀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싱싱했던 달걀과 상한 달걀의 차이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산물이다. 사물은 끊임없이 조금씩 보이지 않게 바뀌고 변화하고 있다. 같은 사물도 질적으로 바뀌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인이다. 시간의 지속성과 더불어 변화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고루한 존재로 오늘을 살게 된다.   생각은 습관이다. 습관적, 관성적 판단에 의한 생각은 그러므로 성장과는 무관하다. 결코 더이상 자라지 못하는 인공의 조화와 같은, 생명이 박탈된 생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 그게 대부분의 우리들이다.    20세기에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두터웠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문화와 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서로에게 기대지 않으면 새로운 발견을 하기란 쉽지 않다. 경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향한 시선이 다양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깨달음이며 포용하는 공간이다. 문학이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은 넓을수록 좋다. 어차피 문학의 기능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있다면 밥의 노랫말들이 바로 그렇다. 그의 가사는 자유와 평화, 사랑과 바로 자기 자신을 노래한다.   밥을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가사의 내용이다. 그가 노래 부르는 대상은 감정적인 사랑에 관한, 우리가 흔히 대중가요라고 부르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목소리는 감미롭지도 않고 투박하며 심지어는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매력 있다. 그는 우리나라 가수들에게 저항가수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섬세한 감성을 지닌 가수였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자신만의 느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넓은 사유의 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너는 어때? 두 번째는 그가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과 해석이다. 그는 그만의 독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타자의 삶이나 의견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그 상황에 처할 때마다 깊은 사색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본능의 일부로 만들고자 했다. 그의 시선은 객관적이면서도 초탈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나이가 지긋한 밥이 아니라 20대의 밥 또한 그렇다. 밥은 1941년생이다. 그가 이십 대가 되었을 때 미국 사회는 요동치고 있었다. 밥은 사회운동가나 민중운동가로서 노래를 만들어 부른 것은 아니다. 즉 1960년대라는 독특한 시대 상황이 밥이 부르는 노래를 다르게 해석하게 했을 것이다. 월남전 반대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라기보다는 그 상황들에 대한 그의 느낌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그의 가사들이 듣는 이의 마음에 미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의 배우는 자세이다.    밥은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사물과 사람들을 관찰했지만 그들에 대하여 감정적인 사소함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초연함과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노랫말의 깊이를 채워나갔다. 그는 문학 작품들을 읽고 도서관에서 사회적 상황들을 살펴보는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자신의 가사 속에 무엇을 담을지 그는 오래된 신문들을 찾아 읽었다. 우디 거스리를 만나 그에게 감동 받고 그를 연구하였고 누군가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 그를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연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는 자신의 관심 대상들을 깊이 연구하고 느끼고 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숱한 시도들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연주 방법과 창법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1965년 페스티벌에서는 포크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와 연주함으로써 순수 포크 뮤지션들을 경악시켰지만 담담히 자신의 스타일을 견지해나갔다.  그의 노래 가사는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그는 1990년 이래로 꾸준히 노벨문학상을 기대하게 하는 대중가수였다. 영국 잡지 이 자신들의 100호 발간을 기념하기 위해 대중문화 스타들을 대상으로 '최근 100년간 세계를 바꾼 음악, 영화, 책, TV 프로그램' 설문조사를 2005년 8월에 실시한 적이 있었다.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이 세상을 바꾼 가장 뛰어난 대중문화 작품 1위에 선정되었다.    '구르는 돌처럼'의 가사는 잠깐 살펴보았듯 노숙하는 자와 영락한 상류층 여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재산은 46억이 넘고 한 해의 생활비가 5억이었던 한 사람이 새해의 첫 날을 구치소에서 맞이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는 평생 구름 위를 걸으면서 살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하여 살았다. 대의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해왔다. 지구별 여행자로서 우리는 많은 역할들을 감당한다. 어떤 이는 내가 가진 힘을 다수의 사람들과 가능하면 함께 나누어 갖기 위해 불철주야 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미모와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 아낌없이 써버린다. 어떤 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쓰레기를 청소해야 하고 어떤 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골프를 치기 위해 찬공기 속을 걷는다. 내가 지금 경험하는 역할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만의 것이라는 착각이 이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을 망각하게 한다. 권력은 내가 아니다. 재능은 나의 것만은 아니다. 미모는 기왕에 주어진 것일 뿐 겸손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교만의 대상일 수는 없다.  '바람 속에서 불어오는 Blowing ln the Wind' 이야기를 밥은 듣는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들은 그를 알아볼까.  저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사장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하늘을 날아다녀야 전쟁은 금지될까. 나의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속에서 불어와.  그 대답은 바람속에서 불어와.  바다에 씻겨가기까지 저 산은 얼마나 오랜 세월 흘러야 할까.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롭도록 허락받을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고개를 돌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외면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친구여, 바람 속에서 불어올 뿐.  얼마나 많이 올려다보아야 진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사람들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나의 친구야, 바람 속에서 불어오고 있어.  그 대답은 바람 속에서 불어와...  불어오는 바람 속에 답이 들어 있다고 밥은 속삭인다. 불어오는 저 바람 속에 들어 있는 답은 내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버릴 것이다. 사물이나 상황은 늘 우리의 질문에 답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귀 기울여 들어보라 밥이 말한다. "나는 밤을 좋아했다. 만물은 밤에 자라고 나의 상상력은 밤에 더욱 나래를 편다. 사물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엉뚱한 곳에서 천국을 찾을 수 있다. 가끔 천국은 발밑에 혹은 침대에 있을 수도 있다."  "노래에 나오는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적다해도 사람들은 노래로 이야기한다. 때로는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진실과 상관이 없는 일들을 말할 때도 있고 모두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할 때도 있다."  ( 중에서/양은모 옮김/문학세계사)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라는 작품이 있다. 연금술이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코엘료는 우리가 바로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세상을 온통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리고 이 해법은 바로 '귀 기울이는' 데 있다. 질문이 있다면 그 질문 속에 답도 또한 들어 있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은 이유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잘 들여다보지 못하면 내 삶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 46억을 지니고 구름 위를 걷다가 1.8평 작은 공간으로 나의 삶의 영역이 축소되었다면 이것은 바로 세상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올바로 살아온 것일까!?"    밥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바람 속에서 불어오는 답에 귀 기울여 보시기를ㆍㆍㆍ."  */이서영. 북카페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148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윤동주를 운운하다... 댓글:  조회:2649  추천:0  2017-01-27
르 클레지오 "문학은 바람의 한 형태"   2016/06/01  17:05:40  매일경제   "문학은 자유를 향한 비상이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로 추앙받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76)의 말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2016 교보인문학석강의 강연자로 나선 그는 '프랑스, 한국, 바람(드지르·desir)의 문화'를 주제로 강연하며 '바람, 자유, 부정교합' 등을 키워드로 문학의 지평을 소개했다. 르 클레지오는 바람이나 욕구를 뜻하는 프랑스어 '드지르'와 한국어 '바람'의 내적 유사성을 근거로 문학세계를 소개했다. "욕망이나 바람이라는 의미의 '드지르'는 어원적으로 '하늘을 뺏긴 사람'이자 '별들을 통해 신이 보여주는 운명을 읽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고 운을 뗀 클레지오는 "한국에서는 불어오는 '바람'과 동음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욕망은 바람처럼 거칠고, 격렬하며, 불현듯 찾아온다는 점을 문학은 보여주려 했다"고도 덧붙였다. 바람의 어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그는 '별을 잃어버린 처지'가 한국과 프랑스 문학의 공통분모라고 설명했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전문을 인용하며 "윤동주 시인이 활동하던 시기, 프랑스에선 르네 샤르, 루이 아라공 등의 투쟁작가들이 자유와 삶의 기쁨을 외쳤다"며 "문학은 자유를 향한 비상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먼 이국 땅의 친한파 소설가는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두고 "새로운 현실, 더 복잡하면서도 더 비밀스러운 세계, 현대 사회의 현실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달려라 아비'에 대해선 "인간과 현실의 부정교합이 한국 문학을 지배하는 주제임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클레지오는 "문학은 바람의 한 형태"라는 비유로써 '문학의 힘'을 설명했다. "영혼의 바람은 국경을 넘어 불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킨다"고 말했다. [김유태 기자][ⓒ 매일경제
147    [자료] - 조선족 차세대 언어교육에 "살얼음장"이... 댓글:  조회:2559  추천:0  2017-01-27
조선족 차세대 언어교육에 대한 사색 안성호 요즘 정음문화칼럼에서 민족교육이 주된 테마로 론의되고있다. 민족교육 패러다임, 차세대 가정교육, 주말언어학교, 조선족 교육질, 독서 등 여러 분야에서 열띤 의론들이 진행되고있다.   과거의 민족교육은 주로 민족집거지의 조선족학교가 주축이 되여 이루어졌으며 민족문화의 전승과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조선족학교 졸업 학생들이 우리 민족 문화 전승과 발전의 주축이 되고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하지만 조선족집거지의 위축과 더불어 조선족 민족학교들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고있고 민족학교에 다니고있는 학생수도 점차 줄어들고있다. 마을마다 소학교, 향, 진마다 중학교 현성에는 완전중학교라는 기초민족교육체계는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있다. 최근 보도에서 본 화룡 평강벌의 신흥소학교는 90년대까지만 하여도 1000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있었지만 현재는 합병된 광흥중학까지 합하여 1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그나마 연변지역의 민족교육은 잘 유지되고있는편인것 같다. 흑룡강성의 경우 현재 농촌지역 조선족학교는 거의 전무한 상태로서 현성이나 시에 한개의 소학교와 완전중학교가 민족교육의 명맥을 이어가고있다. 학생수 부족으로 인하여 많은 조선족고중들은 한족반, 류학생반 등 여러모로 학생규모를 확대하여 학교를 운영하고있다.   위축된것은 학생수뿐만 아니다. 필자가 고중을 다닐 때까지만 하여도 완전히 우리말로 교류를 진행하였고 한어는 대학교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였다. 할빈 같은 대도시의 조선족학교들에서도 2000년대 초엽까지만 하여도 일부 학생들이 우리말을 잘 못하는 외에 대다수 학생들의 일상적인 교류용어는 우리말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동북 산재지역에서 대도시뿐만아니라 현성의 조선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마저 일상용어가 한어이다. 조선어는 다만 부모, 조부모한테서 듣고 조선어수업에서만 듣고 배우는 제2언어로 전락되고있다. 이로 인하여 조선족학교들에서 한어를 병행하여가면서 조선어를 가르칠수 밖에 없는 현상들이 점차 많아지고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우리말 배우라고 조선족학교에 보냈는데 왜 이리도 못하냐 라고 한탄하고있다고 한다. 이는 어느 개개인이나 학교 혹은 학부모의 책임이 아니다. 성장하고있는 전반적인 언어사용환경이 크게 변하였고 편부모 등 가정, 사회 교육 환경의 변화가 민족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있는것이다.   일상용어가 한어로 되였다고 하여 한어수준이 높아진것도 아닌것 같다. 근년에 한어교과서가 많은 질적향상을 이루었고 일부 조선족학교들에서 직접 한족학교 한어교과서를 사용하고있다. 하지만 과외독서에 의한 지적축적 등이 따라가지 못함으로 하여 한어수준에서 한족학교 졸업생들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 상세한 현장조사가 필요하지만 소학교시절에 진행되는 당시(唐诗)암송, 초중부터 이루어지는 문언문(文言文)교육 등에 대한 기초적축적이 많이 결여되여있는것 같다.    동북 이외 지역의 경우, 우리말 교육은 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하여있다. 민족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현지어가 주요 사용언어가 되면서 글로벌확산과 더불어 조선족 차세대들의 제1언어도 다양화되고있다. 필자의 조카들의 제1 사용언어만 살펴보더라도 이미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완전히 분화되여있다. 우리말 교육 혹은 중국어 교육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조카들사이의 언어적교류는 점차 단절되여가고있다. 이는 아마 필자만이 느끼고있는 상황만은 아닌것 같다. 조선족의 우세였던 이중언어전승이 어려워져 한국과 중국에서 사는 사촌형제간에 만나서도 언어교류가 아닌 신체적교류로 함께 놀고있는 현상들은 아마 개별적인 현상은 아닌것 같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부모세대의 친척들과 함께 모여도 사촌, 륙촌 되는 형제들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 영어로만 교류가 가능해지지 않을가 하는 우려가 없지는 않다.    상해지역 조선족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조선족자녀들이 한어를 매우 잘 한다 와 잘 한다를 선택한 수가 262명으로서 전체 응답수의 67.2%를 차지하고있지만 영어와 조선어에 대하여서는 133명, 111명으로서 34.1%, 28.5%를 차지하였다. 반면 한어, 영어, 조선어 구사능력이 비교적 모자라다, 모자라다를 택한 수는 각기 53명, 129명, 164명으로서 전체 응답수의 13.6%, 33.1%, 42.1% 를 차지하고있다. 즉 조사를 받은 상해지역 조선족자녀들의 우리말 수준이 외국어인 영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3언어로 자리매김되고있는것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 지역의 경우, 가정 외에 거의 우리말을 접촉할 기회가 없음으로 하여 현지 언어화가 가속화되고있다.   글로벌시대에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지만 결코 영어만 잘하여서 되는것도 아니다. 다양한 정보, 자본, 민족, 문화가 다양하게 교류되고있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정보에 대한 리해와 포착 능력이 필요하다. 이중, 삼중 언어의 구사와 언어를 통한 문화리해능력은 글로벌시대의 흐름에 대한 리해에 많은 도움이 되고있다.   조선족사회는 개혁개방이후 한중일 언어우세를 리용하여 타민족들보다 쉽게 글로벌변화를 파악하고 글로벌흐름을 따라 세계 각지로 확산되면서 삶의 질적향상을 이룩할수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시대 조선족 차세대들의 다원문화우세는 지속적으로 상실되고있다. 세계각지로 확산되고 현지어가 제1언어로 되는 현황하에서 앞으로 조선족들을 이어놓을수 있는 고리는 무엇일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된다.    다행히 각지에서 조선족지성인들이 주말우리말학교 등을 통하여 차세대들에게 우리말 교육을 진행하고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우리말학교들에서는 중국어, 한국어, 영어 등 다중언어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조선족 차세대들의 최대한 다중언어우세를 살리려고 노력하고있으며 커다란 성과들을 이룩하고있다. 주말우리말학교는 이미 동북 이외 지역 조선족들이 우리말과 민족문화를 배울수 있는 중요한 거점과 구심점으로 되고있다. 상해지역 조선족들에 대한 조사만 보더라도 차세대들이 우리말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가정(80.5%)과 주말우리말학교(33.8%)였다.    시대적상황이 많이 바뀌여진 상황에서 동북지역 조선족학교들은 이중언어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동북 이외 지역은 주말학교, 민족학급, 외국어학원, 가정교육 등 현실조건에 알맞은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서로 결합하는것이 앞으로 조선족 차세대들의 언어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가 생각한다. 이는 지성인, 지역조선족사회네트워크, 학부모가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연대를 꾸며나가야만 가능하다.   글로벌시대는 다원문화시대이고 다중언어시대이다. 이는 조선족사회의 현재까지의 우세였고 글로벌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할수 있는 자원이였다. 차세대들에게 다원문화에 대한 리해력과 다중언어능력을 키워주는것은 조선족 지성인과 부모들의 책임과 의무이며 글로벌 조선족을 이어놓을수 있는 중요한 련결고리이기도 하다.       / 안성호(安成浩) 절강대학 한국연구소
공휴일 아닌 설이 이상했다. 구정(舊正)이라 부르는 것도 영…. 모처럼 친척 집 오가며 명절(名節) 음식 실컷 맛보기가 마음 같지 않았다. 웬만해선 뵙기 어려운 세종대왕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 신정(新正)처럼 사흘 쉬면 그 만원짜리 세뱃돈 얼마쯤 늘어나려나. 어린 마음은 얄팍했다. 겨울방학이 끝났는데 설이 오면 심통마저 났다. 학교 가야 했으니까.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던가. 이 신정·구정이 일제(日帝)의 간악(奸惡)한 노림이었음을. '식민지 조선의 얼이 담긴 전통을 내버려둘 수 없다. 설은 그냥 구정이라 불러라. 대신 우리처럼 양력 1월 1일을 신정 명절로 쇠라.' 되찾은 나라에서도 우리는 설을 오롯이 되찾지 못했다. 이중과세(二重過歲) 막는다며 정부가 여전히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강요했기 때문이다. 1985년에 겨우 '민속의 날'로 공휴일이 되긴 했지만, 제 이름을 공식으로 되찾은 때는 1989년. 악랄한 식민(植民) 지배기보다 긴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그 소중한 '설'이 또 이상해졌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사전이 지난해 8월 '설날'이라는 첫째 뜻풀이 다음에 새로운 뜻풀이를 달았는데…. '음력설과 양력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예나 지금이나 설은 명절인 정월(正月·음력 1월) 초하루를 말한다. 음력설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전통이 무슨 만고불변(萬古不變)은 아니다. 문제는 뜻풀이를 바꿀 만큼 개념이 바뀌었느냐는 점이다. 하도 궁금해서, 어느 학원 강사·학생 70명 남짓한테 물어봤다. 설 하면 양력 1월 1일이 떠오르느냐. 집에서 설로 쇤다는 한 명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몇몇 집 말고 누가 양력 1월 1일을 설로 여기는지. 멀리 갈 것 없다. 근현대 100년 고초 속에서 쩡쩡히 살아온 걸 보면 알지 않는가. 양력설이라는 말은 그렇다 쳐도, 설은 그냥 설이다. 해가 바뀔 때면 "닭의 해(정유년)가 밝았습니다" 하는 것도 짚어볼 문제다. 갑자(甲子) 을축(乙丑), 육십갑자는 음력 기준이기 때문이다. 국가표준이 1896년에 이미 양력으로 바뀌었는데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음력을 따르는 데서 오는 혼란이다. 새해는 왔는데 정유년(丁酉年)은 오지 않고…. 양력 현실과 음력 전통, 헷갈리는 공존(共存)의 끝이 어디일까. /ⓒ 조선일보 /양해원
145    시적 발상, 령감, 동기, 언어 등 시작 준비를 구체적으로 해야 댓글:  조회:2583  추천:0  2017-01-26
  시창작 강의-11(시를 쓰기 위한 준비 : 발상)   김송배   4. 시 쓰기 준비를 위한 몇 가지 단계   한 편의 시를 쓰는데도 사람은 여러 도시와 주민들과 건물을 바라보아야 하고 짐승들과 날아가는 새와 아침을 향해서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시골의 길, 뜻하지 않은 상봉(相逢),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 등등이나 지금도 분명치 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여러 밤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신음하는 여자의 부르짖음, 아이를 낳고 잠든 해쓱한 여자를 기억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 봐야 하고 때때로 죽은 시체도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을 가짐으로써도 넉넉하다고 할 수는 없다. 기억이 많아 졌을 때 그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엄청난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억만으로 오로지 시가 될 수 없다. 그것들이 우리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된 다음에야--그때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구절이 그 가운데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시를 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용이 좀 길었지만 이것은 릴케의 말입니다. 한 편의 시를 잉태하기까지 한 시인이 겪고 인내해야 할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준비 단계가 있습니다.   시적인 발상(發想)이나 영감(靈感), 동기(動機), 언어(言語) 등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4-1. 발상에 대하여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제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 고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는 본 것을 그냥 본대로, 느낀 것을 그저 느낀 그대로 쓴다면 굳이 고심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시는 본 것이나 느낀 것들을 어떻게 정서와 언어로, 나아가서는 사물의 그림(이미지)으로 나타내느냐, 그래서 어떻게 감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산고(産苦)와 같은 진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시가 보이는 것이나 느끼는 것의 기록이 아니라 감추어진 것, 숨어 있는 뜻까지 나타내야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것, 감추어진 뜻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 한 아름 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 아름답다. 아! 이렇게 고울 수가....하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정서의 환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인 느낌으로는 시적인 정서의 환기가 되지 못합니다. 시적인 느낌, 시적인 감동은 이러한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느낌을 특수한 감동으로 환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체험하지 못한 감동으로 환기시켜야 비로소 시적인 창조의 발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형상화했을 때 시가 된다는 평범한 발상은 기초적인 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보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으로 발상차원을 한 차원 높게 이끌어 올려야 하고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지 못해서 안 될 것으로 그 차원을 끌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이 실제로 발상 연습에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있다고 합시다. 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을 때라면 우리는 꽃나무로 보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있다면 무엇인가 공허감 같은 허무를 느낄 것입니다.   이처럼 한 그루의 나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개화(開花) 또는 낙화(落花)로 그 모습이나 생태를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서도 그 나무의 모습은 각기 다른 감정과 다른 생각, 다른 생태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즐거움을 맛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며(개화) 인생의 무상함이나 쓸쓸함까지도 느끼면서(낙화) 계절의 순리에 따른 자연이나 우주의 의미를 생각하는 등 여러 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한 그루의 나무가 바로 인간의 존재와 연결될 수 있으며 생성과 소멸의 자연 원리이며 우주적인 산물로서 시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글이글 타는 눈알을 굴리며   하늘 위, 땅 밑을 굽어보고 쳐다보아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면   시인의 붓은 그에 따라   공허한 것에 육체를 주고   장소와 이름을 정해 준다.   위의 글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는 상상력의 기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물들이 모양을 드러낸다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 그루 나무는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시인이 찾아내어 새로운 사실이나 진실, 그리고 진리로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 시적인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물을 어떤 단계로 보아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모두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시인은 그 차이를 단계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① 나무를 그냥 나무로만 본다. ② 나무의 종류와 모양을 본다. ③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④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자세히 본다. ⑤ 나무속에 승화되어 잇는 생명력을 본다. ⑥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의미)을 읽어 본다. ⑦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잇는 세계를 본다. 이러한 여덟 단계의 발상차원 중에서 나는 어느 단계에 해당하고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국내의 많은 문예창작과 교수들이나 시 강론자들이 초기 시 발상법이나 사물을 보는 법으로 흔히 인용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①에서 ④까지의 단계는 나무의 외형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지만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차원으로서 눈에 보이는 부분 그대로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③과 ④는 그래도 약간 한 걸음 앞선 태도이기는 하지만, 역시 나무의 외형적 관찰에 불과해서 깊이 있는 관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⑤에서 ⑥까지는 나무의 외형이 아니라 그 내면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이때 일상적, 상식적 차원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나무의 모습이 조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무의 생명력이라든지, 그 생명력의 이미지나 사상 같은 것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 단계에서는 그것들이 나무의 모습으로 형상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나 사상으로 바뀌어 진 나무의 그 변용은 나무에 대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나무는 그 의미의 측면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⑦⑧의 단계에 이르면 나무는 다시금 비약적 변용을 이루게 됩니다. ⑤⑥의 단계에서 아직 서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나무가 이 단계에서 보이지 않는 저쪽의 세계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이처럼 광대한 다른 세계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을 낳는 원동력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상상력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계속해서 영감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마이크로코스모스 ―장철문(1966∼ ) 나는 그만 일출의 장관을 보아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침묵이 만들어내는 무한장력을 밀고 올라오는 햇덩이를. 웅덩이는 그만 침묵의 무한장력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아마도 그 순간에는 숲도 그만 숨쉬는 걸 잊었을 것이다. 그 웅덩이인지 연못인지 모를 어머니의 몸속에서 햇덩이 하나가,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그걸 바라보는 이쪽까지 환하게 머리를 내밀고 뒤이어 목이 빠져나오고 몸통까지 우뚝 솟아오른 뒤 날개와 네 다리를 펴고 나머지 접힌 두 앞다리를 차례로 펴고 물위에 균형을 잡고 섰다 싶은 순간, 왱!     가을이면 길가에 줄지어 꽃 피어 있는 코스모스, 그 이름이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에서 딴 것이라는 걸 알고 신기해했던 생각이 난다. 이름을 지은 이는 가녀린 몸에 소녀 같은 얼굴로 한들한들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에서 우주를 본 거다. 하긴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우주를 구현하고 있을 테다. 화초 코스모스는 제 이름으로 세계가 수많은 마이크로코스모스, 아주 작은 우주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연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의 한 장면 같은 시다. 화자는 숲에 갔다가 보기 힘든 현장을 목격한다. 물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막 성충이 돼 물을 벗어나는 모기를 본 것이다. 화자는 왜 물구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까. 모기의 사생활을 엿보자던 건 아닐 테고,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일렁이는 고인 물이 마침 피로했던 화자의 걸음을 쉬게 했을 테다. 물속이나 어머니 배 속이나, 안전하고 익숙한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머리를 내민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무한장력’을 뚫고 ‘햇덩이’처럼 솟아난 모기여! 그 순간 웅덩이는 환했을 것이다. 모기의 작은 머리통이라고 여명이 없을까. 화자는 ‘그만 일출의 장관을 보아버렸다’ 한다. 시가 ‘왱!’으로 장난스럽게 끝나는데, 그렇게 장하게 태어났건만 삶은 하찮고 해로운 벌레라는 말을 하려는 듯도 하고, 그런 사람도 탄생은 장엄했다고 말하는 듯도 하다.  
144    시인은 직접적 체험을 통하여 진실된 인생을 운운해야... 댓글:  조회:2593  추천:0  2017-01-26
      [인민망 한국어판] = 복건(福建)성 룡연(龍巖)시 영정(永定)현 환극루(環極樓), 독특한 모형을 하고 있는 원형 투러우(土樓)... 시창작 강의-10(시의 의미성 : 체험과 주제)   김송배       오늘은 전번에 이어서 시의 의미성(주제)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면서 체험이 주제와 연결되는 과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먼저 시를 한 편 읽어 봅시다.   지난밤 내 꿈 속의 새처럼   어둠을 풀어 선회하는   꼬불꼬불한 강물이었나   민통선 부근, 파르라한 숲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 한 마리   포롱포롱 울음 울며   아직도 아픔이야 아픔이야   날개 찟긴 산하에는   말없이 흘러간 핏빛 세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아   남과 북이 자유로운   구름 한 점 닮을 수 없었느니   응어리진 가슴이여   포연(砲煙)을 묻고   이젠 눈물 거두어   뜨거운 사랑, 어화둥둥 어화둥둥   동토(凍土)에 뿌릴거나 이 작품은 우리 역사의 수난으로 남아있는 현장 ‘민간통제선’을 들어가 보고 옛날에 씌어진 졸시 [민통선 부근] 입니다. 이렇게 6.25라는 민족상쟁의 비극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당시 참전했던 실제 경험이 있으면 더욱 절묘한 주제를 투영시킬 수도 있겠으나 민족의 한이 서린 현장을 생동감있게 직접 견학함으로써 얻어진 작품도 통일의 열망과 더불어 민족의 한이 되어버린 동일민족의 자유스러운 왕래가 어떤 한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직접체험이야말로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며 여기에서 걸러진 정서는 시에 있어서 중요한 이미지나 주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체험과 함께 인생관이 형성되고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는 점도 우리는 어떻게 진실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시 쓰기에서 어떻게 진실을 표현할 것인가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체험을 상기해 보면, 어머니가 존재하는 단란한 행복에서 벗어나 어머니라는 존재의 보금자리와의 결별, 이것도 죽음이라는 사별(死別)의 거대한 정서는 존재와 소멸이라는 아무도 느낄 수 없는 체험을 통해서 생명의 창조와 사랑 등이 시의 주제로 승화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체험인 간접체험이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같이 간접체험은 선지자나 선각자가 이미 직접체험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체험을 승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미 소멸되고 없는(가 볼 수 없는) 상황을 이 선지자들의 기록을 통해서나 강론을 통해서 체득하는 경험입니다.   대체적으로 독서나 예술작품의 감상을 들 수 있겠는데 독서나 작품의 감상은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문자나 작품으로 우리는 좋은 체험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시 한 편을 읽고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불타는 나무에는   새들이 날아들지 않는다   나는 보았다   신비한 생명 속에 깃든 연약한 욕망   어느날 내 육신 불태우면서   잔잔한 선율 몰아내는 어지러운 생명   내 영혼 곁으로 날아드는 새떼를 보았다   詩로 기들여진 영혼   한 웅큼 詩心으로 불태우는 사랑   나는 알겠다   몇 번이나 수렁으로 빨려든 허망   어느날 일상사의 슬픔 털어내면서   비범한 감성으로 추스르는 아름다운 혼불   내 솔직한 현주소를 깨우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간접체험으로서의 졸시 [심우도(尋牛圖) 감상-5.시로 길들여진 영혼인가] 전문입니다. 우리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인데 ‘심우도’는 불자들의 수행과정이나 인생의 수양과정을 10단계로 소(牛)를 매체로 하여 형상화한 그림입니다. 이를 노래로 부른 것은 ‘심우송’이라 하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잠깐 참고로 그 내용을 소개해보면 1. 소를 찾아서 헤매고(尋牛) 2. 소 발자국을 발견하고(見跡) 3. 드디어 소를 찾고(見牛) 4. 소를 얻어서(得牛) 5. 소를 먹이고(牧牛) 6.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오지만(騎牛歸家) 7. 소는 없고 사람만 있으며(忘牛存人) 8. 다시 소도 사람도 없어지고(人牛俱忘) 9. 본래로 돌아간다(返本還源). 마지막 10도에서는 ‘흙과 재를 덮어써도 언제나 웃음(入廛垂手)’뿐이란 해탈을 암시하고 있어서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지표와 상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그림을 감상하고 ‘심우송’을 일고 난 다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행로가 이처럼 ‘소를 찾는 일’과 다름이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생각하면서 10편의 시가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체험을 통해서 시의 의미를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좋은 시 쓰기와 시 읽기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체험을 통해서 지식이 포함된 영양소를 우리의 가슴 속에 가득 채우는 일이 중요하고 지적인 자양이 충만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소재를 만나서 시적인 동기가 유발되더라도 즉각 주제와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인 리이드(H.E Read)의 말처럼 ‘시에 있어서의 논리는 느끼는 사상이다. 나는 어떤 사상이라도 그것이 이미지로서 이해되지 않는 한 시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사상가가 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사상이나 정서가 명징하다면 이미지나 주제의 구성 능력에서 월등하게 뛰어난 시의 창작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소설가이며 평론가인 헉슬리(A.L Huxley)도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본질은 시적인거야. 물론 자신의 생각이라는 건 모든 사람의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사는 세상은 한정된 교양의 최소공분모로 구성되겠지. 그렇지만 순수한 시는 언제 거기에 있지.--언제나’라는 말도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주제에 관한 한 다음에 정확하게 논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     의식(儀式)·3 ― 전봉건(1928∼1988)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 쌀이라고 하는 말. 연탄이라고 하는 말. 그리고 별이라고 하는 말. 물이 흐른다고 봄은 겨울 다음에 오는 것이고 아이들은 노래와 같다라고 하는 너의 말. 또 그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불꽃의 바다가 되는 시이트의 아침과 밤 사이에 나만이 듣는 너의 말. 그리고 또 내게 살며시 깜빡이며 오래 잊었던 사람의 이름을 대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평화라고 하는 그 말.    첫 행이 쾅! 하고 와 닿는 시다.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니, 이런 고백을 들으면 다 죽어가던 연애 세포마저 살아날 것 같다. 그런데 읽다 보면 본격 연애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애시가 아니라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 이 시는 사랑 노래는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읽는 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것은 희망의 시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처음에 ‘너의 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 다음부터가 본론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 말은 평범한 말이 아니다. 맨 처음, 그는 쌀이라는 말이 되고 싶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쌀은 가장 절실한 말이다. 다음으로, 그는 연탄이 되고 싶다. 차가운 구들장에 몸을 누인 사람들에게 연탄은 가장 고마운 말이다. 또 그는 별이 되고 싶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별은 마지막 비상구가 되어 준다.   쌀 연탄 별만 희망일까. 겨울이 지나 다가오는 봄, 아이들의 순수함, 그리고 평화까지 이 시는 가만가만 불러낸다. 이렇게 세상에 꼭 필요하고 좋은 단어들을 모아서 시인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고맙고 기쁘다. 함몰된 희망의 부위에 새살이 돋는 느낌, 이 시는 그런 생동감을 전해 준다.   전봉건 시인은 여러모로 좋은 시인이었다. 시를 잘 썼고, 어려운 문예지 일을 도맡아 했고, 젊고 가난한 후배 시인들의 사정을 잘 챙겨 주었다. 나무처럼 그늘이 넓어서 그 그늘에 사람들이 모여 고민을 토로하고 어려움을 덜곤 했다. 그래서인지 이 희망의 시는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그는 쌀과 연탄과 별과 평화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公主”와 "왕자?"...
143    시는 이미지적 회화성과 배후에 숨겨진 의미성의 암시이다... 댓글:  조회:2433  추천:0  2017-01-24
      [인민망 한국어판] /하북(河北)성 바상(壩上)초원에서... 시창작 강의-9(시의 회화성 : 이미지)   김송배    2003년 새해개 밝았습니다.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 성취하십시오. 그럼 다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3-2. 시의 회화성(繪畵性)   시의 언어는 그 음악성과 아울러 그림 그리듯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시의 회화성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의 외형적인 운율을 배척하는 대신 오늘의 시인들은 상상력에 의해서 언어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의 매력이 귀로 듣는 음악적인 것에서 이제는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회화적(이미지-image)인 면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아마도 1913년경, 미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에즈라 파운드(Ezara Pound)가 주동이 된 이미지즘(imagism-寫象運動 :사상운동)--에즈라 파운드는 이미지운동을 전개하여 영국의 엘리어트를 비롯한 신진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음--운동이 일어난 때부터이며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 전개된 쉬르레알리즘(surrealism-초현실주의)--합리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여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추구와 표현의 혁신을 위한 프랑스 중심의 전위적 예술운동--과 독일에서 일어난 신즉물주의(new objectivity)--표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예술적 사조. 표현주의 , 순수주관주의를 배척하고 대상의 실재적 파악으로 박진적 묘사등 객관적 경향을 중시함--운동은 여기에서 가일층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시는 언어로 노래하는 대신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서 이미지를 말합니다. 우리가 가령 슬픈 일을 당하였을 때 ‘나는 슬퍼서 울었다’라고 직설적인 의사의 전달보다는 ‘나는 속눈썹을 적셨다’라고 한다면 언어의 그림으로서 이미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어떤 자극이 우리의 상상력을 통하여 실제로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머리 속에 연상한다면 그 때 떠오르는 영상(映像)을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에서는 이 영상을 언어로 표시하는 비유(比喩)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미지는 주로 은유(metaphor)의 성격을 띄게 되는데 이 이미지는 상상력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상상력에 의해서 언어의 그림을 그려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다시 자극시키는 현대시의 맛을 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지에 대한 종류와 형태 그리고 이미지를 만드는 법 등은 다른 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에즈라 파운드가 오늘의 시에 대하여 경고하는 듯한 다음의 시 [스스로 무덤을 가리는 ‘E. 파운드’의 송시(頌詩)]의 제2부를 옮겨 봅니다.   시대는 요구했다. 더욱 더 찌푸러져 가는   얼굴의 이미지를.   현대의 무대에 보람있는 것을.   어쨌든 희랍식 아치(雅致)는 아니다.   아니다. 내면응시(內面凝視)의 모호한 악몽은   분명코 아니다.   의역(意譯)된 고전(古典)보다는   차라리 훌륭한 거짓말을!   ‘시대의 요구’는 주로 황급히 만들어진 석고의 조형, 산문의 키네마.   설화석고(雪花石膏)나   시의 조각은 분명코 아니다.   오늘의 시인들에게는 깊은 사상이 요구되고 있는 것도 빈약한 사상으로는 초라한 이미지 밖에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시는 이 이미지를 중시하고 또한 많은 연구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3-3. 시의 의미성(意味性 )   현대시를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는 시의 의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성은 시인의 정서와 사상과 밀착되어 있어서 시가 지니는 감정과 사상은 직접적, 추상적으로 서술되지 않고 이미지의 배후에 숨겨져서 간접적, 구체적으로 암시하거나 호소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시 속에 무르녹은 시인의 목소리(또는 주장)로서 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은 어떤 의미로 나타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어조(語調)로 나타나는가에도 눈여겨 살펴야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것은 다른 장에서 실질적인 설명이 있겠지만, 시가 지닌 의미 속에는 시인의 정서와 속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사회주의나 옛 공산주의의 시와 같은 일률적인 사상(이데올로기)도 시의 의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술적 주제는 천편일률적으로 .의 주체사상이나 최고 특정인을 찬양하는 작품의 주제를 우리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말해두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정서와 사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적(知的) 영양소의 많은 축적을 통해서만이 뚜렷한 의미의 전달이 가능하고 시 쓰기에서 처음 의도한 아름다움이나 진실 등의 오묘한 맛을 더해 주게 될 것입니다.   정서(emotion)라는 것은 본래 기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고양(高揚)하거나 함으로써 생긴 복잡한 감정의 물결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것으로서 신체적인 표시를 동반하게 되는데 시는 정서의 표현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처음에 몸짓이 섞인 노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본능적인 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에 있어서 사라지지 않는 지하수와 같이 계속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의 풍요와 충만을 위해서는 우리는 많은 체험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체험을 통해서 정제된 시인의 정서는 바로 주제로 연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주제는 인간의 진실이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체험의 방법에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의 두 가지 유형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직접체험이란 실제로 현장을 찾아가거나 현장에 묻혀서 어떤 일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현실이 모두 직접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오면서 아름다운 추억과 잊어버리고 싶은 슬픈 일들이 복합적으로 한 인생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냥 아름답거나 슬프다면 인생의 한 부분으로서기억하면 충분할 것입니다만, 시에서 승화되거나 형상화되는 부분은 우리의 진실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 속에 원류로 흐르고 있을 때 시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많은 체험을 우선 필요로 하게 됨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슬픔과 반목과 질시와 물질문명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괴리들이 자성(自省)을 통해서 걸러지고 다시 새로운 본연의 진실로 돌아온 시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에 대해서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안녕히..... ===========================================================================================       탑  ―박영근 (1958∼2006) 저 탑이 왜 이리 간절할까 내리는 어스름에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무너져가는 몸으로 천지간에 아슬히 살아남아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사방 어둠 속 홀로 서성이는데 이내 탑마저 지워지고 나만 남아 어둠으로 남아     문득 뜨거운 이마에 야윈 얼굴에 몇 점 빗방울 오래 묵은 마음을 쓸어오는 빗소리 형체도 없이 탑이 운다 금 간 돌 속에서 몇 송이 연꽃이 운다 하늘엔 먹구름 느리게 흘러가고, 그 아래 벌판을 화자는 정처 없이 걷고 있었을 테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날이 저물어 가는데, 한 돌탑이 화자의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무너져가는 몸으로/천지간에/아슬히 살아남은’ 형상의 돌탑. 어쩌면 절 터였을까.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마을의 어떤 할머니는 들일하러 지나갈 때마다 그 앞에서 합장하고 고개 숙였을 테다. ‘저 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들판에 버려진 듯 홀로 서 있는, 풍상에 닳고 닳은 돌탑에서 화자는 제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리는 어스름에/산도 멀어지고/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진 제 인생의 어스름을 보듯이.      화자는 천지간에 마음 둘 곳 없이 ‘사방 어둠 속/홀로 서성이는’ 나그네다. 화자의 외로움과 비애가 정갈한 시어에 실려 독자의 가슴이 자욱이 젖어드는데, ‘문득 뜨거운 이마에/야윈 얼굴에 몇 점 빗방울/오래 묵은 마음을/쓸어오는 빗소리’!  형체 없이 닳아도 탑에는, 그 금 간 돌 속에는 몇 송이 연꽃이 있을 테다. 돌탑의 희미한 연꽃 문양이 비에 젖어 선명해지듯이, 일생의 먼지가 쌓여 진흙탕 같은 화자의 ‘오래 묵은 마음’에 연꽃이 피어나려 움찔거린다. 박영근 시에는 남성적이면서 섬세한 서정이 깃들어 있다. 청정하고 우미(優美)한 연꽃처럼
142    시인은 올바른 인생관과 정립된 가치관이 있어야... 댓글:  조회:2747  추천:0  2017-01-23
      현지시간으로 2017년 1월 22일, 수만명의 이슬람교도들이 “세계무슬림(이슬람교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모였다. ‘마지막 기도’ 집회가 끝난후 이슬람교도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자리가 없어 기차 지붕에마저 사람들이 꽉 차있는채로 기차는 출발한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익숙하다는듯이 기차 지붕우에 자리 잡고 앉아있다. / 텅쉰넷 =======================================   시창작 강의-8(특강-시와 인생은 함수관계인가)   김송배    시란 무엇인가라는 낡은 질문이 새로운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답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시의 정의를 요즘 와서 골돌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한생을 시창작에 매달리다 보니 나의 좁은 뇌리에서 사유하는 방향이 시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확신을 증명이라도 하는양 일상생활 자체가 모두 시로 귀결되는 듯 하다.  어찌보면 다양화, 경쟁화된 현실 사회에서 고매한 사유만 지향하면서 살아가려는 시인의 자존심이 심히 갈등을 동반하는 예는 많다. 그만큼 시적인 삶이 퇴색되고 산문적인 삶이 현재를 충만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의 인격체가 허약해질 수 밖에 없는 무서운 현실에 시인은 고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5년째 맡고 있는 KBS방송문화센터 시창작반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에 의하면 아직도 시와 시인의 기대는 새롭고 예지적이며 영원하다. 처음 시를 대하는 사람에게는 시 그 차체에 대한 신비감이며 시인에 대한 최상의 동경이다. 대개 연만하신 분들이 시창작반을 찾는 이유가 이런 양상으로 일치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삭막한 물질우위의 문명세계에 살아가고 있지만 지혜로운 영양분의 고갈을 느끼는 측면이 있음에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소녀, 청년 시절을 진통하고 이제 중년을 넘어서 가정적으로 안정을 이룬 후에 다시 문학의 고행을 시작하는 계층이 많아졌음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남은 여생이라도 정신적인 면 그러니까 영혼의 위대한 진실이 무엇인가 나름대로의 인생관이 가미된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편의 시에서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고 한다면 이를 만년에사 거두어 보려는 보람있는 삶의 지표가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시인에 대한 동경이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강한 집념이 팽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시인은 신선과 같다는 옛 비유도 그러하려나와 인생에 있어서 숭엄한 존재가치로서의 표본으로 설정하려는 일종의 충족 욕구같은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사실 시인은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와 달리 사람 인(人)자를 붙여서 문학의 다른 장르인 집 가(家)와 구태여 구분 짓는 연유가 잘 반영된 듯도 하지만 이 인(人)이 상당한 고뇌를 요구하고 있는 점은 깊이 새겨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인쇄매체의 발달과 함께 문학잡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나서 시인으로 등단하는 문이 넓어져서 그 꿈을 이루는 기회가 비교적 쉬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시인의 길을 너무나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향도 있고보면 어떻게 이를 이해해야 할 지 약간은 부정적인 견해도 있는 것 같다.  시인의 길은 인생과 함수관계가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좋지만 시인이 되기까지는 먼저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시인은 사물이나 인생을 관찰하는 동안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현실 생활이나 그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소재로 한 것이 곧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시인이 존재할 필요가 없이 기록으로 남겨도 좋을 것이다.  똑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체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시인은 이것을 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냥 자기의 지나간 체험으로 끝난다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시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인생과 어떤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인가. 먼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를 사랑할 수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쓸 수 있겠는가가 문제이다. 시를 향한 투철한 정신, 인생의 마음밭에 깔려있는 충만한 시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는 바로 나의 인생이다라는 확고한 삶의 지표가 세워져야 한다.  옛말에 시자인심지감어물이성성자야(詩者人心之感於物而成聲者也)라는 것이 있다. 시는 성정(性情)에서 발생되어 사물에서 느낀 바를 운어(韻語)로 나타낸 것으로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논어에서는 공자의 제자 중에는 진항(陳亢)이란 사람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와 함께 공부를 하면서 스승이 아버지인 백어에게 서당 이외에 집에서 따로 무엇을 배운게 있느냐고 물었다. 백어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일찌기 아버님께서 뜰에 홀로 계시거늘 내가 뜰을 지날 때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시경(詩經)을 읽었느냐 묻기에 아직 읽지 못하였다 한즉 시를 읽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 없다하여 시를 배웠노라'고 했다. 진항이 감복하고 그도 즉시 시를 공부하여 백어를 따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불학시 무이언(不學詩 無以言)이라는 유명한 말이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앞에서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아주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또한 이어서 불학례 무이입(不學禮 無以立)라 하여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서 있을(살아 갈) 자격이 없다하여 시와 예를 중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시나 예는 한 인생을 영위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며 이를 잘 다듬고 이해하는 것은 특히 시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은 시와 인생과의 일치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확실하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신석정 시인도 그의 는 글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에서 제작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이 아닐 수 없다고 했으니 시는 곧 인생의 수양이며 시인은 한 인격의 결집이다.  시인은 올바른 인생관과 정립된 가치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시는 그 사람의 마음(其詩其人心)이고 그 글은 곧 그 사람 자체이며 그 사람은 그 글이어야 한다. 진실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바로 시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우리는 사무사(事無邪)라는 휘호를 많이 접한다. 이것도 논어에서 '시경의 시 삼백 편의 내용은 한 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얼마만큼의 인간에 대한 진실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진실이 곧 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실은 정의하기가 너무 광범위하지만 시적인 진실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실천이어야 한다. 순수하고 진솔한 삶의 진실도 내가 남을 살아하면 남도 나를 사랑한다(愛人者卽愛之)는 신념이 무르녹아서 그 진액이 진실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이제 엄동설한 기운이 완연하다. 그 많은 시인들은 계절을 테마로 한 저마다의 시 한 편을 창작하기 위해서 또 고뇌에 쌓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내가 필요하리라. 시인은 지독한 고독과 갈등과 번민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시가 돈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리라.  지금와서 내 인생에서 진정한 시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두고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내가 택한 시인의 길이 내 인생의 역정과 어떤 괴리는 없었는가하는, 존재가치의 배타적인 결함은 없었는가하는 자성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시인의 자긍심에 대한 조그마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될 터이기 때문이리라.*  ===========================================================================     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1941∼ )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 뽑아줬다 모르는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 그의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헤돌아서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 바라면서 아냐 아냐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 탓에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 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올해도 4월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이 짓거리 뿐이라서… 새해를 맞은 게 얼마 전 같은데 ‘올해도 4월!’ 벌써 한 해의 3분의 1을 써버렸다. 이럴 수가!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어영부영하지 말고 매 순간을 생생히 살아야지. 생(生)이 피처럼 내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돌게 해야지!  4월의 어느 하루, 화자는 헌혈을 한다. 붉은 피가 ‘320밀리리터짜리 봉다리’로 흘러들어간다. 내 몸에서 생명을 나르던 이 피가 다른 이의 몸에 생명을 나르겠지. 건강한 내 몸을 돌던 피, 아픈 누군가의 몸에 ‘구석구석 속속들이’ 돌겠지. 봄비가 바짝 마른 땅을 적시어 새싹을 움틔우듯 내 피가 그의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를! 그러기를!     붉은 피 한 주머니가 ‘봄비 한 주머니’가 되는 첫 연에서 생명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따뜻한 상상력을 감성적으로 펼치던 화자의 자의식이 두 번째 연에서 돌연 ‘아냐 아냐’ 발동돼 시에 톡 쏘는 맛을 더한다. 실은 헌혈이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이었을지 모른단다.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올해도 4월.’ 왜 이리 나른하고 답답하고 우울하지? 살맛이 안 나는구나. 상태가 이런데 그 피에 정신 ‘멀쩡한 누군가 오염될라/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시인은 헌혈을 한다. 시를 발표하는 마음은 헌혈하는 마음과 닮은 데가 있다. 대개의 시인은 제 시가 ‘봄비 한 주머니’ 같은 시이기를 바랄 테다. 몇 해 전 대방역 앞을 지나다 헌혈소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헌혈이나 할까 하다가 피도 싱싱하지 않을 내 나이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우리나라 헌혈 가능 연령은 16세 이상 65세 미만이란다. 내 피도 아직 쓸 만하구나.
141    "조선족 대표"와 "덜된 대표" 댓글:  조회:2562  추천:0  2017-01-22
우리 말 하지 않는 “덜된 대표” 2017년 01월 19일 08시 57분  작성자: 오기활 희망찬 정유년의 벽두에 연변에서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 제11차 대표대회”, “정협연변조선족자치주 제13기 제1차 회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5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 대회”를 원만하게 잘 치렀다.   실로 향후 5년간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 건설과 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될 희망의 “3회”라 하겠다.   그런데 필자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송한 “3회”관련 인터뷰 화면을 보고 대단히 유감스러웠던 나머지 “덜된 대표”로 실망을 표하고싶다.   필경 인터뷰 출연 대표들의 족별과 복장차림으로 보아 조선족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그네들이 자신의 신분과 민족을 지키지 않고 자기 민족언어를 포기하고 한어만 하는지를 알수가 없다.   기자들이 그네들을 조선말을 하지 못하게 했을가? 아니면 그네들이 보도부문의 번역일군들에게 일거리를 더 챙겨주려고 그럴가?   하긴 조선어방송때는 방송인들이 한어말 발언을 조선어로 대역하거나 조문자막을 배합하고 한어방송때는 반대로 조선말 발언내용을 한어로 대역하거나 한문자막을 배합하니 말이다.   우리 말에 “덜된 사람”이란 말이 있다.   “덜됐다”는 아직 “채 못됐다”로 “덜된 사람”이란 그가 아직 원숭이로부터 사람에로 채 진화되지 못했다는것으로 해석된다.   세상에 완전완미한 사람이 없듯이 누구를 막론하고 덜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덜됐다”는 표준이 사전에 없기에 필자는 한 인간의 “됐다”, “덜됐다”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지내다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취재하고나서 항간에서 어떤 사람을 “덜된 사람”이라고 하는가를 알게 되였다.   리광남대좌는 군령이 40여년이 넘지만 조선말을 하도 잘하기에 원인을 물었더니 “부모님의 덕분”이라고 하였다.   그가 참군하던 날 부모들이 하는 말씀이 “광남아, 조선말을 잊지 말라. 군대에 갔다와서 조선말을 잘 안하는 사람을 동네에서 덜된 사람이라며 욕을 한다.”   부모들의 재삼 부탁을 명기하고 “덜된 사람”이 안되기 위하여 항상 노력했다는 리광남, 두 딸을 참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조선말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리광남이다.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 취재시 기사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면 절대 안된다”를 전제조건으로 했다는 리광남이다.   몇년전 필자는 “덜된 사람”이란 글을 썼더니 독자들의 반향이 그렇게도 컸다.   한 독자의 댓글이다.   “조선글을 모르는 정부내의 조선족간부들은 조선어문조례와 연변조선족자치법의 위배대상입니다.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을 모두 소학교에 다시 보내 조선글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조선족들이 자기의 “발전”을 위해 한어나 외국어를 배우는것은 좋은 일이다. 필자는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한어말아나운서 조송매를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느낀다.   문제는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조차 모르면서 나서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며 떠드는 “덜된 사람”, “덜된 간부”, “덜된 ..장”(국장, 시장…)과 “덜된 대표”들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4기 인대 상무워원회 9차 회의는 “사회적으로 자치민족언어습관을 존중하고 조선어발전의 량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민족단결사업을 추진하고 민족전통을 계승하며 민족의 우수한 문화와 특색경제를 발전시키고 조선어문자사업을 번영발전시키기 위하여 매년 9월 2일을 ‘조선어문자의 날’로 결정한다.”고 하였다. 결정은 조선족으로 자기 민족의 문자를 홀시하고 잃어버림에 대처하는 하나의 법적조치라 하겠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민족이란 언어의 공동체다. 청나라를 세운 만족은 본 민족의 언어를 쓰지 않은데서 만어가 소실되여 지금 중국전역에 만어를 아는 만족이 겨우 10여명밖에 없다니 만족이란 공동체를 운운할수 있을가?   “언어문자를 상실하면 민족정체성도 사라진다.”   이는 북경민족출판사 전임사장 우빈희의 말이다.   “문화의 정체성은 우리가 지키려고 해서 지켜지는것이 아니라 언어시장에 의해 좌우지된다. 즉 경제론리에 의해 결정된다. 언어문화가 시장가치가 있다고 할 때에는 꼭 사람들에 의해 지켜진다.” 이는 중앙민족대학 박광성교수의 말이다.   필자는 현실에 비춰 우리 민족의 언어문화를 포기하고 자멸시키는 주범은 다른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 민족 자신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하는 필자의 뇌리속에 자리한 몇몇 조선족의 사례다.   얼마전에 있은 “연변조선어방송애청자협회 도문분회 설립식”에서 도문시 인대에서 퇴직한 80대 로간부 박운수옹은 조선민족의 넋을 강조했고 한문으로 된 회원등록표에 몽땅 조선글로 등록했다.   남상복 전임주장은 조선글이 아주 미숙했는데 조선말로 주인대보고를 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으로 조선글을 배우고 끝내 조선어로 정부사업보고를 하였다.   어릴적부터 한족학교에 다녀 우리 말, 우리 글을 모르는 간부들이 있다. 그러나 조선족들이 집거한 연변에서 사업하려면 남상복 전임주장처럼 늦게라도 우리 말, 우리 글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림신문 2017-1-17
140    "조선족"과 "선족" 댓글:  조회:2493  추천:0  2017-01-22
'조선족을 선족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2016년 11월 02일 10시 01분  작성자: 오기활 일전에 중국정법대학 교원(校園)발전사무실 책임자인 김룡하씨한테서 이런 전화가 왔다.   “오선생님, 최근에 국내 조선말신문과 인터넷에서 ‘조선족’을 ‘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에 나는 매우 유감럽습니다. 이에 나는 즉시에 관련 신문매체들에 문제를 반영하며 시비를 가릴려고하니 대방에서는 원인을 출처에 밀뿐 큰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긴 몽고족을 몽족, 위글족을 위족이라고 간칭을 할려니 조선족이 자기 민족을 ‘조족’이 아닌 ‘선족’이라고 간칭(?)하다니 말이 됩니까? ”   “우리가 자기의 민족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지켜 줍니까?...나는 협애한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안면이 없는 필자한테 신문사를 찾아서 전화번호를 알고 문제를 반영하려는 김룡하씨의 애족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그래서 “선족”이란 어원을 찾아 봤더니 “선족”이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 일정(日政)때 조선족을 멸시하여 일본사람들이 조선족을 “선족”이라 불렀다고 해석하였다.   연구테마가 “조선족의 다중언어(多言語)교육”인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정형규회장(교수)이 조선족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있다.   ㅡ 조선족은 자신의 신원과 존재의 의의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조선족과 한인, 코리안은 전혀 다르다. 조선족이라는 언어는 중국에서 생긴 고유명사로서 중국국적을 가지고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조선족과 조선민족은 다르며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조선민족은 조선족이 아니다. 례하면 로씨야에서 사는 조선민족은 조선계 혹은 한국계 로씨야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조선족은 한인, 코리안이 아닌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필자는 신문지상이나 사회상에서 조선족 언어문자의 람용과 외래어 란무(한국식이나 영어로 표기된 상호, 간판, 성씨, 이름)에 아주 반감한다. 프랑스인들의 “국어사랑법”을 곁들어 본다.   프랑스사람들은 국어 “방위”를 국가의 지상 의무로 여기고 있다.   1994년에 가결된 “프랑스 말 사용법안”에 따르면 프랑스인이 텔레비죤광고에서 “디스크 지키”라는 영어를 쓰면 최고로 6개월의 금고형(禁稿刑)을 받고 국제회의에서 “컴퓨터”라는 말을 쓰면 8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은 컴퓨터를 “오르디나툴”이라 하고 “디스크 지키”는 “아니마툴(활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바꾸었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이 법안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어는 늘 국가적 과제였다. 이대로 나간다면 우리는 프랑스어를 틀림없이 잃게 된다.”고 하였다.   프랑스의 총리도 “프랑스어의 수호는 프랑스의 미래를 믿는 행동”임을 강조했다.   “프랑스어의 옳바른 사용법” 책의 저자인 풍피두 수상은 일찍 1967년에 “국어정책은 정부의 단순한 부차적인 사업이 아닌, 공화국의 기본원칙, 곧 국가의 독립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영국의 사회비평가이며 사상가인 존 러스킨(1819.2.8 ㅡ 1900.1.20)의 말이다.   ㅡ 위대한 민족은 자기의 자서전을 세가지 원고로 쓴다. 한 권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가를 쓰고 다른 한 권에는 자기네 예술에 대해 쓰며 또 다른 한 권에는 자기네 언어에 대해 쓴다   언어는 살아있는 잔디와 같아 끊임없이 손질하고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아니면 어느 사이에 벌레가 먹고 잡초만 무성해진다.   언어는 그 나라, 그 민족의 문화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려주고 그 나라, 그 민족이 얼마나 문화를 아끼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조선족 언어문자사용의 규범화가 하루속히 기대된다. 길림신문 2016년 10월 31일자
139    로익장(老益壯)의 문학을 위하여... 댓글:  조회:2787  추천:0  2017-01-22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청춘의 문학   한국문학은 오랫동안 ‘청년문학’의 외관을 띠고 전개되어왔다. 근대 초기에 육당 최남선이 만든 잡지가 ‘소년(少年)’과 ‘청춘(靑春)’이었을 때, 이미 한국문학은 ‘순정(純情)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청춘’을 바치는 이야기로 시종할 운명을 가지고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은 ‘창조(創造)’나 ‘폐허(廢墟)’, ‘백조(白潮)’ 역시 스무 살 안팎 젊은이들이 만든 연합체였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표작도 젊은 시절에 씌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광수가 불세출의 소설 ‘무정(無情)’을 연재했을 때 나이는 우리 셈법으로 스물여섯이었다. 참 젊은 나이였다. 하기야 그는 10대 때부터 소설을 썼던 조숙한 천재이긴 했다. 그 뒤를 이은 시인이나 작가들도 비교적 젊었을 때 중요한 성과를 냈다. 김소월이 기념비적 시집 ‘진달래꽃’을 냈을 때 스물넷이었고, 백석 시집 ‘사슴’도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출간되었다. 오장환 시집 ‘성벽(城壁)’은 20대 초반에 나온 것이었다. 해방 후에도 우리는 최인훈의 ‘광장(廣場)’이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씌어졌고,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이 스물넷에 발표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한국문학의 수많은 대표작들이 작가들의 20대에 씌어졌고, 그들의 수명이 짧아서였는지 아니면 젊을 때 역량이 소진해버렸는지 한국문학은 그 후 진정한 의미의 ‘노대가(老大家)’를 가질 기회가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국문학의 ‘청년문학’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하고 부추긴 것은 단연 작가들의 요절이었다. 천재는 요절한다더니 한국문학의 구성원들이 꼭 그 꼴이었다. 나도향, 이상, 김유정, 윤동주, 기형도 등은 서른을 못 채우고 돌아갔고, 김소월, 박용철, 이효석, 오장환, 김환태, 박인환, 신동엽 등도 한창 때인 30대에 숨을 거두었다. 비교적 완결성 있는 문학 생애를 남긴 김동인, 현진건, 정지용, 김영랑, 채만식, 임화, 김남천, 이육사, 김기림, 조지훈, 김수영, 김현, 고정희 등도 지천명에 이르지 못했다.  젊어서 절편들을 남기고 중년 이후 진경을 못 보인 이들도 많았는데 이상화, 김광균, 손창섭, 장용학, 김승옥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또 북쪽으로 올라가 존재론적 연속성으로서의 문학적 말년을 가지지 못했던 이태준, 박태원, 백석, 이용악 등도 있다. 어쨌든 한국문학은 중년 혹은 장년 이후의 문학적 전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근대의 한복판을 지나왔으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젊음’이야말로 더없는 문학적 수원(水源)임을 흔쾌하게 받아들여 왔던 것이다. 노대가의 문학  이와는 달리 우리에게 ‘노대가’의 모습을 보여준 이들도 여럿 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해방 후에 문학적 말년을 보여준 박종화, 오상순, 염상섭, 이병기, 김동리, 서정주, 김정한, 김달진, 신석정, 박두진, 황순원, 김현승, 김광섭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근대사의 험난한 협곡을 지나오면서 요절의 불행을 벗어나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간 행운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구상, 박경리, 김규동, 김춘수, 홍윤숙, 성찬경, 박희진, 박완서, 이청준, 홍성원, 오규원, 최하림, 최인호, 이가림, 김종철 선생의 문학적 말년을 외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러한 노대가들의 연쇄적 점증(漸增)은 한국문학이 부피를 키워가면서 나타난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이 60에 겨우/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신(神)이 지으신 오묘한/그것을 그것으로/볼 수 있는/흐리지 않는 눈/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채색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꽃/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  세상은/너무나 아름답고/충만하고 풍부하다./신이 지으신/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지복(至福)한 눈/이제 내가/무엇을 노래하랴./신의 옆자리로 살며시/다가가/아름답습니다./감탄할 뿐/신이 빚은 술잔에/축배의 술을 따를 뿐.  --박목월, ‘개안(開眼)’ 전문  박목월의 ‘크고 부드러운 손’(민예원, 2000년)이라는 유고시집에 실린 이 작품은 신약성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실로암 못가의 기적 체험을 인유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 그 영안(靈眼)의 중요성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허튼 욕망에 사로잡힌 세속적 자아에 대한 스스로의 경계이자 근시안적 정열의 무익함에 대한 노년의 성찰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영혼의 장님이여/안다는 그것으로/눈이 멀고/보인다는 그것으로/보지 못하는/오만과 아집 속에서/진흙을 이겨/눈에 바르게 하라”(‘믿음의 흙’)는 단호한 진술과 함께 신의 섭리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목월 말년의 시편은 깊은 신앙과 인생론적 긍정 속에서 갈무리된다. 초기 시집 ‘청록집(靑鹿集)’의 보편적이고 상상적인 자연을 지나, 생활의 구체성을 노래한 중기 시편을 지나, 신앙으로 귀의하면서 잔잔한 서정으로 귀착한 그의 말년이 지극히 평화롭게 밀려오는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생존 문인인 정완영, 김종길, 김남조, 최일남, 정명환, 고은, 이어령, 유종호, 신경림, 김우창, 김윤식, 마종기, 황동규, 정현종 선생의 문학적 궤적을 지금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바야흐로 근자에 이르러 우리는 한국문학 심층으로서의 ‘노경의 문학’을 폭넓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 작가들의 평균 수명 연장과 함께 찾아온 현상이기도 하지만, 시인 작가들의 개별적 역량과 지속성에서 우러나오는 소망스런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김남조의 ‘귀중한 오늘’(시학· 2007년)에는 ‘노약자’라는 아름다운 시편이 실려 있는데, 비록 화려한 시편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시인이 추구해 마지않는 ‘삶의 여백’ 같은 것이 진하게 묻어난다. 노약자, 이 이름도 나쁘진 않아/그간에 삼만 번 가까이는/해돋이를 보고 해 아래 살아/해의 덕성과 은공을 웬만큼은 일깨웠는지라  사람의 마음도/삼만 번의 열 갑절은/밝거나 흐린 음표들의 악보로써/나의 심연으로 흘러 닿아/사람의 노래를 아는 실력의 웬만큼은 되었는지라  노약자,/무저항의 겸손한 이름이여/으스름 해 저물녘의/초생달빛이여/치수 헐렁하여 편한/오늘의 내 의복이네  --김남조, ‘노약자’ 전문  김남조 시학의 외연은 사랑과 구원의 테마에 온전히 바쳐졌다. 그의 첫 시집 ‘목숨’(1953년) 이후 그러한 사랑과 구원의 목소리는 원숙한 톤과 색채를 얻어갔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시인이 얻은 것이 바로 노경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지혜일 것이다. 시인은 ‘노약자’라는 이름이 전혀 나쁘지 않고, 오히려 “해의 덕성과 은공”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순리임을 고백한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도 “밝거나 흐린 음표들의 악보”로 흘러들어 시인의 심연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무저항의 겸손한 이름”으로서의 노약자는 그래서 ‘청년문학’을 지나 ‘노경의 문학’으로 진화해가는 한국문학의 남다른 부피를 풍부하게 말해준다. 그러니 그때가 비록 “으스름 해 저물녘”일지라도 그것은 “편한/오늘의 내 의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익장의 문학을 위하여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한국문학에도 이른바 ‘노경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적 성과가 만만치 않은 깊이와 너비를 가지고 있음을 증언해준다. 그만큼 ‘노경의 문학’은 이제 그 축적량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항용 쓰는 말 중에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이들의 문학적 성취는 한국문학의 심층으로서의 노경의 문학을 노익장으로 전면화하고 있다. 한 후배로서, 참으로 경의에 값을 하는 현상이자 성취라고 고백해본다.   ===="로(노)익장"의 뜻과 유래=@@   노(늙을 老) 익(더할 益) 장(성할 壯) : 늙어서 더욱 왕성함   나이가 들었음에도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             노익장은 [후한서]의 에서 유래되었는데요   명장 '마원'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무예도 잘하여 그의 가족은 그가 대기만성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훗날 마원이 독우관이란 감찰관과 같은 벼슬에 있을 때, 많은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는데요 ​ ​ ​ ​ ​ ​ ​ 그런데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이겨 하는 것을 보자 동정심이 일어, 모두 풀어주고 제각기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나게 되었습니다. ​ ​ ​ ​ ​ ​ ​ 북방으로 가서 소,말,양 등을 길르며 지내게 되었는데요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게 되었고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본인은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며 근검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친구에게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한다.(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라고 하였습니다. ​ ​ ​ ​       그 후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마원은 평벙한 삶을 버리고 후한의 광무제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광무제는 마원을 복파장군에 임명하여 남방의 교지를 평정하여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만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했으나 전멸하고 말았고, 이 소식을 들은 마원이 자신도 보내달라 청했으나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어 주저하였는데요. 이에 마원은 "비록 예순두살이지만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말에 훌쩍 올라탔습니다.   이를 본 광무제는 출정을 허락했고, 결국 마원은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 토벌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   노익장 [老益壯] 늙어서 더욱 왕성함   老 : 늙을 노  益 : 더할 익 壯 : 성할 장 나이가 들었어도 결코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하여,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그를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형이 젊은 나이로 죽자 마원은 상례(喪禮)를 정중히 모셔 치른 후 예를 다하여 형수를 받들었다. 그 뒤 마원이 부풍군(扶風郡) 독우관(督郵官:감찰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명을 받들어 많은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제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소·말·양 따위를 놓아 먹이면서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근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항시 친구에게 말하였다.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그리고 또 “가멸지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守錢奴)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마원은 평범한 삶을 버리고 농서(隴西)의 외효(隗囂) 밑으로 들어가 대장이 되었다. 외효는 공손술(公孫述)과 손을 잡기 위해 마원을 그곳으로 파견하였다. 마원은 공손술의 오만(傲慢)한 행동에 크게 실망하고 의례적인 인사만을 하고는 곧장 돌아왔다. 그 후 마원은 광무제를 만나게 된다. 광무제는 마원을 만나자 예절을 다해 대접하였으며, 각 부서를 데리고 다니며 조언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마원은 이러한 후한 대접에 감동되어 외효에게 돌아가지 않고 광무제의 휘하(麾下)에 있기로 결심하였다. 광무제는 마원을 복파장군(僕波將軍)에 임명하여 남방의 교지(交趾:越南 북부)를 평정하게 하여 성공한다. 얼마 후,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만족(蠻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전멸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원이 자신에게 군대를 달라고 청하며 나섰다.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었으므로 주저하자 마원이 말하기로 “소신(小臣)의 나이 비록 예순두 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고는 말에 안장을 채우고 훌쩍 뛰어올랐다. 광무제는 미소를 지으며, “확삭하도다, 옹은(확삭재시옹야).”이라며 출정(出征)을 허락하였다. 결국 마원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길에 올랐다. 그 후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匈奴) 토벌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의 형이 말한 대로 대기만성을 이루었다   [출처] 노익장 뜻 :: 노익장의유래 알아보기!|작성자 한송이  
138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 어릴 때부터 글쓰기 훈련을... 댓글:  조회:3230  추천:0  2017-01-22
[창의교육 서울대 교수들의 제언] "인공지능 발달 4차 혁명 시대… 창의 교육은 반드시 가야할 길 연구 실적만 따지지 말고 남다른 교육에 인센티브 줘야"   창의성 교육법을 나누고 창의성 교육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모인 서울대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 멤버들은 "창의성 교육은 어렵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최선호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능력은 복잡한 현상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은 컴퓨터가 다 할 것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가 주입식 교육을 통해 산업 발전을 이룬 것은 맞지만,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는 지금은 그런 교육으로는 선진국 하도급 국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박남규 경영학과 교수 역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전문 지식이 많은 것보다 지식을 남들보다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뛰어난 사고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직접 생각하고, 만들고, 글 쓰게해야   창의성 교육 모임 교수들은 창의적 인재를 키우려면 '가만히 앉아 문제 풀기'만 하는 것은 그만두고 '직접 만들고, 글 쓰고,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성훈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많이 시키자"고 말했다. 안 교수는 "외국 공대생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만들어보길 좋아하는데, 우리 나라 공대생들은 조용히 앉아서 참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라며 "몇 번이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커서 꼭 공대생이 안 되더라도, 만들기는 인재 육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남규 경영학과 교수는 "교사와 학생 상호 작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사는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은 토론하는 유대인 학교처럼 상호 작용이 넘치는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사고력이 길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세직 경제학부 교수는 "엉뚱한 아이디어라도 존중해주고, 독창성을 확실히 보상해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몰입 교육'으로 유명한 황농문 재료공학부 교수는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미지의 문제'를 풀어보는 지적 도전을 많이 하게 해주는 것"이라며 "창의적 활동을 할 때 인간이 행복을 가장 크게 느낀다. 창의성 교육은 결국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교육자들에게 '창의 교육' 동기 부여를학교 현장 곳곳에서 창의성 교육이 이뤄지려면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까. 교수들은 "지나치게 연구 실적만 중시하는 정부와 대학 운영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선호 교수는 "지금은 정부과 대학이 연구 실적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 교육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남다른 교육을 하려면 교수가 귀찮아지는데 보상은 없으니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황농문 교수는 "창의성 교육을 일부 교수의 사명감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와 대학이 강의 평가 항목에 넣는 등 교육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며 "면접 등 대입 전형에서도 창의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우 공학연구원 교수는 "교육자들도 지적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창의성 교육은 결국 학생들이 참여해 수업을 주도하고 자기들 생각을 격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끌어내려면 교육자들이 먼저 지적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김연주 . 박승혁 기자
137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댓글:  조회:2592  추천:0  2017-01-22
화를 다스리는 법   자녀들이 ‘화가 나면 참지 말아라’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부추기고 있다고 외국인들이 평한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고 돌이키지 못할 참상을 빚는 예가 허다하다. ①     2013년 2월 아파트 층간의 소음문제로 다투다가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②     취직도 못하고 방구석에만 있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부모의 책망을 듣고 아버지를 폭행한 사건이 2013년 2월에 발생했었다. ③    밥을 왜 그렇게 쩝쩝대며 먹느냐? 더럽다며 꾸짖는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2013년 2월에 보도됐었다.   부모들의 언어 폭력과 자녀들의 ‘욱’하는 자제심을 길러 주지 못한 한국인들의 사회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화"는 정말로 무섭다. 누구나 화가 나면 사람 성격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변하는 것이 "화"이다. 그렇다면 그 "화"를 누가 만들고 있나 본인이 만들고 있다. 화는 다수 내가 만들고 있지 남이 화를 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화를 내니까 상대방도 화를 내게 된다. 화로 부딪혀 봐야 부서지고 깨어지고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화"를 어떻게 하면 내지 않고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 갈수가 있을까?   Ⅰ. 자녀들의‘감정 조절’부모들의 교육 아이들의 ‘감정 조절’ 밥상머리에서 가르치라! 는 조선일보 2013년 3월 1일 어릴 때부터 가르치라 고 김연주기자가 아래와 같이 밝혔다. ①     휴대전화 대신 책, 신문을 읽혀라! ②    자녀와 10분만 진정한 대화를 하라! ③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쳐라! ④    부정적인 말로 억압하지 말라!   Ⅱ. 평소에‘화’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라   1.      나 자신의 마음을 항상 즐거운 생각만 하며 지내라. 2.      상대방이 불쾌한 말을 하더라도 아 그러세요.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하라. 3.      상대방이 조금 잘못을 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를 하며 관용을 베풀어라. 4.      어디를 가든 빨리 빨리 하는 말을 하지 말아라. 빨리 안되면 화가 난다. 5.      영업장에 가서도 고객에게 불친절 하드라도 웃으면서 넘겨라. 6.      식당에 가서 음식 맛이 마음에 안 든다고 주인을 불러서 왜 맛이 이러냐고 하지 말아라. 7.      운전 할 때도 양보하는 습관을 들여서 항상 양보를 하라. 양보는 남이 하는 것이 아니다. 8.      밖에서 일어난 일을 가정까지 가지고 가지 말아라. 온 가족을 화나게 만든다. 9.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화가 났던 곳에서만 해결을 하라. 10.   그 "화"를 가지고 돌아 다니면 다른 사람에게 화를 풀 수 있는 불씨가 된다. 11.   "화"풀이 해봐야 남는 것이 무엇인를 생각 한다면 화를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12.   "화"란 단순하게 생각 하자면 "화"는 다 타버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이 있지만 화가 난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한다. 화를 내서 자신에게 이득이 있다면 적절하게 화를 내라. 화를 너무 참아도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 화가 났을 때 화를 잘 다스리는 방법도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Ⅲ.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글   복(福)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德)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智慧))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겸양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눈은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입은 조심하여 실 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럽고 고은 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은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며 덕 있는 이를 따르고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대하라 오는 것을 거절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라 내 몸 대우 없음에 바라지 말고 먼저 남을 대우해 주며 일이 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돈을 너무 따르면 돈의 노예가 되며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르고 아껴 쓰지 않음으로써 집안을 망치며 청렴하지 않음으로써 지위를 잃는 것이니라 그대에게 평생을 두고 스스로 경계 할 것을 권고하모니 가히 놀랍게 여겨 생각할지니라   /조선일보 = 웰빙 코리아      
136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 어릴 때부터 한자 공부를... 댓글:  조회:2897  추천:0  2017-01-22
  초등학생에게 요즘 한자 공부가 다시 중요하게 자리한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국어의 70% 이상은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굳이 교과 내용을 암기하지 않고도 쉽게 공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과서 실험관찰에 나오는 석순과 석주의 뜻을 힘들게 외우는 것보다 한자 교육을 통해 ‘죽순 순(筍)’과 ‘기둥 주(柱)’를 알고 있다면 개념 이해가 더욱 쉬워진다. 실제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친 학생과 가르치지 않은 학생 집단의 성적을 비교한 결과 한자를 공부한 학생들의 성적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교과서의 주요 개념과 용어 대부분이 한자어로 이뤄져 있어 한자 지식이 있는 아이들이 교과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자 학습은 우뇌를 발달시켜 두뇌를 고르게 발전시켜 준다. 사람의 대뇌는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로 나뉜다.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읽는 소리글자이므로 주로 좌뇌에서 처리하지만,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가 많아 이미지 뇌인 우뇌에서 인식하고 처리한다. 결국 우뇌 활동이 왕성한 어린 시기에 한자 교육을 시키면 우뇌 발달은 물론, 좌뇌에도 영향을 끼쳐 논리적 사고 능력까지도 향상시켜 준다. 어린이한자공부는 이렇듯 한자가 학습과 능력 개발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 때문에 대학교 및 기업체에서 한자 자격증에 가산점 혜택을 부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격증만을 위한 한자 공부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따라서 한자 학습을 시작할 때에는 아이에게 한자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주도적 한자학습 교재 만약 어릴 때부터 한자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면, 놀이처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한자를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대부분의 한자들은 그림 문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로 하여금 그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단어를 익히게 하는 것이 한자와 친해지게 하는 데 좋다. 아울러 책이나 신문 등 한편의 글 속에서 한자어를 배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야기 속에서 글자를 배우게 되면 어휘의 쓰임새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도 어학 공부이다. 그러므로 많이 쓰고 많이 읽는 것만이 한자공부의 왕도이다.    /시민기자 고제헌  
135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어릴 때부터 절약정신 교육을... 댓글:  조회:2486  추천:0  2017-01-22
1.아이에게 적당한 액수의 용돈을 정기적으로 줄 것. 용돈을 지나치게 많이 주거나 자녀가 요구할 때마다 주면 아이들이 소비 욕구를 조절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쾌락에 빠지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2.가사일을 도와준 대가로 용돈을 주지 말 것. 만약 가사일을 도운 대가로 용돈을 준다면 이불개기, 청소 등 당연히 해야할 일도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나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성적과 용돈을 연관시키지 말 것. 성적이 올랐다고 계속 용돈을 주면 공부를 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무조건 돈을 받는 것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이에게 형성될 수 있다.   4.가계부 기록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용돈기입장을 작성하도록 해보자. 어린이가 용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인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돈기입장을 작성하도록 해 꾸준히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가계부 기록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간접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5.생일잔치를 경제교육의 기회로 삼을 것. 생일 잔치에 쓰일 예산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함께 계획을 세워보자. 제한된 금액 내에서 욕구를 억제해가며 합리적인 소비생활의 필요성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6.저축은 자신의 용돈으로 하도록 만들어라. 저축할 돈은 부모가 따로 주는 게 아니라 용돈을 아껴 쓰고 남은 금액을 저축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저축의 중요성을 알고 지속적으로 저금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7.모아둔 돈은 저금통에 쌓아두지 말고 금융기관을 이용하도록 유도하자. 일정한 액수가 모이면 정기적으로 은행을 찾도록 하고, 통장은 부모가 관리하되 아이에게 저축액수가 늘고 있음을 보여주며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8.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고 물질적인 것으로 보상하려고 하지 말 것.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 물질적으로 보상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자녀의 소비욕구만 높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물건을 사주거나 외식을 하기보다는 자녀와의 대화, 만남의 시간을 늘려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물건의 소중함과 물자절약의 중요성을 자주 이야기하라.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 게 요즘 아이들 성향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절약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습관을 키워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조재길 한국경제신문 기자 글중...        
어릴 때부터 자신감 있게 말하는 훈련을   당당한 아이로 키우려면… "~하면 안 돼요?" 식의 부정적 표현 피하도록  부모가 선생님… 꾸중보다 칭찬으로 가르쳐야     윤채현 말하기교실 원장·     저자 omo1968@han mail.net 입력 : 2004.12.06 17:05 57'        관련 핫이슈 맛있는 공부!     “제 아이는 똑똑하기는 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본인은 답답해 하는데, 간혹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서 외면해 버리기도 하니까 자꾸만 말을 안 하려고 해요.”       말하기교실에 찾아오는 부모들이 제일 많이 하는 하소연이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알아듣기 힘들게 우물거리며 말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발음이 좋지 않으면 듣는 사람들은 “말하는 게 왜 그러냐”고 한마디씩 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아예 목소리를 작게 하거나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앞에서 발표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전 원래 못 해요”라고 스스로 단정짓는다.       문제는 ‘발음’이다. 그러나 발음이 문제라고 하면, 부모들은 “아이들 말하는 게 다 그렇죠. 어릴 때야 원래 발음이 정확하지 않잖아요. 그것보다는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라는 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표현력이 뛰어나도 발음이 좋지 않으면,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고 말하는 사람 역시 말하기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만다. 말하기의 기초체력인 ‘발음’을 정확하게 갈고 닦아서 말 그대로 ‘말’을 제대로 해야 한다.      짧은 말이라도 발음이 좋으면 듣는 사람들이 “정말 말을 똑똑하게 하는구나”하며 칭찬하게 되고, 그러면 아이는 말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말의 기초를 쌓은 다음에는, 말에 대한 부담을 덜어낼 수 있도록 말하는 게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가르쳐 줘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발빠르게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자. 디지털 장비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가정에 있는 캠코더나 녹음기를 이용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아이의 말하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며 나쁜 습관을 아이 스스로 깨닫게 하고 말하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가게 한다. 자신의 모습을 TV로 보거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듣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굉장한 호기심을 나타낸다.        그런 다음 일상 생활 속에서 잘못된 점을 하나씩 바로잡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야단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라”라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       그런데 바르게 말하는 기술을 익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하더라도, “이거 하면 안 돼요?” “이거 먹으면 안 돼요?” 같이 부정적 표현을 많이 쓴다면 그때 그때 지적해 줘야 한다.        “하고 싶어요.” “먹어도 되죠?”처럼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긍정적 표현이 입에 익숙해져야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되고, 어느 자리에서나 당당한 사람이 된다. 그게 바로 말의 힘이다.    또한 갈고 닦지 않고도 저절로 말을 잘하길 바라서는 말하기의 힘을 기르기 어렵다. 아이들이 말하기의 힘을 다지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의 말하기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윤채현 원장의 올바른 말하기 교육법   ◆ 문장으로 정확히 표현하게       아이들이 하는 모든 말을 문장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한다. 단어로만 말하는 아이들은 말을 끝까지 또렷하게 하도록 한다. 말이 많고 속도가 빠른 아이들은 한 문장이 끝났을 때 쉬어가는 연습을 시키고 천천히 또렷하게 하도록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다려 줘야 한다.   ◆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책을 많이 읽어주고 읽은 책을 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글로 써 본다. 글을 써 보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말도 조리 있게 할 수 있다.    ◆ 거울을 보며 해 봐요       소리가 정확하게 나오게 거울을 보면서 입 모양을 보여주고 따라하게 하면, 입 모양이 변하고 소리가 달라지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생각해서 말하는 데 익숙해진다.   ◆ 마음을 다해 아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는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또 보고 싶어서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다른 표현을 써 볼까 고민하면서 표현하는 게 풍부해지고 말하는 게 재미있어진다.   ◆ 말을 바꾸면 생각도 달라져요.      “소리가 왜 그렇게 작니?”    “민주는 아주 똑소리나게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런 엉뚱한 이야기를 하니?”       부모의 말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말들로 아이가 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도록 하자.        
  어린이들에게 경제관념을 길러주고 커서 사회에 나갔을 때 올바른 경제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의 용돈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올바른 용돈교육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알아봅시다.   1_부모가 그냥 쓰라고 주는 돈이 용돈이 아님을 알려준다 용돈은 부모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의 일부임을 설명해주고, 아이를 위한 크고 작은 물건을 살 때 아이와 함께 가격과 실용도를 상의하고 사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2_가정의 경제 규모를 알려준다 부모의 지갑에서는 무한정 돈이 샘솟는 것으로 알고,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무조건 조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때는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그 돈으로 가정 경제가 어떻게 꾸려지는지 아이에게 간단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때 구체적인 액수 등을 거론하기보다는 부모가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어지는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준다.  3_은행 가는 길을 즐겁게 한다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주고, 은행의 역할 및 이자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걸고 경제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이 ‘은행’이 되는 셈이다. 4_용돈 교육을 망치지 않으려면… 용돈이 모자랄 때 아이들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때 부모는 절대로 추가 용돈을 줘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용돈 교육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 이럴 때는 왜 용돈이 부족하게 됐는지 이유를 들어보고, 앞으로의 용돈에 대한 다짐과 계획을 물어본다. 부모의 판단하에 홈 아르바이트 등 용돈이 아닌 다른 항목으로 부족한 용돈을 채워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목표 저금통을 만드는 이유는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필요한 돈을 효과적으로 모으기 위해서다. ‘목표 저금통’을 실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상자나 깡통 등으로 저금통을 만들고 돈을 모아 사고 싶은 것이나 이루고 싶은 일을 써놓는다. 만약 어떤 물건이 사고 싶다면 그 물건의 사진과 가격을 붙여두는 것도 좋다. 그러고 나서 적은 돈이라도 매일매일 저금을 하면 된다.  *주의사항_모은 돈은 반드시 목표로 하는 일에 써야 한다. 도중에 계획을 변경해 돈을 쓰는 경우가 없도록 부모가 신경을 쓴다. 하지만 목표로 한 금액만큼 돈이 모였을 때, 보다 좋은 물건이나 보다 값진 일을 위해서라면 계획을 변경, 목표액을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 *절약 처방전 쓰는 법 1_용돈을 쓰고 나서 후회한 경우들을 순서대로 종이에 나열한다.  2_작성한 절약 처방전을 여러 번 읽어보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거나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3_실천할 때마다 칭찬해준다.  *용돈을 잘 활용하는 것은 습관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좋은 용돈 활용 습관을 기르기 위해 머니 노트나 용돈 기입장 등을 100배 활용한다. *머니 노트 만드는 법 1_‘용돈 지킴이’용 공책을 하나 준비한다.  2_매달 마지막 날, 다음달에 쓸 돈의 항목과 들어올 돈을 예상해서 적어놓는다. 3_하루에 쓴 돈과 들어온 돈을 구분해 매일매일 기록한다. 4_매달 마지막 날, 한 달 동안 쓴 돈을 다 더해보고, 들어온 돈을 다 더해본다.  5_2번에서 예상한 것과 실제로 쓴 돈을 비교해본다. 6_비교해보고 느낀 점을 머니 노트 한쪽에 써놓는다. 이후 용돈 씀씀이에 대해 칭찬하거나 혼내주는 글을 적는 것도 좋다.     
132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5000억 뇌세포를 깨우라... 댓글:  조회:3275  추천:0  2017-01-22
삼성서울병원 뇌신경센터 나덕렬 소장이 뇌 모형을 보여주면서“독창성을 키우려면 전두엽, 즉 앞쪽 뇌를 발달시켜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그는 "창의력의 핵심은 기존 것이나 한 가지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건데, 그 기능의 능력은 전두엽 중앙에 있다"고 말했다. 나 소장은 "앞쪽 뇌에 창의·기획, 동기, 충동조절센터 등이 분포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근육을 쓰면 쓸수록 커지듯이 전두엽도 쓰면 쓸수록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나만의 의견 찾는 훈련을" 전두엽은 답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려고 할 때 크게 활성화된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답부터 보면 수학 실력이 안 느는 이치와 같다. 스스로 알려고 끙끙대야 앞쪽 뇌가 커진다. 나 소장은 "결과가 어찌 됐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훈련이 중요하다"며 "그 결과가 잘못되어도 실수를 통해 아이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두엽 외측에 창의와 기획센터가 있다. 이를 활성화하려면 우선 목표가 구체적으로 있어야 한다. 5000억개의 뇌세포는 '목표'라는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 달, 올해, 10년 후 등 단기·장기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려 해야 한다. 목표가 없으면 뇌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상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반드시 마무리 짓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루 30분 단어 암기가 안 되면 20분으로 줄이고 이걸 항상 마무리하는 게 좋다. 그러면 자신감과 성취욕이 유발돼 좀 더 큰 일에도 도전하게 된다.   이미지 크게보기 창의력 센터 개발에는 역지사지 토론도 권장된다. 예를 들어 낙태라는 주제를 놓고 한 번은 무조건 낙태에 찬성하는 의견과 논리로 토론에 임하고, 그다음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의견을 펴는 방식이다. 나 교수는 "생각을 일부러 바꿔보는 훈련을 하면 논리성과 유연성이 동시에 좋아진다"고 말했다. 외국어 공부도 앞쪽 뇌 훈련에 효과적이다. 새로운 학습에 다양한 뇌 신경회로를 동원하게 되고, 외국어 공부의 결과로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추진센터·충동조절센터 키워야 앞쪽 뇌 아래쪽에는 충동조절센터와 사회센터가 있다. 이를 키우려면 화를 참고, 화가 나는 이유를 곰곰이 짚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전두엽 바닥 안쪽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가 있다. 이 기능이 약하면 사소한 것에 충동적으로 끌리거나, 툭하면 화를 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나 소장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전두엽이 약한 불쌍한 사람"이라며 "창조는 단박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충동을 억제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친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요구르트 아줌마나 경비 아저씨 등 주변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심성이 사회센터를 강화시킨다. 나 소장은 "전두엽이 손상되면 타인과 끊임없이 싸우고 충돌한다"며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면 풍요 감정도 올라가 충돌 조절 능력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명상·기도·사색 등을 하거나 조용한 공간을 찾아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복잡한 뇌를 재세팅하는 데 좋다. 학생들에게는 선(先)공부 후(後)놀이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 즐거운 일을 앞두고 밀린 숙제나 공부를 해놓는 습관을 들이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도 즐겁게 할 수 있다. 나 소장은 "전두엽 뒷부분은 운동 기능과 실행 의지 센터가 맞물려 있다"며 "이 때문에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면 실행력과 추진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131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ㅡ어릴 때부터 동시조 공부를... 댓글:  조회:2766  추천:0  2017-01-22
어린이와 함께하는 동시조 공부          어린이 여러분 동시란 무엇일까요 ?  마음의 움직임을 경험한 것이나 상상력을 통해 짧은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있는 동시나 ,시 는 자유시라고 할 수 있으며  행과 연의 가름이 얼마든지 자유스러운 것을 말한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그 형식이 들어온 것이구요 즉 양복 같은 옷이라면  시조란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 전통으로 입어온 한복 같은 옷이랍니다 . 그렇다면 어린이 여러분 우리의 것을 아끼고 사랑해야겠지요.  그리고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해야한다는 것을 여러분 먼저 인식하고 동시나, 시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선생님이랑 우리의 전통 시인 시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요. 1.  시조란 ?  시조란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을 갖춘 우리나라의 전통 정형시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 700년의 전통을 지켜온 고유한 가락으로써 민족의 얼이 묻어 있다고나 할까요 . 그렇다면 정형의 반듯한 그릇 속에 초장 3 .4.3.4  중장3.4.3.4 종장의 3.5.4.3이라는 음수를 기본으로 하되 약간의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요 3.4자수를 합하면7자이지만 9자까지 그변용이 가능하답니다. 반드시 종장에는 3수가 아니면 시조라고 할 수 가 없답니다  그리고 종장의 5 자수는 는 7자까지 변용 될 수 있기도 하답니다  또한 꼭 음수를 맞추려고 마시고 한 장에 4음보가(글자수의 걸음걸이) 들어간다는 것을 아시면 자연스럽게 시조가 탄생될 것입니다  초장에 3.4(두 음보) 3.4가 (두 음보) 두 번 들어가니 4음보지요    그리고 중장도 4음보 종장도 4음보 합해 12음보라고 하며 6구란 3.4를 합한 것을 한 구라고 하지요 그러면 모두 6구가  된답니다.  그리고 자수도 합하면 45자가 된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형의 틀을 알고 나면 시조가락이 자연스레 몸에 베여 아주 응축미를 갖춘 시조를 쓰고싶은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시조의 참 맛은  응축된 단수에 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12.3수까지 내려가면 평시조라고 할 수 있구요  계속 써 내려가면 연시조라고 할 수 있지요 . 그리고 사설시조는 초, 종장은 음보의 걸음걸이를 맞게 하구요  대개 중장이 길어지는 것을 말한답니다 자 그럼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구요 선생님이랑 한번 지어볼까요   초장:사랑하는 ( 4자지요 ) 어린이 (3자지요) 여러분(3자지요 )반가워요 (4자지요) 3.4.3.4라고 정해 두었지만 3.4가 합해져 9자까지는 쓸수 있답니다  대신에 글자 수에 매이지 말고 괄호가 네 개지요 이게 4음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연스레 4음보(즉 발자국)에 맞춰 자연스레 한번 써보세요 우리나라 말들 거의가 3수내지 4 수니까요 자!!!!!보세요  "철수야  이리와  밥 먹고  공부해라"  어때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꼭 자수를 맞추려고 애쓰지 마라 는 것입니다 4음보만 지켜주면 된다는 것이지요 .   중장 :우리 모두(4) 글짓기(3 )공부방에서 (5)함께 만나(4) 어때요 꼭3.4가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했지요 5와4를 합하면 9자지요 그러니 9자까지는 쓸 수 있답니다 여기서도 4음보를 지켜주고 자!!!그럼 종장으로 갈까요 가장 중요한 곳이니까요. 종장 :하나님 (3)찬양하면서(5) 나도 한번(4) 시 쓸래(3)  자 여기서는 3.5.4.3이라는 자수로 바뀌었답니다  왜 그럴까요 글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있듯  노래에도 한번 쭉 뽑아 올리는 곳이 있듯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고 시조의 가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랍니다.  즉 옛날에 할머니가 물레를 잣다가 휙!!!!!!!하고 한번 넘겨주는 그런 모습처럼 아님 다딤이 방망이를 두드리다가도 아님 드럼을 치다가도 한번 세게 쳐주는 것처럼 이곳에서 3과 5라는숫자는 강약을 나타낸 것이랍니다. 한번 손장단을 쳐보세요 따따따,  따따따따, 따따따, 따따따따 어때요 가락이 느껴지나요. .  자!!! 이렇게 설명을 드렸으니 종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겠지요.  절대 종장에는 3수가 아니면 시조가 아니랍니다 잊어버리지 마세요 필히 3수를 써야 하고 5자는 7자까지 가능하답니다  그리고 4와 3수는 되도록 이면 지키고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마무리를 잘해야 한답니다.     자 !!!그럼 직접 한번 지어보시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자꾸 하다보면 너무너무 재미있고 가락이 익혀진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가락이 있는데 여러분 시조를 잘 모르고 계셨지요. 시조는 어려운 것도 아니고 꼬리 타분한 것도 아니랍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정형의 틀은 지키지만 어휘들은 모두 자유시랑 똑같이 쓰면 된답니다 오히려 고시조처럼 "그러니라 하노라" 등등 그런 말들은 쓰지 않는게 좋거든요.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 깔끔한 정형의 그릇에 하고 싶은말 구질구질하게 버리고 간단하게 응축시켜서 자기하고 싶은 말 과 맘을 표현한 것이 시조랍니다.  선생님도 처음엔 4년 동안 자유시만 썼답니다  글자 수를 맞추는 게 싫었어 하지만 시조의 매력을 느끼고 한번 써보니까 너무 깔끔하고 좋아 시와 시조로 두 곳 다 등단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제는 완전히 시조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자유시로 쓰고 싶을 땐 마음대로 대문을 열어놓고 자연스레 드나들고있지요.  그러니 여러분 우선시조부터 완전히 익혀두면 자유시는 누구라도 쓸 수 있거든요 시인이라도 시조를 못쓰는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선생님이 지도하는 홈 스쿨 어린이들은 200편씩 동 시조를 쓴 어린이도 있고요 책을 싫어하든 어린이들이 시조를 배우고 나서는 책읽기도 좋아하게 되고 숨어있던 자질을 개발할 수 있더라구요  그리고 아마 9월엔 정식 어린이 시인 신인상에14명의 어린이가  당선의 행운을 가져올지 모른답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답니다 . 미국 시조월드로 작품10편씩 보냈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경남시조백일장, 창원 문협 백일장 미 세 스키 전국 백일장에서 금상 및 많은 상을 휩쓸고 있어 학부모님도 어린이 여러분들도 너무너무 좋아하고 있으니 여러분들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길 바래요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   그럼 여러분 앞으로 열심히 한번 공부해보시길 바라며  또 열심히 한 분께는 시인의 길도 열려질 수 있으니 우리 다같이 노력해봐요  안녕.. 시조를 배우면 길러지는 힘은? ◈ 생각하는 힘이 길러집니다.  ◈ 글로 표현하는 힘이 생깁니다.  ◈ 상상력과 창의력이 길러집니다.  ◈ 사물을 바르게, 깊게 보는 힘이 길러집니다.  ◈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3. 시조란 어떤 글인가? ◈ 우리 민족이 만들어 낸 고유하고 독특한 정형시입니다.  ◈ 우리 겨레만이 옛날부터 짓고 불러온 고유한 형식의 노래입니다.  ◈ 우리 민족의 얼과 생활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학 형식입니다. 4. 시조의 형식 우리가 홀소리 닿소리 24자를 깨우치면, 한글을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듯이 시조의  정형을 익힌다면, 시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첫째, 시조는 3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초장, 중장, 종장  둘째, 시조는 각 장마다 네 걸음(음보)을 걷습니다.  셋째, 종장의 첫걸음은 반드시 '석 자' 입니다.  넷째, 종장의 둘째 걸음은 5 ~ 7자가 좋습니다. 5. 시조 쓰기 - 방법 1 : 삼행시를 시조로 고치기 세 낱말로 된 꽃이름, 이름 정하기 - 삼행시 짓기 - 각각 네 걸음으로 고치기 - 제목 붙이기 - 발표하기 - 방법 2 : 시조 바로 쓰기 제목 정하기 - 마인드 맵 만들기 - 비슷한 생각끼리 묶기 - 초장, 중장, 종장으로  앉혀 초안잡기 - 선생님께 지도 받기 - 퇴고하기 - 발표 및 작품 감상 6. 퇴고하기 첫 째, 각 장마다 네 걸음이 되었는가?  둘 째, 종장의 걸음걸이(첫걸음 - 석 자, 둘째걸음 - 5 ~ 7자)가 맞는가?  셋 째, 어색하게 읽혀지는 부분이 없는가?  넷 째, 다른 것으로 빗대어 표현할 부분은 없는가?  다섯째, 자기의 생각이 잘 나타났는가?                   -  시조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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