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조글로블로그
http://www.zoglo.net/blog/sy10088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효도례절

전체 [ 10 ]

10    부모가 계시는 분들은 보시요. 댓글:  조회:2455  추천:0  2012-08-18
中國,新‘효도계명24’ 인민망 한국어판 - 새로운 미디어, 세계속의 차이나>>사회 2012-8-15 [] 명절과 휴일을 부모님과 보내기, 부모님께 직접 요리 만들어 드리기, 매주 부모님에게 전화하기 등등...... 13일, 전국부녀연합 산하 노인업무협조 판공실과 전국노인판공실 그리고 전국 ‘마음 나누기’ 조직위원회는 새로운 ‘효도계명 24’를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우위사오(吳玉韶) 전국노인판공실 부주임 겸 전국 ‘마음 나누기’ 조직위원회 부주임은 “신 ‘효도계명 24’는 이전 계명과 다른 점이 많다. 이는 시대가 끊임없이 변함에 따라 ‘효’ 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시대에 걸맞는 창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 新 ‘효도계명 24’ 1. 배우자와 자녀를 데리고 자주 부모님 찾아뵙기 2. 명절과 휴일을 부모님과 자주 보내기 3. 부모님을 위한 생신 축하연 마련하기 4. 부모님에게 직접 음식 만들어 드리기 5. 매주 부모님에게 전화하기 6. 부모님에게 용돈 넉넉히 드리기 7. 부모님에게 카드(교통카드, 전화카드 등) 만들어 드리기 8.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 경청하기 9. 부모님에게 인터넷하는 법 가르쳐 드리기 10. 자주 부모님 사진 찍어 드리기 11. 부모님에게 사랑 표현하기 12. 부모님의 마음 헤아리기 13. 부모님의 여가 활동 돕기 14. 혼자 사시는 부모님의 재혼 돕기 15. 정기적으로 부모님 건강검진 해드리기 16. 부모님에게 알맞은 보험 들어드리기 17. 부모님과 자주 마음 속 이야기 나누기 18. 부모님을 모시고 중요한 행사 참석하기 19. 부모님에게 자식이 다니는 직장 보여드리기 20.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혹은 전에 살던 곳 찾아가기 21. 부모님과 함께 운동하기 22. 부모님 일에 적당히 참여하기 23. 부모님을 모시고 옛 친구분 방문하기 24. 부모님과 옛날 영화 함께 보기 (魏銘言) 기자  
9    “百歲는 만들어 나가는 것…” 댓글:  조회:3108  추천:0  2012-08-16
“百歲는 만들어 나가는 것…” 醫學만의 문제는 아니죠…유전보다 환경 영향 크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 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   “100세까지 장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42세 직장인이다. 대학 때는 산에 오르며 몸을 다졌고 최근엔 마라톤과 맨손체조로 건강을 지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100세까지 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쌓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걱정이다. =스트레스가 없어야 장수하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백세인(百歲人)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한국전쟁때 눈앞에서 생자식이 죽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풀을 뜯으며 연명하기도 했다. 현대인처럼 직업적 스트레스는 덜 받았겠지만, 스트레스가 없던 것은 아니다.   =현대 직장인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백세인 할머니의 20%, 백세인 할아버지의 40%는 음주(飮酒)를 한다. 식사 전에 소주한 잔을 반주로 드시는 분이 많았다. 소량의 알콜은 위액 분비를 촉진한다. 하지만 과음하는 백세인은 거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최근 친구와 레스토랑을 열었다. 특히 여성들은 평생 직장을 구하기가 어렵다. 나이를 더 먹으면 새 일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 창업을 했다. 직장과 장수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요즘 직장은 평생 직장이 아니라 ‘반평생 직장’이다. 80세까지만 살아도 50세 때 은퇴하면 30년을 놀아야 한다. 80~90세까지 사는 요즘 40~50세는 젊은 나이다. 은퇴 후 몇 년 살다가 죽을 계획이 아니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 정년퇴임은 졸업식에 불과하다. 새로운 학교에 진학할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노인 입장에서 늙는다는 것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지만, 요즘 부모 말에 순종하는 자식은 흔하지 않다. 효(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백세인은 자식에게서 봉양받는 마지막 세대다. 구박하던 시어머니이지만 부모니까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며느리들이 많았다. 어느 100세 노인의 70대 며느리는 “100세된 시어머니를 모시는 나는 이담에 누가 돌보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 구조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효’라는 개념만으로 장수 노인을 모시기는 어렵다. 그리고 노인들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큰며느리가 모시면 장수한다는 말도 있는데. =지역에 따라 백세인을 돌보는 사람이 다르다. 경상도·전라도 지역은 주로 큰며느리가 모신다. 이곳 백세인들은 둘째아들이 이웃에 살아도 꼭 큰아들 집에서 산다. 이 때문에 시어머니를 64년 동안 모신 큰며느리도 있다. 그러나 강원도·제주도는 형제들이 돌아가며 똑같이 모신다. 이 지역 장수인들은 자식들의 대접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자기 일은 언제나 스스로 처리한다. 미래엔 자식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 게 장수의 비결이 될지도 모른다.   =백세 할머니는 많지만 백세 할아버지를 만나기는 힘들다. =남자는 직장이 있을 때까지만 삶의 주도권을 갖는다. 그러나 은퇴 후 경제권을 뺏기면 남성 노인들은 불쌍해진다. 경로당이나 노인대학은 80% 이상 할머니들이 점령하고 있다. 몇 안 되는 할아버지들은 구석자리 신세다. 그러나 남성 장수 인구가 많은 강원도의 할아버지들은 100세가 되도록 경제권을 놓지 않는다. 자식에게 대접받는 대신 자기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며 여전히 일한다. 딴 지역의 노인들은 환갑만 넘으면 광 열쇠, 인감 도장 등을 자식에게 넘기지 않는가?   =남자가 오래 사는 지역도 있나? =사하라 사막이나 중국 신강성처럼 환경이 거친 곳에 남성 장수 인구가 많다. 환경이 험할수록 남자들이 장수하는 것 같다. 이런 지역의 남성들은 늙어도 일을 한다. 또 술·담배를 안 하는 모르몬교 집단에서도 장수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70~80세가 되면 할머니들은 손자를 돌보는 등 할 일이 있지만, 할아버지들은 그렇지 않다. 결국 늙어서도 일하는 지역이 남성 장수 지역인 셈이다.   =부부 관계도 중요한 것 같다. 부부의 성격·취미가 비슷해야 장수하는 것 아닌가? =남자는 결혼을 해야 오래 살고 여자는 혼자 살아야 장수한다는 보고서도 있다(웃음).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가 종속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가까운 친구 같은 관계가 좋다. 장수 사회에선 100세나 80세나 그게 그거다. 친구일 따름이다. 나이나 성별을 앞세워 대접을 받으려면 곤란하다. 늙으면 남자도 부엌일을 해야 한다. 물 한 컵 정도는 자기가 떠먹어야 한다. 나도 쉰 살이 넘어서 부엌에 들어가려니 솔직히 어색하다. 그러나 이젠 생존전략이다(웃음).   =남편이 변해야 한다는 말인가? =남자는 나이를 먹으면 여성적이 되고 여자는 남성적이 된다. 따라서 여성은 그동안 억압받던 감정이나 욕구를 과감하게 분출할 때가 많다. 따라서 남편들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삐걱거리게 된다.   =장수 음식이란 존재하는가? =오키나와 식단, 지중해 식단 등이 유명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선·야채·과일·해조류가 풍성한 식단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세인의 조사 결과, 장수와 직결되는 특별한 음식은 발견하지 못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백세인들은 세 끼 식사의 양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킨다. 간식으로 빵을 먹으면 그만큼 다음 식사량을 줄인다. 식사 시간은 꼭 지킨다. 밥상이 5분이라도 늦게 나오면 난리가 난다. 움직이는 양만큼 비례해서 식사를 한다. 감자 세 개에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우는 백세인도 있다. “이렇게 많이 드시느냐”고 물으면 소식(小食)이라고 대답한다. 된장·간장·고추장 등 콩에서 발효된 식품이 몸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에 유전적·선천적 요인이 있는가? =30%쯤은 유전적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환경이 장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백세인 학술대회에서 여자 노인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아프리카에서 열대어를 수입할 땐 열대어의 천적을 어항에 넣는다고 한다. 열대어들이 적당히 긴장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오랜 여행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인생의 도전이자 자극이다. 스트레스를 삶의 한 부분으로 즐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성(性)관계와 장수 간에는 상관이 있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오래 산 왕일수록 부인과 자식도 많다. 성관계는 건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셈이다. 건강해야 성관계도 가능한 것 아닌가? 백세인 중에는 80대 중반까지 부부관계를 가진 사람도 흔하다. 문제는 노인들의 성을 ‘추하다, 주책이다’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다. 노인은 ‘화석(化石)’이 아니다. 강원도의 98세 할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부인과 ‘손만’ 잡고 주무신다고 했다. 그래야 오래 산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다.   =실버타운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노인 스스로 선뜻 가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데 있다고 무조건 좋은 실버타운이 아니다. 도심과 가까워서 가족들과 연계가 끊이지 않거나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외국 양로원은 도심에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외롭거나 쓸쓸한 곳은 좋지 않다.   =장수 시리즈를 마치면서 장수의 비결을 살짝 알려준다면? =100세 장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은퇴 후에는 돈 버는 것 말고, 봉사활동 등을 열심히 해야 한다. 무언가 쓸모있는 존재가 된다는 게 중요하다. 50대 이상에선 경제력보다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은 언제나 즐겁다. 엔돌핀이 샘솟아 노화를 늦추는 것 같다. 생명 현상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에 대통령을 했거나 미스터코리아였다는 사실은 장수에 의미가 없다. 현재 70세라도 100세까지는 30년이 남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결코 늦은 법은 없다.   ◆ 장수하려면 장수의 지혜를 배워라.   1. 무조건 소식(小食)하지 말고, 젊었을 때보다 적게 먹어라. 2.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양만 먹어라. 3. 튀긴 음식을 피하고, 짠 음식을 멀리하라. 4. 간염·당뇨병을 조심하라. 백세인은 간염·당뇨병이 없다. 5. 일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노는 사람보다 14년 길다. 6. 자식에게 의존하지 말라. 문제는 자신이다. 7. ‘바쁜 노인’은 치매가 없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대화하라. 8. 시계추처럼 살아라. 규칙적으로 기상·식사·노동·취침이 건강 비결이다. 9.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외로움은 장수의 적이다. 10. 등산은 장수운동이다. 중산간(中山間) 지역에 장수마을이 많다.
8    조선족의 인생과 례의 댓글:  조회:2664  추천:0  2012-07-17
朝鲜族人生与礼仪   一、朝鲜族是个讲究礼仪的民族,一个人从出生到死亡都有很多的礼节,从出生礼一直到丧祭礼。出生礼包括忌绳礼、抓周礼和冠礼、笄礼。   1、忌绳礼:朝鲜族家庭一旦有新生儿出生,就在门口或是房檐上系上一条草绳,如果生了男孩就在草绳上挂上辣椒,如果生了女孩就在草绳上挂上木炭和松枝松叶,这根草绳要挂二十一天的,也是通过二十一天的宁静生活让产妇和婴儿得到更好的休息,这也是朝鲜族特有的产俗,亚洲其他少数民族中是非常罕见的。   2、抓周礼:抓周礼是朝鲜族比较重视的孩子一周岁生日礼,生日这一天给孩子穿上华丽的民族服装,然后在他面前摆放抓周桌,孩子抓到什么说明长大后会成为一个怎样的人,比如抓到米和铜钱,说明长大会成为老实本分的人,抓到线和长命锁,说明长大后会成为一个老实本分的人等等,这也是父母对孩子未来的一种美好的期待。   3、冠礼和笄礼是朝鲜族的一种成人礼,一般在15-20周岁的时候举行,举行成人礼,就说明已经成人了,随着时代文明的变迁,成人礼逐渐被婚礼所代替。   二、朝鲜族的婚俗礼仪繁多,大体上有议婚、纳彩、纳币、迎亲等程序。议婚亦称会面,通过媒人商议婚事。纳彩,就是订婚,男方家和女方家相互交换书信或一些仪式,以确定婚姻关系。纳币,是指新郎家向新娘家送彩礼。迎亲就是结婚典礼。这分为新郎礼和新娘礼,前者包括奠雁礼、交拜礼、合卺礼、接大桌等,后者包括接大桌、舅姑礼等。   三、接大桌是朝鲜族特有的婚俗,是给新郎和新娘摆一个放有各种食品的长方形大桌,以表示祝贺的仪式。接大桌分为新郎礼桌和新娘礼桌,礼桌的摆设基本相同。喜案上最为醒目的是煮熟了的整鸡,鸡嘴上衔着通红的辣椒。这源于朝鲜族古时的鸟崇拜习俗,鸡为属阳的鸟,可驱邪,而且辣椒色红,也属阳,可辟邪,籽多隐喻着多子多孙。   四、家谱 朴氏家牒:1982年全国人口普查时发现,有一部分中国朝鲜族的祖先,早在明末清初即已定居在东北境内,比如辽宁省盖县朴家沟村,姓朴的朝鲜族,在当地定居已有300年的历史,还有这里展示的朴氏家谱是在吉林省舒兰县小城乡朴家屯收集过来的,这个朴氏家谱是民国初期,朴贵森的爷爷把朴家祖先八代姓名及亲属关系,亲自用毛笔抄录下来的,相传在清康熙年间,他们由沈阳附近的朴家堡衣带迁入到此地,并且开发了这一带,所以地名叫朴家屯,如今这个朴氏家谱是研究朝鲜族早期迁入历史,及朝鲜族迁入时间上限等方面成为了极其珍贵的资料。   朝鲜氏族统谱,也就是朝鲜族的姓氏谱书,它收录了朝鲜族姓氏517条,中国古代姓氏1078条,系统介绍了朝鲜族各姓氏的渊源及变化的过程。   五、传统教育和近代教育 朝鲜族历来重视教育,形成了一种崇尚知识,敬重师长的民族理念。"再穷不能穷教育,再苦不能苦孩子",这句话充分反映了朝鲜族的重教意识。朝鲜族不论在城镇还是在穷乡僻壤,都在住地就近办起各种形式的学校,宁可挨饿也要把孩子送入学校接受教育。 朝鲜族具有宁啃树皮,也不能让孩子没学上的光荣传统。在十九世纪中叶以前,朝鲜族冒禁迁入。因为生活贫困办不起学校,只能办一些简陋的私塾和学堂,对学童进行《朝鲜语文》《千字文》《四书五经》之类的封建伦理教育。 "千字文"是朝鲜族学习汉文的入门书籍,是书堂、私塾的汉文初级教材。 "明心宝鉴"也是书塾里用的教材,是朝鲜高丽末期的学者秋适所编,共收录了150多条古今名言、警句,这是一本规范人的行为道德的重要谱书。   六、民间信仰 朝鲜族的民间信仰,其历史久远,早在远古时期已形成敬畏"鬼神","万物有灵"的观念,产生出具有一定文化影响力的民间信仰习俗。朝鲜族的民间信仰种类繁多,主要有家神崇拜、部落崇拜、巫俗信仰等。   巫俗信仰 朝鲜族的巫俗信仰其历史悠久,起源于远古时期的辟邪祈福的祭祀活动。巫俗信仰,主要通过巫师的跳神方式来表现出来,反映出人们原本的欲望和要求。民间流行的巫俗形式有村落跳神、家内跳神、咒术、占卜等。   家神信仰 过去,人们认为家宅的里里外外都有神灵守候着,通过对神灵的敬仰和祭祀来祈求家庭幸福,子孙平安。在传统社会里,人们供奉祖先神、成造神(上梁神)、灶王等的家神的方式来祈愿家庭的平安。家庭主妇,恭敬家长,为家庭成员备好穿着和饮食。人们在家具刻上"寿福",也在衣服绣有象征"富贵"和"福"的蝴蝶或蝙蝠状的纹样来祈求平安。并且在制作糕或果类的模子上刻有"喜"字并且一代一代地传承下去,以祝愿家人的健康。 七、回甲是60岁老人的生日,其意为已经度过干支纪年的整整一个轮回,回婚礼是庆祝结婚60周年的仪礼。回甲举行的贺宴叫做"寿宴",意味着对长寿的祝贺。 "回甲"又称"花甲",是朝鲜族为六十岁的老人举办的生日宴席。因为按传统历法天干地支推算法,六十年看作是一个循环单元。因此,朝鲜族把六十周岁堪称是人生道路上的分水岭,人一过这个年龄就算长寿,颇为讲究。 这里展示的一对贺联,是池章会先生的母亲李太夫人过花甲时,由池先生的世交全秉熏先生书赠的,这幅贺联高度赞扬了李太夫人,勤勉持家,教子有方的高尚品格,也真诚的祝愿李太夫人健康长寿。   八、丧舆 丧舆,朝鲜族的运柩工具,又称"灵舆"。木制,状如大抬轿,出殡时置灵柩于架内。过去各村都设叫做"丧舆契"的民间组织,由参加这个组织的村民共同出资制作此具,共同使用,并在村里较偏避的地方建"丧舆房",指定专人妥善保存。   九、丧祭礼 朝鲜族自古以来,将孝道视为万行之首,非常重视丧礼和祭礼。丧礼主要包括临终、招魂、小敛、大敛、出殡、埋葬、立碑等程序进行。安葬时要请风水先生选择墓地,棺材放人墓穴时,在山坡墓穴里,头部朝山顶,而平地则头部朝北。 祭祀桌上食物的摆放顺序非常讲究,是按照红东白西,鱼冻肉细的顺序摆放的,而且是单数为吉祥的。   十、头发饰物 龙簪和玉簪是朝鲜族妇女参加比较重要的场合所戴的发簪。 分缝簪是朝鲜族妇女梳头时起到分缝作用的。   十一、朝鲜族对餐具非常讲究,每个人都有自己各自的餐具,是不混用的,铜制的餐具是朝鲜族比较富裕的家庭才有的。   十二、结婚典礼中包括交拜礼,交拜桌上摆着青松翠竹、枣、栗子,还有一对按照雄东雌西的顺序摆放的活鸡,鸡是朝鲜族的吉祥物,新郎要身穿官服,因为男子结婚也如科举及第一样是人生中的大事,所以结婚当天新郎是允许穿官服的。   结束语 经历过坎坷曲折的迁徙过程的朝鲜族,在长期的社会实践中,开创了富裕而文明的生活家园,向世人展示了朝鲜族特有的民族传统和民俗文化。在经济快速发展,社会高度进步的今天,200万朝鲜族人民,以辛勤的劳动建起更加宽广、和谐的生活家园,谱写美丽动人的生活篇章。  
7    소위의 道, 禮, 仁의 구체적 함의는 무엇인가? 댓글:  조회:3113  추천:1  2012-07-17
道、礼、仁的具体含义是什么?   道; 中国古代哲学的重要范畴。用以说明世界的本原、本体、规律或原理。在不同的哲学体系中,其涵义有所不同。     原始涵义  道的原始涵义指道路、坦途,以后逐渐发展为道理,用以表达事物的规律性。这一变化经历了相当长的历史过程。《易经》中有“复自道,何其咎”(《小畜》),“履道坦坦”(《履》),“反复其道,七日来复”(《复》),都为道路之义。《尚书·洪范》中说:“无有作好,遵王之道;无有作恶,遵王之路。无偏无党,王道荡荡;无党无偏,王道平平;无反无侧,王道正直”。这里的道,已经有正确的政令、规范和法度的意思,说明“道”的概念已向抽象化发展。春秋时,《左传》曾有“臣闻小之能敌大也,小道大淫。所谓道,忠于民而信于神也”和“王禄尽矣,盈而荡,天之道也”之说。这里的道带有规律性的意思,表明道的概念已逐步上升为哲学范畴。   老子论道  到了春秋后期,老子最先把道看作是宇宙的本原和普遍规律,成为道家的创始人。在老子以前,人们对生成万物的根源只推论到天,至于天还有没有根源,并没有触及到。到了老子,开始推求天的来源,提出了道。他认为,天地万物都由道而生。他说:“有物混成,先天地生,寂兮寥兮,独立而不改,周行而不殆,可以为天下母,吾不知其名,字之曰道,强为之名曰大,大曰逝,逝曰远,远曰反”(《老子》二十五章)。对于老子所说的道,历来解说不一。有的认为,道是精神性的本体,是脱离物质实体而独自存在的最高原理,主张老子的道论是客观唯心主义。有的则认为,道是宇宙处在原始状态中的混沌未分的统一体,主张老子的道论是唯物主义。老子认为道生成天地万物的过程是“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万物”(四十二章)。道生成万物之后,又作为天地万物存在的根据而蕴涵于天地万物自身之中,道是普遍存在的,无间不入,无所不包。道虽存在于天地万物之中,但它不同于可感觉的具体事物,它是视之不见、听之不闻、搏之不得的,是构成天地万物共同本质的东西。所以,不能靠感觉器官去体认,也难以用普通字词去表示,只能用比喻和描述来说明它的存在。对于世界的统一性,老子作了天才的推测和描述。老子的道论,对于后世有极其深远的影响。     道论的演变  略后于老子的范蠡,把天道看成是事物发展变化的规律。他认为,人事必须“因阴阳之恒,顺天地之常”,违反客观规律,必然招致灾祸。“夫人事必将与天地相参,然后乃可以成功”。他说的天道主要指阳至而阴,阴至而阳,盈缩转化,周旋无尽的矛盾运动法则。天时于己不利时要主动退避,天时对已有利时要积极进取。范蠡受老子道论的影响,说“天道盈而不溢,盛而不骄,劳而不矜其功”(《国语·越语下》)。但他主张适时积极进取,对老子贵柔守雌的思想又有所批判和修正。     战国时期,齐国稷下道家用“精气”来说明道,把虚而无形的道看作是流布于天地之间、遍存于万物内部的“精气”。说:“凡道,无根无茎,无叶无荣。万物以生,万物以成,命之曰道。……精也者,气之精者也。气道乃生”(《管子·内业》)。老子曾把道表述为“冲气”,并说“其中有精”。稷下道家从唯物的方面进一步发展了老子的这一思想,把道表述为无所不在而又富有生机活力的精气。精气说对后来中国医学的发展有很大影响。但它赋予精气以灵性,有神秘化的倾向,与唯心主义划不清界限。     庄子是战国中后期道家学派的代表人物。他认为道是世界的终极根源,是无所不覆、无所不载、自生自化、永恒存在的宇宙本体,否认有超越于道的任何主宰。他还认为不可能给道提出明确的规定,“道不当名”,“道昭而不道”,即使取名为道,也是“所假而行”。所以只能说“夫道,有情有信,无为无形;可传而不可受,可得而不可见;自本自根,未有天地,自古以固存,神鬼神帝,生天生地;在太极之先而不为高,在六极之下而不为深,先天地生而不为久,长于上古而不为老”(《大宗师》)。对于庄子的道,当前学术界有人认为是独立自存、超越时空的绝对精神,并以《庄子》书中“物物者非物”之语为根据,证明道是非物质性的造物主;也有人认为道是指具有无限性和永恒性的、产生了天地万物并存在于其中的物质本体,并以《庄子》书中“通天下一气”之语为根据,说明道就是物质性的气。大多数学者认为庄子夸大了世界本原的神秘性,并把事物的相对性绝对化了,否定事物之间的差别,表现为相对主义,他的道论具有明显的唯心主义倾问。     韩非汲取并发展了老子的朴素辩证法,提出了关于道、德、理三者互相关系的学说,辩证地处理了它们的关系。他认为,“道者,万物之始,……万物之源”,是“万物之所然”、“万物之所以成”。把道视为物质世界的普遍规律,天地万物存在与发展的总依据。他还认为,“道”是终极范畴,是万物的普遍规律,而万物的特殊本质就是“德”,“德者,道之功”;万物的特殊规律就是“理”,道是“万物之所稽”,“万物各异理而道尽稽万物之理”。把道、德、理的关系视为物质世界的普遍性与特殊性、无限性与有限性的辩证统一。       战国时期儒家学者所著《易传》也提出关于道的学说,认为道就是对立面相互转化的普遍规律。《周易·系辞上》说“一阴一阳之谓道”,把一阴一阳相互转化视为道。又说:“形而上者谓之道,形而下者谓之器”,把道视为无形的抽象规律,与有形的具体事物区别开来。     到宋代,张载以道为气化的过程,说“由气化,有道之名”;程颐、朱熹则以道为理,表现了气本论与理本论的不同。     在中国哲学史上,道这一范畴是道家提出的,后被各家学说所接受,虽各有不同理解,但已成为宇宙本原、普遍规律性的代名词。它对于提高理论思维水平,探究事物的本原和规律性,曾起促进作用。     礼; 礼是什么?或曰礼是一种道德伦理规范,或曰典章制度,或曰自然法,或曰宗教,或曰民仪,……其实,正如有学者说的,礼什么都是,又什么都不是,礼就是礼。确实,礼是一个很复杂的文化现象,它包含了很多社会生活内容,又不完全是其中的某一种。     许多学者都试图对礼作出解释或下一个确切的定义。李安宅先生在《礼理的社会研究》中认为。礼等于文化,包括民风、民仪、制度、仪式、政令。外国学者埃德蒙利奇先生认为,礼是存在于社会地位转变的时间界线的标志,意味着一种神圣和禁忌;礼是文化的一种,是抽象观点的物质表现,神和精神的外在化;礼表现为一种等级秩序,是一种过渡的仪式;礼是一种献祭的逻辑,使捐献者在人的世界和神的世界之间架起一座桥梁。笔者认为他所说的都是仪式上、操作上的礼,即狭义礼、典礼。陈戍国先生在《先秦礼制研究》中对礼作了比较详尽和精到的阐述。他在文中援引其师沈先生的论述道:“在古代,‘礼’字本有广狭二义:就广义说,凡政教刑法,朝章国典,一概称之礼;狭义说,则专指当时各级贵族(太子、诸侯、卿、大夫、士)经常举行的祀享、丧葬、朝觐、军旅、冠昏诸方面的典礼。”沈师的定义是:“礼是现实生活的缘饰化。”关于这个定义,陈先生提供了一些来历:“凡礼:事生,饰欢也;送死,饰哀也;祭祀,饰敬也;师旅,饰威也。是百王之所同,古今之所一也。”(荀子《礼论》)“君子礼以饰情。”(《礼记·曾子问》),孔疏云:“凡行吉凶之礼,必使外内相副,用外之物以饰内情。”孙希旦《礼记集解》云:“饰犹表也,有是情而后以礼表之,故曰礼以饰情。”姜伯勤教授新近也下了个定义云:“礼是一种规范性的行为,理性化的情感,表达了一种秩序,这种秩序是一定时代和一定阶级社会生活的外在化,受民族共同心理的制约。”     其实古人对于礼的看法就很不一致,但礼作为人与禽兽根本区别的标志这一点是基本一致的。《礼记》有云:“凡人之所以为人者,礼义也。”“无别无义,禽兽之道也。”礼是人的标志、文明的标志。礼是一种人性、伦理、情感化的东西,它要求人们有理有义。这种要求对于维持统治秩序是非常有利的。于是统治阶级制订一套礼制,作为规范化的言行以约束士大夫。它与法律的不同在于它的感情因素,它是通过一种文明教化的力量约束士大夫,以代替法律那种通过野蛮强制的力量约束老百姓的手段。但问题远非如此简单。正因为礼是一种人性、伦理、情感化的东西,它远在人类进入阶级社会之前就已经存在,它在人类的形成过程中伴随着产生,如祭祀天地神灵、冠昏丧葬等,所以它不止是在士大夫中存在,在民间同样也存在着礼;它不仅在中国存在,在国外任何民族中也存在;不过其地位、作用、内容会有所不同而已。     礼与法律在约束人们的言行方面有十分相似的地方,甚至礼有时候直接代替法律惩罚人们。但礼和法律还是有很大的差别。首先,礼产生于阶级社会以前,起源于原始宗教、风俗和交换。古人云:“礼有三本:天地者,性之本也;先祖者,类之本也;君师者,治之本也。”礼以义起,它是一个群体在形成共同心理和文化的过程中逐渐产生的。在阶级社会里,它虽然有利于统治,但不是统治阶级独有的,而是属于整个群体。而法律却只是阶级社会才有的现象,它明确地为统治阶级服务,没有劳动人民的法律。法律的制定只能是群体中的少数人,但礼的形成却不可能是少数人的力量可以办到的。礼与法律比较,具有普遍性和稳定性。第二,礼与法律对人们规范的言行范围不尽相同,有交叉的地方。第三,礼对人们的惩罚重在伦理方面,但手段有时比法律更为残酷。法律的执行者只能是官府的专门机关,但礼的执行者则广泛得多,只要是相关者、长官或长者即可。第四,礼重在通过礼仪起到教化约束的作用,造成一种庄严神圣的理念的心理气氛;而法律则通过严酷的刑罚起到强制约束的作用,造成一种威严的令人畏惧的世俗的情绪状态。     礼与宗教也有许多相似的地方,比如都有一套庄严的仪式,都产生一种神圣感。但礼却不是宗教。首先,礼没有一个特定的崇拜偶象,而无论哪一种宗教,都有特定的一个或多个被崇拜的偶象。这些偶象有的是人的化身,有的是自然界的物或现象上升而来,它们都带有神的特征。虽然礼也祭祀天神、地神,这种祭祀是起源于原始宗教,在仪式上与宗教有共通之处,但这只是礼的一部分,这些神不可能是礼的崇拜偶象。这种礼的祭祀是国家世俗政权执行的,它降落到下层便是民间礼的一种,也可以说是一种民间宗教(这种宗教没有自己的组织)。而宗教的祭祀是宗教组织执行的,祭祀的神就是宗教组织的偶象。宗教组织与国家政权是相对独立的,在政教合一的情况下也是这样。第二,礼没有信徒,它属于创造它的整个群体;而宗教却有其信徒,它甚至可以相对独立于某一社会群体,其有完整的组织体系,成为群体中的群体,社会中的社会。而礼却不可能形成一个相对独立于它所属群体的社会来,相反,它是强调社会群体的统一。第三,宗教的仪式是定期举行的,是信徒参加的,即排外的;而礼的仪式是在特定环境条件下举行的(也有定期的),参加者的意义较广,具有一定的开放性。总的来说,它们的最大区别在于,礼是人情化的、理性化的,而宗教却是神秘化的、情感化的(表现为一种神圣的信仰)。礼使人对人情伦理产生神圣感和威严感,只有皈依神和偶象之后,才成为宗教。也就是说,礼比宗教少了一个中介——作为偶象的神。这样,礼与宗教的社会效果就不一样,一个礼制的国家和一个宗教的国家,其国民的性格也会产生较大的差异,具体我说不清,我只有这样的直觉而已。     可以说,礼比法律带有较浓的感情色彩,它确实不象法律那种赤裸裸的镇压功能;而比宗教却带有较强的理性色彩,它不会产生宗教狂热。我想姜教授说礼是理性化的情感,大概有这么一层意思。但这并不决定礼比法律仁慈或比宗教更有理智。因为在古代,感情和理性都被带上宗法的封建的色彩,在那个时代看来是有情感的行为往往在今天看来却是“吃人”的行为,有理性的行为却往往是愚昧落后的行为。认识到礼的历史内容之后,就不会妨碍我们得出,礼是表饰一种情感,或欢或哀或敬或威,但这种情感是有所控制的,即有度、有分的。随着社会的发展,礼也会变化发展。礼在操作上应包括礼物(不说礼器乃由于行礼所用不止器也,而物包含器)、礼仪和礼义。礼的变化发展我试举一例,也许不恰当,因为我并不是研究者。我想现在的剪彩也算是一种现代社会的礼吧,它是社会上层人物行为、感情的一种缘饰化,表达他们在工程竣工之后的高兴情感,但同时也能产生一种对金钱、权势和地位的敬仰效果。当然我这样看是很粗浅的,对于剪彩的来历、表达的意义我并不明了,或许它是近现代才有的东西,或许也与古代某种礼有渊源关系。     小结:礼在阶级社会以前就已产生,在阶级社会里,在不同的民族和地区又有不同的内容、形式和地位,它随着社会的发展而发展。礼包含社会文化的许多方面,又与它们不尽相同。它是一种感情,但又是有所节制的感情。它是一种等级秩序,但又不象法律那样使用暴力强制手段。它产生一种神圣感,又不象宗教对偶象的那种虔诚。礼可以说是意识形态的东西,但又具有可操作性。所以礼是一个非常非常复杂的东西。如果硬要我下一个定义,我也只好试一下,那就是:礼是人类文明的标志,是理性化的情感以及某一群体、某一时代的秩序,在操作上表现为特定环境下的规范性言行。如果仅仅把礼归结为包含礼物、礼仪、礼义三要素的典礼,其实是偏重于操作层面。应该说,礼就是一种情感和秩序,它属于某一群体的灵魂,只不过通过一定的仪式(使用礼物,表达礼义)加以宣扬和强化。因此,礼有两个层面的含义。如果从社会效果上来说的话,礼更重要的不是它的典礼,而是它的意识形态的含义,鲁迅等人批判礼教便是针对这一含义的。这里还须说一句,礼的情感是理性化的(即缘饰化的),它同样属于一种秩序,所以礼本质上说就是一种秩序。但这种秩序不一定具有阶级性,所以在定义中我没有使用阶级一词。     仁; 中国古代一种含义极广的道德范畴。本指人与人之间相互亲爱。孔子把“仁”作为最高的道德原则、道德标准和道德境界。他第一个把整体的道德规范集于一体,形成了以“仁”为核心的伦理思想结构,它包括孝、弟(悌)、忠、恕、礼、知、勇、恭、宽、信、敏、惠等内容。其中孝悌是仁的基础,是仁学思想体系的基本支柱之一。他提出要为“仁”的实现而献身,即“杀身以成仁”的观点,对后世产生很大的影响。《论语.颜渊》:“樊迟问仁。子曰:‘爱人’。”又“克己复礼为仁。一日克己复礼,天下归仁焉。”又《卫灵公》:“子曰:‘志士仁人,无求生以害仁,有杀身以成仁。”《庄子.在宥》:“亲而不可不广者,仁也。”清谭嗣同《仁学.界说》:“仁为天地万物之源,故虚心,故虚识。” 1.同情友爱:仁心,仁义至尽   2.果核的最近部分:杏仁儿. 不仁:(1)不仁慈,无仁德如不仁不义 (2)手足痿痹,为能运动:麻木不仁,四体不仁.   3.人、仁 “最初只有人字,后以二人相爱,人旁加二为仁,故仁由人而来。仁固可作‘仁义’解,也可作人解。我认为‘克己复礼为仁’的仁字,宜作‘人’解。以孔子之话作本论,《论语》中如‘孝弟也者,其为仁之本欤’、‘观过斯知仁矣’、‘井有仁焉’,这些仁字,都应作“人”解。而一般学者以其字之为仁,多曲为之解,求其说,而不得要领。故上例我以‘仁’字应作“人”解。否则,‘井有仁焉’,作仁义之‘仁’解,难以解通。又以其他著作为旁证,可知人、仁同义。例如《礼记表记》说,人也谓施以人以忠恩也。人与仁同义……《论语》所谓‘人者仁也’、‘仁者爱人’,即本此义。皆由于人、仁同出于一源,且关系密切。把仁字均解为‘仁义’,难以自圆其说、令人信服”   (引自黄现璠著《古书解读初探——黄现璠学术论文选》第464-465页,广西师范大学出版社2004年7月)  
6    례의와 인생 --성원작성 댓글:  조회:2054  추천:0  2012-07-16
례의와 인생   례의를 위하여 사는것이 우리민족 선인들의 일종 삶의 방식이였다고 한다면 례의를 중시하는것은 오늘까지도 우리민족이 지켜나가는 우량한 전통의 하나다.   옛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은 짐승과 다른데 관건은 사람에게는 례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반드시 례의를 지켜야 하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우선 례의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례의적인 인생은 옛 선비들이 숭배한 일종 고상한 인생이였으며, 심지어 어떤 선비들은 목숨을 잃을지언정 례의만은 지키려 하였다.   고대 성현들의 고훈을 말할라 치면 례의를 말하지 않을수 없다. 孔子는 “례의를 배우지 않고서는 뜻을 세울수 없다(不学礼,无以立)”고 하였으며, 《礼记》에서도 “례의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래왕할때 가는것만 있고 오는것이 없으면 례의라고 할수 없으며, 또 오는것만 있고 가는것이 없어도 역시 례의라고 할수없다(礼尚往来;往而不来,非礼也;来而不往,亦非礼也)”고 하였다. 중국고대의 《诗经》에는 다음과 같은 명구가 있다. “쥐낯에도 거죽이 있는데 사람으로서 례의가 없이 되겠느냐, 사람으로서 례의가 없으면 죽기보다 못하니라(相鼠有皮,人而无仪;人而无仪,不死何为)。” 사회에서 례의는 또 한사람의 체면문제이기도 한데 체면과 례의는 실제상 갈라놓을수 없다. 례의가 있어야만 체면이 서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체면을 중시하게 되는데 높은 국가간부나 주요 책임자는 더 말할것도 없고 사회에서 조금 위신이 있는 사람이라 하여도 례의를 아주 중시하게 된다.   현재 례의는 사람과 사람관계의 일반적인 준칙으로 되였으며, 남녀로소가 모두 자기나름으로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다. 우리민족이 체면을 특별히 중시 하는것은 곧 례의를 특별히 중시하기 때문이다. 체면은 기실 례의에 감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은 례의도 중시하게 되며, 례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면 왕왕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례의적인 인생에서는 례의를 생활의 중심에 놓으며, 일마다 례의를 앞세우고 이것으로 자기의 신분지위와 자존심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렇다고 할진대 례의적인 인생에는 퇴페적인 일면이 있는가 하면 또 세속적인 일면도 있다. 그것이 퇴페적이다고 하는것은 무슨일에서나 규례만 따르고 례의를 인격보다도 더 중요시하면서 언제어디서나 체면만 내 세우기 때문에 례의가 인생을 속박하고 실천을 방애하는 부정적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단 례의의 틀에 갇히우면 자유와 령활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례의는 기실 사람들 교제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또 너무 집착해서도 안된다.   례의적인 인생이 또 세속적이라고 하는 것은 례의를 사람들 관계중의 윤활유로 응용하면 자기의 품격과 체면을 나타낼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자기의 돈을 벌려는 목적이나 승급하려는 등등의 기타목적도 실현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일마다 례의를 앞세우면 보증코 적게 밑지게 되며, 일반사람들이 처세에서 크게 성공하는 비결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의견을 적게 말하고 례물을 많이 보내면 좋은 명성을 가질수 있을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관계를 여는 열쇠를 가지게 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고금중외 일부 품덕이 고상한 사람들이 례의를 싫어하고 호방하고 자유로움을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성원 글 2011-11-24    
5    례의를 배우는 의의 --성원작성 댓글:  조회:2013  추천:0  2012-07-16
례의를 배우는 의의    자고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례의부터 배워라"고 하였다. 례의교육은 우리 인생에서의 첫번째 교육이다. 례의는 반드시 학습과 배양, 그리고 훈련을 통해서만이 사람들의 행위습관으로 될수 있다. 우리 사회의 매개 성원들은 례의를 배우고, 례의를 전수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우리 례의지국의 일원으로 될수 있다. 량호한 례의수양이 일단 양성되면 필연적으로 사회생활중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발휘하게 된다.   례의는 조화로운 사람관계의 기초이다. 사회는 부동한 군체의 집합이며, 군체는 많은 개체들이 모여서 이루어 졌는데, 개체들 지간의 차별은 절대적인 것이다. 례를들면 성별, 년령, 빈부차이, 존비정도 등등이다. 례의는 사회교제의 윤활유이며 촉매제로서, 부동한 군체지간에 호상 존경하고, 호상 리해하며, 공동성을 발양하고 차이점을 보류하면서 조화롭게 지낼수 있게 한다.   례의는 사람 형상의 아름다움의 표징이다. 례의는 한사람의 내재 소질과, 외재 형상의 구체적인 체현이다. 례의는 개인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마음을 정화하고, 심신이 유쾌하며, 개인수양을 증강하는 보장이다. 례의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화목하고, 선량할것을 제창한다. 사람마다 모두 선량한 동기로 서로 교제하고, 문명시민의 준칙으로 자기를 단속한다면 소유의 사람들이 모두 마음이 편안하고 심신이 유쾌함을 체험할수 있을 것이다.   례의는 사회 문명진보의 상징이다. 조국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계승 발양하고,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을 가강함에 있어서, 문명례의 선전교육은 매우 중요한 한개 내용이다.   레의는 각항 사업발전의 관건이다. 직업은 사람들이 사회상에서 생존하고, 지위를 차지하는 일종의 수단이다. 례의를 강조하면 사람들을 방조하여 리상을 실현시킬수 있고, 성공에로 나가게 할수 있으며, 전체 직공들의 단결호조를 촉진시키고, 직업에 충성하고, 강위를 사랑하며,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교제와 경쟁실력을 증강하며, 각항사업의 발전을 추동할수 있다.   례의는 가정의 화목원만의 기초이다. 가정은 혼인과 혈연관계로 맺어진 일종의 사회관계이다. 가정례의는 부부간에 사랑하고, 부모가 자애롭고, 자식들이 효순하면서 가정을 행복하게 할수 있다.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성원 글 2011-09-02
4    례의란 무엇인가? --성원작성 댓글:  조회:2244  추천:0  2012-07-16
  례의란 무엇인가? 례의를 숭상하고, 례의를 보급하고, 례의를 집행하는것은 나라적인 호소일 뿐만 아니라 전체 공민들이 자아소질을 높이기 위한 보편적인 요구이며, 자각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례의의 합격된 집행자로 되게 하려고 요구하면서도 무엇이 례의이고, 례의의 구체적 내용과 자기가 일상공작과 생활에서 어떻게 례의를 운용하고 집행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례의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론술하여 사람들이 례의를 리성적, 전면적, 계통적으로 료해하는데 도움을 주려 한다. 1, 례의의 정의 례의란 인류가 사회질서와 사회환경을 온정시키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립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준수할것을 요구하는 기본적인 도덕규범과 행위규칙이다. 례의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공동히 생활하고,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풍속 혹은 습관방식으로 상대적으로 고정된다. (1), 례의의 광의적인 정의 사회학 각도에서 볼때 례의는 한개나라 혹은 한개민족의 사회문명, 도덕풍상, 그리고 생활품질을 반영한다. 무릇, 례의를 강조하는 나라와 민족은 일반적으로 모두 우수한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비교적 선진적인 인류문명을 장악하고 있다. 기업이나 단체의 각도에서 볼때, 례의는 기업문화, 기업정신의 중요한 내용이며, 기업 형상의 주요한 표현이다. 국제화의 대기업들은 모두 기업의 품위와 기업의 실력에 어울리는 독특한 전문 례의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독특한 전문 례의문화는 기업문화의 극히 중요한 내용이며, 국제적으로 그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표징으로 된다. 개인적 각도에서 볼때, 례의에 대한 중시 정도와 운용의 능숙 정도는 한사람의 도덕수준과 문화수양, 그리고 교제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2), 례의의 협의적인 정의 례의의 응용방면에서 볼때, 례의의 사회교제중의 행위규범은 《례절》이라고 하고, 사람들과의 말과 행동상의 표현은 《례모》라고 한다. 자기 의사 전달의 각도에서 볼때, 례의는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서로 교류하고 료해하는 일종의 기교이다. 사회 교제의 각도에서 볼때, 례의는 사람들 교제중의 매우 실용적인 일종 교류예술이고, 사람들 관계를 조절하는 훌륭한 윤활제이며, 대방을 존중하고 우호를 나타내는 효과적인 표현예술이다. 2, 례의의 분류 례의의 내용은 사회생활의 각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표현형식상 분류; 머리, 표정, 동작, 복장, 언사, 행위 등, 집행대상 분류; 가정례의, 개인례의, 공공장소례의, 직장례의, 류별내용 분류; 교류례의, 교제례의, 공무례의, 문자례의 등. 례의는 하나의 종합적인 학과로서 문화배경, 도덕법률, 공공예술 등 여러가지 학과들과 서로 련관된다. 례의에 대하여 사회의 행업별로 분류하여 본다면,  대체적으로 정무례의, 상무례의, 복무례의, 사교례의, 섭외례의 등 다섯가지로 나눌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각 분지의 례의는 운용상에서 경우에 따라 서로 엇바꿔 쓸수 있고, 대부분 례의는 경우에 따라 서로 섞어 쓸수 있으며, 종합적으로 운용할수 있다    우리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에서는 주요하게 조선족 전통 가정례의를 연구하며, 가정례의 가운데서도 전업적으로 장례, 제사 례의를 연구한다. 장례와 제사 례의는 결코 죽은 사람을 위한 례의가 아니다. 건전한 장례와 제사 레의를 통하여 사람들은 사회 도덕풍상을 준수할수 있고, 문화소질을 제고 할수 있으며, 조화로운 가정을 건설할수 있다. 그러므로 장례와 제사 례의야 말로 진정 없어서는 안되는 삶의 례의인 것이다.  현성원 글 2011-08-30
3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효도합시다. 댓글:  조회:2568  추천:0  2012-07-15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효도합시다.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도를 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부모님의 자식걱정에 앞선 잔소리 때문에 그 앞에서는 떨어져 있을 때보다는 잘해야 겠다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사그라 지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저도 항상 잘한다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 부모님맘을 따라가겠나요.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0살 먹은 노부모가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뒷따라오는 80먹은 아들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뒤로 잡게하고 건너면서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고 앞장서서 건넌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자식 입장에서는 따라 갈수가 없나 봅니다. 문득 생각난 부모님 생각에 3가지 사례를 들어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때 조금이라도 더 효도하고 마음 편하게 해드릴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생활이 부유해졌지만, 무슨소용인가 제겐 한 선배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모두 병으로 잃고 누이집에 얹혀 살면서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졸업 무렵에 술자리에서 자신은 연봉1억을 향해 달릴거라고 말하더군요. 그선배 올해 연봉 협상하더니 1억 달성했다고 지인들을 불러 연초에 술을 지인들에게 축하겸 사준일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부모님이 안계셔서 무척 어려웠는데 지금은 안산에 자신의 저택을 지을 정도로 부유해 졌습니다. 옆에서 가끔 연락하고 만나면 참으로 열심히 살긴 살더군요. 그 선배가 작년엔 집을 짓더니만, 올해 연봉 1억을 달성한 술자리에서 말한 다음의 한마디가 가슴을 아리게 만들더군요. " 이제 살게 되었고 부유해 졌는데, 다 무슨소용인가. 부모님과 함께 였다면 효도하고 기쁨이 두배일 텐데. 성공한것처럼 보여도 부모님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파 반쪽성공 같아 슬프다. " 시집간 누나 시댁 형님의 부러움 섞인 조언 누나가 시집을 간 후 일전에 들려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시댁의 형님은 부모님이 시집온 후 얼마 안가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어릴적에 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어느날 이 시댁형님이 시집온 누나집에 놀러와 몇일 묵은 적이 있는데요. 이러한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걸 보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더군요. " 동서, 시집오면 친정엄마한테 소홀해지기 마련이야. 살아계실때 시간 자주내서 맛있는 거라도 해서 자주 들리고 그래. 그거알아? 돌아가시고 나면 그런거 못해준거 가슴에 한으로 남고 가끔 생각나면 가슴 아프고 그런다. " 제작년 조상님묘 정리하면서 고모부의 말 평소 작은 아버지는 재산탐욕에 부모님 가까운 곳에 살면서 부모님을 홀대하고 재산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헌데, 지금은 그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상태죠. 저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군요. 그분들의 묘를 이장하고 그 선대의 조상묘를 제작년에 정리를 하면서 참석하신 고모부가 저에게 한마디 하시더군요. " 조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안그래? 살아계실때 효도하는거야, 지하에 계신 분들이 뭘 알겠어. 좋은 자리 양지바른 곳으로 옮긴다는건 다 자기 좋으려고 하는 이기적인거지 막상 돌아가신 분들은 뭘 알겠어, 죽고 돌아가시면 그 뿐인게지. 살아계실때 한번이라도 더 둘러보는게 효도지. 안그래? " 제 경우의 경우 위와같은 말들과 경험을 가끔가다가 하게 됩니다. 정말 곰곰히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살아계실때 하는 효도가 진정한 효도이자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지, 돌아가신 후에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들 가슴 한켠에 부모님이 안계시다면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채울수도 없는 그런 텅빈 훵한 공간이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더 애틋하게 사랑을 쏟아붓고 고생하시면서 돌아가신 후나, 어려서 헤어지거나 돌아가고 안계신 분들에게는 그 빈자리와 아련함의 공간은 더욱 크리라 생각됩니다. 살아계실때 효도해야 하는 이유.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2    효도에 관한 시조 모음 댓글:  조회:5262  추천:0  2012-07-15
효도에 관한 시조 모음 1. 뉘라서 가마귀를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지은이 : 박효관(1781-1880) 조선 철종, 고종 때의 가객(歌客). 제자 안민영과 더불어 가집 를 엮음 말뜻 : 하돗던고 - 하였던고. 하더란 말인가? 반포보은(反哺報恩) - 까마귀(반포조,효조(孝鳥)라 함)의 새끼는 다 자란 뒤에는 제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가 먹여준다.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한다. 못내 - 잊지 못하고 늘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감상 : 미물인 까마귀도 효도를 행하는데 사람 가운데에는 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 2. 반중 조홍감이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호는 노계. 그의 작품은 대개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하고 한문을 많이 쓰는 흠이 없지 않으나,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를 지었다. 말뜻 : 반중(盤中) - 소반 위. 소반에 담은. 조홍감(早紅枾) - 일찍 익은 감. '조홍시'라 해야 옳은 듯함. 보이나다 - 보이는구나! 유자(柚子) - 추운 지방에 자라는 귤(橘)의 한 가지. 반길 이 - 반가워할 사람. 즉, 지은이의 어머니를 가리킴. 글로 - 그것을. 그것으로. 그런 까닭에 감상 :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故事成語) - 옛날 중국 오나라의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 - 이 시조(時調)는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라 한다. - 보통 조홍시가(早紅枾歌)라 불린다. -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옛글귀를 연상케하는 시조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하며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3. 왕상의 잉어 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지은이 : 박인로 말뜻 : 왕상(王祥)의 잉어 - 옛날 중국의 왕상이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앓으면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왕상이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려 하였더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맹종(孟宗)의 죽순(竹筍)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맹종은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니 대숲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니, 죽순이 겨울에도 솟아 나왔다고 한다. 위의 두 효자의 이야기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고사(古事)이다. 노래자(老來子)의 옷 - 칠순(七旬)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면서 늙으신 부모님을 즐겁게 했다는 효자(孝子) 노래자의 이야기. 양지성효(養志誠孝) - 어버이를 잘 봉양하여 그 뜻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효성. 공자(孔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는 효자로서 유명하다. 감상 : '조홍시가(早紅 歌)'의 둘째 수이다. 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 않게 나도 그들처럼 효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기에 훌륭한 성현들은 모두 효자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겠다. 4. 어버이 날 낳으셔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지은이 : 낭원군(朗原君, ? - 1699) 선조 임금의 손자이며 효종의 당숙(堂叔). 학문에 조예(造詣)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산수한정가(山水閑情歌)', '자경가(自警歌)' 등 시조 30수를 남겼다. } 말뜻 : 어질과저 - 어질게 되게 하고자 아마도 - 시조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감탄사로서, '그럴 것 같다'는 뜻으로 많이 쓰임. 못내 갚아 하노라 - 못다 갚을 것 같아 안타깝다. 감상 :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될까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5. 어버이 살아신제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지은이 : 정철(鄭澈,1536-1593) 호는 송강(松江). 고산(孤山) 윤선도, 노계(盧溪)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조 3대 작가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가에 윤고산, 장가(長歌)에 정송강"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사(歌辭)의 제1인자. 시가집 '송강가사'안의 작품에는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장가(長歌)를 비롯하여, 장진주사, 훈민가 등과 같은 단가(시조) 77수가 실려 있다. 감상 : 송강 정철의 訓民歌중의 '자효(子孝)'이다. 효도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며, 불효(不孝)는 죄(罪) 중에 대죄(大罪)이다. 그러니 효도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계실 적에 효(孝)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훈민가(訓民歌) / 정철(鄭澈) (일부) (전략)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분 곳 아니면 이 몸이 사라시랴. 하늘 같은 은덕을 어찌 다혀 갑사오리. (중략) 어버이 사라진 제 셤길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 곳일이 잇뿐인가 하노라. (후략) 반중 조홍감이/박인로 반중(盤中)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해설 소반(쟁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 가도 반가워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그를 서러워합니다. ▶감상 한음 이덕형으로부터 감을 대접받고 느낀 바가 있어 지었다는 이 작품은 '조홍시가'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孝(효)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귀한 음식을 대했을 때 그것을 부모님께 갖다 드렸으면 하는 것은 당연한 심정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갖다 드리지 못하는 서운함을 노래하고 있다.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 효도하라는 風樹之嘆(풍수지탄)의 교훈이 담긴 시조이다. ▶성격 思親歌(사친가) ※ 風樹之嘆(풍수지탄)의 교훈을 담고 있음. ▶표현 인용법 ▶제재 조홍감 ▶주제 孝心(효심). 지극한 事親(사친)의 정 6. 어버이 날 낳으셔 (낭원군)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지은이 : 낭원군(朗原君, ? - 1699) 선조 임금의 손자이며 효종의 당숙(堂叔). 학문에 조예(造詣)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산수한정가(山水閑情歌)', '자경가(自警歌)' 등 시조 30수를 남겼다. } 말뜻 : 어질과저 - 어질게 되게 하고자 아마도 - 시조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감탄사로서, '그럴 것 같다'는 뜻으로 많이 쓰임. 못내 갚아 하노라 - 못다 갚을 것 같아 안타깝다. 감상 :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될까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7. 어버이와 자식 사이 어버이와 자식 사이 하늘 아래 지친(至親)이라 부모 곧 아니면 이 몸이 있을 소냐 까마귀 반포(反哺)를 하니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여라. *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 자는 경택(景擇).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시와 글씨에 뛰어났는데, 시조로 《오륜가》 5장, 《훈계자손가》 9편이 전하고, 문집으로 《선원유고》 7권이 전한다.1) * 지친(至親) : 더 없이 친함. (아주 가까운 친족이라는 뜻으로) '부자간' 또는 '형제간'을 이르는 말. 8. 가마귀 열 두 소리 가마귀 열 두 소리 사람마다 꾸짖어도 그 삿기 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 아마도 조중증자(鳥中曾子)는 가마귄가 하노라 * 김수장(金壽長, 1690- ?) :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자는 자평(子平), 호는 십주(十洲) 또는 노가재(老歌齋).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기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 시조 작품으로는《해동가요》 을해본에 16수, 계미본에 117수,《청구가요》에 3수 등이 있다. 9.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온갖 질병이 다 있으니 부모를 섬긴들 몇 해를 섬기겠는가 아마도 못다한 효성을 일찍 베풀어 보아라.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조 3대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호는 노계(蘆溪)·무하옹(無何翁), 자는 덕옹(德翁). 조선 중기의 문인, 임진왜란 때는 무인(武人)으로도 활동하였다. 그의 생애 전반이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면, 후반생(後半生)은 선비요, 가객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다. 시조로《조홍시가(早紅枾歌)》, 《선상탄(船上歎》 등 68수가 전하고, 가사로《영남가》, 《노계가》 등 9편이 전한다. 10. 왕상의 잉어 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꺽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노라. * 박인로 * 감상 : '조흥시가'의 둘째 수인데, 왕상이 겨울날 잉어를 얻어 어머니의 병을 고치고 맹종이 겨울에 죽순을 얻어 그 어머니를 기쁘게 했고 노래자가 칠순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려 어머니를 즐겁게 했으며, 증자가 어버이를 잘 보양하여 지극한 효성을 다 했듯이 나도 그들 못지 않게 효도를 해야겠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니 덕이 높고,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모두 효 자였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다. 11. 인생 백세 중에 인생 백세 중에 질병이 다 이시니 부모를 섬기다 몇 해를 섬길는고 아마도 못다할 성효를 일찍베퍼 보렸도다. * 박인로 * 백세 중 : 백년 동안 / 다 이시니 : 거의 전부이니 성효 : 정성과 효도 / 베퍼 : 베풀어 / 보렸도다 : 볼 것이로다 12. 반중 조흥감이 반중 조흥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없을새 글로 설어 하노라. * 박인로 * 감상 : 중국 오나라의 육적이 6세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 3개를 몰래 숨겼다가 발각이 되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는 고사가 있다. 이덕현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위의 육적 회귤(陸積懷橘)의 고사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지었다고 한다.2) 13. 백발의 어머님 백발의 어머님 강릉에 계시는데, 이 몸 서울 향해 홀로 떠나는 마음. 고개 돌려 북평(北坪) 때때로 바라보니, 흰 구름 나는 하늘 아래 저녁 산이 푸르구나.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 시·글씨·그림에 능하였다고 한다. 위 시조는 서울의 시가(媤家)로 가면서 지은《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지은《사친(思親)》등의 시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애정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 가를 알 수 있다. 14. 뉘라서 까마귀를 뉘라서 까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 박효관(朴孝寬, 1781-1880) : 호는 운애(雲崖), 자는 경화(景華). 조선 고종 때의 가객(歌客). 안민영(安玟英)과 더불어《가곡원류》를 편찬하여 가곡 창(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그의 작품 13수가《가곡원류》에 전해진다. * 감상 : 세상 사람들은 까마귀를 흉조(凶鳥)라 하여 꺼려한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반포보은(反哺報恩)의 갸륵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효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데에 비하면, 까마귀가 비록 사람들이 싫어하는 새에 지나지 않지만,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우리는 이 까마귀에게서 효를 배워야겠다. * 반포보은(反哺報恩) : 까마귀가 제 어미가 늙으면, 어릴 적에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다가 주었듯이 거꾸로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므로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 15. 천세를 누리소서 천세를 누리소서 만세를 누리소서 무쇠 기둥에 꽃피어 여름 열어 따드리도록 그제야 억만 세밖에 또 만세를 누리소서. * 신위(申緯. 1769-1845) : 호는 자하(紫霞)·경수당(警修堂), 자는 한수(漢수). 조선 후기의 문신·화가·서예가. 우리 나라 한문학을 마무리하는 구실3)을 하였으며, 글씨는 동기창체(董其昌體)를 따랐으며,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했다. 저서로는《경수당전고》와 김영택이 600여수를 정선한《자하시집》이 간행되어 전해지고 있다. 16. 뫼는 길고길고 뫼는 길고길고 물은 멀고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많고 하고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울고 가느니.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시조로는〈산중신곡(山中新曲)〉,〈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고금영(古今詠)〉,〈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등이 있다. 문집《고산선생유고(孤山先生遺稿》에 한시문(漢詩文)이 실려 있으며, 별집(別集)에도 한시문과 35수의 시조, 40수의 단가(어부사시사)가 실려 있다.4) ?? 뫼 : 산(山) / 하고하고 : 크기도 크구나 17. 어버이 살아실제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도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鄭澈, 1536-1593) :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송강(松江), 자는 계함(季涵). 가사(歌辭)의 일인자. 그는 시가작품집인《송강가사》에〈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등의 4편의 가사와《장진주사》,《훈민가》 등 시조 77수가 있다. 시문집으로는 《송강집》이 있다.5) ?? 감상 : 송강의《훈민가(訓民歌)》중〈자효(子孝)〉이다. 평생이 고쳐 못할 일이 어버이 섬기기니 어버이가 살아계실 적에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18. 이고 진 저 늙은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 정철 * 감상 : 송강의《훈민가》중〈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이다. 무거운 짐을 진, 노인 짐을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기에 돌도 무겁지 않습니다. 인생이 늙어감도 서러운데 무거운 짐까지 지어야 되겠습니까. 경로사상을 강조한 시조다. 19. 청춘소년들아 청춘소년들아 백발노인 웃지마라 공변된 하늘아래 넨들 매양 젊었으랴 우리도 소년 행락이 어제련가 하노라. * 정철 * 감상 : 늙음을 언짢아 하는 백발 노인을 청춘 소년들아 비웃지 말아라. 하늘의 섭리는 공변한 것, 너희들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니, 우리도 소년 시절이 있었으니 인생은 이렇게 무상한 것이다. * 공변된 : 치우침이 없이 공평한 / 매양 : 늘, 언제나, 번번이 20. 아버님 날 낳으시고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디 대여 갚사오리. * 정철 * 가없는 : 끝이 없는 / 대여 : 견주어, 비교하여 21. 아버님 살아실 아버님 살아실 제 섬기지를 못했서라 운명(殞命)이 경각인 제 가슴치고 우노매라 뒤 늦게 허물 뉘우친들 씻을 길이 없노라. 어머님 숨 걷을 때 부르시던 이 자식이 무덤 앞에 부복하니 가슴이 찢기는 데 어디서 소쩍새 애끊듯 저리 울어 예는고 아바도 가단말까 어마도 가단말까 목 메고 가슴 터져 외롭기 가없구나 계실 제 깊 넓고 높 큰 공 늦깨닫고 우나니 어버이 다 가시니 외롬이 산이로고 가신 뒤 뉘우치니 허물이 바다로고 생전에 못다한 장성 나의 애를 끊노매. 태산이 높다하되 아바 은에 더하오리 바다가 깊다한들 어마 공에 견주오리 이제사 깨우쳐 울어도 갚을 길이 없노라 어마도 더나시고 아바도 가셧으니 고애자 울음울어 몸둘곳 없노매라 생전에 베프신 어진 덕 빛내일까 하노라. * 윤철순   22. 세월이 여류하니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워함이라. * 김진태(金振泰, 연대미상) : 영조 때의 가인 경정산단가의 한 사람. 속세에 때묻지 않은 선경(仙境)을 노래한 시조 26수가 해동가요에 전해지고 있다. * 감상 :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절로 나게 되었다. 그것을 뽑고 또 뽑는 것은 어머니가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자식된 몸으로 어버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 선인의 효성을 느끼게 하는 시조이다. 23. 어버이 날 낳으셔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고져 길러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 낭원군(郎原君, 1640-1699) : 선조의 손자인 인흥군(仁興君)의 아들이며, 효종의 당숙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왕실작가 중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남겨 30수의 시조가 전한다.《청구영언》진본(珍本)에만 20수가 전하고, 나머지 10수는 여러 시조집에 산재한다.6) * 감상 : 어버이께서 날 낳으시고 어진 사람으로 길러 주시니, 이 두분 아니면 내가 어찌 어진 사람이 되겠는가? 이 은혜를 갚지 못할까 그것이 걱정이 된다는 말이다. 24. 아버님 날 낳으시니 아버님 날 낳으시니 은혜 밖의 은혜로다 어머님 날 기르시니 덕 밖의 덕이로다 아마도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 대어 갚사올고. * 김수장(金壽長. 1690-?) :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자는 자평(子平), 호는 십주(十州, 十洲) 또는 노가재(老歌齋).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기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1775년 3대시조집인《해동가요》을해본(일명 박씨본)을 편찬하였는데, 그뒤로도 80세가 넘도록 개수를 계속했다고 한다. 남긴 시조로는《해동가요》을해본에 16수, 계미본에 117수, 《청구가요》에 3수 등이 실려 있다.7) * 은덕 : 은혜와 덕 / 갚사올고 : 갚을 것인가 25. 부모님 계신 제는 부모님 계신 제는 부몬 줄을 모르더니 부모님 여읜 후에 부몬 줄 아노라 이제사 이마음 가지고 어디다가 베푸료. * 이숙량(李淑樑, 1519-1592)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 일찍이 이황(李滉)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는데, 문장은 청려전아(淸麗典雅)하고 필법은 절묘하였다고 한다. 1543년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과업에는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의 연구에만 치중하였는데, 후일 천거에 의해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8) * 계신 제는 : 살아 계실 때는 / 여윈 : 돌아가신 26.부모 구존하시고 부모 구존하시고 형제 무고함을 남 대되 이르기를 우리 집 같다더니 어여쁜 이 내 한몸은 어디 갔다가 모르뇨. * 이숙량 * 구존 : 살아있다 / 무고 : 탈없이 지내다 남 대되 : 남이 모두 / 어여쁜 : 가엾은, 불쌍한 27. 어버이 자식 사이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이라 부모 곧 아니면 이 몸이 있을소냐 오조도 반포를 하니 부모 효도하여라. *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계옹(溪翁). 병자호란 때 묘사주(廟社主)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함. 시조로 《오륜가(五倫歌)》5장과 《훈계자손가(訓戒子孫歌)》9편이 전해지며, 문집으로 《선원유고》7권이 전하고, 판본은 안동 봉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9) * 삼긴 : 만들어 낸, 지어 낸 / 지친 : 더없이 친함 / 오조 : 까마귀 반포 :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를 먹여 살린다는 뜻(자식이 자라서 늙은 부모를 섬김) 28. 바릿밥 남 주시고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아라. * 정인보(鄭寅普, 1892-?) : 한학자·교육자. 자는 경업(經業), 호는 담원(담園)·미소산인(薇蘇山人). 일제 시대에는 정치적·문화적 계몽 활동을 주도하며 광복 운동에 종사하였고, 국내에서 비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바릿밥 : 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의 밥 보공 : 시체를 관에 넣고 빈 곳을 옷가지 따위로 채워서 메우는 물건
1    중국 고대 24효 이야기 댓글:  조회:6785  추천:0  2012-07-15
중국 고대 24효 이야기   “효”는 유가 륜리사상의 핵심이며 천백년래 중국사회에서 가정 관계를 유지시킨 도덕 준칙이며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으로서 중화민족 전통문화의 정수입니다. 중국 원나라때의 곽거경이란 사람이 당시 민간에서 류전되는 효자의 이야기 스믈네편을 수집하여 《24효》라는 책을 편집하였는데 효도를 선양하는 대표적인 통속 독물로 광범하게 리용되여 왔습니다. 오늘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함에 있어서도 “효”의 작용은 여전히 매우 큰 현실적 의의가 있습니다. 아래에 《24효》에서 14가지를 선택하여 실었습니다.      01 (孝感动天) 효성이 하느님을 감동시켰다 舜은 전설중 원고시기의 제왕으로서 삼황오제중에서 오제의 한 사람이며 성은 姚씨요 이름은 重华이며 호는 虞氏로서 력사에서는 虞舜이라고 부름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계모와 이복 동생과 짜고들어 여러번 그를 해치려고 꾀하였습니다. 한번은 순더러 창고 지붕을 수리하라 시켜놓고 창고에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순은 두손에 삿갓을 쥐고 뛰여내려 위험에서 벗어 났습니다. 또 한번은 순더러 우물 안에 들어가 우물을 가시게 하고는 우물에 흙을 채워 메워 버렸습니다. 순은 땅굴을 파고 나와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순은 조금도 그들을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기색이 없이 여전히 부친을 공경하고 동생을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효행은 마침내 하느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순이 厉山에서 농사질을 하는데 코끼리가 나와 밭을 갈아 주었으며 새들이 날아와 기음을 매 주었습니다. 尧제왕은 순이 매우 효성스럽고 政事를 처리하는 재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의 두딸 娥皇과 女英을 그에게 시집 보냈으며 다년간의 관찰과 고험을 거쳐 마침내 순을 자기의 계승자로 선정하였습니다. 순이 천자가 된후에도 여전히 부친을 공경스러게 대했으며 이복 동생을 제후로 봉해 주었습니다.       02 (亲尝汤药) 탕약을 친히 맛보다 한문제 刘恒은 한고조 류방의 세째 아들로서 고후8년(前180)에 황제로 되였습니다. 그는 인자하고 효성스럽기로 천하에 소문이 높았으며 자기의 모친 薄太后를 섬기면서 종래로 태만한적 없었습니다. 모친이 병석에 누워 삼년동안 그는 한번도 시름놓고 자 본적이 없었으며 모친이 복용할 탕약을 번마다 친히 맛본후에야 시름놓고 마이게 하였습니다. 그가 재위하여 24년 동안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례의를 흥기시켰으며 농업발전을 추진하여 서한사회가 온정되고 인구가 왕성하게 하였으며 경제가 회복되고 발전하여 그와 한경제의 통치시기를 가리켜 文景之治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03 (百里负米) 백리밖에서 쌀을 메고 간다 仲由의 자는 子路 혹은 季路라고 하였는데 춘추시기의 로나라 사람으로서 공자의 자랑할만한 제자였으며 성격이 곧고 용감하였으며 부모에게 아주 효순하였습니다. 어렸을때 가세가 빈궁하여 항상 자기로 산나물을 캐여 먹을것을 만들면서도 백리밖에서 쌀을 메고 가서 부모를 공대하였습니다. 부모가 사망한후 그는 촉나라에 가서 큰 벼슬을 하게 되였는데 따르는 차량이 백대가 되였으며 창고에는 량식이 만석이나 되였습니다. 두터운 비단자리를 깔고 앉아 풍성한 연석을 먹으면서도 그는 항상 부모를 그리워 하였으며 “내가 오늘 산나물이 먹고 싶고 부모에게 쌀을 메여 가고 싶지만 다시는 기회가 없게 되였구나!” 하고 개탄하였습니다. 공자는 “너는 부모한테 그야말로 생전에는 효성을 다하였고 사후에는 그리움을 다 하는구나!” (《孔子家语·致思》) 하고 찬양하였습니다. 04 (芦衣顺母) 갈꽃 옷을 입고도 계모한테 효순한다 闵损의 자는 子骞이요 춘추 로나라 사람이였는데 공자의 제자로서 공가문중에서 그의 덕행은 안연과 마찬가지로 평가되였습니다. 공자는 “민자건은 정말 효성이 지극하구나!”(《论语·先进》) 하고 찬양한적 있습니다. 민순은 어렸을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밑에서 자라게 되였는데 계모한테서 또 두 이복 동생이 생겼습니다. 계모는 항상 그를 학대하였는데 겨울이면 두 동생에게는 면화를 넣고 지은 두터운 솜옷을 입히고 그에게는 갈꽃을 넣고 지운 엷은 옷을 입혔습니다. 하루는 부친이 길을 떠나게 되였는데 견마 잡던 민순이는 너무 추워 오돌오돌 떨다가 그만 말고삐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부친은 민순이를 질책하며 채찍으로 때리자 옷이 째지며 갈꽃이 사방에 날렸습니다. 그제야 자기 아들이 학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부친은 후처를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민순이는 부친앞에 엎드려 빌면서 계모를 용서해 줄것을 사정하였습니다: “모친을 남기여 내 한사람만 추위를 참으면 되지만 모친을 쫓아내면 세 아이가 추위에 떨게 되나이다.”  부친은 민순의 말을 듣고 감동되여 후처를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계모도 민순의 말을 듣고는 자기 잘못을 깨달았으며 그후부터는 민순이를 자기 친자식과 똑 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05 (卖身葬父) 자기를 팔아서 부친의 장례 지낸다 董永은 동한시기의 千乘(今山东高青县北)사람으로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병란을 피하여 부친과 함께 安陆(今属湖北)에 이사하여 살게 되였습니다. 그후 부친이 사망하자 동영은 자기를 한 부자집에 노예로 팔아 장례비용을 해결하였습니다. 일하러 가는 길에 홰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녀인을 만나게 되였는데 자기는 어디로 갈곳 없다고 하기에 둘은 부부를 맺었습니다. 그 녀인은 한달 사이에 삼백필의 비단을 짜서 빚을 물고 동영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 녀인은 동영에게 자기는 옥황상제의 딸로서 명을 받들어 동영을 구하려 내려 왔었다고 말하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후부터 그 홰나무 그늘 아래를 孝感이라고 이름하게 되였습니다.   06 (行佣供母) 머슴살이 하여 어머니를 섬긴다 江革은 동한때의 제나라 临淄사람으로서 어리서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한테 효성이 극진하였습니다. 전란중에서 강혁은 어머니를 업고 피난을 다니면서 몇번 도적떼들을 만나 죽을번 하였는데 그때마다 강혁은 울면서 “내가 죽는건 큰일 아니지만 년로한 어머니를 돌볼 사람 없나이다.” 하고 근심하기에 도적들도 차마 그를 죽이지 못 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강소의 下邳에 정착하여 살면서 부자집 머슴살이 하여 어머니를 섬겼는데 자기는 째지게 가난하면서도 어머니의 생활만은 불편함이 없게 보장하여 드렸습니다. 明帝때에 그는 孝廉으로 천거 되였고 章帝때에는 贤良方正으로 천거되여 五官中郎将의 벼슬까지 지내게 되였습니다.       07 (怀橘遗亲) 귤울 품에 감추어 어머님께 갖다 드린다 陆绩은 삼국시기의 오나라의 吴县华亭(今上海市松江)의 사람으로서 여섯살때 하루는 부친을 따라 구강에 가서 袁术을 만나보게 되였습니다. 원술은 귤로써 그들을 초대하였는데 륙적은 귤 두개를 가만히 품속에 감추었습니다. 돌아가려 하는데 륙적의 품속에서 귤 두개가 굴러 떨어졌습니다. 원술은 웃으며 “우리집에 손님으로 왔다가 가면서 주인의 귤을 훔쳐 가는구나.” 하고 말하자 륙적은 “어머니가 귤을 몹시 즐겨하시기에 가져다가 어머님께 맛 보이려 했소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원술은 륙적이 어린 나이게 벌써 어머니에게 효성할줄 아는것이 아주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륙적이 성장한후 학문이 연박하고 아는것이 많았으며 천문과 력법, 산술에 정통하였습니다. 그는 《浑天图》를 직접 그렸으며 《易经》에 주해를 달고 《太玄经注》를 편찬하였습니다.   08 (埋儿奉母) 자기 아이를 묻어 버리고 어머니를 봉양한다 郭巨는 晋나라때의 隆虑(今河南林县)사람으로서 원래는 가세가 비교적 넉넉한 형편이였습니다. 부친이 사망한후 그는 재산을 두몫으로 나누어 두 동생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는 작은집 한채만 가지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였는데 효성이 지극 하였습니다. 그후 가세가 점점 어리워 지면서 안해가 아들 하나 낳게 되였습니다. 곽거는 이 아이를 키우노라면 필연코 어머니에게 등한해 질것이 근심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안해와 상의하고 “아들은 낳으면 다시 있을수 있지만 어머님은 죽으면 다시 있을수 없으니 이 아이를 묻어 버리고 량식을 절약하여 어머님을 잘 공대합시다.” 하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아이를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지하 두자 깊이 되는 곳에서 불연듯 황금 항아리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하늘이 곽거에게 주는 것이니 관가에서 가져갈수 없고 민간에서 빼앗을수 없다.” 하는 글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황금을 얻은후 돌아와 어머님을 더욱 극진히 모실수 있었으며 아이도 더욱 건실하게 키울수 있었습니다.       09 (乳姑不怠) 게으름 없는 젖 며느리 崔山南은 당나라때의 博陵(今属河北)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山南西道节度使 벼슬을 지냈적 있다하여 사람들은 그를 “山南” 이라고 부르게 되였습니다. 당년에 최산남의 증조모 长孙夫人은 년세가 이미 많아 이빨이 모두 빠져 버렸습니다. 조모 唐夫人은 효성이 매우 지극한 분이였는데 매일 목욕하고 후당에 가서 자기의 젖으로 시어머님을 공대하였습니다. 이렇게 몇해를 지내니 장손부인은 다른 음식을 먹지 않고도 신체가 여전히 건강하였습니다. 장손부인이 병이나서 임종하게 되니 온집 식구들을 모여놓고 “나는 며느리의 은덕을 보답할 길이 없는데 증손자와 증손며느리들은 그가 나에게 효성했던것처럼 그에게 효성하기를 부탁한다.” 하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후 최산남은 큰 벼슬을 하게 되였는데 과연 장손부인의 유언을 받들고 조모 당부인을 극진히 공대 하였습니다. 10 (卧冰求鲤) 얼음우에 엎드려 잉어를 구한다 王祥은 琅琊사람으로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가 들어 왔는데 계모는 여러번 부친의 앞에서 왕상의 나쁜말을 하여 부자 관계를 리간질 하였습니다. 부모가 모두 병에 걸리게 되니 왕상은 한번도 편안히 자지 못하며 극진히 시중들었습니다. 계모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왕상은 엄동설한에 옷가슴을 헤치고 얼음우에 엎드려 얼음을 녹였습니다. 불연듯 얼음이 녹으면서 잉어 두마리가 튀여 나왔습나다. 계모는 그 잉어를 먹고 과연 병이 낳았습니다. 왕상은 20여년 은거한후 후에 温县의 县令으로부터 大司农、司空、太尉등의 벼슬을 하였습니다.       11 (恣蚊饱血) 모기가 자기피를 빨아 먹게 한다 吴猛은 晋나라때의 濮阳사람으로서 여덟살때부터 부모에게 효성할줄 알았습니다. 가정이 빈궁하여 모기장도 없었기 때문에 저녁이면 모기들이 성화부려 부친은 편히 주무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맹은 저녁이면 맨몸으로 부친의 침대옆에 앉아서 모기들을 자기한테 유인하여 자기피를 실컷 빨아 먹게 하여 부친을 편히 쉴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2 (哭竹生笋) 대나무를 짚고 울어 죽순이 돋아나게 한다 孟宗은 三国시기의 江夏사람으로서 어려서 부친을 여의였고 어머님도 로쇠하고 병이 많았는데 의사는 신선한 죽순으로 탕을 끓여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때는 바로 엄동이라 신선한 죽순이 있을수 없었으니 맹종은 혼자서 대나무숲에 가서 대나무를 짚고 슬피 울었습니다. 불연듯 땅이 갈라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많은 죽순들이 돋아 났습니다. 맹종은 너무 기뻐 그 죽순으로 탕을 끓여 어머님께 대접하니 어머님의 병은 가신듯 낳았습니다. 그후 맹종의 벼슬은 司空에 이르렀습니다.       13 (尝粪忧心) 분변을 맛보며 부친의 병을 근심한다 庾黔娄는 南齐때의 高士로서 孱陵의 县令으로 부임된적 있습니다. 부임되여 열흘도 안되였는데 불연듯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이 돋으니 집에서 큰 일이 났다고 예감하고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집에 와서야 부친이 이미 중병에 걸려 이틀이 되였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의사는 병세의 길흉을 알려면 오직 병자의 분변의 맛을 보아야 하는데 쓴맛이면 좋아질 조짐이라고 하였습니다. 黔娄는 서슴없이 부친의 분변을 받아 맛을 보니 단맛이라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그는 밤에 북두성을 향하여 무릎 꿇고 빌면서 부친대신 자기를 죽여 달라고 빌었습니다. 며칠후 부친은 사망하니 黔娄는 부친을 안장하고 삼년동안 守孝를 지냈습니다.   14 (弃官寻母)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아 떠난다 朱寿昌은 宋나라때의 天长사람으로서 칠세때에 생모 류씨가 부친의 정실부인의 질투를 받아 재가해 갔는데 50년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神宗때에 주수창은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 되였는데 혈서로 《金刚经》을 베끼면서 사방에 수소문 하여 섬서의 어머님의 행처를 알아 냈습니다. 그는 곧 벼슬을 버리고 섬서로 어머님 찾아 떠나면서 어머님 찾기전에는 절때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끝내는 陕州에서 어머님와 두 동생을 찾아내고 기쁘게 상봉하였습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 올때에는 어머님은 이미 칠십 고령을 넘었었습니다. 현성원 번역작성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