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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아리랑>의 향기
-김희관
내가 언제부터 <아리랑>을 알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 어린시절 상지 하동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우물가 그늘에 모여앉아 부르는 민요를 듣은 때부터일것이다.
1985년11월 필자는 연변예술학교예술단을 인솔하여 미국의 워싱톤 등 도시들을 한달간 순방하면서 공연을 한적이 있다. 그 때 우리는 당지 동포들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수없이 목메여 부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987년 7월 일본 NHK방송의 제작진을 초청해 와서 우리와 함께 <머나먼 옛날-- 발해>라는 TV력사다큐멘타리를 촬영한적이 있다. 그 프로는 유명한 감독인 미즈다니선생이 메카폰을 잡았다. 그는 우리를 만나자 마자 자기는 조선민족의 <아리랑>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지난 몇년간 조선과 한국을 넘나들면서 <아리랑>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아리랑>세미나에도 참가하고 <아리랑>의 본고장인 강원도 정선과 조선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도 올랐으며 지금은 <아리랑>다큐멘타리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미즈다니선생이 그 때 기념으로 남긴 <아리랑>특집을 아직도 종종 펼쳐본다. 미즈다니선생은 <아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에서 <1929년 조선총독부가 <아리랑 금창령>을 내렸다. 그것은 3년전 라운규의 유명한 영화 <아리랑>이 조선민족이 스스로 만든 최초의 영화작품으로 상영되였으며 같은 해 가을에는 광주항일학생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20세기 70년대 한 일본사람이 아버지로부터 광복전 조선영화 필름을 많이 물려받았다고 하면서 그중에는 라운규의 영화<아리랑> 필름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 수많은 담판을 했었다. 그런데 그는 몇년전 죽을 때까지 <글쎄요>하면서 영화 <아리랑>필름을 끝내 내놓지않아 아직도 그 실존여부가 묘연하다. 2003년 한국의 영화인들은 라운규의 영화<아리랑>을 새로 제작해 남북에서 동시 상영하는 축제도 벌렸다.
<아리랑>은 미국 여류작가 님 웰즈도 감동시켰다. 그는 1937년 연안에서 만난 조선족 혁명가 김산을 주인공으로 인물전기 <아리랑>을 펴냈다. 1995년 님 웰즈녀사는 이미 80고령의 할머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흥분된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김산은 자기에게 <아리랑>은 열두고개라고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산은 자기가 기자생애에 만나본 가장 멋진 동방의 혁명지사였다고 역설했다. 지금 북경에 살고 있는 김산의 아들은 몇년전 최초 영어판 <아리랑>을 한국의 지인들로 부터 선사받으면서 70년대 전에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1983년 중공중앙에서 명예를 회복해 주면서부터는 혁명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한다.
1996년 필자는 <중국연변조선족력사화책>을 주필하면서 김산선생이 연안에 계실 때 님 웰즈가 찍은 사진은 손쉽게 수집했는데 라운규선생의 인물사진은 국내외의 수많은 자료를 뒤져도 얻지를 못해서 할수없이 라운규선생이 영화<아리랑>에 출연한 배역사진을 대용으로 실었다. 그러나 우리민족 영화사업의 선구자인 라운규선생이 20세기 10년대말 룡정시 지신향 명동학교 출신이라는 력사를 알면서도 인물사진 한장 못 모신다는점이 늘 알끈했었다. 몇년후 필자는 조선 <통일신보>에 실린 라운규선생의 생애와 영화예술에 관한 보도시리즈를 읽게 되였고 마침내 1촌 크기의 라운규선생의 인물사진까지 얻을수 있었다. <중국연변조선족력사화책>은 국가도서상을 받았다.
1997년 필자는 <중국조선족력사화책>원고를 후배들에게 넘겨주면서 TV대하력사다큐멘타리<연변아리랑>을 제작할것을 부탁했다. 너무나 고마운것은 전국정협 부주석 조남기장군님께서 친필로 <연변아리랑> 휘호를 써주시여 연변TV에서 방송한 50여부의 대하력사다큐멘타리 <연변아리랑>을 격려해 주시였다.
연변에서 <아리랑>은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는데 큰몫을 하고있다. 연변가무단이 창작하고 공연한 가극 <아리랑>은 국가문화부의 대상을 받았다. 주문예집성판공실에서는 오래전부터 연변에서 구전해 내려온 여러가지 <아리랑>을 수집하고 기보했는데 그중 어떤것은 한국 당지에서도 실전된 <아리랑>이여서 아주 귀중한 민요유산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연변에는 아리랑예술단을 비롯해서 <아리랑>을 주제로 하는 대중문화가 발달하고 있으며 근년에는 도처에서 <아리랑>으로 이름을 지은 상호와 광고를 흔히 볼수있다.
우리는 전통문화가 있는 민족이며 역시 문화전통이 있는 민족이다. 우리는 고목에 꽃을 피우듯이 <아리랑>이 계속 울려퍼지게 해야할것이다. 몇년전CCTV에서 아리랑그룹이 청년가수 콩클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절찬하는 가수> 1위에 당선됐다고 방송하는 순간 나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아리랑>은 조선민족 전통문화의 대명사이다. 몇백년동안 구전해온 <아리랑>은 조상의 넋, 겨레의 얼, 민족의 혼을 담고있는 문화유산이며 우리의 정과 한을 한몸에 지니고 살아 숨쉬면서 전통문화의 향기를 온누리에 휘뿌려 왔다. 앞으로 우리가 세세대대로 전통문화를 계승해 나간다면 우리의 생활에는 <아리랑>의 향기가 그윽할것이다.
2003년 9월 3일부터 연변라디오방송에서는 <아라랑의 향기>라는 프로를 신설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도 그 프로를 기획하고 첫방송에 참여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득하다.
우리의 후손들이 중국과 세계의 방방곳곳에서 아리랑을 부르면서 한오백년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바이다.
(작자 연변문화국 국장 연변TV방송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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