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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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찬가
2012년 12월 06일 14시 54분  조회:8676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시래기찬가
 
□ 최균선
 

해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웬간한 잎은 다 뜯어버리고 하얀 속괭이만 알뜰히 다듬어서 댕그랗게 쌓아놓은 통배추들을 보면서 먹음직스러운 생각을 앞세우기전에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눈길이 쏠리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묵은 세기 90년대 초까지도 가을이면 감자캐기거나 배추장만하기가 사업단위별로 대사로 되였다. 간혹 제비를 쥐여 차례진 배추이랑이 남의것보다 좀 못한듯 싶으면 은근히 왼심이 쓰이던건 세대탓인가? 그래서 지금 세월에는 그때처럼 신경쓸 일은 옛기억으로 물러갔지만 언젠가 읽었던 한국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르며 회심의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물려질 때가 많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것도 저들이고

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시래기를 시적소재로 인간을, 인생의 어떤 면을 철학적으로 시사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차분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어 감칠맛을 돋군다. 가장 오래동안 세찬 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그렇게 버리우는 떡잎사귀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의 의미를 심어주기도 하거니와 더우기는 자기 성찰을 하도록 말없이 편달하고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래기를 두고 가을에 무우를 뽑고나서 김장을 하고 그때 남은 무청을 말린것이라고도 해석한다. 해석이야 어찌 되든 습관대로 배추떡잎을 그냥 시래기라 불러두자. 요는 시에서 련상되는 삶의 현장과 인생자세이다. 먹을 때만 질감을 느끼다가도 하찮게 여기는 시래기를 두고 시를 지은 사유가 참으로 멋지다고 해야 하리라.

려운 나날을 살아온 로세대들치고 시래기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게다. 나도 밭 갈고 씨 뿌리며 살던 그때 소똥으로 바른 음달진 벽에 걸어둔 시래기가 더 맛있다길래 해마다 생소똥을 바른 벽에 걸대를 만들어놓고 시래기다래를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겨울 한철은 거의 때마다 “시래기국”을 먹었건만 왜 시상을 못떠올렸는지…어렵게 살아야 했던 세월, 겨우나이로 시래기 한가지만은 넉넉하게 마련하느라고 떡잎 하나에도 왼심을 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종종 안겨왔을뿐이다.

제일 먼저 해볕을 본만큼 또한 오래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버림 받고 먹혀버리는 떡잎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을 상기시키며 자기 성찰을 하도록 편달한다는 점에서 시래기는 더욱 의미롭다. 시래기에는 어렵던 그 시절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밀착되여있다. 나는 가끔 시래기같은 어머니의 그 손을 생각하며 끈끈한 비애에 잠기곤 한다. 온갖 번뇌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숙연히 서있는 겨울나무가지같은 내 어머니의 손. 굵은 정맥사이로 주름잡힌 손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그리 가슴이 시려오던지. 그 손 또한 락엽이 되여 추억속으로 깊이 묻혀만 가고있다.

지난 세월, 무조건적으로 베푼 어머니의 사랑을 되씹어보며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건져내게 된다. 시래기같은 생을 살아오시며 자식을 보듬던 어머니가 황천에서 고달픈 꿈을 풀고계실가?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다. 인간이 어머니의 헤아릴수 없는 마음을 짐작할 때 인간의 존재가치가 형성된다고 할수 있다.

어머니와 동고동락을 해왔던 시래기의 미학을 통해서 돌이킬수 없는 자신의 불효도 검토해보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는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해줄뿐만아니라 부끄러움과 회한을 되찾아주고있다. "시래기"'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형상은 령혼의 노래로, 삶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아있다.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겨우내 찬바람 맞는 시래기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인가

 

래기처럼 살다가 죽고싶어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그러한 생명관은 슬프다. 시래기같이 살았던 어머니의 영상이 늘 내마음에 머물고 있는것은 그것때문이다. 내가 생명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다 갚을수 없는 덕택이니 보은은 섭리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고생을 숙명인양 삼키며 그렇게 긴 세월동안 인고로 영위해온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키우는것이 바로 인간성회복의 길이 아니랴!

하찮은 시래기를 통해서 삶의 진수를 꿰뚫고 생의 기쁨을 느끼는 그런 인생순응적 삶에서 어찌 악이 나오며 탐욕이 생기겠는가. 이런 생활이야말로 참을 희구하는 눈물겨운 삶의 표본이 아닐수 없다. 서리맞은 배추의 떡잎들은 축 처지여 볼품이 없다가도 따스한 해볕이 내리쪼이면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는 그 끈덕진 생명의욕에 가슴이 쓰리고 안스럽다.

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쌓아놓은 하얀 통배추들을 보면서 그보다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왼심을 쓰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시래기”—우거지에는 확실히 우리 조선족어머니들의 삶의 미학이 푹 배여있음은 잊을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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