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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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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614 ]

404    가야하 투석입니다 댓글:  조회:6663  추천:6  2011-06-23
애석인 여러분들 하시는일 만사형통 이루시길 바람니다.
403    동해(양양)에서 댓글:  조회:6019  추천:18  2011-06-16
* 언  제 : 2011.05.31* 어디서 : 양양(물치)* 크  기 : 15 * 13 * 8* 주문진을 찾아가는 출장길에 찾아갔던  양양물치 산지에는 파도소리 들려오고  조금은 높은파도 돌밭이 좋았는데  오랫만에 오셨다고 내품으로 안기네요
402    아름다운 돌밭 댓글:  조회:6089  추천:24  2011-06-13
아름다운 돌밭     김봉세   아름다운 두만강 돌밭 한 가운데 아름다운 돌벗들이 아름다운 마음이 서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저 돌밭은 사랑을 받는다 아름다운 돌밭에는 아름다운 수석이 있기에      
401    김대현고문님특집-4 댓글:  조회:7123  추천:41  2011-06-07
풍류 인생대자연 신비로움 수석에 숨겨있고우주의 오묘함도 수석에 어렸으매수석에 깃든 이야기 밤을 샌들 싫을가.석우들 함께 모여 석담을 나누면서술잔을 높이들어 석복을 바라노니어화라 풍류의 인생 돌과 함께 즐기네
400    김대현고문님특집-3 댓글:  조회:6353  추천:46  2011-06-07
                석복두만강 돌밭에서 해종일 헤매다가기막힌 수석 한점 내눈에 띄였으매어화라 어깨춤 덩실 이 아니 복이련가. 애석맘 지극하여 석복이 찾아왔나떨리는 두손으로 명석을 받쳐드니서산에 지는 해님도 가던길 멎추누나.
399    김대현고문님특집-2 댓글:  조회:6666  추천:42  2011-06-07
398    김대현고문님특집-2 댓글:  조회:6279  추천:47  2011-06-07
 수석억만년 풍찬로숙 겪어온 풍상고초 묵묵히 아로새겨 그모습 천태만상뉘알랴 수석에 비낀 자연의 오묘함을.  그옛날 선비들도 돌 한점 앞에놓고술잔을 기울이며 시지어 읊었건만자연의 무궁한 조화 알지를 못했으리.
397    김대현고문님특집-1 댓글:  조회:6133  추천:46  2011-06-07
은 준들 금 준들,,,  말없이 놓여 있는 저기 저  수석은 야진주나 보석처럼 빛나지 않는다만천만년 풍마우세에 그 모습 천태만상.    (风磨雨洗)  우주의 맑은 넋이 저 돌에 비꼈거늘은 준들 바꾸리까 금 준들 바꾸리까한평생 제자식처럼 쓰다듬어 주리오.
396    수석 댓글:  조회:5985  추천:58  2011-05-30
성문 영어’로 이름 떨친 그, 이번엔 壽石 조선일보: 2011. 05. 17. A31면 사람들/ 김진 기자 mozartin@chosun.com 송성문씨, 40년 모아 해설책 내… "선비처럼 살고 싶어 수집" 국보·보물도 수시로 사모아 국립박물관에 26점 기증 ▲ 송성문 전 대표가‘성의(聖衣)’라고 이름 붙인 수석을 보여주었다. 40년 전 수집 초기에 남한강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한 세상 너무 바삐 살았어요. 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어서 냈습니다. 수석(壽石)처럼 아름답게 늙고 싶어요." 송성문(80) 전(前) 성문출판사 대표가 '수석(壽石)'이라는 320쪽 짜리 책을 냈다. 수석은 자연이나 인간의 형상을 띤 자연 그대로의 작은 돌을 말한다. 그는 이 책에 40년간 모아온 수석들 가운데 150점을 사진과 해설로 담았다. 송 전 대표는 유명한 '성문 영어' 시리즈의 저자다. 그는 서울 역삼동에 자신의 아호(雅號) '혜전(惠田)'을 딴 '혜전 갤러리'를 만들어 수석 2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원래는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는데 박물관에서 '인공미가 가미된 것만 받는다'고 해서 주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이 낳은 수석은 인간의 어느 예술품보다도 예술적이고 영적이에요. 아무 말 없으면서도 만 마디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40여년 전 '고상한 취미를 갖고 싶어' 수석 수집을 시작했다. '선비의 취미'라고 불리는 수석을 통해 마음을 닦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인도네시아 등 해외 곳곳까지 다니면서 모았다. 평북 정주 출신인 그는 동아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마산에서 교사로 일했다. 1965년 문교부가 교사 재교육을 위해 그를 뉴질랜드에 보냈을 때 영국서 출판된 영어교육 자료를 잔뜩 가져와 성문 영어 시리즈를 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엔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며 “잘 편집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 합치면 1000만부쯤 팔린 것 같아요. 44년이나 찍었는데 지금도 나가요. 참 영광이죠." 그는 성문 영어가 너무 문법 중심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성문 영어로 번 돈으로 국보와 보물도 샀다. 우리 고서를 찢어 벽지로 발라놓은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그렇게 거둔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국보 4점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비롯한 보물 2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은 박물관에선 '혜전 송성문 선생 기증문화재 특별전'을 열어주었다. 국민훈장(모란장)도 받았다. 그는 8년 전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아직 건강한 편이다. "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싶으니 수석에 더 열중하게 되더라고요. 이만큼 더 산 것도 수석 덕 아닌가 싶어요."
395    등산의 길에서(11.5.25) 댓글:  조회:6248  추천:71  2011-05-26
         자연의 선물대지의 산천수목 풀색이 완연하고 골짜기 봄이깊어 돌배꽃 활짝피고 내눈을 유혹하는산나물 한들한들 손젓네.   자연의 은혜로운 선물을 한짐지고 절벽가 바위옆에 기대여 굽어보니 저아래 량안옥토벌 벼모내기 들끓네.  
394    귀석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댓글:  조회:5944  추천:58  2011-05-23
여기저기 움푹패인 수마좋은 우뚝바위 하늘까지 손내밀고 구름들을 잡으려나 계절따라 부는바람 품에안고 살았는가 뿌리깊어 부동으로 가는세월 잡는구나
393    상해에서 구한 신강돌 댓글:  조회:5254  추천:55  2011-05-21
상해에서 모셔온 신강 사믹돌 입니다.
392    부르하통하에서(11.5.17) 댓글:  조회:5684  추천:57  2011-05-19
391    오도 갔다왔습니다~~~ 댓글:  조회:5308  추천:54  2011-05-14
일찍 갔다 서둘러 왔습니다돌밭도 적지만 정말 돌도 없더군요...빈손으로 오기 섭섭하여 한점만 들고 왔구요,사진아래 관통석은 조개가 파놓은 뻐금돌인데포항 주변 바다애 흔이 볼수았는돌이라 그냥 사진만 담았습니다
390    탐석기(6) 안탕산은 골골마다 신나는 돌밭이라 댓글:  조회:4868  추천:72  2011-05-14
【탐석기】(6)       안탕산은 골골마다 신나는 돌밭이라  온주 안탕산은 골골마다 이르는 곳마다 강골을 이루고 희한한 돌밭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첫 걸음이어서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로 다니는 신세라 첫날 점심후 다시 탐석에 나설 겨를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귀가 때 안탕산의 본부를 떠나서 아득히 올 때까지도 오른쪽은 물이 별반 없는 강이고 온통 돌밭이었지만 달리는 버스라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돌밭이 몇몇 킬로미터에 뻗쳤는지 모릅니다.  올해는 어느 땐가 한번 시간을 내서 안탕산에 며칠 머무르며 탐석해야 겠습니다. 길이 멀어 탐석이 불편하겠지만 희한한 돌밭들을 보고 가지 않는 수석인이 있으리오. 이 두만강은 안탕산에도 흘러 가오리다......
389    두만강 돌 댓글:  조회:5446  추천:52  2011-05-13
이번에 두만강에서 탐석한돌 들을 올립니다,~사진크기가 용량을 초과한다고 나와서 축소시키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388    부르하통하에서(11.5.10) 댓글:  조회:5344  추천:60  2011-05-10
천기가 아주좋은 날을 택하여 김고문님,김회장님 따라 수석활동에 참가.회장님 한점,고문님 두점.
387    한국 포항 안강돌사랑모임회와 함께 두만강변에서 (11.5.7) 댓글:  조회:6807  추천:55  2011-05-07
386    탐석기(5) 온주 안탕산서 오석 한점 댓글:  조회:6216  추천:48  2011-05-05
【탐석기】(5)                 온주 안탕산서 오석 한점  5.1휴가를 타서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방룡남박사와 두만강 두가족은 세계지질공원이요, 중국 10대 명산이라는 온주 안탕산을 유람하였습니다. 안탕산(雁荡山)은 소흥서 남으로 300킬로미터 쯤 되는 온주시 락청 경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4월 30일 아침 7시, 소흥을 떠난 국제여행사 중형관광버스는 3시간 20분만에 온주 안탕산풍경구 구내에 들어 섰습니다. 나의 시야에는 들쑹날쑹한 풍경구의 바위산들에 앞서 기나긴 돌밭을 안고 왼쪽으로 뻗어 내리며 구간구간 말라 버린 강이 먼저 안겨 들었습니다. 맑은 강물과 바위산을 낀 삐여난 풍경구들엔 돌밭이 있기 마련이라고 벌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때마침 오전 11시가 가까워 온다고 점심시간이라지요. 너무도 흥난 나는 날것만 같아 마른 점심을 대충 에때우고는 강으로 내달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가량이였습니다. 이 시간이면 몇개 구간의 돌밭을 탐석할 겨를이 나는 거지요. 길아래 돌밭에 들어 서니 잔잔한 비가 내린다지만 탐석하는데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첫 구간 돌밭을 보니 강바닥 돌들은 어느 정도 수마가 되여서 탐석이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돌들도 희부연 돌들이 위주라지만 가담가담 빛다른 돌들이 보이여 날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의 촉박으로 첫 구간을 대강 살펴보고는 돌구비를 지나 두번째 구간에 들어서는데 눈에는 비에 젖은 뭔가 반짝입니다. 가까이여서 몇걸음에 달려가니 반짝반짝 검은 돌입니다. 행여 석탄이 아닐까하여 보면 석탄은 아니고 돌이여서 훨씬 무거웠습니다. 석질도 좋아 신났습니다. 내 고향 연변 두만강이나 가야하에서 몇점 주어 들었던 그런 오석이였습니다. 수마가 잘되지  않은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지만 흔치 않은 오석이라  재수가 좋았습니다. 좋다고 흥얼거리며 두번째 구간을 지나니 세번째 구간은 낮은 지대여서 고여 든 맑은 물이 흘러 내리며 강다운 멋을 풍기였습니다. 저 아래 끝은 강남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돌다리가 강을 가로 지르며 좁아진 강 량안이 숲속을 이루었습니다. 돌다리 아래우는 새로운 돌밭이 쫘악 펼쳐져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습니다. “안돼. 더 내려가면 한시간이 훌 지나가기 십상이지. 벌써 수백메터나 내려 왔는데.” 가까스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돌아 설라니까 눈길은 자주 돌다리 쪽으로 흘러 갑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돌아서고 말았지요. 다시 수백메터 구간구간을 조이며 돌밭에 눈길을 박노라니 청석 쪽으로 번지는 돌들과 홍석류, 투석을 이루다 만 맞춤돌들이 가끔 나타납니다. 이는 이곳 안탕산 돌밭들이 탐석의 의미가 다분함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절강 대주시 산하 천대현 구간에 이어 온주 락청시 구간으로 번져지는 또 하나의 돌밭이요, 수석산지 발견입니다. 아직 30분도 되나마나한데 집사람이 강가에 나타나 관광버스가 떠나련다는 재촉을 알립니다. “에잉~넘들이,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입으로 중얼거리며 길가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상쾌했습니다. 반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오석 한점을 주어 들었으니 이만하면 쾌재를 부를 만도 하지요. 집사람이나 방박사네랑은 그사이 오석 한점을 주어 들었다고 수석에 빠진 사람은 어쩔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히히 웃기만 했습니다.   2011년 5월 5일            
385    탐석기(4) 이번은 천대산 불롱 골물이였소 댓글:  조회:6049  추천:52  2011-04-23
탐석기 (4)   이번은 천대산 불롱 골물이였소     라계에서 천대현성으로 돌아온후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불롱산으로 향했다. 말이 국청사에서 6킬로미터 쯤이라고 한다지만 모두가 산을 톺아야 하니 시간이 허락되질  않았다. 천대의 불롱산정에 이르러 진짜 천대종의 발상지로 알려지는 진각사(真觉寺)와    진각사내 천대종의 시조로 통하는 지자대사 육신탑을 배알하면서 고려인 의통스님 화상을  주의하여 살핀 뒤 해발 700여미터의 산을 내려야 하지만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리자면 길을 얼마나 돌아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진각사 아래 아스팔트길에서 아예 산을 질러 오르는 오솔길을 택했다. 1000여년전 고려 명승 의천 대각국사가 항주서 도보로 천대산에 이르고 다시 도보로  불롱에 올라 지자대사 육신탑을 배알하던 오솔길이였다. 산속 오솔길은 어디라없이 강남의 푸른 나무들로 덮히여 좋았다. 사위가 괴괴하여 한구간에서 도정신해야 할 때도 있었으나 지나고 보니 별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몇몇 오솔길을 거치며 산을 내리고 골안길에 들어서니 한구간이 꽤나 넓은 돌밭으로 나타난다. 나는 길을 가다말고 돌밭에 내려가 한바퀴 빙 돌아 보았다. 역시 수마가 그닥지 않은 돌밭, 다시 길에 오르고 길따라 내리니 그 아래 구간부터는 길이 골안 바닥과 아츠런 사이를 둔 산비탈로 내리여 수풀이 우거진 골물에 내릴 념을 말아야 했다. 벌써 불롱을 떠나 산을 내린지도 한시간이 잘 되여 온다. 국청사 웃구간을 저만치에  두고 또 돌밭이 펼쳐진다. 마침 골물로 내리는 오솔길이 있어서 강바닥에 들어서니 신바람이 난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도 수석을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대신 구간구간 바위구간에 소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산간의  벽계수가 좋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오늘도 탐석은 뒤똘. 하긴 며칠전  국청사 아래 구간에 이어 오늘은 강남 산간의 청신한 공기를 맘껏 마시며 국청사 웃구간 산간에서 탐석해 보았다는 의미가 별스럽기만 하다. 수석인이여서 돌밭만 보면 마음이 움직이고 달려가고플까, 대자연의 탐석산지는 어디서나 우릴 부르니 이제 천대산 탐석행에 얼마나 올라야 할지 모르겠다. 탐석지만 보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려는 것이 우리 수석인들의 마음이지.                  
384    탐석기(3) 라계는 어딜 보나 돌밭천지 댓글:  조회:5945  추천:50  2011-04-20
탐석기 (3)   라계는 어딜 보나 돌밭 천지   절강지도를 펼치면 천대산 라계(螺溪)는 천대종의 발상지로 되는 불롱산 가까이로 보인다. 그런 라계가 어디에 있는지, 4월 10일 아침식사후 천대 중심역에서 1선버스로 천대 북역까지 간 나는 택시 하나를 잡았다. 택시기사와 라계 낚시터를 아는가 했더니 안다기에 라계로 차를 몰라고 했다. 날씨는 또 비를 내릴듯이 검은 구름을 몰아온다. 택시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저앞에 웅장한 산체가 희부옇게 보인다. 택시기사와 물어보니 당지에서는 북산이라고 부른단다. 그때 택시가 강가길에 들어서니 기사는 저 강이 바로 라계이고 이곳 마을이 라계촌이라고 하면서 우린 지금 라계를 거슬러 오르고 있다고 한다. 나는 흥분해마지 않았다. 라계로 말하면 내가 천대산에서 꼭 찾고싶은 곳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일찍 고려의 제관스님이 조정의 위탁으로 당나라 말기 혼전시기에 절강 일대서 사라진 천대종의 여러 전적을 갖고 이곳 천대산 라계에 와서 라계   의적법사를 만나 제자가 되고 라계에서 옹근 10년을 보내다가 앉은 채로 입적하였기 때문이다. 제관스님의 묘소가 어딘지는 모르나 스님이 남긴 “천대사교의”(天台四教仪)는 후세에 천대입문서와 훌륭한 불교개설서로, 불교계 필독의 고전으로 전해지니 한번이고 두번이고 찾아 볼만한 고장이다. 제관스님은 실로 이곳 천대종의 부흥에 불멸의 기여를 한 분이시다. 이것이 나를 라계답사로 내세운 계기이다. 그런 마음을 누가 알랴만은 그저 뚜벅뚜벅 걷고걷는 길, 라계로 가는 본심을 전해 들은 택시기사는 1000년 전의 한 스님발자취를 찾아 이곳까지 왔느냐며 머리를 끄떡인다. 택시는 어느덧 라계촌을 지나 라계골안을 가로막은 저수지언제에 오른다. 저수지는 어인 연고인지 물이 별반 없고 저수지 웃구간에서는 무슨 공정이 한창이다. 저수지 바닥을 파헤치니 바닥은 온통 돌들 천지이다. 또 마음이 동한다. 택시기사보고 여기 라계골안으로 올라가면 무엇이 있느냐 물었더니 낚시터랑 있기는 한데 개발되지 않은 고장이라고 알려준다. 보매 고려 제관스님의 거처지를 찾는다는것은 빈말이고 기대할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평지구간을 흐르는 라계를 찾고, 좁은 두산사이 저수지를 따라 한참 올라가 보며 사진 몇장을 찍었다는것이 큰 성과로만 느껴진다. 나는 미안하지만 택시를 돌려 달라고 했다. 도중에 저수지 언제아래 구간에 이르러 택시값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저수지 언제아래 크나큰 돌밭이 나의 발목을 잡은것, 라계답사는 이곳 라계가 천대 불롱산 그곳에서 흘러 내린다고 하니 이만하면 절반 농사는 지은 셈이지, 이제부터는 순수한 탐석이로다. 헌데 저수지 언제아래도 수석다운 수석이 나질 않았다. 더 아래 구간이 또 돌밭으로 보이는데 비에 젖은 풀밭을 헤치기가 쉽지 않다. 별수없이 강기슭 밭길에 올랐다가 수풀구간을 지나 다시 강바닥에 내려섰다. 저 먼먼 아래까지 돌밭이 쫙 펼쳐진다. 이때 방정맞게도 제법 큰비가 와그르 쏟아진다. 우산을 펴드니 이번에는 강물우에 드러난 돌들 전부가 흙깡치로 덮히여 조금만 부주의하면 미끌미끌 넘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런대로 2리쯤 탐석길을 이어갔다. 흙깡치가 덮힌 돌들을 잘 헤아릴수가 없다. 아래 마을에 이르러 강을 나섰다가 마을아래 구간에서 다시 강에 들어섰다. 어딜 보나 돌밭 천지지만 비가 계속 내리니 탐석재미가 없다. 후일로 미루는거다. 1000여년 전 고려 제관스님의 덕분으로 천대에서 엄청 큰 탐석산지를 찾았으니 빈손이라도 마음만은 후련했다. 라계를 따라 5-6리는 푼히 내려온것 같다.              
383    철쭉이 강남땅을 덮습니다 댓글:  조회:5177  추천:55  2011-04-19
                철쭉이 강남땅을 덮습니다    요즘 4월 중순 두견화와 더불어 철쭉이 강남에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절강월수외국어대 캠퍼스에도 16일부터  철쭉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참으로 가관입니다.   오늘은 강남 탐석기와 더불어 절강월수외국어대 캠퍼스서 찍은 4월 17일 여러 색채의 철쭉사진들을 특집으로 올리여 봅니다.     수석속에도 대자연의 꽃세계가 펼쳐지듯이 오늘은 진짜 강남봄꽃을 추적하였습니다. 우리 수석인들께 휴식의 한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382    탐석기(2) 수석에 반해 유람길 빗나가다 댓글:  조회:6117  추천:38  2011-04-17
탐석기 (2)                     수석에 반해 유람길 빗나가다   2006년 11월에 천대산 국청사를 처음 답사하고 2009년 2월에 천대종의 개조(开祖)—지자대사 육신탑이 자리한 불롱에 다녀왔지만 육신탑내 삼면 벽에 모셔진 천대종 17대조사 화상을 여겨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천대종의 제16대 조사면 고려인 의통스님인데, 청명기간 답사에 이어 4월 9일과 10일 휴식일에 종내는 다시 천대산행에 오르고야 말았다. 천대에 도착하니 점심녘이다. 천대역 중심버스부 부근의 한 호텔에 행장을 풀고 1선버스로 천대 북역에 이른것은 그 뒤의 일. 겨레 고대발자취 어린 화정산 화정사를 바라고 유람버스에 올랐으나 이 버스는 화정산으로 가지 않는단다. 연도의 경대선곡(琼台仙谷)에서 내릴수 밖에  없다. 이것이 수석에 홀딱 반해 버린 계기가 되였으니 경대선곡 유람과 빗나간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처음 기분 잡친 상태로 버스서 내려 경대선곡 협곡에 들어서니 벽계수를 이룬 협곡은 어딜 보나 크고작은 바위돌들 구간이여서 정신이 번쩍 든다. 기분 잡친 때가 언제런듯 싶다. 바위돌 사이를 돌돌 흘러 내리는 산간의 맑은 물소리가 나를 부른다. 심신이 수석 쪽으로 쏠리니 경대선곡이 국가에서 첫패로 비준한 4A급 풍경유람명승구이고 천대산에서 가장 삐여난 풍경구라지만 나의 눈은 풍경구들이 아닌 유람길 바로 아래로 흐르는 벽계수 바닥을 훑는다. 벽계수는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조금만 더 내려가 보고 돌아서자, 돌아 서서 이곳 대협곡 구간을 잘 감상해야지.) 생각은 이렇게 해보지만 걸음은 자꾸만 아래로만 향한다. 멀리 내려 온 지금에 다시 돌아서서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인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저 아래 출구가 있다니 가는데까지 가고 볼 판이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저도 몰래 몇몇리 유람길을 조이니 협곡이 조금씩 트이면서 산간의 호수로 이름높은 팔선호(八仙湖)가 시야에 안겨든다. 유람길이 빗나가도 크게 빗나간것, 대협곡 구간을 잘 감상하고저  돌아선다는 것이 수석에 반해 혼이 빼앗겨 평지와 진배없는 경대선곡의 어구에 이른것. 나는 나절로 웃고말았다. 대협곡 구간을 다시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이 나무아무타불이 되였다. 호호호, 누군가는 낚시암에 걸리면 어떻다더니, 나는 수석암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가부다.      
381    탐석기(1) 천대산 국청사 아래 구간 따라 댓글:  조회:6066  추천:44  2011-04-16
탐석기 (1)   천대산 국청사 아래 구간 따라     절강 천대현성에서 북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천대산 남쪽기슭에 중국 불교 8대류파중 첫자리를 차지하는 천대종의 발상지, 한국과 일본 및 세계각지 천대종의 조정(祖庭)으로 알려지는 국청사가 있다. 국청사는 주위에 다섯 봉우리가 둘러 있고 좌우켠으로 시내물이 흘러 내리다가 국청사 풍간교 아래서 합수되여 제법 강물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런 불교의 성지에서 탐석에 나서 보리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은 4월 4일 오전이였다. 4월 3일 청명휴가를 타서 일가족 셋이 소흥서 쾌속버스로 두시간 좀더 달려야 하는 절강 림해에 가서 강남장성을 돌아 볼 기회를 가지였다.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 따라 날씨가 흐리며 온 하루 찬비가 내리여 으스스 떨린다. 이러구러 강남장성 답사를 마치고 귀로에 오르려니 천대산을 그저 스쳐 지날수가 없다. 이미 산 소흥행 버스표를 물리고 천대행 버스표를 샀다. 림해서 멀지 않은 천대현성에 이르니 이미 오후 늦을 때이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치기 바쁘게 우린 천대현 중심버스역에서 7선버스에 올랐다. 현성과 국청사와의 거리라야 2.5킬로미터여서 한참후 국청사에서 내릴수 있었다. 지난 몇년래 수차 다녀간 국청사, 앞장서 국청사의 종루, 미륵전, 우화전, 대웅보전과 제일 뒤켠 높은 곳 관음전 바로 옆에 자리한 “중한조사기념당”, 지장전을 안내하니 아직 시간이 많다. 집사람과 중한조사기념당에 깃든 고려 명승 의천 대각국사의 이야기, 신라인 지장보살 김교각 이야기, 국청사의 옛 신라원 자리 이야기를 하는사이 우리는 다시 국청사의 입구이자 출구로 통하는 풍간교에 이르렀다. 국청사 좌우켠은 모두 골물—시내물이 흐르는데서 국청사를 드나들자면 꼭 풍간교를 거치여야 했다. 이 풍간교는 당나라 시절 국청사의 고승인 풍간을 기리여 지어진 이름으로서 송나라 때에 돌다리가 놓여졌다가 청나라 건륭년간인 1765년에 수건을 거친 옛 돌다리이다. 200여년 풍상고초속에서도 풍간교는 그 모습이 여전하여 감탄이 절로 난다. 풍간교 다리우에 올라서서 사방을 일별하노라니 국청사 좌우로 흘러 내리는 시내물이 풍간교 아래 구간에서 합수하면서 꽤나 큰 돌밭을 이루고 있었다. 독실한 수석인인 나로서 돌밭을 보고 지나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 나는 풍간교 다리 아래 구간에서 강바닥에 내려가 보았다. 돌밭은 온통 수마가 덜된 돌들 세상이였다. 그대로 강바닥을 따라 한참 내리다가 또 하나의 돌다리 구간에 이르렀다. 돌다리 아래는 고인물 구간이여서 강뚝에 올랐다가 다시 강에 들어서니 강폭은 좁고 눈에 뜨는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 강 량안은 강남 유채꽃이 한창이여서 한폭의 강남 풍경화를 방불케 했다. 강바닥에 내려서기 전에  집사람이 카메라를 달라고 하더니 먼거리에서 강바닥을 훑는 나의 먼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국청사풍경구 입구를 앞두고 유람길에 올라야 했다. 비록 수석이라는 꼬리도 보지 못했지만 오랫만에 강남탐석에 나서 보았다는 기분이 그리도 좋을수가 없다. 절강 천대산 남쪽아래 국청사 구간 탐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380    선녀호입니다 댓글:  조회:4966  추천:53  2011-04-15
물안개 피어나는 드넓은 선녀호에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몸담구니향긋한 복숭아향에 호수도 취하누나
379    바닷돌 한점(부산 태종대) 댓글:  조회:5640  추천:41  2011-04-12
작년 여름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만난 아쉬운 돌한점 올립니다돌밭은 열심이 다니는데 아직 초보고 석복도 못타고 낳는지~영~~~ 좋은돌 만나기가 쉽지않읍니다더구나 이곳 강돌은 산지에가보면 돌보다 사람이더많고,바다에 나가도 돌 없긴 같지만 제가 사는곳이 바다와 가까우니 가끔 나가곤 합니다만,맘에 드는돌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고 가끔 소품 한두점하면 다행이구요회원가입인사 드리고 갑니다... 석명은 밤바다로 지엇습니다어두운 밤에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에포말을 보든듯하여~~~
378    아기고추 자랑 댓글:  조회:5908  추천:64  2011-04-09
산지: 광서 류주크기: 11 * 6 * 5성숙보다  미성숙은  신선함이  넘쳐나고천진하고  순수하여  나쁜짓을  아니하니어린아이  고추라고  흉보지를  마시구려
377    신비한 대자연속 남근녀근상 댓글:  조회:7594  추천:62  2011-04-08
               신비한 대자연속 남근녀근상   신비한 대자연속 남근녀근상입니다. 3월 18일, 조글로 블로그 "생태학적 자연풍경"의 사진을 옮겨 보았습니다. 올린 님의 리해를 바라면서 두만강수석회 수석코너에서의 보다 활기를 기대합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2010년 5.1절 기간 절강 신창 19봉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남근바위는 옳은데 가까이 접근할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이면 신통하게 찍었겠는데 유감스러웠습니다.   
376    수석 인물- 여자상 댓글:  조회:5855  추천:41  2011-04-06
'수석 인물- 남자상'의 속편입니다. 일부 제목은 저희가 나름대로 달아 준 것입니다.
375    수석 인물- 남자상 댓글:  조회:5938  추천:33  2011-04-05
 청명절이 되어 요행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간 이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훑어 보았습니다. 자아도취에 빠졌다가 인터넷에 올릴 충동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테마는 수석에 남겨진 남성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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