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그자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나는 온밤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잠을 이룰수 없었다. 몇번이나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밤바람이 정답게 내 몸을 어루만져준다. 애인의 키스처럼 향긋한 밤바람을 훅 들이키고 나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들었으나 손이 떨리면서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꿈같은 사실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아 몇번이나 재확인해본 사실이다. 국장으로 갓 승급한 그자는 만수무강술집에서 제1차 축하파티를 끝내고(여기서 나는 시름시름 앓는 안해를 핑계로 그자와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첨하는 하급들에게 떠밀려 교외에 있는 무지개별장으로 제2차 축하파티를 열려고 국장전용차에 앉아가는 도중에 마주 달려오는 트럭과 부딪쳐 그 자리에서 당장 숨지고말았다. 이 소식은 그 뒤의 차에 앉았던 부하들이 사건현장에서 부국장인 내게 전해준 비보이다. 부하들은 울먹한 목소리로 이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자가 죽었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지? 그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자의 가족에게는 비보겠지만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수 없다.
그자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30년! 장장 30년을 그자에게 눌리여 살아온 세월들을 돌이켜보노라니 눈물이 난다.
“여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느새 안해가 내곁에 다가와서 부드러운 말씨로 따뜻이 위로해준다. 안해는 내가 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큰 슬픔에 잠겨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나하고 10년여를 함께 살아온 안해이지만 내 깊은 속마음을 아직 모르고있다.
“여보, 바람이 찬데 들어가요.”
“먼저 가 자오.”
오늘따라 달이 휘영청 밝다. 그자는 이제 저 아름다운 달도 볼수 없게 되였구나. 하하하! 저 달은 이제 그자의것이 아니다. 이 세상도 그자의것이 아니다. 아아, 저 달을 보니 월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달같이 환한 그녀의 얼굴이…그녀는 내 첫사랑이였다. 하지만 나는 첫사랑을 그자에게 빼앗겼다. 첫사랑뿐만아니라 나는 그자에게 모든것을 빼앗겼다.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그자는 나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갔다. 그런 그자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여보, 들어가 주무셔요. 래일 출근해야지요.”
나는 안해에게 끌려 도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안해는 쌔근쌔근 코를 골았으나 나는 흥분으로 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날 그자와 함께 해온 가지가지 추억들이 머리를 주마등같이 스쳐 지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공부도 학급에서 으뜸이였을뿐만아니라 음악, 체육, 미술도 으뜸이였다. 그래서 소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줄곧 반장이였고 홍소병(소년선봉대), 홍위병, 공청단에도 제일 먼저 가입했다. 그때는 붉은 넥타이를 매보지도 못하고 소학교를 졸업한 애들도 있었고 홍위병완장을 껴보지도 못하고 학생시절을 마친 애들이 있었으니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입단까지 하고 중학교에 들어서자 반장에 공청단서기까지 겸하고있는 나는 전체학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였다. 게다가 출중한 용모까지 가지고있어서 나는 녀학생들의 호감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오면서부터 나는 1등의 자리를 그자에게 내주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중학교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라이벌이였던 그자가 오면서부터 나는 비참한(?) 2등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자는 중학교 3학년 때 우리반에 전학해 왔다. 선생님이 그자를 데리고 와서 새로 전학해온 동무라고 소개할 때 전체학생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자에게로 집중되였다. 녀자애들의 입에서 “와, 잘생겼다!”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자는 나보다도 더 잘생겼다. 나는 그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까닭 모를 질투심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얼굴만 잘생기면 뭐라나? 실력이 있어야지. 어디 두고보자!… 하지만 선생님이 소개하는 그자의 경력부터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자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나처럼 반장에 공천단서기까지 겸했으며 공부도 학급에서 줄곧 1등이였다고 한다. 실로 만만찮은 적수를 만났다는 생각에 나는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났다.
그자는 첫 시험부터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줬다. 물론 정식시험은 아니고 평소의 보통시험이였지만 그자의 수학, 물리, 화학 점수는 나와 동점이였고 조선어문과 한어 점수는 만점으로서 나보다 5점이나 더 맞았다. 그자는 한족말을 아주 잘했고 그때문에 한어문장도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읽었다. 당시는 공부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던 20세기 70년대 상반기였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은 역시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다. 그자의 실력이 점점 뚜렷해지자 나는 초조해났다. 이러다가 그자가 앞으로 계속 날 초과하면 어쩌나 하고 나는 점점 더 초조해났다. 보통시험인데 뭐. 이따 학기말시험에 가서 누가 이기나 두고보자! 나는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며 날마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자에게 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내가 두려워하던 그 시각은 드디어 왔다. 학기말 시험서적이 공개되였다. 그자가 1등이고 나는 2등이였다. 그자는 이렇게 줄곧 1등이던 내 자리를 빼앗았다. 비참했다. 내 일생에서 처음으로 1등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순간이였다. 애들은 놀라움과 경탄에 찬 눈길로 그자를 바라보았고 이어 동정과 련민의 시선을 나한테로 옮겼다. 그런 애들앞에서 나는 부끄러워 얼굴도 들수 없었다. 학기말 시험성적이 공개되던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너무도 분하여 엉엉 울었다. 이제 무슨 얼굴로 선생님과 동학들의 앞에 나선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베개를 적셨다.
나는 울다가 일어나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그자를 죽이고싶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그자를 죽이고싶은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곧추 강변으로 달려갔다. 강가에서 말대가리 만한 돌을 골라 그 돌우에 분필로 그자의 얼굴을 그려놓고 5보쯤 뒤로 물러섰다. 작은 돌멩이를 주어들고 그자의 “얼굴”을 과녁으로 삼고 돌팔매질했다.
“이 나쁜 놈아! 똥물에 빠져 뒈져라!”
내 손에서 날아간 돌멩이는 그자의 이마에 명중됐다.
“이 개새끼야! 쥐약 먹고 죽어라! 죽어!”
이번에는 코에 맞았다. 그리고 눈에, 입에 비발치듯 날아갔다. 얼마후 맥도 진하고 화도 얼마간 가라앉았다. 강물에 뛰여들어 시원하게 미역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시험성적표를 들여다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문되는 점이 있었다. 수학, 물리, 화학 시험성적은 100점은 몰라도 95점은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89점이나 90점밖에 안되였다. 선생님이 실수로 내 점수를 깎지 않았을가?
이튿날 등교하여 선생님을 찾아가니 선생님은 내 시험지를 내놓으며 맞춰보라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옳게 써넣은 답안이 틀리게 된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허심하지 못하고 교오자만한다면서 한바탕 나를 질책했다. 그럼 내가 틀렸단말인가? 나는 아리송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선생님이나 동학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미약한 변화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선생님들은 나보다도 그자에 대한 칭찬이 더 많았고 내 주위에 뭉쳐있던 애들이 하나 둘씩 그자와 친하려고 나도는 눈치가 엿보였다. 심지어 월녀마저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교과서와 학습장을 들고 그자한테로 달려간다. 월녀는 학교의 꽃으로 불리는 미소녀로서 나와는 련인사이다. 나와 친한 애들은 월녀가 나랑 사귀는 사이라는 사실을 다 안다. 그런 월녀가 그자한테로 접근하니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꾹 참으며 다가가 월녀의 팔을 와락 잡아당겨서 조용한 학교뒤마당으로 끌고 갔다.
“왜 이래? 이걸 놔!”
“야, 너 왜 그자한테 치근거리니?”
“치근거리다니? 누가?”
“니가…”
“모를 문제가 있어 그애한테 물어본건데 그게 어디 치근거린게야?”
“모를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니?”
“니도 모를까봐 그랬다. 어째.”
“뭐야?!”
순간 나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월녀마저 그자를 나보다 더 낫게 보다니?!
“이 간나새끼!”
나는 월녀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그러자 월녀는 엉엉 울면서 교실쪽으로 달려갔다. 혼자 남은 나는 울분을 참을수 없어 버드나무를 손으로 탁! 탁! 쳐댔다. 화가 좀 가라앉자 그녀를 때린것이 후회되였다. 나는 천천히 교실로 돌아갔다.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다른 애들은 모두 하교하고 안에는 월녀와 그자 둘밖에 없었다. 월녀는 그때까지 서럽게 울고있었는데 그자가 월녀를 달래고있었다.
“월녀, 누가 널 울렸어? 말해봐. 내가 네 눈에서 눈물나게 한 그 자식을 때려줄께.”
그자는 뻔뻔스럽게도 자기가 월녀의 련인이요, 보호자나 되는듯이 말하고있었다. 그 정경을 보자 나는 다시금 노기가 솟아올랐다. 도끼눈을 부릅뜨고 다가가 그자와 한바탕 붙으려는데 인기척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 월녀가 나를 보더니 다가와 아무 일도 없은듯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월녀와 함께 학교대문을 나서면서 나는 가라앉은 소리로 사과했다.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아니, 너도 자존심이 상했을꺼야. 내가 그 생각을 못하고…”
이렇게 우리는 화해했다. 월녀는 “그애는 너보다 공부는 더 잘하는데 남을 가르치는 수준은 너보다 못한것 같더라. 너는 ‘요건 요렇게 하면 돼’하고 차근차근 잘도 가르치는데 그애는 내가 모를 수학문제를 물어보니 ‘이건 저…저건 저…’하면서 어물어물했어. 아마 속에 든건 많아도 그걸 나타내는 능력은 약한 모양이야”하고 말해서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자에게 당한 참패와 치욕을 잊을수 없었다. 그자에게 내준 1등 자리를 다시 빼앗고야 말리라 별렀다. 하지만 그 당시는 “문을 열고 학교를 꾸릴”때라 빈하중농을 따라 배워 비료를 모은다 밭일을 한다하며 로동만 하다나니 공부하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자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고 하는 일마다 나보다 나았다. 비료를 모아도 나보다 더 많이 모았고 모내기나 기움이나 가을걷이나 대채전(제전)을 해도 나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일축을 냈다. 그뿐만아니라 그자는 미술에서도 나를 릉가했다. 특히 그자는 비행기와 탱크를 잘 그렸다. 월녀마저 그자의 그림 솜씨에 반해버렸다.
그때는 고급중학교가 따로 없이 중학교 3학년에서 곧 4학년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중학교 4학년으로 올라갔을 때는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였을 시기여서 다시 공부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엉터리공부를 해온 학생들이여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자가 1등이고 나는 2등이였다. 평소엔 공부성적이 우수해 보이지 않던 그자가 시험만 치르면 항상 나보다 조금씩 앞섰다. 그때 동학들 중에서 누군가 나에게 주유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3국시기 오나라의 으뜸가는 모사 주공근!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별명일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수치스러운 별명이였다. 누구나 알다싶이 주유는 지모가 뛰여나다고 천하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모사였지만 제갈량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다가 비명에 죽은 비참한 운명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더욱 기막힌 일은 내게 그런 별명을 달아준 놈팽이가 그자에게 제갈량이란 별명을 달아준것이였다. 아아, 기막힌 내 운명이여!
중학교 4학년에 올라가면서 나는 한쪽에 밀려나고 완전히 그자의 천하가 되였다. 간부를 다시 선거했는데 그자가 반장 겸 공청단서기로 당선되였다. 나는 그저 허수아비 부반장자리나 지키고있었다. 이때로부터 내 2등 인생이 정식으로 시작된 셈이다.
누구나 다 알다싶이 제갈공명은 세번이나 크게 주공근의 화를 돋궈준다. 운명이랄까 그자도 꼭 내 화를 크게 세번 돋궈주었다. 그자가 첫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바로 대학시절 내 사랑하는 월녀를 빼앗아간 사건이였다.
공교롭게도 그자와 나 그리고 월녀는 모두 같은 대학에 붙어 함께 공부하게 되였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삽입해야 할 에피소드가 있다. 항상 시험만 치르면 나보다 점수가 더 높던 그자가 대학시험에서 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맞았던것이다. 동학들은 모두 이외라고 생각했고 월녀도 모를 일이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런데 그자도 자신의 시험점수를 예상하고있었던지 보통대학에 지망했던것이다. 나도 내가 높은 점수를 따내리란 자신이 없은데다가 월녀와 떨어지기 싫어 그들과 같은 대학에 지망했던것이다. 운명은 또 우리 셋을 한데 묶어놓고 짓궂은 장난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몇해를 공부하면서 월녀는 변함없이 내게 맘을 두고있었다. 여가가 있을 때마다 밀회했고 방학때마다 함께 상대방의 집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던것이다. 그런데 졸업할 림박에 갑자기 그녀가 그자의 품에 안겨버렸던것이다. 졸업학년 때는 실습을 나가서 잘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랭정했고 그자를 보는 눈길이 정을 그득 담고있는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더니 졸업할 무렵에는 끝내 그자에게로 가버렸다. 아니, 어쩌면 중학시절 그자가 나타날 때부터 벌써 그녀의 마음은 그자에게 가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자가 그때부터 그녀를 나한테서 빼앗아가려고 계획을 짜고 음모를 꾸미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자는 그녀가 내 약혼녀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에게 접근하여 마라톤식 사랑의 공세를 들이대 그녀의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댔던것이다. 짐승같은 놈!
졸업파티 전날까지도 나는 그자가 그녀를 빼앗아간 줄을 감감 모르고있었다. 졸업파티에 참석해보니 이상하게도 그자와 그녀가 나란히 서있었고 내가 그녀에게 춤을 청하려는 시각에 그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 마이크를 잡고는 기고만장하여 온 대청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지껄여댔다.
“친애하는 동학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이제 곧 사회로 진출하게 됩니다. 아쉬운 리별을 앞두고 모인 이 자리를 빌어 나는 한가지 중요한 소식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동학들의 눈길은 일제히 그자에게로 쏠렸다. 그자는 싱글벙글 웃었고 그자의 손을 잡은 그녀도 방글방글 웃고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자가 말을 이었다.
“나는 바로 우리 학교의 꽃인 월녀씨와 정식으로 백년가약을 맺었음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이 장소는 졸업파티이자 우리의 약혼파티인 셈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축복해주십시오!”
순간 나는 멍해졌다. 내가 잘못들은것이 아닌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속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나와 친한 박군이 내 곁에 다가와서 격분하여 말했다.
“아니, 어떻게 네 약혼녀가 하루밤사이에 저 자식의 약혼녀로 되였지?”
월녀가 내 약혼녀란 사실은 박군만이 알고있는 사실이 아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장소에서 감쪽같이 약혼녀를 빼앗은 사실을 공개하는것은 나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아닐수 없다. 동학들이 이상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 눈길은 마치 “저 자식이 바보처럼 약혼녀를 빼앗겼군!”하고 나를 비웃는것 같았다. 아아, 이런 모욕을 어찌 참을수 있단 말인가!
너무도 격분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나는 주먹을 불끈 틀어쥐고 천천히 그자한테로 다가갔다. 그자는 내가 다가온것도 모르고 주위사람들과 희희락락하며 뭐라고 지껄이고있었다. 나는 먼저 그자의 곁에선 월녀에게 따지고 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미안해, 일이 이미 이렇게 됐어.”
“이렇게 됐다니? 너하고 나 약혼한 사이 아니였어? 왜 나한텐 헤여진다는 말도 없이…한마디 말도 없다가…네가 어찌 나한테 이럴수 있니? 아무리 그래도 우린 중학교 때부터 여태까지 사랑해온 사이인데 이럴수 있느냐 말이야? 그래 너희들은 나같은건 안중에도 없단 말이지?”
“미…미안해. 너한테 헤여지자는 말을 하려 했으나 차마 입을 뗄수가 없어서…”
“이 죽일 년의 간나새끼!”
나는 월녀의 뺨을 찰싹 후려쳤다. 그러자 그자가 와닥닥 팔을 걷고 나섰다.
“너 왜 내 약혼녀를 치는거냐?!”
격분한 나는 그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자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야, 임마! 뭐 약혼녀?! 너 친구의 약혼녀를 빼앗고도 뻔뻔스럽게 네 약혼녀라니? 이 짐승보다 못한 놈아!”
나는 주먹으로 그자를 면상을 들이쳤다. 그러나 그자가 피하는 바람에 나는 헛방을 치고 말았다. 다시 들이치려는데 월녀가 그자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칠 테면 자기를 치라는듯이 배를 쑥 내밀고 경멸의 눈길로 차갑게 나를 쏘아보았다. 아아, 녀자란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다. 사랑할 때는 그렇게도 상냥하고 살뜰하더니 이렇게 순식간에 180도로 돌아서 표독스럽게 변하는구나! 동학들이 구경거리나 생긴듯 모여서는것을 보고 나는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슴이 찢긴다. 분노때문인지 실련의 고통때문인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 같다. 아아, 그녀를 죽이고싶다! 나를 배반하고 적수의 품에 안긴 그녀를 죽이고싶다! 아니 그녀보다 그자를 죽이고싶다! 내 사랑을 빼앗아간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싶다! 나는 헬스장으로 달려가서 권투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그자라고 상상하며 사정없이 들이쳤다.
“이 죽일 놈의 새끼야! 벼락 맞아 뒈져라! 뒈져!”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이 차 헐떡거릴 때까지 그자를 저주하며 샌드백을 들이쳤다. “에이즈에 걸려 죽어라! 염병하다 죽어라! 급살맞아 죽어라! 차에 치어 죽어라!”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으며 샌드백을 들이쳤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긴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 내 첫사랑을 빼앗아간 그자! 내 인생에 볕을 볼 날이 없게 한 그자가 죽었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을수 있으랴! 나는 다시 살며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달빛이 여전히 밝다. 그자는 이제 저 밝은 달을 볼수 없게 되였구나. 천하에 제밖에 없는듯이 언제나 뭇사람들 앞에서 빛을 발하며 그렇게 우쭐거리더니 이젠 캄캄한 저승귀신이 되였구나.
나는 담배불을 붙여 물었다. 언제나 내 앞에서 승리자의 자태로 우쭐거리던 그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자는 제갈량이 주유에게 세번이나 화를 돋궈주듯 그렇게 내게 세번이나 화를 돋궈주고 승리감에 취하여 꼭꼭 축하파티를 열었다. 내 첫사랑인 월녀를 빼앗아갈 때도 축하파티를 열었고 또 두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줄 때도 축하파티를 열었다.
그자가 두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정말로 뜻밖에 일이였다. 나는 월녀를 그자에게 빼앗긴후 실련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장래에 그자보다 더 큰 사람이 되리라 맹세하고 졸업후 정부관원으로 되는 길을 택했다. 처음엔 시장비서로 몇년간 있다가 기층의 당위서기로 있으면서 기초를 닦은후 다시 중요부문으로 올라가 부처장이 되였다. 나를 등용한 상급은 로처장이 명년에 퇴직하게 되면 그 자리는 내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시간은 빨리도 지나 로처장이 퇴직하게 되였다. 이제 곧 처장으로 승급하게 될것이라고 여긴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상급에서 처장을 따로 임명해 내려보낼줄을.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그자가 바로 내 앞에 처장이 되여 나타났던것이다. 그자가 내 상급이 되다니?! 그자가 내 벼슬길을 가로막다니? 아아, 이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인가! 그자는 내 앞에 승리자의 자태로 나타나 승리감에 웃으며 그날밤에 축하파티를 열었다. 나는 분통을 참으며 그자에게 축하의 술을 부어주지 않을수 없었다. 내게 아부하던 부하들이 모두 그자에게 붙어 아부하는 꼬락서니를 보노라니 그 자리에 더 앉아있을수 없어 핑계를 대고 나온 나는 친구가 꾸린 혈스장으로 달려갔다.
분통이 터진다. 아아, 그자를 죽이고싶다! 내 처장자리를 빼앗아간 그자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싶다! 나는 권투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그자라고 상상하며 사정없이 들이쳤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내 첫사랑을 빼앗아간 놈! 내 처장자리를 빼앗아간 놈! 아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런데 지금 그자가 죽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들어가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 출근을 서둘렀다. 사무청사에 도착하니 모두들 그자의 죽음에 대해 의논하고있었다.
“국장님은 다재다능한 분이였는데 후-“
“한창 해먹을 나이에 아깝게도…쯧쯧…”
비감한 표정을 짓고있는 부하들의 얼굴을 보니 그자의 죽음이 실감났다. 그자가 정말 죽었구나!
상급에서도 화환을 보내왔고 부시장이 친히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엔 국의 전체직원이 참석했을 뿐만아니라 형제단위와 국산하 하급단위의 대표들도 참석했다. 그외에 친척친우들까지 합쳐 그자의 장례식은 북적북적했다. 장의행렬만 보아도 그자가 살았을 때는 어마어마한 인물이였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자는 지금 시체가 되여 누워있었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나는 그자의 주검을 쏘아보았다. 언제나 내 앞에서 승리자의 자태로 우쭐거리던 그자, 내 화를 세번이나 돋구어주던 그자가 지금은 시체가 되여 누워있는것이다.
그자가 세번째로 내 화를 크게 돋궈준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그자가 처장이 되자 나는 그자의 그늘에 가리워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 실무능력이 그자보다 더 우수하다고 믿고있었다.
아무튼 고집스러운데가 많았던 나는 어느 땐가는 꼭 그자를 이기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사업에 열성을 퍼부었다. 내 잠재한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하급에게 내 지도능력을 과시했고 상급에게 내 재능을 보여줬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과연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어느날 상급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칭찬했다.
“잘해보게. 우에선 이미 자네를 승급시키기로 결정했네!”
그 말을 들은 나는 대번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아, 나는 마침내 그자의 우에 올라앉게 됐구나. 장장 30년을 그자의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이제야 그자를 누르며 살게 됐구나.
그날밤에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하여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꿈에 그자를 보았다. 항상 내 앞에서 배를 쑥 내밀고 득의양양해하던 그자가 나를 보자 “국장님”하고 허리를 굽실거린다. 나는 천정을 쳐다보다가 그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잘해보게”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는데 그자가 어느새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그러면서 그자는 “국장님, 오늘 저녁에 국장님을 우리 집으로 좀 모셨으면 하는데요. 변변한건 없지만 국장님을 모시고 술이나 한잔…”하고 황송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그자를 바라보며 “음, 저녁에 시간이 있겠는지 모르겠네”하고는 비서를 보고 물었다.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됐나?”
“저녁엔 아직 다른 안배가 없습니다. 국장님.”
“그럼 가는것으로 하지.”
그러자 그자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다. 저녁이 되여 그자의 집에 가자 푸짐하게 차린 술상에서 그자의 안해인 나의 첫사랑 월녀가 술을 부어준다. 그자가 화장실로 간 사이에 월녀는 내곁에 바싹 붙어앉으며 “제가 대학교땐 눈이 있어도 망울이 없어 국장님을 배반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이제라도 국장님께서 절 나무라지 않으신다면 제가 리혼하고 국장님의 품에 안기겠어요”하고 애교를 부린다. 그러나 나는 월녀의 궁둥이를 툭 차버린다.
“난 리혼 못해. 내 안해는 현숙한 녀자야.”
“그럼 제가 국장님의 정부로 되지요.”
월녀가 다시 내 품에 안겨들며 아양을 떤다. 그제야 나는 그녀를 슬쩍 껴안고 대학시절에 만지던 그녀의 가슴을 슬슬 만져댄다. 화장실에 갔다 돌아온 그자는 내가 자기의 안해를 애무하는것을 보더니 “국장님, 미안합니다”하며 제꺽 자리를 피해준다. 나는 그자와 나를 배반하고 간 그녀에게 복수하듯 내 첫사랑을 발가벗겨 놓고 그녀의 하얀 몸뚱이를 마음껏 롱락한다.
“국장님-어서 일어나 아침 드세요.”
안해가 달콤한 내 꿈을 깨운다. 안해도 내가 국장으로 승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나는 아침을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서 출근했다. 기분 좋은 날은 정말로 기분 좋은 날인가 보다. 그날로 나는 부국장으로 임명되였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속에서 나는 멸시의 눈길로 그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를 쑥 내밀고 어깨를 으쓱하는데…원국장이 전근하고 그자를 새국장으로 임명한다고 선포하는게 아니겠는가! 아아,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자가 또 내 상급이 되다니?! 나는 또 그자의 밑에서 2등인생을 살아야 하다니!
나는 또 옥상에 설치한 샌드백을 사정없이 들이치며 “급살맞아 죽어라! 차에 치어 죽어라!”하고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
내 저주때문에 그자가 죽은것인가? 그자는 지금 내 앞에 시체로 되여 누워있다. 그자가 죽었다! 그자가 죽었다! 나는 그자의 주검을 쏘아보았다. (이젠 네가 내 우에 올라앉아 우쭐거리지 못하겠지? 하하하!) 이렇게 기뻐해야 했지만 정작 그자의 시체를 마주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고 대신 눈물이 나왔다.
화장터는 울음바다였다. 미망인인 내 첫사랑 월녀도 울고 그자의 아들도 울고 그자의 친척도 울고 그자의 부하들도 울었다. 그자의 시신을 태운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갔다. 그자는 한줌의 재로 되여 나왔다.
제갈량은 세번이나 주유의 화를 돋궈주었고 그자도 세번이나 내 화를 돋궈주었다. 주유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이미 주유를 내시고 어찌 또 제갈량을 내셨습니까!”하고 부르짖고는 곧 숨졌다. 제갈량은 주유를 세번만에 화를 돋궈 죽게 했지만 그자는 세번만에 내 화를 돋궈주고도 도리여 제 자신이 죽고말았다. 그자는 확실히 제갈량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주유가 아니였다. 그자가 내 화를 돋궈주면 나는 샌드백을 치는것으로 화를 풀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참을 인자가 있었다. 참자. 참는게 어른이고 참는게 승자다. 참고 살자. 참고 참고 또 참노라면 그 어느 땐가는 꼭 “쨍” 하고 해뜰 날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노기를 누르고 치욕을 참고 살았다. 참았기에 오늘 그자를 이긴것이다.
추도사는 내가 읽었다. 그자의 업적을 하나하나 라렬하면서 나는 저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추도사를 읽기를 마치고 나는 손으로 낯을 가리며 목놓아 울었다. 그것은 그자를 잃은 슬픔의 눈물만이 아니였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그자의 그늘에 가리워 2등 인생을 살아왔다. 장장 30년을 그자에게 눌리여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제갈량은 세번이나 주유를 격노시켜 죽이고도 주유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하지만 그때의 제갈량의 심정하고 지금의 내 심정은 완전히 다르다. 제갈량이 먼저 죽고 주유가 그 장례식에 참석하는 정경을 상상해 보라. 그럼 지금의 내 심정을 짐작할수 있으리라.
제갈량은 주유의 령전에서 제문을 읽고나서 일부러 슬픈듯이 땅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 그가 눈물을 샘솟듯 흘리며 애통해하기를 마지 않는것을 보고 주유의 밑에 있던 동오의 장수들이 “사람들이 모두 주유와 제갈량은 사이가 나쁘다더니 이제 제갈공명이 슬퍼하는걸 보니 그게 다 공연한 소리로군”하고 절로 감동되여 서로 수군거렸다. 지금 내가 통곡하는것을 보고 나의 부하들도 이와 똑 같은 말로 서로 수군거리고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두 부국장님과 국장님은 사이가 나쁘다더니 이제 부국장님이 슬퍼하는걸 보니 그게 다 공연한 소리로군”하고.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고 그자가 죽자 그자의 이름을 다시 외우는 사람도 점점 적어졌고 그자에게 아부하던 자들이 모두 내게 달라붙어 아부했다.
어느날, 나는 그자의 미망인이며 나의 첫사랑인 월녀를 만났다. 그녀를 보자 내 심정은 착잡했고 그녀도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눈치여서 우리는 조용한 다방에 가서 마주 앉았다. 내가 적당한 언어를 찾아 그녀에게 위안의 인사를 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넌 지금도 내가 널 배반했다고 원망하고있겠지?”
그녀는 학생시절처럼 “너, 나”하고 불렀다. 그것이 더 친절하게 느껴졌다. 사실 난 그녀를 원망하고있었다. 이날 이때까지.
“애초에 내가 널 선택했던건 네가 제일 우수한 남자라고 믿었기때문이지. 그런데 내 앞에 너보다 더 우수한 남자가 나타났던거야.”
“그자를 말하는거지? 널 내게서 빼앗아간 그자…”
“그가 날 빼앗아 간게 아니라 나 스스로 그에게로 갔어. 그가 너보다 더 우수했기때문이야.”
“난 그자가 나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잖아. 물론 학교 때 시험성적이 나보다 더 우수했지만. 대학시험성적도 나보다 못하고 지도자로서의 실무능력도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
그녀의 입에서 그자가 나보다 더 우수하단 말이 나오자 자존심이 몹시 상한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글쎄. 실력은 네가 그보다 낫다고 할수 있겠지. 그가 돌아간후 난 그의 일기책을 보고 학교때 그의 공부성적이 너보다 못했다는걸 알았어. 그는 교육국국장인 삼촌을 두고있은데다가 선생님께 늘 푸짐한 뢰물을 사갔대. 그래서 선생님은 그의 시험답안이 틀려도 시험성적을 올려줬고 때론 너의 시험성적이 너무 높아서…”
“아니?! 그럼 내 시험성적을 깎았다는 말이지?”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깜짝 놀랐다. 나는 학교 때 옳게 써넣었던 답안이 틀려진걸 발견하고 선생님께 따지던 생각이 떠오르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봐, 그자는 그렇게 비렬한 자였어!”
나는 분노가 솟구쳤지만 그녀는 천연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런 비밀을 말하는건 고인이 된 그를 욕보이려는게 아니야. 내막이야 어찌됐건 넌 확실히 그보다 선생님들의 호감을 사지 못했던게 아니겠어.”
그건 그랬다. 나는 공부만 공부라고 선생님들께 인사치레를 못했지만 그자는 인사성이 밝아 늘 선생님들께 호감을 샀다. 그자는 학교내에서나 거리에서나 선생님들을 만나기만 하면 죽은 할애비가 살아온듯한 반가운 웃음을 온 얼굴에 바르고 허리를 90도로 굽실거리며 인사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넌 그보다 실무능력이나 인간성이나 더 우수하다고 할수 있지. 업무실력으로 보면 네가 국장이 되고 그가 부국장이 돼야 하겠지.”
사실 난 무슨 일에서나 하급을 잘 대해주고 대중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아 대중들에게서 인간성이 좋다는 평판을 듣고있었다.
“하지만 넌 1인자감이 못돼.”
“?”
나는 어리둥절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왜? 하는 물음표를 던졌다.
“1인자로 되자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뭔지 알아? 그게 너한텐 없지만 그에겐 있었어. 그는 보통때도 그랬지만 승급할 기회거나 관건적인 시기엔 상급을 찾아가 인사하군 했어.”
“인사? 흥, 뢰물을 들고간 거겠지.”
“뢰물을 들고 간게 뭐가 나빠? 넌 관청에 있으면서도 그런걸 비웃으니까 1인자가 못되는거야. 정치무대에서 그처럼 1인자가 되자면 낯가죽이 두꺼울 땐 두꺼워야 하고 속마음이 검을 땐 검어야 해. 너처럼 곧은 직자로 하지 말고 모든 일을 상급의 눈치를 보아가며 령활하게 처리해야 해.”
난 확실히 상급에 아부할 줄을 몰랐다. 반면에 그자는 처세술에 능해서 상급의 눈치를 보고 아첨할줄을 알고 일부 부하들에게 리득을 베풀줄도 알아 호평을 받고있었다. 그자는 학생시절부터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기회만 있으면 갖은 애를 다 썼고 정치무대에서도 상급에 아첨하는데는 고수였다. 벼슬을 하자면 적당한 아첨은 해야 된다는걸 나는 알고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니여서 그자와 늘 의견이 틀렸고 더 높은 상급과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넌 종합실력이 그보다 못해. 그런데도 상급이 눈이 멀어 알아주지 못한다고 불만을 품고있으면서 그를 질투하지 않았어. 난 네가 1등인생을 살겠으면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본받으라고 충고할뿐이야.”
“충고 고마워. 하지만 그자는 죽었어. 그자의 시대는 지났어. 난 그자처럼 치사하게 살지 않고 내 방식대로 1등인생을 살거야!”
그자가 죽은후 모두들 국장자리는 당연히 내게라고들 말했다. 주위에서 그랬고 상급에서도 그런 눈치였다. 나도 국장자리는 이제 떼여 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허리를 쭉 펴고 배를 쑥 내밀었다. 그자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으냐. 이제부터 2등인생을 결속 짓고 1등인생을 살게 됐구나.
그런데 얼마후 우에서 다른 한 자를 국장으로 임명해 내려보냈다. 듣자니 그자도 상급의 집에 뢰물을 들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나는 또 하는수 없이 그자의 밑에서 2등인생을 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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