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지산》은 아름다운 전설
현용수 작성
어제 초청을 받고 《천불지산술》 출시회에 참석하였다. 이술과 《어곡술》이 함께 출시되였는데, 《어곡술》은 결혼이나 회갑 등 희사잔치 전문용으로 만들었고, 《천불지산술》은 주로 장례나 제사 전문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무형문화재《조선족 상례풍속》대표전수인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표달하기 위하여, 말로나마 가장 아름다운 말들을 골라 진심으로 축하하여 드렸다.
그러면서 《천불지산》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몹시 긍금증이 생겼다. 돌아와서 인테넷을 뚜지며 찾던중, 길림신문 2015년7월2일자, 《<천불지산>지명은 <천불붙이>》라는 문장을 보게 되였다.
이 문장에서는 당지에 이 산을 두고 《천불붙이》라는 토백이 지명이 있었다는 선색을 제공하였다. 보귀한 선색이 아닐수 없다. 그러면서 문장은 《일부 학자와 문인들은 리성계, 김종서, 무학대사, 지장보살 등 성인들의 설화까지 억지로 꾸며가며, <천불붙이> 지명을 천불지산으로 왜곡하고있다》고 질타하였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천불지산》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짐작하게 되였으며, 나의 경우에 이 지명에 대하여 력사적 료해보다는 문화적 료해가 더욱 의의가 깊겠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몇가지 상식적인 문제를 반드시 명확히 구별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첫째:
력사와 전설의 구별
력사란 지난시기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력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엄격히 력사유물론을 준수한다. 즉 사서기록이나 력사자료 및 고고학적 발견에 의한 확실한 증거를 기초로 한다. 여기에서는 그무슨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든가, 《그리 하였을것이다》 등등의 추측이나 가설을 용납할 여지가 없다. 아무리 충분하고 당연한 도리로 해석할수 있는 사건이라 하여도 직접적인 실제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면 결코 력사로 취급할수 없다.
문장에서는 《천불붙이》에 대하여 전편을 통하여 많은 해석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이 어떻게 《천불지산》으로 되였는지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일찍 일제식민지 시대에 고유지명인 천불붙이 지명을 한자로 행정서류에 적는 과정에 천불지산 (天佛指山)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여 옛 간도지도에 天佛指山으로 표기된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였는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력사적 증거로 보기엔 아직 거리가 멀다.
전설이란 지난시기에 있었다고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을 말한다. 전설도 때로는 증거를 필요로 하지만 력사처럼 직접적인 증거가 크게 필요없으며, 사람들의 주관의사에 따라 과장된 성분이 많다. 그러면서도 전설은 력사의 보충역활을 한다. 즉 어떤 력사적 사물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찾을수 없을 경우, 왕왕 전설로 해석된다. 이를테면 자고로 중국인을 《룡의 전수인(龍的傳人)》, 혹은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 하였는데, 후날 그 확실한 력사적 증거를 찾을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신화가 만들어져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늘까지 《천불지산》지명의 유래가 력사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학자와 문인들이 리성계, 김종서, 무학대사, 지장보살 등 성인들의 아름다운 설화까지 꾸며가며, 이 산을 신비화하였는데,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크게 고마운 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다만 그것이 력사가 아니라 아름다운 전설이라는 점만 명기하면서 말이다.
둘째:
과학과 전통문화의 구별
오늘에 와서 과학적 도리는 유일 정확한 도리로 오식되여 진리와 거의 동의어가 되여 있다만, 기실 과학이란 일종의 방법론일 뿐이며, 시기 제한성과 환경 제한성이 강하며, 결코 만능이 아니다. 그러므로 과학적 도리라고 하여 반드시 真理인것은 아니다. 진리란 원래 종교에서 나온 추상적인 말인데, 절대적으로 정확한 도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세계에는 기실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맑스주의가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에는 적합하지 않고,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에는 적합하지 않다. 백성들은 돈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관원들은 권리가 진리라고 주장하며, 불교에서는 욕심 버리는것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도교에서는 자연에 맡기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유교에서는 사람마다 책임 다 하는것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절대적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
근대 유럽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뉴톤, 와트, 에디손 등 대 발명가들에 의하여 과학적 연구방법이 탄생하였다. 그러니 과학의 력사는 이제 근근히 몇백년밖에 되지 않는다. 과학적 연구방법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여러가지 사물에 대한 반복적인 실험과 증명을 통하여, 보편성 규률과 특수성 규률을 찾아내여, 定律, 定理 혹은 论文의 형식으로 체계화, 규범화, 리론화 시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것이 가장 휼륭한 것이고,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는 것은 이미 몇백년의 세계적인 근대사와 현대사가 증명하였으며, 현실에서도 계속 증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의 세계적 기술연구 령역에서 과학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결코 과학이 전부가 아니며, 과학을 유일표준으로 하는 단일세계가 아니다. 세계에는 과학으로 해석할수 없고, 또는 과학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는 많은 종교와 전통문화들이 존재한다. 과학으로는 종교를 해석할수 없다. 과학으로 전통문화를 해석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시대적 착오로 된 근본적 원인이 바로 소위의 과학적 의식형태로 모든 전통문화를 혁명하고 개조하려 시도하였기 때문이다.
력사연구는 사회과학의 범주에 속하며, 전설은 전통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어떤 한 가설이 그것이 초기에는 아무리 왜곡되고, 황당하고, 미신적이라고 하여도 그것을 믿은 시간이 길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 많다면 그것이 곧 전통문화가 되는 것이다.
전통문화는 전통문화로서의 존재의 리유가 있고, 자기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전통문화연구가 반드시 력사연구에 기준해야 하는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력사연구와 전통문화연구를 서로 혼돈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마치도 《삼국지》와 《삼국연의》를 서로 혼돈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5년8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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