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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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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되여 나는 처녀 (2)
2013년 10월 29일 19시 50분  조회:2890  추천:0  작성자: 넉두리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2)

김희수


 

2. 괴상한 반성문
 

 

백지우에 《반성문》이란 세글자를 커다랗게 써놓고 귀녀는 머리를 들어 커튼을 반쯤 드린 창문쪽을 바라본다. 창밖의 손바닥만한 하늘엔 송이송이 흰 구름이 피여있다. 나비같은 예쁜 구름이 창가에 매달렸다가 잠깐사이에 귀녀의 시선을 벗어난다.

오늘 창밖의 하늘은 참 멋질거야. 귀녀는 그 《예쁜 나비》를 시선에 꼭 잡아두지 못하는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비뿐이 아닐것이다. 창밖의 하늘엔 잠자리, 갈매기, 코끼리, 원숭이…별의별 애물단지들이 다 있을것이다.

쓰라는 글은 쓰지 않고 어디다 정신을 팔아요?

왜가리소리에 펄쩍 놀라 머리를 되돌리니 《만사통》이 안경너머로 눈살이 꼿꼿해서 쏘아보고있었다. 귀녀는 그 목소리가 듣기 싫었고 그 눈길이 보기 싫었다.

녀간수! 귀녀는 반성문 첫줄에 녀간수란 세글자를 쓰고 감탄표를 찍었다. 언제부터인지 귀녀는 자기가 살고있는 3층저택이 감옥으로 느껴졌다.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장, 꼭 닫긴 철대문…이 《감방》에 갇힌 귀녀자신은 《죄수》이고 언제나 꽥꽥 왜가리소리로 귀녀를 책상에 꼼짝달싹 못하게 얽매여 놓는 만사통은 명실공히 《녀간수》이다.

처음부터 귀녀는 만사통이 싫었다. 학교에 선생님이 있으면 됐지 왜 집에 또 선생님이 있어야 하나요? 전 싫어요! 10년전 귀녀는 그렇게 아버지한테 항의했다. 그러나 아버진 싫긴 왜 싫어! 하고 단마디로 그 항의를 눌러버렸다.

오늘부터 난 귀녀의 선생님이예요. 이제부터 귀녀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해요. 알겠어요?

10녀전 귀녀를 앉혀놓고 하는 만사통의 첫 훈시였다.

이제부터 귀년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선생님한테서 배워야 해요!

아지미가 안 배워줘도 돼요. 학교선생님이 다 배워주는데 뭘요.

아지미가 아니라 선생님이예요. 선생님!

아지미예요. 아지미, 아지미, 아지미!

귀녀는 끝내 만사통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그때로부터 귀녀의 《감옥》생활은 시작되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벗어놓기 바쁘게 또 책상에 책을 펼쳐놓고 만사통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만사통은 손색없는 《녀간수》였다. 조금만 눈길을 딴데 팔아도 왜가리소리, 화장실에 가서 조금만 지체해도 왜가리소리…게다가 꼿꼿이 쏘아보는 송곳눈!

이제부터 공부 시작해볼가요? 이렇게 가르쳐 될가요? 피로해요? 그럼 좀 쉬세요…만사통이 이쯤만 상냥하고 부드럽고 친절했더라면 귀녀는 과외공부에 그다지는 싫증을 느끼지 않았을것이다. 그런데 옥이랑 철이랑 함께 뛰놀고싶어 죽을 지경인 귀녀를 책상에 꼼짝 못하게 붙잡아 놓고 읽어요! 풀어요! 써요! 하는 왜가리소리밖에 없었다. 짜증 섞이고 신경질적인 째지는 왜가리소리…

잡생각 말고 빨리 반성문을 써요!

저쪽 쏘파에 앉아 영문화보를 뒤적거리던 만사통이 또 왜가리소리를 질러댄다. 손은 책을 번지고 눈은 귀녀의 일거일동을 지켜본다.

귀녀는 다시 만년필을 거머쥐였다. 그러나 눈길은 저도몰래 또다시 창밖으로 쏠린다. 귀녀는 남달리 하늘을 좋아한다. 눈 내리는 하늘, 비오는 하늘, 무지개 걸린 하늘, 노을 비낀 하늘, 달밝은 하늘, 별이 총총한 하늘, 구름 핀 하늘…이런 하늘을 바라보면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며 마음이 상쾌해진다.

아까 예쁜 나비같은 구름이 매달렸던 창가에 이번엔 손오공같은 구름이 나타났다. 손오공은 석가여래에게 오행산에 눌리어 꼼짝달싹 못하고있는듯 했다. 그 손오공은 자유를 잃고 조롱속에 갇혀있는 귀녀자신같기도 했고 문밖에 꿇어앉아 벌을 받고있는 한주먹오빠같기도 했다.

감시병…귀녀는 반성문의 두번째 줄에 감시병이란 세글자를 적고 줄임표를 찍는다. 이 감방엔 녀간수가 있고 문밖엔 또 감시병이 있다. 귀녀가 어디로 가면 어디로 따라 가며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감시하는 감시병 한주먹은 10년전 녀간수 만사통과 함께 귀녀의 집으로 왔다. 그때 한주먹은 18세의 나어린 총각이였다. 키는 작은 편이였으나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고 건장한 몸매에선 사내다운 기품이 드러나고있었다. 한주먹에 대한 첫인상은 만사통처럼 그렇게 나쁘진 않았으나 귀녀는 한주먹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옥이랑 철이랑 함께 학교로 가고싶은데 억지로 오토바이나 승용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는 한주먹, 하교하여 옥이랑 철이랑 함께 뛰놀고싶은데 다짜고짜로 몰고가는 한주먹이 그때는 정말로 미웠다.

어느새 창밖의 손오공이 사라졌다. 당승을 만나 오행산에서 해방받았을가? 귀녀는 멀고도 험난한 서천길을 떠난 손오공을 따라 가고싶었다. 하지만 벽과 천정이 시선을 가로막아 귀녀는 도무지 손오공을 따라 갈수 없었다. 귀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이 싫었다. 밖으로 막 뛰쳐나가고싶었다. 바깥도 역시 《감옥》이지만 그래도 집안 《감옥》보다는 퍽 자유스럽다. 적어도 밖에선 집안보다 넓은 하늘을 볼수 있다. 하늘을 볼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당장 뛰쳐나가고싶다.

귀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쏜살같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있던 한주먹이 몸을 솟구치며 앞을 막아선다.

또 어딜 가려고?

하늘을 보러가요.

하늘? 웬 얼빠진 소릴…못간다, 못가!

비켜요. 난 하늘을 꼭 봐야해요!

안돼! 널 지켜내지 못했다고 또 날벼락이 내리라고? 가겠으면 함께 가. 꾀부리지 말고.

한주먹은 귀녀를 끌고 벤츠앞으로 간다. 귀녀는 조롱속같이 꽉 막힌 승용차가 싫었다. 언제나 확 트인 오토바이가 좋았다. 귀녀는 한주먹을 뿌리치고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한주먹이 날렵하게 오토바이에 뛰여올라 시동을 건다. 귀녀는 오토바이 뒤에 훌쩍 뛰여올라 두팔을 벌려 한주먹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오토바이는 나는듯이 철대문을 벗어나 거리로 질주한다.

귀녀는 감옥에서 빠져나온듯 기분이 상쾌하여 코노래를 흥얼거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속을 요리조리 비집으며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달린다. 귀녀는 한주먹의 바위같은 잔등에 얼굴을 묻는다. 귀녀는 이 《바위》가 좋았다. 바위에 기대여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고싶었다.

정말로 멋진 하늘이구나!

한주먹이 구름이 쌩쌩 스쳐지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그러나 귀녀는 눈 한번 팔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길바닥만한 하늘이 뭐 볼멋이 있다고 그래요?

길바닥만하다니?

길량쪽에 줄비하게 일떠선 고층건물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그래 길바닥만하지 않아요?

허허참, 그렇다고 보니 정말 그런것 같기도 하다.

난 좁은 하늘이 싫어요. 우리 끝없이 넓디넓은 하늘을 보러 가자요!

그래 우리 하늘을 날아보자!

한주먹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헬리콥터처럼 땅을 차고 창공을 날아옌다. 아아! 귀녀는 너무도 기뻐 연신 환성을 지른다. 저 멀리 손오공같은 구름이 떠있다.

저 손오공을 따라 잡아요!

귀녀가 손짓하자 한주먹은 마력을 다내여 《손오공》을 쫓아간다. 손오공의 곁에는 당승도 있고 오정도 있고 저팔계도 있고 백골정도 있다. 손오공이 여의금고봉을 들어 백골정을 친다…

또 창밖에 정신을 팔아요?!

만사통이 무작정 창가로 다가가 커튼 줄을 잡아당긴다. 그러자 손오공도 당승도 오정도 저팔계도 백골정도 가뭇없이 사라진다.

싫어요!!! 귀녀는 반성문의 세번째 줄에 싫어요란 세글자를 쓰고 세개의 느낌표를 찍는다. 감옥이 싫다! 만사통이 싫다! 한주먹이 싫다! 그래서 귀녀는 어제 집을 뛰쳐나갔던것이다. 그런데 한스럽게도 도로 잡혀와 다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제밤 귀녀와 한주먹을 앞에 세워놓고 아버지는 노한 사자마냥 집이 떠나갈듯 줄욕을 퍼부었다.

왜 집을 뛰쳐나갔어? ?

뛰쳐나간게 아니예요. 저도 남들처럼 혼자 다녀보고싶었어요.

혼자 다니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아무일도 없었잖아요?

어떻게 그냥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느냐?

전 스무살이예요. 얼마든지 저절로 자기를 보호할수 있어요!

닥쳐!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안된단 말이다! 그리고 너도…

천둥같이 버럭버럭 화를 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한주먹을 닥아세웠다.

넌 도대체 호위를 어떻게 했길래 눈앞에서 귀녀를 놓쳐버린단 말이냐? ?!

사장님,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한주먹은 일본놈의 앞에선 한간처럼 부동의 자세로 서있다가 아버지의 훈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허리만 굽실거렸다. 귀녀는 그런 한주먹이 얄미웠다. 영웅호걸같은 그 기개는 어디로 가고 저리도 비굴할가? 아버지의 꾸중은 계속되였다.

넌 엄중한 실책을 범했단 말이다! 귀녀의 신상에 털끝만한 일이 생겨도 안된단 말이다! 절대! 이 절대한걸 잊지 말아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한주먹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였으나 귀녀는 마음속으로 불복이였다. 아버지는 온밤 욕사발을 퍼붓고도 부족하여 아침엔 귀녀에게 반성문을 쓰게하고 만사통더러 귀녀가 반성문을 쓰는걸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한주먹에게는 문밖에 꿇어앉아 있는 책벌을 내렸다.

반성문을 쓰라지만 잘못이 없는데 무었을 반성한단 말인가? 귀녀는 석줄로 내리 쓴 《반성문》을 바라보며 저도몰래 킥 웃었다. 웃다가 졸음이 몰려와 책상에 엎드렸다.

또 다시 하늘을 보고싶었다. 손바닥만한 하늘, 길바닥만한 하늘은 이젠 싫었다. 끝없이 끝없이 넓고 푸른 하늘의 전경을 보고싶었다. 그런 하늘을 보려면 옥상에 올라가야 한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야말로 시원하게 탁 트여있는 정말 하늘이다. 넓디넓고 푸르디푸른 하늘! 귀녀는 그런 하늘을 보고싶었다.

귀녀는 만사통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빠져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와아!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귀녀는 한눈에 안겨오는 멋진 정경에 환성을 질렀다. 온 하늘에 떨기떨기 햇솜같은 흰구름이 멍울멍울 피여있지 않는가! 기화요초같고 기암괴석같고 가지가지 산악같고 온갖 동물같은 천태만상의 선경에 그만 넋을 잃을 지경이였다. 귀녀는 그 구름천지속에서 《손오공》을 찾았다. 여의금고봉을 들고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손오공이 마침내 시야에 잡혀왔다. 손오공의 곁에는 이상하게도 당승과 오정, 저팔계대신 아버지와 만사통과 한주먹이 나란히 서있었다.

싫어요! 귀녀가 그렇게 소리치자 손오공이 털 한대를 뽑아 휙- 하고 불었다. 그러자 아버지와 만사통과 한주먹이 하나로 합쳐서 그분의 얼굴로 변했다. 그분이 자애롭게 웃으며 귀녀를 오라고 손짓한다. 귀녀는 그분을 따라가고싶었다. 그러나 그분은 아득한 하늘에 계신다. 날개없는 귀녀는 안타까웠다. 그때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옥상에 내려오더니 귀녀를 태우고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간다. 그분은 지척에 있었다. 그러나 그분을 따라 잡자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분과의 거리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빨리!

손오공을 향해 소리지르던 귀녀는 그만 비틀거리다가 구름에서 떨어져내렸다.

! 아…

아이, 한심해라! 대낮에 자면서 잠꼬대까지 하다니?!

깜짝 놀라 깨여나보니 만사통이 왜가리소리로 성화같이 독촉한다.

반성문을 빨리 쓰세요.

벌써 다 썼는데요.

귀녀는 길게 하품을 하며 석자씩 석줄로 쓴 《반성문》을 만사통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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