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문】 올해는 우리 시인 윤동주 서거 65주기가 되는 해이다. 시인의 서거 65주기를 기념하면서 올해 "연변문학" 8월호에 실린 필자의 론문--"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를 올려 본다. 윤동주 시의 녀성 이지미
1. 들어가면서
오늘날 윤동주는 중국조선족시인이면서도 전체 우리 민족의 시인이며 세계적인 시인으로 평가 받으며 존경을 받고있다. 윤동주의 시세계는 맑고 청결한 기품이 흘러넘치면서 순결한 동심에 함뿍 젖어있다. 윤동주의 시는 또 맑지 만은 않고 슬프기도 한 이모저모의 이미지 그리고 여러 면으로 펼쳐지는 녀성 이미지 등을 내포하고있다.
본문에서 다루어보려는것이 바로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이다. 이미지란 심상(心象)으로서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영상(映象)을 말하며 또 형상으로서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사람 또는 사물의 모습이나 느낌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는 아가씨, 언니 등으로 이어지는 녀인 이미지, 어머니와 같은 누나 이미지, 이 세상 어머니 이미지, 순이라는 시적화자 이미지 등으로 나누어볼수 있다. 이런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단적으로 윤동주시인의 녀성관을 헤아릴수도 있고 그의 순결성, 인간성을 헤아릴수도 있다.
2. 아가씨, 언니 등으로 이어지는 녀인 이미지
지금까지 전해지는 윤동주의 시작품은 100여수로 헤아려진다. 그중 누나와 어머니를 비롯한 녀성이 내비친 시작품은 약 30편쯤으로 거의 3분의 1를 차지한다. 시작품을 통한 윤동주의 녀성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 하겠다.
녀성 이미지 시편들은 선녀, 아가씨, 해녀, 할머니, 언니, 그 여자, 녀인, 누나, 어머니 등 다양한 부름으로 이어지는데 시마다 시인의 녀성 이미지를 엿볼수 있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언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여기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짝을 그리워하네
아롱다올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다물소리
--- “조개껍질”, ( 1935. 12)
이 시작품은 현재 전해지는 윤동주의 시편들중에서 어린이를 화제로 하는 최초의 동시로 나타난다. 시의 화제가 보여주고저 하는 조개껍질은 “울언니”인데 언니는 바닷가에서 어린이--녀동생이 좋아하는 귀여운 물건—조개껍질을 주워왔다. 아쉽게도 어린이로 그려진 녀동생 화자는 마주 붙여진 조개껍질 한짝을 잃어버리고 그지없이 그리워한다. 아롱다롱한 조개껍질도 잃어진 한짝을 그리워하는데 그 그리움속에 조개의 고향 바다물소리가 들려온다.
참으로 동심이 그대로 흐르는 하나의 훌륭한 동시이다. 이 동시는 1935년 9월 1일에 윤동주가 룡정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숭실중학교 3학년으로 전학한 후인 숭실중학교시절에 쓴 동시인데 시인은 어린이 화자를 통해 나서자란 고향땅을 등지고 두만강 너머 북쪽에서 고향땅을 그리는 애수를 조개껍질화한 외로움, 그리움으로 그려내고있다.
시 전편에서 흐르는 기저는 조개껍질이나 그것을 주어온 이는 “울언니”이다. 언니가 바닷가에서 주어온 조개껍질이 동심의 세계에서 한 가족의 평화와 사랑을 이룬다. 그속에는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어린이의 애수가 담겨있다. 고향땅 바닷가에는 흔하디 흔한 조개껍질이 “여긴여긴 북쪽나라”에선 그리움의 향수물이니 윤동주의 시적재능을 알고도 남음이 있겠다.
1935년 12월에 최초의 동시—“조개껍질”을 쓴후 윤동주의 동시는 마구 쏟아진다. 1936년에 20살을 잡은 윤동주는 이해 3월에 일제의 참배강요로 평양숭실중학교를 자퇴하고 룡정 광명중학교 4학년에서 공부, 1938년 2월에 광명중학교 5학년을 마치고 이해 4월에 서울 연전문과에 입학한다. 이해 1938년에 윤동주는 동시를 비롯한 시창작의 황금기를 맞이하는데 이해 한해동안에만도 동시 “새로운 길” 외 7편, “산울림” 등 5편의 동시, “달을 쏘다” 산문 1편을 써내게 된다.
연전에 입학해서 쓴 첫시는 “새로운 길(1938.5.10)”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동시 “새로운 길”의 첫련과 두번째련의 인용인데 고개너머 마을로 가는 나의 길은 “새로운 길”이고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는 길과 길가에는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하는 생기가 도는 약동하는 길이다. 소생하는 봄앞의 하늘아래 노오란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나는 속에 아가씨 지나며 바람까지 이니 서울의 연전이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펼치는 시인 윤동주의 삶은 파아란 활기로 넘쳐있다. 녀인의 이미지—아가씨의 등장으로 동시는 감칠맛이 보다 진하기만 하다.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는 그의 풍자시—“그 여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는 손님이 집어갔읍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아직 서울 연전이 아닌 룡정 광명중학교 5학년을 다니던 시절 1937년 7월 26일에 쓴 시이다. 시에서 녀성의 이미지는 그 녀자—붉은 능금으로 나타나는데 시의 흐름으로 보아 “붉은 능금”은 저들 또래들보다 먼저 성숙함을 보여 처녀티를 제법 풍긴다. 인생의 길가에서 처녀맛을 풍기며 달랑이니 “지나는” 길손이 집어갈수밖에 없다. 그것도 “윤동주 평전” 을 쓴 한국 송우혜의 말을 빈다면 “적당치 않은 자에게 유린당해버”①리게 되였다.
이 시는 윤동주가 젊음이 싱싱 피던 21살 되는 해에 쓴것인데 왜서 “붉은 능금”이 “지나는 손님”에게 유린당하는것으로 써야만 했을가, 한국 송우혜씨에 따르면 여기에는 원인이 있는바 그 원인은 일찍 희랍의 녀류시인 사포가 쓴 시 “한 처녀”에 기인된다.
저 높은 가지 끝에서
불그스레 익는
아름다운 사과와도 같으니
따지 않음은 잊은것이 아니요
높아서 손이 닿지 못함이다②
시에서 사포는 한 처녀가 있었으니 그 처녀가 “아름다운 사과”요, 도고하여 “높은 가지 끝”이요, 뭇총각들이 욕심을 내며 따려해도 높은 곳에 달려 딸수 없소 하며 시를 끌어간다.
윤동주는 이와 다르다. 그는 사포의 시에 불만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과라 해도 익으면 떨어질것이 아닌가? 그래서 윤동주는 사포의 “한 처녀”와 비슷한 “그 녀자”를 쓰면서 아무리 활짝 피여난 처녀라 해도 일제치하에서는 “지나는 손님”이 집어가듯이 자기 뜻대로 할수 없는 세상임을 까밝히고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녀성이 처한 어찌할수 없는 수동적인 위치를 보여주였다. 그 녀자—붉은 능금을 통한 녀성 이미지 표현은 이같이 일제치하에 그 원인을 돌린다.
이러루한 예리한 표현은 윤동주의 산문시 “병원”(1940.12)에서도 잘 드러난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녀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녀자를 찾아 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이는 도합 3련으로 된 시 “병원”의 첫 련이다. 이 시는 윤동주가 서울 연전을 다니던 시절에 쓴 시로서 시속에서 보여지는 “젊은 녀자”를 그 시대속 외롭고 병든 모습으로 그려냈다. 일제치하서 살아가야만 하는 시인 윤동주의 마음의 내면고통이 너무나도 잘 반영되여있다.
보라, 젊은 녀자가 병원 뒤뜰의 살구나무 아래 누워있는 모습은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병 든 사람들로 가득찬 곳”③임을 시사한다. 좀 더 깊이 말하면 윤동주가 살아가는 그 시대가, 그 세상이 바로 병원이다. “병원”, “앓다”, “한나절”, “나비도 없다”, “바람조차 없다” 등의 낱말로 동적인 이미지는 없이 정적인 이미지만 부여하여 그냥 슬픔에 굳어져버린 그 병페적인 특정시대의 산물 병원을 그려냈다. “병원”이란 이 시, 젊은 녀자를 통한 이미지는 일제치하란 그 어두운 시대에 칼날을 대고있다. 윤동주의 시에서는 이같이 녀성 이미지가 제가끔의 역할을 놀아간다.
이번에는 어느 개개의 언니나, 아가씨나 녀자가 아닌 그 시대의 군상(群像)을 보기로 하자.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슬픈 족속” (1938. 9)
1938년 9월이라고 밝히니 윤동주가 서울 연전문과를 다니던 시절이다. 이해의 윤동주는 22살의 나이로서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 처한 환경을 보는 시선이 자못 예리하다. 어찌 보면 시는 흰 수건이요, 흰 고무신 등을 두르고 걸친 지극히 평범한 한 우리 녀인을 그린것 같다. “검은 머리”로 보아 그닥 늙지 않은 녀인이고 “거친 발”로 보아 고달픈 인생이라면 “슬픈 몸집”은 고달픈 인생의 계속, “가는 허리”는 풍만치 못한 볼품없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윤동주가 노리는 녀인은 고생속에 살아온 어느 한 녀인의 모습이 아니다. 윤동주는 시의 첫머리마다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흰 띠”란 시어를 씀으로써 시의 “흰”자의 주인공이 우리 겨례의 녀인임을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여기에다가 제목에 “슬픈 족속”이라고 밝히니 이는 일제치하의 한 녀인만이 아닌 우리 겨레녀성 모두를 가리킨다. “흰 수건” 등으로 의인화의 수법을 성공적으로 활용하여 시에다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그리여냈다.
이밖에 윤동주의 시들에서는 선녀, 해녀, 할머니 등이 잘 조화되여 녀성 이미지를 가슴에 와닿게 잘 표현하고있다. 본고에서는 이런 개개의 화자를 통해 녀성 이미지를 부각해낸 윤동주의 시적재능, 사상경지를 더듬어본다.
3. 어머니와 같은 존재—누나 이미지
윤동주 시작품이 100여편으로 전해진다는것은 이미 우에서 밝히였다. 그중 약 3분의 1이 녀성이미지로 나타난다면 녀성을 내세우는 시들에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누나 이미지도 잘 도드라지고있다. “해바라기 얼굴”, “사과”, “빗자루”, “편지”, “야행” 등 여러 편의 시들이 그러하다고 볼수있다.
먼저 동시 “빗자루”(1936, 9, 9)의 앞부분만을 보기로 하자.
요오리 조리 베면 저고리 되고
이이렇게 베면 큰총 되지
누나하고 나하고
가위로 종이 쏠았더니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누나 하나
나 하나
엉뎅이를 때렸소
이 시는 어린 시절의 화자 나와 누나가 종이를 요리조리 베고노는 동심을 그려보았다. 철부지들의 한낱 소행이라지만 시골의 어머니는 빗자루로 “누나”와 “나”의 엉뎅이를 때려댄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고 부모들의 어린시절도 그렇지 않았던가, 시골의 화자만이 아닌 우리 개개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것 같다. 그속의 “나”와 “누나”는 가족내에서 지극히 가까운 관계이다. “나”와 관계속 “누나”의 모습이 생활화폭처럼 펼쳐진다.
“빗자루”속에서의 어릴 때 천진한 누나 화자모습이 이번에는 엄마격의 누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938년(추정)의 시작으로 되는 “해바라기 얼굴”이 그러하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시적구상이 참신하고 시어가 생활맛이 짙다. 생활에 찌들고 일에 찌든 누나의 얼굴을 꽃이 피여 굳어지면서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에 비유한 그 자체가 시인의 섬세한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부모를 대신하여 생활고의 중임을 떠메야 하는 우리 겨레의 누나 모습, 음미할수록 그 깊이가 보여진다.
“나”의 누나, 겨레의 누나—이같은 시적 화자묘사를 윤동주는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재능이 뛰어나다. “해바라기 얼굴”이 “누나의 얼굴”이라면 이 얼굴은 해님 따르며 활짝 핀 “해바라기”가 아니라 더는 해바라기도 할수 없이 굳어지고 초췌한 “해바라기 얼굴”이다. 그러던 “해바라기 얼굴”이 생활고에 시달려 쓰러져야만 하니 윤동주는 “해바라기 얼굴”보다 이태나 앞서 쓴, 1936년 12월로 추정되는 시 “편지”에서 동심에 젖어 눈물겹게 그리고있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가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 연구가들이라면 다 알수 있듯이 윤동주가 평양숭실중학교를 자퇴하고 룡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 4~5학년을 다니던 1936년과 1937년 2년동안은 무려 29편의 시작품을 쓰면서 시창작의 왕성기를 보여주던 시기였다. 특히 1936년은 윤동주가 동시를 많이도 쓴 해인데 이해에 쓴 16편중 10편이나 동시로 나타난다. 동시 “편지”도 1936년 동시 10편 가운데의 한편으로서 시인의 기발한 착상과 동시창작의 원숙함을 너무나도 두드러지게 알려준다.
서두에서 윤동주는 보이지도 않는 화자 “나”를 통하여 첫편 시작에서 왜 “눈이 가득히” 내린 겨울을 썼을가? 조금만 주의하면 우리는 이 겨울, 이 눈이 마지막 련—“하늘 나라”와 조응되여있음을 헤아릴수가 있다.
동시 “편지” 전편에 일맥되여 있는것은 눈이요, 흰 봉투와 같은 흰색이다. 흰색은 우리 겨레 백의민족을 뜻하면서도 사람이 운명을 달리하여 “하늘 나라”로 갈 때 입는 옷을 뜻하기도 한다. 윤동주는 시작에서 섬세한 필치로 겨울과 눈을 그려내면서 “흰 봉투”로 이어지고 어지러워질라, 때가 묻을라~ 글씨도, 우표까지도 붙이지 않은, 말쑥한 편지를 이끌어낸다. 하늘 나라에는 “눈이 아니 온다기에” 화자가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흰 봉투, 그안에 넣은 흰눈으로 표달한다. “겨울”, “흰눈”, “흰봉투”로 추운 랭색의 이미지를 펼치며 하얀 넋을 기리는것일가?
하다면 시속에서 그려지는 누나는 어떤 누나의 모습일가? 혹은 지지리 병고로, 혹은 무거운 생활고에 쓰러진—둘중의 어느 하나일것이다. 윤동주는 동시 “편지”를 통해, 동시의 하늘 나라 누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화자 “나”를 통해 일제치하의 그 시대와 그 시대속 민족의 운명을 맥맥히 흐르는 동심에 담아 실감있게 형상적으로 수립하였다.
본고 제3부분에서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중의 하나인 누나의 이미지를 개략적으로 훑어보았다. 누나의 이미지는 순결로 특징지어지는 동심의 세계에서, 동심에 받들린 민족의 정서속에서 유기적으로 빛을 발산하고있다.
4. 이 세상 어머니 이미지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사회나 조국, 대자연의 위대함을 어머니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그만큼 어머니란 존재, 어머니란 부름은 기뻐도 기댈수 있고 슬퍼도 기댈수 있는 인간 따뜻함의 휴계소가 아닐가. 윤동주의 시속에 표현된 어머니의 이미지가 이를 잘 알려주고있다.
어머니란 시어로 씌어진 윤동주의 시는 녀성 이미지를 나타난 약 30편의 시에서 또 10편쯤으로 가려진다. “어머니”, “고향집”, “별 헤는 밤”, “밤”, “해빛·바람”, “버선 본”, “빗자루”, “병아리”, “오줌싸개 지도”, “사과”, “남쪽 하늘” 등 시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이 10편쯤의 시를 또 수수한 가정주부로서의 어머니 이미지와 승화된 어머니 이미지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고 본다.
ㄱ. 가정주부로서의 어머니 이미지
본고에서 전개하고자 하는 가정주부로서의 어머니란 어려운 생활고에서도 부엌살림을 떠인 한낱 수수하고도 평범한 어머니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평범한 어머니들 이미지는 윤동주의 시속에서 애기들이 그리운 젖가슴이 아니면 애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장보러 가는 어머니, 빗자루 들고 엉뎅이 때리는 어머니 등으로 지극히 현실적으로 직감적으로 안겨오는 어머니이다. 여기에 속하는 시작품들로는 “밤”, “해빛·바람”, “버선 본”, “빗자루”, “병아리”, “어머니” 등 시들을 들수 있다.
“밤”이 우선 그러하다고 보여진다.
오양간 당나귀
아--ㅇ외 마디 울음 울고
당나귀 소리에
으--아 애기 소스라쳐 깨고
등잔에 불을 다오
아버지는 당나귀에게
짚을 한키 담아주고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모금 먹이고
밤을 다시 고요히 잠드오.
이 시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는 애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시골의 밤, 평화로운 밤의 정적속에 당나귀가 배고프다고 울고 애기 그 소리에 놀라 깨여난다. 아버지가 당나귀에게 짚을 한키 담아줄 때, 어머니는 애기에게 젖을 한모금 빨린다. 당나귀와 아이의 먹이 대비, 그 대비속에서 먹이의 만족을 느낀 당나귀, 애기는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로부터 우리는 당나귀와 아기에게 있어서 먹는것보다 급선무가 없다는것을 알수 있다. 생의 첫째가는 수요가 식욕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당나귀도 좋고 애기도 좋고 식욕이 으뜸가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우선 애기에게 젖을 먹어야 하는 어머니의 젖가슴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치고있다. 생명을 기르는 장본인들을 두고 한국의 박민영박사는 그의 한 저서에서 우는 아기, 모성의 원리로부터 “어머니의 젖가슴은 세상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피난처가 된다.” ④고 잘 개괄하고있다.
윤동주의 시에서 어머니들의 또 다른 이미지는 시 “병아리”(1936.1.6)에서 “엄마 젖 좀 주/병아리 소리”와 시 “해빛·바람”(1938년 추정)에서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문풍지를/쏘옥, 쏙, 쏙” 등에서도 이어볼수가 있겠다. 시 “버선 본”(1936.12)에서는 “어머니/ 누나 쓰다버린 습자지”, 시 “빗자루”에서는 가위로 종이를 요리조리 베는 어린 자식들을 빗자루 들고 “누나 하나/ 나 하나/ 엉뎅이를 때”리는 어머니, 이같은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평범한 가정주부, 아니 위대한 어머니로서의 어머니 이미지가 실생활의 시적구성으로 보는듯이 그려진다
더우기 인상적인것은 시 “어머니”(1938. 5. 2)에서, 어머니의 이미지와 더불어 어릴 때로 돌아가는 시인 윤동주의 밝고 맑은 동심의 모습이다.
어머니!
젖을 빨려 이 마음을 달래여주시오
……………
어머니! 그 어진 손으로
이 울음을 달래여주시오..
이 시를 두고 상기 한국인 박민영박사는 “어머니의 품속은 ‘고향’의 이미지와 연계되여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⑤ 고 말한다.
이 부류의 시들에서 윤동주는 티없이 순결한 동심의 세계를 쭈욱 나타내면서 아기보호 피난처로서의 어머니의 젖가슴, 고향의 이미지와 이어지는 그리움의 대상-- 어머니 품속을 찬미하고있으며 그속에서 그 시대 삶의 아픔을 시속에 재치있게 깔아가고있다.
ㄴ. 승화된 어머니 이미지
윤동주는 그의 시 “남쪽 하늘”, “고향집”, “오줌싸개 지도”, “별 헤는 밤” 등에서 온화하고 따뜻함으로 나타나는 어머니의 원초적 양육, 보호 등 이미지를 본래의 가정주부형상으로부터 보다 승화된 고향어머니로의 이미지로 부각시킨다. 시 “남쪽 하늘”과 시 “고향집”이 먼저 이면의 좋은 실례로 된다.
어머니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내리는 저녁—
어린 영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만 떠 돌뿐—
--“남쪽 하늘”(1935.10)에서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고향집”(1936.1.6)에서
시 “남쪽 하늘”에서 어머니 젖가슴의 따뜻함과 서리의 차거움이 랭온대비를 보여주면서 어머니를 그리는 타향 어린 넋의 향수가 진하게 묻혀나온다면 시 “고향집”에서는 어머니가 고향의 화신(化身)으로 떠오르면서 “따뜻한 내 고향”, “그리운 고향집”으로 승화되고있다.
1936년과 1937년은 윤동주시인으로 말할 때 동시창작으로부터 시 창작의 원숙한 모습을 보이던 시 창작의 황금기로 된다. 그 가운데서 동시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 등 5편은 그 시절 연변의 어린이 월간지—“카톨릭 소년”에 실린다. 5편중의 “오줌싸개 지도”는 1937년 1월호 “카톨릭소년”에 발표되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오줌싸개지도”(1936.초)에서
이 동시에서 무엇보다 의미로운것은 “요에다 그린 지도/지난밤에 내동생/오줌 싸 그린 지도”가 “꿈에 가본 엄마 계신/별나라 지도”, 즉 하늘 나라에 계신 엄마의 별자리지도로 보인다는 점이다. 별나라라는 그 자체가 벌써 동심이 흐르는 세계라 할 때 이 세계의 별은 비록 현실의 공간이 아닌 상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별이라지만 시인 윤동주가 현실에서 풀수 없는 인식을 꿈, 별나라, 어머니와 이어나가는것은 별나라—어머니에 희망을 기탁한 적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닐수 없다. 한마디로 “오줌싸개 지도"에서의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저 하늘의 별은 어둠이란 이 현실을 가시는 새날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확실히 일제치하 현실세게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윤동주에게 새 희망을 주면서 정신적인 승화를 보여주는것은 저 하늘의 별이다. 윤동주가 시 “산림”(1936, 6 26)에서 쓴것처럼 “나무 틈으로 반짝이는 별만이/새날의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 그런 별나라가 별나라—어머니로 승화하니 이 어머니는 위대한 어머니의 이미지일수밖에 없다.
윤동주는 서울 연전문과 졸업을 앞둔, 1941년 11월 5일에 쓴 참신하고 아름다운 시 “별 헤는 밤”에서 별을 어머니의 이미지로 보다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시에서 가을속의 별들을 하나하나 가슴속에 새기면서 이렇게 격조높이 쓰고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이 시는 청신한 가을밤의 맑은 별빛이 넘치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한편의 시이다. 시에서 윤동주는 별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는데 그속에서 달라자 현립 1교시절 한 학급에 다니던 패, 경, 옥 등 이국 소녀들이 곁들어지고 가난한 이웃들의 이름, 대자연의 동물군체까지 곁들어진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일제치하의 암담한 시절에도 하늘을 우러러 별을 헤는 그 시각만은 잠간이나마 어지러운 세상을 잊어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각이였는데 그는 서울에서 멀리 북간도—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면서 이제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온”다고 확신한다. 이 봄이란 바로 밝아오는 새 세상을 가리킨다.
윤동주는 이같이 맑고 청결한 기품으로 새 희망, 새 세상을 안고 산 뜨거운 열혈청년이다. 이 새 희망, 새 세상이 별나라—어머니로 나타나기에 윤동주 시의 어머니 이미지가 보다 승화되고 빛발치는것이 아니겠는가?!
5. 순이란 시적화자 이미지
우에서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를 여러 면으로부터 살펴보았다. 하다면 시가 아닌 윤동주시인의 녀인관계는 어떠했을가, 이를 알자면 윤동주의 시로 다시 들어가 보아야 할것 같다.
윤동주는 자기의 시들에서 아가씨, 선녀, 해녀, 할머니, 울언니, 누나, 어머니 등 다양한 시적화자로 녀성이미지를 그리며 녀인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내비치고있다. 이와 더불어 공부차 고향—명동을 멀리 떠나 있을 때나 마음속에서 항시 그리움의 대상은 고향이요, 어머니이다. 여러 녀성 시적화자와, 고향과 어머니 외에 또 있다면 윤동주 녀성 이미지의 절정을 이루는 “순” 또는 “순이”란 마음의 부름이 있다.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 들의 전당은
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내려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성스런 촛대에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창에 부닥치기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내게는 삼림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
--“사랑의 전당”(1938, 6, 19)
이 시는 사랑의 유희, 상상의 유희가 아닌 “절절한 울림”으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다. 또한 1938년 4월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후 이성—순에 대한 절절한 사랑, 뜨거운 사랑, 영원한 사랑으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보는바와 같이 시 “사랑의 전당”은 순이를 노래한 최초의 시이다.
윤동주는 시에서 “너는”, “내사”가 “내 전”, “네 전”에 언제 들어갔더냐며 “우리들의 전당은/고풍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이라고 격조높이 노래한다. 뒤에서 시인은 “암사슴처럼 수정눈”,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 “성스런 촛대에 열한 불”, 등 과장조로 넘친 사랑의 시어를 구사하면서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고 쓰고있다. 이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윤동주의 현실이 아니였을가고 필자는 생각하면서 맘속으로 그리는 사랑하는 녀인에게 맘속말을 쏟는 사랑의 마음고백이라고 본다. 사랑의 절절한 울림, 절절한 감정이 아니고서는 22살의 윤동주가 이런 시를 써낼수 있었을가. 시는 마음의 발로라고 하지 않는가.
윤동주시인의 서울 연전시절에 순이와 관련된 시를 쓴것은 “사랑의 전당”뿐이 아니다. “사랑의 전당”에서 이어지는 “소년”, “눈오는 지도”를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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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소년”의 뒤부분(1939)
산문시 “소년”은 “단풍잎 떨어지는 슬픈 가을”에 손금의 맑은 강물가에 앉아 “나”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본다. 강물에 비쳐진것은 나로 나타나는 나 자기의 내면 모습이지만 그 모습에 어린것은 “나” 그리움의 대상—“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다. 순이를 그리는 마음은 시 “눈오는 지도”에서 보다 깊어진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위에 덮인다……정말 너는 잃어버린 력사처럼 홀홀히 가는것이냐, 떠나기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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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지도” (1941.3.12)
이 산문시 역시 서울 연전시절에 쓴 시로서 그 먼저 1939년에 쓴 시 “소년”의 계속임을 알수가 있다. “소년”에서 맑은 강물에 어리여오던 순이의 슬픈 얼굴이 “눈오는 지도”에서는 떠나가는 곳조차 알수 없는 슬픈 현실로 나타난다. 순이라는 맘속 사랑의 존재가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에 있지 않으니 현실세게가 아닌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존재가 아닐수 없다.
이번에는, 순이의 이미지는 순이의 형상인 “옛 소녀”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된 정원으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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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코스모스”(1938)
시에서 윤동주는 코스모스를 보며 자기의 “옛 소녀”를 상기하지만 “코스모스”에서의 “옛 소녀”도 현실인물이 아닌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사랑의 녀인이다. 하기에 윤동주는 “코스모스”에서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라고 실토한다.
윤동주는 서울 연전시절에 쓴 또 한편의 사랑시 “달같이”(1939)에서 “년륜이 자라듯이/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달같이 외로운 사랑이/가슴이나 빠끔히 년륜처럼 피어나간다”면서 이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이 시에서도 사랑을 그리는, 아니 순이를 그리는 마음이라 할수 있는 사랑의 흔적, 그리움의 흔적을 보아낼수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윤동주의 시 “사랑의 전당”, “소년”, “눈오는 지도” 등 사랑시들에서 나타나는 순이가 어떤 사랑이겠는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면서도 순이를 사랑이미지로 한 윤동주의 시들은 하나같이 현실에서 찾아볼수 없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는데서 우리의 보다 큰 감명을 불러일으킨다. 일종 슬픔의 미를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겠다.
6. 나오면서 본문에서 필자는 나름대로 윤동주 시의 녀성 이미지를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더듬어보았다. 우에서 필자는 윤동주의 현존시 100여편 가운데서 녀성 이미지로 꿰여볼수 있는 시편들이 약 30편, 전체 시작품의 거의 3분의 1을 이루고있음을 밝히였다. 윤동주 시작품속의 녀성 이미지를 통하여 윤동주시인을 보다 더 리해하려는것이 필자의 시도이다.
주해:
① 송우혜, 윤동주 평전, 열음사, 1988년 10월 출판, 제213페지
② 동상서, 제214페지
③ 동상서, 제227페지
④ 박민영, 현대의 상상력과 동일성, 태학사, 2003년 1월 출판, 제160페지
⑤ 동상서, 제161페지
(6) 이 론문의 윤동주 시 녀성 이미지 시편통계는 윤동주의 시 110여편이 실리여 있고 전광하, 박용일 편저로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년 7월)에 준하였다.
(2007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