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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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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하는 검은 철교
2013년 11월 23일 21시 53분  조회:2667  추천:0  작성자: 넉두리


노호하는 검은 철교노호하는 검은 철교
 

 
콩트이야기

김희수
 
 
룡정의 서쪽에는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검은 철교가 해란강우에 사자처럼 우뚝 서있습니다. 여기는 경치 좋고 조용하여 사랑을 속삭이는 련인들도 많이 찾아오지만 다리에다 검은 칠을 하여서인지 강탈사건, 살인사건, 강간사건, 자살사건 등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여러번 생겼으며 물이 깊었던 70년대까지 수영하거나 썰매를 타다가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요즘은 웬 사나이가 날마다 검은 철교에 찾아와서 《옥단이! 옥단이!》하고 처절한 목소리로 부르짖곤 했습니다. 어찌나 애절하게 불렀던지 목소리마저 쉬였습니다. 정신없이 부르짖던 사나이는 문뜩 멈춰서 귀를 기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듯 했습니다.
《호호호!》
, 맑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처녀의 부드럽고 보동보동한 손이 사나이의 눈을 감싸쥡니다. 깜짝 놀라던 사나이는 다음 순간 기쁨에 겨워 뒤로 살금살금 다가든 처녀에게 소리칩니다.
《요 깜찍한것…이걸 놓소!》
《어디 누군가 맞춰봐요.》
《누군 누구겠소. 나의 천사 옥단이지!》
사나이는 손을 올려 자신의 눈을 감싸고있는 처녀의 손을 살살 애무합니다. 처녀는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목소리를 변화시켜 말합니다.
《호호호. 틀렸어요!》
《그럼 누구요?》
《귀신이예요! 귀신!》
《에크! 요 못된것!》
사나이는 불시에 처녀의 손을 재껴버리고 홱 돌아섭니다. 그러자 처녀는 잽싸게 몸을 돌려 깡충깡충 뛰기 시작합니다. 사나이도 처녀의 뒤를 쫓아 달음박질칩니다. 둘은 황금이삭 넘실대는 들판에서 쫓거니 쫓기거니 하며 달립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처녀를 붙잡은 사내는 기쁨에 겨워 환성을 지릅니다.
《귀신을 붙잡았어!》
하지만 이것은 지난날 사나이와 처녀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때의 일입니다. 지금은 처녀가 정말 귀신이 되였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녀와 총각은 정말로 깊이깊이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처녀의 집은 검은 철교의 서쪽 과수농장에 있었고 총각의 집은 검은 철교 동쪽 《신안소학교》부근에 자리잡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처녀와 총각은 늘 검은 철교를 지나다니며 사랑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한번은 둘이 검은 철교에서 사랑을 속삭이느라고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밀려오고있었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처녀의 머리카락이 춤추듯 나붓거리고있었습니다.
《빨리!》
사나이는 급히 처녀의 손을 쥐고 허둥지둥 달렸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비를 그을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시꺼먼 먹장구름이 점점 이쪽으로 몰려오고있었습니다. 심술궂은 바람은 그들의 몸을 사정없이 갈겨댔습니다.
《저기 초막이 있어요!》
눈썰미가 좋은 처녀가 옥수수밭 건너 쪽에 있는 참외막을 발견하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둘은 정신없이 허둥지둥 옥수수밭을 꿰질러 초막으로 달렸습니다. 번개가 번쩍 하더니 뒤이어 《우르릉 꽝!》하고 귀청을 째는 천둥소리가 요란히 들려왔습니다. 그들이 방금 초막에 들어서자마자 대줄기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둘은 빈 초막에 앉아 숨을 돌리면서 뽀얀 비안개속에 묻힌 참외밭을 넋없이 내다보았습니다. 문뜩 사나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처녀의 손을 잡고 능청스럽게 웃었습니다.
《옥단이, 옥단인 날 사랑하오?》
《뚱딴지같이 그건 왜 묻나요?》
《우리 서로 사랑한다면 사랑의 표시로 상대방의 뺨을 한대씩 치는게 어떻소?》
《아이, 망측스럽게…》
《왜 겁나오?》
《겁나긴 뭘. 자, 어디 제 뺨부터 때려봐요!》
《아니, 우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치기오.》
사나이는 꾀를 써서 손바닥을 펴드는 처녀 앞에 주먹을 내들었습니다. 처녀는 곱게 눈을 흘기면서 말했습니다.
《아이참, 꾀보같으니! 좋아요. 제가 먼저 손을 쓰지요!》
처녀는 이를 악물더니 자그마한 손으로 사내의 뺨을 힘껏 후려쳤습니다. 사내는 눈을 찔끔 감았으나 아무런 감각도 없었습니다. 처녀가 제 손벽을 마주쳤던것입니다.
《호호호. 겁쟁이같으니!》
《내가 속았군. 자, 이번엔 정말 쳐야 하오!》
사내는 처녀한테 왼쪽 뺨을 들이댔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처녀의 손바닥이 사내의 살가죽을 슬쩍 스치고 지나갔을뿐입니다. 사나이는 짐짓 성난체 말했습니다.
《옥단인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군.》
《사랑해요!》
《그럼 세게 쳐야지. 용감하게!》
《울지 말아요!》
《체, 울긴?》
《피-》
처녀는 생긋 웃더니 손에 힘을 모아 불이 번쩍 나게 사내의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어이쿠!》
사내는 비명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아연해진 처녀는 사내를 부추기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눈을 꼭 감은 사내는 사지를 뻗어버린채 고요히 누워있었습니다. 처녀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정신차리세요! 정신…》
안타까이 사내를 부르며 몸을 떠는 쳐녀의 눈에서는 삽시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 사내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하하하! 옥단인 만점이요, 만점!》
갑자기 사내가 벌떡 일어나며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깜쪽같이 속은 처녀는 울던 얼굴에 금시 웃음꽃을 피우더니 사내한테 주먹세례를 안겼습니다.
《아이, 괘씸해라, 공연히 놀랐네!》
《자, 준비하오. 이번엔 내가 칠 차례요!》
사내는 당장 들이칠 태세로 손을 쳐들었으나 처녀의 여린 볼을 감히 치지 못했습니다.
《뭘 꾸물거려요? 졸장부!》
처녀는 태연자약하게 사내한테 얼굴을 들이댄채 곧 들이닥칠 사랑의 매를 기다리고있었습니다. 해납작하게 생긴 얼굴, 머루알같이 까만 눈, 앵두같은 입술, 그 모든 것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사내는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할뿐이였습니다.
《어서!》
처녀의 재촉소리와 함께 사나이는 갑자기 처녀를 와락 껴안고 키스소나기를 퍼부었습니다. 급작스레 닥친 일에 어리둥절해진 처녀는 한동안 잠자코 있더니 사내를 밀치면서 짐짓 화가 난체 했습니다.
《도둑놈!》
《도둑놈이라니? 이건 가장 훌륭한 사랑의 선물인데.》
《남의 입술을 허락도 없이 훔치는게 도둑놈이 아니구 뭐예요?》
《그래 나는 사랑의 도둑놈이요!》
사내는 다시 처녀를 와락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번에 처녀는 사내가 하는대로 모든것을 맡겨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처녀총각은 사랑의 금과를 따먹게 되였습니다.
《옥단이! 옥단이!》
사나이는 검은 철교우에서 사랑하는 처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하지만 불러도 불러도 처녀는 대답이 없습니다. 아, 사랑하는 처녀여, 그대는 어디로 갔는가?
소낙 퍼붓는 참외막속에서 사랑을 나눈후로 처녀의 배는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급해난 총각은 서둘러 결혼날짜를 잡았습니다. 결혼은 처녀와 총각에게 모두 기쁜 일이였습니다.
결혼을 며칠 앞둔 어느날, 처녀는 총각의 집에 놀러왔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려보며 달콤한 꿈에 취해 있을 때 갑자기 총각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총각은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거래처의 김경리가 급한 일로 만나자는것이였습니다.
《어서 가보세요.》
이렇게 말하며 처녀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오. 날도 저물었는데.》
《안돼요. 집에 할 일이 있어서 꼭 가야 해요.》
《혼자서 어떻게 검은 철교를 건너겠소? 룡문교로 해서 에돌아가든지 하오.》
《초저녁인데 괜찮아요.》
총각도 별 일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김경리를 만나러 갔습니다. 처녀는 혼자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한참 걸어서 철길을 건너고 다시 나타난 철길을 따라 걸으니 검은 철교가 눈앞에 보였습니다. 다리부근엔 멀리쯤에서 한두사람이 보일뿐 조용했습니다. 그녀가 금방 다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세 괴한이 나타나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소리지를 새도 없이 세 괴한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세 괴한은 돌연히 세 마리의 늑대로 변하여 임신한 처녀의 몸을 마구 짓밟아놓았습니다. 실컷 야욕을 채운 세 마리의 늑대는 너털웃음을 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야수들에게 짓밟힌 처녀의 사타구니에서 피가 흐르고있었습니다.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치던 처녀는 핸드백을 열었습니다. 거시서 종이장과 볼펜을 꺼내여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총각을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싶었던것입니다.
《여보세요. 옥단이요? 왜 말이 없소? 옥단이! 옥단이…》
저쪽에서 사랑하는 총각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녀는 눈물을 흘리며 핸드폰을 꺼버렸습니다. 처녀는 기다싶이 하여 검은 철교에 올랐습니다. 그때 《뿡―》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녀는 다리의 인행도에 서서 다가오는 기차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기차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있었습니다. 처녀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훌쩍 몸을 날려 철길우에 뛰여들었습니다…
《옥단이! 옥단이!》
사나이는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처녀의 이름을 미친듯이 부릅니다. 다리아래로 해란강이 흐느끼며 흘러갑니다.
《모두 이 핸드폰때문이야! 그날 김경리의 전화만 받지 않았어도…》
사나이는 핸드폰을 땅바닥에 콱 메칩니다.
《아니야. 모두 내 탓이야! 내가 왜 사랑하는 옥단이를 혼자서 돌려보냈단 말인가? 아아, 옥단이! 옥단이!》
사나이는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그때 《뿡―》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차는 검은 철교를 지날 때마다 버릇처럼 기적을 울립니다. 그때면 기차가 아니라 검은 철교가 《뿡―》하면서 노호하는듯 합니다. 사나이는 분노의 눈길로 다가오는 기차를 노려봅니다. 기차는 한마리의 거대한 룡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사나운 기세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있었습니다.
《옥단이!》
갑자기 사나이는 정신없이 웨치면서 철길우에 뛰여들었습니다.
《뿡―》
검은 철교가 사자마냥 노호하며 울부짖었습니다.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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