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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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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나의 기준이 옳은가 댓글:  조회:1988  추천:1  2013-09-23
나의 기준이 옳은가 Is my criterion always right? 중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생각이 옳으냐?” 가 문제입니다. One cannot interfere in someone else’s business  in the state of not being moderated.  It is matter of “Is my thought right?” 예를 들어 동성연애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만일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연애자라면  끝까지 따라가며 말려야 된다고 생각하시죠?  아마 그럴 겁니다.  (편집자주: 오래 전 한국에서 하신 말씀이라서 현시점의 가치와 다를 수가 있습니다) For example, homosexuality is considered negative in the general way of thinking.  If your family member or someone you love is homosexual,  then wouldn’t you think to stop them to the end?  Probably so.  (Editor’s note: As it is the speech in Korea long time ago,  it might have different value with present time) 그런데 그 사람이 왜 동성연애자가 됐는가를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기적인 부조화 때문입니다.  남자라면 양기가 많아야 되는데 음기가 더 많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여자에게 매력을 못 느끼고 오히려 양기가 많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여자는 음기이기 때문입니다.  However, if we look at why the person became homosexual,  there is an absolute reason.  It is because of disharmony in terms of energy.  If it is a man, he should have more Yang (male) energy,  but consider that he has more Eum (female) energy.  Then he does not attract to women,  rather he attract to men who has more Yang energy.  It is because women are Eum (female) energy.  그런 기적인 특성은 태어날 때 이미 타고나는 것입니다.  일종의 환자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Such characteristic in terms of energy is already born.  That person can be seen as a patient.  자기도 외로워서 사람들하고 살갑게 살아보려고 하는데  도저히 이성에게는 매력을 못 느끼는 걸 어떡합니까?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자기도 살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What to do when a person does not feel attracted to the opposite sex,  even though he or she wants to live well with people because of loneliness.  Even though he or she wants to love or have a relationship  and as it does not work out, therefore the person is struggling to live like that.  그걸 내 기준으로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이나 교육 받은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마음에 안 들고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중용이란 어떤 상황도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봐도 이해가 가고 저쪽에서 봐도 이해가 가고,  내려다 봐도 이해가 가고 위에서 봐도 다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란 없습니다.  I cannot say it is right or wrong under my criterion.  It can be something you never like it or something that should not happened  when judged from your life experiences or the standard from education,  however the middle way is understanding regardless any circumstances.  Everything understands whether it is seeing from this way or from that way,  seeing downwards or upwards.  There is no circumstance that cannot be understood.  .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정된 시야가 있어서 똑바로 앞만 봅니다.  그런데 그 시야 자체가 좌측이나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는 건 당연히 정답이 아닙니다.  People always look straight to the front because they have their own fixed view.  However the vision itself is tilted to the left or to the right.  It is not the correct answer absolutely by the look from that vision. 어떤 사람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단 말입니다.  아니면 그 사람보고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참견하기 전에 과연 이게 정답인가를 판단해서 하십시오.  There is a reason the person can only do so regardless who.  If not, it is the same as you telling the person to go kill himself.  Therefore, before you get involved in someone else’s business,  judge for yourself whether this is the correct answer or not. 상대방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서 이해해주고,  개선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Find and understand the reason the person can only do so in his position,  and think about how to help to improve.  Do not insist that I am right.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도 때가 있습니다.  에너지가 50% 이상 어느 쪽으로 막 쏠리고 있을 때는 아무리 말해도 안 들립니다.  바라보다가 적당한 타이밍이 되었을 때 하나의 의견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됩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너는 어떠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되면 받아들이겠죠.  그렇게 대화로 해야 합니다.  You can give advice but that has its timing.  If one’s energy is turned to one side more than 50%,  that person cannot hear no matter how much you say.  Observe and suggest your opinion as an opinion  when it becomes the appropriate timing.  This is what I think, how about you? He will accept it if he thinks it is sensible. You have to communicate like that. 
64    건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것이다 댓글:  조회:2095  추천:0  2013-09-23
건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완전한 몸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고장 잘 나는 자동차로 먼 길을 가야 하는 것과 같으므로 잘 돌보아주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몸을 느껴보고 함으로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먼 길을 가야 합니다.   언제 어디를 막론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 속에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위협하는 요소가 더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은 단연 질병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죠.   하지만 근래에 와서 처럼 건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했던 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과 환경만큼 건강과 멀리 떨어진 때도 없다는 것도 동의하십니까?   사실 현대인들은 건강에 무엇이 좋고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좋은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고에 시달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확신을 못하는 것은, 아는 것만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위협하는 요인 중에서 질병이 가장 무섭다고는 하지만, 그 질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병이 생기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 대부분은 제대로 몸 관리를 못한데 있습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당시의 건강함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자라면서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보다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몸을 소홀히 하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건강을 잃습니다. 두 번째는 건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건강은 나중에 신경을 쓰면 된다.”며 건강관리를 겉으로 표가 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는 경향이 있죠.   그리고 어느 순간 건강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될 것이라는 자기 위안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지만, 이보다는 몸의 원리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점이 큽니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기란 먼저 자신의 몸에 대해 알지 않고서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몸의 소중함, 몸에 감사함, 몸을 사랑함에 얼마나 생각을 해보셨는가, 정성을 기울이셨는가를 되새겨보시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알기위한 노력을 항상 기울이는 것이 건강을 잃고나서 고통 속에서 헤매지 않는 현명한 방법인 것입니다.   문화영씨의 책 여유에서 한 말씀입니다.   한순간 한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입니다. 현재에 충실함만이 모든 것을 다시 확인치 않아도 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작은 일에 소홀하지 마십시오. 작은 일에 충실하면 큰일은 저절로 됩니다.    
63    성격은 운명 댓글:  조회:2406  추천:0  2013-09-19
성격은 운명 Your personality is your faith  대인관계를 잘 안하고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사람들은  늘 만나는 사람들이나 만나니까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반면 외부 지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밖으로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날 때가지고 태어난 성격들이 다 다릅니다. Those who are not active in social interactions and dig into one’s inside,  meet people they meet all the time and thus they rarely run into situations  where they conflict with others.  Conversely, extroverts and active people experience toward the outside a lot.  The personality each person carried form the birth is different like this.  성격은 운명입니다.  만약 의협심을 지나치게 갖고 태어났다고 해보세요.  옛날에는 기사도라고 해서 여자 때문에 목숨 걸고,  말 한마디에 명예를 걸고 싸웠죠.  Personality is one’s destiny.  Consider if someone is born overflowing with an outgoing spirit.  In the past, we called it chivalry  and they fought with their life for woman  and fought over one word for their honour.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합니까?  아니죠.  그런데 의협심이 강하면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계속 그쪽으로 갑니다.  불의를 못 보기 때문입니다.  Is fight for your honour more important than your life?  Of course not.  If your outgoing spirit is that strong,  even though you know it may lead you to the death  and you still go in that direction.  It is because you can’t see the injustice.  그런 식으로 어떤 성격을 타고난 것은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편중된 성격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지만  잘 조절하면 좋은 쪽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The reason a person is born with certain kind of personality like this way is because  that person is born for that study.  There is a case to abandon or ruin one’s life because of one’s biased personality,  but it can be used in a good direction if one controls one’s personality well.  중용을 향해 가야 됩니다.  내가 너무 경험이 없어서 쳇바퀴 돌듯이 산다고 느끼면 조금 넓히십시오.  내가 너무 번잡해서 정리도 안 되고 많은 일들을 겪어서 산만하다면 줄여 가십시오.  We have to go toward the direction of the middle way.  If you feel like living in the frame of a sieve because you haven’t experienced much,  then expand slightly.  If you can’t arrange yourself because you are too complicated  or you are diffused because you have experienced over too much,  then reduce them slowly.  사람하고 부대끼는 것만 경험이 아니라,  동물과의 깊은 교감이라든가,  자연과의 깊은 교감 같은 것도 다 경험입니다.  Troubling with people is not the only experience.  Like act of deep sympathy with animals and nature are all experiences.  .  내가 너무 사람들에게 집착한다고 생각이 들면  대상을 다른 쪽으로 바꿔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너무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관심이 없다면 좀 더 관심을 가지시고요.  이런 식으로 중간을 찾아가도록 하십시오.  If you feel like you are attached to people over too much,  then it is necessary to move your subject in a different direction.  If you feel indifferent and not interested towards people,  then pay a little more attention to them.  Try to find the middle like this. 
62    박하사탕 댓글:  조회:1631  추천:0  2013-09-19
박하사탕       아침 8시 15분. 오늘도 조금 일찍 도착해 출근 도장을 찍는다. 바다를 낀 시골 마을. 노인들이 많아서 마을 청년회의 평균 연령이 60~70대인, 시내에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면 보건지소가 나의 일터이다. 늘 근무시간보다 훨씬 일찍 오지만 도착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할머니 천천히 오셔도 돼요. 이렇게 추운데 떨고 계시면 어떡해요.” 괜히 마음에 찔려서 할머니께 심술이다. 그러면 늘 한결같이 같은 대답. “그래, 내 다음부턴 늦게 오께. 도통 늙으면 새벽에 잠이 있어야 말이제.” 도리어 미안해하시며 주름으로 얼굴 가득 채우시며 웃으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담는 그릇이 넓어져서인지 모두 서로가 많이 닮으셨다. 심지어 할머니와 할아버지, 성에 상관없이 얼굴은 닮으신 것 같다.^^ 발령 받은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제 겨우 매달 약 타러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과 이름을 대충 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 어르신들이 무척 싫어하시는 것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병원 가야 하니 자녀들에게 연락하라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당신 이름을 여쭙는 것이다. 자주 오는 당신을 기억 못하시는 것을 참 섭섭해 하신다. 연세가 드시면 '섭섭 바이러스’에 더 잘 감염된다고 했던가? 처음엔 뭐 그런 걸로 화내시나 의아했었다. '1:익명의 다수'라는 극히 개인적인 마인드가 몸에 베여 있고 ‘타인에 대한 관심 결핍증’까지 앓고 있으니 죄책감은 거의 없었다. 그저 대면하는 순간 친절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다보니 명절 때나 보는 자식보다 더 자주 보는 사람이 이름 하나쯤은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몇 번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실망하시는 것을 본 후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으면 일단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시간을 끄는 잔머리가 생겼다.^^; 이렇게 보건지소 주변 몇 개 마을에서 찾아오시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고 혼자 계시는 독거노인 분들을 방문하면서 유독 마음이 쓰이는 몇 분이 생기게 되었다.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단지 병이 중하다거나 혼자 사신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지구에 태어나 사는 사람치고 사연이 없고 한이 없는 분들이 계시겠느냐만 그 중 몇 분들은 살아온 삶을 단지 비관이나 후회만으로 살고 계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 한분이 강 할아버지다.   처음 이분을 선임자로부터 인계를 받고 집을 방문 했을 때가 기억난다. 집 주소를 보고 찾아 갔을 때 여느 독거노인의 집과 달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두 내외분만 사신다고 들었는데….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신식 이층 벽돌집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족이 함께 사는 마을 이장이나 유지의 집쯤으로 보였다. 현관문을 두드리자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강00님 계십니까? 방문 진료 왔는데요.” 무심히 듣더니 손끝으로 담벼락 쪽을 가리켰다. "저쪽 문으로 가보세요.”라고 하고는 쌩~들어간다. 가리킨 곳을 보니 옛날 집에 있던 행랑채 비슷한 곳을 판자로 덴 문이 보였다. ‘담배’라고 적힌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형광등이 없어 한낮에도 어둡고 추운 부엌이 나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창문만한 방문이 보였다. 아마 담배를 떼다 파시며 생활을 이어가시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를 몇 번 부르자 방문이 열리면서 누워계신 하얀 할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눈은 백내장으로 많이 상하셨지만 정신은 맑으셨고 말도 또박또박 하셨다. 머리 위에는 조금 전에 보던 신문이 놓여 있었다. 방문 진료 왔다니 연신 반가워하시며 못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연탄을 쓰는 방이었지만 다행히 따뜻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혈압을 재드리러 방으로 들어가기를 시도했다. 작은 문으로 최대한 웅크리고 들어갔는데 금방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이 너무 좁아 내가 들어가 앉으면 두 분이 누워 계실 수 없게 되어서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시다가 얼마 전 어두운 부엌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치셨다고 한다. 얼굴엔 반창고를 크게 붙이셨지만 너무 선하신 얼굴이다. 혈압하고 당뇨 수치가 정상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함박웃음이시다. 방 입구에서 할아버지 팔만 빌려 혈압을 어정쩡한 자세로 재어 드렸다. 이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할머니가 연신 방긋하시며 까만 봉지를 주섬주섬 주신다. “담배만 팔아서 줄건 없어. 한 달에 한 번 보건소 처자들 오면 줄려고 전에 영감이 따로 담아뒀지.” 하신다. “할머니 뭔지 몰라도 안 주셔도 되요. 다음 달에 또 찾아올게요….” 하며 나오려는데 할머니가 입구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옆구리를 찌르시며 어서 건네주라며 성화시다. 어둡고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분들을 뵙다가 외롭고 힘든 내색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두 분의 온화한 모습이 그날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지내시며 저런 웃음을 지으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후 그 마을 담당 자원 봉사자에게 강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큰집에 살던 중년 남자는 양아들이고 다른 자녀는 없으셨다. 살림은 부족하지 않게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월남 전쟁 때 다리를 다치셔서 못 걸으시게 되면서 행랑채로 내려오시게 되셨다고 한다. 거두어 키운 양아들이 이젠 노부부를 모른 체 한다고 마을에서도 꽤 미움을 받는 모양이었다. 정작 할아버지 할머니는 끝까지 아들에게 짐이 안 되려고 판자로 만든 행랑채에서 조금씩 담배를 팔아 생활하시고 계신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양아들을 원망할 텐데 강 할아버지 부부는 오히려 그것을 감사의 대상으로 여기신다. 그렇게라도 아들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옆에 살아줘서 든든하고, 간간이 담배를 팔아 그 나이에도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부러울 것 없이 사신다고 했다.   엔도르핀이 다량 분비되는 '감사'. 우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간의 감정인 '감사'.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이란 좋은 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곳에 더욱 요긴하게 쓰라고 주신 조물주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연세가 80이 넘으시고 고혈압에 걷지도 못하시지만 맑은 정신으로 정정하게 사시는 비결을 알 것도 같았다.   그날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야무지게 묶인 까만 봉지를 열어보니…. 박하사탕이다. 아랫목에서 마음 놓고 몸을 녹여서인지 엉겨 붙어 있다. 나는 한 달분 약을 전해 드리고 할아버지께 한 달 치 박하사탕을 처방받았다. 하나 떼서 입에 넣으니 싸하고 달콤한 박하향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김혜정(1980년생, 보건소 간호사) 2005년 명상입문 6년차 된 간호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신 어머니와 할머니를 보아서인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는 이유, 죽는 이유, 사사롭게는 살며 겪는 다양한 일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커졌을 때 명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명상 학교에서 제가 궁금하게 여기던 것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명상을 통해 배운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61    중용이란 댓글:  조회:2195  추천:1  2013-09-13
중용이란 The middle way 동물은 한 가지의 특성만 가지고 있습니다.  여우는 여우의 특성만을, 뱀은 뱀의 특성만을 가집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어떤 걸 하고 싶어하는 마음, 하기 싫어하는 마음,  이렇게 공존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Animals carry one distinction only.  A fox possesses one only, a snake possesses one only.  However, human beings co-exist with a mind at the same time.  Human co-exist with a good mind and an evil mind,  with a mind to want to do things and with a mind to dislike doing things.  그걸 인정해야 됩니다.  어떤 한 면만 과도하게 노출되고 다른 쪽은 표현이 안 되었을 뿐  자기 마음속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You have to accept this.  It’s just that you are predisposed to one side excessively  and have expressed only that side of yourself.  Everything exists deep within your mind.  That’s mankind’s ‘Bon-seung’ or Original Nature.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질 때 중용이 됩니다.  중용을 잡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성격적인 면에 있어서도 오욕칠정을 다 알면서 중심으로 가야 되고,  지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 쪽으로 편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를 다 알 수 있어야 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장단점을 인정하고 편견 없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Not being partial toward any one side is the middle way.  It’s extremely difficult to achieve. Even while dealing with your own personality,  you have to know all the Five Desires and Seven Emotions to obtain the middle way,  and even while you have your own personal knowledge,  you have to be able to know everything in many ways  without being prejudiced to one way, and you have to be able to accept everything.  You have to be able to see without bias and to acknowledge merits and faults.  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리고 성격적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 의지만 강해서 제어하지 못하는 면이 있으면 안 됩니다.  고루 갖춰야 합니다.  You should not be slanted to any one side in terms of knowledge,  emotions, or personality. For example, you have an aspect not to control  because only your will power is strong. You should possess everything generally. 
60    작가 정을병의 마지막 글 댓글:  조회:1587  추천:1  2013-09-13
  작가 정을병의 마지막 글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 좋을 때도 슬플 때도 그 원천적인 외로움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의 영적인 고향에 친한 사람들을 모두 두고 혼자 지구에 온 게 분명했다. 칠십 나이가 되도록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시련을 겪었어도 인생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지 나는 진리를 찾았다. 진리는 화려한 곳, 부유한 곳, 아름다운 곳, 깨끗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보다는 아래에서, 앞에서보다는 뒤에서,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에서, 편리한 곳보다는 불편한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닷물의 속의 고기가 바닷물에 싸여 그 물의 존재를 모르듯 나는 은총 속에 있으면서 그걸 몰랐다. 나는 이제 신과 한 덩어리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와 합치듯이, 내 인생 속에 들어온 모든 경험은 모두 내게 책임이 있었다. 나는 그 책임을 이 글을 쓰면서 용서받고 싶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2008년 10월   누명을 쓰고 감옥을 갔다 온 사실에 대하여 누군가가 묻자 돌이켜 보면 난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어요. 혼자 지독히도 우쭐대고 잘난 척했죠. 지주였던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안에는 교만이라는 유전인자가 있는 것 같아요. 문단의 원조로 행세하면서 남을 막 깔아뭉갰죠.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 게 그 때문이에요. 횡령죄는 무죄였지만 내가 저지른 진짜 죄는 교만이었지. 그 업보를 받은 거요. 
59    나는 소인이로소이다. 댓글:  조회:2642  추천:11  2013-09-09
나는 소인이로소이다. I’m a Small person 사람을 대인, 중인, 소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소인은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 생각이 틀린 데 왜 벌을 받지 않는가’이런 생각까지도 합니다.  We can divide people into Small, Middle, and Great.  A Small person sees the world from his point of view.  When he looks at those with a different perspective he even says,  “He is wrong. Why isn’t he being punished for thinking that way?” 내 기준에서 볼 때는 내가 옳은 것이지만 상대방의 기준에서 볼 때는 상대방이 옳은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내 잣대로만 상대방을 보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스스로 돌아보아서 그렇다면 ‘나는 소인이로소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You’re always right when you examine form your point of view,  but when seen from the other’s perspective, he’s right too.  One who thinks their viewpoint is the only one is a Small person.  Look at yourself, and if this is your case, just say, “I’m a Small person.” 중인은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생각이 들면 한번 자리를 바꿔봅니다.  그리고 ‘아, 이래서 그렇구나, 그럴 만하다’하고 이해합니다.  The Middle person observes from the other’s viewpoint.  When he thinks, “Why does that person act like that?”  he places himself in his shoes and understands;  “Ah, that’s why. That makes sense.” 아무리 인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사랑이든 물질이든 뭔가 시원하게 받지 못했으면  남에게 줄 줄도 모릅니다.  No matter how stingy he acts, it makes sense why he’d act that way.  If he had not been loved when he was young,  if hadn’t experienced material comforts,  he would not know how to get along with people.  악한 사람을 보면 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환경을 이길 만큼 본인의 의지가 굳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등등 이유가 다 있습니다.  When you see a wicked person, there’s a reason why he could not be otherwise.  Because the circumstance makes the man  and he didn’t have the willpower to overcome his environment,  or he didn’t have a proper education, etc. Many reasons exist.  어떤 사람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다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중인, 즉 보통 사람은 되는 것입니다.  Everyone has this kind of situation showing why there’s no other way  but to be that way. If you look from another’s viewpoint,  there’s no way but to understand another.  In this case you are a Middle person, that is, a common person. 
58    만병의 근원 "냉기" 댓글:  조회:2137  추천:2  2013-09-09
만병의 근원 '냉기'      우리 인간은 36.5부로 몸의 온도로만 따지면 따뜻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야만 됩니다.   인간의 체온은 무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36.5~37.0도의 좁은 범위에서 유지됩니다. 이 체온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생리적인 활동과 체내에서 이뤄지는 끝없는 화학반응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죽게 되면 체온은 내려가는데, 평균 체온보다 5도 정도만 내려가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은 체온이 떨어질 때 체온이 상승하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반대로 평균 체온보다 5도 높은 41.5도 정도의 열이 난다고 해서 죽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체온 저하는 체내에서 운영되는 생명유지를 위한 모든 반응과 활동을 저해하고, 생명을 위협하므로 냉기(체온 저하)가 있으면 몸은 갖가지 반응을 일으켜서 '냉기' 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모든 분들께서 평소 경험을 하듯이 추우면 몸이 떨리면서 근육이 수축이 되면서 열이 생산이 됩니다. 더우면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땀으로 열을 배출하죠. 이와 같이 인체는 체온조절 시스템이 있어 끊임없이 열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과정을 통해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려고 하는 겁니다.   냉방이 잘 된 방에 들어가면 두통과 복통 또는 요통이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비가 내리는 날에는 관절통이나 신경통, 편두통이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냉기나 수분 과잉은 통증의 원인이 됩니다.   몸이 차가워지면 체내의 수분 대사가 나빠지는데다가 추위로 인해 신장의 활동도 떨어져 몸 밖으로 물이 잘 배설되지 않아 몸 안에 잉여 수분이 머무르게 된다. (이 현상을 수독이라 합니다.)   또한 물을 과잉 섭취하거나 땀이나 소변 등 수분 배설이 잘 되지 않아 몸 안에 물이 머물러 있는 경우를 수체(水滯)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수독을 일으켜 몸을 차게 하고, 체내 모든 장기의 신진대사를 나쁘게 하여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합니다.   이렇게 냉기와 물과 통증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즉 냉기가 수독을 만들고, 수독이 냉기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열을 지니고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우리의 몸은 이러한 냉기(물)를 제거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반응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추운 데서 잠을 자면 설사를 하고, 추위로 인해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나 재채기, 가래 등이 나오는 것은 몸 안에 있는 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체온을 높여 감기를 낫게 하기 위한 반응입니다.   설사, 재채기, 콧물 등 체내에서 남아도는 수분을 몸 밖으로 배설하면 그만큼 몸속이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냉성 체질이면서 편두통이 있는 여자 중에는 두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구토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도 위액이라는 수분을 몸 밖으로 내보내 체내를 따뜻하게 함으로써 편두통을 낫게 하려는 반응입니다.   아시다시피 슬프거나 괴로울 때는 눈물이 나옵니다. 이런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서는 몸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가 몸에 가해지면 온 몸의 혈관이 수축되고, 그 결과 혈액순환이 나빠지기 때문에 결국은 몸이 식는 것입니다. 몸의 냉기는 만병의 근원이므로 슬프거나 괴로울 때 눈물이라는 수단으로 체내에서 수분을 배출함으로써 몸을 따뜻하게 해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병을 미연에 막으려는 반응입니다.   식은땀도 마찬가지로 냉기에 대한 반응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긴장하거나 공포를 느끼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혈관이 수축하고 몸이 차가워지는데, 그에 대한 방어 반응으로 물을 내버리는 반응이 바로 식은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은 계절에 따라, 기온의 변동에 따라 몸의 갖가지 기능으로 반응을 합니다.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못할 경우 자연적 반응이 부족해짐으로 가장 약한 부분으로 쉽게 병이 침투하게 됩니다.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하시는 것을 잊지 마시고, 몸을 보호하시고, 몸을 사랑하시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57    감동을 주어야 댓글:  조회:2188  추천:1  2013-09-05
감동을 주어야  Giving an impression 자기 자신을 돌아보셔서 뭐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거리낌이 없다면  “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하셔도 됩니다.  Look inside yourself deeply and you must be able to accept everything,  whatever it is, and no matter what other people say to you, never let it bother you.  Then you can say, “Ah, at least I’m a decent person.”  사람을 볼 때나 사물을 볼 때 단점이 자꾸 눈에 띄고,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계속 확대되어 보인다면  ‘내 사고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은가’하고 스스로 한번 점검을 해 보십시오.  When you observe people or matters,  if you always look at the negative points  and constantly emphasize the negative over the positive,  examine your outlook by yourself,  “Perhaps there’s a problem with the way I see the world.” 인간 사회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결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항상 본인이 취할 점만 취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성격상 굳이 그걸 끄집어내서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Human society cannot be perfect. It was made imperfectly.  Concern yourself with what you have to and for the rest,  it’s not necessary to bother yourself.  However, there are those who force themselves to point out the errors  in others and try to fix them.  어떤 모임이나 흐름에는 반드시 배울 것이 있으므로 그 배울 점만 배우면 됩니다.  그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굳이 바꾸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먼저 바꿔서  그 향기가 주위에 전달되도록 하는 방법이 제일 좋습니다.  나는 안 변한 채 남을 바꿔 보겠다는 건 절대 안 됩니다.  From a certain meeting or your daily flow of events  there’s absolutely something to learn, so just learn what it is you need to learn.  That’s the intelligent method. If you really wish to change another,  change yourself first, and then let the fragrance of that change affect others.  What you absolutely should not do is to try to change others  before altering yourself first.  사람은 감동을 받지 않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감동을 받으면 서서히 마음이 열리면서 변화됩니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엄청난 에너지 소모일 뿐입니다.  If one isn’t impressed, his/her mind is never moved.  If one is impressed, slowly his mind is opened and changed.  If you try to change other’s mind forcibly,  it will be just a huge waste of your energy.  자기 스스로 빛을 보이면 옆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모범이 되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The best method to change society is for you to set a good example;  be a shining light and make others feel like following you. 
56    하하하, 바닥이라는 것은 댓글:  조회:1612  추천:1  2013-09-01
  하하하, 바닥이라는 것은   인생의 정점을 살고 있는 아해들에게   자네들 철저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적 있나? 한 번도 없어? 쯧쯧. 그렇다면 나와 함께 그 세상 한번 놀러 가보지 않겠나? 그 세상은 자네들이 살고 있는 곳과는 차원이 다르네. 그러나 저러나 자네 지금 만족하나? 뭐 만족하면 그리 살구…. 사실, 가기 전엔 아주 죽을 맛이네. 내 어찌하면 안 내려가 보려고 여기저기 대롱대롱 하느님께 변명도 하고, 협박도 하고, 협상까지 해봤다네.   돈이 없다는 것. 또 그 때문에 친구도 만날 수 없다는 것. 주변에 그 흔한 남자도 없다는 것. 첨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네. 내 이제껏 버텨온 건 알량한 자존심 하나 때문인데 그게 사실 외적인 것도 받쳐줘야 가능했거든. 근데 그런 거 하나 없이도 내 진짜 잘날 수 있는지는 자신이 없었네. 솔직하게 말하면 고거라도 없으면 내 nothing! nothing!!이지. 그래서 왜 정점일 때 놓아버리라고 하는 줄 알겠나? 그게 아름다운 것이야. 내 지나고 보니 알겠네. 결국은 그거더라고.   요 정점이라는 자 계속 붙들고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네. 우울증 생기지. 우울증? 이게 아주 고~얀 놈일세. 지금 죽고 싶어 죽겠다고? 그러면 이놈 한번 불러보게. 즉효약이지. 요놈이 도지면 조물주님이 와도 소용없지 싶어. 그 누군가? 그래, 유명한 여배우 000. 그 처자도 정점 세상의 너희 동족 아니던가? 그렇게 바닥 세상 안 가려고 아등바등했다지? 근데 함 보게. 바닥 세상에 안 가려다 이놈한테 굴복했잖아. 또 누구 있나? 영화배우 000. 내 그 아가씨 나이치고 연기 잘한다고 좋아했는데 그리 허망하게 자살하고 말데? 내 자꾸 남의 치부만 드러내어 비판하는 것 같나?   그러면 내 이야기를 한번 해 봄세. 내 풋풋한 20살 시절, ‘허준’ 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이었어. 나와 같은 이름의 ‘예진아씨’가 사모해 마지않는 허준 의원님께 "이 환자 양기가 모자라옵니다. 양기가 모자란 듯하옵니다." 라고 조곤조곤 말하곤 했었지. 내 그때 늦봄바람 살랑거림에 남자친구가 얼마나 사귀고 싶든지! 주위 친구들 3, 4월에는 나하고만 다니려 하더니 남자친구 생기자 다들 떠나데? 그래서 나도 외치고 다녔지. “아~ 양기 모자라, 양기 모자라.” 헤헤. 아직 결혼도 안 한 처자가 입이 너무 걸걸하지? 근데 어쩌나 내 진짜 이리 말하고 다녔는걸. 정 듣기 거북하면 이 부분만 살포시 가려주게. 마침 키 178cm의 S대 법대 다니는 동갑네기 남학생이 홀연히 나타났네. 이 정도면 처음 사귀는 남자친구치고는 외적인 조건으로는 꽤 괜찮지 않은가? 아, 근데 나 이 아해랑 사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네.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지, 허영심은 또 어떻고. 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 아이 인생도 나름 힘들었겠구나 하고 측은함은 드네. 1등만 해오다가 그쪽 동네에서는 안 알아주니까 거짓말 해대었을 테고 이름만 예진이었던 여자친구를 ‘허준의 예진아씨’ 닮았다고 떠들어 대는 통에 내 얼마나 쪽팔렸는지 아나? 그래서 그 아이 친구 어느 날 나보고 曰, "에이, A급은 아니네~"   자네들 밑바닥이 얼마나 편한 줄 모르지? 이 세상에서는 술 그득하게 마신 후에 발가벗고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대통령 아저씨 앞에서 부를 수도 있고,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우리 선생님 앞에서도 부를 수 있는 용기를 준다네. 한번쯤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것 멋있지 않은가? 내 좋아하는 시 구절 중에 ‘Heaven as Blanket, Earth as Pillow’라는 게 있네. 이것이 정답이네, 정답이야. 바닥에 있으면 온 세상 다 자네 것이네 이게 다 자네 것이라고. 그러니 정점에 있는 아해들 나와 함께 바닥세상 한번 같이 살아보지 않겠나?   고만 좀 질질 짜거래이. 미안하다. 첫 마디부터가 호통질이어서. 내 너희들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안타까우니까 그런 것이지. 나도 같이 바닥인생 사는 처지인데 너희들 맘 이해 못하겠느냐? 너거들 말이다, 잘 생각해 보거라. 사실은 너거들 진짜 편하게 살고 있는 거다. 누가 돈 벌어오라고 카나, 또 잘 보일 미끈한 남정네가 있나? 섹시한 여성이 있나? 그래, 얼라들, 니들은 성적 걱정할 필요도 없다. 꼴등인데 뭐. 누가 니한테 기대 안하니까 얼마나 부담 없고 좋노? 왜? 내 이 카니까 기분 나쁘나? 아니 데이, 잘 들어 보거 레이….   바닥이라는 것은 니가 그만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니 쪼매만 공부해봐라. 1등짜리 그놈 아는 밤낮 공부해야 겨우 그 자리 지킬 수 있는데 니는 하루 10분만 투자 하면 10등 20등 오르는 건 금방이데이. 또 지금 니 모습에서 쪼매만 꾸미도 사람들 반응 좀 보래이. "이제 보니 미남인데?", "눈이 초롱초롱 한데?" 맘만 먹으면 세상 남자들 여자들 다 니께 될 수 있다꼬. 그라고…. 또 누구 있노? 그래! 돈도 없고 세상에서도 버림받아서 거지 노릇하는 아해들 좀 보소. 너거들 부끄럽나? 아니데이. 누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멀쩡한 눈 있는데 맹인인 척하면서 지하철 한 칸 한 칸 안 다치고 넘어가노. 그거는 대단한 재주데이. 또 한 바퀴에 최소 3만 원은 안 버나? 이거 공짜 세상공부, 연기공부 또 돈 주고는 절대 살 수 없는 '용기' 라는 힘을 주지 않나? 내사 그거 아무도 못하는 대단한 기라고 생각한다.   아 그라고, 딴 사람 등쳐먹고 사는 아해들. 내 안다 너거들 돈 없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능력은 안 되고. 그래서 익힌 능력이 살살거리고 남자 비위 맞춰가면서, 여자 비유 맞춰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 근데 그게 참~힘든 것이제. 내 보니까 여자들은 쉴 새 없이 외모 가꿔야 하고 남자들은 여자들 모성애 자극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쉽게 끌 수 있는지 쉽게 자극시킬 수 있는지 연구하고 연습해야 되지 않냐꼬? 근데 야들아 그래 살면 안 피곤하나? 안 피곤하다꼬? 니는 안 피곤해도 상대방은 안 그렇데이. 겉으로는 니한테 미안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피 같은 돈 그리 쉽게 줄라 카나? 돈 없는 거는 너무 티내지 말기라. 니 한 몸 니가 책임질 줄 알아야제.   근데 말이다. 내 궁금한 것 하나있다. 너거들 바닥인생 살지 만서도 진짜 ‘찌질이’ 들이가? 내 너거들 하고 얘기해보니 만만찮은 자존심은 다 있데? 그래…. 내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선물하나 주려고. 원래 이거는 너무너무 비싼 기라서 맨입에는 안 줄라켔는데. 거지왕 김춘삼이가 부하 돈 다 끌어준다고 해도 안 줄라고 켔는데 내 오늘은 술 한 잔 했는지 알딸딸해서 그냥 말하께.   사실은… 생각만 쪼매 바꾸면 된다. 만날 남한테 손 벌릴 궁리하고 한탄할 적에, 잘 보일 궁리할 때, 살 뺄 시간에, 표정 연습할 적에, ‘내 우짜면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잘 묵고 살아 보겠노?’ 이 생각만 하면 된데이.   참~~ 쉽제이? 그래. 뭐 하라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 하면 된다카이. 못 믿겠다꼬? 그러면 내 실화를 하나 들려주께. 너거들 ‘앤디(Andy)’아나? 신화의 ‘앤디(Andy)’. 그놈 아는 신화의 막내이고 꽤 곱상하게 생긴 아해인데, 정 모르겠으면 인터넷 함 찾아 봐라 내가 그거까지 찾아줘야겠나? 수업료도 안 받는데. 그놈아가 10년 동안 그 그룹에서 속된말로 ‘무존재’ 였거든. 심지어 팬들도 ‘앤디’가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 잘 몰랐다 카더라. 특기도 엄꼬, 인기도 엄꼬, 뭐 할지도 모르겠제. 보통 사람들 같으면 벌써 그만둬도 그만뒀을 끼다. 근데 나는 갸가 10년 동안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우결’ 을 통해 알게 됐데이. 이제는 ‘앤디’ 카면 동네 아줌마들도 다 안다 아니가. 그놈아가 요즘 1등 신랑감 아니가. 나도 실은 갸가 좋다.   내 여러 말 안 한다. 첨에는 니 해오던 대로 살아도 된다. 근데 생각만 바꿔라 그러면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지나도 무슨 소식이 올 끼다. 내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정점 세계에 한번 가게 되걸랑 내 수업료 대신 이거 하나 부탁할께. ‘바닥’ 이라는 자 만나면 큰 절이나 한번 해라. 내 바람은 그것뿐이데이.     허당(虛堂) 김예진    
55    바닷물에 잉크 한 방울 댓글:  조회:2616  추천:1  2013-09-01
바닷물에 잉크 한 방울 A drop of ink in the sea 덕이 많다는 것 또한 마음이 열렸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수용하지 못하면 덕이 없는 상태입니다.  Having an open mind is the same as having lots of virtue.  It means having the deepness of mind to accept things different from you.  Not being able to accept things different from you is being without virtue.  덕이 부족하면 남은커녕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못 담습니다.  자기 자신의 어떤 면만 담고, 나머지 부분들은 수용이 안 돼서 삐죽삐죽 삐져나옵니다.  If you are lacking in virtue, not only can’t you contain others,  but you can’t even contain yourself.  Moreover, you just contain parts of yourself and other parts come out  as they weren’t accepted.  스스로가 자신의 자질이라든지 가정환경, 처해 있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면이나 자기가 인정하고 싶은 면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인정을 안 합니다.  내 탓이 아니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동적으로 주어진 여건이라고 거부합니다.  It’s being unable to acknowledge your situation, family, environment,  or personal disposition by yourself.  You only accept what you want to acknowledge of the good parts  and forget about the rest.  You deny them because you think they are not your fault  and the circumstances given passively without your decision.  그런 부분을 누가 건드려주면 비명을 지릅니다.  그릇이 작아서 그렇습니다. 그릇이 크고 덕이 풍부하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If someone points this out, you scream at them.  It’s because you have a small bowl.  If your bowl is big and your have abundant virtue,  you’ll go with the flow and be able to acknowledge your responsibility.  ‘바닷물에 잉크 몇 방울’ 떨어져봐야 아무 영향이 없듯이,  그릇이 크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데  그릇이 작으면 누가 돌만 던져도 아우성치고 난리가 납니다.  Like a drop of ink in the sea, if your bowl is big, you’re not bothered at all.  If your bowl is small, if one even throws a rock you shout and let them have it. 
54    예수인터뷰 댓글:  조회:1473  추천:0  2013-08-29
예수인터뷰 중에서 An Interview with Jesus     율법사 니고데모와 대화 시에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못 봅니다’는 말씀을 통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설명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어떤 뜻인지요? In the conversation with Nicodemus, the scribe of the Jews, you explained about born again by talk,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What is the true meaning of born again of which you spoke?     몸이 태어남이 ‘하나’라면 마음의 태어남은 ‘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이지요. 몸의 태어남은 물질적인 것이지만 마음의 태어남은 정신적인 것이어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It can be said that being born of body is ‘the one’ then being born of mind is ‘the two’. This is born again. I mentioned this as being born of body is a material aspect, but being born of mind is spiritual aspect.     마음은 곧 우주이므로 정신적인 자각으로부터 우리는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은 곧 인간의 모두를 말하는 것이자 우주와 인간의 유일한 연결고리이기도 하지요.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성인도 죄인도 될 수 있거니와 하늘과 우주에 일체가 될 수 있음에 기인하는 것이지요. As the mind is in other words the universe, therefore we can make the foundation to return to Heaven from the spiritual awareness. Mind signifies very everything of human and at the same time it is only connecting link between the Universe and human. The reason why human beings are great is caused not only they become either saints or sinners depending on how they use their minds, but also they become one with Heaven and the Universe.       예수님께서 당시 바라시던 종교의 성격은 무엇인지요? 사랑과 실천의 종교인지요? 차별이 없는 평등한 종교인지요? 거듭남의 종교인지요? 예수님의 사상의 근본은 무엇인지요? What was the character of religion you desired? Was it the religion of love and practice? Was it religion of equal without discrimination? Was it religion of being born again? What was the basis of Jesus’ ideology?     사랑이지요. 우주의 파장에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보다 값진 것이 없지요. 인간들은 사랑을 빙자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나 그러한 사랑이 아니라 진정 상대방을 위하는 사랑이 하늘의 사랑이지요. It is love. What forms the basis the most in waves of the Universe is love.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than love. People try to fulfil their desire in the name of love, it is not such type of love but the love that truly in favour of others is the love of Heaven.     인간들이 스스로 진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인간은 사랑으로서만이 진정 진화의 파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요. 사랑으로 세상을 보면 ‘하늘의 파장’ 달리 말하면 인간의 상태로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우주의 마음을 알게 되지요. 부활이나 평등은 사랑을 펴는 방법이지요. The easiest way for humans to evolve is very love. I thought human could truly receive the wave of evolution by love only. One will know “the wave of Heaven”, the mind of the Universe when one looks at the world with love, in other words, “the mind of mother” in the state of human. Resurrection or equality are the means to spread the love.       실제로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샘플로라도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면 후에 자연히 하느님의 나라가 만들어 지는 것으로 생각하셨는지요? 아니면 사후에 천상 천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셨는지요?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죽어서 천당 가자는 목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How do you think a Savior should save the world specifically? Was it your goal to build the kingdom of God actually as an example on Earth, or did you think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about naturally if the minds of people of the world changed by delivering the words of God? Or was it your goal to construct the kingdom of Heaven in Heaven after we die? What do you think of goal to enter heavenly kingdom after death which Christian mention?     구세주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지역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나 말씀은 기록하여 전파하면 보여주지 않아도 되므로 범위가 상당히 넓어집니다. I think the Savior should save the world through the word. Showing by action has the obvious limitation within districts, but if it is the word, the range becomes considerably wider because it doesn’t need to be illustrated once it has been recorded and propagated.     샘플로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제가 깨달은 하늘의 뜻을 전파하다 보면 그 뜻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 즉 하늘의 뜻대로 운영되는 나라가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I didn’t think about building up the kingdom of Heaven as an example, however I thought one day the kingdom of God in other words a country governed by Heaven’s will would come into existence at some time if I propagated the mean of Heaven which I was enlightened about and as it would passed onto many other people.     저의 말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뜻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한 개인의 힘, 즉 일방적인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It will not be like the minds of people in the world change due to my word and become the kingdom of God. It is because the will against the will of God always will be existed in this world. The kingdom of Heaven will be difficult by a person’s power that is one side power no matter how great the person is.     우주는 항상 균형을 잡고자 하는 힘이 존재하므로 그 힘에 의해 반대의 힘이 발생됩니다. 따라서 극선이 존재하면 극악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인 것입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려 하면 그렇지 않은 힘도 영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존재이유를 더욱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The power which try to control the balance always exists in the Universe, therefore the counter power are generating by such power. Thus it is the law of this world that if there is the extreme good then the extreme evil will also come into existence. If I try to lead many people to Heaven, then the power against it will also displays its influence. This brings to the fore the existent reason of religion but it will also function which is not to.     인간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몸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육신이란 그것 자체로서 고난도의 공부를 시키는 면이 있으며, 갖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후에는 육신을 벗어나므로 생전에 비해 간단하게 천국, 즉 우주의 경지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변하면 (비워지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은 맞으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Even though human want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while they are on Earth, it is difficult in many cases in reality because they have a body. Physical body itself has an aspect to give a study of ordeal and it can’t be free from frequent temptation. Therefore Heaven, that is the state of the Universe, can be easily understand after death because one is moved from physical body comparing to while one is alive. It is right that human can go to the heavenly kingdom once one’s mind is changes (empty) but that is not easy task.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의 나는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신 것인지요, 아니면 ‘나=본성’을 말씀하신 것인지요? 성서의 70여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人子’라는 말과’나’라는 말은 어떤 관계인지요? From the word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And who follow me will….’, is I indicating you as Jesus or are you saying I=Original Nature? What relationship are there between the words ‘the Son of man” which is used in 70 occasions in the Bible and the word ‘I’?     여기에서 ‘나’는 우주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을 전달하는 제가 대표성을 지니는 것이지요. 우주란 그 실체를 쉽게 보여줄 수 없으므로 그 실체를 알고 느끼고 전달하는 제가 우주임을 표현한 것이지요. 인자라는 말도 역시 동일한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사용한 말 중에 나라는 표현은 문장 내에서 사용하기에 따라 인간 예수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하늘이나 우주를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I” means the Original Nature of the Universe in here. I have the representative who conveys this Original Nature. The Universe can’t show its essence easily, I expressed that I am the Universe because I am the one who know, feel and deliver that essence. The expression “the Son of Man” has the same meaning. The expression “I” of all the expressions used in the Bible can be indicated to “Jesus” as a person or it can be indicated to Heaven or the Universe.   예수인터뷰중에서 문화영 In the book “Interview with Jesus” Suroso Mun  
53    노이로제를 명상으로 다스린다 댓글:  조회:2362  추천:0  2013-08-29
노이로제를 명상으로 다스린다   남보다 신경질이 많고 두통을 자주 호소하거나 불면증이 심한 사람 약간 지저분한 것만 봐도 못 참고 신경질을 내는 사람 심신을 긴장시키지 않는 무기력한 성격의 소유자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고 몸의 긴장을 풀지 않고 유연성마저 결핍된 망상적 성격을 가진 사람 명예욕이 강하여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보이려고 하는 사람 공상이 많아 비현실적 상상을 많이 하고 성격이 신경질적인 사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을 가진 사람 무엇인가 불안해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불결하게 생각하는 성격의 소유자 등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대개 노이로제에 걸리기 쉽습니다. 노이로제는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무서운 병에는 틀림이 없답니다.   과로한 사람이 심신의 피로에서 오는 신경쇠약이 있는가 하면, 어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오는 불안감 이러한 것들이 노이로제입니다.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자기를 실력 이상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히스테리형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신경질적인 사람이 때때로 일으키는 시비나 발작도 형태가 다른 불만의 표현으로, 이도 노이로제의 한 형태입니다.   노이로제가 있는 사람은 집을 나설 때는 열쇠로 분명히 문을 잠가 놓고도 혹시나 하면서 몇 번이나 확인하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잘 될까 늘 불안해하거나, 지금 자신이 타고 가는 기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지나 않을까 불안해하거나 무서워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노이로제 환자들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이로제나 정신 상태의 이상에는 명상이 아주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깊은 호흡으로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죠.   얕은 호흡은 하지 마십시오. 대개 불안 상태에는 얕은 호흡이 많고 초조감을 느낄 때는 가슴에 힘을 넣고 차츰차츰 호흡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얕은 호흡은 폐의 가스 교환을 방해할 뿐 아니라 혈액 순환 자체를 나쁘게 합니다. 호흡을 중단하게 되면 뇌압이 올라가기 때문에 뇌 순환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이처럼 호흡이 얕은 데서 신경의 병이 생기게 되는데, 쉽게 표현하면 발전기가 고장이 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발전기의 원동력을 아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운영을 활발하게 해주는 호흡에 대한 노력 역시 아껴서는 안 됩니다.   노이로제 같은 신경 증세를 어떻게 하든지 간에 고치려고 한다면 맨 먼저 명상을 실천하면 좋습니다.   꾸준히 노력해야만 지금 앓고 있는 그 질병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명상은 제대로만 한다면 절대 부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효과가 나죠.   성질이 아주 급한 사람도 이 내쉬는 호흡을 천천히, 서서히 자꾸 연습함으로써 어느새 성격까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여유라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항상 기쁨으로 생활하십시오. 즐겁게 생활하면 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즐거움이란 그 자체가 힘입니다. 다른 잡념이 덜어졌을 때 의식이 한 곳으로 모이며, 의식이 모이고 난 후 통일이 되면서 “파워”가 형성되는 것이고, 적당히 파워가 형성 되었을 때가 가장 즐거운 것입니다.   건강은 어떤 것에도 우선하는 가치입니다. 건강이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전부이기도 합니다.   그럼 건강한 하루 바로 우리 손에 달렸음을 명심하시면서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를......    
52    착한 마음 댓글:  조회:2106  추천:1  2013-08-28
착한 마음 Kindness ‘법 없어도 산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죄 짓는 사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너무 편협한 겁니다. 이쪽 저쪽을 다 보면서 ‘아, 저래서 살인을 했구나.  저래서 야반도주를 했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면들을 인간이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어야 됩니다.  Some people say, “I live without any laws. I am righteous,”  But these types absolutely can’t understand why others commit faults.  This is too biased also. After looking in this direction and in that direction you’ll see,  “Oh, so that’s why he committed suicide. Ah, that’s why she ran away.”  Because we all carry these aspects, we must understand them.  착하게만 살아온 분들은 자기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어떤 사람하고 잘 지내다가도 어떤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들면 등을 돌리고  상대 못하겠다고 그럽니다.  If those who live life only kindly try to break out of their standard of view,  for the life of them, they can’t understand others and get hurt emotionally.  Even if they’re friendly with someone, if there’s but one thing they dislike,  they’ll turn away and refuse to meet that person.  흔히 죄 안 짓고 법에 저촉되지 않게 사는 것을 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They think “living kindly” means merely not committing any faults.  This is not necessarily so.  Kindness means understanding a situation and accepting it.  ‘착함’의 기준을 ‘무심’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악한 사람도 끌어안을 수 있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착하다는 것은 마음이 열렸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걸림이 없이 받아들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It’s seems appropriate to say  that the standard by which to judge ‘kindness’ is mushim, or No Mind.  Mushim means to understand everyone and to help pull along even bad people.  That is, kindness is another expression for having an open mind,  and means being able to accept everything without mental agony.  뭐든지 일단 마음속에 담아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액면 그대로 듣지를 않고 ‘두고 보자’하고 뭔가 벼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못된 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는 것이 착한 사람들입니다.  There are those people who store things inside their heart, no matter what is said.  They don’t listen to things at face value and secretly say,  “I’ll get you later,” and contemplate some kind of future action.  Everyone has this kind of aspect.  Being without this is a ‘kind’ person.  전에 어던 여학생이 여기 왔었는데 어릴 때부터 오빠가 자기를 때렸답니다.  그런데 그냥 맞았답니다. 때리니까 도망을 가기도 하고 왜 때리느냐고는 하지만 그냥 맞아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맞는 순간에 이미 상대방이 자기를 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The other day a female student came by and said her father used to hit her  when she was young. However, she just let it happen.  Suffering, she could have run away or yelled “Why are you hitting me?”  but she just let it happen. She could already understand that it was a situation  where there was no way but to be hit.  그런 마음이 착한 것입니다.  맞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유를 압니다.  뻔히 알면서 오히려 더 대항하는 것은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This mind is one of kindness.  She instinctively knows the reason why he hits her.  Clearly understanding but antagonizing him is not one of kindness.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도 설사 자신을 해치는 일일지라도  그 순간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착한 마음’이고, 열린 마음입니다.  This is what we call ‘opening your mind.’  Understanding someone at that moment,  no matter what they say or what they do,  even if they try to injure you, is a ‘kind mind’ or the state of an open mind.  그렇게 받아들여 버릇하면 오해를 하지 않아서 마음에 접어두는 면이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곧 후회하고 사과합니다.  그렇지 않고 대립하면 싸움이 오래 갑니다.  If you make the habit of accepting in this way,  you won’t make misunderstandings  and won’t find yourself with any conflicts weighting on your mind.  Then the other person too will regret and apologize.  Without this mind, your quarrels will last a long time.
51    우주의 심정 댓글:  조회:2403  추천:1  2013-08-23
우주의 심정 The Statue of Universe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상태는 타인의 입장,  내 입장 이렇게 상반된 입장이 아니라 하늘에서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우주의 심정이 되면 ‘좋고 나쁘고’ 가 없습니다.  그러면 공정하게 양쪽을 다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If we move on from here, ultimately the direction we have to go in  is not holding opposing opinions “my view, your view”  but looking from the view of heaven.  If you come to see from the universe’s emotional level, that is,  where there’s “no good, no evil” then you can see everything from both sides.  저 사람은 저게 옳은 거고 나는 이게 옳은 것입니다.  저 사람이 옳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그르기 때문에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내 방식과 다르므로 나는 그렇게 안 할 뿐입니다.  That’s right for that person, and this is right for me.  As that’s right for him, just accept it, and as it’s not right for you,  there’s no reason to be in opposition to him.  It’s simply your way of thinking is different,  so you don’t act or think in that way.  마치 바다와 같은 마음입니다.  강물은 물줄기가 있고 계보가 있습니다.  한강이라고 하면 그 부류의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고  다른 물줄기 예를 들면 낙동강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그 부류끼리 서로 통합니다.  한강하고는 어쩐지 수온도 다르고 이질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여서 삽니다.  It’s exactly the same mind as the sea.  A river has a small stream and a root line.  For example, the Han River the division connects  with other rivers but the Nakdong River, for example,  that division connects only within the same division.  However, as its temperature is different from the Han River, it’s separate.  그런데 그것이 흘러 흘러 바다까지 가면 한강에서 흘러왔는지  낙동강에서 흘러왔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없어집니다.  다 같이 바닷물이므로 시원을 따지지 않습니다.  However, once the water flows meet at the sea,  they are not broken down into which water came from the Nakdong and  which water from the Han. The distinction you and I disappears.  They are sea water and are not further classified.  바닷물은 다 받아들입니다.  너는 공장폐수니까 싫다. 너는 한강물이라서 싫다.  난 낙동강물만 받겠다. 이런 편견이 없어집니다.  맑은 물이든 흐린 물이든 바다까지 흘러 들어온 인연을 높이 사는 겁니다.  Sea water accepts everything. Your factory waster, I hate you!  Your Han river, I hate you! I will only receive Nakdong river water!  This kind of prejudice disappears.  Whether it’s pure water or polluted water,  they all have a high karmic relationship to reach the sea. 물줄기 하나가 어찌 어찌해서 참 어려운 과정을 거쳐,  땅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고 아예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  끊임없이 힘을 내서 물줄기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끝내 바다까지 흘러온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다 받아들입니다.  The stream goes through a tremendously difficult journey and  may remain buried in the earth or may disappear without a trace.  But if it pushes on constantly it turns into a stream, into a river  and if it thinks importantly about its karma it will reach the sea.  All are welcomed without distinction.  끊임없이 폭풍이라든가 해일이라든가 파도를 통해서 자체 정화작용을 하면서  바다는 누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바로 우주의 상태이고 마음이 열린 상태입니다.  If through sea waves it purifies itself endlessly, whether is a storm or a tidal wave,  the sea doesn’t discriminate. This is exactly the state of the universe  and state of an open heart.  네가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이해는 하되 “싫다, 좋다” 분별이 있다면  “나의 상태가 아직 바다의 경지는 아니구나”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뭐 아쉬워할 것도 없고 싫은데도 좋은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하되,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지요.  When you look at others, just come to understand them  but if you still divide things into “that’s good, that’s bad”, then simply tell yourself:  “I’m not yet at the stage of the sea.” If that’s the case, don’t be ashamed.  There’s no reason to pretend you like something when you really dislike it.  Be honest. But you have to try your best.  “계속하다 보면 끝내는 바다까지 가겠구나”하면서 그 단계를 인정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음이 열렸다”하는 상태입니다.  Say to yourself, “If I keep trying, I will finally reach to the sea.”  Accept the place you’re at now and then try to reach to the point  where you can say, “I’ve now opened my mind to others.” 
50    다른 세계가 있다. 댓글:  조회:2629  추천:1  2013-08-21
다른 세계가 있다.  Another world also exists. 마음을 어떻게 여는가?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방법을 말씀 드립니다.  How can we open our mind?  I’ll tell you a method where it’s possible to realize it in your daily life.  첫째는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겁니다. 타인을 볼 때나 사물을 볼 때 나의 지식이나 철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으로 보는 것입니다.  First, learn to view things form other’s perspective.  When you look at other’s situations or a certain thing,  don’t view it from the view of your knowledge or the view of philosophy,  but from the other’s viewpoint.  우리는 그 동안 받아온 교육이라든지 종교나 철학에 의해서 많이 채워진 상태입니다.  그런 주의나 이론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개념을 자꾸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덧붙여 주고 편견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무장해제시켜야 합니다.  We all act according to the religion, philosophy or education  on which we have been raised.  These kinds of advice or theories don’t treat people freely.  The more you place in a view of thinking the more you add to it a bias.  You have to peel off from this.  하늘은 음과 양, 선과 악, 밝음과 어두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천둥벼락이 몰아치다가도 따뜻한 햇살을 주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런 양면성이 매일 되풀이됩니다.  Everything is in heaven; yin and yang, good and evil, and brightness and darkness.  Heaven may send down towering thunder one moment  but will send down warm sunny rays the next.  Reflecting its duality, it repeats both sides each day.  낮에는 밤이 오리라는 생각을 못합니다.  그런데 1`2시간도 못 돼서 밤이 옵니다.  한여름에는 더위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데,  조금만 지나면 벌써 찬바람이 붑니다.  그럼으로써 내가 아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In the afternoon, you can’t think about night.  But in less than twelve hours, night comes.  In summer, the heat feels as if it’ll last forever but in no time,  a cool wind is blowing already.  Therefore, you realize that the world you know is not all;  another world also exists.  타인의 입장을 알게 되고, 나와 다른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해를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성격이 왜 저럴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그 입장에 서보면  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If you get to know other’s way of view and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from you,  you come to understand others. Why is she like that? Why is her personality like that?  If you come to see form the viewpoint of the person  you completely could not understand, you absolutely see the reason  why it was evitable she would act that way.  Reasons exists.  자라온 환경이나 부모님, 주변 여건의 영향으로 성격이나 개성이 형성되어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내가 만일 그 입장에 있더라도 나도 똑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ach has his own individualism based on his personality,  the environment he grew up in and parents.  That’s why there’s no other reason but for him to be that way.  If I had the same background, there would be no way but to act similarly.  상대방의 생각이 마음에 안 들지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정도만 돼도 상당히 많이 열렸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Even if you don’t agree with other’s thinking, at least accept it:  “Oh, so that’s why!” just understanding another up to a certain point,  you can say you’ve opened up your mind considerably to others. 
49    자전거 댓글:  조회:1322  추천:0  2013-08-19
자전거   어느 이름 없는 마을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소년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말도 별로 없구요. 소년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장난감이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는 조립하고, 분해하는데 더욱 흥미를 느꼈습니다. 장난감이 시들해지자 흥미는 기계로 옮겨갔습니다. 시계를 뜯어 보기도 하고, 선풍기, 텔레비젼을 뜯어서 가끔 고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항상 방에만 틀어박혀서 뭔가를 하고 있었죠. 소년의 부모님은 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밖에서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집에만 있는 것을 좋아하니, 참 걱정이예요." "그러게 말이오. 몸도 허약한데... 부모님은 의논 끝에 소년에게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마지못해 자전거를 배우기는 했으나, 숙달이 될수록 자전거는 소년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하였습니다. 산들 바람을 맞으며 마을 길을 달리는 상쾌함은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열어주었습니다. 온몸을 감싸고 도는 시원한 바람. 휘리릭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들. 방안에만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넓은 바깥 세상…. 소년은 자전거에 열중했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속에 소년은 어느덧 건강한 청년이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청년의 마음속에는 뭔지 모를 허전함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처럼 달리는 것은 그리 만족스럽지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더 빨리 달리고 싶었고, 그래야 더욱 후련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헌 자전거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한번 자전거를 고쳐보자." 청년은 자전거의 구조를 연구하고, 개량을 했습니다. 조금씩 속도가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에게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었지요. 이젠 경제적으로 자립할 나이도 되었기에,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맞아! 자전거를 만드는 일을 하는 거야. 나의 일로써 전념할 수 있으니 더욱 빠른 자전거를 만들 수 있겠지." 충분한 연구와 경험을 거쳤으므로, 그는 능숙하게 자전거를 만들어냈습니다. 새로운 자전거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제법 팔려나갔습니다. 청년은 흥이 나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요? 몇 달이 지나자 손님이 적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자전거를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연구를 하느라고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 이상 어떻게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피로와 절망 속에 그는 지쳐갔습니다. 이제는 자전거를 타는 일 조차도 그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화려하진 않으나 단아한 옷차림에 기품이 느껴지는 할머니였습니다. 입가에 띈 미소는 뭔지 모를 신비한 느낌까지 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별다른 흥정 없이 자전거를 사가지고 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청년은 잠시 그 미소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늘상 그렇듯이 자전거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어제의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안장을 좀 낮추어 줄 수 있소? "네, 물론입니다." 청년이 수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옆에 앉아서 한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머니의 말투가 꼭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것 같아 우습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고 일을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 다음날, 할머니가 또 찾아왔습니다. 항상 미소를 띈 얼굴입니다. "이 핸들을 뒤로 좀 당겨주구려." "예, 알겠습니다." 수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다 고쳤습니다." "수고했어요." 그 다음날 또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좀 이렇게" 역시 수리하는 동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필요한 부분을 한번에 얘기를 하면 좋을 텐데, 날마다 한가지씩 요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12일이 지나고, 청년은 마침내 화가 났습니다. "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자꾸 번거롭게 하시는 이유가 뭐죠?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진정하게. 일부러 자네를 귀찮게 할 생각은 없어. 나는 단지 젊은이가 좋은 자전거를 만들기를 원할 뿐이야……" 할머니는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는 자전거를 크고 튼튼하게 잘 만들지만, 이 늙은이는 그걸 타기에는 좀 벅차네. 그래서 일일이 나에게 맞는 구조를 요구한 것이지. 한가지를 부탁했을 때 스스로 전체를 고쳐주길 바랬지만, 12일이 지나도록 알아차리질 못하더군……" 할머니가 가신 후 청년은 할머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왜 할머니는 그 말씀을 나중에야 하셨을까? 의문이 풀리질 않았습니다. '왜 하루에 한가지씩 수리를 시키셨을까? 작업을 하면서도 내내 의문이 머리에서 떠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년은 어느날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전거의 수리해야 할 부분이 그 주인들의 특징에 따라 공통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브레이크가 자주 고장이 났습니다. 느긋한 사람들은 브레이크가 많이 느슨해져 있고, 수리비의 지불도 잊어버리고 갈 정도로 덤벙대는 사람들은 자주 넘어뜨려 핸들이…. 몸이 무거운 사람들은 바퀴가…. '재미있군.' 청년은 자전거와 주인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전거에만 몰려있던 관심이, 자전거와 함께하는 주인들에게 옮겨가면서 그들의 감정과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모두 자신과 가족을 위해, 또는 그밖의 것들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인 것이었습니다. 청년의 가슴에는 따스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주문한 손님에게 맞는 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급한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브레이크를 더욱 튼튼하게….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는 안장을 낮게…. 주부들에게는 장바구니를 앞에 달아주었고, 아이들에게는 보조 바퀴를 붙여주었습니다.   청년의 묵묵한 배려는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튼튼하고 편안한 맞춤 자전거는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또르륵 구슬땀이 흐르고, 청년의 가슴은 점점 따뜻해져 갔습니다. '온누리 자전거' 커다란 간판을 달게 되었지요. 이윽고, 그는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직접 타던 것 이상으로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타는 기쁨은 그것뿐이지만, 다른 사람이 타는 기쁨은 수십명, 수백명 계속 늘어갈수록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충만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이 아이를 키울 무렵, 이웃 마을에서 소문을 들은 젊은이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저도 자전거를 무척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잘 만들수 있을까요? 이제는 주름이 잡힌 손으로 자전거를 고치던 그는 고개를 들어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어서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그는 청년을 돌아보았습니다. 깊고 투명한 눈빛이었습니다 "자전거만큼 그 주인에게 관심을 가져보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것은 자네가 알아내야 할걸세. 인생의 해답은 직접 풀어낸 자만의 것이기 때문이지…." 다정한 눈으로 젊은이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엔 예전 그 할머니의 미소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48    행복을 방해하는 적은 무엇입니까? 댓글:  조회:2914  추천:0  2013-08-19
  행복을 방해하는 적은 무엇입니까?   그 무엇도 나의 행복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 의해’ ‘무엇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세요. 행복을 방해하는 유일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자신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온전히 비울 때 비로소 사랑을 담을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쉽게는 욕심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에서 집착이 나오고, 집착에서 갈등이 나오게 됩니다. 더 나아가 비운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야구선수가 공을 칠 때 미리부터 배트에 힘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타격의 순간에 폭발시키죠. 마찬가지로 평소에 이런저런 생각을 그득 담아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득 차 있으면 사랑도 지혜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나’가 없는 상태에서, 그 영혼이 성장하기를 빌어주는 마음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하게 되면‘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상태가 됩니다. 그 자리에 내가 없어도 되는 것이죠. 진정한 사랑은 뜨거운 것이 아니라 포근하고 따뜻하며 은근한 것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해주다가 어느 날, ‘아,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게 사랑입니다.   스트레스를 행복하게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컵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나”보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로 바꾸는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분노는 이해와 용서로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면 용서가 뒤따릅니다. 만일 휴일조차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합시다. 이럴 때는 문제를 간단히 놓고 보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회사를 옮겨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현실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계속 불만이 쌓인 채로 일을 하다 보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해결할 수 없다면 포기해야 합니다. 주말이 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나에게 주말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가끔씩 주어지는 휴일이 오히려 고마울 것입니다. 불만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으면 불만도, 갈등도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지는 작은 기쁨을 감사함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꿈이 없는 인생, 꿈이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습니까?   목표를 상실한 이유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 열정과 희망이 샘솟습니다. 명상을 통해 점점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좌절할 틈도 없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있으니, ‘내 영혼의 성숙’에 기준을 둔다면 이 또한 기쁜 일입니다. ‘기쁜 기쁨’과 ‘슬픈 기쁨’을 누리는 방법을 터득하기 바랍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변수는 정성과 감사입니다. 정성은 끊임없는 노력이며, 감사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변수는 정성과 감사입니다. 정성은 끊임없는 노력이며, 감사는 환경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우연히 시작한 ‘호흡과 명상’ 속에서 영원의 가치를 발견하여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명상에 정진한 이로 부터
47    마음이 열리면 댓글:  조회:1931  추천:0  2013-08-14
마음이 열리면 When the Mind Opens 마음이 열린다는 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우주의 입장이 되어 걸림이 없이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어떤 것도 걸리지 않고 통과해 나갑니다.  Having an open mind means being able to 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  and also being able to see things from the viewpoint of the Universe.  It means accepting everything without having hang-ups.  It’s not that you don’t have any hang-ups because you have your own ideas,  but that you have understanding.  As you can see their point of view and can naturally understand  the inevitability of what they do, -no matter what- everything proceeds  without any hang-ups.  마음이 닫혀 있으면 폐쇄적입니다.  막힌 길처럼 어디까지 밖에 못 들어옵니다.  마음이 열리면 일단 수용해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필요 없는 건 그냥 스쳐 나갑니다.  If the mind locks its doors, one becomes intolerant.  Only to a certain degree can something come in, as if the mind is like a blacked road.  If your mind is open, you take in everything at once and you accept the things  that you need to accept and let unnecessary matters float by.  상대방이 화를 내면 화낼 만한 그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당연히 화낼 만하다’ 이렇게 됩니다.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오히려 그 사람한테 베풀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If you come to understand things form another’s viewpoint,  when he gets angry, you can see how that situation could produce anger.  You say, “It’s natural that he would be angry.”  Thus, you form an understanding mind and you become generous to others.  If that’s the case, there will be no one you cannot deal with.  이해하게 되니까 걸리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도와줄 부분이 없는지 살피게 됩니다.  As you come to understand people, there’s nothing to get hung up on your mind.  Rather, you will be looking for a way to help them. 
46    세상에 바라는 바 없으니 댓글:  조회:1954  추천:0  2013-08-10
세상에 바라는 바 없으니 Have Nothing to Desire in the World 갈등의 요인은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내가 강하게 서있으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그렇지 않으면 산들바람만 불어도 크게 흔들립니다.  The primary factor of conflicts lies in the fact that all problems come from you.  If “I” am able to stand firmly on my two feet,  I won’t be affected by the wind around me.  If I cannot, even the slightest breeze can knock me down.  뿌리까지 뽑혀질 정도로 많이 흔들린다면 ‘내가 뿌리가 굳건하지 않고 부실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나는 온전하고 괜찮은데 주변에서 나를 못살게 군다거나 누가 못마땅하다는 둥  자꾸 눈을 밖으로 돌리는데, 항상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If you’ve disturbed to your roots by the wind you should realize;  “My foundation is delicate and is not so solid.”  You might think, “I’m okay and have no problem,  but others get into my life and cause problems and I can’t stand them,”  while turning your eyes outside yourself.  Just bear in mind that the source of the problem lies with you.  주변 사람이 못마땅하다고 느껴질 때는 내가 나 자신에게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마땅치 않기 때문에 계속 타인에게 눈을 돌려서 마땅치가 않은 겁니다.  맘에 안 들고 못마땅하고 이런 것은 근본적으로 캐어 들어가면  내가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When you feel dissatisfied with others, it’s because you are dissatisfied with yourself.  Think that way. Because you are not satisfied with yourself,  you constantly turn your attention to others and you feel dissatisfied with them.  Fundamentally speaking, whether you like it or not,  it’s all because you are actually not satisfied with youself.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남에게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기대하는 바가 없으면 불만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은 법입니다.  그런데 기대하는 만큼 실망이 다시 돌아옵니다.  Those who are satisfied with themselves expect nothing from others.  Without expectation, there’s no discontent.  When you don’t fulfill yourself, you are meant to expect a lot from others.  However, the greater the expectation is, the greater the disappointment.  항상 자기는 자기가 만족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남이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In any situation, one should be fulfilled by oneself.  Don’t expect to get filled up by others.  자급자족하는 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고 타인에게서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는 상태,  그런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입니다.  Humanity’s basic trut is self-sufficiency; Desire nothing from the world.  Desire nothing from anyone.  That’s the way we need to direct ourselves.  타인에게 아직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다고 보시면 됩니다.  If you find you are still seeking from others,  just realize you’re not yet standing firmly on you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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