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fangcao 블로그홈 | 로그인
김희수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마지막)
2013년 10월 29일 20시 03분  조회:2963  추천:1  작성자: 넉두리

중편소설

새되여 나는 처녀 (마지막)

김희수



6. 자유의 하늘



 
오토바이는 달린다. 도심을 벗어져 남산쪽으로 나는듯이 달린다.
귀녀는 자유를 위해 탈출했을 때의 그 남산으로 가고싶었다. 그래서 그 방향을 가리켰고 한주먹은 오토바이를 그 쪽으로 몰았다. 한주먹의 등에 얼굴을 바싹 기대인 귀녀는 귀뿌리를 쌩쌩 스치는 바람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속에 꽉 찬 의혹과 복잡한 사유가 뒤엉켜 돌아가면서 아버지의 말소리만 귀전을 울릴뿐이다.
이건 네 운명이다.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아니, 안돼요!
귀녀는 저도 모르게 꽥 소리질렀다.
귀녀야, 왜 그래?
한주먹이 오토바이를 급정거시키면서 놀란 눈길로 귀녀를 바라본다. 마침 그들은 남산아래에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귀녀는 말없이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주먹이 귀녀야, 귀녀야! 하며 뒤따라 오는것도 아랑곳없이 귀녀는 잡초를 헤치며 산으로 올랐다. 오르고 오르다 숨이 차고 지쳐서야 주저앉았다. 한주먹이 따라 와서 귀녀야, 무슨 일이 생겼어? 하고 물었지만 귀녀는 아무 대답도 없이 멍하니 산아래만 내려다보았다. 군데군데 성냥갑을 쌓아올린듯한 도시… 눈앞의 정경을 가리며 아버지와 그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고 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그분이랑 결혼하라고 하다니?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머리속에 사유가 복잡하게 뒤엉키며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자애롭던 그분이 어찌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은혜를 입혔다고 친구의 딸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그리고 아버지는…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는 어찌 또 내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은혜…귀녀는 그분이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지원을 해준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분이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것이라만 생각했었다. 그 은혜가 너무나 엄청나고 과분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아버지와 그분의 깊은 우정에 감동되였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은혜의 배후엔 다른 목적이 있은것이 아닌가?
귀녀는 눈을 꼭 감았다. 눈앞에 얼른거리는 아버지와 그분의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아버지와 그분의 모습은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해마다 귀녀의 생일에 어김없이 선물을 들고 찾아오던 그분이 원래는 가슴에 딴 마음을 품고있었다니? 숫처녀와 결혼하겠다? 숫처녀…귀녀는 뭔가 의혹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는것 같았다. 그분이 귀녀네 집에 나타난 이듬해부터 귀녀는 자유를 잃은 몸이 되였다. 그러니 한주먹과 만사통은 그분이 안배한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그러니까…귀녀는 가슴이 섬뜩했다.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이름할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러니까 이 모든것은 그분이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획책한 음모였던것이다. 그분은 이 세상에 숫처녀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있다해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숫처녀를 만들려고…그랬을것이다. 그분은 귀녀의 순결을 보전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귀녀를 숫처녀로 만들기 위해 한주먹이란 감시병을 파견하여 귀녀의 자유를 빼앗은것이다.
귀녀는 오싹 소름이 끼치며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귀녀는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곁에 지켜서 있는 한주먹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오빤 알고있었죠?
뭘?
처음부터 알고있었죠?
뭘 알고있었다는거야?
한주먹이 의아한 눈길로 바라본다. 귀녀는 범인을 신문하듯 따져 묻는다.
그분이 오빠를 우리집에 보내지 않았어요?
그건…그래.
오빤 그분과 어떤 사이세요? 그분과 한동아리죠?
무슨 말을 하는거냐?
한주먹은 어리둥절하여 귀녀를 바라본다. 귀녀는 증오에 찬 눈길로 한주먹을 쏘아보며 소리지른다.
오빤 그분이 나랑 결혼하려는걸 처음부터 알고있지 않았어요?
그분이 너랑 결혼하려하다니? 그게 사실이냐?
한주먹은 놀란 눈길로 귀녀를 바라본다. 귀녀는 계속 화를 낸다.
시치미를 떼지 말아요. 오빤 그분과 짜고들어 내 자유를 빼앗지 않았어요? 날 련애도 못하게 하고 다른 남자들과 접촉 못하게 한건 그분의 지시였지요?
그건…그래. 그분이 널 지켜주라고 했어. 넌 하늘이 낳은 천사이기에 결혼하기전까지 깨끗한 처녀로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분은 나더러 너의 아버지의 지시를 따르라고 했어. 그분이나 너의 아버지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난 널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넌 천사이니까. 하지만 그분이 너랑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계신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야, 난…아니, 귀녀야, 너 울고있잖아?
귀녀는 갑자기 설음이 북받치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오빠가 미워요! 그분이 미워요! 이 세상이 미워요!
귀녀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고 한주먹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곁에서 쩔쩔 매고있었다. 얼마후 한주먹은 겨우 귀녀를 달래서 오토바이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귀녀를 보고 말했다.
그분이 다음주에 너하고 약혼식을 하러 온다.
귀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귀녀는 아버지를 외면하면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꽉 닫았다. 만사통도 무슨 낌새를 챘는지 영어공부를 하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귀녀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였다. 어떻게 그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것인가? 귀녀는 남산에서 내려올 때 벌써 결심했던것이다.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없다! 이제 더는 그분의 굴레에 얽매여 살아갈수 없다. 내 운명은 내가 좌우지 해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한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
귀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아버지와 싸우고 그분과 싸우자.
귀녀는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딸이 들어온것을 보고 말했다.
거기 앉아라.
귀녀는 선채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난…
귀녀는 아버지, 난 그분과 결혼할수 없어요! 하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라버렸다.
귀녀야, 아버진 네가 일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걸 알고있다. 하지만 너도 알아라. 아버진 널 사랑한다. 아버진 사랑하는 딸을 절대 구렁텅이에 밀어넣지 않을거다. 부모는 다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아버지…
애초에 그분이 네게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때 난 충분히 고려하고 동의한거다. 그분이 아무리 큰 재벌이라 해도 그분의 됨됨이가 글러먹었다면 난 동의하지 않았을거다. 너도 알다싶이 그분은 해박하고 인간성이 좋고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아버지…
게다가 그분은 용모가 준수하고 사나이답고 의젓하지. 비록 나이 차가 있지만 그분이 이제 40대 중반이니 남자로서 한창 나이가 아니겠니?
아버지…
두말말고 아버지의 안배대로 해라.
아버지는 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의 말만 계속했다. 귀녀는 이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귀녀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켜버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을가? 탈출? 아니, 아버지가 탈출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을것이다. 거절? 거절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럼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가?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던 귀녀는 갑자기 눈앞이 번쩍 밝아졌다. 그분이 왜서 나랑 결혼하려고 하는가? 바로 그것이다. 숫처녀! 내가 숫처녀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숫처녀가 아니라면…그거다. 그것만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유를 쟁취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귀녀는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자리에 누워서도 그 생각뿐이였다. 하지만…당장 어느 남자를 찾아서 처녀를 버린단 말인가? 여태껏 따르는 남자는 많았지만 귀녀는 련애 한번도 못했다. 그리고 사실 마음을 준 남자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남자나 만나 귀중한 처녀를 헌신짝 버리듯 버릴수는 없지 않는가.
귀녀는 가슴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갔다. 정원을 산책하는데 어느새 한주먹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귀녀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한주먹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무뚝뚝하던 한주먹은 근심스런 눈길로 귀녀를 바라보고있었다. 바로 이 남자다! 순간 귀녀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 이 남자라면 처녀의 순결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것이다.
오빠!
귀녀는 조금은 떨리는 따뜻한 목소리로 한주먹을 불렀다. 한주먹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말해봐 하는 뜻을 전했다. 한주먹의 시선엔 따뜻한 관심과 애틋한 정이 깃들이고있었다. 귀녀는 와락 한주먹의 품에 안겨버렸다. 귀녀가 두 팔로 목을 꼭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자 한주먹은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오빠, 오빤 날 좋아해요?
그래, 난 널 제일 귀여워하고 제일 이뻐해. 넌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천사니까!
나도 오빨 제일 좋아해요!
귀녀는 련인에게 속삭이듯 그렇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것은 진심이였다. 사실 귀녀는 마음속으로 한주먹을 제일 좋아하고있었다. 영웅호걸이라고 존경하고 숭배하던데로부터 친오빠와 같은 따뜻한 정을 느끼고있었다. 그저 무뚝뚝하다고 생각되던 한주먹에게도 따뜻한 구석이 있었고 인간성이 있었다. 특히 깡패에게 랍치당할 때 목숨으로 자신을 보호하던 한주먹에게서 귀녀는 감동뿐만아니라 친오빠와 같은 정을 느꼈었다.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고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칠수 있는 남자! 이런 남자에게 순결을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런 남자에겐 후회없이 달갑게 처녀를 바칠수 있으리라.
한주먹은 천천히 귀녀를 자신의 품에서 떼여놓았다. 그리고 애틋한 눈길로 귀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귀녀야, 그분을 받아들이기 그렇게 힘드냐?
힘든게 아니라 그건 절대 불가능해요.
난 네가 그분과 결혼하면 행복할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예요.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내 자유를 빼앗았어요. 내 인생을 망쳐놓았어요. 한주먹오빠도 그분의 도구였고 그분의 괴뢰였어요.
그래 나도 본의 아니게 네 자유를 박탈한걸 사과한다. 그러나 네 마음을 이토록 상하게 할줄은 몰랐구나. 어릴 때는 네가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네가 크면 리해하고 감사하게 여기리라고 생각했는데…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후회되는구나.
후회되면 날 도와줘요.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수 있겠니?
날 도망치게 도와줘요.
그건 안돼. 그건 널 해치는 길이야. 네가 도망쳐서 혼자서 어딜 가며 또 어디까지 갈수 있겠니?
우리 함께 도망치자요. 오빠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두렵지 않을거예요.
아니, 그건 안돼. 난 널 불행하게 숨어살게 할수 없어.
귀녀는 절망했다. 다시 한주먹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한주먹은 가슴 아픈듯 무능한 자신을 탓하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그날밤 귀녀는 잠들수 없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던 그녀는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2시였다. 그녀는 살금살금 계단을 밟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서쪽 방엔 가정부가 들고 동쪽 방엔 한주먹이 홀로 자고있었다. 귀녀는 동쪽 방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한주먹이 잠들어 듣지 못했는지 한동안 기다렸으나 잠잠했다. 아무런 동정도 없자 귀녀는 문을 살며시 밀어보았다. 문이 열렸다. 워낙 한주먹은 문을 잠그지 않고 자는 버릇이 있었던것이다.
방안으로 들어간 귀녀는 문을 잠그고 손을 더듬어 전등을 켰다. 한주먹이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고있었다. 귀녀는 침대로 다가가 자고있는 한주먹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한주먹의 어깨를 흔들며 나직이 불렀다.
오빠.
한주먹은 반응이 없었다. 귀녀는 더 힘있게 흔들었다.
오빠.
마침내 잠에서 깨여난 한주먹은 눈앞에 귀녀가 서있는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네가 웬일이냐?!
귀녀는 웃옷을 벗고 가슴을 헤치면서 말했다.
오빠, 날 가지세요!
아니,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미쳤느냐?
오빠가 날 가지면 그분과의 혼사도 깨여질거고 나도 자유의 몸이 될거예요.
귀녀야, 너 이러면 안돼. 어서 옷을 입어!
한주먹은 어쩔바를 몰라 쩔쩔 매다가 황급히 다가와 귀녀의 옷을 도로 입혀주고 단추를 채워주었다. 귀녀는 한주먹을 와락 껴안고 입술을 덮쳤다. 한주먹은 급히 귀녀를 떠밀었다.
귀녀야, 이러면 안돼!
오빤 절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것과 그건 다른 문제야.
오빤 철이가 나하고 약혼하자고 할 때 철이를 사정없이 때려놓던 일이 생각나요? 그땐 오빠가 절 사랑해서 질투때문에 그랬지요?
아니야. 그저 널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을 뿐이야. 물론 그분의 당부도 있었고…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두꺼비가 고니 고기를 먹을 생각을 할수 있었겠니. 넌 천사야! 나는 천사를 지키는 보호자일 뿐이야…
오빠는 충분히 날 사랑할 자격이 있는 남자예요. 저도 오빨 사랑해요! 어서 날 가지세요.
아니야, 난…난…그분을 배반할수 없어. 그분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이건 배반이 아내예요. 사실 저도 그분의 은혜를 많이 입었잖아요? 하지만 은혜는 그런 방식으로 값는게 아니예요. 그분과 나 사이엔 사랑이 없어요. 난 그분을 아버지벌 되는 선배로 존경해 왔을뿐인데…그분이 일방적으로 내 자유를 박탈하면서…이 얼마나 황당한 혼인이예요. 난 이 혼인을 접수할수 없어요!
귀녀야, 진정해라. 그분은 훌륭한 분이셔. 그분이랑 결혼해.
아니, 난 죽어도 그분과 결혼할수 없어요! 오빤 내가 그분이랑 결혼하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해요?
그분은 모든 방면에서 우월한 조건을 갖춘 분이셔. 비록 년령 차이가 있지만 함께 살아가노라면 꼭 행복할거야.
오빠, 오빤 경제적으로 부러운게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세요? 난 지금껏 그분의 덕분으로 호화로은 생활을 해왔어요. 옥이를 비롯한 동학들이 모두 날 몹시 부러워해왔지만 난 어느 한순간도 행복하다고 생각된 적이 없어요. 나에겐 자유가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난 뭐나 자기 하고싶은대로 할수 있는 옥이랑 철이랑 부러웠어요. 그애들은 모를거예요. 난 조롱속에 갇힌 한마리의 새였다는것을.
귀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떨어졌다.
난 그분의 조롱속에 갇힌 한마리 새였어요. 아버진 그분의 눈이였고 만사통과 오빠는 그분의 손이였어요. 이 새가 밖으로 나갈 땐 오빠가 새의 다리에 끈을 매여 쥐고 다니며 새가 멀리 날지 못하게 했지요.
귀녀는 억울한 심정을 걷잡지 못하여 마침내 흐느끼였다. 귀녀가 울자 한주먹도 감염되여 눈물을 흘렸다.
귀녀야, 미안하다. 난 그분의 명령대로, 그분의 부탁을 받은 너의 아버지의 명령대로 했지만 그렇게 하는것이 널 위하는것이라고만 생각했댔어.
난 오빨 원망하지 않아요. 모두 그분의 음모지요. 난 이제부터 그분의 손에서 벗어나야겠어요.
귀녀는 다시 옷을 벗어던졌다. 브래지어도 벗고 팬티마저 벗어던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러면 안돼!
오빠도 남자겠죠. 남자라면 어서 날 가지세요.
귀녀야, 난 남자가 아니야!
한주먹은 고통스러운듯 손으로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난 남자구실을 할수 없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난 《태감》이란 말이야!
한주먹은 머리를 틀어박고 흐느꼈다. 귀녀는 옷을 주어 입고 놀라움과 의혹에 찬 눈길로 한주먹을 바라보았다. 한주먹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여태껏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있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한주먹은 친부모한테서 버림받은 아이였다. 무술을 가르치던 스승이 사망하자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막벌이 일을 찾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건축공사에서 막벌이로동을 하다가 부두에 나가 운반로동을 했다. 힘들었지만 그는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리다는 리유로 절반 월급을 받았다. 그가 보스를 찾아가 도리를 따지니 보스는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으며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화가 발끈 치민 한주먹은 더는 참을수 없어 보스의 면상에 주먹을 안겼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보스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제히 한주먹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주먹은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제일 먼저 달려드는 놈을 향해 재빨리 몸을 달렸다. 한주먹에 놈을 거꾸러뜨리고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다른 놈에게 오른쪽구두발을 깨끗하게 꽂았다. 또 두놈이 달려들었다. 한주먹은 량발차기로 두놈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두놈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꼬꾸라졌다. 순식간에 부하들이 나뒹굴자 보스는 얼굴이 흙빛이 되였다. 한주먹이 멀리 사라지는것을 보며 그는 부하더러 한주먹의 뒤를 미행하도록 눈짓한후 재빨리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주먹은 울적하여 바다가를 거닐다가 멍하니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아득한 수평선우에 떨기떨기 햇솜같은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오르고있었다. 하늘나라의 선경같은 구름중에는 사람모양의 구름도 있었는데 그것은 얼굴도 못본 친부모같기도 했고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수양부모같기도 했다.
아, 어머니!
비감에 쌓여 부르짖고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지러운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다보니 두억시니같은 사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있었다. 잠간사이에 백여명의 괴한들이 한주먹을 포위했다. 한주먹에게 얻어맞았던 보스가 불러온 지원병이였다.
큰 형님, 바로 저놈입니다!
보스가 선글라스를 낀 사내에게 한주먹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하니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큰 보스인듯 했다. 그가 손을 휙 젓자 이리떼같은 사내들이 일시에 한주먹을 향해 덮쳐들었다. 한주먹은 형세가 위태롭게 된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혼자서는 이렇게 많은 사내들을 당해낼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승부가 빤한 싸움임을 알면서도 한주먹은 싸웠다. 얻어맞아 죽더라도 포위를 뚫고 나가자는 일념뿐이였다. 그 많은 사내들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한주먹은 조금도 겁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잽사게 몸을 솟구치며 막아서는 사내들을 하나 둘씩 쓰러뜨렸다. 막아서는 상대 하나, 하나가 련속 아이쿠,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사내들이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한주먹은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뒤에 전광석화처럼 돌려차기로 두 사내의 턱을 걷어찼다. 하지만 상대의 수가 너무 많았다. 한주먹은 어느 순간 날아오는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휘청거렸다. 이어 숱한 구두발들이 그의 몸에 꽂혔다…
놈을 재워라!
사내들이 몽둥이를 높이 쳐드는 순간 큰 보스가 멈춰라! 하고 급히 소리쳤다. 그리고 한주먹을 병원에 업고 가서 치료해주게 했다.
주먹 솜씨가 대단한데…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니?
큰 보스가 한주먹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유혹했다. 한주먹은 도리머리질 했다.
난 당신들같은 깡패들과 한 바지를 입을수 없소. 우린 서로 길이 다른 사람이요.
허허, 우린 그 무슨 깡패가 아니야. 정당한 사업을 하고있지. 내 술집의 보안대장으로 있어 달란 말이야. 보수는 톡톡히 드릴께.
큰 보스는 설산파란 깡패조직의 두목인데 술집을 경영하면서 부두에 조직원들을 깔아놓고 《요두환》밀매도 하고있었다. 그런데 한주먹은 그런 내막을 모르고 큰 보스의 술집에 들어가 보안대장이 되였다.
큰 보스의 마누라는 30대중반의 요염한 녀인인데 큰 보스가 외지로 나갈 때마다 큰 보스의 부하인 한 미남과 붙어 그 짓을 해댔다. 한번은 미남과 붙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다가 한주먹에게 현장을 잡히게 되였다. 당황해난 녀인은 한주먹의 입을 막기 위해 한주먹을 유혹했다. 녀인은 한주먹을 안고 침대로 끌었지만 한주먹은 단마디로 거절하면서 녀인을 밀치고 방을 뛰쳐나갔다. 간통한 사실이 들통날까봐 겁난 녀인은 먼저 선손을 써서 한주먹이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남편한테 고자질했다. 마누라의 말을 그대로 믿은 큰 보스는 한주먹의 해석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다짜고짜로 한주먹을 묶어놓고 물매를 안겼다.
이 새끼야, 네가 감히 내 마누라를 욕보여? 네 새끼가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네 놈을 《태감》으로 만들어 놓을 테다!
큰 보스는 악이 나서 소리를 지르더니 흉악무도하게도 칼을 한주먹의 사타구니에 갖다댔다. 한주먹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녀는 한주먹의 어두운 과거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다니?! 그리고 잔인한 큰 보스의 행위에 치가 떨렸다.
인간성이란 조금도 없는 놈들! 어찌 그럴수 있어요?!
귀녀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한주먹의 눈엔 아직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귀녀는 한주먹이 한없이 가엾어 보였다.
오빠!
귀녀는 한주먹을 꼭 감싸안았다. 이렇게 아픈 상처를 품고있었기에 오빠는 웃음이 없었구나. 불쌍한 오빠…이윽고 귀녀가 물었다.
그후에는…
큰 보스는 내 목숨같은 남자를 앗아가고도 성이 풀리지 않아 날 죽이려고 했어. 그때 한 부하가 달려와서 그분이 큰 보스를 부른다고 했어. 바로 그분이였어. 너랑 결혼하려는 그분. 그분이 술집에 식사하러 왔다가 큰 보스를 불러간거야. 큰 보스는 재록신이나 다름없는 그분 앞에서는 설설 기는 놈이였어. 큰 보스가 나를 징벌한 이야기를 그분 앞에서 자랑삼아 한 모양이야. 나에 대해 상세히 묻던 그분이 큰 보스에게 말했어.
그 아이를 그만큼 처벌했으면 앙갚음은 다 한 셈이 아닌가? 목숨만은 살려주게.
네, 네!
그 아이가 천하의 주먹이라는데 내가 경호원으로 쓰려고 하는데 나한테 주는게 어때?
네, 네!
이렇게 되여 나는 그분의 경호를 맡아보다가 곧 그분의 지시를 받고 너의 집으로 오게 된거야.
아, 워낙은 그랬었구나! 귀녀는 뭔가 갑자기 깨달은 느낌였다. 그분은 오늘 있게 될 일까지 미리 예견하고있었구나. 한주먹도 남자인데 귀녀곁에 남겨놓고 그분이 어떻게 안심할수 있었겠는가. 그분의 계획은 정말로 주도면밀했구나. 귀녀의 순결을 지키는데 한주먹이야말로 얼마나 합당한 인선인가.
귀녀는 자신이 아무리 손오공을 꿈꾸어도 여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튿날, 귀녀는 아무도 몰래 옥상에 올랐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기화요초같고 기암괴석같고 가지가지 산악같고 온갖 동물같은 천태만상의 휜구름이 멍울멍울 피여있었다. 귀녀는 구름들 속에서 사람모양의 구름을 찾았다. 손오공같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같기도 한 구름이 푸른 하늘을 자유로이 헤염쳐가고있었다. 그런데 여래같기도 하고 그분의 모습같기도 한 구름이 앞을 막고있었다.
안돼! 여래에게 잡혀서는 안돼!
귀녀는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하늘엔 손오공도 없고 여래도 없었다. 이름 모를 새 몇마리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있었다.
아아, 새되여 저 끝없이 넓고 푸른 하늘을 맘껏 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랬다. 귀녀는 자신이 능히 새로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귀녀는 단단히 결심했다. 옥상에서 새되여 날리라고…귀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두 팔을 날개처럼 쭉 폈다.
귀녀야, 안돼!
아래에서 한주먹이 손을 흔들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귀녀는 미소했다. 그리고 두팔을 날개처럼 저으며 날았다. 자유의 하늘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 미친 사람의 이야기 2013-12-01 0 3488
15 메아리는 없다 2013-11-24 1 3703
14 H과실의 하루 2013-11-24 0 3392
13 B녀사의 운명 2013-11-17 0 2886
12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6) 2013-11-10 1 3097
10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4) 2013-11-10 0 3368
9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3) 2013-11-10 0 2885
8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2) 2013-11-10 0 2987
7 중편소설 악마의 무덤 (1) 2013-11-10 1 3584
5 새되여 나는 처녀 (5) 2013-10-29 0 2565
4 새되여 나는 처녀 (4) 2013-10-29 0 2485
3 새되여 나는 처녀 (3) 2013-10-29 0 2791
2 새되여 나는 처녀 (2) 2013-10-29 0 2888
1 새되여 나는 처녀 (1) 2013-10-29 1 3254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