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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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꿀벌 파리 그리고 연변녀성 댓글:  조회:7298  추천:2  2011-07-25
꿀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병에 넣고 병굽을 밝은 창문쪽으로 향하게 하고 병을 눕혀 놓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꿀벌들은 병굽쪽으로 몰려들면서 출구를 찾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모두 병속에서 지쳐있거나 굶어 죽는다. 그러나 파리들은 불과 얼마 안되여 반대편 병목쪽에서 출구를 찾고 모두 밖으로 나온다. 꿀벌은 빛을 따라 밝은 쪽으로만 모여든다. 이런 꿀벌의 생리적습관이 그들을 죽음의 길로 이끈것이다. 같은 병속에서도 출구를 찾으려면 밝은 쪽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꿀벌이 대대로 지켜온 론리적인 사고다. 그러나 어리석다는 파리의 행동에는 전혀 론리가 통하지 않는다. 빛의 유혹도 그들에게 소용이 없다. 벽에 부딪치며 사방을 무작정 날아 다니가 마침내 운이 좋게도 유일한 출구를 발견하고 탈출에 성공한것이다. 총명함과 론리가 쇠망한 곳에서 거칠고 단순한 우둔함이 생존의 행운을 얻은 것이다. 생계란 본래 불합리에서 합리를, 혼란에서 질서를 추구하며 유지되는것이다. 변화무쌍한 생존환경은 때로 정상적이던 일이 예측하기 어려운 불가사의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생존과정이나 기업관리자들을 마치 유리병속에 갇힌 꿀벌신세로 만들듯 말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정연한 질서와 합리를 추구하기 보다도 저돌적인 행동과 무분별함이 오히려 위기를 돌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나 어떤 부문의 시비를 보면 쩍하면 《사전에 올랐는가?》며 선례에만 매달린다. 세상의 첫 대학교선생은 대학교졸업생이 아니다. 언젠가 한국의 모모한 어른이 연변녀성에 대한 불미한 의미지와 편견을 가지고 필자는 연변녀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필자는 꿀벌과 파리의 실례로 《연변녀성은 밝은 빛을 찾는 꿀벌의 생리적습관과 쉼 없이 꿀을 채집하는 꿀벌의 근면성, 벽에 부딪치며 사방을 날아다니는 파리의 분투정신, 꽃에만 앉는 꿀벌이 아니라 생계를 찾아 꽃에도 앉고 아무리 어지러운 곳에라도 앉을수 있는 파리의 다 적응성(다습성) 등을 모두 갖고있다.》고 답했다. 이에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던 질문자는 《역시 오선생이야!》하며 답자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파리의 정신에 감동됐던지 아니면 언제부터 찾으려는 연변녀성에 대한 답안을 찾았다는 기쁨에서? 결과를 초과하는 리론이 없다.
19    재미류학생 연변교육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댓글:  조회:7044  추천:6  2011-06-28
추천자의 말: 필자는 9년전에 모 학부모가 보내온 학생의 편지를 받은적이 있다.. 당시 이 편지를 받고 당년의 사회환경에서는 이 편지를 신문에 올리기가 불편하기에 시교육국이나 기타 관계부문에 보내라고 권고하고는 어째든 는 소녀의 꿈이 너무나도 기특하여 그 편지를 귀중히 소장하고 소녀의 앞날을 지켜보려 하였다. 그때의 소녀(김소영)는 현재 미국 류학학생이다. 그녀는 미국에 가서도 고향 연변을 사랑하고 연변의 교육사업을 관심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올해만도 두 번이나 연변교육관계부문에 교육관련 편지(글)를 보내왔다. 오늘 당년 소녀 김소영이 교원에게 올렸던 글과 미국류학중에 보내온 두 편의 글을 원문대로 독자들에게 올리며 연변, 연변교육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오기활]   리철정(가명)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읽기 싫으시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고 제 뜻을 알고 교육방법을 좀 고쳐주었으면 합니다. 오늘 저는 선생님한테 혼났었습니다. 온 세상이 사랑을 축복하는 성탄절에 저는 선생님한테서 내 인생의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복도에서 우리 반 남자애랑 발차기를 하며 논 것만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놀았다는 리유로 선생님이 저를 마구 때리는 것은 잘못 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생님에게 글을 올립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잘못이 있는데 그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꼭 맞아야만 합니까? 오늘 선생님한테서 맞으면서 말했지만 저는 선생님들이 학생을 때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론 학생이 틀렸으니깐 선생님께서 고쳐주셔야 하지만 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때리고 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많은 좋은 방법들이 있겠는데 왜 하필이면 학생들한테 손찌검을 대거나 욕을 해야 합니까? 우리 반 애들한테서 들은 얘기입니다. 전교 녀자들 중에서 제가 처음 선생님한테 대들었다면서요? 그리고 선생님은 때리기 시작하시면 끝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절 때리지 않으셨다고 생각 하시는데요. 그보다 더 세게, 더 배로 맞아야 때리셨다고 합니까? 나는 선생님이 정말 무섭습니다. 학생들한테 무섭게 보이기보다도 부드러운 선생님이라는 걸 보여주시면 더 좋지 않습니까? 그래 학생들이 틀리면 꼭 때리셔야만 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학생들의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우리를 중학생, 중학생 하고 부르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어린애입니다. 우리들에겐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사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선생님들이 사랑으로 학생들의 잘못을 알려준다면 아마도 반항할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학생을 때리기보다도 사랑으로 어루만져준다면 더 좋을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께서도 짜증을 한번 더 내시면 주름살이 더 생길것입니다. 짜증을 한번 내면 세포가 몇 만개씩 죽는다고 하더군요. 선생님도 좋고 우리 학생들도 기분이 좋게 자기의 잘못을 승인하면 더 좋은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은 물론 학생이 잘못했으니깐 때리였겠죠. 아무런 리유가 없이는 때리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은 잘못한 것이 없는가요? 선생님에게도 잘못이 있다면 그래 꼭 맞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선생님께서 학생들 잘못만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의 잘못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행동하면 그 다음 세기의 선생님도 역시 학생을 때릴 것입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응당 존경스럽다가 떠올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대다수 학생들은 선생님을 떠올리면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먼저 우리 학생들의 존경스러운 선생님이 되여 주십시요. 항상 선생님은 자신은 엄마, 아빠와 같은 분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선생님들도 계시겠지만 기실 부모 같은 선생님들이 그리 많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아야 할 선생님들은 없고 없어야 할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때리고 욕하는 것은 우리 학생들을 위해서라지만 기실 학생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학생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생님의 비유에 맞춰야만 합니까? 할말은 어디까지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들의 대부분은 학교에서 보냅니다. 학교에서 공부만을 배워주기보다는 사랑을 배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 하나가 맞는 것으로 다른 학생들과 또 우리 후배들, 그리고 우리 후대들까지 학교에서 맞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오늘 맞은 것을 행복으로 느끼겠습니다. 지금 사회에는 나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 나쁜 사람과 학생들을 언녕부터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셨다면 그들이 나쁜 길에 들어서 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식이 부족하다고 하기에 앞서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항상 사랑보다 지식을 앞자리에 놓습니다. 그래 사랑으로 충만되여야 할 학교에 폭력이 성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이 나보다 힘이 세다고 해서 내가 진 것 같아 보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한테 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나한테 하신 말씀과 행동은 나로 하여금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이겼다고 생각되게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선생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지만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드립니다. 나의 꿈은 내가 사랑하는 연길시의 시장이 되는것이랍니다. 나는 아름답고 사랑으로 충만된 연길시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저희 꿈이 실현될수 있게끔 도와주세요. 저는 모든 학생들에게 선생님한테서 맞으면 나처럼 할말을 꼭 하고 넘어가라고 선전할겁니다. 저의 조그마한 뜻을 리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2년 12월 25일 성탄절 저녁 19:03-- 2-8반  김소영 올림 교육국 국장님게 올리는 글 (1) 안녕하세요. 저는 1988년생 김소영이라고 합니다. 현재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교육을 받은것이 조금 틀릴수 있겠지만 조선족이 더 부유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은 선생님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공부를 할수록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는데 백성들이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할수 있게 하는 동시에 나라를 지키고 싶다면 시민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한 사람 한 사람 교육을 더 받았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적은 랑비를 하겠는가 생각합니다. 저는 탁아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연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거에 대한 저의 간단한 생각과 앞으로 국장님께서 한번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몇 가지 점에 대해 꼭 말씀 들이고 싶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통 털어 연변교육이라는 큰 명칭을 쓸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연길에서 다닌 학교들, 연길 담배공장 유치원, 연길시 신흥소학교, 중앙소학교, 연길시 10중 에 따르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이러합니다. 첫째, 한 학생으로써 존경스러운 선생님을 만나게 될 확률은 10% 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왜 학교 선생님들한테 꼭 님자를 부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농담도 던집니다. 그 만큼 지식을 빼고는 배울것이 없고 또 오히려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선생님들의 인격에 대한 평가가 낮아집니다.  둘째, 선생님이 학생을 향한 폭력은 하루빨리 금지 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선생님들한테 맞은 경험이 많은데, 솔직히 그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서 맞기만 한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은 것입니다. 더 상세하게 말씀 드리자면 연길10중 재학시절에 옆자리 친구랑 오목을 논 이유로 저는 선생님한테 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국장님은 그것이 내가 뺨을 맞을 리유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이것이 곧바로 시민들을 작은 것에 폭력적으로 변하게 하는 기초이고 원동력 아닌가요? 학생이 그 어떤 잘못이 있더라도 어린 성장과정에서 잘못을 알고 저지른 경우보다는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폭력은 오히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 개인의 경험에 의하면 특히 체육 선생님들의 생활은 폭력인가를 의심할 정도입니다. 셋째, 학부모 회의에서 선생님들이 가장 기초적으로 부모님들께 인식시켜 드려야 할 것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의 말에 귀를 기울리기의 첫걸음은 아무 조건이 없이 열심히 자식들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겁니다. 넷째, 특히 소학교 선생님들은 물질적인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변화가 연변 사회가 부를 향해 든든하고 탄탄한 기초 걸음을 떼는 것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으로 그 변화가 더 원활하고 매끄럽게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습니다! 나는 연변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월 김소영 올림 (미국에서)                     교육국장님게 올리는 글 (2) 안녕하세요? 오늘 바쁜 시간에 저에게 투자하신 시간을 후회되지 않도록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생각하며 정리해서 준비한 글이니 열린 마음으로 저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재미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를 할수 있는 시간이 되였으면 더 좋겠습니다. 잠깐 눈을 감으시고 혼자서 속으로 상상해 보세요. 저 앞에 어떤 사람이 보입니다. 붕붕하는 큰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가 서서히 멈추더니 한 남자가 내립니다. 머리는 길고 얼굴엔 수염이 길게 가득 났습니다. 그는 가죽쟈켓에 맞춰 긴 가죽 구두를 신었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 손에 문신도 여러 개나 있습니다. 사진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사람입니다.   자 이제 눈을 떠 주세요. 이 사람은 제가 미국서 저를 오랫동안 충격에 빠지게 한 사람인데요. 누구일까요? 강도? 같은 반의 낙제생? 아니면 깡패? 사실 이 분은 저의 철학 교수님이였습니다. 그 교수님의 존재성은 저에게 (내가 살고 있는 연길에선 저런 교수님을 만나볼수 있을까? )는 질문이 생기게 만들었는데요. 나의 결론을 여러분이 동의 하시겠는지? 아마도 동의하기가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심지어 저는 (연길사회에서 한 사람을 너무 쉽게 으로 만든다)는 생각까지 갖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철학선생님과 비교하며 우리(연변) 사회의 교수님들을 상상해 보면 다 비슷한 이미지가 아니였습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무색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저의 철학선생님은 단지 가죽쟈켓을 좋아하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문신을 좋아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취미일 뿐이지 그걸로 그 사람을 판단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습관이 되였더라구요. 하지만 그분은 충분히 저한테 많은걸 배워주고 나를 깨닫게 해주셨고 다른 선생님이 가르칠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특별한 분입니다. 그와 반면 연길의 교육현장, 학교와 집을 비롯해서 너무 쉽게 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교육이 자그마한 실수를 가르쳐 주겠다는 생각보다도 꼬투리를 잡고 늘어 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연길서 학교를 다닐 때 어떤 선생님들은 약한 자를 괴롭히는 비겁한 사람으로도 보였습니다. 분명히 우리 연변사회의 교육현실엔 문제가 존재합니다. 이하는 제가 느낀 몇 가지 문제점입니다. # 다양함의 중요성 # 감성적 폭력의 엄중성 아이들은 리해하기 전에 모방합니다. 이 밖에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 력사시간의 목적 지난 력사의 영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지 말고 실패의 력사를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에게 잘못을 승인할 줄 아는 용기와 그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방지하도록 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력사시간의 첫째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  불동의를 허용하다  학생들에게 어떤 관점에 대해 편하게 동의 안 할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은 바로 잡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아래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범학교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게 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그들에게 자기가 사회에 어떤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고 졸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선생님들에게 그들이 하게 될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자는 것입니다. 나는 연변의 교육을 관심하고 걱정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6월 김소영 올림. (미국에서)                                              
18    시장 <<보호신>> 댓글:  조회:6619  추천:7  2011-06-28
시장   오기활 한국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사무실천장에는 지난 3월부터 시장의 지시로 록음기능을 갖춘 CCTV를 설치해 시장의 모든 면담 장면과 대화 내용을 록화하고 있다. 는 이재명시장은 고 소개했다  이시장은 지방자치단체장(시장) 1년간 경험을 설명하며 며 고 설명했다. 이시장은 혜택을 보려고 찾아와서는 돈봉투를 내려고 잡도리를 하는 사람에게 사무실천정에 설치한 CCTV를 가리키며 고 하면 그 사람은 주춤하며 돈봉투를 건넬 엄두를 못하더라며  라고 부언했다. 이시장의 에 비춰 수뢰죄로 유기도형 15년에 언도된 안휘성립업청 원 청장인 당희민의 이런 솔직한 고백이 떠오른다. 백여 만원의 수뢰로 이란 별호까지 가진 당희민은 자기는 이 별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을 이렇게 고백했다. 자기의 흑심보다도 찾아온 손님들의 면목을 챙겨주는 당희민의 처세술에 된다.  우리 나라 국민경제가 곤난했던 1961년에 류소기동지는 정부관원들이 권리로 사리를 도모하는 현상을 엄숙히 비판하며 관청되거리와 관청술상을 다스리기 위해
17    참된 인격자 댓글:  조회:6849  추천:17  2011-06-20
참된 인격자   오기활 칼럼니스트 참된 인격자의 척도는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틀림없는것은 그가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손아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모습에 있다 남성이라면 녀성이나 아이들을 어떤 태도로 상대하는가? 상사라면 부하를 어떻게 다루는가? 고용주라면 로동자를 어떻게 대하며 교사라면 학생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리고 불우의 경우에 관용과 동정심을 어떻게 발휘하는가 등등에서 그 사람의 참된 인격이 판단되는 결정적인 척도라 하겠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시인 라보트가 사람들속을 지나다가 실수로 그만 어느 청년의 발을 밟았다. 그러자 화가 난 청년이 라보트의 뺨을 치니 시인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항할수 없는 상대를 괴롭히는 사람은 참된 인격자라로 할수 없다. 약한 자,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실은 비겁한 자들이다. 이런 비렬한 인간들은 조금만 형편이 펴지면 폭군으로 전변하기 쉽다. 마음이 올바른 사람들은 힘이 있어도 힘을 쓰는 방법을 확실히 자각하기에 힘을 쓸 일이 있어도 신중한 배려에 게을리하지 않는다. 참된 인격자는 부나 또는 권력으로 오만하지 않으며 성공해도 교만하지 않고 실패해도 그다지 락심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억지를 부리지 않고 청을 받으면 애써 돕고 또 의견이 있으면 당당하게 피력한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주고도 큰 소리가 없다. 일상 생활의 여러 가지를 희생시켜 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는 거기에 참된 인격자의 모습이 슴배여있다. 장춘서 돈을 벌고 고향에 돌아와 고향건설에 여생을 바치고있는 오기철은 (지금 촌장, 서기를 겸임) 서성촌의 예민익(倪民益, 23살, 한족)이 장기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정신병자로 취급받으며 어렵게 산다는 말을 듣고 그 가정을 방문하고 나서 가난하기로 말이 아닌 그의 가정에 사랑의 손길로 예민익의 언 가슴을 녹여주었다. 오기철은 평상시는 물론 명절이면 그의 집에 돼지고기, 밀가루, 과실을 보내 주고 민익에게 털옷, 신발, 양말, 모자까지 사주고는 또 억지로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몇년 묵은 때까지 깨끗이 밀어주었고 그의 일년 리발비까지 선불하였다. 오기철의 따스한 인정에 푹젖은 예민익은 끝내 오기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라 부르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주변의 20여명의 장애자들로부터 , , 로 불리는 오기철, 자기보다 지위가 낮고 10년을 하루와 같이 불우이웃을 돕는 그의 모습에서 오기철이야 말로 명실공한 참된 인격자라 하겠다.  
16    가장 위대하고 힘있는 사랑 댓글:  조회:6640  추천:42  2011-06-04
가장 위대하고 힘있는 사랑 오기활 칼럼니스트 일전에 한국 KBS 아침마당프로에서 천호식품 김영식회장이 자신의 성공사례로 고 한 말에 주목된다. 한국의 성공전도사로 대한민국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에 한창인 김회장은 1994년 부산에서 현금보유량이 가장 많은 100등안에 들었다. 그런데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기업들이 파산되여 3년 만에는 또 부산에서 빚이 많기로100등안에 들었다. 온갖 노력으로 10년만에 다시 년매출 500억원대 회사로 재생시킨 김회장을 지켜준 사람들은 가족이였다. 1998년 설날에 아버지는 선물로 넘어질줄 모르는 오뚜기정신으로 아들의 재생을 확신했고 안해는 며 남편에게 늘 화이팅만을 불러줬다. 이는 그가 역경에서 성공을 이뤄내고 절감한 느낌이다. 김회장은 회사도 대 가족이란다. 직원이 잘 돼야 회사가 잘 된다는 그는 천호식품을 세계제일의 회사로 세계 최고의 복지회사로 만드는것이 목표란다. 는 그는 회사의 녀직원들이 근무를 마치면 전문마사지사에게서 마사지를 받고 마일리지제도와 성과급제도로 년말이면 1명에게 1000만원, 2명에게 5백만원, 24명에게 100만원씩 성과급을 지급한다. 는것이 그의 다른 하나의 경영노하우다. 가정은 집이 아니다. 집이 있어도 가정이 없는 사람이 있고 집이 없어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 있다. 가정은 생활의 터전이요, 행복의 보금자리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생활의 뿌리가없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는 식물은 의지할데가 없다. 그래서 늘 방황하기 쉽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든든한 기초다. 모래위엔 화려한 집을 지어도 소용이 없다. 든든한 반석위에 세운 집은 태풍에 담과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기초까지는 뽑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초에 다시 집을 지을수 있다. 가정경영의 기초는 믿음이다. 자녀가 부모를 믿고 부모가 자녀를 믿어야 한다. 가족끼리, 형제와 자매끼리 서로 믿어야 한다. 가족만큼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없다. 가족들이 서로 속이고 감춘다면 그 가정은 오래 갈수 없다. 믿음의 조건은 사랑이다. 상처와 아픔은 가정에서 싸매진다. 가정이란 사랑의 기업이다. 사랑의 기업인 가정이 생산하는것은 행복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세상에 수출한다. 일류 안해가 일류 남편을 만들고 일류 남편이 일류 가정을 만들며 일류 가정이 일류 국가를 만든다.  
15    일억이 아닌 추억을 댓글:  조회:6579  추천:34  2011-05-30
일억이 아닌 추억을 오기활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면 그 자식은 패자가 된다》 《많은 귀공자들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부친의 재산을 물려받기 때문이다》 이는 나폴레온 힐이 부자아버지를 둔 아들들이 거개가 아버지만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한 말이다. 부는 행동을 자극하기보다는 행동에 방해되는수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부는 행운을 부름과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부자집 자식들은 태여 나서부터 돈과, 돈으로 살수 있는 걱정없는 환경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는 사실도 알고있다. 큰 재산을 상속받은 자식은 안락한 생활, 방탕한 쪽으로 흐르기 쉽다. 그들이 바라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갖게 되기에 생활상의 권태로 취미를 잃게 되고 허무에 빠지기 쉽다. 그들의 정신력은 늘 잠에서 깨여날 줄 모른다. 때문에 그들은 늘 물우에 떠돌아다니는 부평초와 같은 생활상(生活相)이다. 물론 부호자식들 가운데도 올바르고 생산적인 인물들도 있다. 부나 재산에 따라다니는 허무감을 자각하고 더욱 훌륭한 사업을 시작할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그와 같은 좋은 실례가 흔하지 않다는것이다. 유산의 피상속자인 자식이 일을 하지 않게하는것은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물론 부모들이 자식을 빈곤생활에 빠지는것을 막아주는것은 옳은 일이다. 허나 지나친 정도의 재산벽으로 그들을 인생에서 격리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게 스스로 인생에서 배우는 지혜와 건설적인 사업으로 보다 나은 생활을 해나가도록 기회를 창조해 주어야 한다. 필자는 리명달농민이 부자간이 《경제자립계약》을 체결한 후 《아버지 때문에 어제날의 분투가 있었고 오늘의 이런 아들이 있다》며 감사하다는 그의 아들 웅걸이와 한국의 대부자 김룡복이 《아들에게 유산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말에 《우리 아빠 멋쟁이!》라는 아들 김태룡에게 머리가 숙여진다. 나폴레온 힐은 《실패하고 재산을 잃었던 시절에도 뒤를 돌봐줄 유복한 아버지가 없었던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역경을 거치면서 강력한 선생을 만날수 있었다》고 했다. 자식을 나무처럼 홀로 살수 있게 해야 한다.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혼자서 가지를 벋고 잎을 떨구며 속살을 키우게 말이다. 자식에게 일억(유산)이 아닌 추억을 남겨주자.  
14    이런 공무원의 프로의식은 몇%일가? 댓글:  조회:6989  추천:56  2011-05-21
  이런 공무원의 프로의식은 몇%일가?    오기활년전에 친구한테서 모 “어른”을 접대할 일이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청탁전화를 받은적이 있었다. 접대연고를 물으니 대답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었다. 얼마전 그의 딸이 일본서 6년간 일하다가 유치원에 다닐 3살 난 아이교육 때문에 귀국해 아이 호구를 올리려고하니 관계부문에서 계획외 출생이라며 서류를 해주지 않는다는것이다. 이때문에 친구는 모 령도를 통해서야 수속했다며 그 령도를 접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우리 민족이 자녀교육을 위하여 귀국했는데 칭찬을 해도 다 못할망정 호적마저 못 올리게 하다니... 너무나도 한심하다, 접대는 무슨 놈의 접대냐?》며 막아 버렸다.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성장에 비춰 해당부문에서 7, 80년대에 성행했던《제왕절개수술 대회전》등 산아제한정책의 극좌집행을 반성한 걸로 알고있다. 80년대 초, 우리가 둘째를 낳았다고(그것도 7년 터울로) 찾아와서 훈계하던 가두 주임이 지금도 우리를 만나면 그때의 《잘못》을 반성하더니 한번은 76세 고령에 우리 집(4층)까지 찾아와서 《반성》하고서야 시름을 놓았단다. 가두 할머니의 《반성》과 모 공무원들의 행실이 너무나도 대비된다. 지금 보면 이런 저런 《특권》 파들이 응당 해줘야 할 백성들의 일을 해주지 않으며 물어 보지 않으면 되는 일이 물어 보면 처음부터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안 된다》의 뒤에 어떤 《보답》 이 따르면 《된다》 니 말이다.. 공무원은 국가 또는 지방차치단체의 공무(여러 사람에 대한 사무)를 담당집행하는 일군이다.     필자가 한국의 박사장한테 연변투자환경을 소개했더니 한참 듣던 박사장은 《기술적으로 보나 정신적으로 보나 우리 회사의 연변진출은 완전히 가능하다. 연변에는 우리 회사에서 7년간 양성해낸 연수생들이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감히 진출하지 않고있는가에 대해 지역 공무원들의 프로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라서이다》라고 말했다. 박사장은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여건이 바로 간접여건으로서 사회간접여건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의식상태가 더욱 중요한 간접여건이다》 《공무원들의 사업자세는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가까운 것부터, 쉬운 것부터 고쳐야 한다.》고 부언하였다. 얼마 전 주에서 열린 연성환경을 다스릴데 관한 사업회의에 비춰 박사장의 상기 말을 추천하면서 상급의 《지령》이 없었다면 호적수속을 안 해줬을 그 공무원의 프로의식이 몇 %가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면 될지 착잡하다.
13    상대를 존중하라 댓글:  조회:7408  추천:54  2011-05-17
상대를 존중하라오기활 그제께 일이다. 모모의 장례식을 끝내고 음식을 쓸 때다. 한상에 앉은 여러 부문의 <<장>>을 지낸 분의 존칭이 없는 말투에 곁 사람들마저 민망했다. <<너를 술이나 붓으라고 이상에 앉혔지 곱다고 앉혔는가…>> 한두살 나이가 아래인 전임 촌장과 하는 말이다. <<야, 우리 둘에게 술을 붓어라…>> 회계를 지낸 50대중반 녀성과 하는 말이다. <<… …>> 동년배로 기대이하의 취급을 받은 당사자들은 오히려 그의 면목을 살려 일언반구도 없이자리를 뜨는것으로 기분을 달랬다. 감정동물인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 허영심, 수치심, 질투심을 갖고있다. <<삶을 성공을 하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한다. 얼마전에 읽은 기사다. 직장인 1000 명을 설문조사대상으로 <<기업문화를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59.1%가 직원간의 배려와 존중을 해야 할 일로, 30.5%가 <<권위주의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답했다. 이런 실례가 있다. 김종철이라는 사람이 소고기장사를 하는데 하루는 두분이 고기를 사러왔다. 먼저 온 분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임마, 종철아 고기를 한 근 떠라>> <<예, 그럽지요.>> 이어 다른 분이 상대와는 친한 신분이지만 나이가 지긋하니 함부로 말하기가 거북해 했다. <<김서방, 나도 한근을 달아주시게.>> <<네>> 역시 기분좋게 대답하며 고기를 잘라줬는데 먼저 분이 볼라니 자기의 고기떵이가 그 분의 것보다 더 작아보였다. 이에 불쾌한 볼멘소리로 따졌다. <<임마, 같은 한근인데 어째 저사람에게 더 많냐?>> 김종철이가 답했다. <<그거야 손님의것은 종철이가 벤것이고 이 분의것은 박서방이 뻰것이니 다를수밖에 없지요>> 일상 생활에서 이런 현상이 흔하다. <<어이, 술잔을 가져오오!>> <<이봐, 차쑤이를 갖다 줘!>> <<… …>> 이런 명령식으로 타인에게 하는 말투는 상대에게 반감을 준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되도록 <<죄송합니다만>> <<수고스럽지만>> <<실례입니다만>> 등 존경어를 쓰면 상대도 기분이 좋아진다.. 성공기업의 최고 경영원칙이 <<인간경영>>이라면 최고 인간경영은 칭찬하고 존중하는것이다. 상대를 존중함은 앞뒤로 열리는 문과 같다.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그도 존중받지 못한다. 그런데 상당한 사람들이 남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존중을 받으려고 애를 쓴다. 그런 일방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마음을 얻는 최고의 비즈니스도구는 존중이다. <<최고격려자>>로 되라. 최고격려는 고품격 리더의 필수조건이다.  
12    어머니의 사랑 댓글:  조회:7222  추천:44  2011-05-17
어머니의 사랑 오기활 어머니를 모르고 자란 필자가 어머니의 사랑을 쓰려니 마음이 꺼리낀다. 어머니는 내가 <<엄마>>라 부르기전에 타계했으니. 그래서 서너살때 2년도 안되는 계모와의 생활에서 계모를 <<엄마>> <<새엄마>>가 아닌 <<훗엄마>>라 불렀고 약혼해서도 장모님을 <<가스엄마>> 아닌 <<로인님>>이라고 불러 처가편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아무튼 나의 입에선 엄마란 말이 오를줄 몰랐다. 어머니의 사랑을 내눈으로 맛보기는 지난 4월 8일, 안조카(최정화)의 첫 출산때다. 처음 아기를 받아 안은 산모는 울음이 앞섰고 후에도 산모는 부모에게 술을 부어 올리고는 눈물로 말미를 흐리웠다. <<저도 인제는 어머니가 되였습니다… 아무튼 아들애를 잘 키워야 하겠는데…>> 어머니의 긍지와 사랑, 책임으로 뒤섞인 눈물이였다. 이런 얘기가 있다. 먼 옛날 하늘의 신(神)이 천사(天使)더러 인간세상에 내려가 가장 아름다운 3가지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천사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으로 꽃, 아기웃음, 어머니사랑을 선택 하였다. 천사는 이 3가지를 아름다운 가지고 먼 길을 떠났다. 머나먼 천국이라 오랜만에 신의 앞에 갔을 때는 이미 아름다운 꽃은 시들어버렸고 아기도 자라서 더는 아기가 아니였다. 그래서 신은 변함이 없는 어머니의 사랑만을. 인간세상의 가장 아름다움으로 받으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다. 인간세상에는 친우간, 이성간, 형제간, 사제간… 등 이런저런 사랑이 많고 많다. 인간은 넓은 사랑의 마당에서 사랑을 먹으며 삶을 연명한다. 그런데 그 넓은 사랑마당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주고 또 주는 최고의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상의 사랑이다. 결혼후 부인의 자식사랑은 주고 또 주어도 아쉬움을 남기는 주고픈 사랑이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받지 않고 주면서도 기뻐하는 무상의 사랑이였다. 어머니는 언제 한번 자식들 앞에서 바늘구멍만한 공로장도 따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처럼 퍼내도 마를줄 모른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한마디 말에서 얼었던 마음을 금새 녹인다. 어머니의 사랑은 본딸수 없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처럼 높고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따를뿐 원색 그대로 본딸수 없다. 사랑은 자기라는 나무에서 열매를 맺는다. 사랑을 가꾸는 사람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열리고 따뜻한 말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친절의 열매가 열리며 타인을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는 협력의 열매가 열린다. 이 모든 열매는 사랑이란 나무에 열린 열매들이기에 더없이 순결하고 아름답다. 인간이 사랑의 본질을 빼버리면 남는것은 추뿐이다. 왜냐면 사랑은 모든것의 기본이고 생성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오는 <<어머니절>>을 맞으며 명시 <<어머니>>를 자식들에게 추천한다. 어머니 한 몸이였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였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줄 어이 알았으리.   쓴것만 알아 쓴줄을 모르는 어머니 단것만 익혀 단줄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여나면 어떠하리.  
11    책속에 길이 있다(오기활) 댓글:  조회:7460  추천:66  2011-05-03
책속에 길이 있다 오기활 올해 89세고령인 김창하농민은 <<읽지 않으면 생각이 마비된다>>며 온 가족들의 독서를 이끌어준다.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며 농사를 한 보람으로 김옹과 그의 아들(희성)은 주변서 과학영농의 엘리트로, 온 가족이 <<동북과학기술신문>>에 적을 올렸다. 이스라엘이 강한 리유는 그들이 <<읽는 민족>> 이기 때문이란다. 그들에게는 <<당신이 지식을 쌓지 않으면 당신의 삶을 감소시키게 된다>>는 명언이 있다. 읽지 않으면 생각되지 않는다. 요즘은 인테넷과 텔레비죤의 영향으로 읽기보다는 보는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생각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기에 어느 학자는 텔레비죤을 <<바보상자>>라고 말한다. 원인은 텔레비죤은 반응만 있기에 모든 가치기준이 <<재미>>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란다. 인터넷, 텔레비죤에만 익숙해지면 판단의 기준이 <<재미있다, 없다>>에만 국한된다. 그래서 자기 생각은 사라지고 남이 생각한것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복사하는것에만 익숙하게 된다. 창조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읽고 가르치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그 훈련을 통해 마비된 생각을 행동하고 세상의 깊이와 넓이를 알고 세계속의 자신을 발견, 창조, 다스리는 강자로 만들어야 한다. 연길 성보호텔의 김성순총경리는 워낙 소학교 3학년공부밖에 못한 불행아였다. 그러나 그는 간고한 농촌에서도 독서만은 견지한데서 19살에 조선어와 한어식자 수준이 어느 정도에 달했다.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자 그녀는 4년 련속 시험을 쳤으나 번마다 락방했다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2년간의 노력으로 연변대학에 입학해 <<원로학생>>으로 불리웠다. 그는 또 경영인으로 책읽기를 견지한데서 연변대학 석사연구생, 한국 호서대학 경영학박사학위까지 따냈다. 치렬한 상전(商戰)에서도 불황을 모르는 <<성보경영술>>은 결책자들이 부지런한 책읽기와 부단한 생각으로 <<핵심경쟁력>>을 창출한것이다. 김성순은 말한다. <<책을 읽으라. 책을 읽고 느끼면서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는것이 자립성수립의 시작이다.>> <<우승을 위하여 책을 읽고 또 읽으라. 지식경제시대의 경쟁력은 책읽기에서 온다. 책속에 길이 있다.>> <<아름다운 인간이 되려면 내실을 굳히라. 내실을 굳히는 방법은 책을 읽는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향기를 풍긴다.>>  
10    1=300의 계시 (오기활) 댓글:  조회:6504  추천:45  2011-04-22
1=300의 계시 오기활 칼럼니스트 지금은 소비자중심시대다. 국외의 어느 상업전문가는 다년간의 조사연구를 거쳐 이런 결론을 얻었다. 즉 고객 한사람이 자기 주위의 300명 사람에게 직, 간접적인 시장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상인이 고객 한명을 얻는것은 곧 300명의 정, 반면의 홍보원을 무상 얻는 셈이란다. 그러니 수학적으로는 당치않는 <<1=300>>은 상업의 흥망에 관련되는 보다 중요한 공식이란다. 고객 한사람을 잘 대해주는것은 도마도를 주고 석류를 얻는것이 된다. 연태시 장유포도술공장의 창시인 장필사는 원래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상인거두였다. 초창기에 그는 술집을 경영하였는데 화란적 청년군관이 늘 이 술집에 다니며 속풀이술을 마시군했다. 그런데 이 청년군관은 때로는 술값을 내지 않을뿐더러 가끔 가다가 사단까지 일으켰다. 장필사는 그에게 정녕 말못할 사연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수하의 일군들에게 술값을 꼭 내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얼마 지나 장필사의 이런 처사내막을 알게된 청년군관은 너무나도 감개무량해 하였다. 그후 몇년이 지난 어느날 장필사는 신임총독의 초청장을 받고 총독부에 갔다. 그런데 생각밖에 몇년전의 그 청년군관이 신임총독으로 부임돼 자기를 초대할줄이야?! 총독은 장필사의 당년의 도움에 감사를 드렸고 그 후에도 사회교제활동에서 장필사를 찬사하며 여러모로 도왔다. 그래서 장필사는 <<내가 명망이 높은 상업거두로 발탁된데는 신임총독의 도움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 당년에 장필사가 사단까지 일으키는 그 청년군관을 술집에서 내쫓았다면 후날의 보답이 불가능함은 불보듯하다. 매 하나의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경영자의 담식과 자질의 체현이다. 400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일본 스미또모상사는 400년 력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세가지 정신중 첫째가 자신의 리익만을 생각지 않고 사회와 고객을 생각함에서 회사의 신용을 굳히는것이다. 1=300은 우리들에게 <<서비스는 결국은 자기를 위한 서비스다>>는 제시를 준다. 가장 현명한 리기주의는 <<먼저 남을 주는것>>이라 하겠다.
9    류소기의 청렴처방 (오기활) 댓글:  조회:7338  추천:53  2011-04-16
      류소기의 청렴처방                            오기활 칼럼니스트   는 전임국가주석 류소기동지를 회상하는 문장에서 이런 글을 실었었다. 우리 나라 국민경제가 곤난에 처한 1961년의 어느날, 류소기동지는 하남성 책임자들과의 담화에서 일부 정부관원들이 권리로 사리를 도모하는 현상을 엄숙히 비판한후 긴장한 상품을 으로 빼낸 관원들의 책임을 추궁할것을 제기함과 동시에 관청되거리와 관청술상을 다스리는 두가지 을 내놓았다. 첫째, 상업청에서 한개 현의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 물건들이 어디로 갔다는것을 군중들에게 똑똑히 공개해야 하는데 매월 1 차례씩 공개해야 한다. 둘째, 관원들이 것을 명세장을 만들어야 한다. 명세장에는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에 중화인민공화국주석 류소기가 하남성에 왔을 때 식사를 배동한 사람이 누구였고 돈을 모두 얼마를 썼는가를 밝힌 다음 그 명세장을 벽에 붙이고 신문에 실어야 한다. 1961년은 우리 나라 국민경제가 곤난한 시기였는데 일부 관원들은 대신 를 하거나 것에 열중한데서 류주석은 분개한 나머지 분연히 이런 을 내놓은것이다. 60년대나 지금이나 에 걸린 들은 모두 권리로 을 산것인바 권리로 사리를 도모하고 관직을 매매한다. 이 에 걸리는 들에게는 이라 는 공동한 노하우와 군중을 두려워하는 공동한 가 있다. 오늘의 , , 의 성질과 악과는 당년과 비슷하다. 다르다면 이 여러 가지로 늘어나고 이 더 교묘하며 이 더 잦고 더 고급적이라는것이다. 목하 당중앙에서 손을 댄 치료에 류소기의 유효기가 지나지 않았다. 언젠가 도문시우전국 박만송국장이 종업원대표대회에서 실사구시적으로 전년의 초대비를 공개한것이 종업원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만큼 이 약효가 좋았음을 설명한다. 국가주석의 은 보약이 아니다. 그래서 관원들이 먹기를 꺼린다. 관원들이 을 쓰자면 박만송과 같은 상당한 결심과 담략이 있어야 한다. 귀에 거슬리는 말은 행동에 리롭고 입에 쓴 약은 몸에 리롭다.    길림신문        2011년 4월 15 일
8    《진정 감동을 먹었습니다!》 (오기활) 댓글:  조회:6939  추천:41  2011-04-12
《진정 감동을 먹었습니다!》 -오기활기자심리학을 전공한 오룡걸이 본 일본국민 A B C 도문적 오룡걸(35)씨가 일본서 류학공부를한지도 10여년이 된다.용걸씨는 동경중앙대학에서 심리학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 동경의 모 학교에서 심리학을 강의한다. 지난 3월 11일, 일본의 강진과 쓰나미로 3월 20일에 귀국한 그는 요즘 학교측의 요청으로 4월 11일에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4월 10일 오후, 기자는 룡걸씨 만나 특대강진과 쓰나미발생후 일주일간에 그가 느낀 일본인상을 들어 보았다. 《나는 중, 일, 한 비교문화에 흥취를 가집니다.》용걸씨는 이런 화두로 《진정 감동을 받았다》를 렬거했다. 눈물 없는 할머니 이번 쓰나미는 일본국민들의 웃음마저 쓸어간듯 하였다. 대재난을 겪는 일본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한결같이 굳어졌다. 서로가 무슨 말을 해도 아주 심중하였다. 일본 텔리비에 보도된 감동사례다. 일본구조대(자위대)가 어느 할아버지의 시체를 찾아가지고 주인할머니를 찾아갔다. 령감의 시체를 만난 할머니는 먼저 령감의 시체에 묵례를 하고나서 다시 자위대한테 몇번이나 허리굽혀 묵례를 할뿐 얼굴에 눈물한점 흘리지 않았다. 《무정》해서? 아니였다. 할머니는 울음을 자제하였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할머니의 말씀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것만도 얼마나 행운스럽습니까? 또 남편의 시체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럽습니까? 그 많은 사망자나 실종자에 비하면 그래도 내가 행복하지요...》 용걸씨는 할머니의 《행복관》에 진정 감동을 먹었단다. 《화장실을 리용하십시요》 일본사람들은 웬간히 가까운 친구가 아니면 절대 손님을 자기집에 모시지 않는단다. 이번 특대지진에 교통이 마비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걸어야만 했다. 룡걸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생각 밖에도 이번 지진에 생존한 도로의 주택가에는 《우리집 화장실을 리용하십시요》 라는 안내문들이 곳곳에 있더란다. 용걸씨는 《화장실안내문》으로부터 《나 속에 우리가 있고 우리 속에 내가 있는》 일본국민들의 함께하는 높은 소질을 또 한번 직접 체험했단다. 급급한 출군족들 이번 지진은 전철을 포함한 공공교통망을 마비시켰다. 용걸씨는 《이곳, 나 같으면 수십리나되는 출근길이 교통마비로 회사원들이 출근을 못하는것이 당연할 것인데 일본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고 했다. 지진이 일어난 이튿날, 사람들은 아침 다섯시에 출근길에 올랐고 총총걸음으로 걸음을 재촉 했다. 또 전에는 볼수없던 녹쓴 자전거들이 줄을 이뤘다. 사람들은 자가용을 사용할수 없으니 집에 처박혀있던 《녹쓴 자전거》를 동원해 출근하는 것이였다. 세인들이 다 알고있는 140년만의 최악의 재난인데도 일본국민들은 출근의 직책을 재해의 핑계로 버리지 않았고 단 앞당겨 출근길에 오르고 총총걸음과 녹쓴 자전거로 출근과 시긴을 보장하였다. 고상한 택시운전수 지진은 재해지역의 교통뿐이 아닌 통신망도 마비시켰다. 용걸씨에게는 은행에 출근하는 R씨라 불리는 중국친구가있다. 지진이 일어난 날 R씨는 기타 은행원 3명(일본인)과 함께 퇴근길에 올랐다. 이들이 니혼바시에서 고엔지로 갈때다. 숱한 인파속에서 헤매치던 R씨 일행중의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안달아났지만 이들은 잃어버린 친구를 찾을래야 찾을 방도가 없었다. 셋이서 한참 볶아치다 길가에 서있는 한 택시를 발견했다. 이들은 요행을 바라고 달아갔지만 운전수가 없었다. 다시 주위를 찾아보니 운전수가 공공전화실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이 택시기사는 핸드폰이 통하지 않는데서 공공전화를 리용해 집식구와 련계를 달려고 묵묵히 서서 초조한 가슴을 달래고있었던것이다. R씨네가 동무를 잃어버린 사연을 듣고 딱해하던 택시기사는 그냥 집식구들과의 련계를 포기하고 이들을 싣고 길을 떠났다. 용걸씨는 중국, 일본, 한국의 재난사를 대비하면서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를 통해 일본국민이 자국민의 공공도덕과 공공질서현실을 세계에 전시했다며 선진국, 선진국민들에게서 받았다는 깊은 감동을 몇번이나 반추했다.
7    술 만세! 만만세!!(오기활) 댓글:  조회:8823  추천:51  2011-04-11
                 술 만세!  만만세!!  나는 1982년에 농촌에서 를 수립할 때 라 불리운 애주가이다. 항간에서 로인들이 는데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는 누구한테 술에 본적도 크게 취한적도 없다. 그래서 연변일보사 홍춘식선배님이 고 늘 말씀하였다. 술은 정치와 생활에 불가분이다 고 한다. 그만큼 술은 나라정치와 개인생활을 떠날수 없다. 술의 이중성을 표현한 명언을 적어본다. -술은 피곤한 령혼의 오아시스, 고뇌로 얼룩진 상처를 달래는 감로수, 삭막한 삶의 윤활유, 악마가 보내준 선물, 범죄의 아버지, 령혼을 황페시킨 독약, 시의 원천, 시름을 잃게 하는 망우물(忘憂物), 불후의 예술을 창조하는 원천,,, 등 나는 술을 허나 절대로 억지로는 권하지 않는다. 좋은 음식은 좋게 먹어야 한다. 술은 사랑 우정의 상징이다 아세아 한국㈜내쇼날프라스틱 림채홍회장은 고 한다. 는 설과 같이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면 술을 잃는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안 권하면 사람을 잃는다. 술은 절대로 강권하지 말아야 한다. 24년전에 썼던 칼럼을 적어본다. - 시간: 1986년 12월 29일, 장소: 모 시 기관당위 송구영신연회 술잔이 몇배 돌자 이번 순으로 제일 높은 지도자가 술을 붓는다. > 술잔을 받고 재간이 없다며 딱해하는 이다. 술잔을 지켜보는 서기, 곁군들의 압력에 할수 없이 잔을 쭉- 낸다. 서기님의 뒤를 이어 급에 따라 붓는 어른들의 술잔이 이어진다. 서기님의 술을 냈으니 다른 상급분들이 붓는 술을 내지 않을수가 없었다. 술상에서 상급이 하급을 이렇게 관심할줄을 몰랐다. , 을 마시는 그 모습이 구차했다. 이튿날에 오간 얘기다. 실로 대접이 토역(土役)으로 된셈이다. 지나간 글이지만 오늘봐도 생각이 달라진것이 없다. 술은 남편에 비유되고 술잔을 부인을 뜻한다고 한다. 녀자가 깨끗한 술잔에다 남성에게 정성껏 술을 올림이 이런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의 를 부정한다. 는 위생에도 불결하다. 술은 사람 됨됨이를 가늠한다 옳은지는 몰라도 는 말이 있다. 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은 사람은 신용없는 사람, 술을 마시고 우는 사람은 인(仁)이 없는 사람, 술을 마시고 화를 내는 사람은 의(义)롭지 못한 사람, 술만 마이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례의 없는 사람, 술을 마시고 따지고 드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다. 고한다. 술은 형태는 물이지만 마시면 불, 혹은 기타로 된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있는 얘기다. 옛날 노아라는 사람시대에 큰 홍수가 졌다. 그 홍수로 노아의 가족 여덟식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심판(죽음)을 받았다. 그후 노아가 많은 포도원을 일궜는데 마귀들이 몰려와서 포도나무에 양 피, 사자 피, 돼지 피, 원숭이 피 순으로 거름으로 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포도원료) 처음에는 양처럼 온순하고 다음은 사자처럼 포악하며 그 다음은 돼지처럼 미련하고 나중에는 원숭이처럼 별짓을 다한다. 그래서 는 욕까지 있다. 무주상심 이딸리아 캄포바소가톨릭대학 아우구스토 디카스텔루오보박사 연구팀은 총 100만명의 샘풀과 9만 400여명의 사망자를 대상으로 한 34건의 대규모 조사자료를 토대로 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늘 이런 말을 한다. 담배는 페를 상하게 하고(煙伤肺) 술은 간을 상하게 하며(酒傷肝) 술이 없으면 마음이 상하게 된다(無酒傷心). 심장이나 마음이 상하면 절대 안된다! 술을 마시는 지혜 누구에게나 다 약이 되는 술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고 말한다. 곤난한 시대에 조선족 주정뱅이가 많았던 원인이 이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조선족들은 비싼 안주를 못먹고 눅거리 술을 먹다보니 먼저 취하고 빨리 취하기 마련이다. 나는 술을 한때도 거르지 않는다. 밥을 먹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기 위해 밥을 먹는다. 식후 술이나 물안주에 마시는 술은 술이 헤풀정도다. 술은 천천히 마셔야 한다. 술 주(酒)자를 보면 술은 닭이 물을 마시듯 마시라는 뜻이다. 술은 멋으로 분위기로 마신다. 성공을 경하할 때는 기쁜 분위기에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송별상에서는 기분을 위하여 저마다 한곡씩 넘기며 멋으로 마신다. 나는 노래방보다는 앉은 술상에서 수저반주에 흘러간 노래를 부르며 마시기를 즐긴다. 자리를 옮기는것은 질색이다. 그래서 나를 위해 2, 3차를 하겠다면 나는 가 아닌 라며 거부한다. 차려놓은 안주를 버리고 다른 장소를 찾으면 랑비다. 주독, 숙취 다스림 1996년 말, 한국(주)두산경월을 취재할 때 적은 기록이다. 두산경월회사에서는 70여년의 실천과 사회공모를 통해 을 이렇게 정리했다. 인체에서 분해할수 있는 최대 알콜량은 한시간에 25미리리터, 25% 소주로 환산하면 100미리리터(2잔정도)다. 알콜은 체내에 흡수된후 먼저 알데히드로 전화된후 초산으로, 나중에 물과 탄산가스로 산화된다. 술은 위에서 약 20% 흡수, 나머지는 소장에서 빨리 흡수된다. 주독을 뽑는데는 갈근즙(葛根汁)이, 숙취에는 인삼,꿀물,오이가 좋다. 간장보호는 오두탕이다.(칡, 감초 각 600그람, 관중32그람,검정콩,누런콩, 푸른콩, 팥,녹두 각 40그람, 10리터 물에 푹 고은 다음  두고 마신다) 자네 집에 술이 있거든 / 나를 부르소 / 초당(草堂)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를 부르리/ 백년 덧시름 없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는 어느 음악가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렇게 읊조린다.  무주상심! 적량유익!(無酒伤心 适量有益!) 고금중외에서 만중이 목이 터지도록 왕이나 령수 만세를 높이높이 불렀건만 자고로 세상에 이 없었다. 허나  만은 로 이어질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오기활             길림신문 2006년 12월 26일 (본문은 동북3성 조선족술문화응모작품임)
6    <<정부를 비평하라>> 댓글:  조회:7016  추천:45  2011-04-08
<<정부를 비평하라>> -오기활 길림신문 고급기자  지난 3월 14일, 온가보총리는 중외기자회견에서 <<당전 우리의 최대위험은 부패에 있다>> <<나는 국가의 운명은 민심에 달려있고 인민들의 원망을 해결하고 인민들의 념원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조건을 창조해 인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비평하고 감독하게 해야 한다고 인정한다>>고 하였다. 언젠가 호남성 장사시에서 <<전 시 당원지도간부렴정교육대회>>를 소집하고 권력, 금전, 녀자들로 락을 부린 호남성 침주시 전임 부시장 뢰연리가 죄수복을 입고 주석대에 올라 자기의 경험교훈으로 전 시 당원지도간부들에게 생동한 렴정<<교육>>을 하였다는 기사가 <<길림신문>>에 실렸다. 뢰연리는 침주시 부시장직에 오른후 9년사이에 30여차에 걸쳐 600여만원을 수뢰하였다. 일전 인민넷 <<7일반부(七日反腐)>>는 <<국가개발은행 원 부행장이 200만원을 내놓으며 죄를 승인>> 등 지도간부 부패관련기사를 수두룩히 올렸다.. 당정간부들의 간부부패를 화제로 다룬 어느 술상에서 오간 얘기다. <<6,70년대에 자본주의길로 가는 당권파를 잡아내기 위해 대중을 발동하여 허무한 <문화혁명>을 했다면은 지금 바로 대중을 발동하여 부패한 당권파를 잡아내는 확실한 문화혁명을 해야 한다>> <<창녀들은 그래도 자기의 몸을 팔고 돈을 버는데 부패간부는 인민이 준 권리로 제 염낭을 챙긴다>> <<반부패는 영원한 주제다.>> 반부패는 <<영원한 주제다>>가 천진만확(千眞萬確)이라 하겠다. 2005년 관직매매로 전국을 들썽케 한 흑룡강성 수화시 당위서기 마덕의 관직매매에 참여한 관원이 무려 256명에 달한다고 하니 관직매매가 얼마나 엄청한가. 관리자의 제1생명은 청렴이다. 송나라 려본중(1084-1145, 시인, 학자)은 1000년전에 벌써 <<벼슬살이를 하는 방법은 오직 세가지다>>며 <<첫째는 청렴, 둘째는 신중, 셋째는 근면이다. 이 세가지를 알면 몸가짐을 안다>>는 <<벼슬살이처방>>을 내놓았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인류의 발전사는 권리와 권력의 쟁탈사, 부패와 반부패의 투쟁사다. 진정한 선진국은 청렴국가를 건설하는것이다. 하여 유엔은 2003년 12월 9일에 90여개 회원국이 멕시코에서 <<유엔반부패협약>>을 제정, 이 날을 <<세계반부패의 날>>로 정하였다 반부패력량의 근본은 민중에 있다. 연변 주규률검사위원회에서 공보한 통계에 따르면 백성이 신소, 제보한 안건 572건가운데서 부현급이상 간부와 관련되는 사건이 5건이였다. 327건을 조사처리, 9명을 사법기관에 이송하고 363명에게 각종 처분을 주었다. 중경시 <<암흑타격>>행동에서 군중들의 고발안건이 1만여건, 그중 80%가 실명고발을하였다. 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리롭게 여긴다. <<집안을 이루는 도는 검소와 근면이며 정치의 요체는 공정한 청렴이다>>를 정부관원들에게 추천한다.
5    백성의 지도자들 (오기활) 댓글:  조회:7537  추천:52  2011-04-02
백성의 지도자들 오기활 길림신문 고급기자   나는 남들로부터 이런 부탁을 곧잘 받는다. <<나(그)를 위해 좋은 말을 해달㈜라>> <<우리를 위해 할 말을 콱 해달라>> <<좋은 말을 해달라>>는 나더러 누구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달라는것이고 <<할말을 콱 해달라>>는것은 백성을 위해 할말을 꼭 해달라는것이다. 나를 놓고 말하면 이런 부탁은 <<위공대변(爲公代辯)>>하느냐 <<위사대변(爲私代辯>>하느냐를 분별하는 시금석이라 하겠다. 흔히 상급에서 시찰이나 검사를 온다고 하면 당지의 어른들이 사전에 시찰대상에게 <<보희불보우(報囍不報忧)>>를 지시 혹은 암시를 한다. 즉 좋은 말만 하고 나뿐(?)말은 말라는 눈치다. 그래서 당사자는 없는것도 있다고 적은것도 많다고 안 한것도 했다며 입발린 말만 한다. 그 결과 현지어른들은 상급에서 치적을 얻고 백성의 불신을 얻게 된다. 연변의 초대주장 주덕해동지는 당과 정부앞에서 <<찬송가>>만이 아닌 <<고충가>>도 불러 당과 정부의 집정에 도움을 주고 백성에게 혜택을 주었다. 1962년 주은래총리가 연변을 시찰할 때 주덕해동지는 <<희>>와 함께 <<우>>를 실사구시적으로 회보한데서 우리 조선족이 한족보다 입쌀공급을 더 받고 고추가루보조금을 따로 받는 등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향수하였다. 도문시초대시장(1965년) 김하권은 <<문화혁명>>때 쓴 자본주의길로 나가는 집권파란 모자를 방금 벗고 1975년에 도문시혁명위원회 부주임으로 임직된지 얼마 안되는데도 곁군들의 눈총을 피해가며 성에서 온 시찰단의 숙소에 찾아가서 도문시민들이 오염된 두만강물을 먹는 <<우>>를 통사정을 하면서 회보한데서 도문시민들의 식수(食水)문제를 해결하였다. 2005년 연변대학 김병민총장이 국무위원 진지립(陳至立)이 시찰을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변대학캠퍼스통합확장공사가 부딪친 고충을 회보하고저 하니 해당책임자가 사전에 <<우>>는 말하지 말것을 암시했다. 이에 진퇴량난에 처한 김총장이 성당위부서기 전철수한테 속심을 터놓았더니 전서기가 <<국무위원을 모셔오는 목적이 바로 도움을 받자는것인데 왜 곤난을 반영하지 않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꼭 제기하라》고, 그리고 실사구시적으로 수요되는 자금을 말하라고 하였다. 하여 국가의 상당한 자금을 쟁취하였다. 도문시 홍광향 달라자촌은 지난 90년대 연변의 첫 <<텔레비죤마을>>로 교석, 진모화, 류화청 등 여러 국가급지도자들이 시찰하였다. 언제 들었던 리춘실(서기)의 말을 적어본다. <<번마다 시에서 배워주는 말만 하다보니 교석이 <무슨 곤난이 있는가?> 는 물음에도 양어장을 확대개조할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말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쉽다>> <<보희>>는 간부들이 치적을 얻고 <<불보우>>는 백성들이 불익을 당한다. 필자는 주덕해, 전철수, 김하권 등 지도자들의 <<보희보후>>가 백성지도자들의 영원한 계주봉으로 되여줄것을 기대한다.
4    추억의 추도문 댓글:  조회:7770  추천:36  2011-03-30
            추억의 추도문                                 오기활 길림신문 고급기자필자는 요즘 서류를 정리하다가 1994년 10월 28일에 작고한 사촌매부의 추도문을 다시 읽으며 인생의 가치관을 반추하게 되였다.이 추도문은 17년전 사촌매부(허세근)장례식에서 아들(허룡길)이 올리는 추도사에 감동을 받고 수장한것이였다. 허세근은 도문철도렬차단의 말단로동자(목공)였다. 그의 생전에 우리가 받은 인상이라면 그가 《남을 돕는데 진심이다》는것뿐이다. 그런데 매부는 《훌륭한 남편》이나 《훌륭한 아버지》로 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글쎄 50대 중반에 타계한 그가 집에 남긴 유산이란 단위에서 분배받은 24평방메터의 허름한 한족식집과 14촌짜리 흑백텔레비가 전부였다. 전화마저 없었다. 그는 술상에서 늘 이런 말을 하였다.《부모들이 내 이름을 세근(世根)이라 지은것은 나더러 인간세상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라는 바램이였는데 아직 뿌리를 내리자면 멀었소…》우리는 그때만도 그의 말을 우스개로 흘려 버렸는데 아들의 추도사를 들으며 그가 말하는 뿌리란 사랑의 뿌리임을 알게 되었다. 추도문은 이렇게 쓰고있다.《나에게는 허숙방이라고 부르는 한족누님이 있습니다. 허숙방은 우리아버지가 그를 구해주고 얻은 딸이랍니다…》사실은 이러했다.전 세기 5,60년대 허세근이 섬서철도국 공무단에서 재료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하루는 그가 서안시내에서 일을 보다가 웬 처녀가 어린애를 안고 안절부절 못하는것을 목격했다. 허세근이 달려가서 사정을 물어보니 사천성 어느 농촌에서 왔다는 18살짜리 처녀애가 타인의 소개로 남자대상을 만나려고 동생을 데리고 왔는데 불시에 동생이 병에 걸렸다는것이다.허세근은 두말없이 애를 엎고 철도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들은 급성페염이라며 급히 입원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세근이는 그애를 자기 딸이라 하고 입원시켰다. 며칠간의 치료가 끝나 병원에서 출원하자 자기 집에 데려다 며칠간 살뜰히 보양한 다음 그를 집에까지 데리고 가서 부모한테 맡겼다.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몇달후에 어린애의 어머니가 딸애를 데리고 다시 허세근을 찾아와서 자기는 생활이 쪼들려 더는 애를 부양할 능력이 없으니 이 애를 친딸로 받아달라고 사정할줄을.그때 세근이네는 아직 아이도 없는 신혼생활이였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세근이는 두말없이 받아드렸다. 그 애의 어머니는 너무도 반가와 딸애의 이름이 소방(素芳)이라며 새아버지가 마음대로 이름을 개명하라고 했다. 그래서 세근이는 한어발음으로 素와 비슷한, 조선족들이 이름에 흔히 쓰는 淑을 택해 淑芳이라 작명했다.허세근은 숙방이를 친딸처럼 키웠고 두집사이 관계도 돈독이 하였다. 그러다가 1969년에 허세근이 도문철도분국으로 전근하게 되자 친부모를 영영 떠나야 할 숙방이가 불쌍하다며 또 다시 친부모들에게 맡겼다. 그후 서로간의 여라가지 원인으로 서로간의 련락이 끊어졌다. 허세근은 숙방이를 잊을수 없었다. 그는 인편을 통해 숙방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1984년부터는 돈을 팔면서 《사천일보》 등 신문, 잡지에 광고를 냈고 그래도 안되니 사천성민족사무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1986년 5월 23일, 사천성민족사무위원회에서 편지가 왔다. 편지는 허세근의 민족우애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숙방이를 찾았다는 소식과 상세한 통신주소를 보내왔다. 허세근은 너무도 기뻐했다. 그래서 이미 애어머니로 되였다는 숙방이가 기회를 만들어 동북에 오겠다는데도 참지 못하고 1991년초에 성도에 찾아가서 숙방이를 보고야 시름을 놓았다. 숙방이를 찾아서부터 허세근이 사망되기까지 허세근은 숙방이가 부쳐온 편지를 94통이나 받았다. 편지마다에는 조선족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절절한 효심이 담겨있었다. 1992년 7월 중순, 숙방이는 아버지가 간암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눈물에 젖은 편지와 함께 현금 200원을 보내면서 병치료에 보태라고 하였다. 숙방의 편지와 돈을 받은 허세근은 병석에서 진정할수 없었다. 허세근은 숙방이가 보낸 돈을 보람있는 일에 써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7월 25일 오전, 병석에서 일어나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40돐경축활동 판공실에 찾아가 현금 100원을 내놓으면서 자기의 딸을 찾아준 당과 정부에 감사를 드리며 적은 돈이지만 자기네 부녀간의 성의라면서 자치주창립40돐기념행사에 보태라고 하였다. 1992년 8월 16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속절활동 《속보》는 《허동무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허세근의 아름다운 애족애주정신을 소개하였다. 자치주창립40돌경축 지도판공실에서도 그에게 감사장과 함께 자치주창립40주년기념마크 3매를 보내왔다. 이상의 속보, 감사장, 기념마크는 그가 사망한후 가족들이 그의 유물을 정리하던중 우연히 발견한것이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것이다. 사망자의 유물을 서로 돌려보며 가족들은 남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흐느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날 허세근이 연길에 갔다가 연길기차역에서 흑룡강성 밀산에서 왔다는 손님(3명)들이 돈가방을 잃어 버리고 애간장을 태우는것을 목격했다. 고향애(그의 고향은 흑룡강성해림임)가 앞섰던지 그는 자기의 호주머니에 돈이 없자 연길기차역의 아는 사람을 찾아 자기이름으로 돈을 꿔서 그들에게 차비로 주고도 자기집(도문)에 모셔와 잠을 재우며 술상까지 차려서 대접시켰다. 그후 그들이 돌아간후 며칠이 지나도 전화한통 없으니 집식구들은 아버지가 쓸데없는 돈을 팔았다며 원망하였다. 《내가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 절대 노여워 말라.》 허세근은 가족들에게 《준것은 다 잊고 가진것만 기억하라》며 베품의 삶을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앓다보니 우리집 생활은 퍼그나 곤난하였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도 남을 돕는것을 락으로 한 아버지의 인생은 베푸는 인생이였습니다…》 아들이 쓴 아버지추도문을 다시 읽는 이 시각, 필자의 귀전에는 19년전 추도문을 들으며 상객들이 흐느끼던 울음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며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었다. 매부가 간암으로 세상을 뜬후 중풍으로 투병중이던 사촌녀동생(오미옥)마저 세상을 떴다. 어머니장례를 치른 며칠후다. 외조카(허해란)가 을형간염으로 앓는 외숙부(오기용)를 찾아와 문병하면서 외숙모(김순복)의 손에 돈봉투를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돈(2000원)을 삼촌의 병치료에 보탬하세요. 이 돈은 어머니장례때에 받은 부조돈입니다. 며칠후 우리 둘은 취직하러 안쪽으로 갑니다. 우리는 젊으니깐 나가서 벌면 되지요…》 《나와 오빠가 토론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숙모는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철없는 나이(룡길 25살, 해란 23살)에 그것도 고아로 모든 일에 돈을 앞세워야 할텐데 어머니의 장례부조돈까지 몽땅 내놓는 그들의 대견스러운 처사에 목이 메였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구나! 너희들은 앞으로 돈을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단다. 선량한 너희들을 하느님이 도와 줄것이다!》 봉투를 돌리는 숙모의 손은 더없이 떨렸다. 후에 안 일이지만 용길이는 부모들이 생전에 꿔준 빚돈을 받으면서도 생활이 어려운 몇집의 돈은 받지 않았단다. 지금 룡길이는 청도, 해란이는 상해서 가정을 꾸려놓고 열심히 산다. 한 인간의 미덕은 그의 평소의 적선(積善)으로 완성된다. 희생과 봉사는 맹인도 볼수있고 귀머거리도 들을수 있는 사랑의 언어요, 자비의 메시지다. 필자는 추도문을 덮으며 고인의 생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거룩함을 느끼게 된다. 그에 따라 아버지를 거울로 베품의 삶을 엮는 조카들이 더욱 대견스러웠다.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발자국을 남긴다.》 《후대들에게 1억(亿, 재산)을 남기지 말고 추억을 남기라.》  
3    일본 로씨야 그리고 우리의 줄서기 (오기활) 댓글:  조회:7568  추천:37  2011-03-27
일본 로씨야 그리고 우리의 줄서기 -오기활 길림신문 고급기자   요지음 텔레비를 보면 대지진을 겪는 일본사람들이 그런 복새판에서도 조용히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정경을 보면 진정 감동을 먹게 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을 사면서 수량을 자제하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 <<우리는 둘이라도 서로 미는데 로씨아사람은 둘이라도 줄을 선다>>는 말이 있다. 필자가 로씨야에서 목격한 일이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는 물론 자그마한 향촌의 뻐스정류소에서도 고객이 서너명이여도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뻐스가 오면 줄을 선 순서대로 한사람씩 올랐다.   우리가 입경할 때 목격한 일이다. 로씨야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통관문이 열리면 줄을 선 순서대로 점잖게 통관하는데 중국사람들(대부분은 조선족)은 련 며칠간 밤을 새워가며 줄을 서서(밤이면 앉는 줄임) 통관을 기다가도 일단 통관문만열리면 섰던 줄을 팽개치고 서로 밀치고 닥치며 복새판을 이뤘다. 하여 통관질서를 유지하던 로씨야 변방군들이 량족켠의 긴걸상에 올라서서 통관하는 중국사람들의 골통에 고무곤봉으로 하나하나씩 내리쳤다. 그야 말로 <<중국이 맞는>> 기분이였다. 철도와 륙로의 교차구에 설치한 차단봉의 길이도 이곳은 륙로넓이보다도 더 긴데 로씨야는 2메터도 안되였다. 그런데도 일단 차단봉이 내리면 아직 기차가 오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자리에 서서 기차가 오리를 기다렸다. 이곳은 멀리 기차가 오는것도 마다하고 길너비를 가로막은 차단봉밑으로 빠져나가는데 말이다. 중국사람들은 기차에 오를 때 서로 밀고 닥침은 좌석쟁탈을 위해서라고 쳐도 좌석표가 있는 극장은 왜서 밀고 닥치며 입장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자각적으로 줄을 선 력사가 있다. 60년대엔 줄을 서서 식당밥을 타먹었고 70년대에는 배급소에 가서 통장을 들고 줄을 서서 쌀과 콩기름을 타먹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처럼 습관된 줄문화를 왜서 버렸는지? 개혁개방후 우리는 외국의 좋다는것을 거의 다 따라 배우면서도 왜서 문명한 줄문화는 따라배우지 않는지? 뢰봉이 <<출국>>했다더니 줄문화까지 가지고 <<출국>>했는가? 필자는 함께하는 세상, 더불어사는 세상에서 <<하나는 열을 위하고 열은 하나를 위하는>> 몸가짐으로 저마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 유용한 사람으로 되기 위한 몸가짐을 가꾸자는 바람이다.
2    50년 주사와 나만의 주도 댓글:  조회:8308  추천:41  2011-03-18
                  50년 주사와 나만의 주도  어느 대학(한국)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는 질문에 가장 많은 답이 한(恨), 정(情) 흥(興)이였다. 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이런 정서를 담아낸 마법(묘약)을 술 한글자에 모았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유전되였는지 여하튼 남들로부터 애주가라는평을 받고있다. 동네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면 아버지는 벽에다 는 맹세를 써놓고도 술을 계속 했다며 란다.   나는 50년간 출렁이며 지내온 나의 주사(酒史)에서 난 아직 주정뱅이라는 말은 못들었다. 주정뱅이라고 해도 쾐찮은데 말이다. 필자가 이글에서 말하는 주정뱅이라는 주정은 주정(酒酲)도 아니고 주중(酒重)도 아닌 주정( 酒正)을 말한다.   나는 때마다 술을 마신다. 그렇다고 때마다 많이 마시는것은 아니다. 그저 보통 술 한잔을 부어놓고 것으로 술이 끝나면 밥도 끝난다. 심지어 자랑은 아니지만 품위있는 대표단으로 한국에 갔을 때도 나만은 아침에도 반주술로 을 한병씩 배정받았다.  라는데말이다.   나는 집에서 마시는 술은 자작(自作)한다. 매년 5월 25일부터 6월 15일 사이에 송순주(松笋酒)를 만드는데(60도, 100근씩) 지금은 나보다도 부인이 더 명심할 정도이다.   나는 집에 온 손님들게 두만강이 말라도 우리 술독은 마르지 않는다면서 고 자랑을 한다. 나는 밖에 나가면 며 술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 감주든 소주든 청주든 맥주든 아무튼 술 주(酒)자가 있으면 된다. 비록 자랑은 아니지만 아무튼 여러가지 술을 섞어 마셔도 거의 무탈이다. 그래서 술상에 앉으면 나절로  자기를 라 자칭한다. 나는 보통 술을 는 안한다. 술 주(酒)자를 파자하면 삼수변에 닭 유로 닭이 물을 마시듯 마시라는 뜻이다. 그래서 백주는 혀끝으로 마시고 맥주는 목으로(큰 모금으로) 마신다.   나는 술안주도 별로 가리지 않는다. 가마에 들어갔다가 온 음식은 썩두부를 빼고는 다 먹는다. 안주가 정 없으면 텔레비(電視)안주도 좋다. 지금은 좀 틀리지만 언제까지도 조선족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먹고 한족은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셨다. 조, 한족의 술잔과 접시의 대소를 비교하면 이점을 알수 있다 술안주는 그래도 낙지나 명태처럼 안주가 좋다. 씹을만한 안주가 없으면 말추렴도 좋다. 란 사람이나 고장을 것을 말한다. 공인들은 공장장을 공장장은 국장을 국장은 시장을 것이다. 안주는 처음에는 님, 서기로부터 시작해서 놈, 눔으로 바뀌는데 돈을 팔지 않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데는 허물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의 우점과 그 지방의 특점을 말하는 도 있다. 나는 술상에서 누구나 들락날락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면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수 있다고…   술상에서 하는 말은  는 말과같이 거의 모두가 진담이다. 때문에 나는 훗날이 며 용서해 달라(주라)는 말을 흔히 곧이듣지 않는다. 술상에서 보면 어떤술을 마시고 어떤안주를 먹느냐가 아닌 누구와 마시는가로, 맛이 아닌 기분으로 마신다. 나는 이렇게 기분으로 마시는 술맛을 이라고 한다. 나는 술을 내가 마시기 위해 남을 권하고 남을 마시게 하기 위해 내가 마신다. 술상에서는 서로간 련대성이 필요하고 고조와 분위기의 동원이 필요하다. 이상은 나만의 주법(酒法)(?)이고 주도(酒道)이다.   이밖에 나는 독자들에게 특별히 할 말이있다. 말하자면 음주량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둘째라면 서러워할 우리 민족에게 아직까지 통합된 확실한 건(권)배어가 없는것이 유감이다. 건배어는 술상의 주혼(酒昏)이다. 미국, 영국에는 상대방에게 유쾌한 기분을 빌어주는 형의 건배어가 있고, 중국, 일본에는 잔을 비우자는 형의 건배어가 있으며 한국에는 상황에 따라 앞에 수식어를 부쳐서 형 건배어가 있으며 조선에는 즐거운 술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형 건배어가 있다. 근년에 연변에 중국의 , 한국의, 조선의 형 외에도 2박자, 3박자형의 신조어가 나타났다. 례하면 , 를 주제로   는 뜻이다. 그외에도 상기건배어의 자매편으로 (延边阿理郞- 絶喜够!)도 함께 2편을 추천하였다. 뜻인즉 우리 민족의 아리랑을 주제로 연변의 즐거움을 나타내려는 것이였다. 나는 독자들에게 한번 이 건배어를 사용해 볼것을 건의한다. 한번이 두번이 되고 한술상에서 두술상으로 이어지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연변의 홍보대사(代詞)로 될것이라고 필자는 믿어진다.   끝으로 필자는 우리 민족의 문명한 술문화의 발전과 흥성을 기대하며 모든 독자들이 문명한 술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연변의 술상 건배어를 만들기에 함께 노력할것을 건의한다. /오기활 (본작품은 동북3성 우리민족 술문화응모작품임)          길림신문  : :21011.3. 18 .
1    내가 본 일본의 방지진 대책 댓글:  조회:8100  추천:35  2011-03-16
내가 본 일본의 방지진 대책 오기활 칼럼니스트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지진국》이다. 그만큼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항지진의식과 항지진준비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꼼꼼하다 요즘 텔레비에서 일본지진관련 화면을 보면 일본국민들이 대지진앞에서 침착하게 행동함에 진정탄복된다. 소학교학생들마저 덤벼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온정을 찾으니 말이다. 2년 전 필자는 일본동경(오다이바)에서 3개월간 체류하면서 일본인들의 항지진의식과 항지진준비를 관찰하였다. 지진체험을 하는 부자간 일본은 매년 3월의 첫 주일을 전국적인 소방주로, 이 주간에 일본의 매개 중소학교에서는 지진화재에 관한 예방, 대책실천활동을 전개한다. 중소학교만이 아니다. 이번 지진때 일본에 있는 며느리는 지난 11월에 대학교에서 배운 지진대책훈련이 큰 효과를 보았다고했다. 집안에서 잡일을 하다가 큰 진동이 있자마자 먼저 문을 열어놓고 방지진모자가 미처준비못된 정황에서 후라이판을 머리에 쓰고 대처하였다고 한다. 나는 일본에 체류하던 기간에 중소학생은 물론 부모들이 어린애까지 데리고 과학기술관에 와서 지진체험을 직접함께하는 현장을 경상적으로 보았다. 지진교육의 현장 일본은 선진적인 통신정보시설로 유사시 45초 이내에 지하철과 고속도로의 모든 차량들이 동시에 경보를 울려 사람들이 제때에 피난하게 한다. 이번 지진때도 며느리가 지진소식을 접하자 거의 동시간에 중국에 전화를 쳐도 못 받으니(목욕중) 인츰 한국에있는 동생에게, 동생이 중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우리에게 알리다 보니 우리는 누구보다도 빨리 지진소식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일본 국내는 핸드폰이 걸리지 않아서 우리 아들과 며느리는 한밤중에야 통화하고 서로간의 안전을 확인하게 되였단다. 고층아빠트에 설치된 지진탈출구 일본의 각 지역에는 지진체험관, 지진피난소, 《지진창고》 등 지진대책시설이 구전하기에 성인들은 물론 모든 중소학생들이 직접 지진체험을 할수 있었다. 일단 지진이나 기타 화재가 발생하면 주민들은 주변의 《피난소》에 들어 가는데 동경목(目黑区)에만 하여도 40개의 피난소가 있다고 한다. 피난소에는 모든 생필품과 비상대책 준비시설과 물품이 매우 구전하다고한다. 피난소마다 1250여명의 피난민을 용납할수 있다. 일본은 항지진 《자주방재조직》이 잘 보급되였다고 하는데 그 때까지만해도 일본의 60%이상 가정에서 항지진 《자주방재조직》에 가입하였단다. 일본의 현대건축물은 기초부터 항지진대책이 잘 된 것은 물론 건축구조를 보면 1 층의 상당한 높이는 해일이 닥쳐올 것을 대처해 물이 쉽게 통과할수 있는 《물길》 로 되였고 건축구조물도 철물, 아니면 알뉴미늄에 유리가 주체였다. 건축물벽이 거의 모두가 유리로 되였으니 일단 지진이 일어나면 《유리비》가 내리기 때문에 파괴된 건축물의 상해로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게 된다. 지진발생시 해일이 빠지고 <<유리비>>가 내리는 현대건축물 고층아빠트는 지하부터 옥상까지 지진때 안전하게 탙출할수 있는 탈출구가 있었고 집집에는 《비상지진상자(가방)》가 준비되여 있었다. 지진은 돌발성이 강하고 파괴력과 위해력이 불가사의하며 파급범위, 인원사상, 자산손실 등 위해성이 자연재해중 거의 첫자리를 차지하는 재해다. 섬의 나라, 지진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의 민중성적인 방재해 의식은 가히 우리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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