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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 량안에 활짝 핀 꽃
2015년 04월 10일 07시 17분  조회:2185  추천:1  작성자: 최상운
 
 
              해협 량안에  활짝 핀 꽃
 
         며칠전에 대만유람을 다녀온적이 있었다.

          한국과 조선을 여러차레 다녀왔지만 대만을 다녀오기는 이번에 처음이였다. 나 먼저 대만에 갔다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대만은 경제가 발달하였고 환경이 깨끗하고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대만에 크게 볼게 없다고 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나는 제눈으로 집적 보는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대만관광을 떠났다.

         대륙에서는 대만을 중국 대만성이라 부르고 대만에서는 대만을 중화 대만성이라 불렀다. 비록 부르는 말이 조금 다르긴 해도 하나의 중국임은 틀림없었다. 대만 사람들은 두가지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중국의 보통말과 대만의 지방말을 쓰고 있었는데 대륙에서 간 유람객들에겐 꼭 보통말을 해주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대만을 가기전에 이런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수십년동안 해협 량안에서는 서로 담을 쌓아놓고 살아왔다. 그 영향으로 인해 대만 사람들은 우리를 랭대하지나 않을가?  하고 은근히 걱정하였다. 그런데 웬걸, 내 우려와는 달리 대만 사람들은 뜨겁게 환영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이 열정적인 태도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우리가 대북 송산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비행장 대기실에서 40여세 되여보이는 키가크고 이마가 벗겨진 뚱뚱한 사나이가 우리를 반갑게 맞어주었다. 하유례(賀維禮)라고 하는 그는 대만 국제려행사의 파견을 받고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였다. 첫 인상부터 마음들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유모아적인 그는  려로에서 우스개 말을 잘 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아는것도 많았다. 중국의 력사와 지리에대하여 환한것 같고 영어를 류창하게 구사하는 박식한 사람이였다.  대륙에도 여러번 다녀왔다는 그는 대륙의 곳곳에 대하여 상세히 잘 알고있었다. 특히 대만사람인 그가  연변의 정황도  잘 알고 있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며칠동안의 접촉과정에서 하씨는 총명하고 재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였다. 스스로  중국력사와 지리에 대하여 잘 안다고 자부하여 왔던 나도 하씨의 풍부한 지식에 탐복되여 그를 하선생이라 불렀다.

         나는 리산가족의 슬픔이란 어떤것인가를 이번에 하씨와 대만 사람들을 통하여 절실히 깨닫게되였다.  하씨는 대북에서 태여 났지만 하씨의 부친의 고향은  장개석의 고향인 절강성 진화시 계구진 옥태포와 가까운 곳인 절강성 진화시 채구진이라 한다. 지금 그 곳에는 하씨의 큰 어머를 비롯한 친지들이 여러분 살고 있다고 한다. 하씨의 부친은 국민당군의 장교였는데 1948년에 대만으로 건너 갔다고 했다. 대만으로 건너갈때 부인과 가족을 못 데리고 갔단다. 하씨의 부친은 대만에서 자기보다 20살 년하인 당지 녀인(하유례의 어머니)을 부인으로 맞았다고 했다. 들어보니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여럿이 있었지만 하씨의 아버지는 수십년동안 대륙에 남겨두고 온 부인과 가족들을 잊지못하고있었단다.

         하씨네를 비롯한 수백만명의 대륙과 대만의 리산가족들은 가슴이 재가 되도록 상봉의 그날을 기다려왔다. 드디여 력사의 흐름속에 밝은날이 오고야 말았다. 해협 량안의 지도자들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큰뜻을 가지고  해협 량안에 설치된 금지구역의 문을 활짝었다. 드디어 량안의 혈육들은 가슴에 쌓였던 재들을 툭툭 털어버리고  두 손을잡고 아름다운 미래를 역어가게 된것이다.

         하씨의 부친은 선참으로 고향땅을 밟게 되였고 꿈에서 그려보던 혈육들을 만나보았다고 했다. 하씨 부친이 처음 대륙으로 돌아올때 혈육들에게 드릴 선물로 금가락지를 여러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때 금가락지 하나의 값은 인민페로 천원이였단다. 그 당시 대륙의 경제 상황은 무척 어려웠는데  농민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시골에 살던 친척들은 금가락지를 선물로 받고 감지덕지해했단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대륙사람들의 생활 형편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대륙의 연해 도시의 발전을 시작으로, 연해 지구의 농촌들도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하씨 아버지네 고향사람들도 생활형편이 좋아졌다. 그깟 천원짜리 금가락지를 선물하는것쯤은 뜨끔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씨는 그러면서 지금은 대만 사람들이 자기들이 잘 산다고 자부할때가 아니라 오히려 대만경제에 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있는 대륙에 고마와할 때라고 말했다.

        세상일이란 불가사한 일이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큰 결심을 갖고 대방에게 내 마음을 열어 준다면 대방도 필연코 마음의 빗장을 열어 줄것이다. “내 마음이자 남의 마음”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대방과 엇서서 싸울것이 아니라 대방의 립장에서서 생각해 볼줄 알아야 하며 대방의 의사를 존중할줄도 앓아야 한다. 대방과 선의적으로 타협하며 믿음을 주면서 한발 물러서기도 해야 한다.   

         내가 대만경제의 발전원인을 묻자 하씨는 이렇게 알려주었다. 대만 경제가 발전한것은 대만에서 경제 발전 포인트를 제때에 잘 잡은데 있다고 했다. 대륙에서 정치운동에  한창 열을 올릴때 대만에서는 경제건설을 추진하였다. 하여 대만은 경제건설에서 대륙보다 한보 앞섰다고 했다. 좀 늦었지만 대륙에서도 키를 돌려 개혁 개방과 경제건설을 총력을 기울렸기에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대륙의 경제건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세계 제2경제 대국으로 되였다고 하면서 하씨는 대륙의 성과를 긍정하였다. 그러면서 하씨는 지금 대륙과 대만의 경제 발전 정도는 거이 대등한 수준이라 하였다. 내가 보건대도 그러 하였다. 대륙의 연해지구의 건설을 보면 어떠면에서는 대만을 초월하였다는 감이 들었다.

        나는 해협 량안에 활짝 핀 혈육의 꽃들이 평화와 행복의 향기를 만방에 길이길이 풍길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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