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말한 “리항복”과 말하지 않은 “리덕형”
갑진년(甲辰年:1604년) 원단에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한 소위 백홍관일(白虹貫日)이란 소위 변이 있었다.기실 이것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라 그 무슨 변이라고 말할수 없었지만 당시의 몽매한 사람들은 나라에 큰 재앙이 닥쳐올 징조라 생각하고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나라의 수뇌부인 조정안도 뒤숭숭하기는 백성들과 마찬가지였다.신하들이나 임금도 이 일을 감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임금이 나라를 잘다스리지 못해서 생긴 변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며칠 뒤 선조왕은 일종의 압박감에 못이겨 리항복을 어전으로 불렀다.그는 리항복의 도움을 받아 당면한 곤궁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번에 일어난 변때문에 민심이 무척 소란스러운데 리공은 무슨 좋은 대책을 생각해보았소? 관원들이 맘속으로 과인이 정사를 잘못 다스려서 생긴 변이라 생각하는것 같소. 리공의 생각에 과인이 정사를 처리하는데 잘못된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서 계를 써올리시오.”
리항복은 일개 자연현상이 임금의 정치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고 생각했지만 오늘 임금의 청을 받고나니 이 때가 바로 임금에게 잘못을 지적해줄 가장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선후로 두번이나 계를 써올려 임금의 그릇된 처사를 치르는 요해점을 찔렀다.
“…성심을 전하는것은 간언을 받아들이는데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공평을 기하는것은 마땅히 인재를 등용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선조왕이 평소에 신하들의 간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무단으로 국사를 처리하기때문에 신하들이 간언을 잘 제출하지 못하는 페단이 생겼다는것을 지적하였고 임금이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을 한쪽에 밀어놓고 붕당싸움을 무마하기위해 심혈을 기울인 그릇된 태도를 비판한 것이였다.
그의 계를 읽어본 신하들은 오성대감의 글이 면바로 임금의 요해처를 찔렀다고 탄복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는 호종공신(扈从功臣)을 책록(策禄)하였다. 리항복은 당연히 호종 원훈(元勋)으로 추천을 받았다.조정에서는 선조왕의 제의에 의해 리항복에게 충근정량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贞亮竭诚效节协策扈圣功臣)의 호(号)가 내려졌다.
선조 36년 6월의 어느 날,참판 류희서(柳熙绪)와 부사 황극중이 아무런 까닭없이 살해당한 중대한 안건이 발생하였다. 일국의 대신이 집에서 강도에게 무단히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소식을 듣고 분노한 선조왕은 즉시 안건의 수사를 잘하기로 소문난 포도대장 변량걸(边良杰)을 불러 빠른 시일내에 안건을 풀어내여 살인범을 잡아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변양걸이 여러방면으로 조사를 세심히 하고 범죄혐의자들을 잡아 엄히 문초한 결과 범죄자의 륜곽이 들어났는데 뜻밖에도 범인은 선조왕의 맏아들인 림해군이였다.
성질이 포악하고 방탕하여 임금과 대신들의 신임을 잃어 세자의 보좌도 이복동생인 광해군에게 빼앗긴 림해군은 우연히 참판 류희서의 첩이 천하일색이란 소문을 들었다.녀색이라 하면 오금을 못쓰는 림해군은 갖은 수단을 써서 류희서의 첩을 낚아채였다. 그는 류희서가 실종된 첩을 찾으면 자기가 저지른 죄행이 드러날것 같아 속을 앓다가 수하 망나니를 시켜 류희서와 부사 황극중을 암살했던것이였다.사건의 엄중성을 깊이 느낀 변량걸은 조사과정을 상세히 적어서 선조왕에게 보고한 뒤 조정의 처분을 기다렸다.
왕자가 죄를 지어도 서민과 같이 처리한다는것은 조선국이 세워진 이래 지켜오던 신성한 국법이건만 선조왕은 변량걸이 왕자의 죄를 감싸주지 않고 조정에 사실 그대로 보고한데 대해 크게 분노했다.게다가 류희서의 아들이 조정에 죄수를 당장 잡아 처리하라고 압격을 가하자 선조왕은 당황하였다.급기야 그는 변량걸이 류희서의 아들 류일과 공모하여 왕자인 림해군을 무함했다는 죄명을 들씌워 두사람에게 곤장을 되게 안긴 뒤 먼 곳으로 류배시켰다.
선조왕은 두사람을 류배시키고나면 림해군의 일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사태는 더욱 나쁘게 번져졌다.림해군이 저지른 죄의 진상은 감출래야 감출수가 없었다. 조정 안팎이 선조왕의 처사에 대해 불만을 품고있었지만 임금의 위세에 눌리워서 감히 바른 의견을 제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모든 신하들이 다 입을 다문것은 아니였다. 령의정 리덕형이 선불을 질렀던 것이다. 그는 암살사건을 파헤치고 두려움없이 바른 말을 한 변량걸과 피해자의 아들인 류일을 류배시키는 것은 법이 허락할수 없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하면서 임금께서 이 일을 국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상소문을 써올렸던것이였다.림해군에게 살해당한 류희서가 바로 리덕형의 외삼촌의 아들이였고 류일은 그의 외조카인데 그들이 바른 말을 했다고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렸으니 리덕형은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었던것이였다.
리덕형은 지인들과 친구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에게 상소문을 써서 임금의 처사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변량걸과 류일을 무죄석방할것을 강경하게 요구하였다.그러나 그의 상소가 성공하지 못할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이튿날 조회에서 선조왕은 노기가 상투끝까지 올라 리덕형을 앞에 불러낸 뒤 마구 딲아세웠다.
“리덕형은 령의정이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포도대장 변량걸에게 죄를 따져 림해군의 루명을 벗겨주고 조정의 수치를 씻자고 나서지 않고 도리여 죄인들의 립장에 서서 상소문을 써올렸으니 그 속셈이 무엇인가?”
“신은 안건의 진상을 밝혀 억울한 일이 없게 하려했을 뿐입니다.전하.”
리덕형의 대답에 선조왕의 노기는 극도에 이르렀다.리지를 잃은 그는 즉석에서 리덕형의 령의정 직무를 해임한다고 선포했다.
조회에 참가한 좌의정 리항복은 절친한 친구가 억울하게 관직에서 밀려난것을 보니 분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의 분위기에서 그가 리덕형의 억울함을 말해야 임금이 들어줄리 없다는것을 알고 치솟는 분을 간신히 누르고있었다. 평소에 리항복이 역적을 도왔다는 죄를 씌우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던 일부 관원들은 이 기회에 리항복을 탄핵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나의 동접(同接:한 스승한테서 배운 사람)은 급제를 했는데 나는 어느때 급제를 하려나.”리항복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행하는 관원들과 우스개소리를 해서 사람들이 밸을 끊게 했다.당시 국법에 관직을 삭탈당한 사람은 그가 비록 대신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급제만 하고 관직을 얻지 못한 선비와 마찬가지로 급제라고 자칭하라는 규정이 있었던것이였다.
다음날 선조왕은 리항복더러 리덕형을 대신해 령의정에 오를것을 요구하였다.절친한 친구가 바른 말을 한 죄아닌 ‘죄”로 밀려난 그 자리에 자기가 오른다는것은 도의상으로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리항복은 령의정에 오르는것을 견결히 사양하였다.
그러나 리항복을 너무나 신임하는 선조왕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리항복은 부득이한 처지에 자기가 령의정을 맡을 수 없는 리유를 까밝혔다.
“전하,변량걸이 좌천된 일에 대해서는 신의 마음도 리덕형과 마찬가지로 아프옵니다. 신도 다만 당시에 미처 전하께 말씀을 드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리덕형은 곧 이미 전하께 말씀을 드린 리항복이옵고 신은 전하께 미처 말씀을 올리지 못한 리덕형일 뿐입니다.신의 죄는 비록 드러나지 않았지만 심정이야 어이 숨길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조왕은 리항복의 그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더니 급기야 그더러 령의정을 맡으라는 명을 내렸다.
왕명을 거역할수 없어서 령의정에 오른 리항복은 며칠이 지나자 건강이 좋지 않아서 령의정의 중책을 맡을수 없다는 핑게를 대고 사직서를 올렸다.그러나 선조왕은 그의 사직서를 깔아뭉개고 윤허하지 않았다.
죄없는 리덕형이 물러난 자리에 올라앉은것을 죄를 짓고 량심을 파는 일같이 생각한 리항복은 련거퍼 사직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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