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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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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는 없다
2013년 11월 24일 16시 00분  조회:3704  추천:1  작성자: 넉두리
단편소설

메아리는 없다


김희수
 
 
만약 이 세상에 녀자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내 혼사때문에 우리 집 령감 로친이 근심걱정하지 않아도 될것이고 싱거운 사람들에게서 너 올해 서른하고도 몇살이지? 하는 귀찮은 질문을 듣지 않아도 될것이고 나 자신도 장가갈 생각으로 오장륙부를 새까맣게 태우지 않아도 될것이니 말이다.
녀자 없는 세상, 생각만 해도 신난다! 발가벗고 다녀도 무방할것이니 천쪼박도 절약하게 될것이고 따라서 배설을 할 때 바지를 벗고 입는 번거로움도 덜수 있을것이다. 강간도 없고 매음도 없고 결혼도 없고 리혼도 없을것이니 얼씨구 좋을시구.
그런데 가석하게도 하느님은 아담의 갈비를 취하여 녀자를 만들었으니 그때로부터 세상은 란장판이 되였다.
바로 이 세상에 녀자가 있기에 나 백인철이란 인간이 살고있는 편벽한 산골마을에 구슬픈 이야기가 생긴것이다.
나는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날마다 땅을 뚜지며 버러지같은 생활을 하고있는 서른네살이나 먹은 로총각이다. 녀자 있는 세상에서 녀자가 없어서 장가를 못가는 가련한 로총각이다. 만약 나 백인철이가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아서 별장을 짓고 자가용을 굴리고 다닌다면 녀자가 절로 찾아올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십명 수백병씩 줄쳐 달려올것이다. 그러나 가석하게도 나는 털면 문지뿐인 가난한 시골총각이다. 그렇다. 바로 농민이기때문이다.
농촌처녀들마저 우리 농촌총각들을 버리고 도시인들의 품에 안겨버렸다. 우리는 응당 우리의 안해가 돼야 할 처녀들이 하나, 둘씩 우리의 눈앞에서 떠나는것을 눈을 펀히 뜨고 보면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지어 우리의 처녀들을 빼앗아간 그 도시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묵묵히 농사나 짓지 않으면 안될 가련한 운명이였다. 왜서 어떤 인간들은 안해를 두고도 모자라서 정부, 첩, 창녀 따위를 수두룩 안고 즐기는데 우리 농촌총각들은 자기의 뼈중의 뼈고 살중의 살인 안해마저 찾을수 없는가?!
우리의 마을엔 자기의 자기의 갈비뼈를 찾지 못해 울고있는 서른살 넘은 로총각들이 많기도 하다. 정씨네 5형제, 오씨네 3형제, 곽씨네 쌍둥이, 그리고 달수, 민호, 범철이 …이런 로총각위원회에서 힘이 세고 지휘능력이 강한 내가 위원장인 셈이다. 우리 위원회에서는 한가한 겨울철이면 모여들어 트럼프, 마작놀이도 잘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것없이 술판도 자주 벌린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고 하지만 이 삭막한 세상에 술도 안마시고 어떻게 사는가. 도시인들은 고급양주에 이쁜 계집을 끌어안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지만 우리 로총각들은 김치쪼각에 《똥빼주》로 마음속 울분을 토로할수밖에 없다.
《제길할, 등어른의 개혁개방정책이 좋긴 다 좋은데 딱 하나 우리 로총각들이 장가 못드는게 나쁘거덩!》
불평가라고 불리우는 민호가 세번째 잔을 굽내면서 불평을 부리자 언제나 그와 맞서기를 좋아하는 범철이가 즉시 반박했다.
《야, 임마! 등어른이 뭐 우리를 장가 들지 말라고 했니? 우리 머리가 장사골이 트지 못해 돈을 못번 탓이지.》
《그러찭구.》
내가 끼여들었다.
《이전엔 모어른, 화어른의 이름뒤엔 만세를 붙이지 않으면 안됐지. 어지 그뿐이야. 그 어른들의 이름 앞엔 꼭꼭 위대한 령수이니 영명한 령수이니 하고 규정해놓았지. 그런데 등얼른의 이름뒤에 언제 만세를 붙여봤니? 그때로부터 호어른, 조어른, 강어른에 이르기까지 만세를 붙이지 않았지. 물론 그 어른들의 이름 앞에 위대한 령수이니 영명한 령수이니 하는것도 규정해놓지 않았지. 바로 만세를 웨치지 않으면서부터 그 어른들과 우리는 동지사이로 가까워졌고 중국은 발전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야, 그 만세소리를 좀 작작해라. 그 만세소리가 무슨 우리와 상관이야. 술이나 들자.》
민호가 내 말허리를 자르며 술잔을 부딪치자 나는 잔을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우리하고 상관없겠니? 너 로총각뒤에 만세를 붙여봐라, 어떻게 되는가.》
《로총각만세! 히히, 그거 참, 그럼 우린 영원히 로총각으로 끝장나는게 아니야. 빌어먹을 <만세>야, 썩 물러가라!》
민호가 툳덜거리자 우리는 일제히 《물러가라! 》하고 웨치면서 술잔을 들었다.
《제길할, 이러다가 40이 되고 50이 되고 60이 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장가 못들고 총각귀신으로 죽게 되겠다. 그것도 숫총각귀신으로 말이야. 흐흐흐.》
《그래, 우리 이러다가 섹스 한번 못해보고 죽겠다.》
민호가 다섯번째 잔을 비우며 또 불평을 토하자 범철이가
《야, 그렇게 몸살이 나면 어디 아무 녀자나 붙잡구 해봐라!》
하고 빈정거려서 성난 민호가 범철이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새끼! 마을에 처녀 하나 없는거 누구하구 하라니? 니 에미하구 하라니?》
《임마, 한족들처럼 미개하게 그런 쌍욕을 다 하기야?》
범철이도 노하여 맞받아 민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둘이는 밀치고 닥치고 하며 곧 싸울 태세였다.
《너들이 왜 이래?! 당장 손을 놔!》
내가 꽥 고함을 지르며 제지시키자 둘은 즘즉해졌다. 좀 지나 둘은 언제 다퉜나싶게 다시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봉구한 그 나그네 사람질을 못하겠더라.》
한켠에서 묵묵히 술만 마시던 달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봉구는 매일 술에 취하여 녀편에한테 손찌검을 들이대는 위인이다. 봉구의 녀편네가 또 맞아서 면상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면서 달수는 그 아낙네들 동정하여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민호가 《야, 임마, 남의 녀편네가 맞은게 뭐 그리 가슴이 아파서 그러니? 이제보니 니 봉구 녀편네한테 뜻이 있는게 아니야?》하고 능글능글 웃으며 달수를 골려주고 범철이도 덩달아
《달수, 니 늘 봉구네 밭일을 도와주던게 뢰봉을 따라배워 좋은 일을 하는가 했더니 원래는 엉큼하게 다른 뜻이 있었구나!》
하고 비웃으니 달수는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서 변명했다.
《너들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그 아줌마 나보다 다섯살이나 이상인데.》
《나이 좀 많은게 어떻니? 그 아줌마 그래도 아직까지 싱싱한 멋이 남아있는게 농촌안까이치구 괜찮더라!》
《그렇찮구. 그만하면 안구 잘만하지믄. 달수야, 그 주정뱅이 봉구를 리혼시키구 니 그 자리를 차지해라!》
민호가 범철이가 다시 입을 모아 골려주자 달수는
《그런게 아니라는데 너들이 왜 자꾸 이러니?》
하면서 무안하여 한쪽 구석에 피하여 얼굴도 들지 못했다.
술판이 끝나서 헤여질 때는 밤이 깊었다. 달빛을 밟으며 나하고 나란히 걸어가던 민호가 걸음을 멈추고 바지춤을 내리우기 바쁘게 쏴-하고 줄기차게 배설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그와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장난군처럼 제 물건을 쥐고 《물줄기》를 멀리 뿜어대던 민호가 갑자기
《제길할, 이 놈도 불쌍한 놈이지. 주인을 잘못 만나 30여년을 오줌누는 구실밖에 못하고있으니까 말이야!》하고 탄식했다. 그 말에 나도 동변상련으로 가슴이 저려났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으나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이 오지 않는다. 밤마다 이렇게 자리에 누으면 녀자생각에 그리움만 사무친다.
내 갈비뼈며 살점인 해옥이도 나를 버리고 도시인의 품에 안겼다. 아, 야속한 해옥이 …
마을에서 일등미인이라고 불리우는 해옥이는 내가 이성에 갓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랑하던 녀자였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남몰래 속삭이던 사랑이 결혼을 약속하는 사랑으로 무르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달콤하고 행복한 나날들이 흘렀던가.
그러나 해옥이가 시집가던 날, 신랑은 내가 아니라 도시총각이였다. 꽃을 단 신랑의 차가 마을에 들어서자 몽둥이를 들고 대기하고있던 나는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끼호떼처럼 용감하게 달려나갔다. 노기충천한 내가 몽둥이로 차유리를 막 짓부시려는데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잔치에 온 신부의 친척들이 내 손에서 몽둥이를 앗아내고 미치광이처럼 길길이 날뛰는 나를 동구밖 버드나무에 꽁꽁 묶어놓았다. 그들은 신랑의 차가 해옥이를 싣고 멀리 사라진 뒤에야 나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민호랑 범철이랑 하는 말이 해옥이는 울면서 신랑의 차에 올랐다고 한다. 울면서 시집간 해옥이는 지금 잘 살고있는지? 나를 배반하고 간 해옥이지만 나는 그 녀자를 돈끼호떼가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를 그리듯이 그렇게 바보처럼 그리고있다.
해옥이가 도시로 시집을 간 그해 나도 도시가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가를 알고싶어 도시로 들어갔다. 삼륜차도 끌어보고 외자기업에 들어가 막벌이도 해보았지만 도시에 발을 붙일수 없어 고향마을로 도로 돌아오고말았다.
농촌에 돌아와 땅을 뚜지면서도 밤마다 해옥의 생각뿐이였다. 해옥의 생각에 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베개를 끌어안는다. 그러면 베개가 소곤소곤 자장가를 불러준다.
꿈속에서 선녀가 너울쓰고 나를 찾아온다. 내 색시로 되겠다며 하늘에서 내려왔단다. 그 선녀를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해옥이였다. 해옥이와 나는 신랑신부가 되여 오붓한 신혼살림을 꾸려간다. 아들 딸을 낳고 아기자기 재미있게 살아간다.
이것이 꿈 아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깨고 나면 아쉽게도 꿈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해옥이가 정말로 뜻밖에도 내 앞에 나타났다. 아이의 손목을 쥐고 내 앞에 나타난 해옥이는 여전히 처녀시절처럼 아름다웠다.
《이 앤 정말 귀엽구만.》
나는 그 녀자의 《복제품》인 아이를 안아주었다.
《넌 외가집에 놀러왔겠구나. 아빠는 안 왔니?》
《아니야, 엄마와 아빤 리혼했어.》
아이의 말에 가슴이 선뜩해난 나는 얼른 해옥이의 기색을 살폈다.
《정말이오?》
《얘가, 무슨 허튼소릴…》
해옥이는 낯색이 파랗게 질려서 아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내가 거듭 따져서야 그 녀자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잔치날 나의 추태를 목격한 신랑은 해옥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따져 물으며 매일마다 해옥이를 매질했다고 한다. 아이가 태여나서 네살이 되였으나 신랑의 의처증은 점점 더 심해갔단다. 더는 참을수 없어 해옥이는 리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친청집으로 온거란다.
《내가 해옥이를 해쳤구만. 그날 그런 광기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해옥인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인철씨 잘못이 아니예요.》
나의 참회에 해옥이가 도리머리질했다.
《모두 제 잘못이예요. 제가 …》
말을 주고 받는 사이에 어느덧 옥수수밭머리에 이르렀다.
《인철씨도 색시를 얻어야죠. 》
《색시…》
소슬한 가을바람에 옥수수들이 설레이고 곱게 풀어헤친 그 녀자의 머리카락도 흩날린다.
《해옥이…》
나는 그 녀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녀자는 《이러지 마세요.》하면서도 몸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입술을 찾을 때 그 녀자는 두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응해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고 숨이 딱 멎는듯 했다.
《아, 해옥이…》
나는 그 녀자를 끌어안고 옥수수밭속으로 들어갔다. 내 서투른 공격에 그녀는 능란한 동작으로 배합해주었다.
나는 그 녀자가 인도해주는 동굴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그 깊고깊은 동굴은 들어가고 들어가도 끝이 없을상싶었다. 드디여 화려한 폭발이 있었다. 아, 서른 네살이 첫 폭발! 그 사람을 죽여주고 미치게 하는 폭발속에서 나는 사람이 사는 희열을 느꼈다.
《이것이 녀자다!》하고 알려주고 나를 진정한 남자로 만들어준 해옥이! 나는 너를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어느날 해옥이와 함께 옥수수밭에서 나오다가 뜻밖에 민호와 마주쳤다. 그때 해옥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민호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뜩이는것을 나는 보았다. 하지만 내가 쏘아보자 그는 기가 죽어 시선을 피해버렸다.
어쩐지 불쾌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것인데 아니나다를까 이튿날 밤중에 해옥이가 울면서 우리 집에 뛰여들었다. 옷은 볼품없이 찢어졌고 머리는 삼검불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도대체 웬 일이요?》
나는 울기만 하는 그 녀자를 달래면서 영문을 물었다.
《흑흑 …민호가 …》
민호가 내가 부른다고 해옥이를 꼬셔가지고 밭에 나가 겁탈했단는것이다.
《개자식, 감히 내 녀자를 다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민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달짜고짜로 녀석을 끌고나와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팼다.
《인철아, 내가 잘못했다. 난 사람이 아니다! 난 참을수 없어 그런거야.》
《짐승같은 새끼! 그것도 말이라구 하니? 》
《그래 난 사람이 아니야, 난 짐승이야. 한번만 용서해줘! 》
민호는 내 발아래 무릎을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나는 또 한번 발길로 녀석을 걷어찼다.
《개자식, 넌 강간범이야! 강간범은 감옥이란걸 몰라?》
《제발 용서해줘!》
《난 널 법에 걸테다!》
《제발 빈다. 날 용서해줘. 난 죽어두 감옥엔 못가.》
《너같은건 용서없다. 감옥에 들어가 콩밥이나 먹어!》
나는 애걸복걸하는 민호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해옥이는 울고있었다.
《내 그 녀석을 혼내줬소. 래일 파출소에 가서 고발하기오.》
《인철씨…》
해옥이가 울음을 그치고 애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를 용서해주자요. 》
《뭐라오? 》
《소문이 나면 저도 좋을것 없고 그리고…》
애원에 찬 그 녀자의 시선과 마주친 나는 머리를 끄덕여 용서해주는것에 동의를 표시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튿날 한낮에 뒤산에서 목매 죽은 민호의 시체를 발견할줄ㅇ리야! 녀석의 호주머니엔 이런 유서가 들어있었다.
《…나는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감옥에 갈수 없다. 감옥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편이 나으리라. 하지만 녀자를 알고 죽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 …》
《이 못난 녀석아, 죽긴 왜 죽어? 널 용서해줄 참인데 죽긴 왜 죽느냐말이야! 》
나는 민호의 시체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민호가 죽은 며칠뒤 나는 달수의 면상이 퉁퉁 부은것을 발견했다.
《너 웬 일이야?》
《저 …넘어져서 …》
나의 물음에 달수가 얼버무렸다. 어느새 왔는지 범철이가 코방귀를 뀌였다.
《흥! 넘어져도 떡함지에 넘어졌겠지.》
알고보니 달수는 봉구의 녀편네와 뒹굴다가 봉구에게 현장을 잡혀 두들겨맞은것이였다. 아, 또 하나의 불쌍한 로총각이여!
사흘후, 우리 마을에 특대 경사가 생겼다. 로총각들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정씨네 5형제의 맏이- 명호형님이 결혼잔치를 하게 된것이다. 잔치는 아주 간단했다. 명호형님이 녀자쪽으로 《시집》을 가는것이여서 스산한 잔치상이였다.
《명호형님은 기쁘겠소.》
나는 술을 부으러 온 명호형님을 보고 말을 걸었다.
《뭐, 기쁜지 어쩐지 모르겠다.》
새 신랑의 쓸쓸한 표정에 나는 가슴이 쓰렸다.
《명호형님은 장가들자마자 할아버지 소릴 듣겠소.》
범철이가 주새없이 끼여들었다. 명호형님은 아이 둘 달린 다리 저는 과부와 결혼하는데 그 과부에게 금방 외손자가 생겼던것이다.
《하기사 마흔다섯인 내가 할아버지 소릴 들을 때도 됐지.》
사람 좋은 명호형님은 탓할 대신 그저 허허 웃어주었다. 그 서글픈 웃음에 로총각들은 저마다 탄식했다.
오락판이 시작되였다. 나는 부엌간에서 일손을 돕고있는 해옥이를 불러다 내곁에 앉혔다.
《해옥이, 우리도 빨리 결혼을 서둘기오. 나도 나이가 …》
《뭘 급해서 …》
내가 가만히 속삭이자 해옥이는 심드럴하게 대꾸하면서 《저 노래나 좀 듣자요.》하고는 내 입에서 나오려는 다음 말을 막아버렸다.
신랑의 노래에 이어 범철이가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연극 《사랑의 품》의 주제가의 가사를 바꾸어 한곡 넘겼다.
서른살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수많은 시골총각 눈물이 난다
이 세상의 선량한 처녀들이여
불쌍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자
랄라라 …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노래를 듣는 사람도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해옥이가 머리를 돌리고 눈굽을 찍는것을 보았다.
록음기에 곡이 울리고 춤판이 시작되자 해옥이가 내 손을 잡았다. 춤출줄 모르는 나는 해옥이가 끄는대로 따라갔다. 그러자 그 녀자는 내 목에 두팔을 꼭 걸었다. 나는 그 녀자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고 한덩어리가 되여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자 로총각들의 부러운 눈길들이 일제히 우리한테로 쏠렸다. 나는 로총각들의 앞에서 내 행운을 시위하듯 뽐내면서 해옥이를 안고 돌고 또 돌았다.
한곡이 끝나자 로총각들이 앞다투어 해옥에게 춤을 청했다. 해옥이는 그러는 로총각들을 거절하지 않고 매 사람과 한차례씩 번갈아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춤추는 꼴이 눈꼴이 사나웠다. 그 녀자는 나하고 춤추던것처럼 모든 로총각들과 목을 꼭 껴안고 허리걸이를 하고 동동 매달려서 한덩어리가 되여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녀자의 가슴은 로총각들의 가슴과 딱 붙어있었다. 로총각들은 좋다고 해옥이의 허리를 힘껏 조여안고 흡족하여 바보처럼 웃는다. 저 녀자가 왜 저럴가? 도대체 오늘은 무슨 영문이람? 도시물을 먹어 바람난 녀자인가?
《더러운 …그러나…》
나는 분노가 치밀었으나 꾹 참았다. 나에게만 속해야 할 녀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한단말인가. 보다못해 나는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그 녀자가 찾아와서 잘못을 빌기만 기다렸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 녀자가 안달아나서 찾아오겠지. 찾아와서 잘못을 빌며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맹세할 때까지 외면해버리자.
그런데 그 녀자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안달아난 쪽은 내였다. 체면을 차릴것없이 내가 먼저 찾아가야 했다.
그 녀자의 본가 집에 들어서니 그 녀자는 없었다. 련며칠 찾아갔지만 그 녀자는 번번히 집에 없었다.
기분이 나빴다. 민호한테 당한후 그 녀자는 한번도 나한테 몸을 주지 않았다. 명호형님의 결혼식에 그 녀자는 무엇때문에 《우리도 결혼하기오》하는 내 말을 귀밖으로 들었을가?
어쨌든 그 녀자를 만나야 했다. 만나서 결판을 내야 한다.단단히 벼르고 이른 아침 그 녀자를 찾아갔을 때 그 녀자는 …
그 녀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났던것이다.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그 녀자, 나의 첫사랑이며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르는 그 녀자! 그 녀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 녀자가 남긴 편지 한통을 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걷어닫고 부랴부랴 겉봉을 뜯고 속지를 뽑았다.
 
인철씨:
미안해요. 전 인철씨의 가슴에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겨준 나쁜 녀자예요. 사랑의 맹세를 저버리고 도시로 시집을 간 배신자인 저를, 이미 애어머니가 된 저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해준 맘씨고운 인철씨와 백년가약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떠난는것도 운명인가봐요.
민호에게 당한후 저는 많은것을 생각했어요. 특히 민호의 죽음이 저에게 준 충격은 너무나 컸어요. 《녀자를 알고 죽으니 죽어도 원이 없다》는 유언이 제 가슴에 아프게 맞혀왔어요. 그것은 모든 로총각들의 절규처럼 들려왔어요. 그리고 명호오빠의 잔치날에 범철이가 부른 노래 또한 아프게 아프게 제 가슴을 찢어놨어요. 농촌의 로총각들이 참으로 불쌍해요.
전 이미 버린 몸이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이제 바랄게 무엇이 있겠어요. 전 정말 마음같아선 이 세상 모든 로총각들에게 녀자의 사랑을 주고싶어요. 하지만 제 혼자의 힘으론 어쩔수 없어요.
이제 더럽혀진 몸으로 다시 인철씨를 섬길수 없음을 통탄할뿐이예요. 절 잊어줘요. 전 떠나가요. 또 다시 도시로.
해옥이로부터.
 
편지가 맥없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집을 뛰쳐나갔다. 허둥지둥 한달음에 동구밖까지 달려나간 나는 그 녀자가 떠나간 도시 쪽을 향해 목청껏 웨쳤다.
《해옥이!》
그러나 메아리는 없었다.
199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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