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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학시절 동창생들이 부부동반으로 두만강려행을 했다. 국경절련휴기간이라 모두들 편한 마음으로 려행길에 올라 차창밖에 무르익어가는 가을풍경을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동창생들이 모이면 첫 화제는 당연히 "옛날이야기"다. 1962년 가을, 20대 청춘남녀들이 농예가의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하여 동창생이 되였다. 그때는 3년 "곤난시기"를 금방 지내고 나라의 경제와 식량형편이 다소 좋아지는 시기여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얼마간 화색이 도는 시절이였다. 또한 "뢰봉정신"이라는 사랑의 물결이 온누리에 넘쳐나 서로 사랑하고 돕는 사회풍기가 흥했다. 그러나 그러한 호시절도 잠간,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대동란"이 터지면서 학우들은 웃음을 잃은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오늘 려행길에서는 모두들 약속이나 한듯이 그런 가슴아픈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대학시절 즐겨부르던 노래와 기막히게 웃겼던 "사건"들만 찾아내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제는 모두 70세 좌우의 "로지식분자"들이여서 자신의 인생이야기, 자식키우던 이야기, 건강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고단수였다. 또한 열두사람중에 동창생들의 남편이나 부인은 교수와 공무원들이라 참신한 정보와 지식을 보태주어 더욱 즐거웠다. 동창생들은 모두 고급농예사들이라 농사를 보는 안목이 남달랐다. 려행길에 두만강반의 벼농사를 살펴보면서 그 누런 색상으로 보아 대체로 풍년이 들었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벼종자가 좋고 농약이 구전하여 이제는 저온랭해도 잘 이겨내기에 기상악재가 없으면 풍년은 당연한것이다. 도로는 나라의 경제동맥이다. 이번 려행길에 인상이 깊었던 또 한가지는 두만강일대의 도로였다.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뻐스편으로 룡정에서 삼합으로 가자면 무척 힘들었다. 도로가 모래길인것은 물론이고 오랑캐령을 넘을 때는 도로가 산세를 따라 험난하게 뻗어서 덜커덩거리는 버스에 앉아 마음을 조여야 했다. 오늘은 단풍이 울긋불긋 물든 산천을 구경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에 어느덧 뻐스는 산속을 벗어나 두만강가의 변강도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년동안 두만강려행을 하지 않은 사이에 두만강가에는 이미 넓고도 평탄한 포장도로가 쭉 뻗어있지 않는가. 포드뻐스가 변강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두만강은 유유히 바다로 흘러간다. 1929년 독일에서부터 시작한 고속도로는 1954년부터는 미국으로 뻗었고 나중에는 여러 나라로 뻗으면서 경제대동맥의 역할을 해왔다. 1989년에는 중국에도 고속도로가 뻗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연장선이 이미 지구 두바퀴를 거의 도는 7만여키로메터라고 한다. 요즘은 고속도로가 발달하고 국도가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촌마다 마을마다 세멘트향촌도로가 깔려 모두 도시와 련결되였다. 아름다운 산천경개앞에서는 누구도 흥이나는 법이다. 삼합의 산등성에 있는 "망강각(望江阁)"정자에 올라 두만강을 내려다보니 산천이 참으로 아름다왔다. 흥이난 부인들은 포드뻐스에서 울려나오는 즐거운 노래소리에 맞춰 춤판을 벌렸다. 그러한 장면들은 이미 디지털사진으로 담았으니 두고두고 "한살이라도 젋었을 때"를 회고하면서 웃을것이다. 그 흥을 이어 백년이 넘는 기와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닭도리탕, 감자밥에 옥수수까지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오후 귀가길에 일행은 명동촌을 방문하여 우리 력사를 돌아보았다. 1908년 4월, 김약연선생께서는 명동학교를 꾸려 항일시인 윤동주, 영화 "아리랑"의 주역 나운규 등 수많은 항일지식인을 키워냈다. 우리는 윤동주시인의 생가를 방문하여 그의 생애를 더듬고 조문을 드렸다. 150여년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두만강을 건너와 이 땅에 삶의 터전을 닦고 벼농사를 지으면서 희로애락의 력사를 엮어왔다. 그러한 력사를 지켜본 "달라재"선바위와 산등성에 단풍이 붉게 물들어있어 마치도 거대한 화룡이 꿈틀대는듯했다. "동창생들의 려행"은 참 좋은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려행은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하면서 인생을 뒤돌아보았고 겨례들의 빛나는 력사를 탐방하면서 자호감을 느꼈으며 산천경개를 두루 돌아보면서 우리도 청산처럼 살아가자고 다졌다. 그래서인지 저녁에 한 "녀학생"이 메일에 이번 려행은 "평생 잊지못할 기념"이 될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몇달에 한번씩 이러한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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